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생을 위한 근거이론 이야기 (4)

Posted by on Oct 20, 2018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집필 | No Comments

 

학생들과 한국사회 영어교육의 핵심문제를 논의하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각자가 이미 문제를 모두 정의해놓은 상태로 수업에 임한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영어수업에 있어 가장 자주 언급되는 문제는 (1) 학습자들간의 실력차가 너무 크고 (2) 수능 등 획일화된 평가에 따라서 가르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두 이슈의 무게를 인정하는 것과, 이 두 렌즈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바라보려는 습속(habitus)을 고수하는 일은 전혀 다르다. 어떤 문제가 제기되더라도 실력차와 평가로 간단히 설명해버리는 태도는 게으름을 넘어 반지성적이다. ‘평가가 문제입니다’, ‘학생들이 차이가 나는데 어쩔 도리가 없어요’라는 말에는 현실의 단면을 그리는 솔직함이 배어있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학기 한 수업에서는 자신의 영어학습사를 기술한 언어학습 자서전(language learning autobiography)을 질적연구 방법론 중 하나인 근거이론(grounded theory)을 사용해서 분석해 보려고 한다. 최대한 선입견을 제거하고 데이터에 기반해서 자신의 영어학습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안에서 어떤 패턴이 드러나는지, 이를 통해 바라본 한국사회의 영어교육은 어떤 모습인지를 살피려는 것이다.

학부생들을 질적 연구자로 키우려는 것은 아니기에 방법론의 철학과 역사, 한계와 효용 등을 온전히 다루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사회과학 방법론의 한 축인 질적연구방법론, 그 중에서도 근거이론을 맛보면서 자신과 주변의 영어교육 현실에 대해 좀더 깊이있는 시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방법론을 일종의 휴리스틱으로 활용한달까. 이미 정의된 문제의 틀을 벗어 던지고, 데이터와 씨름하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한 가지 우려가 되는 것은 학생들이 가져올 데이터의 성격이다. 자신의 생각, 어떤 면에서 편향(bias)이 고스란히 반영된 영어학습 자서전이라면 이에 대한 분석결과 또한 자신의 생각을 확증(confirm)하는 방향으로 나올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방법론은 데이터와 연구자를 뛰어넘지 못한다. 초심자에게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업에 마음이 설렌다. 실험이 끝나는 3주 후에도 이 기분을 유지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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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질적연구의 주요 분야 중 하나인 근거이론의 핵심을 3주 안에 전달하려고 하니 반세기를 발전해 온 방법론의 디테일이 적잖이 날아가 버린다.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지만 한 학기에 여러 질적연구 방법론을 몽땅 가르치는 개론수업의 경우보다는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다. 그러고 보면 양적이든 질적이든 방법론 수업의 대부분은 수박 겉핥기식이 되는 것 같다. 방법론을 구체적인 연구 주제들과 유기적으로 통합시키지 못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학부생을위한근거이론이야기

가짜뉴스, 소셜미디어, 그리고 몸

소셜미디어의 급속한 팽창은 패거리사고와 확증편향을 위한 최적의 정보생태계를 만들어 주었다. 아울러 소위 ‘가짜뉴스’도 창궐하고 있다.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으로 이를 직시하고 극복할 수 있을까? 심히 회의적이다. 미디어가 몸의 확장이라면 그 몸이 점하고 있는 시공간, 그 몸이 처한 정치경제적 상황, 몸에 가해지는 다양한 물리적/신체적/심리적 힘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 ‘확장’만을 건드리는 것은 큰 힘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가짜뉴스가 가짜라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가짜뉴스가 필요한 사람들이, 조직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 필요는 ‘진짜’이며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같은 말은 없다.

