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소리

Posted by on Apr 29, 2017 in 단상,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차올라 흘러 넘치는 글을 쓰고 싶다. 쥐어짠 글들을 바라보는 처참한 기분, 그간의 경험으로 족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배부른 소리’라는 것 또한 안다.

쉽게 써내려간 글

Posted by on Apr 14, 2017 in 강의노트,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작가가 술술 써내려간 글을 읽기 위해 독자는 오르막길을 오르고 또 올라야 한다. 반대로 작가가 오르막에서 흘린 땀만큼 독자의 이해는 깊어진다. 쓰기가 쉬워지는 순간 읽기는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글쓰기를 뇌에 담긴 생각을 외부로-밀어내는(ex-press) 행위로 보느냐, 원석(초고)을 깎고 다듬어 조각으로 탄생시키는 행위로 보느냐는 적지 않은 차이를 가져온다. (11시59분에 오탈자 가득한 글(원석)을 내는 분들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분들 원석 깎는 게 제 일인데요 뭐.)

논문은 당신 자신의 글

Posted by on Mar 5, 2017 in 단상, 수업자료,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학술적 글쓰기 첫 시간이 끝나고 한 학생이 다가왔다.

“이거 참 고민이네요.”
“아 어떤?”
“제가 영어로 논문을 쓸 일은 없는데요.”
“아… 수강할까 말까 고민이 된다는 말씀이군요.”
“네. 저는 생각은 글로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네.”
“그래서 매일 글을 쓰고 있어요. 글쓰기 강좌 등록해서 서평 쓰는 것도 배우고.”
“아 정말 열심히 하시네요.”
“네. 그런데 우리말로 쓰는 건 제가 딱 제 글을 쓴다는 생각이 드는데, 영어논문을 쓰는 건 다른 사람들 글을 모델로 삼는 글이라… 남의 글이잖아요.”
“아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는데, 결국 영어논문도 자기 글이예요.”
“그런가요?”
“그렇죠. 초반에는 다른 사람들 글에 영향을 많이 받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자기 글입니다.”
“그렇군요.”
“사실 자기 글이라고 생각할 때 훨씬 더 좋은 논문이 나와요. 이건 영어든 한국어든 상관이 없고요. 수업에서 관련된 이야기를 종종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자세한 건 학기 지나면서 말씀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고, 다음 주에 뵐 수 있으면 뵙죠.”
“예.”

다음 주에 그 학생을 만나게 될까? 설령 다시 만난다 하더라도 ‘논문은 자기 자신의 글’이라는 말의 뜻을 서너 달 만에 온전히 이해시킬 수 있을까?

수강생이 너무 많아져 고민이 되다가도, 내 고민보다 더 큰 고민을 안고 있는 학생들을 만나면 뭔가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은 게 사실이다. 수다쟁이 선생 같으니라고.

다음 시간, 다시 그 학생을 만났으면 좋겠다.

개강 한주 전, 짧은 소회

Posted by on Feb 23, 2017 in 단상, 영어로 글쓰기, 일상 | No Comments

1. 어제 밤, 처음으로 학생과 함께 쓴 논문의 최종교정지를 받았다. 같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그에게 깊이 고맙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어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지난한 과정을 함께할 수 있었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길 바란다.)

2. 국내 논문임에도 해외 논문 출판에 드는 공력의 세 배는 넘게 들어갔다. 국내 저널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쉽지 않더라. 어떤 저널인가보다 어떤 심사자인가가 더욱 중요한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 분의 리뷰어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로 코멘트를 갈음한다.

3. 영어로 논문쓰기 강의가 한 번 남았다. 시간강사의 밥벌이로 시작한 면이 없진 않지만, 글쓰기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퍽 즐겁다. ‘방학 때 보자’며 공수표를 날렸던 친구들에게 미안하지만, 이번 강의가 맺어준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하기로 한다.

