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만’의 한계

학생들,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 오로지 영어만을 쓰기를 강요하는 수업은 아웃풋의 양을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점수를 얻을지 모르지만 교수학습의 근본원리를 무시한다는 점에서 만만치 않은 감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떤 과목이든 교수학습은 상호소통과 이해의 과정을 요구한다. 이 과정 없이 배움과 가르침이 원활하게 일어날 리가 없다.

영어로만 말해야 하는 학생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표현해 낼 수 없다. 오로지 영어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의미를 표현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교사는 오로지 학습자의 제한된 발화만으로 학습자의 상태, 지식, 의문, 선행지식 등을 파악해야 한다. 한계는 뚜렷하다.

영어교수학습에서 모국어가 방해요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측면을 철저히 간과한다. 학생들은 단지 영어로 말해야 하는 학습자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교수학습의 장에 참여하는 의미-창조자(meaning maker)라는 사실 말이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삶을위한리터러시 #단단한영어공부

누구나 생각보다 고집이 센 이유

“걔 한 고집 하잖아.”
“한 고집 없는 사람이 누가 있어? 다 한 고집 하지.”

이 대화가 익숙한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고집을 피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의견을 고수하면 “그 사람 생각보다 고집이 세네”라는 말이 돌아오곤 한다. 사실 ‘고집을 피운’ 당사자 입장에서는 상황 때문에 그런 것인데 이를 목격하는 이들은 자기 의견을 고수하는 이의 인격에서 고집의 원인을 찾는다. 상황이 아닌 개인에게 고집의 원인을 귀속시키는 것이다.

사실 누구든 고집을 피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나곤 한다. 당연히 자신이 옳다 여기는 것을 끝까지 고수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상황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고집을 피우는 개인’만을 기억한다. 이게 몇 번 쌓이면 ‘고집불통 인간’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살면서 피치못할 상황은 누구나 겪기에 고집을 피울 수밖에 없건만, 그걸 목도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고집 센 인간”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 생각보다 고집 센 인간이 된다.
물론 나도 생각보다 고집이 좀 센 거 같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more important than anything

오늘 구글검색을 기준으로 “more important than anything”을 검색하면 6,340,000개의 결과가 나온다. 이에 비해 “more trivial than anything”의 결과는 1,890개에 불과하다.

참고로 Corpus of Contemporary English를 기준으로 “more 형용사 than anything” 중에서 가장 많은 빈도수를 나타내는 게 important이다. 2위는 “more powerful than anything”. 사람들은 ‘중요함’이나 ‘강함’라는 의미에 최상이라는 개념을 덧붙이길 좋아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주 쓰이는 표현들을 뒤집는 데서 새로운 표현 혹은 덜 진부한 표현이 만들어질 수 있다. “more trivial than anything”이나 “more invisible than anything” 같은 표현들이 그렇다.

물론 문맥에 따라 이들 표현의 적절성은 달라진다. 하지만 ‘다들 쓰는 표현’에서 벗어나 조금 다른 생각을 말로 옮기려는 시도는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가는 데 필수적이다.

그 어떤 것보다 사소한
그 어떤 말보다 연약한
그 어떤 날보다 오롯한

#데이터와영어교육 #삶을위한리터러시 #삶을위한영어공부

지위와 사랑

Posted by on Apr 29, 2019 in 단상, 일상, 집필 | No Comments

한 사람의 가치는 지위가 아니라, 그 지위를 통해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위는 축적된 과거이고 사랑은 바로 여기 당장 필요한 현재이자 가능성으로 열린 미래니까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위를 사랑하는 사람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을 대번에 알아봅니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하는 사람들은 대개 권력을 누리고 있거나 권력을 위한 지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죠. 자리는 사랑의 능能을 담는 그릇일 뿐입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단단한 영어공부는 실용서?

결과적으로 보면 실용서는 아니지만 무척 실용적이었다.”

