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명사, 고유명사, 그리고 김춘수의 <꽃>

1. 보통명사는 개념에, 고유명사는 개체에 대응된다.

a chair는 세계의 그 어떤 의자에라도 대응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단어가 대응하는 것이 특정한 의자가 아니라 의자성(chairness)이기 때문이다. a chair에 대응하는 것은 물리적 의자가 아니라 ‘의자’라는 개념이다.

하지만 개똥이는 오로지 개똥이에 대응된다.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개똥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똥이/라는 발음은 생물학적으로, 물리적으로 유일한 개체인 개똥이를 가리킨다.

2. 우린 보통 ‘명사는 사물의 이름을 나타낸다’고 배우지만 이 명제가 보통명사와 고유명사에 적용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보통명사는 개념의 세계에 대응한 뒤 개별 대상으로 나아가지만, 고유명사는 구체적인 대상에 바로 대응된다.

3. 김춘수의 ‘꽃’은 이 차이를 시적으로 포착했다는 점에서 그 어떤 문법설명보다 응축적이다.

다만, 그의 시어들은 위의 문법 설명과 배치되는 면이 있다.

왜냐하면 본 문법설명에 따르자면 아래와 같은 싯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보통명사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고유명사가 되었다.”

4. 김춘수의 ‘꽃’이 그린 세계와 달리 어쩌면 지금 이 세계에서 필요한 것은 ‘꽃’이라는 보통명사에서 ‘몸짓’을 읽어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명명의 세계를 현상학의 세계로 바꿔내는 일 말이다.

#인지언어학이야기

질문-답변의 양면

Posted by on Feb 17, 2019 in 단상,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 No Comments

질문에 대한 답은 질문이 담고 있는 진술에 대한 답일 수도 있지만 질문당하는 행위에 대한 반응일 수도 있다. 즉 질문에 대한 답은 “모면하기”나 “회피하기”, “넘어가기”나 “은폐하기”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가 도출된다. (1) 무턱대고 답변을 상대의 지적 상태를 보여주는 데이터로 삼지 말야아 한다. (2) 질문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여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질문의 수준 만큼이나 상호 신뢰가 중요하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문장의 개념적 중핵

인지문법을 배우며 처음으로 문장을 개념적으로 분석하는 법을 접했을 때 의아했던 것은 “동사”가 개념적 중핵(conceptual core)로 분류되고 전통적으로 명사구에 해당하는 것들이 이 개념적 틀의 참여자(participant)로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The gentleman bought a notebook.”이라는 문장이 있다면 “buy(bought)”가 문장의 개념적 중핵으로, the gentleman과 a notebook이 이 개념의 참여자로 분류된다. (이전 문법의 틀에서는 주로 동사(verb)와 논항(argument)에 관한 논의를 떠올리시면 된다.)

“누가”가 먼저 생각나는 것은 아마도 주체 중심의 사고와 관련이 깊을 것이다. 문장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주체가 먼저 존재해야 하고 이 주체가 무언가를 행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 말이다.

하지만 조금 깊이 생각해 보면 “주체”가 탄생하는 방식은 수많은 활동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또한 “주체”는 언제나 특정한 행위틀 안에서만 이해된다. 이러한 활동/행위들은 사회문화적으로, 구조적으로 ‘마련되어’ 있다.

말해 주체는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다. 말하고, 듣고, 공부하고, 싸우고, 쓰고, 주장하고, 사고, 팔고, 빌리고 등의 활동들 속에 들어감으로서 비로소 주체로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주체”보다 “행위”를 개념적 중핵으로 놓고, 이에 관여하는 참여자들을 분석하는 방식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인지언어학이야기

논문쓰기 강의 단상 (2019)

<영어로 논문쓰기>는 개인강의로 세 번, 대학에서 네 학기를 진행했다. 두세 개의 연구단체에서 특강을 진행하기도 했다. 핵심을 압축하여 동영상 강의도 찍어봤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 중에서는 늘 만족도가 압도적으로 높다. 그만큼 애정이 가는 강의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과정이 새롭게 개편되지 않는 한 더이상 대학에서 논문쓰기를 가르칠 기회는 없을 듯하다. 대학원 초기 학술 리터러시와 논문에 대한 개념을 잡아주는 강의가 학과와 학생 모두에게 큰 도움을 준다고 믿지만, 그거야 일개 ‘듣보잡’ 리터러시 연구자의 생각일 뿐 아니겠는가.

개인 강좌의 경우에도 지인을 기반으로 강좌를 여는 방식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듯하다. 흔히들 말하는 “Scale up”을 위해서는 다른 조치가 필요하겠지만 그럴 여유도 열의도 야망도 없다. 물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게 꼭 좋은지 모르겠지만 거기에서 애써 벗어나려고 하는 것도 우습달까.

지금으로선 논문쓰기 강의를 들은 분들이 간간히 연락을 해주시는 것으로 족하다. 완벽할 순 없겠지만 이번 강의도 알차게 만들어 가야겠다.

