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r Resources Model: Critical Literacy

호주 빅토리아 주 교육훈련과(Department of Education and Training)의 Literacy Teaching Toolkit 사이트. 리터러시 교수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Critical) Literacy pedagogy를 논의할 때 자주 등장하는 Four resources model을 찾다가 발견하게 되었다. 관련된 자료는 많지만 역시 웹사이트의 가독성이 중요한 듯. 참고로 유아 및 초등수준의 자료가 대부분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4 Resources Model
https://www.education.vic.gov.au/school/teachers/teachingresources/discipline/english/literacy/readingviewing/Pages/fourres.aspx#decoder

https://www.education.vic.gov.au/school/teachers/teachingresources/discipline/english/literacy/Pages/default.aspx

영어교육 응용언어학 관련 강의 목록

Posted by on Jun 10, 2019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대학원 후반부터 지금까지 40개 과목을 가르쳤네요. 조금씩 겹치는 것들을 제외해도 서른 과목을 훌쩍 넘기는군요.

1. Introduction to Academic Writing 1
2. Introduction to Academic Writing 2
3. Technology-enhanced Language Learning
4. Second Language Writing
5. 어휘와 문법 지도법
6. 영어교육방법 및 교육공학
7. 영미어문교육의 기초
8. 사회언어학과 영어교육
9. 사회문화이론과 영어교육
10. 제2언어 쓰기와 영어교육
11. 응용언어학 특강
12. 언어와 사고
13. 영어독해
14. ICT 영어강독
15. 멀티미디어와 영어
16. 영어작문
17. 학술적 글쓰기의 실제
18. 초등영어 교육방법론
19. 영어수업 설계 및 실기 1
20. 영어수업 설계 및 실기 2
21. 영어 말하기 듣기 지도법
22. 영어 읽기 쓰기 지도법
23. 영어학개론
24. 영어교재 연구 및 지도법
25. 제2언어습득론
26. 영어 문법
27. 영어교육 방법론
28. 초등영어 쓰기 지도법
29. 영어 어휘 지도법
30. 영어 문법 지도법
31. 영어 쓰기 지도법
32. Second Language Acquisition Seminar
33. Language Use and Culture
34. 초등영어 교수법 세미나
35. 초등영어 교수법의 이해와 적용
36. 초등영어 양적연구 방법론
37. 초등영어 교육론
38. 초등영어 듣기 말하기 지도
39. 초등영어교수법: 코퍼스 언어학을 중심으로
40. 멀티미디어 초등영어 현장연구

강사 지원 서류 준비하면서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이제 좀 덜 가르치고 좀더 잘 가르치고 싶네요.

비고츠키의 마음관

“시계의 발명 이래 우리는 정신을 일종의 기계에 비유하는 것에 익숙해 있다. 그리고 현재의 심리학에서는 컴퓨터와 같은 구조를 갖추고 움직이는 정신을 ‘실재시’한다. 심리학에서 채용하는 컴퓨터의 메타포는 ‘내부’를 반드시 상정한다. 정신은 피부 혹은 두개골 등을 경계로 상자 속에 갇혀 있는 어떤 실체로 상정되고 그 뚜껑을 열었을 때 시계 혹은 컴퓨터의 본질이 보인다는 메타포다.

이러한 유비는 ‘무엇을 담아 놓을 수 있는 상자’같은 것으로 마음을 영상화, 공간화시키는 태도다. 이것은 심리학자들뿐만 아니라 일상인들이 마음에 대해 갖는 기초적인 상상력을 지배한다. 그러나 김영민(1998)이 지적하고 있듯이 마음을 상자같이 꽉 막혀진 어떤 것(something)으로 보는 소위 ‘명사적 사고(Nounal mode of thinking)’*는 실험과 검증을 거쳐 밝혀 낸 생리학적 탐구 결과가 아니라 잘못된 유비 관계가 빚은 시각적 오류에 가깝다.

