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티브 스피커는 죽었다(The Native Speaker is Dead!)

 

원어민이 죽었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세상곳곳에 버젓이 살아있는데 말이죠. 사실 이것은 Thomas M. Paikeday가 쓴 책 제목입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네이티브 스피커’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개념화했다는 겁니다. 마치 유니콘을 만들어 낸 것처럼 말입니다.

영어 원어민(English native speaker)는 누구입니까?

“하, 이사람 보게나. 원어민이 누구겠어. CNN 같은 방송에 나와서 아주 “명쾌한” 발음으로 뉴스를 전해주는 그 앵커들 아니겠어? 영어 교재에 나오는 그 발음 있잖아. 토플이나 토익 보면 문제 읽어주는 사람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교육을 잘 받은 미국 중산층 백인 엘리트를 영어 원어민으로 생각하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이른바 “원어민 발음”을 구사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몇 퍼센트가 될까요? 한국 영어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인 미국 인구 중에서는 또 얼마나 될까요?

제가 공부를 하기 위해 머물렀던 펜실베니아 주 내에서도 “피츠버그 발음”과 “필라델피아 발음”을 구분해서 이야기합니다. 경제와 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뉴욕 내에도 여러 가지 영어가 섞여 있고, 브루클린 지역의 발음은 여러 면에서 특히 독특합니다. 소위 “시골 동네”인 와이오밍과 앨러배마주의 발음은 ‘보통’ 발음에서 거리가 더 멀죠. 유튜브에서 이들 지역의 방언을 검색하시면 그간 들어왔던 미국영어와는 확연히 다른 발음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미국 내에서도 발음의 차이는 현격합니다. 물론 미국이 이민자들의 국가인 만큼 다양한 인종, 문화,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발음을 구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국 교육과정의 근간을 이루는 미국영어를 벗어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미국인 외의 수많은 사람들은 영어 원어민 화자가 아닌가요? 영국인이나 호주인들은 어떨까요? 태어나서 줄곧 영어를 쓴 인도인들은 또 어떻습니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영어의 네이티브 스피커입니다. 교재의 MP3에 등장하는 사람들만 원어민은 아닌 것입니다.

일부 원어민들의 영어를 모델로 삼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려면 어느 정도의 표준이 필요하고, 적절한 모델을 따라서 노력하는 자세 또한 필수적입니다. 여기에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스탠다드’와 다른 영어 발음과 문법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입니다.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함으로써 다양성이 아닌 배제의 논리로, 평등이 아닌 위계의 논리로 발음을 대하는 건 은밀한 언어차별의 논리에 휘둘리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계열이 쓰는 영어, Texas와 같은 남부 지방 사람들이 쓰는 영어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까? 은연중에 ‘저거 발음이 영 시원찮은데…”라고 생각하거나 “정말 웃기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요? 아일랜드에 가면 아일랜드 사람들의 영어를 들을 수 있고, 홍콩 사람들은 홍콩의 영어를 합니다. 미국 동부 사람들은 그 지방의 특색을 가진 영어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들 사이의 우열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 사이에 우열이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입되어 온 언어 이데올로기의 힘입니다. 우리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말이 경상도나 전라도말보다 본질적으로 더 나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사회경제적 구조가 서울말을 하는 사람에게 좀더 많은 기회를 주고 각종 미디어가 서울말을 기준으로 방송을 제작하는 경향이 있기에 ‘서울말이 낫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의 영어를 합니다. 이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발음이라면 한국 억양이 조금 들어간다거나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태교를 해서 원어민과 같은 발음을 갖게 해주겠다는 일부 극성 부모들의 행위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identity)을 잃어버린 데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사회문화적 토양과 언어를 분리할 수 있다는 만용인 것입니다.

“원어민”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지만, Paikeday의 말대로 ‘죽은’ 개념일 때가 많습니다. 우선 실제로 누가 원어민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사회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위해 만들어진 비현실적이고 애매모호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원어민’ 개념이 사회적으로 힘을 가질 때, 나아가 ‘원어민’과 ‘비원어민’이 명확히 구분되는 상황이 만들어질 때 힘을 갖고 이득을 보게 되는 집단이 존재합니다. 이는 영어 교수학습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정확성과 형식은 과도히 강조하는 반면, 언어학습이 더 깊이 추구하는 목표가 되는 의미와 소통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원어민’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글로벌 시대를 정확히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원어민-비원어민 간의 대화보다 비원어민-비원어민 사이의 대화가 더 빈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영어를 모국어가 아니라 국제어(international language)로 배운다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우리는 원어민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많은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공부합니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필요없는 원어민 콤플렉스나 다양한 발음 및 언어특성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죽은’ 네이티브 스피커의 영어를 흉내내기 보다는 ‘살아있는’ 우리의 언어를 만들어 갈 때입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작성중

바이링궐: 완벽한 이중언어 구사자라는 신화

여러분은 ‘바이링궐’을 어떤 의미로 쓰시나요? 사람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제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태어나서부터 혹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두 언어에 노출되어 두 개의 언어를 막힘없이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더군요. 예를 들어 세 살때 가족과 함께 이민을 떠나 미국에서 15년 쯤 살아서 영어와 한국말 둘 다 유창한 친척 동생은 바이링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면 A씨는 어떤가요? 그는 대학교까지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어서 말할 때 ‘찐한’ 한국 발음이 나오지만 어학 공부를 열심히 해서 회사 업무 대부분을 영어로 처리합니다. 회사 들어간 지 십여 년이 지나니 자기 분야의 비즈니스를 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고, 영어로 프리젠테이션 하거나 협상을 하는 데도 큰 두려움은 없죠. 한 마디로 영어로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없는 사람입니다.