인터뷰 소론: ‘정보’가 아닌 ‘사건’으로서의 인터뷰에 관하여

사회학과 인류학, 심리학, 응용/사회언어학을 포함한 인문 사회과학 분야에서 인터뷰는 가장 중요한 조사 방법론 중 하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특성, 혹은 사회문화적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위이며, 굳이 “인터뷰”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늘상 하게 되는 활동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응용언어학을 비롯한 인접 학문 분야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등) 에서는 기존의 인터뷰에서 사용되는 여러 가지 방법들, 나아가 인터뷰 자체를 바라보는 인식론적 관점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례로 응용언어학 Applied Linguistics 34권 1호(2011년 발행)는 조사방법론으로서의 인터뷰를 심도있게 다루는 특집으로 꾸며져 있다. 구체적으로, 인식론적 측면에서 인터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인터뷰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데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인터뷰 결과를 보고함에 있어 어떤 측면들을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가, 인터뷰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맥락들을 어느 정도까지 기술해야 하는가 등등의 문제에 대한 다각도의 논의를 제공한다. 여기에서는 필자가 기존에 인터뷰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과 Steve Mann (2011) 의 논문을 엮어 인터뷰를 바라보는 관점 및 구체적 방법론에 대해 간략히 논의한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사람들과 모여서 수다를 떠는 것과 인터뷰 사이의 차이점이다. 이상적으로 볼 때 인터뷰는 “의도하지 않게 서로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된 수다의 경험”에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수다는 기본적으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인터뷰의 ‘대상’이 되는 사람) 사이의 구분이 없다. 동호회에서 친한 친구와 음악 이야기를 나눌 때, 어머니와 밥상 머리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여행을 떠나는 차 안에서 자녀와 대화를 시도할 때 우리는 대화의 주제와 구조, 질문 등을 미리 계획하진 않는다. 설령 대화에 주의를 기울이고 특정한 내용에 집중한다고 하더라도, 진행된 대화 전체를 특정한 포맷에 따라 보고하려는 목적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진 않는다. 수다를 떨다 화제가 바뀌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이다. 수다는 단절과 변화, 새로운 주제에 열려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일상적 대화 혹은 수다와 인터뷰 사이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일상적 대화에 비해 인터뷰는 특정한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이끌어 내고, 이를 체계적으로 보고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개인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한다면, 그 인터뷰를 통해 인터뷰이의 특정한 경험이나 특성에 대해 단시간에 많은 것들을 깊이 이해하게 되길 기대하며, 이 기대에 맞게 인터뷰를 계획하고 진행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터뷰의 딜레마가 생겨난다. 인터뷰를 통해 소기의 성과를 이루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인터뷰 또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대화 상황이기에 인터뷰이를 특정한 주제로 “몰아가는” 식이 되면 자연스럽고도 깊이있는 논의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터뷰는 명확한 목적을 갖고 있지만, 그 과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이다. 강에 배를 띄우고 풍광을 바라보며 차 한 잔 나누다 보면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 상황은 선계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이렇듯 인터뷰 과정이 지향하는 자연스러움은 인터뷰어나 인터뷰이 개개인이 독립적으로 갖출 수 있는 미덕이 아니다. 인터뷰어가 아무리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해도, 인터뷰이가 자연스럽게 받아 주느냐의 문제가 생긴다. 상대가 조금이라도 부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이게 되면, 인터뷰어가 원했던 대화의 흐름은 금새 깨지게 된다. 즉,자연스러움, 물 흐르듯 흘러가는 대화의 리듬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순간순간 함께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사이의 관계가 중요함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이에 더해, 인터뷰가 일어나는 물리적 상황 (녹음을 하는지, 비디오를 찍는지, 노트 필기를 하는지 등에서 얼마나 큰 마이크나 카메라를 사용하고 어떤 장소에서 인터뷰가 진행되는지 등등), 인터뷰 시간, 인터뷰어의 개입 정도, 인터뷰 자료와 분석 결과의 공유 여부 등등도 인터뷰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언어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인터뷰 자체에서 사용되는 단어 하나(예를 들어 형식을 갖춘 단어를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굉장히 일상적인 언어로 풀 것인가), 질문을 구성하는 방식 (열린 질문을 던질 것인가, 몇 가지 가능성을 암시하는 질문을 할 것인가, 예를 들어줄 것인가, 타인의 의견을 제시하면서 질문을 던질 것인가 등), 언제 침묵을 길게 유지할 것인가 (때로 긴 침묵을 통해 새로운 답변을 유도할 수 있는데, 이것은 후속 질문을 던지는 것과는 다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어떤 식으로 동의 혹은 놀람을 표현할 것인가 (제스처나 “예”, “네?” “응,” “음”, “아” 등의 사용), 언어 이외의 비디오나 그림, 제스처 등 다른 미디어를 사용할 것인가 등의 이슈도 매우 중요하다. 이 모든 요소들이 순간에 집중되어 인터뷰의 밀도를 구성한다.
 
문제는 적지 않은 인터뷰들이 이런 여러 가지 요인들에 대한 설명과 보고를 쏙 빼고 인터뷰이가 말한 내용(content)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인터뷰어가 정확히 무슨 질문을 했는지 보고하지 않고 인터뷰이가 한 대답만으로 특정한 주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았으며, 전체 인터뷰의 내용은 전혀 보고하지 않고 특정 주제에 대한 인터뷰이의 답변을 짜깁기하여 제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꽤나 잘 알려진 학술지의 논문마저도 인터뷰가 일어난 사회문화적, 물리적 맥락,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관계, 인터뷰 전개 과정 등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이 인터뷰 내용의 극히 일부만 보고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던 것이다.
 
