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Arrival 수업 메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Arrival>은 언어와 소통, 시간과 경험, 기억과 운명 등에 대한 풍부한 메타포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가 언어학계의 오랜 논쟁거리인 언어와 사고의 관계인지라 제가 담당하는 <언어와 사고> 과목에서 보기에 안성맞춤이었죠. 지난 학기 영화를 보고 수업을 진행했는데요. 당시 메모했던 내용들을 소개합니다. (참고로 저는 이 영화가 지금 작업중인 #삶을위한리터러시 의 주제의식과 잘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1. 이 영화는 외계인과 인간의 조우를 기본 스토리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단지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영화를 꼼꼼히 보고 나서 이 구도를 우리 삶의 어떤 영역에 대한 메타포로 볼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2. 영화의 제목은 <Arrival>이지만 한국에서는 <컨택트>로 개봉되었습니다. 이 두 제목에서 어떤 차이가 느껴지나요? 영화를 본 후에는 이 두 제목의 차이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3. 언어학자 Louise Banks와 물리학자 Ian Donnelly의 첫 만남에서 Ian은 Louise가 쓴 책의 한 구절을 읽어줍니다. “Language is the foundation of civilization. It is the glue that holds a people together. It is the first weapon drawn in a conflict.”라는 부분이었죠. 이 부분이 영화의 처음에 배치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분들이 언어학에 관한 책을 쓴다면 언어를 어떻게 멋지게 소개할 수 있을까요?

4. 왜 영화의 주인공이 하필 언어학자와 물리학자일까요? 사실 학자 둘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무척 드물죠.

5. “그들이 반응을 보여도 뜻을 모르죠”라는 대사를 만나게 될 겁니다. ‘반응(response)’과 ‘뜻(meaning)’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어떤 경우에 반응을 보여도 뜻을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반응의 뜻을 상관하지 않고 그저 반응하진 않나요?

6. “So what happens now?” “They’ll arrive.” – 헵타포드와의 첫 만남에서 나오는 대사입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들이 올 겁니다.’라고 답하는 것이죠.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영화의 제목인 ‘Arrival’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냐는 질문에 ‘올 거야’가 답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7. 우주선이 세계 도처에 나타났을 때 뉴스에서 기독교계의 해석이 스쳐 지나갑니다. 지금 세계 도처에 UFO가 출몰한다면 기독교계를 비롯한 여러 종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8. Louise가 가르치는 첫 단어는 “Human”입니다. 이건 적절한 접근법일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혹은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9. 8번의 질문과 연결해서 미지의 존재를 만났을 때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려 하는 것은 적절한 일일까요?

10. 언어를 가르침에 있어서 질문을 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질문이 무엇인지 이해시켜야 한다’는 장면이 나오죠. 인간의 언어에는 어떤 가정들이 담겨 있나요? 평서문, 의문문, 감탄문, 부정문, 가정 등의 범주는 우리에게 어떻게 학습되나요?

11. Louise는 “They need to see me.”라고 하면서 우주복을 벗습니다. 이것은 일련의 방역체계를 무력화시키는 일입니다. 이 장면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어떤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12. 헵타포드 둘에게 “애봇”과 “카스트로”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들을 어떤 식으로든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죠. 이 같은 labeling은 반드시 필요한가요? 우리에게 이름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군가 우리를 ‘자기 마음대로’ 부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13. 영화를 관통하는 학설은 사피어-워프 가설입니다. 워프 가설의 내용을 살펴본 바 있는데요. 이 내용은 영화 속에 잘 녹아들어 있나요? 어떤 면에서 그런가요/그렇지 않은가요?

14. 각국간의 교신이 끊기고 소통이 단절되는 순간 전쟁은 가까워 옵니다. 이것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아래 대사를 실마리로 이에 대한 생각을 전개해 봅시다.

“We need to sit on this information till we know what it means, so we aren’t sharing it with our enemies. We must consider the idea that our visitors are prodding us to fight among ourselves until only one faction prevails.”

