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학습을 위한 원칙 (3): 가로쓰기X세로쓰기X좁게쓰기

스마트폰의 텍스트 추천 기능을 써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한 단어를 쓰면 그 다음 단어를 추천하고, 또 다시 단어를 입력하면 그 다음 단어를 추천합니다. 쓰는 이의 의도에 딱 맞을 때도 있지만 우스운 단어를 추천하기도 합니다. 한 가지 이 기능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글이든 단어 하나 하나가 모여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결국 단어를 고르고 다음 단어를 고르는 일의 연속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글을 ‘써내려’ 갑니다. 한국어와 영어의 경우 왼 편에서 시작해서 오른 편으로 단어를 늘어놓게 됩니다. 물론 줄넘김을 하면 다시 왼쪽에서 시작되지만 기본적으로 글은 가로축을 따라 진행됩니다. 저는 이것을 ‘가로쓰기’라고 부릅니다.

흔히 자유쓰기(free writing)를 할 때 우리는 가로쓰기에 집중합니다. 논리적 흐름이나 문법, 어휘를 곰곰히 따지지 않고 빠르게 써내려가는 자유쓰기를 통해 우리는 안에 있는 것들을 최대한 끄집어 냅니다. 이 과정에서 편집과 수정은 최대한 자제됩니다. 어떤 사람은 효율적인 자유쓰기를 위해 아예 스크린을 꺼버린다고 하더군요.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최대한 빨리 쏟아놓기 위해서는 키보드 하나면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자유쓰기는 글쓰기에 대한 과도한 긴장이나 우려를 줄이고 많은 아이디어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어로서 영어를 공부하고 영작문을 공부함에 있어서 자유쓰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로쓰기’와 ‘좁게쓰기’가 별도로 필요한 것입니다. 각각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째, ‘세로쓰기’ 능력의 배양이 필요합니다. 모국어와 외국어의 ‘세로쓰기’ 능력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제시한 휴대폰 텍스트 자동완성 기능을 생각해 봅시다. 한국어로 쓸 때는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기에 자동완성 기능은 대부분 ‘빠른 타이핑’을 돕는 역할에 그칩니다. 하지만 영어로 글쓰기에서는 사정이 좀 복잡해집니다. 무슨 단어를 쓸지 정확히 알고 있을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해당 자리에 어떤 단어가 가장 적합한지 고민하고 때로는 검색을 통해 최적의 단어를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하나의 자리에 어떤 단어들이 나올 수 있는지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세로쓰기 능력’이라고 부릅니다. 실제 글쓰기는 언제나 가로쓰기지만, 이 가로쓰기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세로쓰기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Argument(주장)라는 단어 앞에 긍정적인 의미의 형용사를 넣고자 합니다. 그런데 머리 속에 생각나는 것이 달랑 ‘good argument’나 ‘bad argument’라면 계속 이 표현만을 가지고 버티게 됩니다. 하지만 good 혹은 bad 자리에 persuasive나 convincing, 혹은 compelling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최적의 형용사를 골라서 쓸 수 있게 됩니다.

세 단어의 의미는 상당히 비슷합니다. 어떤 주장이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믿음을 준다는 것이죠. 하지만 강도는 조금 다릅니다. Persuasive는 말 그대로 ‘설득력이 있다’의 의미, 즉 persuade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에 비해 convincing은 ‘확신하게 하는’이란 뜻이죠. 원동사persuade와 convince의 의미를 따져 보면 설득하는 것보다 확신시키는 게 더 강한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compel은 ‘압도하다’,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설명을 들었는데 도무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믿게 되는 상황이라면 “compelling”을 사용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셋은 비슷한 의미를 지니지만 의미의 스펙트럼을 따지자면 persuasive 보다는 convincing이, convincing 보다는 compelling이 강한 표현입니다.

원어민 화자는 이렇게 ‘골라 쓸’ 꺼리가 풍부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언어경험을 통해 쌓아온 ‘세로쓰기 레퍼토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원어민은 이 레퍼토리를 의도적으로 늘려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짝궁단어’의 학습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휘학습의 원칙 편 첫 뻔째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둘째, ‘좁게쓰기’ 전략입니다. 영어쓰기를 공부할 때 가장 범하기 쉬운 오류 중 하나는 막연히 ‘영어로 글을 많이 써보자’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어로 쓰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어로 일기쓰기, 서평쓰기, 기사쓰기, 설명문 쓰기, 매뉴얼 쓰기 등이 존재할 뿐이죠. 물론 이들 종류의 글 또한 다양한 포맷으로 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어쓰기를 공부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쓰고자 하는 글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글을 최대한 ‘좁게’ 정의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종류의 글을 쓸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이 조건에 최대한 맞는 글을 찾아봅니다. 그들 중 괜찮다고 생각하는 글을 몇 편 골라 자세히 읽고 아래와 같은 기준으로 분석을 해봅니다.

1. 글을 이루고 있는 정보
2. 정보들이 나열되는 전형적인 순서
3. 몇 편의 글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어와 동사 패턴
4. 유용한 어휘 및 짝궁단어
5. 유용한 문법 패턴
6. 기타 눈에 띄는 수사적 특징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책 소개’를 써야 한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여러 책 소개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셔야 합니다. 학술서 리뷰라면 관련 학술지를 검색하셔야 할 것이고, 대중적인 책 소개라면 신문이나 잡지를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형식을 갖추지 않는 책 소개라면 아마존과 같은 사이트를 방문하시면 되겠습니다. 이제 샘플을 몇 개 모아서 위와 같은 기준으로 분석을 합니다.

이 과정이 조금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꼼꼼히 분석하며 텍스트를 읽다 보면 ‘책 소개’라는 글의 종류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아 이런 정보를 넣으면 되겠구나’, ‘이런 표현 신선하네’, ‘어? 이 메타포 괜찮은걸?’, ‘이 구문 조금 변형해서 쓰면 되겠다’, ‘시작은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끝날 때는 이런 기법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쓰기에 대한 감 또한 잡게 됩니다.

이제 책에 대한 아이디어와 감상을 영어로 풀 수 있는 레퍼토리가 생겼습니다. 여전히 글쓰기가 쉽진 않지만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겠지요. 문제는 이런 기본적인 읽기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작정’ 쓰려고 할 때 발생합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영어 글쓰기를 공부할 때는 자유롭게 써내려가는 ‘가로쓰기’와, 특정 자리에 올 수 있는 단어를 꾸준히 살피며 레퍼토리를 늘려가는 ‘세로쓰기’, 글의 종류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정하고 텍스트 분석을 통해 글의 길을 잡아가는 ‘좁게쓰기’가 필요합니다.

가로쓰기X세로쓰기X좁게쓰기. 이 공식을 기억하세요.