최근 이런 관행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면서, 인터뷰를 일종의 자료 수집 테크닉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특수한 소통 방식 중 하나로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전자가 인터뷰이를 “정보의 보고”로 보고, “어떻게 정보를 캐낼 것인가”라는 관점에 입각해 있다면, 후자는 인터뷰를 참여자들이 힘을 합쳐 옷감을 짜고 옷을 짓는 활동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전자의 입장에서는 “캐낸 보석을 잘 보여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따라오고, 후자의 입장에서는 같이 옷을 짓는 만큼 ‘옷감을 어떻게 짜고, 어떻게 재단하며, 옷에 대한 청사진을 얼마나 또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 나아가 ‘옷을 짓는 과정에서 역할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 새로운 디자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등에 대한 고려가 필수가 된다. 후자의 견해가 당연하게 보이지만, 많은 학자들이 인터뷰를 “정보 캐내기 테크닉”으로 생각해 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심지어 연구 참여자들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인류학에서 조차 인터뷰의 실행과 보고에 있어서 미진한 점들이 많이 발견되어 왔으니 말이다.
 
인터뷰를 ‘자료 수집 테크닉’으로 보는 관점에서 ‘특정 맥락에서의 담화 행위’으로 보는 관점으로 전환한다면, “좋은 인터뷰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또한 “좋은 인터뷰에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는 어떤 관계여야 하고,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가?”로 바꾸어 던질 필요가 있다.
 
(극단적인 폭력과 권위가 작동되는 맥락을 제외했을 때) 인간이 하는 모든 소통이 사회적 협력을 통해 구성 construct 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좋은 인터뷰어”는 개인의 차원에서 정의되기 힘들다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즉, 좋은 인터뷰어라는 개념은 개인의 내재적 자질로 정의될 수 없는 것이며, 언제나 인터뷰이와의 관계, 인터뷰의 성격, 인터뷰가 일어나는 사회문화적, 정치적, 물리적 맥락 안에서만 기술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전의 인터뷰 핸드북에서 종종 소개되는 “인터뷰 준비 체크리스트”는 나름 유용하지만 그 한계가 뚜렷하다. 체크리스트가 인터뷰 준비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인터뷰의 동적인 역학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인터뷰어가 갖추어야 할 특성들을 나열해 놓은 교과서들은 ‘선언적 지식(declarative knowledge)’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실제 인터뷰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 필요한 ‘절차적 지식(procedural knowledge)’이 될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고 해서 “많이 해보면 알게 된다. 남들의 경험에 의지할 수는 없는 일이고, 인터뷰 준비와 경험을 통해 좋은 인터뷰어가 되는 방법을 체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버린다면 그간 인문사회과학에서 쌓여온 인터뷰에 대한 노하우를 깡그리 무시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아래에서는 Mann (2011) 이 제시한 인터뷰시 고려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인터뷰의 복잡다단한 측면들을 포괄하진 못하지만, 인터뷰의 실행과 보고에 있어 주목해야 할 점들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1. 정해진 안건 고수 vs. 대화체
 
이것은 인터뷰어가 정해진 안건을 하나 하나 ‘처리할’ 것인가, 혹은 일상적인 대화의 형식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 낼 것인가의 문제와 연관된다. 일천한 인터뷰 경험에서 느꼈던 점은 인터뷰어가 질문 목록에 너무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면 “이야기가 나오다가 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 고수’는 안건을 하나 하나 클리어하기 보다는 순간순간 물길을 낸다.
 
2. 자연스런 발화 vs. 유도된 목소리
 
이것은 첫 번째 항목과 많은 부분 겹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추후 데이터를 보고할 때 인터뷰이의 목소리를 어떤 어조로 담을 것인가이다. 예를 들어 제주 강정마을의 미군 기지 반대 운동을 조사할 경우,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어떤 톤으로 진행할 것인가가 이후 보고 포맷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물론, 이 포맷 자체에 얽매어 인터뷰의 과정과 내용이 왜곡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3. 직접적인 질문 vs. 간접적인 질문
 
인터뷰이에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나오는 반응을 보고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간접적으로 알아보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당사자에게 같은 질문을 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교육에 관한 인터뷰를 할 때, “핀란드에서는 학교에 가기 전에 미리 학교 진도를 공부하는 일이 별로 없다고 하는데요…”로 운을 띄우며 시작한다면? 핀란드에 대한 명제는 사실이지만,그것이 인터뷰 내용 자체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은 분명하다. 이렇듯 인터뷰이와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인터뷰이가 가진 지식과 경험과 다른 지식과 경험을 어떻게 병치 juxtapose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4. 공감 vs. 좀더 적극적으로 ‘맞서기’
 
인류학자들이 특정 부족의 풍습을 이해하기 위해 참여 관찰을 하고 인터뷰를 하는 것과, 김제동이 “김제동이 만난 사람”과 같은 포맷으로 사회 명사들을 만나는 경우, 정혜신이 치열한 운동의 경험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상황을 비교해 보라. 시사 이슈에 강한 인터뷰어가 상당히 적극적인이며 때로는 공세적이기까지 한 자세로 정치사회 관련 인사들을 인터뷰하는 경우는 어떠한가? 각각의 경우에 상대방에 대해 공감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상대방의 답변에 대해 얼마나 날카롭게 추가적으로 질문을 던질 것인가 등의 문제가 있다.
 
