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은 달갑진 않지만 만남은 감사한 이유

Posted by on Aug 31, 2018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방학 때 다 못한 일은 추석 연휴로 미루고, 추석이 막상 닥치면 “명절에 무슨 일이냐”고 하지. 학기가 중반에 접어들면 정신없이 기말까지 몰아치고, 학기가 끝나고 나서야 지난 방학 다 못한 일들이 전생의 기억처럼 조곤조곤 마음을 두드려. 실패의 반복은 미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을 선물하고, 그렇게 세월이 가는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가끔 하게 돼. 그 와중에 결국 삶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새로운 사람들, 그 중에서도 함께 공부하게 될 학생들. 어머니는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 의지할 대상은 아니’라고 말씀하시지만,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짊어져야 할 가장 큰 업보는 가르침을 받는 이들에게 하릴없이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 아닐까. 개학은 달갑진 않지만 만남은 감사한 이유.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소유격이 ‘소유’격일 수 없는 이유

Posted by on Aug 30,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집필 | No Comments

-의”로 표현되는 소유 관계. ‘나의 기억’과 ‘나의 펜’에서 ‘의’는 같은 뜻일까?

조금만 생각해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의 기억’에서 ‘기억’은 ‘나’의 일부, 즉 나이고, ‘펜’은 나의 외부에 독립적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와 ‘~의’ 결합으로 자기 안에 많은 것들을 포섭하려 들지만 정작 ‘~의’가 의미하는 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단어와 ‘나’의 관계에서 말미암는다. 소유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은 ‘~의’를 손쉽게 ‘소유격’이라 부르지만 소유될 수 있는 것은 나의 몸 정도일지 모른다. 물론 그마저도 자본주의 임노동 관계 하에서, 빈곤을 겪으며, 차별과 박해 속에서, 아프고 병든 상황에서 내 것이 아닐 수밖에 없지만.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To forgive is human as well

Human language is full of ambiguity. Is it inherently bad? I don’t think so. Leaving room for further interpretation entails embracing the possibility of misinterpretation and opening up a horizon for further negotiation. This vulnerability to being misunderstood and openness for collaborative meaning-making makes us human, unlike computers and networks pursuing the precise reading of each and every line of a code. (Of course this does not mean that you need to leave room for misunderstanding on purpose.)

In this sense, we language educators need to strike a balance between the emphasis on effective communication and the tolerance for misunderstanding and extended communicative moves. Communicators are not deliverers, packaging information and sending it off; rather, they are interactants and interpreters, who make mistakes, negotiate, settle, and sometimes ‘ignore together.’

Thus placing excessive stress on accuracy alone is symptomatic of a futile desire to escape from this fundamental fact in communication: To err is human; to ‘forgive’ human too.

#영어로글쓰기

나의 강의 스타일

Posted by on Aug 26, 2018 in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내가 경험한 괜찮은 대학강의의 교수자 스타일은 크게 둘로 나뉜다. 물론 이 둘 사이에 수많은 변이형이 있겠지만 극단값을 보자면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1. 세심한 커뮤니케이터형: 최대한 잘 준비하고 정리해서 학생들과 소통하려는 강사. 친근하고 친절한 스타일을 유지한다.

2. 궁구하는 지식인형: 일정한 지향과 세계관을 가지고 깊이 궁리한 바를 전달하는 강사. 문제의식으로 거득 차 있으며 때로 고뇌에 찬 모습을 보인다.

학생들이 어떻게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주로 1번의 모습을 지향해 왔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엄청나게 준비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2번으로 기울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연륜은 깊어져도 꼰대가 되진 말아야 하는데.

사실 적지 않은 학생들은 아래 두 가지 요인으로 강의를 평가하는 듯하다.

1. 할 거 많아?
2. 학점 잘 줘?

그래도 어디 가나 깊이 생각하며 더 많이 배워보려는 학생들이 있어 고마운 마음이다. 이번 학기도 함께 고민하고 궁리해 보자구!

덧. 고백 & 부탁
방학이 끝났다는 게 가장 큰 고뇌지만 보여주진 않겠다. 너희들도 같은 심정이라는 거 잘 알고 있다. 서로 모르는 척 하면서 학기 초부터 열심히 달려 보자.

Reading-writing connection: Two principles

Posted by on Aug 25, 2018 in 강의노트, 단상,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Two principles for connecting reading and writing in an organic manner 읽기와 쓰기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두 가지 원칙

(1) Write on to read through the intention
계속 쓰십시오. 의도를 관통하여 읽어내기 위하여.
(2) Read on to write across the lines
계속 읽으십시오. 경계를 넘는 글쓰기를 위하여.

#영어로글쓰기

Can writing be taught?

A banal question: Can writing be taught?

This seems to be a question about the nature of writing, asking us to formulate an answer in a “writing is such and such and thus can (or cannot) be taught” manner. However, it is also closely related to how we define teaching. It is obvious that each of these concepts is so complex. So addressing the question requires one to define the two concepts involved: writing and teaching. But again, answering the question is so daunting due to the fact that defining these terms involves two huge disciplines: composition and education.

