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학술 프리젠테이션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제가 프리젠테이션에 대해서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이 점이/이 연구가 정말 중요하다”라는 점을 청중들에게 알리는 방식입니다. 프리젠테이션이 그냥 이력서에 한 줄 올라가는 발표가 아니라 자기 삶에서, 학계에서 나아가 인류에게 정말 중요한 이슈라는 것을 설득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던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교육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발표를 시작하곤 합니다. 인상적인 인용구와 해당 분야의 기념비적 연구를 가지고 시작하는 전략도 나쁘지 않은 것 같구요.

두 번째는 데이터입니다. 자기 연구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외쳐봐도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프리젠테이션은 재미도 힘도 없습니다. 처음에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는 데이터가 없어서 고생했는데, 논문을 거의 완성할 때쯤 되니 보여줄 것들 중에서 고르는 것이 힘이 들었습니다. 저는 “강한 인상/확신을 줄 수 있는 데이터 두세 가지를 보여주는 간결한 비주얼”로 발표를 채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많은 데이터를 보여주려다 보면 발표가 아닌 논문이 되어버리고 청중의 집중력도 급속히 떨어지게 되니까요.

즉 두 가지가 갖춰진 프리젠테이션은 기본은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많은 문헌들을 잘 정리해서 표와 차트로 보여준다거나, 발표 후 자신의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도입했다면 이를 통해 다룰 수 있는 다른 영역 혹은 데이터를 강조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다시 강조하자면 “이게 나에게, 학계에, 우리 사회에 중요하거든요?” 아울러 “왜 중요한지 이 데이터를 보면 확실히 아시겠죠?”라는 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이제 (그닥 좋아하는 용어는 아니지만) 프리젠테이션을 조직하는 ‘스킬’의 측면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서는 발표자료에 대해 충분한 지식이 있고, 관련 용어를 숙지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어떻게 영어로 발표를 이끌어 나갈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제가 생각해 본 전략은 최근 쉽게 구할 수 있는 다양한 동영상 강의를 일종의 모델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TED.com에 올라와 있는 중 Pamela Meyer의 “거짓말장이 잡아내는 법”이라는 강연을 예제로 사용하겠습니다.

1. 시작에 임팩트있는 진술과 유머를 섞어라.

“Okay, now I don’t want to alarm anybody in this room, but it’s just come to my attention that the person to your right is a liar. (Laughter) Also, the person to your left is a liar. Also the person sitting in your very seats is a liar. We’re all liars. What I’m going to do today is I’m going to show you what the research says about why we’re all liars, how you can become a liespotter and why you might want to go the extra mile and go from liespotting to truth seeking, and ultimately to trust building.”

먼저 웃음을 이끌어내기 위해 “지금 딱 보니까 너 오른쪽에 있는 사람 거짓말장이네?” 라는 말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현장에 모인 청중들, 나아가 모든 인간에 적용하죠. 처음 웃고 시작하는 건 프리젠테이션에서 정말 효과적입니다. 자연스런 웃음으로 순식간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시작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거죠. 하지만 단순한 웃음을 유도하는 게 아니라 발표의 주제가 우리 각자 또 사회 전체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을 명확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Today I’m going to … 라는 구문을 통해서 오늘 할 이야기를 단도직입적으로 전합니다. 이 문장은 전체 프리젠테이션의 주제를 담고 있는 문장이면서 자신의 일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ultimately to trust building) 문장이기도 하죠.

2. 아래에 내려가면 여러 가지 연구를 언급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On a given day, studies show that you may be lied to anywhere from 10 to 200 times. Now granted, many of those are white lies. But in another study, it showed that strangers lied three times within the first 10 minutes of meeting each other. (Laughter)”

이 부분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발표자가 소개하려는 연구를 매우 간결한 문장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러 연구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순간 프리젠테이션은 지루해집니다. 자기가 하려는 이야기와 관련된 내용만 최대한 간결하게 추려서 소개해야 하고, 그것이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프리젠테이션은 데이터 주석 data commentary 이 아니고 이야기하기 storytelling 이라는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데이터와 결과는 스토리텔링의 주요요소로 기능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이번에는 특정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부분을 봅시다.

“Now this brings us to our next pattern, which is body language. With body language, here’s what you’ve got to do.”

