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리터러시 발달

‘영어공부’를 단순히 영어실력의 향상이 아니라 모국어를 포함한 총체적 리터러시 발달의 관점에서 보게 하는 것. 어렵지만 해야 할 일 아닌가 싶고, 이런 생각을 같이하는 분들과 꾸준히 만나고 싶습니다.

#삶을위한리터러시

유학가기 전 해야 할 일

예전엔 유학가려는 학생들에게 영어공부를 좀 하라고 했던 듯하다. 지금은  우리말 책을 최대한 읽으라고 한다. ‘완벽하지 않은’ 글에 힘과 의미를 불어넣는 것은 조금 더 나은 영어라기 보다는 깊이있는 내용과 관점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영어교육과 빈곤

Posted by on Jan 5, 2019 in 단상, 삶을위한영어공부, 집필 | No Comments

한국사회 영어교육의 문제는 ‘어떤 영어인가’, ‘어떤 교육인가’, 나아가 ‘한국사회가 어떻게 영어를 다루는가’의 문제다. 그런데 결론은 늘 ‘니가 안해서 문제다’로 수렴한다. 빈곤에 관한 담론과 참 닮았구나 싶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삶을 위한 영어공부를 위해 넘어야 할 세 가지 장벽

(전략) 우리 사회에서 영어가 갖는 위상과 권력을 생각해 볼 때, 영어학습의 역사를 돌아보는 글이 성공과 실패, 투자대비 성과, 원하는 수준에의 도달 혹은 미달 등으로 점철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흥미와 재미를 염두에 두고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점차 성적과 시험을 위한 영어공부가 되는 현실에서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는 피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누구나 다 하는’ 영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는 쓰라림 또한 떨쳐내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세상은 ‘왜 여태껏 그 실력밖에 안되느냐’고 계속 말하고 있지요.

“삶이 영어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영어에 끌려가는 삶.
한국사회의 영어공부는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삶을 위한 영어공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기 보다는 힘겹게 올라야 할 사다리가 되어버린 영어, 삶을 즐겁고 풍요롭게 하기 보다는 불안하고 팍팍하게 만들고 있는 영어에 대해 고민하면서 붙들게 된 질문들입니다. 우리가 영어공부의 주인이 되기 보다는 끊임없이 사회와 제도가 요구하는 영어를 공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화두이지요.

오랜 시간 영어교육과 응용언어학을 연구하면서 한국사회의 영어공부를 관통하는 주요 현상으로 주목한 것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경험보다 입력(input)을 우선시하는 영어공부입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하나인 비트겐슈타인이 간파했듯이 언어의 한계는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세계의 한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행위는 단지 새로운 발음과 문자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세계의 경계를 깨뜨려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는 행위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영어교육은 영어를 통한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를 추구하기 보다는 ‘영어정복’을 위한 끊없는 전투를 강요합니다. 최대한 짧은 기간 안에 최대한 많은 언어입력을 받아 고지에 도달해야 하는 미션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단어에 숨겨진 문화와 느낌을 탐구하기 보다는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아이템을 암기해야 하고, 다른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기 보다는 다양한 문제 포맷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어떻게든 빨리 영어공부를 시작해 아이들의 영어 노출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여전히 팽배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어를 공부하면 할수록 이 세계의 질서에 더더욱 순응하게 됩니다. 또다른 세계로의 탐험이라는 이상을 철저히 배반하는 아이러니를 낳는 것입니다.

이제 영어공부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합니다. 얼마나 일찍, 얼마나 자주 영어에 노출되느냐가 아니라 영어를 공부하는 순간순간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따져물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이 영어를 공부하느냐가 아니라 공부한 바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하느냐를 고민해야 합니다. 익혀야 할 단어와 문장의 수에 앞서 외국어 공부를 통해 얻게 될 경험의 풍부함에 대해 숙고해야 합니다.

돌아보면 영어를 더 오래 공부하지 못한 게 후회되진 않습니다. 영어를 더 재미있게 공부하지 못한 건 여전히 아픕니다. 더 재미있게 했다면 훨씬 잘했을 거라 확신합니다. 공부의 양이 아니라 경험의 깊이가 말을 알게 합니다.

