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 동네, 그리고 태깅

Posted by on Nov 26, 2019 in 단상, 링크,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 No Comments

소셜미디어의 사용 패턴이 많이 변했지만 그중 가장 크게 느껴지는 건 소위 ‘멘션(mention)’의 사용법이다. 2008-2009년 시기트위터에서는 누군가를 ‘소환’하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운 행동으로 인식되었다. 길을 걷는데 뒤에서 반가운 친구가 ‘김성우!’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달까. 한꺼번에 여러 사람을 소환하는 경우도 많았고, ‘이거 좀 봐바바’하면서 링크나 이미지를 공유하는 일 또한 일상이었다. 당시만 해도 트위터는 ‘동네’로서 기능하고 있었던 것이다. (추억을 너무 우려먹는 것 같지만) 당시 진행했던 ‘떼창’ 프로젝트는 소셜미디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남았고, 덕분에 공중파도 살짝 탔다. 놀랍게도 그때 맺은 인연 중 적지 않은 분들과 페이스북 친구로 지내고 있다.

지금은 누군가를 호출하는 일이 상당히 조심스러워졌다. 트위터에서의 멘션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피하게 되었고, 페이스북에서 누군가를 태깅하려고 할 때는 ‘이 사람과 얼마나 가까운가’를 짐짓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갑작스런 호출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정도로 친한가 가늠해보게 되는 것이다. 호출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누군가의 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올려지는 게 탐탁치 않다. 그룹 초대도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다. 강제로 그룹 멤버로 추가했다가는 블락/언팔을 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오래 전 치기 어린 초초보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 온라인 공연을 몇 차례 가졌다. 추운 겨울 밤 김광석과 유재하의 곡들을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스트리밍 링크를 남기고 사람들을 태깅으로 초대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못난 음악을 들어주었고, 따스한 감상을 남겨주었고,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고 위로했다. 이제 소셜미디어상에 그런 동네는 사라지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느낌이다. 트위터에 가끔 놀러가긴 하지만 이젠 정이 가지 않는다. 대책없는 향수는 아니고 그냥 그렇게 바뀌어 왔다는 거다.

당시 종종 연주했던 ‘잊혀지는 것’을 슬쩍 남겨놓으며, 마음 속으로 꽤나 많은 이름을 태깅한다. 고마운 이들이 이 음악과 함께할 수 있다면 좋겠다.

 

뭉크의 ‘절규’가 말하는 것

Posted by on Nov 10, 2019 in 단상, 링크,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 No Comments

기사의 내용은 현시대를 꽤나 흥미롭게 보여주는 유비다. 우리는 <절규>의 인물이 비명을 지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비명소리를 듣고 공포와 근심에 떨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 정작 소리를 질러대는 건 우리이고, 절규하는 이는 온갖 비명에 겁먹은 상황일지도 모른다.

“I was walking along the road with two friends – the sun was setting – suddenly the sky turned blood red – I paused, feeling exhausted, and leaned on the fence – there was blood and tongues of fire above the blue-black fjord and the city – my friends walked on, and I stood there trembling with anxiety – and I sensed an infinite scream passing through nature.”

https://qz.com/1577796/the-figure-in-edvard-munchs-the-scream-isnt-actually-screaming/

연주: I’m in Love

Posted by on Nov 3, 2019 in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연애도 안하던 시절인데 왠 “I am in love”라는 즉흥연주를 했을까요? 게다가 10분을 훌쩍 넘네요. 이 재미없는 연주를 다 들으시는 분은 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신 걸로 생각하겠습니다. 그런데 사랑에 빠진 것 같긴 하나요?

 

http://sungwoo.pbworks.com/w/file/fetch/56573779/120806_I_am_in_Love.mp3?fbclid=IwAR0Rups2Bq9HFz0SjaA8oBziQaZ1qwdq2glySMlRaVWQHoqgKfyDszvHaGA

리듬 앤 플로우

음악도 잘 모르고
힙합은 더 모르지만
지난 한 주 <Rhythm + Flow> 덕에 행복했다.

오디션 경연 포맷을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엄청난 압력을 견뎌내며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이들에게서
큰 감동을 받았다.

