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법 발의 단상

Posted by on Oct 18, 2018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지난 주, 국회에서 강사법(시간강사 처우개선법)이 발의되었다. 일부 사립대의 심상찮은 움직임은 강사법 통과에 대한 노골적인 반대로 읽힐 여지가 있다. 이들의 반기가 실행으로 옮겨질 경우 강사법이 통과되고도 강사들 사이의 격차가 커질 것이다. 빈자 중 일부는 조금 나은 빈자가 되고, 다수는 그 가진 것마저 몽땅 빼앗기는 상황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한편 교수노조와 민교협 정도를 제외하고는 강사법에 대해 지지를 보내는 교수들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다. 교수들과 시간강사들의 삶이 겹치는 지점은 미미하기에 이런 ‘침묵’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적지 않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이 없듯 각자의 삶이 평행으로 달리는 상황에서 ‘평행우주’를 살아가는 것이다.

강사법의 통과 여부, 이후 원만한 실행 여부를 떠나 대학의 교육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긴 힘들 것이다. 문제의 핵심에는 시간강사들로 대표되는 비전임 교원의 열악한 처우와 지독한 불안정성이 있다. 한 학기가 시작되면 정신없이 달리다가 이내 방학과 다음 학기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삶, 매 학기마다 무작위로 주어지는 강의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게감 있는 연구나 깊은 통찰이 담긴 수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부정적 영향은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식상한 표현일지 모르나 분명한 사실이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가르치고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대학이 가진 지적, 사회적 기능의 몰락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특별한 재주가 없어 당분간 대학에서 밥을 먹길 원하는 입장에서 이번 법안의 처리와 여러 대학의 대응은 이 바닥에 대한 나의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이미 돈의 노예가 된 기관이라지만 돈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몇주 후 이 글을 돌아보면서 ‘별걸 다 기대했군’이라고 말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 예감이 틀리기를 간절히 빈다.)

아버지와 나

Posted by on Oct 18, 2018 in 강의노트, 단상, 일상 | No Comments
방금 “나의 삶에서 바꾸고 싶은 것”을 주제로 한 영작 과제를 읽었다. 오래 전 돌아가신 아버지와 라면을 함께 끓여 먹던 추억을 회상하는 뭉클한 글이었다. 학생은 “아직 아버지와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있는 힘껏 사랑하세요. 함께 시간을 보내세요.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주세요. 왜냐면 우리가 함께할 마지막 날이 언제일지 모르니까요.”라는 문장으로 글을 마쳤다.

오늘은 나의 아버지가 가신지 스물 여섯 해가 되는 날이기도 하다. <어머니와 나>에도 실었던 아버지와의 작은 추억을 꺼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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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어머니와 함께 한 점심. 지독했던 더위와 기적같은 가을 바람에 대해 이야기했고, 추석 때 어디에서 모일지 상의했다. 난 새로운 학기에 대한 우려와 기대를 말씀드렸고, 어머니는 사드THAAD 논란에서 누구 말이 맞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돌아오는 길 메신저 알림이 떴다.

“우야, 힘내라! 어제 꿈에 아빠가 나타났어. 잔잔한 미소로.”
“네, 어머니도 힘내세요. 근데 너무 힘들게 살진 마세요. 저도 아버지 보고 싶네요. 누런 서류봉투에 우유 싸 가지고 오시던 모습.”
“이제는 기도할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원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착각이죠.”
“맞아. 너희들이 아빠를 닮았어.”
“안 닮기 힘들죠. 하하.”
“파인애플 깡통 따던 아빠 모습. 너희들이 뺑 둘러앉아서. 기억나지?”
“그럼요!”

아버지가 파인애플 캔을 사 오신 날이었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과일 통조림이지만 어릴 적 파인애플 깡통은 한 해에 두어 번 볼까말까한 그야말로 귀한 물건이었다. 저녁을 먹고 캔을 개봉하겠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삼형제의 눈이 똘망똘망해졌다. 저녁상이 나가자마자 몸을 비비 꼬기 시작한다. 언제 따지, 언제 따지, 언제 따지? 맛있겠다, 추릅.

“아빠, 지금 먹으면 안돼요? 네? 네?”
“그러자, 뭐. 얼마 되지도 않는데.”
“와와와!!!!!”