듣기공부의 원칙: 영어 자막 넣고 볼까 빼고 볼까

외국어 학습에서 외국어 인풋의 중요성은 누누이 강조되지만, 한국어 배경지식이 갖는 중요성은 좀처럼 언급되지 않는 듯합니다. 이에 대해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가 읽거나 들을 때 외국어 홀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지식의 기반 위에서 돌아갑니다. 따라서 외국어로 된 자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국어 지식과 함께 세계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갖추어야만 합니다. 어떤 언어를 공부하든 다양한 지식의 습득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인이라면 지식 대부분이 한국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평생 한국어로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외국어 학습에서 한국어를 방치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한국어로 된 지식 키워가며 이를 외국어능력과 통합하려는 자세와 전략이 필요합니다. ‘나는 양자역학 강의를 영어로 들어야 하니까 모든 개념을 처음부터 영어로만 공부하겠어’라든가 ‘인공지능 관련 보고서를 써야 하니 인공지능 기초부터 영어로 파볼까’라며 고집을 피우는 것은 그야말로 똥고집일 뿐입니다.

한국인의 경험은 한국어로 표현되고 공유되며 체계화됩니다. 우리말은 우리의 경험 곳곳에 스며있지요. 영어공부의 과정에서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아마도 한국어 자막의 효용일 것입니다. 그냥은 잘 들리지 않던 영어 뉴스 혹은 영어 드라마도 한국어 자막과 함께 보면 좀더 잘 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말로 익힌 내용을 영어로 들으면 단어를 조금 놓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모국어와 외국어의 상호작용이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영어 인풋을 이해하는 데 있어 모국어로 된 배경지식이 도움이 된다는 점 또한 시사합니다.

신경언어학의 연구는 사춘기 이후 외국어를 처음 배웠을 경우 모국어와 외국어가 사뭇 다른 뇌 회로와 활성화 패턴을 통해 처리됨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국어 지식과 자막이 외국어 이해에 실시간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다수의 경험은 모국어와 외국어가 엄청난 속도로 상호작용할 수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언어 능숙도와 자막의 효용

다만 엄밀한 연구를 위해서는 학습자들이 자막을 켜고 영상을 볼 때 ‘들린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어디까지가 실질적 이해이고 어디까지가 ‘이해했다는 착각’ 혹은 사후적 합리화인지 밝혀내야 하는 과제가 남습니다. 예를 들어 저와 같이 영어가 어느 정도 능숙한 학습자가 영미권 드라마를 볼 때엔 다음을 가정할 수 있겠습니다.

(1) 영어 구어체에서 사용되는 어휘적, 문법적 패턴에 익숙하다. 즉 해당 언어의 일상어 전반에 대한 지식이 있다.

(2) 드라마 전개상 해당 대화가 어디로 흘러갈지 대략적인 파악한 상태다. 기존 스토리라인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추측(inference)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3) 드라마의 소재가 특이하지 않다면 해당 대화에서 나올 수 있는 대략적인 어휘 집합(lexical sets)에 대해 배경지식이 있다. 이는 드라마의 내용과 연관된 어휘지식에 해당한다.

(4) 드라마 시즌의 후반부를 보고 있다면 이전 에피소드들을 통해 주요 인물의 발음과 대화 패턴을 암묵적으로 익힌 상태다. 이는 각각의 인물의 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상황에서 자막을 켜고 볼 때 저의 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언어 능숙도에 따라 뇌의 여러 부위는, 특히 모국어와 외국어를 담당하는 부위는 어떤 활성화 패턴을 보이게 될까요? 전문적인 내용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 영어 자막의 효용은 어디까지일까요? 이런 주제로 깊이 있는 연구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들 연구 결과를 근거로 ‘자막 절대 금지’나 ‘무조건 자막 끄고 5번 이상 보세요’보다는 훨씬 더 과학적인 제안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영어로 말하기 쓰기 또한 영어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2018년 호주오픈 테니스대회에서 선전한 정현 선수의 인터뷰가 있습니다. 한 신문은 “영국 신문 ‘가디언’은 8강전 직후 “로저 페더러와 토마시 베르디흐 중 4강전 상대로 누굴 원하냐”는 질문에 “반반”이라고 한 정현의 위트를 놓고 “외교관급 화술”이라고 칭찬했다.”라고 보도합니다. (중앙일보 2018년 1월 28일자 기사)

정현 선수의 절묘한 유머가 담긴 인터뷰는 분명 영어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 인터뷰의 성공이 그저 ‘영어’공부의 소산이라기보다는, 소통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에서 나왔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기사에도 나오지만 특정 문화에 대한 관심, 주도적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연습 등이 쌓여 멋진 인터뷰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영어를 표현의 암기가 아닌 문화적인 산물로, 의사표현의 매개로 배운 덕분이었습니다.

흔히들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유머감각을 꼽습니다. 감각은 단기간에 암기하거나 체화할 수 없습니다. 오랜 기간의 경험과 고민, 깊이 있는 학습으로 길러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적절한 유머의 구사는 복잡한 인지적, 정서적 요인에 대한 고려와 순간적인 판단을 요하는 고도의 언어능력입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자신을 비루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즐거움과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를 즉석에서 구사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유머감각을 키우는 일은 ‘영어’공부를 넘어 ‘커뮤니케이션 공부’, 나아가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을 요구합니다. 한국어 원어민 화자라면 이러한 커뮤니케이션과 삶의 기저에 한국어가 자리잡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이쯤에서 이 질문을 하시는 분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막은 어쩌라는 겁니까?’

자막 사용 여부를 정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집중력의 한계, 동기 수준, 가용 학습시간 등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막만 끄면 잠이 오거나, 조금만 이해가 안되어도 듣기 공부를 지속하기 힘들다는 분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크게 두 가지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자막 활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겠습니다.

시나리오 1: 학습의 목표가 소리에 익숙해지는 데 있다면 자막을 끄고 반복해서 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나리오 2: 하지만 영어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자막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입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가 언어를 이해하는 데 있어 상향식(bottom-up) 정보처리에 중점을 둔 공부라면 후자는 하향식(top-down)에 방점을 찍는 방식입니다. 소리를 하나 하나 쌓아 더 큰 의미로 나아갈 수도 있고, 자료의 소리와 단어, 문장을 이해하는 데 듣기 각종 배경지식과 경험을 동원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이 두 가지 메커니즘은 언어 이해에서 동적으로 상호작용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막을 무조건 끄고 보아야 한다는 원칙에 매달리다가 영어학습에 대한 동기가 급속히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자막을 끄다가 동기도 ‘꺼지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려고 이걸 자막도 없이 보고 있나?’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으시다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영어공부에서 이 두 가지 모드를 적절히 섞어 활용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나아가 듣기를 단지 듣기로만 접근하기 보다는 다른 모드, 특히 읽기와 함께 공부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무조건 소리와 씨름하기 보다는 관련된 지식을 다룬 텍스트를 공부과정에 적절히 통합하는 것입니다. 최근 드라마나 유튜브 영상의 자막을 구하기 어렵지 않고, 검색엔진에 키워드 몇 개만 넣으면 관련된 글이 쏟아집니다. 자신의 상황에 적합한 자료를 수집해서 영상을 입체적으로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자막을 꺼야 인풋이 많아지고, 인풋이 많아져야 영어를 더 빠르게 배울 수 있다는 조언을 무조건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영상으로 영어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자막 끄고 봐야 돼? 켜고 봐야 돼?’라는 질문으로 골치 아파할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들릴 때까지 듣는다’는 고집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풋’에는 소리도 있지만 그 소리에 대응하는 모국어도 있고,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드라마의 대본도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무자막 모드’, ‘자막 모드’, 관련기사 읽기 모드, 대사 직접 확인하기 모드 등을 적절히 믹스 앤 매치(mix & match)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갈 때 좀더 효율적인 듣기공부가 가능할 것입니다.

