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참 각박해졌네

Posted by on Jan 19, 2018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허기를 급히 달래려 동네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여기 김밥 한 줄만 주세요.”
“네네.”
 
자리에 앉았다.
 
“근데 김밥에는 국물 안나오는 거 괜찮으세요?”
“네 국물을 안주신다고요?”
“네네. 국물 대신 물 드시면 되구요. 다른 메뉴 드셔도 되고요.”
 
메뉴판을 보니 다른 메뉴는 최소 두 배 가격이다.
 
“그럼 다음에 올게요.”
“네네.”
 
순간 허기가 싹 달아났다.
 
세상 참 각박해졌다는 생각.
다음엔 절대 안 갈 거라는 확신.
 
‘국물과 물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구요.’

승패사회

Posted by on Jan 19, 2018 in 강의노트, 단상, 인지언어학, 일상 | No Comments

조지 레이코프와 마크 존슨은 1980년 그들의 기념비적 저서 <삶으로서의 은유(Metaphors We Live By)>에서 인간 언어가 기본적으로 메타포적이라 말한다. 메타포가 언어를 아름답게 치장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사고 자체가 메타포적이고 이것이 언어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주장이다.

이 논리를 설명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예는 아마도 “ARGUMENT IS WAR(논쟁은 전쟁이다)”일 것이다.

참고로 영단어 argument에는 전쟁을 직접 가리키는 단어가 들어있지 않으나 한자어 ‘논쟁(論爭)’에는 ‘다툴 쟁(爭)’이 들어가 있으므로 학술적으로 적절한 번역은 아니다. 하지만 argument의 뜻을 나타내는 데에는 가장 적합한 단어이기에 그대로 둔다.

다음 예들을 생각해 보자. 논쟁에 있어 strong/weak point가 존재하고, 이걸 attack하거나 defense한다. 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strategy(전략)를 잘 세워야 하고, 때로는 상대방의 주장을 완전히 뭉개(demolish) 버리기도 한다. 상대의 논지를 하나 하나 깨뜨리는 행위는 shoot down으로 종종 표현되며, 적확하고도 효과적인 비판을 묘사하기 위해 ‘right on target’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알아 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위의 표현 모두는 전쟁 상황에 그대로 쓰일 수 있다. 이들 외에도 상당히 많은 표현이 argument와 war에 공통으로 나타난다. 즉 논쟁을 묘사하는 표현 중 압도적 다수는 전쟁을 묘사할 때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점에서 argument는 춤(dance)이나 정원 가꾸기(gardening) 혹은 건물 짓기(building)가 아니라 전쟁에 가깝다. 개념적으로든, 언어적으로든.

레이코프와 존슨의 논리는 간명하다. 전쟁을 나타내는 표현과 논쟁을 나타내는 표현을 구별할 수 없을 지경이라면 이게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삶으로서의 은유> 전반부는 다양한 예시들을 동원하여 이 주장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한다.

어제 가상화폐 관련 논쟁을 1분 쯤 보다가 껐다. 이후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글을 보니 2/3 이상이 ‘~가 이겼다’, ‘압승’, ‘제압’ 등의 단어를 내세운다. 내가 보기엔 별 의미 없는 평가이지만 실제 투자를 하고 있거나 관련 이슈들을 따라가는 분들은 나름 무게를 두는 듯하다.

토론이 전쟁이라면 승패가 전부일지 모른다. 하지만 토론이 무지를 밝히는 작업이라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가끔 모든 걸 승패로 환원하려는 세계가 두렵다.

Block Chain vs. LinkedIn 그리고 1/N

Posted by on Jan 15, 2018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처음 접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 이제 1/n에서 n이 무한대로 가는 것이구나’와 ‘이거 LinkedIn에서 제공하는 “업무능력(skills)과 이에 대한 보증(endorsements) 기능의 끝판왕인가?”였다. 각각에 대해 부연해 보려 한다.

1. 국가와 기간은행이 쥐고 있던 1/n의 권력을 이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들에게 부여하여 1/n의 값을 0에 수렴하게 하는 것. 블록체인의 다양한 측면 중 내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다.

몇몇 덩치들이, 그것도 엄청난 덩치들이 모여 신뢰를 보장하느냐, 아니면 그 누구도 힘을 쓸 수 없게 만들되 모든 것을 투명하게 관리하여 신뢰를 보장하느냐의 문제이다.

