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적 계급적 표지로서의 영어

영어가 일종의 사회문화적, 계급적 표지로 작용한다는 걸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도 있다. 그냥 각자 열심히 해서 얻은 실력인데 그게 뭐 그렇게 ‘거창한’ 역할을 하느냐는 거다.

그런데 말입니다. (김상중 빙의)

우리는 누군가의 역사지식이나 100미터 달리기 기록으로 그의 배경을 순식간에 판단하지 않는다. 심지어 국어 실력도 그다지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실 별 관심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영어발음을 듣는 순간 그에 대해 꽤나 많은 것을 ‘알아버린다’.

간단한 사고 실험을 해보자. “걔 국어 정말 잘해”와 “걔 영어 정말 잘해” 중 어느 표현을 더 자주 접할 것 같은가?

영어에 대한 태도가 외부로만 향하지 않는다. 우리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영어실력으로 자신의 많은 부분을 판단해 버린다.

그런 면에서 영어의 힘은 사회적이며 심리적이다.

(이렇게 말씀드려도 이해가 안되신다는 분이 있다면 나랑은 세계관이 다른 것으로.)

일희일비와 소소한 일상

Posted by on Oct 23,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오늘도 타임라인에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다. ‘일희일비‘와 ‘소소한 일이라고 흘려버리지 않음’은 백짓장 한장 차이인 듯하구나.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유튜브

Posted by on Oct 21,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고대 이집트의 미로는 인터넷과 스트리밍 기술 위에 수많은 덕후들의 피땀으로 지어진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재림했다. 한번 빠져들면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다는 이 지옥의 이름은 유투부(類鬪涪)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질적코딩 수업

Posted by on Oct 17,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학생들과 영어교육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하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각자가 이미 문제를 모두 정의해놓은 상태로 수업에 임한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영어수업에 있어 가장 자주 언급되는 문제는 (1) 학습자들간의 실력차가 너무 크고 (2) 수능 등 획일화된 평가에 따라서 가르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두 이슈의 무게를 인정하는 것과, 이 두 렌즈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바라보려는 습속(habitus)은 전혀 다르다. 어떤 문제가 제기되더라도 실력차와 평가로 간단히 설명해버리는 태도는 게으름을 넘어 반지성적이다. ‘평가가 문제입니다’, ‘학생들이 차이가 나는데 어쩔 도리가 없어요’라는 말에는 현실의 단면을 그리는 솔직함이 배어있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학기 한 수업에서는 자신의 영어학습사를 기술한 언어학습 자서전(language learning autobiography)과 주변의 학생, 학부모, 교사 중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반구조화 인터뷰를 질적연구 방법론 중 하나인 근거이론(grounded theory)을 사용해서 분석해 보려고 한다. 최대한 선입견을 제거하고 데이터에 기반해서 자신의 영어학습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교사, 학부모, 학습자의 고민에서 어떤 패턴이 드러나는지 살피려는 것이다.

학부생들을 질적 연구자로 키우려는 것은 아니기에 방법론의 철학과 역사, 한계와 효용 등을 온전히 다루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사회과학 방법론의 한 축인 질적연구방법론을 맛보면서 자신과 주변의 영어교육 현실에 대해 좀더 깊이있는 시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방법론을 일종의 휴리스틱으로 활용한달까. 이미 정의된 문제의 틀을 벗어 던지고, 데이터와 씨름하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한 가지 우려가 되는 것은 학생들이 가져올 데이터의 성격이다. 자신의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영어학습 자서전, 자신과 비슷한 사회경제적, 문화적 환경 하에 있는 학부모나 학생의 이야기라면 결국 자신의 생각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분석 결과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방법론은 데이터를 뛰어넘지 못한다. 초심자에게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업에 마음이 설렌다. 실험이 끝나는 3주 후에도 이 기분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지만 혹시 모르니 두고 봐야겠다. ^^

학기 중반 잡감

Posted by on Oct 8,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일상 | No Comments

학생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어느 정도 다르다고 판단되는 두 학교에서 몇 학기를 가르치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OOO라는 영화 보신 분 있어요?”라는 질문에 손을 드는 학생의 비율이 확연하게 차이난다는 점이었다.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이고, 샘플의 수도 작기에 전체 구성원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비슷한 질문을 할 때마다 확인했던 차이가 마음에 계속 걸린다. 서울의 두 학교에서 이정도 차이가 난다면 다른 지역과는 더 큰 격차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영화, 문학, 과학에 대한 지식을 비롯한 문화적 경험은 개인의 성장은 물론 교수학습에 있어 큰 자산인데, 이 부분에서의 격차는 학교가 해결할 수가 없다. 부모의 문화자본, 상징자본의 차이는 자녀의 ‘교양’의 차이로 이어지고, 이는 바로 교육성취의 격차를 낳는다. 너무 단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제도교육 내에서는 이게 대세라는 걸 부인하긴 힘들다.

