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education is about

Posted by on Aug 20, 2018 in 단상,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Education is not about the power to conquer the world, but about the will to surrender to justice, peace, and love. And we all know which of the two we are inculcating in school. In fact the entire socioeconomic system engineers the environment in which the conquerors can despise the weak legitimately and even ‘gracefully.’ This deeply hurts, and the resultant sufferings erode the body and psyche of the despised. It is truly tragic that these systematized trauma prevails.

만트라 몇

Posted by on Aug 19,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1. 선언하지 말고 살아내자.
2. 징징거리지 않기만 해도 성공이다.
3. 자의식 과잉보다는 멍때리기가 낫다
4. 불안해하며 달리기보다는 그냥 자자.
5. 제대로 분노하려면 오래 공부해야 한다
6. 새벽에 쓴 글 다음 날 읽으면 알지?
7. 원고들은 노려보지 않아. 지배할 뿐.
8. 딱 한번만 더 읽어라.
9. 숨쉬어, 숨!

다시,
눈빛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다.

음악감상 능력 계발을 위한 7가지 전략

Posted by on Aug 19, 2018 in 강의노트,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1. 음악적 감수성 sensitivity 을 계발하라.

주변의 모든 소리에 민감해지자. 눈으로 보는 경치(landscape)가 아닌 소리의 풍경(soundscape)에 귀를 열어보자. 아름다운 새소리, 달콤한 발라드와 웅장한 관현악 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소음’에 귀기울이는 습관을 들이자.

버스를 타고 가면서 버스의 진동과 엔진 소리가 만들어 내는 리듬에 귀기울이거나 다양한 재질의 탁자에 귀를 대고 손가락으로 드럼 비트를 두들겨 보는 건 어떨까? 운동을 하다가 다양한 방법으로 박수를 치면서 소리의 차이를 느껴보는 건? 산책을 하면서 발 전체로 딛을 때와 앞꿈치로 딛을 때의 소리와 울림은 어떻게 다를까? 내 컴퓨터의 인쇄 버튼을 누른 후 종이가 모두 나오고 프린터가 다시 ‘잠들’ 때까지 어떤 소리들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귀 기울여 보자. 방마다 고유한 소리의 시그너처가 있고 사람들의 기침 소리 또한 모두 다르다. 아침 저녁 심호흡 속에서 내 몸이 내는 소리에 귀기울여 보자.

2. 시간이야말로 음악 감상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음악을 들을 때 다양한 박자와 빠르기를 경험하도록 노력하라.

낚시를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낚시에 집중하는 동안 시간의 개념, 시간에 대한 경험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한다. 몰입하면 시간은 변화하게 마련인 것이다.

다양한 음악을 통해 시간 여행의 속도와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호흡이 가빠지는 노래부터 수면의 속도와 맞먹는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의 유연성을 경험해 보자. 책을 아주 천천히 혹은 아주 빨리 읽어보기도 하고, 음악의 드럼 비트를 사이 사이에 나만의 소리 (혹은 여음구?)를 넣어보기도 하자. 몸이 좋을 때와 좋지 않을 때 같은 곡의 빠르기는 어떻게 다른가? 음악을 그냥 들을 때와 고개를 흔들며 들을 때, 박자를 ‘쪼개어’ 다리를 흔들며 들을 때, 악기를 따라 연주하는 흉내를 내며 ‘몸싱크’하며 들을 때 음악의 시간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3. 음악 기억력 발달 훈련을 하자.

어렸을 적 음악 시험에는 음악의 특정 부분을 들려주고 어떤 곡인지 맞추는 문제가 단골로 출제되었다. 많은 곡들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 암기를 해야 하는 상황은 문제가 있었지만, 음악적 패턴을 개별 곡 혹은 작곡가의 음악 세계와 연결시키는 작업은 음악감상에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 없다.

