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치사로 끝나는 문장 금지 혹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문장을 전치사로 끝내지 말라”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 영문법 규칙이죠. 사실 전치사로 끝나는 문장은 흔하게 발견됩니다. “I need a pen to write with.”와 같은 예문은 부정사 파트에 단골로 등장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처방문법 (prescriptive grammar) 하에서 이 규칙은 상당 기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영문법을 처음 배웠던 시절에도 간간히 접할 수 있었구요. 검색해 보니 무려 2011년에 옥스포드 사전 공식 블로그에도 관련 질문이 올라왔더군요.

Can you end a sentence with a preposition?

왜 그랬을까요?

여기에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라틴어는 유럽 식자층의 필수 외국어였죠. 이 영향으로 17세기 이후 많은 학자들은 영문법을 라틴어 문법의 기초 위에서 기술하려 노력합니다. 현재 많은 문법서가 채택하고 있는 8품사 체계도 라틴어 문법의 영향 하에 만들어졌죠.

그런데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던 라틴어의 경우 전치사 뒤에 따라나오는 말이 반드시 있습니다. 말 그대로 무언가의 앞에(pre-) 위치하는(position) 말이었던 겁니다.

이에 따르면 “Where are you at?”나 “I need a pencil to write with.”와 같은 말은 바람직한 규칙을 깨뜨립니다. ‘at’과 ‘with’의 품사는 전치사(preposition)인데, 이 뒤에 나오는 말이 없으니 전치사의 정의가 파괴된다는 거죠. ‘뒤에 따라나오는 말이 없는 전치사’는 모순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고 보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도 같이 이상화된 규범을 먼저 상정하고 여기에 현실을 끼워 맞추려는 문법 규칙은 도처에 있습니다.

갑자기 “사랑은 그 어떤 이념 떄문에 현실을 경멸하지 않는다.” 라는 본회퍼의 말이 떠오릅니다. 언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묘하게 연결되는 지점이 있네요. :)

영어교육의 학문적 정체성에 대한 쪽글 두 개

무식하면 용감하다. 12년 전 직장생활 중 석사과정을 돌아보며 쓴 아래 두 쪽글에도 그런 무모함이 배어나온다. 삐뚤빼뚤 어줍잖은 논리를 겨우 겨우 엮은 글. 하지만 여전히 쓰린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영어교육은 인간의 노력으로 재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계의 힘으로 해체당할 운명을 맞을 지도 모른다. 이제 ‘세대’와 같은 커다란 말 보다는 옹기종기 모여 함께 일할 수 있는 작은 손들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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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육학 4세대를 말한다.

더미 Inchull Jang 의 논의에 대한 답글

영어교육과에서 새로운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의제들이 가이아를 비롯한 이런 저런 사람들에 의해서 논의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억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1. 현장중심 리서치 – action research라고 불리는 연구방법론을 넘어서 교사집단과 연구자집단의 관계설정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 교육 전반에 있어서 현장과 학계가 유리되어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 모색. 현장과 이론의 분리를 해소하기.

2. 사회과학적/인문학적 연구방법론 – 교육학, 심리학, 언어학의 세례를 받은 영어교육을 좀더 거시적인 방법에서 보려는 시도.

3. 영어교육학의 사회적 책무 – 연구와 집필 활동이 한국 영어교육에 실질적으로 어떻게 반영될 수 있는가의 문제. 결국 사회적 효용성의 문제들. 이와 관련해서는 영어교육 전문가들이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고 포지셔닝하는가의 문제가 대두됨.

4. 서구 중심의 이론 경향 극복 – 한국에서, 한국인을 데이터로 한, 한국적 상황에 맞는 연구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서구중심의 언어교육 이론을 어떻게 탈피할 것인가. 질적 연구방법론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있는 부분.

5. 대중적 담론 공간 형성: 학계와 현장, 학부모들, 사교육계로 나누어져 있는 영어교육 담론 체계를 어떻게 통합해 나갈 것인가. 충돌과 화해의 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런 것들이 주요한 고민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육 분야에서 이런 논의들은 이루어져 왔지만 영어교육 분야에서 고유한 역학관계와 학문적 특성을 고려한 시도는 부족한 듯하다.

