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 응용언어학 관련 강의 목록

Posted by on Jun 10, 2019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대학원 후반부터 지금까지 40개 과목을 가르쳤네요. 조금씩 겹치는 것들을 제외해도 서른 과목을 훌쩍 넘기는군요.

1. Introduction to Academic Writing 1
2. Introduction to Academic Writing 2
3. Technology-enhanced Language Learning
4. Second Language Writing
5. 어휘와 문법 지도법
6. 영어교육방법 및 교육공학
7. 영미어문교육의 기초
8. 사회언어학과 영어교육
9. 사회문화이론과 영어교육
10. 제2언어 쓰기와 영어교육
11. 응용언어학 특강
12. 언어와 사고
13. 영어독해
14. ICT 영어강독
15. 멀티미디어와 영어
16. 영어작문
17. 학술적 글쓰기의 실제
18. 초등영어 교육방법론
19. 영어수업 설계 및 실기 1
20. 영어수업 설계 및 실기 2
21. 영어 말하기 듣기 지도법
22. 영어 읽기 쓰기 지도법
23. 영어학개론
24. 영어교재 연구 및 지도법
25. 제2언어습득론
26. 영어 문법
27. 영어교육 방법론
28. 초등영어 쓰기 지도법
29. 영어 어휘 지도법
30. 영어 문법 지도법
31. 영어 쓰기 지도법
32. Second Language Acquisition Seminar
33. Language Use and Culture
34. 초등영어 교수법 세미나
35. 초등영어 교수법의 이해와 적용
36. 초등영어 양적연구 방법론
37. 초등영어 교육론
38. 초등영어 듣기 말하기 지도
39. 초등영어교수법: 코퍼스 언어학을 중심으로
40. 멀티미디어 초등영어 현장연구

강사 지원 서류 준비하면서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이제 좀 덜 가르치고 좀더 잘 가르치고 싶네요.

일상스케치

Posted by on Jun 9, 2019 in 단상, 일상, 집필 | No Comments

1. 학기가 저물고 있다. 이번 학기 학생들의 반응을 도통 알 수 없어 힘들었던 과목이 코퍼스 언어학 개론이었는데 기말에 한 학생이 코퍼스로 논문을 쓰고 싶다고 말해주어서 마음이 조금 풀렸다.

2. 방학에 뭐할지 마음을 먹었다. 늘 그렇듯 휴식과 읽기쓰기, 그리고 강의다. 별일이 없으면 7월 말에 진주문고에서 독자들을 만나게 될 것 같다. 주변에 계신 분들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3. 다음 학기 대학 안에서 뭐하게 될지 정해진 게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어떻게 살지는 대충 감이 잡힌다. 이제껏 걸어온 길이 사라진다 해도 계속 걸을 수 있고 걸어야만 한다.

4. 삶을 위한 영어공부를 주제로 몇몇 교원학습 공동체 선생님들과 함께하게 되어 기쁘다. 앞으로도 선생님들과 많이 만나 궁리하며 고통과 희망을 나누고 싶다. 호흡이 긴 공부모임도 괜찮을 것 같고.

5. <단단한 영어공부>의 판매가 추락(?)하고 있는 가운데 다음 프로젝트에 대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어머니와 나> 때도 그랬지만 출판된 책이 잊히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내 책보다 훨씬 더 공을 들인 책들도 빛의 속도로 기억에서 사라지는 걸 보면 오래 살아남고 있는 걸까.

6. 돌아보니 수년 간 나의 현장은 강의실 안에 머물렀다. 좀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 좀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 좋아하지 않는 용어이지만 ‘뇌피셜’이 늘어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일 아닌가 싶다.

7. 공들여 쓴 글은 거절당하고 휘리릭 써내려간 글은 게재가 되는 걸 보면 역시 세상은 운이다. (먼산)

8. 리터러시에 대해 고민하면 할수록 복잡한 문제다. 리터러시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정연하게 풀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무지의 신

“대한민국에 영어교육 전문가가 어디 있습니까”라는 답글을 우연히 보았다. “내 주변에 전문가가 없다”를 습관적으로 ‘대한민국에 전문가가 없다”로 바꿔쓰는 분들이 있다. 전문가 자리에 오만가지를 넣어 말할 수 있는 용기까지 지닌 분들이다.

언젠가 소위 ‘글로벌 대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이 만트라처럼 여기는 생각을 들은 적이 있다. 아무리 날고 기는 인재들이 자신의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회사 담장 바깥에 더 뛰어난 인재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HR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무림고수’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이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의 지평 너머에는 반드시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 그 세계는 당장 볼 수 없기에 일종의 ‘신비’로 존재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세계와는 비교할 수 없이 넓고 깊다는 것이다. 그 세계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은 좁디좁은 나의 세계를 우주의 위치로 격상시키는 일이자 자신을 신의 자리에 앉히는 행위다. 그렇게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무지의 신’이 탄생한다.

나 자신부터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라는 엄연한 사실을 새겨야겠다.

