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시대, 일상스케치

Posted by on Mar 17, 2020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집필 | 2 Comments

1. 아리조나 투산에 있는 한 친구는 “고립되거나 혼자 계신 분을 알고 있다면, 그들이 뭔가 필요하다면 알려줘. 살 수 있는 거면 얼마든지 사다가 그분들 집 앞에 놓아줄 수 있으니까.”라는 포스트를 올렸다. 울컥한 나는 하트를 날렸다. 그냥 많이 고맙고 미안했다. 그리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쿠팡맨’ 노동자가 떠올랐다.

2. 한국사회는 국민성의 성숙으로 사재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물류와 배송시스템, 배달노동자들의 혹독한 노동으로 사재기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분석에 동의한다. 우리는 종종 피땀과 노동, 시스템과 ‘착취’를 자랑스런 문화로 포장하고 있지는 않나, 반성한다.

3. 무지와 혐오의 높은 상관관계처럼 조금도 이해하려 들지 않음과 비웃음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다. 대담을 나누었던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최근 한 교회의 ‘분무기 사건’을 무시하듯 웃어 넘겼던 일을 돌아본다. 그리고 내가 몇주 전 어떤 ‘가짜뉴스’에서 뜨거운 물을 자주 먹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그냥 믿어버렸던 일을 떠올린다. 돌아볼수록 나의 어리석음은 크고도 깊은데 누군가의 ‘어리석음’을 쉽게 비웃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숨을 고르고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4. 몇 주만에 지하철을 탔다.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평소 지하철 안팎에서 물건을 팔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무료급식소는 한 달간 문을 닫았고, ‘판을 깔고’ 야채나 헌옷가지를 팔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바이러스에겐 국경도 인간도 없다지만, 인간이 만든 세계는 고통을 차별적으로 분배한다.

5. 세계 각지에서 계엄령에 준하는 조치들이 내려지고 있다.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면이 있으나 국가 보건방역시스템의 방만함과 무능함을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식으로 해결하려는 측면은 없는지 살피게 된다. 질병 재난 시대의 사회가 새로운 온라인 교육을 요구하는 만큼 새로운 온라인 시위와 정치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시기는 아닐지.

6. Extreme disasters require radical solidarity. Our time and space have changed forever and social distancing prevails: Love needs to weave us together tight and sound. The ‘new normal’ of this pandemic era should be trust and care on an institutional and social level. Rampant capitalism needs to be quarantined and revolutionary regimes imagined. We cannot go back.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태도가 뭐 그리 중요한가

“태도가 중요한가? 내용이 중요하지!”가 가정하는 것들

1. 태도는 내용이 아니다.
2. 태도가 어떻더라도 내용은 읽힌다.
3. 회사 미팅에서 브리핑을 할 때 누워서 껌씹으며 잠옷차림으로 하더라도 정확한 정보만 전달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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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차가 확연한 대화 상황에서 강자가 약자의 태도를 문제삼는다면 그것으로 매우 정치적이며 억압적일 수 있다. 하지만 비교적 대등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 ‘태도가 뭐가 중요한가’라고 말한다면 적절치 않다. (1) 상대가 태도와 내용을 완전히 분리해서 처리한다는 보장이 없고, (2) 부적절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자연스럽게 소화한다는 보장은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우리는 내용을 읽기 전에 상대를 읽으며, 그렇게 읽은 상대의 태도와 매너가 내용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매일같이 3번을 실천하면서 그런 주장을 한다면 진심은 어느 정도 받아들여줄 수 있겠다.

일상스케치

Posted by on Mar 11, 2020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집필 | No Comments

1. 얼마 전 낸 촛불집회 관련 논문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우리에게 충분한 데이터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아카이빙(archiving)’의 부재는 정부, 언론, 시민단체, 정당 모두에 해당하는 문제였다. 탄핵정국을 관통한 집회는 건국 이래 가장 큰 거리시위로 불리지만 체계적이며 풍부한 자료를 찾기는 힘들었다.

