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터러시

Posted by on Dec 4,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집필 | No Comments

‘뷰터러시 (viewteracy)’

오늘 독서모임에서 돌아오다가 생각난 말 “Viewteracy”. 활자중심의 읽기쓰기 능력을 나타내는 리터러시를 차용하여 ‘비주얼 리터러시’라고 쓰기 보다는, 비주얼 매체와 관련된 비판적, 창의적 능력을 통칭해 독립된 용어인 “뷰터러시”라고 써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뷰터러시’가 좀 없어보이긴 하는데요. 원래 처음에는 다 없어보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먼산)

#뷰터러시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한국은 한국영어교육의 중심

한국은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영어교육의 변방이 아니다. 한국은 한국영어교육의 중심이며 시작과 끝이다. 오히려 영미가 한국영어교육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종종 ‘영어’와 ‘영어교육’이 나의 일을 대표하는 단어라는 사실이 슬프다. 이 단어들이 지고 있는 어두운 힘과 세월 위에서 나를 짓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저들을 ‘삶’에 복속시키고 싶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이전과 다른 영어공부: ‘슬로 러닝(slow learning)’을 꿈꾸며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슬로 푸드’는 “패스트 푸드(fast food)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지역의 전통적인 식생활 문화나 식재료를 다시 검토하는 운동 또는 그 식품 자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슬로 리딩은 속독에 대응되는 말로 정보를 취하기 위해 책을 빠르게 읽어내는 속독이 아니라 책의 구절을 음미하며 다각도로 해석하는 독서법을 의미하죠. 속도와 마감에 쫓기는 현대인의 일상에서 먹는 행위, 읽는 행위를 바꾸어나가려는 슬로 푸드, 슬로 리딩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위의 표현들에 상응하는 의미로서의 “슬로 러닝”은 존재하지 않는 듯합니다. 여전히 학습의 만트라는 ‘빠른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많은 것을’이지요. 학습을 다루는 일부 심리학 분과에서 slow learning이라는 용어가 발견되지만 위의 ‘슬로 푸드’나 ‘슬로 리딩’에서 ‘슬로’가 갖는 함의를 지니진 않습니다.

삶을 위한 영어공부는 ‘느린 공부’를 지향합니다. 시험을 위한 영어, 스펙을 위한 영어를 넘어 읽고, 말하고, 곱씹고, 성찰하고, 소통하고, 반성하는 영어를 꿈꿉니다. 영어학습에서의 ‘슬로 러닝’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활동으로 나아갑니다.

첫째, 발음공부 즉 ‘소리내기’ 활동에 더해 ‘소리 느끼기’ 활동을 실시합니다. 안면의 근육과 혀의 움직임, 목의 떨림에 민감해져 봅니다. 소리와 이미지, 느낌을 연결시킵니다. 자음 모음을 구별하는 일을 넘어 소리의 자질 자체에 집중하는 듣기를 실시합니다. 코가 간질간질해지는 소리 내보기도 하고 목젖이 떨리는 소리를 골라보기도 합니다. 언어를 배우는 일은 언제나 소리에 감응하는 일임을 기억합니다.

둘째, 한 주에 수백 개의 단어를 외우게 하는 ‘단기 속성’ 학습 방식이 아니라, 단어와 단어, 단어와 나, 단어와 세계의 관계를 곰곰히 생각하며 사고의 지반을 다지는 ‘장기 숙성’ 단어공부를 지향합니다. 단어의 외연적 의미를 넘어 함의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한국문화와 타문화를 넘나들며 두 언어간의 어휘 네트워크 비교해 보기도 합니다. “의미있는 단어는 의식의 소우주”라는 러시아의 발달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의 말처럼, 말 속에서 세계를, 우주를 발견하는 힘을 기릅니다.

셋째, 의미의 단위로서의 문법을 배웁니다. 다양한 세계에 대응하는 조동사(modals), 세계를 감추는 수동태, 우주의 시간과 언어의 시간 등에 대해 생각하면서 문법과 세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합니다. 텅 빈 구조가 아니라 의미를 생산해 내는 잠재력으로서의 문법을 익혀갑니다.

넷째, 유창성(Fluency)은 그 자체로 지상 과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또박또박 자신이 원하는 말을 해내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천천히 말하기를 실천합니다. 빠른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과 함께 ‘답답할 정도로 느린’ 이야기를 경청하는 능력을 키워갑니다. 술술 말하지 못해도 마음을 전달할 수 있고, 조금 서툰 말 속에서도 감동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빠름에 대한 동경만큼 느림에 대한 인내를 키워갑니다. 능숙함에 경탄하는 만큼 조곤조곤한 대화에서 아름다움을 찾아갑니다.

다섯째, 언어능력의 성장을 갈망하듯 자신이 변화하는 모습을 고대합니다. 새로운 말들이 내 안에 쌓임과 동시에 나 자신이 새로운 존재가 되어가는 것을 목격합니다. 학습을 모니터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면을 응시하고 세계와 대면합니다. 말의 풍경이 바꾸는 세계의 풍경에 기뻐합니다.

이렇게 천천히, 조금씩, 오래, 함께 걸어갑니다. 전력질주가 아닌 돌아봄과 성찰로 나아갑니다. 농담과 유머, 상처와 희망을 나누며 오랜 벗과의 산책같은 시간으로 공부를 채워갑니다. 언어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삶의 속도로 언어를 제어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영어 속의 사회, 사회 속의 영어: 단어 속에서 세계를 만나다

인천공항이 청소노동자들에게 “VIP가 오면 화장실에 숨어라”고 요구했던 게 불과 2010년의 일이었습니다. 이후 국민의 공복을 자처하는 한 국회의원은 노동3권이 보장되면 툭 하면 파업할 것이라는 발언을 합니다.