사실 욕설이나 비하, 성적인 묘사들에 대해
그리 익숙하지 않다.
‘정치적 올바름’에 다소 경도된
고리타분한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열 편의 에피소드는
“다른 문화를 엿보는” 경험으로 생각하고
최대한 즐겁게 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한 귀퉁이를 접고 보니
즐거운 순간이 많았다.

기획과 편집의 힘이겠지만
이번 경연에 참가한 아티스트들은
대개 불우한 형편에서 자랐다.
약물중독으로 가족을 잃거나
범죄로 인해 감옥에 갇힌 가족을 봐야 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 와중에
그들을 지켜준 것이
음악과 가족, 그리고 때로 신앙이었다.
빈곤과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자기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음악을 택했던 것이다.

응축된 고통이
벌건 마그마처럼
리듬과 가사로 요동칠 때
나 또한 흔들리고 흐느꼈다.

언어교육을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어렸을 때 연기나 랩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게
종종 아쉽다.

삶과 말을 재료로
혼과 리듬을 엮어내는 일,
대사를 매개로
타인의 몸과 마음을 상상하는 일의 아름다움을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가 언어를 대하는 방식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아, 그리고 사소한 즐거움 하나.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초반 30인의 경연자 중 우승자로 점친 사람이
진짜 우승을 했다.
업계 최고수들의 생각과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
소소한 기쁨을 선사했다.

음악이 있어 다행이고
음악하는 사람들이 축복이고
음악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 삶의 리듬과 플로우를 찾아
하루 하루를 지어(compose)가야겠다.

 

Let’s make the rhythm flow, yo.

[Link] Blog for Teachers of Academic Writing

For teachers of academic writing

“In what follows, I will list the posts according to ten themes: Drafting; Revision; Audience; Identity; Writing Challenges; Mechanics; Productivity; Graduate Writing; Blogging and Social Media; and Resources.”

For New Visitors

MIT 미디어 랩 – 엡스타인 스캔들

Posted by on Sep 8, 2019 in 단상, 링크, 삶을위한리터러시 | No Comments

MIT 미디어 랩이 Jeffrey Epstein의 범죄를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계속 작지 않은 규모의 지원을 받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뉴요커의 보도가 있은지 하루만에 MIT 미디어 랩의 디렉터인 Joi Ito가 교수직을 내놓고 사임했다. 흔히 ‘세계 최고의 미디어 연구기관’이라고 불리는 조직이 구역질나는 범죄를 용인하고 돈을 택했다는 점은 끔찍하게 징후적이다. 자본에 완전히 포섭된 엘리트기관은 과연 엘리트적일 수 있는가? 그 어떤 범죄도 돈으로 덮을 수 있다는 생각에 투항한 대학은 대학일 수 있는가? 아래 뉴요커와 가디언의 기사를 링크한다.

“New documents show that the M.I.T. Media Lab was aware of Epstein’s status as a convicted sex offender, and that Epstein directed contributions to the lab far exceeding the amounts M.I.T. has publicly admitted.

Update: On Saturday, less than a day after the publication of this story, Joi Ito, the director of the M.I.T. Media Lab, resigned from his position. “After giving the matter a great deal of thought over the past several days and weeks, I think that it is best that I resign as director of the media lab and as a professor and employee of the Institute, effective immediately,” Ito wrote in an internal e-mail. In a message to the M.I.T. community, L. Rafael Reif, the president of M.I.T., wrote, “Because the accusations in the story are extremely serious, they demand an immediate, thorough and independent investigation,” and announced that M.I.T.’s general counsel would engage an outside law firm to oversee that investigation.”

https://www.newyorker.com/news/news-desk/how-an-elite-university-research-center-concealed-its-relationship-with-jeffrey-epstein

““Third culture” was a perfect shield for pursuing entrepreneurial activities under the banner of intellectualism. Infinite networking with billionaires but also models and Hollywood stars; instant funding by philanthropists and venture capitalists moving in the same circles; bestselling books tied to skyrocketing speaking fees used as promotional materials for the author’s more substantial commercial activities, often run out of academia.

