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했던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것

Posted by on Sep 16, 2018 in 단상, 집필 | No Comments

“평안했던 시절”을 그리워한다고 하지만 실상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평안’도 ‘불안’도 존재하지 않았던 날들일지 모른다. ‘평안’이라는 개념이 마음속에 자리잡은 후 우린 한 번도 평안한 적이 었었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던 것들을 그리워하기 때문일까? ‘아무 걱정 없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일은 더욱 아련하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새로운 약속

Posted by on Sep 16, 2018 in 단상, 집필 | No Comments

어떨 때는 원고 파일 여는 데 2-3일이 걸린다. ‘걸린다’고 하지만 ‘미룬다’가 맞는 말이고, 미루기의 배후에는 고질적 게으름과 함께 아련한 패배의식과 막연한 비관주의가 버무려져 있다.

새로운 약속을 했고 본격적인 집필이 시작되었다. <어머니와 나> 보다 훨씬 오래된 문제의식을 담은 이야기다. 그간의 생각을 정리해 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의 매듭을 지어야만 다음 매듭이 가늠된다.

#삶을위한영어공부

913 부동산대책 잡감

Posted by on Sep 14, 2018 in 단상, 집필 | No Comments

집을 가지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가질 일이 있을까 갸우뚱하며, 투자를 위해서 집을 산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입장에서 보면 세상이 이토록 시끄러운 게 외계의 일 같다. 경제를 모른다 해도 괜찮고 나이브하다 핀잔을 줘도 괜찮고 그러니 집이 없지라고 타박해도 괜찮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적잖은 정규직 노동자들 및 영세 자영업자들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수십 억 부동산 가진 이들에게 적절한 책임을 물겠다는 조치를 ‘세금폭탄’으로 몰아가는 사회는 분명 제정신이 아니다. ‘니가 부동산이 없어 그런 소리를 하지’라고 말한다면 ‘바로 그거다’라고 말할 것이다.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해야 한다. 있는 척, 앞으로 있을 것 처럼 말하는 것은 철저한 기만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이 사회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으로 이 땅의 주인으로 살아갈 새로운 세대에 대해. 없음을 가리기 위해 있음의 편에 서는 기만을 언제까지 봐야할까 하는 질문과 맞딱뜨릴 때마다 마음이 갑갑해진다. 부끄러운 건 없음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모르는 것인데.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직관과 본능

Posted by on Sep 7, 2018 in 강의노트, 과학, 단상, 집필 | No Comments

“본능적으로 느끼”거나 “직관적으로 안다”고들 하지만 이는 대개 수많은 경험과 학습의 축적이 빚어낸 판단의 속도를 가늠하지 못하거나 메커니즘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분명 결과물로서의 WHAT은 있는데 과정(HOW)과 이유(WHY)는 가늠할 수 없는 상황. 그런 면에서 본능 혹은 직관이라는 명명은 학습과 경험에 대한 망각을 가리는 그럴듯한 도구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시간강사 제도 개선에 대하여

Posted by on Sep 4, 2018 in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여러 생각이 왈칵 몰려든다.

우선 기사 제목의 두 키워드 즉 “교원 자격”과 “방학때도 월급”이라는 말이 서글프다.

수년간 일을 해왔지만 정규 교원의 자격도, 방학 동안의 어떠한 급여도 없었기에 저 두 가지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마음이 먹먹하고 쓸쓸하다.

교원이 될 수 있다는 것,
방학 때 임금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
수많은 이들에 대한 ‘헤드라인’이 될 수 밖에 없는 현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무시할 수 없는 인원이 구직난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았던 운을 믿어보자면 앞으로도 일할 수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사람의 일은 알 수 없는 것이고, 설령 내가 괜찮다고 해서 정말 괜찮은 것은 아니다.

2010년 “제가 당신의 종입니까?”라는 항변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난 고 서정민 박사, 1998년 이후 강사 생활을 하다가 먼저 먼 곳으로 가신 여덟 분의 강사들을 기억하며 짧은 묵념을 드린다.

아울러 그간 강사제도 혁신을 위해 싸워온 모든 이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저 주변에 하찮은 불평을 늘어놓는 것 외에는 한 일이 없어 부끄러운 마음이지만, 이들의 헌신과 투쟁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더이상 고통받는 이들이 없기를, 누군가의 당연한 권리가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는 구조가 사라지길 빈다.

https://news.v.daum.net/v/20180903110033055?rcmd=rn&f=m

하위 80 퍼센트?

