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 모르잖아요~

Posted by on May 29, 2017 in 단상, 링크 | No Comments

변변찮은 연주를 마음으로 품어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작은 음악회를 두 번이나 했었죠. 제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관객 요청 리사이틀’이었습니다.

처음 모였던 곳은 합정동의 작은 연습실. 그랜드 피아노가 있고 10명 남짓 다닥 다닥 붙어 앉을 정도의 아담한 공간이었습니다. 이전 집과 지금 집 딱 중간에 그 연습실이 있었다는 걸 최근에야 알고 놀랐습니다. 연습실은 사라졌지만 그 즈음 녹음한 곡들은 아직 남아 있네요. 그마저 언제 흩어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참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

시간강사의 시간

Posted by on May 27, 2017 in 단상, 링크 | No Comments

소득세를 신고할 때마다 살짝 우울해집니다. 작년 한 해 총소득이 사회생활 첫해 연봉과 비슷하더군요. 20년 가까이 월급이 안 오른 셈이죠. 저는 시간강사 중에서 형편이 좋은 편입니다.

시간강사에게는 임노동의 단위시간만 있을 뿐, 경험과 전문성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학기말, 또다시 시지푸스의 절망이 기다리고 있지요. 끝없는 시간의 리셋 속에서 삶의 도도한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우리를 응원합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요.

인종차별 체험기

카투사로 한 군생활 말년이었으니 아마도 97년이었던 것 같다. 외근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오는 길에 부대에서 제공하는 버스에 올랐다. 먼저 도착한 부대원들은 저만치 뒤에 겉멋든 고딩들마냥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군바리의 특성상 합류는 이미 정해진 일.

통로를 지나려는데 아기를 앞으로 안은 백인 여성 하나가 보인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조심조심 지나간다. 본의 아니게 그녀의 등과 나의 등이 스친다. 한국의 대중교통 상황에 대입해 보면 정말 대수롭지 않은 마찰이다. 그런데 날카로운 목소리가 등에 꽂혔다.

“Fxxx”

순간 귀를 의심했다. 고개를 돌려 그 여자를 쳐다본다.

“What did you say?”
“You should have said ‘Excuse me’ when you passed by. You almost killed my baby.”
(“killed”라는 말이 몹시 거슬렸으나 꾹참고) “Okay, I’m sorry for not saying ‘Excuse me.’ But you should not use that kind of language to me. Watch your tongue.”

설교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피차 득될 것 없는 상황이었다. 마음을 가라앚히고 자리에 앉으려 했다. 그런데… 그런데… 이번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말이 뒤통수를 가격했다.

“Don’t yellow people know how to say, “excuse me”?”

“Yellow people”소리를 듣자마자 피가 거꾸로 솟았다. 다시 일어나서 그 여자에게 다가갔다. 격양된 목소리로 방금 한 말을 다시 해보라 다그쳤다. 내 격양된 어조때문이었을까. 그녀는 “‘Excuse me’라는 말을 썼으면 더 좋았을걸…”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런 태도가 역겨웠다. 사과를 받아내야 했다. 이 자리에서 정중하게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사과하라고 소리쳤다. 그녀는 그럴 수 없다고 버텼다. 고성이 오가기를 수 차례.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사과해라. 늦지 않았다.”며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녀는 끝까지 사과를 거부했다. 사과를 포기하고 자리에 앉았다. 모든 상황을 다 지켜본 친구 중 하나가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지 않았지만 입술을 깨물며 괜찮다 했다. 같이 일하던 상병 하나가 그녀에게 다가가 다시 한 번 사과를 해달라 정중히 말했다. 그녀는 사과할 것이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부대로 돌아와서도 아까 상황에 대한 울분을 삭일 수가 없었다. 고민 고민 끝에 다음날 업무를 마치고 부대장(여자 대위)을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다 듣더니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 주변에서 보고 들은 목격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 했다. 부대장은 “그점에 대해 유감이고, 네가 원하면 정식 절차를 밟아 군대 내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몇 번의 조사과정이 있을 것이고 조서를 작성해야 하며, 꽤나 성가신 과정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했다. 넌지시 ‘그냥 참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그 모든 과정이 너무 번거롭기도 하고, 그 여자와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정식 제재 요청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거의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이를 악물고 제소를 했어야 했나 할 때가 있다. 나 편하자고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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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심각한 글을 써버렸구나.
(우습게도!) 이 사건을 끄집어낸 건 아래 동영상이었다.

An interesting take on flow

Posted by on May 9, 2017 in 과학, 링크 | No Comments

The same argument applies to many other areas including teaching and writing, the performance of which requires an extended amount of time, I believe. Although some moments might flow smoothly and almost effortlessly, the overall performance is under constant monitoring, recalibrating, retrying, and restarting. For professionals, of course, the state of ‘flow’ appears more often and lasts longer. However it does not characterize the entire process. It is all about achieving ‘a shorter struggle and a quicker rebound, and a more effective orchestration of competing factors,’ rather than ‘sliding into the state of flow and staying there.’

