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a)”, “have”, 그리고 범주체계

1. 인간은 세계를 다양한 범주(category)로 구획한다. 인간발달의 가장 중요한 축으로 범주화 능력의 확장을 꼽을 수 있다. 언어는 인간의 범주체계를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2. 범주들은 일련의 체계를 이룬다. 해당 체계를 구별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종의 ~이다”의 의미를 지닌 ‘kind of-relations’와 “~의 부분이다”라는 뜻을 지닌 “part of-relations”이다.

3. 모두 알다시피 be와 have에는 다양한 뜻이 있다. 이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범주의 관계를 나타내는 용법을 들 수 있다. 범주 분류표(taxonomies) 상의 다양한 개체들이 갖는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4. 우선 be 동사는 부정관사 a(n)과 결합하여 ‘kind of-relations’를 표현한다. 예를 들면 “A train is a means of transport.”라고 말함으로써 기차가 교통수단의 한 종류임을 뜻할 수 있다.

5. 이에 비해 have는 ‘part of-relations’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동사다. 예를 들어 “A car has four wheels.”라고 말함으로써 네 개의 바퀴가 차에 일부라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

6. 이처럼 영어에서 have와 be는 범주의 체계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동사라고 할 수 있다.

7. 재미있는 것은 범주의 위계(hierarchy) 상에서 기본적인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뭘 타고 왔느냐?”고 할 때 “차 타고 왔지.” “버스타고 왔지.” “오토바이 타고 왔지.” “비행기 타고 왔지.”등으로 답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상황이나 화자의 성향에 따라서 “4륜구동 세단을 타고 왔지.”라든가, “배기량 300CC의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왔지”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이것은 질문하는 사람이 원하는 정보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8. 여기에서 ‘차’, ‘버스’, ‘오토바이’, ‘비행기’등을 보통 ‘기본 범주(basic-level categories)’라고 부른다. 기본 범주에 해당하는 어휘는 보통 (1) 자주 쓰이고, (2) 간결하게 표현되며, (3) 다양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고, (4) 이른 시기에 습득된다.

9. 정리하면, 언어는 개념의 체계를 부호화(encode)하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로 ‘종류’와 ‘부분’을 들 수 있다. 영어에서 전자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방식으로는 ‘be a’ 구문의 사용, 후자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방식으로는 ‘have’ 구문을 들 수 있다. 개념체계 중 가장 기본적인 레벨에 해당하는 용어를 기본범주 어휘라고 한다.

이상은 Günter Radden & René Dirven. 2007.<Cognitive English Grammar>. John Benjamins Publishing Company. Chapter 1. Categories in thought and language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인지언어학이야기 #be #have #기본범주

수동태 뒤의 전치사에 관하여

a. He was relieved by what he saw.
b. He was relieved about what he saw.

이 둘 중에 뭐가 맞나요? 저는 relieved 다음에 by와 about이 다 된다고 배웠는데 말이죠. 네이티브 두 명에게 물어보니 by가 맞다고 하는데…

이런 질문을 받았고요. 저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about과 by의 의미차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주신 두 표현 (relieved about / by) 중에 뭐가 맞느냐는 건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By”는 그 뒤에 동작주(agent)나 원인(cause)을 나타내는 표현이 주로 옵니다. 따라서 주신 문장이 “그는 그걸 보고 안심이 되었다”는 의미라면 He was relieved BY what he saw.가 되어야 적절하다고 봅니다.

이에 비해 about은 말 그대로 ‘~에 대해’, ‘~에 관하여’라는 의미입니다. 뒤에 나오는 것이 relieve를 하게 한 agent나 cause라기 보다는 대상(object)인 것이죠. 따라서 “After hearing the news, he was relieved ABOUT the situation in New York.”라고 말하는 것이 좀더 적절하겠죠. 뉴스를 들은 게 원인이 된 것이고, 뒤에 나오는 ‘the situation in New York”은 안심의 대상이 되니까요. (그래서 ‘소식을 듣고 안심이 되었다’의 적절한 번역은 “She was relieved BY the news.”입니다. By 대신 about을 쓰면 상당히 어색하죠.)

