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학습의 보고 유튜브: 본다고 공부가 될까요?

 

유튜브는 영어로 된 멀티미디어의 ‘성지’입니다. 쉼없이 쏟아져 나오는 영상이 차곡차곡 쌓인 덕에 어떤 분야를 공부하든지 유용한 자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자막을 제공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어 학습의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자료가 없어 공부를 못한다는 핑계는 댈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깁니다. 좋은 자료가 이렇게나 많은데 여전히 학원이나 온라인 강좌가 영어학습시장의 주류를 이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그 많은 사교육 업체들은 폐업하지 않는 걸까요?

오래 전 유행어 중에 ‘인천 앞바다가 사이다라도 컵이 없으면 못 떠먹지’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현재 인터넷의 엄청난 자료들과 영어학습 간의 관계를 잘 포착합니다.
학습을 위해서는 영상을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요소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발음에, 영상에, 특정한 어휘에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구문 분석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빠르게 스쳐가는 표현을 복기하고 기억에 새겨야 합니다. 영상시청만으로 남는 정보는 미미합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스르륵 흘러나갑니다. 그렇기에 영상 안에 나오는 언어를 깊이 처리(deep processing)할 때라야 우리 뇌에 오랜 시간 기억될 수 있습니다.

영어교육 업체들은 다양한 노하우를 가지고 학습자들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영상을 보여주는 일을 넘어 그 안의 언어를 해설하고 연습시키며 배운 바를 평가합니다. 그런 면에서 사교육은 인천 앞바다의 사이다(어디서나 얻을 수 있는 영어 자료)를 떠먹을 수 있는 컵(학습 전략)을 제공하여 수익을 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사이다를 제조하거나 최신식 컵을 선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영어와 학습자 사이에서 공부의 도구를 제공하는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유튜브 영상을 가지고 공부하려는 분들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합니다. 먼저 “영상시청=공부”라는 등식을 깨야 합니다. 영상시청은 공부라기 보다는 공부의 출발점입니다. 영상을 시청한 뒤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공부가 될 수도 있고 조회수를 늘려주는 일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각자가 자신에 맞는 학습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제가 듣기 말하기 공부를 할 때 사용하는 ‘사이다 컵’을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1) 집중학습을 위해서 1-2분 가량의 짧은 클립을 선택합니다. 긴 영상의 일부라도 상관이 없습니다.우선 영상 전체를 한 번 시청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문장별 끊어읽기를 합니다. 이때 스페이스바로 문장을 멈출 수 있습니다. 문장을 반복해서 낭독하는 횟수는 2-3회 정도로 합니다. 이렇게 문장별 읽기 연습이 끝나면 쉐도잉(shadowing)으로 들어갑니다. 클립을 틀어놓고 문장이 들리는 대로 따라 읽는 것입니다. 하루에 하나의 클립만 꾸준히 공부해도 효과가 큽니다.

(2) 자료의 난이도에 따라 자막을 켜고 시청할 수도 있고 자막 없이 시청할 수도 있습니다. 주로 난이도가 높은 경우 자막을 활용하게 되는데 이 경우에는 듣기가 아니라 읽기학습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때 유용한 것은 눈감기입니다. 처음 몇 문장은 자막을 켜고 시청합니다. 대략 어떤 배경의 이야기인지,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후에는 문장의 경계를 기준으로 눈을 잠깐씩 감습니다. 계속 잘 들린다면 눈을 감고 끝까지 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중간에 뜰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눈뜨고 감기를 반복하면서 클립 하나를 다 듣습니다. 이제 클립을 처음부터 자막 없이 봅니다. 필요하다면 쉐도잉 연습도 추가합니다.

(3) 마지막으로는 표현을 정리합니다. 해당 클립에 나오는 유용한 어휘나 덩이말(chunk)을 정리해 보는 것입니다. 아래는 제가 직접 오디션 프로그램과 요리 클립을 보면서 정리한 표현들입니다. 거기에 저 나름대로의 해설을 더해보았죠. 이렇게 표현을 수집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여러분들도 자신만의 정리 방식을 만들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길어 올린 표현

오디션 프로그램 보면서 엄청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 놀라곤 했습니다. 오늘은 Paul Potts가 나오는 British Got Talent 클립을 봤습니다. 그의 공연은 오디션 프로그램계의 ‘클래식’이 된 느낌입니다.

제가 주목했던 것은 오디션 심사위원들이 쓰는 표현들이었습니다.