“In other words, the idea that expert actions are in a placid state of flow – a state in which things seem to fall into place on their own – is a myth.”

https://aeon.co/essays/the-true-expert-does-not-perform-in-a-state-of-effortless-flow

Manchester by the Sea (2016)

Posted by on May 6, 2017 in 단상, 링크 | No Comments

어떤 삶은 교훈이나 감동을 주지 않는다. 그저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렇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교훈’이나 ‘감동’ 같은 말로는 어떤 진실도 대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할 뿐. 너무 많은 존재들을 말에 가두어 온 내 가련한 인생.

바다를 보고 싶어졌다.

 

4.16. 3주기

Posted by on Apr 16, 2017 in 단상, 링크 | No Comments
스쳐가는 얼굴들,
스러져간 우주들.


단원고 학생 남현철·박영인·조은화·허다윤 님, 단원고 교사 고창석·양승진 님, 여섯 살 혁규와 아빠 권재근 님, 그리고 이영숙 님. 남아있는 아홉 분 모두 하루 속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실 수 있길 빕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Posted by on Apr 9, 2017 in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얼마 전 학생들과 함께 Candy Chang의 <Before I die>라는 TED 강연을 봤다. 각자가 죽기 전에 뭘 하고 싶은지 써보는 시간도 가졌다. 여행애 대해 언급한 학생들이 제일 많았고,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다거나 자기 집을 직접 디자인해 보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다.

나에게도 뭘 해보고 싶냐고 묻길래 “죽기 전에 작은 뮤지컬 하나를 기획하고 전곡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몇몇 학생들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설마’, ‘에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급발동한 자격지심에 “아무도 안보러 와도 괜찮아요. 만드는 게 중요하죠.”라며 능청을 떨었다. (아무도 안오기만 해봐라.)

오늘은 오랜만에 건반이 있는 방에 들어섰다. 좁은 공간에 온갖 책들과 잡동사니가 널려 있어 환기를 시켜도 잔먼지가 쉬이 가시지 않는다. 알러지성 비염이 있는 나에게는 고통스런 환경이다.

그래도 한 학기에 한두 번은 쳐야 되지 않을까 싶어 (미안하다 건반아) 마스크를 끼고 건반을 연주했다. ‘음… 역시 녹슬었어. 하지만 뭐 하루 이틀이냐.’ 신나게 두들기다 보니 손이 꼬이며 숨이 차온다.헉헉. 이게 사는 건가.

생각해 보니 아무도 안보러 오는 건 둘째 치고 배우로 나설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뭐 안되면 내가 다 불러서 라디오 드라마처럼 만들지 뭐. 그럼 또 아무도 안들을 거 아냐? 아 급 우울해진다. 이도 저도 안될 거 같은데 그냥 꿈을 바꿀까? “죽기 전에 미세먼지와 비염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로.

https://www.ted.com/talks/candy_chang_before_i_die_i_want_to

 

민주 Democracy – 피아노 연주

Posted by on Mar 30, 2017 in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한 친구의 기억이 예전 연주의 기억을 되살려냈다. 각자의 기억이 소중한만큼 서로의 기억을 간직하는 것이 가치있다는 믿음. 그것이 민주의 가치 아닐까.

“너는 햇살 햇살이었다 산다는 일 고달프고 답답해도
네가 있는 곳 찬란하게 빛나고 네가 가는 길 환하게 밝았다

너는 불꽃 불꽃이었다 갈수록 어두운 세-월
스러지는 불길에 새불 부르고 언덕에 온고을에 불을 질렀다.

너는 바람 바람이었다 거센 꽃바람이었다
꽃바람 타고오는 아우성이었다 아우성속에 햇살 불꽃이었다

너는 바람 불꽃 햇살 우리들 어둔삶에 빛던지고
스러지려는 불길에 새불 부르는
불꽃이다 바람이다 아우성이다
불꽃이다 바람이다 아우성이다”


너의 자유로움으로 가: 한 택시 기사와의 대화

Posted by on Feb 14, 2017 in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하루를 완벽하게 마무리해 준 건 손님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한 택시기사와의 대화였다.

종각에서 집까지 오는 길, 오랜만에 택시를 탔다. 내 또래쯤 되어 보이는 택시기사는 30초 쯤 이메일을 읽고 고개를 든 내게 대뜸 질문을 던졌다.