이들 사건들을 접하면서 ‘클린(clean)’이란 단어에 담긴 세상, 그 안에 담긴 사람을 생각해 봤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문법 교육이 언어에만 집착한 채 언어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문법을 단순히 ‘언어의 규칙’이 아닌 ‘삶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방법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Clean의 개념적 의미

‘clean’을 형용사로 쓰면 “깨끗한”이고, 동사로 쓰면 “깨끗하게 하다”입니다. 여기에서 과거와 과거분사는 “cleaned-cleaned”로 규칙적으로 변화합니다. 이것이 기존에 우리가 어휘를 배웠던 방식입니다. 순수히 언어 내적인 기술이죠.
여기에 개념적인 내용을 조금 더할 수 있습니다. 형용사로서의 ‘clean’은 특정한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로, 대상이나 장소 등이 물리적으로 깨끗하다는 의미가 됩니다. 동사로 사용되면 특정 주체의 행위를 표현합니다.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동작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나아가 clean을 메타포로 쓸 수도 있습니다. 가령 “His record is clean. (기록이 깨끗하네. 즉, ‘전과가 없다’는 뜻)”과 같이 말입니다. 어떤가요? 이것은 언어와 개념을 연결한 해설입니다. 언어항목에 대한 단순 암기가 아니라, 그 언어가 담고 있는 개념적 내용을 다루죠.

‘Clean’의 사회적 의미: ‘깨끗하다’와 ‘청소하다’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어떤 공간이 깨끗(clean)하다는 것은 누군가가 청소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노동이 없이 스스로 깨끗한 공간은 없겠죠. 청결한 공항에는 청결함을 유지하는 노동자가 있습니다. 만약 노동자가 보이지 않는다면 뭔가 이상한 것이고요. 먼지가 쌓이고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자연의 법칙 속에서 질서와 청결을 유지하는 노동 없이 깨끗한 환경 속에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깨끗한’이라는 형용사는 ‘깨끗하게 하다’라는 동사를 전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깨끗하게 하다’라는 동사는 그런 상태로 만든 사람(주체)를 내포하므로, ‘깨끗’하다는 것은 ‘깨끗하게 하는’ 사람(청소노동자)를 품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clean’의 사회적 의미, 사회 속에서 깨끗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Clean’을 형용사와 동사로서 배운다는 것

이처럼 ‘clean’을 형용사와 동사로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이 두 가지의 품사적 구분을 아는 것에서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깨끗한'(clean)한 세계와 이 세계를 ‘깨끗하게 하는'(to clean)하는 사람(청소노동자)을 연결해 생각할 수 있어야만 이 두 품사의 관계를 배웠다고 할 수 있지요. 형용사가 동사가 되는 것은 순수히 언어적 현상이지만, 실제 세계에서 그 변환을 가능케 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 특히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This place is so clean. (여기 정말 깨끗하다.)”라는 문장은 “Someone must have cleaned this place. (누군가가 청소를 한 게 틀림없구나.)”라고 읽어낼 수 있어야 하고, “This place is always clean. (여긴 항상 깨끗하네.)”라는 문장은 “Someone must clean this place on a regular basis. (여기 정기적으로 청소하는 사람이 있나 봐.)” 라고 바꾸어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문법은 언어적, 개념적, 사회적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합니다. 언어의 의미를 개념화하고, 그것이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갖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동태의 정치학

한 가지 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수동태를 가르친다면 수동태의 형태(be+과거분사+by ~)부터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수동태가 묘사하고 있는 여러 사건들에서 수동의 개념을 이끌어 내고, 그것이 어떻게 언어화하는가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 두 문장을 봅시다.

Many immigrants are deprived of their rights. (많은 이민자들은 권리를 박탈당한다.)

The current immigration laws deprive many immigrants of their rights. (현재의 이민법은 많은 이민자들에게서 권리를 박탈한다.)

두 문장은 하나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동태의 문장에서는 ‘박탈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이민자들의 현재 상태를 그리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래 능동형의 문장에서는 이민자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주체가 드러납니다. 물론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현재의 이민법을 입안하고 가결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지요.

이 같은 분석을 통해 수동태라는 언어적 장치가 인간이 경험적 세계를 이해하고 의미세계를 창조하는 방법을 살펴보고, 능동태나 수동태를 선택하는 일이 절대 중립적일 수 없다는 사실 즉, ‘수동태의 정치학’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요는 언어적 설명을 넘어 개념적이며 사회문화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정한 문법현상이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 숨쉬는지, 때로는 세계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개별 문법 요소들을 살피면서 언어와 세계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을 문법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가끔 “If I were a bird… (내가 새라면)”나 “If I were a millionaire… (내가 백만장자는)” 보다는 “If I were a Pakistani immigrant worker in South Korea … (내가 한국의 파키스탄 이주자라면)”나 “If I were a Muslim refugee in the US (내가 미국의 무슬림 난민이라면)”가 예문으로 나오는 책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과 문법을 엮어내는 공부가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쓰기학습을 위한 원칙 (3): 가로쓰기X세로쓰기X좁게쓰기

스마트폰의 텍스트 추천 기능을 써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한 단어를 쓰면 그 다음 단어를 추천하고, 또 다시 단어를 입력하면 그 다음 단어를 추천합니다. 쓰는 이의 의도에 딱 맞을 때도 있지만 우스운 단어를 추천하기도 합니다. 한 가지 이 기능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글이든 단어 하나 하나가 모여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결국 단어를 고르고 다음 단어를 고르는 일의 연속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글을 ‘써내려’ 갑니다. 한국어와 영어의 경우 왼 편에서 시작해서 오른 편으로 단어를 늘어놓게 됩니다. 물론 줄넘김을 하면 다시 왼쪽에서 시작되지만 기본적으로 글은 가로축을 따라 진행됩니다. 저는 이것을 ‘가로쓰기’라고 부릅니다.