15. Louise의 딸 Hannah는 앞뒤로 읽었을 때 동일한 팰린드롬(palindrome) 즉 회문입니다. 영화의 구성 또한 그렇게 되어 있죠. 헵타포드의 언어도 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일련의 장치들이 노리는 바는 무엇일까요? 우리 삶에서 이런 ‘회문적’ 경험을 하는 경우가 있을까요?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하고도 단선적 사고에 갇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16. 애봇과 카스트로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자신이 맞을 운명을 이미 알고 지구에 왔습니다. Louise도 영화의 말미에 ‘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해서 삶의 방향을 바꿀 것인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죠. 지구상에 온 외계 생명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17. 아래는 제가 ‘시간과 기억’이라는 관점에서 Arrival의 원작인 <Story of your life>에 대해 써본 쪽글입니다. 본격적으로 과제를 작성하시기 전에 한두 가지 테마를 가지고 영화에 관한 글을 써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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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기억이라는 주제로 본 Arrival>

1. Arrival의 원작인 <Story of Your Life>는 나레이션 형식으로 진행된다. “I remember”가 자주 등장해서 세보니 약 12번 정도이다.

2. 우리가 보통 remember를 쓰는 것은 다음 두 상황이다.
(1) 현재 말하는 시점보다 앞서 일어난 일. 즉 과거의 일.
(2) 현재 말하는 시점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 즉, 미래의 일.
따라서 영어를 기준으로 remember 다음에는 I remember that I did that. 이나 I remember that I will have to do it. 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물론 remember 다음에 조금 다른 내용이 올 수도 있다. Remember you are a teacher.는 “너의 교사로서의 지위를 잊지 말아라”는 뜻이 될 것이다.

3. Arrival의 나레이션 중 다수는 “나는 네가 …할 것이라는 걸 기억한다”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희한하다. 분명 기억하고(remember) 있는데, “~했던 것”도 아니고, “(일어나지 않았지만) ~할 것”도 아니다. 인간의 언어에 존재하지 않는 내용 형식인 “(이미 일어난 일인데) ~할 것이라는 걸 기억한다”이다.

4. <과거-현재-미래>가 방향이 있는 직선이 아닌 하나의 평면에 들어올 때 Remember는 Know와 동의어가 된다.
우리는 기억하는 것과 아는 것의 구분이 없어진 세계. 예측도 없고 회상도 없는, 모든 것이 ‘지금’인 세계를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

5. 그렇다면 필자가 쓴 “이미”, “과거”, “미래” 등의 단어는 쓸모가 없어지는 세계 아닌가.

6.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이런 세계를 경험하고 체화한 것은 주인공 루이스일 뿐, 다른 이들은 이 세계를 이처럼 인식하지 않는다. 수십 억의 인구 중 오로지 한 사람만이 이 세계를 실제로 경험한다.

7. 여기에서 또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Remember = Know”인 사람과, 이 두 가지가 구분되는 사람 사이의 소통은 가능한가? 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것인가? 사고체계가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같은 언어’로 소통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8. 언젠가 기술이 발전하여 인간의 뇌가 생성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초고해상도로 스캔하고 이를 집적된 정보시스템으로 만들면, 이 시스템은 일종의 ‘헵타포드적’ 인지를 할 수 있을까? 우리 삶의 모든 정보가 집적된다면, 그 모든 기억을 어떤 랙(latency)도 없이 끄집어 낼 수 있다면 우리는 삶을 직선이 아닌 전체로 인지할 수 있을까?

9. 한편 언어 자체가 헵타포드적 성격을 띄고 있지 않나? 수많은 시간을 고스란히 흔적으로 담고 있는 시스템. 하나의 노드가 전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토폴로지. 공시성과 통시성이 엇갈리는 하나의 점. 지금 내가 쓰는 ‘시간’이나 ‘기억’이라는 단어는 이 시대가 약속한 기호이자 내 삶이 채워 넣은 의미장이니 말이다.

10. 가정해 보자. 꿈 속에서 다음 날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는 나를 만나고, 그것을 일기로 기로했다. 다음 날 프리젠테이션을 하면서 계속해서 데자뷔를 느낀다. 이를 다시 기록으로 남긴다. 이 모든 기록을 읽은 누군가가 나의 프리젠테이션을 기억한다. 얼마 후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는다. 몇 년 후 그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로 착각하는 상황에 이른다. 그렇게 기억은 시간을 거스르고 인간의 뇌를 ‘숙주삼아’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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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헵타포드의 ‘문자’에 대한 쪽글입니다.