B씨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해외에서 석사학위 공부를 마치긴 했지만 일상적인 토론이나 술자리 잡담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원어민 친구들이 영어로 유머를 구사하면 당황하기 일쑤고요. (덕분에 타이밍 맞추어 이해한 척 웃는 기술은 수준급입니다.) 하지만 자기 분야에 관해서 읽고 쓰는 능력, 즉 전공과 관련된 리터러시 수준은 상당히 높습니다. 말이 막힘없이 터져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전공과목은 영어로 강의를 해도 할 수 있을만한 실력을 갖췄습니다. 풍부한 내용지식이 제한적인 영어 실력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상황인 거죠.

한국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바이링궐’은 언어학자들이 흔히 “균형잡힌 이중언어 구사자(balanced bilingual)”라고 부르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두 언어 모두를 자유자재로 말할 수 있으며, 한쪽 언어가 다른 언어에 비해 압도적으로 뛰어나지 않아 고른 실력을 갖춘 경우입니다. 이렇게 균형잡힌 바이링궐로 발달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조건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아이와 각각의 언어로 소통하는 경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균형잡힌 바이링궐들도 모든 상황에서 두 언어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국어-영어 바이링궐의 경우 초중고교 교육을 대부분 영어로 받았습니다. 학교교육을 영어로 받았으니 공부와 관련된 어휘는 거의 영어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학, 과학, 지리 등의 주제를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100% 영어로 이야기하는 게 쉽다고 합니다. 아니, 한국어로 시키면 더듬거리기 일쑤죠. 그런데 이 경우엔 한국 대학에서 한국어로 쓰기 과제를 제출할 때 어려움을 겪습니다. 영어로 쓰라면 그럭저럭 괜찮을텐데 한국어로는 힘겨운 과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두 언어로 일상적인 소통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고 해도 지식의 영역, 의사소통의 상황에 따라 대부분 한쪽 언어가 훨씬 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히 모든 지식에 대해 두 언어로 자유자재로 논할 수 있거나, 두 언어의 코미디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바이링궐의 수는 극소수입니다. 일상적 대화와 교과내용을 두 언어 모두로 알고 있고, 쓰기에 있어서도 두 언어 모두가 편하다면 실로 놀라운 경지인 것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영어를 사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과업을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은 바이링궐이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예를 든 A씨와 B씨는 ‘그냥 영어를 좀 잘 하는 거지 바이링궐은 아닌’ 사람들인 것입니다. 분명 비즈니스와 전공분야의 영어능력은 흔히 말하는 ‘바이링궐’들에 비해 훨씬 뛰어난데도 말입니다.

재미난 것은 오랜 외국 체류로 한국어와 영어 모두를 편하게 구사하지만 한국어 발음이 서툰 사람들을 ‘바이링궐’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영어 발음의 아우라가 강해서 한국어 발음의 어색함을 압도하는 것일까요? 그런 기준을 반대로 적용한다면 한국어와 영어를 구사하되 영어 발음이 조금 ‘서툰’ 사람들도 분명 바이링궐인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언어능력을 판단함에 있어 영어에 ‘가산점’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저는 많은 이들이 바이링궐을 ‘모든 영역에서 두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현상을 ‘올마이티 바이링궐 오류(almighty bilingual fallacy)’라고 부릅니다. 그야말로 두 언어로 모든 일들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오류입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또 경험적으로 확실한 것은 두 언어로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바이링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한국사회에서 ‘올마이티 잉글리시 바이링궐’의 탄생을 바라는 것은 헛된 꿈입니다. 해외체류가 정답도 아니지요.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한 이주(migration)에는 떠남의 상처, 현지 적응의 어려움, 언어정체성의 혼란, 사회문화적 토양의 급격한 변화, 사회성 발달의 위기, 귀국 후 정착에서의 어려움 등이 반드시 수반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한국사회에서 바이링궐의 개념이 좀더 기능적으로 정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두 언어의 세례를 골고루 받은 이들만이 이중언어구사자는 아닙니다. 언어를 충실히 공부해서 자신의 영역에서 특정외국어로 다양한 일을 무리없이 해낼 수 있다면 바이링궐이라 불러도 무방한 것입니다. 좀더 많은 분들이 ‘나 영어 못하는데’가 아니라 ‘영어로 이 정도 일하면 됐지 뭘 더 바래’라고 말하게 되길 바랍니다. 존재하지 않는 바이링궐을 부러워하기 보다는 지금 이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들의 다언어 능력이 대우받았으면 합니다. 완벽한 바이링궐의 신화를 걷어내고 많은 이들이 ‘다언어 사용자(multilingual)’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크랴센을 넘어서, 인풋을 넘어서

크라센의 언어학습이론은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어는 인풋이다”라는 말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것이 이 이론의 힘이었지요. 이것은 영어교육과 관련된 효율적인 소통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인풋’이나 ‘습득’, ‘이해가능한 입력’등의 용어를 통해 원활한 대화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인풋이론이 한국사회에 미친 부정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언어교육의 복잡다단한 측면을 ‘인풋’이라는 말 하나로 압축시킴으로써 영어교육에 대한 풍성하고도 깊은 논의를 막은 셈이 되었습니다. 이는 여러 부작용을 함께 가져왔는데 그 중 하나는 몰입교육에 대한 오해입니다.

