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탈각

Posted by on Sep 24, 2018 in 단상, 수업자료, 집필 | No Comments

말은 행동으로부터 사고를 떼어낸 것이고, 쓰기는 말로부터 언어를 떼어낸 것이며, 언어학은 주체로부터 언어를 떼어낸 것이다. (Speaking is the alienation of thought from action, writing is the alienation of language from speech, and linguistics is the alienation of language from the self.) – Stephen A Tyler

말은 언제나 삶 속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말은 종종 온전한 행위를 ‘잊는다.’ 말소리를 글로 옮겨놓으면 또다른 탈각이 발생한다. 말하는 이의 표정, 어조, 음성, 나아가 몸짓이 사라진 언어만이 남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언어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언어학은 인간과 언어를 분리시키는 학문으로 볼 수 있다. 삶이 탈각된 말, 말이 탈각된 글, 주체가 탈각된 언어학. 분리될 수 없는 것들의 분리를 깨닫지 못하는 공부는 언제나 진리의 탈각이라는 운명을 맞는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내 인생의 노래, 그 노래의 이야기

다음 시간 in-class writing의 주제는 “내 인생의 노래, 그 노래의 이야기” 학생들은 ‘사연있는’ 노래 하나를 골라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적습니다.

bryanfurywins 2 years ago

2004, in my first year of college, I met a girl. I was completely head over heals for her; And her for me. My heart used to be “on fire” every time she’d text me… And at the time, Switchfoot – ‘The Beautiful Letdown’ was our favorite album and more so, this very song. Before moving to second year, she had to go back to Australia. Needless to say I was completely heart broken when she told me. I remember literally not being able to breath… I’m 35 years old now, married and with 3 kids. Seated at work listening to this song just made all the memories of her come flooding back.

삶을 위한 영어공부

Posted by on Sep 24, 2018 in 삶을위한영어공부, 영어, 집필 | No Comments

“영어는 짱구다. 아무도 못말리기 때문이다.”
“영어는 골칫거리다. 내신의 적이기 때문이다.”
“영어는 스펙이다.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영어교육에 관련된 강의 초반부에 “영어는 OO이다. 왜냐면 _________이기 때문이다.”의 형식으로 영어에 대한 생각을 묻곤 합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영어를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세 답은 각각 초등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에게서 나왔습니다. 일반화할 수는 없으나 이 답변들에서 한국 사회에서 영어의 생애사를 만납니다. ‘재미있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짱구 같은 영어’에서 ‘내신성적의 주요 영역’으로, 나아가 ‘취업과 승진의 수단’으로 변화하는 영어의 운명을 봅니다.

영어공부에 대한 애증은 학교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언젠가 한 직장인은 제게 “영어요? 그림자 같아요. 계속 저를 따라오는 것 같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세월과 함께 변화하는 영어에 대한 메타포에서 학습자들의 슬픔이 배어나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애환이기도 합니다.

우리사회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영어교육에 투입합니다. 취학전부터 초중등 대학교육까지 공교육 사교육을 가리지 않고 큰 비용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만족스런 결과가 나오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영어공부 헛했다’나 ‘몇 년을 공부했는데 입도 뻥긋 못하냐’는 한탄, ‘영어교육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는 논평은 이제 식상할 정도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영어는 분명 사회경제적,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그 해법 또한 거시적이고 구조적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영어교육 전문가들은 제도적 변화 없이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긴 힘들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학교를, 취업의 조건을, 영어실력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바꾸기 전에 할 수 있는, 아니 해야만 하는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가 영어와 맺는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 시작은 ‘영어, 어떻게 정복할 것인가’에서 ‘영어는 나에게, 나아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의 전환에서 시작됩니다. 영어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하고 무턱대고 덤벼드는 일은 과거로 보내야 합니다. 영어가 우리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영어를 누리기 위한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영어의 의미를 묻는 질문을 단초로 삼아 이때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던 영어에 대한 생각, 지금 우리의 영어공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고의 틀을 살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영어학습법도 변할 수밖에 없겠지요. 이 책은 이런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감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영어로 스트레스를 받고 그에 끌려가는 삶에서 영어를 통해 더 깊고 넓은 존재로 성장하는 삶으로의 변화를 꾀하려 합니다.

구체적으로 이 책에서 제시되는 영어에 대한 새로운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From speaking English to speaking through English
영어를 하는 사람에서 영어를 통해 말하는 사람으로.