4. 지난 학기에는 강의를 좀더 하고 싶었으나 못했고, 이번 학기는 적정수의 강의보다 더 많이 들어왔다. NO라고 하는 순간 더 이상의 제안이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만, 의욕도 궁핍도 체력 혹은 노화를 이길 수는 없다. 먹고 사는 것도 살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5. 새로운 학기, 강사생활 이래 가장 바쁜 스케줄이다. 걷기와 심호흡의 생활화가 필요하다. 패닉금지!

6. 탄핵요구를 위한 집회는 속히 마무리되었으면 한다. 새로운, 좀더 근본적인 시작이 필요한 시점 아닌가. 땅을 갈아엎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자는데 쓰러져가는 건물 금에 청테이프 붙이는 소리 하는 사람들이 적잖아 보인다.

7. 이젠 교실 밖에서의 삶에 대해서 고민할 때가 온 것 같다. 2017년이 삶의 분수령이 될지도 모르겠다.

길었으나 존재하지 않았던 방학의 끝.
짧지만 선명하게 기억될 만남의 시작.

글쓰기를 배운다는 것

Posted by on Feb 17, 2017 in 단상, 수업자료,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글쓰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공개적으로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 오토 크루제

영어로 논문쓰기 첫 번째 수업. “논문은 ‘짠’ 하고 독자를 놀래키기 위해 골방에서 완벽을 기하는 글이 아니라 다양한 소통을 통해 공개적으로 약점을 보완해 가는 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나의 글쓰기 여정에서 가장 뼈아픈 실수를 지적한 대목이기에 거듭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누군가 논문쓰기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논문을 혼자 쓴다고 생각하는 마인드에서 벗어나 대화로서의 글쓰기를 실천하는 일”이라고 말해주겠다. 오토 크루제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많은 사람들이 텍스트를 제출하는 데 문제를 갖고 있기에 텍스트를 계속해서 완전하게 만들려고 한다. 글쓰기를 배운다는 것은 이와는 완전히 반대로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공개적으로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약점을 은폐하는 대신에 (그것에 대해) 묻는 법을 배워야 하며 그에 따라 논리적으로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김기란. (2016). <논문의 힘> 현실문화, 35쪽. 오토 크루제, <공포를 날려버리는 학술적 글쓰기 방법> 김종영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9 18쪽에서 재인용)

나 또한 이번 강의를 통해서 <영어로 논문쓰기> 강의의 약점을 공개적으로 생각해 보고 있는데, 세 가지 면에서 부족함을 느낀다. (1) 10주 내외의 분량을 4주에 다루는 게 쉽지 않고, (2) 충분한 실습을 할 수 없으며, (3) 다양한 전공영역의 필요를 채우기 어렵다. 어떻게 부족함을 채울 수 있을까? 남은 2주간 수강하는 분들의 이야기도 좀더 들어봐야겠다.

시의 정의: 응집과 결속의 관점에서

시를 언어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야콥슨 이후 많은 사람들이 대답하려고 애썼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무소용 정의를 하나 더하자면 이렇다.

“시란 응집cohesion과 결속성cohesion의 비틀기, 혹은 새로운 창조다.”

<영어로 논문쓰기> 첫 번째 수업 후기

1. 분주했다. 전날 밤에 다 준비해 놓은 것들을 세팅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했다. 진짜 다됐다 싶었는데 물을 준비하지 못해 부리나케 나가 사왔다. 어리버리 첫 시도, 집 가까이에 강의장소를 잡은 건 잘한 일이었다. 다음에는 시간이나 장소, 각종 물품 준비 면에서 좀더 여유있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도면밀하지 못하니 차근차근 배울 수밖에 없겠다.

2.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주신 코디네이터 분의 말씀과는 다르게 프로젝터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분명 “프로젝터가 있죠?”라고 물었고, “그렇다”고 답했는데, 그럼 강사가 프로젝터를 사용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수업 직전에 겨우 들어온 프로젝터. 게다가 스크린이 없어 녹색 칠판에 띄워야 했다. 다음 주에는 전지를 붙여야 할까. 강의용으로 마련한 공간이 이렇게 허술하다니. 몇년 안된 건물임을 감안하면 여전히 이해 불가다.

