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쓰기 – 단상

(응용언어학) 논문을 쓴다는 것

1. 내가 아는 것이 거의 없음을 깨닫는 일
2. 누군가에 대해, 무언가에 대해 조금,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음을 배우는 일
3. 내가 공부하는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나 자신에 대해 아는 바를 과대평가했음을 깨닫는 것
4. “아주 작은 일”을 해내는 것이 나 혹은 다른 이에게 의미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는 일
5. 계속 질질 끌면서 일을 끝내지 못할 수도 있음을 깨닫는 일
6. 전사(transcription)가 논문 작성 과정 전체의 90퍼센트 이상 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음을 배우는 일
7. 꾸준히 쓴다는 거, 말이 쉽지 실천하기 쉽진 않음을 알게 되는 일
8. 이 일의 본질이 지적(cognitive)이라기 보다는 정서적(affective)인 것임을 알게 되는 일
9. 뒤늦게 지도교수가 ‘범위를 좁히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들었어야 함을 깨닫게 되는 일
10. 궁극적으로는 논문을 쓰는 건 삶을 쓰는 것임을 알게 되는 일

– 2012년 1월. 논문 막바지에 느꼈던 바를 영어로 적은 적이 있다. 아침에 우리말로 옮겨 보았다.

Writing a dissertation (in Applied Linguistics)

A banal list by a struggling writer, determined to love this process (here ‘love’ is not something like in “I love this chair!”; rather, it alludes Leonardo da Vinci’s words, ’If there is no love… what then?’ Anybody wanna give me a word of wisdom or encouragement? :)

1. Realizing that I know almost nothing
2. Learning that I can know just a little, tiny bit about someone or something
3. Realizing that I have overestimated my own knowledge of myself, let alone my field of study
4. Learning that doing that “tiny bit” can mean something significant to me or someone
5. Realizing that it is possible to drag my feet forever
6. Learning that transcription feels like more than 90% of the entire process
7. Realizing that writing constantly is easier said than done
8. Learning that the nature of this process is affective rather than cognitive
9. Realizing that I should have narrowed the scope when advised to do so by my advisor
10. Learning that, ultimately, writing a dissertation is writing one’s life.

#삶을위한리터러시 #영어로논문쓰기 #삶을위한영어공부

저자로서의 권위 그리고 오케스트라

‘~인 것 같아요’, ‘~인 듯합니다’ 등에 대한 단상 (재원님과의 대화 중에서 갈무리 + 덧댐)

조금 다른 현상이긴 하지만 작문과제를 할 때 “I think” “I feel” “I believe” 등의 표현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그렇게 쓰지 말아야 한다’는 말로 고쳐지지 않는 경우가 많더군요. 습관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텍스트에 대해 갖는 권위의 문제이기도 하거든요.

저를 포함한 한국인들이 ‘~인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상대방과의 거리를 두려는 전략이라고 봅니다. ‘~입니다’ ‘~합니다’와 같은 말투의 사용은 상대방의 인지적, 정서적 영역에 ‘훅~’ 하고 들어가는 걸 막으려는 무의식의 발로라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자신이 말하는 내용에 자신이 있고 그에 대한 권위를 확보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면 돌아가지 않고 직선적인 화법을 구사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한국어 화자들이 영어를 사용해서 글을 쓸 때는 이 문제가 더 심하게 불거져 나온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때로 학생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I”와 같은 대명사의 사용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오히려 자신이 텍스트에 대해 갖는 권위를 떨어뜨립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개인 안에 가둬놓기 때문입니다.

자기 목소리를 갖는 전혀 다른 방식을 배우는 것이 학술적 글쓰기의 핵심입니다. 지휘자가 악기를 직접 연주하지 않고도 아름다운 음악을 창조하듯, 저자는 “I”와 “나”를 직접 드러내지 않고도 자신의 생각을 구현해 낼 수 있습니다.

