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번역식 교육

현재 국가 교육과정의 이론적 뿌리가 되는 의사소통적 교수법(Communicative Language Teaching)의 지속적 영향 속에서 적어도 이론의 영역에서는 문법번역식 교육이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문법 공부와 번역 연습이 외어학습의 주요 전략이라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문법학습이냐, 어떤 번역 과제냐이지 문법과 번역 그 자체가 아니다. 다시 말해 문법과 번역은 재창조(reinvention)의 대상이지 버려야 할 구습이 아니다.

흔히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천사도 디테일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악마가 디테일에 있다고 떠들면서 ‘도매금’ 천사를 동원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상호복수, 그리고 “우리가 친구가?”

 

예전에 “상호복수”라는 개념에 해당하는 여러 표현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shake hands with someone’에서 hands가 복수인 이유는 손이 두 개라서라고 하죠. (물론 두 사람 모두 양손으로 악수를 하는 경우 네 개가 되겠죠.) 다른 예로 take turns / change seats 등이 있습니다. be on good/friendly terms with someone도 있군요.

페이스북에서 이미 친구가 된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친구 수락을 누르니 이렇게 나오네요. You are friends with this person. – 상호복수 문법에 따르면 상대와 나를 포함하기에 ‘friends’라는 복수형을 쓰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문법적으로는 이런데 페이스북의 “unfollow’ 기능을 생각해 보면 개념적으로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습니다. 분명 친구 사이이지만 unfollow를 할 경우 상대방의 소식이 사라지기 때문이죠.

즉, A는 B의 소식을 보지만, B는 A의 소식을 보지 않게 되는 ‘정보 비대칭 (실은 정서 비대칭)’의 상황이 되는 겁니다. 상호친구 사이에서 일방적인 친구 사이가 된달까요?

이 상황에서 ‘상호복수’ 개념은 그야말로 껍데기 느낌입니다. 정리하면 이런 거죠.

You are friends with this person. However, the person is not friends with you.”

저 unfollow 하신 분들은 이거 안보이실 듯. :)

Good+bye vs. Fare+well: 유의어는 유의어가 아니다

Goodbye와 Farewell은 유의어다. 물론 평소에 “Farewell!”로 친구에게 인사하는 사람은 없으니 Goodbye의 쓰임이 훨씬 광범위하고 구어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둘의 의미차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우주여행을 떠나는 배우자에게 하는 인사라면 어떨까? 아래 방송의 문맥에서 Goodbye와 Farewell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PETTIT: And I assured Don that I believed in what he was doing and I would be OK. And we held each other and you know, it was kind of like, this could be a goodbye.
PETTIT: Goodbye but not farewell.
 
“Farewell”은 Fare+well의 결합이다. Fare에는 ‘여행하다’, ‘여정을 떠나다’라는 뜻이 있고, well은 ‘잘’이라는 의미다. 여정에 어려움이 없길 바란다는 뜻이 담긴다.
 
이에 비해 (위 문맥에서) “Goodbye”는 말 그대로 작별인사다. 더 이상 서로를 볼 수 없는 상황, 영원한 이별 말이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비슷한 말의 거리가 벌어질 수 있다. 맥락에 따라 사전에 등재된 반의어(antonym)들의 거리가 재조정되는 것이다.

영어, 쉽게 쓰면 장땡인가?

쓸데없이 어려운 수능지문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만 ‘영어는 간단히 말하면 장땡’이라는 건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뭐 간단하게 말하며 장땡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다음 표현 중에서 맨 위의 것들만 골라서 쓰시면 되겠지요.
 
Shut (the xxxx) up!
 
Be qutet.
 
Can you be qutet?
 
Please be quiet.
 
Could you please be quiet?
 
Your quietness/silence is requested.
 
We would like to request your silence.
 
Your silence is cordially requested.
 
We would appreciate it if you could temporarily keep your urge to talk.
 
I am not sure whether you would agree with me. But as far as I know it is usually the case that people keep quiet while the speaker gives their speech.
 
그런데 이것들이 모두 같지는 않죠. 아니 꽤나 다릅니다.
 
