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할 수 있는 능력

Posted by on May 19,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생각만 한다”는 실행력 부족을 나무라는 말이지만, 한편으로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을 담고 있기도 하다. 뭐든 다 직접 해보지 않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능력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고 지금 여기 눈 앞의 공간과 지각할 수 없는 공간을 연결한다. 생각만 하는 능력이야말로 현실을 뛰어넘는 능력인 것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On native-speakerism

Native-speakerism is a powerful ideology machine that mass-produces unfairness, contempt, inferiority, and frustration. It ruthlessly divides native and nonnative speakers, veils the hard fact that we are all legitimate users of a certain language, and naturalizes sociocultural, economic biases against second and foreign language learners. Through this seldom-challenged mechanism, it effectively molds discrimination out of differences, It mimics racism in placing the categorical value on a birth-based capacity, and colludes with the ‘sacred’ meritocracy by establishing native speaker-favored standards, qualifications, and market environments. Where native-speakerism prevails, foreign language learning functions as a viable tool for the old ruling strategy: divide and conquer. So I remind myself that I do not need to say, “I perfect understand what you mean by that. However, it is wrong: native speakers would not speak like that.” No, they’re not wrong. I am wrong. There utterances communicate: my judgement blocks.

쌓여가는 책

Posted by on Apr 28, 2018 in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읽을 책이 쌓여간다”고 말하지만

“안읽을 책이 쌓여간다”가 중단기 데이터를,

“버릴 책이 쌓여간다”가 중장기 데이터를 좀더 잘 반영한 진술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변화의 메커니즘

Posted by on Apr 23,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자신이 쓰는 말 하나하나가 국어를 바꾼다는 생각을 못하지만, 이 메커니즘을 제외하고 언어 변화를 설명할 길은 없다. 자신의 작은 실천 하나하나가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생각을 못하지만, 이 메커니즘을 제외하고 역사와 사회의 변혁을 설명할 길은 없다.

큰 일을 이룰 방법은 작은 일밖에 없다. #다시쓰기

동어반복[同語反覆]

Posted by on Apr 18,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슬픔이 슬픔에 그치는 슬픔 없기를.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게 있을까.

어울리지 않는 것들과 어울리지 않는 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

‘동어’를 ‘반복’한다고 하지만,
다시 말하는 순간 ‘동어’가 아닌 듯합니다.
같은 길이와 높이의 음도 두 번을 치면,
첫 번째 음과 두 번째 음이 생기듯 말이죠.

속좁은 사람의 잡담 몇 개

Posted by on Mar 26, 2018 in 말에 관하여, 일상 | One Comment

1. 종종 타임라인에 공유되는 ‘명언’ 중에 “Great minds discuss ideas; average minds discuss events; small minds discuss people. (위대한 사람들은 사상을 논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사건을 이야기하며, 작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한다.)”라는 Eleanor Roosevelt의 말이 있다. 원문을 확인해 보지 않아 이 문장이 나온 정확한 맥락은 모르지만, 날이 갈수록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들이야말로 사람들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하고, 그들을 위해 정성을 다하려는 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 없는 사상’ 보다는,’사상 없는 사람’의 편을 택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이런 양극단이 존재할리 없겠지만, 굳이 고르라면 말이다.)

2. <위플래시>의 플레처 교수의 훈육법에 대해 ‘저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술가는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만 해’라며 동의하는 분들이 있다. 플레처 같은 선생이 없으면 한계를 뛰어넘는 예술가가 어찌 나올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인 듯하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앤드류의 신들린 연주 장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플레쳐의 옛 제자 케이시를 보았다. 통쾌하지만 슬펐고, 아름답지만 무서웠다. 왜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예술’을 보고 싶어 하는가? 그렇게 태어나는 ‘천재’의 그늘에 가려진 수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숨어버렸나? 한계를 뛰어넘은 예술은 한계를 넘지 못한 이들의 아픔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가?

3. 돌아보면 남에게 모질지 못했던 만큼, 목숨걸고 어떤 대상에 진력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배움은 언제나 애매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영어도, 사진도, 음악도, 글씨도, 심지어는 전공이랍시고 한 응용언어학까지 말이다. 이런 얄팍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계에 도전하지 못했던 나는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4. 엉거주춤한 모양새로 살아온 나를 지탱해 준 것은 늘 사람, 사람이었다. (남들에겐 별것 아닐지 몰라도) 두어 차례 큰 고비가 있었고, 그때마다 내 의지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도움의 손길들이 큰 사상에 기대있었는가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날 버티게 한 힘은 약속도 댓가도 없는 함께함의 가치를 알았고, 무엇이든 쪼개어 주길 좋아했으며, 사소한 다침으로 마음을 닫지 않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거창한 아이디어(ideas)를 좇았다기 보다는 못나디 못난 인간(people)을 받아주고 견뎌낸 친구들이었다.

5. 적어도 내게 위대한 영혼은 사람들 곁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속좁은 나에게 위대함은 사상이 아니라 사람을 향해 있는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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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오늘 쓴 글을 다시 읽는다. 사상과 이론을 공부하고 따르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닮으려 하지만, 여전히 나의 속은 좁은 것 같다.

