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3차토론 후

Posted by on Apr 29,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 방청객과 사회자 및 후보들은 성폭행 가담자와 한 공간에 있습니다. 숨이 막힙니다. 한 여성의 삶을 무참히 짓밟은 이의 말이 온국민의 세금으로 전국에 생방송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가 아닙니다. 이것은 정치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 패륜을 용인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동성애가 군 병력을 약화시킨다고요? 2010년 UCLA의 윌리엄스 인스티튜트의 권위있는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 전체에서 LGB의 숫자는 7만명에 이릅니다. 7백명도 아니고 7천명도 아니고 7만명입니다. 그렇다고 미군이 무너졌다는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가까운 이야기를 해보죠. 작년에 부임한 태미 스미스 주한 미8군 부사령관. 성소수자입니다. 나이롱 후보님. 미군에, 아니 미8군에 정식으로 항의해서 전력 약화 요인인 부사령관을 끌어 내라고 주장하시겠습니까?”

공포의 지하철

Posted by on Apr 28,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오전 11시 수업. 2호선 열차 두 대가 연달아 오면 뒷 차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오늘도 그랬다. 열 번째 칸에 대충 열 명 정도가 탔으니.

좋아하는 자리에 앉는다. 대각선 끝자리에는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이어폰으로 뭔가를 들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 피곤해. 눈을 좀 붙일까? 어제 새벽까지 너무 무리한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 알람을 맞추어 놓자.’

열차는 당산철교를 건넌다.

당산역 열 번째 칸에 들어온 승객은 단 하나. 40대 후반 쯤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성이었다.

그리고,
십여 분의
공포가
시작되었다.

텅텅 빈 차량 안, 그 사내가 앉은 곳이 대각선 건너편의 여성 바로 옆자리였기 때문이었다.

졸음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긴급 상황. 저 여성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저 미친 사내는 또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왜 저 남자는 키가 저렇게 크고 나는 이렇게 작은 것인가. 평소에 호신술이라도 익혀 두었어야 했나. 혹시나 일이 터지면 오늘 오전 수업은 어찌해야 하나. 다가가서 그 남자를 째려봐야 할까. 그건 너무 오버이지 않나. 아 내 가슴도 이리 쿵쾅거리는데 저 여성은 지금 어떨까.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두려움에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핸드폰을 보는 척하면서 계속 그쪽을 주시한다. 돌발상황에서 튀어나갈 준비를 한다. 제길. 영등포 구청에서도 문래에서도 사람들이 거의 타질 않는다. 앞차와의 간격 때문에 열차는 느릿느릿. 출근 시간 승객들 사이에 끼었을 때의 공중부양+호흡곤란보다 더 강력한 공포. 두려움의 무게가 시간을 기이이일게 늘어뜨린다.

째…………깍…………째……….깍…………

드디어 신도림, 사람들이 우루루 탄다. 주변 자리가 순식간에 채워진다. 두 사람 앞에 몇몇 사람들이 선다. 이제야 조금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째….깍….째….깍….째….깍….째….깍…..

다행히 두 사람은 다른 역에서 내렸다.

건너편 여성이 20여 분 간 느꼈을 공포와 역겨움을 생각하니 지금도 아찔하다. 보기만 해도 이렇게 힘든데, 몸소 겪는 이의 마음은어떨까.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오지랖을 자극했던 장면 둘

Posted by on Apr 16, 2017 in 일상 | No Comments

1. 우연히 듣게 된 대화.

“(세살 쯤 된 아이, 살짝 짜증난 말투) 엄마. 뿌얘. 뿌얘.”
“뿌옇지? 미세먼지는 자연현상이라 사람이 어쩔 수가 없는 거야.”
“자연현상?”
“응.”

그저 속으로 ‘아니 미세먼지가 왜 자연현상이예요?’라고 외침.

2. 얼마 전 동네에 새로 문을 연 편의점. 수주 째 태극기를 게양중.