‘어딘가에 푹 빠진다’는 의미를 지닌 몰입(immersion)교육은 1960년대 캐나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어와 불어 두 개의 언어를 동시에 배우고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곳이었죠. 그러기에 캐나다에서의 몰입교육과 한국의 몰입교육은 그 맥락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자가 사회문화적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면 후자는 인풋의 획기적 증대를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균형잡힌 교과 학습을 통한 아동의 지적 정의적 발달보다는 언어입력의 양을 늘리는 데 온 힘을 쓰고 있는 경향을 보이는 것입니다.

한때 많은 몰입교육 프로그램은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를 교재로 채택하였습니다. ‘본토 네이티브의 인풋’을 풍부하게 제공한다는 명목이었습니다. 한국의 유치원에서 미국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를 가르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인지적, 정서적 수준이 맞지 않는 내용을 다룰 수밖에 없는 상황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어로 유치원 과정을 배워야 할 아이들에게 외국어로 초등학교 3학년 과정을 가르친 꼴이니까요.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가 개정되면 한국의 몰입교육 교사들이 엄청나게 고생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습니다. 사실 영어로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정규교육과정을 거쳐 초등학교 교사가 한국어로 여러 과목을 잘 가르치는 것도 힘든데, 외국어로 여러 과목들을 제대로 가르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건 당연하지요. 한 교사는 제게 “언어과목은 그나마 괜찮지만 수학, 과학 등의 과목들을 영어로 가르치면 애들은 그야말로 ‘죽으려고 해요’”라는 말을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인풋이 모든 것이라는 믿음은 영어교육과 관련된 논의를 앙상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전인적 성장과 외국어교육, 한국어와 영어 리터러시의 균형적 발달, 한국의 사회문화적 환경에서의 영어의 역할 등에 대한 깊은 고민을 전개하기 보다는 ‘어떻게 언어노출을 늘릴 것인가’라는 질문에 매달리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어려서부터 최대한의 인풋을 ‘넣어주어야만’ 네이티브와 비슷한 영어실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마케팅 담론이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인풋”과 “네이티브되기”라는 두 축이 다양한 논의를 삼켜버린 시대. ‘삶을 위한 영어공부’가 아니라 ‘입력의 최대화를 위한 영어훈련’이 화두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계속)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단어공부의 원칙들 (2): 기본의미와 확장의미를 함께 고려하세요!

 
단어 공부의 첫 번째 원칙이 짝궁을 함께 기억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원칙은 단어의 의미를 깊게 아는 것입니다. 첫 번째 원칙이 단어들 사이의 어울림에 관한 것이라면 두 번째 원칙은 개별 단어의 ‘내면’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어 안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 보는 것입니다.
 
제가 “run”을 아느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대부분이 그렇다고 대답하실 겁니다. ‘달리다’ 또는 ‘운영하다’라는 뜻을 언급하시면서 말이죠. “그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라고 반문하시는 분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안다”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 추산에 따르면 동사 run은 영어에서 가장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 가짓수가 600개를 훌쩍 넘는다고 합니다. (동사 set이 그 뒤를 따른다고 하네요.) 이 중에는 다음과 같은 용법이 포함됩니다.
 
The bus runs twice a day. (그 버스는 하루에 두 번 운행한다.)
Tears ran down his cheek. (눈물이 그의 뺨으로 흘러내렸다.)
“Two killed in car accident,” ran the headline. (헤드라인은 “자동차 사고에서 두 명 사망”이라고 되어 있었다.)
 
이런 세세한 예들을 모두 포함한다면 우리는 ‘run’이라는 동사를 알고 있다고 하기 힘들 겁니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고 있다고 하는 게 맞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동사 “run”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의미 외에 추가적인 의미를 고려하여 학습해야 합니다.
 
예전에 고교 독해를 지도하면서 단어학습을 위한 과제를 고안한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로 하여금 독해지문에 나오는 단어를 정리하되 다음 가이드라인을 따르도록 한 것입니다.
 
단어를 정리하는 방법: 먼저 단어를 쓴 뒤 (1)에는 지문에 나온 뜻을 쓰고, 지문에 나온 문장을 그대로 옮겨 씁니다. (2)에는 (1)에 나온 의미를 응용하여 영작한 문장을 적습니다. (3)번에는 사전을 찾아 지문에서 쓰인 의미와 다른 의미를 찾아 뜻과 예문을 적습니다. (4)번에는 (3)번의 의미를 활용하여 영작한 문장을 적습니다.)
 
학생들은 이 과제를 통해 자신이 배운 단어를 다시 한번 복습하고 해당 단어의 새로운 의미를 공부합니다. 각각의 의미를 기반으로 영작을 해봄으로써 단어를 실제로 활용할 기회 또한 갖게 됩니다. 이를 통해 단어의 다의성 즉, 한 단어가 여러 개의 뜻을 갖고 있음을 인지하고 추후 단어 학습시에도 이 점에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들은 대개 여러 개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전에서 단어를 찾아보고 ‘왜 이렇게 뜻이 많아’라고 생각해 보신 경험이 다들 있으실 겁니다. 즉, 다의성은 예외적이라기 보다는 언어 전반에 퍼져있는 현상입니다. 한국어건 영어건 불어건 그 어떤 언어도 예외가 없죠. 그렇다면 이처럼 다양한 뜻을 가진 단어들을 좀더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여기에서 단순하지만 효율적인 방식 한 가지를 제안드리려 합니다. 바로 ‘기본의미’와 ‘확장의미’를 긴밀히 연결하여 암기하는 방식으로, 다음 공식(formula)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단어의 기본의미는 A다. 하지만 OOO과 연관되어 쓰이면 B라는 의미를, OOO와 연관되어 쓰이면 C라는 의미를 갖는다.”
 
