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시간을 헤아리는 논문쓰기: 경험으로서의 텍스트

전형적인 연구논문이라면 제목, 초록, 서론, 문헌연구, 방법론과 결과, 논의, 결론, 나아가 참고문헌과 부록까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미 출판된 논문이라면 대개 수정이 불가능합니다. 논문은 하나의 완결된/닫힌 텍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논문은 하나의 완성품입니다. “논문”이라는 명사로 표현되고요. 명사의 세계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자동차’나 ‘지우개’에 시간이 들어있지 않듯 말입니다.

하지만 논문을 독자가 읽기 시작하면 시간 위에서 흘러갑니다. 읽는 행위는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텍스트를 스캔해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아니라면 우리는 1분에 기껏 몇백 단어를 순차적으로 읽어내어 내용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읽기라는 행위가 시간의 축 위에서 진행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쓰기는 단지 완결된 텍스트의 생산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쓰기는 독자가 경험할 시간을 상상하는 일이고, 그 시간 속에서 일어나고 또 일어나야만 하는 경험을 조직하는 활동입니다. 이런 면에서 쓰기는 텍스트를 매개로 하여 자신의 지식을 독자의 경험으로 번역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제가 강의를 하고 있는 건물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외관이 바뀌거나 방 사이의 칸막이가 사라지거나 하는 일은 없죠. 계단이 춤을 추거나 창문이 자리를 바꾸지도 않습니다. 공사가 끝난 건물은 변화하지 않는 정적 구조물입니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명사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건축물이 누군가에 의해 경험될 때, 건축물은 ‘살아 움직이는’ 시간의 예술이 됩니다. 건축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시간의 축 위에서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건축물은 완결된 구조가 아니라 방문자와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경험의 총체입니다.

미술관을 설계하는 건축가를 생각해 봅시다. 그는 단지 완성품으로서의 건축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방문객들이 건축물과 만났을 때 어떤 경험을 하게 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지요. 미술관에 진입하는 길에서 어떤 생각에 잠기게 할지, 미술관 벽면의 소재가 어떤 느낌을 줄지, 정문을 어떤 방식으로 통과하게 할지, 들어왔을 때 채광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어떤 느낌일지, 천장의 높이와 조명에서 어떤 아우라를 만들어 낼지, 방문자의 동선을 어떻게 유도할지 등을 세심하게 살핍니다. 이를 통해 변하지 않는 완성품으로서의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살아 움직이는 건축물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독자의 시간을 헤아리는 글쓰기의 중요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맞는 문장, 멋있는 표현을 동원하는 글쓰기도 중요하지만, 글을 읽어내려가는 독자의 호흡을, 이해의 속도를, 정서적 임팩트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죠. 이런 면에서 글쓰기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풀어내는 행위이면서 독자의 시간을 먼저 살아보는 행위입니다.

유능한 작가는 유능한 독자입니다. 쓰면서 동시에 읽는 것이죠. 궁극적으로 좋은 작가는 쓰면서 읽고, 읽으면서 씁니다. 텍스트를 읽을 땐 읽기+쓰기를, 쓸 때는 쓰기+읽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독자에 대한 감은 어디에서 올까요? 독자를 직접 만나볼 수 없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전공영화’와 ‘수 구조(move structure)’라는 개념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어로논문쓰기

촛불집회 논문 출판

Posted by on Feb 21, 2020 in 강의노트, 링크, 영어로 글쓰기, 집필 | No Comments

작지만 뜻깊은 논문이 출판되었습니다.

2016-2017년 박근혜 퇴진운동의 거의 모든 집회에 참여하면서 틈틈이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와 함께 언어경관(linguistic landscape)에 관한 다양한 문헌을 읽기 시작했고, 언어교육과 관련된 논문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2017년 여름이었던가요. 장인철(Inchull Jang) 선생님과 함께 현실정치에 관심을 둔 사회언어학/응용언어학자로서 함께 글을 써보자는 의견을 나누었고 자료조사와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몇 번의 방향 전환, 검토와 수정을 거쳐 오늘 <사회기호학 (Social Semiotics)> 저널에 “시위에서 매개도구의 궤적: 대한민국 촛불 집회에서의 손피켓의 사례를 중심으로(A trajectory of a mediational means in protest: the hand placard in South Korea’s Candlelight Protests)”라는 제목의 논문이 출판되었습니다.

