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phors for writing L1 vs L2

Writing in mother tongue vs. writing in a foreign language

At least for me, writing in my mother tongue is like painting with a brush and a palette containing a large number of colors. The brush is a multi-purposed, versatile one, adapting seamlessly to different situations and audiences. I can also mix colors in various proportions, which instantly creates a much more diverse array of colors.

On the other hand, writing in another language is like playing with a small number of Lego blocks, with a highly limited choice of colors. I can build things, this way or that, only to find that it leaves much to be desired. I can neither create a new block nor new colors at the moment. The job requires me to spend a substantial amount of time and energy.

What would be your metaphors for writing in mother tongue vs writing in a foreign language?

 

#영어로글쓰기

Reading-writing connection: Two principles

Posted by on Aug 25, 2018 in 강의노트, 단상,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Two principles for connecting reading and writing in an organic manner 읽기와 쓰기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두 가지 원칙

(1) Write on to read through the intention
계속 쓰십시오. 의도를 관통하여 읽어내기 위하여.
(2) Read on to write across the lines
계속 읽으십시오. 경계를 넘는 글쓰기를 위하여.

#영어로글쓰기

Can writing be taught?

A banal question: Can writing be taught?

This seems to be a question about the nature of writing, asking us to formulate an answer in a “writing is such and such and thus can (or cannot) be taught” manner. However, it is also closely related to how we define teaching. It is obvious that each of these concepts is so complex. So addressing the question requires one to define the two concepts involved: writing and teaching. But again, answering the question is so daunting due to the fact that defining these terms involves two huge disciplines: composition and education.

So, to my joy as well as agony, the answer always comes down to local situations. In other words, I can answer the question only here and now, looking my students in their eyes, exploring their sociocultural backgrounds, and collaborating with them moment by moment, with a specific pedagogical goal in mind. What is amazing is that the will to teaching, and learning to teach, plays a crucial role in answering this seemingly pure intellectual question. Here comes the artistic, performative dimension of teaching. The answer lies in authentic performances in situ rather than in theoretical conceptualizations a priori.

#영어로글쓰기

What education is about

Posted by on Aug 20, 2018 in 단상,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Education is not about the power to conquer the world, but about the will to surrender to justice, peace, and love. And we all know which of the two we are inculcating in school. In fact the entire socioeconomic system engineers the environment in which the conquerors can despise the weak legitimately and even ‘gracefully.’ This deeply hurts, and the resultant sufferings erode the body and psyche of the despised. It is truly tragic that these systematized trauma prevails.

티-글 모아 태산

저자로서의 목소리(authorial voice)는 거대한 관점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라 초성과 단어의 선택에서, 어미의 변주에서, 격식의 조절에서, 어구의 호흡에서, 반복의 간격에서, 문장과 문단의 길이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함의되고 생략된 요소에서 드러난다. 리터러시는 하향식(top-down)과 상향식(bottom-up) 정보처리의 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글쓰기의 과정은 언제나 소리 하나, 단어 하나를 선택하는 행위의 연쇄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글짓기는 언제나 단어-짓기(word-building)이며, 단어-짓기 없는 세계-짓기(world-building)는 존재할 수 없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글쓰기 훈련에서 배운 것

돌아보면 힘들었던 건 타지생활이 아니었다. 먹을 게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나날이었고, 밤낮도 주말도 없는 직장생활의 여유없음을 핑계로 방치했던 동네라는 공간을 다시 발견한 시기였고, 자주 홀로 걸으며 길과 하늘을 사진으로, 마음으로 담을 수 있었던 벅찬 시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사과정 내내 무의식과 의식을 넘나들며 나를 괴롭혔던 건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었다. 제2언어 리터러시에 대한 공부를 하고 쓰기에 대한 강의를 하고 학술논문 쓰기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면서도 자신의 글쓰기에 늘 신경이 쓰였다. 내가 가진 생각을 좀더 깊은 울림으로, 명확하고 생생하게, 아름답도록 아리게 전달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지만 여전히 영어는 “그들의 언어”로 남아 있(었)다.

논문을 쓰면서 배운 건 심오한 지식의 세계라기 보다는 글쓰는 사람으로 살아내야 할 일상, 글쓰는 과정을 통해 생각을 가다듬는 방법, 생각을 머금은 긴 산책으로 글길을 내는 일이었다.

조금 늦었지만 가파른 이론의 산을 오르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있어보이는 암벽을 고르는 게 아니라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일임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쉽게 이야기하는 “사고와 글쓰기의 통합”을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쓰는 건 사는 것과 분리할 수 없다는 ‘구태의연한’ 표현에 담긴 뜻을,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을, 하루 하루 조금씩 엮어갈 수밖에 없다는 조언의 참뜻을 이제야  알 거 같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쓰기라는 베틀을 통해 생각의 씨줄과 날줄을 엮는 방법을 구체화시킬 수 있었고, 엉킬 대로 엉킨 생각의 타래를 글줄로 뽑아내는 희열을 사모하게 되었다. 잘 다듬어진 글결이 보여주는 생각의 나이테에 감탄하게 되었고, 생각의 여정에서 남겨진 쪽글의 순진함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을 함께 써가는 사람들을 만나 아픔을 나눌 수 있었다. 글쓰기와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지만 계속 “차이는” 사람들, 그 쓰라림에 의연하지 못한 이들. 그래서 쓰기와 애증의 관계에 놓일 수 밖에 없는 나같은, 가련한, 아름다운, 별것 없지만 또 대단한 사람들을 만나 기쁘고 또 슬펐던 나날이었다. (2012. 8.)