So, to my joy as well as agony, the answer always comes down to local situations. In other words, I can answer the question only here and now, looking my students in their eyes, exploring their sociocultural backgrounds, and collaborating with them moment by moment, with a specific pedagogical goal in mind. What is amazing is that the will to teaching, and learning to teach, plays a crucial role in answering this seemingly pure intellectual question. Here comes the artistic, performative dimension of teaching. The answer lies in authentic performances in situ rather than in theoretical conceptualizations a priori.

#영어로글쓰기

텍스트 읽기 과정에 대한 소고: ‘사이’, 바흐친, 주석, 그리고 여정

읽기의 과정은 주어진 문자를 해독하는 일을 훌쩍 뛰어넘는다. 텍스트 이해는 대개 다음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1. 주어진 텍스트를 읽는다.
2. 생략된 텍스트를 (아마도 마음 속으로) 쓴다.
3. 주어진 텍스트와 생략된 텍스트를 비교한다.
4. 이 둘의 관계를 현재 텍스트의 앞뒤 문맥에 비추어 파악한다.

뭔가 복잡해 보이는데, 이런 거다. 아래 트윗을 보자.

“What doesn’t kill you gives you a lot of unhealthy coping mechanisms and a really dark sense of humor” by @mermatriarchy

이 트윗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반쪽 이해에도 못미친다. 위에서 밝혔듯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은 문장의 구조와 단어에 대한 이해를 훌쩍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트윗을 이해하는 과정을 상세히 그려보자.

1. 주어진 트윗을 읽는다.
2. 텍스트를 읽어나가면서 떠오르는 생략된 텍스트를 마음 속으로 쓴다. (생략된 텍스트는 글쓴 이의 마음 속에도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내가 쓰는 텍스트와 그의 마음 속에 있었던 텍스트가 일치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3. 본 트윗과 생략된 텍스트를 비교한다.
4. 트윗 자체의 내용과 더불어 이들을 비교한 결과가 바로 이 텍스트의 의미다.

자 그렇다면 위의 2번에서 언급한 ‘생략된 텍스트’의 후보들을 찾아보자. 나는 이들 중 Kelly Clarkson의 “What doesn’t kill you”라는 노래 가사 중 핵심 대목인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를 머릿 속에 써놓았다. 물론 이 노래 가사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입 위에 오르내리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읽기는

(1) 트윗을 읽고
(2) (수많은 이들의 입 위에 올려져 있다가 Kelly Clarkson의 노래 가사 내에 자리잡은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을 떠올리고,
(3) 이 두 가지를 비교하여
(4) 트윗의 의미와 이 비교의 결과를 중첩시켜 놓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이런 과정이 필요한가? 이 두 텍스트가 서로 조응하고 있다는 사실의 인지 여부에 따라 이해의 폭과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숨겨진 문장에 담겨 있는 “stronger”는 아래의 “unhealthy”와 조응하며 “unhealthy”의 수사적 효과를 배가시킨다. 반의적 관계가 문장의 의미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 것이다.

이 배가된 효과는 다시 “dark”가 주는 느낌과 연결된다. Unhealthy와 dark의 유사성은 이 둘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숨겨진 텍스트 즉, stronger와도 연결된다. 숨겨진 텍스트가 드러난 텍스트와 연결되며 의미의 연쇄적 파장이 일어난다. 여기에는 단절(stronger/unhealthy)도, 연결(unhealthy+dark)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문장들이 꽤나 많다는 것이며, 텍스트 읽기가 거듭될 수록 그 수가 급속히 증가한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내가 Kelly Clarkson의 노래 대사를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운빨’이다. 이게 보이지 않았다면 이 텍스트의 의미는 사뭇 앙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Kelly Clarkson 없이 이 트윗을 읽었을 때 내가 파악한 의미는 트윗을 쓴 이가 의도한 바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문장을 떠올릴 수 있는 ‘운’의 단초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동일한 작가 – 어, 이거 지난 번에 이 사람이 한 트윗에서 연결되는데?
(2) 어휘의 중첩 – 음, OO라는 작가도 이 어휘 자주 쓰는데, 그거랑 관련이 있나?
(3) 비슷한 문법 형식 – Mistakes makes sucess라니 나는 Practice makes perfect가 생각나는군.
(4) 비슷한 의미 – 이거랑 비슷한 속담엔 OOO가 있지.
(5) 비슷한 운율이나 발음 – 어 이거 발음이 OO랑 비슷하네.
(6) 최근의 유행어 – 요즘 개그맨 누가 이거 맨날 하는데, 그땐 OOO라고 하지.

