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작문 두 번째 시간 중계

 

1. 영작문 향상을 방해하는 몇 가지 요인이 있는데요. 오늘은 먼저 이 이야기를 해볼게요.

(1) 쓸 이야기가 없다: 이런 생각 많이 하실 거예요. ‘내가 영어로 써야 할 이야기가 뭐 있나. 한국어 글쓰기도 잘 안하는데.’ 사실 일상 생활에서 영어를 하나도 쓰지 않는 나라에서 이런 생각은 당연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진짜 쓸 거리가 없을까요?

세상에 쓸 거리 찾기 참 힘들어요. 그런데 말이죠. 세상 그 누구보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게 있어요. 세계적인 학자들보다, 교수들보다, 엄마나 형제 자매보다, 그 어떤 사람보다 여러분이 잘 아는 주제.

맞아요.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이 가장 잘 알거든요.

쓸 거리가 없는 분들은 먼저 자기 이야기를 써보세요. 생각, 상상, 의견, 불만, 슬픔, 행복, 사랑, 이별, 분노 등등. 그 어떤 것이어도 좋으니 쓰세요. 내용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 아무 걱정 마시고요. 여러분의 삶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제일 잘 안다는 거 잊지 마세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까요? 자신에 대해 쓸 때 어떤 걸 소재로 삼을 수 있을까요?

우선 가장 쉬운 건 과거예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죠. 기억에 남는 경험을 모아 보세요.

그 다음으로는 일상이예요. 오늘 하루, 요즘의 일과, 학교 생활 등등. 그런 것들 속에서 느끼는 바를 소재로 삼는 거죠.

또 하나는 열정, 욕망, 바람, 분노, 슬픔 등과 같은 감정이예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글을 써보도록 노력하는 건데, 많은 연구들은 이런 글쓰기가 정서적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구요.

관계에 대해 써보는 것도 좋아요. 나를 둘러싼 사람들, 나를 둘러싼 환경 혹은 사건들. 나를 기쁘거나 슬프게 하는 요소들 등등.

픽션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보시는 것도 좋겠어요. ‘내가 드라마를 쓴다면 이런 사람을 주인공을 할 것이다’와 같은 소재도 좋아요.

(2) 정확하게, 완벽하게 써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말할까요? 세상에 자기 글에 진짜로 만족하는 사람은 없어요. 어느 정도의 만족이 있겠지만, 완벽한 글은 없다는 거죠.

그러니까 영어 문장을 쓸 때 정확성(accuracy)이나 완벽함을 목표로 두지 마세요. 스케이트 처음 타면서 김연아 비슷하게 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나, 피아노 처음 치면서 라흐마니노프를 술술 연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그게 이상한 거죠. 그런 사람은 스케이트나 피아노 배우면 안됩니다. 성격만 버리거든요.

그럼 우리가 ‘네이티브’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글을 잘 쓸까요? 사실 그것도 사람마다 달라요. 방금 이야기했듯 글은 누구에게나 힘든 작업이거든요. 글이 힘든 건 네이티브에게도 마찬가지라는 말이죠.

이 점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 보죠. 네이티브니까 우리보다 좀더 쉽게 쓰는 건 분명해요. 영어로 쓸 때 말이죠.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여러분들 모두 모국어가 한국어라고 했죠?

대부분 한국에서 살아왔으니 20년 간 한국어 듣고 말하고 읽고 쓴 양을 생각해 보세요. 쓴 건 없다고요? 과제도 별로 없다고요? 그럼 매일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에 치는 텍스트만 생각해 봐요. 얼마나 될까요? 어림 셈만으로도 여러분들의 한국어 사용량과 한국어를 교실에서 외국어로 배운 사람들의 한국어 사용량은 비교가 안되지요.

이 점은 분명해요. 우리가 영어 몇 년 공부한 것 가지고 수십년 간 영어를 모국어로 쓴 사람들보다 영어를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죠.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우리도 특정한 영역에서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을 가능성은 있다는 거예요. 해당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쌓으면 되는 거죠. 그러다 보면 가치있는 글이 나올 수 있어요. 시간이 필요하지만요.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완벽함’이라는 가치가 환상이라는 거예요. 처음부터 완벽한 글은 존재하지 않아요. 정도의 차이일 뿐 모든 글은 미완성이죠. 그러니까 완벽하게 쓰겠다는 꿈은 접으세요. 아무도 못하는 거니까.