먼저 a breath of fresh air (someone or something that is new and different and makes everything seem more exciting)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기운이 분위기를 바꿔놓는 걸 말하는데요. 평범한 세일즈맨으로 일하는 Paul Potts의 노래가 그 정도로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이야기인 듯합니다.
영상에서는 강조의 형용사를 넣어 ‘a complete breath of fresh air’라고 표현됩니다. 그 다음에 absolutely fantastic 이라는 표현이 나오고요. “absolutely”는 감정이나 느낌을 강조할 때 자주 쓰이는 부사입니다. 다음에 멋진 공연을 보게 되면 “absolutely fantastic!”이라고 외쳐볼까 합니다.

다음 심사위원은 “You have an incredible voice.” 라고 하죠. 믿을 수 없는 목소리를 가졌다는 뜻으로요. 이전에 나온 complete, 여기의 incredible이라는 단어가 최고의 칭찬임을 나타내 주네요. 진짜 멋진 친구가 있다면 “I have an incredible friend.”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 닭살이 돋을 수도 있겠지만, 적절한 상황에서 사용한다면 상대방에 대한 멋진 찬사가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 심사위원은 “a little lump of coal here that is gonna turn into a diamond” (이내 다이아몬드로 변할 작은 석탄 한 덩이)라는 표현을 쓰네요. 지금은 완벽한 다이아몬드의 형상을 갖추지 못한 석탄이지만 내면에 보석을 품고 있으니 세공(경험과 훈련)을 좀 거치면 완벽한 다이아몬드가 될 거라는 메타포입니다.
심사위원들이 사용하는 표현을 살피다 보니 오디션계의 또다른 전설인 Susan Boyle에 대한 심사평도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비디오를 다시 찾아보고 표현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먼저 “The biggest surprise I have ever had(내가 당한 가장 큰 놀람 즉, 이렇게 놀란 적은 난생 처음이야)” 라는 표현이 나오고, “That was stunning. An incredible performance. (정말 끝내줬어요. 믿을 수 없는 공연이네요.)” 라는 말도 하네요. Incredible이 다시 나왔네요. 이와 함께 Amazing(놀랍군요)이라는 단어도 등장하는군요.

다음으로는 “I’m so thrilled because I know everybody was against you. (수잔 보일의 외모로 판단하는 관중들이 미심쩍은 표정을 보냈다는 의미.)” 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Against’가 적대적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적절한 표현이 될 수 있겠네요. “That was a complete privilege listening to you.” 라고 하면서 “당신의 노래를 듣는 건 엄청난 특권이었다”는 말도 하네요. complete와 privilege 두 단어 모두 강한 의미를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평과 같이 특정한 주제의 언어 패턴이 드러나는 프로그램을 선택하셔서 (이 경우에는 출연자들에 대한 칭찬, 놀람, 감동 등을 이야기하는 표현이 반복되어 나오는 경우) 주의 깊게 청취하시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꼭 오디션 프로일 필요는 없겠죠. 어떤 프로그램이든 좋습니다. 일기예보, 스포츠 중계, 뉴스 등등 어떤 장르든 그 나름의 언어표현들이 존재하니까요.

▶유용한 요리 관련 표현 20개

아래는 제가 요리 채널을 보면서 정리한 요리관련 표현들입니다.

1. 생선 구울 때 칼집 내는 것은 score라고 합니다. 악보나 점수라는 뜻 외에 ‘칼집을 내다’를 추가로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 미국에서 zucchini라고 부르는 걸 영국에서는 courgette라고 합니다. 영국 영어에서 chips라고 하는 걸 미국에서는 French fries라고 하죠? 사실 이런 차이가 꽤 많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시다면 웹의 이미지 검색을 해보세요. 직관적으로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3. 약간 비스듬히 써는 것은 ‘cut something at an angle’이라고 합니다. “at an angle”이 ‘비스듬히’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4. 잘게 썬다고 할 때 finely라는 부사를 씁니다. chop something finely / finely chop something 같이 말이죠. finely는 요리에 꽤나 자주 나오네요.

5. 음식 위에 뭔가를 툭 던져놓는 걸 whack something on the top 이라고 하면 됩니다. 조심스레 잘 올려놓는다기 보다는 쓱쓱 던져놓는 걸 말하죠.

6. 육류나 생선의 뼈를 발라 살만 남기는 것을 fillet 이라고 합니다. 또는 그렇게 만들어진 살 한 토막을 fillet 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우리 나라에서는 ‘휠레’ 정도로 표기되는 것 같습니다.

7. 소금이나 후추를 살짝 집어서 넣는 것은 put a pinch of salt(pepper)라고 표현합니다. Pinch에 ‘꼬집다, 콕 짚다’라는 뜻이 있다는 걸 생각하시면 기억에 될 것 같습니다.

8. 밑둥을 잘라낼 때 trim up the base 정도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9. 강판에 가는 것은 grate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발음 때문인지 ‘gr-‘로 시작하는 단어는 무언가에 갈리는 느낌입니다.

