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ear you”

‘듣다’라는 의미로 주로 쓰이는 ‘hear’에는 ‘이해하다’라는 의미도 함께 담겨 있다. 듣는 일(지각)과 상대의 마음/의견/상황/생각 등을 이해하는 일(인지)이 한 단어 안에 쏙 들어가 있다.

그래서 “I hear you.”라는 말을 좋아한다.

돌아보면 상대의 말을 다 들어보지 않고도 공감한다 생각한 적이 많았고, 상대방을 이미 이해하고 있다는 믿음 하에 상대의 말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적도 있었다.

상대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해하기. 다 듣지 않고 알 수 있다 믿거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지 않기. 지각과 인지 사이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기.

“I hear you.”가 내게 전해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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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용어 사용 단상

Posted by on Feb 17, 2019 in 단상, 삶을위한영어공부, 영어, 집필 | No Comments

여전히 많은 교사/강사들은 문법을 설명할 때 ‘메타언어 용어(metalinguistic terms)’를 종종 사용한다. (‘메타언어’는 언어에 관한 언어를 의미하며 문법용어가 대표적이다.) 돌아보면 나 또한 오랜 시간 메타언어 용어를 사용해 가르쳐왔다. 그런데 3년 남짓 실력이 중간 쯤 되는 중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런 관행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한 적이 있다.

적지 않은 선생님들이 ‘구’나 ‘절’, ‘구문’ 같은 용어를 별 생각 없이 사용한다. 예를 들면 “분사구문” 파트를 가르칠 때에는 “절을 구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 빠짐없이 나온다. 여기에서 큰 병목이 발생한다.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중고생 중에 ‘구’와 ‘절’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 ‘시제’와 ‘시상’, ‘법’과 ‘태’와 같은 용어들은 또 어떤가?

통계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지만 경험상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런 용어가 학생들의 귀를 닫고 마음을 닫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는 것.

실제로 내가 만났던 두 학생은 중학교에 진학해서 영어가 싫어진 가장 큰 이유로 ‘문법설명이 어려워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수업’을 꼽았다. 겨우 두 학생이 겪었던 영어교사들의 이야기를 일반화할 생각은 없지만 문법용어 사용이 여전히 널리 퍼져있음을 시사하는 일화다.

영어교육에서 메타언어 용어 즉 문법용어를 써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자주 제기된다. 절대적으로 옳은 정답은 없을 것이다. 내가 내린 소결론은 이렇다. (1) 되도록이면 문법용어를 최소한으로 사용한다. (2) 만약 꼭 사용해야 한다면 학생들이 관련 용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확실히 하자. (3) “‘OO’가 무슨 말인지 알지?”라는 질문에 대해 “네”라고 답하는 학생들 중 다수는 사실 긴가민가 하고 있는 것이다.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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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에 대한 감각, 만남의 경험, 그리고 상상력

적어도 내가 만난 많은 학생들은 어학연수와 같은 해외 체류를 영어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 중 하나로 꼽았다. 해외에서의 생활이 영어공부의 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인풋의 양이 늘어났기 때문에’라고 간단한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흔히들 말하는 몰입(immersion)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인풋의 양보다 더욱 핵심적인 요인들이 나타난다. 나는 이것을 두 가지로 본다.

먼저 “쓸모에 대한 감각”이다. 내가 배우고 있는 말이 세상에서 진짜 쓰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아니 누가 그걸 모르느냐고 물어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쓸모”에 대한 감각은 쉬이 생기지 않는다. 어린 학생들을 직접 가르쳐 본 경험이 있다면 입시와 내신이라는 목표 외에 학생들에게 영어의 쓸모를 설명해 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아니 이것은 설명의 영역 밖에 있다는 것을 안다. 연애나 배신같이 체험되지 않고는 전달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처럼 말이다.

