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만남, 그리고 소통

Posted by on Jul 27, 2014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사람들은 같아 보이지만 다른 언어를 쓴다. 나의 ‘자유’와 너의 ‘자유’가 다르고, 그의 ‘편두통’과 너의 ‘편두통’이 다르다. 하지만 미묘한 감정이나 뉘앙스를 전달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럭 저럭 소통을 하고 협업하며 살아간다. 모순과 헛점 투성이 언어이지만 사람들을 느슨하게 연결해 주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그럭저럭 해내는 것이다.

그런데 코드로서의 언어가 없으면 관계의 끈은 약해질 수밖에 없는 걸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친하게 지내려 노력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길냥이들에 대한 애정을 유지할 수 있는 데에는 언어 소통의 부재가 한몫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엔 구체적으로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하는 듯하다.

먼저 언어가 아닌 만남이 소통의 주요한 매개가 된다. 내가 고양이들과 특정한 언어로 소통을 했다면 그들의 마음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그 걸음걸이에, 발짓에, 앉고 일어서는 자세에, 혀놀림에, 움직이는 속도에, 꼬리의 움직임에, 울음소리에, 경계태세에, 몸의 떨림에, 그리고 순식간에 변하는 눈빛에 지금처럼 몸과 마음을 기울이진 않았을 것 같다. 코드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이 역설적이게도 코드로 환원될 수 없는 수많은 몸짓들에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게 만든다. 서로 얼마나 알아들었느냐, 즉 언어 교환의 효율성(efficiency)이 아니라 한 공간에 함께 존재함(co-presence)이 더욱 중요하고 또 절실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 언어 코드의 부재는 길냥이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대화가 아니라 탐구를 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냥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거나 질문을 할 수 없으니 과학적으로 검증된 지식, 큰 고양이 관련 커뮤니티에서 ‘사실’로 통용되는 상식을 찾아보게 되는데, 이를 통해 고양이의 종적 특징에 대해 좀더 이해함과 동시에, 그런 특성이 일반화될 수 없음 또한 알게 된다.

이렇게 보면 언어의 교환은 소통의 아주 작은 부분인지도 모른다. 때론 말 몇 마디를 주워 담고는 ‘이 사람을 이해했어’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사람의 사고, 기호, 성향, 인생사 등에 대한 진지한 공부없이 글 한두 편으로 그의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본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교훈들. 누군가를 만났다면 몸도 마음도 함께 있을 것, 이해하고 싶다면 깊은 관심을 갖고 오래 지켜볼 것, 몇 마디 말에 그 사람의 모든 걸 담아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 것.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냐옹냐옹냐냐옹.

덧댐. 시인들은 언어라는 매개로 언어를 뛰어넘고자 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 하지만 그렇기에 시인들에 의해 언어의 외연은 확장되고 심연은 더욱 깊어진다.

 

I don’t know, but at the end of the day…

Posted by on Jul 27, 2014 in 강의노트,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 No Comments

5백만 단어로 이루어진 CANCODE 구어 말뭉치. 이에 관련된 재미난 통계가 있어서 가져와 본다.

  • 가장 많이 나오는 두 단어 표현: you know (28,013)
  • 가장 많이 나오는 세 단어 표현: I don’t know (5,308)
  • 가장 많이 나오는 네 단어 표현: you know what I (680)
  • 가장 많이 나오는 다섯 단어 표현: you know what I mean (639)
  • 가장 많이 나오는 여섯 단어 표현: do you know what I mean (236)
  • 7단어로 된 표현 중에서 유일하게 20번 이상 나오는 것: but at the end of the day

두 번째와 마지막 통계가 인상적이다.

I don’t know, but at the end of the day….

 

(출처: From corpus to classroom, Chapter 3)

 

 

 

언어의 가능성은 양날의 검

Posted by on Jul 27, 2014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청결에 극도로 민감한 사람의 입이 가장 더러울 수 있고,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이가 말을 제일 잘 듣기도 한다.

때로는 조직을 완전히 뒤집어야만 바로 세울 수 있으며
가장 아파하는 마음이 가장 건강한 마음이기도 하다.

이렇게 언어는 물리적 세계와 상징의 세계를 가로지르며
새로운 의미와 깨달음을 엮는다.