That someone like Jeffrey Epstein would take advantage of these networks to whitewash his crimes was almost inevitable. In a world where books function as brand extensions and are never actually read, it’s quite easy for a rich and glamorous charlatan of Epstein’s stature to fit in.”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9/sep/07/jeffrey-epstein-mit-funding-tech-intellectuals

영화 Arrival 수업 메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Arrival>은 언어와 소통, 시간과 경험, 기억과 운명 등에 대한 풍부한 메타포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가 언어학계의 오랜 논쟁거리인 언어와 사고의 관계인지라 제가 담당하는 <언어와 사고> 과목에서 보기에 안성맞춤이었죠. 지난 학기 영화를 보고 수업을 진행했는데요. 당시 메모했던 내용들을 소개합니다. (참고로 저는 이 영화가 지금 작업중인 #삶을위한리터러시 의 주제의식과 잘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1. 이 영화는 외계인과 인간의 조우를 기본 스토리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단지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영화를 꼼꼼히 보고 나서 이 구도를 우리 삶의 어떤 영역에 대한 메타포로 볼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2. 영화의 제목은 <Arrival>이지만 한국에서는 <컨택트>로 개봉되었습니다. 이 두 제목에서 어떤 차이가 느껴지나요? 영화를 본 후에는 이 두 제목의 차이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3. 언어학자 Louise Banks와 물리학자 Ian Donnelly의 첫 만남에서 Ian은 Louise가 쓴 책의 한 구절을 읽어줍니다. “Language is the foundation of civilization. It is the glue that holds a people together. It is the first weapon drawn in a conflict.”라는 부분이었죠. 이 부분이 영화의 처음에 배치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분들이 언어학에 관한 책을 쓴다면 언어를 어떻게 멋지게 소개할 수 있을까요?

4. 왜 영화의 주인공이 하필 언어학자와 물리학자일까요? 사실 학자 둘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무척 드물죠.

5. “그들이 반응을 보여도 뜻을 모르죠”라는 대사를 만나게 될 겁니다. ‘반응(response)’과 ‘뜻(meaning)’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어떤 경우에 반응을 보여도 뜻을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반응의 뜻을 상관하지 않고 그저 반응하진 않나요?

6. “So what happens now?” “They’ll arrive.” – 헵타포드와의 첫 만남에서 나오는 대사입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들이 올 겁니다.’라고 답하는 것이죠.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영화의 제목인 ‘Arrival’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냐는 질문에 ‘올 거야’가 답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7. 우주선이 세계 도처에 나타났을 때 뉴스에서 기독교계의 해석이 스쳐 지나갑니다. 지금 세계 도처에 UFO가 출몰한다면 기독교계를 비롯한 여러 종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8. Louise가 가르치는 첫 단어는 “Human”입니다. 이건 적절한 접근법일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혹은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9. 8번의 질문과 연결해서 미지의 존재를 만났을 때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려 하는 것은 적절한 일일까요?

10. 언어를 가르침에 있어서 질문을 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질문이 무엇인지 이해시켜야 한다’는 장면이 나오죠. 인간의 언어에는 어떤 가정들이 담겨 있나요? 평서문, 의문문, 감탄문, 부정문, 가정 등의 범주는 우리에게 어떻게 학습되나요?

11. Louise는 “They need to see me.”라고 하면서 우주복을 벗습니다. 이것은 일련의 방역체계를 무력화시키는 일입니다. 이 장면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어떤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12. 헵타포드 둘에게 “애봇”과 “카스트로”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들을 어떤 식으로든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죠. 이 같은 labeling은 반드시 필요한가요? 우리에게 이름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군가 우리를 ‘자기 마음대로’ 부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13. 영화를 관통하는 학설은 사피어-워프 가설입니다. 워프 가설의 내용을 살펴본 바 있는데요. 이 내용은 영화 속에 잘 녹아들어 있나요? 어떤 면에서 그런가요/그렇지 않은가요?

14. 각국간의 교신이 끊기고 소통이 단절되는 순간 전쟁은 가까워 옵니다. 이것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아래 대사를 실마리로 이에 대한 생각을 전개해 봅시다.

“We need to sit on this information till we know what it means, so we aren’t sharing it with our enemies. We must consider the idea that our visitors are prodding us to fight among ourselves until only one faction prevails.”

