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프로젝트의 시작

Posted by on Aug 21, 2019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집필 | No Comments

몇 달 간의 브레인스토밍과 쪽글 작성을 거쳐 목차와 뼈대를 잡기 위한 10여 시간의 대화를 마쳤다. 이제 겨우 첫 발을 떼었지만 앞으로의 작업도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도 조금 다른 분야에 있지만 하나의 주제에 천착하는 분과 오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이번 대화야말로 나에게 ‘삶을 위한 리터러시’의 경험이었던 셈이다. 이 경험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남은 구간도 열심히 달려봐야겠다. 그리고 기억하고 싶은 비유 둘.

“독서는 확인이 아니라 발견을 위한 여행이어야 합니다. 이 여행에서 종착지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여행지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끝없이 새로운 곳으로 이끌려 가는 것이죠.”

“자신 안에 쌓는 바벨탑이 아니라 서로를 잇는 다리로서의 리터러시를 상상하고 싶습니다. 나를 빛내는 문화자본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기예로서의 리터러시 말입니다.”

#삶을위한리터러시

법무장관 후보자 논쟁, 그리고 ‘우리들의’ 박탈감

Posted by on Aug 21, 2019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후보에 대한 찬반이야 있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다 같은 의견을 가질 수 없고 기대하는 바도 다르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 깊이 우려스러운 것은 ‘박탈감’이라는 감정을 가벼이 여기는 목소리입니다. 저는 정치가 다루어야 할 가장 근원적인 정서가 억울함이나 박탈감 같은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존재의 근원에 뿌리를 두고 많은 이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 되새김되는 감정입니다. 시도때도 없이 울컥울컥 올라와 일상을 흐트러뜨리기도 하죠. 그렇기에 결코 자기존재와 분리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정서를 ‘계도의 대상’이나 ‘잘못된 감정’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정치의 본분을 망각하는 일임과 동시에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없다고 할 수 없고, 뼛속 깊이 느껴지는 바를 그릇되다 다그칠 수 없습니다. 터져나오는 울분에 대해 ‘뭘 모르니까’, ‘뭐 그딴 걸 가지고’와 같은 식의 반응은 자제했으면 합니다. 무시되는 박탈감은 종종 냉소와 적대로 전화됩니다. 후보자를 지지하건 그렇지 않건 이런 일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후보 수락연설문의 백미를 기억합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치열한 논쟁 속에서도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점을 잘 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나이브한 바람이지만 이 논쟁 속에서 억울함과 박탈감이 증폭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좀더 따뜻하게 싸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방법론, 적용, 그리고 다시 읽기

돌아보면 책을 많이 읽지 않은 것보다는 제대로 읽지 않아서, 다시 읽지 않아서, 무엇보다 현실에 적용해 보지 않아서 문제가 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방법론 영역의 책은 두루두루 읽는 것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적용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데이터와 씨름해 본 경험을 가지고 다른 책을 읽으면 빠르게 이해되지만 방법론만 계속 읽어대면 추상적, 일반적, 철학적 논의에 머무르면서 ‘구름 속을 헤매게’ 되는 것이다.

#영어로논문쓰기
#삶을위한리터러시

쓰기에 대한 답없는 질문들

많은 이들이 유튜브로 향하는 이유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명성에 더해 수익이 따라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 아닐까? 영상을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도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이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가졌을까? 그간 우리 사회가 쓰기교육에 실패한 것은 글을 써내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글을 쓰는 행위는 철저히 평가에 포섭되어 단편적이고 ‘객관적 채점’이 가능한 단문만을 생산해온 것은 아닌가? 만약 어떤 학생이 “유튜브는 이래저래 좋은데 글을 쓰면 뭐가 남나요?”라고 물으면 “원래 쓸모 없는 것이 소중한 것이지”라고 말하는 건 너무나 궁색하지 않을까? “유명해지고 잘하면 돈도 벌 수 있어”를 능가하진 못하더라도 그만큼 강력한 슬로건으로 글쓰기를 어필할 수 있을까? “메이커 교육”에 다양한 글쓰기는 왜 포함될 수 없을까? 어쩌면 대학이야말로 글쓰기 교육의 최종 무덤은 아닐까? 아니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일일까?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강렬한 이야기가 있다면 글은 자연스럽게 흘러넘친다는 것. 우리는 어쩌면 쓰기교육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쓸만한 삶을 만드는 교육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 쓰기의 문제는 테크닉이 아닌 삶의 문제이며, 생각과 감정과 갈등과 용기의 문제라는 것.

#삶을위한리터러시

독자와 구독자, 독서와 유튜브

Posted by on Aug 14, 2019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집필 | No Comments

1. 독자의 참여(engagement)는 기본적으로 개인적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서평 작성이나 ‘북스타그램’ 포스팅은 여전히 소수에 국한된 행위다. 이에 비해 영상에 대한 반응이나 댓글의 비율은 상당히 높다. 극단적인 예로 BTS의 <DNA>에는 약 350만의 댓글이 달려 있다. 책의 저자들에 비해 유튜브 운영자들은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책의 온도와 영상의 온도는 사뭇 다르다.

