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민 중심주의, 능력주의, 고용관행, 그리고 인종차별 (native speakerism, meritocracy, hiring practices, and racism)

원어민 중심주의, 능력주의, 고용관행, 그리고 인종차별 (native speakerism, meritocracy, hiring practices, and racism)

1. 언젠가 지도교수는 ‘비원어민 제자들이 쓰는 표현이나 메타포가 신선해서 잘 봐두었다가 차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카데미아의 최선두에 있는 백인 남성 학자인 그가 이런 말을 했을 때 나는 한참이나 그 의미를 곱씹었다. 오랜 시간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알게 된 것은 그가 ‘비원어민 화자’를 ‘표준영어의 교란자’로 보기 보다는 ‘영어라는 언어생태계의 기여자’로 본다는 사실이었다.

2. 이러한 지도교수의 관점은 한편으로 존경스러웠지만 다른 한편으로 영어를 기반으로 한 문화의 가공할 권력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헐리우드 영화가 온갖 아이디어를 집어삼켜 덩치를 키우면서 ‘자연스런’ 문화로 자신을 자리매김하느 모습을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언어/문화제국주의의 최첨단 무기는 포용과 세련됨이다.

3. 비원어민으로 영어를 쓰는 일은 ‘표준영어’를 ‘타락시키는’ 일이 아니다. 노력하는 비원어민의 영어구사는 표준영어의 지평을 넓히는 작업이고, 표준영어의 권력을 와해시키는 저항이며, 표준영어의 엘리트주의를 깨는 ‘풀뿌리운동’이기도 하다.

4.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개개인의 실력에 방점을 찍으며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는 것과 결코 같을 수 없는 언어습득 환경에서 ‘정확한 언어구사’을 강조하며 ‘객관적 표준’을 강조하는 것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소위 표준영어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순응은 능력주의의 신화에 대한 맹신과 꽤나 닮았다. ‘억울하면 노오오오력해서 실력을 쌓고 출세해’나 ‘억울하면 미친듯이 열심히 공부해서 네이티브만큼 영어하고 인정받아’는 오십 보 백 보인 것이다.

5.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원어민 중심주의는 때로 인종주의의 하위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충분한 교육적 배경을 갖춘 네이티브 스피커라 하더라도 ‘너무 한국사람처럼 생겨서’ 인사채용에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발생하거나, 백인에 가급적 금발인 사람을 선호하는 곳이 적지 않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완벽한’ 영어가 인종적 차별 앞에 무릎을 꿇는 형국이랄까. 아무리 영어를 잘해봐야 피부색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것이다.

6. 원어민 중심주의는 “Native speaker only”라는 광고문구의 형태로 우리 곁에 와 있다. 한국의 차별금지법 초안에 관련조항이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EU의 법률은 “네이티브 스피커 채용/원어민만 지원 가능” 광고가 명시적 차별임을 시사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TEFL Equity Advocates의 포스팅을 참고하라.

“In May 2002 the EC also announced that:

The Commission is of the opinion that the phrase “native speaker” is not acceptable, under any circumstances, under Community law. […] the Commission recommends using a phrase such as “perfect or very good knowledge of a particular language” as a condition of access to posts for which a very high level of knowledge of that language is necessary.”

Native speakers only job ads and EU law

7. 한국의 학교현장에서 이런 주장은 ‘씨알도 안먹힐’지도 모르겠다. 당장 미국의 ‘표준발음’을 기준으로 ‘정확한 영어’를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원어민 중심주의의 어두운 면들을 간파하고 이를 지양해 나가는 노력이야말로 가장 교육적인 것이 아닐까? 원어민 중심주의와 능력주의에 대한 과신, 나아가 인종차별에 이르는 끈을 인식하는 일이야 말로 영어를 제대로 가르치는 데 있어 튼튼한 버팀목이 되지 않을까? 결국 우리는 원어민 영어 화자가 아니라 비원어민 영어 학습자/사용자/교수자로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숲 리터러시