Posted by on Oct 16,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집필 | No Comments

“주어요”에서 “줘요”로의 변화는 아무런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문법서의 설명은 이 둘을 등호로 연결한다. 하지만 쓰임과 의미의 영역에서 이 둘은 사뭇 다르다. 비주얼 디자인의 영역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등호로 연결된 수많은 언어들은 사실 같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엄청난 차이를 수반할 수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를 뿐 아니라 “줘요”다르고 “주어요” 다른 것이며, “혼코노” 다르고 “혼자 코인 노래방” 다른 것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의미와 말의 관계

Posted by on Oct 16,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집필 | No Comments

서너 개의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사고의 지형에서는 철저한 단일언어구사자인 사람이 있고,

하나의 언어만을 구사하지만

자유로운 다중언어구사자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의미와 말은 반듯한 일대 일 관계에 있지 않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학부생을 위한 근거이론 이야기 (3) – 왜 하필 근거이론을?

1. 이 수업은 연구방법론이 아니라 영어교육과 테크놀로지를 다루는 수업입니다. “영어교육의 외부”에서 영어교육을 생각해 보는 시간으로 전반부는 디자인 사고, 미디에이션, 멀티리터러시, 언어경관 등의 관점을, 후반부에는 코퍼스 언어학, 구글북스, 자동번역 등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다루지요.

2. 그런데 하필 이 수업에서 근거이론을 다루는 이유가 뭘까요? 궁금해 하시는 분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수업의 테마 중 하나인 교육공학이 교육현장의 이슈를 발굴하고 이에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학문이라는 점입니다. 근거이론의 기초를 배우면서 일상에서 지나치는 언어의 풍경 속에 어떤 이슈들이 숨어 있는지 탐구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면, 말이 품은 세계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3. 두 번째는 좀더 근본적인 고민입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언제나 매력적입니다. 새로운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하고 상상했던 것들이 눈앞에 펼쳐지니까요. 그에 비해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것들에는 눈길이 잘 가지 않습니다.

그런 ‘올드한’ 테크놀로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언어입니다. 저는 언어가 아주 오랜 기간 인간과 함께 진화해 왔기에 ‘테크놀로지’로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충분히 진보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해 낼 수 없다(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는 클락의 세 번째 법칙(Clarke’s third law)과 같이 언어는 우리 삶의 마법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완벽한 마법이어서 눈에 보이지 않게 된 것이지요. 마치 물고기가 물을 느끼지 못하고 우리가 공기의 존재를 망각한 것처럼 말입니다.

4. 그래서 우리는 언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새롭지 않다고 느끼는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이고요. 이러한 습속(habitus)을 깨기 위해서는 언어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만 합니다. 언어와 사고, 삶의 질서가 교차하는 방식을 탐구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5. 한 가지 고백할 것은 저는 근거이론만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진 않습니다. (설명할 시간은 없지만) 제가 공부하고 자주 활용하는 이론은 사회문화이론과 활동이론입니다. 또한 질적연구 중에서 근거이론과는 결이 많이 다른 문화기술지 연구에 더욱 동조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저는 텍스트와 씨름하는(engage) 방법으로 근거이론만한 도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론과 실습을 함께 해나가면서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학부생을위한근거이론이야기

영어 듣기 전략 훈련법 12가지

 

전략 1: 주어진 과제의 목표에 대비한다.

교수전략: 먼저 학생들에게 개념에 관한 질문들(concept questions)을 던져서 듣기에서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실하게 밝힌다. 학생들이 무작정 듣는 것이 아니라 듣기를 통해 수행해야 할 과업(task)에 대해 명확한 상을 갖도록 한다.

전략 2: 다양한 배경지식(background/encyclopedic knowledge)을 활성화하여 들을 내용을 예측(predict)한다.

교수전략: 듣기 지문의 주제 및 화자의 입장 등에 대한 토론을 유도함으로써 듣기 내용을 미리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제목, 삽화, 키워드 등을 통해 듣기 내용을 추측해 보게 한다. KWL (Know/What to Know/Learnt)를 활용한다.

전략 3: 언어적 지식을 통해 내용을 예측한다.