두 번째는, 학습자가 공부의 주체가 아니라 타인과의 비교 대상이 되어버린 상황입니다.

공부는 지식을 쌓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세워가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독서의 목표가 책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학교교육이 목표하는 바를 학교 안에서 이룰 수 없듯이 공부를 통해 이루려는 바는 언제나 삶의 실천에 있습니다. 영어공부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작금의 영어공부는 삶의 실천을 주도하는 주체로서 자신을 성장시키기 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그대로 받아안는 모양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많은 이들의 머리 속에는 정형화된 교육과정이 존재합니다. 5세 쯤 되면 파닉스를 해야 하고, 이후에는 코스북으로 말하기를 배웁니다. 이후에는 단계별 읽기자료를 공략하고, 다독 프로그램에 입문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면 문법을 좀 해줘야 하고, 중학교에 가면 내신대비 수업을 듣습니다. 중학교를 마칠 때가 되면 본격적으로 수능 대비 문제풀이에 임합니다. 물론 영재고나 특성화고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이 모든 것에 더해 고교입시에 특화된 학원을 다녀야 합니다. 대학에 가면 취업을 위한 영어공부에 매진해야 하고, 이후에는 승진과 고과를 위한 의무를 채워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는 점수를 따고 석차를 부여받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공부를 계획하고 실행하며 때로 과감히 다른 길을 선택하는 자율적 주체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링컨의 게티스버스 연설의 한 토막을 빌리자면 “우리 자신의, 우리 자신에 의한, 우리 자신을 위한” 영어공부를 추구하기 보다는, ‘영어는 기본’이며, ‘세계화 시대, 누구나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사회의 압력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게 됩니다. 타인과 자신을 지속적으로 비교하게 되고, 때로 떨쳐내기 힘든 불안과 좌절감으로 이어집니다. 영어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서의 삶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영어 때문에 받는 다양한 스트레스 중에서도 가장 은밀한 것은 ‘네이티브’ 즉 영어 원어민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도 저만치에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네이티브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서 있습니다. 자신이 이룬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할 순간, 어김없이 영어에 대한 열등감이 고개를 듭니다. ‘네이티브처럼 영어하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조금만 생각해 봐도 합리적이지 못한 반응입니다. “왜 저 외국인은 나처럼 한국어를 못할까”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회는 끊임없이 “왜 당신은 네이티브처럼 못합니까”라고 속삭입니다. 우리 또한 이런 그릇된 사고의 희생자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학습의 목표는 ‘도달할 수 없는 네이티브’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새롭게 볼 수 있는 ‘또 다른 나’가 되어야 합니다. 완벽한 연주에 집착하기 보다는 매일 조금씩 다른 변주를 시도하는 것. 그것이 새롭고도 건강한 말을 가능케 합니다.

세 번째는, 공부의 기쁨을 쌓아 조금씩 성장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욕망입니다.

자전거나 수영이 그렇듯 영어 배우기도 기능(skill)을 익히는 일입니다. 뇌에 새로운 문법과 어휘지식을 쌓아야 하고, 안면 근육, 구강, 혀, 호흡기관 등을 통해 발화하는 법을 익혀야 하죠. 읽기와 쓰기 등 리터러시를 익히는 일도 만만찮습니다. 그렇기에 외국어를 배우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런 당연한 사실을 망각합니다. 오랜 시간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을 애써 외면하기도 하죠. 각종 광고는 이런 ‘허약한 마음’을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영어회화 O주 완성”이나 “스피킹 O주만 하면 네이티브처럼 된다”는 문구로 어떻게든 쉽게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얄팍한 마음을 파고드는 것입니다. 최소 투자에 최대 수익이라는 투자 슬로건이 영어공부의 금과옥조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하지만 영어를 단기간에 정복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친구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와의 사귐 속에서 다양한 경험, 재미, 깨달음, 새로운 문화적 체험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영어와 함께 놀고, 떠들고, 감동받고, 박장대소하고, 농담을 주고받는 데서 삶의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체화한 언어학습자로 ‘빨간머리 앤’이 떠오릅니다. 누구보다 깊이 세상과 호흡하는 그는 낱말 하나에 가슴뛰어 잠못들고 자신만의 말들로 이야기에 날개를 답니다. 반짝이는 단어들을 수집하고 길가 나무에 이름 하나도 허투루 붙이지 않지요.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건 그의 말에서 끝도 없이 솟아나는 상상의 세계입니다. 그의 말공부에는 세계에 대한 경탄이 녹아 있습니다. 삶과 언어가 혼연일체가 된 곳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같은 ‘상상의 복원’이야말로 영어라는 친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언어와 문화는 한몸입니다