“어쩌면 그 학생들이 모두 킬러로 자라온 거 아닐까 싶어요.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유적으로 다른 사람을 모두 베어야 하는 그런 인생이요. 그게 학생들 잘못은 아니지만 그렇게 키워진 거죠. 그러다 보니 머리만 커지고 가슴은 쪼그라들어서 사람들을 이해하는 능력을 상실해 버리고…”

2012년 돌아온 첫해 함께 공부했던 학생이 집 근처로 찾아왔습니다. 4년 여 만의 만남, 여전히 많은 것들이 통하는 친구였습니다. 제가 선생이라고 하지만 반대로 느끼도록 만드는 성숙한 학생들이 있는데 이 친구가 그렇습니다.

밥과 차를 나누며 두 시간 여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이 사회가 ‘킬러’들과 ‘베인자’들을 길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누군가에게 직접 상해를 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는 ‘승자’로서 세계 위에 군림하고, 그 과정에서 ‘도태된’ 사람들은 상처를 안고 평생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리터러시와 관련된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더니 ‘숲을 읽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공인 숲 해설가이기도 한 친구는 소위 ‘숲 리터러시’에 대해 말해주더군요. 그리고 안도현의 시 <무식한 놈>을 전해주었습니다.

===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

짧은 시가 가슴에 박혔습니다. 아프더군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리터러시’가 얼마나 협소한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저를 둘러싼 대자연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로 인간이 만들어 낸 기호체계와 미디어만을 들여다 보고 있는 제 모습이 반성되더군요.

그래도 마음 넓은 이 친구는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저와 절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내년에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으로 헤어졌네요.

고마운 만남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남깁니다.

#삶을위한리터러시
#숲리터러시

‘막상’의 힘, 전문가의 갈등, 그리고 변화의 지난함

얼마 전 도서관 강연을 하며 여러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예전부터 갖고 있던 연구 관심사에 다시 마음이 간다. 몇년 전 사회언어학 수업을 할 때였다. 모 저널 특집호를 중심으로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 학부모들의 언어교육 행태를 다루는 논문을 읽었다. (왜 석박사 통합 수업에 스무 명이 넘는 수강생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수업엔 꽤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있었고, 다수는 현직 중등 영어교사였으며, 이들 중 몇몇은 유아나 초등 저학년 연령대의 자녀를 둔 학부모였다. 우린 아티클과 뉴스기사 속 학부모 ‘군상’들, 주변 지인들의 사례들을 논의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 와중에 매우 흥미로운 현상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현실 영어교육에 대한 대학원생들의 스탠스가 연구자/학부모 정체성에 따라서 사뭇 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연구자로 말할 땐 조기영어교육이나 과도한 사교육에 대해 비판적이다가도 학부모로서 발언할 때에는 자신이 제기한 비판의 지점을 번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이때 가장 두드러진 발화 패턴은 ‘막상 아이를 키워보니’, ‘막상 애가 유치원 갈 때가 되니’, ‘막상 내 애 이야기가 되고 보니’였다. 아이를 갖기 전 타인의 사회적 관행으로 바라본 영어교육에 대한 이해와 아이를 본격적으로 영어교육에 입문시키면서 학부모로서 갖게 된 생각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대목들에 ‘막상…’이 등장했던 것이다.

어쩌면 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주제에 (‘그걸 연구해 봐야 하나?’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듯하다) 계속 마음이 가는 것은 이 현상 속에 사회적 변화(의 지난함)의 핵심 요인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왜 비판적 지식을 학습한 주체마저 자녀와 관련된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주류적/상업적 논리를 따르게 되는가?’, ‘교육학적 지식은 양육과정에서 어떻게 비판되고 변형되며 수용되는가?’, 나아가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자녀교육이라는 장에서 어떻게 유지되고 발달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다.

