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용론 단상

Posted by on Jul 9,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화용론(話用論, pragmatics)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문맥에 따라 말(話)을 어떻게 사용(用)하는가를 설명해내는 언어학의 하위 분야입니다. ‘적절성(appropriateness)’은 화용론의 뼈대가 되는 개념 중 하나구요.

모국어를 공유하고 동일한 사회 내에서 성장하며 일정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화용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것이 언어학 교과서의 암묵적인 가정입니다. 비슷비슷한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같은 말을 쓰며 자랐으니 언제 ‘미안합니다’라고 해야 하는지, 언제 ‘와 쩌네요’라고 해야 할지 모르기는 힘들다는 것이죠.

이런 가정이 순진한 것임을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온라인에서의 포스팅과 댓글을 보면 할말 못할 말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정치적 올바름을 비판한답시고 혐오의 언어를 내뱉는 사람들도 많구요. 때로 말을 고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말할 타이밍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구별해야 할 순간들은 수시로 찾아오죠.

각종 사건의 가해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보면 제대로 사과하는 법을 배우는 일만큼 어려운 게 또 있을까 싶습니다. 조금이라도 논란이 될만한 신문기사의 답글을 보면 처참하기 짝이 없습니다. 문맥도 적절성도 사라진 자리에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꼴이랄까요.

언젠가 길을 잃고 빙빙 돌아 무려 3천 원 정도를 더 받아간 택시 운전 기사는 결제를 마치고 제 카드를 돌려주면서 당당하게 말하더군요.

“먼길 돌아오셨습니다.”

말을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문맥은 사회문화적, 제도적, 이데올로기적 영역이 아닌 자신의 두개골 영역에 한정되어 있죠. ‘말은 소통의 수단이다’와 ‘문맥은 내가 정한다’ 사이에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입니다.

——

저 또한 이런 실수를 종종 합니다. 모르고 지날 때도 있고, 오해를 사서 억울할 때도 있고, 바보같은 말에 부끄러울 때도 있습니다. 실수를 알아채고도 사과할 타이밍을 놓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슬쩍 넘기기도 하고요. 언어학을 공부했다는 게 때로는 별무소용이라는 걸 깨닫기도 합니다.

그간 제 의미없는/바보같은/느닷없는/설명충같은/짜증나게 하는 답글에 마음 상했던 분들께 죄송합니다. 순전히 제 부족이요 잘못입니다. 앞으로는 좀더 적절한 언어사용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나의 영어공부 이야기 (2) – 고등학교 (전편)

I.
외고에 진학하면서 나의 영어공부 ‘성공기’는 자기기만이었음을 깨달았다. (성문시리즈의 진도와 독파 횟수로 대표되는) 친구들의 ‘실력’을 보며 중학교때의 노력이 하찮아 보였다고나 할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쫄 일도 아니었지만 당시 어린 마음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던 듯하다.

일단 보는 책부터가 달랐다. 나는 기본영어를 후반부를 처음 공부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몇몇 친구들은 이미 기본영어를 3-4번 마치고 종합영어를 보고 있었다.

‘종합’이라는 제목이 주는 압도적 포쓰. 기본영어 두께를 비웃는 볼륨감. 귀퉁이 빼곡한 깨알 글씨. 너덜너덜해진 책 귀퉁이.

우쒸. 이 인간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공부를 한 거야!!

당시 해외 거주 경험을 지닌 친구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두세 반에 한 명 정도 어린 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친구들이 있었다. 걔네들 영어 발음은 천상의 것이었다. 지상에 존재하지 않았어야만 하는 발음이었다고나 할까.

사실 나는 그런 발음에 익숙치 않았고 반감마저 가지고 있었다. 한국 애들이면 한국 애들답게 발음을 해야지. (말투 전환) 지가 뭔 미국인이냐? 미국인이야? 지금 와서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지만 당시엔 그리 느꼈다.

일 주일에 두 번 영어회화 시간이 있었다. 이게 나의 영어실력에 미친 영향은 어땠을까?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고등학교 때 회화를 했어? 엄청 좋았겠네.” 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와 정반대였다.

