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훈한 결론

Posted by on Aug 19,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논문쓰기 강의를 한 학기 쉬게 되었는데 마음이 허하다. 대신 한번 하고 말 것이 뻔한 과목들이 들어섰다. 이른바 ‘전문강사’의 힘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시간과 경험의 축적이 빚어낸 디테일에 있다. 세분화에 세분화를 거듭하는 시대, 공부는 더더욱 넓어져야 한다고 믿지만, 밥벌이를 위한 공부는 그래서는 안되는 것 같다. 할 줄 아는 게 꽤 되는 것 같지만 정작 잘 하는 건 없는 상황. 더 심각해지기 전에 기본소득 도입이 필요하다. (아 이렇게 바람직한 결론이라니.)

큰 비극과 작은 비극

Posted by on Aug 17,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누군가를 사랑할 힘이 아니라 이용할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 시대의 비극이라면, 그 ‘누군가’에 자신도 포함된다는 것을 모르는 삶은 각자의 비극이다. 큰 비극은 작은 비극의 컨텍스트가, 작은 비극은 큰 비극의 텍스트가 된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적폐청산의 철학

Posted by on Aug 9,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적폐(積弊; 오랫동안 쌓여온 폐단)가 적폐(適弊; 적들이 저지르는 폐단)가 되어가는 것 같다. 자기 안의 퇴행, 모순과의 과감한 결별을 보고 싶다는 게 그리 큰 바람일까. 촛불이 모여 세상을 밝혔지만 그 빛이 가장 먼저 도달한 곳은 자신의 얼굴이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8월 둘째 주

Posted by on Aug 7, 2017 in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물리적인 시간으로만 보자면 시간강사는 자유로운 편이다. 강의와 학사일정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일정을 스스로 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모든 업무가 무한정 늘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 강의가 끝나면 바로 다음 강의 준비를 시작해서 수업 시작 1분 전까지 몰아친다. 강의를 마치면 바로 다음 강의 고민을 시작한다. 학기 내내 이 패턴이 반복된다. 주말도 예외는 아니다.

강의자료를 미리 읽었다고, 대략의 개요를 짜 놓았다고 해결되진 않는다. 내가 그닥 머리가 안좋은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성향의 문제다. 그래서일까.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자신을 갉아먹는 바보같은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학기 숨쉴 틈 없는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면서 이런 강박(?)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이 굳어졌다. 여전히 강의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 삶의 균형을 깨뜨릴 정도라면 언젠가 큰 문제가 되어 나를 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강의자가 성장을 멈추면 학생들이 성장할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건강에 대한 걱정 또한 기우만은 아니다. 축적되지 못하는 경험에 대한 아쉬움도 커졌다. 별것도 아니지만 그것 밖에 없는 인생이니까.

요즘 비판적 응용언어학에 관한 이야기를 한 친구와 나누고 있다. 돌아온지 만 5년 만의 진지한 학술적 대화다. 한 분야를 오래 고민한 이들과의 대화는 학생들에게 배우는 바와는 조금 다른 결의 배움을 가능케 한다. 선생이 아닌 벗의 위치에서 배울 수 있음이 즐겁고 고맙다.

돌아보니 자신감은 사라졌으나, 이를 긍정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어리숙하고도 위태로운 긍정.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마음. 허나 자신감을 그리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나쁘지 않은 세월이었다.

7월도 다 보내지 못했는데 시작된 8월 둘째 주. 함께하는 이들 덕에 힘을 내어 발걸음을 내딛는다. 더위가 곧 물러가고 “아침 저녁으로는 그래도 좀 선선하네요”라는 말이 들려왔으면 좋겠다.

뜻밖의 방문

Posted by on Aug 5,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방학때 시간 되면 논문쓰기 세미나나 한번 할까요?”라고 말을 던진 건 지난 학기 말. 방학 중에 얼굴을 보자거나 공부하자는 말은 대개 까맣게 잊혀진다. 이번엔 달랐다.

함께 사회언어학과 언어교육에 대해 고민했던 다섯 명의 대학원생, 아니 예비 연구자들이 찾아왔다. 초압축 버전으로 논문쓰기 특강을 했다. 저녁식사와 차를 배경으로 펼쳐진 수다 또 수다. 진지와 유머, 아픔과 희망을 가로지르는 대화는 더없는 축복이다.

돌아오는 길. 서로 고마울 수 있어 고마운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2017.8.4.

꼭 뵙고 싶습니다!

Posted by on Jul 27,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꼭 뵙고 싶습니다.”