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없는 것은 주변 분들을 중심으로 평이 나오기 때문인 것 같다. 안면이 있거나 한다리 걸쳐 아는 사람이면 ‘대놓고’ 뭐라 하기 힘들지 않나. 그 와중에서 가끔 책에 실망하시는 분들의 심정은 “그래서 어찌하라는 건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맞는 말인 건 알겠는데 그래서 지금 삶에서 당면한 영어에 대한 압박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반응은 예상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영어공부에 지름길이나 축지법은 없다는 것, 그러므로 자신이 공부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단단한 영어공부>의 핵심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뭔가 해보려고 덤볐는데 ‘그런 건 없다’니 이 얼마나 실망스런 이야기인가.

그 와중에 ‘실용서는 아니지만 무척 실용적’이라고 평해 주시는 분이 있어 감사한 마음이다. 영어공부에 있어 ‘실용’이 갖는 의미를 재정의하고, 실용을 위해 쉼없이 달려야 하는 사회에 쉼표 하나를 찍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읽어주신 것이다.

“영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책. 발음이 유창하지 않다는 이유로, 영어 단어 스펠링을 하나 틀렸다는 이유로 체벌을 받으며 영어를 배운 세대에게는 파격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영어를 학습하는 도구를 찾는데 급급하기 보다 영어 공부에 대한 고찰이 먼저 필요할 것 같다. 결과적으로 보면 실용서는 아니지만 무척 실용적이았다.”

덧. 그럼에도 나의 쪼잔한 마음은 ‘책에 있는 대로 공부는 해 보시고 하시는 말씀인가요?’라고 항변하고 있다. 인생이 어찌될지 모르지만, 그럴 상황이 온다면 ‘삶을 위한 영어공부’ 실전 그룹을 만들어 즐겁게 영어공부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

#단단한영어공부 #삶을위한영어공부

양보절, 그 양보 맞습니다

Posted by on Apr 26, 2019 in 단상, 수업자료, 영어, 집필 | No Comments

오래 전 한 영어 강사가 양보절을 설명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 예시를 잘 보여주더니 하필 마지막에 “그런데 이거 ‘니가 양보해’의 그 ‘양보’ 아닙니다”라는 말을 덧붙이더군요. 최근 비슷한 설명을 다시 한 번 듣게 되어서 짧게 글을 남깁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양보절’의 ‘양보’는, ‘이번엔 네가 양보해’의 그 양보가 맞습니다. ^^

1. 우선 다음 사전에서 ‘양보’를 찾으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양보 [讓步] 1.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여 자기의 주장이나 생각을 굽히고 그의 의견을 좇음. 2. 다른 사람에게 길이나 자리, 물건 따위를 내주고 물러남.

2. 한편 양보절을 영어로 표현하면 concessive clause이고 그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온라인 맥밀란 사전)

a subordinate clause that begins with a conjunction such as ‘although’, ‘while’, or ‘whereas’, and makes a statement that is unexpected in some way, or contrasts with information in another clause.

여기에서 concessive의 명사형에 해당하는 단어는 concession이고, 이의 뜻은 ‘양보, 인정, 양도’ 정도가 됩니다. 즉, 그 양보가 그 양보인 것이죠.

3. 적지 않은 학생들이 이 용어로 혼란을 겪습니다. 이것은 일상생활의 ‘양보’와 문법의 ‘양보’를유기적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비고츠키가 말한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 사이의 차이와도 연관이 됩니다.

4. 이를 고려하여 ‘양보절’을 간단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1) Though, although, even if, whereas와 같은 접속사들은 ‘양보’를 나타냅니다.

(2) 이렇게 양보를 나타내는 말이 붙는 문장은 영어로 ‘conceded’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3) 예를 들어 Although the politician was very selfish, he was willing to help the victims.를 봅시다. “the politician was very selfish” 앞에 Although가 붙었으니, 이 문장의 내용은 인정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인정된 후 다음에 나오는 절에 (비유를 하자면)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는 점입니다. 위의 경우 양보의 대상은 주절인 “he was willing to help the victims.”죠.