15. Louise의 딸 Hannah는 앞뒤로 읽었을 때 동일한 팰린드롬(palindrome) 즉 회문입니다. 영화의 구성 또한 그렇게 되어 있죠. 헵타포드의 언어도 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일련의 장치들이 노리는 바는 무엇일까요? 우리 삶에서 이런 ‘회문적’ 경험을 하는 경우가 있을까요?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하고도 단선적 사고에 갇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16. 애봇과 카스트로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자신이 맞을 운명을 이미 알고 지구에 왔습니다. Louise도 영화의 말미에 ‘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해서 삶의 방향을 바꿀 것인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죠. 지구상에 온 외계 생명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17. 아래는 제가 ‘시간과 기억’이라는 관점에서 Arrival의 원작인 <Story of your life>에 대해 써본 쪽글입니다. 본격적으로 과제를 작성하시기 전에 한두 가지 테마를 가지고 영화에 관한 글을 써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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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기억이라는 주제로 본 Arrival>

1. Arrival의 원작인 <Story of Your Life>는 나레이션 형식으로 진행된다. “I remember”가 자주 등장해서 세보니 약 12번 정도이다.

2. 우리가 보통 remember를 쓰는 것은 다음 두 상황이다.
(1) 현재 말하는 시점보다 앞서 일어난 일. 즉 과거의 일.
(2) 현재 말하는 시점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 즉, 미래의 일.
따라서 영어를 기준으로 remember 다음에는 I remember that I did that. 이나 I remember that I will have to do it. 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물론 remember 다음에 조금 다른 내용이 올 수도 있다. Remember you are a teacher.는 “너의 교사로서의 지위를 잊지 말아라”는 뜻이 될 것이다.

3. Arrival의 나레이션 중 다수는 “나는 네가 …할 것이라는 걸 기억한다”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희한하다. 분명 기억하고(remember) 있는데, “~했던 것”도 아니고, “(일어나지 않았지만) ~할 것”도 아니다. 인간의 언어에 존재하지 않는 내용 형식인 “(이미 일어난 일인데) ~할 것이라는 걸 기억한다”이다.

4. <과거-현재-미래>가 방향이 있는 직선이 아닌 하나의 평면에 들어올 때 Remember는 Know와 동의어가 된다.
우리는 기억하는 것과 아는 것의 구분이 없어진 세계. 예측도 없고 회상도 없는, 모든 것이 ‘지금’인 세계를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

5. 그렇다면 필자가 쓴 “이미”, “과거”, “미래” 등의 단어는 쓸모가 없어지는 세계 아닌가.

6.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이런 세계를 경험하고 체화한 것은 주인공 루이스일 뿐, 다른 이들은 이 세계를 이처럼 인식하지 않는다. 수십 억의 인구 중 오로지 한 사람만이 이 세계를 실제로 경험한다.

7. 여기에서 또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Remember = Know”인 사람과, 이 두 가지가 구분되는 사람 사이의 소통은 가능한가? 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것인가? 사고체계가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같은 언어’로 소통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8. 언젠가 기술이 발전하여 인간의 뇌가 생성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초고해상도로 스캔하고 이를 집적된 정보시스템으로 만들면, 이 시스템은 일종의 ‘헵타포드적’ 인지를 할 수 있을까? 우리 삶의 모든 정보가 집적된다면, 그 모든 기억을 어떤 랙(latency)도 없이 끄집어 낼 수 있다면 우리는 삶을 직선이 아닌 전체로 인지할 수 있을까?

9. 한편 언어 자체가 헵타포드적 성격을 띄고 있지 않나? 수많은 시간을 고스란히 흔적으로 담고 있는 시스템. 하나의 노드가 전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토폴로지. 공시성과 통시성이 엇갈리는 하나의 점. 지금 내가 쓰는 ‘시간’이나 ‘기억’이라는 단어는 이 시대가 약속한 기호이자 내 삶이 채워 넣은 의미장이니 말이다.

10. 가정해 보자. 꿈 속에서 다음 날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는 나를 만나고, 그것을 일기로 기로했다. 다음 날 프리젠테이션을 하면서 계속해서 데자뷔를 느낀다. 이를 다시 기록으로 남긴다. 이 모든 기록을 읽은 누군가가 나의 프리젠테이션을 기억한다. 얼마 후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는다. 몇 년 후 그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로 착각하는 상황에 이른다. 그렇게 기억은 시간을 거스르고 인간의 뇌를 ‘숙주삼아’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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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헵타포드의 ‘문자’에 대한 쪽글입니다.

