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 공부, 그리고 즐거운 딴짓

Posted by on Nov 11,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1. 바빠지면 딴짓을 하는 버릇은 여전하다. 오늘은 예전에 집필을 고민했던 <삶을 위한 영어공부 (가제)> 목차안을 다시 들여다 보고 있다. ‘삶’과 ‘영어공부’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나온 기획인데, 대중서로서의 방향을 잡기도 어려웠고 필자로서의 내공 또한 형편없었다. 몇 해가 지난 지금, 분명 할 말은 많아졌건만 ‘내 말들이 가 닿을 수 있는 독자들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 ‘수많은 ‘전문가’들의 사회에서 또 하나의 소음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자괴감 또한 커졌다. 어떻게 써도 숭숭 뚫린 구멍이 보이는 증상은 도무지 치료하기 힘든데, 도대체 부끄럽지 않은 글이란 무엇일까, 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마음은 더 복잡해진다. 책을 쓰는 일은 절대 만족할 수 없는 단절을 받아들이는 행위라 느낀다. 자신이 구축한 세계를 타인을 염두에 두고 베어내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얽히고 섥힌 수십 년 길이의 등나무같은 생각들을 네모 반듯하게 깎아내는 일 말이다.

2. 해커톤처럼 리서치톤이나 라이팅톤, 리딩톤 같은 거 해도 재미있겠다, 라고 쓰려니 이제 그것도 피곤해서 못하겠다는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예전에 학술캠프 비슷한 데 가서 2-3일 줄창 책읽고 밤낮없이 세미나만 했던 기억이 있는데,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인 사람들이라면 단기간 집중 공부로 특정 주제를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이게 가능하려면 비슷한 내공과 연구주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시공간을 공유해야 하는데 공부를 업으로 삼은 이들의 경제적 상황이나 일상생활의 패턴을 볼 때 거의 불가능하다. 음… 현실은 슬프지만 딴 생각은 재미있구나.

“해커톤”은 “hack(‘만들다, 파고들다’라는 뜻)”과 “marathon(장시간의 달리기)”의 합성어로, 혁신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기술을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직한 행사를 말한다. 해커톤은 보통 하루에서 일주일까지 지속된다.” 출처: http://theconnect.or.kr/wp/archives/914

 

 

어휘의 주관성 – ‘맵다’의 경우

Posted by on Nov 11, 2017 in 강의노트,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 No Comments

연애 시절,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다. 양파와 고추 몇 개가 찬으로 나왔다. 매운 걸 잘 못먹는 나는 짝에게 물었다.

“이거 매울까요? 겉으로 봐선 잘 모르겠네요. 드셔 보시고 괜찮은지 말씀해 주세요.”
“네네. (잠시 후) 아주 살짝 맵네요. 아주 맵진 않고요.”
“아 그 정도면 저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삭 소리와 함께 매운 맛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입안에 불이 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쌀밥과 물로는 해결이 안되어서 결국 식당을 나와 우유까지 사 마셨다.

언어가 주관적 경험의 차이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함을 보여주었던 에피소드. “자유”나 “사랑”과 같은 추상적 어휘 뿐 아니라 “맵다”나 “짜다” 등의 감각 어휘도 개인차가 지대할 수 있다는 걸 제대로 깨달았다. (나중에 보니 짝은 청양고추를 치토스처럼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부르르…) 그러고 보면 색상을 표현하는 어휘보다 맛을 묘사하는 어휘에 있어서 개인간 차이가 더 큰 것 같기도 하다.

암튼, 매운 것 잘 드시는 분들. 청양고추 추가해서 드시는 분들. 여러분들은 세계의 표준이 아닙니다. (먼산)

덧: 참고로 생애 최강의 청양고추맛을 능가했던 건 라일락 이파리를 씹었을 때의 충격과 공포다. 궁금해도 참으시기를.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라일락 이파리를 대차게 씹었다가 실제로 죽는 거 아닌가 싶었던 1인.)

