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한국영어교육의 중심

한국은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영어교육의 변방이 아니다. 한국은 한국영어교육의 중심이며 시작과 끝이다. 오히려 영미가 한국영어교육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종종 ‘영어’와 ‘영어교육’이 나의 일을 대표하는 단어라는 사실이 슬프다. 이 단어들이 지고 있는 어두운 힘과 세월 위에서 나를 짓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저들을 ‘삶’에 복속시키고 싶다. #삶을위한영어공부

The ultimate ruler

Posted by on Nov 27, 2018 in 단상, 영어,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궁극의 지배자는 어떤 자(측정의 기준)를 쓸지 결정한다. 표준화는 능력주의와 공모하여 ‘공정한’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The ultimate ruler decides which ruler to use. Standardization, in collusion with meritocracy, forms the very foundation of the ‘fair’ capitalism. In this sense the fight against the system necessarily accompanies fights against diverse measurement schemes, disguised in scientific objectivity and fairness for all. So we may want to ask ourselves, “which ruler am I serving?” whenever we take up a specific measurement/testing scheme.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이전과 다른 영어공부: ‘슬로 러닝(slow learning)’을 꿈꾸며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슬로 푸드’는 “패스트 푸드(fast food)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지역의 전통적인 식생활 문화나 식재료를 다시 검토하는 운동 또는 그 식품 자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슬로 리딩은 속독에 대응되는 말로 정보를 취하기 위해 책을 빠르게 읽어내는 속독이 아니라 책의 구절을 음미하며 다각도로 해석하는 독서법을 의미하죠. 속도와 마감에 쫓기는 현대인의 일상에서 먹는 행위, 읽는 행위를 바꾸어나가려는 슬로 푸드, 슬로 리딩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위의 표현들에 상응하는 의미로서의 “슬로 러닝”은 존재하지 않는 듯합니다. 여전히 학습의 만트라는 ‘빠른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많은 것을’이지요. 학습을 다루는 일부 심리학 분과에서 slow learning이라는 용어가 발견되지만 위의 ‘슬로 푸드’나 ‘슬로 리딩’에서 ‘슬로’가 갖는 함의를 지니진 않습니다.

삶을 위한 영어공부는 ‘느린 공부’를 지향합니다. 시험을 위한 영어, 스펙을 위한 영어를 넘어 읽고, 말하고, 곱씹고, 성찰하고, 소통하고, 반성하는 영어를 꿈꿉니다. 영어학습에서의 ‘슬로 러닝’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활동으로 나아갑니다.

첫째, 발음공부 즉 ‘소리내기’ 활동에 더해 ‘소리 느끼기’ 활동을 실시합니다. 안면의 근육과 혀의 움직임, 목의 떨림에 민감해져 봅니다. 소리와 이미지, 느낌을 연결시킵니다. 자음 모음을 구별하는 일을 넘어 소리의 자질 자체에 집중하는 듣기를 실시합니다. 코가 간질간질해지는 소리 내보기도 하고 목젖이 떨리는 소리를 골라보기도 합니다. 언어를 배우는 일은 언제나 소리에 감응하는 일임을 기억합니다.

둘째, 한 주에 수백 개의 단어를 외우게 하는 ‘단기 속성’ 학습 방식이 아니라, 단어와 단어, 단어와 나, 단어와 세계의 관계를 곰곰히 생각하며 사고의 지반을 다지는 ‘장기 숙성’ 단어공부를 지향합니다. 단어의 외연적 의미를 넘어 함의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한국문화와 타문화를 넘나들며 두 언어간의 어휘 네트워크 비교해 보기도 합니다. “의미있는 단어는 의식의 소우주”라는 러시아의 발달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의 말처럼, 말 속에서 세계를, 우주를 발견하는 힘을 기릅니다.

셋째, 의미의 단위로서의 문법을 배웁니다. 다양한 세계에 대응하는 조동사(modals), 세계를 감추는 수동태, 우주의 시간과 언어의 시간 등에 대해 생각하면서 문법과 세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합니다. 텅 빈 구조가 아니라 의미를 생산해 내는 잠재력으로서의 문법을 익혀갑니다.

넷째, 유창성(Fluency)은 그 자체로 지상 과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또박또박 자신이 원하는 말을 해내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천천히 말하기를 실천합니다. 빠른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과 함께 ‘답답할 정도로 느린’ 이야기를 경청하는 능력을 키워갑니다. 술술 말하지 못해도 마음을 전달할 수 있고, 조금 서툰 말 속에서도 감동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빠름에 대한 동경만큼 느림에 대한 인내를 키워갑니다. 능숙함에 경탄하는 만큼 조곤조곤한 대화에서 아름다움을 찾아갑니다.

다섯째, 언어능력의 성장을 갈망하듯 자신이 변화하는 모습을 고대합니다. 새로운 말들이 내 안에 쌓임과 동시에 나 자신이 새로운 존재가 되어가는 것을 목격합니다. 학습을 모니터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면을 응시하고 세계와 대면합니다. 말의 풍경이 바꾸는 세계의 풍경에 기뻐합니다.

이렇게 천천히, 조금씩, 오래, 함께 걸어갑니다. 전력질주가 아닌 돌아봄과 성찰로 나아갑니다. 농담과 유머, 상처와 희망을 나누며 오랜 벗과의 산책같은 시간으로 공부를 채워갑니다. 언어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삶의 속도로 언어를 제어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삶을 위한 영어수업: 인생과 영어를 함께 가르치기

Posted by on Nov 23, 2018 in 단상, 삶을위한영어공부, 영어, 집필 | No Comments

삶을 위해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어떠해야 할지 궁리합니다. 여러 가지 모양이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영어를 인생과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동사 “love의 과거는 loved”라고 가르치기 보다는, “I love you.”와 “I loved you” 사이의 심연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과 지나간 사랑을 반추하는 일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시제와 함께 달라져 버린 “I”와 “you”에 대해, “I”와 “you”가 만들어 낸 ‘love’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개”는 “dog”이라고 가르치는 것을 넘어, 모든 개를 dog으로 부를 수 있는 인간의 개념화 능력과, 서로 다른 개들을 그저 dog이라 부르는 데서 발생하는 상징적 폭력에 대해 논의할 수 있길 바랍니다. 인간이 세계를 이해함에 있어 범주(category)를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음이 얼마나 놀라운지 이야기하지만, 모든 것들을 하나의 이름으로 부를 때 놓치게 되는 개별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Dog”이라는 말을 통해 세상의 모든 개들을 한번에 불러오는 마법에 놀라면서도, “dog”이라는 이름으로 감춰지는 강아지 하나하나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형태와 의미를 묶고 삶에 접붙여 가르치고 싶습니다. 언어를 배움은 단지 단지 해석을 할 줄 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말은 각각의 역동성과 힘을 갖기 때문입니다. 언어의 작디 작은 변화도 삶의 경험들과 만나 충돌하고 새로운 의미를 생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BE동사”를 가르치고 싶습니다.