즉, 블록체인의 핵심은 권력과 신뢰의 문제를 수학적으로 풀어내고, 기술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게 돈이 되느냐 안되느냐가 아니라 화폐가 작동하는 기반을 바꾸어 낼 가능성이 있느냐가 핵심이다. 그리고 이는 단지 화폐경제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라고 쓰고 이걸 SteemIt에 올려야 하나 순간 고민했다.)

2. LinkedIn은 세련된 인맥관리 시스템 정도라고 보면 될 듯하다. 나도 뭔가 싶어서 만들어놓고 잘 들어가지 않는데, 가끔 알림 메일이 뜬다. 누군가가 나의 능력(skill)에 대한 보증을 했다는 알림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필자가 “Academic Writing”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한 것에 대해 30여 명이 보증한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은 (링크트인의 찌름(nudge)을 당해) ‘자발적으로’ 보증한 것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방식의 보증, 즉 특정대학이나 교육프로그램의 보증 방식과는 다르다. 몇몇 ‘덩치들’이 발급하는 졸업장과 수료증으로 대표되는 인증방식에서 벗어나 주변인들과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개인의 능력을 확인해 주는 방식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능력을 부풀리기로 작심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서로 인증을 해준다면? 자화자찬 난리법석 속에서 모두가 멋진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일종의 집단사기극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숫자를 거의 무한으로 늘린다면 어떨까?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과 작당할 이유도, 공모할 방법도 없게 만들어 버린다면?

최근의 블록체인 광풍과 관련해서는 네 가지 정도의 생각이 든다.

1. 최근의 투기열풍을 보면서 떠오른 건 우습게도 인터넷의 대중화 초기 ‘.com’ 도메인 구입 경쟁이었다. 별것도 아닌 도메인의 가격이 치솟고 사람들은 앞다투어 도메인을 사모았다. 그걸로 돈을 꽤 번 사람도 있지만 쌓아놓은 도메인이 처치곤란해진 사례가 훨씬 많았다. 이 시기와 이후 닷컴버블 붕괴의 경험을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닷컴비즈니스의 어두운 면만은 아니다. 서울비Lee Jun Seop가 말했듯 닷컴은 붕괴했지만 인터넷이라는 기술은 살아남았고, 이 기반 위에서 세계가 돌아가고 있다.

버블을 제거하고 땅을 다지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2. 현재의 투기열풍은 분명 문제다. 정부가 그냥 손놓고 있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합법/비합법이라는 한 가지 잣대로 이 사태에 대응하는 것은 실로 나이브하고 무책임한 것도 사실이다.

열풍의 밑바닥에는 특히 젊은 세대의 사회경제적 박탈감이 자리잡고 있고, 이는 기존 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탈법적’ 투자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법 내에서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시스템이 지탱하지 못하는 생존에의 욕구는 어디론가 터져나가게 되어 있다.

3. 정부 정책기조 중 하나가 4차산업혁명 아닌가? 소위 ‘4차산업혁명’의 외연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라도 블록체인 기술을 투기의 관점으로만 파악하기 보다는 새로운 플랫폼이 권력과 신뢰 시스템에 미칠 영향을 신중히 검토하며 그 순기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하지 않을까?

4. (좀 다른 이야기지만) 인터넷 초기의 흥분이 그랬던 것처럼 블록체인은 우리가 거대한 세계의 일원이 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나는 동네 주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블록체인은 기존의 중앙집권적 경제시스템과 비교할 때 분명 아나키적 요소가 다분하다. 하지만 이는 다시 공동체의 작동방식으로서의 아나키를 배반하는 듯하다.

덧.
얼마 전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낸 소결론은 이거였다.

“결국 기본소득이 중요하다.”

내가 가르치고 싶은 것 vs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

Posted by on Jan 10, 2018 in 강의노트, 단상, 일상 | No Comments

학술리터러시 발달과 관련된 논문을 썼지만 주 관심사는 메타포였다. 처음에는 인지메타포 이론을 깊이 가르치지 못해 아쉬웠다. 최근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나에겐 중요할지 모르지만 학계에서 읽기쓰기를 배워야 하는 이들에게 메타포는 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시험에 안나온다. 나에겐 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사소한 것이다.

