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적 성격을 지닌 부정관사: 5년 전 오늘을 기억하며

영어 부정관사 a(n)은 상황에 따라 두 가지 상반된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구별하지 않고 언어를 사용하지만 사실 전혀 다른 층위의 개념을 표현합니다.

1. 먼저 어떤 개체 하나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He has a sister. She is very smart.”

여기에서 ‘a sister’는 한 명의 여자형제라는 뜻입니다.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sister들 중 한 사람인 것이죠.

2. 이에 비해 “a + 명사”가 한 개체가 속한 집단 전체를 대표할 수 있기도 합니다. 아래와 같은 경우입니다.

“A dog will be a great partner in your life.”

이 경우에 “A dog”은 ‘개 한 마리”라기 보다는 “개” 즉, 집단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개라고 불릴 수 있는 모든 동물을 대표하는 표현이지요.

1과 2는 결코 같다고 할 수 없지만 우리의 사고 속에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는 개념입니다.

한 사람은 개인임과 동시에 인간이라는 종을 대표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닙니다. 개별 안에 일반이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은 이야기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좋은 이야기는 하나의 특수한 이야기면서도 누가 읽더라도 울림을 주는 요소 즉 보편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죠.

“A(n)”의 의미는 이렇게 변증적(dialectic)입니다. 집단에 속해 있는 하나의 멤버 (one member) 이지만, 때로는 그 집단 전체를 가리킬 수 있으니까요.

저는 관사의 이런 변증적 성격을 통해 한 사람과 인류 전체의 관계에 대해 생각헤 보곤 합니다. “a person”은 “한 사람”임과 동시에 “모든 사람”일 수 있다고 말이죠.

5년 전 오늘 수많은 생명들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우리 곁을 떠난 한분한분은 단지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였을지도 모릅니다. 인류 전체였을지도 모릅니다.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이 아니며,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임과 동시에 대양의 일부”라고, 그리하여 “그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고 노래한 존 던의 시처럼 말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한분한분 안에 담겨 있던
온 우주를 기억하겠습니다.

못난 저를 보니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부탁하고 또 기원합니다.

거친 세상 속
망각으로 빠져들어가는
서로를 굳건히 붙잡아 주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유튜브, 그 시작과 끝.

Posted by on Apr 9, 2019 in 단상, 삶을위한영어공부, 일상 | No Comments

유튜브를 한다고 생각하고
일부러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보았다.

“영단어 암기 최강전략 TOP 5”
“영문법, 수십 년간 한국인을 속였다”
“10년 넘게 배웠는데 입도 뻥긋 못하는 이유”
“HAD BETTER는 ‘~하는 게 낫겠다’가 아니다”

음… 안되겠다. 이건 절대 내 스타일이 아니야.

“삶을 위한 영어공부와 슬로러닝”
“영어 사교육과 기업의 사회적 책무”
“영어를 위한 사람에서 사람을 위한 영어로”
“영어공부, 스펙의 중심이 아닌 삶을 위한 기예”

음… 유튜브는 아니구나.
5분만에 깔끔하게 접는다.

#단단한영어공부 #삶을위한영어공부

사과와 ‘변명’, 그리고 부탁의 말씀

Posted by on Apr 8, 2019 in 삶을위한영어공부, 영어, 일상, 집필 | No Comments

요즘 부쩍 <단단한 영어공부>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됩니다. 가급적 단순 광고가 아닌 내용을 담은 포스팅을 하려고 하지만 아무래도 피곤함을 느끼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그러시다면 이 포스트를 빌어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꾸준히 책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한해 전 <어머니와 나>를 내고 좀더 열심히 알리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기억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책이 나오고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고 교보문고에서 ‘5월의 책’ 중 하나로 선정해 주셔서 적어도 교보 매장에서는 꽤 많은 분들의 눈에 띌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나름 열심히 알리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는지 책이 그렇게 많은 분들의 손에 들려지진 못했습니다. 부족한 책이어서 그랬겠지만 제 노력의 부족도 분명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둘째는 책의 성격의 차이입니다. <어머니와 나>는 소통과 경청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사적인 영역의 기록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저 사이의 일상 대화가 주를 이루었으니까요.

하지만 <단단한 영어공부>는 수십 년 한국사회의 영어교육에 대한 고민한 바를 정리한 책입니다. 더 많은 분들께 알려지고 이를 통해 한국의 영어교수학습 방식이, 영어공부 문화가 변화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삶을 위한 영어공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다양한 분들을 만나고 싶다는 욕심을 갖고 있습니다.