(4) 이를 해석하면 ‘그 정치인은 비록 매우 이기적이었지만, 희생자를 기꺼이 도왔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는 매우 이기적인 인간이었다’는 내용 바로 앞에 ‘들러붙은’ Although 덕에 ‘희생자를 기꺼이 도왔다’는 문장에 양보를 해야 하고, 그 결과 주절의 내용이 훨씬 더 큰 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5) 이렇게 하위절을 ‘양보’하면, 의미 강도(intensity)의 차이가 더 크게 납니다. 그래서 대조의 의미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5. 결론적으로 양보절은 특정한 절을 하위절로 만들면서 주절의 내용과 반대(the opposite)되거나 예상치 못한(the unexpected) 것으로 개념화합니다. 따라서 “He is not shy. He is very quiet.”와 같이 두 개의 독립적인 문장에서는 이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무게감 있는 것인지 명시적으로 알 수 없지만, “He is not shy although he is very quiet.”라고 하면 “매우 조용하지만 수줍어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수줍어하지 않는다는 게 문장의 주요 포인트가 되는 것입니다.

덧. 결국 한국어 ‘양보’와 영어 ‘concession’이 완전히 똑같진 않지만 또 상당히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파생하는 것 같습니다. 추측컨대 일본을 통해 문법용어가 들어오면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싶고요.

#단단한영어공부 #예전글업데이트

일을 줄이자. 삶을 되찾자.

Posted by on Apr 25, 2019 in 단상, 일상, 집필 | No Comments

일을 효율적으로, 더 많이 해내는 데 대한 이야기는 많은데 사회 전체가 일을 줄여야 할 필요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사실 일을 줄이면 잘할 수 있을 확률이 엄청나게 높아지는데.

교육개혁도 마찬가지다. 더 많이 측정하고, 더 많이 평가하고, 더 ‘잘’ 줄세우면 학력수준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학생과 교사에게 그 어떤 조건도 없는 시간을 주면 문제의 상당부분은 자연스레 풀린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더 빡세게 돌리자’는 마인드는 여전히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대개의 경우 복잡한 메커니즘 통해 개혁하려 하기 보다는 성원들에게 시공간을 돌려주는 게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학습과 발달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덧. 이 글의 모티프가 된 소로의 말 둘. (from 기쁨샘)

“일의 노예가 되는 것은 옳지 않다. 인간의 육신은 곧 토양으로 섞여 들어가 퇴비로 변한다.”

“우리가 잠시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 가능하겠는가?”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기능어의 분포

언어에서 빈도수 최상위를 차지하는 단어들은 대개 기능어(function words)이다. 영어의 경우 대표적인 기능어로는 관사, 접속사, 대명사, 조동사, 전치사 등이 있다. 참고로 초기 영국 말뭉치 언어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British National Corpus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the, of, and, to, a, in, that, it, is, was 순이다. (좀더 세심한 데이터 작업을 거치면 is와 was가 다른 be동사형과 함께 하나로 묶여야 하지만 그 경우에도 10위는 대명사인 “I” 몫이다.)

대규모 말뭉치의 경우 하위 말뭉치의 장르에 따라 이들의 분포가 사뭇 달라진다. 일례로 롱맨 코퍼스의 경우 대화문 말뭉치에서는 대명사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학술적인 글에서는 전치사와 관사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이러한 차이는 학술적인 글과 면대면 대화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화에서는 많은 정보들이 공유된 채 대화가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명사가 계속 새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특정한 대상을 대명사로 지칭하는 빈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학술적인 글에서는 ‘글’의 특성상 정보가 공유된 채로 담화가 흘러가지 않는다.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기에 명사가 자주 사용되는 것이다. 아울러 많은 정보들이 명사구로 표현된다. 따라서 명사와 짝을 이루는 관사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나아가 전치사가 포함된 복합명사구(e.g. the adaptation of the method within a new context)의 쓰임이 면대면 대화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따라서 전치사의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참고로 wordcount.org를 기준으로 가장 빈도가 높은 일반명사는 time(66위)이고 그 다음은 people (81위)이다. <어머니와 나>에서도 언급했듯 빈도수만으로 볼 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과 사람인 셈인데, 그저 우연으로 보기에는 가볍지 않은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데이터와영어교육

접힘과 펼침, 고유명사에서 보통명사로

책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종종 검색을 한다. 지식의 전달만큼이나 함께 실천하는 ‘친구’를 얻는 게 목적이었던만큼 책을 매개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단단한영어공부 로 검색을 했다. 새로운 포스트가 보였다. 그런데 클릭을 해보니 <단단한 영어공부>와 관련된 이미지가 아니었다. 전혀 다른 책 이야기를 하는 포스트에 #단단한영어공부 그리고 #삶을위한영어공부 태그가 달려 있었던 것이다.

