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시간낭비’를 읽고

Posted by on Aug 14, 2020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얼마 전 몇몇 친구분들이 링크한 ‘학자의 시간낭비’를 읽었습니다. 필자의 논지에서 분명 배울 것이 있었고 저 또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노학자의 일침에는 뼈가 있었고, 한두 가지 주제에 천착하여 이론을 전개하지 못하는 저 자신에게 값진 충고가 되었습니다.

그와 다른 측면에서 누군가의 인생을 — 실상은 공부를 업으로 삼은 이들 대부분의 인생을 ‘낭비’라고 부를 수 있음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제가 아는 인문학은 누군가의 인생에 대해 쉽게 ‘낭비’라고 딱지붙이지 않으며 자신의 ‘성공’을 기반으로 타인의 삶을 섣불리 낙인찍지 않습니다. 그것은 학자이건 기업가이건 관료이건 마찬가지입니다.

학계의 특성상 ‘대가’라 불리는 이들이 특권을 가지게 되고 심지어는 ‘급수’로 나뉘어지기도 하지만 삶을 영위하기 위해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의 공부를 ‘시간낭비’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진 않습니다. 그들의 삶이 시간낭비라고 불릴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적어도 저에겐 그렇습니다.

서른 다섯에 박사과정 공부를 시작했고 졸업하자 마자 생계전선에 뛰어들어 미친듯 강의를 소화했으니 “이론을 창조하는 능력은 35세를 지나면 쇠퇴한다는 것이 정설이다”라는 일갈로 보면 애초에 학자가 되기엔 글러먹은 인생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글러먹은 3류 인생이라도 공부를 업으로 삼았으니 계속 해나가는 수밖에요. 먹고사니즘의 전선에서 조금씩이라도 고민과 생각을 이어갈 밖에요. 이론을 만들 능력은 오래 전 상실하였지만 소박한 지식을 나누고 살밖에요.

물론 모든 지식노동이 같은 무게를 지닌 것은 아닙니다. 어떤 노동은 좀더 깊고 넓게 퍼져나가 사람들의 삶에, 동시대와 후세의 사상적 지향에 영향을 줍니다. 그들의 노고에 고개숙여 감사를 표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노동의 시간을 낭비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맥만 핏줄은 아닙니다. 모세혈관이 없으면 우리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이상 처음부터 가망없었던 영원한 학자지망생 1인의 넋두리였습니다.

화환의 물성, 계급, 상상력

1. 주머니나 가방 안에 넣을 수 있는 화환은 없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화환은 눈에 띈다. 스스로 ‘거기 있음’을 알리는 것이 화환의 주요 임무 중 하나다. 역으로 말하면 눈에 띄지 않는 화환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된다.

2. 화환에는 보통 두 개의 메시지가 담긴다. 하나는 조의를 표하는 메시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가 대표적이다. 다음으로는 화환을 보낸 사람이다. 대개 이것은 다시 두 개의 메시지로 나뉜다. 먼저 보낸 사람의 직함이다. 다음으로는 보낸 이의 이름이다. “”(주) 개똥전자 대표이사 홍길동”과 같은 문구가 대표적이다. ‘화환’은 ‘조화나 생화를 모아 고리 모양으로 둥글게 만든 물건(다음사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사실 핵심은 꽃이 아니라 언어적 구성에 있다.

3. 화환은 누구나 보낼 수 있지만 누구나 보내지는 않는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어서 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그보다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보내는 경우가 많다. 계급적 편협함 때문일 수도 있으나 나는 ‘배송노동자 OOO’나, ‘택시기사 OOO’와 같은 이름이 붙은 화환을 본 적이 없다. ‘화환에도 계급이 있다’는 말을 완전히 부정하긴 힘들 것이다.

4. 화환에 ‘박히는’ 직책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기업의 총수나 국회의원이다. 아주 예외적으로 대통령이 화환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런 이름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상가는 보내는 이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사회문화적, 상징적 권력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장이 된다. 화환이라는 장치는 그 자체로 모종의 권력을 생산한다.

5. 그런 의미에서 개개인은 예를 갖추어 화환을 보낼지 모르지만, 그것들은 누군가에게 목격되거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거나 언론에 의해 보도되면서 고인과 그의 가족이 사회 내에서 점하는 위치를 고정하고 동시에 증폭시킨다. 죽음을 기리는 장례식장이지만 고인과 그의 가족이 쌓아온 사회적 자본이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자리로 기능하는 것이다.