위키피디아 인물 페이지의 첫 문장은 사람이름 + BE 동사로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Matthew Paige “Matt” Damon (/ˈdeɪmən/; born October 8, 1970) is an American actor, film producer and screenwriter.” 같은 식입니다. 맷 데이먼은 아직 생존해 있기에 be동사의 시제가 현재(is)입니다.

하지만 고인이 된 경우 시제가 달라집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George Michael의 페이지는 “Georgios Kyriacos Panayiotou (25 June 1963 – 25 December 2016), known professionally as George Michael, was an English singer, songwriter, and record producer who rose to fame as a member of the music duo Wham!”으로, John Berger는 “John Peter Berger (5 November 1926 – 2 January 2017) was an English art critic, novelist, painter and poet.”로 소개됩니다.

위키피디아 인물 페이지의 과거형 WAS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BE동사가 아닐까요.

하지만 우리들의 맘 속에서 그들은 언제까지나 현재형입니다. “George Michael is an English singer, songwriter, and record producer.”이고, “John Peter Berger is an English art critic, novelist, painter and poet.”인 것입니다.

존재’했던’ 것들은 언제까지나 존재’합니다’. 죽음과 삶은 그렇게 엮여 있습니다.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것은 기억입니다. 기억과 기억을 연결해 주는 것은 만남입니다. 죽음과 죽음을 연결해 주는 것은 기록입니다. 살아있는 이들을 무엇보다 강하게 연결하는 것은 우리가 모두 함께 죽어가고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연결하는 것은 지금, 여기, 우리입니다. 그렇게 엮여 있는 우린 앞으로 또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BE(존재) 동사는 현재와 과거, 미래로 자신을 확장합니다. 우리 삶처럼 말입니다.

영어 속의 사회, 사회 속의 영어: 단어 속에서 세계를 만나다

인천공항이 청소노동자들에게 “VIP가 오면 화장실에 숨어라”고 요구했던 게 불과 2010년의 일이었습니다. 이후 국민의 공복을 자처하는 한 국회의원은 노동3권이 보장되면 툭 하면 파업할 것이라는 발언을 합니다.

이들 사건들을 접하면서 ‘클린(clean)’이란 단어에 담긴 세상, 그 안에 담긴 사람을 생각해 봤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문법 교육이 언어에만 집착한 채 언어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문법을 단순히 ‘언어의 규칙’이 아닌 ‘삶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방법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Clean의 개념적 의미

‘clean’을 형용사로 쓰면 “깨끗한”이고, 동사로 쓰면 “깨끗하게 하다”입니다. 여기에서 과거와 과거분사는 “cleaned-cleaned”로 규칙적으로 변화합니다. 이것이 기존에 우리가 어휘를 배웠던 방식입니다. 순수히 언어 내적인 기술이죠.
여기에 개념적인 내용을 조금 더할 수 있습니다. 형용사로서의 ‘clean’은 특정한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로, 대상이나 장소 등이 물리적으로 깨끗하다는 의미가 됩니다. 동사로 사용되면 특정 주체의 행위를 표현합니다.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동작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나아가 clean을 메타포로 쓸 수도 있습니다. 가령 “His record is clean. (기록이 깨끗하네. 즉, ‘전과가 없다’는 뜻)”과 같이 말입니다. 어떤가요? 이것은 언어와 개념을 연결한 해설입니다. 언어항목에 대한 단순 암기가 아니라, 그 언어가 담고 있는 개념적 내용을 다루죠.

‘Clean’의 사회적 의미: ‘깨끗하다’와 ‘청소하다’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어떤 공간이 깨끗(clean)하다는 것은 누군가가 청소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노동이 없이 스스로 깨끗한 공간은 없겠죠. 청결한 공항에는 청결함을 유지하는 노동자가 있습니다. 만약 노동자가 보이지 않는다면 뭔가 이상한 것이고요. 먼지가 쌓이고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자연의 법칙 속에서 질서와 청결을 유지하는 노동 없이 깨끗한 환경 속에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깨끗한’이라는 형용사는 ‘깨끗하게 하다’라는 동사를 전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깨끗하게 하다’라는 동사는 그런 상태로 만든 사람(주체)를 내포하므로, ‘깨끗’하다는 것은 ‘깨끗하게 하는’ 사람(청소노동자)를 품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clean’의 사회적 의미, 사회 속에서 깨끗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Clean’을 형용사와 동사로서 배운다는 것

이처럼 ‘clean’을 형용사와 동사로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이 두 가지의 품사적 구분을 아는 것에서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깨끗한'(clean)한 세계와 이 세계를 ‘깨끗하게 하는'(to clean)하는 사람(청소노동자)을 연결해 생각할 수 있어야만 이 두 품사의 관계를 배웠다고 할 수 있지요. 형용사가 동사가 되는 것은 순수히 언어적 현상이지만, 실제 세계에서 그 변환을 가능케 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 특히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This place is so clean. (여기 정말 깨끗하다.)”라는 문장은 “Someone must have cleaned this place. (누군가가 청소를 한 게 틀림없구나.)”라고 읽어낼 수 있어야 하고, “This place is always clean. (여긴 항상 깨끗하네.)”라는 문장은 “Someone must clean this place on a regular basis. (여기 정기적으로 청소하는 사람이 있나 봐.)” 라고 바꾸어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문법은 언어적, 개념적, 사회적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합니다. 언어의 의미를 개념화하고, 그것이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갖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동태의 정치학

한 가지 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수동태를 가르친다면 수동태의 형태(be+과거분사+by ~)부터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수동태가 묘사하고 있는 여러 사건들에서 수동의 개념을 이끌어 내고, 그것이 어떻게 언어화하는가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 두 문장을 봅시다.