흔히 자유쓰기(free writing)를 할 때 우리는 가로쓰기에 집중합니다. 논리적 흐름이나 문법, 어휘를 곰곰히 따지지 않고 빠르게 써내려가는 자유쓰기를 통해 우리는 안에 있는 것들을 최대한 끄집어 냅니다. 이 과정에서 편집과 수정은 최대한 자제됩니다. 어떤 사람은 효율적인 자유쓰기를 위해 아예 스크린을 꺼버린다고 하더군요.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최대한 빨리 쏟아놓기 위해서는 키보드 하나면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자유쓰기는 글쓰기에 대한 과도한 긴장이나 우려를 줄이고 많은 아이디어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어로서 영어를 공부하고 영작문을 공부함에 있어서 자유쓰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로쓰기’와 ‘좁게쓰기’가 별도로 필요한 것입니다. 각각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째, ‘세로쓰기’ 능력의 배양이 필요합니다. 모국어와 외국어의 ‘세로쓰기’ 능력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제시한 휴대폰 텍스트 자동완성 기능을 생각해 봅시다. 한국어로 쓸 때는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기에 자동완성 기능은 대부분 ‘빠른 타이핑’을 돕는 역할에 그칩니다. 하지만 영어로 글쓰기에서는 사정이 좀 복잡해집니다. 무슨 단어를 쓸지 정확히 알고 있을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해당 자리에 어떤 단어가 가장 적합한지 고민하고 때로는 검색을 통해 최적의 단어를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하나의 자리에 어떤 단어들이 나올 수 있는지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세로쓰기 능력’이라고 부릅니다. 실제 글쓰기는 언제나 가로쓰기지만, 이 가로쓰기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세로쓰기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Argument(주장)라는 단어 앞에 긍정적인 의미의 형용사를 넣고자 합니다. 그런데 머리 속에 생각나는 것이 달랑 ‘good argument’나 ‘bad argument’라면 계속 이 표현만을 가지고 버티게 됩니다. 하지만 good 혹은 bad 자리에 persuasive나 convincing, 혹은 compelling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최적의 형용사를 골라서 쓸 수 있게 됩니다.

세 단어의 의미는 상당히 비슷합니다. 어떤 주장이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믿음을 준다는 것이죠. 하지만 강도는 조금 다릅니다. Persuasive는 말 그대로 ‘설득력이 있다’의 의미, 즉 persuade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에 비해 convincing은 ‘확신하게 하는’이란 뜻이죠. 원동사persuade와 convince의 의미를 따져 보면 설득하는 것보다 확신시키는 게 더 강한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compel은 ‘압도하다’,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설명을 들었는데 도무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믿게 되는 상황이라면 “compelling”을 사용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셋은 비슷한 의미를 지니지만 의미의 스펙트럼을 따지자면 persuasive 보다는 convincing이, convincing 보다는 compelling이 강한 표현입니다.

원어민 화자는 이렇게 ‘골라 쓸’ 꺼리가 풍부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언어경험을 통해 쌓아온 ‘세로쓰기 레퍼토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원어민은 이 레퍼토리를 의도적으로 늘려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짝궁단어’의 학습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휘학습의 원칙 편 첫 뻔째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둘째, ‘좁게쓰기’ 전략입니다. 영어쓰기를 공부할 때 가장 범하기 쉬운 오류 중 하나는 막연히 ‘영어로 글을 많이 써보자’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어로 쓰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어로 일기쓰기, 서평쓰기, 기사쓰기, 설명문 쓰기, 매뉴얼 쓰기 등이 존재할 뿐이죠. 물론 이들 종류의 글 또한 다양한 포맷으로 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어쓰기를 공부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쓰고자 하는 글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글을 최대한 ‘좁게’ 정의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종류의 글을 쓸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이 조건에 최대한 맞는 글을 찾아봅니다. 그들 중 괜찮다고 생각하는 글을 몇 편 골라 자세히 읽고 아래와 같은 기준으로 분석을 해봅니다.

1. 글을 이루고 있는 정보
2. 정보들이 나열되는 전형적인 순서
3. 몇 편의 글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어와 동사 패턴
4. 유용한 어휘 및 짝궁단어
5. 유용한 문법 패턴
6. 기타 눈에 띄는 수사적 특징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책 소개’를 써야 한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여러 책 소개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셔야 합니다. 학술서 리뷰라면 관련 학술지를 검색하셔야 할 것이고, 대중적인 책 소개라면 신문이나 잡지를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형식을 갖추지 않는 책 소개라면 아마존과 같은 사이트를 방문하시면 되겠습니다. 이제 샘플을 몇 개 모아서 위와 같은 기준으로 분석을 합니다.

이 과정이 조금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꼼꼼히 분석하며 텍스트를 읽다 보면 ‘책 소개’라는 글의 종류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아 이런 정보를 넣으면 되겠구나’, ‘이런 표현 신선하네’, ‘어? 이 메타포 괜찮은걸?’, ‘이 구문 조금 변형해서 쓰면 되겠다’, ‘시작은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끝날 때는 이런 기법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쓰기에 대한 감 또한 잡게 됩니다.

이제 책에 대한 아이디어와 감상을 영어로 풀 수 있는 레퍼토리가 생겼습니다. 여전히 글쓰기가 쉽진 않지만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겠지요. 문제는 이런 기본적인 읽기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작정’ 쓰려고 할 때 발생합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영어 글쓰기를 공부할 때는 자유롭게 써내려가는 ‘가로쓰기’와, 특정 자리에 올 수 있는 단어를 꾸준히 살피며 레퍼토리를 늘려가는 ‘세로쓰기’, 글의 종류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정하고 텍스트 분석을 통해 글의 길을 잡아가는 ‘좁게쓰기’가 필요합니다.