사회언어학을 수강한 대학원생들은 영어교육을 전공하며 조기영어교육의 폐해 혹은 다소간의 무용함에 대해 알고 있었고, 아동의 영어 리터러시 교육 입문이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는 마케팅 담론을 경계하고 있었으며, 놀이를 넘어선 본격적 학습이 개개인마다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 또한 주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녀들이 ‘다들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하는’ 연령대를 통과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이론적 지식과 자녀 영어교육과 관련된 의사결정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영미를 중심으로 구축된 영어교육의 주류이론을 ‘손쉽게 방기하는’(거긴 거기고 여긴 여기이며 내 아이를 키운다는 건 또 다른 문제잖아) ‘현실직시파’와 ‘중심을 잡고 휘둘리지 않으며 최대한 천천히 최소의 사교육만을 시키는’ ‘뚝심소신파’를 가르게 되는데 (한 학생은 ‘내가 배운 게 있지 남들과 똑같이 키울 순 없잖아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개개인의 내면의 풍경은 상당한 변화를 겪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물론 이같은 묘사는 자녀의 발달과정에서 연구자/대학원생 학부모가 겪게 되는 복잡다단한 변화를 매우 단순화한 것이며, 그들의 변화를 다양한 방법으로 추적한다면 이렇게 뭉뚱그릴 수 없는 사회적, 관계적, 내면적 힘이 드러날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조만간 이리저리 도움을 요청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것. ‘애도 안키워 본’ 중등 및 대학 영어교육 전공자를 무지에서 깨워줄 분들이 필요하니 말이다.

덧.
‘막상 정규직이 되어 보니’
‘시간강사 하다가 막상 교수가 되어 보니’
‘막상 장사를 시작하고 사람 뽑는 입장이 되다 보니’

‘막상’의 힘에 대해 생각할수록 할 말이 많지만 할 수가 없게 된다.

영어학습을 주제로 한 인문독서 아카데미 강연을 통해 배우고 느낀 점들

5주간의 한빛도서관 강연을 마쳤습니다. 총 10시간 강의였으니 대학강의와 논문쓰기 특강 외에 가장 긴 시간을 가르친 셈이네요. 5주간의 경험에서 얻은 바를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1. 수강생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또 많은 것들에 대해 궁금해하고 계셨습니다.

‘영어교육에 관해서라면 전국민이 전문가’라고 하지만 이 말이 사실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들 알고 있는 것들은 많지만 영어교육학이나 응용언어학의 개념을 꿰뚫고 있는 분들은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많은 것을 안다고 해서 확신을 가지고 영어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려는 분들이 적지 않아 기쁜 마음으로 지식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2. 가족 내에서의 영어교육에 대한 책임은 절대적으로 어머니들에게 부과됩니다.

마흔 분의 수강생 중 서른 여덟 분이 여성이었고, 그중 대부분은 초등학교 저학년 전후의 자녀를 둔 30-40대 어머니들이었습니다. 질의응답을 하다 보니 영어교육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을 어머니가 맡고 계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다른 과목의 공부도 마찬가지겠지만 양육과 교육에서 어머니들이 담당하는 부분이 매우 큰데 이것이 자칫 ‘책임 스트레스’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3. 중고교에서의 영어교육 열기가 식었다고 하지만 초등과 미취학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교육은 여전히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파주지역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초등학교 전후의 영어교육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한빛도서관은 어린이 영어도서 특화 도서관이기도 한데, 여기에 정기적으로 들르시는 부모님들이 꽤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번 오시면 동화나 리더스 시리즈 등을 30-40권씩 빌려간다고 하시더군요. 나중에 수학이나 과학 쪽에 더 신경을 쓸지는 모르지만 초등학교 수준에서는 영어교육에 대한 수요가 아직 큰 것으로 보입니다.