Many immigrants are deprived of their rights. (많은 이민자들은 권리를 박탈당한다.)

The current immigration laws deprive many immigrants of their rights. (현재의 이민법은 많은 이민자들에게서 권리를 박탈한다.)

두 문장은 하나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동태의 문장에서는 ‘박탈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이민자들의 현재 상태를 그리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래 능동형의 문장에서는 이민자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주체가 드러납니다. 물론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현재의 이민법을 입안하고 가결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지요.

이 같은 분석을 통해 수동태라는 언어적 장치가 인간이 경험적 세계를 이해하고 의미세계를 창조하는 방법을 살펴보고, 능동태나 수동태를 선택하는 일이 절대 중립적일 수 없다는 사실 즉, ‘수동태의 정치학’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요는 언어적 설명을 넘어 개념적이며 사회문화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정한 문법현상이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 숨쉬는지, 때로는 세계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개별 문법 요소들을 살피면서 언어와 세계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을 문법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가끔 “If I were a bird… (내가 새라면)”나 “If I were a millionaire… (내가 백만장자는)” 보다는 “If I were a Pakistani immigrant worker in South Korea … (내가 한국의 파키스탄 이주자라면)”나 “If I were a Muslim refugee in the US (내가 미국의 무슬림 난민이라면)”가 예문으로 나오는 책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과 문법을 엮어내는 공부가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쓰기학습을 위한 원칙 (3): 가로쓰기X세로쓰기X좁게쓰기

스마트폰의 텍스트 추천 기능을 써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한 단어를 쓰면 그 다음 단어를 추천하고, 또 다시 단어를 입력하면 그 다음 단어를 추천합니다. 쓰는 이의 의도에 딱 맞을 때도 있지만 우스운 단어를 추천하기도 합니다. 한 가지 이 기능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글이든 단어 하나 하나가 모여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결국 단어를 고르고 다음 단어를 고르는 일의 연속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글을 ‘써내려’ 갑니다. 한국어와 영어의 경우 왼 편에서 시작해서 오른 편으로 단어를 늘어놓게 됩니다. 물론 줄넘김을 하면 다시 왼쪽에서 시작되지만 기본적으로 글은 가로축을 따라 진행됩니다. 저는 이것을 ‘가로쓰기’라고 부릅니다.

흔히 자유쓰기(free writing)를 할 때 우리는 가로쓰기에 집중합니다. 논리적 흐름이나 문법, 어휘를 곰곰히 따지지 않고 빠르게 써내려가는 자유쓰기를 통해 우리는 안에 있는 것들을 최대한 끄집어 냅니다. 이 과정에서 편집과 수정은 최대한 자제됩니다. 어떤 사람은 효율적인 자유쓰기를 위해 아예 스크린을 꺼버린다고 하더군요.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최대한 빨리 쏟아놓기 위해서는 키보드 하나면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자유쓰기는 글쓰기에 대한 과도한 긴장이나 우려를 줄이고 많은 아이디어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어로서 영어를 공부하고 영작문을 공부함에 있어서 자유쓰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로쓰기’와 ‘좁게쓰기’가 별도로 필요한 것입니다. 각각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째, ‘세로쓰기’ 능력의 배양이 필요합니다. 모국어와 외국어의 ‘세로쓰기’ 능력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제시한 휴대폰 텍스트 자동완성 기능을 생각해 봅시다. 한국어로 쓸 때는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기에 자동완성 기능은 대부분 ‘빠른 타이핑’을 돕는 역할에 그칩니다. 하지만 영어로 글쓰기에서는 사정이 좀 복잡해집니다. 무슨 단어를 쓸지 정확히 알고 있을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해당 자리에 어떤 단어가 가장 적합한지 고민하고 때로는 검색을 통해 최적의 단어를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하나의 자리에 어떤 단어들이 나올 수 있는지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세로쓰기 능력’이라고 부릅니다. 실제 글쓰기는 언제나 가로쓰기지만, 이 가로쓰기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세로쓰기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Argument(주장)라는 단어 앞에 긍정적인 의미의 형용사를 넣고자 합니다. 그런데 머리 속에 생각나는 것이 달랑 ‘good argument’나 ‘bad argument’라면 계속 이 표현만을 가지고 버티게 됩니다. 하지만 good 혹은 bad 자리에 persuasive나 convincing, 혹은 compelling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최적의 형용사를 골라서 쓸 수 있게 됩니다.

세 단어의 의미는 상당히 비슷합니다. 어떤 주장이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믿음을 준다는 것이죠. 하지만 강도는 조금 다릅니다. Persuasive는 말 그대로 ‘설득력이 있다’의 의미, 즉 persuade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에 비해 convincing은 ‘확신하게 하는’이란 뜻이죠. 원동사persuade와 convince의 의미를 따져 보면 설득하는 것보다 확신시키는 게 더 강한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compel은 ‘압도하다’,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설명을 들었는데 도무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믿게 되는 상황이라면 “compelling”을 사용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셋은 비슷한 의미를 지니지만 의미의 스펙트럼을 따지자면 persuasive 보다는 convincing이, convincing 보다는 compelling이 강한 표현입니다.

원어민 화자는 이렇게 ‘골라 쓸’ 꺼리가 풍부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언어경험을 통해 쌓아온 ‘세로쓰기 레퍼토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원어민은 이 레퍼토리를 의도적으로 늘려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짝궁단어’의 학습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휘학습의 원칙 편 첫 뻔째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둘째, ‘좁게쓰기’ 전략입니다. 영어쓰기를 공부할 때 가장 범하기 쉬운 오류 중 하나는 막연히 ‘영어로 글을 많이 써보자’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어로 쓰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어로 일기쓰기, 서평쓰기, 기사쓰기, 설명문 쓰기, 매뉴얼 쓰기 등이 존재할 뿐이죠. 물론 이들 종류의 글 또한 다양한 포맷으로 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어쓰기를 공부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쓰고자 하는 글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글을 최대한 ‘좁게’ 정의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종류의 글을 쓸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이 조건에 최대한 맞는 글을 찾아봅니다. 그들 중 괜찮다고 생각하는 글을 몇 편 골라 자세히 읽고 아래와 같은 기준으로 분석을 해봅니다.