구체적인 예 몇 가지를 보시죠.
 
(1) 동사 throw는 ‘던지다’라는 기본의미를 갖습니다. 하지만 타인을 향한 태도나 행위와 관련되어 쓰이면 ‘(의심, 비난, 의혹 등을) 제기하다, 퍼붓다’의 의미가 되고, 성격과 관련된 목적어를 취하면 ‘(성질을) 부리다, (성격을) 발산하다’와 같은 뜻이 됩니다. 예를 들어 ‘throw accusations at the government’라고 하면 ‘정부에 비난을 퍼붓다’라는 뜻이 되고, ‘throw tantrums very often’이라고 하면 ‘매우 자주 성질을 부리다’라는 뜻이 됩니다.
 
(2) 형용사 round는 ‘둥근, 원형의’라는 기본의미를 갖습니다. 하지만 숫자와 관련되어 쓰면 ‘대략적인, 어림잡은’의 의미가 되고, 목소리와 관련해서는 ‘풍성한, 부드러운’의 의미가 됩니다. 예를 들어 ‘The size is given in round numbers.’라고 하면 ‘크기는 대략적인 수치로 주어진다’라는 뜻이, ‘She has such a round voice.’라고 말하면 ‘그녀는 굉장히 풍성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3) 명사 hit은 ‘때리기, 타격’이라는 기본의미를 갖습니다. 하지만 유행과 관련되어 쓰면 ‘인기작, 흥행작’의 뜻이 되고, 마약이나 약물과 연관하여 사용하면 ‘1회 투입량’의 의미가 됩니다. 예를 들어 ‘The film was not a hit but mesmerized its viewers.’라고 하면 ‘그 영화는 흥행하진 못했지만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뜻이 되고, ‘The man said he would need another hit soon.’이라고 말하면 ‘그는 곧 마약을 한번 더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는 뜻이 됩니다.
 
이와 같은 암기법은 언어의 의미가 사회문화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원리에 부합합니다. ‘Run’이 달린다는 본래의 의미에서 기업을 운영하거나 소프트웨어를 구동시킨다는 의미로 영역을 확장한 것은 사람들이 새로운 맥락에서 기존의 언어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쳇말로 사람들은 ‘갖다 붙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신체의 움직임과 관련된 ‘run’의 원래 의미를 다른 맥락 (회사운영, 컴퓨터 프로그램 실행)에 적용하여 새로운 의미를 탄생시키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휘 의미의 확장에 숨겨진 이러한 원리를 단어공부에 활용하면 해당 단어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Run’을 ‘달리다’로 아는 것을 넘어 run이 가지고 있는 여러 의미들을 알게 될 때 run을 ‘진짜로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단어의 내면을 좀더 깊이 살펴봄으로써 단어를 공부하시는 것은 어떨까요?
 
결론적으로 짝궁단어를 익힘으로써 단어의 친구들과 알고 지냄과 동시에, 단어의 기본의미와 확장의미를 함께 고려하여 개별 단어와 더욱 친해짐으로써 더욱 넓고 깊은 단어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작성중

단어공부의 원칙들 (1): 짝궁과 함께 기억하세요!

단어공부를 위한 첫 번째 원칙은 ‘짝궁과 함께 기억하세요’입니다. 여기에서 ‘짝궁’이라 함은 함께 자주 나오는 단어를 이야기합니다. 영어교육에서는 이를 연어(collocation)라고 부르는데, 좀더 자세히 보면 ‘연달아 나오는 단어, 함께 등장하는 단어’라는 뜻입니다. “Co”가 ‘함께’라는 의미를 ‘locate’가 ‘등장하다’, ‘발견되다’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단어 암기법은 영어와 한국어를 짝으로 묶어 외우는 방법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transfer – 갈아타다’, ‘disproportionately – 불균형하게’와 같은 식입니다. 단시간에 많은 단어를 암기할 수 있어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연령을 가릴 것 없이 많은 이들이 애용하지요.

하지만 여기에는 심각한 함정이 있습니다. 우리가 단어를 배우는 것은 이해하거나 사용하기 위함인데 단어는 홀로 쓰이지 않거든요. 읽기와 듣기, 쓰기와 말하기 모두에서 문장의 일부분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Transfer.”나 “Disproportionately.”가 문장의 전부인 경우는 극히 드물지요. Transfer는 주로 ‘to’와 결합하여 ‘transfer to’의 형태로 자주 쓰이고, 이 뒤에는 교통수단이 자주 등장합니다. Disproportionately는 ‘affect’나 ‘impact’와 같은 단어와 결합하여 ‘비율에 맞지 않게 ~에 큰 영향을 미치다’의 뜻으로 자주 쓰입니다. “Transfer”와 “to”, “Disproportionately”와 “affect”를 각각 ‘짝궁단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또다른 예를 생각해 봅시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동사 ‘입다’를 배웠을 때 이 단어 하나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습니다. ‘입다’ 한 단어를 듣거나 말할 일은 없는 것이죠. 그렇기에 ‘옷을 입다’와 같은 용법에서 ‘상처를 입다’, ‘은혜를 입다’, ‘피해를 입다’ 등과 같은 표현을 알고 있어야만 ‘입다’를 비로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균형”이라는 명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균형의 발음과 철자,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해서 이를 말하기나 작문에 바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최소한 “균형을 잡다”, “균형을 깨다”와 같이 함께 쓰이는 동사를 익혀야 할테니까요. 나아가 “적절한” 균형, “완벽한” 균형 등과 같은 꾸밈말들을 알면 활용의 범위가 더욱 넓어지겠지요.