#삶을위한리터러시

매체에 대한 착각

“모든 매체에는 의사소통의 측면에서 고유의 변증법이 있다. 즉 매체는 그 매체를 통해서 소통하는 것들을 연결하고 분리한다. 덧붙여 말하자면 바로 이 변증법이 매체(medium)라는 개념의 정확한 의미이다. 그러나 정보전달의 과정에서 그것의 존재가 망각되는 매체들(이른바 면대면 매체)이 있다. 예를 들어 원형 탁자에서 대화를 할 때, 이 탁자의 존재는 잊히고, 나아가 우리가 그것을 통해 말을 하고 있는 공기의 존재도 잊혀진다. 그러니까 우리는 몸이 서로 닿지 않는데도 직접적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 언제나 잘못된 — 인상을 받는 것이다. 이런 인상이 잘못인 이유는, (모든 분석을 회피하는 신비적 합일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접적 소통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인상은 비록 잘못된 것일지라도, 그 의사소통을 만족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전화는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결코 잊히지 않는 매체이다. 이것은 전화의 기술적 성격 때문이 아니다. TV는 전화보다 훨씬 더 기술적인데,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잊는다. 불행하게도 이 점이 TV의 담론을 만족스럽게 만든다. 전화 연결망에서의 대화는, 그 대화가 대화를 중개하는 매체를 실질적으로 안보이게 하는 데 성공할 경우에만 비로소 만족스러운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기술적인 도전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적인 도전이기도 하다.” (빌렘 플루서, 몸짓들, 203-204)

생각과 문장에 대한 착각

글을 쓰다 보면 가끔 “머릿속에서는 할 말이 분명한데 이걸 문장으로 풀어놓으면 엉망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생각에는 크게 두 가지 오류가 있다.

첫 번째는 생각과 쓰기의 존재양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생각은 문장만이 아니라 온갖 재료들로 구성된다. 그것은 기억과 경험의 총체 중 일부로, 뉴런들의 다차원적이며 비선형적(non-linear) 연결패턴으로 존재한다. 이에 비해 문장은 하나의 선을 따라 진행하는(linear) 자모와 단어의 연결패턴으로 존재한다. 머릿속 생각과 쓰여진 문장은 분명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전혀 다른 양태로 존재한다. 생각은 외화(externalize)되면서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생각이 분명하다’는 착각이다. 분명한 생각이란 무엇인가? 그저 할말이 있다는 것, 할 말의 방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분명한 생각’으로 둔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분명한 생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나, ‘확실히 할 말이 있다’는 확신이나, ‘나에게도 생각이라는 게 있어’라는 자존심을 ‘분명한 생각’과 등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는 않은가?

#삶을위한리터러시

‘맞는’ 쓰기보다 ‘할말을 하는’ 쓰기

오후에 몇몇 분들과 쓰기교육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는 정확성에 대한 집착이 쓰기교육의 발목을 잡는 현상에 대한 개탄으로 수렴되었다.

자전거를 배운다. 비디오를 찍는다. ‘완벽한’ 사이클리스트와 비교하여 자세, 시선, 각도, 속도 등 모든 것을 비교하여 동영상 컷 별로 ‘틀린’ 것을 하나하나 지적한다.

물론 자전거를 이렇게 배우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쓰기를 가르치다 보면 선생이 어휘, 문법, 흐름, 논리 등의 측면에서 글을 빈틈없이 분해하고 각각에 대해 피드백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학습자 보다는 학부모들이 특히 그렇다.

영작문이나 자전거타기나 일종의 기술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기술을 익힐 때에는 조금씩 발전할 수 있도록 격려하며 동기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다. 자전거 30미터 타고 온갖 피드백을 받지 않는다. 짧은 글마다 온갖 피드백을 받는 게 좋을 리 없다. 게다가 피드백은 대개 빨간색이잖아…

결국 ‘맞는’ 쓰기보다 ‘할말을 하는’ 쓰기가 중요하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린 정확성과 서열을 중시하는 한국교육에서 ‘조금 틀린 채로 계속 달리는’ 쓰기교육은 힘들다는 데 동의했다. 대개의 사람들은 단기간에 객관적으로 판단 가능한 변화를 원한다. 물론 그게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현재의 영어교육의 구조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일 뿐.