가로쓰기X세로쓰기X좁게쓰기. 이 공식을 기억하세요.

언어를 새롭게 상상하기: 문장쓰기를 넘어 문맥 쓰기로

A: Are you a teacher?
B: Yes, I am. Are you a student?
A: Yes, I am.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교과서에 실제로 실렸던 문장입니다. 이 상황에서 학생은 교사에게 “선생님이세요?”라고 묻고, 교사는 학생에게 “너 학생 맞니?”라고 묻습니다. 실세계에서는 좀처럼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는 점에서 “교과서 SF”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대화입니다.

이 문장들은 특정한 교육단계에서 “student”나 “teacher”와 같은 단어, “Are you…?”와 “Yes, I am.”과 같은 구조를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왔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더 들어가면 학습자들이 이렇게 쉬운 문장에서 시작해 점차 복잡한 단어와 구문을 접해야 한다는 교수원리가 담겨 있겠지요.

교수학습 이론의 강박(obsession)이 실세계의 언어를 압도할 때 헛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더욱 허탈한 것은 이러한 대화가 한 강사의 작은 실수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온 국민이 보는 국정교과서에 오랜 기간 실려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출판사들은 한글 해석이 달린 참고서를 내놓았고, 교사들은 큰 소리로 대화를 낭독했으며, 학생들은 대화를 달달 외워서 시험을 보았습니다.

문장쓰기가 아닌 문맥쓰기로

이 텍스트를 써야 할 절체절명의 이유가 있었다면, 학생들로 하여금 이 대화가 벌어질 상황을 만들어 보라고 주문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대화문을 제시하고 컨텍스트를 쓰게 하는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저런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상상력에 따라 더욱 다양한 상황이 제시될 수 있습니다.
(1) SNS에서 만난 두 사람이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선생님이세요?”라고 묻고 “학생이세요?”라고 서로 묻는 경우입니다.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없지만, 기존의 포스트를 통해 각자가 선생님이고 학생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경우 나올 수 있는 대화죠.

(2) 학교 연극부원들이 대본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연극반 지도교사는 학생들을 무작위로 나누어 “자, 이쪽 그룹은 선생님 역할, 이쪽 그룹은 반대로 학생 역할을 하는 거야. 아무나 붙잡고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서 있을만한 상황을 연출해 봐.”라고 주문. 이때 학생은 “너 선생님 역할이야?” “너 학생 역할이지?”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모두에 인용한 대화문은 이제 교과서에서 사라졌지만, 현재의 영어교육이라고 이런 황당한 풍경이 없을까 싶습니다. 현실의 삶이 아니라 꽉 짜인 텍스트의 구조에 갇힌 사회, 새로운 맥락을 써내는 상상력이 억압되는 사회에서 실소를 금하지 못하는 상황은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보통 언어를 배운다고 하면 그 언어의 텍스트만을 생각합니다. 어떻게 정확한 문법과 어휘를 배울 것인가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어를 보는 좀더 과학적인 관점은 언어를 텍스트가 아니라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결합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단어든 문장이든 텍스트는 컨텍스트 없이 그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Where is everyone?”은 무슨 뜻일까요?
“다들 어디있지?”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텍스트만으로 문장의 의미를 확정할 수 있을까요? ‘다들’과 ‘어디’의 진정한 뜻은 무엇일까요? 다음 맥락을 생각해 봅시다.

(1) 학교에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늘 동생들과 엄마가 있었는데 오늘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때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Where is everyone?”

(2)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몇몇 친구들은 늘 그의 편이 되어 주었죠다. 그런데 최근 들어 친구들이 그를 조금씩 멀리하더니 급기야 아무도 말을 건네지 않습니다. 그가 일기를 쓴다. “Where is everyone?”

(3) 한 아이가 페르미 역설을 배웠습니다. (페르미 역설(Fermi paradox)이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이탈리아의 천재 물리학자였던 엔리코 페르미가 외계의 지적 생명체의 존재 여부를 두고 ‘모두 어디에 있는가?’라고 물었던 일화에서 유래했다. — 위키백과) 밤에 옥상에 오른 아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Where is everyone?” (모두 어디 있는 거지?)

세 가지 상황에서 “everyone”의 의미는 조금씩 다릅니다. 1에서는 가족들, 2에서는 자기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 3은 존재 여부를 모르는 외계의 생명체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everyone’의 의미는 사전 속이 아니라 사용의 맥락 하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텍스트의 맥락을 생각해 보는 일은 창조적이고 발산적 사고 발달에 도움을 줍니다. 나아가 언어의 본령이 단지 단어나 문장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세계와 만나는 방식에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여러분들은 ‘Where is everyone?’에 어떤 맥락을 입혀보고 싶으신가요?

단어공부의 원칙들 (4): 어휘 수집가 & 큐레이터가 되어봅시다!

단어공부의 네 번째 원칙은 ‘수집가가 되자’는 슬로건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수집가가 되는 어휘공부는 특정한 지문에서 모르는 단어를 외우거나 어휘집을 사서 외우는 것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단어를 모으는 기준을 자기 자신이 정한다는 점입니다. 주어지는 어휘를 수동적으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수많은 어휘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꿰는 ‘어휘 큐레이터(vocabulary curator)’가 되는 것입니다.

세 가지 예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재미난 짝궁단어 모으기입니다.

오래 전 글을 읽다가 ‘strike a balance’를 보았습니다. 순식간에 든 질문은 ‘strike는 ‘때리다’라는 의미인데 ‘balance’와 같이 쓰이네?’였습니다. 사전을 찾고 검색을 해보니 ‘균형을 잡다’라는 의미로 빈도수가 상당히 높은 표현이더군요. 그래서 이후 조금 특이한 연어(짝꿍이 되는 단어들)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아래는 그중 몇 가지 예입니다.

