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환의 물성, 계급, 상상력

1. 주머니나 가방 안에 넣을 수 있는 화환은 없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화환은 눈에 띈다. 스스로 ‘거기 있음’을 알리는 것이 화환의 주요 임무 중 하나다. 역으로 말하면 눈에 띄지 않는 화환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된다.

2. 화환에는 보통 두 개의 메시지가 담긴다. 하나는 조의를 표하는 메시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가 대표적이다. 다음으로는 화환을 보낸 사람이다. 대개 이것은 다시 두 개의 메시지로 나뉜다. 먼저 보낸 사람의 직함이다. 다음으로는 보낸 이의 이름이다. “”(주) 개똥전자 대표이사 홍길동”과 같은 문구가 대표적이다. ‘화환’은 ‘조화나 생화를 모아 고리 모양으로 둥글게 만든 물건(다음사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사실 핵심은 꽃이 아니라 언어적 구성에 있다.

3. 화환은 누구나 보낼 수 있지만 누구나 보내지는 않는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어서 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그보다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보내는 경우가 많다. 계급적 편협함 때문일 수도 있으나 나는 ‘배송노동자 OOO’나, ‘택시기사 OOO’와 같은 이름이 붙은 화환을 본 적이 없다. ‘화환에도 계급이 있다’는 말을 완전히 부정하긴 힘들 것이다.

4. 화환에 ‘박히는’ 직책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기업의 총수나 국회의원이다. 아주 예외적으로 대통령이 화환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런 이름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상가는 보내는 이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사회문화적, 상징적 권력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장이 된다. 화환이라는 장치는 그 자체로 모종의 권력을 생산한다.

5. 그런 의미에서 개개인은 예를 갖추어 화환을 보낼지 모르지만, 그것들은 누군가에게 목격되거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거나 언론에 의해 보도되면서 고인과 그의 가족이 사회 내에서 점하는 위치를 고정하고 동시에 증폭시킨다. 죽음을 기리는 장례식장이지만 고인과 그의 가족이 쌓아온 사회적 자본이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자리로 기능하는 것이다.

6. 화환만은 아니다. 특정 장례식장의 평판이나 인지도, 해당 공간의 물리적 특성, 조문객의 규모와 사회경제적 구성, 장례를 이끄는 인물/기관의 영향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회경제적, 문화적, 계급적 지표로 작용한다.

7. 이번 논란으로 돌아가 보자. “(주) 개똥전자 대표이사 홍길동”과 “대통령 홍길동”에서 ‘(주) 개똥전자 대표이사’와 ‘대통령’은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다. 기호학적 측면에서 한 가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이 둘의 위치가 같다고 해서 그것이 가지는 의미의 무게도 같을 수 있는가? ‘대통령’이 박힌 화환이 공간을 점할 때 그것을 받는 상대는 어떻게 위치지어지는가? 그렇게 대통령과 상대에 의해 점유된 의미를 시민들은, 여성들은, 피해자들은, 동료 정치인들은, 언론은 어떻게 인지하게 되는가? 다시 강조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의도’가 아니라 ‘효과’이며, ‘효과’의 영역은 당사자들의 ‘선한’ 의도로 제어하거나 판단될 수 없는 것이다.

8. 논란에서 잠시 바깥으로 나와 보자. ‘예를 갖추는 방식으로서의 화환’은 관습을 충실히 따른다. 쉽게 말해 하던 대로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것은 예를 갖추는 방식에 대한 상상력의 지독한 빈곤을 드러내지는 않는가? 의도와 관계 없이 화환이 갖는 물성이 발현하는 효과에 무지한 선택은 아닌가?

9. 이번 ‘사건’에 대한 각자의 판단은 다를 것이다. 아니, 그게 무슨 사건씩이나 되느냐고 할 분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한평생 화환 한 번 보내지 않고도 충분히 예를 갖추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지위와 이름을 전시하지 않아도 충분한 사람들 말이다.

