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바꾸고 싶은 것들

Posted by on Oct 18, 2018 in 단상, 수업자료,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일상에서 바꾸고 싶은 것들”이라는 주제의 쪽글 과제에서 한국사회가, 대학생 세대의 아픔이 보인다. 이런 내용들이다.

1. 하루하루 과제와 알바로 쉴 틈이 없어 어서 빨리 졸업하고 싶다
2. 스트레스로 자꾸 술을 마시게 된다
3. 긴 통학으로 피곤하고 집 주변에 별다른 시설이 없어 불편하다
4. 취업 준비로 인해 인생짐이 너무 무겁다
5.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립다
6. 연애가 무상하다
7. 타인의 시선과 평가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싶다
8. 친구들과 경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9. 세상에 대한 걱정을 좀 덜하고 싶다
10. 새로운 물건을 사고 싶은데 여의치가 않다
11. 덜 먹어야되는데 자꾸만 먹게 된다.
12. 어둡고 부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고 싶다.

학생들의 고민을 읽으며 기성 세대가, 또 내가 참 무력하구나 싶다. 한 학기 충실한 수업을 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고민상담성’ 문단을 쓴 친구들에게 답장을 보내며 나를 돌아본다. 내 안에도 바꿔야 할 것들이 참 많구나.

몇몇 절절한 글을 읽고 만나는 학생들의 얼굴은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 같다.

리터러시 발달과 영상편집

성인의 리터러시 발달은 여러 글간의 통로를 지나 글 내부의 문단 사이로 향한다. 행간 읽기 능력의 발달은 문장 사이의 공간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과정으로 이어지고 단어와 단어 사이의 관계와 거리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간다. 읽기쓰기와 세상살이의 경험이 쌓일수록 낱말 하나, 토시 하나의 차이에도 ‘취약해진다.’ 이는 결국 개별 단어가 끌어당기거나 밀쳐내는 세계에 대한 성찰로 향한다. 비고츠키가 말하듯 의미를 담은 낱말 하나에서 의식의 소우주를 만나는 것이다.

플래시백이나 슬로우모션, 롱테이크, 교차편집 등의 기법이 영화에서의 시간을 재발견, 재구조화한 것과 리터러시의 발달이 단어와 단어, 말과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재창조하는 일은 참 많이 닮았다. 특정 장르의 글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에게 사건은 내러티브 수준이 아니라 단어 수준에서 정의되며, 한 단어 한 단어, 한 마디 한 마디가 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리터러시 발달로 본 개체발생은 영화편집의 계통발생을 반복한다.

#영어로글쓰기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내 인생의 노래, 그 노래의 이야기

다음 시간 in-class writing의 주제는 “내 인생의 노래, 그 노래의 이야기” 학생들은 ‘사연있는’ 노래 하나를 골라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적습니다.

bryanfurywins 2 years ago

2004, in my first year of college, I met a girl. I was completely head over heals for her; And her for me. My heart used to be “on fire” every time she’d text me… And at the time, Switchfoot – ‘The Beautiful Letdown’ was our favorite album and more so, this very song. Before moving to second year, she had to go back to Australia. Needless to say I was completely heart broken when she told me. I remember literally not being able to breath… I’m 35 years old now, married and with 3 kids. Seated at work listening to this song just made all the memories of her come flooding back.

왜, 영어로, 쓰는가

1. 왜 쓰는가

Nadine Gordimer는 “Writing is making sense of life.”라는 말을 했다. “쓰기는 삶을 이해하는 일”, 말장난을 좀 해보자면 “쓰기는 삶을 재료로 의미를 만드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Gordimer의 원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나에겐 이 말이 결코 가볍지 않다.

