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러시 교육의 또 다른 목표

지식의 확산과 공유가 쉬워질 수록 이해의 폭과 깊이도 커진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오해의 폭과 깊이 또한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보가 끝없이 늘어나도 인간의 두뇌가 갖는 역량은 상수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이해력과 ‘오해력’이 손에 손을 잡고 쑥쑥 커가는 동안 개인은 한없이 작아진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으나, 더 많은 것들을 모르게 되었다. 우리의 앎의 세계는 커진 것 같지만 불확실해졌다.

지금 리터러시 교육의 주요 과제는 다양한 정보를 이해하고 선별하고 종합하고 활용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으로 요약된다. 마치 그 모든 것들을 소화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지식정보역량을 키움과 동시에 자신의 앎이 가지는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게 하는 것.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부족함에 대한 성찰 속에서 소통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 시대 리터러시 교육의 주요 과제로 설정되어야 한다.

#삶을위한리터러시

나의 영어교육

“흔히 ‘초중등 영어교육’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단어 암기, 문법 시험, 해석하고 문제 풀기. 이를 통한 성적/스펙 획득.

나의 영어교육: 영어를 매개로 삶을 다루기. 권력과 계급, 차별과 배제, 아름다움과 추함, 사회와 문화가 순간순간 충돌•교차하는 담론장에서의 실천.

이 간극을 줄여가고 싶습니다.”

연수 강의록 작성하다가 끄적인 메모입니다.

언젠가 #삶을위한영어공부 ‘교사편’ 써볼까 봐요. 더 많이 알아서 쓴다기 보다는 동료 교사로서 다른 선생님들께 편지쓰는 마음으로요.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신세한탄도 있고, 함께 고민해 보자는 초대도 있고… 그런 글이면 어떨까 싶네요.

영문 학술 프리젠테이션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제가 프리젠테이션에 대해서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이 점이/이 연구가 정말 중요하다”라는 점을 청중들에게 알리는 방식입니다. 프리젠테이션이 그냥 이력서에 한 줄 올라가는 발표가 아니라 자기 삶에서, 학계에서 나아가 인류에게 정말 중요한 이슈라는 것을 설득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던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교육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발표를 시작하곤 합니다. 인상적인 인용구와 해당 분야의 기념비적 연구를 가지고 시작하는 전략도 나쁘지 않은 것 같구요.

두 번째는 데이터입니다. 자기 연구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외쳐봐도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프리젠테이션은 재미도 힘도 없습니다. 처음에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는 데이터가 없어서 고생했는데, 논문을 거의 완성할 때쯤 되니 보여줄 것들 중에서 고르는 것이 힘이 들었습니다. 저는 “강한 인상/확신을 줄 수 있는 데이터 두세 가지를 보여주는 간결한 비주얼”로 발표를 채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많은 데이터를 보여주려다 보면 발표가 아닌 논문이 되어버리고 청중의 집중력도 급속히 떨어지게 되니까요.

즉 두 가지가 갖춰진 프리젠테이션은 기본은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많은 문헌들을 잘 정리해서 표와 차트로 보여준다거나, 발표 후 자신의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도입했다면 이를 통해 다룰 수 있는 다른 영역 혹은 데이터를 강조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다시 강조하자면 “이게 나에게, 학계에, 우리 사회에 중요하거든요?” 아울러 “왜 중요한지 이 데이터를 보면 확실히 아시겠죠?”라는 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이제 (그닥 좋아하는 용어는 아니지만) 프리젠테이션을 조직하는 ‘스킬’의 측면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서는 발표자료에 대해 충분한 지식이 있고, 관련 용어를 숙지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어떻게 영어로 발표를 이끌어 나갈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제가 생각해 본 전략은 최근 쉽게 구할 수 있는 다양한 동영상 강의를 일종의 모델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TED.com에 올라와 있는 중 Pamela Meyer의 “거짓말장이 잡아내는 법”이라는 강연을 예제로 사용하겠습니다.

1. 시작에 임팩트있는 진술과 유머를 섞어라.

“Okay, now I don’t want to alarm anybody in this room, but it’s just come to my attention that the person to your right is a liar. (Laughter) Also, the person to your left is a liar. Also the person sitting in your very seats is a liar. We’re all liars. What I’m going to do today is I’m going to show you what the research says about why we’re all liars, how you can become a liespotter and why you might want to go the extra mile and go from liespotting to truth seeking, and ultimately to trust building.”