언어를 새롭게 상상하기: 문장쓰기를 넘어 문맥 쓰기로

A: Are you a teacher?
B: Yes, I am. Are you a student?
A: Yes, I am.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교과서에 실제로 실렸던 문장입니다. 이 상황에서 학생은 교사에게 “선생님이세요?”라고 묻고, 교사는 학생에게 “너 학생 맞니?”라고 묻습니다. 실세계에서는 좀처럼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는 점에서 “교과서 SF”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대화입니다.

이 문장들은 특정한 교육단계에서 “student”나 “teacher”와 같은 단어, “Are you…?”와 “Yes, I am.”과 같은 구조를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왔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더 들어가면 학습자들이 이렇게 쉬운 문장에서 시작해 점차 복잡한 단어와 구문을 접해야 한다는 교수원리가 담겨 있겠지요.

교수학습 이론의 강박(obsession)이 실세계의 언어를 압도할 때 헛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더욱 허탈한 것은 이러한 대화가 한 강사의 작은 실수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온 국민이 보는 국정교과서에 오랜 기간 실려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출판사들은 한글 해석이 달린 참고서를 내놓았고, 교사들은 큰 소리로 대화를 낭독했으며, 학생들은 대화를 달달 외워서 시험을 보았습니다.

문장쓰기가 아닌 문맥쓰기로

이 텍스트를 써야 할 절체절명의 이유가 있었다면, 학생들로 하여금 이 대화가 벌어질 상황을 만들어 보라고 주문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대화문을 제시하고 컨텍스트를 쓰게 하는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저런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상상력에 따라 더욱 다양한 상황이 제시될 수 있습니다.
(1) SNS에서 만난 두 사람이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선생님이세요?”라고 묻고 “학생이세요?”라고 서로 묻는 경우입니다.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없지만, 기존의 포스트를 통해 각자가 선생님이고 학생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경우 나올 수 있는 대화죠.

(2) 학교 연극부원들이 대본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연극반 지도교사는 학생들을 무작위로 나누어 “자, 이쪽 그룹은 선생님 역할, 이쪽 그룹은 반대로 학생 역할을 하는 거야. 아무나 붙잡고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서 있을만한 상황을 연출해 봐.”라고 주문. 이때 학생은 “너 선생님 역할이야?” “너 학생 역할이지?”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모두에 인용한 대화문은 이제 교과서에서 사라졌지만, 현재의 영어교육이라고 이런 황당한 풍경이 없을까 싶습니다. 현실의 삶이 아니라 꽉 짜인 텍스트의 구조에 갇힌 사회, 새로운 맥락을 써내는 상상력이 억압되는 사회에서 실소를 금하지 못하는 상황은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보통 언어를 배운다고 하면 그 언어의 텍스트만을 생각합니다. 어떻게 정확한 문법과 어휘를 배울 것인가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어를 보는 좀더 과학적인 관점은 언어를 텍스트가 아니라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결합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단어든 문장이든 텍스트는 컨텍스트 없이 그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Where is everyone?”은 무슨 뜻일까요?
“다들 어디있지?”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텍스트만으로 문장의 의미를 확정할 수 있을까요? ‘다들’과 ‘어디’의 진정한 뜻은 무엇일까요? 다음 맥락을 생각해 봅시다.

(1) 학교에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늘 동생들과 엄마가 있었는데 오늘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때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Where is everyone?”

(2)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몇몇 친구들은 늘 그의 편이 되어 주었죠다. 그런데 최근 들어 친구들이 그를 조금씩 멀리하더니 급기야 아무도 말을 건네지 않습니다. 그가 일기를 쓴다. “Where is everyone?”

(3) 한 아이가 페르미 역설을 배웠습니다. (페르미 역설(Fermi paradox)이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이탈리아의 천재 물리학자였던 엔리코 페르미가 외계의 지적 생명체의 존재 여부를 두고 ‘모두 어디에 있는가?’라고 물었던 일화에서 유래했다. — 위키백과) 밤에 옥상에 오른 아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Where is everyone?” (모두 어디 있는 거지?)

세 가지 상황에서 “everyone”의 의미는 조금씩 다릅니다. 1에서는 가족들, 2에서는 자기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 3은 존재 여부를 모르는 외계의 생명체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everyone’의 의미는 사전 속이 아니라 사용의 맥락 하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텍스트의 맥락을 생각해 보는 일은 창조적이고 발산적 사고 발달에 도움을 줍니다. 나아가 언어의 본령이 단지 단어나 문장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세계와 만나는 방식에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여러분들은 ‘Where is everyone?’에 어떤 맥락을 입혀보고 싶으신가요?

쓰기학습의 원칙 (2): 정확성의 덫에서 벗어나기

“이렇게 쓰면 되나요?”

영작문을 가르치면 가장 빈번히 듣게 되는 질문입니다. 자기가 고른 단어가, 써낸 문장이 올바르냐고 묻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질문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용의 풍부함이나 글의 느낌, 논지의 명료함, 재미, 나아가 감동에 관해 묻는 일은 거의 없는 것이지요.

정확한 문장을 쓰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흠없이 완벽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단어 하나 쓰고 멈추고 문장 하나 쓰고를 멈추고를 반복하는 일은 쓰기학습의 가장 큰 적입니다. 사실 세상에 자기 글에 진짜로 만족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건 모국어로 써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글은 없습니다. 조금씩 나아질 뿐입니다.

영어로 글을 쓸 때 정확성(accuracy)이나 완벽함을 목표로 두지 말아야 합니다. 글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밀한 구조물로 생각하기 보다는 썼다가 무너뜨릴 수도 있고 엄청난 규모로 키울 수도 있는 모래성으로 보는 게 낫습니다. 바닷가의 모든 모래가 자신의 것인양 기쁜 어린아이처럼 글을 대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무너뜨리고 다시 쌓으면 됩니다. 이 세상 모든 단어가 글쓴이에게 주어져 있으니까요. 그것도 거저 말이죠.