다음으로는 “만남의 경험”이다. 이것은 쓸모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조금 다르다. 나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이것이 다른 언어가 되어 돌아오는 경험. 이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는 경험. 이것을 목격하고 느끼는 것이 “만남”이다. 말을 건네기 전의 설렘과 말이 오가는 과정의 떨림과 말이 끝나고 난 다음의 여운을 겪는 것이다.

만남은 언어의 도구성을 넘는 경험이다. 언어가 사람을 울고 웃게 할 수 있고, 감동시킬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도구성을 뛰어 넘어 존재를 감화시키는 언어를 진짜로 만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외에 가지 않고도 쓸모에 대한 감각, 만남의 경험을 키워줄 수 있을까? 외국어로서 영어(EFL: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상황에서 많은 학생들이 ‘고백’하는 언어학습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물론 해외에서의 경험을 복제할 수는 없다. 사회문화적 상황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상응하는 변화를 꽤하려면 언어학습에서 급진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영어교육은 여전히 인풋이라는 ‘특급 키워드’에 머물러 있다. 얼마나 많은 언어자료가 투입되어야 하는가. 이 자료는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는가. 이 패러다임 말이다.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에 더 많은 인풋을 부르짖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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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수 vs. work with someone

적어도 제가 아는 한 미국 대학원에서 지도교수가 누구냐고 물어볼 때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은 “Who do you work with?”입니다. 직업을 물어볼 때 “What do you do?”라고 물어보듯 지도교수가 누군지 알고 싶을 때는 “Who do you work with?”라고 간단히 묻는 것입니다.

말을 바꾼다고 사람이나 시스템이 갑자기 변할 리야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work with”라는 언어패턴에 담긴 수평적 관계를 좋아합니다. “With”에는 상하가 없습니다. Someone to work with.함께 일하고 만들어 가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지도교수라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지도교수’는 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를 다소 위계적으로 그립니다. ‘지도’는 보통 전문성과 경험이 많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이런 경우 “work with ~”보다는 “work for ~의 관계가 성립하게 됩니다. 교수와 함께(with) 일한다기 보다는 교수를 위해(for) 일하는 것이지요.

페이스북에서 또 강의에서 명민하고 실력있는 대학원생들을 종종 만납니다. 뛰어난 학생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신을 그저 ‘지도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주도적 협력자’로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을 지도할 사람” 보다는 “work with”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려 합니다.

학문의 세계를 먼저 경험한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관계는 근본적으로 수평적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미 그런 곳들이 있겠지만, 석사생이든 박사생이든 함께 일하고 성장할 수 있는 협력자(collaborator)로서 대하는 문화가 더욱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덧. 물론 영어에도 academic advisor / dissertation advisor와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용어들은 다소 격식을 갖춘 상황에서 주로 사용되며 한국어의 ‘지도교수’의 사용역(register)과 딱 대응되지는 않습니다. 한국어에서는 일상 대화에서 ‘지도교수’가 많이 쓰이는 반면 영어에서는 ‘work with’와 호칭을 엮은 표현이 자주 쓰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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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다’의 풍경

1. “네”가 “아니오”일 가능성이 꽤나 높은 상황이 있습니다.

“듣고 있니?”
“네.”

제대로 듣고 있으면 물어보지도 않았겠지요. “듣고 있니?”라는 말은 들었겠지만 그 전의 말들은 안 들었을 가능성이 높겠죠.

2. “말 좀 들어라.”

말을 다 듣고도 말 안들을 수가 있고, 말을 건성건성 들어도 말을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듣다’는 ‘따르다(follow)’의 의미에 가깝겠지요.

3. 영어에서 “I hear you.”라는 표현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미입니다. Hear는 물리적 소리를 듣는 경우에도 쓸 수 있지만 이렇게 사람을 목적어로 하면 상대의 말뜻을, 그 의미를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의미상 2인칭 대명사 ‘you’가 나오는 “I hear you”가 자주 쓰입니다.