이번 사태는 어떨까. 백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그것이 실행으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부디 관련자들이 이번 사건을 꼼꼼히 기록하고 면밀히 분석하고 교훈을 이끌어내고 쓸 수 있는 자원으로 배포하는 작업이 반드시 이루어지길 빈다. 무엇보다 ‘복기’에 돈을 쓰는 게 제대로 돈을 쓰는 일임을 정부와 지자체, 유관 기관 모두가 깨달았으면 좋겠다.

2. 오래 전 한 후보의 과거 행적이 드러나면서 “대선후보”와 “돼지 흥분제”가 한 텍스트 내에 동시에 오른 적이 있다. 역겨운 내용이었다. 이로써 그는 단지 한국정치 뿐 아니라 텍스트의 역사를 오염시켰다. 오늘 아침에는 모 당이 한 기업 총수를 소환하며 기부를 종용(?)하는 포스터를 보았다. 그것 또한 기이한 언어들의 조합이 아닐 수 없었다. 말도 안되는 말을 가능하게 하는 말같지 않은 행동들은 깊은 탄식을 부른다.

3. 2006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영문 제목은 <The Host>이다. 일부 언론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숙주(host)를 마치 괴물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어떤 확진자도 숙주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영화의 세계에서는 host가 괴물일지 몰라도 이 세계에서는 인간이라는 것. 어떤 측면에서 ‘숙주’로 여겨질 수밖에 없지만 온전한 인격체로서 대해야 한다는 것. 이 둘을 적절히 조화할 지혜를 찾아야 한다는 것.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4. <삶을 위한 리터러시> 속편으로 <재난 시대의 리터러시>를 고민해 본다.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말하고 듣고 연결되어야 하는가. 하지만 ‘재난’ 덕에 첫 책도 나오기 너무 힘들다는 건 안비밀. 작업이 길어지니 조금은 기운이 빠진다. 자연의 봄만큼 마음의 봄도 어서 왔으면 좋겠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사석’과 공적 담화

일부 사람들이 굉장히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사석에서 한 말은 기록되어도 ‘사석’에 머문다는 것이다. 세상 제일 편한 사람들과 한 이야기라도 활자로 만들어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는 순간 공적담화의 영역에 편입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구분되어야 한다는 법적, 윤리적, 문화적 구분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물.리.적.사.실.이다. 이걸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잘 하는 말로는 “그냥 말일 뿐인데 뭐” (당신에겐 말일 뿐인데 듣는 사람한테는 무기라고), “농담으로 한 건데 뭘 그렇게까지” (당신 마음 속에서는 농담인데 나에게는 모욕이라고) 등이 있다. 할 말을 다 퍼붓고 “그냥 내 마음 속 생각이었어”하면 아무 일이 없어진다고 믿는 것만큼 한심한 것은 없는 것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더 많은 연결, 더 많은 분열

Posted by on Mar 10, 2020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집필 | No Comments

아마도 우리는 역사상 타인의 삶을 가장 많이 읽어내는 세대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책을 덜 읽는다고 하지만 뉴스와 블로그, 소셜미디어와 채팅방의 텍스트로 순간순간을 채운다. 하지만 그것이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연대로 나아갔는가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더 많이 읽고 더 안다고 생각할수록 넘지 말아야 할 선,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금, 감히 넘보지 말아야 할 경계만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연결이 많아질수록 오해는 증가하고 상처는 깊어가고 곱씹는 밤은 늘어간다. 진실로 슬퍼하는 자들에게 복이 있기를. 아파하는 자에게 함께 아파할 벗이 있기를.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의학 메타포 단상 (기사발췌+약간의 해설)

Posted by on Mar 10, 2020 in 링크, 말에 관하여, 인지언어학, 집필 | No Comments

1. 환자는 질병과 싸우는가? 그는 파이터(fighter)인가? 그렇다면 질병이 심각해지거나 그로 인해 죽음에까지 이르는 경우는 충분히 열심히 싸우지 않아서 병에 굴복한 것인가? 질병은 적이고 나는 파이터이며 호전이나 악화는 승리 혹은 패배인가?