교수전략: 대본(transcript)의 빈칸을 채워넣는 활동(gap-fill activities)을 실시하고, 듣기 후에 학생들이 얼마나 맞았는지 확인하는 활동을 실시한다. 학습목표와 학습자의 수준에 따라 빈칸의 개수, 빈도, 빈칸으로 대체될 단어 및 숙어의 종류 등을 결정한다.

전략 4: 들으면서 잘 듣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점검(monitor)한다.

교수전략: 듣기 중간 중간에 일정 간격으로 재생을 멈추고 학생의 이해를 점검하라. “누가 …라고 말했지?” “이번 들은 내용을 이해한 대로 말해봐.” “여기까지 주제가 뭐니?” 등의 질문을 던지라. 학생들의 대답에 대해 ‘맞다/틀리다’와 같이 단순한 피드백을 주기 보다는 그 대답이 흐름에 맞는지, 논리적인지, 답이 맞다면 앞으로 어떤 내용이 나올지 생각해 보도록 하라.

전략 5: 중요하고 필요한 부분에 집중하고 필요치 않은 부분은 대충 듣거나 흘려버린다.

교수전략: 전체의 중심 내용을 파악하는 활동과 자세한 정보를 파악해야 하는 과제를 번갈아가며 실시하라. 듣기 활동이 끝나고 가장 중요한 부분과 ‘몰라도 이해하는 데 큰 지장이 안되는 부분’을 구분해 보도록 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토론해 보라.

전략 6: 필기를 통해 주요 정보를 확보한다.

교수전략: 다양한 그래픽 오거나이저를 활용하여 중요한 정보를 필기할 수 있도록 하라. 좋은 필기의 예를 보여주고 약어나 마인드맵 등을 활용한 필기법을 공유하라.

전략 7: 어려운 단어나 고유명사라면 대략 적는다. 철자 등의 정확성은 추후 확인한다.

교수전략: 이런 종류의 훈련을 위해서는 다양한 고유명사가 등장하는 뉴스 듣기가 제격이다. 적절한 지문 듣기 연습을 통해 친숙하지 않은 고유명사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도록 훈련한다.

전략 8: 듣기의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 키워드를 활용한다.

교수전략: 지문을 두 번째 들려주면서 특정 주제에 해당하는 어휘들(words belonging to a lexical set)을 들어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소셜 미디어 사용의 장단에 대한 지문이 주어졌다면, 소셜 미디어 관련 단어 및 그의 장점 및 부작용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찾아서 적도록 한다.

전략 9: 자신이 이해한 바와 다른 학생들이 이해한 바를 비교한다.

교수전략: 짝에게 혹은 모둠을 만들어 듣고 이해한 바를 이야기해 본다. 특정한 표현을 들었는지를 비교할 수도 있고, 화자가 말하려는 요지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도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정보 이해 및 해석의 차이를 알아볼 수 있다.

전략 10: 정보/이해 확인을 요청한다. (clarification)

교수전략: 학생들에게 “Could you repeat what you said about …?”와 같이 다시 한 번 이야기해 달라고 할 때 유용한 표현을 가르쳐라. 상황에 따라 이런 표현을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도하라.

전략 11: 들은 바를 다시 말로 해보거나 글로 써본다.

교수전략: Dictogloss를 적극 활용한다. 듣기 지문을 여러 번 들려주고 학생들이 모둠을 이루어 이야기를 복원(reconstruct)하도록 한다. (Dictogloss는 듣기 지문을 단어 수준까지 정확히 받아 적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받아쓰기(dictation)와 구분된다.)

전략 12: 화제가 전환되는 지점(transition point)에 주목한다.

교수전략: 접속사 및 각종 화제 전환 장치들을 소개한다. 이들 표현이 나올 때 재생을 멈추고 “자, 방금 들은 마지막 단어가 뭐였지? 그래, on the other hand! 그러면 이 다음에 무슨 내용이 나올까? 왜 그렇게 생각해?” 등의 질문을 던지라.