#삶을위한리터러시

문법공부란 무엇인가

문법이 맥락과 결합하면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Practice makes per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습하다가 보면 완벽하게 된다는 말이지요. 논란이 좀 있긴 하지만 자주 인용되는 “1만시간의 법칙”(어떤 분야이든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슬로건으로 나올 법한 표현입니다. 이 문장을 분석해 보면 매우 간단한 구조가 나옵니다. 바로 “A makes B”죠.

“A makes B”라는 구문은 매우 단순합니다. 하지만 Makes를 다른 동사로 살짝 바꾸거나 적절한 맥락과 결합시키면 풍부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이 초간단 문형을 가지고 만들어 본 문장들입니다.

1. Make-up makes money.

만약 어떤 사람이 메이크업 하는 법을 유튜브에 올려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해봅시다. 이때 “Make-up makes money.”라는 말을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여기에서 “make-up”은 화장 자체라기 보다는 ‘화장하는 법을 연구해서 만든 영상”을 함축한다고 할 수 있겠죠. 돈되는 일은 무엇이라도 make-up 자리에 넣을 수 있겠습니다. 메이크업을 하면서 삶의 기쁨을 얻게 되었다면 “Make-up makes joy.”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2. No-dress brings popularity.

어떤 사람이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누드시위를 했다고 합시다. 이때 많은 언론들이 그에 대해 주목하고 순식간에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면 어떨까요? 이 상황을 “No-dress brings popularity.”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좋은 옷을 입고 다녀서 유명해질 수도 있지만 나체가 되어 유명해질 수도 있는 것이죠. 물론 그렇게 얻은 유명세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요.

3. Consistency makes jokes.

어떤 사람이 조크를 구사합니다. 처음에는 재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결코 굴하지 않고 계속 합니다. 끝까지 밀어부치니까 이제 사람들이 어떤 패턴을 접하면 “아 이거 OO식 유머네”라고 알아보게 됩니다. 나름 웃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기고요. 이런 상황이라면 “꾸준히 하다 보니 유머가 되네”라고 말할 수 있을 거고, “Consistency makes jokes.”라는 표현이 가능할 겁니다.

4. Expediency creates illusion.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는 무명 작가가 있습니다. 원고를 보내고 답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뭐라도 대꾸라도 해주면 좋을텐데 말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다릅니다. 원고를 보낸 지 24시간도 안되어 “원고를 잘 읽어보겠다”는 답장을 받습니다. 이렇게 빨리 답장이 오다니! 뭔가 잘될 것만 같습니다. 이 경우 빠른 처리(expediency) 덕에 잘될 것 같다는 환상(illusion)이 생길 수 있죠. 사실 이번 출판사의 편집자는 이메일 답장을 보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결벽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오늘은 <A makes B>라는 간단한 구문을 이용해서 몇 가지 예문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매우 단순한 구조이지만 여러 가지 상황과 결합하면 그에 맞는 메시지를 만들어 냅니다. 이것은 <A makes/creates B>라는 문형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어떤 문법 구조이건 적절한 어휘와 맥락을 만나면 굉장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정한 맥락을 만나면 거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문법구조를 떠올려 봅니다. 특정한 문법구조를 만나면 이와 잘 어울리는 문맥을 생각해 봅니다. 이 과정 속에서 암기의 대상이 되는 문법이 아니라 삶을 포착하고 표현해 내는 문법을 익힙니다.