논의는 시위도구로 쓰여진 손팻말(hand placard)에 집중합니다. 최근 한국의 시위현장에서 보이는 손피켓은 개개인이 손수 만든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대량으로 제작되어 뿌려지는 것이죠. 이는 그 자체로 특이한 현상이면서 여러 가지 언어적, 심리적, 상징적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논문은 이 점에 주목하여 손피켓이라는 매개도구(mediational means)를 중심으로 촛불집회를 조망합니다. 시위 현장의 모습을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의례적으로 또 창조적으로 사용하는지 추적합니다. 나아가 그 가능성과 한계를 탐색합니다.

논문을 읽어보실 분들이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만, 제가 논문을 쓰면서 가장 깊게 고민한 부분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These impressions made the first author ask the following fundamental questions regarding the politics of protest in a democratic society: “How can we marshal solidarity across a wide range of sociopolitical spectrums while not forfeiting the small yet critical voices of each participant and stakeholder, and how can we achieve democracy ‘within’ protests beyond the protests ‘for’ democracy?” (Fieldnote, 4 December 2016).”

논문을 출판하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여러 사진들을 아낌없이 제공해 주신 박여라 선생님, 홍승희 선생님, 그리고 오마이뉴스의 이병한 편집국장님과 이정민 기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원고를 보고 꼼꼼히 피드백을 주신 이정아 선생님과 Mike Chesnut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힘있게 논문을 마무리해 주신 저자 장인철 선생님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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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논문의 초록입니다. 혹시 읽어보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아래 답글로 말씀해 주십시오. 메일로 논문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A trajectory of a mediational means in protest: the hand placard in South Korea’s Candlelight Protests>

While positioning this research within the growing body of scholarship related to linguistic landscape of protest, we illustrate a distinctive form of analysis. Rather than giving a generalized, extensive, or quantitative description, we focus on a qualitative and in-depth analysis of a single protest tool in relation to protest actions and space-making. Drawing on the concept of “mediational means” from mediated discourse analysis, we analyze the linguistic and semiotic functions and effects of sonp’aenmal (hand placard), a protest tool uniformly and widely employed during South Korea’s 2016–2017 Candlelight Protests. Based on a corpus of protest images and our autoethnographic accounts of direct participation, we examine why this sign emerged as an important tool in the protest space, how it was utilized ritually and creatively, and the effects of its use on protesters’ experiences, sensitivity, and identity. Competing discursive effects caused by its uniform design and widespread use are discussed further.

KEYWORDS: South Korea, Candlelight Protests, linguistic landscape, mediational means, hand placard, protest tool

 

논문 링크: https://www.tandfonline.com/doi/abs/10.1080/10350330.2020.1730555

영어로 논문쓰기 – 5차 강의 단상

Posted by on Feb 18, 2020 in 강의노트, 단상,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두 해의 대학 강의와 5회의 방학 특강 등을 통해 <영어로 논문쓰기> 강의를 다듬어 왔습니다. 그 결과 이번 강의에 이르러서는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한 자료로 내용을 전해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전공과 수준의 수강생 분들이 필요로 하시는 바를 완벽히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유익한 내용을 전달해 드리려고 합니다.

저보다 잘 가르치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연구자로서의 역량이 뛰어난 분은 더더욱 많고요. 그래도 수년 간 조금씩 업그레이드 된 강의 자료를 보고 있으니 조금은 뿌듯해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말 아침 휴식을 포기하고 멀리까지 오시는 분들의 시간을 소중히 대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영어로논문쓰기

계획을 세우지 않고 살기: 지극히 주관적인 노동법

‘꼼꼼한 사람이 따로 있지. 계획 엄청 촘촘히 세우고 그대로 안되면 짜증내고 그런 사람.”

언젠가 이 말을 듣고 돌아오면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과 같은 ‘방만한 문돌이’로서 나를 아는 사람은 믿기 힘들겠지만 대학원 과정 중 e-Learning 관련 프로젝트에서 3년, IT 현업에서 7년을 일했다. 구체적으로는 콘텐츠 개발자, 테크니컬 라이터, e-Learning 전략기획 등의 업무였다. 공부를 하러 떠나기 직전 4년 정도는 프로젝트 매니저를 업으로 삼았다.

매니저가 업일 때 능력에 맞지 않게 꽤 큰 프로젝트를 맡았다. 경영진, 영업 및 마케팅 부서, 콘텐츠 개발부서, 기획, 디자인, 개발, 운영부서까지 100여 명이 되는 사람들과 몇 년을 함께 보냈다. 하루에 미팅 서너 개는 기본이었고 많을 때는 일곱, 여덟 개까지 소화하곤 했었다. (이놈의 회의주의란.)