학생들은 또한 ‘네이티브처럼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종종 합니다. 그럼 원어민이라고 해서 글을 다 잘 쓸까요? 당연히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지 상관 없이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힘든 작업입니다. 같은 조건이라면 원어민이 비원어민보다 좀더 쉽게 쓴다는 점은 분명합니다만, 이것이 결코 영어 원어민의 우월함을 뜻하진 않습니다. 영어 원어민이 우리보다 영어글을 편하게 느끼는 것은, 우리가 그들보다 한국어 글쓰기가 더 편한 이유와 동일합니다.

이 책의 독자 대부분은 한국어 모국어 화자이실 겁니다. 그간 한국에서 살아오며 한국어로 듣고 말하고 읽고 쓴 양을 생각해 봅시다.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매일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기타 소셜미디어에 타이핑하는 텍스트만으로도 한국어 사용량은 엄청납니다. 이점을 생각한다면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운 학습자가 한국인보다 한국어를 더 쉽고 자연스럽게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몇 년 공부한 영작문 실력으로 수십 년 간 영어를 모국어로 쓴 사람들보다 영어를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한 욕심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어민 간에도 글쓰기 실력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네이티브처럼 쓰고 싶다’는 말에 큰 허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특정한 영역에서는 전문성을 지닌 비원어민이 대개의 원어민들 보다 훨씬 나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글쓰기 타겟을 명확히 하고 집중 공략한다면 충분히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관련지식을 깊게 이해하며, 이를 수시로 글로 발전시키는 훈련을 하면 됩니다. 내용과 깊이를 갖춤으로써 더욱 가치있는 글을 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영작문 공부에서 완벽함이라는 가치는 환상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글은 미완성입니다. 그러니 완벽하게 쓰겠다는 꿈은 접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도 못하는 거니까요. 대신에 계속 쓰려는 노력은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꾸준히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좋은 글을 쓰게 됩니다. 세계적인 신문 잡지에 실리는 글만이 좋은 글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마음을 전하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마음에 와닿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그런 글을 쓰시면 됩니다.

글쓰기에 완벽한 정답은 없습니다. 목적이 같다고 해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언어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들에겐 각자만의 문체와 향기가 있습니다. 기자들 또한 같은 소재로 논설을 쓴다 해도 스타일과 전개방식이 달라집니다. 심지어는 동일한 저자의 글도 생애 중 어떤 시기에 썼느냐에 따라 느낌과 형식이 사뭇 다릅니다.

참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유독 영어에 대해서는 “뭔가 네이티브들이 쓰는 정답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패턴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답이라는 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의미를 만들고 여러분이 구조를 결정합니다. 네이티브의 도움도 글쓰는 이가 말하려는 바를 확실히 알 때 효과를 발휘합니다.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정답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쓰기는 외길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쓰기는 온 세상을 유랑(流浪)합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작성중

쓰기학습을 위한 원칙 (1):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영어 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로 꾸준히 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영어를 외국어로 사용하는 한국 상황에서 업무상 영어를 써야만 하는 직군을 제외하면 굳이 영작문을 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작을 잘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꾸준히 영어로 글을 써낼 동력이 되진 못하는 것입니다.

영어 쓰기에서 종종 언급되는 개념으로 ‘글쓰기 막힘(writer’s block)’이 있습니다. 무언가 쓰려고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면 머리가 온통 하얘지면서 아무 말도 꺼내놓을 수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입니다. 커서는 깜빡이고 시간은 지나갑니다. 아무리 생각을 짜내보려 애써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점점 더 조바심이 납니다. 이런 상황, 익숙하신가요?

글쓰기 막힘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발전시키려고 하는데, 정작 정리하고 발전시킬 생각 자체가 없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더 많은 생각과 독서가 필요합니다. 생각을 나누는 대화도 도움이 됩니다. 이를 통해 본격적인 글쓰기 이전에 풍부한 생각의 꺼리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거창한 글이나 학술논문을 쓰려는 것도 아닌데 쓰기가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는 몇 가지 루틴(routine) 즉, 쉽고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는 쓰기 전략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짧은 글을 자주 쓸 수 있도록 돕는 쓰기 도구를 마련하는 것인데요. 작은 습관을 쌓아 본격적인 글쓰기 근력을 키우는 전략입니다.

우선 긴 글을 쓰려고 하지 마시고 짧은 글부터 써보시면 좋겠습니다. 실천하기 쉬운 네 가지 영어글쓰기 전략을 공유합니다.(1) 단어 나열하기: 일정한 소재를 던지고 단어를 나열해 보는 것입니다. 아래 예를 보시죠.

나를 정의할 수 있는 형용사 세 가지.

내가 사랑하는 단어 세 가지.

나와 내 친구 OO의 공통점 세 가지.

 

단어의 나열에서 끝나면 영작문이라 볼 수 없겠지요. 그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을 덧붙이면 짧은문단이 될 수 있습니다. 대략 이런 구조입니다.

 

내가 왜 이 세 단어로 설명되냐고요? 그건 ~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왜 이 세 단어를 사랑하게 되었냐고요? 그건 ~와 같은 사건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친구와 내가 이렇게 닮았냐고요? 예를 들어 설명해 볼게요. 첫째는 …이고, 둘째는 …이고, 마지막으로는 …입니다.

 

(2) 단어 바꾸어 쓰기

이번에는 글을 읽다가 마주친 어구, 문장, 속담, 노래 가사 등에서 단어를 바꾸어 보는 전략입니다. 문장을 살짝 바꾸어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 것인데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괄호 안 설명은 단어를 바꾸게 된 동기입니다.

the good old days -> the bad old days (예전 좋았던 날들이 있으면 예전 안좋았던 날들도 있지.)

the best is yet to come -> the worst is yet to come (최선은 아직 오지 않았어. 하지만 최악도 아직 오지 않았어.)

mother tongue -> ‘grandmother tongue’ (모국어 (어머니의 말) -> ‘조모국어’라는 말은 없을까? 할머니가 쓰던 말은 어머니의 말과는 또 달랐거든.)

Money talks. -> Money devours. / Money dumbs. / Money silences. (돈이 말한다고? 돈은 다 삼키기도 하고, 사람들을 멍청하게도 하고, 침묵하게도 만들지.)

Lead, not follow! Follow, not try to lead! (사람들은 ‘따르지 말고 이끌라!’고 하는데 반대로 너무 이끌려고 하기 보다는 따르는 것도 필요한 거 같아.)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tired boy. All play and no work makes Jack a fun boy. All play and no work makes Jack a poor boy. (일만 하고 안놀면 잭이 재미없는 아이가 된다고 하는데, 일만 하고 놀지 않는 것의 더 큰 문제는 피곤하다는 것 아닐까? 반대로 놀기만 하고 일을 안하면 재미난 애가 될 수도 있어. 물론 일 안하고 놀기만 하면 가난해질 수도 있겠지?)

This too shall pass. -> This too shall pass, but that shall stick persistently. (이 또한 지나갈 거야. 이 또한 지나갈 건데, 저건 끈질기게 들러붙겠지? 삶은 알 수 없는 것 같아.)