앞서 발표자는 프로이드의 말을 통해 우리의 말 speech 과 그에 숨겨진 심리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위의 문장을 사용하여 제스처에 관한 논의로 넘어가죠.

이 부분에서 프리젠테이션을 보시다가 부분 부분을 엮어주는 표현들에 주목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Now we can move on to … 나 Given this situation/data 같은 식의 표현을 쓰실 수도 있고, On the contrary, on the other hand 등 역접을 나타내는 어구를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This is just a part of the story, though. 라면서 좀더 넓은 논의로 나아가실 수도 있고, Is this really a universal pattern?과 같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식의 표현을 쓰든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가 넘어갈 때 뚝뚝 끊기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프리젠테이션을 만드는 것은 영화에서 좋은 편집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입니다.

4. 다음으로 질문을 통해 청중과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부분을 봅시다.

“Now we’re going to look at the hot spots. Can you tell what’s happening in a conversation? Can you start to find the hot spots to see the discrepancies between someone’s words and someone’s actions? Now I know it seems really obvious, but when you’re having a conversation with someone you suspect of deception, attitude is by far the most overlooked but telling of indicators.”

우선 질문을 던지는 전략은 효과적이지만 매우 위험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너무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건 프리젠테이션을 어색하게 만듭니다. (청중 반응: 뭐 어쩌라구? 그거 계산하려면 수퍼컴퓨터 써야 되겠네.) 너무 안이한 질문은 ‘뭐 저런 질문을 던지고 있냐. 다 아는 거잖아.’와 같은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죠. 따라서 발표하시는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발표 내용을 이해하면 충분히 답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거나, 상상과 추측이 적극적으로 발동되는 질문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5. 다음으로 초반에 제시한 아웃라인을 언급하는 부분을 봅시다.

Now we’ve talked a little bit about how to talk to someone who’s lying and how to spot a lie. And as I promised, we’re now going to look at what the truth looks like.

이건 위에서 설명드린 3번과 비슷한 기능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초반에 언급했던 전체 강연의 내용 및 구조를 언급하면서 넘어가고 있지요. 청중들에게 지금 발표가 어디 있는지(where we are)를 알려주면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면 전체 흐름을 놓치지 않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발표자는 청중들을 새로운 여행지로 이끄는 가이드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면 좋을 것입니다.

6. 마지막 단락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져야 합니다.

자 마지막 문단을 한 번 볼까요?

When you combine the science of recognizing deception with the art of looking, listening, you exempt yourself from collaborating in a lie. You start up that path of being just a little bit more explicit, because you signal to everyone around you, you say, “Hey, my world, our world, it’s going to be an honest one. My world is going to be one where truth is strengthened and falsehood is recognized and marginalized.” And when you do that, the ground around you starts to shift just a little bit.

And that’s the truth. Thank you.

“사람들이 거짓을 인지하는 과학을 보고, 듣는 기술과 결합할 때, 그들은 자신을 거짓말에 동조하는 것에서 제외시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아주 조금만 더 확실히 표현하는 길을 시작하세요 “이봐, 내가 사는 세상, 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직한 세상이 될거야 내 세상은 진실이 강해지고, 거짓은 밝혀지고 무시되는 세상으로 바뀔거야 그리고 여러분이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아주 살짝 바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진실입니다 감사합니다.”

TED의 한글 번역이 완전히 매끄럽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 훌륭한 메시지입니다. 저는 좋은 발표는 정보와 함께 영감을 주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단락에서 깊은 울림을 이끌어 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프리젠테이션 막판까지 자잘한 데이터를 제시하느라 마지막에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시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상으로 TED talk 한 꼭지를 가지고 학술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저의 짧은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TED 를 시청하시거나 기타 강의를 보실 때는 발표자가 주제의 중요성을 어떻게 개괄하는지, 관련 분야의 지식과 연구를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어 전달하는지, 토픽과 토픽 사이의 전환에서 사용하는 전략은 무엇인지, 프리젠테이션의 개별 꼭지들을 전체 이야기 속에 어떻게 자리매김하는지, 결론에서 청중들을 감동시키는 전략이 무엇인지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강의의 내용만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각각의 요소에 해당하는 언어 요소들을 주의깊게 보셔야 하겠죠.

