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락 – ‘흑인의 진보’에 대하여

Posted by on Feb 19, 2016 in 링크, 삶을위한영어공부, 인용구 | No Comments

“미국에서 인종간 관계 혹은 인종집단의 진보를 이야기하는데, 다 헛소리죠. 인종 관계(의 개선) 같은 건 없어요. 백인들은 미쳐 있었죠. 지금은 그때 보다 덜 미친 거고. 흑인들이 진보해 왔다고 말하는 건 이전에 당할 만한 일을 당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오바마가 (흑인의) 진보라고 말하는 건 그가 대통령이 될 자격을 갖춘 첫 번째 흑인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근데 그건 흑인의 진보가 아니예요. 백인의 진보지. 대통령이 될 자격을 갖춘 흑인들은 지난 수백 년 간 늘 있었죠. (크리스 락, 2014년 뉴욕 매거진과의 인터뷰 중)

“When we talk about race relations in America or racial progress, it’s all nonsense. There are no race relations. White people were crazy. Now they’re not as crazy. To say that black people have made progress would be to say they deserve what happened to them before… So, to say Obama is progress is saying that he’s the first black person that is qualified to be president. That’s not black progress. That’s white progress. There’s been black people qualified to be president for hundreds of years.” – Chris Rock

출처: http://www.vox.com/xpress/2014/12/1/7313467/chris-rock-interview

아이의 놀이와 어른의 성취

Posted by on Feb 11, 2016 in 과학, 단상, 인용구 | No Comments

성취에의 강요. 과정의 무시. 투자 대 산출이라는 유일한 가치척도. 성인이 되면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들이다. 다비도프와 비고츠키의 놀이에 관한 해설을 읽으며 “아이들처럼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의 의미에 조금 더 다가선다.

“놀이 속에서 아동은 보거나 들은 대로 어른처럼 행동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놀이 속에서 아동이 하는 행동은 다소 특이하기는 해도 어른의 행동과 비슷하다. 아동은 행동과 순서를 지나칠 정도로 하나하나 그대로 복제한다. 이를테면 의사놀이를 하는 아동은 주사를 놓을 때 의사가 하는 행동을 순서를 그대로 따라 하는 식이다. 놀이의 고유한 속성은 행동의 결과를 꼭 성취 해야만 한다는 생각 없이 아동이 행동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아동을 움직이는 동기는 성취가 아니라 행동을 하는 과정 자체인 것이다. 아동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어디론가 간다는 것이지 어딘가에 도착하겠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막대가 말을 대신하고 아동은 그 위에 ‘올라탄다’. 놀이를 하며 아동은 의자에 앉아 운전대를 기능을 충족해주는 둥근 물건을 돌리면서. ‘자동차를 운전’한다 이때 아동에게 중요한 것은 그 차를 운전한다는 사실 뿐이다.”

V.V. 다비도프. <발달을 선도하는 교수학습:비고츠키 학파의 이론, 실험심리학적 연구>. (솔빛길, 2014). 126쪽.

스티븐 제이 굴드: 일반을 대하는 자세

Posted by on May 29, 2015 in 단상, 인용구 | No Comments

“20년 이상 매달 에세이를 써온 필자로서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특수를 통해 일반을 다루는 힘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생명의 의미’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우리는 모두 이런 큰 물음의 답을 알고 싶다고 갈망하지만, 다른 한편 참된 답이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 그러나 ‘야구에서 타율 4할의 의미’에 관한 에세이는 시대의 선호에 관한 특징, 우월함의 의미, 그리고 (믿든 혹은 믿지 않든) 선천적인 체격에 이르는, 광범위한 화제에 놀랄 만큼 적합한 참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일반론을 곧바로 공략해서는 안된다. 일반론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구절로 G. K. 체스터튼의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그림이란 한정이다. 모든 그림의 본질은 액자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 <인간에 대한 오해>(사회평론). 개정 증보판 서문 중에서.)

파커 파머: 다수결과 합의

Posted by on Oct 23, 2014 in 단상, 인용구 | No Comments

그러나 (다수결이 아니라) 합의로 결정을 내린다면 …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법을 새롭게 배울 것이다. 이제 질문은 “어떻게 상대가 틀렸다는 것을 충분히 설득하여 내가 표결에서 이길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나의 이해를 확장시키면서 당신의 진리로부터 배우고, 당신의 이해를 넓히는 방식으로 내 진리를 표현할 수 있을까?”이다. – 파커 파머. <가르침>. 아바서원. 40쪽.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요브웨

Posted by on Oct 12, 2014 in 말에 관하여, 인용구 | No Comments

“유럽인들이 ‘저울추(weight)’라고 부르는 것을 아칸족은 ‘요브웨’라 불렀다. 니앙고란-부아는 주민들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저울추는 측정 체계의 한 요소로, 물체의 무게를 다는 데 이용된다. 저울추는 측정 체계에서만 의미가 있으며 그 밖에는 아무런 쓰임새가 없다. 하지만 요브웨(자갈이나 돌멩이)는 더 폭넓은 의미가 있다. 척도뿐 아니라 다른 용도로도 쓸 수 있다.” 쓰임새에 따라 이름도 달라진다.

이를테면 ‘자 요브웨’는 아칸족의 문화 유산과 연관된 내용이 새겨진 돌이고, ‘시카 요브웨’는 화폐로 쓰이는 돌, ‘아힌드라 요브웨’는 생각이 담긴 돌, ‘응상간 요브웨’는 벌금이나 세금을 낼 때 쓰는 돌, ‘응그와 요브웨’는 놀이를 하거나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는 데 쓰는 기호가 새겨진 돌이다. 하지만 서양 학자들은 ‘요브웨’ 하면 무조건 저울추로 취급했다. 니앙고란-부아는, 엄밀히 말해서 이 중에 서양인들이 말하는 의미의 저울추는 하나도 없다고 결론 내렸다.”