10. Flake는 생선이나 양파 등 큰 덩치에서 떨어져 나온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dried onion flakes’라고 하면 ‘잘게 썰어 말린 양파’라는 뜻입니다. 큰 생선에서 살이 뚝 떨어져 나오는 것도 flake로 표현할 수 잇습니다.

11. Soggy는 ‘질척한’ 정도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데, 음식에 대해 쓰면 바삭해야 할 것이 눅눅해진 상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Crispy와 반대 의미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Crispy해야 하는 음식이 soggy해지면 정말 먹기 싫더군요.

12. 식용유 등을 충분히 휘리릭 뿌린다고 할 때 ‘a sloosh of vegetable oil’정도로 쓸 수 있습니다. “Sloosh” 발음이 재미납니다. ‘-oo-‘발음을 길~게 늘리면 느낌이 더 살아나겠네요.

13. 우리 말로 ‘노릇한’을 표현하는 방법 중에 ‘golden’이 있습니다. 좀더 짙은 노릇함은 brown으로 표현하면 될 것 같네요.
14. 토마토나 야채를 데칠 때 blanch라는 동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뜨거운 물에 넣었다 바로 빼는 거죠.

15. 뒤집는 것은 turn을 쓰시면 됩니다. “Turn something once or twice’와 같이 마이죠. 그러고 보니 잘 때 뒤척이는 건 ‘toss and turn’이라고 표현하네요.

16. 빵을 손으로 찢어 놓는 것을 ‘give (it) a rip-up’ 정도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요리 프로그램에서 ‘give something noun’의 형태로 행동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7. 티스푼보다 큰 스푼을 tablespoon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밥먹는 스푼과 비슷한 크기입니다. ‘A tablespoon of sugar’와 같이 쓸 수 있고요. 그런데 tablespoon에 설탕을 가득 담는다면? 이때는 heaped 를 써서 ‘two heaped tablespoons of sugar’와 같이 쓰면 됩니다. “Heap”이 ‘쌓다’의 의미이니 설탕이 봉오리 모양으로 쌓인 걸 떠올릴 수 있겠네요.

18. ‘상온’은 room temperature라고 표현합니다. 따라서 ‘상온에 (식도록) 놔두다’는 ‘let it go to room temperature’ 정도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19. 영국영어에서 a knob of butter는 ‘버터 한 덩이’를 말합니다. ‘A stick of butter’는 스틱 모양의 버터 한 덩이를 말하죠.

20. 마늘 한 쪽은 clove라는 단어로 표현됩니다. 10개 쯤 들어있는 한 덩이는 bulb라고 하구요. 전구(light bulb)를 연상하시면 이 표현도 쉽게 기억하실 수 있습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언어를 새롭게 상상하기: 문장쓰기를 넘어 문맥 쓰기로

A: Are you a teacher?
B: Yes, I am. Are you a student?
A: Yes, I am.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교과서에 실제로 실렸던 문장입니다. 이 상황에서 학생은 교사에게 “선생님이세요?”라고 묻고, 교사는 학생에게 “너 학생 맞니?”라고 묻습니다. 실세계에서는 좀처럼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는 점에서 “교과서 SF”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대화입니다.

이 문장들은 특정한 교육단계에서 “student”나 “teacher”와 같은 단어, “Are you…?”와 “Yes, I am.”과 같은 구조를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왔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더 들어가면 학습자들이 이렇게 쉬운 문장에서 시작해 점차 복잡한 단어와 구문을 접해야 한다는 교수원리가 담겨 있겠지요.

교수학습 이론의 강박(obsession)이 실세계의 언어를 압도할 때 헛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더욱 허탈한 것은 이러한 대화가 한 강사의 작은 실수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온 국민이 보는 국정교과서에 오랜 기간 실려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출판사들은 한글 해석이 달린 참고서를 내놓았고, 교사들은 큰 소리로 대화를 낭독했으며, 학생들은 대화를 달달 외워서 시험을 보았습니다.

문장쓰기가 아닌 문맥쓰기로

이 텍스트를 써야 할 절체절명의 이유가 있었다면, 학생들로 하여금 이 대화가 벌어질 상황을 만들어 보라고 주문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대화문을 제시하고 컨텍스트를 쓰게 하는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저런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상상력에 따라 더욱 다양한 상황이 제시될 수 있습니다.
(1) SNS에서 만난 두 사람이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선생님이세요?”라고 묻고 “학생이세요?”라고 서로 묻는 경우입니다.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없지만, 기존의 포스트를 통해 각자가 선생님이고 학생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경우 나올 수 있는 대화죠.