대신에 꾸준히 쓰세요. 그러다 보면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조금씩은 하게 되거든요. 완벽하지 않아도 좋은 글을 쓰게 됩니다. 신문 잡지에 실리는 글만이 좋은 글은 아니예요.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이 좋은 글이고, 누군가에게 정보를, 마음을 전달하는 글이 좋은 글이예요.

기억하세요. 정확성은 좋은 글을 이루는 요건 중에서 아주 작은 일부분이예요. 오늘 발표한 6단어 비망록, 참 좋았어요. :)

(3) 글을 많이 읽다 보면 쓰기는 따라온다.

이번에 영작문을 늘리기 위한 전략을 쓰는 과제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게 ‘좋은 글을 많이 읽는다’였어요. 영어로 좋은 글을 많이 읽어서 쓰기 실력을 향상시키겠다는 거, 좋은 아이디어예요. 그런데 저는 이 아이디어에 반만 동의해요. 왜 그런지 설명해 볼게요.

지식과 간접경험을 넓히기 위해 책을 많이 읽는 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죠. 세상 수많은 일들을 직접 경험해 볼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책을 많이 읽는다고 쓰기가 바로 향상될까요?

여기에서 중요한 개념 하나를 소개해 볼게요. 어떤 언어이든 읽거나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쓰거나 산출할 수 있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어요.

한국어 예를 들어 볼게요. 여러분 뉴스 보시죠? (네~) 뉴스 보면 특별히 어려운 경제 용어나 과학 용어가 나오지 않는 이상 다 이해하시죠? (네~) 그런데 그걸 다 이해한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뉴스 스크립트를 쓸 수 있나요? 제 말은 잘 쓸 수 있냐는 거죠.

사실 아주 단순한 일기예보 스크립트를 쓰려고 해도 쉽지 않을 거예요.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모국어의 경우에도 읽기와 쓰기 사이의 간극이 명확히 존재한다는 겁니다.

근데요. 여기에서 슬픈 소식이 하나 있어요. 그건 뭐냐면… 제2 언어, 즉 외국어의 경우에는 이 간극이 아주 커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영어로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방송 스크립트를 영어로 작성하는 건 모국어인 한국어의 경우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거죠.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영어 독서를 많이 한다고 해서 영어 글쓰기가 팍팍 느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영어 글쓰기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영어 글쓰기를 위한 독서를 해야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조금씩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거예요. 앞으로 몇 가지 전략을 소개해 드릴게요.

(4) 단어를 잘 몰라서 못쓰겠다: 사실 저도 단어를 좀더 많이 알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 경험상 ‘단어가 부족해서’라는 말은 반만 맞는 거더라고요.

단어를 계속해서 열심히 공부하시는 건 좋은데, 단어를 많이 안다고 해서 그게 다 글이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단어도 수용어휘와 산출어휘가 있어요. 여러분들이 어떤 단어를 보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그걸 글에 바로 쓸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단어를 계속 외우더라도 산출어휘를 생각하면서 외우셔야 글에 반영될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탤 게 있어요. 쓰기에 있어서 ‘어휘를 아는 것’이 개별 단어에 대한 지식에 그쳐선 안됩니다. 언어학에서 흔히 말하는 collocation 즉 연어를 알아야 하는 거죠. 이에 대해서는 전에 짧게 써 놓은 글로 대신하도록 할게요.

[유용한 영어학습사전 OZDIC] 이전에도 잠깐 소개했던 적이 있었던 Collocation (연어) 사전을 소개합니다. ozdic.com 인데요. Oxford 에서 만든 연어 사전입니다. 정의와 예문, 그리고 용례가 중심이 되는 사전과는 다른 구조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scream (명사)를 찾으면 이런 식으로 답이 나옵니다.

scream noun

ADJ. high-pitched, loud, piercing, shrill | muffled, stifled | blood-curdling, hysterical, terrible, terrified

VERB + SCREAM give, let out | hear

SCREAM + VERB echo, ring out His screams echoed through the empty house.

PREP. with a ~ She reacted to the news with hysterical screams. | ~ for a scream for help | ~ of screams of laughter/terror

이미 알고 있는 단어라도 문장 안에서 쓸 수 있어야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죠.