1. 글을 이루고 있는 정보
2. 정보들이 나열되는 전형적인 순서
3. 몇 편의 글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어와 동사 패턴
4. 유용한 어휘 및 짝궁단어
5. 유용한 문법 패턴
6. 기타 눈에 띄는 수사적 특징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책 소개’를 써야 한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여러 책 소개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셔야 합니다. 학술서 리뷰라면 관련 학술지를 검색하셔야 할 것이고, 대중적인 책 소개라면 신문이나 잡지를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형식을 갖추지 않는 책 소개라면 아마존과 같은 사이트를 방문하시면 되겠습니다. 이제 샘플을 몇 개 모아서 위와 같은 기준으로 분석을 합니다.

이 과정이 조금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꼼꼼히 분석하며 텍스트를 읽다 보면 ‘책 소개’라는 글의 종류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아 이런 정보를 넣으면 되겠구나’, ‘이런 표현 신선하네’, ‘어? 이 메타포 괜찮은걸?’, ‘이 구문 조금 변형해서 쓰면 되겠다’, ‘시작은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끝날 때는 이런 기법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쓰기에 대한 감 또한 잡게 됩니다.

이제 책에 대한 아이디어와 감상을 영어로 풀 수 있는 레퍼토리가 생겼습니다. 여전히 글쓰기가 쉽진 않지만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겠지요. 문제는 이런 기본적인 읽기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작정’ 쓰려고 할 때 발생합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영어 글쓰기를 공부할 때는 자유롭게 써내려가는 ‘가로쓰기’와, 특정 자리에 올 수 있는 단어를 꾸준히 살피며 레퍼토리를 늘려가는 ‘세로쓰기’, 글의 종류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정하고 텍스트 분석을 통해 글의 길을 잡아가는 ‘좁게쓰기’가 필요합니다.

가로쓰기X세로쓰기X좁게쓰기. 이 공식을 기억하세요.

영어학습의 보고 유튜브: 본다고 공부가 될까요?

 

유튜브는 영어로 된 멀티미디어의 ‘성지’입니다. 쉼없이 쏟아져 나오는 영상이 차곡차곡 쌓인 덕에 어떤 분야를 공부하든지 유용한 자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자막을 제공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어 학습의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자료가 없어 공부를 못한다는 핑계는 댈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깁니다. 좋은 자료가 이렇게나 많은데 여전히 학원이나 온라인 강좌가 영어학습시장의 주류를 이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그 많은 사교육 업체들은 폐업하지 않는 걸까요?

오래 전 유행어 중에 ‘인천 앞바다가 사이다라도 컵이 없으면 못 떠먹지’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현재 인터넷의 엄청난 자료들과 영어학습 간의 관계를 잘 포착합니다.
학습을 위해서는 영상을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요소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발음에, 영상에, 특정한 어휘에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구문 분석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빠르게 스쳐가는 표현을 복기하고 기억에 새겨야 합니다. 영상시청만으로 남는 정보는 미미합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스르륵 흘러나갑니다. 그렇기에 영상 안에 나오는 언어를 깊이 처리(deep processing)할 때라야 우리 뇌에 오랜 시간 기억될 수 있습니다.

영어교육 업체들은 다양한 노하우를 가지고 학습자들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영상을 보여주는 일을 넘어 그 안의 언어를 해설하고 연습시키며 배운 바를 평가합니다. 그런 면에서 사교육은 인천 앞바다의 사이다(어디서나 얻을 수 있는 영어 자료)를 떠먹을 수 있는 컵(학습 전략)을 제공하여 수익을 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사이다를 제조하거나 최신식 컵을 선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영어와 학습자 사이에서 공부의 도구를 제공하는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유튜브 영상을 가지고 공부하려는 분들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합니다. 먼저 “영상시청=공부”라는 등식을 깨야 합니다. 영상시청은 공부라기 보다는 공부의 출발점입니다. 영상을 시청한 뒤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공부가 될 수도 있고 조회수를 늘려주는 일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각자가 자신에 맞는 학습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제가 듣기 말하기 공부를 할 때 사용하는 ‘사이다 컵’을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1) 집중학습을 위해서 1-2분 가량의 짧은 클립을 선택합니다. 긴 영상의 일부라도 상관이 없습니다.우선 영상 전체를 한 번 시청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문장별 끊어읽기를 합니다. 이때 스페이스바로 문장을 멈출 수 있습니다. 문장을 반복해서 낭독하는 횟수는 2-3회 정도로 합니다. 이렇게 문장별 읽기 연습이 끝나면 쉐도잉(shadowing)으로 들어갑니다. 클립을 틀어놓고 문장이 들리는 대로 따라 읽는 것입니다. 하루에 하나의 클립만 꾸준히 공부해도 효과가 큽니다.

(2) 자료의 난이도에 따라 자막을 켜고 시청할 수도 있고 자막 없이 시청할 수도 있습니다. 주로 난이도가 높은 경우 자막을 활용하게 되는데 이 경우에는 듣기가 아니라 읽기학습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때 유용한 것은 눈감기입니다. 처음 몇 문장은 자막을 켜고 시청합니다. 대략 어떤 배경의 이야기인지,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후에는 문장의 경계를 기준으로 눈을 잠깐씩 감습니다. 계속 잘 들린다면 눈을 감고 끝까지 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중간에 뜰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눈뜨고 감기를 반복하면서 클립 하나를 다 듣습니다. 이제 클립을 처음부터 자막 없이 봅니다. 필요하다면 쉐도잉 연습도 추가합니다.

(3) 마지막으로는 표현을 정리합니다. 해당 클립에 나오는 유용한 어휘나 덩이말(chunk)을 정리해 보는 것입니다. 아래는 제가 직접 오디션 프로그램과 요리 클립을 보면서 정리한 표현들입니다. 거기에 저 나름대로의 해설을 더해보았죠. 이렇게 표현을 수집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여러분들도 자신만의 정리 방식을 만들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길어 올린 표현

오디션 프로그램 보면서 엄청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 놀라곤 했습니다. 오늘은 Paul Potts가 나오는 British Got Talent 클립을 봤습니다. 그의 공연은 오디션 프로그램계의 ‘클래식’이 된 느낌입니다.