들어가 점주에게 ‘이 동네에서 태극기 365일 게양하시면 매상에 도움이 안될 거 같은데요.’라고 말하면 태극기로 맞을 거 같아서 그만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Posted by on Apr 9, 2017 in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얼마 전 학생들과 함께 Candy Chang의 <Before I die>라는 TED 강연을 봤다. 각자가 죽기 전에 뭘 하고 싶은지 써보는 시간도 가졌다. 여행애 대해 언급한 학생들이 제일 많았고,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다거나 자기 집을 직접 디자인해 보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다.

나에게도 뭘 해보고 싶냐고 묻길래 “죽기 전에 작은 뮤지컬 하나를 기획하고 전곡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몇몇 학생들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설마’, ‘에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급발동한 자격지심에 “아무도 안보러 와도 괜찮아요. 만드는 게 중요하죠.”라며 능청을 떨었다. (아무도 안오기만 해봐라.)

오늘은 오랜만에 건반이 있는 방에 들어섰다. 좁은 공간에 온갖 책들과 잡동사니가 널려 있어 환기를 시켜도 잔먼지가 쉬이 가시지 않는다. 알러지성 비염이 있는 나에게는 고통스런 환경이다.

그래도 한 학기에 한두 번은 쳐야 되지 않을까 싶어 (미안하다 건반아) 마스크를 끼고 건반을 연주했다. ‘음… 역시 녹슬었어. 하지만 뭐 하루 이틀이냐.’ 신나게 두들기다 보니 손이 꼬이며 숨이 차온다.헉헉. 이게 사는 건가.

생각해 보니 아무도 안보러 오는 건 둘째 치고 배우로 나설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뭐 안되면 내가 다 불러서 라디오 드라마처럼 만들지 뭐. 그럼 또 아무도 안들을 거 아냐? 아 급 우울해진다. 이도 저도 안될 거 같은데 그냥 꿈을 바꿀까? “죽기 전에 미세먼지와 비염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로.

https://www.ted.com/talks/candy_chang_before_i_die_i_want_to

 

휴일을 확보하는 창의적인(?) 방법?

Posted by on Apr 2, 2017 in 강의노트, 일상 | No Comments

나: 4월까진 휴일 없죠? 그래도 중간고사 끝나면 좀 낫겠네요.
희: (학사일정 프린트를 꺼내어 5월 첫째 주를 가리키며) 5월에 휴일 많아요.
나: 그렇죠? 직장인들은 중간 중간에 쉬려고 벼르고 있던데… 거기다가 5월 9일에 대선이라 또 쉬잖아요.
학생들: 아싸~~
나: 노니까 좋죠?
학생들: 당연하죠. ㅎㅎㅎ
희: 선거 자주 했으면 좋겠다.
나: 아… 이번에는 탄핵 때문에 쉬는 거잖아요. ㅠㅠ
희: 그래도요.
나: 또 이러면 안되죠.
희: 후보들 다 거기서 거긴 거 같은데 탄핵하고 돌아가면서…
나: 아… 진짜 쉬고 싶은가 보다.
희: 놀면 좋죠.
수: 아 쉬고 싶다.

===

“연속 탄핵에 의한 휴일 확보 열망”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설교를 늘어놓진 않았다. 다만 중학생들이 ‘쉬고 싶다’는 말을 연발하는 사회가 좋지 않다는 건 확실하다.

민주 Democracy – 피아노 연주

Posted by on Mar 30, 2017 in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한 친구의 기억이 예전 연주의 기억을 되살려냈다. 각자의 기억이 소중한만큼 서로의 기억을 간직하는 것이 가치있다는 믿음. 그것이 민주의 가치 아닐까.

“너는 햇살 햇살이었다 산다는 일 고달프고 답답해도
네가 있는 곳 찬란하게 빛나고 네가 가는 길 환하게 밝았다

너는 불꽃 불꽃이었다 갈수록 어두운 세-월
스러지는 불길에 새불 부르고 언덕에 온고을에 불을 질렀다.

너는 바람 바람이었다 거센 꽃바람이었다
꽃바람 타고오는 아우성이었다 아우성속에 햇살 불꽃이었다

너는 바람 불꽃 햇살 우리들 어둔삶에 빛던지고
스러지려는 불길에 새불 부르는
불꽃이다 바람이다 아우성이다
불꽃이다 바람이다 아우성이다”


대선 단상

Posted by on Mar 27,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1. 누군가를 열렬히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치에 관심없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열렬히 지지하는 것만으로 정치적 공헌을 하는 것도 아니다.