앞으로 더미와 함께 좀더 논의해 봐야 할 주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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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육학 4세대를 말한다 (2)

더미의 글에 따르면 짧디 짧은 한국 영어교육은 다음 세 세대로 구분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나 이러한 흐름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1. 언어학적 기반에서 한국 영어교육의 기초를 정초한 1세대,
2. CLT의 세례를 받아 언어학과 심리학적인 기반 위에서 영어교육 만의 독자적인 흐름을 만들고자했던 2세대.
3. 다양한 영어교육의 성과를 이어받아 보다 세분화되고 비판적인 연구를 하는 3세대.

영어교육 4세대에 대한 논의는 암묵적으로 진행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필자와 같이 아직 ‘쥐뿔도 모르는’ 사람이 이런 ‘거창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우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무식한 사람이 가끔 사회에 도움이 되는 법도 있지 않은가? ㅋㅋ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꾸준히 4세대 영어교육의 방향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 볼까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전글의 논의와 함께 4세대 영어교육의 특징을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해 보려고 한다.

하나. 데이터 중심 영어교육

영어교육에서의 논의와 연구들은 ‘서양적 틀’을 가지고 ‘한국적 상황’에 대입해 보는 쪽에 무게를 두어왔다. 예를 들어 CLT라는 트렌드가 생겼을 때 “CLT 모델에 대한 연구”라든지 “CLT에 대한 교사들의 태도”라든지 하는 식의 연구다. 다시 말해, 서양에서 제시된 프레임웤을 한국적 상황에 맞춰보고자 하는 시도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젠 우리 한국의 학습자들이 과연 영어교육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영어를 왜 배워야 한다고 느끼고 있는지, 실제 영어교육 시장의 트렌드는 어떤지, 각 출판사와 학원, 교사들이 영어교육에 대해 어떤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언어의 4기능별로 어떤 학습법이 통용되고 있는지, 영어학습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들의 시장전략은 무엇인지, 영어교육은 어떤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고 있고 각각의 미디어는 어떤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지, 한국에서 영어교재를 개발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영어교육 전문가 직업군 별로 어떤 관점에서 영어교육을 바라보고 있는지, 영어교육에 있어서 유의미한 데이터들은 어떻게 생성, 분배, 소비되고 있는지, 영어교육에 대한 비판적 담론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또 어떻게 형성되는 것이 바람직한지, 토익과 토플 중심의 평가가 한국 영어교육을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영어마을과 어학연수는 정말 효과가 있는 건지, 한국의 ESL 담론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영어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당사자들간에 정보의 갭은 없는지, 영어 교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학원과 학교, 공교육과 사교육의 양태는 어떠한지…

이 모든 것을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겸허한 관찰을 통해서 ‘이론 중심’이 아니라 ‘데이터 중심’의 영어교육으로 진화해야 할 것이다.

둘. 삶을 가로지르는 영어교육

(삶을 가로지르는 영어교육은 더미의 용어를 그대로 차용한 것임을 밝혀둔다.)

삶을 가로지르는 영어교육이 가지는 문제의식은 기존의 영어교육의 학문적 성격이 언어학, 교육학, 심리학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면 이제는 사회과학적, 인문학적 방법론과 성과를 충분히 반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다름 아니다. 언어철학, 비판이론, 미디어 연구, 영어교육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영화학, 커뮤니케이션 이론, 교육공학 등의 성과들이 언어교육과 밀접한 관련을 가져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선언적 의미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영어가 특권계층의 전유물로 인식되었을 때와 모두의 관심이 되었을 때, 영어가 텍스트 중심으로 ‘전달’되었을 때와 멀티미디어 중심으로 ‘학습’될 때, 오프라인에서의 언어교육이 대세였을 때와 웹을 통한 IT적 전달방식을 취하였을 때… 이 모든 변화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서는 연관 학문과의 소통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밖에 없다.

이들 논의는 ‘영어교육학자의 정체성’ 문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기존의 영어교육학자들이 가진 정체성이 ‘심리학자’, ‘교육학자’, ‘(응용)언어학자’등으로 대변된다면 이제는 좀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정체성을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오늘 아침 생각나는 영어교육학 4세대에 대한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늘어놓아 보았다.

(2005년 어느 날)

Typobusters

A spectre is haunting the world of manuscripts and even some published articles — the Spectre of Typos. All the powers of sleepless academics have entered into a holy alliance to exorcise this spectre: Authors, editors, proofreaders, and editing staff. To no avail, however, typos are forever coming back, haunting their dreams and summoning an army of track changes, sore regrets, and self-pities. A sense of awe/oh emerges before this undeniable existence of uncontrollable entities.