그렇다면 다시 He was relieved about what he saw.에 대해 ‘by’를 써야 한다고 말한 원어민의 직관으로 돌아가 보면, 사실 이건 표현에 대한 개인적인 직관이라기 보다는 상황에 대한 사회적인 직관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런 맥락 없이 저 문장이 주어졌을 때 by냐 about이냐 하는 것은 ‘what he saw’와 ‘He was relieved’ 사이의 관계와 밀접하게 엮여 있는 것이죠. 보통 뭔가를 걱정하고 있다가 어떤 상황을 목격했을 때 안심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저만치 가던 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가서 살펴보니 상처도 없고 특별히 다친 곳도 없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는 경우 말입니다. 이 경우에는 ‘what he saw’에 의해서(by) ‘was relieved’되었다고 보는 게 적절하겠죠.

다른 상황도 상정할 수 있습니다. 제가 뭔가를 목격했어요. 예를 들어 아이들이 공룡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걸 본 거죠. 그런데 점심을 함께 하고 있는 선생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어이, 김성우 선생. 그 뉴스 봤어? 요즘 나오는 공룡 장난감에 유해물질이 장난이 아니라는데?” 저는 갑자기 아까 봤던 장면이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애들한테 무슨 해가 있을까 하고요. 그래서 뉴스를 찾아봅니다. 검색해 보니 모든 공룡 장난감이 그런 건 아니고, 특정 브랜드만 그렇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그제서야 저는 아까 봤던 장면에 대해(about) 안심이 됩니다. 뉴스에서 지적한 브랜드가 아니니까요. 이때는 “He was relieved ABOUT what he saw.”가 좀더 적절할 것입니다.

우리가 원어민에게 A/B 중에 뭐가 맞느냐고 물을 때 종종 놓치는 것은 A와 B를 “Either A or B”의 관계로 놓는 것입니다. 실제로 구글이나 코퍼스 툴을 찾아보면 둘 다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빈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저명한 출판물에 올라가 있는 경우도 많거든요. 여기에서 빈도(frequency) 뿐 아니라 그 두 표현이 갖고 있는 의미적/개념적 차이에 주목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By와 about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되고요.

이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맥락이고 두 번째는 해당 표현의 기초적인 의미입니다. 위에서 설명드렸듯이 ‘안심이 된다’와 ‘무언가를 목격하다’ 사이에 성립하는 가장 일반적인 관계는 ‘뭔가를 보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안심이 되다’입니다. 하지만 다른 상황이라면 ‘목격한 것에 관하여’가 될 수도 있죠. 또한 by와 about이 가지는 어휘적 개념도 중요합니다. 이것을 고려해야겠죠.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도 이 두 표현이 칼로 무 자르듯 딱 갈리진 않을 겁니다. 그 경우에는 비원어민 뿐 아니라 원어민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릴 수 있고요.

덧. 이런 개념을 염두에 두시고 “relieved about the situation.”과 “relieved by the situation.”을 exact match로 구글에서 검색해 보시면 about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옵니다.

#인지언어학이야기 #수동태 #전치사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10여 년 만에 두 번째로 제가 원하는 것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뭐가 좋을지 고민중인데요. 사범대 영어교육과 대학원생이라면:

(1) 인지언어학과 영어교육이지
(2) 비고츠키 사회문화이론과 영어교육이지
(3) 멀티리터러시/멀티모댈리티와 영어교육이지
(4) 뭘 하든지 재밌고 학점 잘 주는 과목이지.

5년 남짓 만에 겨우 한 번 오는 기회인지라 이게 참 정하기 힘드네요. 여러분의 선택은 과연? 

의학 메타포 단상 (기사발췌+약간의 해설)

Posted by on Mar 10, 2020 in 링크, 말에 관하여, 인지언어학, 집필 | No Comments

1. 환자는 질병과 싸우는가? 그는 파이터(fighter)인가? 그렇다면 질병이 심각해지거나 그로 인해 죽음에까지 이르는 경우는 충분히 열심히 싸우지 않아서 병에 굴복한 것인가? 질병은 적이고 나는 파이터이며 호전이나 악화는 승리 혹은 패배인가?

환자를 파이터로 개념화하는 것은 어떤 장점과 한계를 갖는가?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환자를 ‘싸우는 존재’로 생각해야 하는가? 죽음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전투에 임하듯 병과 부딪치는 것이 ‘옳은’ 것인가?

