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지혜: Reaction Paper 편

Posted by on Mar 25, 2018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 No Comments

Reaction paper를 낼 때 유의할 점:

1. 논문을 안읽고도 쓸 수 있는 글을 내지 않습니다. (Re-action은 무엇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냥 혼자 action을 취하지 말아 주세요.)
2. 단순 요약문을 내지 않습니다. (초록보다 나을 게 없는 글을 왜 굳이 내려고 하시나요?)
3. “흥미로왔습니다”, “좋았습니다”, “인상적이었습니다”, “별로였습니다” 따위의 반응은 마움 속에 고이 간직합니다. (“할 말이 없을 때 ‘That’s interesting.’이라고 한다”는 말이 있죠.)

저도 오래 전에 이럴 때가 있었겠지만…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줄탁동시

Posted by on Mar 24, 2018 in 강의노트,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 No Comments

교육에서 선생과 학생 사이의 관계와 협업에 기반한 배움을 이를 때 종종 쓰이는 사자성어다. 하지만 나는 문구를 볼 때마다 개인과 사회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는 변증적 세계관을 떠올린다. “세상이 바뀌려면 내가 변해야 하는가? 사회야 변해야 하는가?” 정답은 “동시에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아닐까? 나의 몸과 마음은 철저히 사회적이고, 사회는 수많은 몸과 마음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니.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영어-학습-자

영어를 좋아하지 않는 영어학습자를 대함에 있어서 ‘영어’에 집중하곤 한다. 하지만 ‘영어’ 보다는 ‘학습’ 전반이, ‘학습’ 보다는 ‘자者’ 즉 사람의 문제가 더욱 근본적이다. 이런 면에서 영어교육전문가의 전문성은 양날의 검이다. 자칫하면 사람보다 공부를, 공부보다는 영어를 중심에 놓고 사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수포자’, ‘영포자’, ‘과포자’ 등의 명명은 현상의 근원에 닿지 못하고 개별 과목 중심의 사고를 강화한다.

총체적 관점을 이야기하면 개별 교과의 문제도 풀지 못하는 상황을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개별 교과의 문제가 풀리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면 결국 총체적 관점 즉, ‘인간으로서의 발달’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with 철

미디어 활용 교육

미디어 활용이 리터러시 교육의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다양한 미디어와 기술을 동원하여 자신이 원하는 컨텐츠를 만들고 나눌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 활용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특별한 이견은 없다.

하지만 종종 ‘활용’에만 골몰하는 교육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미디어를 활용하는 교육은 미디어를 활용하지 않는 상황을 상정하지 않는다. 모든 것들이 새로운 테크놀로지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이러저러한 이유로 주류 메신저를 활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에 메신저를 활용한 소통도 중요하지만 메신저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소통도 중요하다.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술 바깥의 삶에 대해 상상해 보는 일 또한 소중하다.

언젠가 ‘~할 수 있다’는 진술로 구성된 교육목표(Can-do statements)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나는 교육의 목표가 일련의 ”Can-do statements’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진술들 행간에 존재하는 ‘Can’t-do statements’를 이해하는 것이라 믿는다. 할 수 없음에 대해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목표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이 글을 쓰고 나니 갑자기 고정희 시인의 시 한 편이 떠올랐다. 별 연관이 없는 것 같지만 적어도 내 맘 속에서는 분명 통하는 바가 있다.

===

사랑법 첫째
고정희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 내 기대 높이가 자라는 쪽으로
커다란 돌덩이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해서 내 외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

변증적 성격을 지닌 부정관사

영어 부정관사 a(n)은 상황에 따라 두 가지 상반된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구별하지 않고 언어를 사용하지만 사실 전혀 다른 층위의 개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1. 먼저 어떤 개체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He has a cat. It is very cute.”

여기에서 ‘a cat’은 고양이 한 마리라는 뜻입니다.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양이 중 하나인 것이죠.

2. 이에 비해 “a + 명사”가 한 개체가 속한 집단 전체를 대표할 수 있기도 합니다. 아래와 같은 경우입니다.

“A dog is a great partner in your life.”

이 경우에 “A dog”은 ‘개 한 마리”라기 보다는 “개” 즉, 집단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1과 2는 우리의 사고 속에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지만 결코 같다고 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한 사람은 개인임과 동시에 인간이라는 종을 대표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닙니다. 개별 안에 일반이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이야기는 특수한 이야기면서도 누가 읽더라도 울림을 주는 요소 즉 보편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죠.