삶은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우린 그 흐름 속에서 크고 작은 경험을 한다. 하지만 이를 기록하지 않으면 이내 흩어져 버린다. 순간 순간의 의미는 쉬이 망각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삶의 흐름을 ‘멈춘다.’ 시간의 흐름 속에 작은 균열을 만드는 것이다. 빈 공간 위에 글자를 하나 하나 새기는 동안 잠시나마 세월의 격랑에 덜 휩쓸린다. 성찰하고 기억할 수 여지가, 세찬 바람 속에서도 고요한 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경험의 측면들이 드러나고 뭉개진 생각의 결이 분명해진다. 글쓰기의 과정은 새로운 생각을 잉태하고 이것이 다시 글쓰기의 양분이 된다. 글쓰기는 지나간 것들의 반추임과 동시에 새로 올 것의 창조다. 쓰기 전까지는 모르는지도 몰랐던 것들이 나의 의식 위로 떠오른다.

이런 글쓰기의 특성은 가르치기 전까지는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 것과 많이 닮았다. 수업을 하다가 보면 내가 정확히 무엇을 알고 있는지, 어떤 내용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만을 갖고 있으며 어떤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지 못하는지 알게 된다. 또 수업을 통해 나 자신이 더 많이 배우기도 한다. 가르치는 일은 부족함에 대한 깊은 깨달음 가능케 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배움의 지평을 열어 젖힌다.

2. 왜 영어로 쓰는가

그런데 우리 삶에서 영어로 글을 쓴다는 게 그리 중요한가?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여기 영어실력, 그 중에서도 영작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영어로 글을 써야 하는 분들은 극소수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사망한 Stephen Covey의 책에 소개되어 널리 쓰였던 중요성/긴급성 “Importance/Urgency” 2X2 매트릭스를 떠올려 보자. 여러 분들께 영어 글쓰기는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즉, 잘하면 정말 좋을 것 같지만 안해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는 일이다. 안해도 지장 없는 일은 늘 다른 일에 우선 순위를 내준다. 수업과 잡무, 친구들과의 약속, 그 외 이런 저런 개인사가 치고 들어오면 미루다 못해 까맣게 잊게 되는 것이다.

한국은 영어글쓰기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드는 사회문화적 환경을 갖고 있다. 쉽게 말해 한국에서 영어는 일상에서 쓸 일이 없다. 영어가 외국어인(EFL;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상황인 것이다. 이는 영어를 제2언어로 활용하여 일상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제2언어로서의 영어(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영작을 배우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좋은 교재를 정하는 게 아니라 영어로 써야 할 이유를 찾고, 동기를 유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좋은 교재” “좋은 학원”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사실이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분이 아니라면 단기 공부는 반드시 실패한다. 아니, 영작문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변함없이 지속된다고 하는 것이 좀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왜 영어로 글을 쓰려 하는가?” 이 질문을 회피하고 영어 글쓰기를 하려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영작문을 공부하려는 게 학점을 따는 것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교실 밖에서 영어로 의미를 만드는 일에 어떤 가치가 있는가?

어떤 경우라도 Gordimer의 이야기처럼 삶을 좀더 깊고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쓰기가 아니라면 이내 영어 글쓰기를 할 이유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학기 여러분과 함께 이 고민을 함께 해보고 싶다.

3. 왜 영작문 수업을 듣는가

몇년 전 모 교육대학원 영어쓰기 강의록의 일부다. 이번 학기에는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영어로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그런데 ‘왜’라는 질문에 대해서 딱 부러지는 대답을 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학부생들의 경우 ‘필수 과목이라서’, ‘해두면 나중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 ‘혹시 관련분야로 갈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등의 대답이 나온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반응은 자연스럽다.

문화적 자본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하는 기제로서 영어 특히 영어 글쓰기의 역할이 분명 존재하며, “영어공부 방기 = 미래에 대한 불안 가중”이라는 등식이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그닥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금요일 오전 수업에 피곤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왜 이 친구들이 영어로 글을 써야만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결국 내가 다다르는 결론은 학생들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겠다는 것. 뭐 이런 심심하기 짝이 없는 결론이 있나 싶지만 요즘 들어 학생들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곱씹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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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는가를 학생들에게 질문하려 했는데
왜 가르치고 있는가를 자신에게 묻고 있다.

