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방법으로서의 글쓰기

“연구방법으로서의 쓰기(writing as method)”라는 말이 있다. 있어 보이려는 수사적 표현일 수도 있지만, 글쓰기를 통해 생각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는 과정이 연구의 핵심 방법론을 이룬다는 실질적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문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만 줄창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많은 연구자들 또한 글쓰기를 주요 일과로 삼는다. 특히 인문사회과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글쓰기를 피해갈 도리가 없다. 나처럼 연구를 띄엄띄엄 하는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문제는 이런 ‘방법으로서의 글쓰기’를 배우는 시기가 너무 늦다는 데 있다. 나 또한 글쓰기를 싫어하지 않았지만 학술적인 글쓰기는 언제나 과제와 연결된, 그래서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해치우게 되는’ 일이었다. 석사과정 후반까지 학문적인 글쓰기를 숙제와 등치시키는 우를 범했다. 결국 학위논문을 작성하면서 방법으로서의 글쓰기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하찮은 쪽글이라도 꾸준히 써내고 있다. 이제 글쓰기는 과제가 아니라 가장 선호하는 사고방식, 혹은 연구 모드(mode)가 되었다.

적어도 함께하는 학생들은 내가 범한 우를 다시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구자에게 글쓰기는 과제가 아니라 생각의 방식이고 주요한 연구 방법론이다. 이거 참 전형적인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 식의 조언이지만, 공부를 업으로 할 사람이라면 깊이 생각해 볼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김기란 선생의 지적처럼 논문은 학문적 사고의 구조를 텍스트화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텍스트화’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학문적 사고의 구조를 익힐 방도는 도무지 없는 것이다.

순수학문과 교육의 공통점

Posted by on Jun 25, 2018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연구가 인류에게 새로운 지식을 선사하는 일이라면 교육은 자신 앞에 있는 한 사람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히는 일이다. 지식의 새로움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연구가 교육을 단연 앞서겠지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그 한 사람이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모른다는 점에서 교육의 임팩트가 작다고 할 수 없다.
 
흔히 생각하는 바와 반대로 소위 ‘순수학문’과 교육은 많이 닮았다. 당장 눈앞에 쥘 수 있는 건 없을지 모르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떤 열매로 우리에게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교육을 수월성의 논리로만 파악하는 일은 위험천만하며 근시안적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Sociolinguistics 22

Posted by on Jun 20, 2018 in 단상 | No Comments

타지에서 돌아온 뒤 처음으로 해외 학회에 가기로 했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일이라 결단이 필요했는데… 맙소사, 발표가 아침 여덟 시에 잡혔다. 하루 이백 여 개의 세션이 열리는 대규모 학회라 같은 시간대의 발표도 꽤 된다. 2010년이었던가. 월드컵 준결승할 때 발표했던 악몽이 떠올랐다. 당시에도 아침 여덟 시. 소개해 주는 분, 청중 둘, 그리고 나. 질의응답 할 때 다 되어서야 두어 사람이 더 들어오더라. 한국의 반503 촛불시위에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좀더 왔으면 좋겠다. 아 그전에 어디선가 헤매고 있을 학회 프리젠테이션 용 영어 좀 찾아봐야겠다.

‘단독’의 심리학

Posted by on Jun 14,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단독] 잠시 후 별 영양가 없는 포스트 공유 예정

뉴스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요. 카톡방이나 메신저의 가짜뉴스가 급속히 퍼지는 여러 요인 중 하나는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내가 접했다’라고 생각하는 심리라고 합니다. 언론 신뢰도 최하위권 국가에서 ‘정보기관’의 일원이 된 듯한 정체성은 달콤하죠. ‘단독입수’에 대한 자부심이 더 많은 공유로 이어지는 듯하네요.

왜 제가 싫어하는 종편들이 그토록 [단독]에 집착하는지 알겠습니다.

보수는 부패로, 진보는 분열로?

Posted by on Jun 14,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 구닥다리 같지만 여전히 종종 접하게 되는 문구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분열”은 ‘하나로 존재하던 사물이나 집단, 사상 따위가 갈라져 나뉨’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 정치사에 있어 한 번도 하나였던 적이 없었던 진보가 분열로 망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 면에서 ‘통합’과 ‘분열’이라는 틀로 진보의 흥망성쇠를 설명하려는 것은 (1) 여전히 통합의 수사를 전면에 앞세우는 일부 진보의 관점에서 정치지형을 바라보는 일이자, (2) 진보가 지향하는 다양성의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프레임에 갇히는 일 아닐까 싶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뜬 개념의 실체

Posted by on Jun 10,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요즘 흘기게 되는 어구 셋

1. “AI가 급속히 발달함에 따라”
2. “뇌과학의 최신 성과에 따르면”
3. “역량중심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서는”

뜬 개념은 대개 부풀려진 개념이다. 1, 2, 3이 동시에 나오는 글은 패스하는 것이 좋겠다. (쿨럭)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세금을 때리다’

최근 들어서야 “관세를 매긴다”라는 뜻의 비격식 표현으로 “slap tariffs on ~”이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궁금한 것은 ‘관세를 때리다’가 이 표현의 번역일까 하는 점이다. 두 언어에 비슷한 개념화가 일어나고 있는게 흥미롭다. (참고로 slap은 ‘철썩 때리다, 때려 붙이다, 쾅 놓다’등을 뜻하고, ‘김치 싸대기’는 ‘Kimchi slap’으로 번역될 수 있다.)

https://forum.wordreference.com/threads/to-slap-tariffs.3345811/

타인의 마음을 읽는 사람들에 대하여

Posted by on Jun 10, 2018 in 단상 | No Comments

1. 타인의 마음을 완벽하게 읽는다 생각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도무지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2. 우주를 이해하는 인류의 여정과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개인적인 노력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작동한다.

3. 시도 때도 없이 관심법을 시전하는 이들에게는 무관심이 필요하다.

4. 종종 ‘이해하기 위한 집념’보다 ‘오해하지 않으려는 신중’이 더 나은 태도이다.

5. 무엇이든 이해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끔찍한 형벌은 무엇이든 오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앎은 모름을 줄여가는 과정이지만 몰라도 되는 것을 판단하는 능과 함께 가지 못할 때 오해로 가득한 오만으로 몰락한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TED 공식 Speaking Guide

TED의 책임 디렉터 Chris Anderson이 쓴 TED강연 공식 가이드입니다. 사실 특별한 내용은 없지만 “Presentation Literacy”라는 개념에 근거하여 대중강연을 구상하고 준비하는 데 있어 필요한 기본사항을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평이한 영어로 되어 있어 읽기 어렵지 않구요. 책에 나오는 강연들이 플레이리스트로 정리되어 있어 강의하기에도 좋습니다.

한 해 동안 이 교재에 살을 붙여 강의를 해보았습니다. 기회가 되면 청소년들과 함께 강독을 진행하면서 각자의 관심분야에 관한 강연을 만들어 보는 수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강연 재생목록
https://www.ted.com/playlists/324/the_official_ted_talk_guide_pl

도서 공식 페이지
https://www.ted.com/read/ted-talks-the-official-ted-guide-to-public-speaking

놀람의 이유

Posted by on Jun 10, 2018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누군가의 행동에 놀란 경우, 대개 놀라움의 원인은 상대의 행동이 아니라 자신이 구축한 편견이다. 데이터 없는 직관과 메타인지능력의 부족은 잦은 놀람을 수반한다.

#반성중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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