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용어 사용 단상

Posted by on Feb 17, 2019 in 단상, 삶을위한영어공부, 영어, 집필 | No Comments

여전히 많은 교사/강사들은 문법을 설명할 때 ‘메타언어 용어(metalinguistic terms)’를 종종 사용한다. (‘메타언어’는 언어에 관한 언어를 의미하며 문법용어가 대표적이다.) 돌아보면 나 또한 오랜 시간 메타언어 용어를 사용해 가르쳐왔다. 그런데 3년 남짓 실력이 중간 쯤 되는 중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런 관행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한 적이 있다.

적지 않은 선생님들이 ‘구’나 ‘절’, ‘구문’ 같은 용어를 별 생각 없이 사용한다. 예를 들면 “분사구문” 파트를 가르칠 때에는 “절을 구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 빠짐없이 나온다. 여기에서 큰 병목이 발생한다.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중고생 중에 ‘구’와 ‘절’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 ‘시제’와 ‘시상’, ‘법’과 ‘태’와 같은 용어들은 또 어떤가?

통계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지만 경험상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런 용어가 학생들의 귀를 닫고 마음을 닫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는 것.

실제로 내가 만났던 두 학생은 중학교에 진학해서 영어가 싫어진 가장 큰 이유로 ‘문법설명이 어려워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수업’을 꼽았다. 겨우 두 학생이 겪었던 영어교사들의 이야기를 일반화할 생각은 없지만 문법용어 사용이 여전히 널리 퍼져있음을 시사하는 일화다.

영어교육에서 메타언어 용어 즉 문법용어를 써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자주 제기된다. 절대적으로 옳은 정답은 없을 것이다. 내가 내린 소결론은 이렇다. (1) 되도록이면 문법용어를 최소한으로 사용한다. (2) 만약 꼭 사용해야 한다면 학생들이 관련 용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확실히 하자. (3) “‘OO’가 무슨 말인지 알지?”라는 질문에 대해 “네”라고 답하는 학생들 중 다수는 사실 긴가민가 하고 있는 것이다.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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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에 대한 감각, 만남의 경험, 그리고 상상력

적어도 내가 만난 많은 학생들은 어학연수와 같은 해외 체류를 영어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 중 하나로 꼽았다. 해외에서의 생활이 영어공부의 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인풋의 양이 늘어났기 때문에’라고 간단한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흔히들 말하는 몰입(immersion)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인풋의 양보다 더욱 핵심적인 요인들이 나타난다. 나는 이것을 두 가지로 본다.

먼저 “쓸모에 대한 감각”이다. 내가 배우고 있는 말이 세상에서 진짜 쓰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아니 누가 그걸 모르느냐고 물어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쓸모”에 대한 감각은 쉬이 생기지 않는다. 어린 학생들을 직접 가르쳐 본 경험이 있다면 입시와 내신이라는 목표 외에 학생들에게 영어의 쓸모를 설명해 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아니 이것은 설명의 영역 밖에 있다는 것을 안다. 연애나 배신같이 체험되지 않고는 전달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처럼 말이다.

다음으로는 “만남의 경험”이다. 이것은 쓸모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조금 다르다. 나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이것이 다른 언어가 되어 돌아오는 경험. 이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는 경험. 이것을 목격하고 느끼는 것이 “만남”이다. 말을 건네기 전의 설렘과 말이 오가는 과정의 떨림과 말이 끝나고 난 다음의 여운을 겪는 것이다.

만남은 언어의 도구성을 넘는 경험이다. 언어가 사람을 울고 웃게 할 수 있고, 감동시킬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도구성을 뛰어 넘어 존재를 감화시키는 언어를 진짜로 만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외에 가지 않고도 쓸모에 대한 감각, 만남의 경험을 키워줄 수 있을까? 외국어로서 영어(EFL: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상황에서 많은 학생들이 ‘고백’하는 언어학습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물론 해외에서의 경험을 복제할 수는 없다. 사회문화적 상황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상응하는 변화를 꽤하려면 언어학습에서 급진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영어교육은 여전히 인풋이라는 ‘특급 키워드’에 머물러 있다. 얼마나 많은 언어자료가 투입되어야 하는가. 이 자료는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는가. 이 패러다임 말이다.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에 더 많은 인풋을 부르짖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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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인정과 오인

부르디외에게 있어 서로 다른 언어에 대해 부여되는 상이한 권력들은 사람들의 인정(recognition)에 근거한다. 하지만 그에게 이 모든 인정은 일종의 오인이다. 어떤 언어도 다른 언어 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영어는 역사적으로 또 구조적으로 층층히 쌓인 오인 위에서 작동한다. 가장 ‘사랑받는’ 언어는 실상 가장 ‘오해받는’ 언어인 것이다.

#언어의말들 #삶을위한영어공부

영어는 기본

어떤 면에서 영어는 ‘과대평가될 수 없는’ 즉, 아무리 강조해도 괜찮은 능력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경향은 아이러니하게도 ‘영어는 기본’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무언가가 기본이 되면 다른 것들은 기본의 자리에서 밀려난다. 삶에는 언제나 기회비용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너무 쉽게 영어를 ‘기본’의 자리에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영어공부의 자기성찰성

영어공부는 거의 언제나 학습방법(how to)의 문제로 인식된다. 영어 이야기가 나오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가 자동적으로 튀어나오곤 한다. 하지만 영어공부는 성찰과 비판의 대상일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전국민이 영어공부의 전문가라면, 전문가의 자기성찰성 또한 요구되어야 하는 것이다.