Two things result from this fact:

I. The spector is already acknowledged by all academics to be itself an immortal power.

II. It is high time that Google DeepMind or whatever AI pioneers should, before the wretched faces of the whole anxious authors, publish the plans, aspirations, and eagerness to help relieve their pain, and meet this misery tale of the Spectre of Typos with a manifesto that the AI giant will develop “TypoBusters” as soon as possible.

Let them in!

Posted by on Jan 29, 2017 in 단상, 영어, 일상 | No Comments

“Let them in! Let them in! Let them in! Let them in!”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아마도 ‘지 일도 아니면서 왜 저렇게 난리냐 XX”같은 소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 일도 아니면서’가 공항을 짓고, 인터넷을 깔고, 교육제도를 발전시키고, 미국 사회를 건설하고, 인류 문명을 세워 왔다는 것을 영영 모를 것이다. ‘지 일 아닌 일들’이 ‘지 일’을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 말이다.

시민이면서 배우 메릴 스트립, 생애 최고의 수상 소감을 말하다

Posted by on Jan 9, 2017 in 링크, 영어, 일상 | No Comments

얼마 전 JTBC 기자의 정유라 신고와 관련하여 뜨거운 논쟁이 있었고, 양편의 논리 모두에서 배울 것이 있었다. 한편 그 와중에 널리 회자된 문구는 ‘기자이기 이전에 시민’이였는데, 내겐 조금 껄끄러웠다. ‘기자’와 ‘시민’을 연결하는 ‘이전에’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내 생각에 ‘기자이기 ‘이전에’ 시민’ 같은 건 없다. 기자이면서 시민이고 시민이면서 기자일 뿐이다. 그 둘 사이에 전후 혹은 중요성을 나타내는 ‘이전에’라는 말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는 말이다.

메릴 스트립은 방금 전 있었던 2017년도 골든 글로브 평생 공로상 수상 소감에서 동료 배우들의 출생지와 성장 배경을 열거하며 “헐리우드는 외지인과 외국인으로 가득 찬 곳”이라 못박고, 장애인 기자를 모욕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나아가 언론에게는 원칙에 입각하여 대통령이 책임지는 정치를 할 수 있도록 견제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메릴 스트립은 ‘배우이기 이전에 시민’으로 말한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시민이면서 배우로, 그리고 한 인간으로 말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적어도 내겐 소감의 끝, Carrie Fisher가 그녀에게 해주었다는 말이 꼭 배우나 예술가에게 국한된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부서진 마음을 가지고 예술로 승화시켜라(Take your broken heart, make it into art).”

Meryl Streep Defends Hollywood, Foreigners, and the Press in Blistering Anti-Trump Speech

세상에서 가장 슬픈 BE동사

위키피디아 인물 페이지의 첫 문장은 사람이름 + BE 동사로 시작한다. 예를 들면 “Matthew Paige “Matt” Damon (/ˈdeɪmən/; born October 8, 1970) is an American actor, film producer and screenwriter.” 같은 식이다. 맷 데이먼은 아직 생존해 있기에 be동사의 시제가 현재(is)다.

하지만 고인이 된 경우 시제가 달라진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George Michael의 페이지는 “Georgios Kyriacos Panayiotou (25 June 1963 – 25 December 2016), known professionally as George Michael, was an English singer, songwriter, and record producer who rose to fame as a member of the music duo Wham!”로, John Berger는 “John Peter Berger (5 November 1926 – 2 January 2017) was an English art critic, novelist, painter and poet.”로 소개된다.

위키피디아 인물 페이지의 과거형 WAS.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BE 동사가 아닐까.

하지만 우리들의 맘 속에서 그들은 언제까지나 현재형이다. “George Michael IS an English singer, songwriter, and record producer.”이고, “John Peter Berger IS an English art critic, novelist, painter and poet.”인 것이다.

존재’했던’ 것들은 언제까지나 존재’한다’.
죽음과 삶은 그렇게 엮여 있다.

 

덧댐: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것은 기억. 기억과 기억을 연결해 주는 것은 만남. 죽음과 죽음을 연결해 주는 것은 기록. 삶과 삶을 연결해 주는 것은 죽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연결하는 것은 지금, 여기, 우리.

읽기와 안구운동: 흥미로운 사실 몇 가지

Posted by on Jan 2, 2017 in 강의노트, 과학, 영어, 인지언어학 | No Comments

읽기와 안구운동에 대해 공부하면서 흥미로웠던 사실 몇 가지 (알파벳 기반 텍스트 기준)

1. 인간의 눈은 미끄러지듯 철자 하나 하나를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점프와 착지를 반복하면서 텍스트를 읽어낸다. 여기에서 ‘점프’는 불어의 대응어인 ‘saccade’로, ‘착지’는 영단어 ‘fixation’으로 부른다.

