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붙이기 vs. 마주보기

흔히 “명사”가 사물을 가리키는 말이라고들 하지만, 옳지 않은 설명이다.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 봐도 “나무”는 세상의 어떤 것도 가리키지 않는다. “나무”라고 불리는 개념(concept)에 조응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모든 명사는 일종의 ‘집합명사’다. “나무”는 내 집앞 화단의 아담한 사과나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무를 가리킨다. 참나무, 뽕나무, 자작나무 등에 속하는 모든 개체를 통틀어 ‘나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나무’는 세계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체계 속에 개념으로 존재한다.

여기서 언어의 유용함과 위험함이 동시에 드러난다. 우리가 말을 배울 때는 단지 세상에 이름을 붙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온갖 분류법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나무/를 배울 때 ‘나무’라는 개념을 형성하게 되듯, /자유/를 배울 때 ‘자유’에 속하는 것을 분류하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말은 우리의 세계를, 감정을, 의견을, 고통을 갈라친다. 세계의 어떤 부분을 떼어내어 자기 안으로 포섭하는 것이다. 그렇게 쌓이는 개념이 세계와의 소통과 충돌을 보장하진 못한다.

갈수록 개념만 계속 집어삼키는 공부가 두렵다. 더 자세히 분류하고 갈라치는 법을 배우다가 세계와 손맞잡고 대면하는 법을 잃어버릴까 무섭다. 구획하는 법을 배운답시고 마주보는 법을 잃어/잊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인가.

우리는 총체로서의 세계와 대면할 수 없다. 개념과 눈빛을 나누지 못한다. 단지 한 인간의 얼굴과 대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대면(對面) 아닌가. 명명(命名)이 아닌 마주봄의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더욱 절실한 시절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삶을위한영어공부

접힘과 펼침, 고유명사에서 보통명사로

책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종종 검색을 한다. 지식의 전달만큼이나 함께 실천하는 ‘친구’를 얻는 게 목적이었던만큼 책을 매개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단단한영어공부 로 검색을 했다. 새로운 포스트가 보였다. 그런데 클릭을 해보니 <단단한 영어공부>와 관련된 이미지가 아니었다. 전혀 다른 책 이야기를 하는 포스트에 #단단한영어공부 그리고 #삶을위한영어공부 태그가 달려 있었던 것이다.

살펴보니 포스트를 올리신 분은 일전에 <단단한 영어공부>를 읽으신 독자셨다. 책을 읽고 이 표현들이 맘에 드셨는지 다른 영어공부 포스트에 이 두 표현을 태그로 사용하신 것!

적어도 이 분에게 #단단한영어공부 와 #삶을위한영어공부 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가 되었다. 내 책 이야기가 아니어서 순간 실망했지만 이내 마음이 따스해졌다.

어쩌면 책을 쓴 이유는 이들 표현들이 특정한 책의 제목이나 부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에 흘러든 ‘보통 표현’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나의 책 제목 따위는 잊혀지지만 누군가의 실천의 양태가 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단단한 영어공부>나 <삶을 위한 영어공부>도 수많은 이들의 실천과 생각으로 빚어진 책이다. 수많은 보통명사의 앙상블이 만들어 낸 일시적인 고유명사일 뿐.

책의 제목은 고유명사로 남지만 궁극적으로 삶의 곳곳에 스며든 보통명사로, 또 실천으로 변화한다. 이들은 다시 누군가의 손에서 고유명사로 빚어진다. 이렇게 보통명사와 고유명사는 접힘과 펼침을 거치며 세상을 유랑한다.

#삶을위한영어공부 #단단한영어공부

인지언어학 이야기 49 – 관사 (1)

Posted by on Apr 22, 2019 in 수업자료, 인지언어학, 집필 | No Comments

문법 새롭게 보기 – 인지문법의 세계 (3)

“Everything should be as simple as it can be but not simpler!” (모든 것은 가능한 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실제보다) 더 단순하면 안된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아인슈타인이 했다고 전해지는 말입니다. 저는 이 인용구를 볼 때마다 문법, 그 중에서도 관사에 대한 흔한 설명방식 중 하나를 떠올립니다.