영화는 인간과 헵타포드가 문자를 통해 소통하는 설정을 택합니다. 그런데 헵타포드의 ‘문자’가 인간의 문자 체계에 딱 들어맞는 체계인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시각채널(visual channel)을 통해 무언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문자체계임이 분명해 보이지만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 헵타포드의 ‘문자’는 인간의 문자체계와 유사하면서도 제스처의 특성을 갖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구어/문어 이분법이 딱 들어맞지 않는 체계인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말/글 체계가 헵타포드의 언어에 그대로 들어맞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이 ‘글자’를 쓰는 방식이 자신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무언가를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인간이 주로 손과 팔의 움직임을 통해 특정 메시지를 만들어 내듯이, 그들은 자신의 몸 안에 있는 그 무언가를 밖으로 내뿜어서 특정한 패턴을 만들어 냅니다. 신체 외부의 매개를 이용하는 인간의 문자체계와는 사뭇 다르죠.

또 하나는 그런 문자가 잠시 있다가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문자 시스템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쓴 글자야 파도가 와서 쓸려가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잠깐 옆으로 새자면 이런 면에서 ‘혈서’는 일반적 기록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점하게 되는 쓰기방식입니다. 인간의 내부에서 무언가를 끄집어 내서 기록을 하거든요. 게다가 색깔도 엄청나죠.) 위의 두 의미에서 헵타포드의 ‘문자’는 인간의 제스처와 문자의 특성을 묘하게 통합하고 있는 시스템으로 보입니다. 반반 섞어 놨다는 뜻은 아니고, 오묘하게 통합된 시스템이죠.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1) 헵타포드의 음성언어: 헵타포드의 문자 = 인간의 음성언어: 인간의 문자 라는 등식은 조금 위험해 보입니다.
(2) 인간의 언어가 구어/문어라는 이분법을 명확히 보이는 데 반해 헵타포드의 언어는 구어와 문어의 경계가 불분명해 보입니다.
(3) 그들의 문자체계는 인간이 구사하는 구어의 주요한 부분인 제스처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고 생각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Engadget의 흥미로운 아티클을 소개합니다.

<Arrival>을 보며 헵타포드의 언어가 치밀하게 그려졌다 생각했는데 이런 뒷얘기가 있군요. 제품 디자이너인 Patrice Vermette과 울프람 알파의 Stephen Wolfram이 합작해서 실제 언어에 해당하는 구조를 디자인하고, 이를 토대로 100여 개의 로고그램으로 만들었다는 것.

“Bringing the language to the screen was a joint effort between designer Patrice Vermette, science consultant Stephen Wolfram — of Wolfram Alpha fame — and his son Christopher Wolfram. All told, some 100 “unique logograms with embedded words and phrases, with mutable components” were crafted for the film.”

https://www.engadget.com/…/dissecting-the-alien-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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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Arrival>에서 나타난 타자화(othering)에 대한 간략한 쪽글입니다.

Preemptive Othering and <Arrival>

<Arrival> is relevant to the present time not because we are approaching the era of space travel or technological singularity, but because we are going through the era of intolerance, reversing pluralist, multi-cultural worldviews and threatening the very existence of intersubjective spaces. The tyranny of preemptive othering emerges when the art of thick description and deep interpretation dies. We need more time to understand each other. We also need to note that their time might be different from our time. Ultimately, understanding others is the only way to understand ourselves. (I don’t know whether someone has used the term ‘preemptive othering’; yet, the expression dawned upon me whiling watching th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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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Arrival>의 주제의식과 관련된 일종의 브레인스토밍입니다.

Probably i am going to use <Arrival> as a major theme for my <Language and Thought> class this semester. Here are some random ideas about what to discuss in the class. By the way, the movie is so breathtakingly beautiful and also full of language-related allusions and intriguing symbolism. Highly recommended for my linguists and applied linguists friends!
Whorfian view of language and thought / Neo in Matrix vs. Louise in Arrival / Free will vs. Destiny / Palindrome and how we(they) experience time / C.S. Lewis’s notion of ‘God’s time’ vs. human time / linear time and circular(or spiral) time / time travel / prerequisites for communication / Barriers and empathy / Symbolism in the movie / Why physicist & linguist? / How to define others and us / Words as a weapon vs. words as a gift / Why analyze and teach written language, not spoken? / Concepts, language, and (Un)translatability / So what is time?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리터러시, 지력이 아닌 공존의 문제

“교수님, 부교재가 뭐예요?????”

밤 10시 반. 문자가 왔다. 2012년. 한국에서 처음 강의를 맡았을 때의 일이다. 밤늦게 학생에게 문자메시지를 받는 게 영 어색했는데 물음표까지 다섯 개라니. 이건 무슨 긴급상황이길래 밤중에 이메일도 아닌 문자를, 그것도 물음표 다섯 개를 연달아 써가면서 보낸다는 말인가? 이건 격식에 어긋나는 일 아닌가? 황당한 기분이었다.