2. 우리는 종종 물리적 현상과 메타포를 혼동한다. 잘 알려진 Lawrence Williams와 John Baugh의 연구는 사람들이 따뜻한 음료를 들고 면접에 임할 때 피면접자의 성격을 ‘warm’하다고 판단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보고한다. 차가운 음료를 들고 있었던 참가자들은 반대의 경향을 보였다. 이것은 우연인가?

3. 또 다른 연구(Chen-Bo Zhong & Katie Liljenquist, 2006)는 소위 ‘멕베스 효과(Macbeth effect)’를 보고한다. 자신의 죄과에 대해 생각해 보길 권유당한 참여자들은 연구 참여 선물로 세정제를 택할 확률이 높았다. 윤리적인 측면의 ‘더러움’을 신체적으로 청결하지 못한 것과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영단어 ‘dirty’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윤리적 영역과 신체적 영역 모두를 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의학에서의 군사 메타포는 파스퇴르가 1860년대에 세균에 관한 이론을 제시하기 이전부터 사용되어왔다. 시인 존 던은 질병을 “siege…a rebellious heat, [that] will blow up the heart, like a Myne”이나 “Canon [that] batters all, overthrowes all, demolishes all…destroyes us in an instant.”와 같이 표현한다. 병을 포위공격과 포탄에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5. 17세기에 가장 저명한 의사였던 Thomas Sydenham은 의학에 군사 메타포를 들여온 사람으로 기억될 만하다. 그는 질병의 절멸(annihilation)을 의학의 목표로 삼았다. 자연스레 “내부의 적을 하제와 해열제로 공격(attack)한다”는 표현을 썼다. 질병의 치료가 싸움이라면 당연히 전략전술이 필요할 것이다.

6. 우리는 의학 메타포를 내면화해 왔다. 이제는 그런 표현들이 메타포라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의학용어로 인식된다. 그렇다면 그것의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영향은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그들 중 일부는 여전히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고 전달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https://www.theatlantic.com/health/archive/2014/08/the-trouble-with-medicines-metaphors/374982/

“become a thing”, 언어적 창의성, 그리고 시인-되기

심심찮게 들리는 표현 중에 “become a thing”이 있다. 직역하면 ‘물건/사물이 되다’는 말인데, 특정한 대상이 인기를 끌거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 때로 걱정거리가 되는 상황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인지언어학의 언어로 풀어본다면 위의 숙어에서 “a thing”은 물리적 개체라기 보다는 우리의 사고 속에서 개념적 공간을 점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When did celebrating birthdays become a thing?(언제 생일을 축하하는 게 널리 퍼졌나?)” 이 문장에서 가정되는 것은 ‘생일을 축하하는 일’이 관례가 아니었다가 관례화 되고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모르지만 아마도 캘린더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재미난 것은 ‘become a thing’을 일종의 명사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명사의 기능이 여럿이지만 기본적으로 ‘thing’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즉 사물을 가리키는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이 thing이 된다는 것은 그것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것, 즉 명사로서의 지위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이 각기 이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나무는 줄기, 잎, 뿌리, 가지 등을 갖고 있지만 (적어도 식물학자가 아닌 나같은 일반인에게) 새로 난 뿌리와 새로 난 잎새를 묶어서 통칭하는 명사는 없다. 아침과 점심, 저녁과 밤, 새벽 등의 시간 구분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해질녘과 잠들기 직전 시간만을 묶어 부를 수 있는 명사는 없다. 우리는 세계를 구분하고 묶고 개념화하고 이름을 붙이지만 거기에는 제약이 따른다. 그 제약을 훌쩍 뛰어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기호로서의 언어관습, 나아가 사회적 관행과 관념이다.

이상의 논의에서 언어적 창의성(linguistic creativity)를 키우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사람들이 이름붙이지 않는 것에 나만의 이름을 붙여보는 것이다. 즉 사람들에 의해 ‘become a thing’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자신이 ‘make something a thing’해 보는 것이다. 그 누구도 이름붙이지 않은 현상과 사물에 나만의 이름을 붙여보고 그것을 마음 속으로 간직하고 키워가는 것. 여기에서 창의성이 자라난다.