사실 음악에 대한 기억력은 단순히 듣는 행위가 아니라, 음악에 대한 기억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 것인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음악에 대한 기억은 다음 4번 (음악 용어의 습득) 항목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악기를 직접 연주하는 경우에는 감상을 위한 인지 능력과 “몸의 기억”이 바로 연결될 것이다.

4. 음악 용어를 익히라.

“아는체”가 아니라 음악을 더 풍부하게 감상하기 위한 용어들을 익히자. 물론 화성악과 작곡법의 어휘들 vocabulary 을 알고, 다양한 악기의 구조와 특성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들을 배우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용어와 나의 경험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가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예를 들어 보고자 한다. 하나는 기존에 사용되고 있는 음악의 용어를 통해 좋아하는 음악의 특성을 기술해 보는 것이고, 다음은 메타포를 이용해 음악적 경험을 개념화해 보는 습관이다.

(1) 언젠가 “Over the Rainbow”를 듣자 마자 이 곡을 기억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첫 소절의 “한 옥타브 건너 뛰기”라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Some 과 Where 사이 음역이 한 옥타브인데 일반 노래곡 중에서 이렇게 시작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분석이었다. 물론 이게 위에서 제기한 질문에 대한 완벽한 대답은 아니겠지만, 자기 스스로 특정한 음악 패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옥타브”라는 음악적 개념이 적절히 사용된 설명의 예라고 생각된다. 자신만의 코멘터리를 다는 습관은 감상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2) 음악을 다른 것과 연결시켜 메타포적으로 표현하는 습관도 효과적인 훈련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강렬한 일렉 기타 리프가 계속되다가 편안하고 ‘넓은’ 악기 조합으로 변화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경우 나는 터널을 빠른 속도로 통과하는 자동차를 떠올린다.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양 옆에 켜져 있는 라이트가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다가 밝은 세상으로 나간다. 또 바깥 세상으로 나오기 전 아주 잠깐 동안 “바깥 세상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빛을 만난다. 나에겐 자동차로 터널을 통과하는 경험과 반복되는 일렉 리프와 마지막 몇 마디의 전환, 그리고 새로운 악기들로 구성되는 테마로의 전환은 유사성이 많다.

5. 집중력을 키우라.

음악을 사랑하고 전문적으로 듣는 사람들은 영화에 몰입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는 경험을 음악을 통해서도 한다. 난 이런 몰입의 훈련이 안되어 있어 호흡이 긴 관현악 곡에 집중하지 못하는 편인데, 그나마 공연장에서 집중하기 위해서 쓰는 “꼼수”는 마음 속으로 여러 악기의 연주자가 되어 보는 것이다.

사실 피아노 이외에 다른 악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곡이 흘러가면서 첼로 연주자가 되어 보기도 하고 트롬본 연주자가 되어 보기도 한다. 각 연주자들의 몸짓과 표정을 유심히 살피면서 음악을 듣는 게 조금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능력이 되시는 분들은 지휘자가 되어 보는 게 제일 좋겠지만 말이다. :)

6. 객관적이고 덤덤하게 듣는 훈련을 하라.

인지심리학적 관점에서 음악은 기대 expectation 를 하게 하고 그 기대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충족시키거나 무너뜨리고, 또다른 기대를 도입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우리가 일정한 장르의 음악을 계속해서 듣게 되면 멜로디나 박자 등에 대한 기대 패턴이 마음 속에 자리잡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패턴이 너무 확고하게 고정되어, 그 패턴의 “노예”가 되는 경우다. 국악이 어렵고 지루하게 들리거나 비전형적인 조바꿈이 일어날 때 “뇌가 꼬이는” 느낌을 갖게 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자기 속에 이런 패턴을 잠시 “뮤트”시킬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는 처음에 제시한 소리에 대한 감수성과 맞닿아 있다. 내가 이제껏 정의하고 경험한 음악의 영역을 넓혀가기 위해서는 음악적 ‘선입견’을 버리고 다양한 음악에 이끌려 미지의 소리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용기가 필요하다.