(3) 짧은 ‘비망록’ 쓰기

영작문을 가르칠 때 첫 시간 활동으로 6단어 비망록(six word memoir) 쓰기를 하곤 합니다. 딱 여섯 단어를 가지고 자신을 표현하는 글을 써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헤밍웨이가 썼다고 전해지는 하지만 정확한 사실 확인은 되지 않은 6단어 비망록을 보시죠.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판매합니다: 한 번도 신지 않은 아기 신발.)

이 짧은 이야기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 아마도 굉장히 슬픈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헤밍웨이의 여섯 단어 비망록은 짧은 글도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처음부터 길고 거창한 글을 쓰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만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됩니다. 여러분 자신의 ‘여섯 단어 비망록’을 지금 써보시면 어떨까요? 인생의 시기별로, 기억에 남는 사건별, 잊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다양한 비망록을 써보시면 어떨까요? 6단어 비망록으로 시작하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열 단어 비망록을 쓰실 수도 있겠죠. 조금만 발전시키면 ‘10단어 전기’나 ‘15단어 평론’을 써보는 것도 가능하겠고요.

(4) 스스로 글감 생성하고 답하기

단어 나열하기나 바꾸기, 여섯 단어 비망록 등을 써보았다면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문단 쓰기를 시도해 볼 차례입니다. 사실 이때 다른 사람이 부과한 글감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써보고 싶은 소재를 찾아보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마음에서 솟아나는 이야기일 때 영어로도 잘 쓰고 싶어지거든요. 제가 생각해 본 글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힘들었던 이별의 순간 (w/ 사람, 장소, 사물, 동식물 …)
  2. 황당했던 꿈 이야기
  3. 운명같은 우연
  4. 내가 ‘행운의 편지’를 쓴다면?
  5. 세상 가장 쓸쓸했던 날
  6. ‘오늘 하루 시력을 잃었다’
  7. 소설을 쓴다면 이런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8. 세상 누구에게도 없는, 나 혼자 간직한 희망 혹은 소원

 

자 이상에서 영어 글쓰기를 시작하고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전략을 살펴보았습니다. 흔히들“Start small. Scale up.”라고 말하더군요. 작게 시작하고 거기에서 점차 스케일을 키워가는 것이지요. 작지만 소중한 경험부터 꺼내 보세요. 그렇게 세상에 나온 글이 또 다른 글을 이끌어 내는 것을 경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영어 관사학습의 원칙: 텍스트로 공부하세요.

영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어떤 데이터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여지가 있지만 영어 전체를 기준으로 했을 때 부동의 1위는 정관사 the 입니다. 보통 텍스트의 5-6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네요. 스무 단어 중에 한 단어 꼴이니 꽤나 빈번하지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인풋가설에 따르면 우리는 the의 전문가여야 합니다. 문장의 맥락에서 이해가 되는 the를 접하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니, the 사용에 별 문제가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영어 관사 사용을 ‘넘사벽’으로 느끼는 분들이 굉장히 많지요.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차피 안될 거 뭘 그리 신경쓰나’라는 분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관사의 바다 속에서 관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등잔 밑이 어두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관사체계가 발달하지 않은 한국어 화자에게 영어 관사가 어려운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영어교육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죠. 관사는 개념적으로 상당히 복잡하여 이해가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잘 풀어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많지 않습니다. 어려우면 더 쉽게 정리해서 명확히 가르쳐야 하는데, ‘어차피 안되니까’, ‘차차 공부하다 보면 실력이 늘고, 실력이 올라가면 이해가 될테니까’라며 대충 얼버무리는 것이지요. 이런 자세는 될대로 되라는 식에 가깝습니다. 요즘은 좀 나아진 것 같지만 제 경험상 대부분의 관사 교수법은 엉망이었습니다.

사실 극소수의 직군을 빼면 완벽한 문법을 구사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비단 관사만의 문제는 아니고 문법 전반이 그렇지요. 의사소통에 심각한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영어를 하면 되고, 엄밀한 정확성을 확보해야 하는 경우 타인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언어학습이 ‘아주 작은 변화’를 쌓아가는 과정임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차피 안될 것’이라고 체념하고 무조건 맡기려 하기 보다는 조금씩 공을 쌓는 거죠. 세상 모든 배움이 그렇듯 하루 하루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것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관사에 대해 강의를 할 때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저도 틀립니다. 그런데 공부하기 전보다는 훨씬 덜 틀려요. 덜 틀리면 기분이 좋더라고요. 나아지고 있음을 느끼는 건 기쁜 일이예요.”

계속 공부해도 틀릴 수밖에 없으니 포기하는 게 맘 편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관사를 신경쓰지 않아도 큰 지장이 없는 분들은 또 그렇게 소통하시면 됩니다. 저처럼 ‘점점 덜 틀리는 것’도 나름 괜찮은 일이라 생각하는 분들은 언어의 규칙과 자신의 의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공부하면 되겠죠.

계속 관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분들은 두 가지를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첫째, 관사는 정관사와 부정관사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정관사, 부정관사, 무관사로 나뉩니다. 즉 ‘a냐 the냐’라고 물어보시지 말고, ‘여기 a냐 the냐 아니면 아무것도 쓰지 말아야 하는 거냐’라고 물어보셔야 한다는 겁니다.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만 올바른 방향으로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가지고 문법서의 관사 섹션을 꼼꼼하게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설명과 예문을 공부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관사가 훤히 이해되지는 않겠지요.

두 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관사를 문법책 뿐 아니라 텍스트 안에서 발견하고 분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해당 문법을 설명하기 위해 골라놓은 예문은 이해가 잘 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맥락에 딱 맞는 예문들만을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관사와 같이 복잡한 문법현상의 경우 텍스트 안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유심히 살피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어떻게 ‘텍스트 안에서 관사 공부하기’를 실천할 수 있을까요? 우선 자주 접하는 글을 고릅니다. 우선은 내용을 이해하며 한 번 읽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관사(a, the, 무관사)가 나오는 모든 예에 밑줄을 칩니다. 그리고 각각의 경우에 왜 a 혹은 the가 쓰였는지, 혹은 왜 관사가 쓰이지 않았는지를 메모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메모해 두었다가 추후 관사 사용에 문제가 없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아래는 위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위키피디아의 아델 소개 문단을 관사를 중심으로 분석한 것입니다. 오늘 당장 이런 관사 공부를 시작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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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le Laurie Blue Adkins MBE 사람 이름에는 보통 관사가 붙지 않습니다.

an English singer and songwriter 직업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는 a/an. 여기서 중요한 것은 a songwriter 라고 뒤에 a를 붙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실 songwriter 하나만 쓰면 a를 씀에도 앞에 나오는 an이 이 두 개념을 모두 커버하고 있습니다.

the BRIT School for Performing Arts and Technology 학교 이름에서 School for … 로 시작하는 학교 앞에는 대개 the가 붙습니다. (Harvard University 같은 학교에는 관사가 없죠.)

a recording contract 세상 수많은 레코딩 계약 중 하나이니 a 입니다. 특정되지 않는 것이지요. 뒤의 a friend도 마찬가지입니다.

the same year – the same의 경우 뒤의 명사가 특정되므로 the same으로 쓰는 것이 적절합니다.