처음 나오면 a, 그 다음 나오면 the (?)

중학교 때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문법책에서 관사를 처음 접한 저는 복잡한 규칙들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손을 들고 질문을 했죠.

“선생님, a랑 the랑 언제 써야 하는지 헷갈리는데요.”“그거 많이 헷갈리지. 근데 이것만 기억해. 뭔가를 처음 쓰면 a고 그 다음에 받을 때는 the로 받는 거야. 그러니까 바나나를 처음 말할 때는 a를 쓰고 그 다음에 그걸 다시 받으면 the를 쓰면 되지. 쉽지?”“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사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는 했지만 선생님의 답변이 만족스럽진 않았습니다. 문법책을 봤을 때 선생님의 설명과 벗어나는 예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천체를 나타내는 the moon, the universe, the sun 등의 표현입니다. 이들은 처음 언급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관계없이 ‘the’와 함께 쓰입니다. 이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는 정관사 the와 부정관사 a의 어원과 이에서 파생한 개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a와 the의 어원, 그리고 개념적 특성

영어사를 살피면 부정관사 a/an이 ‘하나’를 나타내는 말 one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의 …”는 “다수의 …”를 상정하고 (즉, an apple은 multiple apples가 있음을 전제하고), 이 다수가 이루는 집단(group)의 한 개체임을 표시합니다. 따라서 a/an의 경우 셀 수 있는 명사 앞에 나오게 되지요.

이에 비해 정관사 the의 주요 역할은 명사를 특정(to specify)하는 것입니다. 이 또한 어원을 살핌으로써 그 의미를 보다 상세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The의 어원을 따라 올라가면 고대영어의 중성 지시어 þæt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은 정관사 the 뿐만 아니라 지시대명사 that으로도 진화합니다. 의미상 정관사 “the”는 ‘저것’을 나타내는 말에서 왔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정한다’ 함은 ‘콕 짚어서 이야기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화자가 사용하는 명사가 청자에게도 알려져 있어야 합니다. 청자가 모르는 명사를 콕 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가 ‘저 책 좀 줘봐.’이라고 말할 때에는 ‘저’가 가리키는 것이 청자가 특정할 있는 물리적 영역에 있습니다. 말하는 이는 ‘저’라는 말을 청자가 이해할 수 있다고 가정하지요. 이같은 지시의 역할이 인식의 영역에 적용된 것이 바로 정관사 ‘the’가 하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자가 “the”를 붙여 말하는 명사는 청자의 인식 속에서도 특정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원리에 따르면 sun이나 moon 나아가 universe 등 천체를 나타내는 말은 언제 쓰이건 대화자 모두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해는 유일한 해이고 달은 유일한 달이며 우주는 유일한 우주이니 다른 걸 상상할 수 없죠. 처음 나오느냐 두 번째 나오느냐에 관계없이 대화자 모두가 알고 있다고, 다시 말해 화자 뿐 아니라 청자 또한 ‘아 그거’라고 특정할 수 있다고 인식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항상 the와 함께 쓰입니다.

한 가지 더할 것은 특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명사는 가산성이나 단복수성과 관련이 없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the를 붙여 특정할 수 있는 명사는 셀 수 있는 명사일 수도 (the apple), 셀 수 없는 명사일 수도 (the money) 있습니다. 또한 단수건 복수건 전혀 상관이 없기에 the apple이나 the apples 모두가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a moon’이나 ‘a universe’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달 vs. 위성, 유일한 우주 vs. 여럿 중 하나의 우주