— 이상은 Wilson, J. J. (2008). How to Teach Listening. Pearson Education Limited. pp. 35-37의 내용을 보강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삶을 위한 영어예문

삶으로 펄떡이는 말을 돌려줘.

그따위 판에 박힌,

어디에서 베껴온 듯한,

옛 문법서에서 태어나

줄세우기 시험지에서 죽어갈 예문 말고.

 

세계로 가득한 지문을 보여줘.

벅찬 가슴으로 맞을 대화를 들려줘.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세상에서 절대 부딪칠 일 없는 지문들 말고.

 

내가 어리다고 해서

영어가 부족하다고 해서

아무 것도 모를 거라 생각하지도 마.

 

외국어라고 해서

내신 시험이라고 해서

일부러 죽은 것들을 가르칠 필요는 없잖아.

 

삶을 읽고 듣게 해줘.

마음껏 소리치게 해줘.

기뻐하고 분노하게 해줘.

웃고 떠들고 눈물 흘릴 수 있게 해줘.

 

말이란 게 애초부터

그러라고 있는 거잖아.

 

그러니

영어로도

쿵쾅거리는 심장으로

살게 해줘.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함께 스러질 수 있게

 

감옥이 아니라 세계를,

지배자가 아니라 친구를,

껍데기가 아니라 진짜를

만나고 싶어. 노래하고 싶어.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랩가사써보고싶다

 

학부생을 위한 근거이론 이야기 (2)

Posted by on Oct 15, 2018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집필 | No Comments

 

1. 자 그러면 누군가의 말을, 텍스트를 읽어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좀더 말씀을 드릴 차례네요. 근거이론의 제1 과제는 결국 언어를 해석하고 이해하여 이론을 생산하는 것이니까요.

2.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개념적으로 보았을 때 어떤 말을 이해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근거이론에서 ‘말’은 한두 단어가 아니라 어느 정도 길이가 되는 대화나 인터뷰, 텍스트를 의미하므로 이후에는 ‘담화(discourse)’라는 용어를 함께 쓰도록 하겠습니다.

3. 담화를 이해하는 데는 크게 내재적인 방식과 외재적인 방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어학습 전략에 대한 인터뷰에서 누군가의 진술을 20분 간 듣고 녹음하였고, 이걸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전사(transcription)를 했다고 가정해 보죠.

전사된 담화를 이해하는 외재적 방법은 여러분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다양한 영어학습 전략에 대한 담론체계를 적용하는 것입니다. 저명한 학습전략 이론가들의 가설, 그들이 제시한 개념, 여러분들이 영어학습 전략과 관련하여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바, 책에서 읽었던 지식, 수업에서 들었던 내용들을 담화에 적용하여 인터뷰이가 말한 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외재적 이해방식’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해당 인터뷰를 가장 잘 이해하기 위한 근거들이 해당 인터뷰의 외부에 존재한다는 믿음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4. 이를 “According to”라는 표현에 넣어 생각해 봅시다. 위의 ‘외재적’ 방법은 “According to some authoritative, reliable, well-established external sources, the interview means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5. 하지만 해당 담화를 내재적으로 이해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According to 다음에 텍스트 자신이 등장하는 거죠. “According to the text, it means …”라는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번에 살펴보았듯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According to the text, it means what the text says.”라는 식의 해석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요. 액면가(face value)는 텍스트의 표층을 보여줄 뿐 심층에 있는 사고의 지형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합니다.

6. 텍스트의 심층이 무얼 의미하는지 좀더 살펴보기 위해 간단한 예를 살펴 봅시다.

“그날 선물을 받아서 참 좋았어요.”

이 문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선물=좋은 것”이 됩니다. 하지만 이 문장 앞뒤에 나오는 문맥에서 “선물=좋은 것”이라는 등식이 꼭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인터뷰이가 “참 좋았어요. 하지만~”이라고 명시적으로 말할 수도 있고, 인터뷰의 후반부에서 다른 선물 이야기를 할 때 위 문장의 의미가 약화되거나 부정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이라는 연결어가, 다른 선물의 예시가 이 문장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요.