6. 화환만은 아니다. 특정 장례식장의 평판이나 인지도, 해당 공간의 물리적 특성, 조문객의 규모와 사회경제적 구성, 장례를 이끄는 인물/기관의 영향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회경제적, 문화적, 계급적 지표로 작용한다.

7. 이번 논란으로 돌아가 보자. “(주) 개똥전자 대표이사 홍길동”과 “대통령 홍길동”에서 ‘(주) 개똥전자 대표이사’와 ‘대통령’은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다. 기호학적 측면에서 한 가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이 둘의 위치가 같다고 해서 그것이 가지는 의미의 무게도 같을 수 있는가? ‘대통령’이 박힌 화환이 공간을 점할 때 그것을 받는 상대는 어떻게 위치지어지는가? 그렇게 대통령과 상대에 의해 점유된 의미를 시민들은, 여성들은, 피해자들은, 동료 정치인들은, 언론은 어떻게 인지하게 되는가? 다시 강조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의도’가 아니라 ‘효과’이며, ‘효과’의 영역은 당사자들의 ‘선한’ 의도로 제어하거나 판단될 수 없는 것이다.

8. 논란에서 잠시 바깥으로 나와 보자. ‘예를 갖추는 방식으로서의 화환’은 관습을 충실히 따른다. 쉽게 말해 하던 대로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것은 예를 갖추는 방식에 대한 상상력의 지독한 빈곤을 드러내지는 않는가? 의도와 관계 없이 화환이 갖는 물성이 발현하는 효과에 무지한 선택은 아닌가?

9. 이번 ‘사건’에 대한 각자의 판단은 다를 것이다. 아니, 그게 무슨 사건씩이나 되느냐고 할 분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한평생 화환 한 번 보내지 않고도 충분히 예를 갖추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지위와 이름을 전시하지 않아도 충분한 사람들 말이다.

리터러시 교육의 또 다른 목표

지식의 확산과 공유가 쉬워질 수록 이해의 폭과 깊이도 커진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오해의 폭과 깊이 또한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보가 끝없이 늘어나도 인간의 두뇌가 갖는 역량은 상수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이해력과 ‘오해력’이 손에 손을 잡고 쑥쑥 커가는 동안 개인은 한없이 작아진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으나, 더 많은 것들을 모르게 되었다. 우리의 앎의 세계는 커진 것 같지만 불확실해졌다.

지금 리터러시 교육의 주요 과제는 다양한 정보를 이해하고 선별하고 종합하고 활용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으로 요약된다. 마치 그 모든 것들을 소화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지식정보역량을 키움과 동시에 자신의 앎이 가지는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게 하는 것.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부족함에 대한 성찰 속에서 소통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 시대 리터러시 교육의 주요 과제로 설정되어야 한다.

#삶을위한리터러시

영문 학술 프리젠테이션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제가 프리젠테이션에 대해서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이 점이/이 연구가 정말 중요하다”라는 점을 청중들에게 알리는 방식입니다. 프리젠테이션이 그냥 이력서에 한 줄 올라가는 발표가 아니라 자기 삶에서, 학계에서 나아가 인류에게 정말 중요한 이슈라는 것을 설득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던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교육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발표를 시작하곤 합니다. 인상적인 인용구와 해당 분야의 기념비적 연구를 가지고 시작하는 전략도 나쁘지 않은 것 같구요.

두 번째는 데이터입니다. 자기 연구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외쳐봐도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프리젠테이션은 재미도 힘도 없습니다. 처음에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는 데이터가 없어서 고생했는데, 논문을 거의 완성할 때쯤 되니 보여줄 것들 중에서 고르는 것이 힘이 들었습니다. 저는 “강한 인상/확신을 줄 수 있는 데이터 두세 가지를 보여주는 간결한 비주얼”로 발표를 채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많은 데이터를 보여주려다 보면 발표가 아닌 논문이 되어버리고 청중의 집중력도 급속히 떨어지게 되니까요.