영화는 인간과 헵타포드가 문자를 통해 소통하는 설정을 택합니다. 그런데 헵타포드의 ‘문자’가 인간의 문자 체계에 딱 들어맞는 체계인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시각채널(visual channel)을 통해 무언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문자체계임이 분명해 보이지만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 헵타포드의 ‘문자’는 인간의 문자체계와 유사하면서도 제스처의 특성을 갖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구어/문어 이분법이 딱 들어맞지 않는 체계인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말/글 체계가 헵타포드의 언어에 그대로 들어맞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이 ‘글자’를 쓰는 방식이 자신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무언가를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인간이 주로 손과 팔의 움직임을 통해 특정 메시지를 만들어 내듯이, 그들은 자신의 몸 안에 있는 그 무언가를 밖으로 내뿜어서 특정한 패턴을 만들어 냅니다. 신체 외부의 매개를 이용하는 인간의 문자체계와는 사뭇 다르죠.

또 하나는 그런 문자가 잠시 있다가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문자 시스템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쓴 글자야 파도가 와서 쓸려가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잠깐 옆으로 새자면 이런 면에서 ‘혈서’는 일반적 기록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점하게 되는 쓰기방식입니다. 인간의 내부에서 무언가를 끄집어 내서 기록을 하거든요. 게다가 색깔도 엄청나죠.) 위의 두 의미에서 헵타포드의 ‘문자’는 인간의 제스처와 문자의 특성을 묘하게 통합하고 있는 시스템으로 보입니다. 반반 섞어 놨다는 뜻은 아니고, 오묘하게 통합된 시스템이죠.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1) 헵타포드의 음성언어: 헵타포드의 문자 = 인간의 음성언어: 인간의 문자 라는 등식은 조금 위험해 보입니다.
(2) 인간의 언어가 구어/문어라는 이분법을 명확히 보이는 데 반해 헵타포드의 언어는 구어와 문어의 경계가 불분명해 보입니다.
(3) 그들의 문자체계는 인간이 구사하는 구어의 주요한 부분인 제스처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고 생각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Engadget의 흥미로운 아티클을 소개합니다.

<Arrival>을 보며 헵타포드의 언어가 치밀하게 그려졌다 생각했는데 이런 뒷얘기가 있군요. 제품 디자이너인 Patrice Vermette과 울프람 알파의 Stephen Wolfram이 합작해서 실제 언어에 해당하는 구조를 디자인하고, 이를 토대로 100여 개의 로고그램으로 만들었다는 것.

“Bringing the language to the screen was a joint effort between designer Patrice Vermette, science consultant Stephen Wolfram — of Wolfram Alpha fame — and his son Christopher Wolfram. All told, some 100 “unique logograms with embedded words and phrases, with mutable components” were crafted for the film.”

https://www.engadget.com/…/dissecting-the-alien-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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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Arrival>에서 나타난 타자화(othering)에 대한 간략한 쪽글입니다.

Preemptive Othering and <Arrival>

<Arrival> is relevant to the present time not because we are approaching the era of space travel or technological singularity, but because we are going through the era of intolerance, reversing pluralist, multi-cultural worldviews and threatening the very existence of intersubjective spaces. The tyranny of preemptive othering emerges when the art of thick description and deep interpretation dies. We need more time to understand each other. We also need to note that their time might be different from our time. Ultimately, understanding others is the only way to understand ourselves. (I don’t know whether someone has used the term ‘preemptive othering’; yet, the expression dawned upon me whiling watching th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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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Arrival>의 주제의식과 관련된 일종의 브레인스토밍입니다.

Probably i am going to use <Arrival> as a major theme for my <Language and Thought> class this semester. Here are some random ideas about what to discuss in the class. By the way, the movie is so breathtakingly beautiful and also full of language-related allusions and intriguing symbolism. Highly recommended for my linguists and applied linguists friends!
Whorfian view of language and thought / Neo in Matrix vs. Louise in Arrival / Free will vs. Destiny / Palindrome and how we(they) experience time / C.S. Lewis’s notion of ‘God’s time’ vs. human time / linear time and circular(or spiral) time / time travel / prerequisites for communication / Barriers and empathy / Symbolism in the movie / Why physicist & linguist? / How to define others and us / Words as a weapon vs. words as a gift / Why analyze and teach written language, not spoken? / Concepts, language, and (Un)translatability / So what is time?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서울대 도서관의 평균 대출 수는?