#영어로글쓰기
#삶을위한영어공부

ACROSTIC Poem을 활용한 쓰기활동

이번에는 “Acrostic Poem”을 한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acrostic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실 텐데요. 옥스포드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정의가 되어 있습니다.
 
acrostic n. A poem, word puzzle, or other composition in which certain letters in each line form a word or words.
 
이 정의로도 바로 이해가 잘 안되실 수도 있겠네요. 예를 들어 이런 건데요. 직접 쓴 CAT의 acrostic poem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각 행의 첫 글자를 모으면 CAT이 되지요.)
 
Calm posture, smooth jumps, and mystical eyes,
Aren’t you an alien creature?
To me, you are such an unfathomable relief.
 
네 그렇습니다. 제가 고양이를 좀 좋아라 하지요. 좀 유치한가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SORROW 입니다.
 
Sorry, you are wrong
Or am I mistaken?
Rough days ahead, waiting to be felt.
Reliving all those misunderstandings and misgivings,
Oh my weary soul will be
Weeping in futile gestures of forgiveness.
 
일필휘지로 써 보았는데 어떤가요? 슬픔이 느껴지나요?
 
오늘은 여러분이 두 단어를 골라 이렇게 acrostic poem을 써보도록 할게요. 하나는 CAT처럼 짧은 단어를, 다른 하나는 철자 대여섯 개 이상의 조금 긴 단어를 권해드립니다.
 
써놓고 보니 조금 긴 것도 써보고 싶네요. 이것도 일필휘지로 써보았습니다. ^^
 
FRIENDSHIP
 
Fear not, my heart
Rest in our dear memories
I was young and immature, so were you
Experiencing no success was okay
Neither time nor space could stop us, ’cause we were
Determined to be with each other
Seeking the brightest stars of the darkest life
Helplessly hopeful,
Into the adventure, we set our feet
Painful together, peaceful together
 
여러분들께 friendship은 무엇인가요? :)
 
#영어로글쓰기

3-Word Story

Posted by on Sep 20, 2018 in 수업자료, 영어, 영어로 글쓰기, 집필 | No Comments

수업중 쓰기 활동

지난 시간에는 six-word memoir를 함께 써보았습니다. 이번에는 3-sentence story 입니다. 아래는 웹에서 모은 몇 개의 공포 스토리입니다.

2- or 3-sentence horror stories

I begin tucking him into bed and he tells me, “Daddy check for monsters under my bed.” I look underneath for his amusement and see him, another him, under the bed, staring back at me quivering and whispering, “Daddy there’s somebody on my bed.” — justAnotherMuffledVo

They celebrated the first successful cryogenic freezing. He had no way of letting them know he was still conscious. — KnowsGooderThanYou

They delivered the mannequins in bubble wrap. From the main room I begin to hear popping. — Mikeyseventyfive

출처:
150+ Short Two-Sentence Horror Stories To Freak You Out

긴 글이 아니어도 충분히 재미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꼭 세 문장일 필요는 없죠. 무서운 이야기일 필요도 없습니다.

무엇에 관해 쓰냐고요? 그건 각자 생각해야 하지만 제가 가져와 본 몇 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힘들었던 이별의 순간 (w/ 사람, 장소, 사물, 동식물 …)
2. 황당했던 꿈 이야기
3. 운명같은 우연
4. 내가 ‘행운의 편지’를 쓴다면?
5. 세상 가장 쓸쓸했던 날
6. ‘오늘 하루 시력을 잃었다’
7. 소설을 쓴다면 이런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8. 대통령이 점심 식사에 초대하다. 3분간 대학생으로서 솔직한 이야기를 하라는데…
9. 세상 누구에게도 없는, 나 혼자 간직한 희망 혹은 소원
10. WRITING 각각의 알파벳으로 행이 시작되는 시를 쓴다면?

웹에서 3-sentence stories나 100-word stories 등으로 검색하면 다양한 샘플을 볼 수 있습니다.

