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되는 글

갈수록 글은 쓰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예를 들어 500 단어의 글을 쓰는 일은 단어 하나 하나를 써서 500 단어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500개의 단어 연쇄(500-gram) 중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기 위해 1부터 500까지의 빈칸에 단어들을 하나 하나 대입해보는 작업이다. 늘어선 500개의 단어들이 손에 손을 잡고 ‘우린 오래 전부터 여기 함께 있었어요’라고 외치는 순간 글은 완성, 아니 발견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인이 자신의 글을 고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도 이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내가 발견한 글은 이게 아닌데, 왜 이걸 발견했다고 하는 거야?’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내가발견하려던글은아니지만

영어 표현 메모 몇 개

1. read와 read into

read가 보통 ‘읽다’의 의미라면 read A into B는 “B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의미, 느낌 등을 ‘읽어내다'”라는 뜻으로 종종 쓰인다. 특히 “read too much into something”의 형태로 자주 쓰인다.

“The boy is reading too much into her words.” (소년은 그녀의 말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읽어내고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reading은 ‘read into’의 요소를 갖고 있다. 하지만 너무 심하면 ‘지멋대로 독해’가 되어버린다. 그런 경우를 ‘read too much into something’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2. meet과 meet with

meet은 ‘만나다’라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 이에 비해서 ‘meet with’는 조금 더 형식을 갖춘 느낌으로 일과 관련해서 더 자주 쓰이는 편이다. 일반화하긴 힘들지만 영국영어보다는 미국영어에서 meet with가 자주 발견되는 듯하다.

(중학교 때 meet을 철저히 타동사로만 배웠던 기억이 나서 meet with를 매일같이 쓰는 동료들을 보며 살짝 배신감이 들었다.)

3. on one occasion

한국어의 ‘한번은’에 잘 대응하는 표현이다. 뒤에 나오는 이야기가 흥미롭고 주목할만한 것임을 슬쩍 보여준달까.

4. onto

onto의 의미는 ‘into’와 ‘on’이 적절하게 버무려진 것으로 보면 된다. 어떤 위치로 ‘진입’하는 것과, 진입된 위치가 뒤에 나오는 명사와 접촉하고 있음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onto the stage”는 (1) 무대 밖에서 안으로의 진입(into)과 (2) 진입한 위치가 무대에 닿아 있음(on)을 동시에 나타낸다.

5. in the nick of time / just in time

Just in time과 in the nick of time은 거의 비슷한 의미다. ‘사고가 터지거나 당황스런 일이 일어나기 직전에’ 정도의 뜻으로 보면 된다. 다만 이 둘이 쓰이는 맥락이 조금 다른데 just in time은 두루 두루 쓰이는 데 반해 in the nick of time은 스토리텔링에서 주로 사용된다.

6. Dead on time

영국 영어에서 “dead on time”은 ‘딱 맞추어서”의 의미다. “Dead”가 ‘죽은’의 의미가 아니라 ‘바로(right)’의 뜻으로 쓰인 것. 그래서 사람들이 장난스럽게 이런 문장을 해석해 보라 하기도 한다.

“The man arrived dead on time.”

물론 문맥에 따라 죽어서 도착한 것일 수도 있지만, 딱 맞춰서 도착했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

‘다름이 아니라’와 글쓰기 교육

“다름이 아니오라”는 메일에서 피해야 할 어구로 종종 지적된다. “다른 게 아니고” 같은 표현들은 가급적 피하라는 것. 생각없이 나오는 군더더기 표현으로 정보가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저 표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다름이 아니오라”는 메일의 내용이 아니라 문화적 사고패턴에 대한 정보를 담기 때문이다. 내용상 필요없을 지 모르지만 문화적으로는 통용되는 메시지 전달의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메시지가 아닌 메타-메시지의 영역이다.

유난히 ‘있잖아’, ‘그거 알아?’ 등의 표현을 자주 쓰는 친구가 있다. (그런 친구 하나쯤은 다 있지 않나.) 이들은 그 자체로 특정 내용을 담고 있진 않다. 그래서 이런 말장난을 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실행에는 옮기지 않는다. (대신 써본다.)

“있잖아.”
“응 있지. 분명 있어.”

“그거 알아?”
“그거? 이건 아는데.”