예를 들어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학습자가 “균형”이라는 단어를 배웠다고 해서 바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균형을 “잡다”, 균형을 “깨다”와 같이 같이 쓰이는 동사를 익혀야 하고, “적절한” 균형, “완벽한” 균형 등과 같이 같이 쓰이는 형용사를 알면 더욱 좋겠죠. 이런 단어 없이 균형이라는 단어를 단독으로 쓰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영어를 예로 들어 볼까요? 영어에서 ‘균형’에 해당하는 명사는 balance.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있겠지만 일상생화에서 이 단어를 단독으로 사용할 수는 없겠죠? 그렇기 때문에 ‘balance’ 앞에 동사가 와야 해요. 그럼 ‘균형을 잡다’라는 의미로 가장 많이 쓰이는 동사는 뭘까요?

이게 조금 어려운데 strike를 가장 많이 씁니다. strike a balance 이렇게요. 유지한다고 하면 maintain 같은 동사를 쓸 수 있을 거구요. 그런데 ‘balance’ 앞에 ‘어떤 균형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형용사가 올 수 있어요. 예를 들면 ‘a perfect balance’ 이렇게요. 그런데 균형을 잡는다는 건 여러 가지 요소를 동시에 고려하는 것을 의미하죠. 그래서 뒤에는 ‘balance between A and B’ 이렇게 오는 경우가 참 많죠. 그래서 저는 이런 비현실적인 문장을 만들어 봤어요.

He managed to maintain a great balance between work and life.(그는 직장과 삶의 최적의 균형을 그럭 저럭 잡았다.)

이걸 아까 말한 콜로케이션의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 되는 거죠.

balance
a great balance
maintain a great balance
maintain a great balance between work and life
manage to maintain a great balance between work and life.
He managed to maintain a great balance between work and life.

물론 이것이 우리 머리 속 문장 생성 과정을 나타내진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표현을 익힐 때 이런 접근을 염두에 둘 수 있다는 거죠.

어느 정도 단어 실력이 되시는 분은 OZDIC같은 연어 사전을 자주 사용하시면서 공부하시길 권해드립니다. 단어의 뜻을 아는 것은 단어 학습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시고요.

http://www.ozdic.com/
(5) 쓰기를 위한 간단 팁: 단어를 바꿔보자!

긴 글을 쓰려고 하지 마시고요. 짧은 글부터 써보시면 좋겠어요. 가장 손쉬운 전략 몇 개를 알려드릴게요.

– 단어 나열하기
일정한 소재를 던지고 단어를 나열해 보는 거예요. 대충 이런 식이죠.

* 나를 정의할 수 있는 형용사 세 가지.
* 내가 사랑하는 단어 세 가지.
* 나와 내 친구 OO의 공통점 세 가지.

그리고 여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유를 대보는 겁니다.

* 내가 왜 이 세 단어로 설명되냐고요? 그건 말이죠~
* 내가 왜 이 세 단어를 사랑하게 되었냐고요? 그건 말이죠~
* 구체적으로 어떤 걸 보면 친구와 내가 이렇게 닮았냐고요? 예를 들어 설명해 볼게요. 블라블라~

– 단어 바꾸어 보기
만나는 어구, 문장, 속담, 노래 가사 등에서 단어를 바꾸어 보는 거예요. 자신만의 의미를 넣어서 말이죠. 예를 들어 볼까요?

단어 바꾸어 보기

the good old days
the bad old days

옛날 좋은 날들만 있는 건 아니잖아.
나쁜 날도 있었찌.

the best is yet to come
the worst is yet to come

젤 좋은 일은 아직 오지 않았어.
최악도 아직 오질 않았지.

native speakers
native listeners

세상에는 네이티브 ‘스피커’만 너무 많은 것 같아.
네이티브 ‘리스너’도 많아졌으면 좋겠어.

mother tongue
grandmother tongue

모국어가 있으면
‘조모국어’는 없나?
어머니의 말도 잘 못하지만
할머니의 말은 어떤지 짐작도 안되네.

money talks
money devours
money dumbs
money silences

돈이 말한다고?
돈은 다 삼키기도 하고
사람들을 멍청하게도 하고
침묵하게도 만들지.

Change the world!
Keep the world!

세상을 바꾸자고?
음 유지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

Lead, not follow!
Follow, not try to lead!