참고영상
https://www.ted.com/talks/pamela_meyer_how_to_spot_a_liar

#학술프리젠테이션 #영어로논문쓰기

수동태 뒤의 전치사에 관하여

a. He was relieved by what he saw.
b. He was relieved about what he saw.

이 둘 중에 뭐가 맞나요? 저는 relieved 다음에 by와 about이 다 된다고 배웠는데 말이죠. 네이티브 두 명에게 물어보니 by가 맞다고 하는데…

이런 질문을 받았고요. 저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about과 by의 의미차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주신 두 표현 (relieved about / by) 중에 뭐가 맞느냐는 건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By”는 그 뒤에 동작주(agent)나 원인(cause)을 나타내는 표현이 주로 옵니다. 따라서 주신 문장이 “그는 그걸 보고 안심이 되었다”는 의미라면 He was relieved BY what he saw.가 되어야 적절하다고 봅니다.

이에 비해 about은 말 그대로 ‘~에 대해’, ‘~에 관하여’라는 의미입니다. 뒤에 나오는 것이 relieve를 하게 한 agent나 cause라기 보다는 대상(object)인 것이죠. 따라서 “After hearing the news, he was relieved ABOUT the situation in New York.”라고 말하는 것이 좀더 적절하겠죠. 뉴스를 들은 게 원인이 된 것이고, 뒤에 나오는 ‘the situation in New York”은 안심의 대상이 되니까요. (그래서 ‘소식을 듣고 안심이 되었다’의 적절한 번역은 “She was relieved BY the news.”입니다. By 대신 about을 쓰면 상당히 어색하죠.)

그렇다면 다시 He was relieved about what he saw.에 대해 ‘by’를 써야 한다고 말한 원어민의 직관으로 돌아가 보면, 사실 이건 표현에 대한 개인적인 직관이라기 보다는 상황에 대한 사회적인 직관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런 맥락 없이 저 문장이 주어졌을 때 by냐 about이냐 하는 것은 ‘what he saw’와 ‘He was relieved’ 사이의 관계와 밀접하게 엮여 있는 것이죠. 보통 뭔가를 걱정하고 있다가 어떤 상황을 목격했을 때 안심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저만치 가던 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가서 살펴보니 상처도 없고 특별히 다친 곳도 없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는 경우 말입니다. 이 경우에는 ‘what he saw’에 의해서(by) ‘was relieved’되었다고 보는 게 적절하겠죠.

다른 상황도 상정할 수 있습니다. 제가 뭔가를 목격했어요. 예를 들어 아이들이 공룡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걸 본 거죠. 그런데 점심을 함께 하고 있는 선생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어이, 김성우 선생. 그 뉴스 봤어? 요즘 나오는 공룡 장난감에 유해물질이 장난이 아니라는데?” 저는 갑자기 아까 봤던 장면이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애들한테 무슨 해가 있을까 하고요. 그래서 뉴스를 찾아봅니다. 검색해 보니 모든 공룡 장난감이 그런 건 아니고, 특정 브랜드만 그렇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그제서야 저는 아까 봤던 장면에 대해(about) 안심이 됩니다. 뉴스에서 지적한 브랜드가 아니니까요. 이때는 “He was relieved ABOUT what he saw.”가 좀더 적절할 것입니다.

우리가 원어민에게 A/B 중에 뭐가 맞느냐고 물을 때 종종 놓치는 것은 A와 B를 “Either A or B”의 관계로 놓는 것입니다. 실제로 구글이나 코퍼스 툴을 찾아보면 둘 다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빈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저명한 출판물에 올라가 있는 경우도 많거든요. 여기에서 빈도(frequency) 뿐 아니라 그 두 표현이 갖고 있는 의미적/개념적 차이에 주목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By와 about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되고요.

이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맥락이고 두 번째는 해당 표현의 기초적인 의미입니다. 위에서 설명드렸듯이 ‘안심이 된다’와 ‘무언가를 목격하다’ 사이에 성립하는 가장 일반적인 관계는 ‘뭔가를 보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안심이 되다’입니다. 하지만 다른 상황이라면 ‘목격한 것에 관하여’가 될 수도 있죠. 또한 by와 about이 가지는 어휘적 개념도 중요합니다. 이것을 고려해야겠죠.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도 이 두 표현이 칼로 무 자르듯 딱 갈리진 않을 겁니다. 그 경우에는 비원어민 뿐 아니라 원어민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릴 수 있고요.