#영어로글쓰기

영작문 두 번째 시간 중계

 

1. 영작문 향상을 방해하는 몇 가지 요인이 있는데요. 오늘은 먼저 이 이야기를 해볼게요.

(1) 쓸 이야기가 없다: 이런 생각 많이 하실 거예요. ‘내가 영어로 써야 할 이야기가 뭐 있나. 한국어 글쓰기도 잘 안하는데.’ 사실 일상 생활에서 영어를 하나도 쓰지 않는 나라에서 이런 생각은 당연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진짜 쓸 거리가 없을까요?

세상에 쓸 거리 찾기 참 힘들어요. 그런데 말이죠. 세상 그 누구보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게 있어요. 세계적인 학자들보다, 교수들보다, 엄마나 형제 자매보다, 그 어떤 사람보다 여러분이 잘 아는 주제.

맞아요.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이 가장 잘 알거든요.

쓸 거리가 없는 분들은 먼저 자기 이야기를 써보세요. 생각, 상상, 의견, 불만, 슬픔, 행복, 사랑, 이별, 분노 등등. 그 어떤 것이어도 좋으니 쓰세요. 내용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 아무 걱정 마시고요. 여러분의 삶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제일 잘 안다는 거 잊지 마세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까요? 자신에 대해 쓸 때 어떤 걸 소재로 삼을 수 있을까요?

우선 가장 쉬운 건 과거예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죠. 기억에 남는 경험을 모아 보세요.

그 다음으로는 일상이예요. 오늘 하루, 요즘의 일과, 학교 생활 등등. 그런 것들 속에서 느끼는 바를 소재로 삼는 거죠.

또 하나는 열정, 욕망, 바람, 분노, 슬픔 등과 같은 감정이예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글을 써보도록 노력하는 건데, 많은 연구들은 이런 글쓰기가 정서적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구요.

관계에 대해 써보는 것도 좋아요. 나를 둘러싼 사람들, 나를 둘러싼 환경 혹은 사건들. 나를 기쁘거나 슬프게 하는 요소들 등등.

픽션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보시는 것도 좋겠어요. ‘내가 드라마를 쓴다면 이런 사람을 주인공을 할 것이다’와 같은 소재도 좋아요.

(2) 정확하게, 완벽하게 써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말할까요? 세상에 자기 글에 진짜로 만족하는 사람은 없어요. 어느 정도의 만족이 있겠지만, 완벽한 글은 없다는 거죠.

그러니까 영어 문장을 쓸 때 정확성(accuracy)이나 완벽함을 목표로 두지 마세요. 스케이트 처음 타면서 김연아 비슷하게 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나, 피아노 처음 치면서 라흐마니노프를 술술 연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그게 이상한 거죠. 그런 사람은 스케이트나 피아노 배우면 안됩니다. 성격만 버리거든요.

그럼 우리가 ‘네이티브’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글을 잘 쓸까요? 사실 그것도 사람마다 달라요. 방금 이야기했듯 글은 누구에게나 힘든 작업이거든요. 글이 힘든 건 네이티브에게도 마찬가지라는 말이죠.

이 점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 보죠. 네이티브니까 우리보다 좀더 쉽게 쓰는 건 분명해요. 영어로 쓸 때 말이죠.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여러분들 모두 모국어가 한국어라고 했죠?

대부분 한국에서 살아왔으니 20년 간 한국어 듣고 말하고 읽고 쓴 양을 생각해 보세요. 쓴 건 없다고요? 과제도 별로 없다고요? 그럼 매일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에 치는 텍스트만 생각해 봐요. 얼마나 될까요? 어림 셈만으로도 여러분들의 한국어 사용량과 한국어를 교실에서 외국어로 배운 사람들의 한국어 사용량은 비교가 안되지요.

