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지 않아도 좋은

Posted by on Nov 8, 2019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집필 | No Comments

대낯같은 광명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문틈으로 비껴드는 석양의 붉은 햇살, 밤보다 조금 밝은 그림자 위 어스름 달빛, 긴긴 하루를 닫는 새벽별로 족하다. 세상의 빛이 되진 못해도 스러지듯 빛나는 세상 곁에 기댈 수 있어 다행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연수강의를 마치고

4주간 진행된 전국영어교사모임의 <교사와 연구자가 함께 궁리하는 ‘삶을 위한 영어교육’> 연수강의가 끝났다.

예전에 준비해 두었던 강의자료를 선생님들을 염두에 두고 조금씩 바꾸어 할 수 있는 강의였지만 준비하고 강의하는 동안의 긴장은 그 어떤 때보다 컸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분들이 많이들 오셨기 때문이었다.

다 끝내고 보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많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이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궁리하며 걷는 길이기에 비관할 수 없다. 멈출 수 없다.

‘삶을 위한 영어교육’의 문제의식에 공감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조금 힘들더라도 실천을 통해 삶과 영어공부가 함께 갈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다짐이 보였다. 가능성이 만들어지고 세상은 조금씩 바뀐다. 당장 변하는 게 보이진 않지만 변화를 체감할 때가 되면 서서히 바뀌고 있었음을 알게 되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힘겹게 달려온 자신을 꼬옥 안아줄 수 있으리라.

4주간 금쪽같은 저녁시간을 내주신 선생님들께, 행사를 조직하고 진행하느라 고생하신 전국영어교사모임 집행부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보낸다.

돌아오는 길, 훌쩍 차가와진 밤공기를 느낀다. 학기는 종반으로 내닫고 그리운 얼굴들이 마음을 스친다. 고마운 사람들 덕에 버틴다.

몸은 지쳤지만 맘은 푸근하다.
이 정도면 괜찮은 밤이다.

독서, 유튜브, 그리고 리터러시 지원 생태계

1.
고교생 몇 명이 각자의 손에 책을 들고 서로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야야야 이 책 표지 봐바바. 환상이지? 책이 어떻게 이렇게 빠졌냐?”

“이 문장 끝내주지 않니? 랩 같기도 하고.”

“여기에서 이런 단어를 쓰다니. 작가가 정말 미쳤어 미쳤어.”

“와 정말 최고의 메타포다. 나도 저렇게 쓰고 싶다.”

“첫 문장 이렇게 시작하잖아? 근데 마지막에 또 이렇게 끝난다. 뭔가 연결된 느낌이지 않아?”

“이거 읽고 나니까 이 작가 다른 작품들도 다 읽어보고 싶다. 같이 읽어볼 사람?”

문학을 가지고 이렇게 열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처음이다. 왜냐하면 방금 내가 상상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2.
영상은 상황이 다르다.

먼저 나만해도 재미있는 영상을 보거나 하면 링크를 짝에게 보내곤 한다. ‘이거 한번 봐바바’ 하면서. 아주 긴 영상이 아니라면 링크를 공유하는 게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유튜브는 채널을 구독해서 영상을 받아보곤 한다. 좋아하는 유튜버의 영상이 언제 업로드되나 궁금해하기도 한다.

영상은 검색하면 관련 영상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추가 시청을 유도한다. 거기에 ‘기꺼이’ 넘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영상은 내가 써야 할 시간을 처음부터 알 수 있다. 4분 짜리 영상은 4분이면 끝난다.

3.
그렇다면 책도 이렇게 ‘소프트한’ 포맷으로 변화해야 하는가?

사실 이런 시도는 웹소설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지만 책이 말랑말랑해지기 위해 스스로를 크게 변화시켜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식과 이야기의 포맷이 갑자기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텍스트가 스스로의 전통을 무너뜨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도리어 밀도있는 지식,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텍스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텍스트 사이를 여행하는 일을 지원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위 ‘디지털 네이티브’의 몸은 텍스트에 적응하기 전 영상 생태계에 먼저 적응한다. 이 점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4.
텍스트가 본연의 자리를 지킨다는 전제 하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독서교육은 인스타그램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글쓰기 교육은 페이스북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학교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고, 리터러시 교육에 있어 ‘유튜브와 같은 가공할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을 것인가?
동네와 동네 도서관은 어떻게 모든 주민들을 위한 리터러시 생태계를 만들어 낼 것인가?
연구소와 대학은 리터러시 생태계의 빈 지점들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5.
영상도 텍스트도 아는 만큼 보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영상은 지각(perception)에 기반한다. 매우 복잡한 구조가 아니라면 소리와 이미지는 지각되고 처리되는 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텍스트는 기호이다. 기호는 실제와 인간 사이에 존재하며, 무언가를 상징하는(stand for)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문장을 읽어가며 해당 언어에 대응하는 개념이나 이미지를 머리 속에서 한번 더 그려내야 한다.

