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your brain on communication

Cognitive neuroscience of storytelling – One of the most interesting TED talks I have recently watched. Highly recommended.

“Neuroscientist Uri Hasson researches the basis of human communication, and experiments from his lab reveal that even across different languages, our brains show similar activity, or become “aligned,” when we hear the same idea or story. This amazing neural mechanism allows us to transmit brain patterns, sharing memories and knowledge. “We can communicate because we have a common code that presents meaning,” Hasson says.”

This의 심리적 의미

This! #This

영상 처음 멘트에, 또 맨 끝 자막으로 “This”가 나온다. #This 태그도 있다. ‘바로 이거’ 정도의 의미 되겠다. 기사나 영상을 공유하면서 별말 없이 “This”라는 주석을 다는 이들도 종종 있다. “This”가 기본의미로 쓰이면 화자와 물리적으로 가까운 대상을 가리킨다. 이는 화자와 멀리 있는 “That”과 대비된다. 그래서 눈 앞에 있는 뭔가에 주목하라고 할 때 “Look at this!”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아래 동영상의 제작자나 “This”라는 한 마디를 달고 게시물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This”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바로 자기 자신 앞에 있는 것” 즉, 심리적으로 가깝고 흥미로운 현상에 주목하기를 바란다. 일상생활에서 이미 이러한 “This”의 기능에 익숙해진 뇌는 “This”라는 표현에 자연스럽게/자동적으로 반응한다. 순간이지만 동영상이나 기사를 자기 앞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There is” 구문 중에도 이러한 this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There is this~ 구문이 있다. 예를 들어 “There is this weird guy at the local library.”라고 하면 “동네 도서관에 이런 이상한 남자가 있는데…” 정도의 의미인데, “this”를 사용함으로써 듣는 사람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마음 속 장면으로 청자를 초대하여 ‘가까이서’ 생생히 그 남자를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This는 물리적 거리이면서 심리적 거리다. 많은 언어표현은 이렇게 물리적 세계와 심리적 세계에 걸쳐 있다. 인간만이 언어를 가졌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많은 동물들이 나름의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리적 세계와 심리적 세계, 또 상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 언어의 특이성을 논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뭐 그리 대단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https://www.facebook.com/mlb/videos/10154269475682451/

시멘트 vs Cement, 그리고 뇌의 처리 패턴

한국어 사용의 ‘잔재’로 특정 영어 표현의 느낌이 영 좋지 못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cement a marriage/relationship”같은 표현. 한국어 단어 ‘시멘트’를 수십 년 써왔더니 저 표현들을 볼 때마다 공사장에 시멘트를 들이 붓는 장면이 생각나면서 눈살이 살짝 찌푸려진다. “결혼/관계를 단단하게 만들다, 유대를 강화하다” 정도의 중립적 의미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시멘트라는 구체적 개체가 ‘유대를 강화하다’라는 추상적 의미로 사용될 때의 뇌 활성화 패턴에 대한 연구는 있지만, ‘외국어-외래어’ 짝에 대한 반응을 살펴본 연구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비고츠키 & 레이코프

Posted by on May 23, 2016 in 링크, 수업자료, 인지언어학 | No Comments

What are the most-cited publications in the social sciences (according to Google Scholar)?

박사논문의 이론적 뒷받침이 된 두 이론가  Vygotsky와 Lakoff의 저작이 모두 25위 안에 있다.

몰랐는데 나 ‘주류’였나?

What are the most-cited publications in the social sciences (according to Google Scholar)?

전두엽은 CEO다?

전두엽(前頭葉, frontal lobe)은 기억과 사고력 등 인간의 고등행동(higher mental functions)을 관장하고, 뇌로 들어오는 다양한 정보를 조정하며, 다양한 행동의 실행을 관장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 부위는 종종 ‘사령부’나 ‘CEO’와 같은 메타포로 표현된다. 군을 지휘하고 기업을 이끄는 일은 사회문화적 영역에, 뇌의 기능을 관장하는 전두엽은 생물학적 영역에 속한다. 이 두 영역을 말끔히 연결해 주는 메타포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한다. “사회가 움직이는 방식은 네 몸의 질서를 따르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런’ 말이 어디 있을까?

군대 문화, 군대식 비유, 그리고 문화적 차이

“그 수업 토론과정에서 한 예시로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쟁용어를 언어에서 많이 쓴다는 의견을 들었다. 책을 안가져온 학생에게 전쟁에 총을 놓고 나간다는 등의 표현이나, 투자금을 의미할 때에도 총알이라는 은유를 사용하곤 한다고 하였다. 또, 예전에 지나가다 의대에 다니는 친구에게 들은 얘기인데, 의대과정에서는 6년간 다같이 가까이에서 공부하고 지내기 때문에, CC를 딱 한번에 기회만 있다는 뜻으로 선배들이 “총알은 딱 한발만 있다. 정말 확신을 들 때에만 쏴야한다.”라고 조언해주었다고 했다.” (은유와 관련된 수업과 관련해 한 대학원생이 보내준 글의 일부)