당시 나의 일을 단순하게 표현하면 “꼼꼼히 계획을 세우고, 점검하고, 실행하는 것”이었다. 시간과 돈, 인력을 ‘관리’하면서 일이 굴러가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말이 ‘프로젝트 매니저’이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갈등을 조정하는 게 업무의 중심이었다. 관련 서적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지만 돌아보면 프로젝트 코디네이션을 관통하는 업무는 관계 및 감정관리였다. 짧은 프로젝트 매니저 경력에서 얻은 교훈은 ‘인지적인 움직임 밑에는 정서적, 사회적 관계가 있으며, 그것이 소위 ‘관리’의 핵심이라는 것, 관리자의 핵심역량은 개개인의 감정과 동기를 팀과 조직의 목표와 매끄럽게 정렬(align)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계획을 거의 세우지 않는다. 학사일정이야 따라야 하는 것이지만 ‘1분기에는 뭘 할까’, ‘금년에는 뭘 할까’ 같은 계획은 없다. 꼭 이뤄야 할 과업 자체가 없다. 백 명이 넘는 인력의 하루하루를 체크하던 인간이 자기 시간 하나 잘 관리하지 않는다/못한다. 그래도 괜찮다는 걸 깨달은 지 좀 되었기 때문이다.

계획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피니 대충 이런 시나리오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우선 자료를 찾아보고, 이리저리 읽고, 끄적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감잡는 단계를 거쳐 흔히 말하는 ‘잡문’, 혹은 ‘쪽글’을 쌓는다. 관심이 가는 주제면 이게 계속 축적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몇 개의 쪽글로 끝이 난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글은 생각의 덩어리가 된다. 먼지도 서로를 당겨 뭉텅이가 되듯, 아이디어가 모여 계획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생각이 가닥을 잡기 시작하면 친한 사람들에게 ‘뭔가 할 생각이 생겼다’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디어의 실행가능성이 조금씩 드러난다. 보완하거나 덜어내야 할 점도 보이기 시작한다. 대화를 통해 막연한 생각이 구체적인 실행 아이디어가 되는 것이다. 이후 숙성의 단계에서 좀더 해상도 높은 쪽글을 써낸다. 단상은 강의노트나 초고가 된다.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 나도 모른다. 계획을 세우지 않기 때문에 기약도 없고, 계약도 없다. ‘납기’가 없는 글은 이런저런 삶의 풍파에 한정없이 미뤄진다. 하지만 관심이 지속되는 한 계속 읽고 써내게 되니 오랜 생각은 덩치가 커지고 부족하지만 공유할만한 모양이 된다. 여기까지 진행되면 책이나 논문의 원고로 변신할만한 꺼리가 확보된다.

그래서 결론은 “꼼꼼한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는 거다. 살아가는 데 필요하면 빈틈없는 계획을 세우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세월아네월아 하게 되는 것이다. 원래 그런 사람은 없지만,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은 대부분 갖고 있다. 앞으로도 상황이 바뀌어 시간을 ‘관리’해야 하는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긴 계획 없이 살아간다. 시간에 맞추어 행동을 조직하기 보다는 생각의 흐름에 삶을 맞춘다. 그래도 괜찮고, 그래서 재밌다.

덧.

느지막이 낮잠에서 깬 오후. 이불속은 집안의 블랙홀인가. 일어나려 발버둥쳐 봐도 도저히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 아, 왜 이렇게 점점 게을러지지?
짝: 무슨.
나: (게으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격려’를 감지한다.)
짝: 원래부터 게을렀잖아.
나: … … … (털썩)

원래부터 게으른 삶.
앞으로도 이 스타일 쭉 유지해야겠다.

#짝과나 #무계획의삶 #쭉게으르게살자

영어로 논문쓰기 강의노트 여섯

1. 영어로 논문쓰기를 분석적으로 이해하고 공부하는 데 필요한 요소 5가지

(1) 영어에 대한 이해 (도구언어에 대한 이해)
(2) 논문에 대한 이해 (학문공동체의 의사소통방식이자 사고방식으로서의 논문에 대한 이해)
(3) 쓰기에 대한 이해 (쓰기행위에 대한 개념적, 실천적, 메타인지적 이해)
(4) 읽기와 쓰기에 대한 통합적 이해 (장르로서의 논문에 대한 이해 및 장르분석법 이해)
(5) 영어로 논문을 쓰는 행위에 대한 이해 (프로젝트로서의 논문쓰기 수행에 수반되는 다양한 지적, 정서적, 정보적 요인에 대한 이해)

2. ‘논문’은 없다?!