리터러시 교육의 또 다른 목표

지식의 확산과 공유가 쉬워질 수록 이해의 폭과 깊이도 커진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오해의 폭과 깊이 또한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보가 끝없이 늘어나도 인간의 두뇌가 갖는 역량은 상수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이해력과 ‘오해력’이 손에 손을 잡고 쑥쑥 커가는 동안 개인은 한없이 작아진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으나, 더 많은 것들을 모르게 되었다. 우리의 앎의 세계는 커진 것 같지만 불확실해졌다.

지금 리터러시 교육의 주요 과제는 다양한 정보를 이해하고 선별하고 종합하고 활용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으로 요약된다. 마치 그 모든 것들을 소화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지식정보역량을 키움과 동시에 자신의 앎이 가지는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게 하는 것.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부족함에 대한 성찰 속에서 소통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 시대 리터러시 교육의 주요 과제로 설정되어야 한다.

#삶을위한리터러시

나의 영어교육

“흔히 ‘초중등 영어교육’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단어 암기, 문법 시험, 해석하고 문제 풀기. 이를 통한 성적/스펙 획득.

나의 영어교육: 영어를 매개로 삶을 다루기. 권력과 계급, 차별과 배제, 아름다움과 추함, 사회와 문화가 순간순간 충돌•교차하는 담론장에서의 실천.

이 간극을 줄여가고 싶습니다.”

연수 강의록 작성하다가 끄적인 메모입니다.

언젠가 #삶을위한영어공부 ‘교사편’ 써볼까 봐요. 더 많이 알아서 쓴다기 보다는 동료 교사로서 다른 선생님들께 편지쓰는 마음으로요.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신세한탄도 있고, 함께 고민해 보자는 초대도 있고… 그런 글이면 어떨까 싶네요.

영문 학술 프리젠테이션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제가 프리젠테이션에 대해서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이 점이/이 연구가 정말 중요하다”라는 점을 청중들에게 알리는 방식입니다. 프리젠테이션이 그냥 이력서에 한 줄 올라가는 발표가 아니라 자기 삶에서, 학계에서 나아가 인류에게 정말 중요한 이슈라는 것을 설득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던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교육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발표를 시작하곤 합니다. 인상적인 인용구와 해당 분야의 기념비적 연구를 가지고 시작하는 전략도 나쁘지 않은 것 같구요.

두 번째는 데이터입니다. 자기 연구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외쳐봐도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프리젠테이션은 재미도 힘도 없습니다. 처음에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는 데이터가 없어서 고생했는데, 논문을 거의 완성할 때쯤 되니 보여줄 것들 중에서 고르는 것이 힘이 들었습니다. 저는 “강한 인상/확신을 줄 수 있는 데이터 두세 가지를 보여주는 간결한 비주얼”로 발표를 채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많은 데이터를 보여주려다 보면 발표가 아닌 논문이 되어버리고 청중의 집중력도 급속히 떨어지게 되니까요.

즉 두 가지가 갖춰진 프리젠테이션은 기본은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많은 문헌들을 잘 정리해서 표와 차트로 보여준다거나, 발표 후 자신의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도입했다면 이를 통해 다룰 수 있는 다른 영역 혹은 데이터를 강조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다시 강조하자면 “이게 나에게, 학계에, 우리 사회에 중요하거든요?” 아울러 “왜 중요한지 이 데이터를 보면 확실히 아시겠죠?”라는 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이제 (그닥 좋아하는 용어는 아니지만) 프리젠테이션을 조직하는 ‘스킬’의 측면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서는 발표자료에 대해 충분한 지식이 있고, 관련 용어를 숙지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어떻게 영어로 발표를 이끌어 나갈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제가 생각해 본 전략은 최근 쉽게 구할 수 있는 다양한 동영상 강의를 일종의 모델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TED.com에 올라와 있는 중 Pamela Meyer의 “거짓말장이 잡아내는 법”이라는 강연을 예제로 사용하겠습니다.

1. 시작에 임팩트있는 진술과 유머를 섞어라.

