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충동

Posted by on Mar 2, 2016 in Uncategorized | No Comments

이제 익숙해질만도 한데 학기 시작되기 직전의 떨림은 좀처럼 가라앉질 않는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보다는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한때 열심히 노력하면 꽤 괜찮은 선생이 될 수 있다 착각했던 적도 있었으나, 이젠 그저 나쁘지 않은 선생으로 기억되기만을 바란다. (어쩌면 좋은 선생의 제 1 조건은 ‘천운’이 아닐까 싶다.)

별것 아닌 일에 과도한 의미를 불어넣고 있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3월이면 찾아오는 ‘잠수충동’이 순순히 물러나진 않는다. 솔직히 어디론가 막 숨고 싶다. 들킨 적도 없는데 말이다! 뭐 늘 그렇듯 싱거운 결말이 떨고 있는 내게 속삭인다. ‘사라질 용기보다 학생들 앞에 설 용기를 내는 게 덜 어렵잖아. 먹고 사는 데도 도움 되고.’

내일 만날 학생들에게 인사 메일을 보냈다. 떨림을 감추는 가장 좋은 전략은 수다다.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온전함의 가치는 저평가된다

Posted by on Dec 2, 2015 in Uncategorized | No Comments
_특정한 이슈에서 어떤 편에 서는가는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편을 선택했다고 해서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된 것인양 오해하는 일은 위험하다.
 
__뛰어남은 과대 평가되고, 온전함의 가치는 저평가된다. (Excellence is overrated: integrity is underrated.)
 
___점들의 자취가 아니라 운동의 궤적이, 익명의 평가가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눈빛과 표정이 한 인간의 삶을 말해준다.
 
__눈에 띄지 않지만 조용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오후다.
 
_금년 장마는 겨울에 온 건가. 비 참 구슬프게 온다.

살, 그리고 나이듦의 의미

Posted by on Aug 12, 2015 in Uncategorized, 단상 | No Comments

“살 – 해나 볕 따위의 천체가 내뻗치는 기운 | 역학(易學)의 원리에 따르면 인간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과 별의 기운을 받아서 체질과 운명이 결정된다고 한다. 이때 천체에서 뻗쳐오는 기운을 ‘살’이라고 한다. 인간에게 적절히 작용하여 왕성한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살은 우리말이지만, 이것이 지나쳐 사람에게 해를 끼치게 되면 ‘급살(急煞)’이라 하여 한자말로 쓴다. 이 밖에 살은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인다. 우선 나이를 말할 때 ‘몇 살’ 이라고 한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그만큼 살을 많이 받았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목숨을 이어 나가는 것을 ‘살다’라고 하고, 생활을 꾸려 나가는 것을 ‘살림’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일정하게 뻗쳐 나가는 모양을 일컫기도 한다. 부챗살, 햇살, 창살 따위의 살이 모두 그런 뜻이다. 한편 혜성(彗星)의 꼬리 빛이 세찬 것을 ‘살차다’고 한다.” 박남일. <우리말 풀이사전> (서해문집) 16쪽.

(이 설명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인지 의심이 가지만…)

나이 든다는 것은 그저 물리적 시간 속에 내던져져 있었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것은 해와 달과 별의 기운을 받았다는 것, 즉 대우주의 삼라만상과 같이했음을 의미한다. 그것 뿐이겠는가. 우리를 빚은 사람들로부터 살을 받았음을 뜻할 것이다. 오늘 나는 누구에게 어떤 ‘살’이 되고 어떠한 기운을 나눌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몇 살 먹었는가’라는 말을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기운을 주고 받으며 살았는가’라는 말로 새겨야겠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이 사랑한 단어들

Posted by on Jun 11, 2015 in Uncategorized | No Comments

George W Bush가 자신의 공식 연설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들. 빈도수만으로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최빈도 단어의 상징성은 무시할 수 없는 듯하다. 아래 웹사이트에서 미국 역대 대통령 연설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단어들을 확인할 수 있다.