환자를 파이터로 개념화하는 것은 어떤 장점과 한계를 갖는가?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환자를 ‘싸우는 존재’로 생각해야 하는가? 죽음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전투에 임하듯 병과 부딪치는 것이 ‘옳은’ 것인가?

2. 우리는 종종 물리적 현상과 메타포를 혼동한다. 잘 알려진 Lawrence Williams와 John Baugh의 연구는 사람들이 따뜻한 음료를 들고 면접에 임할 때 피면접자의 성격을 ‘warm’하다고 판단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보고한다. 차가운 음료를 들고 있었던 참가자들은 반대의 경향을 보였다. 이것은 우연인가?

3. 또 다른 연구(Chen-Bo Zhong & Katie Liljenquist, 2006)는 소위 ‘멕베스 효과(Macbeth effect)’를 보고한다. 자신의 죄과에 대해 생각해 보길 권유당한 참여자들은 연구 참여 선물로 세정제를 택할 확률이 높았다. 윤리적인 측면의 ‘더러움’을 신체적으로 청결하지 못한 것과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영단어 ‘dirty’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윤리적 영역과 신체적 영역 모두를 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의학에서의 군사 메타포는 파스퇴르가 1860년대에 세균에 관한 이론을 제시하기 이전부터 사용되어왔다. 시인 존 던은 질병을 “siege…a rebellious heat, [that] will blow up the heart, like a Myne”이나 “Canon [that] batters all, overthrowes all, demolishes all…destroyes us in an instant.”와 같이 표현한다. 병을 포위공격과 포탄에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5. 17세기에 가장 저명한 의사였던 Thomas Sydenham은 의학에 군사 메타포를 들여온 사람으로 기억될 만하다. 그는 질병의 절멸(annihilation)을 의학의 목표로 삼았다. 자연스레 “내부의 적을 하제와 해열제로 공격(attack)한다”는 표현을 썼다. 질병의 치료가 싸움이라면 당연히 전략전술이 필요할 것이다.

6. 우리는 의학 메타포를 내면화해 왔다. 이제는 그런 표현들이 메타포라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의학용어로 인식된다. 그렇다면 그것의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영향은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그들 중 일부는 여전히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고 전달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https://www.theatlantic.com/health/archive/2014/08/the-trouble-with-medicines-metaphors/374982/

Intelligence 그리고 사이(inter-)

Posted by on Mar 9, 2020 in 강의노트, 말에 관하여, 집필 | No Comments

개념적인 측면에서 “intelligence(지능)”을 “In”+”telligence”로 오분석하는 경우가 있다. 지능을 개인의 내부(in)적 속성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intelligence의 어원을 따라가 보면 ‘사이, 상호적’이라는 의미의 inter- 와 ‘선택하다, 읽어내다’라는 의미의 legere 을 만나게 된다. 이에 따르면 지능은 단일 주체가 지닌 능력이 아니라, 다양한 대상들 사이를 읽어내는 능력에 가깝다.

물론 어원을 가지고 당위적 주장을 펼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intelligence가 파편화된 개인의 자질로, 순전히 개인의 내부에 존재하는 능력으로 이해되는 세태 속에서 그 어원을 다시 한 번 새기는 일이 해가 되진 않을 것이다. 지능은 언제나 관계적이며 사회적이라는 것, 다양한 존재 사이에(in-between) 존재한다는 것. 따라서 맥락적이며 상대적일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원인과 결과, 그리고 리터러시

Posted by on Mar 9, 2020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집필 | No Comments

1. 한국사회의 가장 아픈 면 중에 하나는 특정한 현상의 원인을 찾는 데는 분주하면서도 그 원인이 더 큰 사회경제적, 제도적 맥락과 닿아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묻어둔다는 데 있다. 원인은 넘쳐나지만 그 원인이 어디에서 왔는지 살펴보는 일에는 게으르달까.