4. “keep your ear to the ground”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직역을 하면 “땅에 귀를 대다/붙이다”라는 뜻인데 돌아가는 상황이나 말을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주의/노력을 기울인다는 뜻입니다. 정확한 어원은 모르겠지만 땅에 귀를 대면 그냥 듣는 것보다 보다 먼 곳에서 오는 발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네요. (덧. 전장에서 적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댔던 대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5. “Hear, hear”는 상대의 말에 대한 동의, 승인을 강조하기 위해 쓰이는 감탄사입니다. 원래는 누군가의 말에 집중하라는 요청으로서의 “Hear him”에서 나왔다고 하고요. “그럼, 그럼”이나 “그럼, 그렇고 말고”정도의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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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고의 유연성 혹은 무감각

1. 메타포를 살피다 보면 인간의 사고가 얼마나 유연한 지를 알 수 있다. 어떤 두 대상을 병치시켜 메타포로 엮는 순간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그 두 대상 사이의 유사점을 곧바로 찾아내고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낸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가 유연하다는 게 가끔 황당하고 불편할 때가 있다. 대표적으로 “가이아 부동산” 을 봤을 때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가이아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2. 내가 제일 황당하게 생각하는 경우는 고기집에 소나 돼지 혹은 닭을 의인화시켜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게 하거나, 심지어는 앞치마를 두르고 있게 하는 경우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간판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아 저기 소고기 파는 집이구나.” 이러고 넘어가니까. 사실 그 가게에 등장하는 건 미소짓는 소나 돼지가 아니라 그들의 ‘시체’인데 말이다.

이 경우 소와 돼지 이미지는 그 가게에서 무엇을 파는지를 표현해 주고 있고, 행복한 미소는 사람들의 표정을 그 이미지 안에 중첩시킨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할 거 같다. 인간 사고의 유연성 — 혹은 무감각함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3. “Armed to the teeth”는 직역하면 “이빨까지 무장한”이라는 뜻. 이건 아닌 것 같아 사전을 찾아보니 “If people are armed to the teeth, they have lots of weapons.”이란다. 즉, 이빨까지 무장했다는 말은 엄청나게 많은 무기로 무장했다는 뜻이 된다.

사실 이 표현을 보는 순간 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손이나 팔을 무는 영화 속 장면들이 생각났다. 인간이 최악의 궁지에 몰릴 때 이빨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거 같아서 말이다.

재미난 것은 dressed to the teeth 이라는 표현도 있다는 것. 옷을 쫙 빼입었을 때 이 표현을 쓴다. 이 외에도 “get one’s teeth into something”라고 하면 “~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다”라는 뜻이 된다.

4. Dream에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pipe dream 이라는 게 있다. 근거가 없고 허황된 꿈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pipe 일까?

일설에 의하면 아편을 빨아들일 때 쓰는 파이프에서 왔다고 한다. 환각 상태에서 느끼는 꿈. 실재하지 않는 꿈. 그래서 pipe dream 이라고 한다.

5. “By the way”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길 옆에”라는 의미가 된다. 가던 길 말고 옆길이라는 말이다. 대화에 빗대어 보면 가던 길에서 비껴나 옆길로 가자, 즉 화제를 바꾸자는 뜻이 된다. 그래서 “그런데”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길과 말은 닿아있구나 싶다.

유학가기 전 해야 할 일

예전엔 유학가려는 학생들에게 영어공부를 좀 하라고 했던 듯하다. 지금은  우리말 책을 최대한 읽으라고 한다. ‘완벽하지 않은’ 글에 힘과 의미를 불어넣는 것은 조금 더 나은 영어라기 보다는 깊이있는 내용과 관점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있어보이는 것과 중요한 것

Posted by on Jan 4, 2019 in 단상, 영어 | No Comments

올해를 시작하면서 마음에 담은 두 구절. ‘있어보이는 것’과 ‘중요한 것’을 구별할 것. 어디를 보고 있느냐에 앞서 내 몸의 위치를 확인할 것. 언제나 서 있는 곳을 살피며 진실로 소중한 일을 도모할 것.