  1. strike a balance

균형을 맞추다 – 균형을 ‘맞춘다’고 할 때 strike가 자주 사용됩니다. 이걸 보니 사람들의 동의나 공감을 일으킨다는 뜻을 가진 ‘strike a chord’라는 표현이 떠오르더군요.

  1. bat an eye

‘눈을 깜빡이다’혹은 ‘깜짝하다’는 의미로 bat을 사용합니다. 특히 ‘without batting an eye’ 라는 형태로 자주 등장하더군요. 우리말 ‘눈 하나 깜짝 안하고’와 상당히 비슷한 느낌입니다.

  1. cut a deal

‘딜을 성사시키다’라는 뜻으로 ‘cut’을 자주 쓰는데 자칫하면 딜을 깨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 주요 인사들이 모여서 ‘테잎 커팅’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딜이 깨지는 게 아니라 이제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a friendly fire

여기에서 ‘friendly’는 친근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군의, 우리편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a friendly fire는 아군이 쏜 총탄을 의미합니다. 처음 이 표현을 보았을 때는 ‘친근한 총격’이라는 직역에서 ‘아군의 엄호’라는 뜻이라 추측했었는데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1-2차 대전 당시 아군의 총격으로 죽은 군인이 상당수 되었다고 하네요.

  1. a standing invitation

Invitation 중에서도 ‘언제 와도 좋다’는 의미를 함축한 초대를 ‘a standing invitation’이라고 합니다. 초대장의 유효기간이 없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는 전치사 뒤에 전치사가 오는 경우입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전치사 다음에는 명사(구)가 온다”고 배웠습니다. 사실 맞는 말입니다. 명사가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하지만 예외도 있는습니다. 아래와 같이 from 다음에 전치사구가 나오는 경우입니다. 처음 ‘from under the table’이라는 표현을 접하고 나서는 비슷한 표현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아래와 같은 예들입니다.

  1. “책상 밑에서” 라고 하면 from under the table
  2. “책상 뒤편에서”라고 하면 from behind the table
  3. “길 저 쪽에서부터” 라고 하면 from down the road
  4. “담장 반대편에서” 라고 하면 from across the fence
  5. “의자 뒤에서” 라고 하면 from behind the chair
  6. “세계 각지에서”라고 하면 from around the world

세 번째 컬렉션에는 ‘미술용어의 화려한 변신’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맨 처음 저의 주의를 끈 것은 ‘etch’의 또다른 의미였습니다. 중고교 시절 ‘에칭’이라는 용어를 배웠는데  ‘새기다, 에칭하다’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비유적으로는 “뚜렷이 드러나다”라는 뜻을 갖고 있더군요.

그래서 “Frustration was etched on the father’s face. His daughter was still missing and his life was miserable.”라고 하면 “아버지의 얼굴에는 좌절의 기색이 뚜렷했다. 딸은 여전히 행방불명이었고, 그의 삶은 비참했다.” 정도의 의미가 됩니다. 새겨져 있으니 도저히 숨길 수 없는 것입니다. 이후에 미술 관련 용어들을 만날 때마다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아래는 그 결과입니다.

  1. Canvas는 캔버스라는 뜻 외에 “유화”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The old artist’s canvases are unbelievably pleasant. 노화가의 유화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쾌하다.

권투 등의 링의 바닥도 canvas 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kiss the canvas 라고 하면 바닥에 완전히 쓰러진 것을 한다고 하네요. 링에 키스를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데, 종종 술을 과하게 먹은 친구들이 이런 경험을 한다고 하더군요.

  1. Brush는 붓 혹은 ‘쓸다’ 등의 의미가 있는데, “여우 꼬리” 혹은 “스쳐 지나가다”라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The angel brushed the man. How tragic! 그 천사는 그 남자를 스치듯 지나갔다. 이 얼마나 비극적인가!

brush by 라고 하여 ‘by’를 붙여 표현하기도 합니다. ‘by’가 옆을 스쳐간다는 느낌을 더해주네요.

  1. Sketch는 스케치 혹은 개요라는 뜻 외에 “(텔레비전・극장 등에서의) 촌극”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예문이 가능하지요.

The comedians did a sketch about three men living together in a dorm room. 그 코미디언들은 기숙사 방에서 같이 살고 있는 세 남자에 관한 촌극을 공연했다.

  1. Gallery는 (미술품)갤러리라는 의미 외에 “(극장에서 가장 표 값이 싼) 최상층 관람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광산이나 지하 동굴의) 수평 갱도”라는 뜻이 있는데, 꽤 낯선 뜻이었습니다. 좁고 긴 통로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기존에 알고 있던 gallery의 의미(좁고 긴 방)와 통하는데, 골프를 보러 온 관객들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갤러리라 불리는 것 같습니다.
  2. Craft는 공예라는 뜻 외에 ‘배’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뜻이 있었나?’ 싶기도 한데, 여기에서 aircraft와 같은 단어가 나온 듯하네요. 그래서 a landing craft라고 하면 뭍에 오를 수 있는 상륙선을 말합니다.
  3. Portrait는 인물화라는 뜻 외에 “(상세한) 묘사”라는 뜻으로 종종 쓰입니다. 그래서 회화 뿐 아니라 문학이나 영화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쓸 수 있죠.

예를 들어 “The movie is a poignant portrait of an unemployed man’s life in Seoul.”이라고 하면 ‘그 영화는 실직한 남자의 서울 생활을 통렬하게 그려내고 있다.’라는 뜻이 됩니다.

  1. Palette는 회화도구인 팔레트를 가리킬 수도 있지만, 화가가 쓰는 색조를 통칭해서 이르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Purples and oranges are the artist’s favorite palette.