이 근본적인 차이가 텍스트와 영상의 소비 및 공유행태의 차이를 낳는다. 결국 텍스트를 영상과 같이 소비할 수도 공유할 수도 없다. 하지만 영상이 소비되고 공유되는 방식에서 텍스트가 배워야 할 것이 분명히 있다.

6.
책은 여전히 책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리터러시를 지원하는 플랫폼의 진화는 이제부터다. 어떤 방향이어야 할지는 아직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시점이 다가오는 것 같다.

페이스북 정도의 범용 플랫폼이나 서적판매와 블로그 생태계가 결합된 여러 서점 사이트를 넘어서는 리터러시 지원 플랫폼이 존재할 수 있을까?

7.
이미 많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일부 사교육에서 텍스트와 영상을 아우르는 리터러시 교육이 시도되고 있다. 그런데 한숨이 나오는 건 중고교를 거치면서 읽기쓰기의 지평이 급속하게 축소된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8.
긴 텍스트를 읽어내는 능력의 중요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미디어 생태계의 성장와 소비행태가 지속된다면 텍스트를 지긋이 읽어내는 능력이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계급간 리터러시 격차가 더욱 커질 것이다. 메리언 울프는 영상과 텍스트를 모두 소화해 낼 수 있는 유연한 뇌를 키우자고 말하지만, 그런 능력이 계급적으로 불평등하게 분배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광활한 인터넷의 세계가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이들에게는 학습의 장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헤어나올 수 없는 구덩이가 되듯, 밀도있는 텍스트를 읽어내는 능력에 있어서도 계급간의 격차가 급격히 커질 위험에 있다. 이것은 소통의 위기이며 민주주의의 위기이며 공동체의 위기이다. 이 상황에 대해 좀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고, 그에 기반한 리터러시 지원 생태계의 구축이 필요하다.

#삶을위한리터러시 #리터러시생태계

온라인, 오프라인, 그리고 독서모임

Posted by on Nov 5, 2019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집필 | No Comments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관계를 반듯하게 가르는 건 쉽지 않다. 온라인에서 더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오프라인에서 자주 만나더라도 형식적인 네트워킹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관계의 양태나 강도는 단순히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나뉘지 않는다. 온라인의 관계가 더 피상적이라고 단정하는 건 온라인에서 우정을 가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하는 말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오프라인을 그저 피곤한 공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온라인을 자기 성향에 맞는 ‘따스한 사람들’로만 채워놨을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둘 사이의 차이가 없는 건 아니다. 오랜 오프라인 지인이 온라인에서 선뜻 동의하기 힘든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 그간의 관계를 기반으로 최대한 이해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온라인에서 오랜 시간 좋은 인상을 쌓아왔던 상대라 할지라도 오프라인에서의 언사가 실망스러울 경우 그간의 이미지가 오해에 기반하고 있었다고 판단하기 쉽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모두에 밝혔듯 관계를 성장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하지만 얼굴을 맞대고 눈빛을 주고받으며 쌓는 관계, 자세와 제스처를 협응하며 대화를 나누는 관계는 텍스트로 쌓은 관계와 다른 측면이 있다. 전자가 후자에 비해 더욱 우월하다거나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온라인에서의 소통과 오프라인에서의 소통은 경험에 다른 질감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전자가 ‘플랫폼’으로 매개되는 관계라면 후자는 특정한 날씨, 조명, 공간, 거리, 마실 것, 의자와 탁자, 룸톤(room tone), 목소리, 간식, 웃음 등으로 매개되는 관계라 할 수 있다. 전자의 유대가 주로 텍스트의 얽힘에 기반하는 것이라면 후자의 유대는 무엇보다 함께 있음(co-presence)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풍성한 텍스트의 향연이 펼쳐지긴 하지만 말하는 이와 듣는 이를 동시에 감쌀 수 있는 물리적 맥락은 없다. 그에 비해 후자의 경우 대화의 풍성함과 관계 없이 만나는 시간의 구체성이 있고, 이동의 수고가 있고, 기억의 장소성이 있다.

