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시간낭비’를 읽고

Posted by on Aug 14, 2020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얼마 전 몇몇 친구분들이 링크한 ‘학자의 시간낭비’를 읽었습니다. 필자의 논지에서 분명 배울 것이 있었고 저 또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노학자의 일침에는 뼈가 있었고, 한두 가지 주제에 천착하여 이론을 전개하지 못하는 저 자신에게 값진 충고가 되었습니다.

그와 다른 측면에서 누군가의 인생을 — 실상은 공부를 업으로 삼은 이들 대부분의 인생을 ‘낭비’라고 부를 수 있음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제가 아는 인문학은 누군가의 인생에 대해 쉽게 ‘낭비’라고 딱지붙이지 않으며 자신의 ‘성공’을 기반으로 타인의 삶을 섣불리 낙인찍지 않습니다. 그것은 학자이건 기업가이건 관료이건 마찬가지입니다.

학계의 특성상 ‘대가’라 불리는 이들이 특권을 가지게 되고 심지어는 ‘급수’로 나뉘어지기도 하지만 삶을 영위하기 위해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의 공부를 ‘시간낭비’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진 않습니다. 그들의 삶이 시간낭비라고 불릴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적어도 저에겐 그렇습니다.

서른 다섯에 박사과정 공부를 시작했고 졸업하자 마자 생계전선에 뛰어들어 미친듯 강의를 소화했으니 “이론을 창조하는 능력은 35세를 지나면 쇠퇴한다는 것이 정설이다”라는 일갈로 보면 애초에 학자가 되기엔 글러먹은 인생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글러먹은 3류 인생이라도 공부를 업으로 삼았으니 계속 해나가는 수밖에요. 먹고사니즘의 전선에서 조금씩이라도 고민과 생각을 이어갈 밖에요. 이론을 만들 능력은 오래 전 상실하였지만 소박한 지식을 나누고 살밖에요.

물론 모든 지식노동이 같은 무게를 지닌 것은 아닙니다. 어떤 노동은 좀더 깊고 넓게 퍼져나가 사람들의 삶에, 동시대와 후세의 사상적 지향에 영향을 줍니다. 그들의 노고에 고개숙여 감사를 표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노동의 시간을 낭비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맥만 핏줄은 아닙니다. 모세혈관이 없으면 우리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이상 처음부터 가망없었던 영원한 학자지망생 1인의 넋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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