4. ‘엄마표 영어’의 힘은 막강합니다. 하지만 몇몇 어머니들은 ‘비슷비슷한’ 엄마표 영어 서적보다 조금 더 깊은 지식을 쌓길 원하고 있습니다. (‘비슷비슷한’은 두 어머니의 워딩을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소위 ‘엄마표 영어’ 강연을 주기적으로 들었다는 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엄마표 영어를 접하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다만 그런 강연들에서 전달되는 메시지가 천편일률적이라고 느끼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엄마표 영어가 어머니들 사이에서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는 것, 나아가 몇몇 분들은 조금 더 깊은 공부를 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채워줄 강연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수요가 크진 않지만 분명 목마름이 있는 것이죠.

5.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학부모의 의식변화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5주간 강의와 질의응답을 통해 우리 사회의 영어교육 지형이 바뀌기 위해서는 학부모의 의식변화가 절실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최선을 다해 자녀의 영어교육을 지원하면서도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불투명한 미래, 주변과의 비교 등이 불안의 주요 원인이더군요.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입시와 내신 등의 제도적 변화와 함께 영어공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영어를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어공부를 공부하는 것의 중요성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6. ‘삶을 위한 영어공부’ 실천 프로그램의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단단한 영어공부>를 내고 나서 단순히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영어공부 프로그램을 기획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한 친구와 함께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보자는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고요. 이번 경험에서 배운 바를 앞으로의 기획에 적용해 보려고 합니다. 작고 소소하지만 깊이있고 단단한 영어공부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전에 없었던 학습 프로그램을 기획해 볼 생각에 설레네요.

7. (대놓고 광고입니다.) 한번 하고 말기에는 10시간 강의 준비한 게 아깝다는 생각입니다.

그간 집필한 것과 강의한 바를 종합해서 5강짜리 강의를 기획하고 실행했습니다. 한 번 하고 말기에는 조금 아쉽고 또 아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전국영어교사모임 강연에서는 ‘교사버전’으로 각색을 해볼 예정이고요. 이후 다른 곳에서 불러주시면 또 열심히 준비해 볼 생각입니다. 공식적인 강의피드백은 없었지만 여러 분들이 많이 배우고 느꼈다고 말씀해 주셨네요.

비슷한 주제로 강의를 원하시는 분은 메시지 주십시오. 일정을 맞춰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아래 한빛도서관 강연 내용을 옮겨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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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독서아카데미] 단단한 영어공부 – 파주시 한빛도서관

한빛도서관의 <인문독서 아카데미> 강연은 5주, 총 10시간에 걸쳐 진행됩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았습니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뼈대로 하되, 그간 진행해 온 강의 내용을 보강하여 진행할 예정입니다.

강의내용: 영어공부, 왜 하는가. 내 삶을 위한 외국어 학습이란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영어교육을 되돌아보고 우리 삶을 단단하게 하는 영어공부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

1강- 영어 왜 공부하는가 : 네이티브 중심주의를 넘어서
2강- 인풋이 아니라 경험이다 & 영어, 오해를 풀고 새롭게 보기
3강- 문법, 형법에서 마법으로 & 어휘, 생각을 담고 세계를 넓히다
4강- 응용언어학자가 바라보는 언어와 사고의 관계
5강- 쓰기공부: 가로쓰기X세로쓰기X좁게쓰기

#삶을위한영어공부
#단단한영어공부

인지언어학 이야기 52: 인지문법의 세계 (관사 마지막 이야기)

 

“What’s this?”
“Cat”

관사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뼈아프게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다음과 같이 단어를 외웠다는 사실입니다.