2. 카리스마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강력한 카리스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차이는 단지 선거전략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라 권력 전반에 대한 감수성에서 기인한다.

3. 선거는 사람을 뽑는 과정이다. 당연히 특정 인물에 대한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 인물이 만들어 낼 시스템에 대한 엄밀한 검토 위에서만 유효하다. 선거는 인물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 시스템을 위한 인물을 선출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4. 서로 박터지게 싸우지 않는 것도 좋지만, 박터지게 싸우면서도 뭔가 근사한 걸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좋다. 유권자들은 허허실실 웃는 모습이 아니라 진짜 실력을 보여주는 세력을 신뢰하게 되어 있다.

5. 막말을 하지 말자며 막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아 보인다. 때로는 어조(tone)가 모든 것을 압도한다.

6. 이 정도 조건이면 좀더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제안들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닐까. 아니 나와야만 하는 것 아닐까. 대한민국 시민들이 고작 이거 보자고 긴긴 겨울을 악물고 버텼나.

7. 5월 9일 이후의 정치에서 민주주의는 좀더 강해질 수 있을까? ‘좀더 기다려’라는 대답만을 들어왔던 이들이 웃으면서 뛰쳐나올 수 있을까?

몸이 으스러지도록 일해야 하는 젊은이들이 조금이라도 쉴 수 있을까?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평등과 편견에 맞선 여성과 성소수자들은 더 또렷한 목소리를 얻게 될까? 갈곳도 없이 망가지는 몸을 눈물 흘리며 볼 수 밖에 없는 노인들은 희미한 미소라도 지을 수 있을까?

우린 과연 다 가진자들의 놀이동산 같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억눌렸던 목소리들의 우렁찬 함성같은 민주주의를 만날 수 있을까?

8. 선거, 중요하다. 그러나 결국 새로운 세계로의 관문일 뿐이다. 이 문이 180도 회전문이 되질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언제는 그렇지 않았겠느냐만 함께 걷는 이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나날이다.

시간강사

Posted by on Mar 22,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n. 아는 척 하느라 엄청 바쁘고, 바쁜 척 하다가 좀 알게 되는데, 그땐 또 잘 모르는 걸 가르쳐야 하는 사람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수업스케치

<종이찢기>

“학원은 어때요?”
“그냥 똑같애요. 아 얼마 안 있다가 또 시험대비 한대요.”
“아 빠르네요. 시험 때 학원 가서 공부하는 거랑 집에서 하는 거랑 어떤 게 더 나은 거 같아요?”
“음… 집은 공부하는 데가 아니예요. 학원 안가면 카페같은 데 가서 있고 그래요.”
“ㅎㅎㅎ 그렇죠. 제가 괜한 질문을 했네요. 집에서 잘 노나 봐요.”
“특별히 할 거는 없는데 그냥 이것 저것 하고 놀아요.”
“시험 때는 더 놀고 싶죠? 저도 대학교 때 시험공부 하려고 하면 평소 관심도 없었던 책, 영화, 뭐든 다 눈이 가더라고요.”
“저는 시험 때는 종이만 찢어도 재미있어요.”
“ㅎㅎㅎㅎ (종이 찢는 제스처를 취하며) 종이만 찢어도 재미있구나.”

===

<웃긴 선생님>

“새로운 선생님들은 어때요?”
“OO 과목 선생님이 웃거요.”
“왜 뭐가 웃겨요?”
“자꾸 수업하다가 다른 선생님 뒷ㄷㅁ 까요.”
“정말요?”
“네네. XX과목 선생님하고 친하대요. 근대 맨날 그 선생님 가지고 뭐라 해요.”
“아 친하다고 막하시는 건가요? ㅎ”
“지난 번에는 XX 선생님이 머리스타일을 바꿨는데, 그거 가지고 엄청 뭐라 했어요. 그게 어울리냐고. 진짜 이상하지 않냐고.”
“ㅎㅎㅎ 재미난 선생님이네요.”

