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frames about the evil forces

There are largely two frames about the evil forces: (1) They don’t know the facts. They are not able to put themselves in other people’s shoes. They are misinformed in every aspect. (2) They surely know how to ignore the facts. They are superbly able to “stick to their own shoes.” They have their own media, which exerts control across society.

The former construes the evil as “unable” and “misguided.” The latter as “able” and “self-generated.”

Yes, they are misinformed. But the more crucial is the fact that they can engineer and spread fake news as well as control media. They may hopelessly lack empathy, but the more dreading point is that they can generate the ‘alt-reality’ that soothes people’s indifference and intolerance, and even crowns hatred and violence.

The fight lies in how to decapacitate the evil, draining its financial, institutional, and psychological resources, not in how to explain their pathetic ignorance away.

읽기와 안구운동: 흥미로운 사실 몇 가지

Posted by on Jan 2, 2017 in 강의노트, 과학, 영어, 인지언어학 | No Comments

읽기와 안구운동에 대해 공부하면서 흥미로웠던 사실 몇 가지 (알파벳 기반 텍스트 기준)

1. 인간의 눈은 미끄러지듯 철자 하나 하나를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점프와 착지를 반복하면서 텍스트를 읽어낸다. 여기에서 ‘점프’는 불어의 대응어인 ‘saccade’로, ‘착지’는 영단어 ‘fixation’으로 부른다.

2. 눈이 점프를 하는 동안은 텍스트의 정보를 받아들일 수 없다. 다시 말해, 착지하여 머무르는 짧은 정지의 시간 동안만 텍스트로부터 정보를 가져올 수 있다.

3. 그런데 이런 ‘착지’시에도 왼쪽 눈과 오른 쪽 눈이 같은 철자를 바라보지 않을 때가 있고, 심지어 왼쪽 눈이 오른 쪽 눈보다 텍스트의 오른 쪽 철자를 바라보고 있을 때도 있다.

4. 평균적으로 점프 열 번 중 네다섯 번은 왼쪽과 오른쪽 눈의 타겟이 되는 철자가 다르다. 하지만 이 ‘어긋남’이 텍스트 이해에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

5. 눈이 착지할 시점을 정확히 잡는 것 같지만 점프의 10-15 퍼센트는 정확히 원하는 지점에 가 닿지 못한다. 눈이 우에서 좌로 ‘빽’을 하는 경우는 단순히 잘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눈의 계산 미숙에 의한 것이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독서시 안구운동은 ‘디폴트로’ 다양한 오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오류가 독서를 불가능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서수 앞에는 정관사 The가 필요하다?

First, second 등의 서수 앞에는 반드시 the를 붙여라?

저도 오랜 시간 이것을 ‘규칙’으로 외우고 있었습니다. 서수 앞의 ‘the’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우니까요. 그런데 이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다음 예를 보시죠.

“She took a first step in jazz.” (그녀는 재즈에 첫 발을 디뎠다.)

“It is a first step toward a deeper understanding of feminism.” (그것은 페미니즘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이와 같이 ‘a first ~’ 구문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죠.

아, first 말고 다른 예시는 없냐구요? (슬쩍 넘어가려고 했는데 ^^;;) 있습니다. 다음 예를 볼까요?

“She gave me a second look.” (그녀는 나를 두 번째(다시) 쳐다보았다.”

The coach gave him a second chance. (코치는 그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었다.)

이 문장들에서도 “a”가 서수인 second 앞에 붙었네요.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설명인 “the + 서수”와 이들 예는 어떻게 구별되는 것일까요?

다시 완벽한 정답은 없습니다만, 일반적으로 “the + 명사”가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The + 명사”는 특정(specify)할 수 있는 대상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The first”라는 표현은 여러 개의 대상 중에서 ‘첫 번째’라고 콕 짚어서 이야기할 때 씁니다. 예를 들어, 글 속에서 “There is a total of five examples.”라는 문장이 나왔다면 그 다음에 ‘첫 번째’라고 할 때는 “The first”를 쓰는 게 맞습니다. 다섯 가지 예시가 있다고 했고, 그 중에서 첫 번째는 특정할 수 있는 대상이죠. 독자는 다섯 번째 예시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거구요.

