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잡감

언어 빅데이터에 대한 수업을 하고 있다. 프로그래밍이나 자연어처리 기법과 같은 기술적 내용은 아니고,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의 관점에서 구글북스나 코퍼스 등 대용량 언어 데이터를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관한 내용이다.

반응은 두 가지로 갈린다. 새로운 관점과 도구가 언어학습에 대한 영감을 준다는 의견이 하나고 ‘그래서 어쩌라고’가 하나다. 몇 해를 진행해 온 수업인지라 이런 반응은 익히 예상한 바다.

그런데 후자의 의견을 지닌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보면 ‘이런 걸 왜 영어교육과에서 다루느냐’는 식의 항변이 섞여있다.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본격적으로 활용하지 못할 것들을 왜 몇 주에 걸쳐 다루냐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차피 영어실력 향상에 도움도 안되는 개념과 도구들 아니냐는 항의가 깔려 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언어교육이 교재에 묶여 있는 상황에 대해 고민해 왔다. 언어를 사회문화적 총체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잘 편집된 교과서와 문제집의 형태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 갑갑했던 것이다. 그런데 빅데이터를 활용한 활동은 언어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잘 보여줄 수 있다. 완벽하진 않지만 교과서와 수능교재에 갇힌 영어를 어느 정도 해방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당장 학습자들의 영어실력을 올려주거나 시험을 치는 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심어주는 데는 유효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면서 교사 또한 언어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다.

현실만을 보면 항변하는 학생들의 의견이 맞다. 교실에서, 방과후 활동에서 빅데이터 같은 거 다루면 수능에 도움이 되겠나? 내신성적 높이는 데 소용이 있겠나? 당연히 성적에 도움은 안된다. 그런데 교육을 그렇게만 바라보면 교사는 뭐가 되나? 또 학생은 뭐가 되나? 무엇보다도 재미가 없지 않나?

어떤 수업을 해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 같다. 강의평가에서 불만이 터져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생각하는 건 ‘무난한 수업’보다는 ‘김성우에게만 들을 수 있는 수업’을 하자는 것이다. 내가 대단한 선생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내 수업이라는 이야기다.

꼰대가 되지 않는 것만큼 맞춰주기만 하는 선생이 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좋은 수업은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기도 하지만 현실을 바꾸는 꿈을 꿀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해야 하니까. 교육은 사회의 필요에 복무함과 동시에 사회 자체를 변혁해야 하니까.

연주: I’m in Love

Posted by on Nov 3, 2019 in 단상, 링크, 일상 | No Comments

연애도 안하던 시절인데 왠 “I am in love”라는 즉흥연주를 했을까요? 게다가 10분을 훌쩍 넘네요. 이 재미없는 연주를 다 들으시는 분은 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신 걸로 생각하겠습니다. 그런데 사랑에 빠진 것 같긴 하나요?

 

http://sungwoo.pbworks.com/w/file/fetch/56573779/120806_I_am_in_Love.mp3?fbclid=IwAR0Rups2Bq9HFz0SjaA8oBziQaZ1qwdq2glySMlRaVWQHoqgKfyDszvHaGA

평가를 넘어서

Posted by on Oct 29, 2019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 No Comments

‘평가가 없으면 누가 공부를 하겠냐’는 말은 평가 없이 공부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하는 말 아닌가 싶다. 평가가 무용하다는 것이 아니다. 평가는 결국 ‘평가 없음’의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이 영화에서 저 영화로, 이 웹툰에서 저 웹툰으로, 이 지도에서 저 지역으로, 이 음악에서 저 미술작품으로 횡단하는 끝없는 배움의 여정에 줄세우는 평가는 초대되지 않는다. ‘어떻게 평가의 매트릭스에서 벗어날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보다 더 간절하다. 평가를 넘어서는 상상력 하에 평가체제가 구축될 수는 없는 걸까. 바보같이 묻는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리듬 앤 플로우

음악도 잘 모르고
힙합은 더 모르지만
지난 한 주 <Rhythm + Flow> 덕에 행복했다.

오디션 경연 포맷을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엄청난 압력을 견뎌내며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이들에게서
큰 감동을 받았다.

사실 욕설이나 비하, 성적인 묘사들에 대해
그리 익숙하지 않다.
‘정치적 올바름’에 다소 경도된
고리타분한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열 편의 에피소드는
“다른 문화를 엿보는” 경험으로 생각하고
최대한 즐겁게 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한 귀퉁이를 접고 보니
즐거운 순간이 많았다.

기획과 편집의 힘이겠지만
이번 경연에 참가한 아티스트들은
대개 불우한 형편에서 자랐다.
약물중독으로 가족을 잃거나
범죄로 인해 감옥에 갇힌 가족을 봐야 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 와중에
그들을 지켜준 것이
음악과 가족, 그리고 때로 신앙이었다.
빈곤과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자기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음악을 택했던 것이다.