저 또한 되도록 적은 단어로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확함(accuracy)’이라는 게 의미의 뼈대만 전달하면 된다는 식으로 오해되면 곤란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 모두는 언어 신호의 전달자(message deliverer)이기도 하지만 관계와 맥락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social being)니까요.
덧.
 
특정한 표현이 반드시 특정수준의 공손함에 대응하는 것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 “Quiet please”가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으므로 대인관계에서 피하는 것이 안전하지만 테니스 구장에서는 쉽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사회적 인식의 변화(테니스장에서 좀 떠들면 어때?)가 수반되면서 그 쓰임의 적절성도 변한다는 사실이다. 아래 기사는 이 점을 보여준다.
 
http://www.espn.com/tennis/story/_/id/17479201/us-open-quiet-please-silence-becoming-thing-in-tennis

TTS와 원어민주의

외국어학습에서 “원어민주의(native-speakerism)”는 강력한 영향을 발휘해 왔습니다. 이데올로기로서의 원어민주의(-ism)가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은 학습자들이 내재화한 “원어민이 구사하는 외국어가 최고이며 유일한 기준”이라는 생각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원어민의 권력이 가장 두드러진 영역은 아무래도 발음이 아닐까 합니다. 정확한 문법과 적확한 어휘를 사용하더라도 발음이 ‘구리면’ 절.대. 외국어를 잘한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죠.

최근 IOS 11과 구글 번역기의 TTS(Text-to-Speech; 텍스트를 읽어주는 기술)를 만족하며 사용중인데, 아래 링크는 또 다른
차원의 구글 TTS 를 선보이네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

https://google.github.io/tacotron/publications/tacotron2/index.html

음성을 들으며 간단한 가상대화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성우: 야, 너 이번에 새로 나온 구글 TTS 발음 들어봤냐?
우성: 응. 진짜 장난 아니더라. 이제 사람들이 발음교육에 신경을 좀 덜 쓰지 않을까? 통역기도 엄청 빨리 발전하던데… 몇년 지나면 한국어로 말하면 완벽한 영어발음으로 나올 거 아냐.
성우: 음… 그럴까? 그럼 원어민주의도 좀 덜해지려나?
우성: 무슨 말이야?
성우: 원어민주의란 말이지 블라블라…
우성: 역시 ㅅㅁㅊ. 그래도 잘 설명했으니 용서해 준다. 근데 그래도 원어민교사에게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사라지진 않겠지.
성우: 그렇겠지. 하지만 나중에 학생들이 이런 말 하면 원어민 교사 기분이 어떨까?
우성: 무슨 말?
성우: (장난스럽게) “선생님! 근데 선생님 발음 TTS보다 안좋아요. 그냥 TTS로 들려주시면 안되나요? 거기 버전 중에서 다니엘 레드클리프랑 아만다 사이프리드 목소리 좋은데.”
우성: 아…………

과연 TTS의 비약적 발전은 원어민주의의 위력을 누그러뜨리는 결과를 가져올까요? :)

덧.
원어민주의가 비이성적으로 과도해지면 완벽한 원어민임에도 불구하고 피부색을 이유로 채용하지 않는 관행을 부르기도 합니다. 명백한 인종차별이죠.

모두를 위한 영어교육학 강의 (3) – 주어의 재발견

구조에 대한 설명에서 의미를 이끌어내는 활동으로

먼저 다음 두 시나리오를 봅시다.

시나리오 1

교사: “자 여기, 문장 제일 앞에 나오는 이걸 뭐라고 하죠?”
학생: “명사요.”
교사: “그건 품사구요. 문장에서 하는 역할이 뭐예요? 5형식 배운 사람은 알텐데…”
학생: “주어요!”
교사: “맞아요. 주어. 그럼 이 자리에 나올 수 있는 거 뭐뭐 있지?”
학생: “명사요.”
교사: “좋아요. 명사. A cat 같은 거. 그리고 또?”
학생: “……”
교사: “명사를 대신하는 거, 뭐 있지?”
학생: “대… 명사?”
교사: “그렇죠. 명사를 대신하니까 대명사. ‘대’가 대신한다는 뜻이예요. It, she, he 이런 것들이 대표적이죠. I도 있구요. 명사, 대명사. 그리고 또?”
학생: “……..”
교사: “명사나 대명사 말고 동명사나 To 부정사도 올 수 있죠. 오케이? 자주는 아니지만 That 절도 올 수 있어요. 여기에서 That은 명사절을 이끄는 거죠. 그럼 예문을 몇 개 더 살펴볼게요.”