그런데 위에 제시한 ‘a first step’이나 ‘a second look’과 같은 표현들은 한정된 원소로 이루어진 집합에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와 같은 개념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첫 걸음’이라는 표현이 ‘두 번째 걸음’과 ‘세 번째 걸음’이라는 대상을 상정하지 않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a second look’은 ‘다시 보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 ‘첫 번째 보기’나 ‘세 번째 보기’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A second chance”의 경우도 동일한 원리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자 그럼 이런 원리를 염두에 두고 다음 문장의 관사를 골라 보시죠.

I need a/the/무관사 second job. (이대로는 먹고 살 수가 없네. 일자리가 하나 더 필요해. – 이런 맥락에서)

The politician is considering a/the/무관사 third option. (옵션 A와 B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던 사람이 새로운 옵션 이야기를 꺼낼 때.)

#관사공부중
#아직멀었다

This is your brain on communication

Cognitive neuroscience of storytelling – One of the most interesting TED talks I have recently watched. Highly recommended.

“Neuroscientist Uri Hasson researches the basis of human communication, and experiments from his lab reveal that even across different languages, our brains show similar activity, or become “aligned,” when we hear the same idea or story. This amazing neural mechanism allows us to transmit brain patterns, sharing memories and knowledge. “We can communicate because we have a common code that presents meaning,” Hasson says.”

This의 심리적 의미

This! #This

영상 처음 멘트에, 또 맨 끝 자막으로 “This”가 나온다. #This 태그도 있다. ‘바로 이거’ 정도의 의미 되겠다. 기사나 영상을 공유하면서 별말 없이 “This”라는 주석을 다는 이들도 종종 있다. “This”가 기본의미로 쓰이면 화자와 물리적으로 가까운 대상을 가리킨다. 이는 화자와 멀리 있는 “That”과 대비된다. 그래서 눈 앞에 있는 뭔가에 주목하라고 할 때 “Look at this!”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아래 동영상의 제작자나 “This”라는 한 마디를 달고 게시물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This”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바로 자기 자신 앞에 있는 것” 즉, 심리적으로 가깝고 흥미로운 현상에 주목하기를 바란다. 일상생활에서 이미 이러한 “This”의 기능에 익숙해진 뇌는 “This”라는 표현에 자연스럽게/자동적으로 반응한다. 순간이지만 동영상이나 기사를 자기 앞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There is” 구문 중에도 이러한 this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There is this~ 구문이 있다. 예를 들어 “There is this weird guy at the local library.”라고 하면 “동네 도서관에 이런 이상한 남자가 있는데…” 정도의 의미인데, “this”를 사용함으로써 듣는 사람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마음 속 장면으로 청자를 초대하여 ‘가까이서’ 생생히 그 남자를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This는 물리적 거리이면서 심리적 거리다. 많은 언어표현은 이렇게 물리적 세계와 심리적 세계에 걸쳐 있다. 인간만이 언어를 가졌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많은 동물들이 나름의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리적 세계와 심리적 세계, 또 상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 언어의 특이성을 논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뭐 그리 대단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https://www.facebook.com/mlb/videos/10154269475682451/

시멘트 vs Cement, 그리고 뇌의 처리 패턴

한국어 사용의 ‘잔재’로 특정 영어 표현의 느낌이 영 좋지 못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cement a marriage/relationship”같은 표현. 한국어 단어 ‘시멘트’를 수십 년 써왔더니 저 표현들을 볼 때마다 공사장에 시멘트를 들이 붓는 장면이 생각나면서 눈살이 살짝 찌푸려진다. “결혼/관계를 단단하게 만들다, 유대를 강화하다” 정도의 중립적 의미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시멘트라는 구체적 개체가 ‘유대를 강화하다’라는 추상적 의미로 사용될 때의 뇌 활성화 패턴에 대한 연구는 있지만, ‘외국어-외래어’ 짝에 대한 반응을 살펴본 연구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비고츠키 & 레이코프

Posted by on May 23, 2016 in 링크, 수업자료, 인지언어학 | No Comments

What are the most-cited publications in the social sciences (according to Google Scholar)?