그는 자주와 오렌지색 계열을 가장 즐겨 쓴다.

  1. Texture는 직물의 감촉이나 질감을 의미하지만,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 느껴지는 촉감 즉 식감을 의미하기도 하고, 예술에서 여러 요소들의 조화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I could appreciate the rich texture of the new interpretation of the sonata 소나타의 새로운 해석에서 여러 요소들의 풍부한 조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이상에서 ‘큐레이터’가 되어 어휘를 수집했던 경험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재미난 짝궁단어를 모으고 전치사 뒤에 전치사가 나오는 표현 기록하며 색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어휘들 정리하는 전략을 통해 재미있는 어휘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공부했던 한 학생은 ‘마인크래프트 영어메뉴 통달하기’를 주제를 잡았었죠.여러분들은 어떤 기준으로 어휘를 수집하고 큐레이션해 보고 싶으신가요?

 

영어 관사학습의 원칙: 텍스트로 공부하세요.

영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어떤 데이터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여지가 있지만 영어 전체를 기준으로 했을 때 부동의 1위는 정관사 the 입니다. 보통 텍스트의 5-6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네요. 스무 단어 중에 한 단어 꼴이니 꽤나 빈번하지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인풋가설에 따르면 우리는 the의 전문가여야 합니다. 문장의 맥락에서 이해가 되는 the를 접하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니, the 사용에 별 문제가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영어 관사 사용을 ‘넘사벽’으로 느끼는 분들이 굉장히 많지요.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차피 안될 거 뭘 그리 신경쓰나’라는 분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관사의 바다 속에서 관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등잔 밑이 어두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관사체계가 발달하지 않은 한국어 화자에게 영어 관사가 어려운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영어교육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죠. 관사는 개념적으로 상당히 복잡하여 이해가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잘 풀어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많지 않습니다. 어려우면 더 쉽게 정리해서 명확히 가르쳐야 하는데, ‘어차피 안되니까’, ‘차차 공부하다 보면 실력이 늘고, 실력이 올라가면 이해가 될테니까’라며 대충 얼버무리는 것이지요. 이런 자세는 될대로 되라는 식에 가깝습니다. 요즘은 좀 나아진 것 같지만 제 경험상 대부분의 관사 교수법은 엉망이었습니다.

사실 극소수의 직군을 빼면 완벽한 문법을 구사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비단 관사만의 문제는 아니고 문법 전반이 그렇지요. 의사소통에 심각한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영어를 하면 되고, 엄밀한 정확성을 확보해야 하는 경우 타인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언어학습이 ‘아주 작은 변화’를 쌓아가는 과정임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차피 안될 것’이라고 체념하고 무조건 맡기려 하기 보다는 조금씩 공을 쌓는 거죠. 세상 모든 배움이 그렇듯 하루 하루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것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관사에 대해 강의를 할 때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저도 틀립니다. 그런데 공부하기 전보다는 훨씬 덜 틀려요. 덜 틀리면 기분이 좋더라고요. 나아지고 있음을 느끼는 건 기쁜 일이예요.”

계속 공부해도 틀릴 수밖에 없으니 포기하는 게 맘 편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관사를 신경쓰지 않아도 큰 지장이 없는 분들은 또 그렇게 소통하시면 됩니다. 저처럼 ‘점점 덜 틀리는 것’도 나름 괜찮은 일이라 생각하는 분들은 언어의 규칙과 자신의 의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공부하면 되겠죠.

계속 관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분들은 두 가지를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첫째, 관사는 정관사와 부정관사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정관사, 부정관사, 무관사로 나뉩니다. 즉 ‘a냐 the냐’라고 물어보시지 말고, ‘여기 a냐 the냐 아니면 아무것도 쓰지 말아야 하는 거냐’라고 물어보셔야 한다는 겁니다.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만 올바른 방향으로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가지고 문법서의 관사 섹션을 꼼꼼하게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설명과 예문을 공부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관사가 훤히 이해되지는 않겠지요.

두 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관사를 문법책 뿐 아니라 텍스트 안에서 발견하고 분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해당 문법을 설명하기 위해 골라놓은 예문은 이해가 잘 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맥락에 딱 맞는 예문들만을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관사와 같이 복잡한 문법현상의 경우 텍스트 안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유심히 살피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어떻게 ‘텍스트 안에서 관사 공부하기’를 실천할 수 있을까요? 우선 자주 접하는 글을 고릅니다. 우선은 내용을 이해하며 한 번 읽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관사(a, the, 무관사)가 나오는 모든 예에 밑줄을 칩니다. 그리고 각각의 경우에 왜 a 혹은 the가 쓰였는지, 혹은 왜 관사가 쓰이지 않았는지를 메모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메모해 두었다가 추후 관사 사용에 문제가 없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아래는 위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위키피디아의 아델 소개 문단을 관사를 중심으로 분석한 것입니다. 오늘 당장 이런 관사 공부를 시작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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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le Laurie Blue Adkins MBE 사람 이름에는 보통 관사가 붙지 않습니다.

an English singer and songwriter 직업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는 a/an. 여기서 중요한 것은 a songwriter 라고 뒤에 a를 붙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실 songwriter 하나만 쓰면 a를 씀에도 앞에 나오는 an이 이 두 개념을 모두 커버하고 있습니다.

the BRIT School for Performing Arts and Technology 학교 이름에서 School for … 로 시작하는 학교 앞에는 대개 the가 붙습니다. (Harvard University 같은 학교에는 관사가 없죠.)

a recording contract 세상 수많은 레코딩 계약 중 하나이니 a 입니다. 특정되지 않는 것이지요. 뒤의 a friend도 마찬가지입니다.

the same year – the same의 경우 뒤의 명사가 특정되므로 the same으로 쓰는 것이 적절합니다.