최근 독서모임이 붐이라고 한다. 겨우 한 달에 한 번이지만 나 또한 책읽는 모임에 나가고 있다. 이런 모임이 좋은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장점을 결합하려는 시도에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중 대다수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지식과 지혜를 나누면서도 사람을 만나 함께 있고 싶은 소망이 있다. 관계 속에서 텍스트가 재해석되고 재창조되는 경험을 따스한 미소를 머금은 차 한잔이 감싸주는 기억을 만들어가고 싶어한다. 이것은 홀로 읽기와는 다른 텍스쳐(texture)를 텍스트에 부여한다.

한편 책을 매개로 하는 만남은 개개인의 고유성이 너무 튀지 않게 만드는 역할도 하지 않나 싶다. 아무 이야기나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아무 말이나 지껄일 수 없는 공간. 책을 정하고 토론의 룰을 정하는 순간 말과 행동의 한계가 구획되는 공간. 그렇기에 독서모임은 건강한 긴장을 갖지만 급진적 취향과 주장을 적절히 통제하는 공간이 된다.

요는, 독서모임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소통의 역동성을 적절하게 매개한 데 있고, 그 역할을 책이 해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흔히 책은 디지털 미디어와 대비되는 오프라인 미디어로 생각되지만 독서모임의 경우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가교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아, 오해는 마시길 빈다. 온라인 커뮤니티 없이 오프라인 독서모임이 굴러가는 경우도 많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건 온라인에서 종일 텍스트를 접하는 사람들이 오프라인 모임에 합류할 때 책이 훌륭한 매개자(mediator)가 된다는 뜻이다.

덧.

몇 해 전부터 생각만 해온 <First chapters> 읽기모임은 언제 시작할 수 있으려나. 관련 포스트의 일부를 옮겨놓는다.

“책 한 권을 모두 읽고 와서 생각을 나누는 방식도 좋지만 저처럼 이책 저책 유랑하길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책의 첫 장 혹은 서문을 꼼꼼히 함께 읽고 나머지를 읽을지는 각자가 결정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겁니다. 책읽기를 제안한 사람은 저자 정보, 책 소개를 준비해 오구요. 첫 챕터를 돌아가며 소리내어 읽습니다. 중간중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토론이 진행되죠. 대개의 책들은 첫 장만 꼼꼼히 읽어도 저자의 집필 의도와 전체의 내용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독서모임 포맷입니다.”

#삶을위한리터러시 #독서모임

수업 잡감

언어 빅데이터에 대한 수업을 하고 있다. 프로그래밍이나 자연어처리 기법과 같은 기술적 내용은 아니고,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의 관점에서 구글북스나 코퍼스 등 대용량 언어 데이터를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관한 내용이다.

반응은 두 가지로 갈린다. 새로운 관점과 도구가 언어학습에 대한 영감을 준다는 의견이 하나고 ‘그래서 어쩌라고’가 하나다. 몇 해를 진행해 온 수업인지라 이런 반응은 익히 예상한 바다.

그런데 후자의 의견을 지닌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보면 ‘이런 걸 왜 영어교육과에서 다루느냐’는 식의 항변이 섞여있다.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본격적으로 활용하지 못할 것들을 왜 몇 주에 걸쳐 다루냐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차피 영어실력 향상에 도움도 안되는 개념과 도구들 아니냐는 항의가 깔려 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언어교육이 교재에 묶여 있는 상황에 대해 고민해 왔다. 언어를 사회문화적 총체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잘 편집된 교과서와 문제집의 형태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 갑갑했던 것이다. 그런데 빅데이터를 활용한 활동은 언어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잘 보여줄 수 있다. 완벽하진 않지만 교과서와 수능교재에 갇힌 영어를 어느 정도 해방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당장 학습자들의 영어실력을 올려주거나 시험을 치는 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심어주는 데는 유효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면서 교사 또한 언어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다.

