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Posted by on Sep 3,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대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어 짜증난다기 보다는 무슨 수를 써도 다른 이해의 가능성울 설득할 수 없을 거라는 좌절감이예요. 사람은 어떻게든 될 수 있습니다. 다 사정이 있는 거죠. 그 어떤 가능성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엄연한 공존, 겹침의 가능성이 거세된 존재들, 그게 절망인 것 같아요.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일상스케치

Posted by on Aug 30,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1. 수학을 선택과목으로 하자는 모 교수의 의견을 접했다. 잘못된 수학교육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형국 아닐까. 뭐든 문제가 되면 ‘해체’하면 된다는 사고같기도 하고.

2. 학술논문은 남이 쓴 건 대개 별로고 내가 쓰려면 더 별로인 그 무엇인 듯하다. 물론 멋진 논문도 많지만 마음을 흔드는 논문은 가뭄에 콩나듯 한다.

3. 참 오랜만에 해외학회에 초록 하나를 제출했다. 될지 모르겠지만 쓰는 내내 즐거웠으니 98퍼센트 성공. 심사자들이 2퍼센트를 채워주길 기대한다. 내 생애 최초의 언어와 정치 이야기.

4. 대학원 이론과목을 가르치다 보면 적지 않은 학생들이 이론과 실천을 서로 다른 범주에 놓고 사고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세세한 내용에 대한 숙지보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는 게 훨씬 의미있는 일이리라.

5. “There is nothing more practical than a good theory.” (좋은 이론보다 더 실용적인 것은 없다.) – Kurt Lewin

창조과학 단상

Posted by on Aug 27, 2017 in 과학, 단상, 일상 | No Comments

인류가 수천 년 발전시켜온 과학으로도 다 이해하지 못하는 우주의 기원을 몇몇 사람들이 30여 년 대충 뚝딱 만들어 낸 이야기들로 설명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신이 인간에게 준 지성’을 모독하는 일 아닐까요. 그들이야말로 신을 섬긴다 외치며 도리어 왜곡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오래 고민하고 공부해 왔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나직이 말하는 일이야말로 신실한 신앙의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애를 다바쳐 한 우물을 판 노과학자가 자신의 이론을 넘어서 진리에 한발 더 다가가는 이론을 기다리는 마음에서 깊은 영적 울림이 솟아나지요.

짧은 글 안에서
신앙과 과학의 관계를 논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게 있어
신앙을 갖는 일과 과학을 하는 일은
구도자로서의 삶으로 수렴됩니다.
끊임없이 옳은 길을 찾는 여정 말입니다.

그렇게 살고 있지는 못해서 부끄러울 뿐이지요.

아닌 것은 아닌 것이고
모르는 것을 안다 할 수는 없습니다.

다 알지 못해도 믿을 수 있습니다.
다 알지 못해도 살아갈 수 있듯 말입니다.

비정규직 교원의 정규직 전환에 관하여

Posted by on Aug 24, 2017 in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비정규직 교원의 정규직 전환 정책. 임용고사 준비생들의 반발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정규직 교사들 중에서 기간제 교사들의 전문성, 경력 및 정규직 전환 조건에 대해 고려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을 보면 복잡한 마음이 듭니다. 적어도 함께 일해본 분들이 ‘무조건 안돼’라는 반응을 보이는 건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고나 할까요.

곪았던 것들이 터져나오는 시기입니다. 기업 간, 기업 내의 갑을 문제, 대학입시 문제, 대학간 권력차의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 불평등의 문제 등. 아무 문제 없는 척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립은 현실의 반영이고, 문제의 해결은 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할테니까요.

다만 다양한 문제들을 ‘당사자간의 문제’로 손쉽게 환원하거나, 일부의 자극적인 표현을 집단 전체의 의견과 태도로 외삽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함께 문제를 풀어 보자고 하는 일인데 ‘그렇게 싸우니까 안되는 거야’라는 식으로 보도해 버리는 행태도 사라져야죠. 그런 의미에서 현시기 언론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빨리’가 아니라 ‘잘’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면 합니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빨리 풀려 들면 오히려 더 꼬이는 법이니까요.

덧 1.
최근 들어 궁금해진 게 있는데 교육부에 교육철학이 있나요? 꼭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더라고 시대를 관통하는 기조가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덧 2.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너 대학에서 O년 강의 잘 했으니 정규직으로 채용해 줄게”라는 정책에 다른 정규직 교수들이 “쟤는 이런 저런 자격 미달인데요” 라면서 반대 서명을 받고 다닌다면 슬프고 화날 것 같네요.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고, 이게 ‘옳다’고 주장할 생각도 근거도 없지만, 여러 글을 접하면서 맘에 계속 맴도는 건 어쩔 수 없군요.