코퍼스 수업 준비하다가

Posted by on Nov 8,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1. 얼마 전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친구가 “이제 NLP(자연어 처리, Natural Language Processing)의 시대가 올텐데”라는 말을 던졌을 때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글번역에서 시리까지 이미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분야이지만 언어연구,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본격적 전문가 시스템, 음성 인터페이스, 기계번역, 교육 등등이 만나는 지점에서 NLP의 중요성은 점점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2. 기회를 놓쳤다기 보다는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게 맞겠지만, 몇 번의 기회가 나를 스쳐갔다. 1995년에 처음 인터넷을 접하고 98년 경에 원격교육/웹기반교육에 실무에 입문했고, 석사 논문 주제로 웹기반 학습을 다루었다. 워드스미스, 콩코던스 등 초기 NLP의 기초 패키지를 활용하고 교육하러 돌아다닌 건 2002년 이후 몇 년.

IT와 밀접하게 일한 게 정확히 10년이다. 시쳇말로 그 바닥을 떠나서 다른 일을 하고 싶었고, 운이 좋아 새로운 여정에 나설 수 있었다. 그다지 후회는 하지 않는데 왜일까 생각해 보니 IT 일하면서 몸 망가진 경험 때문인 거 같다.

4. 학위과정을 마치고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내가 느낀 건 크게 세 가지였는데, (1) 애매한 10년 경력을 떼어낼 도리가 없으나 (2) 그 경력과 전문성을 가지고 NLP와 관련하여 잘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으며 (3) 그럼에도 앞으로 관련 분야의 중요성은 점점 커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5. 학생들과 3주간 코퍼스 언어학(NLP의 한 분야로서 언어학과 컴퓨터과학이 만나는 분야) 수업을 한다. 한 학기 정도는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은데, 거기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NLP를 제대로 아는 사람의 도움이 절실하다.

6. 땅치고 후회하며 갑자기 공부할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전공과 관련하여 다시 배우고 싶은 것 한 가지를 꼽으라면 NLP 관련 지식 아닐까 싶다.

근데 RegEx는 몇 번을 공부했는데 맨날 까먹는구나. ㅎ

영어교육과 커리큘럼 단상

내 맘대로 영어교육과 학사 교과과정을 짤 수 있다면 1년간 한국어로 된 형식언어학, 인지언어학, 응용언어학, 사회언어학, 및 자연어처리 관련 서적을 집중적으로 읽히고, 해당 분야의 ‘대가’들이 대중을 염두에 두고 만든 다양한 강연 콘텐츠를 플립러닝 방식으로 학습하게 할 것이다. 1년 동안 기반을 쌓고 그 위에 3년 동안 영어교육을 쌓아도 괜찮다 싶다. 아니 그런 접근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고 본다.

교육’문제’ 단상: 시민과 사회, 학교 구성원과 학교

Posted by on Nov 2,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오늘 한 학생이 수업 시간에 들려준 이야기다. 그는 과제로 한 젊은 교사와 짧은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라는 말이 최소 6번 나왔다고, 3-4 페이지 정도의 짧은 전사본에서 높은 빈도 같다고 했다.

나는 각각의 “어쩔 수 없이”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는 데이터를 좀더 들여다 봐야 알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짧은 대화에서 6번이 나왔다면 그가 느끼는 무력감은 상당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말했다. “어쩔 수 없이”의 원인이 수능과 같은 국가 평가 체제인지, 새로운 교육실험에 대한 주변 교사들의 은근한 반대인지, 자신이 원하던 교육의 이상을 펼쳐낼 수 없는 학생수 때문인지, 학생들과의 관계 때문인지, 해당 학교의 사회경제적 특수성 때문인지, 이들의 다양한 조합 때문인지 등은 저 어구로 판단할 수 없으니 말이다. (물론 인터뷰 대상 교사의 특유한 말버릇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 경우에도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는 추정을 거둬들이긴 힘들다.)

집에 오다가 교사들이 학생들의 수준차에 대해서 언급할 때 종종 나오는 표현이 떠올랐으니 바로 “한 반에 ABC도 모르는 애들이랑 ~한 애들이 같이…”였다. 이 표현은 “어쩔 수 없음”에 대한 이유로 제시되곤 한다. ‘그렇게 다른 학생들이 한 공간에 있는데’ 뭘 어쩌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복잡해진다. 이런 친구들이 함께 공부한다는 게 문제인가? 아니면 ABC를 못하는 학생이 있다는 게 문제인가? 아니면 이런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는 교사가 문제인가? 아니면 이런 상황을 ‘내 손해’로 받아들이는 일부 학생들이 문제인가? 아니면 그런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교수전략을 전해주지 못한 교사양성 및 재교육 기관의 문제인가? 국가교육과정, 교과서 체제, 수능 중심 수업의 문제인가?