===

<멀뚱멀뚱, 하지만 성공!>

“자 Could를 쓰면 Can보다 좀 공손하게 들려요. 왜 그런지 설명해 볼게요. 이게 좀 어려운 이야긴데 들어봐요.”
“네.”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잖아요.”
“(멀뚱멀뚱)”
“그래서 오로지 현재에 있는데, 현재는 직접 볼 수 있죠?”
“네.”
“과거는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게 아니라 기억을 더듬어야 되잖아요. 옛날 생각 하려면. 눈 앞에 펼쳐지는 건 현재. 머리 속에 담긴 건 과거.”
“(당연하다는 듯 멀뚱멀뚱)”
“조동사도 그런 게 있거든요!”
“(계속 멀뚱멀뚱)”
“그래서 조동사도 Can이나 May같이 원래 형태로 쓰면 좀더 직접적이고 ‘들이대는’ 느낌이고요.”
“(포기한 듯 멀뚱멀뚱)”
“Could나 might를 쓰면 과거처럼 좀 거리가 느껴지는 거죠. 멀다고 해야 하나.”
“(모르겠다는 듯 멀뚱멀뚱)”
“그니까 정리하면, 지금 눈 앞에서 확 들이대면서 이야기하는 거랑 옛날 이야기하는 거랑, 어떤 게 더 강하게 느껴질까요?”
“들이대며 이야기하는 거요.”
“그쵸? 그건 알겠죠?”
“네.”
“그것처럼 조동사도 과거형을 사용하면 힘도 빠지고 들이대는 것도 덜한 거예요. 오케이?”
“네.”
“그래서 확 들이대는 Can you? 보다는 과거형을 사용한 Could you? 가 더 공손하게 느껴지는 거죠.”
“…”
“그럼 친한 친구한테는 Can you를 자주 쓰겠어요? Could you를 자주 쓰겠어요?”
“Can you요.”
“오케이 좋아요.”

(한주 후)

“자 지난 주에 Might랑 may랑 어떤 게 더 직접적이라고 했죠?”
“May요.”
“Can 이랑 could 중에서는?”
“Can이요.”
“(쾌재를 부르며) 정확히 기억하고 있네요!”

한 주에 한 시간이 뭐 대수냐 싶지만 또 이렇게 기억해 주는 친구들 덕에 기쁨으로 가르칩니다.

3월도 절반이 넘게 갔습니다.

‘멘탈이 강한 사람들의 특징’

Posted by on Mar 14, 2017 in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몇 해를 찬찬히 돌아보니 망친 수업들을 관통하는 감정이 있었습니다. 바로 두려움입니다.

여기에서 ‘두려움’은 긍정적 의미, 즉 학생들을 무섭게 생각하여 철저히 준비하고 겸손히 수업에 임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무서웠다는 뜻이죠. 불만 섞인 듯한 질문, 까칠한 언행, 성적에 대한 과민반응, 앞뒤 안가리는 피드백, 과제에 대한 불만, 수업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무서웠다는 말입니다. 극소수 학생들 이야기지만 털어버리기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두려움이 스며든 수업은 삐걱거립니다. 큰 사고는 없지만 마음의 이물감이 가시지 않습니다. 그렇게 휘청거리듯 한 학기가 가면 대단한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커다란 짐이 등에 떡하니 올라와 있습니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힘겹습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데 족히 한 학기는 걸립니다. 몇몇 말들은 평생을 따라다닐 기세입니다.

가끔 ‘강한 멘탈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 같은 기사 제목을 봅니다. 저로서는 참 이해하기 힘든 표현입니다.

멘탈이 강하다는 건 뭘까. 멘탈이 제대로 박혀 있으면서 강할 수가 있는 건가, 싶습니다. 그냥 제 기준에서 말이죠.

선생이 강자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을 알지만 마음은 늘 전전긍긍. 여전히 초짜인가 봅니다.

피할 수 없는 일, 계속 그럴 수밖에 없겠습니다.
가끔 하소연 들어주시는 분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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