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함

Posted by on Jul 18,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반듯이 구별되진 않지만 약자가 자기 편인 사람이 있고, 자기 편이 ‘약자’인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둘다 약자를 위한다 믿고 살아가지만, 약자로서 약자를 섬기는 이들과 강자의 위치에서 강자를 키우려는 이들의 차이는 작지 않다. 영원히 약자로 남을 수 있는 강인함은 고통과 단련을 요구하지만 ‘숭고함’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단 하나의 성품 아닐까.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시점’ 단상

Posted by on Jul 12,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 No Comments

‘전지적 작가 시점’이란 말은 좀 이상하다. 개념상 ‘전지’와 ‘시점’이 충돌한다.

‘작가 관찰자 시점’은 좀 으스스하다. 어디든 따라가서 엿보고 엿듣는 것 같아. 스토킹도 아니고.

‘1인칭 주인공 시점’은 불가능하다. 내가 주인공일리가 없잖아.

‘1인칭 관찰자 시점’은 음… 그게 객관화가 되냐고요.

2인칭 시점은 ‘1인칭 거울 시점’이 아닐까. 상대가 주인공 같지만 자신의 마음에 비친 자기 버전의 인물일 뿐이니.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할머니 생각

Posted by on Jul 11,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할머니는 ‘밥하는 아줌마’로 수십 년을 사셨다. ‘권문세가(權門勢家)’라고 불릴만한 집이었지만 쥐꼬리만한 벌이였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민주주의 사회라는 외연 속에 사실상의 노예제가 횡행하던 시절, 보상도 감사도 받지 못하고 평생 누군가를 살리는 밥을 짓기 위해 삶을 송두리째 유보해야 했던 이들이 있었다.

흔히 식모(食母)라고 불렸던 그들. 누군가에게 ‘부엌데기’였을지 모르지만 내겐 밥하는 어머니였고 할머니였고, 사회를 떠받치는 노동자였다. 적지 않은 이들의 성공은 말 그대로 그들이 잘 차려준 상에 숟가락 하나 얹은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배운다는 것

Posted by on Jul 10,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배움.

이해되던 일들에 이해를 거부하게 되고, 이해되지 않던 일들이 자연스레 이해되는 과정. 깨어나 다독이는 일.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밥하는 동네 아줌마’

Posted by on Jul 10,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밥하는 동네 아줌마가 왜 정규직이 되어야 하나?” – 무지와 편견, 차별의 종합오물세트같은 발언이다. 다양한 비판들이 있었으나 나는 ‘동네’가 가운데 끼여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동네’는 또 ‘저잣거리’는 왜 차별적 함의를 갖게 되었는가? 무엇이 우리 삶의 터전을 업신여기게 만들었는가? 노동과 시민에 대한 개념도, 생활정치에 대한 이해도 없는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일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린 모두 동네 사람인 것을.

나의 영어공부 이야기 (2) – 고등학교 (전편)

I.
외고에 진학하면서 나의 영어공부 ‘성공기’는 자기기만이었음을 깨달았다. (성문시리즈의 진도와 독파 횟수로 대표되는) 친구들의 ‘실력’을 보며 중학교때의 노력이 하찮아 보였다고나 할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쫄 일도 아니었지만 당시 어린 마음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던 듯하다.

일단 보는 책부터가 달랐다. 나는 기본영어를 후반부를 처음 공부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몇몇 친구들은 이미 기본영어를 3-4번 마치고 종합영어를 보고 있었다.

‘종합’이라는 제목이 주는 압도적 포쓰. 기본영어 두께를 비웃는 볼륨감. 귀퉁이 빼곡한 깨알 글씨. 너덜너덜해진 책 귀퉁이.

우쒸. 이 인간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공부를 한 거야!!

당시 해외 거주 경험을 지닌 친구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두세 반에 한 명 정도 어린 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친구들이 있었다. 걔네들 영어 발음은 천상의 것이었다. 지상에 존재하지 않았어야만 하는 발음이었다고나 할까.