3. 이제껏 영어교육과, 영어영문학과, 경영학과 등에서 강의를 해왔는데 신청하신 분들의 전공을 보니 인류학, 의학, 작업치료, 경영학, 국제원조, 영어교육, 보건정책, 인지신경과학, 통번역학, 교육학, 예술경영 등 참으로 다양했다. 언제 이런 영광스런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벅찬 마음과 함께 다양한 필요에 최적화된 강의를 만들기는 힘들 거라는 우려가 동시에 들었다. 이왕 저질러진 일. 실패하겠지만 되도록 멋지게 실패하는 걸로, 쿨럭. ;;;

4. 수강생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대학 및 대학원에서 논문쓰기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를 포함한 거의 모든 대학원생들은 논문쓰기를 ‘눈치’로 배웠다. 극히 일부지만 맨땅에 헤딩으로 논문을 배우는 게 맞다고, 자신들도 그렇게 배웠다고, 못배우면 학생들의 노력 부족 탓이라고 굳게 믿는 교수들도 있다.

5. 사실 체계적 훈련기회가 주어지지않는 건 한국 뿐만이 아니다. 미국, 캐나다의 몇몇 대학원에서도 같은 현상을 목격했다. 다만 북미의 경우 중고교에서의 글쓰기 교육이 한국보다는 좀더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 하지만 논문작성이 지독한 안개 속 길찾기와 같다는 점은 대동소이해 보인다. PhD Comics의 많은 에피소드가 논문쓰기의 어려움을 그리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6. 학술적 글쓰기 교수의 가장 좋은 모델은 나와 같은 응용언어학 관련 전공자와 해당 분야(의학, 경영학, 사회과학 등) 전문가가 협업하여 커리큘럼을 만들고 함께 가르치는 것이다. 재정적 지원이 충분하다면 언어학자-해당분야 학자 팀과 대학 내의 글쓰기 센터(writing center)가 협업하여 커리큘럼, 강좌 운영 노하우, 해당 강좌의 학생 과제들을 아카이빙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대학 글쓰기 교육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본다.

7.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우선 모두가 각자의 일에 바쁘다.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거다. 쉽게 말해, 글쓰기 커리큘럼 개발을 위해서는 시간과 돈이 필요한데 시간도 돈도 없다. 개인적인 희생(?)을 통해 커리큘럼이 개발된다 해도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 풍토다. 결국 생각만 하다가 그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8. 언젠가 분과학문의 학술적 글쓰기 커리큘럼 개발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 같은 걸 해보고 싶다. 내일 AI가 인간보다 논문을 더 잘 쓸 거란 걸 알더라도, 오늘 진지하게 글쓰기를 가르치겠다… 뭐, 이런?

9. 서울 뿐 아니라 경기도 각지, 대전, 강원도, 심지어 제주도에서까지 와주셔서 감사했다.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신 덕분에 덜 떨면서 강의를 했다. 볼펜과 천혜향을 나누어 주신 분들로 수업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강사의 부족함을 메워주시는 수강생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10. 세 시간이 금방 갔다. 앞으로 3주도 그렇게 휙 가버릴 것 같다. 스쳐가는 인연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강의를 열기 잘 한 것 같다. 많이 배운다.

처음으로 개인 강의를 준비하며 배운 것들

1. 이메일 연락은 85 퍼센트 정도 답이 돌아온다. 개인정보를 최대한 적게 받으려 전화번호를 생략했는데 다음 번에는 필수로 받아야 될 것 같다. (과연 다음 번이 있을까? 응?)

2. 일찍 지원한 분들이 묵묵부답인 경우 선착순에서 밀린 분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간다. 어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좀 그렇다.

3. 의외로 좋은 강의장 잡기가 어려웠다. 4주 일정을 안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으면서 시설이 괜찮은 곳, 여기에 비용까지 저렴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뭔가를 포기해야 했다.

4. 한 학기 15주간 읽고 토론하는 방식을 4주간의 ‘속성코스’로 압축하기가 쉽지 않다. 호흡이 다른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작업이 필요하다.