두 번째는, 사람들이 하나의 이름(a thing)으로 부르는 것을 여럿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다. 사람들이 ‘밤’이라고 부르는 시간을 어떻게 더 쪼개고 구획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밤을 통째로 보내지만 누군가는 밤의 탄생과 성장과 성숙과 노화와 죽음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위에서 든 예와 같이 사람들이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들을 연결시켜 이름을 붙여보는 것이다. 새로운 잎사귀와 뿌리를 합쳐 ‘나무의 새살’로 명명해 보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남들이 A라 부르는 것을 나는 B라 부른다. 왜냐면 …이기 때문이다’식의 공식을 적용하면 보다 많은 것들이 나에게 ‘become a thing’이 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become a different thing’이라고 할까.

결국 ‘become a thing’에서 얻을 수 있는 창의성의 비결은 사물의 개념과 이름의 영역을 횡단하면서 새로운 개념과 이름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가장 공들여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시인일 것이다. 그들은 이름을 붙임으로서 개념을 끌어내고, 개념을 쪼개고 분리하고 모음으로서 새로운 개념을 빚어내며, 새로운 이름을 붙임으로서 당연시되는 본질에 의문을 던진다. 우리 모두가 시인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작업을 배우는 기회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인지언어학이야기

책 읽다가 몇 가지

1. 그나마 잘 번역된 텍스트라 해서 읽고 있는데 군데군데 계속해서 막힌다. 영어로 읽기 시작하니 이해는 훨씬 나은데 속도가 안습이다. 번역가의 피땀은 많은 이들의 노고를 줄여주고 더 많은 세계를 여행할 시간을 선사한다. 문제는 학술서의 경우 정말 유능한 번역가를 찾기 힘들다는 것. (대개의 연구자와 교수들은 전문 번역가가 아니다!)

2. 특정한 이론체계를 차용해 논문을 쓸 때면 대표적인 구절이나 뼈대만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이론의 핵심을 간파하고 그것을 분석에 녹여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런 경우가 없지 않았던 것 같다. 하나의 이론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 거대한 체계를 열 개 쯤 다루는 개론 수업이란 또 얼마나 얄팍한가.

3. 아직 검토중이라고 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될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혼자 녹화해서 올리는 게 쉽지 않겠으나 30명 정도의 수업을 실시간 화상회의로 진행하는 것 보다야 나을 것 같다. 짧지 않은 동영상 강의를 촬영해 본 경험에서 보자면 혼자 잘 떠들기 위해서는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 일반 면대면 수업 준비의 2-3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귀차니즘이 발동하는데, 마감이 어찌저찌 해결해 주겠지.

4. 대화에서 상대가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사실 ‘말’이 존재하기 이전의 상황, 혹은 담화의 유형 자체를 다르게 바라보고 있다고 봐야 한다. 말은 언제나 그것보다 훨씬 큰 사회적, 제도적, 정치적 맥락을 환기하며, 말이 펼쳐지면서 말이 처하는 맥락 또한 요동친다.

단어 하나만 바꾸어도 진담이 농담이 되고, 논평이 풍자가 된다. 말을 하며 입꼬리를 올렸을 때, 살짝 찡그렸을 때, 목소리가 커졌을 때, 유행어를 섞었을 때, 상대가 익숙하지 않은 메타포를 사용했을 때 등등 지극히 작은 말은 순식간에 맥락을 바꿀 수 있고, 그렇게 바뀐 맥락에서 대화자들의 관계는 달라진다.

5. 우리는 말을 못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말이 실시간으로 지어지는 세계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다. 말은 상대의 귀에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세계를 만들어 상대를 초대한다. 그렇기에 말하는 법은 세계를 창조하고 초대하는 법이다. 우리가 암기에 골몰했던 ‘어휘와 문법’은 그런 세계를 짓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뚫렸다’는 은유에 대하여

‘뚫렸다’

감염병에 대한 전문지식은 없지만 메타포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뚫렸다”는 은유의 아슬아슬함을 생각한다. 어딘가가 “뚫렸다”면, 거길 지키는 사람/시스템이 있고, 바이러스와 숙주가 된 사람이 거길 ‘뚫었으며’, 뚫린 구멍은 점점 커질 위험이 있다. 바이러스에 ‘뚫린’ 지역사회는 그로 인한 피해를 입었으므로 그렇게 ‘뚫고 들어온’ 사람을 경계하고 비난하며 단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말로 바이러스의 숙주로 기능한 이들은 방역망을, 지역을, 안전이라는 울타리를 ‘뚫고 들어온’ 침입자인가? 우리는 ‘뚫은’ 주체를 바이러스가 아닌 사람으로 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로 인해 가해자/피해자라는 구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뚫다/뚫리다’로 표현되는 공수 혹은 침투 메타포가 우리의 생각을 어디로 이끌어 가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지언어학이야기