먼저 웃음을 이끌어내기 위해 “지금 딱 보니까 너 오른쪽에 있는 사람 거짓말장이네?” 라는 말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현장에 모인 청중들, 나아가 모든 인간에 적용하죠. 처음 웃고 시작하는 건 프리젠테이션에서 정말 효과적입니다. 자연스런 웃음으로 순식간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시작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거죠. 하지만 단순한 웃음을 유도하는 게 아니라 발표의 주제가 우리 각자 또 사회 전체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을 명확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Today I’m going to … 라는 구문을 통해서 오늘 할 이야기를 단도직입적으로 전합니다. 이 문장은 전체 프리젠테이션의 주제를 담고 있는 문장이면서 자신의 일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ultimately to trust building) 문장이기도 하죠.

2. 아래에 내려가면 여러 가지 연구를 언급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On a given day, studies show that you may be lied to anywhere from 10 to 200 times. Now granted, many of those are white lies. But in another study, it showed that strangers lied three times within the first 10 minutes of meeting each other. (Laughter)”

이 부분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발표자가 소개하려는 연구를 매우 간결한 문장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러 연구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순간 프리젠테이션은 지루해집니다. 자기가 하려는 이야기와 관련된 내용만 최대한 간결하게 추려서 소개해야 하고, 그것이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프리젠테이션은 데이터 주석 data commentary 이 아니고 이야기하기 storytelling 이라는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데이터와 결과는 스토리텔링의 주요요소로 기능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이번에는 특정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부분을 봅시다.

“Now this brings us to our next pattern, which is body language. With body language, here’s what you’ve got to do.”

앞서 발표자는 프로이드의 말을 통해 우리의 말 speech 과 그에 숨겨진 심리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위의 문장을 사용하여 제스처에 관한 논의로 넘어가죠.

이 부분에서 프리젠테이션을 보시다가 부분 부분을 엮어주는 표현들에 주목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Now we can move on to … 나 Given this situation/data 같은 식의 표현을 쓰실 수도 있고, On the contrary, on the other hand 등 역접을 나타내는 어구를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This is just a part of the story, though. 라면서 좀더 넓은 논의로 나아가실 수도 있고, Is this really a universal pattern?과 같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식의 표현을 쓰든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가 넘어갈 때 뚝뚝 끊기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프리젠테이션을 만드는 것은 영화에서 좋은 편집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입니다.

4. 다음으로 질문을 통해 청중과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부분을 봅시다.

“Now we’re going to look at the hot spots. Can you tell what’s happening in a conversation? Can you start to find the hot spots to see the discrepancies between someone’s words and someone’s actions? Now I know it seems really obvious, but when you’re having a conversation with someone you suspect of deception, attitude is by far the most overlooked but telling of indicators.”

우선 질문을 던지는 전략은 효과적이지만 매우 위험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너무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건 프리젠테이션을 어색하게 만듭니다. (청중 반응: 뭐 어쩌라구? 그거 계산하려면 수퍼컴퓨터 써야 되겠네.) 너무 안이한 질문은 ‘뭐 저런 질문을 던지고 있냐. 다 아는 거잖아.’와 같은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죠. 따라서 발표하시는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발표 내용을 이해하면 충분히 답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거나, 상상과 추측이 적극적으로 발동되는 질문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5. 다음으로 초반에 제시한 아웃라인을 언급하는 부분을 봅시다.

Now we’ve talked a little bit about how to talk to someone who’s lying and how to spot a lie. And as I promised, we’re now going to look at what the truth looks like.

이건 위에서 설명드린 3번과 비슷한 기능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초반에 언급했던 전체 강연의 내용 및 구조를 언급하면서 넘어가고 있지요. 청중들에게 지금 발표가 어디 있는지(where we are)를 알려주면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면 전체 흐름을 놓치지 않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발표자는 청중들을 새로운 여행지로 이끄는 가이드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면 좋을 것입니다.

6. 마지막 단락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져야 합니다.

자 마지막 문단을 한 번 볼까요?