현실만을 보면 항변하는 학생들의 의견이 맞다. 교실에서, 방과후 활동에서 빅데이터 같은 거 다루면 수능에 도움이 되겠나? 내신성적 높이는 데 소용이 있겠나? 당연히 성적에 도움은 안된다. 그런데 교육을 그렇게만 바라보면 교사는 뭐가 되나? 또 학생은 뭐가 되나? 무엇보다도 재미가 없지 않나?

어떤 수업을 해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 같다. 강의평가에서 불만이 터져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생각하는 건 ‘무난한 수업’보다는 ‘김성우에게만 들을 수 있는 수업’을 하자는 것이다. 내가 대단한 선생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내 수업이라는 이야기다.

꼰대가 되지 않는 것만큼 맞춰주기만 하는 선생이 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좋은 수업은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기도 하지만 현실을 바꾸는 꿈을 꿀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해야 하니까. 교육은 사회의 필요에 복무함과 동시에 사회 자체를 변혁해야 하니까.

연주: I’m in Love

Posted by on Nov 3, 2019 in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연애도 안하던 시절인데 왠 “I am in love”라는 즉흥연주를 했을까요? 게다가 10분을 훌쩍 넘네요. 이 재미없는 연주를 다 들으시는 분은 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신 걸로 생각하겠습니다. 그런데 사랑에 빠진 것 같긴 하나요?

 

http://sungwoo.pbworks.com/w/file/fetch/56573779/120806_I_am_in_Love.mp3?fbclid=IwAR0Rups2Bq9HFz0SjaA8oBziQaZ1qwdq2glySMlRaVWQHoqgKfyDszvHaGA

PISA의 문해력, 실질적 문해력

최근 다양한 매체에서 리터러시에 대한 논의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표준화된 리터러시 개념으로 가장 널리 인용되는 자료 중 하나는 PISA의 읽기능력 평가 결과인데요. 읽기를 포함한 OECD의 PISA 평가는 크게 다섯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집니다. (참고로 PISA는 OECD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의 약자입니다.)

(1) 읽기 리터러시
(2) 수학 리터러시
(3) 과학 리터러시
(4) 문제해결능력
(5) 협력적 문제해결

PISA에 따르면 읽기 리터러시(통계나 수학, 기타 영역의 리터러시와 구별되는 읽기영역에서의 리터러시)는 다음과 같이 정의됩니다.

“주어진 목표를 성취하고, 지식과 잠재력을 성장시키며, 사회에 참여하기 위하여 기록된 텍스트를 이해하고 사용하며 그에 대해 숙고하고 텍스트를 가지고 상호작용하는 행위.”

이와 같은 정의는 일상의 읽기 활동에 관여하는 과정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인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읽기 평가에 있어 핵심을 이루는 구인(construct)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PISA와 PISA-D 테스트는 읽기를 평가함에 있어 크게 세 가지 축을 상정합니다.

(1) 텍스트 (2) 상황 (3) (읽기) 과정 (혹은 양상)

즉 쓰여진 글, 그 글이 등장하고 논의되는 상황, 그리고 글을 읽어내는 데 관여하는 과정이 중요시된다는 것이죠.

PISA-D( PISA for Development)는 이중에서도 특히 과정(process)에 방점을 두는데요. 크게 다섯 가지 과정이 상정됩니다.

(1) 문자 그대로의 의미 이해(literal comprehension)
(2) 정보 추출(retrieving information)
(3) 전반적인 이해의 형성(forming a broad understanding)
(4) 해석해 내기 (developing an interpretation)
(5) 텍스트의 내용에 대한 숙고와 평가(reflecting on and evaluating the content of a text)

즉 어떤 사람이 텍스트를 잘 이해했는지 보려면 텍스트를 이루는 기본 단어와 문장을 정확히 이해하는가, 해당 문서에서 적절한 정보를 선별해 낼 수 있는가, 전체 내용을 간략하게 진술할 수 있는가, 특정한 관점에서 해당 텍스트를 해석해 낼 수 있는가, 텍스트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가를 보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평가하기 위해 여러 포맷의 텍스트를 활용하는데요. 에세이나 신문기사 등 연결된 텍스트는 물론 정보를 담은 표나 일정표 등의 텍스트도 활용합니다. 아울러 개인적, 공적 영역의 텍스트, 교육기관이나 직장에서 사용되는 텍스트를 두루 활용하지요.