“Okay, now I don’t want to alarm anybody in this room, but it’s just come to my attention that the person to your right is a liar. (Laughter) Also, the person to your left is a liar. Also the person sitting in your very seats is a liar. We’re all liars. What I’m going to do today is I’m going to show you what the research says about why we’re all liars, how you can become a liespotter and why you might want to go the extra mile and go from liespotting to truth seeking, and ultimately to trust building.”

먼저 웃음을 이끌어내기 위해 “지금 딱 보니까 너 오른쪽에 있는 사람 거짓말장이네?” 라는 말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현장에 모인 청중들, 나아가 모든 인간에 적용하죠. 처음 웃고 시작하는 건 프리젠테이션에서 정말 효과적입니다. 자연스런 웃음으로 순식간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시작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거죠. 하지만 단순한 웃음을 유도하는 게 아니라 발표의 주제가 우리 각자 또 사회 전체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을 명확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Today I’m going to … 라는 구문을 통해서 오늘 할 이야기를 단도직입적으로 전합니다. 이 문장은 전체 프리젠테이션의 주제를 담고 있는 문장이면서 자신의 일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ultimately to trust building) 문장이기도 하죠.

2. 아래에 내려가면 여러 가지 연구를 언급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On a given day, studies show that you may be lied to anywhere from 10 to 200 times. Now granted, many of those are white lies. But in another study, it showed that strangers lied three times within the first 10 minutes of meeting each other. (Laughter)”

이 부분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발표자가 소개하려는 연구를 매우 간결한 문장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러 연구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순간 프리젠테이션은 지루해집니다. 자기가 하려는 이야기와 관련된 내용만 최대한 간결하게 추려서 소개해야 하고, 그것이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프리젠테이션은 데이터 주석 data commentary 이 아니고 이야기하기 storytelling 이라는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데이터와 결과는 스토리텔링의 주요요소로 기능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이번에는 특정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부분을 봅시다.

“Now this brings us to our next pattern, which is body language. With body language, here’s what you’ve got to do.”

앞서 발표자는 프로이드의 말을 통해 우리의 말 speech 과 그에 숨겨진 심리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위의 문장을 사용하여 제스처에 관한 논의로 넘어가죠.

이 부분에서 프리젠테이션을 보시다가 부분 부분을 엮어주는 표현들에 주목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Now we can move on to … 나 Given this situation/data 같은 식의 표현을 쓰실 수도 있고, On the contrary, on the other hand 등 역접을 나타내는 어구를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This is just a part of the story, though. 라면서 좀더 넓은 논의로 나아가실 수도 있고, Is this really a universal pattern?과 같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식의 표현을 쓰든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가 넘어갈 때 뚝뚝 끊기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프리젠테이션을 만드는 것은 영화에서 좋은 편집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입니다.

4. 다음으로 질문을 통해 청중과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부분을 봅시다.

“Now we’re going to look at the hot spots. Can you tell what’s happening in a conversation? Can you start to find the hot spots to see the discrepancies between someone’s words and someone’s actions? Now I know it seems really obvious, but when you’re having a conversation with someone you suspect of deception, attitude is by far the most overlooked but telling of indicators.”

우선 질문을 던지는 전략은 효과적이지만 매우 위험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너무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건 프리젠테이션을 어색하게 만듭니다. (청중 반응: 뭐 어쩌라구? 그거 계산하려면 수퍼컴퓨터 써야 되겠네.) 너무 안이한 질문은 ‘뭐 저런 질문을 던지고 있냐. 다 아는 거잖아.’와 같은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죠. 따라서 발표하시는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발표 내용을 이해하면 충분히 답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거나, 상상과 추측이 적극적으로 발동되는 질문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5. 다음으로 초반에 제시한 아웃라인을 언급하는 부분을 봅시다.

Now we’ve talked a little bit about how to talk to someone who’s lying and how to spot a lie. And as I promised, we’re now going to look at what the truth looks like.