언어와 문화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엮여 있습니다.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고, 언어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녹아든 다양한 문화적 현상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영어라는 말 속에 영미권의 역사와 문화가 그대로 담겨있지요. 언어 속의 문화를 탐구하며 영어를 공부하기 위한 다섯 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첫째, 특정 표현의 유래를 따라가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s mad as a hatter’라는 표현을 봅시다. “Hatter”는 모자를 만드는 사람을 말합니다. 처음 이 표현을 보았을 때 ‘hatter’와 ‘mad’가 무슨 상관인가 싶었지요. 찾아보니 산업혁명기 노동자들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18세기와 19세기 영국에서는 펠트(felt, 양털이나 다른 짐승의 털에 습기와 열, 압력을 가하여 만든 천)로 모자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펠트의 생산을 위해서는 수은이 사용되었고, 오랜 시간 모자 생산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들 중 일부는 수은 중독으로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as mad as a hatter’은 ‘미친(crazy)’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Turkeys voting for Christmas”라는 숙어도 재미있습니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칠면조가 크리스마스에 찬성표를 던진다”는 뜻인데요. 투표 등의 정치행위에서 자살과도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지칭합니다. 영국에서는 1573년 경부터 크리스마스에 칠면조를 먹기 시작했다고 전해지는데요. 칠면조들이 크리스마스에 찬성하는 표를 던진다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겠지요. 이처럼 특정한 숙어를 만났을 때 그 유래를 따라가 보면 언어와 문화가 유기적 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English idioms and origins”로 검색하시면 보다 다양한 영숙어의 유래를 공부하실 수 있습니다.

둘째, 영어 메타포를 익히는 것입니다. 흔히 메타포는 말 다채롭게 꾸미는 장신구로 인식되지만, 단지 보조적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메타포 속에 한 사회의 사고방식과 문화가 고스란히 들어 있기 때문이지요. 미국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 중 하나가 스포츠 비유입니다. 일례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야구에서 나온 메타포로 “covering all bases”가 있습니다. 경기에서는 모든 베이스를 커버한다는 의미이지만 일상생활에 쓰면 모든 상황에 대비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We’ve got all bases covered.”라고 하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가 되지요. 야구나 미식축구 메타포가 미국문화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듯 아이스하키 메타포는 캐나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요소입니다.

스포츠 메타포 이외에 동물 메타포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구글에서 “animal metaphors”나 “sports metaphors”를 검색하시면 다양한 메타포를 공부할 수 있습니다. “Bird metaphors”, “dog metaphors”, 혹은 “baseball metaphors”, “football metaphors”와 같이 좀더 세밀한 키워드를 사용한 검색도 가능합니다.

세번째는 영어 속담을 익히고 실생활에 적용해 보는 것입니다. 뉘앙스는 살짝 다르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우리말에 해당하는 영어 속담으로는 “If you can’t beat ’em, join ’em.”이 있습니다. Beat은 ‘이기다, 물리치다, 패배시키다’라는 의미이고, join은 ‘-에 끼다. -에 합류하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em”은 ‘them’의 줄임말이지요. 따라서 직역하면 “물리칠 수 없다면 그 편에 끼어라.”가 됩니다.

저는 이것을 살짝 비틀어서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Even though you can’t beat ’em, never lose your identity. (그 사람들을 이길 수 없다고 해도 너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는 말아라.) 상대를 이길 수 없다고 해서 그들과 같이 될 필요는 없다는 뜻을 담은 문장입니다.

