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6월의 추천도서로 선정!

Posted by on Jun 13, 2020 in 링크, 삶을위한리터러시 | No Comments

싱그러운 초여름, 6월의 독서산책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2020.06.10

[사회과학]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 김성우·엄기호, 따비

​“반면 유튜브는 요거만 봐야지 하고 보기 시작하지만 보다 보면 저것도 재밌겠네 하면서 계속 보게 되는 거죠.”

​때로는 신기하고, 때로는 유용한 동영상 플랫폼으로만 여겨졌던 유튜브로 인해 지식과 정보를 얻고, 소통하는 방식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변화는 문자로 된 글을 읽고 쓰는 능력으로 공인돼 별다른 의문이 없었던 오늘날 리터러시의 의미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그간의 리터러시에 맞춰진 체제와 이에 능숙한 사람들은 새로운 움직임을 흥미롭게 여길지언정 그 평가와 인정은 대체로 박한 편이다. 라틴어나 한문을 통한 리터러시에 익숙해야만 교양인으로 여겨지던 시대로 거슬러 가보면, 이러한 경향은 새로운 변화를 맞아 기존에 문화적 소양을 인증받은 기득권이 자신의 위상을 재확인하고자 의도한 차별과 닮은 양상이다. 그러나 여기에만 머물게 될 때, 리터러시는 자기중심적이고 배타적인 울타리가 될 뿐이다. 이 책은 대담집이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리터러시의 미래라는 묵직한 주제를 어렵지 않게 다뤘다. 책은 리터러시가 좋은 삶을 위한 목적 아래서 그 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_이준호, 호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http://www.korea.kr/news/visualNewsView.do?newsId=148873199

가문비 나무 아래

Posted by on Jun 13, 2020 in 링크,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 No Comments

천안시 블로그의 시민리포터 이지현 님께서 <가문비나무 아래>에서의 북토크를 전해주셨습니다. 참 포근하고 예쁜 책방이었는데요. 무엇보다 사람과 책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천안 부근에 계신 분은 한번 방문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가문비나무 아래 책방
충남 천안시 서북구 불당34길 3-20 Sol Plaza 301, 302호

http://blog.naver.com/fastcheonan/221997214074

음악, 한때 고독으로 가는 길이었던

Posted by on Jun 11, 2020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 No Comments

무언가에 연결된 상태가 디폴트가 되어버린 시대. 유튜브에서 노래를 들어도 연결되고 싶은 욕망은 꿈틀거린다. 유명인의 반응을 연신 비추는 화면, 다양한 자막으로 표현되는 감정들, ‘리액션 영상’의 높은 조회수, 영상 밑 끝도 없는 댓글놀이, 생방 함께보기 초대기능 등, 영상을 홀로 대면하는 시대가 천천히 저물고 있는 듯하다. 그 가운데 음악을 매개로 한 오롯한 고독은 그야말로 흔치 않은 역량이 되어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이 트렌드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홀로 허공을 응시하며 음악 몇 곡을 숨죽여 듣던 기억이 가끔 떠오를 뿐. 

#삶을위한리터러시#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다양성의 포용, 이데올로기, 그리고 투쟁

Posted by on Jun 11, 2020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집필 | No Comments

다양성의 포용은 친절하고 따뜻한 행동을 연상시키지만 사회 곳곳에 그리하여 우리 마음 깊이 뿌리박은 차별을 과감하게 해체하기 위한 소란스런 싸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양성은 그냥 포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벽을 무너뜨리고 경계를 넘어설 때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쟁’이라는 말의 부정적 느낌과 ‘포용’이 상기하는 긍정적 느낌은 실상 동일한 행위에 대하여 의도적으로/이데올로기적으로 덧씌워진 감정이다. 문제는 ‘다양성을 포용하자’는 구호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다양성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awareness)을 증진시키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거기에 안주한다면 기존의 질서에 기생하는 담론만을 생산하는 데 그치고 만다. 기존 체제가 ‘유사저항담론’과의 공존을 선전하며 자신의 권력을 더욱 안정적으로 행사하는 최상의 조건이 마련되는 셈이다. 