박사논문의 이론적 뒷받침이 된 두 이론가  Vygotsky와 Lakoff의 저작이 모두 25위 안에 있다.

몰랐는데 나 ‘주류’였나?

What are the most-cited publications in the social sciences (according to Google Scholar)?

전두엽은 CEO다?

전두엽(前頭葉, frontal lobe)은 기억과 사고력 등 인간의 고등행동(higher mental functions)을 관장하고, 뇌로 들어오는 다양한 정보를 조정하며, 다양한 행동의 실행을 관장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 부위는 종종 ‘사령부’나 ‘CEO’와 같은 메타포로 표현된다. 군을 지휘하고 기업을 이끄는 일은 사회문화적 영역에, 뇌의 기능을 관장하는 전두엽은 생물학적 영역에 속한다. 이 두 영역을 말끔히 연결해 주는 메타포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한다. “사회가 움직이는 방식은 네 몸의 질서를 따르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런’ 말이 어디 있을까?

군대 문화, 군대식 비유, 그리고 문화적 차이

“그 수업 토론과정에서 한 예시로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쟁용어를 언어에서 많이 쓴다는 의견을 들었다. 책을 안가져온 학생에게 전쟁에 총을 놓고 나간다는 등의 표현이나, 투자금을 의미할 때에도 총알이라는 은유를 사용하곤 한다고 하였다. 또, 예전에 지나가다 의대에 다니는 친구에게 들은 얘기인데, 의대과정에서는 6년간 다같이 가까이에서 공부하고 지내기 때문에, CC를 딱 한번에 기회만 있다는 뜻으로 선배들이 “총알은 딱 한발만 있다. 정말 확신을 들 때에만 쏴야한다.”라고 조언해주었다고 했다.” (은유와 관련된 수업과 관련해 한 대학원생이 보내준 글의 일부)

나: (캐나다 학생에게) 혹시 캐나다에서 이런 비유를 쓰나요? 수업은 전쟁터(battlefield), 교과서는 총(guns).
캐나다 학생: (소스라치게 놀라며) 아뇨. 절대요.
나: 이상한가요?
캐나다 학생: 네네 정말 이상해요.
영국 학생: 음…. 이해를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저런 비유를 쓰는 사람은 없을 거 같아요.
나: (대만 학생에게) 대만에서는 어떤가요?
대만 학생: 쓸 수도 있을 거 같지만 못들어봤어요.
나: (카자흐스탄 학생 쪽을 향하며) 카자흐스탄에서는요?
카자흐스탄 학생: 어 저런 비유는 안쓰고요. 카자흐스탄에서는 “차라리 머리를 놓고 오지.”라는 표현을 많이 써요.
좌중: ㅋㅋㅌㅌㅎㅎㅋㅋㅋ
나: 머리요?
카자흐스탄 학생: 네. 머리(head)요.

서로 다른 문화는 서로 다른 메타포를 만들어 낸다. 군사문화로 점철된 한국사회에 다양한 군대 메타포가 존재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고리를 끊지 않는 이상 학생들은 계속 ‘총’을 가지고 ‘전투’에 참가하는 ‘군인’일 수밖에 없다.

인지언어학과 행동경제학

행동경제학과 인지언어학은 경제학과 언어학의 중심에 “생각하고 느끼며 상호작용하는 인간”을 놓았다. 바로 이점에서 고전경제학과 행동경제학의 관계는 형식언어학과 인지언어학의 관계와 매우 닮았다고 할 수 있다. 변화 이후의 관점에서 “아니 이때까지 사람을 빼고 어떻게 경제와 언어를 이해한다고 한거지?”라는 질문이 나올 법하지만, 새로운 관점이 시대를 관통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다만 학문별로 변화의 속도는 다르게 느껴지는데, 경제학보다는 언어학에서 인간의 인지와 정서, 사회적 요인들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연구들이 더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경제학은 방법론의 측면에서 수학에 크게 기대고 있고, 이것이 학문적인 아비투스(habitus)로 작용하여 연구자들의 적극적 변화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반면에, 인지언어학은 60년대 이후 일어난 인지혁명의 흐름 속에서 주변 분야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 아닐까 싶다.

Lo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