얼핏 모순으로 보이는 것이 진리에 가깝고
단순명확해 보이는 것이 모순덩어리일 때가 있는 것.

언어의 가능성은 언제나 양날의 검.
그 가능성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어떻게 사느냐이다.

언어의 형태와 의미의 상호작용

Posted by on Jul 27, 2014 in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 No Comments

Sinclair(1996)의 연구에 따르면 Cambridge International Corpus에서 추출한 100 개의 “be touched by” 중에서 고작 14퍼센트만이 물리적인 접촉을 뜻했다. 86퍼센트는 감정적인 측면이나 색조 관련 의미 혹은 특정한 활동에 영향을 받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이중 80퍼센트는 감정 관련 의미에 집중되었다. 이것은 touch가 능동태로 사용될 때 의미의 분포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즉, 단어 ‘touch’의 의미는 단어 내부에 존재하는 정적인 특성이 아니라 통사적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동적인 특성으로 파악해야 한다. (From Corpus to Classroom, 61 참고)

남편에게 밥을 해줘야 하는 이유

Posted by on Jul 27, 2014 in 일상 | No Comments

휴일에도 근무하는 아내를 따라와 빵으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아내: 에구 밥도 잘 못챙겨 주고…
나: (궁서체로) 왜 남편 밥을 챙겨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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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반궁서체로?) 난 동물을 학대하지 않기 때문이지.
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그렇습니다. 동물 학대는 없어져야죠. 근데 확인 결과 제가 잘못 들은 거라고… 뭐라고 이야기했는지 기억이 안난다고… 이렇게 가는 귀는 유머가 되어 찌는 오후를 식혀주는군요. 근데 도대체 어떻게 대답한 건지 진짜 궁금하네요. (먼산)

냥이들과 지내면서

Posted by on Jul 26, 2014 in 단상, 링크 | No Comments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한다. 평상시에는 좀처럼 택하지 않는 역 부근 공사장 길. 냥기척에 휙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담벼락 밑으로 다리가 움직인다. 조금 다가가니 둘, 아니 셋이구나. 오늘은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나를 붙잡은 건 한 녀석의 심상치 않은 다리였다. 완전히 부러지거나 심한 골절상을 당한 게 틀림없구나. ㅠㅠ 그런데 이런 날은 꼭 사료를 놓고 온다. 길지도 않은 다리로 성큼성큼. 백미터 쯤 떨어진 가게에서 큼지막한 소세지를 사온다. 냥이들이 먹으면 별로 안좋다고는 하지만 가끔 불량식품도 먹는 거지 뭐. 앗! 이제 보니 세 마리보다 훨씬 많네. 도대체 그 안에 몇 식구나 있는 거니? 그렇게 한참을 녀석들과 함께 놀다 발걸음을 떼려는데 처음 본 다리 저는 냥이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오늘은 또 주린 배를 잡고 어떻게 밤을 보내려나. 길냥이들을 만나면서 소소한 기쁨의 순간도 많아졌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맘속 안타까운 모습들도 쌓여간다. 뭐든 거저 오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드는 토요일 저녁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ofRDEEyVmOo

토마스 피케티와 엘리자베스 워렌의 대담

Posted by on Jul 25, 2014 in 링크 | No Comments

1. 요즘 나의 타임라인에서 가장 ‘핫한’ 두 사람, 피케티와 워렌의 대담이다. 이런 기획 참 좋다. 현실에 할 말이 많은 경제학자와 학자 출신 정치인의 만남. 그러고 보니 지난 5월 Salon.com의 기사에서도 두 사람의 의견을 논의하고 있다.

http://www.salon.com/2014/05/18/how_thomas_piketty_and_elizabeth_warren_demolished_the_conventional_wisdom_on_debt/

2. 워렌의 프레이밍이 단순하고 설득력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피케티의 프랑스어 발음은 종종 잘 들리질 않는다. ㅠㅠ) 먼저 그녀는 “trickle down’ 이론을 비판하며 ‘trickle up’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재벌의 부가 아래로 조금씩 흘러가는 게 아니라, 대중이 창출한 부가 조금씩 위로 올라가 결국 부자들에게 흘러들간다는 것이다.