영어회화 한 시간 수업(고등학교이므로 45분 수업이었던 것으로 기억)에 내가 발화는 인사말과 Yes/No 정도. 어쩌다가 말을 할라 치면 턱턱 막혀 스스로에게 실망. 이 과정의 반복.

결국 몇 번 시도하다가 침묵의 단계로 들어섰다. (겉으로는 ‘회화시간에는 과묵한 아이’로 포지셔닝.) 그래서 고등학교 3년간 회화시간에 이야기한 문장이 몇백 개 안될 것이다. 돌아보면 회화수업비를 따로 내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게 한스럽다.

II.
고등학교 들어가서 첫 해 받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애들이 왜 이렇게 다 괴물같은 건가. (나중에 알고 보니 다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혼자 끙끙 싸매고 고민하다가 부모님께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모건 프리먼 급의 중저음으로 딱 두 마디를 하셨다.

“전학갈래?”
“자퇴할래?”

그래서 난 이야기했다.

“자퇴하기 전에 그래도 한 번 해볼게요.”

일단 충격 받고 그대로 물러나는 게 싫었다. 어떻게든 그 밀림에서 살아남고 싶었다. 그래서 영어의 고군분투는 다시 시작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리 비장할 필요도 없었는데. 어리다는 건 멋지고도 웃긴 것이다.)

III.
내 또래들이 대부분 그랬겠지만 고등학교 때 영어공부는 한마디로 ‘입시공부’ 였다. 학력고사 시절이어서 발음 문제가 출제되고, 문법 문제의 난이도도 상당했다. 무엇보다 주기적으로 보는 모의고사 점수가 진로의 모든 것을 말해주던 때였다.

살아남기 위해서 영어에 매달렸다. 1-2학년 때 꽤나 많은 시간을 영어에 투자한 게 모의고사에는 유효했다. 졸업할 때까지 영어과목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계속되었다. 외고에 다니면서도 말한마디 못하는 신세라니.

IV.
그나마 고등학교 영어 공부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풍부한 어휘 습득이다. 고등학생 치고는 상당히 많은 어휘를 외웠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어휘를 외우는 데 가장 기여한 요인은 ‘사전’이었다.

한 마디로 ‘사전을 끼고 살았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었고, 전자사전도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나는 혼비 영영한사전과 함께 3년 내내 동고동락했다.

특별한 비법은 없었다. 다만 주요 어휘라고 불리는 (주로 뜻이 엄청 많은) 놈들은 5번 이하의 뜻까지 외우려고 노력했다. 어떤 것은 15번 이상의 뜻까지 정리하고 예문을 적기도 했다. 주로 동사군들을 중심으로. 그렇게 정리한 두꺼운 단어장이 십수 권이었다. (이후 이 단어장들은 비극적 사건으로 사라지게 되고… ㅠㅠ)

말하기 꽝, 듣기 꽝의 영어실력이었지만 나름대로의 어휘실력을 길렀던 고등학교 시절.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그 때 쌓아 놓은 어휘 실력으로 대학교 4학년을 보냈으니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하편 계속)

나의 영어공부 이야기 (1)

<초등(아니 국…)학교 시기>

언제였나, 영어공부를 시작한 게… 아마 ABC쏭을 따라 부르기 시작한 건 5학년 말쯤이 아니었을까? 그 전에는 영어라는 말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널리 쓰이는 건 몰랐고 그냥 미국말인 줄 알았다. Thank you. Hi! 정도를 따라 했던 것 같다.

세상에 영어공부를 위한 책이 존재한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6학년 여름 방학. 같이 살던 외삼촌으로부터 단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책 제목은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알파벳과 주제별 단어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ABCD가 나왔었고, 대문자와 소문자가 나왔었던 것 같다. 글자를 따라 쓰는 연습도 있었던 것 같고.

본문은 주로 단어 위주였다. 1-12월의 이름을 그림-철자로 배우고, 계절의 이름도 배웠다. 비온다, 춥다 등의 ‘날씨를 나타내는 형용사’들이 기억나고, 유명한 지역의 지명을 영어로 읽어보았던 것도 같다. 뉴욕 뭐 이런 거?

돌아보면 이 시기 공부가 썩 만족스럽진 않다.