논문을 개념적으로 이해하고 그에 대한 바른 태도를 갖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논문을 막연하게 생각하고 ‘무조건 많이 읽고 쓴다’고 결심하는 것은 심히 비생산적입니다. 그보다는 논문쓰기 공부에 있어서는 특정 사회문화적 상황에서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특정한 방식으로 생산되고 통용되는 논문의 구체적 성격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재즈”라는 장르는 구체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개별 재즈곡이 있을 뿐이죠. 마찬가지로 “논문”이라는 건 없습니다. ‘논문’은 개별 학문 분과 내의 다양한 논문들이 모인 집합명사로서 추상적 의미를 표현할 뿐이니까요. 그래서 막연히 논문을 많이 읽어서 잘 써보겠다는 결심은 무엇을 쓸지 대충 생각해 보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대충 생각하면 글이 대충 나옵니다.

글쓰기 공부에 있어 텍스트의 구체적인 성격, 자신이 목표로 하는 텍스트의 구체태에 천착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논문쓰기를 배우는 일은 이 구체태를 디테일하게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일에 다름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상세하게 논문을 상상할 수 있으신지요?

3. 논문생산과 연구자의 삶

교수들의 삶도 대학원생들의 삶도 너무 복잡해 보입니다. 읽고 생각하고 실험하고 토론하고 논쟁하고 쓰고 고치고 다시 쓰고. 이런 삶을 그리기엔 ‘잡일’이 너무 많은 겁니다. 개개인의 능력 부족이나 푸념일 뿐이라 생각하기엔 정말 일이 많습니다.

‘내가 여기서 뭘 하는지 진짜 모르겠어’라는 말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집중해. 이 와중에서도 잘해내는 사람들 안보여?’라고 대답하는 듯한 시대가 참 많은 이들을 아프게 합니다. 구조와 문화의 문제들을 그저 개인의 노오력으로 돌파해야 하는 현실은 슬픕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분투하는 이들의 연대가 아니라 승리한 자들의 노획물 같은 공부를 어디에 쓴단 말입니까.

4. 사회적 과정으로서의 논문쓰기

예술 및 스포츠 분야에서의 성공은 타직군에서 일하는 것보다 오랜 기간 강도 높은 훈련을 요구합니다. 재능의 비중도 더 크다는 것이 정설이죠. 그래서 천재들의 신화,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이야기들이 탄생합니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겁니다!

하지만 발달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들이 갖는 ‘무기’는 명확합니다. 바로 자신의 수행(performance)을 끊임없이 모니터해야만 하며, 이러한 돌아봄(reflection)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동작을 살피지 않는 무용가, 연기를 복기하지 않는 배우, 자세를 교정하지 않는 역도 선수, 연주를 녹음해 보지 않은 피아니스트가 높은 수준에 이르긴 불가능합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반성을 한다는 사실이라기 보다는 반성의 구체적인 방식입니다. 잠자리에 들며 천장을 보고 중얼거리거나 꾸준히 일기를 쓰는 일과 같이 주관성이 높은 도구가 아니라, 자세, 동작, 표정, 움직임 및 소리를 정확히 재현하는 도구들이 동원된다는 점 말입니다.

일기는 생각을 정리하거나 감정을 추스리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실제 퍼포먼스를 되살리는 데 역부족입니다. 오디오로 따지면 초저충실도(super low fidelity)라고 해야 할까요. 이 점에서 현재로서는 비디오가 가장 좋은 미디어라 할 수 있습니다. 특정 각도에서 촬영한 비디오의 한계가 있지만, 실제 일어났던 일을 있는 가장 풍부하게 재현한다는 점에서 여타의 기록방식을 압도하는 충실도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것은 전문가의 식견입니다. 같은 비디오라 해서 모두에게 같은 정보를 주지 않는다. 경험과 지식의 깊이만큼 더 풍부한 정보와 함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무용가가 보는 무용 비디오와 필자가 보는 무용 비디오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에 놀랍니다. ‘이거 내 목소리 아닌 거 같아’라면서 손사래를 치기도 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과 누군가에게 인식되는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저 또한 가끔 강의를 녹음해서 듣곤 하는데 솔직히 들어주기 힘듭니다. 더 잘하기 위해서는 강의 전체를 분석적이고 비판적으로 읽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디로 숨고 싶은 마음을 몇 시간 동안 견뎌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술에서의 피드백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사실 자신의 논문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가 극히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예외가 분명 있습니다만, 제가 만나고 가르쳐 온 대학원생들의 경우 글쓰기는 굉장히 폐쇄적인 과정이었습니다. 아주 가끔 지도교수의 피드백을 받기도 하지만, 글쓰는 과정 전반은 고립감과의 싸움인 경우가 많았죠.