혹 이 모든 것을 손쉽게 ‘문제’라고 명명하는 것이 진짜 문제 아닐까?

딜레마다. 당면한 수업의 문제는 교실 안에서 해결해야 하지만, 경제 및 사회문화적 힘에 의해 형성, 유지, 강화, 완화된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서기 전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교실’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준별 수업(tracking)도 개별화 교수(differentiated instruction)도 완벽할 수 없다. 교사 개인의 온전한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의 원인을 외면하고 노동을 착취하려 함에 다름 아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문제’라고 불리는 것들이 해결되어야 할 대상이라기 보다 내가 발딛고 있는 현실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을 이해하고 개선하려는 노력 속에서 논의되는 수많은 문제들은 개념적 무게를 잃었을 뿐 아니라 실천을 위한 방향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가 너무 많아 모든 게 문제라고 뭉개버리는 일이 적잖이 발생한다. 결국 ‘문제’의 문제가 현실의
문제를 가리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 말을 ‘문제들이 문제가 없다’로 알아들으시는 이는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못난 기우로 괄호 안에 덧말을 던져 놓는다.)

학교는 불완전한 공간이고, 그 불완전한 공간이 ‘덜 나쁜 곳’이 되게 만드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완벽에 대한 기대를 접고 ‘덜 나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란 무얼까. 이상적이지 못한 사회에서 이상적인 학교를 꿈꾸는 것, 혹은 학교만은 달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모순임을 인정한다면, 시민과 사회의 관계를 학교 구성원들과 학교에 대입하면서 많은 이슈들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질적코딩 수업

Posted by on Oct 17,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학생들과 영어교육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하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각자가 이미 문제를 모두 정의해놓은 상태로 수업에 임한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영어수업에 있어 가장 자주 언급되는 문제는 (1) 학습자들간의 실력차가 너무 크고 (2) 수능 등 획일화된 평가에 따라서 가르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두 이슈의 무게를 인정하는 것과, 이 두 렌즈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바라보려는 습속(habitus)은 전혀 다르다. 어떤 문제가 제기되더라도 실력차와 평가로 간단히 설명해버리는 태도는 게으름을 넘어 반지성적이다. ‘평가가 문제입니다’, ‘학생들이 차이가 나는데 어쩔 도리가 없어요’라는 말에는 현실의 단면을 그리는 솔직함이 배어있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학기 한 수업에서는 자신의 영어학습사를 기술한 언어학습 자서전(language learning autobiography)과 주변의 학생, 학부모, 교사 중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반구조화 인터뷰를 질적연구 방법론 중 하나인 근거이론(grounded theory)을 사용해서 분석해 보려고 한다. 최대한 선입견을 제거하고 데이터에 기반해서 자신의 영어학습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교사, 학부모, 학습자의 고민에서 어떤 패턴이 드러나는지 살피려는 것이다.

학부생들을 질적 연구자로 키우려는 것은 아니기에 방법론의 철학과 역사, 한계와 효용 등을 온전히 다루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사회과학 방법론의 한 축인 질적연구방법론을 맛보면서 자신과 주변의 영어교육 현실에 대해 좀더 깊이있는 시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방법론을 일종의 휴리스틱으로 활용한달까. 이미 정의된 문제의 틀을 벗어 던지고, 데이터와 씨름하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한 가지 우려가 되는 것은 학생들이 가져올 데이터의 성격이다. 자신의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영어학습 자서전, 자신과 비슷한 사회경제적, 문화적 환경 하에 있는 학부모나 학생의 이야기라면 결국 자신의 생각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분석 결과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방법론은 데이터를 뛰어넘지 못한다. 초심자에게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업에 마음이 설렌다. 실험이 끝나는 3주 후에도 이 기분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지만 혹시 모르니 두고 봐야겠다. ^^

이론 수업에서의 ‘확증편향’

Posted by on Sep 25,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확증편향 (確證偏向, 영어: Confirmation bias)은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이다. 쉬운 말로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가 바로 확증편향이다.” (위키백과)

개론 수업에서 다양한 이론을 다룬다. 예를 들어 언어를 보는 다양한 관점, 언어습득을 설명하는 다양한 가설 등이 등장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해당 챕터를 읽고 새롭게 배웠거나 의문이 드는 대목 등을 제출하는데, 나는 이를 수업의 주요 테마로 삼는다.