이건 위에서 설명드린 3번과 비슷한 기능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초반에 언급했던 전체 강연의 내용 및 구조를 언급하면서 넘어가고 있지요. 청중들에게 지금 발표가 어디 있는지(where we are)를 알려주면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면 전체 흐름을 놓치지 않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발표자는 청중들을 새로운 여행지로 이끄는 가이드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면 좋을 것입니다.

6. 마지막 단락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져야 합니다.

자 마지막 문단을 한 번 볼까요?

When you combine the science of recognizing deception with the art of looking, listening, you exempt yourself from collaborating in a lie. You start up that path of being just a little bit more explicit, because you signal to everyone around you, you say, “Hey, my world, our world, it’s going to be an honest one. My world is going to be one where truth is strengthened and falsehood is recognized and marginalized.” And when you do that, the ground around you starts to shift just a little bit.

And that’s the truth. Thank you.

“사람들이 거짓을 인지하는 과학을 보고, 듣는 기술과 결합할 때, 그들은 자신을 거짓말에 동조하는 것에서 제외시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아주 조금만 더 확실히 표현하는 길을 시작하세요 “이봐, 내가 사는 세상, 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직한 세상이 될거야 내 세상은 진실이 강해지고, 거짓은 밝혀지고 무시되는 세상으로 바뀔거야 그리고 여러분이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아주 살짝 바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진실입니다 감사합니다.”

TED의 한글 번역이 완전히 매끄럽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 훌륭한 메시지입니다. 저는 좋은 발표는 정보와 함께 영감을 주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단락에서 깊은 울림을 이끌어 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프리젠테이션 막판까지 자잘한 데이터를 제시하느라 마지막에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시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상으로 TED talk 한 꼭지를 가지고 학술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저의 짧은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TED 를 시청하시거나 기타 강의를 보실 때는 발표자가 주제의 중요성을 어떻게 개괄하는지, 관련 분야의 지식과 연구를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어 전달하는지, 토픽과 토픽 사이의 전환에서 사용하는 전략은 무엇인지, 프리젠테이션의 개별 꼭지들을 전체 이야기 속에 어떻게 자리매김하는지, 결론에서 청중들을 감동시키는 전략이 무엇인지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강의의 내용만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각각의 요소에 해당하는 언어 요소들을 주의깊게 보셔야 하겠죠.

참고영상
https://www.ted.com/talks/pamela_meyer_how_to_spot_a_liar

#학술프리젠테이션 #영어로논문쓰기

다다르지 못함에 대한 감각

Posted by on Jun 20, 2020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집필 | No Comments

1. 세상이 좋아졌다. 검색하면 손끝에서 정보가 쏟아진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한두 개 한다면 구글북스 검색에서도 상당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북과 오디오북도 상당량의 정보를 제공한다. 소위 ‘어둠의 경로’는 더이상 어둡지 않다. (응?)

2. 석사논문을 쓸 때까지만 해도 구할 수 없는 문헌들이 꽤 있었다. 모모 대학 도서관에만 있는 도서.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문헌. 어디 있는지는 알지만 구할 수 없는 책과 논문이 적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구할 수 없는 책과 논문이 가끔 튀어나오지만 고도로 특화된 문헌학 연구가 아니라면 해당 레퍼런스 없이도 논문을 쓰고 저작을 완성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주로 다루는 언어교육 분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3.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잊게 되는 감각들이 있다. 다다르지 못함에 대한 감각이 대표적이다. 신비감이라고 해야 할까. 알 수 없고 접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동경이라고 해야 할까. 정보의 과잉은 이런 감각을 무참히 깨뜨리고 있다.

4. 여행을 가지 않아도 특정 지역을 다룬 동영상과 웹사이트를 통해 ‘거기 가본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문헌을 꼼꼼히 다 읽지 않고도 초록을 섭렵하면서 ‘그 분야를 좀 아는 것 같은’ 자만에 빠지기도 한다. 하드디스크에 채워져가는 문헌들을 보며 나의 지식이 채워진다는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내 이야기다.