시나리오 2

교사: “자 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볼 수 있어요.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랑, 그 주제에 대한 설명. 앞의 것을 subject라고 하고 뒤의 것은 predicate라고 해요. 근데 이런 용어는 몰라도 돼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거지. 자자 다시. 문장은 뭘로 이뤄진다?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랑 그것에 대한 설명. 따라해 봐요. 주제와 설명.“
성우: “주제와 설명.“
교사: “오케이 좋아요. 그럼 성우는 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성우: “음… 영화요.“
교사: “영화요? 그럼 이렇게 시작하면 되겠네요. “The movie” 따라해 보세요. “The movie”.
성우: “The movie”.
교사: “영화가 어쨌어요?“
성우: “지루했어요.“
교사: “지루했다… 그럼 지루했다를 표현하는 단어를 찾아봐야겠네요.“
성우: “어떻게 찾죠?“
교사: “음 쉬워요. 한영사전을 찾으면 되죠.
성우: “(사전을 찾는다) Boring?“
교사: “맞아요. 근데 예문을 잘 봐요. 거기 boring만 있어요?“
성우: “아니오. 앞에 is가 있네요.”
교사: “그렇죠? 그러니까 boring은 혼자 못쓰이고 is 같은 애들이랑 같이 쓰여요. ‘is boring’ 이렇게. 좀 재미있게 표현하려면 The movie made me yawn. 그러니까 영화는 나를 하품하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쓸 수도 있겠죠?”
성우: “네.”

…(중략)…

교사: “그럼 영화 말고 다른 거 이야기해 보고 싶은 거 없어요?”
성우: “친구 충식이요.”
교사: “오케이. 그럼 “friend”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My friend 충식 이런식으로 쓰면 되겠네요.”
…(중략)…
교사: “근데 영화나 중식이, 컴퓨터나 비디오 게임 이런 거 말고 다른 이야기도 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음… 뭐 좋아해요?”
성우: “사진찍는 거요.”
교사: “오 좋아요. 사진찍는 거. 그렇게 뭔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 수가 있어요. Taking photos 같이 표현하면 되죠. 사진찍는 거 어때요?”
성우: “재미있어요.”
교사: “그럼 Taking photos is fun.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네요. ”

==

두 개의 시나리오에서 ‘주어’를 설명하는 방식은 사뭇 다릅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주어는 구조적 관점에서 설명되고, 그 예 또한 명사, 대명사, That-절 등의 문법용어(grammatical terms) 혹은 상위언어 용어(metalinguistic terms; 언어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쓰는 언어)입니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 주어는 문법용어로 전달되기 보다는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가’라는 의미 범주로 제시됩니다. 이에 따라 학생은 자기가 이야기하고 싶은 소재를 이야기하고 (저는 이걸 ‘던지고’라고 종종 표현합니다) 교사는 이에 대한 설명을 이끌어 냅니다. 사실 이것이 본래의 “subject”/”predicate” 짝에 근접한 설명일 수 있습니다. 문장이 사실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던지고, 이에 대해 설명을 하는 두 가지 파트로 이루어지는 거죠.

요약하면 “문장 = 말하고 싶은 주제를 던지는 부분 + 그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 정도 되겠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주부와 술부 정도 될 듯하네요. 그런데 ‘주부’나 ‘술부’ 같은 용어도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꽤 많더군요.