조금 인내해 주시고, 함께 고민해 주시고, 이야기를 전해 주십시오.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불러주십시오. 이제껏 그랬듯이 계속 궁리하며 실천하겠습니다. 그리고 만나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단단한영어공부 #유유출판사 #삶을위한영어공부

나이듦의 의미

Posted by on Apr 5, 2019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집필 | No Comments

생물학적 나이는 하나다. 하지만 인간은 다양한 현상 앞에서 서로 다른 나이를 지닐 수 있다. 어떤 문제 앞에서는 수천 년 지혜를 구해 대응하고, 어떤 일에는 지금의 나이로 맞서며, 또 어떤 현상 앞에서는 어린 아이가 되기도 한다. 그때그때 단일한 나이 속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세월이 흐를수록 수많은 나이를 획득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게 되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제대로 나이든다는 건 어쩌면 수많은 나이를 자신 안에 들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자기계발에 대항하는 방법으로서의 STAND FIRM

Posted by on Apr 3, 2019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3월 마지막 주말, <Stand Firm: Resisting the self-improvement craze>를 읽었다. 제목이 시사하듯 자기계발의 시대의 광풍에 대항하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 Brinkmann은 자기계발서의 홍수와 끝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지혜를 금욕주의 철학에서 찾는다. 그리고 조심스레 다음 제안을 한다. (저자 스스로가 인정하듯 자기계발에 대항하는 자기계발서 느낌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존의 자기계발 담론에 대항하는 방법이기에 기존의 논리에 포섭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래는 각각의 항목에 나의 느낌을 더해 정리한 것이다.

1. 자기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늘리기 보다는 사회문화적, 정치적 세계와의 접점에 대해 고민하라. 세계는 자신의 내부가 아니라 자신과 세계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발견될 수 있다.

2.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인정하고 받아안으라. 세계는 절대 긍정성(positivity)으로 가득하지 않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 긍정적이어야 성공한다거나 긍정적이지 못한 사람을 바람직하지 않게 보는 관점에 저항하라.

3.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예스맨”이 성공한다는 식의 신화에서 벗어나라.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삶에서 자신의 공간이 생긴다.

4. 감정을 극대화하고 발산하는 것을 찬양하는 문화에 저항하라. 때로는 감정을 억누를 줄 알아야 한다. 이를 훈련하라. 감정의 조작까지 문화적 자본으로 삼는 문화를 경계하라.

5. 코치가 아니라 친구를 만나라. 코치와 멘토의 세계를 의심하라. 코칭 산업의 실체를 파악하라.

6. 자기계발서와 유명인의 전기를 읽기 보다는 소설을 읽어라. 소설은 삶의 총체성을 보여주는 데 있어 가장 탁월하다.

7. ‘미래만을 보고 나가자’는 말에 현혹되지 말고 과거를 더 깊이 반추하라.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과거에서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연마하라. 현재가 미래를 위한 희생이 되지 않도록 하라.

이러한 조언은 분명 한계를 가진다. 하지만 끝없이 자신을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의 논리에 저항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나는 무엇보다 “Stand firm”이라는 저자의 제안에 공감한다. 정신없이 시류를 좇다가 뿌리가 뽑혀 표류하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대지와 소통해야 한다.

오늘 나는 어떤 대지에 굳건히 서 있으려 하는가? 질문을 던져본다.

co(s)mic

Posted by on Mar 30, 2019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집필 | No Comments

 

책을 읽다가 이 단어에 한참 머물렀다. 제법 영리한 말장난이라 느꼈다. 이 거대한 우주, 그만큼 거대한 우스꽝스러움. 때로는 온 우주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는 것 같지만, 돌아서면 이 모든 게 너무나도 코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cosmic과 comics는 전철어구(anagram, 철자 순서만 바꾼 어구) 관계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짧아지는 인류의 기억 그리고 ‘대리사회’

얼마 전에 소셜미디어의 프로필에 “독서는 OOO”이라고 써 놓은 분을 보았다. 저 OOO에는 유튜브 채널의 이름이 들어간다. 프로필의 주인은 해당 채널의 운영자가 아니다. 자신의 독서 정체성을 유튜브 채널로 표현한 것이다.

종종 해외 사이트의 ‘도서 요약 정리 서비스’를 접한다. 한국에도 비슷한 서비스가 있다. 주로 경영경제 분야의 책을 다이제스트로 제공하는 형식이다. 이게 돈벌이가 되는 것 같다.

책을 대신 읽어주는 사회다. 영화도 리뷰 유튜버가 넘쳐난다. 독서보다는 강연에 이끌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직접적인 경험보다는 ‘잘 정리된’ 자료를 원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가끔 궁금하다. 강연이 끝나면 연단 앞으로 와서 ‘파워포인트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시는 분들 중에 해당 자료를 곱씹고 공부하는 분이 얼마나 될까? 그냥 강연자와 몇 마디 의미있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더 나은 선택 아니었을까?

김민섭 작가께서 생생하게 그린 ‘대리사회’와는 다른 측면에서 대리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아니 이미 널리 퍼져 있는 것도 같다. 점차 콘텐츠의 원본이 아니라 그 요약본, 많은 경우에는 조악한 ‘시뮬라크르’가 대중의 곁에 선다. 그것은 힘들이지 않고 소화될 수 있다. ‘공부’는 딱딱하다. ‘컨텐츠’는 부드럽다.

구글북스 N그램 프로젝트의 전반을 다룬 <Uncharted>(한국어 번역서는 ‘빅데이터 인문학 진격의 서막’)에 따르면 인류가 특정한 발명품이나 현상에 대해 기억하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한다.