환희의 순간도 잠시. 아뿔싸! 캔따개가 없단다. 안방, 마루, 건넌방, 부엌까지 샅샅이 뒤져도 찾을 수가 없단다. 이런 청천벽력이 있나. 삼형제는 울상이 되었다. 아니, 진짜로 운 것 같기도 하다. 그때 칼과 망치를 가지고 나타나신 아버지. 두둥! 칼끝을 뚜껑에 대고 캔을 돌려 가면서 망치질을 하니 철옹성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조마조마. 그 와중에도 형제들은 파인애플 국물이 튈 때마다 한숨을 내쉬었다. 쉽지 않아 보였다. 이제 겨우 반쯤 땄어? 세계 최장의 원둘레가 파인애플의 노예가 된 아이들의 인내력을 시험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인고의 시간은 파인애플의 달콤함에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아부지 최고! 파인애플 최고!”
“어? 국물까지 다 먹었네… ….”

어머니가 건네 주신 파인애플을 바라본다. 하얀 러닝셔츠 바람으로 위험한 연장까지 동원해 캔을 따 주시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두 분, 참 다르지만 또 참 많이 닮았구나 싶다

Dr. Hall in Seoul

Posted by on Oct 14, 2018 in 단상, 영어, 일상 | No Comments

Dr. Hall visited Seoul, South Korea and gave a plenary talk on the transdisciplinary framework for SLA in a multilingual world at the ALAK (Applied Linguistics Association of Korea) conference. Although I read the article by the Douglas Fir Group, the talk, with her articulate and persuasive voice and relevant examples, further challenged me to think deeper, act concrete, and become an agent of change as a teacher, however small it may be. It reminded me of those ‘good old days’: I fell instantly nostalgic for the vibrant, inspiring academic conversations on campus with so many bright minds.

A PSU reunion followed her talk. Our conversation flowed a long way, covering our then-to-now lives, international relations, US and Korean politics, her years as president of AAAL, the joy and sorrow of scholarly writing, and, of course, our dear memories in State College and beloved APLNG friends. Even though I took her language socialization class ten years ago, it felt like a blink of an eye. Time flies, we stay apart, but the karma is always there, interweaving us in a mysteriously wonderful way.

I got her autograph on her recent book, “Essentials of SLA for L2 Teachers.” I rarely ask authors to sign their books, but I felt I had to do this this time. It has already been ten years; I do not know when I can see her in person again. So I wished to cherish the shining moment for a long time.

Now it’s time to wrap up this week and prepare for this week’s classes. It was a great weekend. I feel a little bit more hopeful, even in the turmoils of this unfathomable world. Thank you Dr. Hall, and I hope you have a safe trip back.

아프고 슬프고 화나고 살짝 짜증나는 유기견 도림이 이야기

Posted by on Oct 10, 2018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동물을 사랑하는 친구분들과 같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오후 세 시 반 경. 따스한 가을볕을 받으러 신대방역으로 갔다. 갈대가 흔들리는 도림천 변. 조금 더운 날씨였지만 쏟아지는 햇살에 참 기분이 좋다. 10분 쯤 걸었을까. 아저씨 아주머니 네 분이 뭔가를 내려다보고 계신다. 다가가 보니 시츄 한 마리가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게 아닌가. (도림천에서 만난 이 강아지 친구를 도림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한 눈에 봐도 도림이는 생명에 지장이 있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안좋아 보였다. 그래도 네 분이나 둘러서 살펴보고 계시기에 아픈 마음을 접고 산책을 계속했다.

이십 여 분을 걷고 돌아오는 길. 도림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이번에는 할아버지 홀로 도림이를 지켜보고 계신다. 다가가 “누가 신고라도 하셨나요?”라고 묻는다. “아니요. 그냥 얘가 너무 불쌍해서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네요.” “아 그렇군요. 정말… 많이 아픈 거 같은데…”

바로 전화를 꺼냈다. 순간 어디로 전화를 해야 할 지를 모르겠기에 114로 전화를 걸었다.