#차별금지법을제정하라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언어의 경계, 혁신, 그리고 진화

1. A가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상대는 미국에서 오래 거주한 한국인 2세 미국 시민권자 선배다. 평상시 영어를 쓰는 사람이고, 인사를 한 A와도 늘상 영어로 대화했다. 하지만 순간 장난기가 동한 A는 ‘한국 핏줄’의 동질성을 발동시키면서 유머스런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안녕하세요’와 고개숙이기, 손흔들기를 동시에 시전했다. 이것은 한국어인가 영어인가?

2. A가 B를 만났다. 둘은 경상도 출신 친구인데 우연히도 서울의 모 영어학원의 영어회화 수업을 동시에 수강하게 되었다. 첫 번째 수업시간, A가 B에게 “How have you been?”이라고 말을 건넸다. B는 장난스레 “I have been so miserable.”이라고 답했다. 문제는 B의 발화가 전형적인 경상도 억양을 띄고 있었다는 것이다. 순간 빵 터진 둘은 한참을 웃었다. 이 경우 B가 발화한 것은 영어인가 한국어(경상도 방언)인가? 둘의 ‘빵터짐’은 영어 문장의 내용에 대응하는가, 경상도 억양에 대응하는가, 아니면 이 둘의 절묘한 조합에 대응하는가?

3. A와 B는 중국인이다. 미국의 한 ESL 시간, 계속해서 A가 형용사 끝에 장난처럼 “的(de)”를 붙인다. 이에 질세라 B는 즉석해서 완료형을 나타내는 과거분사 뒤에 ‘了(le)’를 붙여 응수한다. 둘은 재미있어하며 히죽히죽 웃는다. 이들이 발화한 형용사와 과거분사는 영어인가 중국어인가?

4. ‘Untact’라는 ‘콩글리시’가 유행이다. 한국인들 다수가 이 말의 의미를 알아듣는다. 한 사람이 이 말을 영어로 생각하고 영미권의 원어민과 대화하면서 사용했다. 단어를 처음 들은 외국인은 속으로 ‘무슨 소리지?’했으나, 두 번째 ‘untact’를 듣고 이것의 의미를 알아챘다. 그리고 재치있게 자신도 ‘untact’라는 말을 차용하여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후 원어민은 한국인을 만날 때 웃으며 ‘untact’를 자연스럽게 섞어 쓴다. 이 영어 원어민이 차용한 ‘untact’라는 단어는 한국어인가 영어인가?

우리는 언어의 경계를 명확히 그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어 내에도 수많은 외래어가 들어와 있고, 영어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그 어떤 언어도 ‘순수하게’ ‘섞이지 않고’ 쓰이거나 발달하지 않는다.

우리는 맥락과 상대에 따라 자신이 갖고 있는 수많은 언어자원을 동원해 언어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조립된 산출물 중에서는 전형적인 것도 있고, 약간의 혁신을 가미한 것도 있고,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언어도 있다. 다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만난다면 조합의 혁신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통번역기의 발달로 더욱 가속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개인의 머릿속에 있는 언어자원에 더해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타 언어자원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비주얼과 제스처 등이 결합되는 방식도 점점 다양해진다. 순간순간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단단한영어공부 #translanguaging

7년만의 대화

“오늘 연락드린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제가 좋은 기회로 저연차 교사의 고민과 노력을 담은 책을 집필 중인데요. “아이들의 삶에 스며드는 수업은 따로있다”라는 제목을 지닌 파트가 있습니다. 이 파트에 제가 실제로 크게 감명 받았던 교수님의 글을 인용하고 싶어서, 혹시 괜찮을지 여쭙고자 연락드립니다. 실제로 제 수업에 큰 영향을 주었던 글이라.. 허락해주시면 너무나도 감사할 것 같습니다. 제가 싣고자 하는 글은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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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an apple”은
그렇게 열심히 따라 하면서
“This is me(이게 나예요)”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진 못했습니다.

