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 동네, 그리고 태깅

Posted by on Nov 26, 2019 in 단상, 링크,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 No Comments

소셜미디어의 사용 패턴이 많이 변했지만 그중 가장 크게 느껴지는 건 소위 ‘멘션(mention)’의 사용법이다. 2008-2009년 시기트위터에서는 누군가를 ‘소환’하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운 행동으로 인식되었다. 길을 걷는데 뒤에서 반가운 친구가 ‘김성우!’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달까. 한꺼번에 여러 사람을 소환하는 경우도 많았고, ‘이거 좀 봐바바’하면서 링크나 이미지를 공유하는 일 또한 일상이었다. 당시만 해도 트위터는 ‘동네’로서 기능하고 있었던 것이다. (추억을 너무 우려먹는 것 같지만) 당시 진행했던 ‘떼창’ 프로젝트는 소셜미디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남았고, 덕분에 공중파도 살짝 탔다. 놀랍게도 그때 맺은 인연 중 적지 않은 분들과 페이스북 친구로 지내고 있다.

지금은 누군가를 호출하는 일이 상당히 조심스러워졌다. 트위터에서의 멘션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피하게 되었고, 페이스북에서 누군가를 태깅하려고 할 때는 ‘이 사람과 얼마나 가까운가’를 짐짓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갑작스런 호출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정도로 친한가 가늠해보게 되는 것이다. 호출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누군가의 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올려지는 게 탐탁치 않다. 그룹 초대도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다. 강제로 그룹 멤버로 추가했다가는 블락/언팔을 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오래 전 치기 어린 초초보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 온라인 공연을 몇 차례 가졌다. 추운 겨울 밤 김광석과 유재하의 곡들을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스트리밍 링크를 남기고 사람들을 태깅으로 초대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못난 음악을 들어주었고, 따스한 감상을 남겨주었고,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고 위로했다. 이제 소셜미디어상에 그런 동네는 사라지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느낌이다. 트위터에 가끔 놀러가긴 하지만 이젠 정이 가지 않는다. 대책없는 향수는 아니고 그냥 그렇게 바뀌어 왔다는 거다.

당시 종종 연주했던 ‘잊혀지는 것’을 슬쩍 남겨놓으며, 마음 속으로 꽤나 많은 이름을 태깅한다. 고마운 이들이 이 음악과 함께할 수 있다면 좋겠다.

 

던바의 수, 정보의 양, 그리고 탈진실

Posted by on Nov 21, 2019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 No Comments

인터넷과 미디어의 발달은 소통을 증가시켰지만 동시에 모든 곳에서 혐오하고 공격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이제 우리는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도 언제 어디서든 분노하고 상처받을 수 있다. 편재하는 고통과 혐오(ubiquitous suffering and hatred)의 시대. 사람들이 벽을 쌓고 오로지 자기편만을 불러들이는 상황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상처받기 전에 믿음을 진실로 만드는 ‘선제공격’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지금, ‘탈-진실’은 ‘탈-상처’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그래서 더욱 암울하다.

가끔은 개인이 사회적인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를 이야기하는 ‘던바의 수’와 같이 심리적인 안녕을 유지할 수 있는 정보의 종류와 양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너무 많은 것들이 우리 뇌를 찔러대기 시작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발동하는 것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그 학생의 질문

“선생님께서 불편하실 수도 있는데요. 말씀하시는 영어공부의 방법이 살아오신 것과 모순되는 점이 있지 않나요?”

오늘 강연에서 한 고등학생이 한 질문입니다. 제가 중고교 시절 공부했던 것과 <단단한 영어공부>에서 말하는 바 사이에 사뭇 큰 괴리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지요. 저도 성적 잘 받고 진학 잘 하려고 공부를 했으니까요. 제 삶의 전체 궤적을 보면 모순이라고 불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삶에서 한결같은 일관성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자신이 겪은 일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겪었던 영어공부가 만족스럽지 않았고, 이후에 영어교육을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깨달은 바를 나누려고 책을 쓴 것입니다. 지금 학교 생활에서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게 있다면 잊지 마시길 바라요.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학생의 묵직한 질문에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제 답변이 학생에게 만족스러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모순들을. 결코 잊혀서는 안되는 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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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이렇게 하지만
너무 자주 잊고 사네요.

학생과의 대화를 잊지 않으려
기차간에서 글을 남겨 놓습니다.