외삼촌은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렇게 발음이 좋지는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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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의 학습을 지금의 영어교육과 비교해 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사실 가장 큰 차이점은 “소리”가 없이 영어를 대했다는 것이다.
소리가 있었다면 외삼촌의 발음을 따라 했다는 것! 순식간에 그 발음에 익숙해져버렸다. 음하하…

사실 아동의 언어학습에 있어 자연스런 음성없이 언어를 처음 접한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렇게 한참을 공부했다. 중학교에서도 선생님이 진도에 맞추어 들려주시는 교과서 본문과 다이얼로그 외에는 영어 말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듣기평가도 활성화 되지 않았던 시절 아닌가.

중학교 초반까지 한 주에 한 번 외삼촌으로부터 ‘사교육’을 받았지만, 영어 소리는 너무나 낯선 것이었고, 나는 영어가 그렇게 재미있는 과목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즉, 영어를 암기과목으로 공부하고 있었고 단어-뜻 짝을 암기하는 식으로 공부 패턴을 잡아가고 있었다.

여기에서 영어공부의 첫걸음이 어그러진 것일까?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영어를 싫어하진 않았다.
암기는 나름 잘 했기 때문인가 보다.
혹은 삼촌이 조금 무서웠거나~

<중학교 시기>

I.
중학교 때 영어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은 오로지 성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암기과목으로 생각하고 공부해왔던 습관은 여전했다.

듣기평가는 아주 형식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듣기를 평가한다기 보다는 교과서의 본문을 제대로 암기했는지 평가하는 식이었다.

즉, 영어 소리 자체에 대해 익숙해지지 않더라도, 교과서 본문의 내용을 충실하게 암기하면 풀 수 있는 듣기 문제들이 많았다.

듣기 문제의 탈을 쓴 본문 암기 문제라고나 할까…

발음에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 영어는 ‘말’을 하기 위해 배우는 것인데, 교실에서 말하기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선생님들의 수업을 옮겨 보면 대략 이렇게 된다.
(거의 모든 분들의 패턴이 똑같았다.)

1. 오늘의 단어 – 오늘 배울 단어를 선생님이 읽어주고 반 전체가 따라한다. 보통 한 단어를 2번 정도 따라 읽고 뜻을 배우는 식. 아주 가끔 선생님이 학생을 일으켜 발음을 하게 하고, 그 발음이 적절치 않은 경우 형식적인 교정을 해주셨다. (야 너 그거 쥐프트 아니고 기프트야.)

2. 오늘 배울 내용 들어보기 – 처음의 Listening 부분은 한 번에 다 듣고, 본문 부분은 여러 번에 걸쳐 나누어 듣는다. 예습을 해 온 경우에는 듣기가 아니라 교과서 내용 확인이 되어버리기도 하였다. 보통 1번 정도 듣게 된다.

3. 교과서 해석하기 – 교과서 문장들을 하나씩 해석하는 과정이다. 필요한 경우 선생님께서 처음에 나온 “오늘의 단어”들을 상기시켜 주신다. 이때 교과서 가장자리는 필기로 빼곡해진다.

4. 문법 설명 – 교과서 해석에 필요한 설명을 해주신다. 해석 시 중간 중간에 문법이 나오기도 하고, 그 과의 중심 문법 사항을 따로 설명해 주시기도 하신다.

5. 다시 듣기 – 일단 한 번 해석이 끝나면 다시 테이프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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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위의 순서에 따라서 공부를 하였다.

교과서에 Further Study라는 심화학습 부분에서는 주요 구문과 문법 및 발음을 다루었다. 요즘에야 발음 문제가 시험에 거의 출제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발음 문제는 반드시 시험에 출제되었던 기억이 난다. 또한 문법 문제의 비중이 꽤 되어서, 교과서 본문 독해 시간에도 문법 설명을 꽤 길게 들었던 적이 종종 있었다.

Dialogue를 배울 때는 두 사람을 일으켜서 Role Play를 시키시기도 했다. 사실 말이 Role Play지, 역할을 맡아 책을 읽는 수준이다. 사실 그 ‘읽는 수준’도 안되는 학생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에 Role Play는 많은 경우 다시 ‘따라 읽기’로 자연스럽게 바뀐다.