사람들은 ‘따르지 말고 이끌라!’고 하는데
반대로 너무 이끌려고 하기 보다는 따르는 것도 필요한 거 같아.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tired boy.
일만 하고 안놀면 잭이 재미없는 아이가 된다고 하는데
일만 하고 안노는 것의 더 큰 문제는 피곤하다는 거.

All play and no work makes Jack a fun boy.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poor boy.

반대로 놀기만 하고 일을 안하면 재미난 애가 될 수도 있어.
물론 일 안하고 놀기만 하면 가난해질 수도 있겠지?

This too shall pass.
This too shall pass, but that shall stick persistently.

이 또한 지나갈 거야.
이 또한 지나갈 건데, 저건 계속 들러붙겠지?

===

자 오늘은 이정도로 하구요.
다음 시간 과제는 두 가지인데요.

(1) 6단어 비망록을 설명하는 단락 쓰기 – 제목은 6단어 비망록으로 하시고요. 이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는 단락을 써오시면 됩니다.

(2) 자기가 써보고 싶은 주제 아무거나 골라서 써보기 – 첫 쓰기 과제이니만큼 원하는 주제에 대해서 마음껏 써보세요. 교재에 나와 있는 거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들이 쓰고 싶은 것을 쓰시면 됩니다.

이상입니다.
다음 주에 뵈어요. :)

#영어로글쓰기

영어 글쓰기 습관형성

Posted by on Sep 6, 2018 in 강의노트, 영어로 글쓰기, 집필 | No Comments

몇해 전 영작문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작문 실력 향상을 위해 해보겠다고 한 일들이다.

1. 많이 읽는다
2. 생각을 영어로 한다.
3. 많이 쓴다.
4. 영단어 공부를 많이 한다.
5. 영문법을 다시 공부한다.
6. 영화를 많이 본다. (영어 자막 시청 > 자막 제거 후 시청)
7. 수업을 열심히 듣는다. (예습, 복습, 과제 등)
8. 출석을 열심히 한다. (응?)
9. 말하기 연습을 열심히 한다.
10. 영어 동화를 읽고 따라 읽기를 한다.
11. 좋아하는 작가의 영소설을 독파한다.
12. 자신이 쓴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다. (피드백 받기)
13. 수업을 즐긴다.
14. 영어로 일기를 쓴다.
15. 사전을 가지고 자꾸 찾아본다.
16. 한 문단 당 500단어 이상씩 쓰도록 하겠다.
17.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갈 때 영어 기사를 두 개씩 찾아본다.
18. 인터넷 상의 번역 프로젝트에 참여해 본다.
19. 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있는데 열심히 해봐야겠다.
20. 팝송을 많이 듣는다.
21. 영어로 된 시나 산문을 읽어보며 다양한 수사법을 익힌다.
22. 구어체와 문어체를 구별한다.
23.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 본다.
24. 한국어로 된 책을 읽고, 영어로 써보고 싶은 표현을 찾아 영어 쓰기에 활용해 본다.

영어 쓰기에 대한 감정 중 단연 많이 언급된 것: 두려움.

영어 쓰기를 할 일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할 때 따라 나오는 말: 실생활에 쓸 일이 없다 & 입시 위주의 공부였다.

===

학생들의 계획을 읽다 보니 영어 쓰기를 위한 전략이 대부분 영어공부의 다른 영역들(읽기, 문법, 어휘 등)과 연결되어 있거나, ‘많이 써본다’로 귀결되는 것 같다. 즉 학습전략이 언어적인 요소에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에 비해 영어를 써야만 하는 활동이나 글쓰기 모임과 같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쓰기의 발달에서 언어 공부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글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내 글에 반응해 줄 사람이 없을 때 글쓰기의 동력은 급속히 떨어진다.

쓰기 공부에 있어 ‘혼자’ ‘열심히’ ‘많이 써본다’가 갖는 약점은 확연하다. 이제껏 하려 했던 일들을 다시 해보겠다는 다짐이기 때문이다. 십수 년 못했던 일들을 ‘이번에야말로’ 해내겠다는 결심이 씁쓸한 후회를 만나는 일은 너무나 많이 겪지 않았던가?

나는 이런 분들께 쓰기 공부는 다음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드린다.