나의 놀람은 이내 ‘그런가보다’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이후 비슷한 일을 여러 번 당했고, 문장에 느낌표나 물음표를 연달아 사용하거나 이모티콘을 삽입하는 경우도 적잖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오래 겪다 보니 이젠 그런가보다 한다.

전통적 채널이 새로운 채널에 자리를 내주고, 쓰기 관행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세대간 소통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단지 물음표나 느낌표의 개수가 아니라 쓰는 용어, 문법의 허용 범위, 미디어의 사용 등 전반적으로 ‘충돌’의 여지들이 커진 것이다. 상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나에게는 껄끄러울 수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문화 가족이나 이주노동자들의 증가로 여러 문화들이 공존하는 시대가 되었다. 인터넷에서는 한국어 영상에 여러 언어로 답글이 달린다. 세대간 커뮤니케이션 스타일과 관행의 차이는 급격히 커지고 있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편가르기’가 심심찮게 일어난다. 그런 면에서 지금 리터러시의 문제는 공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나의 실력을 쌓는 교육이 아니라 타자와 함께 서는 교육이 절실한 이유다. 리터러시는 개인의 실력이 아닌 함께 사는 기예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덧. “부교재는 OOO입니다!!!!!!!!!”

#삶을위한리터러시

교육을 위한 언어학 이론

촘스키를 주축으로 한 형식언어학은 시대를 풍미한 언어학의 본류로서 공부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문법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기능언어학이나 인지언어학의 쓸모가 훨씬 더 많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개개인마다 ‘더 나은 문법체계’에 대한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모두를 조금씩 공부해 본 입장에서 교육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런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에서 촘스키 언어학 대신에 다른 언어학을 공부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한다.

‘유튜브의 시대’와 학교의 권력

전통적으로 학교교육의 내용은 ‘텍스트 중심 문해력’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조금씩 보급되고 있지만 현재의 교육이 텍스트 중심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필자가 처음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한 게 1995년이다. 이후 월드와이드웹이 급부상하고 전산망이 빠르게 보급됨과 동시에 대중 개개인이 운용할 수 있는 컴퓨팅 자원도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등은 웹의 주요 플랫폼으로 자리잡았고 모바일을 통한 정보습득과 공유가 일상이 되었다. 최근 영상매체의 증가로 인해 적어도 10대 전후의 세대에 있어서는 문자 기반 읽기자원의 중요성이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담론과 교육 이론가들이 이런 상황을 예견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1996년 J. P. Gee와 N. Fairclough 등의 학자들은 ‘New London Group’이라는 연구집단의 이름으로 하버드 교육 리뷰에 <A pedagogy of multiliteracies: Designing social futures>라는 기념비적 논문을 발표한다. 이들은 기존의 리터러시 교육이 곧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 주장하면서 수백 년간 근대교육을 지배해온 텍스트 중심의 리터러시 교육에 일대 변화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게 무려 23년 전 일이다. 그들의 주장이 묻힌 것도 아니다. 위 논문은 2천 여 회 인용되었고, 이후 그들의 주장을 엮은 책 <Multiliteracies: Literacy Learning and the Design of Social Futures>이 라우틀리지에서 출판된다. 교육 관련 서적으로는 드물게 피인용 회수가 4천 회에 육박한다. (구글 스칼라 기준) 한 가지 주장을 담은 이야기가 6천 회 이상 인용되는 것은 실로 드문 일이다. 적어도 학계에서는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럼에도 텍스트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한국의 학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일부 수행평가의 예외는 있으나 내신과 수능은 기본적으로 전통적 지필평가의 포맷을 고수하고 있다. 정보의 바다 유튜브의 시대, 학생들은 여전히 단일 국가기관이 발행한 EBS 수능특강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기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크게 세 가지 원인에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기존 제도의 관성이다. 한국교육의 실질적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평가체제의 변화가 필수다. 그런데 이는 실로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다. 평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교육내용을 바꾸어야 하고 교육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당연히 교육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지식을 익혀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변화인 것이다.