결국 시나리오 2에서는 시나리오 1에서와 같이 상위언어에서 상위언어로 이어지는 구조적 접근이 아니라, 말하고 싶어하는 소재를 이끌어내고 이에 대해 설명을 함께 만들어 가는 의미적 접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법용어가 완벽히 자리를 잡은 성인이라면 첫 번째 접근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 이 사회는 너무나 많은 문법교육을 요구하죠. 거시적으로 보면 교실에서의 교사-학생간 소통 규약(여기에서는 문법용어를 지칭)을 확립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이 투입되고 있는 것입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문법용어 및 시험 때문에 영어를 포기하게 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꼭 필요한 비용인지 의문이 듭니다.

이런 면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문법용어와 형식적 측면을 배제하고 최대한 의미만으로 문법구조를 풀 수 있는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연령이 낮은 학생을 가르친다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이죠.

하지만 여전히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습속(habitus)에 뿌리를 둔 문법 설명은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조금씩 변해가는 중에서도 오로지 문법으로만 영어를 배운 이전세대의 교육방식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자신의 세력을 지켜내고 있다고나 할까요?

제가 감사하죠 vs. Thank YOU

‘감사합니다’는 대개 ‘Thank you’로 번역되는데, 상대에게 감사를 돌릴 때 두 언어의 패턴 차이가 흥미롭다.

한국어
A: 감사합니다.
B: 제가 감사하죠. (‘제가’에 강세. 생략되었던 주어 등장.)

영어
A: Thank you.
B: Thank you. (‘you’에 강세. 비격식체에서는 주로 Thank YOU. 표기. 있던 목적어를 강하게 발음.)

한국어 ‘감사하다’는 타동사로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자동사로 쓰이고, 다른 꾸밈말을 동반하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단독으로 쓰일 경우가 가장 많은 것이다. 전통 문법으로 보면 ‘감사합니다’는 주어가 생략된 형태다.

이에 비해 영단어 thank는 타동사로 목적어를 취한다. “Thank you”가 가장 빈번히 쓰이지만 “Thank her”, “Thank him” 등이 가능하다. “Thank you”에서는 한국어 문장과 마찬가지로 주어가 생략되었지만 구조의 제약으로 목적어를 생략하진 못한다. (물론 him이나 her를 취할 경우 I가 등장하게 되므로 구조적 특성이 완전히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본 논의에서 중심은 아니므로 패스.)

일반적으로 한국어는 주어 생략이 잦다 하고 영어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상대에게 감사를 돌릴 때엔 이런 일반론이 살짝 뒤집히는 게 재미있다.

덧. 실험해 보진 않았지만 “Thank YOU.” 해야 할 상황에서 주어 I를 강조하며 “I thank you.”라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하다.^^

네이티브에게 외국어 배우기

그러나 외국어 교육에 전문성이 없는 (맥락 이해를 위해 역자 삽입) 원어민(native speaker)에게만 배우는 것은 에베레스트산에 오르는 데 산 꼭대기에서 태어나 밑을 향해 소리치며 방향을 지시하는 사람에게 안내를 받는 일과 같습니다. 발음은 정확할 지 몰라도 당장 흔들거리는 보울더(비바람에 깎여 둥근 모양이 된 바위)에서나 위험천만한 빙하의 균열 지점에서 확고한 발판을 찾는 데 도움을 주진 못합니다. 여러분들께 필요한 것은 말하자면 언어학습을 돕는 셰르파입니다.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해당 언어의 고지에 오른 비원어민 화자(nonnative speaker) 말입니다.

“But learning from a native speaker alone is like being guided up Mt. Everest by someone who was born at the top of the mountain and is shouting directions down from above. The sounds may be pronounced correctly, but that won’t help you find firm footing among the loose boulders and treacherous crevasses. What you need is a language Sherpa, if you will: a nonnative speaker who struggled with the language and who conquered it.” (p. 89)

Richard M. Roberts and Roger J. Kreuz. (2015). Becoming Fluent: How Cognitive Science Can Help Adults Learn a Foreign Language. Cambridge, Massachusetts: The MIT Press.