At the end of the summer break

Posted by on Aug 23, 2017 in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The end of the break breaks my heart. My students would feel the same. These brokenhearted creatures miraculously meet and heal each other imperceptibly through the semester. The end of the semester will break some hearts again. Winter will mend them with a surreptitious mix of taken-for-granted oblivion and willfully hectic nights and days. When spring comes all this starts over. Resilience does not apply since every encounter, each parting, and each suffering is helplessly unique. I sometimes summon those old days,humbled by the passage of time, soon to be disturbed by a part of me panting against the high tides of productivity and competitiveness. All these thoughts are so ridiculous, like those immature days.

훈훈한 결론

Posted by on Aug 19,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논문쓰기 강의를 한 학기 쉬게 되었는데 마음이 허하다. 대신 한번 하고 말 것이 뻔한 과목들이 들어섰다. 이른바 ‘전문강사’의 힘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시간과 경험의 축적이 빚어낸 디테일에 있다. 세분화에 세분화를 거듭하는 시대, 공부는 더더욱 넓어져야 한다고 믿지만, 밥벌이를 위한 공부는 그래서는 안되는 것 같다. 할 줄 아는 게 꽤 되는 것 같지만 정작 잘 하는 건 없는 상황. 더 심각해지기 전에 기본소득 도입이 필요하다. (아 이렇게 바람직한 결론이라니.)

큰 비극과 작은 비극

Posted by on Aug 17,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누군가를 사랑할 힘이 아니라 이용할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 시대의 비극이라면, 그 ‘누군가’에 자신도 포함된다는 것을 모르는 삶은 각자의 비극이다. 큰 비극은 작은 비극의 컨텍스트가, 작은 비극은 큰 비극의 텍스트가 된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적폐청산의 철학

Posted by on Aug 9,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적폐(積弊; 오랫동안 쌓여온 폐단)가 적폐(適弊; 적들이 저지르는 폐단)가 되어가는 것 같다. 자기 안의 퇴행, 모순과의 과감한 결별을 보고 싶다는 게 그리 큰 바람일까. 촛불이 모여 세상을 밝혔지만 그 빛이 가장 먼저 도달한 곳은 자신의 얼굴이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8월 둘째 주

Posted by on Aug 7, 2017 in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물리적인 시간으로만 보자면 시간강사는 자유로운 편이다. 강의와 학사일정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일정을 스스로 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모든 업무가 무한정 늘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 강의가 끝나면 바로 다음 강의 준비를 시작해서 수업 시작 1분 전까지 몰아친다. 강의를 마치면 바로 다음 강의 고민을 시작한다. 학기 내내 이 패턴이 반복된다. 주말도 예외는 아니다.

강의자료를 미리 읽었다고, 대략의 개요를 짜 놓았다고 해결되진 않는다. 내가 그닥 머리가 안좋은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성향의 문제다. 그래서일까.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자신을 갉아먹는 바보같은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학기 숨쉴 틈 없는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면서 이런 강박(?)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이 굳어졌다. 여전히 강의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 삶의 균형을 깨뜨릴 정도라면 언젠가 큰 문제가 되어 나를 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강의자가 성장을 멈추면 학생들이 성장할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건강에 대한 걱정 또한 기우만은 아니다. 축적되지 못하는 경험에 대한 아쉬움도 커졌다. 별것도 아니지만 그것 밖에 없는 인생이니까.

요즘 비판적 응용언어학에 관한 이야기를 한 친구와 나누고 있다. 돌아온지 만 5년 만의 진지한 학술적 대화다. 한 분야를 오래 고민한 이들과의 대화는 학생들에게 배우는 바와는 조금 다른 결의 배움을 가능케 한다. 선생이 아닌 벗의 위치에서 배울 수 있음이 즐겁고 고맙다.

돌아보니 자신감은 사라졌으나, 이를 긍정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어리숙하고도 위태로운 긍정.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마음. 허나 자신감을 그리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나쁘지 않은 세월이었다.

7월도 다 보내지 못했는데 시작된 8월 둘째 주. 함께하는 이들 덕에 힘을 내어 발걸음을 내딛는다. 더위가 곧 물러가고 “아침 저녁으로는 그래도 좀 선선하네요”라는 말이 들려왔으면 좋겠다.

뜻밖의 방문

Posted by on Aug 5,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방학때 시간 되면 논문쓰기 세미나나 한번 할까요?”라고 말을 던진 건 지난 학기 말. 방학 중에 얼굴을 보자거나 공부하자는 말은 대개 까맣게 잊혀진다. 이번엔 달랐다.

함께 사회언어학과 언어교육에 대해 고민했던 다섯 명의 대학원생, 아니 예비 연구자들이 찾아왔다. 초압축 버전으로 논문쓰기 특강을 했다. 저녁식사와 차를 배경으로 펼쳐진 수다 또 수다. 진지와 유머, 아픔과 희망을 가로지르는 대화는 더없는 축복이다.

돌아오는 길. 서로 고마울 수 있어 고마운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201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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