다음으로 ‘Absence makes the heart grow fonder.’입니다. Absence는 ‘없음. 결석’, fonder는 ’fond(좋아하는)’의 비교급이지요. Value는 동사로 ‘소중하게 여기다’ 정도의 뜻입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없을 때 그 사람을 더욱 좋아하게 된다”는 의미가 되죠. 평소에는 그리 친하지 않았던 친구이지만 소셜미디어에서 사라져 오래 못보게 되었을 때 문득 보고 싶어지는 경우도 있고, 같은 팀에서 늘 웃어주던 옆 직원이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겼을 때 아쉬운 마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Absence makes the heart grow fonder.’ 라는 속담을 쓸 수 있겠습니다.

검색엔진에서 “English proverbs list”를 검색하시면 영어 속담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문서들을 찾으실 수 있습니다. 속담을 통해 영미문화에 담긴 사고방식을 익혀보고 이를 각자의 삶에 적용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네 번째는 한국어와 영어간 차이를 부각해서 보는 연습입니다. 문화간 차이를 음미하면서 영어를 공부해 보는 것입니다. 한국어와 영어가 세계를 어떻게 묘사하고 설명하는지 비교, 대조해 보는 방식이지요.

우리말에서는 “엎지러진 물”이라고 하지만 영어속담에서는 “There’s no use crying over spilt milk.”라고 합니다. 엎지러진 ‘우유’인 것입니다. 이런 구문을 발견하면 ‘한국어에서는 물인데 영어에서는 우유군’이라고 스스로에게 비교,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말에서는 ‘바늘귀’라고 하지만 영어에서는 “the eye of a needle”입니다. 직역하면 ‘바늘눈’ 쯤 되겠네요. 우리 속담에서는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하지만 영어에서는 “The grass is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먹을 것의 크기를 비교하지만 영어에서는 정원의 잔디 때깔을 비교하지요. “빈 수레가 요란하다”를 영어로 하면 “Empty bottles make the most sound.”가 됩니다. 한국어에서는 수레인데 영어에서는 병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차이를 보이는 표현들도 있지만 비슷해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숫자가 너무 커서 “천문학적이다”라는 표현을 쓸 때 영어로도 ‘astronomical’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조감도”도 ‘a bird’s-eye view’로 표현합니다. 모두 상당히 유사한 표현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해마다 선정되는 “올해의 단어(Word of the year)”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옥스포드 사전은 2018년의 단어로 “toxic’을 선정했습니다. ‘독성을 지닌, (매우) 해로운’ 정도의 뜻을 지닌 이 단어는 ‘chemical’(화학물)이나 ‘environment’(환경)과 같은 물리적 개체 뿐 아니라 ‘relationship(관계)’나 ‘culture’(문화)와 같은 사회적 개념과 함께 자주 쓰였습니다. 사용빈도가 빠르게 증가했고 문화적 현상을 기술하는 데 있어 오랜 기간 영향력을 유지할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 선정의 주요 이유였다고 합니다. 2016년에는 ‘post-truth’(탈진실)이, 2013년에는 ‘selfie’(셀카)가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해마다 선정되는 단어를 보면 그 해를 관통하는 사회적 현상과 문화 트렌드를 엿볼 수 있습니다. 검색엔진에 “Oxford words of the year”나 “Merriam-Webster’s words of the year”를 입력하시면 옥스포드 사전과 메리엄 웹스터 사전이 선정한 단어를 볼 수 있고, 영문 위키피디아의 “Word of the year” 페이지에서 다른 기관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언어와 문화의 유기적인 관계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표현의 유래 살피기, 다양한 메타포 익히기, 영어속담을 익히고 자신의 상황에 적용하기, 영어와 한국어의 표현방식을 비교하고 대조하기, 매년 선정되는 “올해의 단어” 살펴보기를 제안드렸습니다. 언어와 문화를 동시에 익히는 일은 언어에 문화적, 역사적 결을 더하는 일입니다. 보다 깊은 언어학습을 위해 이들 공부법을 시도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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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공부란 무엇인가

문법이 맥락과 결합하면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Practice makes per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습하다가 보면 완벽하게 된다는 말이지요. 논란이 좀 있긴 하지만 자주 인용되는 “1만시간의 법칙”(어떤 분야이든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슬로건으로 나올 법한 표현입니다. 이 문장을 분석해 보면 매우 간단한 구조가 나옵니다. 바로 “A makes B”죠.