“힘내세요, 고객님! 어디로 안내해 드릴까요?”
“정확히 어디로 전화를 걸지 몰라서 여쭙습니다. 유기견을 발견했는데요. 어디로 연락을 하면 될까요?”
“아 네. 어디이신가요?”
“네? 어디라뇨?”
“아 계신 지역이 어디이신가에 따라서 안내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아, 네. 동작구 2호선 신대방역 부근입니다.”
“네네. 그럼 동물구조관리협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 네. 거기가 동물구조를 담당하는 기관인가요?”
“네네.”
“문의하신 번호는 OOO-OOO-OOOO 입니다. 자동으로 연결하시려면 1번을 누르세요.”
(1번을 바로 누른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전화기를 든 채로 도림이를 다시 내려다 본다. 여전히 심하게 떨리는 몸. 눈이 완전히 풀려 있다. 세상 모든 게 다 무섭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아… 전화 좀 받아요, 빨리. 얘 잘못하면 죽는다구요.’ 수십 번의 신호에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전화를 끊고 “동물구조관리협회”를 검색해 전화번호를 다시 알아낸다. 여전히 답이 없다. 결국 구조협회는 포기한다. 웹사이트에 사단법인으로 나와 있는 걸 보니 휴일에는 쉬는 것 같다.

다시 114로 전화. 서울의 경우 개별 구청에 유기견과 관련된 부서가 있다고 알려준다. 신대방역이라 하니 관악구청 당직실로 연결. 신고를 친절하게 받아주시는 건 좋은데 긴급출동이 아니라 30여 분이 걸린다는 말씀을 하신다.

‘아 한시가 급한데. 정말 미치겠네.’

잠시 침묵이 흐른다. “매뉴얼을 보니 동물 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을 경우에는 119에서 출동을 하신다고 하네요. 그쪽으로 연락해 보시죠. 그래도 안되면 다시 연락 주시고요.” “아 정말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딸각)

119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설명하고 끊었다. 이제 10분 안으로 구조요원들이 온다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놓인다. 응급치료를 해도 주인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운명이지만, 당장 생명은 구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잠시 후 119 구조대원에게 연락이 왔다.

“거기가 어디죠?”
“여기가 신대방 1동 경로당 쪽인데요.” (참고로 신대방동은 동작구에 속한다.)
“아 그래요? 근데 저희가 동작구 쪽으로는 못 건너 가거든요. 이쪽 반대편에 구로전화국 가는 쪽에 나와서 기다려 주실래요?”
“네? 거긴 길 바로 건너편인데.”
“그래도 이쪽에 와서 기다려 주세요. 저희가 거긴 못가거든요”
“네네 알겠습니다.”

아, 행정구역 편의주의를 드디어 경험하는구나. 휴일에 근무하는 119 대원들이 고맙긴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닌 거 같은데. 요 앞에 차대면 금방인데 건너편으로 오라니, 라면서 건너편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몇 분이 지나 구급대원을 실은 빨간차가 왔다.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도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쪽입니다.” 대원 세 명과 나는 잰걸음으로 도림이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삼분의 이쯤 왔을까. 100여 미터 앞에 도림이가 보인다. ‘조금만 기다려 도림아. 곧 간다. 아저씨들이 너 금방 데려가 주실 거야.’

그런데 그 때 울리는 한 구급요원의 전화.

“아, 화재라구요? 어디죠? 네네. 네네. (반말로) 야 화재다, 긴급. 화재. 화재출동! 화재출동!”

앞장서 가던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도림이를 만나기 전 100미터. 구급대원들은 발걸음을 돌려 빨간차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건 뭔 황당 시츄에이션? 나는 급기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 저기 바로 저긴데! 저기 보이는데! 강아지 데리고 가시죠!”
(대원들은 대답도 없이 성큼 성큼 멀어진다.)
“저기 강아지가 보이잖아요! (거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데려가시면 안돼요?”

아아 사랑하는 나의 구조대원들은 갔습니다. 그렇게 가뭇없이 사라졌습니다…

허탈했다. 신고에서 119 대원들을 만나기 까지 한 시간 여. 눈앞에 도림이를 두고 화재 출동 신고를 받은 구조대원들이 사라졌다. 짜증이 났다. 화가 났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긴급 화재 출동이라는데.

터벅터벅 돌아와 아까부터 같이 계시던 할아버지, 이후 합류한 아저씨 한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저 보셨죠? 거의 다 왔는데…”
“그러게, 왜 돌아간대요?”
“화재가 났대요. 그게 우선인가 봐요.”
“그렇긴 하겠지. 사람이 먼저일테니까. 근데 다와서 그냥 가나.”
“네 그러게 말이예요. 우선순위가 있겠지만 황당하고 짜증도 나네요.”

오기가 생겼다. 도림이를 이렇게 두고 갈 수는 없다.

