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의 죽음, 죽음 속의 일상

Posted by on Sep 27, 2014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세상에서 마음이 가장 무거웠던 어느날의 일기] 며칠 전 이수역에서 벌어진 80대 시민의 끔찍한 사망사고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낙현 신부님의 글을 읽으며 2005년의 어느 일기를 다시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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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몸이 많이 무거웠다.
늦게 운동을 하고 자서 그런지 다리도 시큰거렸고
오늘 맡은 몇 건의 계약도 그다지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요 며칠 업무에서 느끼는 무기력감이 아침마다 나를 엄습해서
어지간하면 30초 안에 수건을 들고 욕실에 들어가는 게 보통이지만
2분을 뒤척거리고 나서야 떠지지 않는 눈을 부비고 일어섰다.

참 신기한 건 그렇게 힘들게 일어나도
어머니가 지어주신 아침을 먹고 나면 하루를 살 기운이 생긴다는 거다.

일곱 시 사분, 신대방역 도착.
며칠 전에 느긋하게 열차 한 대를 보내고 나서 10분만에 온 열차 때문에 한바탕 “출근길 쑈”를 한 터라 잽싸게 정거해 있는 열차에 올랐다.

여느 때처럼 몸을 열차 벽면에 비스듬히 기대고 책을 한 자 볼까 하고 있는데
이 열차 분위기 별로 좋지 않다.

웅성거림.
차가 조금 오래 서있었나 보다.

“왜 이렇게 안가? 바빠죽겠는데.”

몇몇 사람들의 판에박힌 문구.
입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나도 그런 생각이었다.

생각보가 차가 오래 안갔다.
아침시간의 정차 1분의 위력은 꽤 큰데
3-4분이 지나도록 꿈쩍도 않는 열차.
여기 저기서 불평이 고함이 되어 터져나오고 있었다.

“이거 왜 안갑니까?”
“빨리 갑시다. 빨리. 뭐하는 거야, 지금.”

그때 방송이 나왔다.

“승객여러분. 선로 위에 사람이 누워있는 관계로 출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전한 열차 내에서 잠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선로 위에 사람이 누워있습니다.”

웅성거림은 더욱 심해졌다.

“사람이 누워있다구?”
“응, 그렇대. 어떤 미친놈이지?”

옆에 있던 한 할아버지는 쩌렁 쩌렁 울리는 소리로 말했다.

“요즘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니야. 저런 정신없는 놈들은 잡아다가 족쳐야 돼.”

옆의 할머니도 거들었다.

“미친 사람인가 보네. 빨리 끌어내야지. 왜 아직 안끌어내고 있는 거야.”

그때 앞에 승객이 기관사를 향해 소리지른다.

“빨리 갑시다. 빨리.”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 소리들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난 내가 지각을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지각보다 그들의 웅성거림을 더욱 피하고 싶었다.

그 때 119 구조대원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경찰이 나타났다. 정차한 지 약 10분 후.

“이제야 오네. 참 늦게도 온다.”
“이제 빨리 끌어내야지.”

난 이제 지각을 기정사실화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보고 싶어졌다.
어떤 사람과 구조대원의 실랑이를 예상하며.
차량에서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실랑이는 없었다.

차량 맨 앞칸에서 30여미터 앞에 사람이 반듯이 누워 있었다.
잠바를 얼굴까지 뒤집어 쓴 모습.
허름한 옷차림의 노숙자 같았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그 사람의 목이 있어야 할 자리가 푹 꺼져 있는 것이었다.
머리가 있다면 뭔가로 덮어도 그 윤곽이 드러날텐데.

경찰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그 사람이 죽어 있다는 뜻이다.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자살, 목없는 사람.
김선일과 이은주 같은 이름들이 떠올랐다.

모든 게 한 순간 멈췄다.
열차도, 하늘도, 소음도.
몇 초간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번개를 맞은 듯 거기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나를 깨운 건 또 다른 항의들.

“빨리 끌어내고 출발합시다.”
“지금 바쁜데 이렇게 시간 계속 보낼겁니까?”
“빨리 갑시다. 빨리요.”

경찰은 안내방송을 주문하고
기관사 아저씨는 아까부터 계속 했다는 대답을 한다.

이번에는 구역질이 났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삿대질, 욕설.
세상을 다 안다는 듯한 논평들.
출근길을 방해하는 시체에 대한 증오어린 표정들.
그 와중에 잠에 빠져있는 사람들.

역내 방송이 크게 나왔다.

“이제 출발합니다. 모두 승차해 주십시오.”

회사로 가야 하는 나는 마법에 걸린 듯 열차 안으로 흡수되었고
열차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출발했다.

“이은주 죽은 다음에 자살률이 엄청 늘었대.
자살도 유행이야 유행.”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노파의 말 한마디가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짜증을 넘어선 주체할 수 없는 감정.

뭐라 해야 하나.
삶을 마감한 망자 앞에서도 우린
지각을 걱정해야 한다.
버릇없는 인간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 한다.

열차는 평소와 다름없이
그가 누워있던 철로 위로 달렸다.

지금 열차가 달리는 길로
그가 걸어왔을 것이다.
약을 준비했거나
반듯이 철로에 자기를 뉘었거나…

그의 마지막 걸음을 생각하면
아찔한 고요함을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일상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말이 떠오르고
난 계속 구역질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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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안은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2005.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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