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케치

Posted by on Jun 12,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1. “한국교육의 혁명적 변화”

당장 교육이 뒤집어지진 않겠죠. 하지만 이번 정부 하에서 근본적 변화를 위한 사회적 대토론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혁명을 이야기하는 데서 혁명이 시작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2. “영어교육은 어떻게 되나요?”
– “뭐 미래가 불투명하죠.”

영어. 한 번도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지 못하고 미궁에 빠져버릴 듯한 불길한 예감이 드는 요즘입니다.

3. ‘영어’가 아니라 ‘다양한 리터러시들이 어울리는 생태계’의 관점에서 고민해야만 하는 시점입니다.

4. “이런 표현 몰랐지? 너 무려 십수 년이나 공부했으면서 이런 표현도 몰라?”라는 광고를 보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집니다.

“알아서 퍽이나 좋겠구려.”

5. 오늘 한 친구가 대략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진짜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려면 다른 일로 돈을 벌면서 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진짜 좋아하는 일’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일’을 통해 더 좋아하는 일을 지속할 동력을 얻어야 한다는 데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6.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 즐겁고 함께하는 공부에서 기쁨을 얻지만, 정처없이 흘러가도 차오르는 대화를 해본 지 참 오래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가르쳐야 하는 책무가 아니라 서로를 응시하는 시간에 대한 목마름.

7. 보름 후면 돌아올 오랜 벗, 그와 함께할 공부를 기대합니다.

마지막 문장

Posted by on Jun 5,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밤새 얕은 잠 속에서 뭔가를 계속 썼다. 쓴 것을 모두 다 버리고 딱 한 문장을 남겼다. 그것만은 지켜야 한다고 다짐했다. 다시 아침. 애를 써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남은 것은 지독한 아쉬움, 휴식 후의 피로감. 그리고 뭔가 나쁘지 않은 걸 쓰긴 했다는, 몇 분 되지 않아 화석이 되어버린 기억.

꿈은 때로 무서울 정도로 현실적이다. 아니 현실은 종종 무서울 정도로 꿈같다 해야 할까.

스타퍼와 프리젠터

Posted by on May 21, 2017 in 수업자료, 영어, 일상 | No Comments

1. 어느 장단에 춤추라고요?

오래 전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생긴 일이다. 일회용 컵에 음료를 받아 조금 걸어야 하는 상황.

나: “여기 이거 음료 마개 있잖아요. 꼽는 거.”
점원: “아 (당당하게) 스타퍼(stopper) 말씀하시는 건가요?”
나: ” 그걸 스타퍼라고 하나요.” (‘마개 놔두고 왜 스타퍼라고 하는지)
점원: 네네. 여기 있습니다.
나: 감사합니다.

‘스타퍼’라는 유려한 발음을 듣는 순간 말문이 막힐 뻔했다.

몇주 뒤. 같은 가게, 같은 상황.

나: (그래 당신들의 용어를 써주겠어) 저 여기 스타퍼 하나 주세요.
점원: 네??
나: 스타퍼요. 들고 가야 되는데 샐까…
점원: (말을 끊으며) 아 마개 말씀하시는 건가요?
나: 네네. 마개요. 음료 안새게.
점원: (살짝 짜증나는 눈빛을 흘리며) 여기 있습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것인지.
다음부터는 무조건 마개다.

2. 파워포인트 ‘넘기는 거’ 구입기

지난 겨울, 강의를 위해 파워포인트 ‘넘기는 거’를 구입했다. 그 문구점 앞을 지나다가 당시의 짜증이 다시 올라왔다.

“저 파워포인트 넘길 때 쓰는 도구가 필요해서요. 클리커(clicker)라고 하나요?”
– “클리커요?”
“네.”
– “(전혀 모르겠다는 듯) 클리커가 뭐예요?”
“파워포인트 넘길 때 (엄지손가락으로 검지 손가락을 누르며) 이렇게 누르는 거요.”
– “(손님의 한심한 어휘 사용을 비웃는 듯한 말투로) 아 프리젠터?”
“아 그걸 프리젠터라고 하나요?”
– “네. 클리커라고는 안해요.”
“네네. 프리젠터 주세요.”