In 2007 ‘몇 년에’라고 할 때는 In 다음, 연도 앞에 관사가 없습니다.

the Brit Awards “Critics’ Choice” award – award를 특정하므로 the OOOO award라고 썼습니다. 뒤의 the BBC Sound of 2008 poll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죠. (the OOO poll, OOO로 투표가 특정됨.)

commercial and critical success – 여기서 success는 일반적 의미의 성공입니다. 수많은 성공 중 하나(a)도 아니요, 특정한 성공(the)도 아닌 추상적이고 일반적 의미의 success이므로 무관사(zero article)가 적절합니다.

the UK the United Kingdom / 뒤의 the US 에도 the가 붙는다는 것 유의하세요!

The album 앞의 특정한 앨범을 가리키므로 the가 맞습니다.

An appearance – appearance가 처음 언급되는 것. 여러 appearance 중 하나임을 의미합니다.

Saturday Night Live 프로그램 이름에 관사 안붙는 경우입니다. 물론 the가 들어가는 프로그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in late 2008 – in early/late 연도 할 때 보통 정관사가 없습니다.

At the 51st Grammy Awards in 2009 그래미 어워드 전체를 가리킬 때 복수로 쓴다는 것 유의하세요. 상은 여럿이니까요. (단수 an award는 단일부문의 상을 지칭할 수 있겠지요.)

the awards for Best New Artist and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 이 경우에는 두 개의 상이라 awards입니다. 뒤의 부문들에 의해 award가 특정되므로 the awards로 정관사를 써서 표현합니다. (만약 여러 그래미 중 하나를 탔다는 의미라면 win a Grammy award라고 표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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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le Laurie Blue Adkins MBE (/əˈdɛl/; born 5 May 1988) is an English singer and songwriter. After graduating from the BRIT School for Performing Arts and Technology in 2006, Adele was given a recording contract by XL Recordings after a friend posted her demo on Myspace the same year. In 2007, she received the Brit Awards “Critics’ Choice” award and won the BBC Sound of 2008 poll. Her debut album, 19, was released in 2008 to commercial and critical success. It is certified seven times platinum in the UK, and three times platinum in the US. The album contains her first song, “Hometown Glory”, written when she was 16, which is based on her home suburb of West Norwood in London. An appearance she made on Saturday Night Live in late 2008 boosted her career in the US. At the 51st Grammy Awards in 2009, Adele received the awards for Best New Artist and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

https://en.wikipedia.org/wiki/Adele

 

네이티브 스피커는 죽었다(The Native Speaker is Dead!)

 

원어민이 죽었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세상곳곳에 버젓이 살아있는데 말이죠. 사실 이것은 Thomas M. Paikeday가 쓴 책 제목입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네이티브 스피커’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개념화했다는 겁니다. 마치 유니콘을 만들어 낸 것처럼 말입니다.

영어 원어민(English native speaker)는 누구입니까?

“하, 이사람 보게나. 원어민이 누구겠어. CNN 같은 방송에 나와서 아주 “명쾌한” 발음으로 뉴스를 전해주는 그 앵커들 아니겠어? 영어 교재에 나오는 그 발음 있잖아. 토플이나 토익 보면 문제 읽어주는 사람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교육을 잘 받은 미국 중산층 백인 엘리트를 영어 원어민으로 생각하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이른바 “원어민 발음”을 구사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몇 퍼센트가 될까요? 한국 영어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인 미국 인구 중에서는 또 얼마나 될까요?

제가 공부를 하기 위해 머물렀던 펜실베니아 주 내에서도 “피츠버그 발음”과 “필라델피아 발음”을 구분해서 이야기합니다. 경제와 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뉴욕 내에도 여러 가지 영어가 섞여 있고, 브루클린 지역의 발음은 여러 면에서 특히 독특합니다. 소위 “시골 동네”인 와이오밍과 앨러배마주의 발음은 ‘보통’ 발음에서 거리가 더 멀죠. 유튜브에서 이들 지역의 방언을 검색하시면 그간 들어왔던 미국영어와는 확연히 다른 발음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미국 내에서도 발음의 차이는 현격합니다. 물론 미국이 이민자들의 국가인 만큼 다양한 인종, 문화,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발음을 구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국 교육과정의 근간을 이루는 미국영어를 벗어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미국인 외의 수많은 사람들은 영어 원어민 화자가 아닌가요? 영국인이나 호주인들은 어떨까요? 태어나서 줄곧 영어를 쓴 인도인들은 또 어떻습니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영어의 네이티브 스피커입니다. 교재의 MP3에 등장하는 사람들만 원어민은 아닌 것입니다.

일부 원어민들의 영어를 모델로 삼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려면 어느 정도의 표준이 필요하고, 적절한 모델을 따라서 노력하는 자세 또한 필수적입니다. 여기에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스탠다드’와 다른 영어 발음과 문법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입니다.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함으로써 다양성이 아닌 배제의 논리로, 평등이 아닌 위계의 논리로 발음을 대하는 건 은밀한 언어차별의 논리에 휘둘리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계열이 쓰는 영어, Texas와 같은 남부 지방 사람들이 쓰는 영어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까? 은연중에 ‘저거 발음이 영 시원찮은데…”라고 생각하거나 “정말 웃기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요? 아일랜드에 가면 아일랜드 사람들의 영어를 들을 수 있고, 홍콩 사람들은 홍콩의 영어를 합니다. 미국 동부 사람들은 그 지방의 특색을 가진 영어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들 사이의 우열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 사이에 우열이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입되어 온 언어 이데올로기의 힘입니다. 우리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말이 경상도나 전라도말보다 본질적으로 더 나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사회경제적 구조가 서울말을 하는 사람에게 좀더 많은 기회를 주고 각종 미디어가 서울말을 기준으로 방송을 제작하는 경향이 있기에 ‘서울말이 낫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의 영어를 합니다. 이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발음이라면 한국 억양이 조금 들어간다거나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태교를 해서 원어민과 같은 발음을 갖게 해주겠다는 일부 극성 부모들의 행위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identity)을 잃어버린 데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사회문화적 토양과 언어를 분리할 수 있다는 만용인 것입니다.