둘째는 근본적인 이유다. 여전히 텍스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학교교육의 기반이 되는 학문체계는 텍스트 위에 올려져 있다. 과학과 기술, 지식생산은 압도적으로 문자에 의존한다. 학술 및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은 문서로 이루어진다. 흔히 말하는 ‘고급지식’의 생산, 축적, 공유, 재가공 등 제반 활동이 텍스트를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영상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의 변화를 받아들여 교육을 본격적으로 재편하는 것이 어떤 유익을 가져다줄지 알 수 없다.

마지막으로는 좀더 솔직한 이유다. 기성세대는 새로운 세대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해야 할지 잘 모른다. 알고 있는데 안한다기 보다는 몰라서 못하는 측면이 큰 것이다. 이리저리 단편적인 이야기들은 난무하지만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만큼의 지식과 노하우, 이론적 틀이 존재하지 않는다.

언젠가 한 친구가 이런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를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는 시대다. 그간 인류는 다음 몇 십년의 변화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교육의 판을 짰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쩌면 인류 역사상 기성세대가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장 감을 잡기 힘든 시대일지도 모른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로 대표되는 새로운 미디어의 시대이지만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학교교육은 여전히 강력하다. 위의 이슈들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 구조는 쉽게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변화하지 않는 학교를 소위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어떻게 평가할지는 자명하다. 그들이 힘을 갖게 될 때에도 이 관성이 유지될까? 그 시기를 준비하는 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지금 이 모습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참고: A pedagogy of multiliteracies designing social futures
http://newarcproject.pbworks.com/f/Pedagogy+of+Multiliteracies_New+London+Group.pdf

#삶을위한리터러시
#디지털리터러시

 

Four Resources Model: Critical Literacy

호주 빅토리아 주 교육훈련과(Department of Education and Training)의 Literacy Teaching Toolkit 사이트. 리터러시 교수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Critical) Literacy pedagogy를 논의할 때 자주 등장하는 Four resources model을 찾다가 발견하게 되었다. 관련된 자료는 많지만 역시 웹사이트의 가독성이 중요한 듯. 참고로 유아 및 초등수준의 자료가 대부분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4 Resources Model
https://www.education.vic.gov.au/school/teachers/teachingresources/discipline/english/literacy/readingviewing/Pages/fourres.aspx#decoder

https://www.education.vic.gov.au/school/teachers/teachingresources/discipline/english/literacy/Pages/default.aspx

영어교육 응용언어학 관련 강의 목록

Posted by on Jun 10, 2019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대학원 후반부터 지금까지 40개 과목을 가르쳤네요. 조금씩 겹치는 것들을 제외해도 서른 과목을 훌쩍 넘기는군요.

1. Introduction to Academic Writing 1
2. Introduction to Academic Writing 2
3. Technology-enhanced Language Learning
4. Second Language Writing
5. 어휘와 문법 지도법
6. 영어교육방법 및 교육공학
7. 영미어문교육의 기초
8. 사회언어학과 영어교육
9. 사회문화이론과 영어교육
10. 제2언어 쓰기와 영어교육
11. 응용언어학 특강
12. 언어와 사고
13. 영어독해
14. ICT 영어강독
15. 멀티미디어와 영어
16. 영어작문
17. 학술적 글쓰기의 실제
18. 초등영어 교육방법론
19. 영어수업 설계 및 실기 1
20. 영어수업 설계 및 실기 2
21. 영어 말하기 듣기 지도법
22. 영어 읽기 쓰기 지도법
23. 영어학개론
24. 영어교재 연구 및 지도법
25. 제2언어습득론
26. 영어 문법
27. 영어교육 방법론
28. 초등영어 쓰기 지도법
29. 영어 어휘 지도법
30. 영어 문법 지도법
31. 영어 쓰기 지도법
32. Second Language Acquisition Seminar
33. Language Use and Culture
34. 초등영어 교수법 세미나
35. 초등영어 교수법의 이해와 적용
36. 초등영어 양적연구 방법론
37. 초등영어 교육론
38. 초등영어 듣기 말하기 지도
39. 초등영어교수법: 코퍼스 언어학을 중심으로
40. 멀티미디어 초등영어 현장연구

강사 지원 서류 준비하면서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이제 좀 덜 가르치고 좀더 잘 가르치고 싶네요.

