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법 발의 단상

Posted by on Oct 18, 2018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지난 주, 국회에서 강사법(시간강사 처우개선법)이 발의되었다. 일부 사립대의 심상찮은 움직임은 강사법 통과에 대한 노골적인 반대로 읽힐 여지가 있다. 이들의 반기가 실행으로 옮겨질 경우 강사법이 통과되고도 강사들 사이의 격차가 커질 것이다. 빈자 중 일부는 조금 나은 빈자가 되고, 다수는 그 가진 것마저 몽땅 빼앗기는 상황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한편 교수노조와 민교협 정도를 제외하고는 강사법에 대해 지지를 보내는 교수들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다. 교수들과 시간강사들의 삶이 겹치는 지점은 미미하기에 이런 ‘침묵’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적지 않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이 없듯 각자의 삶이 평행으로 달리는 상황에서 ‘평행우주’를 살아가는 것이다.

강사법의 통과 여부, 이후 원만한 실행 여부를 떠나 대학의 교육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긴 힘들 것이다. 문제의 핵심에는 시간강사들로 대표되는 비전임 교원의 열악한 처우와 지독한 불안정성이 있다. 한 학기가 시작되면 정신없이 달리다가 이내 방학과 다음 학기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삶, 매 학기마다 무작위로 주어지는 강의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게감 있는 연구나 깊은 통찰이 담긴 수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부정적 영향은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식상한 표현일지 모르나 분명한 사실이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가르치고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대학이 가진 지적, 사회적 기능의 몰락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특별한 재주가 없어 당분간 대학에서 밥을 먹길 원하는 입장에서 이번 법안의 처리와 여러 대학의 대응은 이 바닥에 대한 나의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이미 돈의 노예가 된 기관이라지만 돈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몇주 후 이 글을 돌아보면서 ‘별걸 다 기대했군’이라고 말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 예감이 틀리기를 간절히 빈다.)

일상에서 바꾸고 싶은 것들

Posted by on Oct 18, 2018 in 단상, 수업자료,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일상에서 바꾸고 싶은 것들”이라는 주제의 쪽글 과제에서 한국사회가, 대학생 세대의 아픔이 보인다. 이런 내용들이다.

1. 하루하루 과제와 알바로 쉴 틈이 없어 어서 빨리 졸업하고 싶다
2. 스트레스로 자꾸 술을 마시게 된다
3. 긴 통학으로 피곤하고 집 주변에 별다른 시설이 없어 불편하다
4. 취업 준비로 인해 인생짐이 너무 무겁다
5.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립다
6. 연애가 무상하다
7. 타인의 시선과 평가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싶다
8. 친구들과 경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9. 세상에 대한 걱정을 좀 덜하고 싶다
10. 새로운 물건을 사고 싶은데 여의치가 않다
11. 덜 먹어야되는데 자꾸만 먹게 된다.
12. 어둡고 부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고 싶다.

학생들의 고민을 읽으며 기성 세대가, 또 내가 참 무력하구나 싶다. 한 학기 충실한 수업을 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고민상담성’ 문단을 쓴 친구들에게 답장을 보내며 나를 돌아본다. 내 안에도 바꿔야 할 것들이 참 많구나.

몇몇 절절한 글을 읽고 만나는 학생들의 얼굴은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 같다.

아버지와 나

Posted by on Oct 18, 2018 in 강의노트, 단상, 일상 | No Comments
방금 “나의 삶에서 바꾸고 싶은 것”을 주제로 한 영작 과제를 읽었다. 오래 전 돌아가신 아버지와 라면을 함께 끓여 먹던 추억을 회상하는 뭉클한 글이었다. 학생은 “아직 아버지와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있는 힘껏 사랑하세요. 함께 시간을 보내세요.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주세요. 왜냐면 우리가 함께할 마지막 날이 언제일지 모르니까요.”라는 문장으로 글을 마쳤다.

오늘은 나의 아버지가 가신지 스물 여섯 해가 되는 날이기도 하다. <어머니와 나>에도 실었던 아버지와의 작은 추억을 꺼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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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어머니와 함께 한 점심. 지독했던 더위와 기적같은 가을 바람에 대해 이야기했고, 추석 때 어디에서 모일지 상의했다. 난 새로운 학기에 대한 우려와 기대를 말씀드렸고, 어머니는 사드THAAD 논란에서 누구 말이 맞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돌아오는 길 메신저 알림이 떴다.