“원어민”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지만, Paikeday의 말대로 ‘죽은’ 개념일 때가 많습니다. 우선 실제로 누가 원어민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사회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위해 만들어진 비현실적이고 애매모호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원어민’ 개념이 사회적으로 힘을 가질 때, 나아가 ‘원어민’과 ‘비원어민’이 명확히 구분되는 상황이 만들어질 때 힘을 갖고 이득을 보게 되는 집단이 존재합니다. 이는 영어 교수학습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정확성과 형식은 과도히 강조하는 반면, 언어학습이 더 깊이 추구하는 목표가 되는 의미와 소통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원어민’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글로벌 시대를 정확히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원어민-비원어민 간의 대화보다 비원어민-비원어민 사이의 대화가 더 빈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영어를 모국어가 아니라 국제어(international language)로 배운다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우리는 원어민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많은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공부합니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필요없는 원어민 콤플렉스나 다양한 발음 및 언어특성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죽은’ 네이티브 스피커의 영어를 흉내내기 보다는 ‘살아있는’ 우리의 언어를 만들어 갈 때입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작성중

바이링궐: 완벽한 이중언어 구사자라는 신화

여러분은 ‘바이링궐’을 어떤 의미로 쓰시나요? 사람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제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태어나서부터 혹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두 언어에 노출되어 두 개의 언어를 막힘없이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더군요. 예를 들어 세 살때 가족과 함께 이민을 떠나 미국에서 15년 쯤 살아서 영어와 한국말 둘 다 유창한 친척 동생은 바이링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면 A씨는 어떤가요? 그는 대학교까지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어서 말할 때 ‘찐한’ 한국 발음이 나오지만 어학 공부를 열심히 해서 회사 업무 대부분을 영어로 처리합니다. 회사 들어간 지 십여 년이 지나니 자기 분야의 비즈니스를 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고, 영어로 프리젠테이션 하거나 협상을 하는 데도 큰 두려움은 없죠. 한 마디로 영어로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없는 사람입니다.

B씨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해외에서 석사학위 공부를 마치긴 했지만 일상적인 토론이나 술자리 잡담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원어민 친구들이 영어로 유머를 구사하면 당황하기 일쑤고요. (덕분에 타이밍 맞추어 이해한 척 웃는 기술은 수준급입니다.) 하지만 자기 분야에 관해서 읽고 쓰는 능력, 즉 전공과 관련된 리터러시 수준은 상당히 높습니다. 말이 막힘없이 터져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전공과목은 영어로 강의를 해도 할 수 있을만한 실력을 갖췄습니다. 풍부한 내용지식이 제한적인 영어 실력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상황인 거죠.

한국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바이링궐’은 언어학자들이 흔히 “균형잡힌 이중언어 구사자(balanced bilingual)”라고 부르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두 언어 모두를 자유자재로 말할 수 있으며, 한쪽 언어가 다른 언어에 비해 압도적으로 뛰어나지 않아 고른 실력을 갖춘 경우입니다. 이렇게 균형잡힌 바이링궐로 발달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조건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아이와 각각의 언어로 소통하는 경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균형잡힌 바이링궐들도 모든 상황에서 두 언어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국어-영어 바이링궐의 경우 초중고교 교육을 대부분 영어로 받았습니다. 학교교육을 영어로 받았으니 공부와 관련된 어휘는 거의 영어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학, 과학, 지리 등의 주제를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100% 영어로 이야기하는 게 쉽다고 합니다. 아니, 한국어로 시키면 더듬거리기 일쑤죠. 그런데 이 경우엔 한국 대학에서 한국어로 쓰기 과제를 제출할 때 어려움을 겪습니다. 영어로 쓰라면 그럭저럭 괜찮을텐데 한국어로는 힘겨운 과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두 언어로 일상적인 소통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고 해도 지식의 영역, 의사소통의 상황에 따라 대부분 한쪽 언어가 훨씬 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히 모든 지식에 대해 두 언어로 자유자재로 논할 수 있거나, 두 언어의 코미디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바이링궐의 수는 극소수입니다. 일상적 대화와 교과내용을 두 언어 모두로 알고 있고, 쓰기에 있어서도 두 언어 모두가 편하다면 실로 놀라운 경지인 것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영어를 사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과업을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은 바이링궐이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예를 든 A씨와 B씨는 ‘그냥 영어를 좀 잘 하는 거지 바이링궐은 아닌’ 사람들인 것입니다. 분명 비즈니스와 전공분야의 영어능력은 흔히 말하는 ‘바이링궐’들에 비해 훨씬 뛰어난데도 말입니다.

재미난 것은 오랜 외국 체류로 한국어와 영어 모두를 편하게 구사하지만 한국어 발음이 서툰 사람들을 ‘바이링궐’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영어 발음의 아우라가 강해서 한국어 발음의 어색함을 압도하는 것일까요? 그런 기준을 반대로 적용한다면 한국어와 영어를 구사하되 영어 발음이 조금 ‘서툰’ 사람들도 분명 바이링궐인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언어능력을 판단함에 있어 영어에 ‘가산점’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저는 많은 이들이 바이링궐을 ‘모든 영역에서 두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현상을 ‘올마이티 바이링궐 오류(almighty bilingual fallacy)’라고 부릅니다. 그야말로 두 언어로 모든 일들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오류입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또 경험적으로 확실한 것은 두 언어로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바이링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한국사회에서 ‘올마이티 잉글리시 바이링궐’의 탄생을 바라는 것은 헛된 꿈입니다. 해외체류가 정답도 아니지요.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한 이주(migration)에는 떠남의 상처, 현지 적응의 어려움, 언어정체성의 혼란, 사회문화적 토양의 급격한 변화, 사회성 발달의 위기, 귀국 후 정착에서의 어려움 등이 반드시 수반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한국사회에서 바이링궐의 개념이 좀더 기능적으로 정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두 언어의 세례를 골고루 받은 이들만이 이중언어구사자는 아닙니다. 언어를 충실히 공부해서 자신의 영역에서 특정외국어로 다양한 일을 무리없이 해낼 수 있다면 바이링궐이라 불러도 무방한 것입니다. 좀더 많은 분들이 ‘나 영어 못하는데’가 아니라 ‘영어로 이 정도 일하면 됐지 뭘 더 바래’라고 말하게 되길 바랍니다. 존재하지 않는 바이링궐을 부러워하기 보다는 지금 이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들의 다언어 능력이 대우받았으면 합니다. 완벽한 바이링궐의 신화를 걷어내고 많은 이들이 ‘다언어 사용자(multilingual)’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크랴센을 넘어서, 인풋을 넘어서

크라센의 언어학습이론은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어는 인풋이다”라는 말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것이 이 이론의 힘이었지요. 이것은 영어교육과 관련된 효율적인 소통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인풋’이나 ‘습득’, ‘이해가능한 입력’등의 용어를 통해 원활한 대화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인풋이론이 한국사회에 미친 부정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언어교육의 복잡다단한 측면을 ‘인풋’이라는 말 하나로 압축시킴으로써 영어교육에 대한 풍성하고도 깊은 논의를 막은 셈이 되었습니다. 이는 여러 부작용을 함께 가져왔는데 그 중 하나는 몰입교육에 대한 오해입니다.