영어교사들을 위한 인지언어학 이야기 54: 환유(Metonymy)의 세계 (2)

Posted by on Nov 17, 2019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인지언어학 | No Comments

환유(metonymy)를 좀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은유(metaphor)와 비교, 대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환유와 은유는 비유적 언어(figurative language)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인지언어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언어는 환유와 은유를 통해 문자 그대로의 세계를 넘어 복잡다단한 비유의 세계를 창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인지언어학의 흐름은 환유와 은유가 쉽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합니다만, 전형적인 환유와 은유는 생성 메커니즘에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은유는 두 영역간의 사상에 기반한다

먼저 은유를 봅시다. 은유는 기본적으로 두 개의 영역(domain)과 그들 사이의 사상(mapping)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최근 방영되고 있는 <동백꽃 필 무렵>의 등장인물 ‘용식이’에 대해 한 시청자가 “용식이는 호랑이다.”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이는 전형적인 은유의 구조인 “A는 B이다”를 취하고 있습니다(아마도 가장 유명한 A=B 은유는 김동명 시인의 ‘내 마음은 호수요’겠죠). 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용식이는 호랑이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이 문장은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이 경우 대략 다음의 세 요소가 사상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종열, 2003, 109쪽)

(1) 호랑이 -> 용식이
(2) 호랑이의 용맹 -> 용식이의 용맹
(3) 호랑이와 용맹간의 관계 -> 용식이와 용맹간의 관계

“용식이는 호랑이다.”라는 진술에서 동원되는 영역은 두 개입니다. 하나는 호랑이의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용식이의 영역입니다. 이 두 영역은 각각 근원영역(source domain)과 목표영역(target domain)의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서 ‘근원’과 ‘목표’라는 말을 살필 필요가 있는데, 근원영역은 화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 즉 타겟이 되는 목표영역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영역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나무나 호수, 바다 등과 연결시킨다면, 목표영역(설명하고자 하는 대상)은 사람이고, 근원영역(대상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되는 영역)은 나무, 호수, 바다 등입니다.

이와 같은 논의에서 중요한 사실은 은유가 두 개의 영역 간의 관계설정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용식이와 호랑이는 각각 서로 다른 집단에 속하지만, 위의 예에서 ‘용맹함’이라는 특징을 통해 연결되지요. 즉, “용식이는 용맹하다”라고 말하지 않고 “용식이는 호랑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용맹함”에 간접적으로 접근(access)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호랑이’라는 라는 단어가 문장에 등장하면서 단지 ‘용맹함’이라는 추상적 특징 뿐 아니라 호랑이의 여러 특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말하고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호랑이의 이미지가 떠오를 수도 있고, 우렁찬 호랑이 소리가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서는 호랑이의 여타 특성들이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환유 생성의 기본 원리는 인접성(contiguity)

이렇게 은유가 인지적으로 구별되는 두 영역 간의 사상을 기반으로 생성됨에 반해 환유는 개념적으로 인접한 개체들을 엮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지난 회에서 살펴본 아래 두 문장을 봅시다.

a. “버스 파업중이야. 지하철 타고 가.“
b. “빨간 모자 너무 시끄럽다. 가서 한마디 할까?“

a의 경우 ‘버스’는 ‘버스 운수 노동자’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둘은 개념적으로 떼어내기 힘듭니다. 실제로 운수노동자들은 버스를 운전석에 앉아 일하면서 생계를 꾸리기 때문이죠. 아래 ‘빨간 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시끄럽게 떠드는 건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이지만, 그 사람과 모자는 공간적으로 인접해 있습니다. 이같은 공간적 인접은 환유 생성의 기본 원리 중 하나입니다.