“사람들은 인상적인 것과 중요한 것을 혼동합니다.” You confuse what’s important with what’s impressive. – E. M. Foster

“당신이 기차를 잘못 탔다면 차량의 복도를 따라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If you board the wrong train, it is no use running along the corridor in the opposite direction. – Dietrich Bonhoeffer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삶을 위한 영어공부를 위해 넘어야 할 세 가지 장벽

(전략) 우리 사회에서 영어가 갖는 위상과 권력을 생각해 볼 때, 영어학습의 역사를 돌아보는 글이 성공과 실패, 투자대비 성과, 원하는 수준에의 도달 혹은 미달 등으로 점철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흥미와 재미를 염두에 두고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점차 성적과 시험을 위한 영어공부가 되는 현실에서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는 피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누구나 다 하는’ 영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는 쓰라림 또한 떨쳐내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세상은 ‘왜 여태껏 그 실력밖에 안되느냐’고 계속 말하고 있지요.

“삶이 영어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영어에 끌려가는 삶.
한국사회의 영어공부는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삶을 위한 영어공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기 보다는 힘겹게 올라야 할 사다리가 되어버린 영어, 삶을 즐겁고 풍요롭게 하기 보다는 불안하고 팍팍하게 만들고 있는 영어에 대해 고민하면서 붙들게 된 질문들입니다. 우리가 영어공부의 주인이 되기 보다는 끊임없이 사회와 제도가 요구하는 영어를 공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화두이지요.

오랜 시간 영어교육과 응용언어학을 연구하면서 한국사회의 영어공부를 관통하는 주요 현상으로 주목한 것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경험보다 입력(input)을 우선시하는 영어공부입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하나인 비트겐슈타인이 간파했듯이 언어의 한계는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세계의 한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행위는 단지 새로운 발음과 문자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세계의 경계를 깨뜨려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는 행위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영어교육은 영어를 통한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를 추구하기 보다는 ‘영어정복’을 위한 끊없는 전투를 강요합니다. 최대한 짧은 기간 안에 최대한 많은 언어입력을 받아 고지에 도달해야 하는 미션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단어에 숨겨진 문화와 느낌을 탐구하기 보다는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아이템을 암기해야 하고, 다른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기 보다는 다양한 문제 포맷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어떻게든 빨리 영어공부를 시작해 아이들의 영어 노출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여전히 팽배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어를 공부하면 할수록 이 세계의 질서에 더더욱 순응하게 됩니다. 또다른 세계로의 탐험이라는 이상을 철저히 배반하는 아이러니를 낳는 것입니다.

이제 영어공부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합니다. 얼마나 일찍, 얼마나 자주 영어에 노출되느냐가 아니라 영어를 공부하는 순간순간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따져물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이 영어를 공부하느냐가 아니라 공부한 바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하느냐를 고민해야 합니다. 익혀야 할 단어와 문장의 수에 앞서 외국어 공부를 통해 얻게 될 경험의 풍부함에 대해 숙고해야 합니다.

돌아보면 영어를 더 오래 공부하지 못한 게 후회되진 않습니다. 영어를 더 재미있게 공부하지 못한 건 여전히 아픕니다. 더 재미있게 했다면 훨씬 잘했을 거라 확신합니다. 공부의 양이 아니라 경험의 깊이가 말을 알게 합니다.

두 번째는, 학습자가 공부의 주체가 아니라 타인과의 비교 대상이 되어버린 상황입니다.

