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집회에 나오는가

Posted by on Feb 7, 2017 in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나는 이분들이 집회에 나오는 이유와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크게 음악을 틀어놓는 이유가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의 트랜지스터 라디오야 구세대의 유물로 사라지겠지만, 왜 사람들로 북적대는 공원과 등산로에서 남들이 좋아하지도 않을 음악을 크게 틀어대는지를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자신들의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아무도 안들어도 좋을만한 이야기들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소통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더 크게 져야 하는 쪽이 있지만, 소통행위 자체의 양방향성을 부정할 수는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분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자들의 악랄함과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말이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1571.html

Arrival the Movie

Posted by on Feb 5, 2017 in 강의노트, 단상, 링크, 수업자료 | No Comments

[Spoiler Alert (for clicking ‘See more’ below] Probably i am going to use <Arrival> as a major theme for my <Language and Thought> class this semester. Here are some random ideas about what to discuss in the class. By the way, the movie is so breathtakingly beautiful and also full of language-related allusions and intriguing symbolism. Highly recommended for my linguists and applied linguists friends!

.
.
.
.
.
.
.
.
.
.
.

Whorfian view of language and thought / Neo in Matrix vs. Louise in Arrival / Free will vs. Destiny / Palindrome and how we(they) experience time / C.S. Lewis’s notion of ‘God’s time’ vs. human time / linear time and circular(or spiral) time / time travel / prerequisites for communication / Barriers and empathy / Symbolism in the movie / Why physicist & linguist? / How to define others and us / Words as a weapon vs. words as a gift / Why analyze and teach written language, not spoken? / Concepts, language, and (Un)translatability / So what is time?

Open Peer Review

Posted by on Jan 29, 2017 in 링크, 수업자료,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학술지의 맹검(Blind Review) 제도는 양날의 검이다. (1) 학문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자발적 헌신이라는 이상에도 불구하고 심사자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힘들고, (2) 특혜없이 공정한 논문심사를 지향하지만, 전문성과 책임감 모두 미달인 심사평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익명성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그 폐해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에 대해 고민은 반드시 필요하다.

한 가지 고려할 만한 방안은 코넬 대학교의 arXiv.org에서 시행하고 있는 공개 동료심사(Open Peer Review)이다. arXiv에서는 편집자들이 공개적인 리뷰를 첨부하여 논문의 프리프린트에 첨부하고, 이를 기반으로 선별된 아티클을 ‘출판’ 상태로 바꾸는 방식을 취한다. 아래 링크에서 이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다.

“Today’s peer review process for scientific articles is unnecessarily opaque and offers few incentives to referees. Likewise, the publishing process is unnecessarily inefficient and its results are only rarely made freely available to the public. Here we outline a comparatively simple extension of arXiv.org, an online preprint archive widely used in the mathematical and physical sciences, that addresses both of these problems. Under the proposal, editors invite referees to write public and signed reviews to be attached to the posted preprints, and then elevate selected articles to “published” status”.

https://arxiv.org/abs/1011.6590

샤페코엔시 구단의 승리

Posted by on Jan 23, 2017 in 단상, 링크 | No Comments

2016년 11월 28일, 브라질 1부리그 프로축구 팀 아소시아상 샤페코엔시 지 푸테보우의 선수 및 스탭들 중 65명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합니다. 코파 수다메리카나 2016 결승전을 치르기 위해 콜롬비아로 가던 중 비극을 맞은 것이었죠. 구단 멤버 대부분이 사망한 후 열린 첫 경기에서 샤페코엔시의 승리가 선언되고, 승리의 메달이 유족들에게 수여됩니다. 경기의 해설자 또한 사고 생존자였다고 하네요.

Irrationally yours

Posted by on Jan 20, 2017 in 단상, 링크,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 No Comments

기사 말미에 책의 원제인 “Irrationally yours”가 “‘비합리적인 당신에게”로 번역되어 있다. 완벽한 오역이다.

미국영어를 기준으로 서간문의 말미에 많이 나오는 표현으로 “Sincerely yours”가 있다. 이 표현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논쟁이 있을 수 있으나 “I am sincerely yours.” 정도의 줄임말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직역하면 ‘나는 당신의 충실한 사람/하인/친구’ 정도의 의미인데, 진짜 소유의 뜻은 아니고 격식을 갖추어 공손함을 표하는 어구로 보면 된다.

이와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은 저자 Dan Ariely를 대중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책이 <Predictably Irrational>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상식 밖의 경제학>으로 번역됨.)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동을 심리학/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 풀었다. ‘사람이 합리적이라고? 절대 아니라는 걸 보여줄게’라고 말하는 듯한 책이랄까. 따라서 “Irrationally yours’에서 ‘비합리적인 것’은 ‘당신’이라기 보다는 저자 자신이라고 보는 게 맞다. 따라서 “당신의 ‘비합리적인’ 친구로부터” 정도의 의미가 되겠다.

참고로 <왜 양말은 항상…>은 그저 그랬다. 차라리 <상식 밖의 경제학>이나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을 추천한다.

덧댐: 실제로 찾아보니 저자 서문의 마지막 문단에 “Irrationally yours”로 서명을 했다.

http://hankookilbo.com/v/0e58b3f5e2214a2a8497618fac5c8da7

연애시대, 만약에

Posted by on Jan 20, 2017 in 단상, 링크 | No Comments

“나중에라도 나한테 말해줬으면… 다 지난 일이다. 그치?”