When you combine the science of recognizing deception with the art of looking, listening, you exempt yourself from collaborating in a lie. You start up that path of being just a little bit more explicit, because you signal to everyone around you, you say, “Hey, my world, our world, it’s going to be an honest one. My world is going to be one where truth is strengthened and falsehood is recognized and marginalized.” And when you do that, the ground around you starts to shift just a little bit.

And that’s the truth. Thank you.

“사람들이 거짓을 인지하는 과학을 보고, 듣는 기술과 결합할 때, 그들은 자신을 거짓말에 동조하는 것에서 제외시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아주 조금만 더 확실히 표현하는 길을 시작하세요 “이봐, 내가 사는 세상, 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직한 세상이 될거야 내 세상은 진실이 강해지고, 거짓은 밝혀지고 무시되는 세상으로 바뀔거야 그리고 여러분이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아주 살짝 바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진실입니다 감사합니다.”

TED의 한글 번역이 완전히 매끄럽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 훌륭한 메시지입니다. 저는 좋은 발표는 정보와 함께 영감을 주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단락에서 깊은 울림을 이끌어 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프리젠테이션 막판까지 자잘한 데이터를 제시하느라 마지막에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시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상으로 TED talk 한 꼭지를 가지고 학술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저의 짧은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TED 를 시청하시거나 기타 강의를 보실 때는 발표자가 주제의 중요성을 어떻게 개괄하는지, 관련 분야의 지식과 연구를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어 전달하는지, 토픽과 토픽 사이의 전환에서 사용하는 전략은 무엇인지, 프리젠테이션의 개별 꼭지들을 전체 이야기 속에 어떻게 자리매김하는지, 결론에서 청중들을 감동시키는 전략이 무엇인지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강의의 내용만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각각의 요소에 해당하는 언어 요소들을 주의깊게 보셔야 하겠죠.

참고영상
https://www.ted.com/talks/pamela_meyer_how_to_spot_a_liar

#학술프리젠테이션 #영어로논문쓰기

“be (a)”, “have”, 그리고 범주체계

1. 인간은 세계를 다양한 범주(category)로 구획한다. 인간발달의 가장 중요한 축으로 범주화 능력의 확장을 꼽을 수 있다. 언어는 인간의 범주체계를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2. 범주들은 일련의 체계를 이룬다. 해당 체계를 구별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종의 ~이다”의 의미를 지닌 ‘kind of-relations’와 “~의 부분이다”라는 뜻을 지닌 “part of-relations”이다.

3. 모두 알다시피 be와 have에는 다양한 뜻이 있다. 이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범주의 관계를 나타내는 용법을 들 수 있다. 범주 분류표(taxonomies) 상의 다양한 개체들이 갖는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4. 우선 be 동사는 부정관사 a(n)과 결합하여 ‘kind of-relations’를 표현한다. 예를 들면 “A train is a means of transport.”라고 말함으로써 기차가 교통수단의 한 종류임을 뜻할 수 있다.

5. 이에 비해 have는 ‘part of-relations’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동사다. 예를 들어 “A car has four wheels.”라고 말함으로써 네 개의 바퀴가 차에 일부라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

6. 이처럼 영어에서 have와 be는 범주의 체계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동사라고 할 수 있다.

7. 재미있는 것은 범주의 위계(hierarchy) 상에서 기본적인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뭘 타고 왔느냐?”고 할 때 “차 타고 왔지.” “버스타고 왔지.” “오토바이 타고 왔지.” “비행기 타고 왔지.”등으로 답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상황이나 화자의 성향에 따라서 “4륜구동 세단을 타고 왔지.”라든가, “배기량 300CC의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왔지”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이것은 질문하는 사람이 원하는 정보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8. 여기에서 ‘차’, ‘버스’, ‘오토바이’, ‘비행기’등을 보통 ‘기본 범주(basic-level categories)’라고 부른다. 기본 범주에 해당하는 어휘는 보통 (1) 자주 쓰이고, (2) 간결하게 표현되며, (3) 다양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고, (4) 이른 시기에 습득된다.

9. 정리하면, 언어는 개념의 체계를 부호화(encode)하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로 ‘종류’와 ‘부분’을 들 수 있다. 영어에서 전자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방식으로는 ‘be a’ 구문의 사용, 후자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방식으로는 ‘have’ 구문을 들 수 있다. 개념체계 중 가장 기본적인 레벨에 해당하는 용어를 기본범주 어휘라고 한다.