반 발짝 나아가기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썼던 문장들을 반복하는 듯한 느낌이 강해졌다.

아니 실제로 그런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세 가지 이유가 있는 듯하다.

첫 번째는 물론
내 공부의 부족이다.
먹고산다는 핑계로
깊게 공부하기 보다는
얕은 지식을 꿰어 강연을 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연구자의 입장에서 보면
‘게으르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강사와 연구자 사이에서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나를 본다.

내 삶의 조건들이 못마땅하기도 하고
괜한 비통함에 휩싸이기도 한다.

하지만 안다.
결국 공부를 지속하는 것은
오롯이 내 책임이라는 것을.

두 번째는,
현실의 완고함이다.
오래 전부터 이야기해오던
‘삶을 위한 영어공부’나
‘삶을 위한 리터러시’를 이루기 위해
현실에서 아직 갈 길이 머니
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한국사회의 영어교육과
리터러시 교육은
참으로 변하지 않는 듯하다.

목요일 성미산 학부모 강의 후 접했던
가장 뼈아픈 반응은 이것이었다.

“말씀하시는 방법이 참 좋은데,
그렇게 가르치는 선생님을 찾을 수가 없어요.”

학원이든 과외든
삶을 중심에 두고 가르치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는 말씀이셨다.

입시도, 내신성적도
학생에게는 중요한 삶의 일부이고
시장은 그것을 중심으로 자원과 전략을
배치할 수밖에 없음을 안다.

그렇기에 더더욱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이지만
끈질기게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는,
경청의 기회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응용언어학/영어교육 연구자에게
지속적으로 소통할 ‘현장’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일 것이다.

학생이건 학부모건 교사건
아니면 일반 학습자이건
함께 고민하고 삶을 나누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뭔가 질러보려고 한다.
방학때부터 학부모님들과
삶과 교육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장을 만들어 보려고
이런 저런 궁리중이다.

나의 경험과 지식이
그들의 삶과 만나
또다른 삶이, 실천이, 깨달음이 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쳇바퀴 돌듯 쫓기는 일상이지만
사유와 실천에 있어서는 반발짝이나마 나아가고 싶다.

내 힘으로는 도무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해 주시겠다는 분들이 있으니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큰 일이 아니면 어떤가.
서로의 삶으로 인해
아주 조금이나마
더 나은 우리가 될 수 있다면.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씨익 웃으며
‘이게 사는 거지’라고
중얼거릴 수 있다면.

세대론 유감

Posted by on Nov 15, 2019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 No Comments

여러 세대론이 나름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유

(1) 어느 세대나 ‘이상한’ 사람들이 일정비율로 존재한다. 해당 세대 내의 권력과 자본의 배분은 개개인의 성품을 압도하는 경향을 만들어낸다.(구조와 시스템의 힘)

(2) 글을 읽는 사람이 누구이든 주변에 해당 묘사에 맞는 사람들이 꼭 있다. 세대론 설명을 듣는 순간 그 사람이 ‘플레이된다.’ (확증편향)

(3) 세대는 역사의 흐름을 어느정도 인위적으로 잘라낸 단위이다. 인위적으로 잘라내는 행위는 본질화(essentialization)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본질화된 묘사는 ‘깔끔하게 핵심을 짚기에’, 설명력을 갖춘 이론의 아우라를 지니게 된다. (‘론’의 위력)

이에 더해 요즘들어 우려하는 것은 다른 세대를 타자화하려는 경향이 강해지지 않나 하는 점이다. 세대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강력한 설명기제로 삼을 때 세계는 더 깊이 분열된다. 말을 거는 세대론이 아니라 침묵을 요구하는 세대론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영어로 논문쓰기 초청강연 후기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초청 영어논문쓰기 강의를 무사히 마쳤다. 30-40명 정도의 인원을 예상했는데 거의 150명이 왔다. 대학원생들에게 영어논문쓰기가 꽤나 큰 관심사임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일전에도 이야기했지만 한 대학에서 영어논문쓰기 강의를 열었을 때 대학원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적지 않은 분들이 논문에 대한 이해를 대학원 필수과정으로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하지만 강의의 수명은 2년을 넘지 못했다. 강의를 열어주신 교수님 개인의견을 넘어 단과대학 차원의 정규과목 조정이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확실치는 않지만 비정규직 교수로서 오래 일을 하는 것이 학교로서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논문쓰기를 도제식으로 배운 선생님들은 ‘많이 읽고 많이 쓰면 된다’, ‘피드백을 잘 따라오라’ 정도의 수준에서 논문지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도 충분히 논문을 써내고 학계에서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성공’의 예가 해당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논문을 읽고 쓰는 훈련의 기회가 체계적으로 주어질 때 대학원생들의 잠재력이 더욱 빠르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학술정보원 팀장님은 강의평가에서 후속강의를 원하는 학생들이 많았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하지만 다시 강의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꼭 내 강의가 아니더라도 대학원의 학술리터러시 교육이 좀더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길, 대학이 진짜 돈을 써야 할 곳에 쓰기를 바란다.