살펴보니 포스트를 올리신 분은 일전에 <단단한 영어공부>를 읽으신 독자셨다. 책을 읽고 이 표현들이 맘에 드셨는지 다른 영어공부 포스트에 이 두 표현을 태그로 사용하신 것!

적어도 이 분에게 #단단한영어공부 와 #삶을위한영어공부 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가 되었다. 내 책 이야기가 아니어서 순간 실망했지만 이내 마음이 따스해졌다.

어쩌면 책을 쓴 이유는 이들 표현들이 특정한 책의 제목이나 부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에 흘러든 ‘보통 표현’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나의 책 제목 따위는 잊혀지지만 누군가의 실천의 양태가 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단단한 영어공부>나 <삶을 위한 영어공부>도 수많은 이들의 실천과 생각으로 빚어진 책이다. 수많은 보통명사의 앙상블이 만들어 낸 일시적인 고유명사일 뿐.

책의 제목은 고유명사로 남지만 궁극적으로 삶의 곳곳에 스며든 보통명사로, 또 실천으로 변화한다. 이들은 다시 누군가의 손에서 고유명사로 빚어진다. 이렇게 보통명사와 고유명사는 접힘과 펼침을 거치며 세상을 유랑한다.

#삶을위한영어공부 #단단한영어공부

인지언어학 이야기 49 – 관사 (1)

Posted by on Apr 22, 2019 in 수업자료, 인지언어학, 집필 | No Comments

문법 새롭게 보기 – 인지문법의 세계 (3)

“Everything should be as simple as it can be but not simpler!” (모든 것은 가능한 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실제보다) 더 단순하면 안된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아인슈타인이 했다고 전해지는 말입니다. 저는 이 인용구를 볼 때마다 문법, 그 중에서도 관사에 대한 흔한 설명방식 중 하나를 떠올립니다.

처음 나오면 a, 그 다음 나오면 the (?)

중학교 때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문법책에서 관사를 처음 접한 저는 복잡한 규칙들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손을 들고 질문을 했죠.

“선생님, a랑 the랑 언제 써야 하는지 헷갈리는데요.”“그거 많이 헷갈리지. 근데 이것만 기억해. 뭔가를 처음 쓰면 a고 그 다음에 받을 때는 the로 받는 거야. 그러니까 바나나를 처음 말할 때는 a를 쓰고 그 다음에 그걸 다시 받으면 the를 쓰면 되지. 쉽지?”“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사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는 했지만 선생님의 답변이 만족스럽진 않았습니다. 문법책을 봤을 때 선생님의 설명과 벗어나는 예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천체를 나타내는 the moon, the universe, the sun 등의 표현입니다. 이들은 처음 언급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관계없이 ‘the’와 함께 쓰입니다. 이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는 정관사 the와 부정관사 a의 어원과 이에서 파생한 개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a와 the의 어원, 그리고 개념적 특성

영어사를 살피면 부정관사 a/an이 ‘하나’를 나타내는 말 one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의 …”는 “다수의 …”를 상정하고 (즉, an apple은 multiple apples가 있음을 전제하고), 이 다수가 이루는 집단(group)의 한 개체임을 표시합니다. 따라서 a/an의 경우 셀 수 있는 명사 앞에 나오게 되지요.