제가 주목했던 것은 오디션 심사위원들이 쓰는 표현들이었습니다.

먼저 a breath of fresh air (someone or something that is new and different and makes everything seem more exciting)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기운이 분위기를 바꿔놓는 걸 말하는데요. 평범한 세일즈맨으로 일하는 Paul Potts의 노래가 그 정도로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이야기인 듯합니다.
영상에서는 강조의 형용사를 넣어 ‘a complete breath of fresh air’라고 표현됩니다. 그 다음에 absolutely fantastic 이라는 표현이 나오고요. “absolutely”는 감정이나 느낌을 강조할 때 자주 쓰이는 부사입니다. 다음에 멋진 공연을 보게 되면 “absolutely fantastic!”이라고 외쳐볼까 합니다.

다음 심사위원은 “You have an incredible voice.” 라고 하죠. 믿을 수 없는 목소리를 가졌다는 뜻으로요. 이전에 나온 complete, 여기의 incredible이라는 단어가 최고의 칭찬임을 나타내 주네요. 진짜 멋진 친구가 있다면 “I have an incredible friend.”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 닭살이 돋을 수도 있겠지만, 적절한 상황에서 사용한다면 상대방에 대한 멋진 찬사가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 심사위원은 “a little lump of coal here that is gonna turn into a diamond” (이내 다이아몬드로 변할 작은 석탄 한 덩이)라는 표현을 쓰네요. 지금은 완벽한 다이아몬드의 형상을 갖추지 못한 석탄이지만 내면에 보석을 품고 있으니 세공(경험과 훈련)을 좀 거치면 완벽한 다이아몬드가 될 거라는 메타포입니다.
심사위원들이 사용하는 표현을 살피다 보니 오디션계의 또다른 전설인 Susan Boyle에 대한 심사평도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비디오를 다시 찾아보고 표현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먼저 “The biggest surprise I have ever had(내가 당한 가장 큰 놀람 즉, 이렇게 놀란 적은 난생 처음이야)” 라는 표현이 나오고, “That was stunning. An incredible performance. (정말 끝내줬어요. 믿을 수 없는 공연이네요.)” 라는 말도 하네요. Incredible이 다시 나왔네요. 이와 함께 Amazing(놀랍군요)이라는 단어도 등장하는군요.

다음으로는 “I’m so thrilled because I know everybody was against you. (수잔 보일의 외모로 판단하는 관중들이 미심쩍은 표정을 보냈다는 의미.)” 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Against’가 적대적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적절한 표현이 될 수 있겠네요. “That was a complete privilege listening to you.” 라고 하면서 “당신의 노래를 듣는 건 엄청난 특권이었다”는 말도 하네요. complete와 privilege 두 단어 모두 강한 의미를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평과 같이 특정한 주제의 언어 패턴이 드러나는 프로그램을 선택하셔서 (이 경우에는 출연자들에 대한 칭찬, 놀람, 감동 등을 이야기하는 표현이 반복되어 나오는 경우) 주의 깊게 청취하시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꼭 오디션 프로일 필요는 없겠죠. 어떤 프로그램이든 좋습니다. 일기예보, 스포츠 중계, 뉴스 등등 어떤 장르든 그 나름의 언어표현들이 존재하니까요.

▶유용한 요리 관련 표현 20개

아래는 제가 요리 채널을 보면서 정리한 요리관련 표현들입니다.

1. 생선 구울 때 칼집 내는 것은 score라고 합니다. 악보나 점수라는 뜻 외에 ‘칼집을 내다’를 추가로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 미국에서 zucchini라고 부르는 걸 영국에서는 courgette라고 합니다. 영국 영어에서 chips라고 하는 걸 미국에서는 French fries라고 하죠? 사실 이런 차이가 꽤 많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시다면 웹의 이미지 검색을 해보세요. 직관적으로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3. 약간 비스듬히 써는 것은 ‘cut something at an angle’이라고 합니다. “at an angle”이 ‘비스듬히’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4. 잘게 썬다고 할 때 finely라는 부사를 씁니다. chop something finely / finely chop something 같이 말이죠. finely는 요리에 꽤나 자주 나오네요.

5. 음식 위에 뭔가를 툭 던져놓는 걸 whack something on the top 이라고 하면 됩니다. 조심스레 잘 올려놓는다기 보다는 쓱쓱 던져놓는 걸 말하죠.

6. 육류나 생선의 뼈를 발라 살만 남기는 것을 fillet 이라고 합니다. 또는 그렇게 만들어진 살 한 토막을 fillet 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우리 나라에서는 ‘휠레’ 정도로 표기되는 것 같습니다.

7. 소금이나 후추를 살짝 집어서 넣는 것은 put a pinch of salt(pepper)라고 표현합니다. Pinch에 ‘꼬집다, 콕 짚다’라는 뜻이 있다는 걸 생각하시면 기억에 될 것 같습니다.

8. 밑둥을 잘라낼 때 trim up the base 정도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9. 강판에 가는 것은 grate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발음 때문인지 ‘gr-‘로 시작하는 단어는 무언가에 갈리는 느낌입니다.

10. Flake는 생선이나 양파 등 큰 덩치에서 떨어져 나온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dried onion flakes’라고 하면 ‘잘게 썰어 말린 양파’라는 뜻입니다. 큰 생선에서 살이 뚝 떨어져 나오는 것도 flake로 표현할 수 잇습니다.

11. Soggy는 ‘질척한’ 정도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데, 음식에 대해 쓰면 바삭해야 할 것이 눅눅해진 상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Crispy와 반대 의미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Crispy해야 하는 음식이 soggy해지면 정말 먹기 싫더군요.

12. 식용유 등을 충분히 휘리릭 뿌린다고 할 때 ‘a sloosh of vegetable oil’정도로 쓸 수 있습니다. “Sloosh” 발음이 재미납니다. ‘-oo-‘발음을 길~게 늘리면 느낌이 더 살아나겠네요.