(갑자기 중학교 때 비오는 밤에 <미궁>을 처음 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는데… 사실 그건 좀 힘들었다. ^^;;)

7. 경험과 지식은 음악 감상에 깊이를 더한다.

음악사, 작곡가, 악기, 시대 등에 대한 지식을 쌓으면 음악적 경험이 더 풍부해진다. 음악만 듣는 것도 힘든데 이런 지식을 쌓을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늘 이 훈련을 해왔다.

예를 들어 나는 김민기의 ‘금관의 예수’를 들으면 어둠 컴컴한 교회 지하실에서 이 노래를 목놓아 부르던 내 모습과 함께 80년대 시위 현장이 떠오른다. 또 전람회의 “이방인”을 들으면 군생활의 단편들이 마구 떠오르는데, 그 시절 전람회의 음반을 다 외울 정도로 반복해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원곡에 덧칠한 경험의 아우라가 “거의 모든 리메이크가 원곡을 못따라간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라는 걸 알 수 있다. 즉 개개인 수준에서 봤을 때는 이미 경험과 지식이 음악과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음악 감상 능력을 좀더 키우기 위해서는 음악과 나 자신 뿐 아니라 음악과 시대, 음악과 작곡가, 음악과 다른 음악들 간의 관계를 공부하는 게 도움이 된다. 즉, “나에게 소중한 음악”의 수준에서 벗어나, “시대가 낳은 음악”, “작곡가의 삶이 빚어낸 음악”, “다른 음악가들을 움직인 음악”, “역사적 현장에 울려퍼졌던 음악”을 만나보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할 것인가. 참 어려운 질문이다. 사실 난 음악을 닥치는 대로 듣는다. 어렸을 때 피아노와 기타, 나이가 들어서 드럼을 조금 배우기도 했지만 음악을 제대로 배웠다기 보다는 악보를 카피하는 테크닉을 배웠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안타깝게도 음악을 이해하는 다양한 방법, 악기에 대한 태도, 다양한 음악 장르에 대한 지식, 음악과 음악가의 관계, 음악의 과학적 원리 등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던 것이다. 점점 편안한 음악만을 찾게 되는 요즘, 귀도 마음도 좀더 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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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링크한 포스트는 <Music: Ways of Listening> (Elliott Schwartz, 1982) 를 기반으로 음악 청취 훈련에 대해 몇 가지 조언을 제시한다. 위 포스트는 아래 글의 뼈대에 비전문가 막귀의 경험을 더해 정리해 본 것이다.

참고자료: How to Listen to Music: A Vintage Guide to the 7 Essential Skills by Maria Popova

How to Listen to Music: A Vintage Guide to the 7 Essential Skills

 

포기’당’한 세대의 아픔

 

나는 ‘포기자 담론’에서 포기의 주체를 학생들로 규정하는 것에 반대한다. 물론 면밀한 조사를 통해 교과교육의 실태를 파악하고 학생들의 아픔을 보듬어 안아 소위 ‘포기자’를 줄이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순서가 틀렸다는 생각이다. ‘학생들의 포기’ 이면에는 국가와 교육당국, 일부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포기가 있고, 이러한 포기의 핵심에는 교육에 대한 이 사회의 포기가 자리잡고 있다.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에 대한 보살핌을 포기하고, 교육체제가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을 포기하고, 국가는 새로운 시민을 키워내기를 포기했다. 이렇게 보면 분명 학생들은 포기’당’한 것이다. 사회경제적으로, 교육적으로 내팽개쳐진 세대가 배움의 일정 부분을 포기하는 것이 이상한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전통적인 교육의 요소는 <교사-교육내용-학생>의 세 축으로 설명된다. (이 모델의 정합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으나, 논의를 위해 잠시 차용한다면) 핵심적인 문제가 ‘교육내용’에 있는가?