나: (캐나다 학생에게) 혹시 캐나다에서 이런 비유를 쓰나요? 수업은 전쟁터(battlefield), 교과서는 총(guns).
캐나다 학생: (소스라치게 놀라며) 아뇨. 절대요.
나: 이상한가요?
캐나다 학생: 네네 정말 이상해요.
영국 학생: 음…. 이해를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저런 비유를 쓰는 사람은 없을 거 같아요.
나: (대만 학생에게) 대만에서는 어떤가요?
대만 학생: 쓸 수도 있을 거 같지만 못들어봤어요.
나: (카자흐스탄 학생 쪽을 향하며) 카자흐스탄에서는요?
카자흐스탄 학생: 어 저런 비유는 안쓰고요. 카자흐스탄에서는 “차라리 머리를 놓고 오지.”라는 표현을 많이 써요.
좌중: ㅋㅋㅌㅌㅎㅎㅋㅋㅋ
나: 머리요?
카자흐스탄 학생: 네. 머리(head)요.

서로 다른 문화는 서로 다른 메타포를 만들어 낸다. 군사문화로 점철된 한국사회에 다양한 군대 메타포가 존재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고리를 끊지 않는 이상 학생들은 계속 ‘총’을 가지고 ‘전투’에 참가하는 ‘군인’일 수밖에 없다.

인지언어학과 행동경제학

행동경제학과 인지언어학은 경제학과 언어학의 중심에 “생각하고 느끼며 상호작용하는 인간”을 놓았다. 바로 이점에서 고전경제학과 행동경제학의 관계는 형식언어학과 인지언어학의 관계와 매우 닮았다고 할 수 있다. 변화 이후의 관점에서 “아니 이때까지 사람을 빼고 어떻게 경제와 언어를 이해한다고 한거지?”라는 질문이 나올 법하지만, 새로운 관점이 시대를 관통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다만 학문별로 변화의 속도는 다르게 느껴지는데, 경제학보다는 언어학에서 인간의 인지와 정서, 사회적 요인들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연구들이 더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경제학은 방법론의 측면에서 수학에 크게 기대고 있고, 이것이 학문적인 아비투스(habitus)로 작용하여 연구자들의 적극적 변화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반면에, 인지언어학은 60년대 이후 일어난 인지혁명의 흐름 속에서 주변 분야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 아닐까 싶다.

감추는 언어

Posted by on Mar 9, 2016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인지언어학 | No Comments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협한다.”
기술과 자본으로 무장한 인간들이 그렇지 못한 인간들을 위협하는 게 아니고?

“월스트리트가 세계 경제를 위협한다.”
소수의 금융가들이 정치인들의 비호 하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게 아니고?

“후기 산업사회의 탐욕이 대규모 환경 파괴를 가속화했다.”
소수의 인간들이 대지와 바다에 독을 쏟아 붓고 수많은 동식물을 죽인 게 아니고?

언어는 많은 것을 감춘다.

아니 그들은
추상화와 메타포, 우회적 표현 뒤에 숨는다.

아무도 감춘 이 없다 말하지만
감춰진 것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혼잣말과 인지발달의 관계에 대하여

사적 언어(private speech), 그리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한국어’: 혼잣말과 인지발달의 관계에 대하여

비고츠키와 그의 친구들이 관심을 가졌던 연구 주제 중에 ‘사적 언어(private speech)’가 있습니다. 사적 언어는 타인을 향한 발화 즉 사회적 언어(social speech)와 대치되는 개념입니다. 아동이 커가면서 혼잣말을 하는 경우, 예를 들어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중얼거리거나 순서가 있는 복잡한 과업을 해결하면서 자기 혼자 설명을 곁들이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성인의 관점에서 이런 ‘혼잣말’은 이상해 보입니다. 언어가 본질적으로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라면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줄기차게 한다는 건 비효율적이고 본질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피아제와 같은 발달심리학자는 사적 언어를 아직 성숙하지 못한 언어로 봅니다. 사적 언어의 사용을 (1) 사회적 언어를 전혀 습득하지 못한 상태를 보여주는 징후이자, (2) 인지적 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튀어나오는 알 수 없는 언어 사용으로 본 것입니다. 아이의 내면에 갇혀 아직 밖으로 터져나오지 못한 언어인 것이죠.

비고츠키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적 언어는 아동이 사회적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언어를 조금씩 받아들여 인지발달을 돕는 도구로 쓰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었죠. 그가 제시한 개념을 사용해서 이야기하자면, 사적 언어는 사회적 언어의 내면화(internalization) 과정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아동의 인지발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도구가 됩니다.

즉, 아이가 어떤 과업을 수행하면서 자신에게 말을 하는 건 실제로 자신의 행동을 제어(regulation)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줍니다. 이미 머리 속에서 100% 완성된 생각이 말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고 또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언어와 사고는 이렇게 서로 맞물리면서 과업 수행(행동)에 도움을 줍니다.실제로 조금 복잡한 과업을 아이들에게 주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하면 과업 수행에 심각한 영향을 받습니다. 이에 비해 조금 복잡한 과업이라도 스스로에게 차근 차근 말을 해가면서 풀어가면 금방 해결이 되기도 하죠. 말을 못하게 하면, 말만 못하는 게 아니라 생각의 과정 자체가 심각한 방해를 받는 것입니다.