이처럼 언어의 구조와 삶의 맥락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문법 공부입니다. 앞으로 문법을 공부할 때마다 이점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The ultimate ruler

Posted by on Nov 27, 2018 in 단상, 영어,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궁극의 지배자는 어떤 자(측정의 기준)를 쓸지 결정한다. 표준화는 능력주의와 공모하여 ‘공정한’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The ultimate ruler decides which ruler to use. Standardization, in collusion with meritocracy, forms the very foundation of the ‘fair’ capitalism. In this sense the fight against the system necessarily accompanies fights against diverse measurement schemes, disguised in scientific objectivity and fairness for all. So we may want to ask ourselves, “which ruler am I serving?” whenever we take up a specific measurement/testing scheme.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Capitalist suffering

Posted by on Nov 27, 2018 in 단상, 영어로 글쓰기, 집필 | No Comments

Capitalism glorifies independence and “being on one’s own.” However, it is a fundamentally interdependent system. Independence has been overrated; interdependence underexplored. Capitalism rarely reflects upon its own nature. We people can. This makes one of the rich sources for human suffering.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쓰기학습의 원칙 (2): 정확성의 덫에서 벗어나기

“이렇게 쓰면 되나요?”

영작문을 가르치면 가장 빈번히 듣게 되는 질문입니다. 자기가 고른 단어가, 써낸 문장이 올바르냐고 묻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질문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용의 풍부함이나 글의 느낌, 논지의 명료함, 재미, 나아가 감동에 관해 묻는 일은 거의 없는 것이지요.

정확한 문장을 쓰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흠없이 완벽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단어 하나 쓰고 멈추고 문장 하나 쓰고를 멈추고를 반복하는 일은 쓰기학습의 가장 큰 적입니다. 사실 세상에 자기 글에 진짜로 만족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건 모국어로 써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글은 없습니다. 조금씩 나아질 뿐입니다.

영어로 글을 쓸 때 정확성(accuracy)이나 완벽함을 목표로 두지 말아야 합니다. 글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밀한 구조물로 생각하기 보다는 썼다가 무너뜨릴 수도 있고 엄청난 규모로 키울 수도 있는 모래성으로 보는 게 낫습니다. 바닷가의 모든 모래가 자신의 것인양 기쁜 어린아이처럼 글을 대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무너뜨리고 다시 쌓으면 됩니다. 이 세상 모든 단어가 글쓴이에게 주어져 있으니까요. 그것도 거저 말이죠.

학생들은 또한 ‘네이티브처럼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종종 합니다. 그럼 원어민이라고 해서 글을 다 잘 쓸까요? 당연히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지 상관 없이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힘든 작업입니다. 같은 조건이라면 원어민이 비원어민보다 좀더 쉽게 쓴다는 점은 분명합니다만, 이것이 결코 영어 원어민의 우월함을 뜻하진 않습니다. 영어 원어민이 우리보다 영어글을 편하게 느끼는 것은, 우리가 그들보다 한국어 글쓰기가 더 편한 이유와 동일합니다.

이 책의 독자 대부분은 한국어 모국어 화자이실 겁니다. 그간 한국에서 살아오며 한국어로 듣고 말하고 읽고 쓴 양을 생각해 봅시다.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매일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기타 소셜미디어에 타이핑하는 텍스트만으로도 한국어 사용량은 엄청납니다. 이점을 생각한다면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운 학습자가 한국인보다 한국어를 더 쉽고 자연스럽게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몇 년 공부한 영작문 실력으로 수십 년 간 영어를 모국어로 쓴 사람들보다 영어를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한 욕심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어민 간에도 글쓰기 실력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네이티브처럼 쓰고 싶다’는 말에 큰 허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특정한 영역에서는 전문성을 지닌 비원어민이 대개의 원어민들 보다 훨씬 나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글쓰기 타겟을 명확히 하고 집중 공략한다면 충분히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관련지식을 깊게 이해하며, 이를 수시로 글로 발전시키는 훈련을 하면 됩니다. 내용과 깊이를 갖춤으로써 더욱 가치있는 글을 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영작문 공부에서 완벽함이라는 가치는 환상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글은 미완성입니다. 그러니 완벽하게 쓰겠다는 꿈은 접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도 못하는 거니까요. 대신에 계속 쓰려는 노력은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꾸준히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좋은 글을 쓰게 됩니다. 세계적인 신문 잡지에 실리는 글만이 좋은 글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마음을 전하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마음에 와닿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그런 글을 쓰시면 됩니다.