5. 공감 vs. 드러냄
 
이 항목은 인터뷰이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려고 노력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것들을 “드러내는 행위”로서 인터뷰를 이끌어 갈 것인가와 연관되어 있다. 만약 철저하게 인터뷰이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계를 알아보기 원한다면 인터뷰어는 새로운 사실을 ‘캐내려는’ 충동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물론 인터뷰 자체가 인터뷰어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사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험이지만, 새로운 정보 자체를 캐내기 위한 노력을 최대한 줄이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덧. 이 항목과 관련해서 오랜 시간 인류학에서 논의되어온 emic / etic 이슈를 논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6. 결과 보고에 있어서의 유의 사항
 
인터뷰가 특정한 맥락에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협력으로 구성되는 사회문화적 사건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숨소리, 질문을 던질 때 억양과 같이 지극히 작은 요소들도 인터뷰이의 답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것은 또다시 인터뷰어의 질문 내용 및 방식에 대한 영향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늘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결과를 보고할 때 이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7. 래포, 과도한 래포 / 래포 부족
 
이것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사이의 거리에 관한 문제다. 또한 인터뷰 진행에 있어서 얼마나 친밀한 분위기를 형성할 것인가와 관련이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회의실에서 하는 인터뷰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하는 인터뷰, 다과를 먹으면서 하는 인터뷰의 느낌은 참 다르다. 또한 인터뷰어가 어떤 복장을 하는가, 어떤 장비를 동원하는가도 래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래포를 너무 강조하고 거기에 얽매이다 보면 인터뷰가 초점없이 흘러가게 될 위험이 있다.
 
8. 과정 vs. 결과
 
인터뷰가 하나의 사회문화적 사건이라면, 인터뷰가 있기까지의 과정이 인터뷰 자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인터뷰 결과를 보고함에 있어 인터뷰 자체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또 어떤 내용이나 의견이 나왔는지에 대한 논의와 인터뷰가 이루어지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에 대한 설명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의 대다수 연구들은 인터뷰가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은 거의 기술하지 않았으며, 혹시 기술한다고 하더라도 매우 개략적인 배경 설명에 그쳤던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인터뷰의 배경이 실제 인터뷰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심도있게 논의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9. 자기성찰적 요소
 
인터뷰 결과를 보고함에 있어 연구자가 어떤 성찰 reflection 과정을 거쳤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언제나 “예상했던 범위”를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나온다. 또 인터뷰 준비 과정에 대해 다시 돌아보지 않을 수 없고, 녹음된 인터뷰 자료를 검토하다 보면 질문의 구조나 인터뷰 당시의 어조, 작은 숨소리 하나까지 부족한 면이 많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런 점들을 체계화하여 결과 보고에 통합시키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상에서 인터뷰에 대한 잡다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사실 인터뷰라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 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는 법.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인터뷰 경험을 쌓다 보면 조금씩 나은 인터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Mann (2011) A Critical Review of Qualitative Interviews in Applied Linguistics http://applij.oxfordjournals.org/content/32/1/6.short
 
Photo by Harli Marten on Unsplash

레프 비고츠키 수업 & 공부 이야기

Posted by on Jan 22, 2019 in 단상, 사회문화이론, 수업자료, 집필 | No Comments

5년 만에 비고츠키 관련 수업을 맡았다. 영어교사교육의 관점에서 본 비고츠키를 다룬다.

수업준비를 하기 위해 교재를 정했다. 교육대학원 수업이어서 Karen Johnson 선생님 책을 중심으로 진행하려고 한다.

이와 함께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Yuriy V. Karpov의 책 두 권과 Merill Swain 선생님 등이 쓴 개론서를 참고한다. 사실 Lantolf & Poehner 두분이 쓴 책을 다루고 싶은데 비고츠키와 제2언어습득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에겐 조금 무리일 듯하다. 내가 소화한 걸 전달하는 식으로 해볼 참이다.

비고츠키와 언어교육의 관계를 슬라이드 몇 장에 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보통 행동주의, 생득주의, 사회구성주의를 축으로 내세운 것들이다. 두어 장은 피아제와의 비교에 할애된다. 하지만 비고츠키를 보면 볼수록 흔히들 이해하는 사회구성주의자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비계(scaffolding)에 대한 기계적이고 단순화된 이해도 문제가 크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이론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비고츠키 자신도 삶에 체화된 이론, 이론에 근거한 실천을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프레이리가 프랙시스를 고민한 것처럼 말이다.

아래는 얼마 전 비고츠키 관련 공부모임을 제안하려고 쓴 쪽글인데 결국 성사되지는 못했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저지르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먹고 사는 게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핑계는 언제나 먹고사니즘이다.

이번 학기 강의를 하면서 모임에 대한 생각을 좀더 구체화할 계획이다. 언젠가 나의 시각에서 한국의 영어교육과 사회문화이론에 관한 책을 써보고 싶다.