이상은 Günter Radden & René Dirven. 2007.<Cognitive English Grammar>. John Benjamins Publishing Company. Chapter 1. Categories in thought and language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인지언어학이야기 #be #have #기본범주

다다르지 못함에 대한 감각

Posted by on Jun 20, 2020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집필 | No Comments

1. 세상이 좋아졌다. 검색하면 손끝에서 정보가 쏟아진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한두 개 한다면 구글북스 검색에서도 상당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북과 오디오북도 상당량의 정보를 제공한다. 소위 ‘어둠의 경로’는 더이상 어둡지 않다. (응?)

2. 석사논문을 쓸 때까지만 해도 구할 수 없는 문헌들이 꽤 있었다. 모모 대학 도서관에만 있는 도서.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문헌. 어디 있는지는 알지만 구할 수 없는 책과 논문이 적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구할 수 없는 책과 논문이 가끔 튀어나오지만 고도로 특화된 문헌학 연구가 아니라면 해당 레퍼런스 없이도 논문을 쓰고 저작을 완성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주로 다루는 언어교육 분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3.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잊게 되는 감각들이 있다. 다다르지 못함에 대한 감각이 대표적이다. 신비감이라고 해야 할까. 알 수 없고 접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동경이라고 해야 할까. 정보의 과잉은 이런 감각을 무참히 깨뜨리고 있다.

4. 여행을 가지 않아도 특정 지역을 다룬 동영상과 웹사이트를 통해 ‘거기 가본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문헌을 꼼꼼히 다 읽지 않고도 초록을 섭렵하면서 ‘그 분야를 좀 아는 것 같은’ 자만에 빠지기도 한다. 하드디스크에 채워져가는 문헌들을 보며 나의 지식이 채워진다는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내 이야기다.

5. 더 많은 것들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 더 넓게 알아야 더 깊이 볼 수 있는 영역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인간이 보고 읽어낼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정보과잉은 과장된 만능감을 선사한다. 다다르지 못함에 대한 감각을 망각한 이들은 자기를 과신한다.

6. 만능감은 언제나 거짓이다. 우리 각자가 알 수 있는 것은 세계의 파편 중에서도 파편일 뿐이다. 정보가 많아진다면 우리는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정보가 제대로 쓰이는 길이다.

7. 소셜네트워크도 마찬가지다. 사람들과 연결될수록 사람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토록 다양다종한 사람들을, 그들이 겪어온 삶의 굴곡들을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는가?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다 알고 있다고 믿는 멍청이들이 보인다.

그리고 생각난 책의 한 구절.

8. 엄기호: 또 하나, 제가 주체성의 문제에서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변화는 거대주체의 소멸이에요.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기,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 이걸 생각하게 되면서 거대주체가 소멸하게 되었다고 보는 거죠. 담론의 공간, 주석으로서의 지식 생산이라고 말씀하신 것이이런 의미일 텐데요. 이제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다 알거든요, 자기가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요. 특히 자연과학에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지식이라는 게 거의 불가능하죠.

제가 이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거대주체를 종식시켰기때문에 인간이 더 겸손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만능감을 제거할 수 있죠. 많은 연구자가 처음에 어떤 주제를 떠올리면서 이건정말 기발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논거를 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저작을 읽다 보면 자기가 하려는 게 대부분 이미 연구되어 있다는것을 깨닫게 되죠. 인류 전체의 거대한 축적 위에 올려지는 작은 벽돌 하나라도 되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말 겸손해지거든요. 아주 예외적으로 읽기를 반복할수록 자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만 대다수의 사람은 읽으면 겸손해집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개인을 만들고 역사적 주체를 만들되, 동시에 거대주체가 아닌 작고 소박한 주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읽기라는 행위가 가진 매우 독특한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93-94쪽)

다양성의 포용, 이데올로기, 그리고 투쟁

Posted by on Jun 11, 2020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집필 | No Comments