덧. 이런 개념을 염두에 두시고 “relieved about the situation.”과 “relieved by the situation.”을 exact match로 구글에서 검색해 보시면 about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옵니다.

#인지언어학이야기 #수동태 #전치사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10여 년 만에 두 번째로 제가 원하는 것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뭐가 좋을지 고민중인데요. 사범대 영어교육과 대학원생이라면:

(1) 인지언어학과 영어교육이지
(2) 비고츠키 사회문화이론과 영어교육이지
(3) 멀티리터러시/멀티모댈리티와 영어교육이지
(4) 뭘 하든지 재밌고 학점 잘 주는 과목이지.

5년 남짓 만에 겨우 한 번 오는 기회인지라 이게 참 정하기 힘드네요. 여러분의 선택은 과연? 

배움의 시공간, 두서없는 단상들

온라인 개학 시기, 교수학습의 시공간에 대한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

1. 온라인 개학이 거둔 일정한 성공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온라인 교육’이 가지는 내재적 균열은 ‘몸과 공간의 변화’라는 급진적 변수를 무시하고 ‘내용과 시간’을 잡아두려는 데 있지 않았을까. 배움에 있어 시공간은 분리 가능한가? 우리 교육은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다루는가?

2. 왜 적잖은 사람들이 집에서는 도저히 공부가 안된다고 말하는가? 그저 의지의 부족인가? 배움의 공간이 달라지고 그 안에 놓여지는 몸이 달라지는데 ‘O교시’로 대표되는 시간의 구획이, 그 안에서 다뤄지는 내용이 그대로인 것은 자연스러운가?

3. 아인슈타인이 시공간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건만 여전히 교육에서 시공간이 따로 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옳은 일일까? 학교에서의 시간은 집에서의 시간과 같이 흐르는가? 선생님과 친구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시간과 화면 속 사람들을 보거나 콘텐츠를 시청하는 시간은 동일한 밀도와 점성을 가지고 있는가?

4. 우리의 지각, 주의, 집중, 지속, 정서, 태도, 흥미, 몸짓 등은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환경과 어떻게 엮이는가?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나의 몸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사회적으로 매개되고(socially mediated), 공동체에 의해 규율잡힌(community-regulated) 학습은 컴퓨터에 의해 매개되는 학습과 어떻게 다른가?

5. 오랜 시간 유지되어 온 학교의 “O교시” 체제는 그 자체로 개인의 차이를 무시한다. 개인별로 이해와 배움, 집중과 지속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고의로 망각’한다. 공교육체제의 특성상 모든 이들에게 일정한 양과 수준 이상의 지식을 전수해야 한다는 목표 아래 ‘필요악’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6. 추후 온라인 학습이 또 다시 ‘디폴트’가 되는 시기가 온다면 우리는 여전히 O교시 체제를 고집해야 하는가? 혹 ‘급진적 개인화’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계기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공간의 변화, 함께 존재함(co-presence)의 상실은 신체적,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변화를 수반한다. 그렇게 변화한 시공간에 맞는 새로운 배움을 상상해야 할 시기일지 모른다.

7. 몇 주 만에 온라인 개학을 위한 IT 시스템을 안정화시켰다는 소식, 그에 대한 일부 언론의 상찬을 보며 우리사회가 여전히 기술중심적 시각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IT 인프라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으나 그것은 ‘온라인 개학’의 기술적 선결과제일 뿐 완성은 아니다.

8. 중요한 것은 ‘온라인/디지털’이라는 플랫폼에서 ‘개학’을 했다는 것이다. 학교를 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IT시스템의 완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사건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일차적으로 교사들의 노고, 나아가 학부모와 학습자들의 협력이다. 이러한 측면에 대한 조명은 여전히 부족하다. ‘온.라.인. 개학’이 아니라 ‘온라인 개.학.’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기술이 아니라 교육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해야 한다.

