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 구독자, 독서와 유튜브

Posted by on Aug 14, 2019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집필 | No Comments

1. 독자의 참여(engagement)는 기본적으로 개인적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서평 작성이나 ‘북스타그램’ 포스팅은 여전히 소수에 국한된 행위다. 이에 비해 영상에 대한 반응이나 댓글의 비율은 상당히 높다. 극단적인 예로 BTS의 <DNA>에는 약 350만의 댓글이 달려 있다. 책의 저자들에 비해 유튜브 운영자들은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책의 온도와 영상의 온도는 사뭇 다르다.

2.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부상과 함께 전문 연출자나 감독이 아닌 대중에 의해 만들어진 콘텐츠를 시청하는 경우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할 말이 있고 그걸 영상에 녹여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진입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말에 과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인 도서출판과 비교할 때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모두에게 확성기가 쥐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3. 하지만 ‘모두가 만든’ 콘텐츠 소비의 증가는 지식생산과 소비에 있어서 중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콘텐츠는 지식생태계의 폭과 깊이를 어떻게 바꾸어 놓고 있는가? 책이라는 매체의 탄생은 기본적으로 내용을 확인하고 일관성을 확보하며 디테일을 정돈하는 편집과정을 수반한다. 학술서적이라면 꼼꼼한 주석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동영상 콘텐츠에 대하여 그런 과정이 존재하는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면 왜 그렇게 판단하는가? 존재해야 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이룰 것인가? ‘동영상 갖고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해’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동영상 시청 이 주요한 일과가 되어버린 지금 이러한 질문들을 피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4. 유튜브에서의 검색이 많아진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유튜브를 하나의 지식원으로 대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는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유튜브를 찾아보는 ‘자연스러운’ 몸의 움직임으로 실현된다. 하지만 짧게 잡아도 수백 년을 쌓아온 텍스트의 너비와 깊이를 대체할만한 동영상 콘텐츠가 십수 년 만에 쌓였을 리는 없다. 여기에서 모종의 위기가 생겨난다.

5. 유튜브를 검색도구로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의 생각엔 “이해가 잘 되어서” 혹은 “이해하려 애쓸 필요가 없어서”다. 이 짧은 말에는 상당히 복합적인 요소들이 숨어 있다. 미디어 생산자들의 환경과 전략, 미디어 수용자들이 원하는 바, 동영상 매체가 가지고 있는 강점 등이 얽혀 있는 것이다.

6. 다소 꼰대스러운 이야기를 해보자 디지털 네이티브에게는 감지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여러 매체들을 접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것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정리해 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새로운 세대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을 배우면서 기성세대의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시도들이 생겨나야 한다.

7. “이해하기 쉬워서 좋은 동영상”도 있지만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가치있는 책읽기”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동영상이라는) 이 시대의 대세는 거스를 수 없지만 (텍스트라는) 근대 이후의 대세를 팽개쳐서는 안되는 것 아닐까.

#삶을위한리터러시

‘순삭’의 현상학

Posted by on Aug 13, 2019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집필 | No Comments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유튜브에서의 ‘하루 순삭’ 경험은 사람들에게 어떤 지식과 감정을 갖게 하는가? 그것은 텍스트를 읽으며 밤을 새는 경험과 다른가? ‘순삭’은 또 다른 ‘순삭’을 부르는가? ‘킨들 언리미티드’와 같은 전자책 서비스에서는 유튜브의 ‘순삭’ 경험과 비슷한 현상이 발견되는가? 텍스트와 영상에서 ‘순삭’ 경험은 어떻게 촉발되고 유지되며 평가되는가? 웹툰과 웹소설의 경우는 어떠한가?

#삶을위한리터러시

커뮤니케이션, 꼬뮤니케이션

화자의 말(text)은 단순히 내용을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어떤 말이든 상대에게는 맥락(context)이 되기 때문이다. 즉, 대화는 말을 통해 정보가 왔다 갔다 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순간 순간 컨텍스트를 만들어 주고 받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말을 잘한다’는 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적확하게 표현함과 동시에 대화가 흘러갈 수 있도록 적절한 맥락을 창조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말하기 교육을 단지 ‘표현(ex-pression: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끄집어내기)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위험한 이유다.