한편 가르치는 입장에서 학생들의 삶에 자연스레 접속할 수 있는 방식이 뭐가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날것 그대로의 경험을 토대로 함께 교육적 대안을 탐색하는 기획은 리스크가 크다. 개개인의 경험 들어보는 시간이 몇몇 학생들에겐 ‘시간낭비’이며, 함께 답을 찾아보자는 제안은 종종 ‘전문성의 부재’로 읽힌다는 것을 알기에 쉽게 답을 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수업에서 작은 모험을 감행하려 한다. 학생들의 반응은 갈릴 것이다. 못난 민감함 때문에 절대 무덤덤하진 않을 거다. 하지만 해보고 싶은 걸 해봐야지, 언제까지 가르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하는 마음이 더 크다.

학기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초반의 긴장감을 잃지 않고 수업 전체의 내러티브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부담이 밀려온다. 이 고민은 오래 가르친다고 사라지진 않을 것 같다.

강의 9년차 잡감

Posted by on Sep 25, 2017 in 단상, 삶을위한영어공부, 일상 | No Comments

TA 시절까지 어언 강의 9년차.
가르친 과목이 대충 25개.
최대한 얕고 최대한 다양하게 가르쳤다.
뭐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니 어쩌겠는가.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유난히 마음이 가는 수업이 몇 있다.

사회언어학과 언어교육
사회문화이론과 영어교육
어휘와 문법 지도법
영어로 논문쓰기,
영어교육방법 및 교육공학

애정하는 주제도 몇 있다.

인지언어학과 영어교육
메타포와 영어교육
멀티리터러시

하나씩 소책자로 묶어 모음집을 만들어도 좋겠다.

(하지만 현실은 단 하나의 주제도 책으로 써내지 못했을 뿐이고…)

걸작을 써낼 능력은 없으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모아
쓸만한 지식으로 정리해 낼 필요를 느낀다.

월급 들어왔다 나간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기엔
세상에 대한 집착이 좀 남았나 보다.

올해가 가기 전에
5년간 써온 긴 글 하나, 짧은 글 하나를 마치려 한다.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끝낼 것이다.
사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한계를 인정하고
소소한 소통을 꿈꾸는 중.

이론 수업에서의 ‘확증편향’

Posted by on Sep 25,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확증편향 (確證偏向, 영어: Confirmation bias)은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이다. 쉬운 말로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가 바로 확증편향이다.” (위키백과)

개론 수업에서 다양한 이론을 다룬다. 예를 들어 언어를 보는 다양한 관점, 언어습득을 설명하는 다양한 가설 등이 등장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해당 챕터를 읽고 새롭게 배웠거나 의문이 드는 대목 등을 제출하는데, 나는 이를 수업의 주요 테마로 삼는다.

대부분의 과제에서 공통적인 경향이 발견된다. 개별 이론의 메시지를 확증편향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 이론은 나의 경험 중에서 이런 면을 설명하고, B 이론은 저런 면을 설명한다. C 이론은 이런 에피소드에 적용하면 괜찮을 것 같다 등등과 같은 설명이다.

인문사회과학에서 특정 이론이 세계를 완벽하게 설명해 낼 수 없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이론이라 하더라도 특정한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토양에서 태어나 자란 것이고, 이를 발전시킨 학자들 또한 자신이 속한 학문 공동체의 담론지형 및 연구경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론은 세계의 사태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다. (총체성을 부정하는 이론마저도 ‘총체성이 부재하는 세계’라는 ‘총체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일련의 경험을 수많은 이론의 모자이크로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론의 존재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말이다.

학문적 다양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개별 이론이 지향하는 사고와 해석의 총체적 틀을 파고드는 시도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애매한 절충주의(Eclecticism)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합리화하는 이론-쪼가리들을 낳는다. 학생들도, 나도 이론이 우리의 확증편향을 위해 존재하는 그럴듯한 도구가 아님을 기억해야겠다.

“어떤 수업이예요?”

Posted by on Sep 23,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수업이 끝났다. 한국어가 조금 서툰 두 유학생을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났다. 말을 건넸다.

“오늘 수업 끝나신 거예요?”
“아니오. 오후에 한 개 더 있어요.”
“아 금요일 오후에 힘들겠다. 어떤 수업이예요?”
“그게 어… 영…” (다른 학생) “영어문…”
“아 과목 이름이 좀 어려운가 봐요.”

학생들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진다. 순간 옆에 서 있던 한 남성이 불쑥 끼어든다.

“이름이 좀 긴가요? 영미OOOO. 헷갈릴 수 있죠.”

허걱 담당교수시다. 급인사 모드. 얼굴이 밝지는 않은 듯. 이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모두와 헤어진다.

친근함으로 말을 건넸으나 학생들에겐 당황을, 담당교수에겐 씁쓸함을 안긴 것 같다.

결론: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길치 그리고 시지프

Posted by on Sep 22, 2017 in 단상 | No Comments

최첨단 GPS로 무장한 세계의 길치들은 시지프의 신화가 2차원 평면에서도 가능함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슬프고도 용감한 ON

Posted by on Sep 21,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가장 용감하지만 무엇보다 슬픈 ‘on’은 “move on”에서의 ‘on’인 것 같다. Time to move on.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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