공간적 인접성 외에 시간적 인접성 또한 환유 생산의 주요 원리가 됩니다. 다음 두 예를 보시죠.

c. 3년이 흘러 소설가는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었다.
d. 테잎 커팅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건물이 다 올라갔네?

c에서는 ‘마침표를 찍었다’는 표현이 ‘소설을 완성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편집을 거치면서 여러 번 수정되었을 수도 있지만,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은 시점과 소설이 최종적으로 완성된 시점은 매우 가깝습니다. d에서는 ‘테잎 커팅’이 건물을 짓기 시작한 시기를 대표합니다. 유명 인사들이 테잎을 자르는 기념식을 한 것으로 건축의 시작을 표현한 것인데, 이 경우도 시간적 인접성이 환유 생성의 기본 원리로 사용되었습니다.

환유가 기본적으로 인접성에 기반한다는 주장은 구조주의 언어학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Roman Jacobson을 거쳐 최근 Peirsman와 Geeraerts에 의해 정교화되었습니다 (Littlemore, 2015, p. 14). 이들에 따르면 은유는 유사성(similarity)에 기반을 두는 반면 환유는 인접성에 기반합니다. ‘Love is a journey.’는 사랑의 과정과 여행의 과정이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는 점에 기반하고 있는 은유임에 반해, ‘We need new brains.“는 특정인과 뇌가 인접해 있다는 사실에 기반한 환유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은 다양다종한 비유언어를 모두 설명해내진 못하지만 비유를 설명하는 종래의 이론들에서 가장 강력한 설명원리로 제시된 바 있습니다.

<참고문헌>
이종렬. (2003). <비유와 인지>. 서울:한국문화사
Littlemore, J. (2015). Metonymy: Hidden shortcuts in language, thought and communic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덧.

2013년 연재 시작. 한 해에 여덟 개의 원고. 이번 학기에도 예외 없이 네 개의 이야기를 송고했다. 원래는 50개 정도가 되면 책으로 묶을 준비를 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쓰다 보니 수년 간의 연재 중 1/3 정도는 울퉁불퉁하고 부실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교사 뿐 아니라 ‘영어와 사고’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는 원고로 발전시키고 싶다. 아마도 내년 여름이면 본격적으로 작업이 가능할 것 같다.

#인지언어학이야기 #영어와사고

영어교사들을 위한 인지언어학 이야기 53: 환유(Metonymy)의 세계 (1)

아래 세 문장을 살펴 봅시다.

a. “버스 파업중이야. 지하철 타고 가.“
b. “빨간 모자 너무 시끄럽다. 가서 한마디 할까?“
c. “손이 모자라서 시간이 배로 걸릴 듯. 사람 좀 더 뽑아주지.“

일상에서 쉽게 쓰고 또 이해할 수 있는 문장들입니다. 특별할 것이 없는 이 문장들 속에 인간이 세계와 언어를 엮어서 인지하는 방식의 작은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a를 봅시다. ‘버스 파업중이야’라고 하지만 실제로 파업을 하고 있는 것은 버스가 아닙니다. 멀고 먼 훗날 자율주행 버스들이 자신의 권익을 찾기 위해 파업을 벌이는 상상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SF 속 이야기고, 실제로 파업을 하는 것은 버스를 운전하는 노동자들이죠. 하지만 우리는 ‘버스를 운전하는 노동자들이 파업중이야.’라고 길게 말하기보다는 ‘버스 파업중이야’를 택할 때가 더 많습니다. 실제 대상을 상세히 설명하기 보다는 그 대상을 가리키는 데 꼭 필요한 정보만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문장의 길이도 상당히 짧아지지요.

다음으로 b를 봅시다. ‘빨간 모자’는 그 자체로 시끄럽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모자라면 소리를 내진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이 시끄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빨간 모자 쓴 사람 너무 시끄럽다’고 말할 수 있지만 ‘빨간 모자’만 써도 충분히 의미 전달이 됩니다.

마지막으로는 c입니다. 여기에서 ‘손’은 단지 신체의 일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손’을 말합니다. 따라서 손이 부족하다는 것은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뜻이 됩니다. a나 b와 비교할 때 조금 다른 점은 ‘버스’나 ‘빨간 모자’가 가리키는 대상의 부분이 아님에 비해 ‘손’은 가리키는 대상 즉 일할 사람의 일부를 이룬다는 점입니다. 흥미롭게도 영어에도 이와 비슷한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short-handed’죠. 일손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종종 쓰이는 표현입니다.