언젠가 소위 ‘글로벌 대기업’의 인사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인사에 있어서 특별한 철학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특별한 철학이 있는 건 아니지만, 더 똑똑한 사람은 늘 저 밖에 있다(Smarter people are always out there.)”고 생각하며 사람을 찾는다고 하더군요. 내로라 하는 인재들이 모여 있는 회사이지만 정말 좋은 인재들은 늘 어딘가 숨어 있다는 가정을 갖고 움직인다는 말이었습니다.

저 또한 오랜 시간 홀로 쓰는 우를 범해왔습니다. 원고를 좀더 잘 고쳐서 지도교수에게 보내야지 생각합니다.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마음에 안들고’ 하면서 발을 질질 끕니다. 지도교수와의 미팅을 미루고, ‘다음엔 확실히 더 나은 원고를 가져가야지’하면서 자책하기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제가 간과했던 건 ‘저 밖의 누군가’가 제 글을 읽으면 제가 놓쳤던 부분을 지적해 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머리 하나로 쓰는 것보다 둘, 셋으로 쓰는 글이 훨씬 더 나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오토 크루제는 <공포를 날려버리는 학술적 글쓰기 방법>에서 “많은 사람들이 텍스트를 제출하는 데 문제를 갖고 있기에 텍스트를 계속해서 완전하게 만들려고 한다. 글쓰기를 배운다는 것은 이와는 완전히 반대로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공개적으로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약점을 은폐하는 대신에 (그것에 대해) 묻는 법을 배워야 하며 그에 따라 논리적으로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글쓰기는 홀로 강점을 키워가는 일이 니라, 함께 약점을 보완해가는 일이 되어야 함을 말해 줍니다. 글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자신에게 있지만 그 과정에서 사려깊고 명민한 이들의 도움을 받는 일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그것만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길이죠. 쓰기를 골방에서의 고군분투가 아니라 공동체 지식의 활성화(activation), 비판적이고 협력적인 사회적 활동(social activity)으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5. 대화로서의 읽기

연구자는 텍스트를 대할 때 ‘읽기’ 이외에도 ‘읽어내기’를 해야 합니다. 텍스트가 하는 말을 경청하는 행위가 (좁은 의미의) ‘read’라면 능동적으로 텍스트의 행간을 채워가며 의미를 증폭시키는 행위는 “read into”라고 할 수 있습니다. 텍스트의 의미는 주고 받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읽기든 마찬가지입니다만, ‘강의를 듣는’ 읽기와 ‘대화로서의 읽기’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읽기는 저자의 말을 듣기만 하는 읽기가 아니라 저자의 말에 우리의 말을 더하는 대화적 읽기입니다.

6. “나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비판적으로 재정립하는 글쓰기교육

교육과정에서 쓰기는 말하기와 함께 “표현기능”으로 분류됩니다. 사고가 외부로 표출된다는 점에서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밀어내기'(ex-pression)라고 보는 것이죠. 하지만 쓰기, 그 중에서도 학술적 글쓰기는 흔히 말하는 <경청의 기술>을 가르치는 데 매우 효율적인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글쓰기 전문가들은 학술적 글쓰기를 설명할 때 “대화에 참여하기”(join the conversation)라는 비유를 사용합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글쓰기가 대화를 새로 시작한다기 보다는 기존의 대화에 끼어드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면 잘 끼어들기 위한 왕도 같은 건 없습니다. 아무리 지식과 견문이 넓어도 일단 유심히 들어야만 대화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재 적소에 필요한 말을 하려면 대화의 소재, 길이, 흐름, 말하는 규칙, 전개방향, 형식, 사람들의 성향 등에 대해 민감해야 하죠. ‘있어보이는 말’을 함부로 쓰는 것도 조심해야 하구요.