글쓰기에 완벽한 정답은 없습니다. 목적이 같다고 해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언어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들에겐 각자만의 문체와 향기가 있습니다. 기자들 또한 같은 소재로 논설을 쓴다 해도 스타일과 전개방식이 달라집니다. 심지어는 동일한 저자의 글도 생애 중 어떤 시기에 썼느냐에 따라 느낌과 형식이 사뭇 다릅니다.

참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유독 영어에 대해서는 “뭔가 네이티브들이 쓰는 정답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패턴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답이라는 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의미를 만들고 여러분이 구조를 결정합니다. 네이티브의 도움도 글쓰는 이가 말하려는 바를 확실히 알 때 효과를 발휘합니다.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정답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쓰기는 외길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쓰기는 온 세상을 유랑(流浪)합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작성중

쓰기학습을 위한 원칙 (1):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영어 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로 꾸준히 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영어를 외국어로 사용하는 한국 상황에서 업무상 영어를 써야만 하는 직군을 제외하면 굳이 영작문을 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작을 잘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꾸준히 영어로 글을 써낼 동력이 되진 못하는 것입니다.

영어 쓰기에서 종종 언급되는 개념으로 ‘글쓰기 막힘(writer’s block)’이 있습니다. 무언가 쓰려고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면 머리가 온통 하얘지면서 아무 말도 꺼내놓을 수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입니다. 커서는 깜빡이고 시간은 지나갑니다. 아무리 생각을 짜내보려 애써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점점 더 조바심이 납니다. 이런 상황, 익숙하신가요?

글쓰기 막힘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발전시키려고 하는데, 정작 정리하고 발전시킬 생각 자체가 없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더 많은 생각과 독서가 필요합니다. 생각을 나누는 대화도 도움이 됩니다. 이를 통해 본격적인 글쓰기 이전에 풍부한 생각의 꺼리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거창한 글이나 학술논문을 쓰려는 것도 아닌데 쓰기가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는 몇 가지 루틴(routine) 즉, 쉽고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는 쓰기 전략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짧은 글을 자주 쓸 수 있도록 돕는 쓰기 도구를 마련하는 것인데요. 작은 습관을 쌓아 본격적인 글쓰기 근력을 키우는 전략입니다.

우선 긴 글을 쓰려고 하지 마시고 짧은 글부터 써보시면 좋겠습니다. 실천하기 쉬운 네 가지 영어글쓰기 전략을 공유합니다.(1) 단어 나열하기: 일정한 소재를 던지고 단어를 나열해 보는 것입니다. 아래 예를 보시죠.

나를 정의할 수 있는 형용사 세 가지.

내가 사랑하는 단어 세 가지.

나와 내 친구 OO의 공통점 세 가지.

 

단어의 나열에서 끝나면 영작문이라 볼 수 없겠지요. 그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을 덧붙이면 짧은문단이 될 수 있습니다. 대략 이런 구조입니다.

 

내가 왜 이 세 단어로 설명되냐고요? 그건 ~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왜 이 세 단어를 사랑하게 되었냐고요? 그건 ~와 같은 사건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친구와 내가 이렇게 닮았냐고요? 예를 들어 설명해 볼게요. 첫째는 …이고, 둘째는 …이고, 마지막으로는 …입니다.