응축된 고통이
벌건 마그마처럼
리듬과 가사로 요동칠 때
나 또한 흔들리고 흐느꼈다.

언어교육을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어렸을 때 연기나 랩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게
종종 아쉽다.

삶과 말을 재료로
혼과 리듬을 엮어내는 일,
대사를 매개로
타인의 몸과 마음을 상상하는 일의 아름다움을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가 언어를 대하는 방식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아, 그리고 사소한 즐거움 하나.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초반 30인의 경연자 중 우승자로 점친 사람이
진짜 우승을 했다.
업계 최고수들의 생각과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
소소한 기쁨을 선사했다.

음악이 있어 다행이고
음악하는 사람들이 축복이고
음악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 삶의 리듬과 플로우를 찾아
하루 하루를 지어(compose)가야겠다.

 

Let’s make the rhythm flow, yo.

말과 침묵, 그리고 겨울밤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세상. 말할 여유조차 없는 이들의 ‘침묵’은 더욱 깊어진다.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성량 조절에 힘쓸 뿐, 자신이 목소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논쟁으로 문제를 풀려는 무리들은 서로의 말 속에서 허우적대며 강요된 침묵에 침묵한다. 침묵의 소리를 듣는 신중한 이들은 고개를 떨구고 발걸음을 돌린다. 슬픔은 내려안고 바람은 어두워진다. 말이 얼어붙는 사이 침묵은 포효한다. 밤은 오래 깨어 묵묵히 상처를 벼린다.

다시, 눈빛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단단한 영어공부, 4쇄 발행

Posted by on Oct 25, 2019 in 단상, 삶을위한영어공부, 일상 | No Comments

전국영어교사모임 자율연수에서 <삶을 위한 문법과 어휘교수>를 주제로 강의를 마치고 왔더니 문간에 반가운 택배가 와 있습니다. 자리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봉투를 엽니다.

오늘로 4쇄를 찍은 <단단한 영어공부>가 들어 있습니다. 책이 나온 3월이 엊그제같은데 시간이 참 빠릅니다. 고마운 분들의 얼굴이 휙휙 스쳐갑니다. 멍하니 허공에 머무는 눈길을 그냥 둡니다.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무엇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위한 영어공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께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뻐기고 구획하며 줄세우는 영어가 아니라 소통하고 성찰하며 연대하는 영어를 만들어 가기 위해 함께 걸어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단단한영어공부 #4쇄 #유유출판사 #삶을위한영어공부

일상 스케치

Posted by on Oct 21, 2019 in 강의노트, 단상, 일상 | No Comments

이번 학기 나름 여유롭게 산다. 종종 늦잠도 자고 멍도 때린다. 지난 주부터는 건반에도 조금씩 손을 대고 있다. 그래봐야 적극적으로 게으름을 피울 정도는 아니지만 강의가 줄어드니 확실히 덜 쫓기는 것 같다. 회사생활과 박사과정을 포함해서 20년 만에 가장 덜 분주한 시절이다. 새로운 과목 예닐곱 개를 가르치던 게 과연 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그렇게는 못할 거 같다.

일이 엄청나게 준 것은 아니다. 강의는 반토막났지만 생계형 외부 강의가 늘었고 새로운 책도 준비하고 있다. (무려 세 분이 ‘이거 아니냐’며 물어오셨는데, <지극히 주관적인 어휘집>은 아닙니다. 책으로 내기에는 아직 그저 잡다구리한 생각들이죠.) 곰곰 생각해 보니 학기말에 누군가를 평가해서 줄을 세워야 하는 부담이 반으로 줄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대학에서 무조건 상대평가를 강제하는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취업을 위해서는 더욱 열심히 논문을 써야 하지만 마음이 좀처럼 동하지 않는다. 대학에 대한 애증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뒤덮는 절망이 스물스물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포자기는 아니지만 “쓰지 않으면 죽는다(publish or perish)” 마인드를 탑재할 수는 없는 상황이랄까. 엉거주춤한 자세로 몇 년을 살다보니 나름 이 자세가 편해졌나 보다. 의미 찾다가 굶을 것도 같은데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이다.

주말에 사려깊은 학생 둘이 찾아왔다. 냉면을 먹고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셨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저릿했다. ‘이 친구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뭔가를 가르친다고 설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스쳐간 학생들이 꽤나 많아졌다. 가르칠수록 부끄러운 일들이 많아진다. 지식을 전수한다며 무지를 방관하는 세월이 쌓여간다. 아는 척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길을 잃고 낙심한 나를 일으켜 준 건 언제나 학생들이었다. 고맙고 미안하고 자랑스럽다. 내내 평안하기를. 각자의 자리에서 더 열심히 싸울 수 있기를. 함께 나눈 이야기가 어두운 시절을 밝히는 작은 빛이 될 수 있기를. 무엇보다 강건하기를.