비고츠키의 마음관

“시계의 발명 이래 우리는 정신을 일종의 기계에 비유하는 것에 익숙해 있다. 그리고 현재의 심리학에서는 컴퓨터와 같은 구조를 갖추고 움직이는 정신을 ‘실재시’한다. 심리학에서 채용하는 컴퓨터의 메타포는 ‘내부’를 반드시 상정한다. 정신은 피부 혹은 두개골 등을 경계로 상자 속에 갇혀 있는 어떤 실체로 상정되고 그 뚜껑을 열었을 때 시계 혹은 컴퓨터의 본질이 보인다는 메타포다.

이러한 유비는 ‘무엇을 담아 놓을 수 있는 상자’같은 것으로 마음을 영상화, 공간화시키는 태도다. 이것은 심리학자들뿐만 아니라 일상인들이 마음에 대해 갖는 기초적인 상상력을 지배한다. 그러나 김영민(1998)이 지적하고 있듯이 마음을 상자같이 꽉 막혀진 어떤 것(something)으로 보는 소위 ‘명사적 사고(Nounal mode of thinking)’*는 실험과 검증을 거쳐 밝혀 낸 생리학적 탐구 결과가 아니라 잘못된 유비 관계가 빚은 시각적 오류에 가깝다.

비고츠키 또한 어떤 닫혀 있는 상자로서 ‘마음’을 그리지 않는다. 비고츠키의 도구를 포함하는 마음(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도구를 상정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비고츠키의 마음관이다)은 어디까지나 실재의 외부 혹은 표면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인다. 피부를 경계로 닫힌 공간이라기보다도 오히려 실재의 도구에 의한 자기 자신의 제어라는행위의 성질을 빗댄 것이다. 도구는 자연으로 향한 ‘외적 활동의 수단’이다. 이에 비해 심리적 도구, 즉 ‘기호’는 ‘인간 자신의 제어를 위한 필수적 수단’이다(Vygotsky, 1987:130)”

*’Nounal’ 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는지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언어학에서는 ‘nominal’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박동섭, <레프 비고츠키> (커뮤니케이션 북스, 2016). 50-51쪽.

#비고츠키 #사회문화이론

한국교육의 모순

Posted by on May 30, 2019 in 단상, 수업자료, 집필 | No Comments

한국의 교육정책과 평가시스템은 너무나 빠르게 변한다.

하지만 한국교육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두 문장 사이의 간극에

한국교육의 비극적 모순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신라면, 어떻게 발음하시나요?

‘신라면’의 발음 – 결과발표

1. 무려 156분이 답을 해주셨습니다. (아 신라면이 매워서 슬프다고 표시하신 분까지 하면 157명이네요.)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1위는 ‘신나면’이 차지했네요.*

‘신라면’의 발음, 어떻게 하시나요?

/신라면/ 63명 0.404
/실라면/ 21명 0.135
/신나면/ 72명 0.462

2. 제가 이 설문을 하게 된 동기는 지난 학기 한 수업 시간에 ‘신라면’ 발음이 화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학교 3학년 수업에서 2/3 이상의 학생들이 신라면을 /실라면/으로 발음한다고 답했을 때 저는 적지 않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3. 전통적인 설명에 의하면 ‘신+라면’과 같이 ‘신’을 별도의 이름으로 인식할 경우 ‘신라면’으로 발음할 수 있고, 하나의 이름으로 인식한다면 ‘신나면’으로 자음동화를 적용해서 발음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했었죠.

4. 그런데 수업 시간에 20여 명의 학생들 중 15명 정도가 /실라면/으로 발음을 한다는 겁니다. 충격이었던 이유는 다음 두 가지입니다.

5. 제 경우에는 ‘신나면’이라고 주로 하고, 광고에 나오듯 ‘신~’을 길게 빼서 발음하는 경우에는 ‘시~ㄴ라면’에 가깝게 발음하는 듯합니다. 주변에 여쭈어보니 이런 경향이 나타나더군요.

6. 아래 광고 두 편(하나는 오래 전 강부자/최수종 광고, 다른 하나는 최근의 하정우 광고)에서도 ‘신나면’으로 판단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b2DD0qCgGQ (하정우)
https://www.youtube.com/watch?v=Tb2DD0qCgGQ (강부자/최수종)

이런 이유에서 저는 ‘신나면’이나 ‘신라면’을 예상했습니다.

7. 아까 답변해 주신 분 중에서 ‘신라면’은 /실라면/으로, ‘진라면’은 ‘진나면’으로 발음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조금 난감합니다.

