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어수업

동사 “love의 과거는 loved”라고 가르치기 보다는, “I love you.”와 “I loved you”사이의 심연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주는 수업이기를.

“개”는 “dog”이라고 가르치는 것을 넘어, 모든 개를 dog으로 부를 수 있는 인간의 개념화 능력과, 모든 개를 dog이라 부르는 데서 발생하는 상징적 폭력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수업이기를.

“If I were my brother, I would be miserable.”에서 “가정법에서 동사의 형태”를 말하는 것을 넘어, 앞의 “I”와 뒤의 “I”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I임을 이야기하는 수업이기를.

형태와 의미를 함께 가르친다는 것은 단지 해석을 해준다는 뜻이 아니라 언어 시스템의 작은 변화가 삶의 경험들과 어떻게 만나고 충돌하는지 보여주는 일임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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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슬픈 BE동사

위키피디아 인물 페이지의 첫 문장은 사람이름 + BE 동사로 시작한다. 예를 들면 “Matthew Paige “Matt” Damon (/ˈdeɪmən/; born October 8, 1970) is an American actor, film producer and screenwriter.” 같은 식이다. 맷 데이먼은 아직 생존해 있기에 be동사의 시제가 현재(is)다.

하지만 고인이 된 경우 시제가 달라진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George Michael의 페이지는 “Georgios Kyriacos Panayiotou (25 June 1963 – 25 December 2016), known professionally as George Michael, was an English singer, songwriter, and record producer who rose to fame as a member of the music duo Wham!”로, John Berger는 “John Peter Berger (5 November 1926 – 2 January 2017) was an English art critic, novelist, painter and poet.”로 소개된다.

위키피디아 인물 페이지의 과거형 WAS.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BE 동사가 아닐까.

하지만 우리들의 맘 속에서 그들은 언제까지나 현재형이다. “George Michael IS an English singer, songwriter, and record producer.”이고, “John Peter Berger IS an English art critic, novelist, painter and poet.”인 것이다.

존재’했던’ 것들은 언제까지나 존재’한다’.
죽음과 삶은 그렇게 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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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댐: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것은 기억. 기억과 기억을 연결해 주는 것은 만남. 죽음과 죽음을 연결해 주는 것은 기록. 삶과 삶을 연결해 주는 것은 죽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연결하는 것은 지금, 여기, 우리. (2017.1)

인간, 능력에 대해 모순된 존재

Posted by on May 24, 2018 in 강의노트, 단상 | No Comments

모순적인, 너무나 모순적인.

인간은 비할 수 없이 빠르고 정확한 계산을 해내는 기계에 대해서는 “우리만의 창의성을 개발하자”고 말하면서, 그다지 다를 것 없는 자신들에겐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능력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믿는다/믿게 만든다. 소위 ‘4차산업혁명’의 핵심은 더 우수한 기계의 발명 자체가 아니라,그를 통하여 인간의 능력을, 나아가 인간 존재를 재정의하는 데 있을 것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문법번역식 교육

현재 국가 교육과정의 이론적 뿌리가 되는 의사소통적 교수법(Communicative Language Teaching)의 지속적 영향 속에서 적어도 이론의 영역에서는 문법번역식 교육이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문법 공부와 번역 연습이 외어학습의 주요 전략이라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문법학습이냐, 어떤 번역 과제냐이지 문법과 번역 그 자체가 아니다. 다시 말해 문법과 번역은 재창조(reinvention)의 대상이지 버려야 할 구습이 아니다.

흔히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천사도 디테일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악마가 디테일에 있다고 떠들면서 ‘도매금’ 천사를 동원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인공지능 시대의 능력주의

Posted by on May 15, 2018 in 강의노트, 단상 | No Comments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이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라는 주장에는 “이미/언제나 있었던 인간의 시대, AI의 자리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이 빠져있다.AI의 고도화에 따라 ‘능력주의 (meritocracy)’는 또다른 옷을 입고 인간을 옥죄게 될 것이다. “AI 대 인간”의 구도는 언제나 “인간 대 인간”의 구도로 바꾸어 이해해야만 한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클리셰

Posted by on May 14, 2018 in 강의노트, 단상 | No Comments

강의 10년차, 이제 ‘초짜’라고 부를 수는 없게 되었건만, 처음보다 더 나은 선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시간강사를 “(명사) 아는 척 하느라 엄청 바쁘고, 바쁜 척 하다가 좀 알게 되는데, 그땐 또 잘 모르는 걸 가르쳐야 하는 사람”으로 정의한 적이 있다.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의 근원에는 이런 상황이 있다. 돌파하자고 결심을 하지만 매번 다시 쳇바퀴 도는 삶으로 던져진다. (이 상황의 근원에 나약함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괄호 안에 넣어두기로 한다. 이게 본문이 되면 삶이 너무나도 괴로울 터이니.)

한편 이젠 무슨 이야기를 해도 ‘클리셰’로 느껴지곤 한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분명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일텐데도, 내 머리 속에서는 진부한 것 투성이다. 전에 했던 이야기,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되지 않은 지식, 더이상 영감의 원천이 되지 못하는 가르침 따위 말이다.

지식이 전달(deliver)될 수 없고 구성(construct)된다는 것은 단지 지식의 인식론적 지위에 대한 진술이 아니다. 그것은 지식이 누군가에게 체화되기 위해서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구성주의는 관계를 맺는 데 요구되는 시간에 대한 담론이다.