관악구청 당직실에 다시 전화를 했다. 구청과 연계된 사람을 보내준다고 했다. 다만 시간이 30분 정도 걸릴 거라 했다. 괜찮다고 말했다. 잠시 후 위치 확인 전화가 왔다. 신대방역에서 도림천으로 내려와서 구로디지털 단지역 쪽으로 오다 보면 기둥에 P31이라고 써 있는 곳이라 말해주었다. 네비를 찍고 오면 신대방1동 경로당이라고.

그렇게 30여 분의 기다림이 시작되었고, 짧은 시간 나와 아저씨 그리고 할아버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림이의 상태로 보아 그냥 놓아준 게 아니라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 던진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네 다리를 저렇게 동시에 못쓸 일이 있을까. 물에 빠져 있었던 것 같았다. 털은 지저분했고 눈은 풀려 있으며 다리 뒤쪽은 속살이 살짝 드러날 정도로 벗겨져 있었다. 다리를 제대로 못쓰니 일어나지 못했고, 한 자리에서 온몸을 계속 떨고 있었다. 어떤 분이 물을 가져다 주었는데 물을 마실 힘도 없어 보였다.

“저거 진짜 도로에서 천으로 던진 거면 진짜 천벌을 받을 놈이여.”
“정말 던진 거 같네요. 인간같지도 않네요.”
“이거 신고해도 응급처치하고, 주인 안나타나면 시한 되면 안락사 시킬 걸요?”
“아까 그 분들 출동해가지고 눈앞에서 너무하네요.”
“개고기 먹는 거 금지해야 돼요.”
“고기는 아예 못먹게 해야돼.”
“동물을 사랑할 자신이 없으면 첨부터 키우질 말아야지.”
“책임도 못질 거 왜 키우기 시작했디야.”

지나가던 한 여자분이 강아지용 통조림을 가지고 도림이 앞에 섰다. 캔을 따서 도림이 입에 대자 엄청난 속도로 먹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먹을 힘이 있다는 건, 그리고 저렇게 열심히 먹는다는 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는 뜻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이제 구청을 통해 연락한 단체에서 사람이 오기로 한 시간이 다 되었다.

아,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이게 왠일인가. 아까 화재 현장으로 출동한 대원들이 다시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황당했다. 30여 분 만에 화재 현장이 정리된 건가. 화재같지도 않은 화재였나. 그렇다면 다행이고.

“아, 아까 화재 출동하신 거 아니었나요?”
“아, 그게 다 정리가 되어서 바로 왔죠.”
“아 네, 다행이네요. 근데 다른 데 신고를 했는데 그건 취소를 해야겠군요.”
“네? 어디에다 하셨는데요?”
“아 구청에 연락했더니 유기견 관련 업무 담당하는 업체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아 네. 그래도 저희가 먼저 왔으니 강아지는 데려갈게요.”
“네네. 누가 데려가시든 잘 보호해 주시면 되죠.”

도림이는 구조대원의 손에 이끌려 휴대용 개집 안으로 들어갔다. 대원이 도림이를 일으키는 데 짧은 경련. 거의 경기에 가까운 떨림이다. 다리가 온전치 않으니 다리를 펴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통인 듯했다.

“그래도 와주셔서 다행이네요.”
“네네. 화재가 빨리 끝나서요.”

도림이 구출작전 상황은 종료되었다. 이제 다시 구청에 연락을 해서 구조요청을 취소해야 하는 타이밍. 그런데 바로 그 때 핸드폰이 울린다.

“유기견 신고하셨죠?”
“네네. 신고드렸는데, 지금 방금 119 구조대에서 와서 데려가고 계세요.”
“네, 뭐라고요? (당황+약간의 짜증) 여기에 신고하신 거 아니예요?”
“아 그건 맞는데요. 제가 119 신고했는데 화재 현장 가신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못오신다고. 그런데 화재가 빨리 정리되어서 방금 오셨어요. 아, 제가 바꾸어 드릴게요.”

119 구조대원과 동물 구조단체 담당자가 통화를 한다. 이야기의 내용으로 보아 119 구조대원이 동물구조 하시는 분께 도림이를 넘길 것 같은 분위기. 다시 전화를 돌려 받는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인사를 주고 받는다. 아깐 좀 짜증이 나긴 했지만 최대한 빨리 돌아와 주었으니 천만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저녁 미팅이 있었는데 도림이, 아니 휴일의 애매한 신고체계+예상치 못한 화재 때문에 한 시간 여를 미뤘다. 다시 한 번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낸다. 그래도 괜찮다. 도림이가 구조되는 걸 보고 가게 되어서.