(2) 학교 연극부원들이 대본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연극반 지도교사는 학생들을 무작위로 나누어 “자, 이쪽 그룹은 선생님 역할, 이쪽 그룹은 반대로 학생 역할을 하는 거야. 아무나 붙잡고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서 있을만한 상황을 연출해 봐.”라고 주문. 이때 학생은 “너 선생님 역할이야?” “너 학생 역할이지?”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모두에 인용한 대화문은 이제 교과서에서 사라졌지만, 현재의 영어교육이라고 이런 황당한 풍경이 없을까 싶습니다. 현실의 삶이 아니라 꽉 짜인 텍스트의 구조에 갇힌 사회, 새로운 맥락을 써내는 상상력이 억압되는 사회에서 실소를 금하지 못하는 상황은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보통 언어를 배운다고 하면 그 언어의 텍스트만을 생각합니다. 어떻게 정확한 문법과 어휘를 배울 것인가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어를 보는 좀더 과학적인 관점은 언어를 텍스트가 아니라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결합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단어든 문장이든 텍스트는 컨텍스트 없이 그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Where is everyone?”은 무슨 뜻일까요?
“다들 어디있지?”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텍스트만으로 문장의 의미를 확정할 수 있을까요? ‘다들’과 ‘어디’의 진정한 뜻은 무엇일까요? 다음 맥락을 생각해 봅시다.

(1) 학교에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늘 동생들과 엄마가 있었는데 오늘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때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Where is everyone?”

(2)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몇몇 친구들은 늘 그의 편이 되어 주었죠다. 그런데 최근 들어 친구들이 그를 조금씩 멀리하더니 급기야 아무도 말을 건네지 않습니다. 그가 일기를 쓴다. “Where is everyone?”

(3) 한 아이가 페르미 역설을 배웠습니다. (페르미 역설(Fermi paradox)이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이탈리아의 천재 물리학자였던 엔리코 페르미가 외계의 지적 생명체의 존재 여부를 두고 ‘모두 어디에 있는가?’라고 물었던 일화에서 유래했다. — 위키백과) 밤에 옥상에 오른 아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Where is everyone?” (모두 어디 있는 거지?)

세 가지 상황에서 “everyone”의 의미는 조금씩 다릅니다. 1에서는 가족들, 2에서는 자기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 3은 존재 여부를 모르는 외계의 생명체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everyone’의 의미는 사전 속이 아니라 사용의 맥락 하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텍스트의 맥락을 생각해 보는 일은 창조적이고 발산적 사고 발달에 도움을 줍니다. 나아가 언어의 본령이 단지 단어나 문장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세계와 만나는 방식에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여러분들은 ‘Where is everyone?’에 어떤 맥락을 입혀보고 싶으신가요?

크랴센을 넘어서, 인풋을 넘어서

크라센의 언어학습이론은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어는 인풋이다”라는 말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것이 이 이론의 힘이었지요. 이것은 영어교육과 관련된 효율적인 소통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인풋’이나 ‘습득’, ‘이해가능한 입력’등의 용어를 통해 원활한 대화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인풋이론이 한국사회에 미친 부정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언어교육의 복잡다단한 측면을 ‘인풋’이라는 말 하나로 압축시킴으로써 영어교육에 대한 풍성하고도 깊은 논의를 막은 셈이 되었습니다. 이는 여러 부작용을 함께 가져왔는데 그 중 하나는 몰입교육에 대한 오해입니다.

‘어딘가에 푹 빠진다’는 의미를 지닌 몰입(immersion)교육은 1960년대 캐나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어와 불어 두 개의 언어를 동시에 배우고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곳이었죠. 그러기에 캐나다에서의 몰입교육과 한국의 몰입교육은 그 맥락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자가 사회문화적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면 후자는 인풋의 획기적 증대를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균형잡힌 교과 학습을 통한 아동의 지적 정의적 발달보다는 언어입력의 양을 늘리는 데 온 힘을 쓰고 있는 경향을 보이는 것입니다.