이 점은 분명해요. 우리가 영어 몇 년 공부한 것 가지고 수십년 간 영어를 모국어로 쓴 사람들보다 영어를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죠.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우리도 특정한 영역에서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을 가능성은 있다는 거예요. 해당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쌓으면 되는 거죠. 그러다 보면 가치있는 글이 나올 수 있어요. 시간이 필요하지만요.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완벽함’이라는 가치가 환상이라는 거예요. 처음부터 완벽한 글은 존재하지 않아요. 정도의 차이일 뿐 모든 글은 미완성이죠. 그러니까 완벽하게 쓰겠다는 꿈은 접으세요. 아무도 못하는 거니까.

대신에 꾸준히 쓰세요. 그러다 보면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조금씩은 하게 되거든요. 완벽하지 않아도 좋은 글을 쓰게 됩니다. 신문 잡지에 실리는 글만이 좋은 글은 아니예요.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이 좋은 글이고, 누군가에게 정보를, 마음을 전달하는 글이 좋은 글이예요.

기억하세요. 정확성은 좋은 글을 이루는 요건 중에서 아주 작은 일부분이예요. 오늘 발표한 6단어 비망록, 참 좋았어요. :)

(3) 글을 많이 읽다 보면 쓰기는 따라온다.

이번에 영작문을 늘리기 위한 전략을 쓰는 과제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게 ‘좋은 글을 많이 읽는다’였어요. 영어로 좋은 글을 많이 읽어서 쓰기 실력을 향상시키겠다는 거, 좋은 아이디어예요. 그런데 저는 이 아이디어에 반만 동의해요. 왜 그런지 설명해 볼게요.

지식과 간접경험을 넓히기 위해 책을 많이 읽는 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죠. 세상 수많은 일들을 직접 경험해 볼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책을 많이 읽는다고 쓰기가 바로 향상될까요?

여기에서 중요한 개념 하나를 소개해 볼게요. 어떤 언어이든 읽거나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쓰거나 산출할 수 있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어요.

한국어 예를 들어 볼게요. 여러분 뉴스 보시죠? (네~) 뉴스 보면 특별히 어려운 경제 용어나 과학 용어가 나오지 않는 이상 다 이해하시죠? (네~) 그런데 그걸 다 이해한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뉴스 스크립트를 쓸 수 있나요? 제 말은 잘 쓸 수 있냐는 거죠.

사실 아주 단순한 일기예보 스크립트를 쓰려고 해도 쉽지 않을 거예요.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모국어의 경우에도 읽기와 쓰기 사이의 간극이 명확히 존재한다는 겁니다.

근데요. 여기에서 슬픈 소식이 하나 있어요. 그건 뭐냐면… 제2 언어, 즉 외국어의 경우에는 이 간극이 아주 커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영어로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방송 스크립트를 영어로 작성하는 건 모국어인 한국어의 경우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거죠.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영어 독서를 많이 한다고 해서 영어 글쓰기가 팍팍 느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영어 글쓰기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영어 글쓰기를 위한 독서를 해야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조금씩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거예요. 앞으로 몇 가지 전략을 소개해 드릴게요.

(4) 단어를 잘 몰라서 못쓰겠다: 사실 저도 단어를 좀더 많이 알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 경험상 ‘단어가 부족해서’라는 말은 반만 맞는 거더라고요.

단어를 계속해서 열심히 공부하시는 건 좋은데, 단어를 많이 안다고 해서 그게 다 글이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단어도 수용어휘와 산출어휘가 있어요. 여러분들이 어떤 단어를 보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그걸 글에 바로 쓸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단어를 계속 외우더라도 산출어휘를 생각하면서 외우셔야 글에 반영될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탤 게 있어요. 쓰기에 있어서 ‘어휘를 아는 것’이 개별 단어에 대한 지식에 그쳐선 안됩니다. 언어학에서 흔히 말하는 collocation 즉 연어를 알아야 하는 거죠. 이에 대해서는 전에 짧게 써 놓은 글로 대신하도록 할게요.