개념을 이야기하는 글과 소소한 표현 정리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고 모두에게 가 닿는 것은 아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왜 그리 섭섭하던지.

교육을 한다고 하면서도 나를 중심으로 너무 많은 것들을 구축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집착이었을까? 혹시 오만함은 아니었을까?

소소한 영어공부, 천천히 읽기, 뒤집어 보기, 삶을 녹여낸 이야기 만들기… 이런 것들을 고민하게 된다. 힘껏 가르치고 나서도 가슴이 뻥 뚫린 듯 허한 수업은 점차 줄여가련다. 그래도 먹고 살 수 있다면 말이다.

방학하고 나서 뭘 그리 계속하느냐고, 제발 좀 놀라고 했는데. (주어 없음) 오늘 도대체 쪽글을 몇 개나 쓴 거냐.

자기계발의 속도와 삶의 속도

Posted by on Jan 10, 2018 in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죽도록 자기계발하기”
제목이 선정적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저녁과 주말 내내 아르바이트를 한다. 야근이 일상인 사람들도 많다. 그 와중에 끊임없이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달린다. 잠깐 숨을 고를라 치면 앞서가는 사람들이 이만큼이다. 자신이 한심하다. 쉼은 도태다. 도태되면 혼자이고, 혼자는 외롭다. 빈곤과 외로움은 더이상 인생 말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멈추지 않는 트레드밀의 뒤는 낭떠러지다.

하지만 Alexandra Schwartz의 말처럼 “세상 따라가지 말고 너 자신이 되어라” 같은 조언은 불편하다. 우리를 몰아가는 것은 환경이고, 이를 그대로 놔두고 개인만 변하라는 것은 열심히 자기계발을 하라는 요구 만큼이나 무책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냐는 질문에 답할만한 지혜도 자격도 없다. 다만 속도의 문제에 대해서는 잠깐 이야기하고 싶다.

정보는 엄청나게 증가한다. 기술은 숨가쁘게 발전한다. 지식의 양은 증가하고 전문성의 영역은 좁고 깊어진다. 휘몰아치는 변화다.

하지만 인간의 심장이 뛰는 속도는 일정하다. 인간이 감정을 처리하고 반응하는 속도도 일정하다. 의미있는 사회적 관계를 영위할 수 있는 지력과 사회적 능력 또한 폭발적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요약하면 인간의 몸과 그에 의존하는 다양한 능력들은 진화의 속도를 따른다.

사회는 변화의 속도만을 강조한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속도에 대해 침묵한다. 호흡하고 소화하는 속도에 대해, 심장이 뛰고 걷는 속도에 대해, 세상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속도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속도에 대해 모른척한다.

‘자기계발의 요구를 모두 거부할 수는 없겠지. 다만 그 가운데 더 근본적인 리듬을 잊지 말자.’고 읊조린다.

진짜 중요한 속도에 대한 감각이 절실하다. 성공이 아닌 삶에 대한 감각, 기술이 아닌 몸에 대한 감각 말이다.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18/01/15/improving-ourselves-to-death

그날이 오면

Posted by on Jan 1,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그날’은 오지도 안오지도 않아.

지금 살아있는 그리고 기억되는 우리 모두가

그날의 ‘1/n’일 뿐.

순간 순간 우리의 선택이

그날을 불러내기도, 거둬들이기도,

욕되게도 하지. — <1987>을 보고 나오며

일상스케치

Posted by on Dec 30, 2017 in 강의노트, 일상 | No Comments

1. 강좌기획, 강의장 섭외, 연락 돌리기, 재정관리, 유인물 준비 등 모든 업무를 혼자 감당하려니 조금은 벅차다. 그래도 방학에 국한된 일이니 이렇게 가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2. 강좌에 못오시는 분은 미리 알려달라고 두 번이나 이야기했으나 결국 입금기한을 넘겨 의사를 표현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의사표현이라기 보다는 잠수에 가깝…) 한두 분이면 그러려니 할텐데 ㅠㅠ 왜 그러는지 답답하다.

3. 한 친구와 새로운 합동강의 포맷을 고민중이다. 일을 궁리할 때가 제일 재미있다. 시작하면 또 좌충우돌이겠지만. :)

4. 아직 학기가 끝나지 않았다. 다른 일이 끼어들어서 그랬지만 이렇게 긴 학기는 처음이다. 내일 성적처리를 마치고 바로 논문쓰기 강좌 준비에 돌입해야 한다.