고양이 – cat
손목시계 – watch
양 – sheep
책상 – desk
물 – water
사과 – apple

이쯤 되면 제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눈치채셨을 겁니다. 이런 식의 짝짓기에서는 명사 앞에 관사를 붙이지 않습니다. 그냥 단어와 한국어 짝이 나열되는 식이죠. 그 결과 셀 수 있는 명사와 셀 수 없는 명사의 구분이 없이 머릿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명사를 처음 배울 때 불가산과 가산의 개념이 자리잡을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양이 그림을 두고 “What is this?” 혹은 “What is that?”와 같이 물어볼 때에는 “(It’s) a cat.”과 같이 <관사+명사>의 짝이 보다 적절한 답변입니다. “What’s this?라고 했는데 그냥 “Cat”이라고 한다면 틀렸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어색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관사와 명사가 어떻게 짝을 이루는지 살피면서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통수단의 개념화, 그리고 관사

교통수단을 표현할 때 <by + 무관사 명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by bus, by train, by car, by plane, by bicycle” 등의 표현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동사와 같이 쓸 때는 조금 복잡합니다. 대표적으로 take와 같이 쓰이는 bus/subway/taxi 를 생각해 보시죠.

a. I take a bus to work.
b. I take the bus to work.

특별한 문맥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위의 두 문장은 특별한 문제없이 바꾸어 쓸 수 있습니다. “나 버스 타고 일하러 간다.”의 의미로 말이죠. 굳이 차이를 찾는다면 bus 앞에 정관사 the를 쓴 b의 경우가 ‘다른 교통수단이 아니고 버스임’ 혹은 ‘내가 늘 타고 다니던 그 버스’를 조금 강조한다는 정도인데요. 이것이 두 문장의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진 못합니다. (참고로 두 원어민 화자에게 물어봤더니 한 친구는 a를, 다른 친구는 b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데이터로서 두 명은 너무 작은 숫자이니 무시할 만하지만, 원어민들의 직관이 반대라는 점이 흥미로왔습니다.)

이에 비해 subway의 경우는 확연히 다릅니다. 부정관사는 적절하지 않고 정관사만 가능하죠.

c. I take a subway to work. *
d. I take the subway to work.

별표는 문법적으로 옳지 않음을 이야기합니다. 버스의 경우에는 “여러 교통수단 중 하나로서의/특정한 노선을 지나는 버스(the bus)” 혹은 “여러 버스 중 하나(a bus)”를 상정할 수 있지만, 지하철의 경우에는 “시스템화 된 교통수단으로서의 지하철(the subway)”으로만 개념화됩니다. 여러 개 중 셀 수 있는 개체로 개념화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당연히 a subway, two subways 등은 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고로 subway의 경우 아무 것도 안붙이고 무관사로 쓰는 경우도 종종 발견됩니다. 다만 a subway라고 쓰는 경우는 좀처럼 없습니다.)

Bus, subway, taxi에 대한 개념화의 차이

Taxi는 조금 애매한 듯합니다. Bus의 경우 the bus/a bus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고, subway의 경우에는 정관사가 동반되거나 아예 생략되기도 하는데요. Taxi는 예외적인 상황이나 특정 문맥이 없다면 기본적으로 부정관사 a가 필요합니다. 일부가 “the taxi”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T/F 문법 문제라면 take a taxi만이 정답으로 인정되겠지요.

이같은 관찰을 종합하여 교통수단에 대한 관사사용을 개념화(conceptualization)라는 관점에서 정리해 봅시다. 우선 사람들은 택시를 셀 수 있는 개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세상에 수많은 택시들이 있고 그 중 하나를 잡아탄다는 생각입니다. 이에 비해 지하철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하철 열차를 여러 지하철 열차 중 하나로 개념화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버스는 그 중간 어디쯤엔가 위치한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복잡하지만 아예 패턴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관사공부의 패러독스