이처럼 짝궁단어를 익힘으로써 이해와 활용 모두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Strong와 짝궁단어 coffee를 묶어 ‘strong coffee’로 암기하거나, balance 앞에 자주 나오는 동사인 strike를 엮어 ‘strike a balance’로 기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Cut a deal”과 같이 의미가 헷갈리는 연어에는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지요. (‘Cut a deal’은 거래를 깨거나 무산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거래를 성사시킨다는 뜻입니다.)

짝궁단어의 학습을 위해 가장 좋은 전략은 평상시 읽는 텍스트에서 ‘형용사+명사’, ‘동사+명사’, ‘명사+전치사’, ‘부사+형용사’등의 표현들을 수집하는 것입니다. 읽기자료에서 개별 단어만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짝궁이 되는 단어들도 길어 올리는 방법입니다. ‘단어암기’에 ‘짝궁단어 암기’를 더해 텍스트를 공략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지요.

이와 함께 다양한 연어 사전을 활용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웹에서 이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연어사전은 오즈딕(ozdic.com)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즈딕에서 scream (명사)를 찾으면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scream noun

ADJ. high-pitched, loud, piercing, shrill | muffled, stifled | blood-curdling, hysterical, terrible, terrified

VERB + SCREAM give, let out | hear

SCREAM + VERB echo, ring out His screams echoed through the empty house.

PREP. with a ~ She reacted to the news with hysterical screams. | ~ for a scream for help | ~ of screams of laughter/terror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연어사전의 구조는 일반사전과 다릅니다. 정의와 예문, 해당 용례가 중심이 되는 일반 사전과는 달리, scream이 명사로 사용되는 경우 자주 따라다니는 형용사(ADJ), 동사(VERB), 전치사(PREP)가 나와 있는 것이죠.

우리가 사전에서 단어를 찾은 후 모든 의미와 예문을 외우려 하지 않듯이, 짝궁단어(연어)도 한꺼번에 암기하려 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욱 흝어가면서 기존에 알고 있는 단어를 포함한 표현 몇 가지를 정리해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공부가 됩니다. 말하기와 쓰기를 공부하는 경우라면 짝궁단어 공부의 가치는 더더욱 올라갑니다.

이미 알고 있는 단어라도 문장 안에서 쓸 수 있어야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니까요. 그렇기에 지속적으로 연어를 수집하고, 오즈딕과 같은 연어 사전을 활용하여 공부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단어의 뜻을 아는 것은 단어 학습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니즈분석의 함정

교육에서 “니즈분석(need analysis)”은 (1) 학습자 개개인이 자신의 필요를 가장 잘 알고 있으며 (2) 교사와 교육프로그램은 그 필요를 충실하게 채워주면 된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학습자는 배움에 뛰어들기 전에 자신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가? 니즈는 채워져야 할 용기인가?

그렇지 않다. 학습자는 자신의 필요를 대략적으로만 짐작할 뿐이다. 자신이 알아야 할 것을 온전히 알지 못할 뿐더러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철저한 니즈분석’은 환상에 가깝다. ‘니즈’는 배움의 초반에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정의된다. ‘니즈분석 후 학습’이 아니라 ‘학습과 니즈의 공진화’라는 틀에서 교육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영어공부, 정성을 다해 누군가가 되어보는 ‘배우’되기

영어공부, 정성을 다해 누군가가 되어보는 ‘배우’되기

초등학생은 대개 흉내내기를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만화체 따라 그리기나 연예인 성대모사, 아이돌 댄스 카피는 기본이고, 선생님이나 친구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대화하는 것도 일상적인 일입니다. 유행어에 한번 꽂히면 몇 달을 쓰기도 하지요.

신기해 보이는 것이나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것들을 따라해 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습니다. 엄청난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밈(meme)의 변함없는 인기는 이를 방증합니다. 우리말로는 ‘짤’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밈 현상은 우리 안의 ‘따라쟁이’ 본능을 잘 보여주지요.

나이가 들면서 이런 모방욕구는 경계의 대상이 됩니다. 남들 앞에서 누군가를 따라한다는 게 멋적기도 하거니와 혼자 있을 때도 쑥쓰러운 느낌입니다. 저 또한 중고생 시절 “왜 남들 말을 이렇게 열심히 따라해야 해? 우리말도 아닌 꼬부랑 발음을 익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외국어를 배우는 데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똥고집이었습니다.

모방의 욕구는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그 무엇보다 절실한 외국어공부에서 훌륭한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언어학습이 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배우는 일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모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문장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흉내냄으로써 더 깊은 이해를 추구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앵무새가 아니라 배우가 되어보는 것이지요.