덧. Karpov의 책 중 <The Neo-Vygotskian Approach to Child Development>는 <교사와 부모를 위한 비고츠키 교육학>으로 번역되었다. 비고츠키를 처음 시작하시는 분이라면 <21세기 교육혁신의 뿌리 레프 비고츠키>와 <관계의 교육학 비고츠키> 그리고 이 책으로 시작하시면 될 것 같다. 물론 <Mind in Society>의 한국어 번역본과 <생각과 말>을 함께 봐도 좋다.

박동섭 선생의 <비고츠키, 불협화음의 미학>도 좋지만 비고츠키 사상 자체에 대한 내용보다 이를 기반으로 한 비판적 관점의 수립에 초점을 두고 있기에, 기본이론에 입문하고 나서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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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래 전부터 비고츠키와 관련된 내용을 포스팅하곤 했었습니다만 최근 몇몇 분들이 함께 공부해 보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주셨습니다.
  1. 본의 아니게 모임에 대해 먼저 생각하게 된 상황에서 먼저 제 배경을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영어교육을 공부하고 이후에 응용언어학이라는 분야를 공부하였습니다. 응용언어학 중에서도 제2언어 리터러시 발달에 관심이 많은데 이걸 연구하려다 보니 ‘발달’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필요하였습니다. 잘 아시듯 비고츠키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주제가 ‘인간이 사회문화적으로 어떻게 발달하는가?’였죠.
  1. 그래서 만나게 된 게 비고츠키와 사회문화이론,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추후에 전개된 액티비티 이론입니다. (Vygotsky, Sociocultural Theory, Activity Theory 등으로 구글스칼라를 검색하시면 관련된 저작이 엄청나게 나옵니다.) 액티비티 이론은 좀더 길게 ‘역사문화적 활동이론(CHAT: Cultural-Historical Activity Theory)’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비고츠키의 사상을 기반으로 인간의 행동을 체계적으로 설명해 보려는 이론적 흐름을 가리킵니다.
  1. 세미나가 시작되기도 전에 굳이 ‘약점’을 드러내자면 저는 러시아어를 할 줄도 모르고, 비고츠키의 사상 자체를 넓고 깊게 공부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학위 과정 중에 수년 간 제2언어 발달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을 챙기면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80년대 중반 <외국어 습득 및 발달과 사회문화이론> 분야를 개척하고 몸소 역사를 써오신 지도교수(Dr. James P. Lantolf) 덕에 다른 분들보다는 조금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지요.
  1. 한국에 들어와서 강사 생활을 하다 보니 이 분야를 더 깊이 파거나 가르칠 일이 없었습니다. 몸에 익힌 개념적 틀과 사고방식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지만 비고츠키 사상의 세세한 내용들이 스르르 사라지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1. 하지만 여전히 만만찮은 일상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세미나를 이끌거나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강연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고츠키의 생애와 대표저작을 살피면서 (넓은 의미의) 교육과의 접점을 찾는 공부 모임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누구를 가르친다기 보다는 비고츠키의 사상을 자신의 실천에 접목하고자 하는 분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모임 말입니다.
  1. 살짝 고백을 하자면 비고츠키를 만난 저는 좀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좋은 쪽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
  1. 모임을 하게 된다면 비고츠키의 삶을 다룬 저작들을 두어 권 읽고, 이를 기반으로 그의 기초 저작(생각과 말, 사회 속의 정신 등)을 읽은 후, 액티비티 이론, 교육 일반 등과 관련된 각종 논문과 저작들을 읽어나가고 싶습니다. 참여하시는 분들과 추후 논의해 봐야겠지만 영문으로 된 저작들도 함께 읽어보고자 합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며 공부하고 계신 분들의 삶과 생각을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비고츠키

#사회문화이론

 

Words on the Threshold

언어발달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다. 하지만 ‘언어가 죽어갈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말의 모양은 어떠할까? 181명의 사람들이 죽기 전에 남긴 말들을 모아 분석한 <Words on the Threshold> (2017)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Smartt also wondered whether her notes had any scientific value, and eventually she wrote a book, Words on the Threshold, published in early 2017, about the linguistic patterns in 2,000 utterances from 181 dying people, including her father.”

“To assess people’s “mental condition just before death,” MacDonald mined last-word anthologies, the only linguistic corpus then available, dividing people into 10 occupational categories (statesmen, philosophers, poets, etc.) and coding their last words as sarcastic, jocose, contented, and so forth. MacDonald found that military men had the “relatively highest number of requests, directions, or admonitions,” while philosophers (who included mathematicians and educators) had the most “questions, answers, and exclamations.” The religious and royalty used the most words to express contentment or discontentment, while the artists and scientists used the fewest.”

https://www.theatlantic.com/family/archive/2019/01/how-do-people-communicate-before-death/580303

체화된 인지와 재현성 위기

기본적으로 체화된 인지 embodied cognition 의 이론적 지향에 동의하지만 “유행”에 편승한 과도한 주장들을 걸러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래 기사는 이 점을 최근의 재현성 위기 replication crisis 와 관련하여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단, 여러 번 언급되고 있듯이 이건 EC만의 문제는 아니고 심리학 전반의 문제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https://qz.com/1525854/psychologys-replication-crisis-is-debunking-embodied-cognition-theory/?utm_source=qzfb&fbclid=IwAR3PbBEILzsffYWM-MB-wHp8B-ZlgeT9ykc05SUBs-bHpfVOGrGcmoey7yE

문법공부란 무엇인가

문법이 맥락과 결합하면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Practice makes per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습하다가 보면 완벽하게 된다는 말이지요. 논란이 좀 있긴 하지만 자주 인용되는 “1만시간의 법칙”(어떤 분야이든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슬로건으로 나올 법한 표현입니다. 이 문장을 분석해 보면 매우 간단한 구조가 나옵니다. 바로 “A makes B”죠.