비고츠키 또한 어떤 닫혀 있는 상자로서 ‘마음’을 그리지 않는다. 비고츠키의 도구를 포함하는 마음(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도구를 상정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비고츠키의 마음관이다)은 어디까지나 실재의 외부 혹은 표면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인다. 피부를 경계로 닫힌 공간이라기보다도 오히려 실재의 도구에 의한 자기 자신의 제어라는행위의 성질을 빗댄 것이다. 도구는 자연으로 향한 ‘외적 활동의 수단’이다. 이에 비해 심리적 도구, 즉 ‘기호’는 ‘인간 자신의 제어를 위한 필수적 수단’이다(Vygotsky, 1987:130)”

*’Nounal’ 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는지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언어학에서는 ‘nominal’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박동섭, <레프 비고츠키> (커뮤니케이션 북스, 2016). 50-51쪽.

#비고츠키 #사회문화이론

한국교육의 모순

Posted by on May 30, 2019 in 단상, 수업자료, 집필 | No Comments

한국의 교육정책과 평가시스템은 너무나 빠르게 변한다.

하지만 한국교육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두 문장 사이의 간극에

한국교육의 비극적 모순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신라면, 어떻게 발음하시나요?

‘신라면’의 발음 – 결과발표

1. 무려 156분이 답을 해주셨습니다. (아 신라면이 매워서 슬프다고 표시하신 분까지 하면 157명이네요.)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1위는 ‘신나면’이 차지했네요.*

‘신라면’의 발음, 어떻게 하시나요?

/신라면/ 63명 0.404
/실라면/ 21명 0.135
/신나면/ 72명 0.462

2. 제가 이 설문을 하게 된 동기는 지난 학기 한 수업 시간에 ‘신라면’ 발음이 화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학교 3학년 수업에서 2/3 이상의 학생들이 신라면을 /실라면/으로 발음한다고 답했을 때 저는 적지 않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3. 전통적인 설명에 의하면 ‘신+라면’과 같이 ‘신’을 별도의 이름으로 인식할 경우 ‘신라면’으로 발음할 수 있고, 하나의 이름으로 인식한다면 ‘신나면’으로 자음동화를 적용해서 발음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했었죠.

4. 그런데 수업 시간에 20여 명의 학생들 중 15명 정도가 /실라면/으로 발음을 한다는 겁니다. 충격이었던 이유는 다음 두 가지입니다.

5. 제 경우에는 ‘신나면’이라고 주로 하고, 광고에 나오듯 ‘신~’을 길게 빼서 발음하는 경우에는 ‘시~ㄴ라면’에 가깝게 발음하는 듯합니다. 주변에 여쭈어보니 이런 경향이 나타나더군요.

6. 아래 광고 두 편(하나는 오래 전 강부자/최수종 광고, 다른 하나는 최근의 하정우 광고)에서도 ‘신나면’으로 판단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b2DD0qCgGQ (하정우)
https://www.youtube.com/watch?v=Tb2DD0qCgGQ (강부자/최수종)

이런 이유에서 저는 ‘신나면’이나 ‘신라면’을 예상했습니다.

7. 아까 답변해 주신 분 중에서 ‘신라면’은 /실라면/으로, ‘진라면’은 ‘진나면’으로 발음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조금 난감합니다.

8. 저는 이런 현상을 전통적인 경제학과 행동경제학의 설명방식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경제학과 같은) 규칙 기반의 설명에서는 언중이 하나의 패턴을 따라 동일한 발음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적 설명을 따르면) 개개인의 발음은 표준규칙에 의해 움직인다기 보다는 자신의 주변 환경, 인상적이었던 발음 등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9. 저의 가설은 연령에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는다는 것이었는데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랑해요 즉 /실라면/을 선택해 주신 분들 중에 연령이 비교적 낮은 분들이 다수셨거든요. 하지만 의외로 연세가 있는(?!) 분들도 계셔서 세대간 차이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10. 물론 이 설문을 (1) “‘신라면’을 천천히 읽어보세요”라는 지시문과 (2) “신라면 광고를 찍는다고 생각하고 ‘언제나 맛있는 신라면’을 연기해 보세요”와 같은 지시문을 주었을 때로 분리해서 실시한다면 아래와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 있습니다. 수십 년 전 사회언어학의 아버지 Labov가 지적한 바 있듯이 말이죠.

11. 저의 감으로는 ‘안녕하세요’에서 ‘요’의 발음도 상당히 많이 변화한 것 같습니다. 입을 오므려 정확히 /요/를 발음하는 경우는 분명 젊은 세대로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고요. 이런 변화가 하나 둘이 아니겠지요.