2. A는 B를 탓하고, B는 C를 탓하고, C는 D를 탓한다. 그렇게 탓하기의 향연은 사회를 좀먹고 합의를 지연시키고 진실을 감춘다. 이해와 분석, 성찰과 제도화는 계속 미뤄지고 탓하기와 편들기는 습속이 된다. 원인을 찾는 데 골몰하면서 그것의 역사적 형성에 대해 함구하는 사회는 게으르고 얄팍하다.

3. 무엇이든 조금 더 들여다보면 역사와 맥락, 사람이 있다. 영어로 말하면 “A cause is only skin deep (우리가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그저 한 꺼풀에 불과하다).”이라고 해야 할까. 원인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요인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원인 또한 결과인 것이다.

4. “A때문에 이 사단이 났어.”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에 대해 응당 해야 할 응답은 “그럴 수 있겠네. 그런데 A는 어떻게 해서 생긴 거야?”일 것이다.

5. 즉, 그 말에 대해 “맞아맞아”라며 그냥 넘어갈 것인지, 얼굴을 찡그리며 속으로 ‘이런 공감능력 떨어지는 인간’을 외칠 것인지, 아니면 “그러게 나도 그게 궁금하네. 왜 그렇게 되었을까?”라고 함께 알아보자고 제안할 것인지에 따라 한 사회의 리터러시 역량이 좌우된다. 그런 면에서 리터러시는 상대와 나의 관계를 넘어 맥락과 역사를 사고하는 힘이다.

6. <삶을 위한 리터러시(가제)>에서는 대담자 선생님의 제안으로 ‘공감능력’ 대신 ‘사유역량’이라는 용어를 택했다. 상대의 입장을 그저 긍정하고 다독이는 것(‘공감’)이 아니라 그것을 보듬으면서 생각을 확장해 가는 일(‘사유’)로서의 리터러시를 상정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공감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당신과 나 사이에서 무한루프를 도는 폐쇄적인 과정이라면 결국 당파주의와 뒷담화의 번성에 복무할 뿐이다.

7. 아래 첫 답글의 링크는 위의 생각에 단초를 제공한 글이다. 대구 한마음아파트의 상황을 좀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분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스케치

Posted by on Mar 9, 2020 in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1. 감염병 확산 시기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가 화두다. 지금 꼭 필요한 실천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평소에도 한번도 만날 일 없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빈부가 갈라놓은 사회계층. 반듯하게 구획된 공간 안에 ‘갇혀’ 아예 서로 스칠 일이 없는 이들. 장애인 시설을 끝까지 반대하는 일부 주민들. 그런 것들에 마음이 가 닿으면 이 사회로부터 정말 멀리 거리를 두고 싶어진다.

2. “착한 임대인 운동”에 찬성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정책적 사안에 ‘착한’이라는 용어가 붙는 건 마뜩치 않다. 개인적으로 어떤 임대인을 ‘착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부정책에 ‘착한’을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게 어떤 의미와 효용이 있을지 모르겠다. 착한 가격, 착한 세일, 착한 집안, 착한 기업, 착한 임대인… 도덕적 평가의 언어가 자본과 정책에 결합하는 건 정확히 직면해야 할 문제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

3. 이번 학기 <사회언어학과 영어교육>, <영어교육과정> 두 과목을 강의한다. 첫 주 수업은 16일에 시작된다. 어제와 오늘 양일에 걸쳐 1교시에 관한 준비사항을 상세히 공지했다. 아직 시작되지 않은 학기인데 벌써 떨린다. 미뤄두었던 원고의 마감이 떼지어 달려오고 나는 꼼짝없이 녀석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 와중에서도 잘 버티고 잘 가르치고 잘 배우고 잘 기록하자. 무엇보다 웃음을 잃지 말자.