나는 도리어 교사와 학생의 문제, 관계의 문제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관계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교사나 학생 개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제도적 역학이다. 교육과정의 양과 내용에 대한 토론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그것이 핵심이 될 수는 없다. 개별 주체들의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 노력의 범위와 깊이를 정하는 것은 구조적 요인이라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 정확히 3년 전 오늘 쓴 글을 하필 오늘같은 날 읽게 된다. 교육정책은 늘 ‘표류중’이었으나 이젠 더욱 거센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문제는 언제나 존재했으나 그나마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문제로 느리게 전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로 큰 흐름이 단절되었다. 지난한 싸움이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다.

관련기사:
2022 대입 정시 30% 이상으로 확대…대학 재정지원과 연계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3&aid=0008760294&sid1=001

전문성의 정의 LEARN

Posted by on Aug 16, 2018 in 강의노트, 단상, 일상 | No Comments

Expertise = LEARN

전문성 = 학습(Learning)X경험(Experience)X시도(Adventure)X성찰(Reflection)X커뮤니티(Network)

30년을 가르쳐도 잘 못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 경험이 전부라면 30년 경력의 선생은 모두 명강의를 해야 할텐데 말이다. 교육만 그런 것은 아니다. 어느 분야에나 ‘나이만 먹은’ 사람들이 조금씩은 있다.

교사전문성을 중심으로 고민해 온 입장인지라 모든 분야의 전문성을 아우르는 틀을 제시할 능력은 없다. 하지만 꽤 넓은 분야의 전문성은 LEARN이라는 약자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의미한다.

Learning 끊임없는 학습
Experience 학습한 바를 경험 속에서 녹여내기
Adventure 기존의 영역을 넘어서는 모험과 시도
Reflection 자신의 활동에 대한 비판적, 체계적 성찰
Network 이 모든 것들이 더 넓은 관계와 관점, 맥락에 놓일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들/커뮤니티

이는 일종의 휴리스틱으로 사용 가능하다. 자신의 전문성 신장 노력을 점검하기 위해 위의 목록에 자신을 대입해 보는 것이다.

오랜 시간 인류가 쌓아온 지식을 학습하고 있는가?
나의 삶에서 그것들을 깊이 경험할 기회가 있는가?
미지의 세계, 해보지 않은 일들을 상상하고 실천하는가?
경험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품어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가?
혼자만의 생각에 감탄하고 안주하지 않고 다른 관점, 아이디어와의 교류를 꾀하는가?

즉, 나는 LEARN하고 있는가?

이 관점에서 보면 learner 또한 새롭게 정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소외의 제도화 (the institutionalization of alienation)

Posted by on Aug 16, 2018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교육정책 변화의 소용돌이 속 가장 큰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는 결국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누군가에게는 부수적이지만 그들에겐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당사자들의 삶에 가닿지 못하는 정책의 가치에 대해 비당사자들이 논쟁하는 사회야말로 소외를 제도화하고 영속시키는 사회임에 틀림없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티-글 모아 태산

저자로서의 목소리(authorial voice)는 거대한 관점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라 초성과 단어의 선택에서, 어미의 변주에서, 격식의 조절에서, 어구의 호흡에서, 반복의 간격에서, 문장과 문단의 길이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함의되고 생략된 요소에서 드러난다. 리터러시는 하향식(top-down)과 상향식(bottom-up) 정보처리의 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글쓰기의 과정은 언제나 소리 하나, 단어 하나를 선택하는 행위의 연쇄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글짓기는 언제나 단어-짓기(word-building)이며, 단어-짓기 없는 세계-짓기(world-building)는 존재할 수 없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당파성을 드러내는 ‘객관성