교과서 말미의 연습문제는 그냥 숙제로 내준다. 다음 날 검사를 하셔서 안해 온 아이들은 손바닥을 자로 맞았던 기억…

본문 뒤의 Comprehension Check-up은 “너희들이 해봐”라는 말과 함께 그냥 넘어간다.

지금 돌아보면 완벽한 문법번역식 수업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의미있는 의사소통이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모든 학생들이 영어의 초보였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것은 그 당시 수업 시간이 위에서 묘사한 방식으로 1년 내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영어가 원래도 어려운 과목인데 저렇게 가르치니 재미가 더 없어졌다.

“그래도 다른 과목에 비해 잘 하는 과목 영어.”

그거 하나 붙잡고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잘하는 과목이니 계속 잘해야만 한다는 이상한 의무감이랄까… 그래서 사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영어 성적이 참 좋았었다.

그러나 나의 시련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II.

중학 때 영어교재는 교과서 + 두 권의 문법서였다.
그 유명한 성문 기초영문법과 성문 기본영어.
당시의 영어교육에서 빠질 수 없는 두 권의 명저(?!).

사실 주변에 영어를 제대로 공부하는 형 누나만 있었어도 나는 이 두권에 목을 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두 권의 책은 반드시 봐야 해. 그것도 달달 외울 정도로.”
라고 말했다. (비극의 시작~)

중간에 아버지가 안현필씨의 책을 두어권 사오셨다. 당시에는 성문에 대적할만한 세력이 없었고, 안현필씨의 시리즈 몇 권이 마니아층 사이에서 영어의 비법으로 통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안현필 시리즈를 본다는 것은 왠지 이단으로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독서실에 가면 누구 책꽂이에나 있는 성문 시리즈를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부터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까지 성문 기초영문법을 5번 정도 독파했던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 들어가기 바로 전 겨울방학 때 성문 기본영어를 반쯤 대충 봤고.

문제는 그거였다.

그렇게 공부해도 학교 성적은 잘 나왔고, 영어로 Communication할 필요도 없었고, 그러니 영어 듣기나 말하기를 늘려야겠다는 의지도 없었던 것이다. 문제집의 문제들은 독해 아니면 문법이라서 그럭 저럭 맞출 수 있었다.

그 달콤함이 고등학교 때의 쓰라림이 되었다.

흐흑….

III.

중학교 때의 영어공부 방법을 기억하면서 후회되는 점도 많지만 나름대로 스스로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도 있다.

여러 가지 면이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영어라는 과목을 ‘꾸준히’ 공부했다는 것이다. 특히 중학교 3학년 때는 하루에 1-2시간씩 거의 1년을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성문 기초영문법을 마지막으로 보고, 성문 기본영문법에 있는 문법과 독해를 꼼꼼하게 공부했다. 맨 뒤에 있는 구문 모음들도 꾸준하게 보아서 영어의 대표적인 패턴에 익숙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영어 자체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쌓게 된 시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외고 입시 원서 마감 며칠 전에 “외국어 고등학교라는 곳에 가볼래?”라고 했을 때에도 영어가 그렇게 걱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시험은 무지 어려웠다. ㅎㅎ) 결과적으로는 외국어 고등학교 준비를 하지 않고도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OO년도 더 된 일이다.

중학교 시절 영어공부를 요약하면…

1. 쓸데없이 문법에 너무 치중했다.
2. 듣기는 아주 아주 기초적인 것에 머물렀다.
3. 말하기는 아예 생각도 못했다. 이점은 매우 후회된다.
4. 읽기의 input은 꽤 되었으나 나머지 영역에서의 언어 input은 거의 없었다.
5. 영어를 거의 매일 공부하는 습관을 길렀다. 결과적으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 점은 가장 큰 소득이었다.

나름대로 영어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나, 외고에 진학해서는 그야말로 강력한 문화적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다른 과목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우물안 개구리식의 영어공부가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던 것이다.

