언어의 경계, 혁신, 그리고 진화

1. A가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상대는 미국에서 오래 거주한 한국인 2세 미국 시민권자 선배다. 평상시 영어를 쓰는 사람이고, 인사를 한 A와도 늘상 영어로 대화했다. 하지만 순간 장난기가 동한 A는 ‘한국 핏줄’의 동질성을 발동시키면서 유머스런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안녕하세요’와 고개숙이기, 손흔들기를 동시에 시전했다. 이것은 한국어인가 영어인가?

2. A가 B를 만났다. 둘은 경상도 출신 친구인데 우연히도 서울의 모 영어학원의 영어회화 수업을 동시에 수강하게 되었다. 첫 번째 수업시간, A가 B에게 “How have you been?”이라고 말을 건넸다. B는 장난스레 “I have been so miserable.”이라고 답했다. 문제는 B의 발화가 전형적인 경상도 억양을 띄고 있었다는 것이다. 순간 빵 터진 둘은 한참을 웃었다. 이 경우 B가 발화한 것은 영어인가 한국어(경상도 방언)인가? 둘의 ‘빵터짐’은 영어 문장의 내용에 대응하는가, 경상도 억양에 대응하는가, 아니면 이 둘의 절묘한 조합에 대응하는가?

3. A와 B는 중국인이다. 미국의 한 ESL 시간, 계속해서 A가 형용사 끝에 장난처럼 “的(de)”를 붙인다. 이에 질세라 B는 즉석해서 완료형을 나타내는 과거분사 뒤에 ‘了(le)’를 붙여 응수한다. 둘은 재미있어하며 히죽히죽 웃는다. 이들이 발화한 형용사와 과거분사는 영어인가 중국어인가?

4. ‘Untact’라는 ‘콩글리시’가 유행이다. 한국인들 다수가 이 말의 의미를 알아듣는다. 한 사람이 이 말을 영어로 생각하고 영미권의 원어민과 대화하면서 사용했다. 단어를 처음 들은 외국인은 속으로 ‘무슨 소리지?’했으나, 두 번째 ‘untact’를 듣고 이것의 의미를 알아챘다. 그리고 재치있게 자신도 ‘untact’라는 말을 차용하여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후 원어민은 한국인을 만날 때 웃으며 ‘untact’를 자연스럽게 섞어 쓴다. 이 영어 원어민이 차용한 ‘untact’라는 단어는 한국어인가 영어인가?

우리는 언어의 경계를 명확히 그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어 내에도 수많은 외래어가 들어와 있고, 영어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그 어떤 언어도 ‘순수하게’ ‘섞이지 않고’ 쓰이거나 발달하지 않는다.

우리는 맥락과 상대에 따라 자신이 갖고 있는 수많은 언어자원을 동원해 언어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조립된 산출물 중에서는 전형적인 것도 있고, 약간의 혁신을 가미한 것도 있고,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언어도 있다. 다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만난다면 조합의 혁신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통번역기의 발달로 더욱 가속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개인의 머릿속에 있는 언어자원에 더해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타 언어자원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비주얼과 제스처 등이 결합되는 방식도 점점 다양해진다. 순간순간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단단한영어공부 #translangua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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