#삶을위한리터러시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비고츠키와 장애

Posted by on Jun 3, 2019 in 단상, 사회문화이론, 일상, 집필 | No Comments

한 세기 전 러시아의 발달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는 아래 기사의 제목과 같은 맥락의 주장을 펼쳤다. 그는 장애를 한 개인 안에 있는 결핍으로 보지 않고 개인과 사회문화적 환경의 상호작용의 문제로 보았다. 나아가 장애를 하나의 정적인 상태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발달의 한 단계로 설정하는 관점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장애인의 이동권은 단지 장애인의 권리가 아니라 인간의 권리이며 사회가 인간을 대하는 수준의 문제가 된다. 잘못 설계된 도시는 일부의 사람들만을 환영한다. 그 결과는 철저한 배제와 비용의 전가다.

‘비장애인’은 ‘건강하고 이상이 없기’ 때문에 비장애인인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물리적 환경이 그의 몸과 상호작용하기 용이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비장애인’인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비장애인이 중심이 된 사회에서 비장애인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고 이를 ‘정상’이라고 호명하는 것만큼 비정상적인 것이 있을까. 시각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명을 건설하고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정상’이라고 부른다면 얼마나 황당할 것이냐 말이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그런 일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정상’이 ‘정상’을 구축하고 ‘비정상’을 배제하고 축출하며 차별하는 야만은 엄연히 우리 곁에 있다.

http://www.ziksir.com/ziksir/view/8248?fbclid=IwAR3vvGIxQEdWy-BLq_J9vvzqZM7pvKJZkBpresahR6do48OZ4EXrx-UKRm4

미움받는 법

지난 주 기말고사 일자를 공지했다. 늘 그렇듯 강의계획서에 나와 있는 학기 마지막 수업일이다. 수업이 끝나고 한 학생이 다가왔다. 오래 전부터 계획한 여행을 가야 하는데 시험 날짜를 바꿀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되려 일정을 바꿀 수 없느냐고 물었고, 그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사뭇 단호한 것이 당장 물러서지 않을 기세였다. 날짜를 물어봐 줄 수 없겠느냐는 너무나 간곡한 요청에 결국 다음 시간에 학생들에게 날짜 변경 가능여부를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날짜를 옮기는 데 모두가 찬성한다면 일자를 변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오늘 수업 시간. 여행을 가려는 학생이 리마인드를 해 주었다. 학급 전체에 물었다. “시험 날짜 당겨도 될까요? 저는 한 주 일찍 봐도 상관이 없습니다.” 교실을 둘러보았다. 그냥 예정된 날 보자는 얼굴들이었다.

다시 “그냥 그날 볼까요?”라고 물었다. 여기 저기에서 그러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럼 예정된 대로 봐야겠네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났다. 짐을 챙기는데 여행을 가려는 학생이 앞으로 나왔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길래 일정대로 볼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학생들에게 물어본다고 하셨잖아요.”
“네. 그래서 물어봤잖아요.”
“그래도 물어보신 게 아니잖아요.”
“???”
“거수해서 다수결 투표하지 않으셨잖아요.”
“아… 제가 교실을 다 둘러봤어요. 그대로 보자는 학생도 꽤 있었고요. 그러면 그대로 봐야죠.”
“그래도 다수결 투표를…”

그렇게 옥신각신 하다가 가버린 학생. 나는 마지못해 ‘미안하게 됐다’는 말을 했다. 여행을 취소하거나 미뤄야 하는 상황을 맞은 그의 얼굴엔 분한 표정이 가득했다.

사실 잘 이해되지 않았다. 왜 ‘다수결 투표’가 답이라고 생각하는지. 몇 명이라도 기존의 계획을 선호한다면 그대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다수결이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저 인식은 어디에서 온 건가?

황당하게 미움받는 거, 참 별로다. 그렇다고 피할 방법도 없다. 그래도 하나 배운 게 있으니 이제 시험 날짜 변경 요청을 받으면 단칼에 거절할 것이라는 것. 간곡함에는 단호함으로. 기말은 마지막 날에.

– 수년 전 일기에서

화산과 마음

Posted by on May 30, 2019 in 단상, 일상, 집필 | No Comments

화산이 어떻게 폭발하는지 온전히 이해한다고 해서

화산을 막을 수 있을까?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온전히 이해한다고 해서

마음을 막을 수 있을까?

#우문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몸 바꿔치기

Posted by on May 29, 2019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이거 제 몸 아니예요. 근데 괜찮죠?”
“아 어쩐지… 잘 어울리네. 난 언제 신제품 좀 써볼 수 있으려나. 몸 바꾼 지 벌써 3년이네.”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바꾸는 것에 이렇게 열광한다면 진짜 몸을 바꿀 수 있는 시대를 쌍수를 들고 환호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싶은 것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댓글분석의 한계?