4. 안타깝지만 누구든지 나를 미워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사실을 잊지 않을 때 어떤 사랑도 당연하지 않다. ‘기적같은 사랑’이라는 말은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명명이 아니라 확률적 불가능성을 거역하는 환대에 대한 찬사이다.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묵묵히 곁에 서주는 사랑이라는 기적에 감사한다.

5. 방학이 다 갔다. 긴긴 어둠의 터널에서 서서히 밖으로 나올 시간이다. 눈부신 하늘이 기다리지 않더라도 숨을 한껏 들이 마시고 또 내뱉고 싶다. 새로운 만남 속에서 설렘을 다시 찾고 싶다. 별것 아니지만 배움의 기쁨을 전하고 싶다. 준비가 다 되었느냐고? 그렇지 않아도 언제든 시작할 수 있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일상스케치

1. 아무리 봐도 인스타에서 내 글이 제일 재미없다. (페이스북 글을 거의 재탕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재미없을지는 짐작하실 수 있을 듯.) 그런데도 소수의 친구분들은 꼬박꼬박 하트를 날려 주시고 급기야는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태그를 팔로우하는 분들까지 생겼다. 낯선 곳에서의 환대란 이런 느낌일까.

2. 일용직 노동자, 자영업자, 프리랜서, 강사 등의 생계가 실질적 위험에 처한 가운데 여러 작가님들의 공동 메일링서비스를 접했다. 한분 한분 좋은 글을 쓰시는 분들이니 많은 독자들이 호응해 주겠지 싶었다. 나는 뭘 메일링할 수 있을까 싶은데… 없다. 진짜 없다. 이메일 답장이나 잘하자. 그것도 나름 메일링.

3. 한 페친께서 집안에 칠판을 들여놓고 강의를 촬영하시는 걸 보고 급 부러워졌다. 나름 손글씨에 애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칠판에 필기하면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만 집안에 중대형 칠판을 들여놓는 게 마냥 달갑진 않다. 이 사태가 잦아들면 어딘가에서 필기를 하며 멋진 동영상 강의를 찍어 보리라. (보시는 분들을 위해 마스크는 대형으로 껴야겠다. 그땐 살 수 있겠지?)

4. 아무리 안나가도 식료품을 사러 종종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엘리베이터에 마스크 착용을 촉구하는 안내가 붙었다. 공포는 말을 타고 사람들에게 침투한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 경우 엘리베이터 내에서 감염의 위험이 있으니’라는 말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톤으로 공포/정보를 전달한다. 얼마 전까지 별 생각 없이 동네 한바퀴를 돌고 왔는데 이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도 마스크를 끼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다음은 이쑤시개로 층수 누르기일까?

5. 모 기업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에게 서로 다른 마스크를 지급했다는 기사를 읽는다. (누가 성능이 더 좋은 마스크를 받았는지는 설명드리지 않아도 될 듯하다.) 회사측에서 해명한답시고 한 것 같지만 전반적으로 차등 지급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차별의 잔혹함이가 몸을 규제하는 것을 넘어 얼굴의 지형까지 바꾸고 있다. 계급을 얼굴에 새기려는 것만큼 잔혹하고 뻔뻔한 것이 있을까?

6. 바이러스에 감염된 경우 기저질환을 가졌는지 여부가 증상과 회복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 사회에서는 계급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일상과 자유와 존엄을 규정한다. 어떤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거의 모두가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는 정치경제적 바이러스’인지도 모르겠다. 치료제라고 내어놓는 것들은 열정, 태도, 노오력, 자기계발 따위인데 그것으로 ‘치료’ 될 리가 없다. 치료로 인정한다 해도 일종의 ‘연명치료’인데, 거기에 들어가는 방대한 비용은 각자가 부담해야만 한다.

7. 지레 절망할 필요도 없지만 그다지 신나는 일도 없다. 그래서 미신적이지만 7번을 굳이 넣어 보았다. 감사한 것은 이렇게나마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들이 있어 버티고 또 계속 걸을 수 있다는 것. 해가 지는구나. 저녁으로는 깻잎을 넣은 비빔국수를 해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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