2. From nonnative speakers of English to users of English as another repertoire for meaning-making
영어 비원어민 화자에서 영어를 또다른 의미생성의 레퍼토리로 사용하는 사람으로

3. From English as a threat for successful life to English as an asset enriching life
성공적인 삶을 위협하는 영어에서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자산으로

“다른 언어를 배워서 그들의 네이티브처럼 말하지 않겠다. 다른 언어를 배워서 그들이 절대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언젠가 Claire Kramsch 선생님 수업에서 들은 이 한 마디가 여전히 제 심장에 남아있습니다.

너와 나를 가르고, 마음에 상처를 내며, 목을 뻣뻣이 세우는 영어의 시대를 보내주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스펙”이 아니라 “또다른 세계”를, “영어 정복하기”가 아니라 “영어와 친구되기”를, 무엇보다도 “네이티브 되기”가 아니라 “더 나은 사람 되기”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성찰 없는 암기, 소통 없는 다이얼로그, 성장 없는 점수 향상을 넘어 우리의 삶을 위한 즐겁고도 단단한 영어공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작성중

유니버설 디자인, 안티-어포던스, 그리고 영어교육

‘ 제품을 사용하다가 감전당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심조심 쓰세요.’

복잡한 디자인 오브젝트라는 관점에서 도시를 보면 얼마나 많은 요소들이 어포던스(affordances)를 무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어포던스는 ‘행동유도성’이라고 종종 번역되는 용어로 디자인 영역에서는 사용자와 제품 혹은 서비스의 관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 의자에 낮아 타이핑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오브젝트가 모든 이에게 의자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갓난 아기에게 이 오브젝트는 의자가 아니다. 300 Kg의 코끼리에게도 의자가 아니다. 이 오브젝트와 나의 관계는 아기 혹은 코끼리와의 관계와 다르다. 즉 이 오브젝트는 나와 아기, 코끼리에게 서로 다른 affordance로 작용한다.

최근 극도로 심한 허리통증을 느낀 적이 있다. 2-3일은 아예 침대 밖으로 나오기 힘들 정도로 아팠고, 두어 주는 느릿느릿 쉬엄쉬엄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달리기는 언감생심이었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호흡을 고르며 뾰족대는 통증을 이겨내야만 했다. 지하철에 설치된 손잡이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고 노인들의 발걸음이 지닌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엘리베이터가 모든 역 주요 지점에 설치되어야 하는 이유 또한 말 그대로 뼈저리게 느꼈다.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의 시급성과 중대성을 새삼 깨닫게 된 것도 이 즈음이었다.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신체의 내부에 존재하는 개개인의 능력이라기 보다는 개인과 환경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즉 주변의 환경이 인간의 행동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관련된 문제였다. “특정 장애가 있는 사람은 이동할 수 없다”기 보다는 “도시의 특성상 특정 장애를 가진 사람을 이동할 수 없게 만든다”가 올바른 표현인 것이다.

이같은 관점은 특정한 사물/환경이 어떤 사람을 돕느냐(serve), 다시 말해 어떤 사람에게 편의를 제공하느냐(afford)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한다. 어포던스의 관점에서 환경과 인간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행로 중간이 움푹 파여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것은 대다수의 보행자에게는 큰 어려움을 야기하지 않는다. 볼 수 있는 비장애인에게 움푹 파인 그 곳은 돌아가면 되는 작은 흠결일 뿐이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이나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자칫하다가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처음 제기한 ‘디자인 오브젝트로서의 도시’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자. 100명 중 99명이 아무 문제 없다고 느끼는 그 결점이 1명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도시를 이렇게 방치하는 일은 어떤 디자이너가 가전제품을 출시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제품은 99명이 사용하기에 매우 적합합니다. 하지만 1명 정도에게는 감전의 위험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알지만 쓰시는 분들이 알아서 조심하여야 할 부분입니다.”

이런 제품을 출시하는 디자이너는 합리적인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에게 장애인들의 투쟁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정당한 것이 된다.

나는 이 관점에서 우리의 교실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교 영어교육의 가장 큰 문제로 삼는 것이 바로 ‘수준차’다. 수준이 다르므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현재의 평가 시스템에서 이런 고충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 시스템 자체가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이 교육과정에서 25퍼센트는 만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75퍼센트는 수준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예요.”라고 말하는 교육체제가 어찌 합리적일 수 있겠는가?