9.교실에서 행해지던 짝활동 및 모둠활동이 힘들어진다는 것은 상호작용의 가능성이 심각하게 축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일부 온라인 수업이 택하고 있는 ‘시청완료=학습완료’의 공식은 바람직한가? 시청의 완료가 그 시간 동안의 인지적 정서적 몰입(engagement)을 담보하는가?

10. 오프라인 개학이 다가오고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전의 세계’에 적응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이 시간의 고군분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잊지 않고 살아가다 보면 새로운 실천의 싹이 트지 않을까?

비판교육학 수업을 준비하다가

갈등은 우리의 양심과 함께 합니다.

1. “갈등이 없으면 삶의 존엄성이 손상됩니다. 투쟁과 갈등이 없는 삶 또는 인간 존재는 있을 수 없습니다. 갈등은 우리의 양심과 함께 합니다. 갈등을 부정하는 것은 생생하고 사회적인 경험의 현실적인 측면을 대부분 무시하는 것입니다. 갈등을 회피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입니다.” – 파울로 프레이리

2. 비판교육학(critical pedagogy)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읽어가며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학생들은 현실을 비교적 정확히 인식하고 있고 불만도 많다. 거의 모든 학생이 현실을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흥미로운 것은 변화의 당위에 대한 긍정과 갈등과 투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동시에 드러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투박하게 요약하자면 ‘변화가 필요하지만 갈등이 심해지는 건 피해야 한다’ 정도가 되겠다.

3. 첫 인용구에 드러나듯이 프레이리는 갈등을 대면하는 행위를 삶의 선택지 중 하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엄성의 문제로 본다. 양심의 동반자라 칭한다. 세상을 경험하고 의식화가 진행되고 나면 갈등을 알게 된다기 보다는 갈등을 직시하는 가운데 존엄과 양심이 회복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에게 갈등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윤리적 삶의 지표다.

4. 프레이리가 말하는 ‘의식화’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며 거기에 존재하는 갈등과 희망을 받아안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학습량과 비례하지 않는다. 헨리 지루는 “해방적인 지식을 거부하는 이들은 오히려 지식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알면 알수록 껄끄러운 일들을 멀리하고, 지식을 해방의 도구보다는 축적의 수단으로 쓰는 이들이 많아진다. 프레이리와 지루의 말을 더하면 알면 알수록 존엄은 스러지고 양심은 잊혀진다.

5. 비판교육학에서의 ‘갈등’이 주변 사람들과의 불화와 같지는 않다. 물론 정당과 노조활동가, 사회운동가, 시민단체 활동가 등은 직접적인 갈등상황을 피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학생들과 비판교육학을 논의할 때 나는 ‘주어진 내러티브’의 위험성을 이야기하곤 한다. 다시 지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살아온 문화의 담론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이른바 자기가 생산한 이론을 개발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담론은 교사와 학생이 구현하고 생산하는 복잡한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형식들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지 이해하기를 요구한다. 많은 쟁점들은 이 관심사를 중심으로 비판교육학 속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교사는 지성인이다>, 211쪽)

6. 지루의 말 중에서 핵심은 ‘그들이 어떻게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의미를 만들고 공유하고 때로는 강요하며 살아간다. 사회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가장 잘 하는 일이 의미생산인 것이다. 그런데 갈등없는 삶에서 이 의미는 그저 부여된다. 앎이든 삶이든 저항없이 순항한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 삶은 자기를 인식하지 못한다. 비바람을 맞고 무르팍이 깨지기 전에는 몸의 존재를 망각한 채 살아간다. 암묵적으로 만들어낸 의미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모른다. ‘살아지는 대로 사는’ 상황이 계속된다.

7. 학교 현장에서의 비판교육학은 지배적 서사에 대한 온갖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지식을 쌓음과 동시에 그에 대해 의심하는 습속을 키우는 일이 필요하다. 누가 규율을 제정하는가? 누가 상식을 정의하는가? 누가 나의 생각을, 나아가 우리의 생각을 만드는가? 김성우는 왜 나에게 이토록 많은 질문을 던지는가?