“있잖아”가 전달하는 내용은 없다. 하지만 화자가 “있잖아”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청자는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있잖아’라는 말을 짜증스러워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오랜 기간 특정 문화 속 대화를 통해 사고구조를 형성해온 사람들은 “있잖아”를 듣는 순간 뭐가 있는지 순간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다름이 아니오라”는 상대방이 메시지를 읽기 전 짧은 준비를 할 여지를 준다. 뒤에 나오는 내용이 상대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하거나, 업무를 요청하거나, 불쑥 질문을 던지거나 하는 일일 수 있다는 신호(signal)다.

그렇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일은 무례하게 비춰질 위험을 무릅쓰는 꼴이다. “다름이 아니오라”는 진부하고 정보성도 떨어지지만 이런 위험을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하는 전략으로 유효하다. 겨우 두 단어지만 말이다.

“다름이 아니오라”를 쓰지 말라고 할 때 “안좋으니 쓰지 마세요”라고 말하기 보다는 이 구절이 여전히 우리 곁에서 떠나지 않는 문화적, 인지적 이유를 설명하면 어떨까? 안좋으니 쓰지 말라고 하기보다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나눠보면 어떨까?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느냐고,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핀잔만 듣게 될까?

하지만 때로는 ‘어쩌라는 것’ 보다는 ‘그렇다는 것’이 더 나은 글쓰기 교육일지 모른다. ‘~하라’ / ‘~하지 말라’만 난무하는 글쓰기 교육은 테크닉을 주고 생각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다름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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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소리

Posted by on Apr 29, 2017 in 단상,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차올라 흘러 넘치는 글을 쓰고 싶다. 쥐어짠 글들을 바라보는 처참한 기분, 그간의 경험으로 족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배부른 소리’라는 것 또한 안다.

쉽게 써내려간 글

Posted by on Apr 14, 2017 in 강의노트,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작가가 술술 써내려간 글을 읽기 위해 독자는 오르막길을 오르고 또 올라야 한다. 반대로 작가가 오르막에서 흘린 땀만큼 독자의 이해는 깊어진다. 쓰기가 쉬워지는 순간 읽기는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글쓰기를 뇌에 담긴 생각을 외부로-밀어내는(ex-press) 행위로 보느냐, 원석(초고)을 깎고 다듬어 조각으로 탄생시키는 행위로 보느냐는 적지 않은 차이를 가져온다. (11시59분에 오탈자 가득한 글(원석)을 내는 분들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분들 원석 깎는 게 제 일인데요 뭐.)

논문은 당신 자신의 글

Posted by on Mar 5, 2017 in 단상, 수업자료,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학술적 글쓰기 첫 시간이 끝나고 한 학생이 다가왔다.

“이거 참 고민이네요.”
“아 어떤?”
“제가 영어로 논문을 쓸 일은 없는데요.”
“아… 수강할까 말까 고민이 된다는 말씀이군요.”
“네. 저는 생각은 글로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네.”
“그래서 매일 글을 쓰고 있어요. 글쓰기 강좌 등록해서 서평 쓰는 것도 배우고.”
“아 정말 열심히 하시네요.”
“네. 그런데 우리말로 쓰는 건 제가 딱 제 글을 쓴다는 생각이 드는데, 영어논문을 쓰는 건 다른 사람들 글을 모델로 삼는 글이라… 남의 글이잖아요.”
“아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는데, 결국 영어논문도 자기 글이예요.”
“그런가요?”
“그렇죠. 초반에는 다른 사람들 글에 영향을 많이 받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자기 글입니다.”
“그렇군요.”
“사실 자기 글이라고 생각할 때 훨씬 더 좋은 논문이 나와요. 이건 영어든 한국어든 상관이 없고요. 수업에서 관련된 이야기를 종종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자세한 건 학기 지나면서 말씀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고, 다음 주에 뵐 수 있으면 뵙죠.”
“예.”

다음 주에 그 학생을 만나게 될까? 설령 다시 만난다 하더라도 ‘논문은 자기 자신의 글’이라는 말의 뜻을 서너 달 만에 온전히 이해시킬 수 있을까?

수강생이 너무 많아져 고민이 되다가도, 내 고민보다 더 큰 고민을 안고 있는 학생들을 만나면 뭔가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은 게 사실이다. 수다쟁이 선생 같으니라고.