http://hindsightisalways2020.net/

‘이름을 빼앗긴’ 사람들

Posted by on Dec 17, 2014 in Uncategorized | No Comments

대학 재정의 부족으로 한 학기에 다섯 개의 작문 수업을 해야만 하는 비정규직 강사들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고용상의 안정을 우려하여 익명을 요구했다”라는 구절에서 먹먹해졌다. 잘리지 않기 위해 익명의 세계로 숨어들어야 하는 우리들.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것을 넘어 인간의 존엄마저 위협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방증이겠지. (한 학기에 스무 명 넘는 학생들의 작문지도를 해본 경험으로 볼 때 다섯 개 강의의 노동강도는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Encountered the following while reading an article: “One of the instructors present at that meeting, who also did not want to be named, citing fears about job security, said the change was a cost-saving measure, in light of anticipated budget cuts.” – Fears, driven by a cost-saving measure, strip us of our names. How horrible. How tragic. And how inhumane.

https://www.insidehighered.com/news/2014/12/16/arizona-state-tells-non-tenure-track-writing-instructors-teach-extra-course-each

 

auto incorrect

Posted by on Sep 15, 2014 in Uncategorized | No Comments

“auto incorrect”

단어 입력하시다가 얼토당토않은 단어가 튀어나와서 짜증난 적 없으신가요? 그런 경우 쓸 수 있는 표현으로 “auto incorrect”가 있습니다. Urban Dictionary에 따르면 아래와 같이 사용할 수 있다는군요.

JR: Hey what time should i come? 
Victor: I don’t know… Are you busty all evening? I MEAN BUSY!! ARE YOU BUSY ALL EVENING! GOSH I HATE AUTO INCORRECT!

출처: http://www.urbandictionary.com/define.php?term=Auto%20Incorrect

Ellen Show에도 Auto Incorrect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네요. 몇 개 봤는데 재미있습니다. 

http://youtu.be/Px-Y1uomN2k
http://youtu.be/A0x4PJzXMd4

“auto incorrect”를 열심히 모아놓는 사이트도 있었군요. 사이트 이름을 참 잘 지었네요. (먼산)

http://www.damnyouautocorre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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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

Posted by on Aug 21, 2014 in Uncategorized | No Comments
우연 혹은 운명?
시장에 가야지. 준비하면서 뭘 듣지. 그래.
<정류장>을 유튜브에서 찾아 듣는다.
뚜벅 뚜벅 십여분을 걷는다.
망원시장 입구 첫 가게.
이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잊지 않고 살아가기

Posted by on Jul 18, 2014 in Uncategorized | No Comments

아내, 어머니와 함께하는 저녁 시간. 늘 그렇듯 식사 기도는 어머니의 몫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이 앞서 죽어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었던 내일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우와 경란이가 이것을 잊지 않고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잊지 않고 살아가기. 
잊으면 사는 게 아니기에.

기사는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Posted by on Jul 17, 2014 in Uncategorized | No Comments

얼마 전 누구나 다 알만한 글로벌 IT 기업에서 일하고 계신 분을 뵙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두어 달 전 온라인에 여러 차례 공유되었던 기사 이야기를 꺼냈다.

“회사 직원분들이 아이들한테 스마트폰 안주고 디지털 기기와 멀리 해서 키운다는 기사를 봤는데요.”

“아 주변에 초등학교가 여럿 있는데 그렇게 하는 학교가 있어요. 그런데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될 거 같아요. 직원도 엄청나게 많고, 성향도 다 다르니까요. 사실 그 학교 다니는 자녀들은 일부죠.”

이야기를 들으며 명성이 높은 기업이나 대학, 기관 등에 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지고 소비되는 방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기사의 신뢰도(credibility)를 높이기 위해 특정 기관의 이름을 강조하면서도 구성원의 다양성이나 통계 정보 등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 암묵적으로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다 같은 사람들로 묶는 방식. 그리하여 사람들의 입에는 간단한 어구만이 남는다.

“그 회사 사람들은 애들한테 디지털 기기 절대 안준다던데?”

당신들은 도대체 뭘 사랑하는 거요?

Posted by on Jul 17, 2014 in Uncategorized | No Comments

내게 “사랑은 위대하다”라는 말은 사랑이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가장 보드랍고 상처받기 쉽게, 약하게 만든다는 뜻이었던 듯하다.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받아안는 것은 그 어떤 권력보다 위대하다. 정치가 비극의 스케일을 키우는 시대, 나는 또 순진하게 묻는다. “당신들은 도대체 뭘 사랑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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