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수업에서의 ‘확증편향’

Posted by on Sep 25,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확증편향 (確證偏向, 영어: Confirmation bias)은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이다. 쉬운 말로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가 바로 확증편향이다.” (위키백과)

개론 수업에서 다양한 이론을 다룬다. 예를 들어 언어를 보는 다양한 관점, 언어습득을 설명하는 다양한 가설 등이 등장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해당 챕터를 읽고 새롭게 배웠거나 의문이 드는 대목 등을 제출하는데, 나는 이를 수업의 주요 테마로 삼는다.

대부분의 과제에서 공통적인 경향이 발견된다. 개별 이론의 메시지를 확증편향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 이론은 나의 경험 중에서 이런 면을 설명하고, B 이론은 저런 면을 설명한다. C 이론은 이런 에피소드에 적용하면 괜찮을 것 같다 등등과 같은 설명이다.

인문사회과학에서 특정 이론이 세계를 완벽하게 설명해 낼 수 없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이론이라 하더라도 특정한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토양에서 태어나 자란 것이고, 이를 발전시킨 학자들 또한 자신이 속한 학문 공동체의 담론지형 및 연구경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론은 세계의 사태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다. (총체성을 부정하는 이론마저도 ‘총체성이 부재하는 세계’라는 ‘총체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일련의 경험을 수많은 이론의 모자이크로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론의 존재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말이다.

학문적 다양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개별 이론이 지향하는 사고와 해석의 총체적 틀을 파고드는 시도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애매한 절충주의(Eclecticism)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합리화하는 이론-쪼가리들을 낳는다. 학생들도, 나도 이론이 우리의 확증편향을 위해 존재하는 그럴듯한 도구가 아님을 기억해야겠다.

자동 요약 및 바꿔쓰기 기술

Posted by on Sep 23, 2017 in 강의노트, 링크, 수업자료 | No Comments

자연어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의 하위 분야로 난이도가 높은 표현을 좀더 쉬운 표현으로 변환하거나 특정 텍스트를 요약하는 기술이 있다. 완벽한 바꿔쓰기(paraphrase)나 적절한 요약과는 거리가 있지만 꾸준히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영어 텍스트 처리가 가장 앞서나가는 듯하다.

관련하여 Rewordify, Simplish 두 서비스가 눈에 띈다. 아래 링크에서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다. 참고로 Simplish는 2천5백 단어 이내의 텍스트 요약이 무료이고, Rewordify에는 단어수 제약이 없다.

http://rewordify.com/index.php
https://simplish.org/

모두를 위한 영어교육학 강의 (3) – 주어의 재발견

구조에 대한 설명에서 의미를 이끌어내는 활동으로

먼저 다음 두 시나리오를 봅시다.

시나리오 1

교사: “자 여기, 문장 제일 앞에 나오는 이걸 뭐라고 하죠?”
학생: “명사요.”
교사: “그건 품사구요. 문장에서 하는 역할이 뭐예요? 5형식 배운 사람은 알텐데…”
학생: “주어요!”
교사: “맞아요. 주어. 그럼 이 자리에 나올 수 있는 거 뭐뭐 있지?”
학생: “명사요.”
교사: “좋아요. 명사. A cat 같은 거. 그리고 또?”
학생: “……”
교사: “명사를 대신하는 거, 뭐 있지?”
학생: “대… 명사?”
교사: “그렇죠. 명사를 대신하니까 대명사. ‘대’가 대신한다는 뜻이예요. It, she, he 이런 것들이 대표적이죠. I도 있구요. 명사, 대명사. 그리고 또?”
학생: “……..”
교사: “명사나 대명사 말고 동명사나 To 부정사도 올 수 있죠. 오케이? 자주는 아니지만 That 절도 올 수 있어요. 여기에서 That은 명사절을 이끄는 거죠. 그럼 예문을 몇 개 더 살펴볼게요.”