다양성의 포용은 친절하고 따뜻한 행동을 연상시키지만 사회 곳곳에 그리하여 우리 마음 깊이 뿌리박은 차별을 과감하게 해체하기 위한 소란스런 싸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양성은 그냥 포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벽을 무너뜨리고 경계를 넘어설 때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쟁’이라는 말의 부정적 느낌과 ‘포용’이 상기하는 긍정적 느낌은 실상 동일한 행위에 대하여 의도적으로/이데올로기적으로 덧씌워진 감정이다. 문제는 ‘다양성을 포용하자’는 구호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다양성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awareness)을 증진시키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거기에 안주한다면 기존의 질서에 기생하는 담론만을 생산하는 데 그치고 만다. 기존 체제가 ‘유사저항담론’과의 공존을 선전하며 자신의 권력을 더욱 안정적으로 행사하는 최상의 조건이 마련되는 셈이다. 

#차별금지법을제정하라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사회언어학과 영어교육 강의노트 4: 언어와 정체성, 그리고 적절성(appropriateness)의 애매함

한국인 간호사가 있었다. 최근 미국으로 건너가 자격을 취득해 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의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간호사B가 급하게 끼어들었다. 의사는 상황을 파악하고 간호사B에게 “그건 이리저리 해서 그녀에게(to her) 건네주라.”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her’는 한국인 간호사였다.

간호사B와의 대화를 마친 의사가 다시 한국인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의사가 살짝 당황한 듯 이렇게 말했다.

“Oh, I’m sorry. Do you go by ‘her’?” (앗 미안합니다. ‘her’로 불리시나요?)

무슨 말인지 몰라 멍하니 있던 간호사는 3-4초가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묻는 질문임을 알았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여러 복잡한 생각이 스쳤다. ‘당연히 여성으로 안보이나?’ ‘여기에서는 이런 식으로 대놓고 물어보기도 하나?’ ‘나 같으면 모른척 her라고 말할 거 같은데…’ 등등.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라면 그런 질문을 받을 일이 없다. 우선 상대의 성적 정체성에 대해 묻는 걸 꺼리며, 그런 것을 물어보는 일이 엄청난 결례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어에서는 him/her와 같이 성별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대명사를 쓰지 않아도 되기에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아마도 ‘저분’이나 ‘저 간호사’ 정도로 썼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들어 미국에서도 her/him과 같은 대명사를 쓰기보다는 them과 같이 성별을 나타내지 않는 인칭대명사(gender-neutral personal pronoun)를 쓰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고 한다. 일화 속 의사가 그냥 ‘them’을 썼더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을 수 있었을 것 같지만, 또 이런 ‘them’의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them’이 누구누구인지 되물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고 보면 언어와 문화에 맞는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사회언어학강의노트

음모론의 발달 단계 – 한 가지 예

Posted by on May 6, 2020 in 단상, 삶을위한리터러시, 일상, 집필 | No Comments

1.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 2. 열받는다. 가까운 이들에게 열받지 않느냐고 물어본다. 3. 다같이 열받는다.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고 성토한다. 4. 여기엔 분명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어! 왜냐고? 이렇게 여러 사람이 열받았잖아!

관련 분야를 공부했다는 사람들까지 음모론에 넘어가는 걸 보면 (1) 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2) 부족주의적 사고가 지식과 경험 따위는 우습게 박살내거나 (3) 튀고 싶은 욕망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것 같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떼어낼 수 없을 만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렇게 욕망을 채운 사람들은 선망의 대상이 되고, 팬덤에 합류한 이들은 비판자들을 ‘불만충’ 취급한다. 자기가 믿었던 것과 반대의 진실이 드러나도 자기는 훌쩍 ‘커’ 있다. 이 정도면 수지맞는 장사 아닌가?

사실이 의견보다 중요함을 넘어 사실이 욕망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새겨야 할 시대 아닌가 싶다. 진실을 추구하는 방법론을 가르치는 것 만큼 부족을 규합해 우월함을 성취하려는 열망을 제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때인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져도 괜찮다’, ‘소수여도 괜찮다’, ‘나 자신으로 살아도 괜찮다’는 감각 아닐까. 논리와 과학이 필요한 만큼 무너지지 않는 세계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지 않을까.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배움의 시공간, 두서없는 단상들

온라인 개학 시기, 교수학습의 시공간에 대한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

1. 온라인 개학이 거둔 일정한 성공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온라인 교육’이 가지는 내재적 균열은 ‘몸과 공간의 변화’라는 급진적 변수를 무시하고 ‘내용과 시간’을 잡아두려는 데 있지 않았을까. 배움에 있어 시공간은 분리 가능한가? 우리 교육은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다루는가?