#영어로논문쓰기 #학술리터러시

뭉크의 ‘절규’가 말하는 것

Posted by on Nov 10, 2019 in 단상, 링크,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 No Comments

기사의 내용은 현시대를 꽤나 흥미롭게 보여주는 유비다. 우리는 <절규>의 인물이 비명을 지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비명소리를 듣고 공포와 근심에 떨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 정작 소리를 질러대는 건 우리이고, 절규하는 이는 온갖 비명에 겁먹은 상황일지도 모른다.

“I was walking along the road with two friends – the sun was setting – suddenly the sky turned blood red – I paused, feeling exhausted, and leaned on the fence – there was blood and tongues of fire above the blue-black fjord and the city – my friends walked on, and I stood there trembling with anxiety – and I sensed an infinite scream passing through nature.”

https://qz.com/1577796/the-figure-in-edvard-munchs-the-scream-isnt-actually-screaming/

혐오의 연대, 사랑의 연대

Posted by on Nov 9, 2019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집필 | No Comments

민족주의적 이슈에는 “우리는 모두 하나”를 외치면서 계급적 이슈에는 “힘들면 노오오오력해서 출세하시든가”를 강변하는 이들이 있다. 전자의 영역에서는 하나가 되지 않는 이들을 비난하고, 후자의 영역에서는 모두 함께 잘살자는 이들을 비웃는다. 그 와중에 자신은 매우 객관적이며 공정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충만하다.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지만, 인터넷의 ‘베스트 댓글’을 보면 이들이 주류인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안다. 혐오의 연대는 빠르고 간편하지만 사랑의 연대는 아프고 지난하다는 것을. 미움은 시끄럽게 터져나오고 사랑은 말없이 스며든다는 것을.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빛나지 않아도 좋은

Posted by on Nov 8, 2019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집필 | No Comments

대낯같은 광명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문틈으로 비껴드는 석양의 붉은 햇살, 밤보다 조금 밝은 그림자 위 어스름 달빛, 긴긴 하루를 닫는 새벽별로 족하다. 세상의 빛이 되진 못해도 스러지듯 빛나는 세상 곁에 기댈 수 있어 다행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연수강의를 마치고

4주간 진행된 전국영어교사모임의 <교사와 연구자가 함께 궁리하는 ‘삶을 위한 영어교육’> 연수강의가 끝났다.

예전에 준비해 두었던 강의자료를 선생님들을 염두에 두고 조금씩 바꾸어 할 수 있는 강의였지만 준비하고 강의하는 동안의 긴장은 그 어떤 때보다 컸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분들이 많이들 오셨기 때문이었다.

다 끝내고 보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많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이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궁리하며 걷는 길이기에 비관할 수 없다. 멈출 수 없다.

‘삶을 위한 영어교육’의 문제의식에 공감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조금 힘들더라도 실천을 통해 삶과 영어공부가 함께 갈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다짐이 보였다. 가능성이 만들어지고 세상은 조금씩 바뀐다. 당장 변하는 게 보이진 않지만 변화를 체감할 때가 되면 서서히 바뀌고 있었음을 알게 되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힘겹게 달려온 자신을 꼬옥 안아줄 수 있으리라.

4주간 금쪽같은 저녁시간을 내주신 선생님들께, 행사를 조직하고 진행하느라 고생하신 전국영어교사모임 집행부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보낸다.

돌아오는 길, 훌쩍 차가와진 밤공기를 느낀다. 학기는 종반으로 내닫고 그리운 얼굴들이 마음을 스친다. 고마운 사람들 덕에 버틴다.

몸은 지쳤지만 맘은 푸근하다.
이 정도면 괜찮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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