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잡감

언어 빅데이터에 대한 수업을 하고 있다. 프로그래밍이나 자연어처리 기법과 같은 기술적 내용은 아니고,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의 관점에서 구글북스나 코퍼스 등 대용량 언어 데이터를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관한 내용이다.

반응은 두 가지로 갈린다. 새로운 관점과 도구가 언어학습에 대한 영감을 준다는 의견이 하나고 ‘그래서 어쩌라고’가 하나다. 몇 해를 진행해 온 수업인지라 이런 반응은 익히 예상한 바다.

그런데 후자의 의견을 지닌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보면 ‘이런 걸 왜 영어교육과에서 다루느냐’는 식의 항변이 섞여있다.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본격적으로 활용하지 못할 것들을 왜 몇 주에 걸쳐 다루냐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차피 영어실력 향상에 도움도 안되는 개념과 도구들 아니냐는 항의가 깔려 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언어교육이 교재에 묶여 있는 상황에 대해 고민해 왔다. 언어를 사회문화적 총체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잘 편집된 교과서와 문제집의 형태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 갑갑했던 것이다. 그런데 빅데이터를 활용한 활동은 언어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잘 보여줄 수 있다. 완벽하진 않지만 교과서와 수능교재에 갇힌 영어를 어느 정도 해방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당장 학습자들의 영어실력을 올려주거나 시험을 치는 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심어주는 데는 유효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면서 교사 또한 언어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다.

현실만을 보면 항변하는 학생들의 의견이 맞다. 교실에서, 방과후 활동에서 빅데이터 같은 거 다루면 수능에 도움이 되겠나? 내신성적 높이는 데 소용이 있겠나? 당연히 성적에 도움은 안된다. 그런데 교육을 그렇게만 바라보면 교사는 뭐가 되나? 또 학생은 뭐가 되나? 무엇보다도 재미가 없지 않나?

어떤 수업을 해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 같다. 강의평가에서 불만이 터져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생각하는 건 ‘무난한 수업’보다는 ‘김성우에게만 들을 수 있는 수업’을 하자는 것이다. 내가 대단한 선생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내 수업이라는 이야기다.

꼰대가 되지 않는 것만큼 맞춰주기만 하는 선생이 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좋은 수업은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기도 하지만 현실을 바꾸는 꿈을 꿀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해야 하니까. 교육은 사회의 필요에 복무함과 동시에 사회 자체를 변혁해야 하니까.

영어교사들을 위한 인지언어학 이야기 53: 환유(Metonymy)의 세계 (1)

아래 세 문장을 살펴 봅시다.

a. “버스 파업중이야. 지하철 타고 가.“
b. “빨간 모자 너무 시끄럽다. 가서 한마디 할까?“
c. “손이 모자라서 시간이 배로 걸릴 듯. 사람 좀 더 뽑아주지.“

일상에서 쉽게 쓰고 또 이해할 수 있는 문장들입니다. 특별할 것이 없는 이 문장들 속에 인간이 세계와 언어를 엮어서 인지하는 방식의 작은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a를 봅시다. ‘버스 파업중이야’라고 하지만 실제로 파업을 하고 있는 것은 버스가 아닙니다. 멀고 먼 훗날 자율주행 버스들이 자신의 권익을 찾기 위해 파업을 벌이는 상상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SF 속 이야기고, 실제로 파업을 하는 것은 버스를 운전하는 노동자들이죠. 하지만 우리는 ‘버스를 운전하는 노동자들이 파업중이야.’라고 길게 말하기보다는 ‘버스 파업중이야’를 택할 때가 더 많습니다. 실제 대상을 상세히 설명하기 보다는 그 대상을 가리키는 데 꼭 필요한 정보만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문장의 길이도 상당히 짧아지지요.

다음으로 b를 봅시다. ‘빨간 모자’는 그 자체로 시끄럽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모자라면 소리를 내진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이 시끄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빨간 모자 쓴 사람 너무 시끄럽다’고 말할 수 있지만 ‘빨간 모자’만 써도 충분히 의미 전달이 됩니다.

마지막으로는 c입니다. 여기에서 ‘손’은 단지 신체의 일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손’을 말합니다. 따라서 손이 부족하다는 것은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뜻이 됩니다. a나 b와 비교할 때 조금 다른 점은 ‘버스’나 ‘빨간 모자’가 가리키는 대상의 부분이 아님에 비해 ‘손’은 가리키는 대상 즉 일할 사람의 일부를 이룬다는 점입니다. 흥미롭게도 영어에도 이와 비슷한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short-handed’죠. 일손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종종 쓰이는 표현입니다.

Metonymy의 정의

위의 a-c는 모두 ‘환유’라고 부를 수 있는 언어현상의 예시입니다. 인지언어학자들은 환유(metonymy)를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합니다.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서 어느 정도의 준거가 필요한 만큼 Littlemore (2015)의 다음 정의를 차용하도록 하겠습니다.