2. 왜 적잖은 사람들이 집에서는 도저히 공부가 안된다고 말하는가? 그저 의지의 부족인가? 배움의 공간이 달라지고 그 안에 놓여지는 몸이 달라지는데 ‘O교시’로 대표되는 시간의 구획이, 그 안에서 다뤄지는 내용이 그대로인 것은 자연스러운가?

3. 아인슈타인이 시공간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건만 여전히 교육에서 시공간이 따로 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옳은 일일까? 학교에서의 시간은 집에서의 시간과 같이 흐르는가? 선생님과 친구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시간과 화면 속 사람들을 보거나 콘텐츠를 시청하는 시간은 동일한 밀도와 점성을 가지고 있는가?

4. 우리의 지각, 주의, 집중, 지속, 정서, 태도, 흥미, 몸짓 등은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환경과 어떻게 엮이는가?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나의 몸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사회적으로 매개되고(socially mediated), 공동체에 의해 규율잡힌(community-regulated) 학습은 컴퓨터에 의해 매개되는 학습과 어떻게 다른가?

5. 오랜 시간 유지되어 온 학교의 “O교시” 체제는 그 자체로 개인의 차이를 무시한다. 개인별로 이해와 배움, 집중과 지속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고의로 망각’한다. 공교육체제의 특성상 모든 이들에게 일정한 양과 수준 이상의 지식을 전수해야 한다는 목표 아래 ‘필요악’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6. 추후 온라인 학습이 또 다시 ‘디폴트’가 되는 시기가 온다면 우리는 여전히 O교시 체제를 고집해야 하는가? 혹 ‘급진적 개인화’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계기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공간의 변화, 함께 존재함(co-presence)의 상실은 신체적,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변화를 수반한다. 그렇게 변화한 시공간에 맞는 새로운 배움을 상상해야 할 시기일지 모른다.

7. 몇 주 만에 온라인 개학을 위한 IT 시스템을 안정화시켰다는 소식, 그에 대한 일부 언론의 상찬을 보며 우리사회가 여전히 기술중심적 시각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IT 인프라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으나 그것은 ‘온라인 개학’의 기술적 선결과제일 뿐 완성은 아니다.

8. 중요한 것은 ‘온라인/디지털’이라는 플랫폼에서 ‘개학’을 했다는 것이다. 학교를 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IT시스템의 완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사건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일차적으로 교사들의 노고, 나아가 학부모와 학습자들의 협력이다. 이러한 측면에 대한 조명은 여전히 부족하다. ‘온.라.인. 개학’이 아니라 ‘온라인 개.학.’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기술이 아니라 교육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해야 한다.

9.교실에서 행해지던 짝활동 및 모둠활동이 힘들어진다는 것은 상호작용의 가능성이 심각하게 축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일부 온라인 수업이 택하고 있는 ‘시청완료=학습완료’의 공식은 바람직한가? 시청의 완료가 그 시간 동안의 인지적 정서적 몰입(engagement)을 담보하는가?

10. 오프라인 개학이 다가오고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전의 세계’에 적응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이 시간의 고군분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잊지 않고 살아가다 보면 새로운 실천의 싹이 트지 않을까?

‘금배지 언박싱’에 관하여

말이나 행위를 가져오는 것은 그저 ‘선택의 자유’일까

1. ‘언박싱’ 담론이 의례의 세계에서 점하고 있는 영역이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상품의 영역, 자신의 구매를 보여주는 영역, 때로 누군가의 제품을 홍보하는 영역이다. 언박싱은 기본적으로 개인과 상품,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이라는 네트워크에서 작동한다. 언박싱 영상의 생산자와 시청자는 재화를 통해 매개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사적 영역에 속한다.

2. ‘국회의원 금배지’가 점하는 담론의 영역이 있다. 기본적으로 배지는 국민에 의해 선출되어 그것을 착용한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지만, 자주 ‘국민을 내려다보는’ 태도를 함의한다. ‘금배지 좀 달았다고’와 같이 정치인에 대한 못마땅함을 표현할 때도 종종 사용된다. 그렇게 금배지는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민주정치의 표징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금배지는 공적영역의 담론 안에 위치하여 대표자로서의 정치인을 상징한다.