럭비공 튀듯 하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오래 전 드라마를 다시 돌려본다. “만약에” 다음의 “우리”는 슬프다. 미래에 대한 기대라 하더라도 깨어질 수밖에 없는 “만약”. 모든 연애의 시작은 이별의 시작. 어떤 이별은 또다른 연애의 시작. 볼때마다 달라지는 내용. 세상에 ‘다 아는 이야기’ 따위는, 세상에 “다 지난 이야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은호가 <고마워>를 부른다.

피붙이

Posted by on Jan 18, 2017 in 단상, 링크,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거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 뿐이다.” (장그래)

어제 동료 선생님 한분과 저녁을 먹다가 <미생>의 이 대사가 떠올랐다. 아무리 발버둥쳐 봐도 기약할 것 하나 없는 시대. 그렇게 망가진, 슬픔과 분노의 한국사회.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말하는 순간 거짓말장이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

사람들은 <미생>에서 장그래의 고군분투에 대해 이야기했다. 프로기사의 꿈을 버린, ‘학벌 딸리는’, 빽도 없고 꼼수도 부릴지 모르는, 목욕탕 바닥이 닳도록 밀고 냉동고에서 냉동 직전까지 우직하게 일하던 ‘미생’. 그가 극의 중심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게 가장 오래 남아있는 건 회사를 찾아와 끈질기게 돈을 요구하던 퇴역군인 아버지를 맞는 안영이의 모습이다. 열심히 사는 것과는 아무 관계 없는, 끊어내지도 멀리하지도 못할 인연. 세상에서 가장 붙어 있기 싫은 피붙이.

가장 가까이 있다는 것이 가장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는, 애증(愛憎)이 아니라 애증(哀憎)의 관계. 그렇게 슬퍼하고 증오하는 이들이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기를. 가리워진 길을 더듬으며 함께 걸을 수 있는 좋은 친구 하나쯤은 곁에 둘 수 있기를.

보내는 마음

Posted by on Jan 14, 2017 in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여행 후 새벽에 시도 때도 없이 깬다. 무려 보름째. 잠돌이의 삶에 천재지변급 사건이다. 처음에는 시차겠거니 했는데, 갈수록 시간의 흐름 때문이라는 확신이 든다. (‘나’로 시작하는 단어 슬쩍 피하기!) 희미한 육신으로 아침을 챙기고 사발 커피까지 들이킨 후 일과를 시작하는 때. 우습게도 스쳐간 잠의 환영들을 복기한다. 리듬이 바뀐 곡을 같은 속도로 연주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할 때, 아다지오도 아름답다고, 다시는 비바체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해도 괜찮다고 나 자신을 다독여야 할 때. 그리고 떠오른 느릿한 비가(悲歌).

시민이면서 배우 메릴 스트립, 생애 최고의 수상 소감을 말하다

Posted by on Jan 9, 2017 in 링크, 영어, 일상 | No Comments

얼마 전 JTBC 기자의 정유라 신고와 관련하여 뜨거운 논쟁이 있었고, 양편의 논리 모두에서 배울 것이 있었다. 한편 그 와중에 널리 회자된 문구는 ‘기자이기 이전에 시민’이였는데, 내겐 조금 껄끄러웠다. ‘기자’와 ‘시민’을 연결하는 ‘이전에’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내 생각에 ‘기자이기 ‘이전에’ 시민’ 같은 건 없다. 기자이면서 시민이고 시민이면서 기자일 뿐이다. 그 둘 사이에 전후 혹은 중요성을 나타내는 ‘이전에’라는 말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는 말이다.

메릴 스트립은 방금 전 있었던 2017년도 골든 글로브 평생 공로상 수상 소감에서 동료 배우들의 출생지와 성장 배경을 열거하며 “헐리우드는 외지인과 외국인으로 가득 찬 곳”이라 못박고, 장애인 기자를 모욕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나아가 언론에게는 원칙에 입각하여 대통령이 책임지는 정치를 할 수 있도록 견제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메릴 스트립은 ‘배우이기 이전에 시민’으로 말한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시민이면서 배우로, 그리고 한 인간으로 말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적어도 내겐 소감의 끝, Carrie Fisher가 그녀에게 해주었다는 말이 꼭 배우나 예술가에게 국한된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부서진 마음을 가지고 예술로 승화시켜라(Take your broken heart, make it into art).”

Meryl Streep Defends Hollywood, Foreigners, and the Press in Blistering Anti-Trump Speech

John Berger 부고

Posted by on Jan 3, 2017 in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새벽에 잠을 뒤척이다 컴퓨터를 켰다. John Berger의 부고가 들려왔다.

John Berger, art critic and author, dies aged 90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17/jan/02/john-berger-art-critic-and-author-dies-aged-90

John Berger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두 개의 영상. 하나는 그 유명한 <Ways of Seeing> 시리즈이고, 다른 하나는 Susan Sontag과 스토리텔링을 주제로 나눈 대담이다. 두 번째 영상을 보면서 ‘저런 자세와 눈빛으로 수다를 떨어도 TV 프로그램이 되는군. 부럽다’라고 생각했던 기억. Berger의 의견에 ‘어떻게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가 있지?’라는 듯한 Sontag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To Tell A Story> 초반에 John Berger가 자기 이름을 발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존 버거’도 ‘존 버저’도 아닌 ‘존 베ㄹ저’에 가까운 느낌이다.)

I. John Berger / Ways of Seeing (1972)

https://www.youtube.com/watch?v=0pDE4VX_9Kk (Ep. 1)
https://www.youtube.com/watch?v=m1GI8mNU5Sg (Ep. 2)
https://www.youtube.com/watch?v=Z7wi8jd7aC4 (Ep. 3)
https://www.youtube.com/watch?v=5jTUebm73IY (Ep. 4)

II. John Berger and Susan Sontag / To Tell A Story (1983)

Lo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