그런데 저는 PISA 등의 표준화 평가에서 말하는 ‘읽기능력’ 혹은 ‘독해력’이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이야기되는 ‘문해력’과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 맥락을 고려한다고는 하지만 위에서 말하는 읽기능력은 기본적으로 개인이 텍스트를 읽어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한 사람이 특정한 텍스트와 맺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회문화적 상황에서 요구되는 읽기능력은 단순히 텍스트와 개별 독자간의 관계만을 수반하지 않습니다. 텍스트의 내용 뿐 아니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의 중요성이 커집니다. 여기에 이 텍스트가 쓰여진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를 소화하는 능력으로서의 읽기 리터러시는 실제 상황의 반쪽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독해능력이나 쓰기능력을 평가하는 도구는 진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의 복잡다단한 맥락과 관계를 온전히 포괄하지는 못하죠. 그렇기에 우리는 텍스트를 완벽히 해석하는 데 필요한 리터러시를 논의함과 동시에 관계와 맥락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리터러시를 논의해야 합니다. 그것을 저는 ‘삶을 위한 리터러시’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삶을위한리터러시

평가를 넘어서

Posted by on Oct 29, 2019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 No Comments

‘평가가 없으면 누가 공부를 하겠냐’는 말은 평가 없이 공부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하는 말 아닌가 싶다. 평가가 무용하다는 것이 아니다. 평가는 결국 ‘평가 없음’의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이 영화에서 저 영화로, 이 웹툰에서 저 웹툰으로, 이 지도에서 저 지역으로, 이 음악에서 저 미술작품으로 횡단하는 끝없는 배움의 여정에 줄세우는 평가는 초대되지 않는다. ‘어떻게 평가의 매트릭스에서 벗어날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보다 더 간절하다. 평가를 넘어서는 상상력 하에 평가체제가 구축될 수는 없는 걸까. 바보같이 묻는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리듬 앤 플로우

음악도 잘 모르고
힙합은 더 모르지만
지난 한 주 <Rhythm + Flow> 덕에 행복했다.

오디션 경연 포맷을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엄청난 압력을 견뎌내며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이들에게서
큰 감동을 받았다.

사실 욕설이나 비하, 성적인 묘사들에 대해
그리 익숙하지 않다.
‘정치적 올바름’에 다소 경도된
고리타분한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열 편의 에피소드는
“다른 문화를 엿보는” 경험으로 생각하고
최대한 즐겁게 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한 귀퉁이를 접고 보니
즐거운 순간이 많았다.

기획과 편집의 힘이겠지만
이번 경연에 참가한 아티스트들은
대개 불우한 형편에서 자랐다.
약물중독으로 가족을 잃거나
범죄로 인해 감옥에 갇힌 가족을 봐야 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 와중에
그들을 지켜준 것이
음악과 가족, 그리고 때로 신앙이었다.
빈곤과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자기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음악을 택했던 것이다.

응축된 고통이
벌건 마그마처럼
리듬과 가사로 요동칠 때
나 또한 흔들리고 흐느꼈다.

언어교육을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어렸을 때 연기나 랩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게
종종 아쉽다.

삶과 말을 재료로
혼과 리듬을 엮어내는 일,
대사를 매개로
타인의 몸과 마음을 상상하는 일의 아름다움을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가 언어를 대하는 방식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아, 그리고 사소한 즐거움 하나.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초반 30인의 경연자 중 우승자로 점친 사람이
진짜 우승을 했다.
업계 최고수들의 생각과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
소소한 기쁨을 선사했다.

음악이 있어 다행이고
음악하는 사람들이 축복이고
음악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 삶의 리듬과 플로우를 찾아
하루 하루를 지어(compose)가야겠다.

 

Let’s make the rhythm flow, yo.

말과 침묵, 그리고 겨울밤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세상. 말할 여유조차 없는 이들의 ‘침묵’은 더욱 깊어진다.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성량 조절에 힘쓸 뿐, 자신이 목소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논쟁으로 문제를 풀려는 무리들은 서로의 말 속에서 허우적대며 강요된 침묵에 침묵한다. 침묵의 소리를 듣는 신중한 이들은 고개를 떨구고 발걸음을 돌린다. 슬픔은 내려안고 바람은 어두워진다. 말이 얼어붙는 사이 침묵은 포효한다. 밤은 오래 깨어 묵묵히 상처를 벼린다.

다시, 눈빛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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