이런 이해의 기반 위에서 나는 영어교육을 ‘유니버설 디자인’의 관점에서 다시 세워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고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유니버설 디자인(영어: universal design, 보편 설계, 보편적 설계)은 제품, 시설,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유니버설 디자인’, 위키백과)

이 관점에서 영어수업을 보자. 영어교재와 액티비티를 살피자. 영어교육과정을 검토하자.

‘디자인 오브젝트’의 관점에서 현재의 영어교육은 반-유니버설 디자인(anti-universal design)에 가까운 것 아닌가? 온갖 이유 때문에 평등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계급’이나 ‘사회경제적 지위’ 때문에 학교영어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소외되고 패배감에 휩싸이며 심각한 경우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의 영어교육은 어떻게 다시 디자인(redesign)되어야 할 것인가?

#영어교육과교육공학
#삶을위한영어공부

영어는 인풋? – 6. 언어학습에서 감정의 중요성에 관하여

‘이해가능한 인풋(comprehensible input)’이 크라센이 강조한 언어학습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는 ‘정서적 필터’ 가설을 통해 불안과 동기 등의 정서적 요소가 언어습득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 또한 강조하였습니다.

그의 ‘정의적 여과막 가설(Affective filter hypothesis)’에 의하면 언어입력이 언어습득 기제(language acquisition device, LAD)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일종의 필터를 통과해야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정서적인 요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덜레이와 버트(Dulay & Burt)가 1977년에 이미 제시한 것으로 크라센이 시초는 아니었습니다.

큰 근심걱정에 휩싸여 있을 때엔 재미난 영화라도 쉽게 몰입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뇌가 외부의 자극 즉 영상을 순간순간 온전히 받아들이고 또 처리해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때 ‘근심걱정’은 일종의 여과막이 되는데, 여기에 영화의 내용이 ‘걸려버리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의적 여과막 가설과 잘 맞아떨어지는 우리말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잘 들어오지 않는다” 혹은 “잘 안들어온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마음이 좋지 않아서 그의 설명이 잘 안들어 오더라”라는 말에서는 ‘좋지 않은 마음’이 설명을 가로막는 벽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덜레이와 버트, 나아가 크라센은 “정의적 여과막”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크라센은 정의적 여과막을 형성하는 다양한 정서적 요인을 3가지 범주로 나눕니다. 첫 번째는 동기(motivation)입니다. 동기가 높은 학습자와 그렇지 않은 학습자는 언어입력을 받아들이는 정도에서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자신감(self-confidence)입니다. 보통 자신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고 해낼 수 있음을 굳게 믿는 사람이 스펀지처럼 언어를 빨아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불안(anxiety)입니다. 불안하면 언어습득이 잘 일어나기 힘들므로 학습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이와 같은 지적은 한국 영어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학습내용을 제시하면서도 이를 소화할 수 있는 정서적인 요인들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식하게 하다 보면 된다”나 “무조건 따라하자”는 말에 쉬이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이유죠. 제가 직접 경험했던 다음 두 대화는 학습자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는 영어공부의 단면을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장면 1: 한 수업에서

“한 주에 단어 몇 개 까지 외워 봤어요?”
“900개요.”
“900개요? 어떻게 900개를 외워요?”
“전에 특강인가 해서 매일 학원에 간 적이 있거든요? 그때 하루에 100개씩 시험 보고, 주말에는 200개 씩 봐서 총 900개까지 외워본 적이 있는 거 같아요.”
“그게 가능해요?”
“그냥 대충 단어 뜻 단어 뜻 외우는 건데 어찌저찌 했어요.”
“안 힘들었어요?”
“힘들긴 한데 그냥 공부니까 했어요.”
“…”

장면 2: 원치 않게 합석한 식당 옆자리에서

“OO이 영어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뭐 집에서 학습지 좀 시키고 있는데 이제 뭐좀 시켜야 될 거 같기도 해요.”
“중학교 가기 전이 중요해요. 가면 초등학교랑 완전히 다르잖아요.”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내용도 많아지고 본격적으로 시험도 보고 하니.”
“그럼요. 대비를 해야죠. 저도 아들 몇 달 전부터 OOO학원에 보내고 있어요.”
“아 그래요? 어떻게 잘 하고 있나요?”
“처음에는 악몽을 꾸더라고요. 거의 두 주.”
“두 주나요?”
“네. 꿈에서 학원 선생님이 계속 나오더래요. 엄청난 숙제를 하고 또 시험도 계속 보고요.”
“…”
“근데 두어 주 지나니까 괜찮아졌어요. 지금은 잘 적응해서 다니고요. 성적도 좀 올랐어요.”
“아 그건 다행이네요.”