“A makes B”라는 구문은 매우 단순합니다. 하지만 Makes를 다른 동사로 살짝 바꾸거나 적절한 맥락과 결합시키면 풍부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이 초간단 문형을 가지고 만들어 본 문장들입니다.

1. Make-up makes money.

만약 어떤 사람이 메이크업 하는 법을 유튜브에 올려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해봅시다. 이때 “Make-up makes money.”라는 말을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여기에서 “make-up”은 화장 자체라기 보다는 ‘화장하는 법을 연구해서 만든 영상”을 함축한다고 할 수 있겠죠. 돈되는 일은 무엇이라도 make-up 자리에 넣을 수 있겠습니다. 메이크업을 하면서 삶의 기쁨을 얻게 되었다면 “Make-up makes joy.”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2. No-dress brings popularity.

어떤 사람이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누드시위를 했다고 합시다. 이때 많은 언론들이 그에 대해 주목하고 순식간에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면 어떨까요? 이 상황을 “No-dress brings popularity.”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좋은 옷을 입고 다녀서 유명해질 수도 있지만 나체가 되어 유명해질 수도 있는 것이죠. 물론 그렇게 얻은 유명세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요.

3. Consistency makes jokes.

어떤 사람이 조크를 구사합니다. 처음에는 재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결코 굴하지 않고 계속 합니다. 끝까지 밀어부치니까 이제 사람들이 어떤 패턴을 접하면 “아 이거 OO식 유머네”라고 알아보게 됩니다. 나름 웃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기고요. 이런 상황이라면 “꾸준히 하다 보니 유머가 되네”라고 말할 수 있을 거고, “Consistency makes jokes.”라는 표현이 가능할 겁니다.

4. Expediency creates illusion.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는 무명 작가가 있습니다. 원고를 보내고 답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뭐라도 대꾸라도 해주면 좋을텐데 말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다릅니다. 원고를 보낸 지 24시간도 안되어 “원고를 잘 읽어보겠다”는 답장을 받습니다. 이렇게 빨리 답장이 오다니! 뭔가 잘될 것만 같습니다. 이 경우 빠른 처리(expediency) 덕에 잘될 것 같다는 환상(illusion)이 생길 수 있죠. 사실 이번 출판사의 편집자는 이메일 답장을 보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결벽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오늘은 <A makes B>라는 간단한 구문을 이용해서 몇 가지 예문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매우 단순한 구조이지만 여러 가지 상황과 결합하면 그에 맞는 메시지를 만들어 냅니다. 이것은 <A makes/creates B>라는 문형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어떤 문법 구조이건 적절한 어휘와 맥락을 만나면 굉장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정한 맥락을 만나면 거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문법구조를 떠올려 봅니다. 특정한 문법구조를 만나면 이와 잘 어울리는 문맥을 생각해 봅니다. 이 과정 속에서 암기의 대상이 되는 문법이 아니라 삶을 포착하고 표현해 내는 문법을 익힙니다.

이처럼 언어의 구조와 삶의 맥락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문법 공부입니다. 앞으로 문법을 공부할 때마다 이점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영어학습의 보고 유튜브: 본다고 공부가 될까요?

 

유튜브는 영어로 된 멀티미디어의 ‘성지’입니다. 쉼없이 쏟아져 나오는 영상이 차곡차곡 쌓인 덕에 어떤 분야를 공부하든지 유용한 자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자막을 제공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어 학습의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자료가 없어 공부를 못한다는 핑계는 댈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깁니다. 좋은 자료가 이렇게나 많은데 여전히 학원이나 온라인 강좌가 영어학습시장의 주류를 이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그 많은 사교육 업체들은 폐업하지 않는 걸까요?

오래 전 유행어 중에 ‘인천 앞바다가 사이다라도 컵이 없으면 못 떠먹지’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현재 인터넷의 엄청난 자료들과 영어학습 간의 관계를 잘 포착합니다.
학습을 위해서는 영상을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요소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발음에, 영상에, 특정한 어휘에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구문 분석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빠르게 스쳐가는 표현을 복기하고 기억에 새겨야 합니다. 영상시청만으로 남는 정보는 미미합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스르륵 흘러나갑니다. 그렇기에 영상 안에 나오는 언어를 깊이 처리(deep processing)할 때라야 우리 뇌에 오랜 시간 기억될 수 있습니다.