다음 시간, 다시 그 학생을 만났으면 좋겠다.

개강 한주 전, 짧은 소회

Posted by on Feb 23, 2017 in 단상, 영어로 글쓰기, 일상 | No Comments

1. 어제 밤, 처음으로 학생과 함께 쓴 논문의 최종교정지를 받았다. 같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그에게 깊이 고맙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어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지난한 과정을 함께할 수 있었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길 바란다.)

2. 국내 논문임에도 해외 논문 출판에 드는 공력의 세 배는 넘게 들어갔다. 국내 저널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쉽지 않더라. 어떤 저널인가보다 어떤 심사자인가가 더욱 중요한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 분의 리뷰어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로 코멘트를 갈음한다.

3. 영어로 논문쓰기 강의가 한 번 남았다. 시간강사의 밥벌이로 시작한 면이 없진 않지만, 글쓰기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퍽 즐겁다. ‘방학 때 보자’며 공수표를 날렸던 친구들에게 미안하지만, 이번 강의가 맺어준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하기로 한다.

4. 지난 학기에는 강의를 좀더 하고 싶었으나 못했고, 이번 학기는 적정수의 강의보다 더 많이 들어왔다. NO라고 하는 순간 더 이상의 제안이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만, 의욕도 궁핍도 체력 혹은 노화를 이길 수는 없다. 먹고 사는 것도 살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5. 새로운 학기, 강사생활 이래 가장 바쁜 스케줄이다. 걷기와 심호흡의 생활화가 필요하다. 패닉금지!

6. 탄핵요구를 위한 집회는 속히 마무리되었으면 한다. 새로운, 좀더 근본적인 시작이 필요한 시점 아닌가. 땅을 갈아엎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자는데 쓰러져가는 건물 금에 청테이프 붙이는 소리 하는 사람들이 적잖아 보인다.

7. 이젠 교실 밖에서의 삶에 대해서 고민할 때가 온 것 같다. 2017년이 삶의 분수령이 될지도 모르겠다.

길었으나 존재하지 않았던 방학의 끝.
짧지만 선명하게 기억될 만남의 시작.

글쓰기를 배운다는 것

Posted by on Feb 17, 2017 in 단상, 수업자료,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글쓰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공개적으로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 오토 크루제

영어로 논문쓰기 첫 번째 수업. “논문은 ‘짠’ 하고 독자를 놀래키기 위해 골방에서 완벽을 기하는 글이 아니라 다양한 소통을 통해 공개적으로 약점을 보완해 가는 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나의 글쓰기 여정에서 가장 뼈아픈 실수를 지적한 대목이기에 거듭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누군가 논문쓰기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논문을 혼자 쓴다고 생각하는 마인드에서 벗어나 대화로서의 글쓰기를 실천하는 일”이라고 말해주겠다. 오토 크루제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많은 사람들이 텍스트를 제출하는 데 문제를 갖고 있기에 텍스트를 계속해서 완전하게 만들려고 한다. 글쓰기를 배운다는 것은 이와는 완전히 반대로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공개적으로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약점을 은폐하는 대신에 (그것에 대해) 묻는 법을 배워야 하며 그에 따라 논리적으로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김기란. (2016). <논문의 힘> 현실문화, 35쪽. 오토 크루제, <공포를 날려버리는 학술적 글쓰기 방법> 김종영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9 18쪽에서 재인용)

나 또한 이번 강의를 통해서 <영어로 논문쓰기> 강의의 약점을 공개적으로 생각해 보고 있는데, 세 가지 면에서 부족함을 느낀다. (1) 10주 내외의 분량을 4주에 다루는 게 쉽지 않고, (2) 충분한 실습을 할 수 없으며, (3) 다양한 전공영역의 필요를 채우기 어렵다. 어떻게 부족함을 채울 수 있을까? 남은 2주간 수강하는 분들의 이야기도 좀더 들어봐야겠다.

시의 정의: 응집과 결속의 관점에서

시를 언어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야콥슨 이후 많은 사람들이 대답하려고 애썼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무소용 정의를 하나 더하자면 이렇다.

“시란 응집cohesion과 결속성cohesion의 비틀기, 혹은 새로운 창조다.”