‘속도의 리터러시’ 단상

1. 급박하게 돌아가는 이슈가 계속해서 터질 때에는 일상과는 다른 리터러시 활동이 벌어진다.

2. 이슈의 전개에 따라 다양한 뉴스와 분석이 실시간으로 쏟아진다.

3. 관련된 글을 모두 읽어낼 사람은 없다. 단연코 없다.

4. 사람들은 종종 상황을 면밀히 이해하고 견실한 판단근거를 만들기 위해서 읽는다기 보다는 ‘탈출하기 위해’ 읽는다. 탈출에는 다음과 같은 패턴이 있다.

(1) 기존에 갖고 있던 확신을 설득력있게 채워주는 글을 만나면 해당 이슈 읽기에서 탈출한다.

(2) 해당 사안에 대해 가졌던 의문에 답해주는 글을 만나면 해당 이슈 읽기에서 탈출한다.

(3) 자기가 팔로우하고 있는 ‘논객’이 정리된 글을 올리면 해당 이슈 읽기에서 탈출한다.

(4) 뉴스를 읽을 시간이 없는 경우, 기존의 관점과 신념을 가지고 뉴스의 공백을 채운다. 그 결과 팩트가 들어갈 곳에 믿음이 자리를 잡기도 한다.

5. 이 상황에서 몇몇의 ‘논객’은 다른 사람에 비해 좀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이를 정리한 글을 올린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면들을 검토했느냐 보다는 자신이 갖고 있는 관점에 맞는 (혹은 자신을 팔로우하고 있는 독자군의 지향에 맞는) 내러티브를 만족스럽게 구성했는가다. 방대한 정보를 엮어 거의 실시간으로 글을 써내기 위해서 어느정도의 타협은 불가피하다.

6. 숨가쁘게 터져나오는 속보와 반격, 성명과 수사결과, 논평과 논쟁 속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전체의 의미를 구성(construct)하기 보다는 의혹과 의심의 미로에서 탈출(escape)한다.

7. 정보와 뉴스의 생산과 유통이 가속화되는 시대, 사람들은 분명 이전보다 더 자주 ‘1차자료’를 접한다. 그러한 면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한 리터러시 역량은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8. 하지만 그 방대한 분량에 압도당하며 끊임없이 탈출할 수밖에 없는 숙명에 놓인다. 때로는 그런 쫓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슈 따라가기를 멈추기도 한다.

9.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시대, 우리는 때로 우리 자신을 잃는다. 물론 성실한 읽기로 가공할 속도를 버텨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종종 미로에서 겨우겨우 탈출하고 있으면서 세계를 다 파악한 듯 말하는 이들이 두렵다.

10. 누군가는 미로를 좀더 면밀히 탐색하여 지도를 만들자고 외치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미 미로를 빠져나갔다.

11. 느리고 모자란 나는 숨이 가쁘다.

 

#삶을위한리터러시

금요일 오후 세 시

Posted by on Oct 12, 2019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금요일 오후 수업은 등산같다. 오기는 싫은데 막상 오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문제는 대개의 학생들이 한 주의 피곤을 잔뜩 짊어지고 온다는 것. 아무리 수업을 열심히 해도 ‘어이, 이거 빨리 끝내고 불금으로 넘어갑시다!’라는 표정을 지울 수는 없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 “친구들아. 불금은 선생에게도 소중하단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고달프거든. 그러니 조금만 더 집중해서 공부를 해볼까?” 그래도 가르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나에게 주어진 날들을 맑고 밝게 만들어 가야지.

YOUR 속에 OUR 있다.

Posted by on Oct 11, 2019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영어에서 “YOUR”와 “OUR”는 사뭇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정치사회적 지형에서 이 둘의 간극은 무시할 수 없이 크다. 하지만 이 둘은 참 많이 닮았다. “OUR”에 “Y”만 붙이면 “YOUR”가 되는데, 이때 고려해야 할 것은 “why(Y)”이다. 왜 우리는 ‘우리들’과 ‘당신들’을 가르고 있는가. 왜 우리는 ‘당신들’이 ‘우리들’과 다르다고 고집하는가. 왜 우리는 ‘당신들의(your)’ 속에서 ‘우리들의(our)’를 보지 못하는가? 혹 우리는 ‘왜(why)’ 없이 우리의/당신들의 이분법을 습관적으로 생성하고 있지는 않은가. YOUR 속에 OUR 있다. WHY를 기억하라.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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