12. 아무튼 한국어는 철자 그대로 소리를 낸다는 생각은 전혀 근거가 없고, 하나의 철자도 이렇게 상당히 고르게 갈릴 수 있습니다.

13. 저는 이런 예를 들어 외국어 발음에 대한 메타지식으로 활용합니다. 한국어도 이렇게 발음이 갈리는데 외국어 단어의 발음도 당연히 갈라질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식으로 말이죠.

14. 이상으로 신라면/신나면 or 신라면 or 실라면/에 발음 설문에 대한 간략한 결과보고를 마칩니다. 응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한국 수능시험과 수능 연계교재, 교과서의 수준비교

1. 최인철과 김재은의 연구 (2015)*에 의하면 EBS 수능 연계 교재와 수능 영어의 렉사일 지수는 교과서의 렉사일 지수에 비해 매년 100∼300가량 높게 나타남. 구체적으로 이게 무슨 말인지 좀더 살펴보면 아래와 같음.

2. 미국의 교육기관 Common Core State Standards Initiative
(CCSS)의 2012년 연구에 따르면, 미국 고교 10학년의 경우 1,050L∼1,260L 사이의 텍스트를 주로 학습. 11-12학년의 경우에는 1,185L∼1,385L 사이의 텍스트를 공부

3. CCSS 자료에 따르면 한국 고교 영어 교과서, 구체적으로 영어 I과 II의 렉사일 평균 지수 982L는 미국 교과과정상 6∼7학년 정도의 렉사일 텍스트 기준. 다시 말해 한국 고등학교 영어교과서의 전체 수준은 미국 중1 정도가 보는 책에 대응.

4. 이에 비해 EBS 수능 연계 교재와 수능 영어의 경우, 최저 1,149L에서 최고 1,288L까지의 지수를 보임. 이는미국 11, 12학년에 해당하는 렉사일 지수.

5. 이와 같은 분석에서 고등학교 교과서와 수능 연계교재, 수능 사이에는 상당한 난이도 간극이 있음을 알 수 있음. 이 분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중1 텍스트 읽다가 고3 텍스트 읽는 꼴.

6. 물론 위의 분석은 텍스트 난이도를 다각도로 비교했다기 보다는 렉사일 지수라는 단일하며 한정된 지표로 텍스트 수준을 비교했다는 점에서 명백한 한계를 지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와 수능(연계) 텍스트 사이에 간극이 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어 보임.

7. 평가를 위한 최적(?)의 전략 구사라는 요인도 있지만 이러한 텍스트 내적 요인 덕에 학생들이 해석을 줄줄 외우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음. 영어능숙도가 낮은 학생의 경우에는 미국 고등학교 2-3학년 수준의 텍스트를 읽어낼 재간이 도무지 없음.

* 최인철 & 김재은 (2015).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 EBS 수능 연계 교재,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코퍼스기반 난이도 비교 분석. 멀티미디어 언어교육학회. 18(1), 59-92. Kim, Jae Eun & Choi, Inn-Chull. (2015). A corpus-based comparative analysis of linguistic difficulty among high school English textbooks, EBS-CSAT prep books, and College Scholastic Ability Test. Multimedia-Assisted Language Learning, 18(1), 59-92.

영어교사를 위한 인지언어학 이야기 50: 문법 새롭게 보기 – 인지문법의 세계 (4)

Posted by on May 22, 2019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인지언어학 | No Comments

지난 시간 우리는 관사를 “인식론적 지위를 트래킹하는 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에 따르면 화자가 청자로 하여금 특정 명사를 어떻게 인식하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에 따라 a를 사용하느냐 the를 사용하느냐 관사를 사용하지 않느냐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 원리에 따라 생각해 보면 우리가 배웠던 여러 규칙의 허점이 드러납니다. 아래에서 관계대명사 사용에 따른 관사 사용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관계대명사가 꾸며주는 명사 앞에는 the?