말씀드렸듯이 현재 지구에서 ‘달’이라고 하면 하나의 달을 떠올립니다. 토끼가 절구질을 하고 있는 그 달이죠. (여기에서 지구를 돌고 있다는 다른 달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기에 ‘달’이라면 “the moon”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지구에서 달을 가리킬 때 반드시 the를 붙여서 쓰는 것은 아닙니다. 달의 양태는 여럿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달의 여러 모양 중 하나인 ‘큰 보름달’은 ‘a great full moon’이라고 할 수 있죠. ‘a blue moon’이나 ‘a half moon’이라는 표현도 가능하구요. 여러 형태와 색깔을 가진 달 중에 하나를 가리킨다면 ‘a ~ moon’을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a moon’이 가능한 경우가 또 있습니다. 지구인은 유일한 달을 이야기하므로 ‘the moon’으로 쓸 수밖에 없지만, 달이 여러 개인 행성이라면 말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 목성에는 달이 79개가 있습니다. 이 맥락에서라면 “The Earth has a moon while Jupiter has 79 moons.”라고 쓸 수 있습니다. “목성은 달이 79개이지만 지구는 달이 하나다.”라는 의미인데, 이 경우 ‘moon’은 평소 말하는 달이라기 보다는 일반적인 위성(satellite)의 뜻이 됩니다. 특정될 수 없는 일반적 개체가 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우주는 보통 ‘the universe’이지만 ‘a universe’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중우주론을 주장하는 물리학 이론에 따르면 이 우주 외에 다른 우주들도 있지요. 이 경우 현재 우리가 지각하고 살아가는 우주는 여럿 중 하나의 우주 즉, ‘a universe’입니다. 다른 우주들을 포함해서 ‘universes’라는 말을 쓸 수 있고요. 따라서 복수의 우주를 가정하는 이론체계 안에서는 “multiple universes”라는 표현이 얼마든 가능한 것입니다.

정관사, 부정관사, 그리고 총체와 가능성으로서의 세계

이와 같은 논리는 세계를 나타내는 world에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다음 예문을 보시죠.

a) The world is full of sorrow.
b) We want a better world.

위의 두 예문에서 ‘world’ 앞에 서로 다른 관사가 쓰였습니다. a)에는 정관사 the가, b)에는 부정관사 a가 쓰였죠. 왜 이런 차이가 오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세계’라고 말할 땐 ‘the world’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유일한, 그리고 특정한(specific)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b)에서 ‘world’는 가능성으로서의 세계입니다. 지금 눈앞의 세계는 하나일지라도 미래에 가능한 세계의 가능태는 수없이 많고 그 중의 하나가 바로 ‘a world’입니다. 그렇기에 ‘a better world’ 뿐 아니라 ‘a greater world’, ‘an ideal world’, ‘a miserable world’ 등의 표현도 가능하죠.

달은 하나이지만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세계는 하나의 총체이지만 가능성으로서의 세계는 무한히 열려 있습니다. 유일하게 정해진 것(definite)처럼 보이는 것들도 결코 특정한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는(indefinite) 것입니다. 어떤 틀에서 개념화되느냐에 따라서 그 인식론적 지위(epistemological status)가 달라지고, 함께 쓰이는 관사도 바뀌는 것입니다.

관사, 인식론적 지위를 트래킹하는 시스템

이렇게 보면 관사는 말하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명사의 인식론적 지위를 따라가는 일종의 트래킹 시스템(tracking system)입니다. 즉, 명사에 ‘꼬리표’를 달아 말하는 이가 지칭하는 바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정관사를 쓰는 경우 화자는 청자가 자신이 말하는 명사를 특정(specify)하여 따라올(track)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고, 부정관사를 쓰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 개의 개체 중 하나라는 것만 인식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지요. (자세히 논의하지 않았지만 관사를 아예 쓰지 않는 무관사(zero article)의 경우도 나름의 기능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저의 예전 영어선생님이 신정보/구정보의 틀로 부정관사와 정관사 사용을 구분했던 기술방식보다 훨씬 정확하게 관사의 사용을 포착합니다. 아인슈타인의 말을 따르자면 제 중학교 때 선생님의 설명은 “simpler(실제보다 더욱 단순화한)”한 것입니다. 이런 설명은 임기응변은 될지 모르지만 문법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키고 언어현상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학생들을 좌절시킬 수 있습니다. 제가 그랬듯 말입니다.