2. 눈이 점프를 하는 동안은 텍스트의 정보를 받아들일 수 없다. 다시 말해, 착지하여 머무르는 짧은 정지의 시간 동안만 텍스트로부터 정보를 가져올 수 있다.

3. 그런데 이런 ‘착지’시에도 왼쪽 눈과 오른 쪽 눈이 같은 철자를 바라보지 않을 때가 있고, 심지어 왼쪽 눈이 오른 쪽 눈보다 텍스트의 오른 쪽 철자를 바라보고 있을 때도 있다.

4. 평균적으로 점프 열 번 중 네다섯 번은 왼쪽과 오른쪽 눈의 타겟이 되는 철자가 다르다. 하지만 이 ‘어긋남’이 텍스트 이해에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

5. 눈이 착지할 시점을 정확히 잡는 것 같지만 점프의 10-15 퍼센트는 정확히 원하는 지점에 가 닿지 못한다. 눈이 우에서 좌로 ‘빽’을 하는 경우는 단순히 잘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눈의 계산 미숙에 의한 것이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독서시 안구운동은 ‘디폴트로’ 다양한 오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오류가 독서를 불가능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영어 관사 – 사소한 것 몇 가지 3

최상급에는 왜 늘 “the”가 붙을까?

1. “The same”으로 정관사 이해하기

‘같은’의 의미를 나타내는 ‘same’ 앞에는 정관사 ‘the’가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이걸 생각해 보면 ‘특정할 수 있는 개념에 대해 정관사를 사용한다’는 문장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같다’라는 말을 쓰려면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개체/개념을 상정해야 합니다. “똑같다”는 말을 하나의 대상에 적용할 수는 없으니까요. “A랑 B랑 똑같네”는 말이 되지만, “A랑 A랑 똑같네”는 말이 안되죠. (여기에서는 일상어의 사용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아이덴티티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제외하도록 하죠. ^^)

2. 그렇기에 ‘똑같은’이라는 말을 하려면 앞에 어떤 대상이 언급되거나 문맥상 특정한 개념을 추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예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아래는 저와 제 친구가 한 카페에 간 상황입니다.

#1
점원: 뭘로 드릴까요?
나: 카페라떼 주세요.
친구: 같은 걸로 주세요.

괜찮은 것 같죠? 점원은 제가 카페라테를 주문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이를 기반으로 친구가 말한 ‘같은 걸로’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은 어떨까요?

#2
점원: 뭘로 드릴까요?
나: 같은 걸로 주세요.
점원: ???
친구: ???

제가 다짜고짜 ‘같은 걸로’라고 말하면 점원이 분명 황당해 할 것입니다. 옆에 있는 친구도 놀라겠죠. 둘다 ‘같은 거라니? 니가 처음 준비하는 거잖아?’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다짜고짜 ‘같은 걸로’라고 말해도 괜찮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자주 가는 카페의 점원이 제가 겨울에 카페라테를 자주 마신다는 걸 아는 상황이죠. 이때 대화상으로는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점원과 제가 소통한 역사 속에서 ‘같은 것’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3
점원: 뭘로 드릴까요?
나: 같은 걸로 주세요.
점원: 네. (‘저 놈 참 꾸준히 라테를 먹는군’이라고 생각하며, 옆 바리스타에게 “카페라테 하나!”)

3. 영어로 다시 돌아와 보죠. “the same”이 항상 “the same”일 수밖에 없는 것은 “same”의 기준이 되는 대상이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same”이 특정한 대상을 가리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the”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The poet moved to France in 1998. She won the prize the same year.” (시인은 1998년도에 프랑스로 이주했다. 같은 해에 상을 받았다.) – 이 문장에서 the same year는 당연히 1998년을 가리킵니다. “Same year”가 가리키는 대상이 명확하므로, 다시 말해 “same year”가 특정한 해를 가리키므로 정관사 “the”가 필요한 것이죠.

4. 학교에서 배운 규칙 중에서 “최상급 앞에는 the 붙여!”가 있죠. 그렇다면 왜 최상급 앞에는 the가 필요할까요? 위에서 ‘the same N’를 설명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최상급 앞에 오는 the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최상급의 경우 말 그대로 ‘최상’인 개체를 콕 짚어 지칭합니다. 즉, 최상급으로 수식되는 명사는 특정한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거죠.