“우야, 힘내라! 어제 꿈에 아빠가 나타났어. 잔잔한 미소로.”
“네, 어머니도 힘내세요. 근데 너무 힘들게 살진 마세요. 저도 아버지 보고 싶네요. 누런 서류봉투에 우유 싸 가지고 오시던 모습.”
“이제는 기도할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원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착각이죠.”
“맞아. 너희들이 아빠를 닮았어.”
“안 닮기 힘들죠. 하하.”
“파인애플 깡통 따던 아빠 모습. 너희들이 뺑 둘러앉아서. 기억나지?”
“그럼요!”

아버지가 파인애플 캔을 사 오신 날이었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과일 통조림이지만 어릴 적 파인애플 깡통은 한 해에 두어 번 볼까말까한 그야말로 귀한 물건이었다. 저녁을 먹고 캔을 개봉하겠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삼형제의 눈이 똘망똘망해졌다. 저녁상이 나가자마자 몸을 비비 꼬기 시작한다. 언제 따지, 언제 따지, 언제 따지? 맛있겠다, 추릅.

“아빠, 지금 먹으면 안돼요? 네? 네?”
“그러자, 뭐. 얼마 되지도 않는데.”
“와와와!!!!!”

환희의 순간도 잠시. 아뿔싸! 캔따개가 없단다. 안방, 마루, 건넌방, 부엌까지 샅샅이 뒤져도 찾을 수가 없단다. 이런 청천벽력이 있나. 삼형제는 울상이 되었다. 아니, 진짜로 운 것 같기도 하다. 그때 칼과 망치를 가지고 나타나신 아버지. 두둥! 칼끝을 뚜껑에 대고 캔을 돌려 가면서 망치질을 하니 철옹성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조마조마. 그 와중에도 형제들은 파인애플 국물이 튈 때마다 한숨을 내쉬었다. 쉽지 않아 보였다. 이제 겨우 반쯤 땄어? 세계 최장의 원둘레가 파인애플의 노예가 된 아이들의 인내력을 시험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인고의 시간은 파인애플의 달콤함에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아부지 최고! 파인애플 최고!”
“어? 국물까지 다 먹었네… ….”

어머니가 건네 주신 파인애플을 바라본다. 하얀 러닝셔츠 바람으로 위험한 연장까지 동원해 캔을 따 주시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두 분, 참 다르지만 또 참 많이 닮았구나 싶다

가짜뉴스, 소셜미디어, 그리고 몸

소셜미디어의 급속한 팽창은 패거리사고와 확증편향을 위한 최적의 정보생태계를 만들어 주었다. 아울러 소위 ‘가짜뉴스’도 창궐하고 있다.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으로 이를 직시하고 극복할 수 있을까? 심히 회의적이다. 미디어가 몸의 확장이라면 그 몸이 점하고 있는 시공간, 그 몸이 처한 정치경제적 상황, 몸에 가해지는 다양한 물리적/신체적/심리적 힘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 ‘확장’만을 건드리는 것은 큰 힘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가짜뉴스가 가짜라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가짜뉴스가 필요한 사람들이, 조직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 필요는 ‘진짜’이며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언어경관 잡감

Posted by on Oct 17,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영어 | No Comments

1. Drug-free zone

아래 표지를 보고 어떤 학생이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왜 여기에서는 (마)약이 공짜예요?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

2. “나무를 사랑합시다 (Keep off)”

한국어를 꽤 아는 한 미국인은 이 표지판을 보고 굉장히 재미있어 했다고. 일반적으로 표지에 두 언어가 있을 때 기본 가정은 두 표현이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인데, 이를 처참하게 깨는 표지판. (나무를 사랑합시다 vs. 가까이 오지 마)

– 원어민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표지들이 언어학습자/외국인 입장에서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게 됨.

3. 좀 오래된 일이지만 미국 뉴욕의 Flushing에 한국어로만 된 간판이 너무 많아져서 시에서 규제를 할까 검토하려 한 적이 있었다고 함. 아래는 관련 뉴욕타임즈 기사.

Ethnic Friction Over Signs That Lack Translations

4. 한국의 교통표지, 행정 관련 안내 등을 보면 한국어, 영어 표기가 가장 많고 이 외에 중국어와 일본어 표기가 종종 발견됨. 하지만 현재 한국에 체류중인 외국인 국적 통계에 따르면 중국이 1위, 미국이 2위이고, 근소한 차이로 베트남이 3위. 이후 일본이 4위 태국이 5위라고 함. 언어경관에서 우세한 언어와 실제 표지판을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있음.