한때 많은 몰입교육 프로그램은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를 교재로 채택하였습니다. ‘본토 네이티브의 인풋’을 풍부하게 제공한다는 명목이었습니다. 한국의 유치원에서 미국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를 가르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인지적, 정서적 수준이 맞지 않는 내용을 다룰 수밖에 없는 상황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어로 유치원 과정을 배워야 할 아이들에게 외국어로 초등학교 3학년 과정을 가르친 꼴이니까요.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가 개정되면 한국의 몰입교육 교사들이 엄청나게 고생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습니다. 사실 영어로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정규교육과정을 거쳐 초등학교 교사가 한국어로 여러 과목을 잘 가르치는 것도 힘든데, 외국어로 여러 과목들을 제대로 가르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건 당연하지요. 한 교사는 제게 “언어과목은 그나마 괜찮지만 수학, 과학 등의 과목들을 영어로 가르치면 애들은 그야말로 ‘죽으려고 해요’”라는 말을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인풋이 모든 것이라는 믿음은 영어교육과 관련된 논의를 앙상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전인적 성장과 외국어교육, 한국어와 영어 리터러시의 균형적 발달, 한국의 사회문화적 환경에서의 영어의 역할 등에 대한 깊은 고민을 전개하기 보다는 ‘어떻게 언어노출을 늘릴 것인가’라는 질문에 매달리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어려서부터 최대한의 인풋을 ‘넣어주어야만’ 네이티브와 비슷한 영어실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마케팅 담론이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인풋”과 “네이티브되기”라는 두 축이 다양한 논의를 삼켜버린 시대. ‘삶을 위한 영어공부’가 아니라 ‘입력의 최대화를 위한 영어훈련’이 화두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계속)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학부생을 위한 근거이론 이야기 (6) –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들

Posted by on Nov 6, 2018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집필 | No Comments

본격적으로 코딩에 들어가기 전에 Strauss & Corbin (1990)에 기반해 몇 가지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데이터 코딩에 함몰되어 아래 이야기들을 지나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근거이론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 근거이론의 ‘근거’가 되는 이론 두 가지는 실용주의와 상징적 상호작용이론입니다. 사실 이 두 가지 이론을 설명하는 것은 너무 큰 일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 근거이론이 다른 질적연구방법론과 갈라지는 부분 중 데이터 수집과 분석의 시차가 있습니다. 근거이론에서는 수집과 분석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데이터가 들어오면 바로 분석을 하고, 이 분석이 추후의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이끌게 됩니다. 수집과 분석의 유기적 결합은 연구자로 하여금 세계에 대하여 열린 자세를 갖게 함과 동시에 ‘미리 정해 놓은 문제’가 분석과정에서 편향을 갖지 않도록 돕습니다.

3. 여러 학자들이 혼용해서 쓰고 있는 용어로 개념(concepts)과 범주(categories)가 있습니다. 적어도 Strauss & Corbin에게 있어서는 범주가 개념의 상위 범주입니다. 이 수업에서는 이 용례를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4. 근거이론의 기본 분석단위(unit of analysis)는 개념입니다. 다시 말해 원자료 자체를 분석하기 보다는 자료에서 추출한 개념을 가지고 이론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를 분석하지만 세계를 있는 그대로 분석하지 않습니다. 사실 ‘있는 그대로’를 기술하고 분석한다는 것은 추상적 이론의 생성을 포기한다는 말과 같지요.

5. 개념을 모아놓는다고 범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컨텐츠 분석과 다른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은 그것이 갖는 속성들(properties)과 차원들(dimensions), 그것이 일어나게 하는 조건들(conditions), 그것에 의해 표현되는 행위와 상호작용(actions/interactions), 나아가 그것의 결과(consequences)에 근거하여 개발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분석할 데이터가 작아서 이점을 깊이 이해하긴 힘들겠습니다만, 개념을 묶어놓는다고 범주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6. 이론적 샘플링은 인구분포나 대상집단의 특성을 기준으로 하지 않습니다. 이론적 샘플링의 근거가 되는 것은 5번에서 말씀드린 개념입니다. 연구자는 개념을 따라 샘플링을 하는 것이지 ‘여성이 두 명 모자라니 두 명의 여성을 더 인터뷰하자’든가, ‘연령이 치우쳐져 있으니 이번에는 50대에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하자’는 결정을 하진 않습니다. 근거이론 샘플링에서 가장 많이 오해되는 것이 바로 이 부분 아닐까 합니다.

7. 다시 말해 근거이론에서 전체 현상을 대표하는 것은 대상 인구집단의 특성이 아니라 개념의 특성입니다. 중심개념의 다양한 측면들을 밝히 보여주어 이론화에 도움을 주는 샘플링이 필수입니다.

8. 근거이론의 방법론적 특징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비교(constant comparison) 기법입니다. 데이터 내에서 하나의 사건은 다른 사건과 비교됩니다. 어떻게 비슷하고 어떻게 다른지를 꼼꼼히 살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온 개념과 범주는 언제나 한시적(provisional)인 것으로 인식됩니다. 다른 데이터를 통해 새롭게 조명되고 변경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개인의 데이터라 하더라도 특정 현상 초반과 후반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A의 변화 패턴과 B의 변화 패턴을 비교할 수도 있습니다. 데이터 분석이 쌓이고 개념과 범주가 추상화될수록 비교의 수준도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쪽으로 진화합니다.