Metonymy is a figure of language and thought in which one entity is used to refer to, or in cognitive linguistic terms ‘provide access to’, another entity to which it is somehow related. (환유는 언어와 사고의 수사법 중 하나로 한 실체가 관련된 다른 실체를 가리키거나, 인지언어학의 용어로 말하자면, 관련된 다른 실체에 ‘접근지점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환유는 한 언어표현이 특정 대상을 정확히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로 연결되는 관문의 역할을 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실제로 metonymy의 어원을 따라 올라가면 라틴어metonymia, 나아가 그리스어 metōnymia에 닿게 되는데, 이것은 “이름을 바꾸기(change of name”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표현에서 ‘빵’은 단순히 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먹거리 전반을 가리킵니다. 이를 어원에 빗대어 설명하면 ‘먹거리’가 ‘빵’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죠. 물론 이 둘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이렇게 이름을 바꾸긴 쉽지 않았을 겁니다. 많은 서구권 국가에서 빵은 주식 중 하나이기에 이런 이름바꾸기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환유(metonymy): 몇 가지 예시

그렇다면 이번에는 영어 환유 표현을 몇 개 살펴 보겠습니다.

d.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펜은 칼보다 강하다.)
e. The White House sees it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백악관은 그것을 다른 관점에서 본다.)
f. Ireland passed a landmark bill last year. (아일랜드는 작년에 기념비적인 법안을 통과시켰다.)

속담 a에서 ‘the pen’은 필기구가 아니라 문필 즉 글을 쓰는 행위 전반을 가리킵니다. 이에 대구가 되는 ‘the sword’는 무력을 사용하는 일체의 활동을 가리키지요. “The pen”과 “the sword’가 다른 개념으로 가는 관문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e에서 “The White House”는 미국 대통령이 참모와 함께 거주하는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를 가리킵니다. 빌딩이 아닌 조직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f에서 “Ireland”는 아일랜드 국가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아일랜드 의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실제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아일랜드 국가 전체가 아니라 의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예시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 특정 개념에 접근할 때 종종 해당 개념에 정확히 상응하는 언어표현을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행위 전반’에 접근하기 위해 ‘펜’을 사용하고, ‘미국 정부’라는 개념에 접근하기 위해 ‘백악관’이라는 언어를 활용하죠. 이것은 인간의 사고와 언어간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예시가 됩니다. 즉 환유는 단순히 언어표현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구조와 과정을 보여주는 개념적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계속)

<참고문헌>
Littlemore, J. (2015). Metonymy: Hidden shortcuts in language, thought and communic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Link] Blog for Teachers of Academic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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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what follows, I will list the posts according to ten themes: Drafting; Revision; Audience; Identity; Writing Challenges; Mechanics; Productivity; Graduate Writing; Blogging and Social Media; and Re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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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학습을 주제로 한 인문독서 아카데미 강연을 통해 배우고 느낀 점들

5주간의 한빛도서관 강연을 마쳤습니다. 총 10시간 강의였으니 대학강의와 논문쓰기 특강 외에 가장 긴 시간을 가르친 셈이네요. 5주간의 경험에서 얻은 바를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1. 수강생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또 많은 것들에 대해 궁금해하고 계셨습니다.

‘영어교육에 관해서라면 전국민이 전문가’라고 하지만 이 말이 사실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들 알고 있는 것들은 많지만 영어교육학이나 응용언어학의 개념을 꿰뚫고 있는 분들은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많은 것을 안다고 해서 확신을 가지고 영어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려는 분들이 적지 않아 기쁜 마음으로 지식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2. 가족 내에서의 영어교육에 대한 책임은 절대적으로 어머니들에게 부과됩니다.

마흔 분의 수강생 중 서른 여덟 분이 여성이었고, 그중 대부분은 초등학교 저학년 전후의 자녀를 둔 30-40대 어머니들이었습니다. 질의응답을 하다 보니 영어교육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을 어머니가 맡고 계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다른 과목의 공부도 마찬가지겠지만 양육과 교육에서 어머니들이 담당하는 부분이 매우 큰데 이것이 자칫 ‘책임 스트레스’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3. 중고교에서의 영어교육 열기가 식었다고 하지만 초등과 미취학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교육은 여전히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파주지역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초등학교 전후의 영어교육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한빛도서관은 어린이 영어도서 특화 도서관이기도 한데, 여기에 정기적으로 들르시는 부모님들이 꽤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번 오시면 동화나 리더스 시리즈 등을 30-40권씩 빌려간다고 하시더군요. 나중에 수학이나 과학 쪽에 더 신경을 쓸지는 모르지만 초등학교 수준에서는 영어교육에 대한 수요가 아직 큰 것으로 보입니다.

4. ‘엄마표 영어’의 힘은 막강합니다. 하지만 몇몇 어머니들은 ‘비슷비슷한’ 엄마표 영어 서적보다 조금 더 깊은 지식을 쌓길 원하고 있습니다. (‘비슷비슷한’은 두 어머니의 워딩을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소위 ‘엄마표 영어’ 강연을 주기적으로 들었다는 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엄마표 영어를 접하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다만 그런 강연들에서 전달되는 메시지가 천편일률적이라고 느끼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엄마표 영어가 어머니들 사이에서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는 것, 나아가 몇몇 분들은 조금 더 깊은 공부를 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채워줄 강연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수요가 크진 않지만 분명 목마름이 있는 것이죠.