 

영어 관사와 화자의 의도: 아래 글에 이어 쓰려고 하다가 길어져서 쓰지 못한 이야기

관사의 쓰임을 신정보/구정보로 설명하는 방식은 또 하나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것은 관사의 쓰임을 온전히 텍스트 안에서 설명하려고 든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제가 소설의 첫 문장을 “I hugged the tree.”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고 가정해 보죠. 이 경우 전통적인 구정보/신정보 관점에서는 소설의 첫 문장이므로 “the tree”가 어색한 것이 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 문장은 전혀 어색하지 않지요.

사실 작가는 독자가 이 문장을 처음 읽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쓰는 책이니 모를 수가 없죠. 하지만 의도적으로 정관사를 쓴 것입니다.

작가가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나갈지는 알 수 없지만, 독자들에게 ‘나무’에 대해 특별한 설명을 붙이지 않는다면 “the tree”가 무난할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나무에 대한 호기심을 이끌어내려 할 경우에도 “the tree”가 ‘a tree’보다 적절한 선택이겠죠. 이어서 “I smelled the soil and walked with the dogs. I watched the river a while, serene and weary.” 같은 문장을 제시한다면 이들 명사가 하나의 앙상블(ensemble)을 이루어 더 큰 호기심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가 묘사하는 이 곳이 대체 작품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자아내는 것이죠.

따라 이런 경우 the tree 자체가 신정보냐 구정보냐의 문제가 아니라, 화자(작가)가 특정한 명사를 신정보로 개념화하느냐 구정보로 개념화하느냐의 문제가 더욱 중요합니다. 즉 화자는 정관사라는 도구를 통해 의도적으로 ‘알려진 것인양’ 포장할 수 있다는 것이죠. 사실 독자들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개체들을 연달아 the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추후 설명될 것’이라는 언질을 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화자의 의도를 명확히 하고 수사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 처음 등장하는 명사에도 the를 얼마든지 붙일 수 있다고 봐야 합니다. The의 선택 여부는 단지 텍스트 내의 규칙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사용자의 의도와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변증적 성격을 지닌 부정관사: 5년 전 오늘을 기억하며

영어 부정관사 a(n)은 상황에 따라 두 가지 상반된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구별하지 않고 언어를 사용하지만 사실 전혀 다른 층위의 개념을 표현합니다.

1. 먼저 어떤 개체 하나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He has a sister. She is very smart.”

여기에서 ‘a sister’는 한 명의 여자형제라는 뜻입니다.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sister들 중 한 사람인 것이죠.

2. 이에 비해 “a + 명사”가 한 개체가 속한 집단 전체를 대표할 수 있기도 합니다. 아래와 같은 경우입니다.

“A dog will be a great partner in your life.”

이 경우에 “A dog”은 ‘개 한 마리”라기 보다는 “개” 즉, 집단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개라고 불릴 수 있는 모든 동물을 대표하는 표현이지요.

1과 2는 결코 같다고 할 수 없지만 우리의 사고 속에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는 개념입니다.

한 사람은 개인임과 동시에 인간이라는 종을 대표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닙니다. 개별 안에 일반이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은 이야기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좋은 이야기는 하나의 특수한 이야기면서도 누가 읽더라도 울림을 주는 요소 즉 보편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죠.

“A(n)”의 의미는 이렇게 변증적(dialectic)입니다. 집단에 속해 있는 하나의 멤버 (one member) 이지만, 때로는 그 집단 전체를 가리킬 수 있으니까요.

저는 관사의 이런 변증적 성격을 통해 한 사람과 인류 전체의 관계에 대해 생각헤 보곤 합니다. “a person”은 “한 사람”임과 동시에 “모든 사람”일 수 있다고 말이죠.