모방을 자기만의 색깔로 바꾸어 낸 영어공부의 사례로 “영국 방언 모방의 달인”으로 불리는 <Korean Billy>를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동경하는,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해 동경하도록 교육받는 원어민은 정확한 표준어를 사용하며 모든 면에서 완벽한 언어를 구사하는 이상화된 원어민 화자(idealized native speaker)입니다. 그래서 싱가포르 영어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앨러배마 등의 지역 방언을 듣고도 ‘발음이 이상하다’고 느끼지요. 제가 수업시간에 “원어민들도 자라나면서 소유격 its를 it’s로 잘못 쓰는 경우가 꽤 많다”고 했더니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원어민인데 그걸 왜 틀리죠?”라고 질문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국어 내에도 다양한 방언이 존재하며, 한국어 원어민 화자도 말실수를 하고 어색한 문장을 쓰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상화된 원어민 화자’는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Korean Billy는 이 모델과 반대의 지점에서 특정 지역, 계층, 문화를 타겟으로 언어학습을 진행하였습니다. 영국영어의 매력에 빠진 그는 영국의 다양한 방언을 타겟으로 공부를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말에 대입해 보면 한 외국인이 소위 ‘표준어’를 고집한 것이 아니라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방언을 유심히 관찰하고 따라한 셈입니다. 이런 신선한 시도는 그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BBC의 눈에 띄어 방송을 타기도 했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사회는 아이들에게 개성있는 캐릭터가 되어보라 요구하지 않습니다. 특정 방언에 대한 관심, 풍부한 감정표현, 새로운 캐릭터의 창조를 꿈꾸기에는 표준의 힘이 너무나 강합니다. 아이들에게 거의 유일하게 주어진 배역은 사회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영미권 중산층 백인의 말투를 지닌 엘리트입니다. 어쩌면 연기를 배우는 사람에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 어울리지 않는 단 하나의 역할만을 강요하는 셈입니다.

십여 년 전 직장 선배 하나가 회사를 그만두고 영어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영어교육 업계에서 나쁘지 않은 직장이었지만 표준화된 커리큘럼과 학습법으로 진짜 말을 가르치긴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미국영어’나 ‘영국영어’가 아니라 ‘누군가가 될 수 있는 영어’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가 Listen and Repeat(듣고 따라하기)를 생각없이 반복하는 앵무새가 아니라 ‘꼬마 연기자’로서 다른 삶을 동경하며 영어를 배웠다면 어땠을까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닿을 수 없는 네이티브라는 환상의 고지를 정복하려는 등반가 아니라, 이 동네 저 동네로 난 작은 골목길을 순례하며 진짜 사람들을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여행자였다면 어땠을까요. 그저 영국인 Billy가 아니라 Korean Billy로,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내가 닿으려 하는 언어와 문화의 일원으로 살아보려 했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왜 그토록 오랜 시간 ‘이상화된 원어민 화자’의 그늘에서 슬퍼하는 자신을 방치했을까요?

‘세계를 탐험하는 배우’로 저를 이끌어 준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좀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랬다면 허깨비같은 네이티브를 좇기보다는 정성을 다해 누군가가 되어보는 ‘배우’로서 공부할 수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작성중

영어학습,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기 (2)

이런 면에서 우리는 영어공부를 ‘더욱 나답게 되는 일’로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주어진 내용을 충실히 암기하고 쌓아가기 보다는 영어라는 자원을 통해 더 나은 나를 만들어 가는 일에 천착하는 것이지요. 쏟아지는 정보와 교재, 학습법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이런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요?

저는 세 가지 원칙을 제안드리려 합니다.

하나. 공부 대상 및 과정의 구체화 (concretization)

둘. 영어 레퍼토리 수집 (collection)

셋. 끊임없이 나만의 이야기 만들기 (personalization)

나다운 나를 찾는 과정으로서의 영어공부를 위한 첫 단계는 나에게 맞는 구체적인 목표 설정입니다. 다른 사람이 정해준 일반적인 목표, ‘누구에게 적용가능한 목표’가 아니라 지금 시기 내 삶에서 영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를 꼼꼼히 따져보는 일 말입니다.

“영어를 배운다”는 말은 매우 추상적입니다. 우선 ‘영어’가 담는 내용과 행위가 광범위합니다. ‘배운다’는 동사 또한 애매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영어의 쓰임과 기능이 다양하기에 영어학습이 포괄하는 범위가 매우 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공부의 대상이 두루뭉술할 때 그 대상과 자신의 거리가 멀어집니다. ‘영어’는 거대한 만큼 멀리 있고, ‘배운다’는 애매한 만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알처럼 스르륵 빠져나가기 마련입니다. ‘뭐 좀 해보려고 하’면 하루가, 한 달이, 또 한 해가 금방 사라지지요.

그렇기에 나다운 영어공부는 추상적인 것들을 끊임없이 구체화하는 과정 즉, 구체적인 활동과 내용, 꼼꼼한 학습법을 만들고 실천하는 과정을 지향합니다. 최적의 시간과 장소, 콘텐츠와 순서, 암기와 정리법 등을 탐색하고 이를 실천하면서 자신의 몸에 맞는 공부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 보는 일 자체가 훌륭한 공부입니다.