과세(taxation)를 부자들에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의 이슈에 대해서는 ‘세금을 얼마나 많이 부과하는가’, ‘부자들의 저항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등의 프레임을 피하면서 “integrity economy”라는 용어를 도입한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integrity”의 문제, 즉 정직과 책임, 삶에 대한 온전함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integrity는 정말 번역이 어려운 단어다.)

3. 재미난 것은 이 포럼이 허핑턴포스트 단독 주최가 아닌 애국하는 부자들(Patriotic Millionaires)과의 공동주최였다는 것. 이들은 ‘우리에게 세금을 올려달라’고 주장하는 부자들의 모임이다. 자세한 것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patrioticmillionaires.org/

4.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서 피케티의 역작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 책으로 <The Two-Income Trap>이라는 워렌과 Amelia Warren Tyagi의 공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책 소개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옮겨놓는다.

” Astonishingly, sending mothers to work has made families more vulnerable to financial disaster than ever before. Today’s two-income family earns 75% more money than its single-income counterpart of a generation ago, but has 25% less discretionary income to cover living costs. This is “the rare financial book that sidesteps accusations of individual wastefulness to focus on institutional changes,” raved the Boston Globe.”

http://www.amazon.com/The-Two-Income-Trap-Middle-Class-Parents/dp/0465090907

함께 있구나. 다행이구나.

Posted by on Jul 25, 2014 in 단상 | No Comments

함께 돌아오는 길. 집 근처에 오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애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러게. 냥이들 대부분 물 엄청 싫어하는데 이렇게 비가 오니…” 냥이 걱정은 한 마음이다. 그래도 혹시나 그 자리에 있을까, 늘 만나던 담벼락으로 눈길을 돌리는데 거짓말같이 우릴 보고 후다닥 내려오는 엄마 냥이! “아아… 얘 배고픈가봐.” “응 기다려, 금방 올게.” 발걸음을 재촉한다. 우산은 접는 둥 마는 둥. 수전증인가. 비밀번호는 왜 꼭 이럴 때 틀리는지. 허겁지겁 사료를 가지고 뛴다. 휴우. 다행히 차 밑에서 두 발 오므린 ‘조신 모드’로 우릴 (실은 밥을 ㅠㅠ) 기다리는 엄마냥이. 차 밑으로 손을 주욱 뻗어 사료를 주고 오독오독 오물오물 밥먹는 모습을 짠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너 하루 종일 굶은 거 아니니? ㅠㅠ ‘ 허겁지겁 허기를 달래는 냥이와 일, 장마, 세월호, 일상 이야기를 나눈 삼십 여 분. 속절없는 빗속에서 아린 하루를 정리한다. ‘알 수 없는 세상. 그래도 우린 여기 이렇게 함께 있구나. 다행이구나.’

수업 다시 보기

Posted by on Jul 24, 2014 in 단상,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가면 갈수록 선생과 학생이 만나 단기간 내에 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수업이라는 형태가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동기는 자동으로 의지가 되지 않으며, 의지가 공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글쓰기의 OO가지 원칙”과 같은 목록은 전문성이 만들어진 이후의 ‘후일담’ 혹은 ‘화석’ 같은 것이어서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좋은 책 몇 권을 독파하면서 꾸준한 습작을 하라는 것은 초인적인 의지를 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여전히 어설픈 영어 글쓰기 학습자이지만 그동안의 실수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어떻게 지금의 블로깅을 넘는 새로운 틀을 만들지는 늘 고민이다.

자동교정(Autocorrect)의 역사

MS Word의 자동교정(Autocorrect)의 역사에 얽힌 흥미로운 기사. 자동교정이 말 그대로 ‘노가다’ 기반에서 통계학적 방법론을 사용한 알고리즘으로 변화하기까지의 과정을 재미난 에피소드와 함께 들려준다.

“In the two decades since Hachamovitch moved from the manual coding of corrections like judgement to his loftier executive role in the ambit of data science, autocorrect has followed suit. Autocorrection is no longer an overqualified intern drawing up lists of directives; it’s now a vast statistical affair in which petabytes of public words are examined to decide when a usage is popular enough to become a probabilistically savvy replacement. The work of the autocorrect team has been made algorithmic and outsourced to the cloud.”

http://www.wired.com/2014/07/history-of-autocorr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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