“A makes B”라는 구문은 매우 단순합니다. 하지만 Makes를 다른 동사로 살짝 바꾸거나 적절한 맥락과 결합시키면 풍부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이 초간단 문형을 가지고 만들어 본 문장들입니다.

1. Make-up makes money.

만약 어떤 사람이 메이크업 하는 법을 유튜브에 올려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해봅시다. 이때 “Make-up makes money.”라는 말을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여기에서 “make-up”은 화장 자체라기 보다는 ‘화장하는 법을 연구해서 만든 영상”을 함축한다고 할 수 있겠죠. 돈되는 일은 무엇이라도 make-up 자리에 넣을 수 있겠습니다. 메이크업을 하면서 삶의 기쁨을 얻게 되었다면 “Make-up makes joy.”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2. No-dress brings popularity.

어떤 사람이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누드시위를 했다고 합시다. 이때 많은 언론들이 그에 대해 주목하고 순식간에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면 어떨까요? 이 상황을 “No-dress brings popularity.”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좋은 옷을 입고 다녀서 유명해질 수도 있지만 나체가 되어 유명해질 수도 있는 것이죠. 물론 그렇게 얻은 유명세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요.

3. Consistency makes jokes.

어떤 사람이 조크를 구사합니다. 처음에는 재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결코 굴하지 않고 계속 합니다. 끝까지 밀어부치니까 이제 사람들이 어떤 패턴을 접하면 “아 이거 OO식 유머네”라고 알아보게 됩니다. 나름 웃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기고요. 이런 상황이라면 “꾸준히 하다 보니 유머가 되네”라고 말할 수 있을 거고, “Consistency makes jokes.”라는 표현이 가능할 겁니다.

4. Expediency creates illusion.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는 무명 작가가 있습니다. 원고를 보내고 답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뭐라도 대꾸라도 해주면 좋을텐데 말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다릅니다. 원고를 보낸 지 24시간도 안되어 “원고를 잘 읽어보겠다”는 답장을 받습니다. 이렇게 빨리 답장이 오다니! 뭔가 잘될 것만 같습니다. 이 경우 빠른 처리(expediency) 덕에 잘될 것 같다는 환상(illusion)이 생길 수 있죠. 사실 이번 출판사의 편집자는 이메일 답장을 보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결벽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오늘은 <A makes B>라는 간단한 구문을 이용해서 몇 가지 예문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매우 단순한 구조이지만 여러 가지 상황과 결합하면 그에 맞는 메시지를 만들어 냅니다. 이것은 <A makes/creates B>라는 문형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어떤 문법 구조이건 적절한 어휘와 맥락을 만나면 굉장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정한 맥락을 만나면 거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문법구조를 떠올려 봅니다. 특정한 문법구조를 만나면 이와 잘 어울리는 문맥을 생각해 봅니다. 이 과정 속에서 암기의 대상이 되는 문법이 아니라 삶을 포착하고 표현해 내는 문법을 익힙니다.

이처럼 언어의 구조와 삶의 맥락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문법 공부입니다. 앞으로 문법을 공부할 때마다 이점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영어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 (증보판)

 

러시아의 발달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의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을 기반으로 한 논의는 수학과 과학과의 오개념(misconception; 잘못된 개념) 연구와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영어과 교수학습의 경우 과목의 특성상 ‘오개념’에 대한 논의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영어는 개념의 체계를 중시하는 수학이나 과학과 같은 과목과 다르게 ‘도구과목’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아 오개념을 생각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은 말로 배우면 되지 거기에서 무슨 개념을 따져야 하느냐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는 것이죠.

하지만, 도구적 성격이 강하다고 해서 오개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살펴보면 영어라는 언어에 대한 잘못된 개념, 영어의 사회적 성격에 대한 잘못된 지식은 적지 않습니다. 영어에 대한 잘못된 상식 몇 가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영어에는 존대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입니다. 존대가 없다기 보다는 한국어와 같은 존대법이 없다고 해야 옳습니다.