시나리오 2

교사: “자 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볼 수 있어요.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랑, 그 주제에 대한 설명. 앞의 것을 subject라고 하고 뒤의 것은 predicate라고 해요. 근데 이런 용어는 몰라도 돼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거지. 자자 다시. 문장은 뭘로 이뤄진다?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랑 그것에 대한 설명. 따라해 봐요. 주제와 설명.“
성우: “주제와 설명.“
교사: “오케이 좋아요. 그럼 성우는 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성우: “음… 영화요.“
교사: “영화요? 그럼 이렇게 시작하면 되겠네요. “The movie” 따라해 보세요. “The movie”.
성우: “The movie”.
교사: “영화가 어쨌어요?“
성우: “지루했어요.“
교사: “지루했다… 그럼 지루했다를 표현하는 단어를 찾아봐야겠네요.“
성우: “어떻게 찾죠?“
교사: “음 쉬워요. 한영사전을 찾으면 되죠.
성우: “(사전을 찾는다) Boring?“
교사: “맞아요. 근데 예문을 잘 봐요. 거기 boring만 있어요?“
성우: “아니오. 앞에 is가 있네요.”
교사: “그렇죠? 그러니까 boring은 혼자 못쓰이고 is 같은 애들이랑 같이 쓰여요. ‘is boring’ 이렇게. 좀 재미있게 표현하려면 The movie made me yawn. 그러니까 영화는 나를 하품하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쓸 수도 있겠죠?”
성우: “네.”

…(중략)…

교사: “그럼 영화 말고 다른 거 이야기해 보고 싶은 거 없어요?”
성우: “친구 충식이요.”
교사: “오케이. 그럼 “friend”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My friend 충식 이런식으로 쓰면 되겠네요.”
…(중략)…
교사: “근데 영화나 중식이, 컴퓨터나 비디오 게임 이런 거 말고 다른 이야기도 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음… 뭐 좋아해요?”
성우: “사진찍는 거요.”
교사: “오 좋아요. 사진찍는 거. 그렇게 뭔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 수가 있어요. Taking photos 같이 표현하면 되죠. 사진찍는 거 어때요?”
성우: “재미있어요.”
교사: “그럼 Taking photos is fun.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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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시나리오에서 ‘주어’를 설명하는 방식은 사뭇 다릅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주어는 구조적 관점에서 설명되고, 그 예 또한 명사, 대명사, That-절 등의 문법용어(grammatical terms) 혹은 상위언어 용어(metalinguistic terms; 언어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쓰는 언어)입니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 주어는 문법용어로 전달되기 보다는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가’라는 의미 범주로 제시됩니다. 이에 따라 학생은 자기가 이야기하고 싶은 소재를 이야기하고 (저는 이걸 ‘던지고’라고 종종 표현합니다) 교사는 이에 대한 설명을 이끌어 냅니다. 사실 이것이 본래의 “subject”/”predicate” 짝에 근접한 설명일 수 있습니다. 문장이 사실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던지고, 이에 대해 설명을 하는 두 가지 파트로 이루어지는 거죠.

요약하면 “문장 = 말하고 싶은 주제를 던지는 부분 + 그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 정도 되겠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주부와 술부 정도 될 듯하네요. 그런데 ‘주부’나 ‘술부’ 같은 용어도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꽤 많더군요.

결국 시나리오 2에서는 시나리오 1에서와 같이 상위언어에서 상위언어로 이어지는 구조적 접근이 아니라, 말하고 싶어하는 소재를 이끌어내고 이에 대해 설명을 함께 만들어 가는 의미적 접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법용어가 완벽히 자리를 잡은 성인이라면 첫 번째 접근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 이 사회는 너무나 많은 문법교육을 요구하죠. 거시적으로 보면 교실에서의 교사-학생간 소통 규약(여기에서는 문법용어를 지칭)을 확립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이 투입되고 있는 것입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문법용어 및 시험 때문에 영어를 포기하게 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꼭 필요한 비용인지 의문이 듭니다.

이런 면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문법용어와 형식적 측면을 배제하고 최대한 의미만으로 문법구조를 풀 수 있는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연령이 낮은 학생을 가르친다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이죠.