첫 번째는 얼마 전 한 대학생과 중고교 시절 영어공부에 대해 나눈 대화 한토막입니다. 제가 1년 넘게 외울 단어를 한 주에 외운 셈이더군요. 학원이 재미가 없고 힘들어서 그리 오래 다니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한 식당에서 우연히 합석하게 된 두 어머니의 자녀 영어교육 이야기입니다. 학원에 간 아들이 처음에는 악몽까지 꾸었지만 이내 어려움을 ‘극복’하고 잘 적응해서 영어성적을 끌어올렸다는 ‘성공담’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겐 무서운 공포담이기도 했습니다. 이틀 연속으로 비슷한 꿈을 꾸는 것만도 두려운데 두 주 연속이라니요.

여전히 일부 학원들은 이같은 ‘무식하게 암기하기’ 어휘교수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이 가진 문제는 크게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학생들은 엄청난 단어의 양 때문에 암기 중에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정의적 여과막 가설에 의하면 이렇게 암기하는 단어는 언어습득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다음으로 한국어-영어 단어를 1:1로 대응시켜 암기하는 것을 단어학습의 가장 중요한 전략으로 삼는 것입니다. 문맥없는 단어암기가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영어교육 이론들이 한 목소리로 주장하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방학 혹은 방과후 시간에 대한 학생의 자기 결정권 문제입니다. 첫 대화에서 학생은 ‘나머지 공부’를 언급하였습니다. 학원에서 암기시험 결과가 일정 점수를 넘지 못하면 집에 가지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학생 인권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자신의 의사에 반한 나머지 공부는 일종의 ‘강제노동’ 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방법은 ‘대량암기’라기 보다는 ‘강압적 암기’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편 위의 에피소드는 크라센의 정의적 여과막 가설이 한국 상황에서 갖는 뚜렷한 한계를 보여줍니다. 그의 가설에 의하면 ‘동기가 높고 자신감이 있으며 불안하지 않은 학습자’는 언어습득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요건을 갖추는 것이 그저 개별 학습자들의 몫일까요? 영어학습에 대한 동기가 떨어지고 자신감을 상실하며 영어 이야기만 나오면 마음이 편치 않은 게 각자가 부족해서 그런 걸까요? 혹시 우리사회의 잘못을 개개인의 잘못으로 둔갑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삶을위한영어공부

영어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하여

From speaking English to speaking through English
영어 말하기에서 영어를 통해 말하기로

From nonnative speakers of English to users of English as another repertoire for meaning-making
영어 비원어민 화자에서 영어를 또다른 의미생성의 레퍼토리로 사용하는 사람으로

From English as a threat for successful life to English as an asset enriching life
성공적인 삶을 위협하는 영어에서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자산으로

#삶을위한영어공부

갑작스런 죽음

Posted by on Sep 22, 2018 in 단상, 일상, 집필 | No Comments

어머니는 성북동 초입에서 잠깐 하숙을 치셨다. 업으로 삼으신 것은 아니고 어쩌다 하나 남은 방을 활용하셨던 것. 당신께서는 유난히 기억에 남는 한 ‘똘똘한’ 대학생 이야기를 몇 번 하셨다. 똑부러지는 서울법대생. 할 때 하고 놀 때 노는 스타일. 이른 나이의 고시패스. 오랜 검사생활. 국회의원을 거쳐 정당인으로 살아온 여정.

어머니가 방금 그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보내주셨다. 오늘 새벽에 길을 건너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했다. 사고 후 한 시간이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이제 겨우 60대 중반.

황망하기 짝이 없는 죽음. 한 번도 마주칠 일 없었고 알지도 못하지만 잠시나마 어린 나와 같은 공간 안에서 숨쉬었던 분.

“언젠가 한번 꼭 찾아가고 싶었는데… 방금 뉴스에서 소식이 나오는데 슬프네. 착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드네. ㅠㅠ”

어머니의 말씀이 아프다.

함께 했던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까.

그의 명복을 빈다.

