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 vs. Fare+well: 유의어는 유의어가 아니다

Goodbye와 Farewell은 유의어다. 물론 평소에 “Farewell!”로 친구에게 인사하는 사람은 없으니 Goodbye의 쓰임이 훨씬 광범위하고 구어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둘의 의미차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우주여행을 떠나는 배우자에게 하는 인사라면 어떨까? 아래 방송의 문맥에서 Goodbye와 Farewell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PETTIT: And I assured Don that I believed in what he was doing and I would be OK. And we held each other and you know, it was kind of like, this could be a goodbye.
PETTIT: Goodbye but not farewell.
 
“Farewell”은 Fare+well의 결합이다. Fare에는 ‘여행하다’, ‘여정을 떠나다’라는 뜻이 있고, well은 ‘잘’이라는 의미다. 여정에 어려움이 없길 바란다는 뜻이 담긴다.
 
이에 비해 (위 문맥에서) “Goodbye”는 말 그대로 작별인사다. 더 이상 서로를 볼 수 없는 상황, 영원한 이별 말이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비슷한 말의 거리가 벌어질 수 있다. 맥락에 따라 사전에 등재된 반의어(antonym)들의 거리가 재조정되는 것이다.

영어로 논문쓰기, 한 해를 되돌아보다

한해 동안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영어로 논문쓰기> 대중강의가 시작된지 만 1년이 지났습니다. 10주간의 커리큘럼을 4주(12시간) 분량의 강의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완료되었고, 네 번째 기수의 수업이 진행중입니다. 요즘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게 됩니다. 크게 세 가지 일을 구상/진행중입니다.

(1) 강의록을 보강하여 책으로 발간

(2) 압축버전을 동영상 강의로 제작

(3) 인문사회분야라는 다소 넓은 영역에서 개별 학문 영역으로 세분화 (e.g. 응용언어학, 영어교육, 보건학, 경영학 등)

학술리터러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들과 만나면서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함을 절감합니다. 여러 대학원생들과의 이야기 가운데 연구자들을 위한 리터러시 교육이 충분히 가치있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하나하나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겠지만, 생각을 놓지 않는다면 함께할 인연을 만날 수 있겠지요.

그리 대단할 것도 없지만 업신여겨서도 안되는, 따로 또 같이, 부드럽고 또 날카롭게, 세상을, 관점을, 마음을, 진실을, 비참과 희망을 담아내는 글. 딱 삶만큼 무겁고 그만큼 시시한 글을 꿈꾸어 봅니다.

 

영어, 쉽게 쓰면 장땡인가?

쓸데없이 어려운 수능지문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만 ‘영어는 간단히 말하면 장땡’이라는 건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뭐 간단하게 말하며 장땡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다음 표현 중에서 맨 위의 것들만 골라서 쓰시면 되겠지요.
 
Shut (the xxxx) up!
 
Be qutet.
 
Can you be qutet?
 
Please be quiet.
 
Could you please be quiet?
 
Your quietness/silence is requested.
 
We would like to request your silence.
 
Your silence is cordially requested.
 
We would appreciate it if you could temporarily keep your urge to talk.
 
I am not sure whether you would agree with me. But as far as I know it is usually the case that people keep quiet while the speaker gives their speech.
 
그런데 이것들이 모두 같지는 않죠. 아니 꽤나 다릅니다.
 
저 또한 되도록 적은 단어로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확함(accuracy)’이라는 게 의미의 뼈대만 전달하면 된다는 식으로 오해되면 곤란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 모두는 언어 신호의 전달자(message deliverer)이기도 하지만 관계와 맥락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social being)니까요.
덧.
 
