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re-search

Posted by on Aug 19, 2017 in 과학,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re-search n. 다시-찾음. 내가 알고 있는 바, 상식, 혹은 기존 가설이 옳다는 가정을 넘어 새로운 목적지를 설정하고 이를 찾아가는 일. 목적지에 도달하면 지나온 길을 뒤로 하고 또 다른 탐험에 나서기. 계속 찾는 과정. 언제까지나 ‘re-‘에 천착하는 일.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한국사회에 아카이빙이 있는가?

Posted by on Aug 14,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지난 겨울에서 이번 봄까지 전개된 촛불혁명 관련 글들을 살펴보면서 매번 던지는 질문을 다시 하게 된다.

“한국사회에 사료보존(archiving)이 있긴 한가?”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역사는 늘 생성중이다. 하지만 자료로 보존되지 않는 역사는 잊혀지고 왜곡된다. 디지털 자료가 넘쳐나는 시대의 자료도 데이터베이스로 쌓지 못한다면, 다른 시대야 더 말해 무엇하랴.

혁명만큼 중요한 것은 혁명에 대한 기록과 기억이다. 나아갈 힘은 돌아봄에서 나온다.

쉼과 불안

Posted by on Aug 13,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뭐든 배워두면 언젠가 다 도움이 된다”는 말을 종종 접한다. 배워서 도움이 된 경우만 선별적으로 기억하거나 함부로 배운 것의 폐해를 망각해서, 그도 아니면 상대를 설득해야 하는데 딱히 괜찮은 논리가 없어서 하는 말 아닐까. 중단없는 자기계발을 권하고 휴식의 투자대비수익을 따지는 사회에서 저 말은 ‘쉬지 말고 일하고 공부하라’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아니다. 잘 쉬고 잘 노는 게 최고다. 쉼없는(rest-less) 삶은 말 그대로 불안한(restless) 사회를 낳는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문장틀 클리셰, 그리고 관료제

문장을 이루는 다양한 구성요소를 설명할 때 단어, 구, 문장 외에 “문장틀(sentence frame)”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예를 들어 “It is true that…. but”이나 “If ….. would/could” 등과 같이 몇몇 어구의 조합이 문장의 통사적/의미적 틀거리를 이루는 경우를 가리킨다.

갑자기 이게 왜 생각났느냐 하면, “…하면서도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라는 어구를 보았기 때문이다.

언어교육 교과서에서 문장틀이 언급되면 학생들에게 정치인들의 사과문이나 변명을 위한 기자회견, 혹은 관련 기사를 분석해 보라고 해야겠다. 덤으로 비정상적으로 높은 빈도의 클리셰 또한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문장틀과 클리셰, 관료제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방식.

따분하다, 참.

크리스토퍼 놀란 vs. 드뇌 벨뇌브

Posted by on Aug 8,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놀란이 관객을 가보지 못한 세계로 밀어 넣는다면, 벨뇌브는 마음 깊히 숨겨졌던 이야기를 세계화한다. ‘가 보았다’와 ‘겪었다’의 차이라고나 할까. 전자는 “압도적인 세계 속의 나”에, 후자는 “나와 또다른 나(들)의 대치(confrontation)”에 방점을 찍는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대화

Posted by on Aug 2,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대화 [對話] 서로 마주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대화의 기술’은 대개 말하기(話) 만을 다룬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대함(對)일 지도 모른다. 마주봄 없이 말하는 사람들 속에서 말은 거처를 잃고 허공에 흩어진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인간을 정의한다면?

Posted by on Aug 1,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인간에 대한 정의: “가장 광범위한 맥락 하에 놓이는 존재”

“인간은 OO적 동물이다”라는 간명하지만 별 의미 없는 정의들이 있다. 사실 정의라기 보다는 강조하고 싶은 면을 부각시키는(‘수사학’이라기 보다는 ‘말장난’에 가까운 의미의) 레토릭에 가깝다. (호모 루덴스라고 하는데 놀 시간이 없어. 호모 파베르? 뭐 고장나면 눈물을 머금고 바로 수리기사님을 부르지.)

인간이 특별히 잘나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굳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 ‘정의’해 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지 잠시 생각해 봤다. 딱부러진 답은 나오질 않았지만, 쓴 시간이 아까워 조금 억지스럽게 짜낸 답은 이렇다.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 복잡한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 존재이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종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두뇌용량의 증가 및 문명의 발전 등으로 인해 다양한 사회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기술적 세계를 창조하고, 이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제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 복잡하게, 다양한 세계와 조우하며 살아간다. (<비밀의 숲>의 여운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으나, 세상에서 고작 몇 명 읽을 논문을 붙잡고 늘어진 1인. 오늘은 강력한 더위의 충격으로 말 그대로 몸이 늘어난 듯하다. 세기말에는 데카당스에, 세기초에는 새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에 고뇌한다. 정말 참 내 별 걱정 다하고 산다.)

나의 사고와 행동은 생물학적 종으로서의 인간 역사에 기반한다. 한국사회의 특유한 역사에서, 서울이라는 시공간이, 부모형제를 비롯 인생길에서 만난 적지 않은 이들이 나의 뇌를 만들어 왔다. 나아가 읽고 본 책과 영화 등에서, 여행에서 보고 느낀 바에서, 미디어를 통해 접한 역사적 사건에서, 다양한 신화와 이야기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영향받고 있다.