5.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학부모의 의식변화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5주간 강의와 질의응답을 통해 우리 사회의 영어교육 지형이 바뀌기 위해서는 학부모의 의식변화가 절실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최선을 다해 자녀의 영어교육을 지원하면서도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불투명한 미래, 주변과의 비교 등이 불안의 주요 원인이더군요.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입시와 내신 등의 제도적 변화와 함께 영어공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영어를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어공부를 공부하는 것의 중요성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6. ‘삶을 위한 영어공부’ 실천 프로그램의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단단한 영어공부>를 내고 나서 단순히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영어공부 프로그램을 기획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한 친구와 함께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보자는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고요. 이번 경험에서 배운 바를 앞으로의 기획에 적용해 보려고 합니다. 작고 소소하지만 깊이있고 단단한 영어공부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전에 없었던 학습 프로그램을 기획해 볼 생각에 설레네요.

7. (대놓고 광고입니다.) 한번 하고 말기에는 10시간 강의 준비한 게 아깝다는 생각입니다.

그간 집필한 것과 강의한 바를 종합해서 5강짜리 강의를 기획하고 실행했습니다. 한 번 하고 말기에는 조금 아쉽고 또 아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전국영어교사모임 강연에서는 ‘교사버전’으로 각색을 해볼 예정이고요. 이후 다른 곳에서 불러주시면 또 열심히 준비해 볼 생각입니다. 공식적인 강의피드백은 없었지만 여러 분들이 많이 배우고 느꼈다고 말씀해 주셨네요.

비슷한 주제로 강의를 원하시는 분은 메시지 주십시오. 일정을 맞춰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아래 한빛도서관 강연 내용을 옮겨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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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독서아카데미] 단단한 영어공부 – 파주시 한빛도서관

한빛도서관의 <인문독서 아카데미> 강연은 5주, 총 10시간에 걸쳐 진행됩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았습니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뼈대로 하되, 그간 진행해 온 강의 내용을 보강하여 진행할 예정입니다.

강의내용: 영어공부, 왜 하는가. 내 삶을 위한 외국어 학습이란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영어교육을 되돌아보고 우리 삶을 단단하게 하는 영어공부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

1강- 영어 왜 공부하는가 : 네이티브 중심주의를 넘어서
2강- 인풋이 아니라 경험이다 & 영어, 오해를 풀고 새롭게 보기
3강- 문법, 형법에서 마법으로 & 어휘, 생각을 담고 세계를 넓히다
4강- 응용언어학자가 바라보는 언어와 사고의 관계
5강- 쓰기공부: 가로쓰기X세로쓰기X좁게쓰기

#삶을위한영어공부
#단단한영어공부

부르디외 vs. 촘스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의 핵심적 특징이 ‘생성적(generative)’이라는 데 있다고 말하면서 촘스키의 심층구조(deep structure)와의 유사성을 언급한다. 심층구조가 다양한 조작을 거쳐 여러 표층구조로 실현될 수 있듯이 아비투스가 사회 구조에 의해 형성되지만 그 자체가 다양한 행위를 생성할 잠재성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반면 부르디외는 이상적 원어민 화자(idealized native speaker)를 상정하는 촘스키의 언어관을 “언어 공산주의(communisme linguistique)의 환상“이라고 비판한다. 완벽하게 평등한 현실은 존재하지 않건만 촘스키와 같이 모든 화자들이 동일한 언어능력(linguistic competence)을 가진 사회를 상정하는 것은 언어학에서 현실을 탈각하고 이상의 세계에 가두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관점은 언어인류학자나 비판사회언어학자들의 촘스키 비판과 맥을 같이한다.

인류학적 연구를 수행하면서 현실사회의 동학을 다루었던 사회학자 부르디외에게 있어 이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다양한 장(fields)에서 서로 다른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상징적 자본을 가진 개개인이 소통하는 상황에 ‘이상화된 원어민 화자’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사회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몸이 또 다른 몸에게 말하는 동안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 내는 보편문법의 소유자’는 백그라운드 인지 프로세스로 상정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구체적인 사회학적 분석대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응용언어학, 어디로 가야 할까

1. 철학이나 정치경제 세미나들이 많이 보인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물 중심의 강독이 두드러진다.

2. 가끔 이런 세미나의 ‘아우라’에 압도당하곤 한다. 철학사를 섭렵하고, 푸코와 들뢰즈를 읽고, 아감벤과 바디우를 읽어내는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는 것도 같다. 그런 세미나에 가면 분명 나의 부족함만 확인하고 돌아올 것 같은 기분이다.

3. 이런 생각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요즘은 나와 동료들의 학술작업에 대한 성찰에 무게를 두게 된다. 왜 응용언어학자들은 이런 세미나를 기획하고 실행해오지 못했던가? 왜 스스로를 ‘교수법 전문가’로만 자리매김했을까? 왜 이론적 깊이와 풍성함을 그토록 쉽게 포기(당)해 온걸까?