(고교편은 다음 시간에 ^^)

학습법에 대한 어떤 우화

학습법 이야기 나온 김에 예전 일화 하나. 예전에 시험공부하는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 시험에 붙고 떨어지고 이게 참 묘한데, 그래도 제일 중요한 요인이 뭐인 거 같냐?
친구: 한두 가지로 설명하긴 힘들지. 운도 있고, 컨디션도 있고, 또 과목이랑 나름 맞는가 문제도 있고…
나: 그래도 한 가지 바로 생각나는 게 있다면…
친구: 음… 오래 공부하는 사람들이 보면 학습법에 관심이 많아. 전략을 짜는 건 좋은데 계속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거든. 어떤 교재가, 어떤 강사가, 어떤 암기법이 좋은지 계속 이리 저리 알아봐. 스터디를 기웃거리는 사람도 있고.
나: 그럼 붙는 사람은?
친구: 학습법 알아볼 시간에 공부를 하지. 자기 스타일을 찾는 거라고 해야 되나.
나: 아하!

한줄 요약: 학습법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역시 군대교수법!

영어교육에 대해 이리 저리 공유되는 글들을 보면 깊은 한숨이 나옵니다. 어제는 조선말기 지식인들이 한학을 해서 중국어와 비슷한 영어를 엄청 잘했다는 요지의 글이 보이더니 오늘은 군대교수법(Army Method) 찬양이군요.

열심히 반복하고 문장 통째로 암기하는 게 나쁠리가 없죠. 하지만 이런 방식이 영어학습의 주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결론이 난 게 40년은 족히 됩니다. 게다가 아래 논리를 보시죠.

“미국사령부는 고심끝에 유럽으로 파병될 군인들을 모아놓고, 자는시간만 제외한 하루 20시간동안 듣고 말하고 다시 듣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것을 6개월 동안 반복한 결과..” -> “다시말해 쓰고, 독해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우리나라의 영어교육법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어있다는 말이다.”

몇 가지를 짚어보면,

(1) 일단 논리가 이상합니다. 적진에 나가서 외국어로 소통하지 못하면 목숨이 왔다갔다할 수 있는 사람들을 20시간씩 ‘굴려가며’ 가르치는 상황과 한국 교실에서 영어교육을 하는 상황을 1:1로 비교할 수 있을까요?

(2) 우리 나라에서 영작문에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고요? 영작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지만 쓰기교육에 할애하는 시간은 미미합니다.

(3) 독해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게 문제입니까? 아니면 독해교육의 내용과 방향이 문제입니까? 인터넷을 활용한 의사소통이 많아지면서 말하기 듣기보다는 오히려 읽기 쓰기의 중요성이 커지는 직군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소셜미디어에 공유되는 대다수 학습법은 다음과 측면을 간과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1) 사회문화적 환경의 차이 – 아래 글에는 전쟁에 나가는 군사교육의 상황 vs. 한국 영어교육 상황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습니다.

(2) 개인차의 문제 – 학습 내용과 방식에 대한 선호를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3) 재미/동기 – 어떻게 학습을 지속할지에 대한 논의가 없습니다. 결론은 늘 ‘의지’죠. 학습에 있어 의지는 과대평가되고 왜곡된 개념입니다. (20시간씩 6개월… 군대니까 가능하죠. 사실은 학대고요.)

(4) 연습 및 기억(memory) 형성 메커니즘 – 언어를 암기하고 이것을 맥락에 맞게 끄집어내는 데 관여하는 인지 메커니즘에 대한 고려가 부족합니다.

자신에게 맞는 학습법을 선택하는 것은 개개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특정한 사례를 가지고 한국영어교육 전체에 대해 비판하려 할 때는 조금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사용한 단기 외국어 습득법

사회문화적 인프라스트럭처로서의 문해력과 교사 공동체

Posted by on Jun 29, 2017 in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생각의 흐름을 제멋대로 따라간 글로 전개가 매우 울퉁불퉁합니다.)

1. 깊은 이해를 좇는 사람들에게 대부분의 설명은 부족하고, 앎의 환상을 좇는 사람들에게 대개의 설명은 과하다.

그렇다면 ‘깊이있는 대중서’는 언제나 모순형용인가? 꼭 그런 건 아니다. 독자의 교양수준이 높다면 다양다종한 개념을 세세히 논의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면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문해력은 지식의 효율적인 생산과 분배, 혁신을 가능케 하는 인프라스트럭쳐다.