13. 우리 말로 ‘노릇한’을 표현하는 방법 중에 ‘golden’이 있습니다. 좀더 짙은 노릇함은 brown으로 표현하면 될 것 같네요.
14. 토마토나 야채를 데칠 때 blanch라는 동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뜨거운 물에 넣었다 바로 빼는 거죠.

15. 뒤집는 것은 turn을 쓰시면 됩니다. “Turn something once or twice’와 같이 마이죠. 그러고 보니 잘 때 뒤척이는 건 ‘toss and turn’이라고 표현하네요.

16. 빵을 손으로 찢어 놓는 것을 ‘give (it) a rip-up’ 정도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요리 프로그램에서 ‘give something noun’의 형태로 행동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7. 티스푼보다 큰 스푼을 tablespoon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밥먹는 스푼과 비슷한 크기입니다. ‘A tablespoon of sugar’와 같이 쓸 수 있고요. 그런데 tablespoon에 설탕을 가득 담는다면? 이때는 heaped 를 써서 ‘two heaped tablespoons of sugar’와 같이 쓰면 됩니다. “Heap”이 ‘쌓다’의 의미이니 설탕이 봉오리 모양으로 쌓인 걸 떠올릴 수 있겠네요.

18. ‘상온’은 room temperature라고 표현합니다. 따라서 ‘상온에 (식도록) 놔두다’는 ‘let it go to room temperature’ 정도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19. 영국영어에서 a knob of butter는 ‘버터 한 덩이’를 말합니다. ‘A stick of butter’는 스틱 모양의 버터 한 덩이를 말하죠.

20. 마늘 한 쪽은 clove라는 단어로 표현됩니다. 10개 쯤 들어있는 한 덩이는 bulb라고 하구요. 전구(light bulb)를 연상하시면 이 표현도 쉽게 기억하실 수 있습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듣기공부의 원칙: 영어 자막 넣고 볼까 빼고 볼까

외국어 학습에서 외국어 인풋의 중요성은 누누이 강조되지만, 한국어 배경지식이 갖는 중요성은 좀처럼 언급되지 않는 듯합니다. 이에 대해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가 읽거나 들을 때 외국어 홀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지식의 기반 위에서 돌아갑니다. 따라서 외국어로 된 자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국어 지식과 함께 세계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갖추어야만 합니다. 어떤 언어를 공부하든 다양한 지식의 습득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인이라면 지식 대부분이 한국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평생 한국어로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외국어 학습에서 한국어를 방치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한국어로 된 지식 키워가며 이를 외국어능력과 통합하려는 자세와 전략이 필요합니다. ‘나는 양자역학 강의를 영어로 들어야 하니까 모든 개념을 처음부터 영어로만 공부하겠어’라든가 ‘인공지능 관련 보고서를 써야 하니 인공지능 기초부터 영어로 파볼까’라며 고집을 피우는 것은 그야말로 똥고집일 뿐입니다.

한국인의 경험은 한국어로 표현되고 공유되며 체계화됩니다. 우리말은 우리의 경험 곳곳에 스며있지요. 영어공부의 과정에서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아마도 한국어 자막의 효용일 것입니다. 그냥은 잘 들리지 않던 영어 뉴스 혹은 영어 드라마도 한국어 자막과 함께 보면 좀더 잘 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말로 익힌 내용을 영어로 들으면 단어를 조금 놓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모국어와 외국어의 상호작용이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영어 인풋을 이해하는 데 있어 모국어로 된 배경지식이 도움이 된다는 점 또한 시사합니다.

신경언어학의 연구는 사춘기 이후 외국어를 처음 배웠을 경우 모국어와 외국어가 사뭇 다른 뇌 회로와 활성화 패턴을 통해 처리됨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국어 지식과 자막이 외국어 이해에 실시간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다수의 경험은 모국어와 외국어가 엄청난 속도로 상호작용할 수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언어 능숙도와 자막의 효용

다만 엄밀한 연구를 위해서는 학습자들이 자막을 켜고 영상을 볼 때 ‘들린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어디까지가 실질적 이해이고 어디까지가 ‘이해했다는 착각’ 혹은 사후적 합리화인지 밝혀내야 하는 과제가 남습니다. 예를 들어 저와 같이 영어가 어느 정도 능숙한 학습자가 영미권 드라마를 볼 때엔 다음을 가정할 수 있겠습니다.

(1) 영어 구어체에서 사용되는 어휘적, 문법적 패턴에 익숙하다. 즉 해당 언어의 일상어 전반에 대한 지식이 있다.

(2) 드라마 전개상 해당 대화가 어디로 흘러갈지 대략적인 파악한 상태다. 기존 스토리라인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추측(inference)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3) 드라마의 소재가 특이하지 않다면 해당 대화에서 나올 수 있는 대략적인 어휘 집합(lexical sets)에 대해 배경지식이 있다. 이는 드라마의 내용과 연관된 어휘지식에 해당한다.

(4) 드라마 시즌의 후반부를 보고 있다면 이전 에피소드들을 통해 주요 인물의 발음과 대화 패턴을 암묵적으로 익힌 상태다. 이는 각각의 인물의 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상황에서 자막을 켜고 볼 때 저의 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언어 능숙도에 따라 뇌의 여러 부위는, 특히 모국어와 외국어를 담당하는 부위는 어떤 활성화 패턴을 보이게 될까요? 전문적인 내용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 영어 자막의 효용은 어디까지일까요? 이런 주제로 깊이 있는 연구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들 연구 결과를 근거로 ‘자막 절대 금지’나 ‘무조건 자막 끄고 5번 이상 보세요’보다는 훨씬 더 과학적인 제안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영어로 말하기 쓰기 또한 영어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2018년 호주오픈 테니스대회에서 선전한 정현 선수의 인터뷰가 있습니다. 한 신문은 “영국 신문 ‘가디언’은 8강전 직후 “로저 페더러와 토마시 베르디흐 중 4강전 상대로 누굴 원하냐”는 질문에 “반반”이라고 한 정현의 위트를 놓고 “외교관급 화술”이라고 칭찬했다.”라고 보도합니다. (중앙일보 2018년 1월 28일자 기사)

정현 선수의 절묘한 유머가 담긴 인터뷰는 분명 영어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 인터뷰의 성공이 그저 ‘영어’공부의 소산이라기보다는, 소통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에서 나왔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기사에도 나오지만 특정 문화에 대한 관심, 주도적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연습 등이 쌓여 멋진 인터뷰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영어를 표현의 암기가 아닌 문화적인 산물로, 의사표현의 매개로 배운 덕분이었습니다.