4. 예를 들어 보자. Stephen Krashen 비판적으로 돌아보기, James Lantolf 깊이 읽기, New London Group과 Douglas Fir Group의 논의로 본 한국의 언어교육, Claire Kramsch 저작 톺아보기, Merill Swain의 여정 따라가기, Dell Hymes의 저작으로 보는 Communicative Language Teaching, Bonny Norton의 관점에서 본 정체성 담론, Social Turn과 Emotional Turn으로 본 응용언어학 논쟁사, Top papers in the history of applied linguistics 등의 세미나를 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5. 이런 아이디어들이 빛을 보지 못한 건 크게 세 가지 이유라고 생각한다. 첫째, 한국의 대학 체제에서 응용언어학 전공자들은 (영어, 독어, 불어 등의) 외국어교육과에서 강의를 맡게 된다. 사범대학에 속해 있는 이들 과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교사양성이다. 따라서 교과과정에서 위와 같은 식의 강의를 개설하기는 상당히 힘들다. 둘째, 전공자들의 탈숙련화다. 개별 외국어교육이나 교사양성을 기본으로 하는 교과과정에 투입된 전공자들은 얕고 넓은 지식을 소화하여 가르치는 일을 주로 하게 된다. 이에 따라서 박사과정 동안 연구했던 주제를 더 깊게 발전시킬 기회를 잃게 된다. 쉽게 말해 먹고 사느라 배운 걸 까먹게 되는 것이다. 셋째, 응용언어학 전공자들이 모델로 삼을만한 학문적 기반 자체가 매우 취약하다. 함께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흐름을 만들어 낸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6. 이런 시도가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공부하고 실천하는 게 있어보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평을 넓히고 지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라도 기초이론에 대한 관심은 필수다.

7. 불만만 늘어놓았지 당장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게 다 곧 개강인 탓이다. 탓할수록 다가오는 개강의 검은 손…

#응용언어학
#학술문화

리터러시 교육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

1. 리터러시를 가르치는 게 어려운 이유는 여러 면에서 고찰할 수 있다. 글자 읽기, 글읽기, 쓰기, 독서교육, 가족 내 리터러시 활동, 학습습관 발달, 새로운 미디어 활용하기, 사회적 인프라 확보 등등 다양한 영역에서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2. 하지만 리터러시를 사회적 소통의 인프라스트럭처로 봤을 때 리터러시 교육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3. 텍스트를 읽고 쓰는 것은 단지 글자와 단어를 나열하는 행위가 아니다. 독자와 저자는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엮어 글을 이해하고 써내기 때문이다. 리터러시는 문자해독이나 생산이 아니라 언어와 세계를 직조하고 공유하는 행위다.

4. 3과 조금 결이 다르지만 읽기와 쓰기는 흔히 상향식 정보처리(bottom-up processing)와 하향식 정보처리(top-down processing)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적 정보처리(interactive processing)으로 이해된다.

5. 내 눈 앞에 텍스트는 분명한 실체가 있고 분석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컨텍스트는 다르다. Teun A. van Dijk이 이야기하듯 컨텍스트는 특정한 시간이나 장소, 사건에 대한 정보가 아니다. 컨텍스트는 특정한 시공간이나 사건 등에 대한 심성모델(mental model)이다. 그리고 이 심성모델은 단지 글 전체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단어 하나 하나, 발음 하나 하나에 적용된다. (나의 ‘공정’과 당신의 ‘공정’이 판이하게 다르다면 ‘공정한’이라는 말은 다르게 이해될 수밖에 없다.)

6. 심성 모델은 순식간에 바뀌지 않으며 즉석해서 생성될 수도 없다. 오랜 기간의 경험과 지식, 독서경험 등이 쌓여 특정한 대상이나 사건에 대한 정신적 모델이 형성된다.

7. 우리는 기본적으로 유사한 심성모델을 가진 이들과 어울리고 싶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모델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있으면 쉬이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피곤한데 왜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돼?”

사실 소셜미디어에서 우리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관련기사:
타인도 내 의견에 동조한다는 ‘착각’에 숨은 물리학 법칙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584&aid=0000005529

8. 여기서 사회적 소통의 인프라로서의 리터러시 교육이 어려운 진짜 이유가 드러난다. 텍스트를 이해하는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나와 다른 심성모델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할 생각이 거의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로버트 퍼트넘이 <우리 아이들>에서 지적했듯 사회적 섞임(social mixing)이 사라진 시대에 사회는 점점 양분화되고 또 하위 집단 사이의 단절은 강화된다.

관련기사:
“갈산초로 통학구역 변경해달라” 소송 낸 목동 학부모들 패소
https://news.v.daum.net/v/20190818175216194

9.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지. “삶을 위한 리터러시”의 초반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이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된다. 글을 읽고 쓰고 비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좋은데 결국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커뮤니티를 축조하고 그 안에서 동일한 담론을 반복 확대하는데 활용된다면 비극 아닌가.

10. 물론 교육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사실 그래서 더 심란하다. 지금 내가 선 자리에서 교육은 뭘 할 수 있는가? 계속 뭔가 하겠지만 낮게 깔린 우울과 패배의식을 견뎌내기는 쉽지 않다.