여기에 딜레마에 봉착한다. 어떻게, 누가, ‘인프라스트럭처’를 깔 것인가? (나도 공범들 중 하나지만) ‘문해력 타령’으로 해결될 수 있는 건 없다.

2. 이와 관련하여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교육개혁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 입시제도 개혁에 대한 논쟁 속에서 수업 자체에 대한 논의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다른 과목은 모르겠고, 영어를 보자. 영어수업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없다면 결국 영어수업 특히 고교 영어수업은 ‘입시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말이다.

3. 얼마 전 고등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매우 소박한 개혁안을 내놓았다. 대략 이런 제안이었다.

“애들하고 영어로 된 짧은 책 한권 읽으면서 토론하고 관련된 거 공부하고 하는 게 지금 교과서 배우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지금은 지문 읽고 문제 풀고의 연속인데 그게 진짜 영어를 공부하는 건 아니지 않나.”

4. 다시 처음 문제로 돌아가 보자.

문해력은 어떻게 키울 것인가? 이에 대한 손쉬운 답은 없다. 하지만 교육개혁에 대한 논의 속에서 문해력을 모든 과목의 중심에 놓는 것으로 상당한 진전을 이룰 수 있다.

쉽게 말해 모든 과목을 해당 지식과 개념에 대한 읽기, 쓰기, 토론하기 등으로 개편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돌아오는 답이 있었다.

“근데 문제는 선생님들도 대부분 글쓰기를 해본 적이 없다는 거…”

고개가 끄덕여졌다.

5. 며칠간 이 문제가 나를 괴롭혔다. 끝없이 돌고 돌아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답 없는 문제의 전형. 그러다가 아침에 커피를 내리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떠올랐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이분법 속에서 우리 교육은 해법을 찾지 못할 것이다.

“선생 대 학생”이 아니라 “조금 앞서 배우는 자와 새로이 배우는 자”를 상정해야만 객관적 평가라는 신화를 깨뜨릴 수 있다.

선생-학생의 관계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가 아니라 무지에 좀더 민감한 자와 무지에 둔감한 자들로 이해해야 한다.

결국 교사와 학생이라는 전통적인 권력관계를 무너뜨리는 데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5. 이런 맥락에서 교사1인당 학생수와 주당 수업시수, 과도한 행정업무를 줄이고, 그만큼의 시간과 자원을 교사들이 함께 공부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 교사는 가르치는 기계가 아니라 협력하는 지식인으로 성장하고, 그 열매는 자연스럽게 수업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교사들이 역동적인 학습조직을 꾸려 나갈 때 교사의 전문성이 확보될 수 있다.

결국 문해력이라는 사회문화적 인프라스트럭처 건설과 교사들의 삶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학교교육의 한계는 분명하지만 어린 시민들이 십수 년 시간을 보내는 교실을 무시하고 문해력을 신장시킬 방법은 없다.

진정성, 그리고 사기꾼 신드롬

Posted by on Jun 29, 2017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 No Comments

[진정성, 그리고 사기꾼 신드롬]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젊음을 탕진해 버린다고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나이든 이들이 지혜를 쓸 줄 모르지. (“People say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I disagree. I believe wisdom is wasted on the old.” – Ray Reddington, <Blacklist> 中)

진정함(authenticity)이 특정한 경험의 속성이라 믿는 이들에게 지혜란 ‘진정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말을 따르는 일’로 귀착된다. 물론 자신은 진정한 경험을 누구보다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 왜 아니겠는가? 이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다름 아닌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 판단을 내릴 때 구체적인 예를 얼마나 쉽게 마음에 떠올릴 수 있는가)이니 말이다.

이 ‘진정함의 화신’ 반대편에 자리잡는 것이 대학원생 등을 비롯한 지식노동자들이 종종 겪는 사기꾼 신드롬(imposter syndrome)이다. 다들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지만 자기 자신은 뭘 해도 부족한 듯한, 어쩌다 운이 좋아 자신이 속해서는 안될 집단에 속해 있는 듯한, 힘들여 이룬 성과도 ‘사기친 결과’로 해석하게 되는, 자신의 ‘무능’이 언제 탄로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일련의 ‘증상들’ 말이다.