“울랄라 세션 임윤택 씨 돌아가셨다는 이야기 들으셨어요?”
“네. 들었어요. 안타깝죠.”
“네. 정말 슬프더라구요. 대단한 뮤지션이었는데. 사실 병세 악화 기사 같은 것도 안떠서 괜찮은가보다 했는데… 너무 아깝죠?”
“네. 음악 참 좋았었는데…”

나는 말끝을 흐렸다. 잠시 침묵. 그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수퍼스타 K 나왔을 때 정말 대단했었거든요. 아마추어라 믿을 수 없었죠.”
“네… 그런데 너무 쓸쓸히 갔네요. 그렇게 사랑받던 분이 가니 더 쓸쓸한 거 같아요. 무엇보다 너무 젊죠.”
“네. 유재하도 김광석도 그렇게 너무 일찍 갔죠. 휴우…”
“그렇죠.”

그의 한숨에선 진짜 “휴우” 소리가 났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 좋아하던 뮤지션의 죽음에 대해 깊이 아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이야기를 다시 이어갔다.

“그래도 김광석씨는 돌아가시기 전에 한 20분 정도 일대 일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운이 좋았죠. 그때 롯데월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거든요. 조인트 콘서트를 했는데 김광석, 장혜진, 이오공감이 같이 왔어요. 김광석씨 부인되시는 분이랑 같이 오셨는데… 준비 다 하시고 시간이 좀 남아서 무대 뒤에서 이십 분 쯤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리고 얼마 있다가 돌아가셨죠. 도저히 믿기질 않았어요.”

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땐 라디오를 끼고 살았어요. 좋아하던 가수가 많은데, 김광석 유재하는 당연히 좋아하고요. 동물원을 정말 좋아했어요. 1집과 5-1, 5-2를 특히 좋아했죠. <주말 보내기> 같은 노래 참 특이하고 좋았는데.”

나도 맞장구를 쳤다.

“동물원 좋죠. 저도 참 좋아해요. 그러고 보니 저랑 듣고 자란 음악이 비슷하네요. <잊혀지는 것> 너무 좋지 않나요?”

“아, 진짜 좋죠. (이 아저씨, 이제 아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사랑이라 말하며,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 정말 좋아요. 다른 멤버들 노래도 좋지만 저는 김창기씨 노래가 제일 좋아요. 혹시 우리노래 전시회에 실렸던, (나와 거의 동시에!) <너의 자유로움으로 가> 아, 아시네요? (함께) ㅎㅎㅎㅎㅎ”

이 분, 음악을 나보다 더 진지하게 좋아하신다. DJ를 하면서 노래까지 불러주시고! 예전 뮤지션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듀스, 이소라, 조동익, 이소라… ‘모래시계’로 활동했던 천성일과 정연준이 노이즈와 업타운으로 활동했던 이야기. 김창기의 노래들에 나오는 ‘그녀’는 오로지 한 사람이라는 것. 김광진의 편지 뒷이야기. 내리기 바로 전 그가 내게 건넨 이야기는 김현철 1집 이야기였다.

“김현철 1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형>이예요. 그게 조동익을 생각하면서 썼다는 거 아세요?”

아쉽게도 목적지에 다 왔다. 택시 기사랑 더 이야기하고 싶어서 내리길 주저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아, 저 메타기 끄고 저랑 음악 이야기 좀더 하시면 안될까요? 할 수는 없지 않은가? ㅠㅠ

“아 그랬군요. 그게 조동익이었군요. 근데 저 앞에서 세워주세요.”

“네. (차를 댄다.) 여기에서 세워드리면 되나요?”

“네네.” (사실 조금 더 왔다. ㅠㅠ)

내릴 때 택시 운전 기사 아저씨가 인사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도 밝게 인사한다. 생각 같아서는 하이파이브라도 하고 싶지만 그냥 인사로.
“이렇게 재미있게 택시타고 오긴 처음이네요. 기사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네. 안녕히 가세요.”
“네네. 안녕히 가세요.”

택시에서 내려 중얼거린다.

“<형>은 저도 정말 좋아하는 노래예요. 제가 살면서 정말 힘들고 지쳤을 때 막내 동생의 피아노 반주에 둘째가 불러준 노래거든요. 들으며 눈물을 펑펑 흘렸죠.”

그와 내가 좋아하는 김창기의 <너의 자유로움으로 가>와 김현철의 <형>을 듣는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김창기의 노래를 불러주던 또래 택시기사. 마음 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2013.2.14.

그들은 왜 집회에 나오는가

Posted by on Feb 7, 2017 in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나는 이분들이 집회에 나오는 이유와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크게 음악을 틀어놓는 이유가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의 트랜지스터 라디오야 구세대의 유물로 사라지겠지만, 왜 사람들로 북적대는 공원과 등산로에서 남들이 좋아하지도 않을 음악을 크게 틀어대는지를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자신들의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아무도 안들어도 좋을만한 이야기들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소통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더 크게 져야 하는 쪽이 있지만, 소통행위 자체의 양방향성을 부정할 수는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분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자들의 악랄함과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말이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815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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