#어머니와나

왜, 영어로, 쓰는가

1. 왜 쓰는가

Nadine Gordimer는 “Writing is making sense of life.”라는 말을 했다. “쓰기는 삶을 이해하는 일”, 말장난을 좀 해보자면 “쓰기는 삶을 재료로 의미를 만드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Gordimer의 원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나에겐 이 말이 결코 가볍지 않다.

삶은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우린 그 흐름 속에서 크고 작은 경험을 한다. 하지만 이를 기록하지 않으면 이내 흩어져 버린다. 순간 순간의 의미는 쉬이 망각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삶의 흐름을 ‘멈춘다.’ 시간의 흐름 속에 작은 균열을 만드는 것이다. 빈 공간 위에 글자를 하나 하나 새기는 동안 잠시나마 세월의 격랑에 덜 휩쓸린다. 성찰하고 기억할 수 여지가, 세찬 바람 속에서도 고요한 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경험의 측면들이 드러나고 뭉개진 생각의 결이 분명해진다. 글쓰기의 과정은 새로운 생각을 잉태하고 이것이 다시 글쓰기의 양분이 된다. 글쓰기는 지나간 것들의 반추임과 동시에 새로 올 것의 창조다. 쓰기 전까지는 모르는지도 몰랐던 것들이 나의 의식 위로 떠오른다.

이런 글쓰기의 특성은 가르치기 전까지는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 것과 많이 닮았다. 수업을 하다가 보면 내가 정확히 무엇을 알고 있는지, 어떤 내용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만을 갖고 있으며 어떤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지 못하는지 알게 된다. 또 수업을 통해 나 자신이 더 많이 배우기도 한다. 가르치는 일은 부족함에 대한 깊은 깨달음 가능케 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배움의 지평을 열어 젖힌다.

2. 왜 영어로 쓰는가

그런데 우리 삶에서 영어로 글을 쓴다는 게 그리 중요한가?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여기 영어실력, 그 중에서도 영작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영어로 글을 써야 하는 분들은 극소수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사망한 Stephen Covey의 책에 소개되어 널리 쓰였던 중요성/긴급성 “Importance/Urgency” 2X2 매트릭스를 떠올려 보자. 여러 분들께 영어 글쓰기는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즉, 잘하면 정말 좋을 것 같지만 안해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는 일이다. 안해도 지장 없는 일은 늘 다른 일에 우선 순위를 내준다. 수업과 잡무, 친구들과의 약속, 그 외 이런 저런 개인사가 치고 들어오면 미루다 못해 까맣게 잊게 되는 것이다.

한국은 영어글쓰기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드는 사회문화적 환경을 갖고 있다. 쉽게 말해 한국에서 영어는 일상에서 쓸 일이 없다. 영어가 외국어인(EFL;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상황인 것이다. 이는 영어를 제2언어로 활용하여 일상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제2언어로서의 영어(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영작을 배우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좋은 교재를 정하는 게 아니라 영어로 써야 할 이유를 찾고, 동기를 유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좋은 교재” “좋은 학원”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사실이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분이 아니라면 단기 공부는 반드시 실패한다. 아니, 영작문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변함없이 지속된다고 하는 것이 좀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왜 영어로 글을 쓰려 하는가?” 이 질문을 회피하고 영어 글쓰기를 하려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영작문을 공부하려는 게 학점을 따는 것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교실 밖에서 영어로 의미를 만드는 일에 어떤 가치가 있는가?

어떤 경우라도 Gordimer의 이야기처럼 삶을 좀더 깊고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쓰기가 아니라면 이내 영어 글쓰기를 할 이유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학기 여러분과 함께 이 고민을 함께 해보고 싶다.

3. 왜 영작문 수업을 듣는가

몇년 전 모 교육대학원 영어쓰기 강의록의 일부다. 이번 학기에는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영어로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그런데 ‘왜’라는 질문에 대해서 딱 부러지는 대답을 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학부생들의 경우 ‘필수 과목이라서’, ‘해두면 나중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 ‘혹시 관련분야로 갈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등의 대답이 나온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반응은 자연스럽다.

문화적 자본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하는 기제로서 영어 특히 영어 글쓰기의 역할이 분명 존재하며, “영어공부 방기 = 미래에 대한 불안 가중”이라는 등식이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그닥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금요일 오전 수업에 피곤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왜 이 친구들이 영어로 글을 써야만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결국 내가 다다르는 결론은 학생들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겠다는 것. 뭐 이런 심심하기 짝이 없는 결론이 있나 싶지만 요즘 들어 학생들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곱씹어보게 된다.