특정한 표현이 반드시 특정수준의 공손함에 대응하는 것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 “Quiet please”가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으므로 대인관계에서 피하는 것이 안전하지만 테니스 구장에서는 쉽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사회적 인식의 변화(테니스장에서 좀 떠들면 어때?)가 수반되면서 그 쓰임의 적절성도 변한다는 사실이다. 아래 기사는 이 점을 보여준다.
 
http://www.espn.com/tennis/story/_/id/17479201/us-open-quiet-please-silence-becoming-thing-in-tennis

논문지도(?) 업체 단상

몇주 간 논문쓰기 강의 이야기를 해댔더니 타임라인에 논문지도(?)나 논문컨설팅(?) 업체 광고가 여럿, 그것도 꽤 자주 뜹니다. 페북 알고리즘 지능의 한계에 대해 알 수 있는 대목이죠. :)

이전에 들어본 업체는 ‘OO펜’ 하나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시장인가 봅니다. 그런데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제가 하는 건 특정 논문에 대한 지도도 컨설팅도 아닙니다. 제가 (응용언어학의 일부 분야 외에) 그런 걸 할 수 있을리가요. 논문지도나 컨설팅은 지도교수 및 심사위원들께 받는 게 맞을 것 같네요.

쓰기의 본령

Posted by on Jan 27, 2018 in 과학, 단상,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모두 다 연결되어 있지만)’논문쓰기’ 보다는 ‘지식생산’이, ‘지식생산’ 보다는 ‘저자되기’가 좀더 쓰기의 본령에 가까운 개념이다. 써내는 것 보다 만들어 내는 것, 만들어 내는 것보다는 되어가는 것. 논문을 ‘찍어내는’ ‘공장’ 이야기에서 쓰되 만들지 못하는 모습을, 자녀를 공저자로 올리는 약삭빠름 속에서 만들되 되지 못한 사람들을 본다.

논문쓰기 3주차 단상

Posted by on Jan 20, 2018 in 단상, 영어로 글쓰기, 일상 | No Comments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내가 언제 스무 개 가까이 되는 분야의 진지하고도 열정적인 연구자들 앞에서 강의라는 걸 하겠나’ 싶었다. 별것 아니지만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닌, 몇년 후 각자의 삶이 되고 나면 너무 평범한 것들이라고 회상할지도 모르는 이야기들. 그래도 지금 여기에서 함께 고민하는 연구자들의 공부에 작은 자양분이 되기를, 내 공부의 우둔하고 우울했던 나날들이 다른 삶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은 간절하다. 모여주신 분들이 그냥, 많이, 고맙다.

글쓰기 고수

만약 “글쓰기 고수”라는 게 있다면 최고의 비법은 아마도 서두르지 않는 힘일 것이다. 글은 표현(ex-pression)이지만 표현의 힘은 오랜 시간 자신의 내부를 압박(in-pression)하는 데서 나온다. 차오를 때까지 응시하는 일. 내보내기 위해 쓰지만, 내보내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일.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진정한 글쓰기 하수다. 온전한 글로도 모자랄 이야기를 몇 줄에 담아 내보내려 하고 있으니.

발견되는 글

갈수록 글은 쓰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예를 들어 500 단어의 글을 쓰는 일은 단어 하나 하나를 써서 500 단어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500개의 단어 연쇄(500-gram) 중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기 위해 1부터 500까지의 빈칸에 단어들을 하나 하나 대입해보는 작업이다. 늘어선 500개의 단어들이 손에 손을 잡고 ‘우린 오래 전부터 여기 함께 있었어요’라고 외치는 순간 글은 완성, 아니 발견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인이 자신의 글을 고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도 이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내가 발견한 글은 이게 아닌데, 왜 이걸 발견했다고 하는 거야?’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내가발견하려던글은아니지만

영어 표현 메모 몇 개

1. read와 read into

read가 보통 ‘읽다’의 의미라면 read A into B는 “B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의미, 느낌 등을 ‘읽어내다'”라는 뜻으로 종종 쓰인다. 특히 “read too much into something”의 형태로 자주 쓰인다.

“The boy is reading too much into her words.” (소년은 그녀의 말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읽어내고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reading은 ‘read into’의 요소를 갖고 있다. 하지만 너무 심하면 ‘지멋대로 독해’가 되어버린다. 그런 경우를 ‘read too much into something’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2. meet과 meet with

meet은 ‘만나다’라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 이에 비해서 ‘meet with’는 조금 더 형식을 갖춘 느낌으로 일과 관련해서 더 자주 쓰이는 편이다. 일반화하긴 힘들지만 영국영어보다는 미국영어에서 meet with가 자주 발견되는 듯하다.