그렇다면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경청하고 종합하여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즉, 나의 생각과 그들의 생각을 대치시키는 작업이 아니라, 담론과 논쟁의 흐름 속에 나의 자리를 잡는 과정, 거대한 대화의 흐름에 내 작은 목소리 하나 더하는 행위인 것이죠. 사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영화배우들이 수상 소감에서 하는 말처럼 “저는 한 거 없습니다. 그냥 다 차려진 밥상에 밥숟가락 하나 놨을 뿐이죠. 여러 동료 연구자, 작가분들 참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렇구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지를 금새 깨닫습니다. 짧은 시간 글쓰기에 대해 공부하면서 배운 건 글쓰기의 본령이 개인의 독창적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내 생각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재정립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글쓰기는 경청과 겸손을 가르치는 데 참 좋은 도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언젠가 이런 글들을 체계적으로 모으고 영어와 관련된 부분을 보강하여 <영어로 논문쓰기>를 컴팩트한 원고로 완성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

#영어로논문쓰기

바로 여기에서

부끄러운 고백이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 몇 년 동안 북미 학계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떨쳐내지 못했다. 계절마다 돌아오는 학회에서 만나 안부를 전하고 교류하는 친구, 선후배들이 부러웠다. 함께 논문을 출판하는 연구자들에 끼고 싶었다. 수년 간의 읽기모임과 논문 작성을 위한 토론모임이 그리웠다. 무엇보다도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던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돌아와서 거의 6년을 그저 가르치는 일로 채웠다. 누구보다 많은 수업을 소화했다. 한 해에 열 개가 넘는 새로운 과목을 가르치는 일도 있었다. 주말도 방학도 없던 시절이었다. 연구자에게 생명과도 같은 현장과 멀어졌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쟁하는 친구들도 ‘사라졌다’. 먹고사니즘 핑계는 늘어갔다. ‘얕고 넓은 지식’은 이내 말라버렸다. 도망의 기술은 늘었고 합리화는 체념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를 키워준 공동체는 저 멀리 있을지 모르지만 내 삶을 지탱하는 터전은 바로 이곳임을. 여기에서 소통하고 연대하고 성찰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쉽지 않았던 선택들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임을. 과거의 인연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연구의 기회를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지어가야 한다는 것을. 이곳은 학문의 변방이 아니라 삶의 중심이며 고통의 진원지임을. 일상 밖에는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음을.

조금씩 균형을 잡아간다. 여전히 위태위태하다. 하지만 막연히 과거를 그리는 일은 사라졌다. 특히 이번 대담 작업을 통해 함께 이야기를 지어가는 기쁨을 회복했다. 그러고 보니 턱없이 부족한 실력으로 여기까지 오는 데는 늘 속깊은 사람들이 있었다. 함께 쓰자고 다짐했던 이들은 멀어졌지만 삶을 나누는 이들은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협업이 만들어졌다.

나태함에 기꺼이 굴복하던 나를 글쓰기에 초대해 주었던 C, 아직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논문을 책임감있게 이끌어 준 J에게 고맙다. 이번 대담에 함께해 주신 선생님과 훌륭한 가교 역할을 해주신 편집자께도 큰 신세를 졌다. 장기간의 연구자 대화 프로젝트를 제안해 준 M샘, 삶의 이야기를 기꺼이 나누어 주시는 E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나의 글은 언제나 ‘자립의 기록’이라기 보다는 ‘빚짐의 흔적(a trace of indebtedness)’였던 것 같다. 갚아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만큼 감사도 깊어간다.

#영어로논문쓰기

작은 꿈

제2언어 리터러시를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학술적 글쓰기, 특히 논문쓰기에 관심을 갖고 강의를 열고 있습니다. 최근 사회적으로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대학에서마저 체계적으로 글쓰기를 배울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습니다.

몇해 전 한 교수님의 도움으로 경영학과 대학원에서 영어논문쓰기 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시적으로 열리는 강의여서 2년 만에 폐강이 되었죠. 반응은 나쁘지 않았으나 제도적 뒷받침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속할 힘을 잃었던 것입니다.

사실 대학원에서 영어논문쓰기를 가르치려고 한다면 저와 같은 리터러시 연구자와 해당 분야의 내용전문가가 협업하여 커리큘럼을 만드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제가 영어논문쓰기에 대한 개념적 틀을 제공하고 다양한 전략을 나누긴 하지만 개별 학문분야에 속한 학술지나 논문의 성격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해당 분야를 꿰뚫고 있는 연구자와의 협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이같은 협업의 토대가 제공되긴 커녕 학술적 글쓰기 수업도 개설되지 않는 실정입니다. 물론 개별 수업에서 글쓰기가 핵심활동으로 자리잡는다면 영어글쓰기를 따로 가르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학부, 대학원 과정은 내용의 전달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쓰기를 통해 지식을 심화하고 재조직하는 일은 뒷전입니다. 영어논문쓰기도 엄청나게 강조는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주질 않죠. ‘읽고쓰기 각자도생’이 암묵적으로 강요되는 현실입니다.