오늘 밤에도 못쓴 글이 폭염에 스치운다.

‘글은 못쓰지 않아요.
당신이 못써요.’

관계대명사가 꾸며주는 명사 앞에는 the?

The에 관해 배울 때 ‘명사 뒤에서 관계대명사가 꾸며주면 the를 붙여야 한다’는 규칙을 배운 적이 있다. 그땐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는데 나중에 보니 엉터리 규칙이었다. 처음 나오는 명사 앞에는 반드시 a를 붙여야 한다는 규칙처럼 말이다.

명사에 정관사가 붙느냐 부정관사가 붙느냐와 관계대명사의 수식 여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다시 말해 관계대명사가 꾸며주는 명사라 하더라도 특정되지 않을(not specified) 수도 특정(specified)될 수도 있고, 전자의 경우에는 a+명사가, 후자의 경우에는 the+명사 형태를 써야 한다.

다음의 예를 살펴보자.

a. We are hiring a data scientist who specializes in data visualization.

b. The man who stole the wallet was his uncle.

위의 문장 중 a의 경우 “우리는 데이터 시각화를 전문으로 하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구인하고 있다.”의 의미고 b는 “지갑을 훔친 사람은 그의 삼촌이었다”라는 뜻이다.

두 문장의 의미를 살피면 a의 “data scientist”는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 비주얼라이제이션을 전문으로 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문장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특정되지 않는다. 고로 a를 붙이는 것이 적절하다.

이에 비해 b의 경우 “지갑을 훔친”이라는 관계사절은 특정인을 꾸미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바로 절도범 말이다. 따라서 ‘a’가 아니라 “the’를 붙이는 것이 적절하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관계대명사가 꾸민다 하더라도 수식을 받는 명사는 특정될 수도, 특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며, 이에 따라 관사의 선택은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관계대명사가 꾸며주는 명사는 정관사 the를 붙여야 한다”는 규칙은 맞지 않는다.

#관사공부중

영어 관사가 어려운 이유

관사체계가 발달하지 않은 한국어 화자에게 영어 관사가 어려운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허나 영어교육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죠. 관사는 개념적으로 상당히 복잡하여 이해가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잘 풀어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많지 않습니다. (적어도 제 경우에는 한 분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려우면 더 쉽게 정리해서 명확히 가르쳐 주셔야 하는데, ‘어차피 안되니까’, ‘차차 공부하다 보면 실력이 늘고, 실력이 올라가면 이해가 될테니까’라며 대충 얼버무리는 것이지요. 사실 이런 자세는 될대로 되라는 식에 가깝습니다. 요즘은 분명 좀 나아진 것 같지만 제 경험상 관사 교수법은 엉망이었습니다.

재미난 건 영어에서 가장 빈번히 나오는 품사 중 하나가 관사이고, 단일어로는 the가 빈도수 1위를 늘 차지한다는 점입니다. 관사의 바다 속에서 관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등잔 밑이 어두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죠. 학술논문 강의를 하면서 관사가 가장 어렵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관사공부중
#공부안하고알수있는건없다

근황

<삶을 위한 영어공부(가제)> 의 목차를 짜보고 있다. <인지언어학 이야기>는 내년 말까지 연재를 마치면 단행본 기획이 가능하다. <영어로 논문쓰기> 동영상 강의는 곧 최종 오픈한다. 다음 학기에는 가능하다면 특정 전공 교수님들과 협업을 도모하여 개별학문에 적용해 보고자 한다. 작업이 잘 진행된다면 이 또한 괜찮은 책이 될 수 있겠다. 연구자로서는 낙제점이지만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조금씩 결과를 낼 수 있음에 기쁘고 감사하다. 다음 프로젝트는 오랜 시간 방기한 나의 주전공 <사회문화이론과 영어교육>이 될 것이다. 예정은 언제나 예정일 뿐이지만 말이다.

덧. 영어 리터러시 연구자와 영어논문쓰기 강의를 함께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분이 계시다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연구방법으로서의 글쓰기

“연구방법으로서의 쓰기(writing as method)”라는 말이 있다. 있어 보이려는 수사적 표현일 수도 있지만, 글쓰기를 통해 생각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는 과정이 연구의 핵심 방법론을 이룬다는 실질적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문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만 줄창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많은 연구자들 또한 글쓰기를 주요 일과로 삼는다. 특히 인문사회과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글쓰기를 피해갈 도리가 없다. 나처럼 연구를 띄엄띄엄 하는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문제는 이런 ‘방법으로서의 글쓰기’를 배우는 시기가 너무 늦다는 데 있다. 나 또한 글쓰기를 싫어하지 않았지만 학술적인 글쓰기는 언제나 과제와 연결된, 그래서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해치우게 되는’ 일이었다. 석사과정 후반까지 학문적인 글쓰기를 숙제와 등치시키는 우를 범했다. 결국 학위논문을 작성하면서 방법으로서의 글쓰기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하찮은 쪽글이라도 꾸준히 써내고 있다. 이제 글쓰기는 과제가 아니라 가장 선호하는 사고방식, 혹은 연구 모드(mode)가 되었다.

적어도 함께하는 학생들은 내가 범한 우를 다시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구자에게 글쓰기는 과제가 아니라 생각의 방식이고 주요한 연구 방법론이다. 이거 참 전형적인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 식의 조언이지만, 공부를 업으로 할 사람이라면 깊이 생각해 볼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김기란 선생의 지적처럼 논문은 학문적 사고의 구조를 텍스트화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텍스트화’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학문적 사고의 구조를 익힐 방도는 도무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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