예를 들어 ‘내일부터 영어공부 좀 해야지’가 아니라 ‘내일 밤부터는 자기 전에 정말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를 30분간 보고, 스크립트를 세 번 정도 정독하고, 모르는 단어를 찾아 단어장에 정리하고, 스크립트 없이 다시 한 번 보고, 이후 쉐도잉을 한 후, 가장 마음에 드는 대사 두 개를 골라 공책에 적어야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꾸준히 해낼 수 있는 작은 과업을 계획하는 것입니다. 특히 공부시간을 확보하기 힘든 직장인이라면 여러 가지를 동시에 공부하려 하기 보다는 한 가지를 꼼꼼하게 계획해야 합니다. 시작 단계에서는 미약해 보이지만 작은 성공의 경험이 쌓이다 보면 영어실력이 훌쩍 커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나다운 영어공부를 위한 두 번째 전략은 다양한 종류의 수집(collection)입니다. 어렸을 때 우표나 기념주화, LP 등을 꾸준히 모으는 수집가 몇몇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징은 (1)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2) 조금씩 꾸준히 모으는 데서 뿌듯함을 느끼지만 (3) 정말 아끼는 대상이라면 집요한 노력을 통해 손에 넣는 데 있었습니다. 이런 수집가들의 특성을 영어공부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정치에 관심이 있고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스타일을 좋아하신다면 웹에서 그의 연설들을 찾아보고, 멋진 표현을 모으고, 최고의 연설에 순위를 매겨보고, 인상적인 대목을 외워 말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스타워즈의 팬이라면 요다와 다스베이더의 말을 최대한 모으고 그중 멋진 대사를 반복해서 낭독하고 녹음하면서 재미를 찾을 수 있겠지요. 특정 도시를 텍스트로 삼아 주변의 영어 광고나 간판들을 찍고 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보거나 어색한 안내문을 모아 수정해 볼 수 있습니다. 구글 스트리트 뷰와 같은 지도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곳곳을 누비며 도시의 언어경관을 탐색할 수도 있습니다.

크리스 앤더슨이 제안하듯 TED 강연을 통해 청자와의 유대를 높이는 표현, 설득을 위해 초석을 까는(priming) 과정, 말의 속도나 발성이 달라지는 순간들,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활용되는 메타포 등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면서 프리젠테이션 기법을 익힐 수 있습니다. 요리를 좋아한다면 유튜브에서 자막이 제공되는 푸드 채널을 꾸준히 보면서 관련 표현을 익히는 것도 좋습니다. 요리쇼는 음식의 이름이나 계량과 관련된 어휘들 뿐 아니라 다양한 동작을 나타내는 구어 동사 표현의 보고죠.

IT관련 리뷰 유튜버를 꾸준히 팔로우하면서 기술 및 제품 관련 영어를 익히거나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평을 받아쓰기 하면서 다양한 칭찬 및 비판에 유용한 어구나 깊은 감동을 표현하는 방식을 배울 수도 있겠습니다. 위키북스나 핀터레스트에서 인물별, 주제별 명언을 모으거나 유명 인사들의 유언을 모아 공부할 수도 있고, 잘 정리된 유머나 말장난 사이트를 독파할 수도 있겠지요. 영어를 오랜 시간 공부한 학습자라면 ‘자본주의 광고의 꽃’으로 불리는 미국 수퍼볼 광고를 시청하고 관련 언론기사를 읽으며 광고에 드러난 미국 문화의 단면을 공부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여러 영역의 수집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관심이 가는 주제 1-2개를 따라가며 꾸준히 공부하다 보면 생각보다 깊은 내공이 쌓입니다. 이는 다른 분야를 수집하고 공부할 수 있는 초석이 되지요. 내공과 내공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를 찾아가는 영어공부 세 번째 전략은 “나의 말로 바꾸기”입니다. 이는 언어학습 이론에서 개인화(personalization)라고 불리는 기법입니다. 생소한 주제를 다룬 글에 나온 단어는 금방 외워지지 않습니다. 한-영 혹은 영-한 단어 목록으로만 배운 단어들도 쉬이 잊혀지지요. 이때 단어와 좀더 친해지면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 ‘개인화’의 원리입니다. 사람과의 사귐처럼 말과 사귈 때 그 말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요.

효율적인 개인화를 위해서 마음에 드는 단어나 문장을 자신의 처지에 맞추어 써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는 형용사를 배웠다면 내 주변 사람들과 형용사를 매치시켜 보고, 새로 배운 속담을 제목으로 하는 경험담을 써보는 것입니다. 회사내 인간관계를 다룬 지문을 읽었다면 그 내용을 현재 직장에 적용해 보고 몇몇 문장을 활용하여 자신과 상사와의 관계를 묘사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영어자료를 대하는 방식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은 교재에서 제시하는 단어와 문장을 최종 학습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재를 종착지로 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는 교재의 잠재력을 절반도 활용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주어진 텍스트에 등장하는 어휘, 문장, 문법 등의 요소를 학습의 목적지가 아닌 출발점으로 삼을 때 영어공부가 더욱 풍성해집니다. 제시된 내용의 암기를 넘어 나의 생각과 감정, 의견과 바람을 표현하는 재료로 삼는 관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교재개발 전문가가 전해준 언어는 ‘올바른 것’일지는 모르지만 ‘나의 것’은 아닙니다. 영어교재 집필자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을 표현하고 성장시키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상으로 나답게 되는 영어공부를 위한 방법으로 구체적인 공부법의 탐색, 흥미로운 콘텐츠의 수집, 나와 세계를 표현하는 습관 형성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한국인 모두를 위한 영어학습법이 아니라, 영어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궁리해야 합니다. 교육과정 속에, 영어학습 이론에, 마케팅 슬로건에 속한 영어가 아니라 내 손 안에, 혀 끝에, 수집 목록에, 유튜브 채널에, 노트 필기에, 다양한 간판들 속에, 자주 찾는 요리 웹사이트 속에 있는 구체적인 영어를 찾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 영어를 암기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나를 키워가야 합니다.