(중학교 때 meet을 철저히 타동사로만 배웠던 기억이 나서 meet with를 매일같이 쓰는 동료들을 보며 살짝 배신감이 들었다.)

3. on one occasion

한국어의 ‘한번은’에 잘 대응하는 표현이다. 뒤에 나오는 이야기가 흥미롭고 주목할만한 것임을 슬쩍 보여준달까.

4. onto

onto의 의미는 ‘into’와 ‘on’이 적절하게 버무려진 것으로 보면 된다. 어떤 위치로 ‘진입’하는 것과, 진입된 위치가 뒤에 나오는 명사와 접촉하고 있음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onto the stage”는 (1) 무대 밖에서 안으로의 진입(into)과 (2) 진입한 위치가 무대에 닿아 있음(on)을 동시에 나타낸다.

5. in the nick of time / just in time

Just in time과 in the nick of time은 거의 비슷한 의미다. ‘사고가 터지거나 당황스런 일이 일어나기 직전에’ 정도의 뜻으로 보면 된다. 다만 이 둘이 쓰이는 맥락이 조금 다른데 just in time은 두루 두루 쓰이는 데 반해 in the nick of time은 스토리텔링에서 주로 사용된다.

6. Dead on time

영국 영어에서 “dead on time”은 ‘딱 맞추어서”의 의미다. “Dead”가 ‘죽은’의 의미가 아니라 ‘바로(right)’의 뜻으로 쓰인 것. 그래서 사람들이 장난스럽게 이런 문장을 해석해 보라 하기도 한다.

“The man arrived dead on time.”

물론 문맥에 따라 죽어서 도착한 것일 수도 있지만, 딱 맞춰서 도착했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

‘다름이 아니라’와 글쓰기 교육

“다름이 아니오라”는 메일에서 피해야 할 어구로 종종 지적된다. “다른 게 아니고” 같은 표현들은 가급적 피하라는 것. 생각없이 나오는 군더더기 표현으로 정보가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저 표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다름이 아니오라”는 메일의 내용이 아니라 문화적 사고패턴에 대한 정보를 담기 때문이다. 내용상 필요없을 지 모르지만 문화적으로는 통용되는 메시지 전달의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메시지가 아닌 메타-메시지의 영역이다.

유난히 ‘있잖아’, ‘그거 알아?’ 등의 표현을 자주 쓰는 친구가 있다. (그런 친구 하나쯤은 다 있지 않나.) 이들은 그 자체로 특정 내용을 담고 있진 않다. 그래서 이런 말장난을 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실행에는 옮기지 않는다. (대신 써본다.)

“있잖아.”
“응 있지. 분명 있어.”

“그거 알아?”
“그거? 이건 아는데.”

“있잖아”가 전달하는 내용은 없다. 하지만 화자가 “있잖아”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청자는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있잖아’라는 말을 짜증스러워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오랜 기간 특정 문화 속 대화를 통해 사고구조를 형성해온 사람들은 “있잖아”를 듣는 순간 뭐가 있는지 순간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다름이 아니오라”는 상대방이 메시지를 읽기 전 짧은 준비를 할 여지를 준다. 뒤에 나오는 내용이 상대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하거나, 업무를 요청하거나, 불쑥 질문을 던지거나 하는 일일 수 있다는 신호(signal)다.

그렇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일은 무례하게 비춰질 위험을 무릅쓰는 꼴이다. “다름이 아니오라”는 진부하고 정보성도 떨어지지만 이런 위험을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하는 전략으로 유효하다. 겨우 두 단어지만 말이다.

“다름이 아니오라”를 쓰지 말라고 할 때 “안좋으니 쓰지 마세요”라고 말하기 보다는 이 구절이 여전히 우리 곁에서 떠나지 않는 문화적, 인지적 이유를 설명하면 어떨까? 안좋으니 쓰지 말라고 하기보다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나눠보면 어떨까?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느냐고,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핀잔만 듣게 될까?

하지만 때로는 ‘어쩌라는 것’ 보다는 ‘그렇다는 것’이 더 나은 글쓰기 교육일지 모른다. ‘~하라’ / ‘~하지 말라’만 난무하는 글쓰기 교육은 테크닉을 주고 생각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다름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Photo by Dung Anh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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