Posted by on Sep 2,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하위 80퍼센트’라는 말도 안되는 명명은 교육문제의 많은 부분을 드러낸다. 80퍼센트는 ‘대다수’이지 ‘하위’가 될 수 없는 수치다. 전인적 발달을 도모하는 교육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개학은 달갑진 않지만 만남은 감사한 이유

Posted by on Aug 31, 2018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방학 때 다 못한 일은 추석 연휴로 미루고, 추석이 막상 닥치면 “명절에 무슨 일이냐”고 하지. 학기가 중반에 접어들면 정신없이 기말까지 몰아치고, 학기가 끝나고 나서야 지난 방학 다 못한 일들이 전생의 기억처럼 조곤조곤 마음을 두드려. 실패의 반복은 미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을 선물하고, 그렇게 세월이 가는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가끔 하게 돼. 그 와중에 결국 삶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새로운 사람들, 그 중에서도 함께 공부하게 될 학생들. 어머니는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 의지할 대상은 아니’라고 말씀하시지만,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짊어져야 할 가장 큰 업보는 가르침을 받는 이들에게 하릴없이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 아닐까. 개학은 달갑진 않지만 만남은 감사한 이유.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소유격이 ‘소유’격일 수 없는 이유

Posted by on Aug 30,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집필 | No Comments

-의”로 표현되는 소유 관계. ‘나의 기억’과 ‘나의 펜’에서 ‘의’는 같은 뜻일까?

조금만 생각해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의 기억’에서 ‘기억’은 ‘나’의 일부, 즉 나이고, ‘펜’은 나의 외부에 독립적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와 ‘~의’ 결합으로 자기 안에 많은 것들을 포섭하려 들지만 정작 ‘~의’가 의미하는 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단어와 ‘나’의 관계에서 말미암는다. 소유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은 ‘~의’를 손쉽게 ‘소유격’이라 부르지만 소유될 수 있는 것은 나의 몸 정도일지 모른다. 물론 그마저도 자본주의 임노동 관계 하에서, 빈곤을 겪으며, 차별과 박해 속에서, 아프고 병든 상황에서 내 것이 아닐 수밖에 없지만.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To forgive is human as well

Human language is full of ambiguity. Is it inherently bad? I don’t think so. Leaving room for further interpretation entails embracing the possibility of misinterpretation and opening up a horizon for further negotiation. This vulnerability to being misunderstood and openness for collaborative meaning-making makes us human, unlike computers and networks pursuing the precise reading of each and every line of a code. (Of course this does not mean that you need to leave room for misunderstanding on purpose.)

In this sense, we language educators need to strike a balance between the emphasis on effective communication and the tolerance for misunderstanding and extended communicative moves. Communicators are not deliverers, packaging information and sending it off; rather, they are interactants and interpreters, who make mistakes, negotiate, settle, and sometimes ‘ignore together.’

Thus placing excessive stress on accuracy alone is symptomatic of a futile desire to escape from this fundamental fact in communication: To err is human; to ‘forgive’ human too.

#영어로글쓰기

나의 강의 스타일

Posted by on Aug 26, 2018 in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내가 경험한 괜찮은 대학강의의 교수자 스타일은 크게 둘로 나뉜다. 물론 이 둘 사이에 수많은 변이형이 있겠지만 극단값을 보자면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1. 세심한 커뮤니케이터형: 최대한 잘 준비하고 정리해서 학생들과 소통하려는 강사. 친근하고 친절한 스타일을 유지한다.

2. 궁구하는 지식인형: 일정한 지향과 세계관을 가지고 깊이 궁리한 바를 전달하는 강사. 문제의식으로 거득 차 있으며 때로 고뇌에 찬 모습을 보인다.

학생들이 어떻게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주로 1번의 모습을 지향해 왔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엄청나게 준비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2번으로 기울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연륜은 깊어져도 꼰대가 되진 말아야 하는데.

사실 적지 않은 학생들은 아래 두 가지 요인으로 강의를 평가하는 듯하다.

1. 할 거 많아?
2. 학점 잘 줘?

그래도 어디 가나 깊이 생각하며 더 많이 배워보려는 학생들이 있어 고마운 마음이다. 이번 학기도 함께 고민하고 궁리해 보자구!

덧. 고백 & 부탁
방학이 끝났다는 게 가장 큰 고뇌지만 보여주진 않겠다. 너희들도 같은 심정이라는 거 잘 알고 있다. 서로 모르는 척 하면서 학기 초부터 열심히 달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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