Metonymy의 정의

위의 a-c는 모두 ‘환유’라고 부를 수 있는 언어현상의 예시입니다. 인지언어학자들은 환유(metonymy)를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합니다.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서 어느 정도의 준거가 필요한 만큼 Littlemore (2015)의 다음 정의를 차용하도록 하겠습니다.

Metonymy is a figure of language and thought in which one entity is used to refer to, or in cognitive linguistic terms ‘provide access to’, another entity to which it is somehow related. (환유는 언어와 사고의 수사법 중 하나로 한 실체가 관련된 다른 실체를 가리키거나, 인지언어학의 용어로 말하자면, 관련된 다른 실체에 ‘접근지점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환유는 한 언어표현이 특정 대상을 정확히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로 연결되는 관문의 역할을 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실제로 metonymy의 어원을 따라 올라가면 라틴어metonymia, 나아가 그리스어 metōnymia에 닿게 되는데, 이것은 “이름을 바꾸기(change of name”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표현에서 ‘빵’은 단순히 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먹거리 전반을 가리킵니다. 이를 어원에 빗대어 설명하면 ‘먹거리’가 ‘빵’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죠. 물론 이 둘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이렇게 이름을 바꾸긴 쉽지 않았을 겁니다. 많은 서구권 국가에서 빵은 주식 중 하나이기에 이런 이름바꾸기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환유(metonymy): 몇 가지 예시

그렇다면 이번에는 영어 환유 표현을 몇 개 살펴 보겠습니다.

d.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펜은 칼보다 강하다.)
e. The White House sees it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백악관은 그것을 다른 관점에서 본다.)
f. Ireland passed a landmark bill last year. (아일랜드는 작년에 기념비적인 법안을 통과시켰다.)

속담 a에서 ‘the pen’은 필기구가 아니라 문필 즉 글을 쓰는 행위 전반을 가리킵니다. 이에 대구가 되는 ‘the sword’는 무력을 사용하는 일체의 활동을 가리키지요. “The pen”과 “the sword’가 다른 개념으로 가는 관문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e에서 “The White House”는 미국 대통령이 참모와 함께 거주하는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를 가리킵니다. 빌딩이 아닌 조직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f에서 “Ireland”는 아일랜드 국가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아일랜드 의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실제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아일랜드 국가 전체가 아니라 의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예시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 특정 개념에 접근할 때 종종 해당 개념에 정확히 상응하는 언어표현을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행위 전반’에 접근하기 위해 ‘펜’을 사용하고, ‘미국 정부’라는 개념에 접근하기 위해 ‘백악관’이라는 언어를 활용하죠. 이것은 인간의 사고와 언어간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예시가 됩니다. 즉 환유는 단순히 언어표현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구조와 과정을 보여주는 개념적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계속)

<참고문헌>
Littlemore, J. (2015). Metonymy: Hidden shortcuts in language, thought and communic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인지언어학 이야기 52: 인지문법의 세계 (관사 마지막 이야기)

 

“What’s this?”
“Cat”

관사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뼈아프게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다음과 같이 단어를 외웠다는 사실입니다.

고양이 – cat
손목시계 – watch
양 – sheep
책상 – desk
물 – water
사과 – apple

이쯤 되면 제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눈치채셨을 겁니다. 이런 식의 짝짓기에서는 명사 앞에 관사를 붙이지 않습니다. 그냥 단어와 한국어 짝이 나열되는 식이죠. 그 결과 셀 수 있는 명사와 셀 수 없는 명사의 구분이 없이 머릿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명사를 처음 배울 때 불가산과 가산의 개념이 자리잡을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양이 그림을 두고 “What is this?” 혹은 “What is that?”와 같이 물어볼 때에는 “(It’s) a cat.”과 같이 <관사+명사>의 짝이 보다 적절한 답변입니다. “What’s this?라고 했는데 그냥 “Cat”이라고 한다면 틀렸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어색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관사와 명사가 어떻게 짝을 이루는지 살피면서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통수단의 개념화, 그리고 관사

교통수단을 표현할 때 <by + 무관사 명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by bus, by train, by car, by plane, by bicycle” 등의 표현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동사와 같이 쓸 때는 조금 복잡합니다. 대표적으로 take와 같이 쓰이는 bus/subway/taxi 를 생각해 보시죠.

a. I take a bus to work.
b. I take the bus to work.