.
.
.

왜 쓰는가를 학생들에게 질문하려 했는데
왜 가르치고 있는가를 자신에게 묻고 있다.

#영어로글쓰기
#삶을위한영어공부

ACROSTIC Poem을 활용한 쓰기활동

이번에는 “Acrostic Poem”을 한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acrostic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실 텐데요. 옥스포드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정의가 되어 있습니다.
 
acrostic n. A poem, word puzzle, or other composition in which certain letters in each line form a word or words.
 
이 정의로도 바로 이해가 잘 안되실 수도 있겠네요. 예를 들어 이런 건데요. 직접 쓴 CAT의 acrostic poem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각 행의 첫 글자를 모으면 CAT이 되지요.)
 
Calm posture, smooth jumps, and mystical eyes,
Aren’t you an alien creature?
To me, you are such an unfathomable relief.
 
네 그렇습니다. 제가 고양이를 좀 좋아라 하지요. 좀 유치한가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SORROW 입니다.
 
Sorry, you are wrong
Or am I mistaken?
Rough days ahead, waiting to be felt.
Reliving all those misunderstandings and misgivings,
Oh my weary soul will be
Weeping in futile gestures of forgiveness.
 
일필휘지로 써 보았는데 어떤가요? 슬픔이 느껴지나요?
 
오늘은 여러분이 두 단어를 골라 이렇게 acrostic poem을 써보도록 할게요. 하나는 CAT처럼 짧은 단어를, 다른 하나는 철자 대여섯 개 이상의 조금 긴 단어를 권해드립니다.
 
써놓고 보니 조금 긴 것도 써보고 싶네요. 이것도 일필휘지로 써보았습니다. ^^
 
FRIENDSHIP
 
Fear not, my heart
Rest in our dear memories
I was young and immature, so were you
Experiencing no success was okay
Neither time nor space could stop us, ’cause we were
Determined to be with each other
Seeking the brightest stars of the darkest life
Helplessly hopeful,
Into the adventure, we set our feet
Painful together, peaceful together
 
여러분들께 friendship은 무엇인가요? :)
 
#영어로글쓰기

3-Word Story

Posted by on Sep 20, 2018 in 수업자료, 영어, 영어로 글쓰기, 집필 | No Comments

수업중 쓰기 활동

지난 시간에는 six-word memoir를 함께 써보았습니다. 이번에는 3-sentence story 입니다. 아래는 웹에서 모은 몇 개의 공포 스토리입니다.

2- or 3-sentence horror stories

I begin tucking him into bed and he tells me, “Daddy check for monsters under my bed.” I look underneath for his amusement and see him, another him, under the bed, staring back at me quivering and whispering, “Daddy there’s somebody on my bed.” — justAnotherMuffledVo

They celebrated the first successful cryogenic freezing. He had no way of letting them know he was still conscious. — KnowsGooderThanYou

They delivered the mannequins in bubble wrap. From the main room I begin to hear popping. — Mikeyseventyfive

출처:
150+ Short Two-Sentence Horror Stories To Freak You Out

긴 글이 아니어도 충분히 재미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꼭 세 문장일 필요는 없죠. 무서운 이야기일 필요도 없습니다.

무엇에 관해 쓰냐고요? 그건 각자 생각해야 하지만 제가 가져와 본 몇 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힘들었던 이별의 순간 (w/ 사람, 장소, 사물, 동식물 …)
2. 황당했던 꿈 이야기
3. 운명같은 우연
4. 내가 ‘행운의 편지’를 쓴다면?
5. 세상 가장 쓸쓸했던 날
6. ‘오늘 하루 시력을 잃었다’
7. 소설을 쓴다면 이런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8. 대통령이 점심 식사에 초대하다. 3분간 대학생으로서 솔직한 이야기를 하라는데…
9. 세상 누구에게도 없는, 나 혼자 간직한 희망 혹은 소원
10. WRITING 각각의 알파벳으로 행이 시작되는 시를 쓴다면?

웹에서 3-sentence stories나 100-word stories 등으로 검색하면 다양한 샘플을 볼 수 있습니다.

#영어로글쓰기

Lo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