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르지 못함에 대한 감각

Posted by on Jun 20, 2020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집필 | No Comments

1. 세상이 좋아졌다. 검색하면 손끝에서 정보가 쏟아진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한두 개 한다면 구글북스 검색에서도 상당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북과 오디오북도 상당량의 정보를 제공한다. 소위 ‘어둠의 경로’는 더이상 어둡지 않다. (응?)

2. 석사논문을 쓸 때까지만 해도 구할 수 없는 문헌들이 꽤 있었다. 모모 대학 도서관에만 있는 도서.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문헌. 어디 있는지는 알지만 구할 수 없는 책과 논문이 적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구할 수 없는 책과 논문이 가끔 튀어나오지만 고도로 특화된 문헌학 연구가 아니라면 해당 레퍼런스 없이도 논문을 쓰고 저작을 완성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주로 다루는 언어교육 분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3.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잊게 되는 감각들이 있다. 다다르지 못함에 대한 감각이 대표적이다. 신비감이라고 해야 할까. 알 수 없고 접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동경이라고 해야 할까. 정보의 과잉은 이런 감각을 무참히 깨뜨리고 있다.

4. 여행을 가지 않아도 특정 지역을 다룬 동영상과 웹사이트를 통해 ‘거기 가본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문헌을 꼼꼼히 다 읽지 않고도 초록을 섭렵하면서 ‘그 분야를 좀 아는 것 같은’ 자만에 빠지기도 한다. 하드디스크에 채워져가는 문헌들을 보며 나의 지식이 채워진다는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내 이야기다.

5. 더 많은 것들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 더 넓게 알아야 더 깊이 볼 수 있는 영역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인간이 보고 읽어낼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정보과잉은 과장된 만능감을 선사한다. 다다르지 못함에 대한 감각을 망각한 이들은 자기를 과신한다.

6. 만능감은 언제나 거짓이다. 우리 각자가 알 수 있는 것은 세계의 파편 중에서도 파편일 뿐이다. 정보가 많아진다면 우리는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정보가 제대로 쓰이는 길이다.

7. 소셜네트워크도 마찬가지다. 사람들과 연결될수록 사람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토록 다양다종한 사람들을, 그들이 겪어온 삶의 굴곡들을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는가?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다 알고 있다고 믿는 멍청이들이 보인다.

그리고 생각난 책의 한 구절.

8. 엄기호: 또 하나, 제가 주체성의 문제에서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변화는 거대주체의 소멸이에요.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기,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 이걸 생각하게 되면서 거대주체가 소멸하게 되었다고 보는 거죠. 담론의 공간, 주석으로서의 지식 생산이라고 말씀하신 것이이런 의미일 텐데요. 이제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다 알거든요, 자기가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요. 특히 자연과학에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지식이라는 게 거의 불가능하죠.

제가 이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거대주체를 종식시켰기때문에 인간이 더 겸손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만능감을 제거할 수 있죠. 많은 연구자가 처음에 어떤 주제를 떠올리면서 이건정말 기발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논거를 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저작을 읽다 보면 자기가 하려는 게 대부분 이미 연구되어 있다는것을 깨닫게 되죠. 인류 전체의 거대한 축적 위에 올려지는 작은 벽돌 하나라도 되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말 겸손해지거든요. 아주 예외적으로 읽기를 반복할수록 자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만 대다수의 사람은 읽으면 겸손해집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개인을 만들고 역사적 주체를 만들되, 동시에 거대주체가 아닌 작고 소박한 주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읽기라는 행위가 가진 매우 독특한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93-94쪽)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