몇해 전부터 내용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해 탄탄한 글쓰기 수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새로운 강의 개설은 몇 가지 단계를 거쳐야 가능한 일입니다. 커리큘럼 개발을 위한 시간과 돈이 필요하고 강의개설 및 운영권이 필요합니다. 이들 ‘난관’을 해결할 수 있는 책임자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도적 뒷받침이 없어 대학 외부에서 강의를 열 수밖에 없더군요. 이것도 나쁘진 않습니다만 대학의 리터러시 교육 개혁이라는 대의를 생각하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느낌입니다.

꼭 영어로 글을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학술장은 과도하게 ‘국제화’ 담론을 퍼뜨려 왔고 영어논문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고 있습니다. 많은 분야에서 KCI 등재지는 ‘2류 저널’ 취급을 받죠. 자기 존재를 비하하는 현실. 절대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저 또한 제 학술활동의 많은 부분을 한국어로 진행합니다. 대중과의 소통에서는 한국어 글쓰기가 중심이고요. 학문이 사회에 뿌리박고 건강하게 자라나기 위해서는 모국어 리터러시가 탄탄해야 합니다. (한국어 잘하고 싶어요!)

그럼에도 영어 글쓰기가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기에 ‘맨땅에 헤딩하면서 배우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대학교육의 본분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알아서 여기까지 왔으니 너도 혼자 해봐’라고 말하는 것은 더 의미있는 일들을 해낼 시간과 에너지를 박탈하는 일입니다. 도구를 주고 집을 짓게 해야지, 도구까지 만들어가며 집을 지으라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죠.

어제는 한 대학 단과대학 랩의 초청으로 두 시간 <영어로 논문쓰기>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연구실 디렉터이신 교수님이 오셔서 마음이 가득 담긴 음성으로 말씀하시더군요.

“오늘 말씀하신 걸 25년 전에 알았으면 제가 공부하고 논문쓰는 게 정말 달라졌을텐데요. 제가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너무 잘 정리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일 뿐입니다. 대단한 비법이 담겨있지도 않죠. 하지만 간혹 연구자로서의 삶에 진입하는 단계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또 다른 협업을 통해 더 나은 글쓰기 강의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

꿈꾸다 보면 언젠간 되겠죠. :)

#영어로논문쓰기 #삶을위한리터러시

[강좌공지] 영어로 논문쓰기 – 읽기쓰기 통합전략을 중심으로

본 강의는 영어논문 작성에 필요한 지식을 <읽기와 쓰기의 통합>의 관점에서 논의합니다. 기존의 다독(多讀)이나 다작(多作) 전략을 넘어, ‘분석적 읽기’, ’쓰기를 위한 읽기’ 방법론을 익히고 적용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일시 및 장소>
일자: 2020년 2월 1일, 8일, 15일, 22일(토요일)
시간: 오전 10:30-1:30 (총 12시간)
장소: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10길 48 동궁빌딩 2층 (망원역 부근, 전국영어교사모임 사무실)

<대상>
(영어) 논문의 세계에 입문하는 대학원생
논문의 전형적 구조와 내용을 정리하고자 하는 연구자
논문지도에 체계를 더하고 싶은 지도교수
영문 아카데믹 라이팅 전반에 관한 이해를 도모하고 싶은 일반인

<강사>
김성우 (응용언어학자. 서울대학교 강사)
제2언어 리터러시 연구자로 석박사과정 학생들의 리터러시 발달과 관련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러 대학에서 영어교육과 영어 글쓰기 관련 강좌를 해 왔고 연세대 등에서 논문쓰기 특강을 진행했다. <영어교육을 위한 IT> (공저), <어머니와 나>, <단단한 영어공부> 등을 썼으며 <리터러시와 권력>의 번역을 감수하였고, 현재 <삶을 위한 리터러시 (가제, 공저)>의 출간을 준비중이다.

<수강료>
수강료: 20만원(입금 기준 선착순 마감)
입금계좌: 농협 352-1224-5068-13 (예금주 이경란)

<강의신청 링크>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xBXU0tyqLwUUYcUxq1Cjtieb1yocnMI_IaIv9MMJwal08KQ/viewform

<강의내용>
I. 학술 논문의 개념적 이해 (1강, 3시간)
1. 장르로서의 학술논문
2. 읽기와 쓰기의 관계
3. 학술공동체와 작가로서의 연구자

II. 논문작성을 위한 기초체력 기르기 (1강, 3시간)
1. 콜로케이션과 메타포 공략하기
2. 의미생산을 위한 문법 익히기
3. Academic Phrasebank로 학술논문 기본구문 공부하기

III. 영어논문작성을 위한 읽기쓰기 통합전략 (2강, 총 6시간)
1. 흐름 코딩으로 논문 꼼꼼히 읽기
2. 논문의 얼굴 – 초록과 서론의 분석적 이해
3. 거인의 어깨 – 문헌리뷰 및 인용의 논리와 구조
4. 논의 쓰기 – 연구자의 실력을 발휘하라
5. 투고 전후 고려할 점
6. 논문쓰기와 마음 지키기

* 강의에 관한 질의는 literacylectures@gmail.com 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의미생산의 주체 키우기

약 10년 전.
학술 영작문을
처음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이런 활동을 했다.