즉 두 가지가 갖춰진 프리젠테이션은 기본은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많은 문헌들을 잘 정리해서 표와 차트로 보여준다거나, 발표 후 자신의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도입했다면 이를 통해 다룰 수 있는 다른 영역 혹은 데이터를 강조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다시 강조하자면 “이게 나에게, 학계에, 우리 사회에 중요하거든요?” 아울러 “왜 중요한지 이 데이터를 보면 확실히 아시겠죠?”라는 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이제 (그닥 좋아하는 용어는 아니지만) 프리젠테이션을 조직하는 ‘스킬’의 측면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서는 발표자료에 대해 충분한 지식이 있고, 관련 용어를 숙지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어떻게 영어로 발표를 이끌어 나갈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제가 생각해 본 전략은 최근 쉽게 구할 수 있는 다양한 동영상 강의를 일종의 모델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TED.com에 올라와 있는 중 Pamela Meyer의 “거짓말장이 잡아내는 법”이라는 강연을 예제로 사용하겠습니다.

1. 시작에 임팩트있는 진술과 유머를 섞어라.

“Okay, now I don’t want to alarm anybody in this room, but it’s just come to my attention that the person to your right is a liar. (Laughter) Also, the person to your left is a liar. Also the person sitting in your very seats is a liar. We’re all liars. What I’m going to do today is I’m going to show you what the research says about why we’re all liars, how you can become a liespotter and why you might want to go the extra mile and go from liespotting to truth seeking, and ultimately to trust building.”

먼저 웃음을 이끌어내기 위해 “지금 딱 보니까 너 오른쪽에 있는 사람 거짓말장이네?” 라는 말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현장에 모인 청중들, 나아가 모든 인간에 적용하죠. 처음 웃고 시작하는 건 프리젠테이션에서 정말 효과적입니다. 자연스런 웃음으로 순식간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시작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거죠. 하지만 단순한 웃음을 유도하는 게 아니라 발표의 주제가 우리 각자 또 사회 전체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을 명확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Today I’m going to … 라는 구문을 통해서 오늘 할 이야기를 단도직입적으로 전합니다. 이 문장은 전체 프리젠테이션의 주제를 담고 있는 문장이면서 자신의 일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ultimately to trust building) 문장이기도 하죠.

2. 아래에 내려가면 여러 가지 연구를 언급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On a given day, studies show that you may be lied to anywhere from 10 to 200 times. Now granted, many of those are white lies. But in another study, it showed that strangers lied three times within the first 10 minutes of meeting each other. (Laughter)”

이 부분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발표자가 소개하려는 연구를 매우 간결한 문장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러 연구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순간 프리젠테이션은 지루해집니다. 자기가 하려는 이야기와 관련된 내용만 최대한 간결하게 추려서 소개해야 하고, 그것이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프리젠테이션은 데이터 주석 data commentary 이 아니고 이야기하기 storytelling 이라는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데이터와 결과는 스토리텔링의 주요요소로 기능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이번에는 특정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부분을 봅시다.

“Now this brings us to our next pattern, which is body language. With body language, here’s what you’ve got to do.”

앞서 발표자는 프로이드의 말을 통해 우리의 말 speech 과 그에 숨겨진 심리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위의 문장을 사용하여 제스처에 관한 논의로 넘어가죠.

이 부분에서 프리젠테이션을 보시다가 부분 부분을 엮어주는 표현들에 주목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Now we can move on to … 나 Given this situation/data 같은 식의 표현을 쓰실 수도 있고, On the contrary, on the other hand 등 역접을 나타내는 어구를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This is just a part of the story, though. 라면서 좀더 넓은 논의로 나아가실 수도 있고, Is this really a universal pattern?과 같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식의 표현을 쓰든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가 넘어갈 때 뚝뚝 끊기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프리젠테이션을 만드는 것은 영화에서 좋은 편집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입니다.

4. 다음으로 질문을 통해 청중과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부분을 봅시다.

“Now we’re going to look at the hot spots. Can you tell what’s happening in a conversation? Can you start to find the hot spots to see the discrepancies between someone’s words and someone’s actions? Now I know it seems really obvious, but when you’re having a conversation with someone you suspect of deception, attitude is by far the most overlooked but telling of indicators.”

우선 질문을 던지는 전략은 효과적이지만 매우 위험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너무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건 프리젠테이션을 어색하게 만듭니다. (청중 반응: 뭐 어쩌라구? 그거 계산하려면 수퍼컴퓨터 써야 되겠네.) 너무 안이한 질문은 ‘뭐 저런 질문을 던지고 있냐. 다 아는 거잖아.’와 같은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죠. 따라서 발표하시는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발표 내용을 이해하면 충분히 답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거나, 상상과 추측이 적극적으로 발동되는 질문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5. 다음으로 초반에 제시한 아웃라인을 언급하는 부분을 봅시다.