예를 들어 “She is the tallest girl in her class.”을 봅시다. 한 반에 키가 가장 큰 사람은 한 명 밖에는 없고, 따라서 ‘tallest girl’은 언제나 특정(specify)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특정할 수 있을 때 사용하는 관사, 즉 정관사(definite article)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키가 완전히 똑같아서 ‘키가 가장 큰 학생’이 두 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법적으로 상정하는 ‘최상’의 개념은 이런 예외적인 경우까지 포괄하진 않습니다. “She is one of the two tallest girls in her class.”이라고 쓸 수 있을지는 몰라도 “the tallest girl”이라고 하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한 사람을 상정하는 것입니다.)

5. 이같은 논리로 설명 가능한 문구가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the following …” 입니다. 학술논문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 중에 “in the following”이 있습니다. 독립적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in the following section”과 같이 뒤에 명사가 나오기도 하죠.

하지만 어느 경우이든 “the following”과 같이 정관사와 함께 쓰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위의 예들을 다시 살펴보시면 쉽게 대답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The following”을 독립적으로 쓰든 뒤에 section이나 statement가 나오든간에 “following ~”은 독자가 콕 짚어서 알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전자/후자’를 나타내는 표현이 왜 “the former/the latter’인지도 이해하실 수 있겠죠? 문장 내에서 전자와 후자라는 표현은 언제나 특정한 대상을 지칭합니다. 따라서 특정할 수 있는 표현을 나타내는 정관사 the의 수식이 필요한 것이죠.

#관사공부중

영어 관사 – 사소한 것 몇 가지 2

정관사? 부정관사? 그리고…

1. 많은 분들이 관사에 대해 질문하실 때 “여기에 a를 써야 하는지, the를 써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A와 the의 구별이 관사학습에서 핵심적인 사항임에 틀림 없지만, 관사를 이렇게 a/the 두 개의 체계로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법이 아닙니다.

두 개의 관사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어떤 게 더 있을까요?

2. 네. 맞습니다. 관사는 크게 정관사(definite article), 부정관사(indefinite article) 외에 무관사(zero article)로 나누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즉, 특정한 명사가 나왔을 때 ‘여기 a? the?’보다는 ‘여기 a? the? 무관사?’로 질문하시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3. 관사의 용법은 한국어에서 ‘은/는, 이/가’의 구별처럼 쉽지 않고 각각의 개념도 정리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관사와 부정관사, 무관사가 가지는 기본 개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a. 부정관사: 특정한 개별자가 가진 특질(features)과 관련 없이 비슷한 사물/개념들 중 하나를 가리킵니다. 하나로 특정할 수 없는 걸 나타낼 때 쓰는 관사죠. 이때 ‘하나로 정할 수 없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가 바로 ‘indefiniteness’입니다.

예를 들어 “I have an apple.”이라는 문장에서 “an apple”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과라고 불리는 것 중 하나임을 의미합니다. 그게 맛이 있는지 없는지, 크기는 어떤지 등은 중요하지 않죠.

b. 정관사: 특정한 사물이나 개념을 가리킵니다. 영어로는 specify할 수 있는 대상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 ‘specify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definiteness’로 표현되는 개념입니다.

‘특정(specify)할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하긴 쉽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로도 논쟁거리죠. 논문을 쓰자는 건 아니니 디테일을 과감히 생략하고 간단히 설명하면 ‘말하는 사람이 상대방도 알고 있다고/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대상’을 의미합니다. 이 대상은 보이는 물건일 수도, 추상적인 개념일 수도 있죠.

c. 무관사: 절대적 추상화 혹은 일반화(absolute generalization)를 하는 경우에 사용됩니다. 이 경우 관사가 붙지 않은 명사는 한계가 없는 일반적, 추상적 개념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love’는 ‘사랑’이라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개념을 나타내고, ‘people’은 특정인의 집합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반적 집합을 나냅니다.

4. 위의 개념은 일반 학습자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한 가지만 기억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앞으로 명사 앞에 관사를 붙이려고 고민할 때에는 “정관사? 부정관사? 무관사?” 이렇게 세 가지로 질문을 하는 습관을 키우자는 것입니다.

#관사공부중

탄핵 신어휘 4선

He 1’d the vote. 삐져서 혼자 표결에 빠졌다.
We 234ed you. 압도적인 표차로 탄핵하였다..
They just 56ed it. 막무가내로 반대하였다.
Some 7ed for the agenda. 기권하였다.
#탄핵_신어휘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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