몇 차례의 연재를 통해 인지언어학의 관점에서 관사의 용법을 살펴보았습니다. 교사들이 보기에도 쉽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과 관련해 관사에 대해 강의를 할 때 종종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종종 혼동도 되고 틀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공부하기 전보다는 정확성이 분명히 좋아졌습니다. 그거면 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관사 학습에는 일종의 패러독스가 존재합니다. 영어에서 가장 빈번히 나오는 품사 중 하나가 관사이고,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말뭉치(corpus)를 살피면 the가 늘 빈도수 1위를 차지한다는 점입니다. A/an의 빈도도 상당히 높습니다. 이렇게 보면 관사의 바다 속에서 관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등잔 밑이 어두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죠.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논문쓰기 강의를 하면서도 관사가 가장 어렵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빈도수가 높다고 개념적으로 쉬운 것은 아닙니다. 관사는 생긴 것도 단순하고 종류도 3가지(정관사, 부정관사, 무관사) 밖에 되지 않지만 개념적으로 명쾌히 이해하기엔 영문법에서 가장 복잡한 항목 중 하나입니다. ‘개념화의 차이에 따라 관사의 활용이 달라진다’는 인지언어학의 기본 개념을 떠올리면서 다양한 맥락 속에서 관사를 살피는 공부를 꾸준히 해 나갈 때 이런 한계를 조금씩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매일 사람들을 접하지만 관계가 가장 어렵습니다. 관계를 두루두루 살피고 깊이 성찰하지 않는 한 관계에 대한 지혜는 자라지 않을 듯합니다.

단단한 영어공부, 동료를 만나다

추석 연휴, 몇해 전 저의 수업을 듣고 졸업한 학생으로부터 감격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OO이에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추석이 되어서 저의 근황을 알려드리려고 해요~!! 너무 TMI 인가요?? ㅎㅎ 교수님 책을 읽고 제 교육 가치관의 큰 변화가 찾아왔어요. 예전에는 사교육시장에서 원하는 선생님이었다면 지금은 많이 제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들이 행복 해질 수 있는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중이에요~”

“지난번에 제가 엄하게 아이들을 잡는다고 하고 이 책을 읽으니 많이 부끄러웠어요. 저만의 교육 철학을 세우지 않고 사육교에 이리저리 휘둘리긴만 한 것 같아요. 그 때는 이 교육방식이 교육이라는 것에 반하는 내용인지도 몰랐어요.”

“이제는 저의 욕심만 앞서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언어를 배움으로써 느끼는 즐거움을 충분히 누릴 수 있게 기다리고, 함께 노력하는 중이에요. 그러고 나니 아이들과의 관계도 많이 좋아졌어요~”

“학교는 졸업했지만 이렇게 교수님의 책으로 아직도 배움을 하는 중이랍니다~ 좋은 책으로 저에게 좋은 교육철학을 심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교대원 동기들에게도 이 책 많이 추천했어요!! 아! 영어논문 찾던중에 유튜브에서 교수님의 영어논문 쓰는법 강의를 보고 너무 반가웠어요~ 교수님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고 나중에 OOOO와 한번 더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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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클해진 마음으로 그가 전해준 이야기를 되새깁니다. 제 책을 읽고 배웠다고 하지만 사실 제가 더 많이 배우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언젠가는 저의 ‘제자’였지만 이제는 함께 배움을 바꾸어가는 동료가 되었음에 기뻐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더 나은 영어공부를 만들어 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인간과 인간을 이어 주는 영어가 아니라 가르고 줄 세우는 영어, 철저히 사고파는 물건이 되어 버린 영어의 시대. 우리 사회에서 또 우리 안에서 영어가 휘두르는 힘을 정확히 이해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영어를 위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영어가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혼자 할수 없는 일입니다. 함께해야 하는 일입니다.” (단단한 영어공부, 254쪽)

단단한 영어공부의 구체적 실천을 위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대단할 것 없지만 삶에 깊이 뿌리박은 우리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공부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힘겨워 주저앉을 때마다 이렇게 힘을 주는 이들이 있어 계속 걸어갈 수 있네요. 그저 고마운 마음입니다.