하지만 여전히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습속(habitus)에 뿌리를 둔 문법 설명은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조금씩 변해가는 중에서도 오로지 문법으로만 영어를 배운 이전세대의 교육방식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자신의 세력을 지켜내고 있다고나 할까요?

911 수업자료 하나

[911 관련 중고교 수업 자료] 오늘이 911이군요. 세월이 참 빠릅니다. 놀란 동생이 TV를 보라고 소리쳤는데 너무나 비현실적인 장면에 순간 영화 아닌가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만, 당시 테러공격으로 인해 수많은 비행기들이 항로를 돌려 캐나다의 Gander라는 도시에 착륙했습니다. 총 인구 9천명의 작은 도시였는데 하루 아침에 7천 명 정도의 승객이 밀려들었죠. 갑자기 사람이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나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Gander 주민들은 귀찮다 여기지 않고 성심성의껏 도왔습니다. 아무런 댓가 없이, 상대가 누구냐에 관계 없이 자신들의 시간과 정성을, 삶의 터전를 나누어 준 것입니다. 종교도, 국적도, 피부색도, 성적 지향도, 그 어떤 것도 Gander 주민들의 환대를 막진 못했죠. 이를 USA Today가 보도한 영상입니다. 자막이 있어서 틀어주기 좋을 듯하네요.

 

제가 감사하죠 vs. Thank YOU

‘감사합니다’는 대개 ‘Thank you’로 번역되는데, 상대에게 감사를 돌릴 때 두 언어의 패턴 차이가 흥미롭다.

한국어
A: 감사합니다.
B: 제가 감사하죠. (‘제가’에 강세. 생략되었던 주어 등장.)

영어
A: Thank you.
B: Thank you. (‘you’에 강세. 비격식체에서는 주로 Thank YOU. 표기. 있던 목적어를 강하게 발음.)

한국어 ‘감사하다’는 타동사로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자동사로 쓰이고, 다른 꾸밈말을 동반하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단독으로 쓰일 경우가 가장 많은 것이다. 전통 문법으로 보면 ‘감사합니다’는 주어가 생략된 형태다.

이에 비해 영단어 thank는 타동사로 목적어를 취한다. “Thank you”가 가장 빈번히 쓰이지만 “Thank her”, “Thank him” 등이 가능하다. “Thank you”에서는 한국어 문장과 마찬가지로 주어가 생략되었지만 구조의 제약으로 목적어를 생략하진 못한다. (물론 him이나 her를 취할 경우 I가 등장하게 되므로 구조적 특성이 완전히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본 논의에서 중심은 아니므로 패스.)

일반적으로 한국어는 주어 생략이 잦다 하고 영어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상대에게 감사를 돌릴 때엔 이런 일반론이 살짝 뒤집히는 게 재미있다.

덧. 실험해 보진 않았지만 “Thank YOU.” 해야 할 상황에서 주어 I를 강조하며 “I thank you.”라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하다.^^

네이티브에게 외국어 배우기

그러나 외국어 교육에 전문성이 없는 (맥락 이해를 위해 역자 삽입) 원어민(native speaker)에게만 배우는 것은 에베레스트산에 오르는 데 산 꼭대기에서 태어나 밑을 향해 소리치며 방향을 지시하는 사람에게 안내를 받는 일과 같습니다. 발음은 정확할 지 몰라도 당장 흔들거리는 보울더(비바람에 깎여 둥근 모양이 된 바위)에서나 위험천만한 빙하의 균열 지점에서 확고한 발판을 찾는 데 도움을 주진 못합니다. 여러분들께 필요한 것은 말하자면 언어학습을 돕는 셰르파입니다.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해당 언어의 고지에 오른 비원어민 화자(nonnative speaker) 말입니다.