정관사와 부정관사에 대해 배우면서 ‘명사 뒤에서 관계대명사가 꾸며주면 the를 붙여야 한다’는 규칙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땐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는데 나중에 보니 엉터리 규칙이었습니다. 지난 시간 살펴본 처음 나오는 명사 앞에는 반드시 a를 붙여야 한다는 규칙처럼 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명사에 정관사가 붙느냐 부정관사가 붙느냐와 관계대명사의 수식 여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관계대명사가 꾸며주는 명사라 하더라도 특정되지 않을(not specified) 수도 특정(specified)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a(n)+명사’를, 후자의 경우에는 ‘the+명사’를 써야 합니다. 다음의 예를 살펴봅시다.

a. We are hiring a data scientist who specializes in data visualization.

b. The man who stole the wallet was his uncle.

a는 “우리는 데이터 시각화를 전문으로 하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구인하고 있다”, b는 “지갑을 훔친 사람은 그의 삼촌이었다”라는 뜻입니다. 두 문장의 의미를 조금 더 깊이 살피면 a의 “data scientist”는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 비주얼라이제이션을 전문으로 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특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정관사 ‘a’를 붙여 ‘a data scientist’로 쓰는 것이 적절합니다. 이에 비해 b의 경우 “지갑을 훔친”이라는 관계사절은 특정인을 묘사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콕 짚어 가리킬 수 있는’ 특정한 절도범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따라서 ‘a’가 아니라 “the’를 붙이는 것이 적절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관계대명사가 꾸민다 하더라도 수식을 받는 명사는 수많은 대상 중 하나로 개념화될 수도, 특정한 대상으로 개념화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따라서 관사의 선택은 달라져야 하겠지요. 결론적으로 “관계대명사가 꾸며주는 명사는 정관사 the를 붙여야 한다”는 규칙은 옳지 않습니다.

the very man / the tallest girl

정관사의 가장 큰 임무는 어떤 명사를 특정하는 일(to specify)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특정하는 의미를 지닌 일부 형용사의 경우 정관사가 붙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형용사의 특성상 화자가 ‘여러 개의 개체 중 하나’로 명사를 개념화할 수 없어 특정한 대상을 가리킬 수밖에 없는 경우입니다.

세 가지 대표적인 예를 살펴봅시다. 먼저 ‘the very man’입니다. 주지하듯 ‘very’는 보통 부사로 쓰이지만 형용사로 쓰이면 ‘바로 그’, ‘다름 아닌’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따라서 ‘바로 그 남자’를 나타내는 표현은 정관사를 수반한 ‘the very man’이 됩니다. 형용사 very의 개념 자체에 특정의 요소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물론 very가 부사로 쓰일 때라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A very clever man’이라는 표현을 보면 ‘very가 아니라 ‘clever’가 man을 수식합니다. 따라서 “매우 영특한 사람 중 하나”라는 의미가 되므로 부정관사 “a”가 쓰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물론 문맥에 따라서 the very clever man이 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 경우에도 very의 의미 때문이 아니라 man의 의미 때문에 정관사를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형용사의 의미상 자연스럽게 특정 대상을 가리키게 되는 두 번째 예는 최상급으로 사용되는 경우입니다. 최상급은 개념상 “가장 ~한”의 뜻을 갖습니다. 세상에 다양한 개체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극단에 있는 대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의미상 뒤에 나오는 명사는 하나로 특정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가장 키가 큰 학생’은 한 명이고, ‘가장 큰 산’도 하나입니다. 따라서 정관사 the가 붙어서 ‘the tallest student’와 ‘the tallest mountain’으로 표현해야 함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First, second, third… 반드시 the와 함께?

세 번째로 수사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돌아보면 제 경우엔 수사 앞의 정관사 즉, “the first, the second, the third”와 같은 표현들을 예외 없는 법칙으로 배웠습니다. 수업시간에 “서수 앞에는 the를 붙여라!”는 구호를 외쳤었죠. 이런 법칙이 대개 들어맞지만 이 공식에는 허점이 있습니다.

“a second chance“와 같은 표현이 대표적입니다. ”give someone a second chance“와 같은 형식으로 빈번하게 쓰이지요. ”a second thought”와 같은 표현도 널리 쓰입니다. “give something a second thought”는 “~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다” 정도의 뜻으로 “a second thought”와 같이 부정관사를 쓰는 것이 적절합니다.