1. 읽기와의 유기적 연계
2. 쓰기를 둘러싼 생활습관 배양
3. 적절한 사회적 관계 수립
4. 쓰리라는 다짐이나 쓰기를 위한 준비보다는 쓰기 자체에 집중
5. 쓰기 시작을 위한 몇 가지 루틴 형성

===

문제는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들조차 쓰 이유가 딱히 없다는 것이다. 학점 이외의 동기가 없는 상황에서 영어 글쓰기를 계속 해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욕심내지 않고 한 학기라도 집중적으로 써보는 경험을 선사하려 한다. (누군가에겐 과하다 느껴질지 모르지만)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그것으로 족하다.

#영어로글쓰기

대학(원)생의 글쓰기가 힘든 이유

 

대학원에서의 글쓰기가 힘든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층위에 존재한다. 먼저, 학술 공동체가 원하는 글쓰기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논문을 읽긴 읽되 내용을 훑을 뿐, 언어/수사적 구조체로서, 나아가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논문 장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지도교수 및 각 과목 담당 교수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것은 학술공동체가 원하는 글쓰기와는 다른 층위에서 대학원생들에게 부담과 고통을 안겨준다. 교수들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한 추측게임(guessing game)이 심심찮게 목격되는 걸 보면 이 문제도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적지 않은 대학(원)생들이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내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안개에 쌓인’ 학계의 관습이나 교수의 애매한 기대와는 다른, 글쓰기 과정 자체에 대한 메타인지 능력의 부족에 그 원인이 있다.

이 세 가지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그 해법은 조금씩 다르다. 첫 번째는 논문을 검색하고 읽고 분석하는 방식을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두 번째는 담당교수와의 적극적 소통과 토론을 통해서, 세 번째는 자주 쓰고, 괴로워도 반복해서 읽고, 되도록 자주 편안한 이들에게 크리틱을 받음으로써 조금씩 개선시켜 나갈 수 있다.

현재 대학원 학술 리터러시 교육의 문제는 이 세 가지 중 그 어떤 것도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니, 가르치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해야 좀더 정확한 설명일 수 있겠다.

#영어로글쓰기

To forgive is human as well

Human language is full of ambiguity. Is it inherently bad? I don’t think so. Leaving room for further interpretation entails embracing the possibility of misinterpretation and opening up a horizon for further negotiation. This vulnerability to being misunderstood and openness for collaborative meaning-making makes us human, unlike computers and networks pursuing the precise reading of each and every line of a code. (Of course this does not mean that you need to leave room for misunderstanding on purpose.)

In this sense, we language educators need to strike a balance between the emphasis on effective communication and the tolerance for misunderstanding and extended communicative moves. Communicators are not deliverers, packaging information and sending it off; rather, they are interactants and interpreters, who make mistakes, negotiate, settle, and sometimes ‘ignore together.’

Thus placing excessive stress on accuracy alone is symptomatic of a futile desire to escape from this fundamental fact in communication: To err is human; to ‘forgive’ human too.

#영어로글쓰기

Metaphors for writing L1 vs L2

Writing in mother tongue vs. writing in a foreign language

At least for me, writing in my mother tongue is like painting with a brush and a palette containing a large number of colors. The brush is a multi-purposed, versatile one, adapting seamlessly to different situations and audiences. I can also mix colors in various proportions, which instantly creates a much more diverse array of colors.

On the other hand, writing in another language is like playing with a small number of Lego blocks, with a highly limited choice of colors. I can build things, this way or that, only to find that it leaves much to be desired. I can neither create a new block nor new colors at the moment. The job requires me to spend a substantial amount of time and energy.

What would be your metaphors for writing in mother tongue vs writing in a foreign language?

 

#영어로글쓰기

Reading-writing connection: Two principles

Posted by on Aug 25, 2018 in 강의노트, 단상,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Two principles for connecting reading and writing in an organic manner 읽기와 쓰기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두 가지 원칙

(1) Write on to read through the intention
계속 쓰십시오. 의도를 관통하여 읽어내기 위하여.
(2) Read on to write across the lines
계속 읽으십시오. 경계를 넘는 글쓰기를 위하여.

#영어로글쓰기

Can writing be taught?

A banal question: Can writing be taught?

This seems to be a question about the nature of writing, asking us to formulate an answer in a “writing is such and such and thus can (or cannot) be taught” manner. However, it is also closely related to how we define teaching. It is obvious that each of these concepts is so complex. So addressing the question requires one to define the two concepts involved: writing and teaching. But again, answering the question is so daunting due to the fact that defining these terms involves two huge disciplines: composition and education.