Posted by on Aug 15,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나는 평소에는 온갖 사건에 대해 나름의 분석을 곁들여가며 의견을 내놓다가 특정한 사건에 대해서는 ‘진실은 알 수 없는 것’이라며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시전하는 선택적 객관이야말로 특정인의 편향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개별 행위가 아니라 여러 행위의 연속이, 여러 행위의 연속이 아니라 특정 행위의 공백이 누군가의 당파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의 말처럼 종국에 가서 우리가 기억하게 될 것은 적들의 말이 아니라 동지의 침묵일지 모른다. (In the end, we will remember not the words of our enemies but the silence of our friends. – Martin Luther King Jr.)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왜(WHY)의 힘

Posted by on Aug 14, 2018 in 강의노트,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1. 영어를 모국어로 습득하는 아이들에게서 보통 “what”이 가장 먼저 등장하고, ‘where’와 ‘who’가 그 뒤를 잇는다고 한다.

‘무엇을’, ‘누가’, ‘어디서’는 보통 눈에 보이는 요소다. 하지만 ‘why’는 보이지 않는 요소, 즉 동기(motive)와 의도(intention)에 관한 것이다. Why의 등장과 올바른 사용은 마음이론(theory of mind)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듯하다.

2. ‘why’는 보통 만 2세 직전쯤 나타나서 어른들을 괴롭게 한다고 하는데, 이건 한국어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왜, 왜, 왜” 세례를 받고 짜증 안내본 부모들은 별로 없으리라.)

3. 의문사 중에서 대개 가장 늦게 등장하는 건 ‘when’과 ‘how’인데, 언어학자들은 빈도 외에도 인지적으로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그럴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는다.

시간이라는 게 성인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개념이지만 아가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사건의 연쇄나 양태를 말하는 ‘어떻게’도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분명 what이나 where 혹은 who와 다른 층위의 인지적 복잡성이 있는 것이다.

4. MIT의 Deb Roy 등의 연구가 좀더 진행되면 개별 의문사들의 사용빈도 및 맥락 등을 고려한 체계적 설명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5. 언어습득의 맥락을 떠나 ‘왜’가 가지는 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왜”는 대개 강력한 반응을 이끌어 낸다. 아이들이 ‘왜’라고 질문할 때, 설명하기 귀찮아하기도 하지만, 때로 자기도 답을 모르거나 숨기고 싶은 걸 들킨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왜”라는 질문을 몇 번 던지다 보면 내 동기의 밑바닥을, 평소에는 생각조차 가지 않는 복잡다단한 감정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된다. “왜”를 몇 번 던지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게 얼마나 작은지 깨닫게 된다.

“왜”는 힘이 참 센 녀석이다.

(의문사의 등장 단계에 대해서는 Patsy M. Lightbown and Nina Spada. (2013). How Languages are Learned (4th edition). Oxford Handbooks for Language Teachers. Oxford. 10쪽을 참고하였습니다.)

외재적 동기와 내재적 동기

고전적 동기이론의 외재적 동기(extrinsic motivation) /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 구분은 문제가 많은 이분법이다. 인간과 공동체, 또 더 큰 사회가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 받는 상황에서 동기를 한 개인의 ‘밖에 있다’거나 ‘안에 있다’고 말하기 힘든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동기는 안/팎이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안~밖이라는 연결고리, 즉 외부와 내부를 휘감는 흐름으로 파악하는 것이 좀더 생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재적 동기’가 ‘내재적 동기’를 압도하는 경우 문제가 커지는 게 사실이다. 학생들에게 ‘공부를 왜 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돌아오는 답은 과도한 외재적 힘을 보여준다. “대학 가려고”, “뒤쳐지지 않으려고”, “성적 잘 받으려고”, “부모님이 하라고 하니까” 등등..

하지만 가장 좋은 대답은 “할 수 있으니까요”나 “재미있잖아요”가 아닐까. 특별한 이유 없이 지속되는, 나아가 재미를 발생시키는 학습생태계의 구축, 이를 통한 ‘내적’ 흥미의 발현, 이것이 다시 자신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외적’ 기제로 작용하게 되는 선순환이 학습동기를 이해하고 신장시키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삶을위한영어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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