 

(2) 단어 바꾸어 쓰기

이번에는 글을 읽다가 마주친 어구, 문장, 속담, 노래 가사 등에서 단어를 바꾸어 보는 전략입니다. 문장을 살짝 바꾸어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 것인데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괄호 안 설명은 단어를 바꾸게 된 동기입니다.

the good old days -> the bad old days (예전 좋았던 날들이 있으면 예전 안좋았던 날들도 있지.)

the best is yet to come -> the worst is yet to come (최선은 아직 오지 않았어. 하지만 최악도 아직 오지 않았어.)

mother tongue -> ‘grandmother tongue’ (모국어 (어머니의 말) -> ‘조모국어’라는 말은 없을까? 할머니가 쓰던 말은 어머니의 말과는 또 달랐거든.)

Money talks. -> Money devours. / Money dumbs. / Money silences. (돈이 말한다고? 돈은 다 삼키기도 하고, 사람들을 멍청하게도 하고, 침묵하게도 만들지.)

Lead, not follow! Follow, not try to lead! (사람들은 ‘따르지 말고 이끌라!’고 하는데 반대로 너무 이끌려고 하기 보다는 따르는 것도 필요한 거 같아.)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tired boy. All play and no work makes Jack a fun boy. All play and no work makes Jack a poor boy. (일만 하고 안놀면 잭이 재미없는 아이가 된다고 하는데, 일만 하고 놀지 않는 것의 더 큰 문제는 피곤하다는 것 아닐까? 반대로 놀기만 하고 일을 안하면 재미난 애가 될 수도 있어. 물론 일 안하고 놀기만 하면 가난해질 수도 있겠지?)

This too shall pass. -> This too shall pass, but that shall stick persistently. (이 또한 지나갈 거야. 이 또한 지나갈 건데, 저건 끈질기게 들러붙겠지? 삶은 알 수 없는 것 같아.)

(3) 짧은 ‘비망록’ 쓰기

영작문을 가르칠 때 첫 시간 활동으로 6단어 비망록(six word memoir) 쓰기를 하곤 합니다. 딱 여섯 단어를 가지고 자신을 표현하는 글을 써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헤밍웨이가 썼다고 전해지는 하지만 정확한 사실 확인은 되지 않은 6단어 비망록을 보시죠.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판매합니다: 한 번도 신지 않은 아기 신발.)

이 짧은 이야기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 아마도 굉장히 슬픈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헤밍웨이의 여섯 단어 비망록은 짧은 글도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처음부터 길고 거창한 글을 쓰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만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됩니다. 여러분 자신의 ‘여섯 단어 비망록’을 지금 써보시면 어떨까요? 인생의 시기별로, 기억에 남는 사건별, 잊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다양한 비망록을 써보시면 어떨까요? 6단어 비망록으로 시작하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열 단어 비망록을 쓰실 수도 있겠죠. 조금만 발전시키면 ‘10단어 전기’나 ‘15단어 평론’을 써보는 것도 가능하겠고요.

(4) 스스로 글감 생성하고 답하기

단어 나열하기나 바꾸기, 여섯 단어 비망록 등을 써보았다면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문단 쓰기를 시도해 볼 차례입니다. 사실 이때 다른 사람이 부과한 글감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써보고 싶은 소재를 찾아보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마음에서 솟아나는 이야기일 때 영어로도 잘 쓰고 싶어지거든요. 제가 생각해 본 글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힘들었던 이별의 순간 (w/ 사람, 장소, 사물, 동식물 …)
  2. 황당했던 꿈 이야기
  3. 운명같은 우연
  4. 내가 ‘행운의 편지’를 쓴다면?
  5. 세상 가장 쓸쓸했던 날
  6. ‘오늘 하루 시력을 잃었다’
  7. 소설을 쓴다면 이런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8. 세상 누구에게도 없는, 나 혼자 간직한 희망 혹은 소원

 

자 이상에서 영어 글쓰기를 시작하고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전략을 살펴보았습니다. 흔히들“Start small. Scale up.”라고 말하더군요. 작게 시작하고 거기에서 점차 스케일을 키워가는 것이지요. 작지만 소중한 경험부터 꺼내 보세요. 그렇게 세상에 나온 글이 또 다른 글을 이끌어 내는 것을 경험하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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