서수 앞의 관사 선택 또한 개념화(conceptualization)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Give something a second thought”에서 “second”는 ‘다시 한 번’ 한번 더’ 정도의 의미입니다. 서수적인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의미상 차이가 있는 것이죠. “take a second look(다시 보다)”과 같은 용법도 비슷합니다. 만약 우주선을 만드는 팀의 디렉터가 “Nobody deserves a second chance here.”라고 한다면 “여기에서 두 번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정도가 되겠죠. 우주선이 폭파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는 상황이니 한번 실수하면 끝이라는 겁니다.

이와 관련하여 학술논문에서 종종 등장하는 “a second limitation”과 같은 표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연구의 한계를 논의하며 “두 번째 한계로는…”과 같이 이야기할 때 쓸 수 있는 어구인데, 한계점이 모두 몇 가지인지 언급하지 않고 “첫 번째 한계는…이다. 두 번째 한계는…이다.”와 같이 말할 때 쓸 수 있는 표현입니다. 이 경우 은밀하게 ‘first’와 ‘second’가 단 하나가 아닐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여럿 중의 하나”라는 부정관사의 개념적 의미가 살아있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논의하고자 하는 대상의 수가 한정되어 있고, 이에 대해서 “첫째, 둘째, 셋째… N번째”와 같이 이야기한다면 서수 앞에 모두 the를 붙이는 것이 적절합니다. “There are three problems with this method. The first… the second… the third…”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이같이 “the very 명사”나 “the 최상급 명사” 등을 막무가내로 외우게 하기 보다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의미적 특성을 설명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인지적이고 개념적인 기반을 깔아주고 다양한 언어 표현을 지어 올리는 것과 별다른 설명 없이 표현을 암기하도록 하는 것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주도학습 잡감

Posted by on May 16, 2019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자기주도학습(self-directed learning)을 이야기한다. 학습자가 어떻게 하면 자신을 점검하고 동기를 부여하며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문제는 이 용어가 사용되는 맥락에서 학습하는 주체의 실질적 권력, 학습의 목표와 대상을 정의하는 주체와 이를 받아안는 주체 사이의 관계, 자기주도의 범위 등이 좀처럼 논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습을 위한 과업은 일방적으로 제시하고 그 안에서 ‘자기주도’를 하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야간자율학습’은 자율이 아니며, ‘자기주도적으로 하루에 단어를 100개씩 외우라’는 주문은 타인의 욕망에 학습자를 종속시킬 뿐이다.

결국 자기주도의 핵심은 학습자가 주체로 나설 수 있는 맥락과 과업의 창조에 있지, 주어진 맥락과 과업 하에 맞는 주체성의 생성에 있지 않다. 그런 면에서 어설픈 자기주도학습 담론은 주어진 구조의 틀에 자신을 맞출 수 있는 순응능력을 요구할 뿐 주체로서의 학습자가 지닌 욕망과 탈주, 창조적 열망을 받아안지 못한다. 이런 면에서 자기주도학습 담론의 핵심에는 학습전략 훈련이 아니라 학습을 둘러싼 권력배분의 문제가 놓여 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색깔을 나타내는 언어가 없으면 보지 못한다?

Posted by on May 14, 2019 in 과학, 수업자료, 인지언어학 | No Comments

색상을 가리키는 언어가 없다면 그 색상을 볼 수 없다는 취지의 컬럼이 공유되고 있는데… 컬럼의 내용상 기 도이처의 저작인 <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를 그대로 인용하신 것 같습니다. 저도 즐겁게 읽은 책이네요.

특정 대상을 지칭하는 언어가 없으면 인지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전통적인 워프 가설에 대응하는 주장입니다. 흔히 언어결정론(linguistic determinism)이라고 불리지요. 하지만 이런 강한 언어결정론은 학계에서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다만 언어의 사용이 인지과정을 세밀하게 조정하거나 특정 대상의 개념화에 다소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의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이 또한 논쟁의 대상이 되긴 하지만요.

학계의 논의를 떠나서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저는 이름 모를 색깔들을 꽤 많이 구별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 그렇습니다. 여러 종류의 립스틱을 놓고 색깔을 대보라 하면 어버버 하겠지만 서로 다른 색상의 립스틱을 구별하는 일이 아주 어렵진 않겠지요.