7. “선물”이라는 단어의 의미 또한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 선물은 순전한 마음의 표시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호의를 사기 위한 전략적 투자일 수도 있습니다. 치밀한 심리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면 선물을 상대를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한 ‘뇌물’로 사용할 수도 있고, 은근한 압박을 넣는 수단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위에서 말하는 ‘선물’이 이들 중 어떤 의미에 가까운지는 저 문장 하나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다른 말들과의 연관관계를 고려하지 않으면 깊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물’의 의미는 사전적 정의나 연구자의 직관 혹은 상식적인 뜻이 아니라 해당 인터뷰이의 진술 속에서 확정되어야 합니다. 한 단어의 의미가 이 텍스트의 외부(사전의 뜻, 대중들의 인식)에 있해 정해진다기 보다는 해당 인터뷰의 여러 요소 사이의 관계에 따라 도출됩니다. 이런 면에서 해당 어휘의 의미는 ‘내재적’인 방식으로 파악해야 하는 것입니다.

8. 여기에서는 ‘선물’이라는 단어 하나를 가지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우리의 말은 많은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은 서로 연결되어 복잡다단한 의미망을 이룹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말하는 사람의 내면은 논리정연하고 명확하며 완결된 언어로 세상에 뛰쳐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은 의식의 구조를, 의미의 네트워크를, 사건과 상황, 조건과 상호작용 등의 요소들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말의 심층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9. 말씀드렸듯이 텍스트의 의미를 외재적인 방식으로만 해석할 수도, 내재적인 방식으로만 해석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의미도 독립적이며 탈맥락적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특정한 현상의 심층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있어 외재적 담론에 의존하는가, 내재적 읽기에 더 방점을 찍는가는 분명 고민해야 할 지점입니다.

10. 근거이론에 들어가기 위한 워밍업은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이게 다는 아니거든요. ^^ 이제 본격적으로 근거이론의 배경과 의미, 실행방식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학부생을위한근거이론이야기

삶을 위한 영어공부 – 집필방향

Posted by on Oct 15, 2018 in 단상, 삶을위한영어공부, 영어, 집필 | No Comments

<삶을 위한 영어공부>는 다음 세 가지 영역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1. 한국사회에서 가장 대중적인 영어교육 담론으로 자리잡은 Krashen의 언어학습이론을 비판적으로 읽어내기

영어교육의 수많은 당사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인풋이 중요하다”라는 말의 뿌리가 되는 학습이론을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영어학습에 적용하기.

2. 원어민 중심주의(Native speakerism)의 비판적 해체

한국사회에서 가장 은밀하고도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원어민 중심주의의 해체. “원어민처럼 완벽하게”, “네이티브 되기”, “아무리 해도 안되는”과 같은 말 속에 숨어있는 원어민 우월주의 및 중심주의를 들여다보고 무너뜨리기.

3. 사교육과 공교육의 압도적인 담론에서 벗어나 자신의 영어공부의 길 찾기

‘그들의 영어교육’에서 ‘내 삶의 영어공부’로의 전환. 삶을 가꾸고 성찰과 소통을 키워가는 재미있는 영어공부로의 초대.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네이티브가 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몇 시간이나 공부해야 네이티브처럼 말하고 쓸 수 있나요?”

 

영작문 쉬는 시간이 끝나갈 무렵, 맨 끝자리에 앉았던 학생이 성큼성큼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대뜸 이 질문을 던지더군요.

 

“좋은 질문입니다. 한두 마디로 정리하긴 힘들 것 같지만 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네이티브처럼”이라는 말을 정의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네이티브처럼 영어를 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사실 이걸 정의하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우선 영어의 종류가 너무 많습니다. 세상에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가 한두 개가 아니거든요. 하지만 이것까지 생각하고 질문하신 건 아닌 것 같으니 일단 넘어가도록 하죠.