오만한 진정성과 과장된 무능은 별개가 아니다. 모범 사례(best practice)는 대개 예외(exceptional case)이고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사례(worst practice)이기도 하다. ‘무능無能’은 순수히 개인적일 수 없다. ‘능能의 시스템이 의도적/비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사각지대일 뿐.

be about to에 대한 메모 둘

Posted by on Jun 11, 2017 in 수업자료, 영어 | No Comments

 

1. be to와 함께 가르치면 좋다. be to에는 ‘~할 예정이다’라는 뜻이 있다. to V 앞에 ‘대략, 근처에’라는 뜻의 about이 붙었으므로 “이제 막 ~하려고 하는”의 의미가 된다. (‘at about five o’clock’의 예와 같이 about에 ‘approximately’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2. be about to V 외에 be about p.p.나 be about ~ing도 쓰임을 알려주어도 좋겠다. 예를 들어 ‘이쪽 일 대충 끝났어’라고 할 때 “I’m about done here.” 정도로 표현 가능.

구동사(phrasal verb)와 구명사(phrasal noun)

한 페친께서 “run-down”이라는 구명사(phrasal noun)을 언급하셔서 관련 링크를 하나 공유합니다.

영어 학습 단계에 있어 상위 학습자와 원어민을 가르는 몇 가지 지점이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구동사(phrasal verb)의 자유로운 사용이죠. 영어를 꽤 잘하는 분들도 put off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자리에 postpone이나 procrastinate를 쓰거나, set something off 라고 쓰면 적당할 상황에서 cause something to begin과 같이 쓰는 걸 볼 수 있으니까요.

사실 저도 이러는 경우가 많아서 미국인 동료 하나가 ‘너는 왜 말하는 걸 글쓰듯 하냐?’라고 물은 적도 있습니다. 저는 당당히 ‘영어를 글로 배워서 그래.’라고 대답했죠. ^^

구동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바로 구명사(phrasal noun) 입니다. Report가 동사와 명사 모두로 사용되듯 run down 또한 동사로도 명사로도 사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명사로 사용되는 경우에는 띄어쓰기 없이 한 단어로 쓰거나 중간에 하이픈을 넣어주어야 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아래 링크에서 구명사(phrasal noun)의 다양한 예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phrasal verbs vs. nouns

아직 한참 남은 기말 단상

Posted by on Jun 8, 2017 in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1. 언젠가 서울비와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말 시험지를 걷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성적과 강의평가를 교환하며 학기를 마감하는 건 참 별로다.

2. 기말고사 일자를 바꿔달라는 요구를 거절당한 학생은 이제 더 이상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그 와중에 작은 위로는 나의 말에 따라 책장을 넘긴다는 것. 어떤 관계는 접힌 채 책 속에 갇힌 페이지처럼 회복의 기약이 없다.

3. 몇 차례 동영상 강의로 보강을 실시했다. 스크립트 없는 강의 녹화는 건 엄청난 내공을 요한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해서는 안될 일인 듯.

4. <언어와 사고>라는 과목에서 인지언어학 개론 쯤 되는 내용을 다루었다. 어렵지만 열심히 해주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그 자체로 흥미로운 내용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5. 한 학생은 읽기 자료 이해가 더딘 것을 두고 “배움이 느려 슬픈 짐승인가 봅니다”라는 메일을 보냈다. 나도 기말 때마다 ‘채점이 느려 슬픈 짐승’이 된다. 그런 학생의 늦은 과제 제출 + 나같은 선생의 딴짓 = 별로 하는 일 없이 성적입력 마감일까지 바쁨 바쁨.

6. <사회언어학과 영어교육> 과목, 이번 해에도 즐거웠다. 학부에 사회언어학 과목이 없어 학부와 대학원의 중간쯤 되는 성격으로 진행했는데, 그럭저럭 선방한 듯하다. 2년 전 이 과목을 두 번째 가르쳤을 때 강의내용을 책으로 묶어보려다 포기했다. 진로를 바꾸면(?) 시도해 볼까 한다.

7. 영어교육론/교수법 분야의 얕고 넓은 전공지식은 저에게 맡겨주세요. 여태껏 가르친 과목이 얼마나 많은지 이젠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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