Now we’ve talked a little bit about how to talk to someone who’s lying and how to spot a lie. And as I promised, we’re now going to look at what the truth looks like.

이건 위에서 설명드린 3번과 비슷한 기능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초반에 언급했던 전체 강연의 내용 및 구조를 언급하면서 넘어가고 있지요. 청중들에게 지금 발표가 어디 있는지(where we are)를 알려주면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면 전체 흐름을 놓치지 않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발표자는 청중들을 새로운 여행지로 이끄는 가이드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면 좋을 것입니다.

6. 마지막 단락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져야 합니다.

자 마지막 문단을 한 번 볼까요?

When you combine the science of recognizing deception with the art of looking, listening, you exempt yourself from collaborating in a lie. You start up that path of being just a little bit more explicit, because you signal to everyone around you, you say, “Hey, my world, our world, it’s going to be an honest one. My world is going to be one where truth is strengthened and falsehood is recognized and marginalized.” And when you do that, the ground around you starts to shift just a little bit.

And that’s the truth. Thank you.

“사람들이 거짓을 인지하는 과학을 보고, 듣는 기술과 결합할 때, 그들은 자신을 거짓말에 동조하는 것에서 제외시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아주 조금만 더 확실히 표현하는 길을 시작하세요 “이봐, 내가 사는 세상, 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직한 세상이 될거야 내 세상은 진실이 강해지고, 거짓은 밝혀지고 무시되는 세상으로 바뀔거야 그리고 여러분이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아주 살짝 바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진실입니다 감사합니다.”

TED의 한글 번역이 완전히 매끄럽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 훌륭한 메시지입니다. 저는 좋은 발표는 정보와 함께 영감을 주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단락에서 깊은 울림을 이끌어 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프리젠테이션 막판까지 자잘한 데이터를 제시하느라 마지막에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시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상으로 TED talk 한 꼭지를 가지고 학술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저의 짧은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TED 를 시청하시거나 기타 강의를 보실 때는 발표자가 주제의 중요성을 어떻게 개괄하는지, 관련 분야의 지식과 연구를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어 전달하는지, 토픽과 토픽 사이의 전환에서 사용하는 전략은 무엇인지, 프리젠테이션의 개별 꼭지들을 전체 이야기 속에 어떻게 자리매김하는지, 결론에서 청중들을 감동시키는 전략이 무엇인지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강의의 내용만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각각의 요소에 해당하는 언어 요소들을 주의깊게 보셔야 하겠죠.

참고영상
https://www.ted.com/talks/pamela_meyer_how_to_spot_a_liar

#학술프리젠테이션 #영어로논문쓰기

“be (a)”, “have”, 그리고 범주체계

1. 인간은 세계를 다양한 범주(category)로 구획한다. 인간발달의 가장 중요한 축으로 범주화 능력의 확장을 꼽을 수 있다. 언어는 인간의 범주체계를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2. 범주들은 일련의 체계를 이룬다. 해당 체계를 구별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종의 ~이다”의 의미를 지닌 ‘kind of-relations’와 “~의 부분이다”라는 뜻을 지닌 “part of-relations”이다.

3. 모두 알다시피 be와 have에는 다양한 뜻이 있다. 이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범주의 관계를 나타내는 용법을 들 수 있다. 범주 분류표(taxonomies) 상의 다양한 개체들이 갖는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4. 우선 be 동사는 부정관사 a(n)과 결합하여 ‘kind of-relations’를 표현한다. 예를 들면 “A train is a means of transport.”라고 말함으로써 기차가 교통수단의 한 종류임을 뜻할 수 있다.

5. 이에 비해 have는 ‘part of-relations’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동사다. 예를 들어 “A car has four wheels.”라고 말함으로써 네 개의 바퀴가 차에 일부라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

6. 이처럼 영어에서 have와 be는 범주의 체계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동사라고 할 수 있다.

