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미, 병맛

Posted by on Sep 24, 2014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SNS에서 종종 보게 되는 ‘병신미’라는 말. 볼 때마다 거슬린다.

관련하여 엔하위키의 ‘병맛’ 항목: “디시인사이드 카툰연재 갤러리에서 맨처음 무악공고가 등장하면서 ‘병신 같은 맛’ 이라는 말이 처음 생겼고 잉위 등의 병신 같은 맛 전문 만화가들이 나타나면서 ‘병맛’ 으로 줄여졌다.

처음에는 병신 같으면서도 웃기다는 뜻의 긍정적인 의미였으나 병신 같은 맛의 본좌 잉위가 등장하면서 온갖 아류들이 등장해 웃기지도 않고 성의도 없는 말 그대로 병신 같은 만화를 그려대면서부터 약간 부정적인 뜻이 생겼다.”

-> “병신 같으면서도 웃기다는 뜻의 긍정적인 의미”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람이 더 웃기지 않은가 말이다. 사람마다 언어에 대한 취향과 감수성이 다르긴 하지만, 이걸 그냥 취향의 문제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지울 수가 없다.

언어의 기원, FOX P2, 촘스키 등에 대한 재미난 글

Posted by on Sep 24, 2014 in 링크,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The same gene that regulated language so strongly also regulated other mental faculties, so its very existence appeared to contradict rather than strengthen the idea that language commands its own territory separate from other areas of the brain. As Enard points out, the language-as-island idea is also inconsistent with the way evolution typically works. “What I don’t like about the ‘module’ is the idea that it evolved from scratch somehow. In my view, it’s more that existing neural circuits have been adapted for language and speech.””

http://nautil.us/issue/17/big-bangs/the-family-that-couldnt-say-hippopotamus

한국인 긍지

Posted by on Sep 24, 2014 in 단상, 링크 | No Comments

출근길 지하철. 앞의 두 사람이 영어로 이야기를 나눈다. 외양은 둘다 한국 사람이지만 말을 들어 보니 미국 영어를 모국어로 배운 듯. 손잡이에서 툭 떨어지는 한 남성의 팔뚝, 짙은 한글 문신이 눈에 띈다. 궁서에 가까운 글씨체로 큼지막하게 새겨진 문구는 “한국인 긍지”. Proud to be Korean 같은 걸 옮긴 건가 싶다. 그리고 불현듯 생각난 포스트 하나.

http://m.huffpost.com/us/entry/439993

글의 비격식성에 관하여

Posted by on Sep 23, 2014 in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매체의 특성상 글이 말보다 격식을 갖추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글을 쓸 때 어휘나 문법에 좀더 신경을 쓰게 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사진과 같이 글의 독자가 특정되지 않는 경우가 그렇다. 생각해 보라. 글쓴이가 ‘쓰레기 투척범’을 현장에서 목격했을 때 과연 ‘ㄱㅈㅅ’이라는 비속어를 써가며 비난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쓰레 버리지 마시오’라니. 심히 격양된 상태에서 글을 썼나 보다. ㅠㅠ)

 

사진 (80)http://i1.wp.com/writinglife.kr/wp/wp-content/uploads/2014/09/사진-80.jpg?resize=1024%2C768 1024w” sizes=”(max-width: 1024px) 100vw, 1024px” />

보통명사, 시간 그리고 관계

Posted by on Sep 23, 2014 in 강의노트, 단상 | No Comments

‘단어’라는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가장 먼저 보통명사를 떠올린다. 해, 달, 나무, 밥… 이런 단어들 말이다. 그런데 wordcount.org에 따르면 영어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단어 상위 50개 중에 보통명사는 단 하나도 없다. 대명사나 전치사 등의 기능어(function word)가 주류를 이루는 것이다. 그나마 가장 상위에 오른 보통명사는 time으로 66위에 그친다. 다음으로는 people로 81위. 우연인지 모르지만 시간과 사람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로, Cindy Chang이 그녀의 Ted 강연 <Before I die, I want to…>에서 강조했던 바 있다. 나는 지금 어떤 시간 속에 어떤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는가. 수업 준비하다가 잠시 딴 생각에 잠긴다.

“Two of the most valuable things we have are time and our relationships with other people. In our age of increasing distractions, it’s more important than ever to find ways to maintain perspective and remember that life is brief and tender. Death is something that we’re often discouraged to talk about or even think about, but I’ve realized that preparing for death is one of the most empowering things you can do. Thinking about death clarifies your life.”