5. 한국은 보통 외국어로서의 영어(English as a Foreign Language)를 쓴다고 함.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쓸 일은 없기 때문. 하지만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간판, 광고, 교통표지, 안내, 상품 설명 등에서 영어의 존재는 엄청남.

언어의 풍경을 잘 들여다 보면 단순한 정보의 다양화가 아닌 사회문화적 권력이 발견됨.

#언어경관

학기 6주차 단상

Posted by on Oct 17, 2018 in 강의노트, 단상 | No Comments

어쩌면 강사의 마음은 단 한 번도 함께 연주한 적이 없는 연주자들을 데리고 15주간 서로 다른 레퍼토리로 공연을 해내야 하는 지휘자의 심정과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같은 말은 없다.

Posted by on Oct 16,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집필 | No Comments

“주어요”에서 “줘요”로의 변화는 아무런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문법서의 설명은 이 둘을 등호로 연결한다. 하지만 쓰임과 의미의 영역에서 이 둘은 사뭇 다르다. 비주얼 디자인의 영역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등호로 연결된 수많은 언어들은 사실 같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엄청난 차이를 수반할 수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를 뿐 아니라 “줘요”다르고 “주어요” 다른 것이며, “혼코노” 다르고 “혼자 코인 노래방” 다른 것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의미와 말의 관계

Posted by on Oct 16,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집필 | No Comments

서너 개의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사고의 지형에서는 철저한 단일언어구사자인 사람이 있고,

하나의 언어만을 구사하지만

자유로운 다중언어구사자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의미와 말은 반듯한 일대 일 관계에 있지 않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삶을 위한 영어공부 – 집필방향

Posted by on Oct 15, 2018 in 단상, 삶을위한영어공부, 영어, 집필 | No Comments

<삶을 위한 영어공부>는 다음 세 가지 영역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1. 한국사회에서 가장 대중적인 영어교육 담론으로 자리잡은 Krashen의 언어학습이론을 비판적으로 읽어내기

영어교육의 수많은 당사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인풋이 중요하다”라는 말의 뿌리가 되는 학습이론을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영어학습에 적용하기.

2. 원어민 중심주의(Native speakerism)의 비판적 해체

한국사회에서 가장 은밀하고도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원어민 중심주의의 해체. “원어민처럼 완벽하게”, “네이티브 되기”, “아무리 해도 안되는”과 같은 말 속에 숨어있는 원어민 우월주의 및 중심주의를 들여다보고 무너뜨리기.

3. 사교육과 공교육의 압도적인 담론에서 벗어나 자신의 영어공부의 길 찾기

‘그들의 영어교육’에서 ‘내 삶의 영어공부’로의 전환. 삶을 가꾸고 성찰과 소통을 키워가는 재미있는 영어공부로의 초대.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Dr. Hall in Seoul

Posted by on Oct 14, 2018 in 단상, 영어, 일상 | No Comments

Dr. Hall visited Seoul, South Korea and gave a plenary talk on the transdisciplinary framework for SLA in a multilingual world at the ALAK (Applied Linguistics Association of Korea) conference. Although I read the article by the Douglas Fir Group, the talk, with her articulate and persuasive voice and relevant examples, further challenged me to think deeper, act concrete, and become an agent of change as a teacher, however small it may be. It reminded me of those ‘good old days’: I fell instantly nostalgic for the vibrant, inspiring academic conversations on campus with so many bright minds.

A PSU reunion followed her talk. Our conversation flowed a long way, covering our then-to-now lives, international relations, US and Korean politics, her years as president of AAAL, the joy and sorrow of scholarly writing, and, of course, our dear memories in State College and beloved APLNG friends. Even though I took her language socialization class ten years ago, it felt like a blink of an eye. Time flies, we stay apart, but the karma is always there, interweaving us in a mysteriously wonderful way.

I got her autograph on her recent book, “Essentials of SLA for L2 Teachers.” I rarely ask authors to sign their books, but I felt I had to do this this time. It has already been ten years; I do not know when I can see her in person again. So I wished to cherish the shining moment for a long time.

Now it’s time to wrap up this week and prepare for this week’s classes. It was a great weekend. I feel a little bit more hopeful, even in the turmoils of this unfathomable world. Thank you Dr. Hall, and I hope you have a safe trip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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