그렇게 프리젠터 샀다.
클리커는 절대 아니다.

갑작스런 이별

Posted by on May 19,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전화가 왔다. 짧은 통화. 3년 3개월 째 이어져 온 관계는 그렇게 툭 끊겼다.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지역 어린이 도서관의 문을 두드린 것은 2014년 3월이었다. 세 명으로 운영되던 초등 5학년 영어교실은 새로운 선생님을 찾고 있었다.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지역에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고, 좋은 기회라 생각해 큰 고민 없이 지원했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학생들을 만났다.

초기에 한 명의 학생이 떠났다. 오늘 남은 두 명의 어머니들에게 전화를 받았다.

첫 통화. 3년 2개월 여 만에 처음 듣는 목소리다.

“선생님, 너무 감사한데 저희 OO이가 이제 그만 가고 싶다네요.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학교 끝나고 바로 집으로 오고 싶대요.”

“아… 네… 뭐 특별히 힘들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런 건 전혀 없구요. 선생님도 재미있게 잘 가르쳐 주셨다고 하는데 이제 영어는 그냥 좀 안하고 싶다고 하네요.”

“네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갑자기 말씀드리게 되어서 죄송해요.”

“아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그럴 수 있죠.”

“네네. 워낙 귀찮은 게 많은 아이라.”

“예… 잘 알겠습니다. 담에 언제 다시 볼 날이 있겠죠.”

“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네. 안녕히 계십시오.”

잠시 후 다른 학생의 어머니와도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다. 두 분이 몇 년만에 연락을 하셨다고, 자신의 아이도 이제 수업을 그만 했으면 한다 했다.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예상치 못했던 통보. 조금 어지러운 마음. 3년 여의 만남을 기록한 대화 몇을 들추어 본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라는 노래 가사가 있다. 하지만 헤어짐은 대개 ‘안녕’을 알지 못한다.

‘나 그래도 꽤 괜찮은 선생인데.’

뒤끝 작렬이다.
뭐 하루 정도는 그래도 되는 거 아닌가.

좋아하는 이별 노래 하나를 꺼내어 듣는다.

인종차별 체험기

카투사로 한 군생활 말년이었으니 아마도 97년이었던 것 같다. 외근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오는 길에 부대에서 제공하는 버스에 올랐다. 먼저 도착한 부대원들은 저만치 뒤에 겉멋든 고딩들마냥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군바리의 특성상 합류는 이미 정해진 일.

통로를 지나려는데 아기를 앞으로 안은 백인 여성 하나가 보인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조심조심 지나간다. 본의 아니게 그녀의 등과 나의 등이 스친다. 한국의 대중교통 상황에 대입해 보면 정말 대수롭지 않은 마찰이다. 그런데 날카로운 목소리가 등에 꽂혔다.

“Fxxx”

순간 귀를 의심했다. 고개를 돌려 그 여자를 쳐다본다.

“What did you say?”
“You should have said ‘Excuse me’ when you passed by. You almost killed my baby.”
(“killed”라는 말이 몹시 거슬렸으나 꾹참고) “Okay, I’m sorry for not saying ‘Excuse me.’ But you should not use that kind of language to me. Watch your tongue.”

설교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피차 득될 것 없는 상황이었다. 마음을 가라앚히고 자리에 앉으려 했다. 그런데… 그런데… 이번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말이 뒤통수를 가격했다.

“Don’t yellow people know how to say, “excuse me”?”