자자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구청과 제휴한 동물보호 요원이 다시 전화를 하셨다. (나중에 알아보니 구청에서는 보통 동물병원 같은 곳에 구조를 위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가지 확인할 게 있어서 그러는데요. 처음에 강아지를 어디에서 발견하신 거죠?”
“아 신대방 역 밑에 도림천 부근요.”
“그런데 그게 신대방동 쪽이었나요? 동작구 쪽.”
“네 처음 발견한 건 그쪽이었죠.”
“근데 왜 동작구청으로 연락을 안하시고.”
(이 어이 없는 질문에 살짝 화가 났지만 나름 차분하게) “아 그게, 신대방역이라고 말하고 114에 물어봤더니 관악구청 전화번호를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저야 어디서 오든 상관이 없으니 연락을 그쪽으로 한거죠.”
“아 네네. 알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이렇게 파란만장한 오후가 갔다.
도림이와 함께한 두 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도림아, 제발 꿋꿋하게 버텨줘. 그리고 건강해져서 다시 누군가의 품에 안길 수 있길 바라. 삼촌이 간절히 기도할게.’

아 눈물난다.

교수법, 그리고 가르치면서 사는 일에 대하여

Posted by on Oct 9, 2018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1. 이론으로서의 교수법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은 권위적입니다. 유명 학자들이 쓴 교수법 책에는 (저자들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이게 가장 좋은 길이니 현장에 적용해야 해”라고 말하는 듯한 아우라가 있습니다. 이런 책으로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수업에서 주체의 삶과 유기적으로 통합되지 않는 과학적 지식은 힘을 잃게 되고 때로는 위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2. 하지만 많은 교사들의 경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명확합니다. “최선의 교수법은 이론-내부에 있지 않고 이론과 주체가 만나는 상호작용의 공간 interactive space 에 있다”는 것입니다. A+B에서 A나 B가 아니라 플러스(+) 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 플러스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생, 즉 교육 주체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3. 현재 대부분의 교수법이 교육주체의 자아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것, 다시 말해 교수학습이론은 교사와 학생의 내면에 대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할 때 교실은 주어진 교수학습방법론을 충실하게 적용해야 할 장소가 아니라, 반쪽짜리 교수학습이론이 재구성되어야 할 비판적 실천의 장이 됩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주어진 교수학습방법론을 ‘주체가 개입하여 재정의해야 할’ 장(field)으로 변화시키는 비판적 실천이야말로 교육이론을 밀고 나가는 궁극적 동력이 됩니다.

4. 이런 관점에서 회사는 경영-조직이론이 재구성되고 재창조되는 비판적 노동의 공간이, 종교기관은 전통적 교리가 재구성되고 재창조되는 비판적 신앙공동체가 됩니다. 이것이 가능할 때 우리는 일하는 기계나 맹목적 추종자가 아니라 전통과 현재, 나아가 새로운 여정을 탐구하는 역사적 인간이 됩니다.

5. 어떤 조직이든 주체의 역사-삶-지향, 즉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고려하지 못할 때 교조적이며 권위적인 공간으로 추락합니다. “하던대로 하라”는 명령에는 시간도, 실패도, 혁신도 존재하지 않지요. 시간이 사라진 공간은 성장하는 유기체가 아니라 회색 콘크리트일 뿐입니다. 겉치레가 아닌 실질적 혁신을 원한다면 비판과 소통, 실험과 실패를 권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6. “교직은 매일 마음의 상처를 주는 직업이기 때문에 우리는 용기를 잃는다. 반드시 교실에서 알몸으로 서 있는 기분을 느껴야만 용기를 잃는 것은 아니다. 칠판에 문장분석을 하거나 수학증명을 풀고 있을 때, 학생들이 졸거나 쪽지를 돌리기만 해도 교사는 낙담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과목이 아무리 아무리 기술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내가 가르치는 것은 결국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중한 것이 나의 자아의식을 형성한다.” – 파커 J. 파머. <가르칠 수 있는 용기> (한문화) 38쪽

교사는 매일 용기를 잃게 된다는 파머의 말이 마음을 파고듭니다. 하지만 상처를 받는 그 공간에서 상처를 넘어서는 용기를 얻게 되는 것 또한 사실 아니던가요. 어떤 일, 어떤 사람도 내가 원하는 반응만을 주진 않습니다. 기실 상호작용의 대상으로부터의 상처는 상호작용의 정의에 포함된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상호작용하는 “대상”이라고 썼지만, 그 대상은 나와 동일한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주체와 주체의 만남은, 주체가 대상을 제어하는 ‘이용’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기에 어긋나고 부딪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상처에 점점 취약해지는 저를 봅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부터도 꽤나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요.)