9. 데이터에서 나타나는 패턴과 변이를 설명해 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은 ‘왜’라는 질문과 짝을 이루고 있지요. 이에 잘 대답할 수 없다면 더 많은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데이터를 보면서 ‘왜’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지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10. 과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근거이론의 기본 가정 중 하나는 사회현상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변화는 일련의 과정을 낳게 되죠. 데이터를 대할 때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고 묻는 것만큼 “여기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11. 이 모든 것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메모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든 데이터에 동시에 접근하여 이를 처리하고 해석하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연구의 과정 내내 이론을 발전시켜 나갈 전략을 궁리하고 이를 꼼꼼한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논문을 쓰실 일이 없으니 메모를 비교적 간단히 쓰시면 되겠지만, 원칙적으로는 심도있는 메모를 쓰는 것을 권합니다. 연구자가 데이터와 씨름한 흔적은 오롯이 메모에 담겨 있어야 합니다.

자 이제 드디어 진짜 데이터 코딩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

참고자료
https://med-fom-familymed-research.sites.olt.ubc.ca/files/2012/03/W10-Corbin-and-Strauss-grounded-theory.pdf

#학부생을위한근거이론이야기

니즈분석의 함정

교육에서 “니즈분석(need analysis)”은 (1) 학습자 개개인이 자신의 필요를 가장 잘 알고 있으며 (2) 교사와 교육프로그램은 그 필요를 충실하게 채워주면 된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학습자는 배움에 뛰어들기 전에 자신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가? 니즈는 채워져야 할 용기인가?

그렇지 않다. 학습자는 자신의 필요를 대략적으로만 짐작할 뿐이다. 자신이 알아야 할 것을 온전히 알지 못할 뿐더러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철저한 니즈분석’은 환상에 가깝다. ‘니즈’는 배움의 초반에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정의된다. ‘니즈분석 후 학습’이 아니라 ‘학습과 니즈의 공진화’라는 틀에서 교육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학부생을 위한 근거이론이야기 (5)

Posted by on Oct 30, 2018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집필 | No Comments

 

이번 시간부터는 실제 데이터를 가지고 근거이론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 지난 시간 여러분들이 쓴 ‘언어학습자서전’의 골자를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일들을 끄집어내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잊고 있었던 사건들이나 가슴 깊이 파묻힌 감정들을 꺼내면서 여러 생각이 드셨을 것 같습니다.

2. 자 이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자리에서 나와 연구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봅시다.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어떤 과정으로 영어를 공부하게 될까요?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주요한 사건은 무엇일까요?

이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인물들은 누구인가요?

학습자들은 영어학습의 여러 단계에서 어떤 행위를 하나요?

이들 행위를 이끄는 동기와 조건에는 무엇이 있나요?

학습과 관련된 행위의 강도, 방향, 반복, 간격 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가요?

행위를 이끌어나가는 데 있어서 두드러진 상호작용 패턴은 무엇인가요?

여러분들은 영어학습 행위를 어떻게 평가하고 판단하나요?

이런 과정을 통해 도출되는 결과는 무엇인가요?

뭉뚱거려 이야기하면 “한국사회에서 영어학습에 미치는 요인들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어떤 영향을 미치며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요?”

3.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이 방법론을 특성에 따라 분류한 묶음(family)을 ‘방법론(methodology)’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지난 번에 말씀드린 대로 방법론에는 크게 두 줄기가 있습니다.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입니다.

4. 양적연구는 이 수업의 관심분야가 아니므로 여러분들께서 좀더 살펴보시길 바라고 오늘은 질적연구에 대해 아래 인용문을 통해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질적 연구(qualitative research)란 통계적 과정이나 다른 양적 방법으로 얻어질 수 없는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 특수한 연구방법으로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수집한 자료들로부터 비수학적 분석과정으로 결과물을 추출하는 연구 방법이다. Creswell(1998)은 대표적인 질적 연구로서 전기, 현상학적 연구, 근거이론 연구, 문화기술지, 사례연구 등을 들었다. 주로 사회과학이나 행동과학 연구 분야의 연구자들, 그리고 인간 행동과 기능에 관한 문제들과 관련된 분야의 종사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질적 연구는 제한된 맥락에서 연구자가 가설적으로 설정한 관계(특히 상관관계나 인과관계)의 타당성을 입증해 보이는 데 치중을 하는 양적 연구와는 방법론에 있어서 서로 상이하나, 오히려 그러한 점 때문에 양자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최지영, 2012, p. 1)

5. 전통적으로 연구자들은 어느 한 캠프에 속해 있는 것을 정체성으로 삼는 일이 많았습니다. “저는 질적연구자입니다.” “저는 양적연구자입니다.”와 같은 선언이 낯설지 않았죠. “그 사람 질적연구는 안하지 않나?” “그 사람 통계 아니면 연구 안해.” 이런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고요. 어떤 학자는 이 두 캠프의 대립을 ‘종교성’으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양적연구와 질적연구는 서로 다른 종교와 같다는 유비를 드는 것입니다. 연구자는 자연스럽게 두 종교의 신실한 신도가 되는 것이겠지요.