[유용한 영어학습사전 OZDIC] 이전에도 잠깐 소개했던 적이 있었던 Collocation (연어) 사전을 소개합니다. ozdic.com 인데요. Oxford 에서 만든 연어 사전입니다. 정의와 예문, 그리고 용례가 중심이 되는 사전과는 다른 구조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scream (명사)를 찾으면 이런 식으로 답이 나옵니다.

scream noun

ADJ. high-pitched, loud, piercing, shrill | muffled, stifled | blood-curdling, hysterical, terrible, terrified

VERB + SCREAM give, let out | hear

SCREAM + VERB echo, ring out His screams echoed through the empty house.

PREP. with a ~ She reacted to the news with hysterical screams. | ~ for a scream for help | ~ of screams of laughter/terror

이미 알고 있는 단어라도 문장 안에서 쓸 수 있어야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죠.

예를 들어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학습자가 “균형”이라는 단어를 배웠다고 해서 바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균형을 “잡다”, 균형을 “깨다”와 같이 같이 쓰이는 동사를 익혀야 하고, “적절한” 균형, “완벽한” 균형 등과 같이 같이 쓰이는 형용사를 알면 더욱 좋겠죠. 이런 단어 없이 균형이라는 단어를 단독으로 쓰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영어를 예로 들어 볼까요? 영어에서 ‘균형’에 해당하는 명사는 balance.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있겠지만 일상생화에서 이 단어를 단독으로 사용할 수는 없겠죠? 그렇기 때문에 ‘balance’ 앞에 동사가 와야 해요. 그럼 ‘균형을 잡다’라는 의미로 가장 많이 쓰이는 동사는 뭘까요?

이게 조금 어려운데 strike를 가장 많이 씁니다. strike a balance 이렇게요. 유지한다고 하면 maintain 같은 동사를 쓸 수 있을 거구요. 그런데 ‘balance’ 앞에 ‘어떤 균형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형용사가 올 수 있어요. 예를 들면 ‘a perfect balance’ 이렇게요. 그런데 균형을 잡는다는 건 여러 가지 요소를 동시에 고려하는 것을 의미하죠. 그래서 뒤에는 ‘balance between A and B’ 이렇게 오는 경우가 참 많죠. 그래서 저는 이런 비현실적인 문장을 만들어 봤어요.

He managed to maintain a great balance between work and life.(그는 직장과 삶의 최적의 균형을 그럭 저럭 잡았다.)

이걸 아까 말한 콜로케이션의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 되는 거죠.

balance
a great balance
maintain a great balance
maintain a great balance between work and life
manage to maintain a great balance between work and life.
He managed to maintain a great balance between work and life.

물론 이것이 우리 머리 속 문장 생성 과정을 나타내진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표현을 익힐 때 이런 접근을 염두에 둘 수 있다는 거죠.

어느 정도 단어 실력이 되시는 분은 OZDIC같은 연어 사전을 자주 사용하시면서 공부하시길 권해드립니다. 단어의 뜻을 아는 것은 단어 학습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시고요.

http://www.ozdic.com/
(5) 쓰기를 위한 간단 팁: 단어를 바꿔보자!

긴 글을 쓰려고 하지 마시고요. 짧은 글부터 써보시면 좋겠어요. 가장 손쉬운 전략 몇 개를 알려드릴게요.

– 단어 나열하기
일정한 소재를 던지고 단어를 나열해 보는 거예요. 대충 이런 식이죠.

* 나를 정의할 수 있는 형용사 세 가지.
* 내가 사랑하는 단어 세 가지.
* 나와 내 친구 OO의 공통점 세 가지.

그리고 여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유를 대보는 겁니다.

* 내가 왜 이 세 단어로 설명되냐고요? 그건 말이죠~
* 내가 왜 이 세 단어를 사랑하게 되었냐고요? 그건 말이죠~
* 구체적으로 어떤 걸 보면 친구와 내가 이렇게 닮았냐고요? 예를 들어 설명해 볼게요. 블라블라~

– 단어 바꾸어 보기
만나는 어구, 문장, 속담, 노래 가사 등에서 단어를 바꾸어 보는 거예요. 자신만의 의미를 넣어서 말이죠. 예를 들어 볼까요?