공부는 지식을 쌓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세워가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독서의 목표가 책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학교교육이 목표하는 바를 학교 안에서 이룰 수 없듯이 공부를 통해 이루려는 바는 언제나 삶의 실천에 있습니다. 영어공부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작금의 영어공부는 삶의 실천을 주도하는 주체로서 자신을 성장시키기 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그대로 받아안는 모양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많은 이들의 머리 속에는 정형화된 교육과정이 존재합니다. 5세 쯤 되면 파닉스를 해야 하고, 이후에는 코스북으로 말하기를 배웁니다. 이후에는 단계별 읽기자료를 공략하고, 다독 프로그램에 입문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면 문법을 좀 해줘야 하고, 중학교에 가면 내신대비 수업을 듣습니다. 중학교를 마칠 때가 되면 본격적으로 수능 대비 문제풀이에 임합니다. 물론 영재고나 특성화고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이 모든 것에 더해 고교입시에 특화된 학원을 다녀야 합니다. 대학에 가면 취업을 위한 영어공부에 매진해야 하고, 이후에는 승진과 고과를 위한 의무를 채워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는 점수를 따고 석차를 부여받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공부를 계획하고 실행하며 때로 과감히 다른 길을 선택하는 자율적 주체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링컨의 게티스버스 연설의 한 토막을 빌리자면 “우리 자신의, 우리 자신에 의한, 우리 자신을 위한” 영어공부를 추구하기 보다는, ‘영어는 기본’이며, ‘세계화 시대, 누구나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사회의 압력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게 됩니다. 타인과 자신을 지속적으로 비교하게 되고, 때로 떨쳐내기 힘든 불안과 좌절감으로 이어집니다. 영어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서의 삶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영어 때문에 받는 다양한 스트레스 중에서도 가장 은밀한 것은 ‘네이티브’ 즉 영어 원어민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도 저만치에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네이티브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서 있습니다. 자신이 이룬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할 순간, 어김없이 영어에 대한 열등감이 고개를 듭니다. ‘네이티브처럼 영어하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조금만 생각해 봐도 합리적이지 못한 반응입니다. “왜 저 외국인은 나처럼 한국어를 못할까”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회는 끊임없이 “왜 당신은 네이티브처럼 못합니까”라고 속삭입니다. 우리 또한 이런 그릇된 사고의 희생자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학습의 목표는 ‘도달할 수 없는 네이티브’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새롭게 볼 수 있는 ‘또 다른 나’가 되어야 합니다. 완벽한 연주에 집착하기 보다는 매일 조금씩 다른 변주를 시도하는 것. 그것이 새롭고도 건강한 말을 가능케 합니다.

세 번째는, 공부의 기쁨을 쌓아 조금씩 성장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욕망입니다.

자전거나 수영이 그렇듯 영어 배우기도 기능(skill)을 익히는 일입니다. 뇌에 새로운 문법과 어휘지식을 쌓아야 하고, 안면 근육, 구강, 혀, 호흡기관 등을 통해 발화하는 법을 익혀야 하죠. 읽기와 쓰기 등 리터러시를 익히는 일도 만만찮습니다. 그렇기에 외국어를 배우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런 당연한 사실을 망각합니다. 오랜 시간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을 애써 외면하기도 하죠. 각종 광고는 이런 ‘허약한 마음’을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영어회화 O주 완성”이나 “스피킹 O주만 하면 네이티브처럼 된다”는 문구로 어떻게든 쉽게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얄팍한 마음을 파고드는 것입니다. 최소 투자에 최대 수익이라는 투자 슬로건이 영어공부의 금과옥조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하지만 영어를 단기간에 정복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친구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와의 사귐 속에서 다양한 경험, 재미, 깨달음, 새로운 문화적 체험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영어와 함께 놀고, 떠들고, 감동받고, 박장대소하고, 농담을 주고받는 데서 삶의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체화한 언어학습자로 ‘빨간머리 앤’이 떠오릅니다. 누구보다 깊이 세상과 호흡하는 그는 낱말 하나에 가슴뛰어 잠못들고 자신만의 말들로 이야기에 날개를 답니다. 반짝이는 단어들을 수집하고 길가 나무에 이름 하나도 허투루 붙이지 않지요.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건 그의 말에서 끝도 없이 솟아나는 상상의 세계입니다. 그의 말공부에는 세계에 대한 경탄이 녹아 있습니다. 삶과 언어가 혼연일체가 된 곳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같은 ‘상상의 복원’이야말로 영어라는 친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언어와 문화는 한몸입니다