컬럼에서는 마치 언어학계의 중론인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이름을 모른다고 색상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사실 근거가 희박한 주장입니다. 다만 특정한 이름을 붙여 색상들의 스펙트럼을 특정한 범주로 분류하는 일에 익숙해지면 관련 색상을 잘 구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는 ‘Blue”라고 통칭되는 색상이 러시아어에서는 goluboy와 siniy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 경우 미국인들과 러시아인들에게 goluboy와 siniy 경계의 색상을 보여주고 이를 구별하라고 하면 러시아인들이 미국인들에 비해 구별하는 속도가 미세하게 빠릅니다. 하지만 이것이 미국인들이 저 아래 중간 사각형 두 개의 차이를 보지 못한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지요.

좀 다른 이야기지만 동물들은 색상을 가리키는 말이 없어도 자신이 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다양한 색상을 구별합니다.

덧. 컬럼에서 언급되었듯 기 도이처 또한 색상용어가 등장하는 순서가 일정하다는 것을 말하긴 했지만 이 분야를 개척한 사람은 Brent Berlin과 Paul Kay입니다. 1969년 기념비적 저서인 <Basic Color Terms: Their Universality and Evolution>을 내서 색상과 인지에 관한 논의를 촉발시켰습니다. 이 저서에 대한 설명은 아래 위키 페이지를 참고하십시오.

https://en.wikipedia.org/…/Basic_Color_Terms:_Their_Univers…

덧2. 일반인 수준에서 색상용어에 관한 학계의 논의를 정리한 영상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Vox 미디어에서 제작한 <The surprising pattern behind color names around the world> 입니다.

덧3. 아래 색상 이미지는 Lera Boroditsky의 테드 강연 <How language shapes the way we think>에서 가져왔습니다.

파워포인트 잡감

수업에서 파워포인트를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이 나의 말에 집중하길 원하는 마음에서인 듯하다.
학생들과 지속적으로 교감하며 수업하길 원한다.

TED를 책임지고 있는 크리스 앤더슨의 말을 따르자면
강연에서 청중은
두 가지 인지적 아웃풋(cognitive output)을 접한다.
다시 말해 두 가지 채널을 통해 연사의 강연을 경험한다.
하나는 시각, 다른 하나는 청각이다.

파워포인트와 같은 비주얼이 없을 때
학생들의 집중력은 하나의 대상 즉 강사에게 맞추어진다.

하지만 파워포인트가 등장하는 순간
그들의 시선은 파워포인트로 향하고
귀로는 강사의 설명을 듣는다.
인지 채널이 갈라지는 것이다.

훌륭한 프리젠테이션이라면
이 두 채널의 정보가
완벽하게 (영어로는 seamlessly 정도?) 통합된다.
말과 슬라이드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협력하며 더 훌륭한 프리젠테이션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학생들은 자기도 모르게 슬라이드를 읽는다.
슬라이드의 정보와 강사의 말을 실시간으로 싱크하려 든다.

이런 경향은
텍스트로 가득한 슬라이드에서 극대화된다.
학생들이 슬라이드를 바쁘게 흝어보는 동안
선생의 말은 온전히 소화되지 못한다.
때로 슬라이드의 정보를 강사의 말 위에 놓는다.
두 가지 정보 채널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때로는 슬라이드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수업을 흘려 듣기도 한다.
가끔 연수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나면
“파워포인트를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시는 분이 꼭 있다.
내 경험상 그분들이 파워포인트를 다시 보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면에서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는 일은
할 말을 정하는 스크립팅과
슬라이드 만들기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해당 프리젠테이션의 특성을 파악하고
주어진 시간에
청중의 주의(attention)의 흐름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프리젠테이션의 핵심 내용을
체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로 이해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는 것은
대본과 시각자료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
시간의 흐름 위에 청중의 주의를 배치하는 일이다.

디자인의 용어를 빌리자면
UI의 문제가 아니라 UX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건축이 단지 빌딩의 구조가 아닌
인간과 구조 ‘사이’의 인터랙션으로 이해되듯
프리젠테이션은 ‘전달’이 아닌 ‘수용’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슬라이드 없이 대단히 수업을 잘 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다만 학생들이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집중하여 이야기를 듣길 원하며
그러기 위해 그 이야기를 준비할 뿐.

결론은
적어도 나의 경우
슬라이드를 준비하기 보다는
이야기를 준비하는 게 낫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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