5년 전 오늘 수많은 생명들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우리 곁을 떠난 한분한분은 단지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였을지도 모릅니다. 인류 전체였을지도 모릅니다.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이 아니며,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임과 동시에 대양의 일부”라고, 그리하여 “그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고 노래한 존 던의 시처럼 말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한분한분 안에 담겨 있던
온 우주를 기억하겠습니다.

못난 저를 보니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부탁하고 또 기원합니다.

거친 세상 속
망각으로 빠져들어가는
서로를 굳건히 붙잡아 주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It is … that 강조구문

It is … that 강조구문, 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무대에 등장하는 여러 요소들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각각의 요소에 동일한 조명이 비춰집니다. 그런데 때로 특정한 요소를 강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해당 요소에 스포트라이트(spotlight)가 가고 다른 요소들은 조금 어두운 조명이 비춰집니다.

예를 들어 John bought a gift for her mother at the restaurant yesterday. 라는 문장에서 “John”에 조명을 세개 ‘때리고’ 나머지는 조금 약한 조명으로 갈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영어에서 이 ‘조명’의 역할을 하는 것이 “It is … that” 강조구문입니다. 그래서 저 “…”에 들어가는 요소가 강한 빛을 받게 되지요. 여기에는 John도, a gift도, for her mother도, at the restaurant도, yesterday도 들어갈 수 있고요.

조명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It is … who”는 인물 전담 조명이고요. “It is … where”는 장소를 전담하죠. “It is … when”은 시간을 전담합니다. 이에 비해 “It is … that”은 만능이라 두루두루 쓸 수 있답니다. 좋죠?

아 한 가지 사과를 드려야 할 것 같군요. 사실 “It is … that”이 만능은 아니랍니다. 왜냐구요? “bought”를 강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재주는 많은데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거죠.

동사를 강조하는 방식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동사 앞에 “do” 동사를 붙이는 거예요. 그래서 저 문장을 강조하면 “John did buy a gift for her mother at the restaurant yesterday.”와 같이 쓰면 됩니다. 과거형이라 did를 썼고요. 조동사 뒤의 동사는 원형, 그래서 buy가 되었죠.

자 이제 무대에 등장하는 여러 요소 중 원하는 대상을 골라 “조명을 때려주는” 작업을 할 수 있겠지요? 조명을 적절한 요소에 적용하는 법을 배웠으니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적용해 보세요. ^^

관사의 기능: 트래킹 시스템

관사는 말하는 사람의 머리 속에서 명사의 인식론적 지위를 따라가는 일종의 트래킹 시스템(tracking system)이다. 즉, 명사에 ‘꼬리표’를 달아 말하는 이가 지칭하는 바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정관사, 부정관사, 무관사를 취하는 명사는 화자의 인식 속에서 특정한 영역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신정보/구정보 등으로 부정관사와 정관사 사용을 구분하고, 추상명사와 복수명사 등 무관사를 논의에서 배제하는 종래의 기술방식보다 훨씬 정확하게 관사의 사용을 설명해 낸다.

#관사공부중 #삶을위한영어공부 #인지언어학이야기

영어교사를 위한 인지언어학 이야기 48: 문법 새롭게 보기 – 인지문법의 세계 (2)

언어의 자의성(arbitrariness)이란 단어의 생김새와 뜻 사이에 아무런 관계도 없음을 말합니다. 필자가 지금 앉아있는 물건을 반드시 “의자”로 불러야 할 이유는 없으며 “chair”(영어) ㅎ혹은 “Stuhl”(독어)로 불러도 무방합니다. 누군가 공상과학소설을 쓰면서 같은 의미를 “%@87K”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요.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언어의 자의성이란 언어의 형태(form)와 의미(meaning) 사이에 필연적 관계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의자/라는 소리가 의자라는 개념에 대응하는 것은 사회적인 약속이기 때문이지, 둘이 필연적으로 묶여있기 때문이 아닌 것이죠.