이에 비해 정관사 the의 주요 역할은 명사를 특정(to specify)하는 것입니다. 이 또한 어원을 살핌으로써 그 의미를 보다 상세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The의 어원을 따라 올라가면 고대영어의 중성 지시어 þæt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은 정관사 the 뿐만 아니라 지시대명사 that으로도 진화합니다. 의미상 정관사 “the”는 ‘저것’을 나타내는 말에서 왔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정한다’ 함은 ‘콕 짚어서 이야기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화자가 사용하는 명사가 청자에게도 알려져 있어야 합니다. 청자가 모르는 명사를 콕 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가 ‘저 책 좀 줘봐.’이라고 말할 때에는 ‘저’가 가리키는 것이 청자가 특정할 있는 물리적 영역에 있습니다. 말하는 이는 ‘저’라는 말을 청자가 이해할 수 있다고 가정하지요. 이같은 지시의 역할이 인식의 영역에 적용된 것이 바로 정관사 ‘the’가 하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자가 “the”를 붙여 말하는 명사는 청자의 인식 속에서도 특정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원리에 따르면 sun이나 moon 나아가 universe 등 천체를 나타내는 말은 언제 쓰이건 대화자 모두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해는 유일한 해이고 달은 유일한 달이며 우주는 유일한 우주이니 다른 걸 상상할 수 없죠. 처음 나오느냐 두 번째 나오느냐에 관계없이 대화자 모두가 알고 있다고, 다시 말해 화자 뿐 아니라 청자 또한 ‘아 그거’라고 특정할 수 있다고 인식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항상 the와 함께 쓰입니다.

한 가지 더할 것은 특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명사는 가산성이나 단복수성과 관련이 없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the를 붙여 특정할 수 있는 명사는 셀 수 있는 명사일 수도 (the apple), 셀 수 없는 명사일 수도 (the money) 있습니다. 또한 단수건 복수건 전혀 상관이 없기에 the apple이나 the apples 모두가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a moon’이나 ‘a universe’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달 vs. 위성, 유일한 우주 vs. 여럿 중 하나의 우주

말씀드렸듯이 현재 지구에서 ‘달’이라고 하면 하나의 달을 떠올립니다. 토끼가 절구질을 하고 있는 그 달이죠. (여기에서 지구를 돌고 있다는 다른 달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기에 ‘달’이라면 “the moon”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지구에서 달을 가리킬 때 반드시 the를 붙여서 쓰는 것은 아닙니다. 달의 양태는 여럿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달의 여러 모양 중 하나인 ‘큰 보름달’은 ‘a great full moon’이라고 할 수 있죠. ‘a blue moon’이나 ‘a half moon’이라는 표현도 가능하구요. 여러 형태와 색깔을 가진 달 중에 하나를 가리킨다면 ‘a ~ moon’을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a moon’이 가능한 경우가 또 있습니다. 지구인은 유일한 달을 이야기하므로 ‘the moon’으로 쓸 수밖에 없지만, 달이 여러 개인 행성이라면 말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 목성에는 달이 79개가 있습니다. 이 맥락에서라면 “The Earth has a moon while Jupiter has 79 moons.”라고 쓸 수 있습니다. “목성은 달이 79개이지만 지구는 달이 하나다.”라는 의미인데, 이 경우 ‘moon’은 평소 말하는 달이라기 보다는 일반적인 위성(satellite)의 뜻이 됩니다. 특정될 수 없는 일반적 개체가 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우주는 보통 ‘the universe’이지만 ‘a universe’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중우주론을 주장하는 물리학 이론에 따르면 이 우주 외에 다른 우주들도 있지요. 이 경우 현재 우리가 지각하고 살아가는 우주는 여럿 중 하나의 우주 즉, ‘a universe’입니다. 다른 우주들을 포함해서 ‘universes’라는 말을 쓸 수 있고요. 따라서 복수의 우주를 가정하는 이론체계 안에서는 “multiple universes”라는 표현이 얼마든 가능한 것입니다.

정관사, 부정관사, 그리고 총체와 가능성으로서의 세계

이와 같은 논리는 세계를 나타내는 world에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다음 예문을 보시죠.

a) The world is full of sorrow.
b) We want a better world.