동영상의 밀도

Posted by on Aug 11, 2017 in 단상, 링크, 삶을위한영어공부, 영어 | No Comments

트렌드에 관심도 없고 따라갈 능력도 안되지만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감은 잡아야 할 듯하여 가끔 ‘영어 학습법’ 동영상을 찾아본다. 대개 정보의 밀도가 낮고 주변적인 이야기가 많다. 아는 내용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으나 한두 문장으로 요약 가능한 이야기를 5분 10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미디어에 대한 나의 오해일 수 있다. 동영상의 정보밀도는 낮추고, 신변잡기+경험+유머+슬쩍호통치기를 적당히 갈아넣어 매력적인 진행자를 통해 전달하는 방식이 최고의 성공전략일지도 모르니까.

얼마 전에는 동영상 강의를 보는데 추천 영상 중 하나가 <미국 교포 vs 영국 교포, 누가 더 영어를 잘할까?>라는 제목을 달고 있더라. 이런 제목에 끌리는 사람과 행여나 손이 미끄러져 클릭하게 될까 조마조마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당연히…

한국에서 웹이 시작되던 시기부터 웹상의 교육에 대해 고민해 왔지만 미디어에 대한 태도와 미감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 듯하다. 영상을 정보습득의 제1매체로 쓰는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상이라는 ‘외국어’에 좀더 깊이 빠져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덧: 물론 모든 영상이 ‘듬성듬성’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애정해 마지 않는 Vsauce 같은 채널을 보라. 문자매체 못지 않은 정보밀도를 자랑한다. 스크립트가 웬만한 책 원고보다 낫다.

https://www.youtube.com/user/Vsauce

영어 표현 메모 몇 개

1. read와 read into

read가 보통 ‘읽다’의 의미라면 read A into B는 “B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의미, 느낌 등을 ‘읽어내다'”라는 뜻으로 종종 쓰인다. 특히 “read too much into something”의 형태로 자주 쓰인다.

“The boy is reading too much into her words.” (소년은 그녀의 말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읽어내고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reading은 ‘read into’의 요소를 갖고 있다. 하지만 너무 심하면 ‘지멋대로 독해’가 되어버린다. 그런 경우를 ‘read too much into something’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2. meet과 meet with

meet은 ‘만나다’라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 이에 비해서 ‘meet with’는 조금 더 형식을 갖춘 느낌으로 일과 관련해서 더 자주 쓰이는 편이다. 일반화하긴 힘들지만 영국영어보다는 미국영어에서 meet with가 자주 발견되는 듯하다.

(중학교 때 meet을 철저히 타동사로만 배웠던 기억이 나서 meet with를 매일같이 쓰는 동료들을 보며 살짝 배신감이 들었다.)

3. on one occasion

한국어의 ‘한번은’에 잘 대응하는 표현이다. 뒤에 나오는 이야기가 흥미롭고 주목할만한 것임을 슬쩍 보여준달까.

4. onto

onto의 의미는 ‘into’와 ‘on’이 적절하게 버무려진 것으로 보면 된다. 어떤 위치로 ‘진입’하는 것과, 진입된 위치가 뒤에 나오는 명사와 접촉하고 있음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onto the stage”는 (1) 무대 밖에서 안으로의 진입(into)과 (2) 진입한 위치가 무대에 닿아 있음(on)을 동시에 나타낸다.

5. in the nick of time / just in time

Just in time과 in the nick of time은 거의 비슷한 의미다. ‘사고가 터지거나 당황스런 일이 일어나기 직전에’ 정도의 뜻으로 보면 된다. 다만 이 둘이 쓰이는 맥락이 조금 다른데 just in time은 두루 두루 쓰이는 데 반해 in the nick of time은 스토리텔링에서 주로 사용된다.

6. Dead on time

영국 영어에서 “dead on time”은 ‘딱 맞추어서”의 의미다. “Dead”가 ‘죽은’의 의미가 아니라 ‘바로(right)’의 뜻으로 쓰인 것. 그래서 사람들이 장난스럽게 이런 문장을 해석해 보라 하기도 한다.

“The man arrived dead on time.”

물론 문맥에 따라 죽어서 도착한 것일 수도 있지만, 딱 맞춰서 도착했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

Lo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