세계의 실체들은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의해 움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물리적 실체 위에 그들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꺼풀(언어)을 얹어서 이리 저리 조작하고 서로 공유합니다. 그리고 그 ‘꺼풀’의 세계를 발전시켜 또 다른 상징적 세계들을 계속해서 생산해 냅니다. 물리적 세계는 하나이지만 그것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상징적 세계는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가끔 세계의 소통이 이렇게 ‘관계없는’ 요소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습니다.

언어의 본질, “Ghost in the shell”, 그리고 “the Construct”

어떤 의미에서 언어는 “ghost in the shell”과 통합니다. 이 표현은 SF의 한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攻殻機動隊)의 영문 제목에서 가져온 것으로, ‘껍질 안에 들어 있는 혼’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요. 여기에서 shell은 언어에 대응합니다. 위에서 예로 들었던 ‘의자’, ‘chair’, ‘Stuhl’ 등에 해당하는 소리 혹은 철자들은 그 자체로는 껍데기입니다. 그런데 이 껍데기 안에 개념이 담기게 됩니다.

여기에서 주의해서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의자”라는 말 속에 이 세상 모든 의자들을 담을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개별적인 의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의자/는 ‘의자성(chair-ness, 의자를 의자이게 하는 성질들)’을 가진 모든 사물들의 집합을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개별적인 물리적 실체(개별 의자)이 아니라 일종의 ‘유령(ghost)’과도 같습니다.

세계라는 몸에 껍데기(shell)를 씌우고, 거기에 혼(ghost)을 집어넣어 세계를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할 수 있도록 한 것. 삼라만상과 그 운행, 나아가 그것에 대한 지식을 코드화하여 작디작은 뇌 속에서 ‘돌려볼 수’ 있게 만든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 언어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ghost in the shell”로서의 언어에 대한 가장 탁월한 유비(analogy)는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 1편에 등장합니다. 모피어스(Morpheus)가 네오(Neo)에게 소개하는 컨스트럭트(The Construct)라는 세계가 그것입니다. 컨스트럭트에는 그 무엇이든 로딩(loading)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옷, 장비, 무기, 훈련 프로그램 등이 언급되지만 아름다운 계곡을 불러올 수도 있고 맛있는 음식을 순식간에 생성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오래 전 추억도 소환할 수도 있죠. 그야말로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컨스트럭트는 하나의 완벽한 세계입니다. 물리적 세계와는 다르지만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지고 있는 구조체인 것이죠.

문법과 대화, ‘컨스트럭트’의 로딩규칙 그리고 개입, 변형, 확장

문법은 ‘컨스트럭트’의 로딩규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컨스트럭트에 개념을 불러들일 때 어떤 규칙을 따라야 하는지를 정하는 가이드라인인 셈이죠.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들이 어떤 위계와 순서로 로딩되어야 하는지를 정합니다. 영어라면 ‘주어+동사+목적어’ 순서를 근간으로 다양한 요소들을 로딩할 수 있습니다. 품사는 특정 요소가 어떤 위치에서 로딩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각각 형용사와 명사인 ‘good’과 ‘people’이 함께 올 때에는 ‘good people’의 순서로 로딩되어야 하고, 관사와 명사인 ‘the’와 ‘people’이 함께 올 때는 ‘the people’ 순으로 로딩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대화를 통한 소통은 ‘여러 컨스트럭트의 교섭과 변형 그리고 확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화자는 자신의 컨스트럭트에 특정한 개념체계를 로딩하여 음성언어를 매개로 상대의 컨스트럭트에 보냅니다. 이를 받은 상대는 자신의 컨스트럭트 내에 대응하는 언어를 호출하여 반응합니다. ‘로딩’과 ‘전달’, 그리고 또 다른 ‘로딩’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같은 주고받음이 반복되는 교섭 과정에서 두 사람의 컨스트럭트가 변형되고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변화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컨스트럭트는 대화를 주고받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컨스트럭트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는 어떤 세계를 로딩하고 있습니까? 어떤 정령(ghost)들을 초대합니까? 어떤 컨스트럭트와 상호작용합니까? 어떤 컨스트럭트와 충돌합니까?