5. 더 많은 것들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 더 넓게 알아야 더 깊이 볼 수 있는 영역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인간이 보고 읽어낼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정보과잉은 과장된 만능감을 선사한다. 다다르지 못함에 대한 감각을 망각한 이들은 자기를 과신한다.

6. 만능감은 언제나 거짓이다. 우리 각자가 알 수 있는 것은 세계의 파편 중에서도 파편일 뿐이다. 정보가 많아진다면 우리는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정보가 제대로 쓰이는 길이다.

7. 소셜네트워크도 마찬가지다. 사람들과 연결될수록 사람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토록 다양다종한 사람들을, 그들이 겪어온 삶의 굴곡들을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는가?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다 알고 있다고 믿는 멍청이들이 보인다.

그리고 생각난 책의 한 구절.

8. 엄기호: 또 하나, 제가 주체성의 문제에서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변화는 거대주체의 소멸이에요.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기,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 이걸 생각하게 되면서 거대주체가 소멸하게 되었다고 보는 거죠. 담론의 공간, 주석으로서의 지식 생산이라고 말씀하신 것이이런 의미일 텐데요. 이제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다 알거든요, 자기가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요. 특히 자연과학에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지식이라는 게 거의 불가능하죠.

제가 이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거대주체를 종식시켰기때문에 인간이 더 겸손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만능감을 제거할 수 있죠. 많은 연구자가 처음에 어떤 주제를 떠올리면서 이건정말 기발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논거를 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저작을 읽다 보면 자기가 하려는 게 대부분 이미 연구되어 있다는것을 깨닫게 되죠. 인류 전체의 거대한 축적 위에 올려지는 작은 벽돌 하나라도 되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말 겸손해지거든요. 아주 예외적으로 읽기를 반복할수록 자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만 대다수의 사람은 읽으면 겸손해집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개인을 만들고 역사적 주체를 만들되, 동시에 거대주체가 아닌 작고 소박한 주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읽기라는 행위가 가진 매우 독특한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93-94쪽)

유튜브 음악, 새로운 리터러시의 가능성

Posted by on Jun 18, 2020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 No Comments

선홍님과 짧은 대화 속에서 급 깨달은 것. 날아가기 전에 짧은 메모로 남겨둔다.

<유튜브를 집어삼킬 것인가>를 쓰면서 유튜브에서의 음악 소비를 ‘4-5분’이라는 짧은 감상 시간의 관점에서만 본 것 같다. (다행히 이 관점을 섯부르게 던져놓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어쩌면 음악들을 연결하고, 음악가들의 네트워크를 파악하며, 장르와 서브장르를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가면서 이야기를 짓는 힘을 키운다면 음악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엮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메뚜기 뛰듯 이것저것 되는대로 보는 것을 넘어서 음악의 세계를 횡단하며 새로운 세계를 구획하는 역량을 키울 수 있달까.

여기에는 어느 정도의 의도적 개입이 필요한 것 같다. 그게 장르에 대한 지식일 수도 있고, 음악 산업에 대한 이해일 수도 있고, 음악을 찾아내는 방식의 숙지일 수도 있다. 영상과 음악 사이의 관계에 대한 안목일 수도 있고, 아티스트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방법론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악기나 발성, 리듬과 변주 등 음악적 요소에 대한 전문지식일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뚝뚝 끊기듯 무작위로 던져지는 오락으로서의 음악이 아니라 일정한 구조와 이야기를 지닌 세계로서 다가오는 음악을 만나는 것 아닐까?

왜 그렇게 복잡하게 살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다른 방식의 듣기/보기도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이들이 절실하다는 생각 또한 지울 수가 없다. ‘1인 1깡’과 같은 소비는 그 자체로 소중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니까. 소비하는 주체에서 비평하고 생산하는 주체로의 변화도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음악이 삶을 풍성하게 하는 방식 자체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니까.

#삶을위한리터러시

문화체육관광부 6월의 추천도서로 선정!