#단단한영어공부
#삶을위한영어공부

삶과 실적

Posted by on Sep 15, 2019 in 강의노트, 단상, 일상 | No Comments

“Academic people don’t have biographies; they have careers.” – Pierre Bourdieu

추석 연휴를 지나며 부르디외를 띄엄띄엄 소리내어 읽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에겐 배울 것이 많다. 하지만 “학계의 사람들은 전기는 없고 커리어만 있다”는 그의 말은 꽤나 슬프다. 다른 동료들은 어떻게 이 말을 받아들일까? 인생을 갈아넣어 커리어를 만드는 일을 줄이는 게 인문사회과학을 하는 이유 중 하나일텐데, 그들의 삶은 종종 커리어’만’으로 기억되는 듯하다. 삶과 실적 사이의 모순을 견뎌내는 것이 학자의 능력으로 판단되는 일이 점점 줄어들기를 빈다. 언제나 그렇듯 순진하게, 바보같이.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의미생산을 돕는 Guided Writing

대부분의 Guided writing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철저히 문법과 어휘를 기반으로 유도된다는 점이다. 문제는 ‘의미의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Although…. willl…을 활용하여 너의 의지를 기술하라.

Although I cannot change the entire system, I will try to change the atmosphere of each community in which I belong.

Although I cannot forgive his fault, I will try to understand his character without prejudice.

또 다른 예시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겠다.

2. If 가정법을 활용하여 당신이 공감하고 싶은 대상에 대하여 기술하오.

3. prefer A to B를 활용하여 오늘 일과 중에서 바꾸고 싶은 것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시오.

4. <동명사 is 동명사> 구문(예 Seeing is believing.)을 활용하여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두 개의 활동을 기술하시오.

5. not so much A as B 구문을 활용하여 사람들은 A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B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나열해 보시오.

이와 같은 안내는 단순히 특정 구조와 어휘를 활용한 문장 만들기를 넘어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의미에 집중하도록 한다. 다시 말해 바람직한 guided writing은 어휘문법적 활용 뿐 아니라 의미생산을 유도해야 하는 것이다.

#삶을위한영작문 #단단한영어공부

부르디외 vs. 촘스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의 핵심적 특징이 ‘생성적(generative)’이라는 데 있다고 말하면서 촘스키의 심층구조(deep structure)와의 유사성을 언급한다. 심층구조가 다양한 조작을 거쳐 여러 표층구조로 실현될 수 있듯이 아비투스가 사회 구조에 의해 형성되지만 그 자체가 다양한 행위를 생성할 잠재성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반면 부르디외는 이상적 원어민 화자(idealized native speaker)를 상정하는 촘스키의 언어관을 “언어 공산주의(communisme linguistique)의 환상“이라고 비판한다. 완벽하게 평등한 현실은 존재하지 않건만 촘스키와 같이 모든 화자들이 동일한 언어능력(linguistic competence)을 가진 사회를 상정하는 것은 언어학에서 현실을 탈각하고 이상의 세계에 가두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관점은 언어인류학자나 비판사회언어학자들의 촘스키 비판과 맥을 같이한다.

인류학적 연구를 수행하면서 현실사회의 동학을 다루었던 사회학자 부르디외에게 있어 이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다양한 장(fields)에서 서로 다른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상징적 자본을 가진 개개인이 소통하는 상황에 ‘이상화된 원어민 화자’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사회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몸이 또 다른 몸에게 말하는 동안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 내는 보편문법의 소유자’는 백그라운드 인지 프로세스로 상정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구체적인 사회학적 분석대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영어논문읽기 강연

<지리학에서 영어논문읽기, 어떻게 할 것인가> (19.9.9. 경희대학교 지리학과)

논문읽기 방법론을 주제로 경희대학교 지리학과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기존에 해오던 “영어로 논문쓰기: 읽기쓰기 통합전략을 중심으로”의 뼈대를 기초로 읽기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영어논문읽기를 ‘영어+논문+읽기’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각각을 설명하되 응용언어학의 장르분석(genre analysis)을 적용해 보았습니다. 열 두 시간 짜리 강의를 한 시간 남짓에 담아내려니 디테일은 좀 떨어진 듯하지만 명민한 학생들이 빈틈을 메워주리라 생각합니다. ^^

#영어로논문쓰기
#영어로논문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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