‘어딘가에 푹 빠진다’는 의미를 지닌 몰입(immersion)교육은 1960년대 캐나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어와 불어 두 개의 언어를 동시에 배우고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곳이었죠. 그러기에 캐나다에서의 몰입교육과 한국의 몰입교육은 그 맥락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자가 사회문화적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면 후자는 인풋의 획기적 증대를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균형잡힌 교과 학습을 통한 아동의 지적 정의적 발달보다는 언어입력의 양을 늘리는 데 온 힘을 쓰고 있는 경향을 보이는 것입니다.

한때 많은 몰입교육 프로그램은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를 교재로 채택하였습니다. ‘본토 네이티브의 인풋’을 풍부하게 제공한다는 명목이었습니다. 한국의 유치원에서 미국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를 가르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인지적, 정서적 수준이 맞지 않는 내용을 다룰 수밖에 없는 상황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어로 유치원 과정을 배워야 할 아이들에게 외국어로 초등학교 3학년 과정을 가르친 꼴이니까요.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가 개정되면 한국의 몰입교육 교사들이 엄청나게 고생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습니다. 사실 영어로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정규교육과정을 거쳐 초등학교 교사가 한국어로 여러 과목을 잘 가르치는 것도 힘든데, 외국어로 여러 과목들을 제대로 가르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건 당연하지요. 한 교사는 제게 “언어과목은 그나마 괜찮지만 수학, 과학 등의 과목들을 영어로 가르치면 애들은 그야말로 ‘죽으려고 해요’”라는 말을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인풋이 모든 것이라는 믿음은 영어교육과 관련된 논의를 앙상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전인적 성장과 외국어교육, 한국어와 영어 리터러시의 균형적 발달, 한국의 사회문화적 환경에서의 영어의 역할 등에 대한 깊은 고민을 전개하기 보다는 ‘어떻게 언어노출을 늘릴 것인가’라는 질문에 매달리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어려서부터 최대한의 인풋을 ‘넣어주어야만’ 네이티브와 비슷한 영어실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마케팅 담론이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인풋”과 “네이티브되기”라는 두 축이 다양한 논의를 삼켜버린 시대. ‘삶을 위한 영어공부’가 아니라 ‘입력의 최대화를 위한 영어훈련’이 화두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계속)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학부생을 위한 근거이론 이야기 (6) –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들

Posted by on Nov 6, 2018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집필 | No Comments

본격적으로 코딩에 들어가기 전에 Strauss & Corbin (1990)에 기반해 몇 가지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데이터 코딩에 함몰되어 아래 이야기들을 지나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근거이론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 근거이론의 ‘근거’가 되는 이론 두 가지는 실용주의와 상징적 상호작용이론입니다. 사실 이 두 가지 이론을 설명하는 것은 너무 큰 일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 근거이론이 다른 질적연구방법론과 갈라지는 부분 중 데이터 수집과 분석의 시차가 있습니다. 근거이론에서는 수집과 분석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데이터가 들어오면 바로 분석을 하고, 이 분석이 추후의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이끌게 됩니다. 수집과 분석의 유기적 결합은 연구자로 하여금 세계에 대하여 열린 자세를 갖게 함과 동시에 ‘미리 정해 놓은 문제’가 분석과정에서 편향을 갖지 않도록 돕습니다.

3. 여러 학자들이 혼용해서 쓰고 있는 용어로 개념(concepts)과 범주(categories)가 있습니다. 적어도 Strauss & Corbin에게 있어서는 범주가 개념의 상위 범주입니다. 이 수업에서는 이 용례를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4. 근거이론의 기본 분석단위(unit of analysis)는 개념입니다. 다시 말해 원자료 자체를 분석하기 보다는 자료에서 추출한 개념을 가지고 이론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를 분석하지만 세계를 있는 그대로 분석하지 않습니다. 사실 ‘있는 그대로’를 기술하고 분석한다는 것은 추상적 이론의 생성을 포기한다는 말과 같지요.

5. 개념을 모아놓는다고 범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컨텐츠 분석과 다른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은 그것이 갖는 속성들(properties)과 차원들(dimensions), 그것이 일어나게 하는 조건들(conditions), 그것에 의해 표현되는 행위와 상호작용(actions/interactions), 나아가 그것의 결과(consequences)에 근거하여 개발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분석할 데이터가 작아서 이점을 깊이 이해하긴 힘들겠습니다만, 개념을 묶어놓는다고 범주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6. 이론적 샘플링은 인구분포나 대상집단의 특성을 기준으로 하지 않습니다. 이론적 샘플링의 근거가 되는 것은 5번에서 말씀드린 개념입니다. 연구자는 개념을 따라 샘플링을 하는 것이지 ‘여성이 두 명 모자라니 두 명의 여성을 더 인터뷰하자’든가, ‘연령이 치우쳐져 있으니 이번에는 50대에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하자’는 결정을 하진 않습니다. 근거이론 샘플링에서 가장 많이 오해되는 것이 바로 이 부분 아닐까 합니다.

7. 다시 말해 근거이론에서 전체 현상을 대표하는 것은 대상 인구집단의 특성이 아니라 개념의 특성입니다. 중심개념의 다양한 측면들을 밝히 보여주어 이론화에 도움을 주는 샘플링이 필수입니다.

8. 근거이론의 방법론적 특징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비교(constant comparison) 기법입니다. 데이터 내에서 하나의 사건은 다른 사건과 비교됩니다. 어떻게 비슷하고 어떻게 다른지를 꼼꼼히 살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온 개념과 범주는 언제나 한시적(provisional)인 것으로 인식됩니다. 다른 데이터를 통해 새롭게 조명되고 변경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개인의 데이터라 하더라도 특정 현상 초반과 후반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A의 변화 패턴과 B의 변화 패턴을 비교할 수도 있습니다. 데이터 분석이 쌓이고 개념과 범주가 추상화될수록 비교의 수준도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쪽으로 진화합니다.

9. 데이터에서 나타나는 패턴과 변이를 설명해 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은 ‘왜’라는 질문과 짝을 이루고 있지요. 이에 잘 대답할 수 없다면 더 많은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데이터를 보면서 ‘왜’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지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10. 과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근거이론의 기본 가정 중 하나는 사회현상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변화는 일련의 과정을 낳게 되죠. 데이터를 대할 때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고 묻는 것만큼 “여기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11. 이 모든 것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메모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든 데이터에 동시에 접근하여 이를 처리하고 해석하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연구의 과정 내내 이론을 발전시켜 나갈 전략을 궁리하고 이를 꼼꼼한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논문을 쓰실 일이 없으니 메모를 비교적 간단히 쓰시면 되겠지만, 원칙적으로는 심도있는 메모를 쓰는 것을 권합니다. 연구자가 데이터와 씨름한 흔적은 오롯이 메모에 담겨 있어야 합니다.

자 이제 드디어 진짜 데이터 코딩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

참고자료
https://med-fom-familymed-research.sites.olt.ubc.ca/files/2012/03/W10-Corbin-and-Strauss-grounded-theory.pdf

#학부생을위한근거이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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