In 2007 ‘몇 년에’라고 할 때는 In 다음, 연도 앞에 관사가 없습니다.

the Brit Awards “Critics’ Choice” award – award를 특정하므로 the OOOO award라고 썼습니다. 뒤의 the BBC Sound of 2008 poll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죠. (the OOO poll, OOO로 투표가 특정됨.)

commercial and critical success – 여기서 success는 일반적 의미의 성공입니다. 수많은 성공 중 하나(a)도 아니요, 특정한 성공(the)도 아닌 추상적이고 일반적 의미의 success이므로 무관사(zero article)가 적절합니다.

the UK the United Kingdom / 뒤의 the US 에도 the가 붙는다는 것 유의하세요!

The album 앞의 특정한 앨범을 가리키므로 the가 맞습니다.

An appearance – appearance가 처음 언급되는 것. 여러 appearance 중 하나임을 의미합니다.

Saturday Night Live 프로그램 이름에 관사 안붙는 경우입니다. 물론 the가 들어가는 프로그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in late 2008 – in early/late 연도 할 때 보통 정관사가 없습니다.

At the 51st Grammy Awards in 2009 그래미 어워드 전체를 가리킬 때 복수로 쓴다는 것 유의하세요. 상은 여럿이니까요. (단수 an award는 단일부문의 상을 지칭할 수 있겠지요.)

the awards for Best New Artist and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 이 경우에는 두 개의 상이라 awards입니다. 뒤의 부문들에 의해 award가 특정되므로 the awards로 정관사를 써서 표현합니다. (만약 여러 그래미 중 하나를 탔다는 의미라면 win a Grammy award라고 표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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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le Laurie Blue Adkins MBE (/əˈdɛl/; born 5 May 1988) is an English singer and songwriter. After graduating from the BRIT School for Performing Arts and Technology in 2006, Adele was given a recording contract by XL Recordings after a friend posted her demo on Myspace the same year. In 2007, she received the Brit Awards “Critics’ Choice” award and won the BBC Sound of 2008 poll. Her debut album, 19, was released in 2008 to commercial and critical success. It is certified seven times platinum in the UK, and three times platinum in the US. The album contains her first song, “Hometown Glory”, written when she was 16, which is based on her home suburb of West Norwood in London. An appearance she made on Saturday Night Live in late 2008 boosted her career in the US. At the 51st Grammy Awards in 2009, Adele received the awards for Best New Artist and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

https://en.wikipedia.org/wiki/Adele

 

영어를 위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영어를 위하여

언어는 의미를 만들고 생각을 교환하며 경험을 새기는 도구입니다. 감정을 표현하고 의견을 주고 받으며 행동을 공유하는 수단으로서의 언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모국어이건 외국어이건 언어의 본령은 나와 너를,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영어의 역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언어는 밥벌이의 수단이기도 하고, 사람을 통제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사회적 지위와 교육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index)이기도 합니다. 기업은 일정수준으로 영어를 해야만 취업할 수 있다는 규칙을 제시합니다. 영어가 ‘문지기’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은 ‘세련된’ 느낌을 풍깁니다. ‘네이티브 발음’을 가진 사람들은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지요. 영어가 의사표현의 수단을 넘어 노동을 통제하는 수단이면서 상징적인 자본으로 우리사회에 자리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아가 영어는 여러 종류의 사교육, 테스팅 및 어학연수 시장에서 널리 판매되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사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영어교육이 이 정도로 큰 시장은 아니었습니다. 시장확대가 주춤하다고는 하지만 지난 20여 년간 영어사교육 섹터는 놀랍도록 팽창했습니다. 각종 영어학원, 회화 프로그램, 어학 관련 스마트폰 앱 등에 대한 광고를 끊임없이 접하게 되었지요. 이같은 언어의 상품화(commodification of language) 경향은 지식노동이 일반화되고, 물자가 더 빨리 유통되며, 이주와 관광이 늘어나고, 다국적 기업들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언어의 상품화는 금융자본과 서비스 경제의 영향력이 커지고 지식 생태계가 급속히 변화하는 후기 자본주의(late capitalism) 시대의 징후로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더해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뉴미디어가 확산되고 재화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영어를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가 확보되었습니다. 이제 ‘영어자료를 구하기 힘들어서 영어를 배우지 못한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게 되었죠. 클릭 몇 번이면 세계 유수의 영어 언론에 접속할 수 있는 상황이니 뉴스위크나 타임을 구독하라고 귀찮게 구는 외판원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요. 언제 어디에서나 거의 무한대의 영어자료에 접속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언어 특히 외국어는 누구나 열심히 하면 습득할 수 있는 도구라는 생각, 영어를 못하는 건 ‘네 잘못’이라는 생각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니지요. 위에서 설명드린 입사를 위한 스펙이나 승진 요건의 역할을 넘어 일상생활에서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것입니다. 영어를 사회문화적 계층을 파악하거나 타인을 판단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경향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에 과도한 힘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는 보통 역사지식이나 100미터 달리기 기록으로 누군가의 배경을 순식간에 판단하지 않습니다. 지도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다고 해서 그다지 큰 관심을 주진 않죠. 심지어 국어 실력도 그다지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영어발음을 듣는 순간 그에 대해 꽤나 많은 것을 ‘알아버리게’ 됩니다. 상대에 대한 은밀한 선입견을 갖게 되기도 하지요. 간단한 사고 실험을 해봅시다. “걔 우리말 정말 잘해”와 “걔 영어 정말 잘해” 중 어느 표현을 더 자주 쓰고 또 접하시나요? 왜 우리는 “걔 완전 네이티브야”라는 말에 모종의 아우라를 덮어 씌우고 있는 걸까요?