언어와 생각이 짝이되어 ‘춤추는’ 경험이 누적되면서 말과 사고는 변증적으로 통합되어 갑니다. 언어는 단지 완성된 사고의 표현(expression)이 아니라, 사고를 구성하고 완성하는 도구–비고츠키의 용어로 보면 중재mediation–가 되는 것입니다. 사회적 언어가 내면의 언어로 변환되는 길목에 사적 언어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죠!

사적언어는 이렇게 아동기의 사고발달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지만, 성인의 발화에서도 종종 발견됩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한 학생이 프리젠테이션을 하다가 어떤 슬라이드를 보고 당황해서, “어 이거 아닌데, 이거 아니야…”라고 자기도 모르게 말을 하더군요. 프리젠테이션의 말투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말투였습니다. 또 줄곧 존대말을 사용하다가 갑자기 반말로 전환한 상황이었죠. 이 경우 “이게 아님”을 청중에게 전달하기 위한 의사소통적 기능이 분명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향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말이 튀어나온 거죠. 나중에 설명을 들으니 자기가 생각했던 슬라이드 한 장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더군요.

저 자신도 사적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화 도중에 틀린 말을 하면 ‘아 아니다’라고 말하며 정보를 수정하는 것입니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인데, 상대방을 향한 말이라기 보다는 저 자신의 인지적 활동을 모니터링하는 말에 가깝습니다.

인간은 예외 없이 사적 언어를 사용하며 성장하고, 이를 알게 모르게 인지하고 있죠. 그래서 제가 연배가 한참 높은 분과 이야기하다가 ‘아 이거 아니다’라고 ‘반말’을 쓴다 해서 얼굴을 붉히진 않습니다. “자네, 무례하구만. 어디서 반말을… ‘아 이거 아닙니다’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죠. (혹시 있다면 엄청나게 짜증이 날 듯하네요. ㅎㅎㅎ)

사적 언어가 사고를 제어하는 인지적 기능과 밀접한 관련을 갖기에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바이링궐의 언어 사용에서도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오늘 아침 한 친구분의 포스트에서 언급되었듯) 업무를 위해 100%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도 당황했을 때 한국말이 튀어나올 수 있고, 균형잡힌 영-한 바이링궐이라고 해도 아동기에 주로 한국어를 쓰고 자란 경우 감탄사가 한국어로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타인을 향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100% 영어를 쓰더라도 자신을 향한 말은 아동기의 주요한 언어가 튀어나오는 것이죠.

예전에 한 교수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분명 한국에서 대학교육까지 받은 친구가 말끝마다 “Ouch”를 연발하더랍니다. 한국인 친구들이랑 만나도 영어 사용을 멈추지 않았구요. 영어를 늘려야 된다는 일념 하에 고집을 피운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주변 친구들에게 “재수없는” 아이로 찍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궁금했습니다. ‘그 녀석, 엄청 놀라는 상황에서도 ‘Ouch’를 내뱉을까? 아닐 꺼 같은데?’

그래서 친구들은 계획을 세웁니다. 캄캄한 밤 모퉁이를 돌아서는 ‘Ouch’ 친구를 혼이 빠져나갈 만큼 놀래키는 거였죠.

Ouch 친구: (저벅 저벅 저벅)
친구들: (‘온다 온다 온다 준비’)
Ouch 친구: (모퉁이에 근접한다)
친구들: (모퉁이에서 튀어나오면서) “아아악ㄱㄱㄱ”
Ouch 친구: 아아… 아 깜짝이야.
친구들: “‘아 깜짝이야’래. ‘아 깜짝이야.’ ㅎㅎㅎ”

그림이 그려지시죠? :)

수학 문제 풀 때 스스로에게 말하는 분 안계신가요? 저는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저도 모르게 조금씩 혼잣말을 하게 되더군요. 옆에 사람이 없으면 소리를 내기도 하고요. 이 경우 머리 속에서 완성된 생각을 밖으로 내는 것이 아니라, 말을 통해 사고를 확인, 촉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변화된 생각은 문제 해결에 영향을 주고, 또 다른 ‘혼잣말’을 낳게 되죠. 이렇게 사고와 언어는 서로를 끌어주고 변화시키며 새로운 수준의 문제해결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혼잣말이 실은 인간의 사고 발달의 핵심적 기제를 보여주는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떨 때 혼잣말을 하시나요? :)

주체와 객체, 그리고 의식

Posted by on Jul 13, 2015 in 단상, 인지언어학, 일상 | No Comments

“Humans have consciousness.” vs “인간에게는 의식이 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전자가 인간을 의식의 소유 ‘주체’로 본다면, 후자는 인간을 의식이 터잡는 ‘장소’로 본다. 개인은 의식을 만들어 가는 주체이기도 하지만, 당대의 사회문화적 ‘의식’이 깃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즉, 의식은 주체(agent)와 객체(object)가 합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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