흔히들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유머감각을 꼽습니다. 감각은 단기간에 암기하거나 체화할 수 없습니다. 오랜 기간의 경험과 고민, 깊이 있는 학습으로 길러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적절한 유머의 구사는 복잡한 인지적, 정서적 요인에 대한 고려와 순간적인 판단을 요하는 고도의 언어능력입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자신을 비루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즐거움과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를 즉석에서 구사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유머감각을 키우는 일은 ‘영어’공부를 넘어 ‘커뮤니케이션 공부’, 나아가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을 요구합니다. 한국어 원어민 화자라면 이러한 커뮤니케이션과 삶의 기저에 한국어가 자리잡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이쯤에서 이 질문을 하시는 분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막은 어쩌라는 겁니까?’

자막 사용 여부를 정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집중력의 한계, 동기 수준, 가용 학습시간 등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막만 끄면 잠이 오거나, 조금만 이해가 안되어도 듣기 공부를 지속하기 힘들다는 분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크게 두 가지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자막 활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겠습니다.

시나리오 1: 학습의 목표가 소리에 익숙해지는 데 있다면 자막을 끄고 반복해서 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나리오 2: 하지만 영어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자막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입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가 언어를 이해하는 데 있어 상향식(bottom-up) 정보처리에 중점을 둔 공부라면 후자는 하향식(top-down)에 방점을 찍는 방식입니다. 소리를 하나 하나 쌓아 더 큰 의미로 나아갈 수도 있고, 자료의 소리와 단어, 문장을 이해하는 데 듣기 각종 배경지식과 경험을 동원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이 두 가지 메커니즘은 언어 이해에서 동적으로 상호작용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막을 무조건 끄고 보아야 한다는 원칙에 매달리다가 영어학습에 대한 동기가 급속히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자막을 끄다가 동기도 ‘꺼지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려고 이걸 자막도 없이 보고 있나?’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으시다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영어공부에서 이 두 가지 모드를 적절히 섞어 활용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나아가 듣기를 단지 듣기로만 접근하기 보다는 다른 모드, 특히 읽기와 함께 공부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무조건 소리와 씨름하기 보다는 관련된 지식을 다룬 텍스트를 공부과정에 적절히 통합하는 것입니다. 최근 드라마나 유튜브 영상의 자막을 구하기 어렵지 않고, 검색엔진에 키워드 몇 개만 넣으면 관련된 글이 쏟아집니다. 자신의 상황에 적합한 자료를 수집해서 영상을 입체적으로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자막을 꺼야 인풋이 많아지고, 인풋이 많아져야 영어를 더 빠르게 배울 수 있다는 조언을 무조건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영상으로 영어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자막 끄고 봐야 돼? 켜고 봐야 돼?’라는 질문으로 골치 아파할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들릴 때까지 듣는다’는 고집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풋’에는 소리도 있지만 그 소리에 대응하는 모국어도 있고,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드라마의 대본도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무자막 모드’, ‘자막 모드’, 관련기사 읽기 모드, 대사 직접 확인하기 모드 등을 적절히 믹스 앤 매치(mix & match)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갈 때 좀더 효율적인 듣기공부가 가능할 것입니다.

언어를 새롭게 상상하기: 문장쓰기를 넘어 문맥 쓰기로

A: Are you a teacher?
B: Yes, I am. Are you a student?
A: Yes, I am.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교과서에 실제로 실렸던 문장입니다. 이 상황에서 학생은 교사에게 “선생님이세요?”라고 묻고, 교사는 학생에게 “너 학생 맞니?”라고 묻습니다. 실세계에서는 좀처럼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는 점에서 “교과서 SF”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대화입니다.

이 문장들은 특정한 교육단계에서 “student”나 “teacher”와 같은 단어, “Are you…?”와 “Yes, I am.”과 같은 구조를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왔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더 들어가면 학습자들이 이렇게 쉬운 문장에서 시작해 점차 복잡한 단어와 구문을 접해야 한다는 교수원리가 담겨 있겠지요.

교수학습 이론의 강박(obsession)이 실세계의 언어를 압도할 때 헛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더욱 허탈한 것은 이러한 대화가 한 강사의 작은 실수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온 국민이 보는 국정교과서에 오랜 기간 실려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출판사들은 한글 해석이 달린 참고서를 내놓았고, 교사들은 큰 소리로 대화를 낭독했으며, 학생들은 대화를 달달 외워서 시험을 보았습니다.

문장쓰기가 아닌 문맥쓰기로

이 텍스트를 써야 할 절체절명의 이유가 있었다면, 학생들로 하여금 이 대화가 벌어질 상황을 만들어 보라고 주문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대화문을 제시하고 컨텍스트를 쓰게 하는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저런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상상력에 따라 더욱 다양한 상황이 제시될 수 있습니다.
(1) SNS에서 만난 두 사람이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선생님이세요?”라고 묻고 “학생이세요?”라고 서로 묻는 경우입니다.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없지만, 기존의 포스트를 통해 각자가 선생님이고 학생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경우 나올 수 있는 대화죠.

(2) 학교 연극부원들이 대본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연극반 지도교사는 학생들을 무작위로 나누어 “자, 이쪽 그룹은 선생님 역할, 이쪽 그룹은 반대로 학생 역할을 하는 거야. 아무나 붙잡고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서 있을만한 상황을 연출해 봐.”라고 주문. 이때 학생은 “너 선생님 역할이야?” “너 학생 역할이지?”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모두에 인용한 대화문은 이제 교과서에서 사라졌지만, 현재의 영어교육이라고 이런 황당한 풍경이 없을까 싶습니다. 현실의 삶이 아니라 꽉 짜인 텍스트의 구조에 갇힌 사회, 새로운 맥락을 써내는 상상력이 억압되는 사회에서 실소를 금하지 못하는 상황은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보통 언어를 배운다고 하면 그 언어의 텍스트만을 생각합니다. 어떻게 정확한 문법과 어휘를 배울 것인가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어를 보는 좀더 과학적인 관점은 언어를 텍스트가 아니라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결합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단어든 문장이든 텍스트는 컨텍스트 없이 그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Where is everyone?”은 무슨 뜻일까요?
“다들 어디있지?”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텍스트만으로 문장의 의미를 확정할 수 있을까요? ‘다들’과 ‘어디’의 진정한 뜻은 무엇일까요? 다음 맥락을 생각해 봅시다.