언어와 문화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엮여 있습니다.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고, 언어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녹아든 다양한 문화적 현상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영어라는 말 속에 영미권의 역사와 문화가 그대로 담겨있지요. 언어 속의 문화를 탐구하며 영어를 공부하기 위한 다섯 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첫째, 특정 표현의 유래를 따라가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s mad as a hatter’라는 표현을 봅시다. “Hatter”는 모자를 만드는 사람을 말합니다. 처음 이 표현을 보았을 때 ‘hatter’와 ‘mad’가 무슨 상관인가 싶었지요. 찾아보니 산업혁명기 노동자들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18세기와 19세기 영국에서는 펠트(felt, 양털이나 다른 짐승의 털에 습기와 열, 압력을 가하여 만든 천)로 모자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펠트의 생산을 위해서는 수은이 사용되었고, 오랜 시간 모자 생산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들 중 일부는 수은 중독으로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as mad as a hatter’은 ‘미친(crazy)’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Turkeys voting for Christmas”라는 숙어도 재미있습니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칠면조가 크리스마스에 찬성표를 던진다”는 뜻인데요. 투표 등의 정치행위에서 자살과도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지칭합니다. 영국에서는 1573년 경부터 크리스마스에 칠면조를 먹기 시작했다고 전해지는데요. 칠면조들이 크리스마스에 찬성하는 표를 던진다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겠지요. 이처럼 특정한 숙어를 만났을 때 그 유래를 따라가 보면 언어와 문화가 유기적 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English idioms and origins”로 검색하시면 보다 다양한 영숙어의 유래를 공부하실 수 있습니다.

둘째, 영어 메타포를 익히는 것입니다. 흔히 메타포는 말 다채롭게 꾸미는 장신구로 인식되지만, 단지 보조적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메타포 속에 한 사회의 사고방식과 문화가 고스란히 들어 있기 때문이지요. 미국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 중 하나가 스포츠 비유입니다. 일례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야구에서 나온 메타포로 “covering all bases”가 있습니다. 경기에서는 모든 베이스를 커버한다는 의미이지만 일상생활에 쓰면 모든 상황에 대비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We’ve got all bases covered.”라고 하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가 되지요. 야구나 미식축구 메타포가 미국문화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듯 아이스하키 메타포는 캐나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요소입니다.

스포츠 메타포 이외에 동물 메타포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구글에서 “animal metaphors”나 “sports metaphors”를 검색하시면 다양한 메타포를 공부할 수 있습니다. “Bird metaphors”, “dog metaphors”, 혹은 “baseball metaphors”, “football metaphors”와 같이 좀더 세밀한 키워드를 사용한 검색도 가능합니다.

세번째는 영어 속담을 익히고 실생활에 적용해 보는 것입니다. 뉘앙스는 살짝 다르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우리말에 해당하는 영어 속담으로는 “If you can’t beat ’em, join ’em.”이 있습니다. Beat은 ‘이기다, 물리치다, 패배시키다’라는 의미이고, join은 ‘-에 끼다. -에 합류하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em”은 ‘them’의 줄임말이지요. 따라서 직역하면 “물리칠 수 없다면 그 편에 끼어라.”가 됩니다.

저는 이것을 살짝 비틀어서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Even though you can’t beat ’em, never lose your identity. (그 사람들을 이길 수 없다고 해도 너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는 말아라.) 상대를 이길 수 없다고 해서 그들과 같이 될 필요는 없다는 뜻을 담은 문장입니다.