11. 결국 이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사회의 기조가, 발달의 전 과정이 새로와져야 한다는 당위적이고 이상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내리나마나한 결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에 <삶을 위한 리터러시>는 우리 모두가 필요한 작업이다.

We’re all in this together.

12. 결론적으로 계급과 이념의 문제를 제외하고 리터러시를 논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핵심은 언제나 문자가 아니라 사회에 있었다. 텍스트의 문제는 컨텍스트의 문제이다.

컨텍스트를 지배하는 자가 텍스트를 지배한다.

#삶을위한리터러시

비판적 리터러시의 기본: 텍스트 꼼꼼히 읽어내기

“비판적 리터러시”는 다양한 층위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세계관과 철학, 배경지식과 텍스트의 연결, 타인의 텍스트와 해당 텍스트의 비교, 저자의 이전 글과 해당 텍스트의 비교 등 실로 다양한 방면에서 접근이 가능하지요.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텍스트 자체를 꼼꼼히 읽어내는 것입니다. 내용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고, 텍스트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언어적 장치들을 분석적이고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아래에서는 힐러리 쟁크스 저 <리터러시와 권력> 4장 “텍스트 비판적으로 읽기”에서 논의된 텍스트 분석을 위한 글의 특징들(textual features)을 알아보겠습니다. (책에 소개된 목록의 일부이며, 각 항목에 제 나름의 설명을 달았다는 것을 밝힙니다.)

1. 어휘화: 해당 텍스트에 사용된 어휘는? – 어떤 단어가 사용되었는지 검토한다. 해당 어휘의 선정은 적절한가? 대안은 없었는가? 특정 어휘의 선택이 특정 사회계층이나 소수자에게 차별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은 없는가?

2. 과어휘화: 같은 현상이 여러 어휘로 표현되고 있는가? 한 가지 현상이 다른 단어로 반복되어 표현될 때 어떤 효과가 발생하는가? 하나의 개념이 여러 어휘로 변주되어 표현되면서 어떤 개념적, 수사적 힘이 발휘되는가?

3. 어휘적 응집성: 한 어휘의 동의어, 반의어, 연관어 등이 어떻게 배치되고 연관을 맺는가? 텍스트에 제시된 어휘간의 관계가 적절하다고 생각되는가?

4. 비유: 텍스트 내에 어떤 비유가 사용되었는가? 그들은 어떤 효과를 갖는가? A라는 세계와 B라는 세계가 비유로 연결될 때 그들 사이의 사상(mapping)은 적절한가?

5. 완곡어구: 특정 현상을 돌려 말하는 부분이 있는가? 좀더 직접적인 표현이 사용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어구를 선택했다고 판단되는가? 왜 그런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6. 타동성: 이것은 시스템-기능 언어학의 개념으로 주로 동사로 표현되는 텍스트 내의 과정(processes)들 중 물질적 과정, 존재와 소유, 사고, 감각 및 인지, 말하기, 행위하기 등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덧. 이에 대해서는 몇 마디로 요약하기 힘드네요. 관심있는 분들께서는 아래 아티클을 참고하세요.

https://staff-old.najah.edu/…/Functional%20grammar%20proces…

7. 태: 능동태와 수동태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수동태의 경우 가려지는 것은 무엇인가? 특정 요소의 생략과 함께 인과나 권력관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힘들어지지는 않는가? 문장 단위에서 책임소재는 어떻게 특정되는가?

8. 명사화: 어떤 명사화(nominalization)가 사용되었는가? 주체와 대상을 수반하는 동사적 과정이 명사로 바뀔 때 무엇이 탈각되는가?

9. 간접/직접 인용: 누구의 말이 왜, 어떻게 인용되는가? 그 인용은 적절한가? 인용시 어떤 동사가 사용되는가? 추정하다? 주장하다? 가정하다? 예상하다?

10. 말의 차례: 텍스트에서 여러 명의 화자가 등장한다면 그들은 어떤 순서로 말하는가? 말의 분량이나 순서에 있어서 불평등은 없는가?

11. 긍정과 부정: 어떤 문장이 긍정문으로 제시되고 어떤 문장이 부정문으로 제시되는가? 왜 그렇게 제시되는가?

12. 법성: 어떤 명제는 사실로 진술되고 어떤 명제는 가능성으로 제시되는가? 개연성과 사회적 권위를 나타내는 표현들이 존재하는가? 문장의 인식론적, 윤리학적 위상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13. 대명사: 상대를 포함하는 we와 그렇지 않은 we가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가? ‘우리’라는 말에는 누가 포함되고 누가 포함되지 않는가? 화자의 ‘we’가 당신이 생각하는 ‘we’와 같은가?

14. 정보의 배열: 정보는 어떤 순서로 배열되어 있는가? 그러한 배열의 효과는 무엇인가? 어떤 대안이 있는가? 혹 정보배열에 따라 특정 인과관계가 암시되는가?

15. 논리적 연결사 및 접속사: 문장들간의 논리적 관계는 어떤 언어적 장치로 표현되는가? 특정 진술에서 다음 진술로의 전환은 자연스러운가?

