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환의 물성, 계급, 상상력

1. 주머니나 가방 안에 넣을 수 있는 화환은 없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화환은 눈에 띈다. 스스로 ‘거기 있음’을 알리는 것이 화환의 주요 임무 중 하나다. 역으로 말하면 눈에 띄지 않는 화환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된다.

2. 화환에는 보통 두 개의 메시지가 담긴다. 하나는 조의를 표하는 메시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가 대표적이다. 다음으로는 화환을 보낸 사람이다. 대개 이것은 다시 두 개의 메시지로 나뉜다. 먼저 보낸 사람의 직함이다. 다음으로는 보낸 이의 이름이다. “”(주) 개똥전자 대표이사 홍길동”과 같은 문구가 대표적이다. ‘화환’은 ‘조화나 생화를 모아 고리 모양으로 둥글게 만든 물건(다음사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사실 핵심은 꽃이 아니라 언어적 구성에 있다.

3. 화환은 누구나 보낼 수 있지만 누구나 보내지는 않는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어서 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그보다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보내는 경우가 많다. 계급적 편협함 때문일 수도 있으나 나는 ‘배송노동자 OOO’나, ‘택시기사 OOO’와 같은 이름이 붙은 화환을 본 적이 없다. ‘화환에도 계급이 있다’는 말을 완전히 부정하긴 힘들 것이다.

4. 화환에 ‘박히는’ 직책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기업의 총수나 국회의원이다. 아주 예외적으로 대통령이 화환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런 이름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상가는 보내는 이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사회문화적, 상징적 권력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장이 된다. 화환이라는 장치는 그 자체로 모종의 권력을 생산한다.

5. 그런 의미에서 개개인은 예를 갖추어 화환을 보낼지 모르지만, 그것들은 누군가에게 목격되거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거나 언론에 의해 보도되면서 고인과 그의 가족이 사회 내에서 점하는 위치를 고정하고 동시에 증폭시킨다. 죽음을 기리는 장례식장이지만 고인과 그의 가족이 쌓아온 사회적 자본이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자리로 기능하는 것이다.

6. 화환만은 아니다. 특정 장례식장의 평판이나 인지도, 해당 공간의 물리적 특성, 조문객의 규모와 사회경제적 구성, 장례를 이끄는 인물/기관의 영향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회경제적, 문화적, 계급적 지표로 작용한다.

7. 이번 논란으로 돌아가 보자. “(주) 개똥전자 대표이사 홍길동”과 “대통령 홍길동”에서 ‘(주) 개똥전자 대표이사’와 ‘대통령’은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다. 기호학적 측면에서 한 가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이 둘의 위치가 같다고 해서 그것이 가지는 의미의 무게도 같을 수 있는가? ‘대통령’이 박힌 화환이 공간을 점할 때 그것을 받는 상대는 어떻게 위치지어지는가? 그렇게 대통령과 상대에 의해 점유된 의미를 시민들은, 여성들은, 피해자들은, 동료 정치인들은, 언론은 어떻게 인지하게 되는가? 다시 강조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의도’가 아니라 ‘효과’이며, ‘효과’의 영역은 당사자들의 ‘선한’ 의도로 제어하거나 판단될 수 없는 것이다.

8. 논란에서 잠시 바깥으로 나와 보자. ‘예를 갖추는 방식으로서의 화환’은 관습을 충실히 따른다. 쉽게 말해 하던 대로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것은 예를 갖추는 방식에 대한 상상력의 지독한 빈곤을 드러내지는 않는가? 의도와 관계 없이 화환이 갖는 물성이 발현하는 효과에 무지한 선택은 아닌가?

9. 이번 ‘사건’에 대한 각자의 판단은 다를 것이다. 아니, 그게 무슨 사건씩이나 되느냐고 할 분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한평생 화환 한 번 보내지 않고도 충분히 예를 갖추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지위와 이름을 전시하지 않아도 충분한 사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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