7. 재미있는 것은 범주의 위계(hierarchy) 상에서 기본적인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뭘 타고 왔느냐?”고 할 때 “차 타고 왔지.” “버스타고 왔지.” “오토바이 타고 왔지.” “비행기 타고 왔지.”등으로 답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상황이나 화자의 성향에 따라서 “4륜구동 세단을 타고 왔지.”라든가, “배기량 300CC의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왔지”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이것은 질문하는 사람이 원하는 정보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8. 여기에서 ‘차’, ‘버스’, ‘오토바이’, ‘비행기’등을 보통 ‘기본 범주(basic-level categories)’라고 부른다. 기본 범주에 해당하는 어휘는 보통 (1) 자주 쓰이고, (2) 간결하게 표현되며, (3) 다양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고, (4) 이른 시기에 습득된다.

9. 정리하면, 언어는 개념의 체계를 부호화(encode)하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로 ‘종류’와 ‘부분’을 들 수 있다. 영어에서 전자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방식으로는 ‘be a’ 구문의 사용, 후자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방식으로는 ‘have’ 구문을 들 수 있다. 개념체계 중 가장 기본적인 레벨에 해당하는 용어를 기본범주 어휘라고 한다.

이상은 Günter Radden & René Dirven. 2007.<Cognitive English Grammar>. John Benjamins Publishing Company. Chapter 1. Categories in thought and language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인지언어학이야기 #be #have #기본범주

일상스케치: 성실하게 흔들리다

Posted by on Jun 16, 2020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1. “가끔 눈 앞에 닥친 과제들이 제 능력에 비해 너무 벅차게 느껴질 때마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교수님께서 대학원 생활에 대해 언급해주셨던 내용을 떠올리면서 현재에 집중할 힘을 얻게되는 것 같습니다. 늘 대학원생의 마음을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 대학원생의 메일을 받고 오늘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음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있다.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기쁜 건 기쁜 거니까. 나는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성숙한 마음으로 받아주는 이들이 있어 기쁘고 감사하다.

2. 보통 독서가 쌓일 수록 책읽는 속도가 빨라진다고 하던데 나는 왜 반대인가. 가면 갈수록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의 무게가 버거워 속도를 내기 힘들다. 원래 느린 속도에다가 더 느려지니 집중해서 읽어도 슬로리딩이 절로되는 장점(?)이 있구나.

3. 자신의 행위에 과한 가치나 무게를 두는 것은 어리석다. 하지만 역사라는 장강은 그 어떤 행위도 모두 담고 흐른다. 심지어는 지금 내가 올리는 하잘것 없는 포스트 하나조차 그렇다. 우주의 먼지만큼도 안되는 무게의 글이지만, ‘먼지만큼도 안되는’ 무게를 지니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4. Gunther Kress는 이런 면을 염두에 두고 사회적 상호작용은 늘 변화를 가져온다고(transformative) 말했다. 우리가 감지하든 못하든 말하고 답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동안 세계는 말할 수 없이 세밀하게 변하고 그것이 쌓여 가시적 변화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내 말이 무슨 대단한 가치가 있겠는가. 하지만 내 삶의 영역에서 내가 점하는 영역, 내가 참여하고 있는 공동체, 내가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를 고려했을 때, 더도 덜도 않고 딱 ‘나만큼의’ 무게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삶을 또 나와 긴밀히 연결된 상대의 삶을 티끌만큼 바꿀만한 힘이 있다.

5. 그 힘을 과대평가하지도 과소평가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역량. 그것이 현사회의 리터러시 교육의 중요한 화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말을 과도하게 신뢰하고 휘두르지만 누군가는 열패감으로 그 어떤 말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것은 사회 공동체의 실패다. 그런 면에서 자기성찰의 실패는 민주주의의 실패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6. 최근 본 말장난 중에 와닿았던 것. ‘‘weapons of mass distraction’ (Weapons of mass destruction(대량살상무기)에서 온 말장난)

e.g. Facebook is one of the most powerful weapons of mass distraction.

알면서도 늘 당한다. 오늘도 참 열심히 했구나.

7. 과연 다음 학기 오프라인 수업이 가능할까. 지금 추이로 봐선 다음학기도 내내 온라인 수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슬프고 또 한편으로는 담담하다.

얼마 전에 마스크 끼고 연속 2시간 넘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솔직히 힘들었다. 그래도 학생들은 보고 싶다. 마스크 쓰고 손 잘 씻고 조금 멀리서 보면 될 것 같기도 한데.