“Yellow people”소리를 듣자마자 피가 거꾸로 솟았다. 다시 일어나서 그 여자에게 다가갔다. 격양된 목소리로 방금 한 말을 다시 해보라 다그쳤다. 내 격양된 어조때문이었을까. 그녀는 “‘Excuse me’라는 말을 썼으면 더 좋았을걸…”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런 태도가 역겨웠다. 사과를 받아내야 했다. 이 자리에서 정중하게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사과하라고 소리쳤다. 그녀는 그럴 수 없다고 버텼다. 고성이 오가기를 수 차례.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사과해라. 늦지 않았다.”며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녀는 끝까지 사과를 거부했다. 사과를 포기하고 자리에 앉았다. 모든 상황을 다 지켜본 친구 중 하나가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지 않았지만 입술을 깨물며 괜찮다 했다. 같이 일하던 상병 하나가 그녀에게 다가가 다시 한 번 사과를 해달라 정중히 말했다. 그녀는 사과할 것이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부대로 돌아와서도 아까 상황에 대한 울분을 삭일 수가 없었다. 고민 고민 끝에 다음날 업무를 마치고 부대장(여자 대위)을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다 듣더니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 주변에서 보고 들은 목격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 했다. 부대장은 “그점에 대해 유감이고, 네가 원하면 정식 절차를 밟아 군대 내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몇 번의 조사과정이 있을 것이고 조서를 작성해야 하며, 꽤나 성가신 과정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했다. 넌지시 ‘그냥 참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그 모든 과정이 너무 번거롭기도 하고, 그 여자와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정식 제재 요청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거의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이를 악물고 제소를 했어야 했나 할 때가 있다. 나 편하자고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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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심각한 글을 써버렸구나.
(우습게도!) 이 사건을 끄집어낸 건 아래 동영상이었다.

일상스케치

Posted by on May 14,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일상 | No Comments

1. 수업 시간. 언어와 세계에 관한 설명을 하다가 SLR 이야기가 나왔다.

나: 여러분들. 세상이 하나지만 사진기를 여러 모드로 놓고 찍으면 다르게 나오잖아요. 언어도 사실 그런 장치라고 볼 수 있거든요? 사진기 모드… 셀카모드 같은 거 말고 SLR 카메라에서 말하는 모드 아시는 분?
학생 2명: DSLR!
나: 네?
학생 1: SLR 아니고 DSLR이요. SLR이라고 말씀하셔서요.
나: 원래 SLR이 있고 그걸 디지털로 만든 게 DSLR이거든요. 그래서 D가 붙는 거죠. 디지털.
학생 1: 아…

디지털을 통해 아날로그를 보는 학생들. 단순히 카메라만의 문제는 아닐 것 같다.

2. 연휴같지 않았던 연휴. 할 일은 줄지 않아 스트레스는 쌓여가는데 실망스런 일까지 발생. 투덜투덜. 쫑알쫑알. 그 가운데에서도 명랑하게 나의 짜증을 받아준 짝에게 아부 모드로 멘트를 날리는데…

나: 자기 원래 그렇게 성격이 좋았어?
짝: 응. (지체없이) 자긴 원래 그렇게 성격이 나빴어?
나: ………….

아부 안통함. 역풍까지 맞음. 안좋던 성격 더 안좋아짐.

3. ‘내용이 제일 중요하지만 어떻게 말하는가도 무시할 수 없다’ vs. ‘내용과 형식은 씨줄과 날줄처럼 텍스트를 만들어간다’

온라인에서의 논쟁이 나름 괜찮은 결과로 이어지는 걸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고자 한다면 내용과 형식이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듯하다. .

4. 인천공항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발표된 다음 날.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인천공항 뉴스 봤다. 우한테는 좋은 소식 없을까?”
“없을 거 같은데요.”
“그렇구나.”

아마 없을 것이다.

5. 방학과 다음 학기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한다. 형편이 나름 좋은(=강의가 꽤 들어오는) 강사임에도 몇 주 후 어찌 될지 모른다.

그 와중에 감사+씁쓸하게도 학생들에게 또 나 자신에게 가장 실망했던 과목을 다시 맡게 되었다. 트라우마를 넘어설 수 있을까. 별것 아닌 일들이 왜 몸에 딱 붙어 떨어지질 않는가.

6. 학기가 5주 남았다. 끝나고 안아팠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일상스케치>라는 제목 참 오랜만이다.