단어 바꾸어 보기

the good old days
the bad old days

옛날 좋은 날들만 있는 건 아니잖아.
나쁜 날도 있었찌.

the best is yet to come
the worst is yet to come

젤 좋은 일은 아직 오지 않았어.
최악도 아직 오질 않았지.

native speakers
native listeners

세상에는 네이티브 ‘스피커’만 너무 많은 것 같아.
네이티브 ‘리스너’도 많아졌으면 좋겠어.

mother tongue
grandmother tongue

모국어가 있으면
‘조모국어’는 없나?
어머니의 말도 잘 못하지만
할머니의 말은 어떤지 짐작도 안되네.

money talks
money devours
money dumbs
money silences

돈이 말한다고?
돈은 다 삼키기도 하고
사람들을 멍청하게도 하고
침묵하게도 만들지.

Change the world!
Keep the world!

세상을 바꾸자고?
음 유지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

Lead, not follow!
Follow, not try to lead!

사람들은 ‘따르지 말고 이끌라!’고 하는데
반대로 너무 이끌려고 하기 보다는 따르는 것도 필요한 거 같아.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tired boy.
일만 하고 안놀면 잭이 재미없는 아이가 된다고 하는데
일만 하고 안노는 것의 더 큰 문제는 피곤하다는 거.

All play and no work makes Jack a fun boy.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poor boy.

반대로 놀기만 하고 일을 안하면 재미난 애가 될 수도 있어.
물론 일 안하고 놀기만 하면 가난해질 수도 있겠지?

This too shall pass.
This too shall pass, but that shall stick persistently.

이 또한 지나갈 거야.
이 또한 지나갈 건데, 저건 계속 들러붙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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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은 이정도로 하구요.
다음 시간 과제는 두 가지인데요.

(1) 6단어 비망록을 설명하는 단락 쓰기 – 제목은 6단어 비망록으로 하시고요. 이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는 단락을 써오시면 됩니다.

(2) 자기가 써보고 싶은 주제 아무거나 골라서 써보기 – 첫 쓰기 과제이니만큼 원하는 주제에 대해서 마음껏 써보세요. 교재에 나와 있는 거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들이 쓰고 싶은 것을 쓰시면 됩니다.

이상입니다.
다음 주에 뵈어요. :)

#영어로글쓰기

영어 글쓰기 습관형성

Posted by on Sep 6, 2018 in 강의노트, 영어로 글쓰기, 집필 | No Comments

몇해 전 영작문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작문 실력 향상을 위해 해보겠다고 한 일들이다.

1. 많이 읽는다
2. 생각을 영어로 한다.
3. 많이 쓴다.
4. 영단어 공부를 많이 한다.
5. 영문법을 다시 공부한다.
6. 영화를 많이 본다. (영어 자막 시청 > 자막 제거 후 시청)
7. 수업을 열심히 듣는다. (예습, 복습, 과제 등)
8. 출석을 열심히 한다. (응?)
9. 말하기 연습을 열심히 한다.
10. 영어 동화를 읽고 따라 읽기를 한다.
11. 좋아하는 작가의 영소설을 독파한다.
12. 자신이 쓴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다. (피드백 받기)
13. 수업을 즐긴다.
14. 영어로 일기를 쓴다.
15. 사전을 가지고 자꾸 찾아본다.
16. 한 문단 당 500단어 이상씩 쓰도록 하겠다.
17.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갈 때 영어 기사를 두 개씩 찾아본다.
18. 인터넷 상의 번역 프로젝트에 참여해 본다.
19. 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있는데 열심히 해봐야겠다.
20. 팝송을 많이 듣는다.
21. 영어로 된 시나 산문을 읽어보며 다양한 수사법을 익힌다.
22. 구어체와 문어체를 구별한다.
23.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 본다.
24. 한국어로 된 책을 읽고, 영어로 써보고 싶은 표현을 찾아 영어 쓰기에 활용해 본다.

영어 쓰기에 대한 감정 중 단연 많이 언급된 것: 두려움.