나도 주로 언어를 보는 일을 하지만, 댓글분석 등의 궁극적인 약점은 사람마다 같은 방식으로 언어를 쓴다는 가정에 있는 듯하다. 하지만 질문해 보자. 내가 쓰는 A라는 단어는 당신이 쓰는 A라는 단어와 같은가? 미국 민주당원의 ‘자유’는 공화당원의 ‘자유’와 같은가? 50대가 정치권에 대해 사용하는 욕설 B는 10대가 학교를 향해 내뱉는 욕설 B와 같은가? 자가설문조사가 주체와 말 사이의 정합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것처럼 키워드로 특정 집단을 성격짓는 일은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컨텍스트를 거세할 위험을 갖는다. 분명 언어분석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맥락화하는 작업이 없이는 섣부른 결론에 다다르기 십상이다. 언어는 존재의 주요한 부분이지만 부분일 뿐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안개 속을 거닐다

Posted by on May 29, 2019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5월 말. 기말까지 3주 남짓 남았다. 이맘때면 다음 학기에 뭘 하게 될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번은 완벽한 예외다. 강사법의 여파로 (실은 교육부와 대학의 늑장대응으로) 까마득한 안개 속을 걷고 있는 것이다. 답답함이 크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이 어떻게 변곡점을 맞을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지나친 자의식은 금물이라지만 안개가 유난히 짙은 이번 학기는 자주 뒤를 돌아본다. 임용고사를 공부하다가 보다가 교육학 암기가 너무 싫어서 대학원에 진학했던 일(함께 스터디했던 조원 6명은 모두 합격)이나, 경제적인 급박함에 회사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미루었던 일(딴짓을 했지만 보통의 직장생활과 IT프로젝트 매니징을 배웠다), 함께 하고 싶은 학자와 공부를 하게 된 행운(배운 거 다 까먹게 생겼…), 돌아와서는 또 닥치는 대로 미친듯 일했던 기억 (돌아보면 어찌 했나 싶을 정도다).

기업에서 기업연구소로, 다시 대학으로의 이직은 나름의 방향성이 있었다. 그때의 순진한 마음은 대학을 겪으면서 솔직한 마음이 되었고 여느 처세서의 말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매끈둥글해진것이 아니라 까칠뾰죽해졌다. 경지에 이르지 않은 이상 부드럽기만한 마음으로 시간강의를 이어가긴 힘든 것 같기도 하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지경. 목표지점은 언제나 머리 속 지도 위가 아니라 걸음걸음의 끝에 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야만 한다. 하지만 안개는 순식간에 걷힌다. 그때까지는 내 발끝에 시선을 둘 것이다. 어리숙하게 보일지라도 먼발치가 아니라 발딛는 땅을 살필 것이다.

조금 모자라게 좀더 자유롭게.
요즘 안개 속을 거닐며 되뇌는 화두다.

논문 제출 잡감

Posted by on May 29, 2019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집필 | No Comments

 

1. 만 2년을 친애하는 벗과 함께 쓴 논문을 투고했다. 언뜻 이해가 안될지 모르지만 출판 여부와 관계없이 충분히 괜찮은 경험이었다. 완성한 것만으로 의미있는 작업이었다고 둘다 이야기했으니 오늘은 참 좋은 날이다.

2. 처음 본격적으로 정치와 관련된 글을 썼다. 처음에는 만만하게 보고 덤볐다가 논문의 범위를 조정하는 데만 한 해를 넘게 보냈다. 좌충우돌하면서 많이 깨지고 힘들게 배웠다.

3. ‘서로 배운다’는 말이 어울리는 협업이었다. 중간에 나 때문에 공저자 친구가 고생한 것 같아 미안한 면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서로 주고받으며 마지막까지 잘 온 것 같다.

4. 언젠가 ‘협업/공저’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리한 적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이번 협업 과정은 참으로 기쁘고 감사했다.

(1) 신뢰가 없는 이와 협업하지 않는다.
(2) 혼자 다 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협업하지 않는다.
(3) 대화할 때 스파크가 튀지 않는 사람과 협업하지 않는다.
(4)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할 상황에서 협업하지 않는다.

요약: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산출물이 안나오더라도 괜찮은 사람과 협업한다.

5. 논문을 완성하고 쓰고 나니 ‘애개 겨우 이 이야기를 하려고 그렇게 뱅뱅 돈거야?’ 싶다. 논문을 읽는 사람도 그렇게 느낄지 모르겠다. 정제된 이야기 하나를 만드는 건 설익은 이야기 몇을 엮는 것보다 수십 배 힘든 일이다.

6. 논문을 쓰면서 “socioculturally-minded applied linguistics’라는 표현을 썼다. 실은 조금 더 나아가 ‘sociopolitically-minded’ 라고 불러도 좋을 지형에 놓여 있는 글이다. 이 바닥에서는 별로 알아주지 않는 주제인 것 같은데 그래서 앞으로 더더욱 열심히 파고 싶다. 대책 없는 변방쟁이.

7. 무언가를 내놓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정말 의미있다고 여기는 작업을 내놓을 수 있을 날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겠다.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지만 시간은 살같이 빠르고 나는 해가 다르게 느려져 간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8. 엄연한 쓸쓸함과 벗하여 가야 한다. 하지만 오늘만은 벗 덕에 쓸쓸하지 않다.

이제 수업 준비 마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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