사실 나는 그런 발음에 익숙치 않았고 반감마저 가지고 있었다. 한국 애들이면 한국 애들답게 발음을 해야지. (말투 전환) 지가 뭔 미국인이냐? 미국인이야? 지금 와서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지만 당시엔 그리 느꼈다.

일 주일에 두 번 영어회화 시간이 있었다. 이게 나의 영어실력에 미친 영향은 어땠을까?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고등학교 때 회화를 했어? 엄청 좋았겠네.” 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와 정반대였다.

영어회화 한 시간 수업(고등학교이므로 45분 수업이었던 것으로 기억)에 내가 발화는 인사말과 Yes/No 정도. 어쩌다가 말을 할라 치면 턱턱 막혀 스스로에게 실망. 이 과정의 반복.

결국 몇 번 시도하다가 침묵의 단계로 들어섰다. (겉으로는 ‘회화시간에는 과묵한 아이’로 포지셔닝.) 그래서 고등학교 3년간 회화시간에 이야기한 문장이 몇백 개 안될 것이다. 돌아보면 회화수업비를 따로 내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게 한스럽다.

II.
고등학교 들어가서 첫 해 받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애들이 왜 이렇게 다 괴물같은 건가. (나중에 알고 보니 다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혼자 끙끙 싸매고 고민하다가 부모님께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모건 프리먼 급의 중저음으로 딱 두 마디를 하셨다.

“전학갈래?”
“자퇴할래?”

그래서 난 이야기했다.

“자퇴하기 전에 그래도 한 번 해볼게요.”

일단 충격 받고 그대로 물러나는 게 싫었다. 어떻게든 그 밀림에서 살아남고 싶었다. 그래서 영어의 고군분투는 다시 시작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리 비장할 필요도 없었는데. 어리다는 건 멋지고도 웃긴 것이다.)

III.
내 또래들이 대부분 그랬겠지만 고등학교 때 영어공부는 한마디로 ‘입시공부’ 였다. 학력고사 시절이어서 발음 문제가 출제되고, 문법 문제의 난이도도 상당했다. 무엇보다 주기적으로 보는 모의고사 점수가 진로의 모든 것을 말해주던 때였다.

살아남기 위해서 영어에 매달렸다. 1-2학년 때 꽤나 많은 시간을 영어에 투자한 게 모의고사에는 유효했다. 졸업할 때까지 영어과목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계속되었다. 외고에 다니면서도 말한마디 못하는 신세라니.

IV.
그나마 고등학교 영어 공부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풍부한 어휘 습득이다. 고등학생 치고는 상당히 많은 어휘를 외웠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어휘를 외우는 데 가장 기여한 요인은 ‘사전’이었다.

한 마디로 ‘사전을 끼고 살았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었고, 전자사전도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나는 혼비 영영한사전과 함께 3년 내내 동고동락했다.

특별한 비법은 없었다. 다만 주요 어휘라고 불리는 (주로 뜻이 엄청 많은) 놈들은 5번 이하의 뜻까지 외우려고 노력했다. 어떤 것은 15번 이상의 뜻까지 정리하고 예문을 적기도 했다. 주로 동사군들을 중심으로. 그렇게 정리한 두꺼운 단어장이 십수 권이었다. (이후 이 단어장들은 비극적 사건으로 사라지게 되고… ㅠㅠ)

말하기 꽝, 듣기 꽝의 영어실력이었지만 나름대로의 어휘실력을 길렀던 고등학교 시절.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그 때 쌓아 놓은 어휘 실력으로 대학교 4학년을 보냈으니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하편 계속)

쪽글 정리중

Posted by on Jun 30,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이리 저리 널려있는 지난 5년 여의 쪽글을 정리하고 있다. 좌절과 부끄러움의 화수분. 파도 파도 성긴 개념들을 늘어놓은 글이나 어설프게 멋부린 단상 뿐이다. 소셜미디어에서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되는 멋진 글들을 보며 옅은 자괴감마저 든다.