“Work hard, and you will succeed”는
숱하게 만났지만
“Unite, and you will get what you deserve”는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가정법을 배우며
“If I were a bird”를 반복했지만
“If I were an immigrant worker in South Korea”를
발화할 생각은 못 했고

“It is very difficult to master English”라고 말하며
영어라는 산 앞에서 좌절했었지만
“It is very difficult to master anything”이라는
당연한 이치를 기억해 내지 못했습니다.

롤 플레이를 하면서
해당 역할을 앵무새처럼 따라 했었지
새로운 역할을 꿈꾸고
새로운 대본을 써볼 생각은 못했던 나날들이 있었죠.

생각하는 말,
살아 숨 쉬며 펄떡이는 말,
웃고 울고 분노하고 아파하고 손잡아 주는 말을
가르치고 배우지 못했습니다.

삶을 위한 영어공부는
이처럼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합니다.

예문을 바꾸고
활동을 바꿉니다.

거기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삶으로 나아갑니다.

배우고 표현하며
성찰하고 소통하며 연대하는 말로,
그리고 그 말이 울려 퍼질
세상으로.

당신의 가슴이
세계를 껴안는
변방으로,
경계로,

사람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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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제 수업을 들었던 한 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이제 선생님이 되어 서울의 모 고등학교에서 일하고 있다고요. 위에서 이야기했듯 자신이 몇몇 선생님과 함께 마무리하고 있는 책에 저의 글을 인용하고 싶은데 괜찮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영광스런 일이니까요.

기뻤습니다. 7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이젠 선생님과 선생님으로 만날 수 있어서 뭉쿨했습니다. 텅빈 7년 여의 시간이 순식간에 커다란 섭리로 채워지는 듯했습니다. 써놓고 보니 조금 호들갑스럽기도 하군요.

많은 분들이 가르치는 일을 콩나무 시루에 물 붓는 일에 비유하곤 합니다. 물을 부을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도통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콩나물은 무럭무럭 자라난다고요. 그렇기에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계속 물을 부어야 한다고요.

얼마 되지 않는 경력을 되돌아 보면 제가 물주는 일이나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십년 쯤 지나면 그래도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했는데 점점 더 자신이 없습니다. 어떤 게 좋은 수업일까요? 학생들이 콩나물이고 제가 물을 준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나 오만한 생각 아닐까요? 그냥 함께 배우고 성장하면 되는데 제가 뭘 한다고 설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래도 종종 이렇게 먼저 손 내밀어 주는 이들이 있어서 제가 하는 일이 아주 조금이나마 세상에 도움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무쓸모의 두려움으로부터 저를 해방시켜주는 구원의 빛 같달까요.

책이 나오면 7년 만에 학생을, 아니 선생님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책을 직접 전해주고 싶다고 하네요. ‘코로나가 잦아들면’이라고 또 바보같은 기약을 했지만 잊지 않고 기다려 보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지만 만남의 설렘을 간직하고 걷다 보면 이 긴 여정의 끝에 다다라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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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원고 교정 후 마무리 단계라.. 책을 6월 안으로 출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책 나오면 교수님 한번 찾아뵈도 될까요?? 😃”

“그럼요. 물론입니다. 코로나가 극성이지만 좀 잦아들면 뵈어요. 멋진 선생님으로 성장하고 계신 것 같아 참으로 감사하고 기쁩니다. 책 마무리 화이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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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해진 마음에 여름 밤바람이 스밉니다.

우문들 (답없는)

Posted by on May 22, 2020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 No Comments

1. 언론보도는 ‘팩트’와 ‘입장’을 넘어 ‘대화’를 지향할 수 없는가?

2. 진실이 개인에 의해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이’에, 사이의 지층에 존재한다면, 그 ‘사이’는 어떻게 보도되어야 하는가?

3. 언론의 자기성찰성(self-reflexivity)은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단지 구호의 차원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제도적인 차원에서.

4. ‘당사자주의’라는 말에 붙은 ‘~주의’는 어떤 의미인가? ‘~주의’라는 말은 복잡다단한 주체와 사건, 대상과 관계들을 칼로 물베듯 잘라내어 세계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단순화하지는 않는가?