Posted by on Jun 13, 2020 in 링크, 삶을위한리터러시 | No Comments

싱그러운 초여름, 6월의 독서산책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2020.06.10

[사회과학]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 김성우·엄기호, 따비

​“반면 유튜브는 요거만 봐야지 하고 보기 시작하지만 보다 보면 저것도 재밌겠네 하면서 계속 보게 되는 거죠.”

​때로는 신기하고, 때로는 유용한 동영상 플랫폼으로만 여겨졌던 유튜브로 인해 지식과 정보를 얻고, 소통하는 방식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변화는 문자로 된 글을 읽고 쓰는 능력으로 공인돼 별다른 의문이 없었던 오늘날 리터러시의 의미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그간의 리터러시에 맞춰진 체제와 이에 능숙한 사람들은 새로운 움직임을 흥미롭게 여길지언정 그 평가와 인정은 대체로 박한 편이다. 라틴어나 한문을 통한 리터러시에 익숙해야만 교양인으로 여겨지던 시대로 거슬러 가보면, 이러한 경향은 새로운 변화를 맞아 기존에 문화적 소양을 인증받은 기득권이 자신의 위상을 재확인하고자 의도한 차별과 닮은 양상이다. 그러나 여기에만 머물게 될 때, 리터러시는 자기중심적이고 배타적인 울타리가 될 뿐이다. 이 책은 대담집이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리터러시의 미래라는 묵직한 주제를 어렵지 않게 다뤘다. 책은 리터러시가 좋은 삶을 위한 목적 아래서 그 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_이준호, 호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http://www.korea.kr/news/visualNewsView.do?newsId=148873199

가문비 나무 아래

Posted by on Jun 13, 2020 in 링크,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 No Comments

천안시 블로그의 시민리포터 이지현 님께서 <가문비나무 아래>에서의 북토크를 전해주셨습니다. 참 포근하고 예쁜 책방이었는데요. 무엇보다 사람과 책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천안 부근에 계신 분은 한번 방문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가문비나무 아래 책방
충남 천안시 서북구 불당34길 3-20 Sol Plaza 301, 302호

http://blog.naver.com/fastcheonan/221997214074

음악, 한때 고독으로 가는 길이었던

Posted by on Jun 11, 2020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 No Comments

무언가에 연결된 상태가 디폴트가 되어버린 시대. 유튜브에서 노래를 들어도 연결되고 싶은 욕망은 꿈틀거린다. 유명인의 반응을 연신 비추는 화면, 다양한 자막으로 표현되는 감정들, ‘리액션 영상’의 높은 조회수, 영상 밑 끝도 없는 댓글놀이, 생방 함께보기 초대기능 등, 영상을 홀로 대면하는 시대가 천천히 저물고 있는 듯하다. 그 가운데 음악을 매개로 한 오롯한 고독은 그야말로 흔치 않은 역량이 되어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이 트렌드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홀로 허공을 응시하며 음악 몇 곡을 숨죽여 듣던 기억이 가끔 떠오를 뿐. 

#삶을위한리터러시#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다양성의 포용, 이데올로기, 그리고 투쟁

Posted by on Jun 11, 2020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집필 | No Comments

다양성의 포용은 친절하고 따뜻한 행동을 연상시키지만 사회 곳곳에 그리하여 우리 마음 깊이 뿌리박은 차별을 과감하게 해체하기 위한 소란스런 싸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양성은 그냥 포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벽을 무너뜨리고 경계를 넘어설 때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쟁’이라는 말의 부정적 느낌과 ‘포용’이 상기하는 긍정적 느낌은 실상 동일한 행위에 대하여 의도적으로/이데올로기적으로 덧씌워진 감정이다. 문제는 ‘다양성을 포용하자’는 구호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다양성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awareness)을 증진시키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거기에 안주한다면 기존의 질서에 기생하는 담론만을 생산하는 데 그치고 만다. 기존 체제가 ‘유사저항담론’과의 공존을 선전하며 자신의 권력을 더욱 안정적으로 행사하는 최상의 조건이 마련되는 셈이다. 

#차별금지법을제정하라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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