<영어로 논문쓰기> 첫 번째 수업 후기

1. 분주했다. 전날 밤에 다 준비해 놓은 것들을 세팅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했다. 진짜 다됐다 싶었는데 물을 준비하지 못해 부리나케 나가 사왔다. 어리버리 첫 시도, 집 가까이에 강의장소를 잡은 건 잘한 일이었다. 다음에는 시간이나 장소, 각종 물품 준비 면에서 좀더 여유있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도면밀하지 못하니 차근차근 배울 수밖에 없겠다.

2.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주신 코디네이터 분의 말씀과는 다르게 프로젝터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분명 “프로젝터가 있죠?”라고 물었고, “그렇다”고 답했는데, 그럼 강사가 프로젝터를 사용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수업 직전에 겨우 들어온 프로젝터. 게다가 스크린이 없어 녹색 칠판에 띄워야 했다. 다음 주에는 전지를 붙여야 할까. 강의용으로 마련한 공간이 이렇게 허술하다니. 몇년 안된 건물임을 감안하면 여전히 이해 불가다.

3. 이제껏 영어교육과, 영어영문학과, 경영학과 등에서 강의를 해왔는데 신청하신 분들의 전공을 보니 인류학, 의학, 작업치료, 경영학, 국제원조, 영어교육, 보건정책, 인지신경과학, 통번역학, 교육학, 예술경영 등 참으로 다양했다. 언제 이런 영광스런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벅찬 마음과 함께 다양한 필요에 최적화된 강의를 만들기는 힘들 거라는 우려가 동시에 들었다. 이왕 저질러진 일. 실패하겠지만 되도록 멋지게 실패하는 걸로, 쿨럭. ;;;

4. 수강생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대학 및 대학원에서 논문쓰기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를 포함한 거의 모든 대학원생들은 논문쓰기를 ‘눈치’로 배웠다. 극히 일부지만 맨땅에 헤딩으로 논문을 배우는 게 맞다고, 자신들도 그렇게 배웠다고, 못배우면 학생들의 노력 부족 탓이라고 굳게 믿는 교수들도 있다.

5. 사실 체계적 훈련기회가 주어지지않는 건 한국 뿐만이 아니다. 미국, 캐나다의 몇몇 대학원에서도 같은 현상을 목격했다. 다만 북미의 경우 중고교에서의 글쓰기 교육이 한국보다는 좀더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 하지만 논문작성이 지독한 안개 속 길찾기와 같다는 점은 대동소이해 보인다. PhD Comics의 많은 에피소드가 논문쓰기의 어려움을 그리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6. 학술적 글쓰기 교수의 가장 좋은 모델은 나와 같은 응용언어학 관련 전공자와 해당 분야(의학, 경영학, 사회과학 등) 전문가가 협업하여 커리큘럼을 만들고 함께 가르치는 것이다. 재정적 지원이 충분하다면 언어학자-해당분야 학자 팀과 대학 내의 글쓰기 센터(writing center)가 협업하여 커리큘럼, 강좌 운영 노하우, 해당 강좌의 학생 과제들을 아카이빙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대학 글쓰기 교육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본다.

7.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우선 모두가 각자의 일에 바쁘다.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거다. 쉽게 말해, 글쓰기 커리큘럼 개발을 위해서는 시간과 돈이 필요한데 시간도 돈도 없다. 개인적인 희생(?)을 통해 커리큘럼이 개발된다 해도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 풍토다. 결국 생각만 하다가 그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8. 언젠가 분과학문의 학술적 글쓰기 커리큘럼 개발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 같은 걸 해보고 싶다. 내일 AI가 인간보다 논문을 더 잘 쓸 거란 걸 알더라도, 오늘 진지하게 글쓰기를 가르치겠다… 뭐, 이런?

9. 서울 뿐 아니라 경기도 각지, 대전, 강원도, 심지어 제주도에서까지 와주셔서 감사했다.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신 덕분에 덜 떨면서 강의를 했다. 볼펜과 천혜향을 나누어 주신 분들로 수업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강사의 부족함을 메워주시는 수강생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10. 세 시간이 금방 갔다. 앞으로 3주도 그렇게 휙 가버릴 것 같다. 스쳐가는 인연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강의를 열기 잘 한 것 같다. 많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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