위의 두 예문에서 ‘world’ 앞에 서로 다른 관사가 쓰였습니다. a)에는 정관사 the가, b)에는 부정관사 a가 쓰였죠. 왜 이런 차이가 오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세계’라고 말할 땐 ‘the world’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유일한, 그리고 특정한(specific)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b)에서 ‘world’는 가능성으로서의 세계입니다. 지금 눈앞의 세계는 하나일지라도 미래에 가능한 세계의 가능태는 수없이 많고 그 중의 하나가 바로 ‘a world’입니다. 그렇기에 ‘a better world’ 뿐 아니라 ‘a greater world’, ‘an ideal world’, ‘a miserable world’ 등의 표현도 가능하죠.

달은 하나이지만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세계는 하나의 총체이지만 가능성으로서의 세계는 무한히 열려 있습니다. 유일하게 정해진 것(definite)처럼 보이는 것들도 결코 특정한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는(indefinite) 것입니다. 어떤 틀에서 개념화되느냐에 따라서 그 인식론적 지위(epistemological status)가 달라지고, 함께 쓰이는 관사도 바뀌는 것입니다.

관사, 인식론적 지위를 트래킹하는 시스템

이렇게 보면 관사는 말하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명사의 인식론적 지위를 따라가는 일종의 트래킹 시스템(tracking system)입니다. 즉, 명사에 ‘꼬리표’를 달아 말하는 이가 지칭하는 바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정관사를 쓰는 경우 화자는 청자가 자신이 말하는 명사를 특정(specify)하여 따라올(track)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고, 부정관사를 쓰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 개의 개체 중 하나라는 것만 인식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지요. (자세히 논의하지 않았지만 관사를 아예 쓰지 않는 무관사(zero article)의 경우도 나름의 기능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저의 예전 영어선생님이 신정보/구정보의 틀로 부정관사와 정관사 사용을 구분했던 기술방식보다 훨씬 정확하게 관사의 사용을 포착합니다. 아인슈타인의 말을 따르자면 제 중학교 때 선생님의 설명은 “simpler(실제보다 더욱 단순화한)”한 것입니다. 이런 설명은 임기응변은 될지 모르지만 문법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키고 언어현상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학생들을 좌절시킬 수 있습니다. 제가 그랬듯 말입니다.

 

영어 관사와 화자의 의도: 아래 글에 이어 쓰려고 하다가 길어져서 쓰지 못한 이야기

관사의 쓰임을 신정보/구정보로 설명하는 방식은 또 하나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것은 관사의 쓰임을 온전히 텍스트 안에서 설명하려고 든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제가 소설의 첫 문장을 “I hugged the tree.”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고 가정해 보죠. 이 경우 전통적인 구정보/신정보 관점에서는 소설의 첫 문장이므로 “the tree”가 어색한 것이 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 문장은 전혀 어색하지 않지요.

사실 작가는 독자가 이 문장을 처음 읽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쓰는 책이니 모를 수가 없죠. 하지만 의도적으로 정관사를 쓴 것입니다.

작가가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나갈지는 알 수 없지만, 독자들에게 ‘나무’에 대해 특별한 설명을 붙이지 않는다면 “the tree”가 무난할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나무에 대한 호기심을 이끌어내려 할 경우에도 “the tree”가 ‘a tree’보다 적절한 선택이겠죠. 이어서 “I smelled the soil and walked with the dogs. I watched the river a while, serene and weary.” 같은 문장을 제시한다면 이들 명사가 하나의 앙상블(ensemble)을 이루어 더 큰 호기심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가 묘사하는 이 곳이 대체 작품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자아내는 것이죠.

따라 이런 경우 the tree 자체가 신정보냐 구정보냐의 문제가 아니라, 화자(작가)가 특정한 명사를 신정보로 개념화하느냐 구정보로 개념화하느냐의 문제가 더욱 중요합니다. 즉 화자는 정관사라는 도구를 통해 의도적으로 ‘알려진 것인양’ 포장할 수 있다는 것이죠. 사실 독자들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개체들을 연달아 the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추후 설명될 것’이라는 언질을 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화자의 의도를 명확히 하고 수사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 처음 등장하는 명사에도 the를 얼마든지 붙일 수 있다고 봐야 합니다. The의 선택 여부는 단지 텍스트 내의 규칙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사용자의 의도와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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