이런 경향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습니다. 소위 ‘mixed method’의 등장으로 양적 연구 방법론과 질적 연구 방법론을 하나의 연구 안에 녹여내려는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전의 ‘방법론 전쟁’의 잔향은 여전히 어느 정도 남아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양쪽에 형성되는 극성(polarity)는 상당히 강하고, 이 두 ‘종교’ 중 하나에 귀의하는 경향을 개별 연구자들 뿐 아니라 연구 결과물이 출판되는 여러 저널에서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근거이론은 비통계적, 비수학적 방법으로 데이터 내에 담긴 ‘뜻’을 찾아내려는 시도라는 것입니다. 이제 근거이론을 최초로 구체화하고 체계화한 두 사람, 바로 Barney Glaser와 Strauss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교사가 이론가 못지 않게 중요한 이유

Posted by on Oct 24, 2018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많은 사람들이 큰 이론이나 영향력 있는 모델을 만들고 싶어해요. 파급력이 큰 것들을 추구하죠. 하지만 이론이나 모델은 그 본성상 일반적일 수밖에 없어요. 고도화의 추상화를 특징으로 하니까요. 당연히 개개인의 삶에 가 닿지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교사의 역할은 이론가의 역할보다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어요. 이론에 기반해서 교육과정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교사를 통해 학생에게 전달되는데 결국 학생 하나하나가 경험하는 것은 교사와의 상호작용이거든요. 이론이 아니라요.

오늘 여러분들이 나누어 주셨듯이 다른 무엇보다도 선생님 때문에 영어를 좋아하게 되는 학생이 꽤 있어요.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 학생이 만난 건 이론이 아니라 교수자입니다. 교사의 자세, 태도, 실력, 눈빛, 말투, 사람됨이죠. 이걸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나를 통해 교과라는 세계 전체를 만나게 되는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을요.”

“외국어교육이라는 학문의 특성상 다른 언문화권에서 이론이 들어오는 일이 많죠. 그런데 이론이 수입될 때 보통 그 이론이 성장하고 뿌리박은 토양은 탈각되고 앙상한 개념들만 들어와요.

예를 들어 “의사소통중심 교수법(communicative language teaching)”은 미국과 캐나다의 토양에서 만들어진 이론인데 한국으로 왔죠. 주로 영어 원어민 화자들이 제2언어로서의 영어(ESL)를 가르치는 환경에서 발전된 이론인데 영어가 외국어(EFL)이자 주요 입시과목인 상황에 적용된 거죠. 아시다시피 많은 면에서 실패했어요.

뿌리박았던 토양을 잃은 나무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요. 사실 그래서 한국사회라는 토양에 서 특정 개념의 위상과 역할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에 기반해 실천할 사람이 필요한데, 이중 제일 중요한 게 교사라고 생각해요.

어떤 면에서 교사는 이론의 생사를 결정하는 존재라고 봐요. 교육이론의 완결성은 텍스트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증명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교사의 역할은 이론가 못지 않게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학생들의 영어학습사 발표를 들으면서 덧붙인 말입니다. 자신의 공부사를 돌아보면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나아가 앞으로 가르치게 될 학생들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무엇보다 이론에 주눅들거나 매몰되지 않고 학생 한 사람 한 사람과 만나는 가운데 이론가 못지 않은 자부심을 갖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정확은 부정확의 축적입니다

외국어를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 말을 아끼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여 정확성에 나름 자신이 생길 때까지 문장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함정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부정확하게 말하기’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정확에서 정확으로의 변화는 온 오프 스위치처럼 작동하지 않습니다. ‘부정확(不正確)에서 ‘부(不)’를 떼어내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요. 정확성의 발달은 부정확함에 대한 용인, 부정확하게 느껴지더라도 말하는 용기, 나아가 부족한 자신에 대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부정확함에 야유와 조롱를 보냅니다. ‘발음이 왜 저 모양이냐’는 눈빛이 도처에서 감지됩니다. 이는 우리 가 각자의 불완전함을 수용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는 목소리가 들려야 할 곳에 침묵을 가져오고, ‘부정확’에 대해 과도하게 마음을 쓰도록 만듭니다. 때로는 자괴감까지 따라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말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옹알이를 하고 서툰 발음으로 말소리를 내었으며 ‘엄마’를 정확히 부르는 데만도 수십 개월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모국어 체계에 길들여진 상태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상황이라면 더 어려울 수밖에 없죠.