대부분의 과제에서 공통적인 경향이 발견된다. 개별 이론의 메시지를 확증편향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 이론은 나의 경험 중에서 이런 면을 설명하고, B 이론은 저런 면을 설명한다. C 이론은 이런 에피소드에 적용하면 괜찮을 것 같다 등등과 같은 설명이다.

인문사회과학에서 특정 이론이 세계를 완벽하게 설명해 낼 수 없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이론이라 하더라도 특정한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토양에서 태어나 자란 것이고, 이를 발전시킨 학자들 또한 자신이 속한 학문 공동체의 담론지형 및 연구경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론은 세계의 사태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다. (총체성을 부정하는 이론마저도 ‘총체성이 부재하는 세계’라는 ‘총체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일련의 경험을 수많은 이론의 모자이크로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론의 존재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말이다.

학문적 다양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개별 이론이 지향하는 사고와 해석의 총체적 틀을 파고드는 시도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애매한 절충주의(Eclecticism)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합리화하는 이론-쪼가리들을 낳는다. 학생들도, 나도 이론이 우리의 확증편향을 위해 존재하는 그럴듯한 도구가 아님을 기억해야겠다.

자동 요약 및 바꿔쓰기 기술

Posted by on Sep 23, 2017 in 강의노트, 링크, 수업자료 | No Comments

자연어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의 하위 분야로 난이도가 높은 표현을 좀더 쉬운 표현으로 변환하거나 특정 텍스트를 요약하는 기술이 있다. 완벽한 바꿔쓰기(paraphrase)나 적절한 요약과는 거리가 있지만 꾸준히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영어 텍스트 처리가 가장 앞서나가는 듯하다.

관련하여 Rewordify, Simplish 두 서비스가 눈에 띈다. 아래 링크에서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다. 참고로 Simplish는 2천5백 단어 이내의 텍스트 요약이 무료이고, Rewordify에는 단어수 제약이 없다.

http://rewordify.com/index.php
https://simplish.org/

모두를 위한 영어교육학 강의 (3) – 주어의 재발견

구조에 대한 설명에서 의미를 이끌어내는 활동으로

먼저 다음 두 시나리오를 봅시다.

시나리오 1

교사: “자 여기, 문장 제일 앞에 나오는 이걸 뭐라고 하죠?”
학생: “명사요.”
교사: “그건 품사구요. 문장에서 하는 역할이 뭐예요? 5형식 배운 사람은 알텐데…”
학생: “주어요!”
교사: “맞아요. 주어. 그럼 이 자리에 나올 수 있는 거 뭐뭐 있지?”
학생: “명사요.”
교사: “좋아요. 명사. A cat 같은 거. 그리고 또?”
학생: “……”
교사: “명사를 대신하는 거, 뭐 있지?”
학생: “대… 명사?”
교사: “그렇죠. 명사를 대신하니까 대명사. ‘대’가 대신한다는 뜻이예요. It, she, he 이런 것들이 대표적이죠. I도 있구요. 명사, 대명사. 그리고 또?”
학생: “……..”
교사: “명사나 대명사 말고 동명사나 To 부정사도 올 수 있죠. 오케이? 자주는 아니지만 That 절도 올 수 있어요. 여기에서 That은 명사절을 이끄는 거죠. 그럼 예문을 몇 개 더 살펴볼게요.”

시나리오 2

교사: “자 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볼 수 있어요.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랑, 그 주제에 대한 설명. 앞의 것을 subject라고 하고 뒤의 것은 predicate라고 해요. 근데 이런 용어는 몰라도 돼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거지. 자자 다시. 문장은 뭘로 이뤄진다?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랑 그것에 대한 설명. 따라해 봐요. 주제와 설명.“
성우: “주제와 설명.“
교사: “오케이 좋아요. 그럼 성우는 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성우: “음… 영화요.“
교사: “영화요? 그럼 이렇게 시작하면 되겠네요. “The movie” 따라해 보세요. “The movie”.
성우: “The movie”.
교사: “영화가 어쨌어요?“
성우: “지루했어요.“
교사: “지루했다… 그럼 지루했다를 표현하는 단어를 찾아봐야겠네요.“
성우: “어떻게 찾죠?“
교사: “음 쉬워요. 한영사전을 찾으면 되죠.
성우: “(사전을 찾는다) Boring?“
교사: “맞아요. 근데 예문을 잘 봐요. 거기 boring만 있어요?“
성우: “아니오. 앞에 is가 있네요.”
교사: “그렇죠? 그러니까 boring은 혼자 못쓰이고 is 같은 애들이랑 같이 쓰여요. ‘is boring’ 이렇게. 좀 재미있게 표현하려면 The movie made me yawn. 그러니까 영화는 나를 하품하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쓸 수도 있겠죠?”
성우: “네.”