8. 비판교육학 수업을 앞두고 갈등에 대해 끄적여 보았다. 갈등에 취약한 사람으로서 갈등을 끌어안는 사상에 대해 논의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갈등이 삶의 필연적 조건임을 깨닫고 그 복판에 뛰어들었음에도 희망과 사랑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눌 때면 언제나 마음이 차오른다. 비록 한 주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학생들이 삶의 서사의 작동방식을, 생각의 연원을, 갈등과 저항의 의미를 곰곰히 생각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이제 수업 준비를 마무리해야겠다.

사회언어학과 영어교육 강의노트 4

1. 녹음기술은 미디어로서 개인을 확장시켰다. 나의 목소리가 나를 떠나 어디든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녹음된 음성은 어디든 결합할 수 있다. 나의 목소리가 타인의 입에 올려질 수도 있고, 더빙의 재료로 사용될 수도 있다.

이처럼 미디어는 다양한 방식으로 신체로부터 탈각된(disembodied) 목소리를 활용하여 ‘자연스런’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 우리가 미디어, 특히 애니메이션을 통해 갖게 되는 특정한 인종, 계급, 성별, 연령, 직종 등에 대한 이미지는 해당 집단의 구성원을 시각적으로 추상화하고 청각적으로 매개하여 구성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재현(representation)은 세계를 ‘복사’한 것이 아니라, 탈신체(disembodiment)와 추상화, 재조립(reassemblage)의 과정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2. 좀 우습기도, 멋적기도 한 이야기지만 중고등학교 때 영어 발음을 네이티브랑 똑같이 하려고 애쓰는 애들 보면 왠지 멀리하고 싶었다. 영어는 좋아하는 과목이었고 나름 잘하기도 했는데 발음에 대해서만큼은 “나를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괜한 고집을 피운 것이었지만 당시에는 나름 진지했던 것 같다. 그땐 멀리 보지 못해서 내가 응용언어학을 하게 될 줄 몰랐던 것.

나의 이 멍청한 (하지만 나름 귀엽다고 우기고 싶은) 일화에서 드러나듯이 발음은 개인의 정체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다른 나라 말을 열심히 발음하고 있으면 뭔가 뇌가 꼬이는 듯하고 내 안에서 다른 내가 나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쉽게 말해 나의 목소리와 발음은 나의 몸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다.

3. 사실 우리는 외국어 뿐 아니라 모국어를 사용할 때도 발음에 따라 사람들을 (본의 아니게) 차별한다. 발성이 좋고 발음이 정확한 — 흔히 말하는 아나운서처럼 말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와 발음이 명확치 않은, 즉 “말을 꾸역꾸역 먹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발음이 좋으면 목소리마저 청아하게 들린다. 목소리와 발음은 해당 개인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순식간에 만들어 낸다.

발음은 사회문화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지표다. 요즘은 좀 나아졌지만 과거 대부분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은 백인 성우가 더빙을 맡았다. 당연히 악역은 히스패닉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발음이 주였다. 이런 애니메이션의 세례를 받고 자란 아이들은 무의식중에 인종차별적 마인드를 키워갔다. 실로 무서운, 여전히 진행중인 현상이다.

4. 위의 1에서 서술한 바를 적용하자면,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특정한 집단의 신체를 추상화하여 비주얼로 만들고, 여기에 특정한 계층을 은밀히 가리키는(index) 목소리를 입힌다. 이것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특정한 캐릭터를 특정한 목소리 자질과 연관시키고, 이것은 특정한 사회문화적 특징과 또다시 연관된다.

물론 이러한 결합이 즉흥적이거나 기계적인 것만은 아니며 상당한 사회문화적 고증을 거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노력을 쏟아붓더라도 애니메이션이 재현하는 인물(비주얼+사운드+캐릭터적 특성 등)이 일정한 본질화(essentalization: 사람의 특징 한두 가지로 그 사람의 본질을 규정하는 일. ‘백인은 이렇다’든가, ‘이주노동자들은 이렇다’, 나아가 ‘시츄는 다 …하지’ 같은 말에서 잘 드러남.)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사회언어학과 영어교육 강의노트 1

Posted by on Mar 18, 2020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1. 학생들로부터 쪽글을 자주 받는다. 읽기자료를 꼼꼼히 읽고 간단히 요약한 다음 자신이 이해한 바, 흥미로운 부분,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 경험과의 연계, 교육현장에의 적용 등을 논의해 보라는 과제다. 내 수업의 절반은 쪽글에 대한 피드백과 이를 기반으로 한 토론이다.