7. 오래 전부터 붙잡고 있는 화두가 있습니다.
아마도 평생 가져갈 화두인 것 같습니다.

“배운대로 가르친다.”

이렇게 말하든 안하든,
저를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예전에 배운대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배운 대로 가르치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모든 선생님들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도 아니구요.

다만 이런 경향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은
지식 자체의 성격과 맞물려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지식이라 하더라도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학생들에게 다른 *의미*가 되죠.

지식의 습득은
지식에 대한 태도와 의미가 구성되는 방식과
동전의 앞뒤면처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나 할까요.

이미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고,
교사 개개인의 자질이 나아지고 있다는 평가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교실에 대해 불신을 갖는 이유가 뭘까요?

이에 대해 한 가지 답을 내릴 수는 없을 겁니다.
한국의 입시문화, 학력주의, 신자유주의적 경쟁체제 등등,
교육을 쥐고 흔드는 괴물이 너무 많죠.

사회경제적, 문화적 자본의 불평등은
말할 수 없이 심화되어 가구요.

이런 비관적 상황 속에서
“그래도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나?”라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가르치는 사람들의 성찰과 소통,
비판적 실천, 그리고
더 나은 교육과 세상에 대한 의지가
희망의 단초가 되지 않을까요?

교사가
배운대로 가르치는 존재에서
배웠던 것, 방법을 의심하는 존재로,
최신 이론을 가져다 쓰는 존재에서
그것을 자신이 처한 교육의 맥락에서
재구성하고 발전시키는 존재로 성장한다면
멋진 일들이 조금씩 일어나지 않을까요?”

물론 여전히 상황은 비관적입니다.
교사가 교육 전체를 바꾸려고 하는 건
계란에 바위치기 같은 것이죠.

하지만 몇 년 안되는 교직 경력 속에서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선택한 순간
갑갑한 교육현실을 냉소하거나
학생들에 대해 절망할 자격은
영구히 박탈된다는 것.

절망적인 통계 결과 앞에서도
절망할 권리는 없다는 것.

가르치는 일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일이며
구체적 실천으로
희망을 만들어 가는 일이기 때문에…

“넌 할 수 있어” 처럼
값싼 희망의 말 몇 마디가 아니라
모두 같이 삶을 같이 일구어 갈 수 있다는 믿음.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지금의 절망을 좀더 더 절망적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그런 믿음 말입니다.

교육을 통해 인류가 가진
가장 값진 것들을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때
모두가 더 행복해 질 수 있다는 확신.

어떤 교과를 통해서건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희망.

가르치는 일은
이런 가치들을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할 운명에
스스로를 묶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8. 다시 질문을 던집니다.

“배운대로 가르친다면
왜 교사교육이 필요한가?”

저에겐 아직 답이 없습니다.
아마 평생 지고 가야 할 문제일 겁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나는 두 가지 구절이 있습니다.
파커 파머의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가르칩니다.”라는 말.

그리고 헨리 지루의 책 제목이기도 한
“교사는 지성인이다.”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입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스펙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학생 자신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자신의 일부가 될 지식을 만들어 나갑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지성인으로서 연구하고 토론하고 실험하며
우리 자신의 교육을 만들어 갑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가르칠 때
학생은 학생 자신으로 교실에 들어옵니다.
우리가 지성인으로 스스로를 정립할 때
학생들도 스스로를 지성인으로 키워갑니다.

9. 가르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또
역설적이지만 영광스럽게도,

“교육은 계급을 재생산하는가?”라고 묻지 말고,
“교육은 계급을 재생산해서는 안된다”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배운대로 가르치는 존재에서
평생 배우는 존재로 살아가는 일.

거창하게 들리지만
즐거운 여정 아닐까요?