– <측정의 역사>, 로버트 P. 크리스 지음,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58쪽

EFL과 ESL, 그리고 삶

Posted by on Oct 3, 2014 in 영어, 인용구 | No Comments

“영어를 ESL로 학습하는 환경에서는, 영어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게 되어 언어(영어)의 학습이 곧삶의 경험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 되고, 이느 다시 그 시대와 사회에 대한 이해와 경험 자체가 영어의 학습을 통해 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셈이된다. 따라서 ESL 영어 학습자들에게는 영어를 배우는 과정 속에서 ‘지금 여기'(here and now)라는 존재론적 고민에 해당하는 ‘인문적’ 가치와 ‘사고력’이 삶과 생활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어를 일상생활 속 의사소통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으로만 접하는 EFL 환경에서는 언어와 삶의 경험이 분리되어 있다.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은 그 목표가 아무리 세계어로서의 영어라고 외부적으로 강조되더라도 영국, 미국,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삶과 경험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한국에서의 삶과 경험 위에서 존재한다.” – 조자룡, 중등 영어교육의 인문적 전망. 김길중 편저 <영어교육의 인문적 전망> 112쪽

“아직 철학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거나 철학을 할 시기가 지나버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을 맞이하기에 너무 젊거나 늙었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 – 에피쿠로스

언어의 열림

Posted by on Oct 3, 2014 in 강의노트, 말에 관하여, 인용구 | No Comments

“그러나 학습이 기능적 수행으로 구성되더라도 운영의 근본정신은 늘 그것을 넘어서 있어야 한다. 기계적인 언어학습은 자칫 언어의 본질이나 언어생활의 근본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 지평은 표현과 수용 양쪽에서 모두 무한대로 열려있는 것이다. 이는 모국어든 외국어든 마찬가지이다. 외국어의 경우 제한된 언어능력으로 인해 이 지평이 좁아 보일 수 있으나 아무리 손쉬운 표현이라도 거기에 스며 있는 의미의 세계, 곧 문화적 온축은 무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외국어의 경우도 학습자나 교수자의 역량에 따라 그 지평은 좁아지기도 하고 한없이 넓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언어의 기능적 숙련에만 치중하다 보면 의미론적, 문화적 지평을 스스로 차단하고 구문과 어법의 세계에만 안주할 수 있는 것이다.” – 신문수. 영어교육의 현실과 인간화 전망. 김길중 편저 <영어교육의 인문적 전망> 52-53쪽

 

 

Academic references: New standards

Posted by on Jul 9, 2014 in 링크, 인용구 | No Comments

This is a provocative yet not-to-be-ignored argument, I believe. If academic work aims to promote knowledge and enhance the level of collective wisdom, references should be not only ‘traces’ but also gateways to full texts, if possible.

“But in the digital era this is too limited an ambition. Referencing should instead be about directly connecting readers to the full text of your sources, ideally in a one-stop way. Readers should be able to go directly (in a single click and in real time) to the specific part of the full text of the source that is being cited.”

“Referencing should connect readers as far as possible to open access sources, and scholars should in all cases and in every possible way treat the open access versions of texts as the primary source. Versions of the text that depend upon paid access (buying the book, or subscribing to the journal) should be relegated to the status of secondary sources, supplementary information for status-conscious academics (or their promotion committees), but not forming part of the core information about a text.”

http://blogs.lse.ac.uk/impactofsocialsciences/2014/05/21/academic-citation-practices-need-to-be-modernized

메타인지의 중요성

Posted by on Jul 9, 2014 in 인용구 | No Comments

피아제는 성찰을 통한 추상화를 청소년기에 가능하다고 보았지만, 저자는 마음의 이론(theory of mind)을 발달시키는 4세 이후라면 어떤 아동이라도 메타인지를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비고츠키가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 주목할만하다.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의 과정에 대해 말해봄으로써 지능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자각하게 된다. 즉 지능이 유동적이며 발달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Finally, metacognition: becoming conscious of one’s own thinking is now well accepted as a powerful strategy within many effective learning models (Brown, 1987; De Corte, 1990; Hennessy, 1999; Kuhn, 1999; White & Mitchell, 1994). We would again draw on Piaget, for his notion of reflective abstraction, which he saw as essentially a formal operation available to late adolescents for whom the discussion of possibilities (and comparisons with actualities) is so important. But unlike Piaget, we see metacognition as available ‘in some intellectually honest way’ to any child who has developed a theory of mind – that is, generally to children from about 4 years of age. The process of putting one’s thoughts into words, of reflecting back on what I thought an hour ago, what I think now, and why I have changed, is also closely linked with Vygotsky’s emphasis on the use of language as a mediator of thought. We suggest that metacognition actually plays two separate roles in the process of cognitive acceleration. There is the intellectual role, which involves both the challenge of verbalising thought (offering its own cognitive conflict) and the value of explicating thought so that the same thinking is more readily available for use on another occasion. But there is also an affective role, whereby the process of exposing one’s thinking makes a student aware of the fact that he or she is a thinker, can solve problems, does know how to seek assistance of colleagues, and can overcome initial incomprehension. This is closely related to the process well described by Carol Dweck (1991) of shifting the students’ notion of their own intelligence from something over which they have little control (“I’m just stupid”, “I’m just clever”) to something more ‘incremental’, something fluid which can be developed in a manner akin to the development of muscle by appropriate exercise. Philip Adey (2004). The Professional Development of Teachers: Practice and Theory. Kluwer Academic Publishers.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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