줄탁동시

Posted by on Mar 24, 2018 in 강의노트,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 No Comments

교육에서 선생과 학생 사이의 관계와 협업에 기반한 배움을 이를 때 종종 쓰이는 사자성어다. 하지만 나는 문구를 볼 때마다 개인과 사회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는 변증적 세계관을 떠올린다. “세상이 바뀌려면 내가 변해야 하는가? 사회야 변해야 하는가?” 정답은 “동시에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아닐까? 나의 몸과 마음은 철저히 사회적이고, 사회는 수많은 몸과 마음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니.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상호복수, 그리고 “우리가 친구가?”

 

예전에 “상호복수”라는 개념에 해당하는 여러 표현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shake hands with someone’에서 hands가 복수인 이유는 손이 두 개라서라고 하죠. (물론 두 사람 모두 양손으로 악수를 하는 경우 네 개가 되겠죠.) 다른 예로 take turns / change seats 등이 있습니다. be on good/friendly terms with someone도 있군요.

페이스북에서 이미 친구가 된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친구 수락을 누르니 이렇게 나오네요. You are friends with this person. – 상호복수 문법에 따르면 상대와 나를 포함하기에 ‘friends’라는 복수형을 쓰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문법적으로는 이런데 페이스북의 “unfollow’ 기능을 생각해 보면 개념적으로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습니다. 분명 친구 사이이지만 unfollow를 할 경우 상대방의 소식이 사라지기 때문이죠.

즉, A는 B의 소식을 보지만, B는 A의 소식을 보지 않게 되는 ‘정보 비대칭 (실은 정서 비대칭)’의 상황이 되는 겁니다. 상호친구 사이에서 일방적인 친구 사이가 된달까요?

이 상황에서 ‘상호복수’ 개념은 그야말로 껍데기 느낌입니다. 정리하면 이런 거죠.

You are friends with this person. However, the person is not friends with you.”

저 unfollow 하신 분들은 이거 안보이실 듯. :)

변증적 성격을 지닌 부정관사

영어 부정관사 a(n)은 상황에 따라 두 가지 상반된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구별하지 않고 언어를 사용하지만 사실 전혀 다른 층위의 개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1. 먼저 어떤 개체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He has a cat. It is very cute.”

여기에서 ‘a cat’은 고양이 한 마리라는 뜻입니다.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양이 중 하나인 것이죠.

2. 이에 비해 “a + 명사”가 한 개체가 속한 집단 전체를 대표할 수 있기도 합니다. 아래와 같은 경우입니다.

“A dog is a great partner in your life.”

이 경우에 “A dog”은 ‘개 한 마리”라기 보다는 “개” 즉, 집단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1과 2는 우리의 사고 속에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지만 결코 같다고 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한 사람은 개인임과 동시에 인간이라는 종을 대표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닙니다. 개별 안에 일반이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이야기는 특수한 이야기면서도 누가 읽더라도 울림을 주는 요소 즉 보편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죠.

이런 면에서 “a(n)”의 의미는 변증적(dialectic)입니다. 집단에 속해 있는 하나의 멤버 (one member) 이지만, 때로는 그 집단 전체를 가리킬 수 있으니까요.

#관사공부중

A second thought

Let me give it a second thought. 말이 나온 김에 조금 더 보태어 봅니다.

“The only”도 그랬지만 “The first, the second, the third”와 같은 표현들도 깨져서는 안되는 법칙으로 배웠습니다. 이는 “서수 앞에는 the를 붙여라!”는 구호(?)로 정리되었죠. 하지만 이 공식에는 헛점이 있습니다.

제가 첫 문장에서 쓴 “a second thought”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give something a second thought”는 “~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다” 정도의 뜻으로 “a second thought”와 같이 부정관사를 쓰는 것이 적절합니다.

이 차이 또한 개념화(conceptualization)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Give something a second thought”에서 “second”는 ‘다시 한 번’ 한번 더’ 정도의 의미입니다. 서수적인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의미상 차이가 있는 것이죠. “take a second look(다시 보다)”과 같은 용법도 비슷합니다. 만약 우주선을 만드는 팀의 디렉터가 “Nobody deserves a second chance here.”라고 한다면 “여기에서 두 번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정도가 되겠죠. 우주선이 폭파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는 상황이니 한번 실수하면 끝이라는 겁니다.

학술논문에서 생각나는 예는 “a second limitation”과 같은 표현있습니다. 연구의 한계를 논의하며 “두 번째 한계로는…”과 같이 이야기할 때 쓸 수 있는 어구죠. 이 경우에는 한계점이 몇 있는지 언급하지 않고 “첫 번째 한계는…이다. 두 번째 한계는…이다.”와 같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특정 대상의 수가 N으로 한정되어 있고, 이에 대해서 “첫째, 둘째, 셋째… N번째”와 같이 이야기를 한다면 서수 앞에 모두 the를 붙이는 것이 맞습니다. “There are three problems with this method. The first… the second… the third…”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언어는 꽤나 말랑말랑합니다. ‘법칙과 예외로 구분되는 세계’라기 보다는 ‘개념화와 맥락으로 창조되는 세계’에 가깝습니다.

#관사공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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