8. 그러고 보니 코로나 상황이 조금씩 악화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래도 여름되면 좀 괜찮아지지 않겠어?”

왠걸. 여름에 2차 유행이 오게 생겼다.

9. 인간이 침묵한다 해서 세상이 침묵하는 건 아니다. 인간이 말한다고 해서 우주가 듣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때로 자신의 침묵을 혹은 대화를 과대평가한다.

나 또한 말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서인지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 영어교육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향한 한 학자의 일갈이 떠오른다.

“영어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는 건, 영어교육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지.”

정말 그러하다.

‘내가 뭔데’라는 생각과 ‘나라도 뭘 좀’이라는 생각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마음.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흔들린다.

10. 인생 쉬운 게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쉽게 살려 하지 말자.

#일상스케치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언어의 경계, 혁신, 그리고 진화

1. A가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상대는 미국에서 오래 거주한 한국인 2세 미국 시민권자 선배다. 평상시 영어를 쓰는 사람이고, 인사를 한 A와도 늘상 영어로 대화했다. 하지만 순간 장난기가 동한 A는 ‘한국 핏줄’의 동질성을 발동시키면서 유머스런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안녕하세요’와 고개숙이기, 손흔들기를 동시에 시전했다. 이것은 한국어인가 영어인가?

2. A가 B를 만났다. 둘은 경상도 출신 친구인데 우연히도 서울의 모 영어학원의 영어회화 수업을 동시에 수강하게 되었다. 첫 번째 수업시간, A가 B에게 “How have you been?”이라고 말을 건넸다. B는 장난스레 “I have been so miserable.”이라고 답했다. 문제는 B의 발화가 전형적인 경상도 억양을 띄고 있었다는 것이다. 순간 빵 터진 둘은 한참을 웃었다. 이 경우 B가 발화한 것은 영어인가 한국어(경상도 방언)인가? 둘의 ‘빵터짐’은 영어 문장의 내용에 대응하는가, 경상도 억양에 대응하는가, 아니면 이 둘의 절묘한 조합에 대응하는가?

3. A와 B는 중국인이다. 미국의 한 ESL 시간, 계속해서 A가 형용사 끝에 장난처럼 “的(de)”를 붙인다. 이에 질세라 B는 즉석해서 완료형을 나타내는 과거분사 뒤에 ‘了(le)’를 붙여 응수한다. 둘은 재미있어하며 히죽히죽 웃는다. 이들이 발화한 형용사와 과거분사는 영어인가 중국어인가?

4. ‘Untact’라는 ‘콩글리시’가 유행이다. 한국인들 다수가 이 말의 의미를 알아듣는다. 한 사람이 이 말을 영어로 생각하고 영미권의 원어민과 대화하면서 사용했다. 단어를 처음 들은 외국인은 속으로 ‘무슨 소리지?’했으나, 두 번째 ‘untact’를 듣고 이것의 의미를 알아챘다. 그리고 재치있게 자신도 ‘untact’라는 말을 차용하여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후 원어민은 한국인을 만날 때 웃으며 ‘untact’를 자연스럽게 섞어 쓴다. 이 영어 원어민이 차용한 ‘untact’라는 단어는 한국어인가 영어인가?

우리는 언어의 경계를 명확히 그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어 내에도 수많은 외래어가 들어와 있고, 영어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그 어떤 언어도 ‘순수하게’ ‘섞이지 않고’ 쓰이거나 발달하지 않는다.

우리는 맥락과 상대에 따라 자신이 갖고 있는 수많은 언어자원을 동원해 언어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조립된 산출물 중에서는 전형적인 것도 있고, 약간의 혁신을 가미한 것도 있고,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언어도 있다. 다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만난다면 조합의 혁신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통번역기의 발달로 더욱 가속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개인의 머릿속에 있는 언어자원에 더해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타 언어자원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비주얼과 제스처 등이 결합되는 방식도 점점 다양해진다. 순간순간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단단한영어공부 #translanguaging

Listen to Me

1.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에는 오로지 텍스트에만 천착하는 이해를 경계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계와 맥락을 함께 봐야 하는데 우리는 텍스트만을 바라보기 일쑤죠. 그것도 자기만의 방식으로요. 관계도 맥락도 망각하고 상대의 텍스트를 소화하기 보다 자신의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읽기와 듣기가 적잖습니다.