이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은 꼬뮤니케이션이다. 소통을 통해 작은 꼬뮨들이 탄생하고 그것이 축적되어 더 큰 꼬뮨으로 나아간다. 이상은 절대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버릴 이유는 없다. 하늘에 닿을 수 없다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포기하지 않듯 말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생각의 발효작용

Posted by on Aug 12, 2019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집필 | No Comments

#삶을위한리터러시

아침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포스트를 ‘발굴’해 보니 그야말로 쪼가리 지식과 단상 수준의 쪽글이 150여 쪽. 누군가는 목차를 쓰고 그걸 채워가면서 긴 글을 쓴다고 하지만 나는 오랜 시간 공부하고 고민한 것을 이리 저리 던져두었다가 모으고 정리하고 잘라내고 덧붙이고 다듬는 방식을 선호한다. (‘선호’한다고 하니 무슨 대안이라도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런 거 없다.) 깔끔한 정리와 거리가 먼 사람이 겨우 살아남는 방식이랄까. 한 가지 재미난 것이 있다면 글이 기억이 되어 머리속에 남아 있다가 다른 글과 뒤죽박죽 섞인 후, ‘발효’와 같은 아이디어의 화학작용을 일으켜 나름 새로운 맛의 생각을 지어낸다는 것. 남들에게도 맛난 음식이 될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

삶과 미디어

기계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몇 년이 지나고 영상을 만들고 공유하는 게 어느 정도의 역사성을 획득하게 된다면 “텍스트를 읽고 쓰는 존재로서 삶의 변화”와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존재로서 삶의 변화”를 성찰하고 나누는 기획이 있었으면 좋겠다. 매체에 대한 이론과 비평도 중요하지만 삶의 궤적 속에서 미디어가 담당하는 역할을 중장기적으로 추적하는 작업은 더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가설

Posted by on Aug 11, 2019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집필 | No Comments

유튜브와 유튜버 커뮤니티의 급속한 성장과 독서모임, 글쓰기 강좌 및 읽기쓰기 관련 서적의 급격한 증가 사이에는 모종의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리터러시 생태계의 분화와 문화자본의 지형 변화가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First Chapters

“고대 이집트의 미로는 인터넷과 스트리밍 기술 위에 수많은 덕후들의 피땀으로 지어진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재림했다. 한번 빠져들면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다는 이 지옥의 이름은 유투부(類鬪涪)다.” – 언젠가 날렸던 트윗.

이리저리 옮겨가며 유튜브 영상 시청하듯 책을 봤으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었으리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밤. 어쩌면 긴 글을 읽어내는 능력과 함께 관련 텍스트를 종횡무진 읽어내는 능력 또한 신장시키는 독서교육이 생겨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덧. 여전히 ‘First Chapters'(여러 저작의 서문 낭독모임)를 운영해볼 계획이 있다. 리터러시와 관련된 저서의 서문을 낭독하고 모든 참여자들이 원하는 경우 책 전체를 독서토론으로 진행하는 모임이다. 서울지역 모임의 이름은 FC Seoul… (먼산)

#삶을위한리터러시 #성우야너는계획만다있구나

Writer, Go Out!

<다시 책으로>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매리언 울프의 저서의 원제는 <Reader, Come Home>이다. 이 책은 상당한 가치를 지니지만 반쪽일 수밖에 없다. 디지털 시대 새로운 리터러시의 문제를 거의 독자의 관점에서만 다루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리터러시를 성찰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쓰는 사람들’ 그리고 ‘찍는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했어야 했다. 앞으로 소박하게나마 이 이야기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섹션 제목은 <Writer, Go Out> 정도가 어떨까 한다. (먼산)

#삶을위한리터러시
#WriterGoOut

미디어의 관문 역할을 하는 텍스트

갑자기 든 생각인데 영화라는 멀티미디어에는 늘 텍스트(제목)가 따라붙는다는 것이 흥미롭다. 일부 ‘무제’ 영상을 제외한다면 영상은 텍스트로 대표되는 것이다. (연극이나 음악 등도 마찬가지다.) 새삼 정보의 교환이라는 측면에서는 단어가 효율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MT가서 ‘제스처 보고 영화이름 맞추기’ 게임에서 <쥬라기 공원>이 걸려서 손가락을 할퀴는 모양으로 구부리고 엄청 몸을 비틀면서 괴성을 질러 친구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삶을위한리터러시

텍스트와 영상의 추상성

텍스트의 추상성과 영상의 추상성은 그 정도가 사뭇 다르다. 텍스트는 ‘자유’, ‘과정’, ‘상황’, ‘패러다임’, ‘이론’ 등의 언어들로 ‘개념놀이’를 할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영상에서는 이들을 가지고 개념놀이를 하긴 힘들다. 대부분의 영상은 특정한 시공간에서 전개되기에 시간성과 특수성이 거세된 개념들을 가지고 전개하기는 힘들다. 이 둘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낫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텍스트가 가진 일반화, 추상화에 대한 경향이 영상에 비해 더 강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사랑’이라는 단어가 함축하는 바를 영상이 그대로 나타낼 수는 없다. ‘사랑’이라는 추상명사에는 주어나 대상이 존재하지 않으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특수한 관계와 사건 모두를 순식간에 포획한다. 영상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영화에서의 사랑은 특정한 시공간에서 특정한 캐릭터들이 맺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수학은 또다른 위상을 갖지만 이 글의 관심사가 아니라 (사실은 필자가 제대로 몰라서) 따로 논의하지 않는다.)

#삶을위한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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