5. ‘A는 A고 B는 B다’라는 말은 얼마나 손쉬우며 때로 기만적인가. 뿌리는 뿌리고, 줄기는 줄기고, 가지는 가지고, 잎은 잎이라는 말과 어떻게 다른가. 나무는 무엇이란 말인가.

중재당하는 언론은 많지만 중재하는 언론은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린 요즘. 우매한 나는 ‘언론’의 정의를 곱씹어 본다.

언론 [言論] 신문, 잡지, 방송 등을 통하여 뉴스나 사실을 알리거나 의견과 논의를 전개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다음사전)

‘어중간한 재능’ 단평

Posted by on May 20, 2020 in 단상, 사회문화이론 | No Comments

트위터의 “어중간한 재능” 논쟁(?)을 보고 있자니 안타깝게도 ‘타고난 능력은 넘사벽’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뼛속까지 체화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을 비판하는 다양한 의견을 보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재능 VS 노력 VS 좀더 노력’ 구도의 전형적인 능력주의 담론의 압승인 것 같아 입맛이 쓰다. 모두 각자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사회도 좋지만, ‘타고난 재능’이라는 담론이 창궐하지 않는 사회가 더 낫다. 역설적이게도 개인의 재능이 아닌 사회의 역량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각자의 재능이 발휘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수동태 뒤의 전치사에 관하여

a. He was relieved by what he saw.
b. He was relieved about what he saw.

이 둘 중에 뭐가 맞나요? 저는 relieved 다음에 by와 about이 다 된다고 배웠는데 말이죠. 네이티브 두 명에게 물어보니 by가 맞다고 하는데…

이런 질문을 받았고요. 저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about과 by의 의미차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주신 두 표현 (relieved about / by) 중에 뭐가 맞느냐는 건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By”는 그 뒤에 동작주(agent)나 원인(cause)을 나타내는 표현이 주로 옵니다. 따라서 주신 문장이 “그는 그걸 보고 안심이 되었다”는 의미라면 He was relieved BY what he saw.가 되어야 적절하다고 봅니다.

이에 비해 about은 말 그대로 ‘~에 대해’, ‘~에 관하여’라는 의미입니다. 뒤에 나오는 것이 relieve를 하게 한 agent나 cause라기 보다는 대상(object)인 것이죠. 따라서 “After hearing the news, he was relieved ABOUT the situation in New York.”라고 말하는 것이 좀더 적절하겠죠. 뉴스를 들은 게 원인이 된 것이고, 뒤에 나오는 ‘the situation in New York”은 안심의 대상이 되니까요. (그래서 ‘소식을 듣고 안심이 되었다’의 적절한 번역은 “She was relieved BY the news.”입니다. By 대신 about을 쓰면 상당히 어색하죠.)

그렇다면 다시 He was relieved about what he saw.에 대해 ‘by’를 써야 한다고 말한 원어민의 직관으로 돌아가 보면, 사실 이건 표현에 대한 개인적인 직관이라기 보다는 상황에 대한 사회적인 직관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런 맥락 없이 저 문장이 주어졌을 때 by냐 about이냐 하는 것은 ‘what he saw’와 ‘He was relieved’ 사이의 관계와 밀접하게 엮여 있는 것이죠. 보통 뭔가를 걱정하고 있다가 어떤 상황을 목격했을 때 안심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저만치 가던 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가서 살펴보니 상처도 없고 특별히 다친 곳도 없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는 경우 말입니다. 이 경우에는 ‘what he saw’에 의해서(by) ‘was relieved’되었다고 보는 게 적절하겠죠.

다른 상황도 상정할 수 있습니다. 제가 뭔가를 목격했어요. 예를 들어 아이들이 공룡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걸 본 거죠. 그런데 점심을 함께 하고 있는 선생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어이, 김성우 선생. 그 뉴스 봤어? 요즘 나오는 공룡 장난감에 유해물질이 장난이 아니라는데?” 저는 갑자기 아까 봤던 장면이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애들한테 무슨 해가 있을까 하고요. 그래서 뉴스를 찾아봅니다. 검색해 보니 모든 공룡 장난감이 그런 건 아니고, 특정 브랜드만 그렇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그제서야 저는 아까 봤던 장면에 대해(about) 안심이 됩니다. 뉴스에서 지적한 브랜드가 아니니까요. 이때는 “He was relieved ABOUT what he saw.”가 좀더 적절할 것입니다.