2. 처음 “Listen to me.”라는 표현을 배울 때 ‘Listen이 자동사이니 to가 붙어야 한다. 그래서 ‘내 말을 들어봐’는 ‘Listen to me.’가 되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나중에 보니 우리말에서는 보통 ‘내 말’인데 영어에서는 ‘me’라는 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한국어의 목적어는 ‘말’인데 영어의 목적어는 인칭대명사더라고요.

3. 여전히 사람들을 듣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말을 듣는 저를 발견합니다. 게다가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듣지 못하고 듣고 싶은 내용만을 듣는 것이죠. “Listen to you.”해야 하는데 “네 말만 듣게’ 되고, 상대의 말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Listen to myself.’하게 된달까요.

4. 단지 상대의 말이 아니라 상대를 들을 수 있다면, 그런 리터러시 교육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험은 늘 “다음을 듣고 질문에 답하시오”이지만, 삶에서는 “상대의 삶을 보듬고 질문을 던지시오”가 되길 바랍니다.

5. 이것은 반성문이기도 합니다. 쉽지 않네요. 하지만 다시 새기면서 어지러운 마음을 비워냅니다.

이것은 언어학과 전혀 관련이 없는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입니다. ^^;;

‘성역없는 수사’ 등 단상

Posted by on May 5, 2020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1. “성역없는 수사를 약속했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이 사회에 여전히 성역이 존재함을 말해준다. “수사하겠다”가 “성역없이 수사하겠다”와 같은 뜻이 되는 날이 어서 오기를. 그러고 보면 과한 결심이 필요치 않은 담백한 사회가 좀더 잘 굴러가는 사회일지 모르겠다.

2. “성역”은 성스러운 곳이기에 수사기관의 영향이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수사의 관점에서 보면 ‘성역’은 성스러움과 전혀 관련이 없다. 그냥 범죄자들의 활동영역이다. “성역”이 남아있다면 성스러운 곳이 남아있다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묵인한다는 뜻이 된다.

3. 이제 국민의 세금은 왠만하면 “혈세”라고 표현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 힘들게 노동하는 유리지갑들이 내는 세금과 부동산과 임대수익을 주수입원으로 하는 이들이 내는 세금이 똑같은 혈세인가. 잘 모르겠다.

4. 얼마간 ‘확찐자’ 말장난이 유행했다. 아무런 악의 없는 농담이었고 그 말을 쓰는 분들에 대해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확진자로서 그런 글들을 볼 때 어떤 마음일까 생각하면 마음이 개운하진 않았다.

5. 사회적 파장을 일으켜 언론을 통해 사과하는 사람들이 “고개를 숙여 사과드린다”라는 표현을 종종 쓰는데, 진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후 깊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 또한 드물었다. 이때는 ‘고개숙여 사과한다’라는 말이 진심을 담은 말이 아니라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제스처일 뿐이다.

6. 새로운 책을 <유튭책집>이나 <유책집>으로 부르는 독자들을 여럿 보았다. 경제적인 명칭이긴 하나 입에 붙지는 않는다. 특히 후자의 줄임말은 왠지 내가 큰 잘못을 저질러서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7. ‘번번히 발목을 잡는다’, ‘발목이 잡혔다’는 표현을 볼 때마다 실제로 발목 잡혀본 경험이 있는 인구 비율이 얼마나 될까 궁금했진다. 코미디에서 이걸 실사로 구현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먼산)

8. ‘넌 이제 아웃(out)이야’라고 말하며 점퍼를 옷장 안(in)에 던져넣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금배지 언박싱’에 관하여

말이나 행위를 가져오는 것은 그저 ‘선택의 자유’일까

1. ‘언박싱’ 담론이 의례의 세계에서 점하고 있는 영역이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상품의 영역, 자신의 구매를 보여주는 영역, 때로 누군가의 제품을 홍보하는 영역이다. 언박싱은 기본적으로 개인과 상품,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이라는 네트워크에서 작동한다. 언박싱 영상의 생산자와 시청자는 재화를 통해 매개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사적 영역에 속한다.

2. ‘국회의원 금배지’가 점하는 담론의 영역이 있다. 기본적으로 배지는 국민에 의해 선출되어 그것을 착용한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지만, 자주 ‘국민을 내려다보는’ 태도를 함의한다. ‘금배지 좀 달았다고’와 같이 정치인에 대한 못마땅함을 표현할 때도 종종 사용된다. 그렇게 금배지는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민주정치의 표징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금배지는 공적영역의 담론 안에 위치하여 대표자로서의 정치인을 상징한다.