8. 저는 이런 현상을 전통적인 경제학과 행동경제학의 설명방식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경제학과 같은) 규칙 기반의 설명에서는 언중이 하나의 패턴을 따라 동일한 발음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적 설명을 따르면) 개개인의 발음은 표준규칙에 의해 움직인다기 보다는 자신의 주변 환경, 인상적이었던 발음 등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9. 저의 가설은 연령에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는다는 것이었는데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랑해요 즉 /실라면/을 선택해 주신 분들 중에 연령이 비교적 낮은 분들이 다수셨거든요. 하지만 의외로 연세가 있는(?!) 분들도 계셔서 세대간 차이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10. 물론 이 설문을 (1) “‘신라면’을 천천히 읽어보세요”라는 지시문과 (2) “신라면 광고를 찍는다고 생각하고 ‘언제나 맛있는 신라면’을 연기해 보세요”와 같은 지시문을 주었을 때로 분리해서 실시한다면 아래와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 있습니다. 수십 년 전 사회언어학의 아버지 Labov가 지적한 바 있듯이 말이죠.

11. 저의 감으로는 ‘안녕하세요’에서 ‘요’의 발음도 상당히 많이 변화한 것 같습니다. 입을 오므려 정확히 /요/를 발음하는 경우는 분명 젊은 세대로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고요. 이런 변화가 하나 둘이 아니겠지요.

12. 아무튼 한국어는 철자 그대로 소리를 낸다는 생각은 전혀 근거가 없고, 하나의 철자도 이렇게 상당히 고르게 갈릴 수 있습니다.

13. 저는 이런 예를 들어 외국어 발음에 대한 메타지식으로 활용합니다. 한국어도 이렇게 발음이 갈리는데 외국어 단어의 발음도 당연히 갈라질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식으로 말이죠.

14. 이상으로 신라면/신나면 or 신라면 or 실라면/에 발음 설문에 대한 간략한 결과보고를 마칩니다. 응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한국 수능시험과 수능 연계교재, 교과서의 수준비교

1. 최인철과 김재은의 연구 (2015)*에 의하면 EBS 수능 연계 교재와 수능 영어의 렉사일 지수는 교과서의 렉사일 지수에 비해 매년 100∼300가량 높게 나타남. 구체적으로 이게 무슨 말인지 좀더 살펴보면 아래와 같음.

2. 미국의 교육기관 Common Core State Standards Initiative
(CCSS)의 2012년 연구에 따르면, 미국 고교 10학년의 경우 1,050L∼1,260L 사이의 텍스트를 주로 학습. 11-12학년의 경우에는 1,185L∼1,385L 사이의 텍스트를 공부

3. CCSS 자료에 따르면 한국 고교 영어 교과서, 구체적으로 영어 I과 II의 렉사일 평균 지수 982L는 미국 교과과정상 6∼7학년 정도의 렉사일 텍스트 기준. 다시 말해 한국 고등학교 영어교과서의 전체 수준은 미국 중1 정도가 보는 책에 대응.

4. 이에 비해 EBS 수능 연계 교재와 수능 영어의 경우, 최저 1,149L에서 최고 1,288L까지의 지수를 보임. 이는미국 11, 12학년에 해당하는 렉사일 지수.

5. 이와 같은 분석에서 고등학교 교과서와 수능 연계교재, 수능 사이에는 상당한 난이도 간극이 있음을 알 수 있음. 이 분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중1 텍스트 읽다가 고3 텍스트 읽는 꼴.

6. 물론 위의 분석은 텍스트 난이도를 다각도로 비교했다기 보다는 렉사일 지수라는 단일하며 한정된 지표로 텍스트 수준을 비교했다는 점에서 명백한 한계를 지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와 수능(연계) 텍스트 사이에 간극이 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어 보임.

7. 평가를 위한 최적(?)의 전략 구사라는 요인도 있지만 이러한 텍스트 내적 요인 덕에 학생들이 해석을 줄줄 외우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음. 영어능숙도가 낮은 학생의 경우에는 미국 고등학교 2-3학년 수준의 텍스트를 읽어낼 재간이 도무지 없음.

* 최인철 & 김재은 (2015).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 EBS 수능 연계 교재,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코퍼스기반 난이도 비교 분석. 멀티미디어 언어교육학회. 18(1), 59-92. Kim, Jae Eun & Choi, Inn-Chull. (2015). A corpus-based comparative analysis of linguistic difficulty among high school English textbooks, EBS-CSAT prep books, and College Scholastic Ability Test. Multimedia-Assisted Language Learning, 18(1), 5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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