 

우리나라에서 네이티브처럼 영어를 한다고 하면 보통 미국이나 영국영어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먼저 생각하는 게 발음이죠.

 

그들처럼 발음을 하려고 한다면 아주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워야 할 겁니다. 초등학교에 가기 전에 배우는 것이 좋겠고, 아무리 늦어도 사춘기 이전에 배워야 하죠. 하지만 발음을 너무 크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발음이 중요하긴 하지만 언어를 이루는 여러 구성요소 중 하나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원어민같은 발음을 갖는 게 아니라 자기 발음을 통해 효율적이며 의미있는 소통을 할 수 있는가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완벽한 원어민 발음’이라는 말에 숨어있는 편견을 간파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완벽한’은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요. 하나는 가치 판단이 들어가지 않은, 정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네이티브의 발음과 같다(same)”는 뜻을 담고 있지요. 하지만 잘 들여다 보면 ‘완벽’에는 우월함(superiority)의 가치 또한 담고 있습니다. 원어민의 발음은 완벽하고 나의 발음은 완벽하지 않다는 의미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는 후자의 의미가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왜 이 세상의 수많은 발음을 완벽한 발음과 모자란 발음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어야 할까요? 아직까지 저는 그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쓰기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이 수업이 영작문 수업이니 말이죠. 네이티브처럼 작문을 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우선 철자나 문법적인 오류를 덜 범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왜 ‘덜 범하는 것’이라고 했을까요? 원어민들도 종종 문법적인 오류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언어를 배우면서 오류를 줄여가려는 노력은 중요하고, 이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꾸준히 해야 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일률적으로 “몇 시간을 노력하면 완벽한 문장을 쓸 수 있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정한 수준이 넘어가면 영어를 공부해 온 누적시간 보다는 하나의 글에 대한 퇴고가 글의 질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수십 년 모국어로 글을 써온 작가들조차 글을 다듬고 또 다듬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요. 여러분들이 오류가 많은 글을 쓰게 되는 건 영어공부의 세월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고쳐쓰기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일 공산이 크다는 말입니다.

 

한편 ‘완벽한 문장 쓰기’의 오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문법적으로 오류가 없는 문장을 생산해 내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 의견을 입체적이면서도 엄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흠없는 문장이라는 신기루를 좇기 보다는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인지, 쓰여질 가치가 있는 내용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죠.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응용언어학을 공부하고 영어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멋진 글을 쓴다고는 할 수 없지만 관련된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기도 하고, 해당 학문분야의 논문을 영어로 쓰기도 합니다. 미국인이나 영국인 중 이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아마 극소수일 겁니다. 영어교육이나 응용언어학을 전공해야만 하는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저는 그들보다 영어를 잘한다고 할 수 있나요? 비원어민인 제가 원어민들보다 낫다고 할 수 있나요?

 

생각하면 할수록 저와 원어민을 비교하는 게 별 의미가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제 삶에서 중요한 일들을 영어로 할 수 있을만큼 훈련을 받았고, 그럭저럭 해내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족합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분야를 열심히 공부하시고 그걸 하시면 됩니다. 굳이 원어민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깁니다.

 

그래도 비교를 꼭 하셔야겠다면 이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여러분들이 많은 원어민들보다 낫습니다. 적어도 미국의 경우 외국어를 하나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거든요. 그들은 우리보다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라 영어밖에 못하는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데에다가 영어를 ‘더’ 하는 것이죠. 그들은 하나를 하는데 여러분들은 둘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지요.

 

세상 모든 사람을 줄세우고 영어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을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모양새는 여러 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길 원하는 삶에서 어떤 영어가 필요한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 길에 정진하십시오. 그러다 보면 여러분들은 자신의 영어를 하게 될 겁니다. 그걸로 족하지요. 네이티브처럼 영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으로서, 여러분의 삶의 영어를 구사할 방법을 강구하십시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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