한국어에는 높임말을 위한 여러 장치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어휘의 구별(밥/진지, 나이/연세, 자다/주무시다)과 선어말어미 ‘-시’(하다/하-시-다, 가다/가-시-다)입니다. 말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나 청자와의 관계에 따라 적절한 어휘와 어미를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어에는 이러한 어휘구분이 없습니다. 밥은 누가 먹어도 ‘rice’이고, 수면은 누가 취해도 ‘sleep’입니다. 언어의 특성상 한국어 ‘-시’에 해당하는 어미도 없습니다. 한국어와 같은 존대 시스템 (systems of honorific speech; 넓은 영역의 존대를 구현하는 형태소 및 문법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어에서도 예절을 갖추고 존대를 표현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가족의 사망시 합장을 위해 이미 있던 묘지에서 시신을 꺼내는 일은 ‘exhume’이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dig up’이나 ‘dig out’이라고 쓰면 의미는 통하지만 상황에 따라 굉장히 무례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는 동사 ‘dig’보다는 ‘exhume’을 쓰는 것이 적절합니다.

나아가 한 가지 의미도 여러 가지 문장으로 구체화될 수 있고, 이들은 각각 다른 수준의 격식과 공손함을 표현합니다. 다음 예들을 보시죠.

Shut up! (닥쳐!)
Be quiet. (조용히 해.)
Please be quiet. (조용히 좀 해주세요.)
Can you be quiet? (조용해 주실 수 있나요?)
Could you please be quiet? (혹시 조용히 해주실 수 있을까요?)
Your quietness is requested. (조용히 해주시길 부탁합니다.)
We would like to request your silence. (조용히 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Your silence is cordially requested. (조용히 해주시길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이들 문장은 기본적으로 조용히 해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하지만 각각의 느낌은 천양지차입니다. 따라서 상황과 청자에 따라 세심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Could you be quiet please?” 할 상황에서 “Shut up.”하거나, ‘Be quiet.’로 충분한 상황에서 ‘Your silence is cordially requested.’라고 쓰면 당황스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영어에 한국어와 동일한 존대법은 존재하지 않지만 다양한 문법구조와 조동사 등을 사용하여 예의와 존대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두 번째, 영어는 미국의 공식언어라는 ‘상식’입니다.
미국의 공식어(official language)는 당연히 영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미국 연방수준에서의 공식어는 없습니다. 국가가 영어를 쓰라 마라 하지 않는 것이지요. 다만 주정부 수준에서 영어만을 공식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흔히 ‘English-only’라고 불리는 정책입니다.

현재 50개 중 절반이 조금 넘는 주가 영어만을 공식어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와이가 영어와 하와이어 모두를 공식어로 인정하는 것과 다른 방향을 취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주정부의 의지, 영어와 관련된 법원 판례, 해당 정책 조문 해석의 문제, 개별 교육기관의 대응 등에 따라 ‘English-only’ 정책은 사뭇 다른 파급력과 강제력을 지닙니다. 이민자가 세운 나라에서 하나의 언어만을 강제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도 논리적이지도 않기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현상입니다.

세 번째는 네이티브 스피커는 문법적으로나 어휘적으로 완벽하다는 생각입니다.

“주변에 네이티브 없어? 물어보면 되잖아.”

알쏭달쏭한 문법이나 어휘에 대해 고민할 때 흔히 듣게 되는 말입니다. 하지만 네이티브라고 해서 영어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요?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You’re’와 ‘Your’를, ‘it’s’와 ‘its’를 구분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유머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절대 한국어 문법과 어휘 안틀린다”처럼 황당한 말은 없습니다. 한글 띄어쓰기를 완벽하게 해내는 한국인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국어를 평생 써온 사람들도 한국어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가지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영어 원어민 화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어 네이티브의 완벽함’이라는 생각은 한국인 모두가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생각만큼이나 허황된 것입니다.