이런 면에서 “a(n)”의 의미는 변증적(dialectic)입니다. 집단에 속해 있는 하나의 멤버 (one member) 이지만, 때로는 그 집단 전체를 가리킬 수 있으니까요.

#관사공부중

시간이 흐른다?

[잡생각] “시간이 흐른다”를 대치할 메타포에는 무엇이 있을까?

1.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시간이 끊기지 않는 흐름임을 담고 있는 표현이다.

2. 흐르는 것의 대표로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강이 아닐까?

3. 시간에 대한 표현을 생각하니 ‘Time flies.’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 외에도 시간은 come, go, pass, approach, leave, run, elapse, remain, walk, crawl 등을 할 수 있다. (물론 그 외에도 많겠지만.)

4. Time을 주어로 생각하면 시간이 흘러가고, 날아가고, 오고 가며, 지나고, 다가오고, 떠나고, 달려가고, 지나가고, 남아있고, 걸어가고, 기어가지만,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다를 듯하다.

5. 개인을 중심으로 한다면 시간이 가는 일은 인생의 수많은 요소들이 다시 구획되고(rearticulated), 재영토화되며(reterritorialized), 재개념화되는(reconceptualized) 일이다.

6. 다양한 재구획화, 재영토화, 재개념화의 시간은 물리적 시간과 정확히 맞물리지 않는다.

7. 먼 과거가 미래가 되기도 하고, 현재의 시간이 철저히 과거로 느껴지기도 한다. 물리적, 심리적, 개념적 시간들이 중첩되고 간섭하면서 인간의 시간을 엮어간다.

8. 실타래처럼 엮인 개인의 시간들이 일정한 질서를 형성할 때 역사적 시간을 빚어낸다. 하지만 역사의 공간성은 또다른 시간을 빚어낸다.

9. 산책 길에 만난 스팸 선물 박스. 나는 스팸문자와 메일을 떠올렸다. 잠시 후 또다른 스팸 포장지가 길가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후자의 스팸 포장지는 처음 발견한 스팸 박스와 겹쳐졌다. 아니 처음 것이 후자에 겹쳐진 걸까.

10. 물리적 시간은 우주와 함께 흘러가지만 경험의 시간은 뇌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로 엮인다.

11. 우리는 우리 몸 안팎의 네트워크의 연결/위상의 변화에 따라 시간을 감지한다.

12. 오늘이라는 시간은 내/네 인생과 어떻게 엮였을까? 해가 기울어지는데 오늘이 외톨이 노드로 남을/잊혀질/버려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결론: 오늘이라는 시간이 영원히 외톨이가 될지도 모른다. 오늘을 엮어보자.

언어 정보의 잉여도(redundancy)와 스포츠 중계

얼마 전 밥을 먹으며 올림픽 중계를 흘려 듣는데 해설자의 다음 말이 엄청 크게 들리더군요.

“이 기술은 마스터하면 쉽습니다. 어렵지 않아요.”

음……..

특정 기술을 마스터(master)한다 함은 그것을 수행할 때 신체의 모든 영역이 특별한 어려움 없이 완벽한 협응(coordination)을 이룬다는 의미이니 당연히 쉽겠죠. 비슷한 표현으로 “완치되면 안아픕니다.” “다 쓰면 세제가 없을 거예요.” 같은 게 있으려나요.

스포츠 경기 해설에서 유독 이런 문장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 뻔한 이야기 말이죠.

“이 기술은 마스터하면 쉽습니다” 같은 문장에는 새로운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언어신호의 양에 비해 그것이 제공하는 정보량이 현저히 떨어지는 겁니다.*

이게 스포츠 해설만의 문제는 아니고, 언어체계의 기본적인 특성입니다. 대충 이야기하면,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 같아도 이를 전달하는 언어는 구정보(old information)와 신정보(new information)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신정보로만 된 언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수식으로만 되어 있는 이론물리학 페이퍼를 읽는 상황은 거의

신정보만 접하는 예입니다. 신정보의 바다에 빠지면 ‘한 개도 모르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되죠.