영어를 통해 내가 더욱 나다워진다는 것은 영어가 열어주는 새로운 가능성을 통해 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의 말”을 “나의 말”로 바꾸는 과정에서 영어가 자라고 내가 성장합니다. 더 나은 자신을 찾아나서는 삶을 위한 영어공부의 길,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작성중

영어학습,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기 (1)

새로운 언어를 통해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기. 외국어를 공부하는 여러 이유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입니다. 누군가를 만나 배우고 감동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이 바뀌듯, 새로운 언어가 열어주는 세상을 통해 내 안의 지식, 경험, 의견, 욕망, 아픔 등을 새롭게 발견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영어교육 프로그램들은 사람들을 획일화하는 경향을 지닙니다. 특정한 프로그램을 선택한 사람들은 엇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주제, 같은 관점, 같은 공부 순서, 같은 학습법을 ‘강요당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이는 프로그램 제작자들의 의도와는 관계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같은 내용을 제시하는 데에서 오는 한계입니다.

언어학습을 위한 내용구성에 있어 원칙은 분명 존재합니다. 문법과 같이 그 내용이 잘 정의된 요소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출판사들과 영어학습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이런 순서를 S&S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합니다. “Scope and Sequence”의 약자로서 어떤 범위의 내용을(scope) 어떤 순서대로(sequence) 가르칠 것인가를 정하는 가이드라인을 S&S 라고 하지요.

하지만 특정 S&S가 학습자의 성향이나 정체성과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흥미없는 소재를 늘어놓은 학습교재를 자신이 즐길 수 없는 방식으로 학습해야 한다면 영어공부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지요.

이런 경향은 평가의 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언젠가 한 토익 수험서를 훑어보다가 스피킹 섹션에서 다음 질문을 발견했습니다.

“최근에 옷을 언제 샀나요?”
“일년에 라이브 공연에 몇 번이나 가나요?”

수험서들은 이런 문제에 대한 전략적 대비를 강조하며 ‘모범 답안’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여름 인턴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서 정장과 셔츠를 샀다.” “라이브는 서너 번 가는데 주로 락이나 힙합 공연이다.” 등의 문장들이 한국어와 영어로 정리해 주는 것입니다.

수험생들은 으레 모범답안을 외웁니다. 외우는 게 잘못은 아닙니다. 아니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문장들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고쳐 외우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냥 주어진 대로 암기하는 경우가 꽤 되지요. 그러다 보니 있지도 않은 인턴, 사지도 않은 정장, 가지도 않은 여행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갑자기 없던 여동생이나 드론이 생기기도 합니다. 관심도 없던 주제에 ‘확고한 자기 의견’이 생겨버리기도 합니다. 본의 아니게 ‘사소한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거짓말로 피해 볼 사람이 없기에 별 문제는 아니라고 넘길 수 있습니다. 채점기관이 사설 탐정을 고용해서 답안을 쓴 수험자에게 정말 여동생이 있는가, 그집 옷장 안에 최근 구입한 정장이 진짜 있는가를 추적하지도 않겠죠.

하지만 이것은 효율성의 극대화가 지상최대의 과제가 된 사회의 사소한 비극입니다. 영어, 아니 영어점수를 위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인양 하는 풍경은 결코 멋지지 않습니다.

시험공부를 위해 문장을 암기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문장의 의미가 우리 삶과 어긋나는 거라면 어떨까요? 영어 일기를 쓰기 위해서는 영어표현을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일상과 관련 없는 영어일기용 문장을 줄줄 외우고, 이를 엮어서 일기를 써야 하는 상황이라면요? 누구도 이로 인해 큰 피해를 보지 않는다고 해서 괜찮은 걸까요?

어쩌면 이런 ‘사소한 비극’이 차곡 차곡 쌓여 공부를 갉아먹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지 않아도 평범한 우리의 삶을 더더욱 진부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요? 영어가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힐 수 있는 가능성이 아니라 세계를 획일화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계속)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정확은 부정확의 축적입니다

외국어를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 말을 아끼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여 정확성에 나름 자신이 생길 때까지 문장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함정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부정확하게 말하기’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정확에서 정확으로의 변화는 온 오프 스위치처럼 작동하지 않습니다. ‘부정확(不正確)에서 ‘부(不)’를 떼어내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요. 정확성의 발달은 부정확함에 대한 용인, 부정확하게 느껴지더라도 말하는 용기, 나아가 부족한 자신에 대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부정확함에 야유와 조롱를 보냅니다. ‘발음이 왜 저 모양이냐’는 눈빛이 도처에서 감지됩니다. 이는 우리 가 각자의 불완전함을 수용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는 목소리가 들려야 할 곳에 침묵을 가져오고, ‘부정확’에 대해 과도하게 마음을 쓰도록 만듭니다. 때로는 자괴감까지 따라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말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옹알이를 하고 서툰 발음으로 말소리를 내었으며 ‘엄마’를 정확히 부르는 데만도 수십 개월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모국어 체계에 길들여진 상태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상황이라면 더 어려울 수밖에 없죠.

“그 사람 발음 정말 이상한데 말은 다 통하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발음이 안좋아도 통하는 영어는 없습니다. 통하는 영어라면 발음이 좋은 것이죠.

‘네이티브와 같은 정확성’이라는 족쇄를 풀고 소통하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만이 좀더 정확해질 수 있습니다. 소통하는 사람만이 좀더 정확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처음부터 정확할 수 없고, 그래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억하세요. 한걸음 더 나아가는 용기와 함께 말은 자라납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작성중

Lo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