영어 쓰기를 할 일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할 때 따라 나오는 말: 실생활에 쓸 일이 없다 & 입시 위주의 공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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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계획을 읽다 보니 영어 쓰기를 위한 전략이 대부분 영어공부의 다른 영역들(읽기, 문법, 어휘 등)과 연결되어 있거나, ‘많이 써본다’로 귀결되는 것 같다. 즉 학습전략이 언어적인 요소에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에 비해 영어를 써야만 하는 활동이나 글쓰기 모임과 같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쓰기의 발달에서 언어 공부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글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내 글에 반응해 줄 사람이 없을 때 글쓰기의 동력은 급속히 떨어진다.

쓰기 공부에 있어 ‘혼자’ ‘열심히’ ‘많이 써본다’가 갖는 약점은 확연하다. 이제껏 하려 했던 일들을 다시 해보겠다는 다짐이기 때문이다. 십수 년 못했던 일들을 ‘이번에야말로’ 해내겠다는 결심이 씁쓸한 후회를 만나는 일은 너무나 많이 겪지 않았던가?

나는 이런 분들께 쓰기 공부는 다음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드린다.

1. 읽기와의 유기적 연계
2. 쓰기를 둘러싼 생활습관 배양
3. 적절한 사회적 관계 수립
4. 쓰리라는 다짐이나 쓰기를 위한 준비보다는 쓰기 자체에 집중
5. 쓰기 시작을 위한 몇 가지 루틴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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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들조차 쓰 이유가 딱히 없다는 것이다. 학점 이외의 동기가 없는 상황에서 영어 글쓰기를 계속 해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욕심내지 않고 한 학기라도 집중적으로 써보는 경험을 선사하려 한다. (누군가에겐 과하다 느껴질지 모르지만)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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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의 글쓰기가 힘든 이유

 

대학원에서의 글쓰기가 힘든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층위에 존재한다. 먼저, 학술 공동체가 원하는 글쓰기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논문을 읽긴 읽되 내용을 훑을 뿐, 언어/수사적 구조체로서, 나아가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논문 장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지도교수 및 각 과목 담당 교수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것은 학술공동체가 원하는 글쓰기와는 다른 층위에서 대학원생들에게 부담과 고통을 안겨준다. 교수들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한 추측게임(guessing game)이 심심찮게 목격되는 걸 보면 이 문제도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적지 않은 대학(원)생들이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내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안개에 쌓인’ 학계의 관습이나 교수의 애매한 기대와는 다른, 글쓰기 과정 자체에 대한 메타인지 능력의 부족에 그 원인이 있다.

이 세 가지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그 해법은 조금씩 다르다. 첫 번째는 논문을 검색하고 읽고 분석하는 방식을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두 번째는 담당교수와의 적극적 소통과 토론을 통해서, 세 번째는 자주 쓰고, 괴로워도 반복해서 읽고, 되도록 자주 편안한 이들에게 크리틱을 받음으로써 조금씩 개선시켜 나갈 수 있다.

현재 대학원 학술 리터러시 교육의 문제는 이 세 가지 중 그 어떤 것도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니, 가르치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해야 좀더 정확한 설명일 수 있겠다.

#영어로글쓰기

To forgive is human as well

Human language is full of ambiguity. Is it inherently bad? I don’t think so. Leaving room for further interpretation entails embracing the possibility of misinterpretation and opening up a horizon for further negotiation. This vulnerability to being misunderstood and openness for collaborative meaning-making makes us human, unlike computers and networks pursuing the precise reading of each and every line of a code. (Of course this does not mean that you need to leave room for misunderstanding on purpose.)

In this sense, we language educators need to strike a balance between the emphasis on effective communication and the tolerance for misunderstanding and extended communicative moves. Communicators are not deliverers, packaging information and sending it off; rather, they are interactants and interpreters, who make mistakes, negotiate, settle, and sometimes ‘ignore together.’

Thus placing excessive stress on accuracy alone is symptomatic of a futile desire to escape from this fundamental fact in communication: To err is human; to ‘forgive’ human too.

#영어로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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