때로는 동일한 정보를 살짝 바꾸어 표현함으로써 이해를 돕기도 합니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바로 위 별표(*)한 문단의 두 문장은 이 방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신호량에 비해서 새로운 정보의 양이 적을 때 잉여도(剩餘度, redundancy)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언어 외에 ‘남아도는’ 언어신호가 많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잉여도가 높으면 나쁜 걸까요? ‘용건만 간단히’는 모든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통용되는 금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보의 정확한 전달이 중요한 경우 잉여도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항공관제탑과 파일럿 간의 소통입니다. 주요 정보를 몇 번이고 확인해야 하는 상황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지요. ‘잉여’ 언어신호가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한 상황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인간의 집중력, 정보 저장 능력, 인출 능력 등에 한계가 있기에 잉여 정보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정보의 입장에서 보면 잉여이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주도면밀함’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스포츠의 경우로 다시 돌아오면 언어의 정보량이 떨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이번에 반드시 성공해야 역전이 가능하죠.”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데 지고 있으니 당연합니다.) 같은 해설이 적지 않다는 겁니다. (이 문단 전체가 잉여…)

하지만 스포츠 해설에 있어서 전달되는 정보의 상당 부분은 감정적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축구 경기에서 골이 들어갔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골을 넣는 장면과 거의 동시에) 골이예요. 골! 골! 골! 골~~~~~ 아 아 골~~~ 골! 골! 드디어 첫 번째 골이 들어갔습니다!!!”

시청자들은 소리와 화면으로 골이 들어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첫 번째 골이라는 것도 모르기 힘들고요. 이 상황에서 저 말의 정보량은 제로에 가깝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해설자의 흥분과 기쁨, 놀라움을 전달합니다.억양이나 고저, 장단과 같은 자질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요. (예: 골!이 아니라 고~~~~~~~~~~~~ㄹ)

이는 ‘경기 해설’이라고 불리지만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런 정서적 반응만으로 훌륭한 ‘해설’이 되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골이 들어가는 순간 해설자는 해설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 같네요. ^^

이번에는 간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받은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성우: “어, 철수야. 오랜만이네. 왠일루?”

철수: “그냥.”

여기에서 “그냥”이 자체로 담고 있는 인지적 정보는 작습니다. 하지만 간만에 전화를 한 상황에서 ‘그냥’은 상당히 높은 정서적 정보를 전달합니다. 그냥 전화해 주는 친구가 최고라고 느껴질 때도 있죠.

결국 언어는 구정보와 신정보를 적절히 담고 있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상황에 따라서 구정보가 의도적으로 반복되기도, 정서적 정보가 증폭되어 전달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상황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구정보와 신정보, 인지적인 정보와 정서적인 정보를 어떻게 배치하는가입니다.

이 상황에는 매체적 특성도 포함되는데, 글과 면대면 강의, 동영상 강의 등에서 단위 시간당 효율적 정보량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주저리주저리 쓰다 보니 글의 잉여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만 쓰고 잉여의 삶으로 재진입해야 하겠습니다. 모두 조금은 잉여스러운 오후 시간 되시길 빕니다. :)

 

논문지도(?) 업체 단상

몇주 간 논문쓰기 강의 이야기를 해댔더니 타임라인에 논문지도(?)나 논문컨설팅(?) 업체 광고가 여럿, 그것도 꽤 자주 뜹니다. 페북 알고리즘 지능의 한계에 대해 알 수 있는 대목이죠. :)

이전에 들어본 업체는 ‘OO펜’ 하나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시장인가 봅니다. 그런데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제가 하는 건 특정 논문에 대한 지도도 컨설팅도 아닙니다. 제가 (응용언어학의 일부 분야 외에) 그런 걸 할 수 있을리가요. 논문지도나 컨설팅은 지도교수 및 심사위원들께 받는 게 맞을 것 같네요.

교육, 일상을 디자인할 권리

Posted by on Jan 18, 2018 in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국가의 교육을 개혁하려 하기 보다는 학생과 교사들이 그들의 삶을 원하는 방식으로 바꿀 권한을 주자. 백년지대계나 경쟁력 제고가 아닌 배우고 가르치는 주체들이 일상을 디자인할 권리로서의 교육을 상상하자.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글쓰기 고수

만약 “글쓰기 고수”라는 게 있다면 최고의 비법은 아마도 서두르지 않는 힘일 것이다. 글은 표현(ex-pression)이지만 표현의 힘은 오랜 시간 자신의 내부를 압박(in-pression)하는 데서 나온다. 차오를 때까지 응시하는 일. 내보내기 위해 쓰지만, 내보내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일.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진정한 글쓰기 하수다. 온전한 글로도 모자랄 이야기를 몇 줄에 담아 내보내려 하고 있으니.

Lo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