우리가 원어민에게 A/B 중에 뭐가 맞느냐고 물을 때 종종 놓치는 것은 A와 B를 “Either A or B”의 관계로 놓는 것입니다. 실제로 구글이나 코퍼스 툴을 찾아보면 둘 다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빈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저명한 출판물에 올라가 있는 경우도 많거든요. 여기에서 빈도(frequency) 뿐 아니라 그 두 표현이 갖고 있는 의미적/개념적 차이에 주목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By와 about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되고요.

이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맥락이고 두 번째는 해당 표현의 기초적인 의미입니다. 위에서 설명드렸듯이 ‘안심이 된다’와 ‘무언가를 목격하다’ 사이에 성립하는 가장 일반적인 관계는 ‘뭔가를 보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안심이 되다’입니다. 하지만 다른 상황이라면 ‘목격한 것에 관하여’가 될 수도 있죠. 또한 by와 about이 가지는 어휘적 개념도 중요합니다. 이것을 고려해야겠죠.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도 이 두 표현이 칼로 무 자르듯 딱 갈리진 않을 겁니다. 그 경우에는 비원어민 뿐 아니라 원어민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릴 수 있고요.

덧. 이런 개념을 염두에 두시고 “relieved about the situation.”과 “relieved by the situation.”을 exact match로 구글에서 검색해 보시면 about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옵니다.

#인지언어학이야기 #수동태 #전치사

비마이너

Posted by on May 14, 2020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 No Comments

오늘 받은 재난지원금을 <비마이너>에 보냈습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들 하지만 오늘은 과감히 다른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어찌 보면 ‘호들갑’을 떠는 것으로 보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더 많은 분들에게 <비마이너>가 알려졌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이 글을 씁니다.

저의 비마이너에 대한 짧은 생각을 아래 옮겨놓습니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 언론 지형을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과 다른 스펙트럼을 가진 한경한(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을 보는 것으로 시각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저는 이 사회에 대해 가장 많은 통찰력을 주는 것은 〈비마이너〉같은 매체가 아닌가 생각해요.

제가 비장애인으로서 보는 세계에 대해 머리를 쾅 치는 기사들이 종종 올라와요. 그럴 때 가슴이 떨리고, 제 좁았던 시야를 돌아보게 되죠. 장애인과 장애학의 관점에서 본 세계는 내가 지금까지 봤던 세계와 완전히 다르구나, 내가 뭘 몰랐구나 하는 걸 드러내줘요. 리터러시의 발달에서 기존의 지식을 충실하게 잘 섭렵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비마이너〉와 같이 그동안의 리터러시의 주류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관점에 끊임없이 열려 있도록 만드는 매체도 반드시 필요하죠. 그런 면에서 다수자가 아닌 소수자의 시각, 중앙이 아닌 변방에서의 이해, 이와 관련된 실천이 리터러시 교육이 나아가야 할 주요한 방향 중 하나라고 봅니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중에서)

제가 너무나 좁은 시야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잘 압니다. 교육을 한다 말하고 문해와 리터러시에 대해 떠들지만 실상은 먹고사니즘의 핑계 속에서 이제껏 쌓은 관계 안에 안주하며 세상을 볼 뿐입니다. 그것은 ‘나의 세상’일 지는 모르지만 온전한 세계는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 어리석고 좁은 세상을 깨뜨려 주는 분들이 더없이 소중합니다. 그분들로 인해 제 어둔 마음이 밝아지고 세계는 변화합니다. 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흔들리더라도 함께 걸어갑니다.

아래 <비마이너>의 주소를 남깁니다. 비마이너를 읽고, 느끼고, 궁리하고, 알려주세요. 때로는 분노하고 연대해 주세요. “C메이저”로 보는 세상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세상을 보게 해주는, 무엇보다 우리들의 얼굴을 오롯이 마주하게 하는 “B마이너”를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장애인의 주홍글씨, 비마이너
https://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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