(1) 학교에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늘 동생들과 엄마가 있었는데 오늘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때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Where is everyone?”

(2)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몇몇 친구들은 늘 그의 편이 되어 주었죠다. 그런데 최근 들어 친구들이 그를 조금씩 멀리하더니 급기야 아무도 말을 건네지 않습니다. 그가 일기를 쓴다. “Where is everyone?”

(3) 한 아이가 페르미 역설을 배웠습니다. (페르미 역설(Fermi paradox)이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이탈리아의 천재 물리학자였던 엔리코 페르미가 외계의 지적 생명체의 존재 여부를 두고 ‘모두 어디에 있는가?’라고 물었던 일화에서 유래했다. — 위키백과) 밤에 옥상에 오른 아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Where is everyone?” (모두 어디 있는 거지?)

세 가지 상황에서 “everyone”의 의미는 조금씩 다릅니다. 1에서는 가족들, 2에서는 자기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 3은 존재 여부를 모르는 외계의 생명체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everyone’의 의미는 사전 속이 아니라 사용의 맥락 하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텍스트의 맥락을 생각해 보는 일은 창조적이고 발산적 사고 발달에 도움을 줍니다. 나아가 언어의 본령이 단지 단어나 문장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세계와 만나는 방식에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여러분들은 ‘Where is everyone?’에 어떤 맥락을 입혀보고 싶으신가요?

쓰기학습의 원칙 (2): 정확성의 덫에서 벗어나기

“이렇게 쓰면 되나요?”

영작문을 가르치면 가장 빈번히 듣게 되는 질문입니다. 자기가 고른 단어가, 써낸 문장이 올바르냐고 묻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질문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용의 풍부함이나 글의 느낌, 논지의 명료함, 재미, 나아가 감동에 관해 묻는 일은 거의 없는 것이지요.

정확한 문장을 쓰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흠없이 완벽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단어 하나 쓰고 멈추고 문장 하나 쓰고를 멈추고를 반복하는 일은 쓰기학습의 가장 큰 적입니다. 사실 세상에 자기 글에 진짜로 만족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건 모국어로 써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글은 없습니다. 조금씩 나아질 뿐입니다.

영어로 글을 쓸 때 정확성(accuracy)이나 완벽함을 목표로 두지 말아야 합니다. 글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밀한 구조물로 생각하기 보다는 썼다가 무너뜨릴 수도 있고 엄청난 규모로 키울 수도 있는 모래성으로 보는 게 낫습니다. 바닷가의 모든 모래가 자신의 것인양 기쁜 어린아이처럼 글을 대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무너뜨리고 다시 쌓으면 됩니다. 이 세상 모든 단어가 글쓴이에게 주어져 있으니까요. 그것도 거저 말이죠.

학생들은 또한 ‘네이티브처럼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종종 합니다. 그럼 원어민이라고 해서 글을 다 잘 쓸까요? 당연히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지 상관 없이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힘든 작업입니다. 같은 조건이라면 원어민이 비원어민보다 좀더 쉽게 쓴다는 점은 분명합니다만, 이것이 결코 영어 원어민의 우월함을 뜻하진 않습니다. 영어 원어민이 우리보다 영어글을 편하게 느끼는 것은, 우리가 그들보다 한국어 글쓰기가 더 편한 이유와 동일합니다.

이 책의 독자 대부분은 한국어 모국어 화자이실 겁니다. 그간 한국에서 살아오며 한국어로 듣고 말하고 읽고 쓴 양을 생각해 봅시다.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매일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기타 소셜미디어에 타이핑하는 텍스트만으로도 한국어 사용량은 엄청납니다. 이점을 생각한다면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운 학습자가 한국인보다 한국어를 더 쉽고 자연스럽게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몇 년 공부한 영작문 실력으로 수십 년 간 영어를 모국어로 쓴 사람들보다 영어를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한 욕심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어민 간에도 글쓰기 실력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네이티브처럼 쓰고 싶다’는 말에 큰 허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특정한 영역에서는 전문성을 지닌 비원어민이 대개의 원어민들 보다 훨씬 나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글쓰기 타겟을 명확히 하고 집중 공략한다면 충분히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관련지식을 깊게 이해하며, 이를 수시로 글로 발전시키는 훈련을 하면 됩니다. 내용과 깊이를 갖춤으로써 더욱 가치있는 글을 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영작문 공부에서 완벽함이라는 가치는 환상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글은 미완성입니다. 그러니 완벽하게 쓰겠다는 꿈은 접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도 못하는 거니까요. 대신에 계속 쓰려는 노력은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꾸준히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좋은 글을 쓰게 됩니다. 세계적인 신문 잡지에 실리는 글만이 좋은 글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마음을 전하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마음에 와닿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그런 글을 쓰시면 됩니다.

글쓰기에 완벽한 정답은 없습니다. 목적이 같다고 해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언어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들에겐 각자만의 문체와 향기가 있습니다. 기자들 또한 같은 소재로 논설을 쓴다 해도 스타일과 전개방식이 달라집니다. 심지어는 동일한 저자의 글도 생애 중 어떤 시기에 썼느냐에 따라 느낌과 형식이 사뭇 다릅니다.

참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유독 영어에 대해서는 “뭔가 네이티브들이 쓰는 정답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패턴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답이라는 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의미를 만들고 여러분이 구조를 결정합니다. 네이티브의 도움도 글쓰는 이가 말하려는 바를 확실히 알 때 효과를 발휘합니다.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정답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쓰기는 외길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쓰기는 온 세상을 유랑(流浪)합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작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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