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 그리고 일상의 규범화

Posted by on Aug 28, 2014 in 강의노트, 링크,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격식성(formality) 이야기를 하다보니 생각나는 게 있다. 예전에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 줄여서 ‘애정남’라는 개그 코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었는데, 에피소드들 중 상당수는 큰 의미에서 본 격식이 애매하기 짝이 없다는 점을 파고든 것이었다. 객관적으로 정의되거나 사회적 규범으로 굳어지지 않은 요소들을 발굴해 ‘선을 그어주는’ 포맷이었던 것. 인생에서 코드화되지 않은 상호주관성의 영역은 어디에나 널려 있고, 일상은 ‘상대가 이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다’는 암묵적 가정 위에 굴러간다. 그런데 이런 가정은 늘상 충돌을 일으킨다. 이런 관찰을 기반으로 최효종(애정남)의 처음 멘트를 다시 써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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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대한민국이 왜 아름다운지 아십니까?” – 인간 행동의 일거수 일투족이 규약화되고 법제화되지 않아서 좋지 아니한가? 인사할 때 각도까지 정해져 있고, 악수할 때 시간까지 지켜야 한다면 얼마나 숨막히겠나?

“바로 우리들만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 외부로부터 강제되는 규범이 아닌 ‘우리'(특정 커뮤니티에서 사회화를 거친 모든 사람들)만의 암묵적 가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정들을 갖고 있는 인간은 없다.

“예를 들면 연인간의 터치, 요거 애매~합니다.” – 연인 사이의 육체적 교감의 정도. 이거 법으로 정해져 있지도 않고,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근데 누구나 이런 고민을 하게 되지 않나?

“둘만 있을 때야 누가 뭐라고 하겠나마는” – 사적 관계에서의 행동의 규약은 둘이 알아서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나 제도, 국가가 뭐라 할 수 없는 것이지만은. 니네들이 알아서 하면 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애매한 게 현실이예요.” –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를 경우가 많다.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으로 넘어갈 때 매너, 규약, 법률 등이 출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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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남은 이런 말을 하고 나서 ‘스킨쉽’의 애매함을 해결하기 위한 기준으로 연령을 제시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기존의 애매함을 깨기 위해 또다른 애매함, 예를 들어 친소의 정도, 사랑에 대한 확신 등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연령이라는 생물학적으로 확립된 기준을 동원하고 있다는 점. 다른 에피소드에서 이런 전략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해법은 개그 속에서나 가능하다. 실제 우리네 삶의 대부분은 애매함이 다른 애매함과 관계를 맺고 긴장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사랑, 우정, 미움, 질투 등등… 무엇 하나 계량화와 엄밀한 개념정의로 규칙을 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긴 삶만 그런가? 인간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코드인 언어도 애매함과 메타포로 꽉 차 있다. 이런 특징은 인간의 언어(자연어)와 프로그래밍 언어를 구분하는 중요한 자질이다.

덧댐: 언젠가 언어철학과 개그라는 책을 쓴다면 “애정남”은 “비트겐슈타인과 상호주관성”으로, “생활의 발견”은 “바흐친과 맥락”이라는 주제로 써보면 재미날 듯하다. 누가 읽을 지는 모르지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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