5. 방학[放學] 학교를 놓음. 즉, 학교 밖에서 일함. ^^

6. 채점의 무료함을 도저히 이기지 못해 넷플릭스에서 <맨헌트: 유나바머>를 봤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작품을 즐기시는 분들께 추천한다. 전편에 법언어학(forensic linguistics) 이야기가 나오므로 언어와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은 더더욱 재미있게 보실 듯하다.

기말 일상스케치

Posted by on Dec 14, 2017 in 단상, 삶을위한영어공부, 일상 | No Comments

일상스케치

1. “선생님하고 편하게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수업보다 더 좋은 거 같아요.” – 이거 칭찬인듯 하면서 칭찬 아니다. (유사품으로 페이스북에 인물사진 잔뜩 올린 사람에게 ‘실물이 훨 나으세요.’ 시전하기가 있다.)

2. 어쩌다 보니 글쓰기와 멀지 않은 직업을 갖게 되었다. 이 바닥에서는 출판(publication)이 최고의 (교환)가치를 지닌다. 공적 영역에서 전문가들에게 인정받는 글이기 때문이다.

반대쪽에는 사라져가는 편지가 있다. 삶을 나누고 시대를 함께 앓으며 치유할 수 없는 상처에 입맞추는 글. 논리와 어리석음이 교차하고 실없음과 시시함이 껴안고 뒹굴어도 괜찮은 글. 사람들, 그 중에서도 사람 둘 사이의 글.

요 며칠 예전 동료들과 글을 주고받으며 광장이 아니라 마음을 향하는 글의 힘과 향기를 새삼 느낀다.

3. 학기 후반,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도 볼 틈 없이 바빴다. 내일이면 학기가 끝나고 채점과 성적처리만 남는다. 1월부터는 또 정신없이 움직일 것 같아서 12월 하순을 최대한 비웠으나, 집채만한 일덩이 하나가 쿵 하고 떨어졌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방학이라기 보다는 유연근무제 시행기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4. 약속을 잡고 기다리는 시간이 좋다. 분주함은 기다림의 설렘을 앗아간다. 덜 바쁘면 더 많은 일을 해내고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일종의 징후이다.

5. 2017년 2학기는 다시 쓰기 시작한 시기로 기억될 것 같다. 학위논문 집필 후 가장 많은 분량을 써냈다. 그래봐야 남들에 비하면 얼마 안되지만 다시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내 등을 툭툭 두드려 주고 싶달까. 책을 궁리하고 함께쓰기를 계획한다. 전에 이야기했던 First Chapters도 시작해 볼까.

강사법, 네 번째 유예

Posted by on Dec 6,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시간강사법이 또다시 유예되었다. 벌써 네 번째다. 통과가 되었어도 심각한 문제가 파생되었으리라 생각하지만,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면 교육부나 국회가 이 문제에 대해 ‘립서비스’만 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당사자들간의 의견 불일치라는 그럴듯한 핑계로 강사들의 교원지위 획득 가능성은 또다시 물거품이 되었다. 강사법의 탄생에는 서정민 (2010년 당시 45세) 박사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다. 죽음은 너무 쉽게 잊혀지고 결심은 너무 쉽게 무너진다. 그가 대학에 대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랬다.

“한국의 대학 사회가 증오스럽습니다.”

독서모임 First Chapters

Posted by on Dec 3,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이런 이름을 가진 영어 독서 모임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책 한 권을 모두 읽고 와서 생각을 나누는 방식도 좋지만 저처럼 이책 저책 유랑하길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책의 첫 장 혹은 서문을 꼼꼼히 함께 읽고 나머지를 읽을지는 각자가 결정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겁니다. 책읽기를 제안한 사람은 저자에 대해 대략의 정보를 준비해 오구요. 대개의 책들은 첫 장만 꼼꼼히 읽어도 저자의 집필 의도와 책 전체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독서모임 포맷입니다.

넵, 기말입니다.
딴생각이 화수분처럼 샘솟는 계절이죠.

함께 고생하는 분들,
온갖 딴생각들과 동행하며
넉넉히 살아남으시길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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