영어교육 업체들은 다양한 노하우를 가지고 학습자들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영상을 보여주는 일을 넘어 그 안의 언어를 해설하고 연습시키며 배운 바를 평가합니다. 그런 면에서 사교육은 인천 앞바다의 사이다(어디서나 얻을 수 있는 영어 자료)를 떠먹을 수 있는 컵(학습 전략)을 제공하여 수익을 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사이다를 제조하거나 최신식 컵을 선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영어와 학습자 사이에서 공부의 도구를 제공하는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유튜브 영상을 가지고 공부하려는 분들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합니다. 먼저 “영상시청=공부”라는 등식을 깨야 합니다. 영상시청은 공부라기 보다는 공부의 출발점입니다. 영상을 시청한 뒤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공부가 될 수도 있고 조회수를 늘려주는 일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각자가 자신에 맞는 학습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제가 듣기 말하기 공부를 할 때 사용하는 ‘사이다 컵’을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1) 집중학습을 위해서 1-2분 가량의 짧은 클립을 선택합니다. 긴 영상의 일부라도 상관이 없습니다.우선 영상 전체를 한 번 시청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문장별 끊어읽기를 합니다. 이때 스페이스바로 문장을 멈출 수 있습니다. 문장을 반복해서 낭독하는 횟수는 2-3회 정도로 합니다. 이렇게 문장별 읽기 연습이 끝나면 쉐도잉(shadowing)으로 들어갑니다. 클립을 틀어놓고 문장이 들리는 대로 따라 읽는 것입니다. 하루에 하나의 클립만 꾸준히 공부해도 효과가 큽니다.

(2) 자료의 난이도에 따라 자막을 켜고 시청할 수도 있고 자막 없이 시청할 수도 있습니다. 주로 난이도가 높은 경우 자막을 활용하게 되는데 이 경우에는 듣기가 아니라 읽기학습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때 유용한 것은 눈감기입니다. 처음 몇 문장은 자막을 켜고 시청합니다. 대략 어떤 배경의 이야기인지,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후에는 문장의 경계를 기준으로 눈을 잠깐씩 감습니다. 계속 잘 들린다면 눈을 감고 끝까지 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중간에 뜰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눈뜨고 감기를 반복하면서 클립 하나를 다 듣습니다. 이제 클립을 처음부터 자막 없이 봅니다. 필요하다면 쉐도잉 연습도 추가합니다.

(3) 마지막으로는 표현을 정리합니다. 해당 클립에 나오는 유용한 어휘나 덩이말(chunk)을 정리해 보는 것입니다. 아래는 제가 직접 오디션 프로그램과 요리 클립을 보면서 정리한 표현들입니다. 거기에 저 나름대로의 해설을 더해보았죠. 이렇게 표현을 수집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여러분들도 자신만의 정리 방식을 만들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길어 올린 표현

오디션 프로그램 보면서 엄청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 놀라곤 했습니다. 오늘은 Paul Potts가 나오는 British Got Talent 클립을 봤습니다. 그의 공연은 오디션 프로그램계의 ‘클래식’이 된 느낌입니다.

제가 주목했던 것은 오디션 심사위원들이 쓰는 표현들이었습니다.

먼저 a breath of fresh air (someone or something that is new and different and makes everything seem more exciting)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기운이 분위기를 바꿔놓는 걸 말하는데요. 평범한 세일즈맨으로 일하는 Paul Potts의 노래가 그 정도로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이야기인 듯합니다.
영상에서는 강조의 형용사를 넣어 ‘a complete breath of fresh air’라고 표현됩니다. 그 다음에 absolutely fantastic 이라는 표현이 나오고요. “absolutely”는 감정이나 느낌을 강조할 때 자주 쓰이는 부사입니다. 다음에 멋진 공연을 보게 되면 “absolutely fantastic!”이라고 외쳐볼까 합니다.

다음 심사위원은 “You have an incredible voice.” 라고 하죠. 믿을 수 없는 목소리를 가졌다는 뜻으로요. 이전에 나온 complete, 여기의 incredible이라는 단어가 최고의 칭찬임을 나타내 주네요. 진짜 멋진 친구가 있다면 “I have an incredible friend.”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 닭살이 돋을 수도 있겠지만, 적절한 상황에서 사용한다면 상대방에 대한 멋진 찬사가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 심사위원은 “a little lump of coal here that is gonna turn into a diamond” (이내 다이아몬드로 변할 작은 석탄 한 덩이)라는 표현을 쓰네요. 지금은 완벽한 다이아몬드의 형상을 갖추지 못한 석탄이지만 내면에 보석을 품고 있으니 세공(경험과 훈련)을 좀 거치면 완벽한 다이아몬드가 될 거라는 메타포입니다.
심사위원들이 사용하는 표현을 살피다 보니 오디션계의 또다른 전설인 Susan Boyle에 대한 심사평도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비디오를 다시 찾아보고 표현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먼저 “The biggest surprise I have ever had(내가 당한 가장 큰 놀람 즉, 이렇게 놀란 적은 난생 처음이야)” 라는 표현이 나오고, “That was stunning. An incredible performance. (정말 끝내줬어요. 믿을 수 없는 공연이네요.)” 라는 말도 하네요. Incredible이 다시 나왔네요. 이와 함께 Amazing(놀랍군요)이라는 단어도 등장하는군요.