매일 비틀거리지만
이런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습니다.

내게 충분한 것

Posted by on Oct 8, 2018 in 단상, 삶을위한영어공부, 일상, 집필 | No Comments

(입시나 취업, 승진과는 먼) “삶을 위한 영어공부”는 마케팅 슬로건으로는 빵점이겠으나,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삶을 위한 영어공부”는 99퍼센트의 한계와 1퍼센트의 가능성을 동시에 지닙니다. 실패가 예정되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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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면 충분합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따옴’ 없는 작은 따옴표

Posted by on Oct 7,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인용’이 아니라 ‘강조’ 혹은 ‘주관성’을 표현하는 ‘작은’ 따옴표의 용법이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름은 ‘따옴’표지만 ‘따옴’과는 관련 없는 ‘자기 나름’의 ‘강조 전략’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변하지 않는 것

Posted by on Sep 28, 2018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가끔 깜짝깜짝 놀란다.

나의 중학 시절과 현재 적잖은 중고교의 문법 유인물이 거의 같다는 사실에.

나의 사범대 시절 전공교육과정과 현재의 교육과정이 대동소이하다는 사실에.

나의 임고시절 시험대비 ‘바이블’이 현재도 판만 바꾸어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내 중고교 시절 영어 단답식 시험에서 ‘반점’의 기준이 지금의 수행평가 점수 부여시에도 똑같이 고민스러운 지점이라는 사실에.

세월이 지난다고 해서 기본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뀌어야 할 것들이 그대로 ‘뻔뻔하게’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리터러시”나 “4차산업혁명”을 논하는 것은 그야말로 말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갑작스런 죽음

Posted by on Sep 22, 2018 in 단상, 일상, 집필 | No Comments

어머니는 성북동 초입에서 잠깐 하숙을 치셨다. 업으로 삼으신 것은 아니고 어쩌다 하나 남은 방을 활용하셨던 것. 당신께서는 유난히 기억에 남는 한 ‘똘똘한’ 대학생 이야기를 몇 번 하셨다. 똑부러지는 서울법대생. 할 때 하고 놀 때 노는 스타일. 이른 나이의 고시패스. 오랜 검사생활. 국회의원을 거쳐 정당인으로 살아온 여정.

어머니가 방금 그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보내주셨다. 오늘 새벽에 길을 건너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했다. 사고 후 한 시간이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이제 겨우 60대 중반.

황망하기 짝이 없는 죽음. 한 번도 마주칠 일 없었고 알지도 못하지만 잠시나마 어린 나와 같은 공간 안에서 숨쉬었던 분.

“언젠가 한번 꼭 찾아가고 싶었는데… 방금 뉴스에서 소식이 나오는데 슬프네. 착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드네. ㅠㅠ”

어머니의 말씀이 아프다.

함께 했던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까.

그의 명복을 빈다.

#어머니와나

시간강사 제도 개선에 대하여

Posted by on Sep 4, 2018 in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여러 생각이 왈칵 몰려든다.

우선 기사 제목의 두 키워드 즉 “교원 자격”과 “방학때도 월급”이라는 말이 서글프다.

수년간 일을 해왔지만 정규 교원의 자격도, 방학 동안의 어떠한 급여도 없었기에 저 두 가지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마음이 먹먹하고 쓸쓸하다.

교원이 될 수 있다는 것,
방학 때 임금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
수많은 이들에 대한 ‘헤드라인’이 될 수 밖에 없는 현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무시할 수 없는 인원이 구직난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았던 운을 믿어보자면 앞으로도 일할 수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사람의 일은 알 수 없는 것이고, 설령 내가 괜찮다고 해서 정말 괜찮은 것은 아니다.

2010년 “제가 당신의 종입니까?”라는 항변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난 고 서정민 박사, 1998년 이후 강사 생활을 하다가 먼저 먼 곳으로 가신 여덟 분의 강사들을 기억하며 짧은 묵념을 드린다.

아울러 그간 강사제도 혁신을 위해 싸워온 모든 이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저 주변에 하찮은 불평을 늘어놓는 것 외에는 한 일이 없어 부끄러운 마음이지만, 이들의 헌신과 투쟁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더이상 고통받는 이들이 없기를, 누군가의 당연한 권리가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는 구조가 사라지길 빈다.

https://news.v.daum.net/v/20180903110033055?rcmd=rn&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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