2. 재미있는 것은 다소 어려운 읽기자료가 제시되었을 때 ‘어떻게든 이해한 척’하려는 학생과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학생’이 갈린다는 것. 쪽글을 읽다가 보면 전자의 학생이 생각보다 많은데 (나도 대학원생 때 종종 그랬던 것 같기도 하지만) 후자의 학생이 훨씬 반갑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고 적극적으로 의문을 해소하려는 모습이 ‘나 읽었고 이해했거든?’ 같은 제스처보다 낫다고 보기 때문이다.

3. 응용언어학과 영어교육의 특성상 순수히 이론에 그치는 논의는 반쪽의 느낌을 준다. 결국 이론과 현실이 만날 때 강력한 ‘프랙시스(praxis)’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론을 이해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현실과 결합시키려는 모습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들이 설익은 지식을 용감하게 적용하려 들지 않도록 적절한 가이드를 주는 게 나의 역할인 것 같기도 하다.

4. 아무튼 이번에도 <사회언어학과 영어교육>을 맡게 되었다. 첫 시간은 Dell Hymes의 1972년 글과 2015년 강현석 선생의 글을 통해 사회언어학의 초기 방향성과 최신 연구동향을 비교하며 진행한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사회언어학의 진화는 진행형이다.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며 나 자신도 성장할 수 있는 한 학기가 되길 빈다.

일상스케치

Posted by on Mar 9, 2020 in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1. 감염병 확산 시기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가 화두다. 지금 꼭 필요한 실천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평소에도 한번도 만날 일 없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빈부가 갈라놓은 사회계층. 반듯하게 구획된 공간 안에 ‘갇혀’ 아예 서로 스칠 일이 없는 이들. 장애인 시설을 끝까지 반대하는 일부 주민들. 그런 것들에 마음이 가 닿으면 이 사회로부터 정말 멀리 거리를 두고 싶어진다.

2. “착한 임대인 운동”에 찬성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정책적 사안에 ‘착한’이라는 용어가 붙는 건 마뜩치 않다. 개인적으로 어떤 임대인을 ‘착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부정책에 ‘착한’을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게 어떤 의미와 효용이 있을지 모르겠다. 착한 가격, 착한 세일, 착한 집안, 착한 기업, 착한 임대인… 도덕적 평가의 언어가 자본과 정책에 결합하는 건 정확히 직면해야 할 문제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

3. 이번 학기 <사회언어학과 영어교육>, <영어교육과정> 두 과목을 강의한다. 첫 주 수업은 16일에 시작된다. 어제와 오늘 양일에 걸쳐 1교시에 관한 준비사항을 상세히 공지했다. 아직 시작되지 않은 학기인데 벌써 떨린다. 미뤄두었던 원고의 마감이 떼지어 달려오고 나는 꼼짝없이 녀석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 와중에서도 잘 버티고 잘 가르치고 잘 배우고 잘 기록하자. 무엇보다 웃음을 잃지 말자.

4. 안타깝지만 누구든지 나를 미워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사실을 잊지 않을 때 어떤 사랑도 당연하지 않다. ‘기적같은 사랑’이라는 말은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명명이 아니라 확률적 불가능성을 거역하는 환대에 대한 찬사이다.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묵묵히 곁에 서주는 사랑이라는 기적에 감사한다.

5. 방학이 다 갔다. 긴긴 어둠의 터널에서 서서히 밖으로 나올 시간이다. 눈부신 하늘이 기다리지 않더라도 숨을 한껏 들이 마시고 또 내뱉고 싶다. 새로운 만남 속에서 설렘을 다시 찾고 싶다. 별것 아니지만 배움의 기쁨을 전하고 싶다. 준비가 다 되었느냐고? 그렇지 않아도 언제든 시작할 수 있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관련 영어표현

코로나19바이러스로 전세계가 떠들석합니다. 관련 핵심표현만을 모은 페이지에서 주요 표현을 가져와 해설을 달아보았습니다.

1. contract a virus 바이러스에 감염된다고 할 때에는 contract라는 동사를 주로 씁니다.

2. extremely infectious / highly contagious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는 표현들입니다. Extremely/highly로 강도를 표현합니다.