네 번째는 영어 읽기를 늘리기 위해서는 무조건 영어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영어 읽기에도 배경지식(background knowledge)이 동원됩니다. 한국어 독서로 폭넓은 배경지식을 갖추었다면, 영어 읽기에 도움이 되지요. 예를 들어 미국 정치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미 대선 기사를 영어로 읽는다고 바로 이해가 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현대 미국정치를 전공했다면 영어로 미국의 대선 기사를 읽을 때 훨씬 수월할 겁니다. 읽기과정에는 단지 언어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지식, 해당 지문의 내용에 대한 지식이 동원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섯째, 무조건 영어와의 접촉을 것이 가장 효율적인 영어학습 방법이라는 생각입니다.

입력을 늘린다고 무조건 영어가 느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어로 방송을 열심히 본다고 한국어달인이 되진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일례로 쓰기 공부를 위해서는 읽기와 쓰기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무작정 읽는다고 쓰기가 자동으로 늘진 않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듣기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하루 종일 영어를 듣는 것이 최선은 아닙니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듣기 영역과 수준을 정하고 이에 맞추어 체계적으로 공략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조건’ ‘많이’ 하다 보면 ‘티끌’이 ‘태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티끌모아 태산” 전략은 티끌을 시간이 무한정이라는 조건 하에서만 유효합니다. “영어, 무조건 하면 된다”는 말도 옳을 수 있습니다. 영어를 공부할 시간이 무한정 주어지고, 의미없는 일조차 끝없이 반복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만 말입니다. ‘무조건’이나 ‘무작정’이라는 말을 ‘열심히’라는 뜻 이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곤란한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흑인영어는 ‘표준영어’에 비해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고정관념입니다.

한국에서 교육의 표준이 되는 영어와 흑인영어는 발음, 어휘, 문법 등 여러 측면에서 다릅니다. 그렇기에 흑인들의 영어를 들으면 어색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일부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상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름이 틀림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흑인들의 영어는 자체적인 논리와 표준이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흑인영어는 이중부정(double negative) 구조가 있습니다. “I ain’t have no problem. (난 아무 문제가 없다)”나 “You don’t know nothing. (너는 아무 것도 모른다)” 같은 경우인데, 교실에서는 ‘틀리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흑인영어는 이중부정을 체계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것은 ‘틀리다’기 보다는 부정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특정한 의미를 이중으로 표현하는 것은 소위 ‘표준영어’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I’m doing my homework now.”라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여기에서 현재진행(be+ing)은 ‘지금’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now’를 또 쓸까요? 현재를 이중으로 표현하기에 틀렸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체계가 존재할 뿐이죠.

사실 이중부정은 포르투갈어나 스페인어 등 세계의 여러 언어에서 발견됩니다. 미국 내에서도 흑인영어 뿐 아니라 미국의 남부방언에서 종종 사용되죠. 놀랍게도 영문학의 최고봉이라 칭송받는 셰익스피어도 이중부정을 사용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이중부정이 널리 사용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언어학습 자서전이 말해주는 것

Posted by on Dec 30, 2018 in 단상, 삶을위한영어공부, 영어, 집필 | No Comments

다섯 해 째 대학생들의 ‘영어학습 자서전’을 읽고 있습니다. 영어학습 자서전이란 평생 자신이 경험한 영어학습의 역사를 1인칭 시점으로 정리한 글을 말합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영어학습 연대기를 꼼꼼히 작성하면서 영어공부를 어떻게 시작했는지, 영어공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였는지, 기억에 남는 교재는 무엇이었는지, 어떤 공부방법을 주로 사용했는지, 영어학습의 위기 혹은 터닝포인트는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해 반추합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영어학습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누적 백 여 명이 빼곡히 적어낸 언어학습 자서전 속에서 한국사회의 영어교육에 관여하고 있는 여러 주체들을 만나게 됩니다. 학부모, 영어유치원 선생님, 공교육 교사, 학습지 교사, 학원 강사, 유학 및 어학연수 업체 관계자, 과외와 재수학원 선생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한국의 영어교육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영어교육에 대한 평가와 관계 없이 참으로 많은 주체들의 경쟁과 협업에 기반해 영어공부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어 보입니다.