텍스트를 읽을 때마다 이 모든 것들을 검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을 적용해 보면서 텍스트가 하나의 단일한 메시지로 우리에게 전달된다는 인상을 깨고 여러 가지의 목소리와 정보들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는 직조물(texture)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저자의 생각은 텍스트로 촘촘하게 짜여져 우리에게 전달되며 이는 몇 개의 아이디어로 독자의 뇌 속에 표상됩니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의 형성을 역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으로 분석하면 이들 아이디어가 가지는 한계와 가치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판적 리터러시는 바로 이 작업에서 시작됩니다.

출처: 힐러리 쟁크스 저, 장은영, 이지영, 이정아, 장인철, 안성호, 김혜경, 양선훈, 허선민, 서영미, 김은영 옮김, 김성우 감수 <리터러시와 권력> (사회평론 아카데미) 133-136

영화 Arrival 수업 메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Arrival>은 언어와 소통, 시간과 경험, 기억과 운명 등에 대한 풍부한 메타포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가 언어학계의 오랜 논쟁거리인 언어와 사고의 관계인지라 제가 담당하는 <언어와 사고> 과목에서 보기에 안성맞춤이었죠. 지난 학기 영화를 보고 수업을 진행했는데요. 당시 메모했던 내용들을 소개합니다. (참고로 저는 이 영화가 지금 작업중인 #삶을위한리터러시 의 주제의식과 잘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1. 이 영화는 외계인과 인간의 조우를 기본 스토리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단지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영화를 꼼꼼히 보고 나서 이 구도를 우리 삶의 어떤 영역에 대한 메타포로 볼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2. 영화의 제목은 <Arrival>이지만 한국에서는 <컨택트>로 개봉되었습니다. 이 두 제목에서 어떤 차이가 느껴지나요? 영화를 본 후에는 이 두 제목의 차이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3. 언어학자 Louise Banks와 물리학자 Ian Donnelly의 첫 만남에서 Ian은 Louise가 쓴 책의 한 구절을 읽어줍니다. “Language is the foundation of civilization. It is the glue that holds a people together. It is the first weapon drawn in a conflict.”라는 부분이었죠. 이 부분이 영화의 처음에 배치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분들이 언어학에 관한 책을 쓴다면 언어를 어떻게 멋지게 소개할 수 있을까요?

4. 왜 영화의 주인공이 하필 언어학자와 물리학자일까요? 사실 학자 둘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무척 드물죠.

5. “그들이 반응을 보여도 뜻을 모르죠”라는 대사를 만나게 될 겁니다. ‘반응(response)’과 ‘뜻(meaning)’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어떤 경우에 반응을 보여도 뜻을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반응의 뜻을 상관하지 않고 그저 반응하진 않나요?

6. “So what happens now?” “They’ll arrive.” – 헵타포드와의 첫 만남에서 나오는 대사입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들이 올 겁니다.’라고 답하는 것이죠.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영화의 제목인 ‘Arrival’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냐는 질문에 ‘올 거야’가 답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7. 우주선이 세계 도처에 나타났을 때 뉴스에서 기독교계의 해석이 스쳐 지나갑니다. 지금 세계 도처에 UFO가 출몰한다면 기독교계를 비롯한 여러 종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8. Louise가 가르치는 첫 단어는 “Human”입니다. 이건 적절한 접근법일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혹은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9. 8번의 질문과 연결해서 미지의 존재를 만났을 때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려 하는 것은 적절한 일일까요?

10. 언어를 가르침에 있어서 질문을 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질문이 무엇인지 이해시켜야 한다’는 장면이 나오죠. 인간의 언어에는 어떤 가정들이 담겨 있나요? 평서문, 의문문, 감탄문, 부정문, 가정 등의 범주는 우리에게 어떻게 학습되나요?

11. Louise는 “They need to see me.”라고 하면서 우주복을 벗습니다. 이것은 일련의 방역체계를 무력화시키는 일입니다. 이 장면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어떤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12. 헵타포드 둘에게 “애봇”과 “카스트로”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들을 어떤 식으로든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죠. 이 같은 labeling은 반드시 필요한가요? 우리에게 이름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군가 우리를 ‘자기 마음대로’ 부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13. 영화를 관통하는 학설은 사피어-워프 가설입니다. 워프 가설의 내용을 살펴본 바 있는데요. 이 내용은 영화 속에 잘 녹아들어 있나요? 어떤 면에서 그런가요/그렇지 않은가요?

14. 각국간의 교신이 끊기고 소통이 단절되는 순간 전쟁은 가까워 옵니다. 이것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아래 대사를 실마리로 이에 대한 생각을 전개해 봅시다.

“We need to sit on this information till we know what it means, so we aren’t sharing it with our enemies. We must consider the idea that our visitors are prodding us to fight among ourselves until only one faction prevails.”