특별한 문맥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위의 두 문장은 특별한 문제없이 바꾸어 쓸 수 있습니다. “나 버스 타고 일하러 간다.”의 의미로 말이죠. 굳이 차이를 찾는다면 bus 앞에 정관사 the를 쓴 b의 경우가 ‘다른 교통수단이 아니고 버스임’ 혹은 ‘내가 늘 타고 다니던 그 버스’를 조금 강조한다는 정도인데요. 이것이 두 문장의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진 못합니다. (참고로 두 원어민 화자에게 물어봤더니 한 친구는 a를, 다른 친구는 b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데이터로서 두 명은 너무 작은 숫자이니 무시할 만하지만, 원어민들의 직관이 반대라는 점이 흥미로왔습니다.)

이에 비해 subway의 경우는 확연히 다릅니다. 부정관사는 적절하지 않고 정관사만 가능하죠.

c. I take a subway to work. *
d. I take the subway to work.

별표는 문법적으로 옳지 않음을 이야기합니다. 버스의 경우에는 “여러 교통수단 중 하나로서의/특정한 노선을 지나는 버스(the bus)” 혹은 “여러 버스 중 하나(a bus)”를 상정할 수 있지만, 지하철의 경우에는 “시스템화 된 교통수단으로서의 지하철(the subway)”으로만 개념화됩니다. 여러 개 중 셀 수 있는 개체로 개념화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당연히 a subway, two subways 등은 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고로 subway의 경우 아무 것도 안붙이고 무관사로 쓰는 경우도 종종 발견됩니다. 다만 a subway라고 쓰는 경우는 좀처럼 없습니다.)

Bus, subway, taxi에 대한 개념화의 차이

Taxi는 조금 애매한 듯합니다. Bus의 경우 the bus/a bus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고, subway의 경우에는 정관사가 동반되거나 아예 생략되기도 하는데요. Taxi는 예외적인 상황이나 특정 문맥이 없다면 기본적으로 부정관사 a가 필요합니다. 일부가 “the taxi”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T/F 문법 문제라면 take a taxi만이 정답으로 인정되겠지요.

이같은 관찰을 종합하여 교통수단에 대한 관사사용을 개념화(conceptualization)라는 관점에서 정리해 봅시다. 우선 사람들은 택시를 셀 수 있는 개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세상에 수많은 택시들이 있고 그 중 하나를 잡아탄다는 생각입니다. 이에 비해 지하철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하철 열차를 여러 지하철 열차 중 하나로 개념화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버스는 그 중간 어디쯤엔가 위치한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복잡하지만 아예 패턴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관사공부의 패러독스

몇 차례의 연재를 통해 인지언어학의 관점에서 관사의 용법을 살펴보았습니다. 교사들이 보기에도 쉽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과 관련해 관사에 대해 강의를 할 때 종종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종종 혼동도 되고 틀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공부하기 전보다는 정확성이 분명히 좋아졌습니다. 그거면 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관사 학습에는 일종의 패러독스가 존재합니다. 영어에서 가장 빈번히 나오는 품사 중 하나가 관사이고,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말뭉치(corpus)를 살피면 the가 늘 빈도수 1위를 차지한다는 점입니다. A/an의 빈도도 상당히 높습니다. 이렇게 보면 관사의 바다 속에서 관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등잔 밑이 어두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죠.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논문쓰기 강의를 하면서도 관사가 가장 어렵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빈도수가 높다고 개념적으로 쉬운 것은 아닙니다. 관사는 생긴 것도 단순하고 종류도 3가지(정관사, 부정관사, 무관사) 밖에 되지 않지만 개념적으로 명쾌히 이해하기엔 영문법에서 가장 복잡한 항목 중 하나입니다. ‘개념화의 차이에 따라 관사의 활용이 달라진다’는 인지언어학의 기본 개념을 떠올리면서 다양한 맥락 속에서 관사를 살피는 공부를 꾸준히 해 나갈 때 이런 한계를 조금씩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매일 사람들을 접하지만 관계가 가장 어렵습니다. 관계를 두루두루 살피고 깊이 성찰하지 않는 한 관계에 대한 지혜는 자라지 않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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