다음으로는 “I’m so thrilled because I know everybody was against you. (수잔 보일의 외모로 판단하는 관중들이 미심쩍은 표정을 보냈다는 의미.)” 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Against’가 적대적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적절한 표현이 될 수 있겠네요. “That was a complete privilege listening to you.” 라고 하면서 “당신의 노래를 듣는 건 엄청난 특권이었다”는 말도 하네요. complete와 privilege 두 단어 모두 강한 의미를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평과 같이 특정한 주제의 언어 패턴이 드러나는 프로그램을 선택하셔서 (이 경우에는 출연자들에 대한 칭찬, 놀람, 감동 등을 이야기하는 표현이 반복되어 나오는 경우) 주의 깊게 청취하시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꼭 오디션 프로일 필요는 없겠죠. 어떤 프로그램이든 좋습니다. 일기예보, 스포츠 중계, 뉴스 등등 어떤 장르든 그 나름의 언어표현들이 존재하니까요.

▶유용한 요리 관련 표현 20개

아래는 제가 요리 채널을 보면서 정리한 요리관련 표현들입니다.

1. 생선 구울 때 칼집 내는 것은 score라고 합니다. 악보나 점수라는 뜻 외에 ‘칼집을 내다’를 추가로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 미국에서 zucchini라고 부르는 걸 영국에서는 courgette라고 합니다. 영국 영어에서 chips라고 하는 걸 미국에서는 French fries라고 하죠? 사실 이런 차이가 꽤 많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시다면 웹의 이미지 검색을 해보세요. 직관적으로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3. 약간 비스듬히 써는 것은 ‘cut something at an angle’이라고 합니다. “at an angle”이 ‘비스듬히’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4. 잘게 썬다고 할 때 finely라는 부사를 씁니다. chop something finely / finely chop something 같이 말이죠. finely는 요리에 꽤나 자주 나오네요.

5. 음식 위에 뭔가를 툭 던져놓는 걸 whack something on the top 이라고 하면 됩니다. 조심스레 잘 올려놓는다기 보다는 쓱쓱 던져놓는 걸 말하죠.

6. 육류나 생선의 뼈를 발라 살만 남기는 것을 fillet 이라고 합니다. 또는 그렇게 만들어진 살 한 토막을 fillet 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우리 나라에서는 ‘휠레’ 정도로 표기되는 것 같습니다.

7. 소금이나 후추를 살짝 집어서 넣는 것은 put a pinch of salt(pepper)라고 표현합니다. Pinch에 ‘꼬집다, 콕 짚다’라는 뜻이 있다는 걸 생각하시면 기억에 될 것 같습니다.

8. 밑둥을 잘라낼 때 trim up the base 정도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9. 강판에 가는 것은 grate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발음 때문인지 ‘gr-‘로 시작하는 단어는 무언가에 갈리는 느낌입니다.

10. Flake는 생선이나 양파 등 큰 덩치에서 떨어져 나온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dried onion flakes’라고 하면 ‘잘게 썰어 말린 양파’라는 뜻입니다. 큰 생선에서 살이 뚝 떨어져 나오는 것도 flake로 표현할 수 잇습니다.

11. Soggy는 ‘질척한’ 정도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데, 음식에 대해 쓰면 바삭해야 할 것이 눅눅해진 상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Crispy와 반대 의미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Crispy해야 하는 음식이 soggy해지면 정말 먹기 싫더군요.

12. 식용유 등을 충분히 휘리릭 뿌린다고 할 때 ‘a sloosh of vegetable oil’정도로 쓸 수 있습니다. “Sloosh” 발음이 재미납니다. ‘-oo-‘발음을 길~게 늘리면 느낌이 더 살아나겠네요.

13. 우리 말로 ‘노릇한’을 표현하는 방법 중에 ‘golden’이 있습니다. 좀더 짙은 노릇함은 brown으로 표현하면 될 것 같네요.
14. 토마토나 야채를 데칠 때 blanch라는 동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뜨거운 물에 넣었다 바로 빼는 거죠.

15. 뒤집는 것은 turn을 쓰시면 됩니다. “Turn something once or twice’와 같이 마이죠. 그러고 보니 잘 때 뒤척이는 건 ‘toss and turn’이라고 표현하네요.

16. 빵을 손으로 찢어 놓는 것을 ‘give (it) a rip-up’ 정도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요리 프로그램에서 ‘give something noun’의 형태로 행동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7. 티스푼보다 큰 스푼을 tablespoon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밥먹는 스푼과 비슷한 크기입니다. ‘A tablespoon of sugar’와 같이 쓸 수 있고요. 그런데 tablespoon에 설탕을 가득 담는다면? 이때는 heaped 를 써서 ‘two heaped tablespoons of sugar’와 같이 쓰면 됩니다. “Heap”이 ‘쌓다’의 의미이니 설탕이 봉오리 모양으로 쌓인 걸 떠올릴 수 있겠네요.

18. ‘상온’은 room temperature라고 표현합니다. 따라서 ‘상온에 (식도록) 놔두다’는 ‘let it go to room temperature’ 정도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19. 영국영어에서 a knob of butter는 ‘버터 한 덩이’를 말합니다. ‘A stick of butter’는 스틱 모양의 버터 한 덩이를 말하죠.

20. 마늘 한 쪽은 clove라는 단어로 표현됩니다. 10개 쯤 들어있는 한 덩이는 bulb라고 하구요. 전구(light bulb)를 연상하시면 이 표현도 쉽게 기억하실 수 있습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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