15. Louise의 딸 Hannah는 앞뒤로 읽었을 때 동일한 팰린드롬(palindrome) 즉 회문입니다. 영화의 구성 또한 그렇게 되어 있죠. 헵타포드의 언어도 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일련의 장치들이 노리는 바는 무엇일까요? 우리 삶에서 이런 ‘회문적’ 경험을 하는 경우가 있을까요?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하고도 단선적 사고에 갇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16. 애봇과 카스트로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자신이 맞을 운명을 이미 알고 지구에 왔습니다. Louise도 영화의 말미에 ‘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해서 삶의 방향을 바꿀 것인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죠. 지구상에 온 외계 생명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17. 아래는 제가 ‘시간과 기억’이라는 관점에서 Arrival의 원작인 <Story of your life>에 대해 써본 쪽글입니다. 본격적으로 과제를 작성하시기 전에 한두 가지 테마를 가지고 영화에 관한 글을 써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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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기억이라는 주제로 본 Arrival>

1. Arrival의 원작인 <Story of Your Life>는 나레이션 형식으로 진행된다. “I remember”가 자주 등장해서 세보니 약 12번 정도이다.

2. 우리가 보통 remember를 쓰는 것은 다음 두 상황이다.
(1) 현재 말하는 시점보다 앞서 일어난 일. 즉 과거의 일.
(2) 현재 말하는 시점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 즉, 미래의 일.
따라서 영어를 기준으로 remember 다음에는 I remember that I did that. 이나 I remember that I will have to do it. 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물론 remember 다음에 조금 다른 내용이 올 수도 있다. Remember you are a teacher.는 “너의 교사로서의 지위를 잊지 말아라”는 뜻이 될 것이다.

3. Arrival의 나레이션 중 다수는 “나는 네가 …할 것이라는 걸 기억한다”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희한하다. 분명 기억하고(remember) 있는데, “~했던 것”도 아니고, “(일어나지 않았지만) ~할 것”도 아니다. 인간의 언어에 존재하지 않는 내용 형식인 “(이미 일어난 일인데) ~할 것이라는 걸 기억한다”이다.

4. <과거-현재-미래>가 방향이 있는 직선이 아닌 하나의 평면에 들어올 때 Remember는 Know와 동의어가 된다.
우리는 기억하는 것과 아는 것의 구분이 없어진 세계. 예측도 없고 회상도 없는, 모든 것이 ‘지금’인 세계를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

5. 그렇다면 필자가 쓴 “이미”, “과거”, “미래” 등의 단어는 쓸모가 없어지는 세계 아닌가.

6.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이런 세계를 경험하고 체화한 것은 주인공 루이스일 뿐, 다른 이들은 이 세계를 이처럼 인식하지 않는다. 수십 억의 인구 중 오로지 한 사람만이 이 세계를 실제로 경험한다.

7. 여기에서 또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Remember = Know”인 사람과, 이 두 가지가 구분되는 사람 사이의 소통은 가능한가? 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것인가? 사고체계가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같은 언어’로 소통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8. 언젠가 기술이 발전하여 인간의 뇌가 생성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초고해상도로 스캔하고 이를 집적된 정보시스템으로 만들면, 이 시스템은 일종의 ‘헵타포드적’ 인지를 할 수 있을까? 우리 삶의 모든 정보가 집적된다면, 그 모든 기억을 어떤 랙(latency)도 없이 끄집어 낼 수 있다면 우리는 삶을 직선이 아닌 전체로 인지할 수 있을까?

9. 한편 언어 자체가 헵타포드적 성격을 띄고 있지 않나? 수많은 시간을 고스란히 흔적으로 담고 있는 시스템. 하나의 노드가 전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토폴로지. 공시성과 통시성이 엇갈리는 하나의 점. 지금 내가 쓰는 ‘시간’이나 ‘기억’이라는 단어는 이 시대가 약속한 기호이자 내 삶이 채워 넣은 의미장이니 말이다.

10. 가정해 보자. 꿈 속에서 다음 날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는 나를 만나고, 그것을 일기로 기로했다. 다음 날 프리젠테이션을 하면서 계속해서 데자뷔를 느낀다. 이를 다시 기록으로 남긴다. 이 모든 기록을 읽은 누군가가 나의 프리젠테이션을 기억한다. 얼마 후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는다. 몇 년 후 그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로 착각하는 상황에 이른다. 그렇게 기억은 시간을 거스르고 인간의 뇌를 ‘숙주삼아’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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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헵타포드의 ‘문자’에 대한 쪽글입니다.

영화는 인간과 헵타포드가 문자를 통해 소통하는 설정을 택합니다. 그런데 헵타포드의 ‘문자’가 인간의 문자 체계에 딱 들어맞는 체계인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시각채널(visual channel)을 통해 무언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문자체계임이 분명해 보이지만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 헵타포드의 ‘문자’는 인간의 문자체계와 유사하면서도 제스처의 특성을 갖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구어/문어 이분법이 딱 들어맞지 않는 체계인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말/글 체계가 헵타포드의 언어에 그대로 들어맞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이 ‘글자’를 쓰는 방식이 자신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무언가를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인간이 주로 손과 팔의 움직임을 통해 특정 메시지를 만들어 내듯이, 그들은 자신의 몸 안에 있는 그 무언가를 밖으로 내뿜어서 특정한 패턴을 만들어 냅니다. 신체 외부의 매개를 이용하는 인간의 문자체계와는 사뭇 다르죠.