Cindy Chang’s TED Talk: Before I die, I want to…
http://www.ted.com/talks/candy_chang_before_i_die_i_want_to?language=en

이미지 출처
http://www.wordcount.org/main.php 캡처

 

timehttp://i2.wp.com/writinglife.kr/wp/wp-content/uploads/2014/09/time.png?w=1003 1003w” sizes=”(max-width: 1003px) 100vw, 1003px” />

우리 친하지도 않은데 왜 붙어있는 거죠? — 익명성과 근접성의 갈등에 관하여

Posted by on Sep 22, 2014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분주한 도시는 익명의 사람들에게 붙어있으라는 명령을 시시때때로 내린다. 도시의 리듬을 따라 살다 보면 지하철이나 버스, 만원 엘리베이터 등에서 누군가와 딱 붙어있어야 하는 불편함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가장 편안해야 할 주거 공간도 예외는 아니다. 빌라와 아파트, 고시원은 익명으로 남고 싶은 사람들을 다닥다닥 붙어 살게 만든다. 심리적 단절을 원하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것은 부부싸움과 층간소음, 담배연기, 삼겹살 냄새 같은 것들이다.

익명성과 근접성의 갈등이 가장 오묘하게 작동하는 곳은 아마도 개신교 예배와 같은 종교집회일 것이다. 신의 이름으로 모인 ‘형제, 자매들’이 서로 눈을 맞추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하는 공간, 십자가를 강조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사랑과 연대는 거추장스러운 수사가 되어버린다. 지하철에서, 고시원에서, 교회에서, 함께 있으나 단절되어 있는, 진정 단절하고 싶으나 붙어 있어야 하는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는 몸과 마음의 감옥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양선생님과 대화하다가 생각난 바를 적어보았다. 갑자기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영어교사들을 위한 인지언어학 이야기 12: ‘Excuse me’의 인지언어학적 이해

Posted by on Sep 22, 2014 in 말에 관하여, 인지언어학 | No Comments

언어현상을 텍스트의 수준을 넘어 다양한 인지적, 정서적, 신체적 요인들과 연관시켜 유기적으로 파악하는 ‘인지언어학적 언어 이해’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으로 영어에서 자주 사용되는 ‘Excuse me’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Excuse me”의 사회학

미국에 가면 여기저기서 듣게 되는 말 중에 “Excuse me”가 있습니다. 수퍼마켓의 진열대 앞에 서 있는데 물건과 저 사이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Excuse me” 라고 외칩니다. 좁은 길 저쪽에서 이쪽을 향해 빠르게 걸어오는 사람도 “Excuse me” 라고 말합니다. 버스 탈 때도, 음식점에서 줄을 서 있을 때도 심심찮게 이 표현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Excuse me”가 문자 그대로 ‘(실례되는 행동을 할 거니까) 나를 용서해 주세요’라는 뜻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보통 상대방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충돌을 피하려는 의도로 자주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정말 미안하다기 보다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접근하면, 다시 말해, 누군가가 자신만의 개인적 공간 안에 ‘침투하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표현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때로는 끝부분을 급격하게 올려 “지금 뭐하시는 거죠?”라는 느낌을 전달하기도 하지요.

문화와 사적공간(personal space)

미국의 인류학자이자 문화연구자인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은 사적공간(personal space)에 관한 이론을 정립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적공간은 한 사람이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말하는데, 문화마다 또 개인별로 차이가 커서 그 특성을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홀의 연구에 따르면 서양인들은 평균적으로 좌우로 60 센티미터, 시선이 가는 앞쪽으로 70 센티미터, 뒤로는 40 센티미터 남짓 정도가 개인공간을 이룬다고 합니다. 물론 이 또한 어떤 활동을 위한 공간인가,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상당한 편차를 보입니다. 열차나 버스, 체육관, 건물 엘리베이터 등 장소에 따라서, 또 같이하는 사람이 타인이냐 가족 혹은 연인이냐에 따라서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는 거리는 분명 다를 테니까요.

미국인들이 “Excuse me”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상황에서 독일인들이나 스페인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실제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특별히 경고를 할 이유도, 미안해 할 이유도 없는 것이죠. 그래서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독일에 가서 “Entschuldigung!”(미안하다는 뜻의 독일어 표현)을 연발하면 사람들이 조금 이상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미국에서는 Excuse me가 당연히 나와야 할 상황에서 입을 닫고 있으면 개념없는 사람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겠지요. 캐나다인들은 “Excuse me”에 “Sorry”까지 더해 미국인들보다 더 자주 ‘실례합니다’를 외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Excuse me를 자주 사용하는 미국인들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보다 더 공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보다는 사적 공간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이 언어 습관으로 표출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좀더 정확하겠지요.