So, to my joy as well as agony, the answer always comes down to local situations. In other words, I can answer the question only here and now, looking my students in their eyes, exploring their sociocultural backgrounds, and collaborating with them moment by moment, with a specific pedagogical goal in mind. What is amazing is that the will to teaching, and learning to teach, plays a crucial role in answering this seemingly pure intellectual question. Here comes the artistic, performative dimension of teaching. The answer lies in authentic performances in situ rather than in theoretical conceptualizations a priori.

#영어로글쓰기

What education is about

Posted by on Aug 20, 2018 in 단상,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Education is not about the power to conquer the world, but about the will to surrender to justice, peace, and love. And we all know which of the two we are inculcating in school. In fact the entire socioeconomic system engineers the environment in which the conquerors can despise the weak legitimately and even ‘gracefully.’ This deeply hurts, and the resultant sufferings erode the body and psyche of the despised. It is truly tragic that these systematized trauma prevails.

티-글 모아 태산

저자로서의 목소리(authorial voice)는 거대한 관점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라 초성과 단어의 선택에서, 어미의 변주에서, 격식의 조절에서, 어구의 호흡에서, 반복의 간격에서, 문장과 문단의 길이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함의되고 생략된 요소에서 드러난다. 리터러시는 하향식(top-down)과 상향식(bottom-up) 정보처리의 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글쓰기의 과정은 언제나 소리 하나, 단어 하나를 선택하는 행위의 연쇄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글짓기는 언제나 단어-짓기(word-building)이며, 단어-짓기 없는 세계-짓기(world-building)는 존재할 수 없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글쓰기 훈련에서 배운 것

돌아보면 힘들었던 건 타지생활이 아니었다. 먹을 게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나날이었고, 밤낮도 주말도 없는 직장생활의 여유없음을 핑계로 방치했던 동네라는 공간을 다시 발견한 시기였고, 자주 홀로 걸으며 길과 하늘을 사진으로, 마음으로 담을 수 있었던 벅찬 시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사과정 내내 무의식과 의식을 넘나들며 나를 괴롭혔던 건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었다. 제2언어 리터러시에 대한 공부를 하고 쓰기에 대한 강의를 하고 학술논문 쓰기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면서도 자신의 글쓰기에 늘 신경이 쓰였다. 내가 가진 생각을 좀더 깊은 울림으로, 명확하고 생생하게, 아름답도록 아리게 전달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지만 여전히 영어는 “그들의 언어”로 남아 있(었)다.

논문을 쓰면서 배운 건 심오한 지식의 세계라기 보다는 글쓰는 사람으로 살아내야 할 일상, 글쓰는 과정을 통해 생각을 가다듬는 방법, 생각을 머금은 긴 산책으로 글길을 내는 일이었다.

조금 늦었지만 가파른 이론의 산을 오르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있어보이는 암벽을 고르는 게 아니라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일임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쉽게 이야기하는 “사고와 글쓰기의 통합”을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쓰는 건 사는 것과 분리할 수 없다는 ‘구태의연한’ 표현에 담긴 뜻을,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을, 하루 하루 조금씩 엮어갈 수밖에 없다는 조언의 참뜻을 이제야  알 거 같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쓰기라는 베틀을 통해 생각의 씨줄과 날줄을 엮는 방법을 구체화시킬 수 있었고, 엉킬 대로 엉킨 생각의 타래를 글줄로 뽑아내는 희열을 사모하게 되었다. 잘 다듬어진 글결이 보여주는 생각의 나이테에 감탄하게 되었고, 생각의 여정에서 남겨진 쪽글의 순진함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을 함께 써가는 사람들을 만나 아픔을 나눌 수 있었다. 글쓰기와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지만 계속 “차이는” 사람들, 그 쓰라림에 의연하지 못한 이들. 그래서 쓰기와 애증의 관계에 놓일 수 밖에 없는 나같은, 가련한, 아름다운, 별것 없지만 또 대단한 사람들을 만나 기쁘고 또 슬펐던 나날이었다. (2012. 8.)

오늘 밤에도 못쓴 글이 폭염에 스치운다.

‘글은 못쓰지 않아요.
당신이 못써요.’

Lo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