뼈아픈 것은 영어에 대한 태도가 외부로만 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영어실력으로 자신의 많은 부분을 판단해 버립니다. “영어도 안되는데…”라며 체념어린 이야기를 하기도 하죠. 현재 한국사회가 영어를 강조하는 만큼 우리 안에서 영어에 대한 갈망이 떠나질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영어의 힘은 사회적임과 동시에 심리적입니다.

이 사회에서 영어는 사회문화적 계층과 특권의 대변인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영어가 삶을 풍성하게 하지 못하고 도리어 척박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영어교육을 오랜 시간 공부하고 가르쳐온 사람으로서 저 자신 또한 이 사태의 희생자이자 방조자라는 생각으로 괴롭습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영어의 ‘덫’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소망 뒤에는 이런 괴로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영어가 아니라 가르고 줄세우는 영어, 철저히 물건이 되어버린 영어의 시대. 한국사회에서, 또 우리 안에서 영어가 휘두르는 힘을 정확히 이해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영어를 위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영어가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함께 해야 하는 일입니다.

네이티브 스피커는 죽었다(The Native Speaker is Dead!)

 

원어민이 죽었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세상곳곳에 버젓이 살아있는데 말이죠. 사실 이것은 Thomas M. Paikeday가 쓴 책 제목입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네이티브 스피커’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개념화했다는 겁니다. 마치 유니콘을 만들어 낸 것처럼 말입니다.

영어 원어민(English native speaker)는 누구입니까?

“하, 이사람 보게나. 원어민이 누구겠어. CNN 같은 방송에 나와서 아주 “명쾌한” 발음으로 뉴스를 전해주는 그 앵커들 아니겠어? 영어 교재에 나오는 그 발음 있잖아. 토플이나 토익 보면 문제 읽어주는 사람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교육을 잘 받은 미국 중산층 백인 엘리트를 영어 원어민으로 생각하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이른바 “원어민 발음”을 구사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몇 퍼센트가 될까요? 한국 영어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인 미국 인구 중에서는 또 얼마나 될까요?

제가 공부를 하기 위해 머물렀던 펜실베니아 주 내에서도 “피츠버그 발음”과 “필라델피아 발음”을 구분해서 이야기합니다. 경제와 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뉴욕 내에도 여러 가지 영어가 섞여 있고, 브루클린 지역의 발음은 여러 면에서 특히 독특합니다. 소위 “시골 동네”인 와이오밍과 앨러배마주의 발음은 ‘보통’ 발음에서 거리가 더 멀죠. 유튜브에서 이들 지역의 방언을 검색하시면 그간 들어왔던 미국영어와는 확연히 다른 발음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미국 내에서도 발음의 차이는 현격합니다. 물론 미국이 이민자들의 국가인 만큼 다양한 인종, 문화,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발음을 구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국 교육과정의 근간을 이루는 미국영어를 벗어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미국인 외의 수많은 사람들은 영어 원어민 화자가 아닌가요? 영국인이나 호주인들은 어떨까요? 태어나서 줄곧 영어를 쓴 인도인들은 또 어떻습니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영어의 네이티브 스피커입니다. 교재의 MP3에 등장하는 사람들만 원어민은 아닌 것입니다.

일부 원어민들의 영어를 모델로 삼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려면 어느 정도의 표준이 필요하고, 적절한 모델을 따라서 노력하는 자세 또한 필수적입니다. 여기에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스탠다드’와 다른 영어 발음과 문법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입니다.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함으로써 다양성이 아닌 배제의 논리로, 평등이 아닌 위계의 논리로 발음을 대하는 건 은밀한 언어차별의 논리에 휘둘리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계열이 쓰는 영어, Texas와 같은 남부 지방 사람들이 쓰는 영어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까? 은연중에 ‘저거 발음이 영 시원찮은데…”라고 생각하거나 “정말 웃기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요? 아일랜드에 가면 아일랜드 사람들의 영어를 들을 수 있고, 홍콩 사람들은 홍콩의 영어를 합니다. 미국 동부 사람들은 그 지방의 특색을 가진 영어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들 사이의 우열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 사이에 우열이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입되어 온 언어 이데올로기의 힘입니다. 우리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말이 경상도나 전라도말보다 본질적으로 더 나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사회경제적 구조가 서울말을 하는 사람에게 좀더 많은 기회를 주고 각종 미디어가 서울말을 기준으로 방송을 제작하는 경향이 있기에 ‘서울말이 낫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의 영어를 합니다. 이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발음이라면 한국 억양이 조금 들어간다거나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태교를 해서 원어민과 같은 발음을 갖게 해주겠다는 일부 극성 부모들의 행위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identity)을 잃어버린 데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사회문화적 토양과 언어를 분리할 수 있다는 만용인 것입니다.

“원어민”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지만, Paikeday의 말대로 ‘죽은’ 개념일 때가 많습니다. 우선 실제로 누가 원어민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사회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위해 만들어진 비현실적이고 애매모호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원어민’ 개념이 사회적으로 힘을 가질 때, 나아가 ‘원어민’과 ‘비원어민’이 명확히 구분되는 상황이 만들어질 때 힘을 갖고 이득을 보게 되는 집단이 존재합니다. 이는 영어 교수학습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정확성과 형식은 과도히 강조하는 반면, 언어학습이 더 깊이 추구하는 목표가 되는 의미와 소통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원어민’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글로벌 시대를 정확히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원어민-비원어민 간의 대화보다 비원어민-비원어민 사이의 대화가 더 빈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영어를 모국어가 아니라 국제어(international language)로 배운다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우리는 원어민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많은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공부합니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필요없는 원어민 콤플렉스나 다양한 발음 및 언어특성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죽은’ 네이티브 스피커의 영어를 흉내내기 보다는 ‘살아있는’ 우리의 언어를 만들어 갈 때입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작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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