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의 심리학

Posted by on Jun 14,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단독] 잠시 후 별 영양가 없는 포스트 공유 예정

뉴스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요. 카톡방이나 메신저의 가짜뉴스가 급속히 퍼지는 여러 요인 중 하나는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내가 접했다’라고 생각하는 심리라고 합니다. 언론 신뢰도 최하위권 국가에서 ‘정보기관’의 일원이 된 듯한 정체성은 달콤하죠. ‘단독입수’에 대한 자부심이 더 많은 공유로 이어지는 듯하네요.

왜 제가 싫어하는 종편들이 그토록 [단독]에 집착하는지 알겠습니다.

보수는 부패로, 진보는 분열로?

Posted by on Jun 14,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 구닥다리 같지만 여전히 종종 접하게 되는 문구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분열”은 ‘하나로 존재하던 사물이나 집단, 사상 따위가 갈라져 나뉨’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 정치사에 있어 한 번도 하나였던 적이 없었던 진보가 분열로 망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 면에서 ‘통합’과 ‘분열’이라는 틀로 진보의 흥망성쇠를 설명하려는 것은 (1) 여전히 통합의 수사를 전면에 앞세우는 일부 진보의 관점에서 정치지형을 바라보는 일이자, (2) 진보가 지향하는 다양성의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프레임에 갇히는 일 아닐까 싶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뜬 개념의 실체

Posted by on Jun 10,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요즘 흘기게 되는 어구 셋

1. “AI가 급속히 발달함에 따라”
2. “뇌과학의 최신 성과에 따르면”
3. “역량중심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서는”

뜬 개념은 대개 부풀려진 개념이다. 1, 2, 3이 동시에 나오는 글은 패스하는 것이 좋겠다. (쿨럭)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나침반으로서의 초고

한해 평균 여덟 번 전국영어교사모임 회보인 <함께하는 영어교육>에 글을 싣고 있는데, 이제 마흔 개 남짓의 원고가 쌓였다. 6년 째 쓰고 있는 <영어교사를 위한 인지언어학 이야기> 얘기다.

영어교육의 이론과 실제에 익숙한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컬럼인데, 인지언어학의 세계관, 언어관을 지지하고 공부해 온 사람의 입장에서 교사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학술논문이 아닌 대중적인 글 두세 쪽 분량으로 언어학 논의와 언어교육을 함께 다루는 일이 쉽진 않지만 꾸준히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쓴다.

요 며칠 초창기에 쓴 글을 흝어보는데 아쉬운 점이 적잖다. ‘왜 이렇게 밖에 설명하지 못했을까?’, ‘여기에서는 왜 그 학자를 언급하지 않았을까?’같은 자책에서부터, 예시나 예문이 별로라는 생각까지 하다 보면 이걸 다듬어 출판할 수 있을지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편 이런 반성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예전 프로젝트 매니저 시절의 제품개발 경험에서 얻은 교훈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이폰을 만든 사람들이 기술과 디자인을 꼭꼭 숨겨놨다가 올해 아이폰 첫 번째 모델을 내놓았다면 아이폰 X의 기능과 디자인, 사용성을 담아낼 수 있었을까? 단언컨대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어떤 제품이든 세상에 내놓아야 다음 방향을 제대로 가늠할 수 있듯이, 그 어떤 글도 처음부터 온전할 수는 없다.

글의 완성(perfection)은 없다. 완료(completion)가 있을 뿐. 허나 완료된 원고는 완성으로 향하는 나침반이 된다. 방향이 잡히면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영어수업

동사 “love의 과거는 loved”라고 가르치기 보다는, “I love you.”와 “I loved you”사이의 심연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주는 수업이기를.

“개”는 “dog”이라고 가르치는 것을 넘어, 모든 개를 dog으로 부를 수 있는 인간의 개념화 능력과, 모든 개를 dog이라 부르는 데서 발생하는 상징적 폭력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수업이기를.

“If I were my brother, I would be miserable.”에서 “가정법에서 동사의 형태”를 말하는 것을 넘어, 앞의 “I”와 뒤의 “I”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I임을 이야기하는 수업이기를.

형태와 의미를 함께 가르친다는 것은 단지 해석을 해준다는 뜻이 아니라 언어 시스템의 작은 변화가 삶의 경험들과 어떻게 만나고 충돌하는지 보여주는 일임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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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슬픈 BE동사

위키피디아 인물 페이지의 첫 문장은 사람이름 + BE 동사로 시작한다. 예를 들면 “Matthew Paige “Matt” Damon (/ˈdeɪmən/; born October 8, 1970) is an American actor, film producer and screenwriter.” 같은 식이다. 맷 데이먼은 아직 생존해 있기에 be동사의 시제가 현재(is)다.