…(중략)…

교사: “그럼 영화 말고 다른 거 이야기해 보고 싶은 거 없어요?”
성우: “친구 충식이요.”
교사: “오케이. 그럼 “friend”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My friend 충식 이런식으로 쓰면 되겠네요.”
…(중략)…
교사: “근데 영화나 중식이, 컴퓨터나 비디오 게임 이런 거 말고 다른 이야기도 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음… 뭐 좋아해요?”
성우: “사진찍는 거요.”
교사: “오 좋아요. 사진찍는 거. 그렇게 뭔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 수가 있어요. Taking photos 같이 표현하면 되죠. 사진찍는 거 어때요?”
성우: “재미있어요.”
교사: “그럼 Taking photos is fun.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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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시나리오에서 ‘주어’를 설명하는 방식은 사뭇 다릅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주어는 구조적 관점에서 설명되고, 그 예 또한 명사, 대명사, That-절 등의 문법용어(grammatical terms) 혹은 상위언어 용어(metalinguistic terms; 언어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쓰는 언어)입니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 주어는 문법용어로 전달되기 보다는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가’라는 의미 범주로 제시됩니다. 이에 따라 학생은 자기가 이야기하고 싶은 소재를 이야기하고 (저는 이걸 ‘던지고’라고 종종 표현합니다) 교사는 이에 대한 설명을 이끌어 냅니다. 사실 이것이 본래의 “subject”/”predicate” 짝에 근접한 설명일 수 있습니다. 문장이 사실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던지고, 이에 대해 설명을 하는 두 가지 파트로 이루어지는 거죠.

요약하면 “문장 = 말하고 싶은 주제를 던지는 부분 + 그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 정도 되겠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주부와 술부 정도 될 듯하네요. 그런데 ‘주부’나 ‘술부’ 같은 용어도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꽤 많더군요.

결국 시나리오 2에서는 시나리오 1에서와 같이 상위언어에서 상위언어로 이어지는 구조적 접근이 아니라, 말하고 싶어하는 소재를 이끌어내고 이에 대해 설명을 함께 만들어 가는 의미적 접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법용어가 완벽히 자리를 잡은 성인이라면 첫 번째 접근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 이 사회는 너무나 많은 문법교육을 요구하죠. 거시적으로 보면 교실에서의 교사-학생간 소통 규약(여기에서는 문법용어를 지칭)을 확립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이 투입되고 있는 것입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문법용어 및 시험 때문에 영어를 포기하게 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꼭 필요한 비용인지 의문이 듭니다.

이런 면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문법용어와 형식적 측면을 배제하고 최대한 의미만으로 문법구조를 풀 수 있는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연령이 낮은 학생을 가르친다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이죠.

하지만 여전히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습속(habitus)에 뿌리를 둔 문법 설명은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조금씩 변해가는 중에서도 오로지 문법으로만 영어를 배운 이전세대의 교육방식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자신의 세력을 지켜내고 있다고나 할까요?

911 수업자료 하나

[911 관련 중고교 수업 자료] 오늘이 911이군요. 세월이 참 빠릅니다. 놀란 동생이 TV를 보라고 소리쳤는데 너무나 비현실적인 장면에 순간 영화 아닌가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만, 당시 테러공격으로 인해 수많은 비행기들이 항로를 돌려 캐나다의 Gander라는 도시에 착륙했습니다. 총 인구 9천명의 작은 도시였는데 하루 아침에 7천 명 정도의 승객이 밀려들었죠. 갑자기 사람이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나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Gander 주민들은 귀찮다 여기지 않고 성심성의껏 도왔습니다. 아무런 댓가 없이, 상대가 누구냐에 관계 없이 자신들의 시간과 정성을, 삶의 터전를 나누어 준 것입니다. 종교도, 국적도, 피부색도, 성적 지향도, 그 어떤 것도 Gander 주민들의 환대를 막진 못했죠. 이를 USA Today가 보도한 영상입니다. 자막이 있어서 틀어주기 좋을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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