특정한 발명품이나 개념이 등장하고 각종 책에서 인용되는 빈도가 정점이 될 때까지 시간이 짧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인용 횟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는 시간 또한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빠르게 유행하고 빠르게 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은 포털의 ‘인기검색어 순위’일 것이다. 아침에 1위하던 것이 오후면 한참 밀려나고 다음 날에는 순위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는 현상 말이다. 대중의 주의를 자원으로 하는 경제(attention economy)는 속도의 경제이기도 하다. 마음에 들건 안들건 속도는 망각과 짝을 이룬다.

정보가 많아지면서 더 많은 정보를 소화해야 할 필요가 생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우리에게 그토록 많은 정보가 필요할까? 혹시 뒤쳐지지 않으려는 욕심, 낙오에 대한 두려움, 새로운 지식에 대한 ‘허세’ 때문에 과식을 해대면서도 정작 필요한 자양분은 공급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던바의 수’에 따르면 사람이 친밀하게 교류하면서 깊은 유대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은 150명 정도라고 한다. 페북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과 ‘친구’를 맺지만 진짜 친구가 되는 경우는 상당히 작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관계가 팽창해도 인간의 사회성을 담당하는 뇌는 순식간에 ‘업그레이드’ 될 수 없다.

지식과 정보는 어떨까? 대신 봐주고 대신 읽어주고 대신 감상해주고 대신 비평해주는 ‘대리사회’는 어떤 득과 어떤 독을 가져다 주고 있을까? ‘읽고 치우는’ 독서가 아니라 ‘치우고 읽는’ 독서가 필요한 때는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리터러시의 외연과 기능을 확장하는 것만큼 정보와 지식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기다. 새로운 리터러시를 무조건 거부할 수는 없겠지만, 여러 모드의 리터러시, 광범위한 지식과 정보의 유통, 새로운 사회문화적 환경에서의 비판적 관점 등을 아우를 수 있는 틀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말이다. 더 빨리 소비하고 더 빨리 망각하는 삶을 긍정하기엔 정성을 다새 생산하고 더 끈질기게 기억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멀티리터러시

비판교육학

Posted by on Mar 25, 2019 in 단상, 사회문화이론, 일상 | No Comments

문득 박사과정 진학을 준비하던 시절, 한 후배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그는 나에게 무엇을 공부할 거냐고 물었고 나는 사회문화이론과 비판교육학(critical pedagogy)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바로 날아든 한 마디.

“비판교육학이요? 요즘에 누가 그런 걸 공부해요?”

별로 친분이 깊지도 않았던 그의 퉁명스런 답은 충격으로 남았다.

딱 맞는 비유는 아니겠지만 이런 느낌이었달까?

“마르크스요? 요즘에 누가 그런 걸 공부해요?”
“셰익스피어요? 요즘 누가 그런 걸 공부해요?”
“플라톤이요? 요즘 누가 그런 걸 공부해요?”

이후 그도 박사과정에 진학한 걸로 알고 있다. 이제 좀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프레이리를 공부하는 사람은 많다.
나 또한 여전히 프레이리를 읽는다.
세월이 갈수록 더 많은 것들을 배운다.

‘구식’이라고 폄하할 이유는 없다.
누군가가 ‘구식’이 되는 건
해당 인물 때문이 아니라
그의 시대와 사상을
온전히 해석하고 받아안지 못하는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영어울렁증 타파의 비법

Posted by on Mar 16, 2019 in 단상, 삶을위한영어공부, 일상 | No Comments

영어 울렁증을 타파하시려면? 우황청심환을 드십시오.

영어 네이티브처럼 못해서 문제라고요? 대부분의 영어 네이티브가 한국어 하는 걸 생각하시면 백배 잘하시는 겁니다.

영어 정복을 원하신다고요? 일단 한국어부터 정복하심이…

영어가 안되면? 번역기를 활용해 보세요.

#단단한영어공부 #삶을위한영어공부

‘덮는다’ 단상

Posted by on Mar 14, 2019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어떤 기사가 다른 기사를 덮는다는 인식은 확인할 수 없는 음모론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심각한 것는 이러한 인식이 시민을 철저히 수동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한다는 점이다. 언론의 보도에 따라 주관도 지향도 없이 흔들리는 비주체적이고 즉물적이며 ‘가련한’ 존재 말이다. 하지만 시민은 사건들의 점을 연결하고, 배후를 꿰뚫고, 분노를 숙성시키며, 구조적인 모순을 간파할 능력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세계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자신의 입장을 보다 견고하게 만든다. 늘 그렇진 않지만 대개 그렇다.

아이러니한 것은 ‘덮는다’는 말을 즐겨 쓰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언론보다 시민이 똑똑하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덮이는’ 사건에 대해 그토록 개탄한다면 한 가지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속을 가능성이 높으며 나는 그렇지 않다’는 엘리트적 의식에 빠져 있을 거라는 것. 나는 세상사를 제대로 보고 있지만 당신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음모론이, ‘작전’이 작동하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뿌리는 근본적으로 같기 때문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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