대의민주주의 기본

Posted by on May 2,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선거를 “여러 상자에 담긴 공 주워담기”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나지지’, ‘후보A지지’, 후보B 지지’ 등으로 표시된 박스 안에 가지런히 누운 공들을 누가 더 많이 뺏어오느냐가 선거라는 생각입니다. 언뜻 보면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완벽하게 틀렸습니다. 유권자들은 아무 생각 없는 공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판단하며 표를 행사하는 시민입니다. 설사 말도 안되는 후보를 지지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선거는 정치인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한 명의 유권자는 한 후보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거 결과는 후보당 득표수로 결정되지만, 그 과정은 철저히 1:1의 관계맺기입니다.

선거 과정에서 후보 및 선본은 타 후보 및 선본과 경쟁하여 상자 안에든 표를 긁어모은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고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른다면 나는 그에게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바른정당의 ‘빽 투더 적폐’ 움직임을 보며

Posted by on May 2,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1. 대선을 지나며 우리는 ‘태극기 집회’와 ‘보수의 철옹성’에서 탈출한 사람들에게 어떤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까? 변화하는 정치지형에서 이들은 어떤 정체성을 형성(해야)할 것인가? 나는 이것이 현 대선이 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2. 유승민은 ‘건강한 보수’, ‘따뜻한 보수’, 혹은 ‘진짜 보수’와 같은 명칭을 사용했던 것 같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분당의 명분이 된 지점에서 자유한국당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한 것이다.

3. 이는 비단 유승민 후보만의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타 후보들도 극우적이고 반지성적 행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투표행위를 넘어서는 역사적 관점에서 추동하고, 이들 주체들의 ‘새로운 정체성’을 호명해 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광장의 촛불이 박근혜와 일당들을 감옥으로 보낸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일 뿐, 개개인의 정치적 지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내는 데는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4. 물론 새마을 운동과 박정희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이들은 ‘묻지마 투표’ 행태를 결코 버리지 못한다(라고 쓰고 ‘않는다’라고 읽는다). 한국전쟁을 경험했던 이들 중 다수는 ‘종북좌파’라는 말 한마디 만으로도 몸서리를 칠 것이다. 하지만 일부는 자식들의 간청에 져주는 시늉을 할 것이고, 일부는 ‘이번 한 번만’이라고 되뇌며 예전과는 다른 성향의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며, 일부는 진짜 마음을 바꿀 것이다.

5. 이렇게 변화의 징후가 되는 이들의 역할은 중대하다. 작은 변화라도 큰 파장을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록 소수일지라도 이들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견인해야 한다. 이들이 만들어 낼 작지만 의미심장한 파장을 증폭하여 한국사회 정치지형의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는 전략이 절실한 때인 것이다.

6. 생각해 보자.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던 이들이, 단 한번도 자리를 바꾸지 않았던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마어마한 변화 아닌가.

7. 얼마 남지 않은 선거운동 기간 ‘적폐’에서 등을 돌린 이들의 모습에, ‘우리편’이 아니라’ 역사의 편’이 된 사람들의 모습에 박수치고 환호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빈다. 이번 선거의 진정한 승리자들은 그렇게 변화한 사람들, 또 그 변화를 이끌어 낸 주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일을, 나는 나의 일을

Posted by on Apr 29,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어제 손석희 앵커가 그러더라.

“(외압을 비롯해 외부에서 들려오는 온갖 ‘네거티브’들에 대해) 그런 거 너무 신경쓰면 자기 일이 안되잖아요.”

“Let them criticize my work and let me do my job.”과 “Let them criticize me and I will hate them all.”의 차이랄까.

비판은 받고
내 일은 한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한 그 무언가가 있고
그것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예시의 적절성

Posted by on Apr 29, 2017 in 강의노트, 일상 | No Comments

“The org bore” -자기가 속한 조직(organization)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음으로써 청자/청중을 지루하게(bore) 만드는 일. 대중 연설에서 반드시 피해야 한다.

시험문제로 “the org bore”를 간단히 설명하고 예시를 들라고 했다. 한 학생이 정의를 내리고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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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여자들 앞에서 군대 이야기를 늘어놓는 일.”

참으로 적절하지만 ‘군대 가산점’은 없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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