“But learning from a native speaker alone is like being guided up Mt. Everest by someone who was born at the top of the mountain and is shouting directions down from above. The sounds may be pronounced correctly, but that won’t help you find firm footing among the loose boulders and treacherous crevasses. What you need is a language Sherpa, if you will: a nonnative speaker who struggled with the language and who conquered it.” (p. 89)

Richard M. Roberts and Roger J. Kreuz. (2015). Becoming Fluent: How Cognitive Science Can Help Adults Learn a Foreign Language. Cambridge, Massachusetts: The MIT Press.

교육공학 관련 잡생각들

Posted by on Aug 23,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교육공학 수업 준비하다가 쓸데 없는 생각 몇.

1. 특정 사물 본래의 쓰임을 전용하여 새로운 쓰임을 만들어내는 좋은(?) 예로 학위논문을 라면받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책으로서의 논문이 가지는 정보성은 완벽하게 제거하고 논문의 물성만을 취하는 형태.

2. 아니면 아카데미아의 ‘쓸모없는’ 정보생산 방식에 대한 ‘아날로그의 반격’인가?

3. 동영상이나 MOOC도 기존의 1:N 방식의 지식 전달 모델을 넘어서지는 못하는 듯. 여기서 질문. 교실이건 온라인이건 전문가:다수 구도가 나쁜가? MMORPG와 전통적인 영화는 컨텐츠, 상호작용의 방식 등에서 서로 다른 미디어 아닌가?

4. 혹시 현재의 교수학습 생태계가 블록체인이나 이전의 P2P 구조에서 배울만한 것은 없는가? 예를 들어 코퍼스 언어학의 발전은 네이티브 한 명이 모든 권위를 지니는 구조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용례(use)가 모여 권위를 이루는 구조로의 변화를 이루어 온 것처럼.

5. Scrivener와 ATOM. 디테일에는 차이가 있지만 기본 아이디어와 구조는 상당히 유사한 듯. ATOM 가지고 논문을 써볼까?

생각하는 사물의 등장

Posted by on Aug 14,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생각하는 사물의 등장> (임완철 지음,지식노마드, 2017)

사물인터넷, 수퍼커넥션, 인공지능의 부상, 소위 ‘4차 산업혁명’의 시대 등.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교육과 관련하여 논의한 책을 찾아보긴 쉽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 90년대 중반부터 20년 넘게 실무와 연구를 병행해 온 저자의 책을 만나게 되어 반가운 마음입니다.

저자는 “생각하는 사물이 서로 소통하게 되는 시대,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천착합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확보한 ‘생각하는 사물’이 스스로 학습하게 된다면,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학습해야 할까?”라는 질문입니다. 이는 곧바로 다음의 (다소 섬뜩한) 질문으로 연결되죠.

“‘생각하는 사물’이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준다면, 우리는 생각하는 사물의 영향을 받은 생각으로 ‘생각하는 사물’의 영향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어 온 친구의 저작이라 더욱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제가 ‘언어교육’이라는 다소 좁은(?) 주제를 고민하고 있는 동안 저자는 교육과 공학을 묶어내면서 사회와 배움의 본질에 대해 고민해 왔습니다. 혹시 관심있어하실 분들을 위해 아래 목차를 옮겨 놓습니다.

===

 

목차

여는 글

감사의 글

 

01 사물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과 연결되어 생각하는 장난감

3천만 권의 책을 읽고 있는 소프트웨어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을 알려주는 인공지능

스스로 학습하는 사물의 등장

새로운 것들이 등장한 해 2011년

 

02 생각하는 사물이 바꾸어 놓을 것들

인공지능과 연결된 모든 사물이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다

생각하는 사물들끼리 연결되면 일어날 일들

인공지능과 함께 3천만 권의 책을 읽으며 학습한다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이 바꾸고 있는 것들

안경, 반지, 신발, 양말이 모두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다

 

03 더 늦기 전에 물어야 할 질문들

인공지능으로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스마트한 도구를 사용하면 우리도 더 스마트해질까

안경이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생각하는 사물이 항상 우리를 위해 생각해줄까

아이들의 스마트한 도구 사용을 지지해야 할까

 