3. 서로 다른 담론의 영역들이 교섭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말은 섞이고 의례는 ‘선을 넘는다’. 교회 내에서 랩뮤직의 사용은 ‘상상할 수 없는 일’에서 ‘신박한 예배 형식’이 되었다. 도덕적 영역과 경제의 영역이 합쳐져 ‘착한 가격’을 낳았고, 이는 또 다른 영역과 만나 ‘착한 임대인 정책’을 만들어 냈다.

4. 담론간의 선을 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해서 모든 가로지르기를 긍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교육의 일주체인 학습자가 ‘소비자’가 되는 것을 당연하다 여길 수 없으며, 비상시의 온라인수업을 ‘미래교육’이라 표현하는 것에 손뼉칠 이유도 없다. 담론이 섞이는 순간 새로운 가능성이 탄생하지만, 그 가능성은 희망일 수도, 타락일 수도 있는 것이다.

5. 그런 면에서 정치의 영역에 있는 ‘금배지’를 ‘언박싱’하는 행위는 위태롭다. (물론 이걸 ‘재미있다’고 표현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정치인이라면 공공의 영역을 상징하는 금배지를 개인과 상품 담론의 최전선에 있는 언박싱이라는 의례에 얹어놓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구시대의 끝자락에 머무는 일일 수 있지만 말이다.

담론을 섞는 일은 창조적인 행위일 수도 상식의 파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점하고 있는 사회문화적 위치에서 어떤 가로지르기가 용납되고 요청되느냐를 판단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많은 시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가로지르기의 예술’에 능통해야 한다. 거침없이 가로지르되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덧. 이 글을 쓰고 나니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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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키워드는 ‘윤리’입니다. 보통 윤리라고 하면 거창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우리가 단어 하나하나를 선택하는 과정에 윤리적 측면이 개입하죠. 얼마 전 온라인상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작명이 있었어요. 바로 ‘버닝쑨대국밥집’과 ‘버닝선대인’인데, 국밥집과 프로그램 이름을 저렇게 지은 거예요. 여기에서 타인의 말을 자기 말이나 글로 가져올 때의 윤리를 생각해볼 수 있어요. 아마도 저 이름을 택한 사람들은 주목받는 말장난을 원했겠죠. 사람들의 흥미를 일으켜 한 번 더 쳐다보게 하는 효과를 노리면서요. 그런데 여기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복잡다단한 세계에서 말만 달랑 떼어오려 했다는 점이에요. ‘버닝썬’이라는 말이 태어난 자리의 착취와 잔혹함, 분노와 고통은 아랑곳없이 말의 힘만을 가져오려 한 거죠.

저는 이런 행위가 윤리적이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말은 사전 위에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 진공 상태에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인간과 관계 속에 뿌리박고 또 투쟁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 말 주위로 권력과 욕망, 아픔과 분노가 교차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말을 가져오고 이름을 정하는 데 필요한 윤리는 세계를 만나고 해석하는 윤리이고, 말이 자라난 사회정치적 토양에 대한 살핌의 윤리이며, 무엇보다도 그 말로 엮여 있는 사람들에 대한 윤리죠. 삶과 세계를, 거기 살고 있는 감정과 모순을 지워버리고 말만을 가져다가 자신의 이익에 복무시키는 행위는 결코 가볍지 않아요. 이건 단순히 말실수라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망각, 맥락에 대한 몰이해, 나아가 자기중심성으로의 한없는 함몰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렇기에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 있어요. 러시아의 문학평론가이자 이론가인 바흐친이 간파했듯이 우리의 말은 원래 누군가의 말이었고 우리의 조어는 결코 완벽한 창조가 아니라는 점, 말이 우리 곁에 올 때 세계가, 사건이, 무엇보다 사람들의 피땀과 눈물이 함께 따라온다는 사실이에요. 말을 쓰는 것은 늘 삶에 잇대는 행위이고, 새로운 세계를 지어가는 일이에요. 그런 면에서 리터러시의 습득은 책임 있는 윤리적 주체로서의 성장과 떼어놓을 수 없어요.” (265-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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