“그 사람 발음 정말 이상한데 말은 다 통하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발음이 안좋아도 통하는 영어는 없습니다. 통하는 영어라면 발음이 좋은 것이죠.

‘네이티브와 같은 정확성’이라는 족쇄를 풀고 소통하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만이 좀더 정확해질 수 있습니다. 소통하는 사람만이 좀더 정확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처음부터 정확할 수 없고, 그래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억하세요. 한걸음 더 나아가는 용기와 함께 말은 자라납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작성중

학부생을 위한 근거이론 이야기 (4)

Posted by on Oct 20, 2018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집필 | No Comments

 

학생들과 한국사회 영어교육의 핵심문제를 논의하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각자가 이미 문제를 모두 정의해놓은 상태로 수업에 임한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영어수업에 있어 가장 자주 언급되는 문제는 (1) 학습자들간의 실력차가 너무 크고 (2) 수능 등 획일화된 평가에 따라서 가르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두 이슈의 무게를 인정하는 것과, 이 두 렌즈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바라보려는 습속(habitus)을 고수하는 일은 전혀 다르다. 어떤 문제가 제기되더라도 실력차와 평가로 간단히 설명해버리는 태도는 게으름을 넘어 반지성적이다. ‘평가가 문제입니다’, ‘학생들이 차이가 나는데 어쩔 도리가 없어요’라는 말에는 현실의 단면을 그리는 솔직함이 배어있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학기 한 수업에서는 자신의 영어학습사를 기술한 언어학습 자서전(language learning autobiography)을 질적연구 방법론 중 하나인 근거이론(grounded theory)을 사용해서 분석해 보려고 한다. 최대한 선입견을 제거하고 데이터에 기반해서 자신의 영어학습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안에서 어떤 패턴이 드러나는지, 이를 통해 바라본 한국사회의 영어교육은 어떤 모습인지를 살피려는 것이다.

학부생들을 질적 연구자로 키우려는 것은 아니기에 방법론의 철학과 역사, 한계와 효용 등을 온전히 다루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사회과학 방법론의 한 축인 질적연구방법론, 그 중에서도 근거이론을 맛보면서 자신과 주변의 영어교육 현실에 대해 좀더 깊이있는 시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방법론을 일종의 휴리스틱으로 활용한달까. 이미 정의된 문제의 틀을 벗어 던지고, 데이터와 씨름하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한 가지 우려가 되는 것은 학생들이 가져올 데이터의 성격이다. 자신의 생각, 어떤 면에서 편향(bias)이 고스란히 반영된 영어학습 자서전이라면 이에 대한 분석결과 또한 자신의 생각을 확증(confirm)하는 방향으로 나올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방법론은 데이터와 연구자를 뛰어넘지 못한다. 초심자에게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업에 마음이 설렌다. 실험이 끝나는 3주 후에도 이 기분을 유지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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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질적연구의 주요 분야 중 하나인 근거이론의 핵심을 3주 안에 전달하려고 하니 반세기를 발전해 온 방법론의 디테일이 적잖이 날아가 버린다.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지만 한 학기에 여러 질적연구 방법론을 몽땅 가르치는 개론수업의 경우보다는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다. 그러고 보면 양적이든 질적이든 방법론 수업의 대부분은 수박 겉핥기식이 되는 것 같다. 방법론을 구체적인 연구 주제들과 유기적으로 통합시키지 못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학부생을위한근거이론이야기

일상에서 바꾸고 싶은 것들

Posted by on Oct 18, 2018 in 단상, 수업자료,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일상에서 바꾸고 싶은 것들”이라는 주제의 쪽글 과제에서 한국사회가, 대학생 세대의 아픔이 보인다. 이런 내용들이다.

1. 하루하루 과제와 알바로 쉴 틈이 없어 어서 빨리 졸업하고 싶다
2. 스트레스로 자꾸 술을 마시게 된다
3. 긴 통학으로 피곤하고 집 주변에 별다른 시설이 없어 불편하다
4. 취업 준비로 인해 인생짐이 너무 무겁다
5.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립다
6. 연애가 무상하다
7. 타인의 시선과 평가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싶다
8. 친구들과 경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9. 세상에 대한 걱정을 좀 덜하고 싶다
10. 새로운 물건을 사고 싶은데 여의치가 않다
11. 덜 먹어야되는데 자꾸만 먹게 된다.
12. 어둡고 부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고 싶다.

학생들의 고민을 읽으며 기성 세대가, 또 내가 참 무력하구나 싶다. 한 학기 충실한 수업을 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고민상담성’ 문단을 쓴 친구들에게 답장을 보내며 나를 돌아본다. 내 안에도 바꿔야 할 것들이 참 많구나.

몇몇 절절한 글을 읽고 만나는 학생들의 얼굴은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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