이에 따라서 당신의 ‘실재(the real)’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무엇이 실재입니까? 그것은 당신 자신이 결정합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빨간 약을 먹을지, 파란 약을 먹을지가 주인공 네오(Neo)의 운명을 결정하지만, 사실 어떤 약을 고르느냐는 일생일대의 결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순간순간 우리의 ‘컨스트럭트’를 조정하는 미세한 결정입니다. 어떤 생각을 할지, 어떤 언어를 고를지, 누구와 이야기를 나눌지, 거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고 어떤 생각을 버려야 할지를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이유입니다.

“I hear you”

‘듣다’라는 의미로 주로 쓰이는 ‘hear’에는 ‘이해하다’라는 의미도 함께 담겨 있다. 듣는 일(지각)과 상대의 마음/의견/상황/생각 등을 이해하는 일(인지)이 한 단어 안에 쏙 들어가 있다.

그래서 “I hear you.”라는 말을 좋아한다.

돌아보면 상대의 말을 다 들어보지 않고도 공감한다 생각한 적이 많았고, 상대방을 이미 이해하고 있다는 믿음 하에 상대의 말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적도 있었다.

상대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해하기. 다 듣지 않고 알 수 있다 믿거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지 않기. 지각과 인지 사이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기.

“I hear you.”가 내게 전해주는 교훈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인지언어학이야기

I just come and go

인간은 대부분의 시간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내가 활동주(agent)로서 자율적 행위를 하며 살아간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나고 죽는 것은 주체적 선택과 행위와 거리가 멀다. (영어를 기준으로) 태어나는 행위는 대부분 수동태(be born)로, 죽는 행위는 대부분 자동사(die, pass away)로 표현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동사는 “fall in love”인데, “fall”은 주체의 능력이나 의도를 가장 적게 담고 있는 동사 중 하나다. 흔히 말하는 ‘불가항’의 행위인 것이다.

어쩌면 물흐르듯 산다는 건 자동사를 늘려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Rise, breathe, walk, sit, stand, smile, laugh, cry, clap 그리고 언젠가 disappear, vanish…. I just come, stay a while, and go.

#인지언어학이야기 #잡생각

보통명사, 고유명사, 그리고 김춘수의 <꽃>

1. 보통명사는 개념에, 고유명사는 개체에 대응된다.

a chair는 세계의 그 어떤 의자에라도 대응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단어가 대응하는 것이 특정한 의자가 아니라 의자성(chairness)이기 때문이다. a chair에 대응하는 것은 물리적 의자가 아니라 ‘의자’라는 개념이다.

하지만 개똥이는 오로지 개똥이에 대응된다.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개똥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똥이/라는 발음은 생물학적으로, 물리적으로 유일한 개체인 개똥이를 가리킨다.

2. 우린 보통 ‘명사는 사물의 이름을 나타낸다’고 배우지만 이 명제가 보통명사와 고유명사에 적용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보통명사는 개념의 세계에 대응한 뒤 개별 대상으로 나아가지만, 고유명사는 구체적인 대상에 바로 대응된다.

3. 김춘수의 ‘꽃’은 이 차이를 시적으로 포착했다는 점에서 그 어떤 문법설명보다 응축적이다.

다만, 그의 시어들은 위의 문법 설명과 배치되는 면이 있다.

왜냐하면 본 문법설명에 따르자면 아래와 같은 싯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보통명사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고유명사가 되었다.”

4. 김춘수의 ‘꽃’이 그린 세계와 달리 어쩌면 지금 이 세계에서 필요한 것은 ‘꽃’이라는 보통명사에서 ‘몸짓’을 읽어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명명의 세계를 현상학의 세계로 바꿔내는 일 말이다.

#인지언어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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