04 생각하는 사물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

미래에 필요한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

도구와 협업하는 능력

도구의 역할을 바꾸는 능력

인간과 결합하는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

도구에 의한 변화를 수용하는 능력

도구를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행위자로 다루는 능력

알고리즘까지 읽어내는 능력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업그레이드하는 능력

도구와 상호 변화하는 능력

인간과 사물을 통합하는 능력

 

05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들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문제

인공지능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에 관한 문제

생각하는 사물을 생각의 대상으로 다룰 때의 문제

생각하는 사물의 생각을 이해하는 문제

인공 생명을 개발하는 소프트웨어의 문제

인공지능과 경쟁하는 방법에 관한 문제

 

미주

문장틀 클리셰, 그리고 관료제

문장을 이루는 다양한 구성요소를 설명할 때 단어, 구, 문장 외에 “문장틀(sentence frame)”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예를 들어 “It is true that…. but”이나 “If ….. would/could” 등과 같이 몇몇 어구의 조합이 문장의 통사적/의미적 틀거리를 이루는 경우를 가리킨다.

갑자기 이게 왜 생각났느냐 하면, “…하면서도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라는 어구를 보았기 때문이다.

언어교육 교과서에서 문장틀이 언급되면 학생들에게 정치인들의 사과문이나 변명을 위한 기자회견, 혹은 관련 기사를 분석해 보라고 해야겠다. 덤으로 비정상적으로 높은 빈도의 클리셰 또한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문장틀과 클리셰, 관료제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방식.

따분하다, 참.

영어 표현 메모 몇 개

1. read와 read into

read가 보통 ‘읽다’의 의미라면 read A into B는 “B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의미, 느낌 등을 ‘읽어내다'”라는 뜻으로 종종 쓰인다. 특히 “read too much into something”의 형태로 자주 쓰인다.

“The boy is reading too much into her words.” (소년은 그녀의 말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읽어내고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reading은 ‘read into’의 요소를 갖고 있다. 하지만 너무 심하면 ‘지멋대로 독해’가 되어버린다. 그런 경우를 ‘read too much into something’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2. meet과 meet with

meet은 ‘만나다’라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 이에 비해서 ‘meet with’는 조금 더 형식을 갖춘 느낌으로 일과 관련해서 더 자주 쓰이는 편이다. 일반화하긴 힘들지만 영국영어보다는 미국영어에서 meet with가 자주 발견되는 듯하다.

(중학교 때 meet을 철저히 타동사로만 배웠던 기억이 나서 meet with를 매일같이 쓰는 동료들을 보며 살짝 배신감이 들었다.)

3. on one occasion

한국어의 ‘한번은’에 잘 대응하는 표현이다. 뒤에 나오는 이야기가 흥미롭고 주목할만한 것임을 슬쩍 보여준달까.

4. onto

onto의 의미는 ‘into’와 ‘on’이 적절하게 버무려진 것으로 보면 된다. 어떤 위치로 ‘진입’하는 것과, 진입된 위치가 뒤에 나오는 명사와 접촉하고 있음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onto the stage”는 (1) 무대 밖에서 안으로의 진입(into)과 (2) 진입한 위치가 무대에 닿아 있음(on)을 동시에 나타낸다.

5. in the nick of time / just in time

Just in time과 in the nick of time은 거의 비슷한 의미다. ‘사고가 터지거나 당황스런 일이 일어나기 직전에’ 정도의 뜻으로 보면 된다. 다만 이 둘이 쓰이는 맥락이 조금 다른데 just in time은 두루 두루 쓰이는 데 반해 in the nick of time은 스토리텔링에서 주로 사용된다.

6. Dead on time

영국 영어에서 “dead on time”은 ‘딱 맞추어서”의 의미다. “Dead”가 ‘죽은’의 의미가 아니라 ‘바로(right)’의 뜻으로 쓰인 것. 그래서 사람들이 장난스럽게 이런 문장을 해석해 보라 하기도 한다.

“The man arrived dead on time.”

물론 문맥에 따라 죽어서 도착한 것일 수도 있지만, 딱 맞춰서 도착했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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