2.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부상과 함께 전문 연출자나 감독이 아닌 대중에 의해 만들어진 콘텐츠를 시청하는 경우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할 말이 있고 그걸 영상에 녹여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진입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말에 과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인 도서출판과 비교할 때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모두에게 확성기가 쥐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3. 하지만 ‘모두가 만든’ 콘텐츠 소비의 증가는 지식생산과 소비에 있어서 중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콘텐츠는 지식생태계의 폭과 깊이를 어떻게 바꾸어 놓고 있는가? 책이라는 매체의 탄생은 기본적으로 내용을 확인하고 일관성을 확보하며 디테일을 정돈하는 편집과정을 수반한다. 학술서적이라면 꼼꼼한 주석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동영상 콘텐츠에 대하여 그런 과정이 존재하는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면 왜 그렇게 판단하는가? 존재해야 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이룰 것인가? ‘동영상 갖고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해’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동영상 시청 이 주요한 일과가 되어버린 지금 이러한 질문들을 피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4. 유튜브에서의 검색이 많아진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유튜브를 하나의 지식원으로 대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는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유튜브를 찾아보는 ‘자연스러운’ 몸의 움직임으로 실현된다. 하지만 짧게 잡아도 수백 년을 쌓아온 텍스트의 너비와 깊이를 대체할만한 동영상 콘텐츠가 십수 년 만에 쌓였을 리는 없다. 여기에서 모종의 위기가 생겨난다.

5. 유튜브를 검색도구로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의 생각엔 “이해가 잘 되어서” 혹은 “이해하려 애쓸 필요가 없어서”다. 이 짧은 말에는 상당히 복합적인 요소들이 숨어 있다. 미디어 생산자들의 환경과 전략, 미디어 수용자들이 원하는 바, 동영상 매체가 가지고 있는 강점 등이 얽혀 있는 것이다.

6. 다소 꼰대스러운 이야기를 해보자 디지털 네이티브에게는 감지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여러 매체들을 접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것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정리해 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새로운 세대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을 배우면서 기성세대의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시도들이 생겨나야 한다.

7. “이해하기 쉬워서 좋은 동영상”도 있지만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가치있는 책읽기”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동영상이라는) 이 시대의 대세는 거스를 수 없지만 (텍스트라는) 근대 이후의 대세를 팽개쳐서는 안되는 것 아닐까.

#삶을위한리터러시

‘순삭’의 현상학

Posted by on Aug 13, 2019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집필 | No Comments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유튜브에서의 ‘하루 순삭’ 경험은 사람들에게 어떤 지식과 감정을 갖게 하는가? 그것은 텍스트를 읽으며 밤을 새는 경험과 다른가? ‘순삭’은 또 다른 ‘순삭’을 부르는가? ‘킨들 언리미티드’와 같은 전자책 서비스에서는 유튜브의 ‘순삭’ 경험과 비슷한 현상이 발견되는가? 텍스트와 영상에서 ‘순삭’ 경험은 어떻게 촉발되고 유지되며 평가되는가? 웹툰과 웹소설의 경우는 어떠한가?

#삶을위한리터러시

커뮤니케이션, 꼬뮤니케이션

화자의 말(text)은 단순히 내용을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어떤 말이든 상대에게는 맥락(context)이 되기 때문이다. 즉, 대화는 말을 통해 정보가 왔다 갔다 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순간 순간 컨텍스트를 만들어 주고 받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말을 잘한다’는 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적확하게 표현함과 동시에 대화가 흘러갈 수 있도록 적절한 맥락을 창조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말하기 교육을 단지 ‘표현(ex-pression: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끄집어내기)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위험한 이유다.

이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은 꼬뮤니케이션이다. 소통을 통해 작은 꼬뮨들이 탄생하고 그것이 축적되어 더 큰 꼬뮨으로 나아간다. 이상은 절대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버릴 이유는 없다. 하늘에 닿을 수 없다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포기하지 않듯 말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생각의 발효작용

Posted by on Aug 12, 2019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집필 | No Comments

#삶을위한리터러시

아침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포스트를 ‘발굴’해 보니 그야말로 쪼가리 지식과 단상 수준의 쪽글이 150여 쪽. 누군가는 목차를 쓰고 그걸 채워가면서 긴 글을 쓴다고 하지만 나는 오랜 시간 공부하고 고민한 것을 이리 저리 던져두었다가 모으고 정리하고 잘라내고 덧붙이고 다듬는 방식을 선호한다. (‘선호’한다고 하니 무슨 대안이라도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런 거 없다.) 깔끔한 정리와 거리가 먼 사람이 겨우 살아남는 방식이랄까. 한 가지 재미난 것이 있다면 글이 기억이 되어 머리속에 남아 있다가 다른 글과 뒤죽박죽 섞인 후, ‘발효’와 같은 아이디어의 화학작용을 일으켜 나름 새로운 맛의 생각을 지어낸다는 것. 남들에게도 맛난 음식이 될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

삶과 미디어

기계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몇 년이 지나고 영상을 만들고 공유하는 게 어느 정도의 역사성을 획득하게 된다면 “텍스트를 읽고 쓰는 존재로서 삶의 변화”와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존재로서 삶의 변화”를 성찰하고 나누는 기획이 있었으면 좋겠다. 매체에 대한 이론과 비평도 중요하지만 삶의 궤적 속에서 미디어가 담당하는 역할을 중장기적으로 추적하는 작업은 더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가설

Posted by on Aug 11, 2019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집필 | No Comments

유튜브와 유튜버 커뮤니티의 급속한 성장과 독서모임, 글쓰기 강좌 및 읽기쓰기 관련 서적의 급격한 증가 사이에는 모종의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리터러시 생태계의 분화와 문화자본의 지형 변화가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Lo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