3. pass it to others 다른 사람에게 옮긴다고 할 때 pass를 주로 씁니다.

4. carriers 그렇게 바이러스를 (본의 아니게) 옮기게 되는 사람을 carrier라고 합니다.

5. super-spreaders 우리말로 ‘수퍼전파자’는 super-spreader라고 합니다. (이 용어는 가급적 쓰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쓸 경우에는 spreader라는 표현을 기억해야겠네요.)

6. patient zero 최초 감염자는 patient zero입니다. One이 아니라 zero로 개념화되는 게 흥미롭네요.

7. show/display symptoms 증상을 보인다고 할 때에는 show/display symptoms라고 합니다.

8. fever 열 cough 기침 respiratory difficulty 호흡곤란 등이 있겠죠.

9. 잠복기는 the incubation period 라고 표현하지요.

10. (감염)사례는 cases라고 표현합니다.

11. 확진자라고 판단하는 것은 “call someone confirmed or diagnosed cases”라고 표현합니다.

12. 사람들이 감염이 된 것으로 테스트 결과가 나오는 경우 “They test positive for it”이라고 합니다.

13. 유난히 감염자가 많은 경우를 spike로 표현해서 “a spike in cases”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치솟는 모양을 표현한 단어죠.

14. 치명률은 “the mortality rate of a disease”로 표현합니다. 사망자수는 death toll이 되겠습니다.

15. 질병의 발생은 outbreak로 표현하죠. 이 제목의 영화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6. 전 세계로 퍼지는 감염병을 판데믹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pandemic으로 씁니다. Pan-이 붙으면 ‘전체의, 전세계의’의 의미가 되죠.

17. 바이러스를 통제하고 확산을 막는다고 할 때는 control/contain the spread of the virus 라고 합니다.

18. 특정 지역을 봉쇄한다고 말할 때에는 “Towns and cities may be put/placed on/in lockdown”으로 표현합니다.

19. 격리조치는 quarantine이라고 하며 사람을 주어로 할 경우 “be put/placed in quarantine”를 쓰면 됩니다. 자가격리는 self-quarantine이라고 표현하면 되지요.

20. 마스크는 그냥 mask 라고도 하지만 face masks라는 표현도 자주 쓰입니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백신개발’은 ‘develop a vaccine’이라고 표현하면 되겠습니다.

어지러운 나날이지만 모두 몸도 마음도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표현 출처:

https://dictionaryblog.cambridge.org/2020/02/26/quarantine-carriers-and-face-masks-the-language-of-the-coronavirus

수사의문문 물음표?

구두점의 역사, 그 중에서도 세미콜론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아래는 그 중에서 놀라운 대목이다. 초기의 구두점 사용은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그들은 구두점을 악보에서의 쉼표와 같이 생각했단다. 쉼표의 길이는 기계적으로 정해진다기 보다는 연주자에 의해서 해석되는 법. 하지만 지금은 구두점 사용이 딱딱한 법칙처럼 되어버렸다. 여러 사람들이 자신만의 구두점을 만들어내는 일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수사의문문(rhetorical question)을 표시하는 물음표였다고. 즉, 일반의문문과 수사의문문을 구별해서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 부호를 찾아볼 수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호응이 없었던 것 같다. 다음 작문수업에서는 ‘자신만의 구두점 만들기’와 ‘왜 그런 구두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써보기’를 활동으로 추가해 볼까 한다.

“Still, a few bad-tempered complainants notwithstanding, most humanists believed that each writer should work out his punctuation for himself, rather than employing a predetermined set of rules. A writer or an annotating reader was to exercise his own taste and judgment. This idea of punctuation as a matter of individual taste and style outlived the humanists: it stretched beyond the Latin texts that Manutius printed, crossing borders and oceans, and it survived as a way of thinking about the practice of punctuation well into the eighteenth century. When the topic of punctuation usage came up, a reader was likely to be advised that he should consider the punctuation marks analogous to rests in music, and deploy them according to the musical effect he wanted to achieve. How on earth did this idea of the writer as a musician, which held on for hundreds of years, transform into our comparatively new expectation that writers must submit to rigid rules?”

<Semicolon> by Cecelia Watson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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