책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학습법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는 대중적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면서 영어공부를 진지한 사유의 대상으로 다루는 일이었다. 영어관련서에 대한 대중의 습속(habitus)를 깨면서도 그중 일부를 받아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이 둘은 상반되는 주제이지만 사유되지 않는 공부는 가볍고 위험하며 불안하다. 무엇보다 거기에는 재미와 멋이 없다. 솔직히 지금 우리사회의 영어공부 중 적지 않은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다.

공부를 해나가는 것 만큼이나 공부하는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 영어를 잘하는 것 만큼이나 영어가 나를 어떻게 만들어 가고 있는지 인식하는 일이 시급하다. 삶에 처참한 균열을 만드는 영어가 아니라 삶과 함께 성장하는 영어가 절실하다.

그냥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 같다. 하도 떠들어서 페친 중에서는 벌써 피곤하신 분들이 있을 것 같지만.

#삶을위한영어공부 조금만 더 가면 출발점에 설 수 있을 것 같다.

인간 사고의 유연성 혹은 무감각

1. 메타포를 살피다 보면 인간의 사고가 얼마나 유연한 지를 알 수 있다. 어떤 두 대상을 병치시켜 메타포로 엮는 순간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그 두 대상 사이의 유사점을 곧바로 찾아내고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낸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가 유연하다는 게 가끔 황당하고 불편할 때가 있다. 대표적으로 “가이아 부동산” 을 봤을 때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가이아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2. 내가 제일 황당하게 생각하는 경우는 고기집에 소나 돼지 혹은 닭을 의인화시켜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게 하거나, 심지어는 앞치마를 두르고 있게 하는 경우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간판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아 저기 소고기 파는 집이구나.” 이러고 넘어가니까. 사실 그 가게에 등장하는 건 미소짓는 소나 돼지가 아니라 그들의 ‘시체’인데 말이다.

이 경우 소와 돼지 이미지는 그 가게에서 무엇을 파는지를 표현해 주고 있고, 행복한 미소는 사람들의 표정을 그 이미지 안에 중첩시킨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할 거 같다. 인간 사고의 유연성 — 혹은 무감각함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3. “Armed to the teeth”는 직역하면 “이빨까지 무장한”이라는 뜻. 이건 아닌 것 같아 사전을 찾아보니 “If people are armed to the teeth, they have lots of weapons.”이란다. 즉, 이빨까지 무장했다는 말은 엄청나게 많은 무기로 무장했다는 뜻이 된다.

사실 이 표현을 보는 순간 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손이나 팔을 무는 영화 속 장면들이 생각났다. 인간이 최악의 궁지에 몰릴 때 이빨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거 같아서 말이다.

재미난 것은 dressed to the teeth 이라는 표현도 있다는 것. 옷을 쫙 빼입었을 때 이 표현을 쓴다. 이 외에도 “get one’s teeth into something”라고 하면 “~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다”라는 뜻이 된다.

4. Dream에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pipe dream 이라는 게 있다. 근거가 없고 허황된 꿈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pipe 일까?

일설에 의하면 아편을 빨아들일 때 쓰는 파이프에서 왔다고 한다. 환각 상태에서 느끼는 꿈. 실재하지 않는 꿈. 그래서 pipe dream 이라고 한다.

5. “By the way”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길 옆에”라는 의미가 된다. 가던 길 말고 옆길이라는 말이다. 대화에 빗대어 보면 가던 길에서 비껴나 옆길로 가자, 즉 화제를 바꾸자는 뜻이 된다. 그래서 “그런데”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길과 말은 닿아있구나 싶다.

무지에서 무지로 나아가는 책읽기

독서, 무지에서 무지로 나아가는 일

“좋은 독서는 질문에서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지지만, 그렇지 않은 독서는 읽었다는 사실만 남는다.”

돌아오면서 이 말을 내내 곱씹었다.

억지로 독서일기를 쓰게 하기 보다는 책이 자신에게 던져준 가장 중요한 질문을 적고, 이 질문의 끈을 이어나가기 위해 다음 번에는 어떤 책을 읽어낼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 보다는 “무엇에 대한 무지를 깨달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

뭔가 알게 되었다는 뿌듯함이 아니라 더 알고 싶다는 질문으로 책을 덮는 건 어떨까?

그러고 보면 좋은 독서는 무지에서 시작해서 더 큰 무지로 나아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점점 더 넓은 공간으로 인도하며 지구가 우주에서 얼마나 작은지를 깨닫게 해주는 영상은 이러한 독서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알 수록 더 모르게 되고, 모르는 것이 많아질 수록 더욱 자유로와진다. 하지만 이때의 자유는 이전의 자유와 같을 수 없으리라.’

#삶을위한리터러시

총체적 리터러시 발달

‘영어공부’를 단순히 영어실력의 향상이 아니라 모국어를 포함한 총체적 리터러시 발달의 관점에서 보게 하는 것. 어렵지만 해야 할 일 아닌가 싶고, 이런 생각을 같이하는 분들과 꾸준히 만나고 싶습니다.

#삶을위한리터러시

유학가기 전 해야 할 일

예전엔 유학가려는 학생들에게 영어공부를 좀 하라고 했던 듯하다. 지금은  우리말 책을 최대한 읽으라고 한다. ‘완벽하지 않은’ 글에 힘과 의미를 불어넣는 것은 조금 더 나은 영어라기 보다는 깊이있는 내용과 관점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영어교육과 빈곤

Posted by on Jan 5, 2019 in 단상, 삶을위한영어공부, 집필 | No Comments

한국사회 영어교육의 문제는 ‘어떤 영어인가’, ‘어떤 교육인가’, 나아가 ‘한국사회가 어떻게 영어를 다루는가’의 문제다. 그런데 결론은 늘 ‘니가 안해서 문제다’로 수렴한다. 빈곤에 관한 담론과 참 닮았구나 싶다. #삶을위한영어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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