학부생은 그렇다 치고 대학원생이 한 해 13.4권이라는 게 말이 되나? 충격이다.

“한편 1년간 1인당 대출 권수는 학부생이 8.9권, 대학원생은 13.4권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체 대학생 평균(2017년 기준 6.5권)보다는 높지만 2년 전 서울대 학생 1인당 도서 대출 권수(2017년 기준 24.9권)에 비해서도 크게 떨어진 수치라는 지적이다. 2017년 이후 해마다 1인당 100권이 넘는 독서량을 자랑하는 하버드, 옥스퍼드대와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버드는 2016년 기준 1인당 도서 대출 권수가 98권에 달했으며, 옥스퍼드는 108권에 달했다.”

기사 원문: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51301070930316001

#삶을위한리터러시

리터러시는 교차로에 서 있지

리터러시는 사회적인 관계, 경제적 조건, 정보접근성, 언어능력 등의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결혼이주여성의 건강문해력을 보자. 이들의 건강문해력을 개인이 갖고 있는 능력으로 환원시켜 이해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들이 다른 국가로 이주하기 전의 삶,이주의 과정, 이주 후 함께하게 된 가족들의 사회경제적 상황, 그들과의 관계, 가사노동의 강도, 지역의 의료서비스, 정보 및 미디어 리터러시, 제2언어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에만 이들의 ‘건강문해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문해력을 개인이 쌓은 지식의 총체로 보는 관점은 구체적 상황에서 아무런 설명력도 갖지 못한다. 리터러시는 사회문화적, 경제적, 언어적 요인이 교차하는 곳에서 역동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혼이주여성은 자신의 건강을 적극 관리해야 하며, 나아가서는 가족 내에서 상대적으로 연령이 높은 남편과 시부모의 만성질환을 예방, 관리해야 하는 역할 또한 맡게 된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과 가족에게 필요한 건강정보 와 보건의료서비스를 찾고 이해하며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즉, 건강문해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건강문해력이란 건강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필요 한 건강정보와 서비스를 획득, 이해, 처리하여 적절한 건강행동으로 수행하는 능력을 뜻하며, 성공적인 보건의료소비자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능력이다(Ad Hoc Committee on Health Literacy for the Council on Scientific Affairs, 1999). 가장 널리 인용되는 자료 중 하나인 Institute of Medicine (IOM)의 보고서(2004)에 따르면 건강문해력이 낮은 사람은 예방적 검진을 안 하는 경향이 높고, 만성질환 이환 가능성이 높으며 상대적으로 입원기간이 길고 응급실 이용률이 높다. 따라서 낮은 건강문해력은 결과적으로 의료비 지출을 높이고 건강수준을 저하시키며, 대상자와 보건의료인 간의 의사소통을 방해하여 보건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다.”

논문: 결혼이주여성의 건강문해력과 관련요인

https://synapse.koreamed.org/Synapse/Data/PDFData/0200JKACHN/jkachn-24-377.pdf?fbclid=IwAR1g59esUD_ciLXMcNJ7OLagyMHN31X3C1TcNdrJSAP7nY7MLsiGr-QHt-Q

7월의 마지막 밤에

Posted by on Jul 31, 2019 in 링크, 일상 | No Comments

끝, 시작, 그리고 끝 ending, beginning, and ending, again (모티프로 즉흥연주 & 믹싱. 2013년 11월. 사진은 아마도 2011년.)

바람에 지지 않고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
번역 : 권정생

비에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와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가지고 욕심도 없고
절대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미소지으며
하루 현미 네 홉과 된장과 나물을 조금 먹으며
모든 일에 제 이익을 생각지 말고
잘 보고 들어 깨달아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속 그늘에 조그만 초가지붕 오두막에 살며
동에 병든 어린이가 있으면 찾아가서 간호해 주고
서에 고달픈 어머니가 있으면 가서 그의 볏단을 대신 져 주고
남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무서워 말라고 위로하고
북에 싸움과 소송이 있으면 쓸데없는 짓이니 그만두라 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을 흘리고
추운 여름엔 허둥대며 걷고
누구한테나 바보라 불려지고
칭찬도 듣지 말고 괴로움도 끼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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