또 하나는 그런 문자가 잠시 있다가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문자 시스템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쓴 글자야 파도가 와서 쓸려가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잠깐 옆으로 새자면 이런 면에서 ‘혈서’는 일반적 기록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점하게 되는 쓰기방식입니다. 인간의 내부에서 무언가를 끄집어 내서 기록을 하거든요. 게다가 색깔도 엄청나죠.) 위의 두 의미에서 헵타포드의 ‘문자’는 인간의 제스처와 문자의 특성을 묘하게 통합하고 있는 시스템으로 보입니다. 반반 섞어 놨다는 뜻은 아니고, 오묘하게 통합된 시스템이죠.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1) 헵타포드의 음성언어: 헵타포드의 문자 = 인간의 음성언어: 인간의 문자 라는 등식은 조금 위험해 보입니다.
(2) 인간의 언어가 구어/문어라는 이분법을 명확히 보이는 데 반해 헵타포드의 언어는 구어와 문어의 경계가 불분명해 보입니다.
(3) 그들의 문자체계는 인간이 구사하는 구어의 주요한 부분인 제스처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고 생각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Engadget의 흥미로운 아티클을 소개합니다.

<Arrival>을 보며 헵타포드의 언어가 치밀하게 그려졌다 생각했는데 이런 뒷얘기가 있군요. 제품 디자이너인 Patrice Vermette과 울프람 알파의 Stephen Wolfram이 합작해서 실제 언어에 해당하는 구조를 디자인하고, 이를 토대로 100여 개의 로고그램으로 만들었다는 것.

“Bringing the language to the screen was a joint effort between designer Patrice Vermette, science consultant Stephen Wolfram — of Wolfram Alpha fame — and his son Christopher Wolfram. All told, some 100 “unique logograms with embedded words and phrases, with mutable components” were crafted for the film.”

https://www.engadget.com/…/dissecting-the-alien-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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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Arrival>에서 나타난 타자화(othering)에 대한 간략한 쪽글입니다.

Preemptive Othering and <Arrival>

<Arrival> is relevant to the present time not because we are approaching the era of space travel or technological singularity, but because we are going through the era of intolerance, reversing pluralist, multi-cultural worldviews and threatening the very existence of intersubjective spaces. The tyranny of preemptive othering emerges when the art of thick description and deep interpretation dies. We need more time to understand each other. We also need to note that their time might be different from our time. Ultimately, understanding others is the only way to understand ourselves. (I don’t know whether someone has used the term ‘preemptive othering’; yet, the expression dawned upon me whiling watching th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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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Arrival>의 주제의식과 관련된 일종의 브레인스토밍입니다.

Probably i am going to use <Arrival> as a major theme for my <Language and Thought> class this semester. Here are some random ideas about what to discuss in the class. By the way, the movie is so breathtakingly beautiful and also full of language-related allusions and intriguing symbolism. Highly recommended for my linguists and applied linguists friends!
Whorfian view of language and thought / Neo in Matrix vs. Louise in Arrival / Free will vs. Destiny / Palindrome and how we(they) experience time / C.S. Lewis’s notion of ‘God’s time’ vs. human time / linear time and circular(or spiral) time / time travel / prerequisites for communication / Barriers and empathy / Symbolism in the movie / Why physicist & linguist? / How to define others and us / Words as a weapon vs. words as a gift / Why analyze and teach written language, not spoken? / Concepts, language, and (Un)translatability / So what is time?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리터러시, 지력이 아닌 공존의 문제

“교수님, 부교재가 뭐예요?????”

밤 10시 반. 문자가 왔다. 2012년. 한국에서 처음 강의를 맡았을 때의 일이다. 밤늦게 학생에게 문자메시지를 받는 게 영 어색했는데 물음표까지 다섯 개라니. 이건 무슨 긴급상황이길래 밤중에 이메일도 아닌 문자를, 그것도 물음표 다섯 개를 연달아 써가면서 보낸다는 말인가? 이건 격식에 어긋나는 일 아닌가? 황당한 기분이었다.

나의 놀람은 이내 ‘그런가보다’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이후 비슷한 일을 여러 번 당했고, 문장에 느낌표나 물음표를 연달아 사용하거나 이모티콘을 삽입하는 경우도 적잖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오래 겪다 보니 이젠 그런가보다 한다.

전통적 채널이 새로운 채널에 자리를 내주고, 쓰기 관행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세대간 소통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단지 물음표나 느낌표의 개수가 아니라 쓰는 용어, 문법의 허용 범위, 미디어의 사용 등 전반적으로 ‘충돌’의 여지들이 커진 것이다. 상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나에게는 껄끄러울 수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문화 가족이나 이주노동자들의 증가로 여러 문화들이 공존하는 시대가 되었다. 인터넷에서는 한국어 영상에 여러 언어로 답글이 달린다. 세대간 커뮤니케이션 스타일과 관행의 차이는 급격히 커지고 있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편가르기’가 심심찮게 일어난다. 그런 면에서 지금 리터러시의 문제는 공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나의 실력을 쌓는 교육이 아니라 타자와 함께 서는 교육이 절실한 이유다. 리터러시는 개인의 실력이 아닌 함께 사는 기예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덧. “부교재는 OOO입니다!!!!!!!!!”

#삶을위한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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