교사는 배움의 시간과 조응하는 자신의 시간에 대한 응시를 통해 성장한다. 가르침은 특정한 세계에 천착하며 긴 시간을 살아낸 사람에 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파커 파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가르칩니다. (We teach who we are.)”라고 말한 건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의 말을 시간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풀면 이렇다.

“우리는 특정한 주제에 관해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그 주제와 함께 살아온 시간을 학생들 앞에서 풀어내는 것이지요. 꼬여있는 시간을, 툭툭 끊어진 시간을 풀어낼 순 없어요.”

단단한 실타래가 되지 못한 지식으로, 자신을 감화시키지 못하는 지식으로 상대에게 무언가를 주려고 하는 시도는 얼마나 얄팍한가. 나는 얼마나 얄팍한가. 이런 생각이 자주 찾아오는 요즘이다.

저녁 수업 준비를 해야겠다.

생활의 지혜: Reaction Paper 편

Posted by on Mar 25, 2018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 No Comments

Reaction paper를 낼 때 유의할 점:

1. 논문을 안읽고도 쓸 수 있는 글을 내지 않습니다. (Re-action은 무엇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냥 혼자 action을 취하지 말아 주세요.)
2. 단순 요약문을 내지 않습니다. (초록보다 나을 게 없는 글을 왜 굳이 내려고 하시나요?)
3. “흥미로왔습니다”, “좋았습니다”, “인상적이었습니다”, “별로였습니다” 따위의 반응은 마움 속에 고이 간직합니다. (“할 말이 없을 때 ‘That’s interesting.’이라고 한다”는 말이 있죠.)

저도 오래 전에 이럴 때가 있었겠지만…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줄탁동시

Posted by on Mar 24, 2018 in 강의노트,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 No Comments

교육에서 선생과 학생 사이의 관계와 협업에 기반한 배움을 이를 때 종종 쓰이는 사자성어다. 하지만 나는 문구를 볼 때마다 개인과 사회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는 변증적 세계관을 떠올린다. “세상이 바뀌려면 내가 변해야 하는가? 사회야 변해야 하는가?” 정답은 “동시에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아닐까? 나의 몸과 마음은 철저히 사회적이고, 사회는 수많은 몸과 마음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니.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영어-학습-자

영어를 좋아하지 않는 영어학습자를 대함에 있어서 ‘영어’에 집중하곤 한다. 하지만 ‘영어’ 보다는 ‘학습’ 전반이, ‘학습’ 보다는 ‘자者’ 즉 사람의 문제가 더욱 근본적이다. 이런 면에서 영어교육전문가의 전문성은 양날의 검이다. 자칫하면 사람보다 공부를, 공부보다는 영어를 중심에 놓고 사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수포자’, ‘영포자’, ‘과포자’ 등의 명명은 현상의 근원에 닿지 못하고 개별 과목 중심의 사고를 강화한다.

총체적 관점을 이야기하면 개별 교과의 문제도 풀지 못하는 상황을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개별 교과의 문제가 풀리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면 결국 총체적 관점 즉, ‘인간으로서의 발달’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with 철

미디어 활용 교육

미디어 활용이 리터러시 교육의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다양한 미디어와 기술을 동원하여 자신이 원하는 컨텐츠를 만들고 나눌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 활용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특별한 이견은 없다.

하지만 종종 ‘활용’에만 골몰하는 교육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미디어를 활용하는 교육은 미디어를 활용하지 않는 상황을 상정하지 않는다. 모든 것들이 새로운 테크놀로지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이러저러한 이유로 주류 메신저를 활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에 메신저를 활용한 소통도 중요하지만 메신저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소통도 중요하다.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술 바깥의 삶에 대해 상상해 보는 일 또한 소중하다.

언젠가 ‘~할 수 있다’는 진술로 구성된 교육목표(Can-do statements)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나는 교육의 목표가 일련의 ”Can-do statements’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진술들 행간에 존재하는 ‘Can’t-do statements’를 이해하는 것이라 믿는다. 할 수 없음에 대해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목표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이 글을 쓰고 나니 갑자기 고정희 시인의 시 한 편이 떠올랐다. 별 연관이 없는 것 같지만 적어도 내 맘 속에서는 분명 통하는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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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법 첫째
고정희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 내 기대 높이가 자라는 쪽으로
커다란 돌덩이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해서 내 외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

변증적 성격을 지닌 부정관사

영어 부정관사 a(n)은 상황에 따라 두 가지 상반된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구별하지 않고 언어를 사용하지만 사실 전혀 다른 층위의 개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1. 먼저 어떤 개체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He has a cat. It is very cute.”

여기에서 ‘a cat’은 고양이 한 마리라는 뜻입니다.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양이 중 하나인 것이죠.

2. 이에 비해 “a + 명사”가 한 개체가 속한 집단 전체를 대표할 수 있기도 합니다. 아래와 같은 경우입니다.

“A dog is a great partner in your life.”

이 경우에 “A dog”은 ‘개 한 마리”라기 보다는 “개” 즉, 집단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1과 2는 우리의 사고 속에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지만 결코 같다고 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한 사람은 개인임과 동시에 인간이라는 종을 대표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닙니다. 개별 안에 일반이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이야기는 특수한 이야기면서도 누가 읽더라도 울림을 주는 요소 즉 보편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죠.

이런 면에서 “a(n)”의 의미는 변증적(dialectic)입니다. 집단에 속해 있는 하나의 멤버 (one member) 이지만, 때로는 그 집단 전체를 가리킬 수 있으니까요.

#관사공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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