5. 논문에 대한 경험이 천차만별인 수강생들께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 이것이 가장 큰 숙제인 듯하다.

6. 생각보다 영어논문에 대한 관심이 꽤 높다. 열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정원이 다 찼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물론 이번에는 ‘페친효과’ 덕을 톡톡히 봤다.

7. 논문쓰기 강의나 통계 강의를 살펴보니 책정한 강의료가 과하지는 않은 듯하다. 누군가에게는 큰 돈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ㅠㅠ

이번에 잘못하면 1기가 처음이자 마지막 강의가 되겠지. 아무튼 잘해보자.

논문 이후 글쓰기 잡감

<논문 이후 글쓰기 잡감>

학술 리터러시와 관련된 논문을 영어로 썼다. 리터러시 관련 논문이라지만 잘 쓴 논문은 아니다. 힘들게 완성했고,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지도교수는 나에게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이게 앞으로의 네 생애에서 가장 못쓴 글이 될 거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순간 헉, 했지만 이내 슬픔과 쾌감이 묘하게 교차했다. 누가 뭐라 해도 제일 좋은 논문은 끝낸 논문이니까. (지금 돌아보니 지도교수 말이 맞다. 지금이라면 그때보단 잘 쓸거 같다. 하지만 절대 다시 쓰고 싶진 않다.)

논문을 완성하고 나의 우리말 글쓰기를 돌아보았다. 간간이 써내던 쪽글 대부분은 가볍고 수명이 짧은 잡글이었다. 소리내어 읽었을 때 조차 호흡과 리듬이 살아나지 않았다. ‘리터러시 연구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려니 창피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피아노 잘 못치는 피아노 선생이 된 기분이었달까. 바하를 가르치기 위해 굴드같은 연주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이엘) 하(권) 수준은 아니어야 할테니.

불현듯, 정말 불현듯 우리말이 더 큰 문제라 느꼈다. 영어 따위 남의 나라 말이잖아. 그래서 우리말로 더 자주 쓰기 시작했다. 반짝거리는 일상을 놓치지 않으려 어머니와의 대화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인지언어학에서 교육적 적용이 가능한 내용들에 주목하여 <영어교사를 위한 인지언어학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분량이 조금씩 쌓여갔다.

하지만 업그레이드 되었어도 쪽글은 여전히 쪽글이었다. 긴 호흡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상을 지켜내야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주변을 바꿔가야 한다. 누군가 말했듯 산을 옮기려면 팔뚝 근육부터 키워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나는 자주, 너무 간단히 실패했다. 좌절은 현재완료 진행형이다.

몇해 전부터 영어도 우리말도 어정쩡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이게 좀 심해서 주변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는 상황에서 슬피 우는’ 친구들에게서 위안을 얻는 것은 나쁜 일일까?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가르침의 적극적인 실천일까?

책은 물론 페북만 봐도 글 잘쓰는 분들이 많다. 그럼에도 질투의 화신이 되어본 적은 없는 듯하다. 무엇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향. 나의 명백한 한계다. 이걸 오롯이 받아들이는 삶도 나쁘지 않다고 믿어보련다. 오늘도 잡설 하나를 또 뱉어내며 하루를 접는다. 너무 큰 일을 접는 일은 없길 바라며.

Typobusters

A spectre is haunting the world of manuscripts and even some published articles — the Spectre of Typos. All the powers of sleepless academics have entered into a holy alliance to exorcise this spectre: Authors, editors, proofreaders, and editing staff. To no avail, however, typos are forever coming back, haunting their dreams and summoning an army of track changes, sore regrets, and self-pities. A sense of awe/oh emerges before this undeniable existence of uncontrollable entities.

Two things result from this fact:

I. The spector is already acknowledged by all academics to be itself an immortal power.

II. It is high time that Google DeepMind or whatever AI pioneers should, before the wretched faces of the whole anxious authors, publish the plans, aspirations, and eagerness to help relieve their pain, and meet this misery tale of the Spectre of Typos with a manifesto that the AI giant will develop “TypoBusters” as soon as pos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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