3. 서로 다른 담론의 영역들이 교섭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말은 섞이고 의례는 ‘선을 넘는다’. 교회 내에서 랩뮤직의 사용은 ‘상상할 수 없는 일’에서 ‘신박한 예배 형식’이 되었다. 도덕적 영역과 경제의 영역이 합쳐져 ‘착한 가격’을 낳았고, 이는 또 다른 영역과 만나 ‘착한 임대인 정책’을 만들어 냈다.

4. 담론간의 선을 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해서 모든 가로지르기를 긍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교육의 일주체인 학습자가 ‘소비자’가 되는 것을 당연하다 여길 수 없으며, 비상시의 온라인수업을 ‘미래교육’이라 표현하는 것에 손뼉칠 이유도 없다. 담론이 섞이는 순간 새로운 가능성이 탄생하지만, 그 가능성은 희망일 수도, 타락일 수도 있는 것이다.

5. 그런 면에서 정치의 영역에 있는 ‘금배지’를 ‘언박싱’하는 행위는 위태롭다. (물론 이걸 ‘재미있다’고 표현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정치인이라면 공공의 영역을 상징하는 금배지를 개인과 상품 담론의 최전선에 있는 언박싱이라는 의례에 얹어놓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구시대의 끝자락에 머무는 일일 수 있지만 말이다.

담론을 섞는 일은 창조적인 행위일 수도 상식의 파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점하고 있는 사회문화적 위치에서 어떤 가로지르기가 용납되고 요청되느냐를 판단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많은 시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가로지르기의 예술’에 능통해야 한다. 거침없이 가로지르되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덧. 이 글을 쓰고 나니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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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키워드는 ‘윤리’입니다. 보통 윤리라고 하면 거창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우리가 단어 하나하나를 선택하는 과정에 윤리적 측면이 개입하죠. 얼마 전 온라인상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작명이 있었어요. 바로 ‘버닝쑨대국밥집’과 ‘버닝선대인’인데, 국밥집과 프로그램 이름을 저렇게 지은 거예요. 여기에서 타인의 말을 자기 말이나 글로 가져올 때의 윤리를 생각해볼 수 있어요. 아마도 저 이름을 택한 사람들은 주목받는 말장난을 원했겠죠. 사람들의 흥미를 일으켜 한 번 더 쳐다보게 하는 효과를 노리면서요. 그런데 여기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복잡다단한 세계에서 말만 달랑 떼어오려 했다는 점이에요. ‘버닝썬’이라는 말이 태어난 자리의 착취와 잔혹함, 분노와 고통은 아랑곳없이 말의 힘만을 가져오려 한 거죠.

저는 이런 행위가 윤리적이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말은 사전 위에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 진공 상태에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인간과 관계 속에 뿌리박고 또 투쟁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 말 주위로 권력과 욕망, 아픔과 분노가 교차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말을 가져오고 이름을 정하는 데 필요한 윤리는 세계를 만나고 해석하는 윤리이고, 말이 자라난 사회정치적 토양에 대한 살핌의 윤리이며, 무엇보다도 그 말로 엮여 있는 사람들에 대한 윤리죠. 삶과 세계를, 거기 살고 있는 감정과 모순을 지워버리고 말만을 가져다가 자신의 이익에 복무시키는 행위는 결코 가볍지 않아요. 이건 단순히 말실수라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망각, 맥락에 대한 몰이해, 나아가 자기중심성으로의 한없는 함몰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렇기에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 있어요. 러시아의 문학평론가이자 이론가인 바흐친이 간파했듯이 우리의 말은 원래 누군가의 말이었고 우리의 조어는 결코 완벽한 창조가 아니라는 점, 말이 우리 곁에 올 때 세계가, 사건이, 무엇보다 사람들의 피땀과 눈물이 함께 따라온다는 사실이에요. 말을 쓰는 것은 늘 삶에 잇대는 행위이고, 새로운 세계를 지어가는 일이에요. 그런 면에서 리터러시의 습득은 책임 있는 윤리적 주체로서의 성장과 떼어놓을 수 없어요.” (265-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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