즉, 우리 모두는 각자가 태어나서 자란 환경에 따라 수많은 요인들의 영향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받고 있다. 우리의 두뇌-몸에 새겨진 기억은 인지, 감정, 판단, 행동, 의지에 영향을 준다.

우리는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데 있어서 광범위한 맥락 하에 놓인 존재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시간축, 동시대 다른 존재들과의 교류, 밤하늘을 바라보고 그 너머를 응시하는 우주적 상상력의 영향을 모두 받는다.

결국 굳이 인간을 ‘정의’해보라 한다면 “누구보다 많은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 존재” 즉, “가장 광범위한 맥락 하에 놓이는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무언가 할 수 있음을 특성으로 갖는 존재가 아니라, 거대한 시공간 하에 놓여지는 존재 말이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정의 아니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부각시키는 얄팍한 말장난이라고요.)

 

‘다름이 아니라’와 글쓰기 교육

“다름이 아니오라”는 메일에서 피해야 할 어구로 종종 지적된다. “다른 게 아니고” 같은 표현들은 가급적 피하라는 것. 생각없이 나오는 군더더기 표현으로 정보가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저 표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다름이 아니오라”는 메일의 내용이 아니라 문화적 사고패턴에 대한 정보를 담기 때문이다. 내용상 필요없을 지 모르지만 문화적으로는 통용되는 메시지 전달의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메시지가 아닌 메타-메시지의 영역이다.

유난히 ‘있잖아’, ‘그거 알아?’ 등의 표현을 자주 쓰는 친구가 있다. (그런 친구 하나쯤은 다 있지 않나.) 이들은 그 자체로 특정 내용을 담고 있진 않다. 그래서 이런 말장난을 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실행에는 옮기지 않는다. (대신 써본다.)

“있잖아.”
“응 있지. 분명 있어.”

“그거 알아?”
“그거? 이건 아는데.”

“있잖아”가 전달하는 내용은 없다. 하지만 화자가 “있잖아”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청자는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있잖아’라는 말을 짜증스러워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오랜 기간 특정 문화 속 대화를 통해 사고구조를 형성해온 사람들은 “있잖아”를 듣는 순간 뭐가 있는지 순간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다름이 아니오라”는 상대방이 메시지를 읽기 전 짧은 준비를 할 여지를 준다. 뒤에 나오는 내용이 상대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하거나, 업무를 요청하거나, 불쑥 질문을 던지거나 하는 일일 수 있다는 신호(signal)다.

그렇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일은 무례하게 비춰질 위험을 무릅쓰는 꼴이다. “다름이 아니오라”는 진부하고 정보성도 떨어지지만 이런 위험을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하는 전략으로 유효하다. 겨우 두 단어지만 말이다.

“다름이 아니오라”를 쓰지 말라고 할 때 “안좋으니 쓰지 마세요”라고 말하기 보다는 이 구절이 여전히 우리 곁에서 떠나지 않는 문화적, 인지적 이유를 설명하면 어떨까? 안좋으니 쓰지 말라고 하기보다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나눠보면 어떨까?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느냐고,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핀잔만 듣게 될까?

하지만 때로는 ‘어쩌라는 것’ 보다는 ‘그렇다는 것’이 더 나은 글쓰기 교육일지 모른다. ‘~하라’ / ‘~하지 말라’만 난무하는 글쓰기 교육은 테크닉을 주고 생각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다름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Photo by Dung Anh on Unsplash

꼭 뵙고 싶습니다!

Posted by on Jul 27,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꼭 뵙고 싶습니다.”

이렇게 설레는 멘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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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신청 정원 초과시 학생들의 메일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강사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거의 모든 메일에 부사 ‘꼭’이 등장한다. 위의 문장도 어느 학생의 메일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다.

내가 수업을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학기 말이면 그런 말은 나오지 않는다. 가끔 ‘꼭 다시 연락하겠다’는 친구들도 있지만 인연을 이어가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연락하고 만나고 지내는 학생들은 큰 인연이지 싶다.

이렇게 2학기가 성큼 다가왔다. 학생들을 보고 싶지만 방학을 보내고 싶진 않다. 딜레마는 언제나 시간이 해결해 준다.

아무말 대잔치

Posted by on Jul 21, 2017 in 강의노트,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1. Literally는 ‘말 그대로’이지만 비유적으로 사용될 때가 더 많은 듯하다.

예: “It literally killed me.” (<-안죽고 살아서 신나게 말하고 있음.)

2. ‘아무말 대잔치’를 제목으로 한 글들은 대개 읽을만하다. 아무말 대잔치는 진지하게 쓴 글 중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3. 유명인의 아무말 대잔치는 아무댓글 대축제로 급속히 발전한다.

4. “진실로”를 반복 사용한 수사 중에 예수의 말씀 빼고 쓸만한 얘기가 별로 없는 거 같다.

5. “It is true but…”, “I’m sorry but…” 등의 어구에서 “but”이 나오는 순간 앞의 ‘true’와 ‘sorry’의 가치는 땅에 곤두박질친다.

But은 진실이나 미안함보다 힘이 세다.

6. 내일 지방 강의가 있다. 진짜로 진짜로 자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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