‘영어공부에서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현재 나의 영어실력’. 개별 학생들이 걸어온 공부의 궤적은 조금씩 달랐지만 영어학습 자서전을 관통하는 주제는 이 문구로 요약할 수 있었습니다. 평생 영어공부의 결과라는 관점에서 현재 자신의 영어실력을 평가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던 것입니다. 읽기는 꽤 잘 하지만 쓰기는 못한다, 말하기는 다른 영역에 비해 떨어진다, 전반적으로 나의 영어실력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인풋(영어에의 노출) 부족인 것 같다 등의 서술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와 같은 결과에서 두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영어공부의 과정에서 감동과즐거움의 순간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서술은 영어와의 ‘사투’를 그리고 있었고, 중학교 이후의 영어학습은 철저히 입시를 염두에 둔 준비과정으로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당연히 영어를 통해 세계를 만나는 설렘과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영어와의 전투에서 승리 혹은 실패한 이야기가 영어학습사의 중심 주제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집단에 속한 학생들조차 자신의 실력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실력을 가졌음에도 영어실력의 부족함을 강조하는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강점보다는 약점을 드러내는 서술이, 이룬 것보다는 앞으로 성취해야 할 목표에 대한 이야기가 두드러졌지요. 자신이 설정한 영어학습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슬픔과 좌절을 묘사한 대목도 적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영어가 갖는 위상과 권력을 생각해 볼 때, 영어학습의 역사를 돌아보는 글이 성공과 실패, 투자대비 성과, 원하는 수준에의 도달 혹은 미달 등으로 점철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흥미와 재미를 염두에 두고 시작하지만 점차 성적과 시험을 위한 영어공부가 되는 현실에서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는 피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누구나 다 하는’ 영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는 쓰라림 또한 떨쳐내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세상은 ‘왜 여태껏 그 실력밖에 안되느냐’고 계속 속삭이고 있지요.

“삶이 영어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영어에 끌려가는 삶.
한국사회의 영어공부는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삶을 위한 영어공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기 보다는 힘겹게 올라야 할 사다리가 되어버린 영어, 삶을 풍요롭게 하기 보다는 불안하고 팍팍하게 만들고 있는 영어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경험, 재미, 만남, 감동, 깨달음, 상상으로 가득한 영어공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했습니다. 영어를 정복하기 위해 처절히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영어와 함께 놀고, 떠들고, 감동받고, 박장대소하고, 농담을 주고받는 법을 궁리했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 이 질문들에 천착하면서 한국사회의 영어공부를 관통하는 세 가지 주요 현상에 대해 더욱 깊이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경험이 아니라 입력(input)을 우선시하는 영어공부.

학습의 주체가 아니라 네이티브와의 비교 대상이 되어버린 자신

공부의 기쁨을 쌓아 성장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욕심

(계속)

#삶을위한영어공부

리터러시 vs. 동영상/음성

Posted by on Dec 19, 2018 in 단상, 삶을위한영어공부, 집필 | No Comments

문자기반에서 동영상 및 음성기반 소통으로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많은 이들은 이 추세를 커뮤니케이션 채널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 하지만 개인과 미디어와의 거리를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간단히 말해 문자보다는 음성 혹은 영상이 몸에 가깝다. 전통적 리터러시를 기반으로 한 소통이 생각을 공적 문자체계에 얹어 놓는다면, 오디오비디오 기반 소통은 생각을 ‘몸에 얹어’ 세상에 내보낸다. 글은 저자의 특징을 넌지시 드러내지만 음성과 영상은 저자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창작자와 미디어의 거리가 가까와지고, 미디어와 소비자의 거리가 가까와진다. 그 결과 창작자와 독자의 거리는 무척이나 가까와진다. 이렇게 서로에게 한걸음 다가선 미디어 생태계가 이 사회와 각자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불분명하다.

#삶을위한리터러시

한국은 한국영어교육의 중심

한국은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영어교육의 변방이 아니다. 한국은 한국영어교육의 중심이며 시작과 끝이다. 오히려 영미가 한국영어교육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종종 ‘영어’와 ‘영어교육’이 나의 일을 대표하는 단어라는 사실이 슬프다. 이 단어들이 지고 있는 어두운 힘과 세월 위에서 나를 짓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저들을 ‘삶’에 복속시키고 싶다. #삶을위한영어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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