그 와중에 지도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계속 읽고 쓰는 삶을 산다면 박사논문이 앞으로의 네 생애에서 가장 못쓴 글이 될 거야.”

못난 글을 알아보는 눈이라도 서서히 생기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온전히 볼 수 있는 눈을 갖기 위해 또 수십 년이 걸릴 것이다. 어리고 어둔 마음, 빛을 받아안는 데에는 일생도 부족할지 모른다.

apart의 의미

Signature > sign / ball point pen > ball pen 등 소위 ‘콩글리시’에서 단어가 축약되는 경향에 대해 읽다가 옛 일화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나: “They lived apart.” 이게 무슨 뜻이죠?
학생: 음… “그들은 아파트에 살았다?”
나: 아… 여기에서 “apart”는 부사예요. 부사.
학생: (자신있게) 그쵸. 그러니까 아파트’에’ 아닌가요?
나: &%#$#^&!@

이 학생에 의하면 명사 ‘apartment’는 부사 ‘apart’가 되어 ‘아파트에’라는 뜻을 갖게 되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구동사(phrasal verb)와 구명사(phrasal noun)

한 페친께서 “run-down”이라는 구명사(phrasal noun)을 언급하셔서 관련 링크를 하나 공유합니다.

영어 학습 단계에 있어 상위 학습자와 원어민을 가르는 몇 가지 지점이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구동사(phrasal verb)의 자유로운 사용이죠. 영어를 꽤 잘하는 분들도 put off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자리에 postpone이나 procrastinate를 쓰거나, set something off 라고 쓰면 적당할 상황에서 cause something to begin과 같이 쓰는 걸 볼 수 있으니까요.

사실 저도 이러는 경우가 많아서 미국인 동료 하나가 ‘너는 왜 말하는 걸 글쓰듯 하냐?’라고 물은 적도 있습니다. 저는 당당히 ‘영어를 글로 배워서 그래.’라고 대답했죠. ^^

구동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바로 구명사(phrasal noun) 입니다. Report가 동사와 명사 모두로 사용되듯 run down 또한 동사로도 명사로도 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명사로 사용되는 경우에는 띄어쓰기 없이 한 단어로 쓰거나 중간에 하이픈을 넣어주어야 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아래 링크에서 구명사(phrasal noun)의 다양한 예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phrasal verbs vs. nouns

애플 WWDC 언어 맛보기

Posted by on Jun 6, 2017 in 강의노트, 말에 관하여, 영어 | No Comments

1. 그냥 excited 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really excited 해야 한다. 그냥 glad 해서는 반가운 게 아니다. So glad 해야만 한다. 감정의 오버도 용인되는 자리다.

2. A new level 따위는 없다. 새로운 레벨은 모두 ‘a whole new level’ 이어야 한다. 새로운 것은 whole new 하거나 brand new 해야만 한다. 앱도 마찬가지다. New apps가 아니라 All new apps여야 한다.

3. 행사는 largest, biggest, fastest, best 등 최상급의 향연이다. 물론 ever로 꾸미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비교급도 ever랑 결합하면 강력하다. Than ever before 같이 말이다. 마치 인류의 역사가 WWDC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듯하다.

4. 많은 이들이 싫어하는 클리셰지만 여전히 자주 들리는 말: “Game changer.” 이제 게임은 좀 그만 바꾸었으면 좋겠다.

5. Incredible, incredibly, unbelievably… 라면서 다 믿으란다. 믿을 수 없으니 더더욱 믿으라는 말은 일종의 유비같이 느껴진다.

6. 엄청나케 큰 화면에 보여주면서 꼭 sneak peek 이라고 한다.

7. WWDC 때마다 keep pushing forward (the limits), raising the bar 하느라 수고가 많다.

기술혁신, 그래픽, 시연 등이 모여 신제품/기술 발표 이벤트가 완성된다. 연사들의 언어는 이를 실시간으로 엮어준다. 그 특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그리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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