“이 디지털 카메라로
이곳을 이렇게 또 저렇게 찍어볼게요.
같은 세계라도
다른 각도, 거리를 확보하니
다른 빛깔, 다른 느낌의 사진이 되죠.
물론 여기에서
카메라 모드를 바꿀 수도 있어요.
자동으로 할 수도 있지만
셔터스피드 우선 모드,
노출 우선 모드,
풀 매뉴얼 모드 등을 사용할 수 있죠.

언어는 어떨까요?
한 가지 사건을 어떻게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낼 수 있을까요?
이 사진을 보세요.
여러분을 찍은 건 아니지만
어제 밤 피아노를 치던 자기 자신이라고
상상해 보죠.
이걸 어떻게 언어화할 수 있을까요?
어떤 어휘와 어떤 문법을 동원해서
의미를 만들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생각해 봅시다.
사진을 통해 세계를 포착하는 일과
언어를 통해 세상을 표현하는 일은
어떤 면에서 같고,
어떤 면에서 다를까요?

사진을 찍을 때는
어떤 것들을 조절해서
어떤 효과를 얻어낼까요?
글을 쓴다면
어떤 요소들을 조정해서
어떤 의미를 빚어낼까요?
그건 사람들에게
어떤 감각과 생각을 안겨줄까요?

사진과 언어만은 아니죠.
음악도, 미술도, 건축도, 안무도
다양한 요소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체험과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의미를 만드는 주체로서
어떤 역량을 갖추어야 할까요?

여러분에게는 이미
의미를 만들어 내는 기예가 있어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죠.
그것을 더 갈고 닦아서
쓸모있게 만드는 일이 필요하지요.

글쓰기 수업이지만
이번 주에는 이렇게
‘의미생산자로서의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확한 문법과 어휘에 대한 걱정은
조금 접어놓고 말이죠.”

돌아보면
초기의 수업에서
더 과감한 시도들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시도들은
‘리터러시’라고 묶을 수 있는
광의의 문해력을 키우는 데
디딤돌이 되는 활동을 포함하고 있었다.

가끔은 나 자신이
‘영어선생’으로 규정되는 게
버거울 때가 있다.

물론 영어를 중심으로
많은 것들을 연구하고 가르치지만
결국 추구해야 할 것은
다양한 미디어를 소화하고 재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내는
의미-디자이너(the designer of meaning) 나아가,
의미생산 주체(the meaning-making subject)가 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니 말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영어로 논문쓰기 초청강연 후기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초청 영어논문쓰기 강의를 무사히 마쳤다. 30-40명 정도의 인원을 예상했는데 거의 150명이 왔다. 대학원생들에게 영어논문쓰기가 꽤나 큰 관심사임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일전에도 이야기했지만 한 대학에서 영어논문쓰기 강의를 열었을 때 대학원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적지 않은 분들이 논문에 대한 이해를 대학원 필수과정으로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하지만 강의의 수명은 2년을 넘지 못했다. 강의를 열어주신 교수님 개인의견을 넘어 단과대학 차원의 정규과목 조정이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확실치는 않지만 비정규직 교수로서 오래 일을 하는 것이 학교로서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논문쓰기를 도제식으로 배운 선생님들은 ‘많이 읽고 많이 쓰면 된다’, ‘피드백을 잘 따라오라’ 정도의 수준에서 논문지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도 충분히 논문을 써내고 학계에서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성공’의 예가 해당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논문을 읽고 쓰는 훈련의 기회가 체계적으로 주어질 때 대학원생들의 잠재력이 더욱 빠르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학술정보원 팀장님은 강의평가에서 후속강의를 원하는 학생들이 많았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하지만 다시 강의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꼭 내 강의가 아니더라도 대학원의 학술리터러시 교육이 좀더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길, 대학이 진짜 돈을 써야 할 곳에 쓰기를 바란다.

#영어로논문쓰기 #학술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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