인간의 패턴 인식 능력은 상당히 뛰어나서 그 어떤 요소라도 걸리기만 하면 관련된 데이터베이스를 순식간에 찾아내 읽기 과정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다른 표현 혹은 사건애 대한 기억을 발생시키는 요인(trigger)은 그야말로 오만가지인 것이다.

읽기에 있어 해당 텍스트만이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연결된 수많은 잠재적 텍스트가 동원될 수 있다는 점은 바흐친의 텍스트관과도 맞닿아 있다.

그의 생각을 빌려 말하자면 어떤 문장도 독립적이지 않으며 특정한 컨텍스트에서 누군가의 입에 올려졌던 말을 가져와 자신(만)의 ‘엑센트’를 부여한 것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세계에 떠돌고 있는 수많은 목소리가 내 입안에 들어왔다가 튕겨 나간 메아리일 뿐이라는 말이다.(그래서 바로 위에 “만”에 괄호를 넣었다. 세상에 나만의 말이 있긴 한건가?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나의 입에서 나올 새로운 ‘액센트’는 다음 문장 쯤 될 것 같다.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ange to death.”

이런 관점에서 모든 텍스트 읽기는 생략된 혹은 잠재적 텍스트를 새로 쓰고, 이 두 가지를 비교하여 자신만의 주석(annotation)을 다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읽기는 내 앞에 있는 문자들로 향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문자와 그 문자를 낳은 수많은 문자들의 사이로 향한다.

자 이 트윗이 나에게 한 일을 정리해 보자.

1. What doesn’t kill you gives you a lot of unhealthy coping mechanisms and a really dark sense of humor (죽을 만큼 힘들지는 않은 일을 겪고 나면 갖가지 건강하지 못한 대응기제들과 진짜 어두운 유머 감각을 갖게 되지.)

2.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가 생각나는군. 죽을 만큼 힘들진 않는 일을 겪고 나면 더 강해진다고 하더라고.

3. 둘을 비교하니 재미있군. Stronger가 아니라 unhealthy네. 그러면 dark해지지. dark는 마음이 dark할 수도 있지만 유머감각에도 곧잘 쓰이지.

4.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ange to death 근데 내 생각엔 죽지 않을 만큼 힘든 일을 당하고 나면 죽도록 이상해져.

이렇게 어떤 텍스트가 그에게서 나로 왔고, 나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고, 또 다른 누군가로 향한다. 새로운 여정에 나선 것이다.

잡소리 몇 가지

Posted by on Aug 23, 2018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1. 사람을 꽤나 좋아하고 챙긴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체력이 좀 남아도는 것이었음. 허리로 고생하다 보니 그냥 이런 생각이 문득.

2. 동네 냥이들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어볼까 하고 새로운 SLR 구입을 노리고 있었으나 치료비로 다 써버렸다. 어차피 샀어도 팔목에 허리에 무리가 가서 못들고 다녔을거야. 신포도 만세!

3. 병원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남자 직원들이 점심식사로 뭘 시켜 먹을까 고민중이다.

직원1: 역시 맘스터치는 OO가 최고지. (무슨 메뉴 이름 같음)
직원2: 그게 제일 나아.
직원3: 나 쉑쉑 시켜주면 안돼?

어디가나 꼭 저런 인간 있다.

4. 지난 학기 강의평가 주관식 응답 연달아 둘.

(1) 강의 내용은 괜찮은데 이해하기 너무 어렵다.
(2) 너무 설명을 잘해주셔서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비교체험 극과 극인가? 1과 2 사이에 내가 있는 거겠지?

어쩌면 나는 누군가 생각하는 ‘최상’과 다른 누군가가 생각하는 ‘최악’ 사이에 존재하는 입자일지도, 그래서 두 자리에 동시에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슈뢰딩거의 시간강사는 이해하기 매우 어렵지만 동시에 이해가 너무 쉽다. 냐옹~

차멀미와 민주주의

Posted by on Aug 22, 2018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차멀미가 심한 분들 중에서는 멀미를 피하기 위해 차를 타면 바로 자버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끔찍한 멀미의 고통을 당하느니 아예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죠. 하지만 다른 해결책도 있습니다. 직접 운전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와 민주주의에 관한 유비입니다. 누군가는 눈을 감고 편안히 있을 수 있지만, 잠들지 못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국회라는 소형차는 고작 300명의 운전수로 굴러가지만, 민주주의라는 차량은 국민 모두가 운전대를 잡길 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통하지 않습니다. 사공들이 배를 운항하는 것이 아니라, 사공들의 모임 자체가 바로 배이기 때문입니다. 사공이 없으면 배도 없는 것입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What education is about

Posted by on Aug 20, 2018 in 단상,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Education is not about the power to conquer the world, but about the will to surrender to justice, peace, and love. And we all know which of the two we are inculcating in school. In fact the entire socioeconomic system engineers the environment in which the conquerors can despise the weak legitimately and even ‘gracefully.’ This deeply hurts, and the resultant sufferings erode the body and psyche of the despised. It is truly tragic that these systematized trauma prevai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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