하지만 고인이 된 경우 시제가 달라진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George Michael의 페이지는 “Georgios Kyriacos Panayiotou (25 June 1963 – 25 December 2016), known professionally as George Michael, was an English singer, songwriter, and record producer who rose to fame as a member of the music duo Wham!”로, John Berger는 “John Peter Berger (5 November 1926 – 2 January 2017) was an English art critic, novelist, painter and poet.”로 소개된다.

위키피디아 인물 페이지의 과거형 WAS.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BE 동사가 아닐까.

하지만 우리들의 맘 속에서 그들은 언제까지나 현재형이다. “George Michael IS an English singer, songwriter, and record producer.”이고, “John Peter Berger IS an English art critic, novelist, painter and poet.”인 것이다.

존재’했던’ 것들은 언제까지나 존재’한다’.
죽음과 삶은 그렇게 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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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댐: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것은 기억. 기억과 기억을 연결해 주는 것은 만남. 죽음과 죽음을 연결해 주는 것은 기록. 삶과 삶을 연결해 주는 것은 죽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연결하는 것은 지금, 여기, 우리. (2017.1)

어머니와 나, 한겨레 인터뷰

Posted by on May 24, 2018 in 링크,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한겨레의 강성만 선임기자님과 나눈 대화가 <짬> 코너의 도서 관련 인터뷰 기사로 실렸습니다. 교보의 5월의 책 선정도 그랬지만 이번 인터뷰도 책의 내용을 보시고 연락을 주셔서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셔서 한 시간 반을 쉼없이 떠들었는데, 강성만 기자님께서 차분하고 깔끔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생각보다 큰 지면을 허락해 주셔서 적잖이 놀랐네요.

기사 중에서 저는 이 부분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

“올해 6년차 비정규직인 아들에게 건네는 따스한 충고는 비슷한 온기의 답과 만난다. “지금 먹고사는 것만도 감사하지. 물론 네가 정규직이 되면 좋겠지만, 지금 고생하는 거 잊지 말아라. 잊으면 고생한 게 의미가 없잖아.”(어머니) “고마워요. 고생이랄 것도 없지만 잊지 않겠습니다.”(아들)”

이 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는데요. ‘소통’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왔습니다. 어머니와 자식, 대화, 소통, 이해, 세대간의 관계 등등이 키워드였죠.

강기자님: 그래서 어떻게 해야 소통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나: 음… 사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잘 모르겠구요. 제가 관심을 갖는 말의 관점에서 보면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첫 번째는 ‘말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나의 말도 상대의 말도 무겁게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두 번째는, 지금 이 대화는 서로의 삶의 역사 속에서 빙산의 일각처럼 작디 작은 것이라는 것, 말을 통해 상대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상충되는 듯하지만 두 가지 모두를 염두에 두고 대화하는 사람들이어야 소통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음… 이런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잘라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

#어머니와나 #인터뷰 #한겨레 #짬

http://v.media.daum.net/v/20180522183616705?f=m&rcmd=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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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할 수 있는 능력

Posted by on May 19,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생각만 한다”는 실행력 부족을 나무라는 말이지만, 한편으로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을 담고 있기도 하다. 뭐든 다 직접 해보지 않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능력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고 지금 여기 눈 앞의 공간과 지각할 수 없는 공간을 연결한다. 생각만 하는 능력이야말로 현실을 뛰어넘는 능력인 것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On native-speakerism

Native-speakerism is a powerful ideology machine that mass-produces unfairness, contempt, inferiority, and frustration. It ruthlessly divides native and nonnative speakers, veils the hard fact that we are all legitimate users of a certain language, and naturalizes sociocultural, economic biases against second and foreign language learners. Through this seldom-challenged mechanism, it effectively molds discrimination out of differences, It mimics racism in placing the categorical value on a birth-based capacity, and colludes with the ‘sacred’ meritocracy by establishing native speaker-favored standards, qualifications, and market environments. Where native-speakerism prevails, foreign language learning functions as a viable tool for the old ruling strategy: divide and conquer. So I remind myself that I do not need to say, “I perfect understand what you mean by that. However, it is wrong: native speakers would not speak like that.” No, they’re not wrong. I am wrong. There utterances communicate: my judgement blocks.

쌓여가는 책

Posted by on Apr 28, 2018 in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읽을 책이 쌓여간다”고 말하지만

“안읽을 책이 쌓여간다”가 중단기 데이터를,

“버릴 책이 쌓여간다”가 중장기 데이터를 좀더 잘 반영한 진술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변화의 메커니즘

Posted by on Apr 23,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자신이 쓰는 말 하나하나가 국어를 바꾼다는 생각을 못하지만, 이 메커니즘을 제외하고 언어 변화를 설명할 길은 없다. 자신의 작은 실천 하나하나가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생각을 못하지만, 이 메커니즘을 제외하고 역사와 사회의 변혁을 설명할 길은 없다.

큰 일을 이룰 방법은 작은 일밖에 없다. #다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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