다음으로 ‘Absence makes the heart grow fonder.’입니다. Absence는 ‘없음. 결석’, fonder는 ’fond(좋아하는)’의 비교급이지요. Value는 동사로 ‘소중하게 여기다’ 정도의 뜻입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없을 때 그 사람을 더욱 좋아하게 된다”는 의미가 되죠. 평소에는 그리 친하지 않았던 친구이지만 소셜미디어에서 사라져 오래 못보게 되었을 때 문득 보고 싶어지는 경우도 있고, 같은 팀에서 늘 웃어주던 옆 직원이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겼을 때 아쉬운 마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Absence makes the heart grow fonder.’ 라는 속담을 쓸 수 있겠습니다.

검색엔진에서 “English proverbs list”를 검색하시면 영어 속담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문서들을 찾으실 수 있습니다. 속담을 통해 영미문화에 담긴 사고방식을 익혀보고 이를 각자의 삶에 적용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네 번째는 한국어와 영어간 차이를 부각해서 보는 연습입니다. 문화간 차이를 음미하면서 영어를 공부해 보는 것입니다. 한국어와 영어가 세계를 어떻게 묘사하고 설명하는지 비교, 대조해 보는 방식이지요.

우리말에서는 “엎지러진 물”이라고 하지만 영어속담에서는 “There’s no use crying over spilt milk.”라고 합니다. 엎지러진 ‘우유’인 것입니다. 이런 구문을 발견하면 ‘한국어에서는 물인데 영어에서는 우유군’이라고 스스로에게 비교,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말에서는 ‘바늘귀’라고 하지만 영어에서는 “the eye of a needle”입니다. 직역하면 ‘바늘눈’ 쯤 되겠네요. 우리 속담에서는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하지만 영어에서는 “The grass is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먹을 것의 크기를 비교하지만 영어에서는 정원의 잔디 때깔을 비교하지요. “빈 수레가 요란하다”를 영어로 하면 “Empty bottles make the most sound.”가 됩니다. 한국어에서는 수레인데 영어에서는 병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차이를 보이는 표현들도 있지만 비슷해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숫자가 너무 커서 “천문학적이다”라는 표현을 쓸 때 영어로도 ‘astronomical’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조감도”도 ‘a bird’s-eye view’로 표현합니다. 모두 상당히 유사한 표현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해마다 선정되는 “올해의 단어(Word of the year)”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옥스포드 사전은 2018년의 단어로 “toxic’을 선정했습니다. ‘독성을 지닌, (매우) 해로운’ 정도의 뜻을 지닌 이 단어는 ‘chemical’(화학물)이나 ‘environment’(환경)과 같은 물리적 개체 뿐 아니라 ‘relationship(관계)’나 ‘culture’(문화)와 같은 사회적 개념과 함께 자주 쓰였습니다. 사용빈도가 빠르게 증가했고 문화적 현상을 기술하는 데 있어 오랜 기간 영향력을 유지할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 선정의 주요 이유였다고 합니다. 2016년에는 ‘post-truth’(탈진실)이, 2013년에는 ‘selfie’(셀카)가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해마다 선정되는 단어를 보면 그 해를 관통하는 사회적 현상과 문화 트렌드를 엿볼 수 있습니다. 검색엔진에 “Oxford words of the year”나 “Merriam-Webster’s words of the year”를 입력하시면 옥스포드 사전과 메리엄 웹스터 사전이 선정한 단어를 볼 수 있고, 영문 위키피디아의 “Word of the year” 페이지에서 다른 기관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언어와 문화의 유기적인 관계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표현의 유래 살피기, 다양한 메타포 익히기, 영어속담을 익히고 자신의 상황에 적용하기, 영어와 한국어의 표현방식을 비교하고 대조하기, 매년 선정되는 “올해의 단어” 살펴보기를 제안드렸습니다. 언어와 문화를 동시에 익히는 일은 언어에 문화적, 역사적 결을 더하는 일입니다. 보다 깊은 언어학습을 위해 이들 공부법을 시도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Photo by John Michael Thom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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