이렇게 설레는 멘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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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신청 정원 초과시 학생들의 메일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강사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거의 모든 메일에 부사 ‘꼭’이 등장한다. 위의 문장도 어느 학생의 메일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다.

내가 수업을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학기 말이면 그런 말은 나오지 않는다. 가끔 ‘꼭 다시 연락하겠다’는 친구들도 있지만 인연을 이어가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연락하고 만나고 지내는 학생들은 큰 인연이지 싶다.

이렇게 2학기가 성큼 다가왔다. 학생들을 보고 싶지만 방학을 보내고 싶진 않다. 딜레마는 언제나 시간이 해결해 준다.

현재란 무엇인가?

Posted by on Jul 25,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현재’는 흔히 생각하듯 ‘물리적 순간’이 아니라, 특정 시점에서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100% 확실하게 예측 가능한 사건들의 집합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아무말 대잔치

Posted by on Jul 21, 2017 in 강의노트,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1. Literally는 ‘말 그대로’이지만 비유적으로 사용될 때가 더 많은 듯하다.

예: “It literally killed me.” (<-안죽고 살아서 신나게 말하고 있음.)

2. ‘아무말 대잔치’를 제목으로 한 글들은 대개 읽을만하다. 아무말 대잔치는 진지하게 쓴 글 중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3. 유명인의 아무말 대잔치는 아무댓글 대축제로 급속히 발전한다.

4. “진실로”를 반복 사용한 수사 중에 예수의 말씀 빼고 쓸만한 얘기가 별로 없는 거 같다.

5. “It is true but…”, “I’m sorry but…” 등의 어구에서 “but”이 나오는 순간 앞의 ‘true’와 ‘sorry’의 가치는 땅에 곤두박질친다.

But은 진실이나 미안함보다 힘이 세다.

6. 내일 지방 강의가 있다. 진짜로 진짜로 자러 가야겠다.

성평등 인권교육

Posted by on Jul 17,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해마다 돌아오는 교직원 대상 성평등 인권교육. 예전에는 뻔하고 지루해서 힘들더니 이젠 날것 그대로의 묘사가 사뭇 고통스럽다. 운좋게 폭력을 비껴 살아온 나도 이렇거늘 폭력을 경험했거나 위험에 상시 노출된 이들은 어떨까? 성’평등’ 교육이니 모든 이들이 동일한 내용의 교육을 받는 것을 당연히 여겨야 할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끔찍한 상처를 헤집어야만 하는 이들이 있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학기말 단상

Posted by on Jun 28,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일상 | No Comments

학기가 끝났다.

길고도 힘든 학기였다. 가장 많은 강의를 했고, 새로운 과목도 셋이나 되었다. 몇 차례의 외부강연은 즐거웠으나 무리였다. 크게 아프지 않고 잔병으로 때운 게 기적만 같다. 능력이 되지 않는 일을 하려니 힘들 수밖에.

<언어와 사고> 절반을 강독으로 진행했다. 사실상 처음 해보는 강독 수업인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학생들에게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인데, 잘 모르겠다. 시험 결과의 표준편차가 꽤 큰 편이라, 강의평가에서 충격이 예상된다.

<학술적 글쓰기의 실제>는 대학원에서 가르쳐 본 수업중 가장 많은 수강생이 모였다. 내가 잘해서 그런 건 아니고 주말반이어서였는데 생각 외로 열심인 분들이 많았다. 20대 중반에서 60대 정도의 학생들이 골고루 모인 교실에서 배우는 게 참 많다.

사실 전공(응용언어학)에서 가장 먼 과목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이 또한 나의 강의가 특출나서라기 보다는 ‘다른 데서 들을 수 없는 수업’이라는 점 때문임을 잘 안다.

<논문 읽고 쓰기>을 필수 강의로 지정하면 좋겠다는 의견에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했다. 일하면서 대학원 수업을 듣는 이들의 좌절감은 생각보다 깊었다.

“다음 학기에도 강의 하세요?”라는 말에 “강사라 아직 잘 모르겠네요”라는 답이 튀어나왔다. “강사라”라는 말은 붙이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도한 자의식이 스물스물 마음에 퍼짐을 느끼지만 저항할 수록 더 커질 것 같아 턱을 괴고 지켜보고 있다.

이번 방학에도 흔들리며 공부를 해봐야겠다. 이룬 것은 없지만 욕심을 버려야 할 시기다. 아니, 욕심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값진 이룸 아니던가.

고마운 얼굴들이 떠오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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