Close talker: 들이대고 말하는 사람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 <Seinfeld>는 “close talker”라는 말을 널리 퍼뜨렸는데, ‘아무에게나 얼굴을 들이대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극중 Aaron이라는 인물이 바로 ‘close talker’인데요. 한 에피소드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코앞에까지 다가가서 말하는 장면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합니다. 에드워드 홀이 개념화한 개인공간을 깡그리 무시하는 역할로 시청자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는 것이죠. 물론 보고 즐길 수 있다고 해서 정말로 유쾌한 일은 아닐 겁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난다면 기분이 나빠져 바로 자리를 뜨고 싶을 테니까요.

(Seinfeld의 “Close Talker” 에피소드 한 장면

사적공간은 문화권마다 상당한 차이를 보이지만, 순수히 문화적인 산물로만 볼 수 없다는 관점 또한 존재합니다. 진화적이고 생물학적인 측면에서도 개인공간의 의미를 조명할 수 있다는 견해죠. 대표적으로 Nature Neuroscience에 실린 한 연구는 SM이라는 환자의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합니다. 그녀는 우르바흐-비테 증후군(Urbach-Wiethe Disease)라는 특이질환으로 측두엽에 석회화가 진행되어 소뇌 편도(amygdala)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연구자들에게 편안한 거리를 유지하는 한 최대한 가까이 오라’는 주문을 받은 SM은 실제로 한 연구자의 코에 닿을 때까지 다가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제가 한 학생에게 “이리 가까이 와봐”라고 말했는데, 제 코와 학생의 코가 충돌했다면 정말 당황스러울 것 같습니다.)

자, 이제부터 “Excuse me”와 같은 표현을 가르칠 때 단순히 한국어 ‘실례합니다’의 영어 표현으로 가르치기 보다는, 언어와 문화적 차이가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 또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이 언어습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회로 삼는 것은 어떨까요? 언어를 배우는 일이 좀더 입체적이며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참고문헌>
Cloud, John. (Sept. 03, 2009). Problem with Close-Talking? Blame the Brain. Time. http://content.time.com/time/health/article/0,8599,1919910,00.html (Retrieved on 09/22/2014)

Hall, Edward T. (1966). The Hidden Dimension. Anchor Books.

그림: 에드워드 홀이 제시한 개인 공간(Personal Space)의 구조 (출처: 위키피디아)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3/35/Personal_Space.svg

* 본 원고는 전국영어교사모임 회보 <함께하는 영어교육>에도 송고하였습니다.

 

personal

아빠와 아이의 대화

Posted by on Sep 22, 2014 in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빨간 사다리차를 지나고 있었다. 만 두어 살 쯤 된 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사다리차 위에 올랐다.

아이: 이 차 *왜* 여기 있어요?
아빠: 그러게. *왜* 여기 있을까?
아이: 이 차 불자동차예요?
아빠: 아닌 거 같은데. 그냥 사다리차.
아이: 불자동차 아닌데 *왜* 빨간색이예요?
아빠: 그러게 *왜* 빨간 색일까?
아이: (잠시 침묵 후) 근데 이 차 *왜* 이렇게 커요?
아빠: 아빠도 궁금하네. *왜* 옆에 차보다 클까?

아빠 혹시 고도의 지능플레이?
다행히 아이는 별 반항 없이 아빠의 ‘답’을 듣고 있었다.

(진짜 아빠는 *왜* 저러는 걸까요? ^^)

입말과 글말에서의 “know”

Posted by on Sep 22, 2014 in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영어 | No Comments

입말과 글말 모두에서 know의 빈도수는 매우 높다. 하지만 전자에서는 “you know”와 같은 담화 표지(discourse marker)로서, 후자에서는 말 그대로 ‘알다’라는 의미로서 사용된다. 관련해서 이전 메모를 옮겨 놓는다.

5백만 단어로 이루어진 CANCODE 구어 말뭉치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두 단어 표현: you know (28,013)
가장 많이 나오는 세 단어 표현: I don’t know (5,308)
가장 많이 나오는 네 단어 표현: you know what I (680)
가장 많이 나오는 다섯 단어 표현: you know what I mean (639)
가장 많이 나오는 여섯 단어 표현: do you know what I mean (236)
7단어로 된 표현 중에서 유일하게 20번 이상 나오는 것: but at the end of the day

두 번째와 마지막 통계가 인상적인데 합치면 이런 문장이 된다.

I don’t know, but at the end of the day….

(출처: O’Keeffe, McCarthy, and Carter. (2007). From corpus to classroom, Cambridge. Chapter 2-3 참고)

언어의 소유주는?

Posted by on Sep 22, 2014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언어는 누구의 것인가? 한국어의 주인은 한국인, 중국어의 중국어의 중국인, 영어의 주인은 영미인들인가?

아니다. 언어의 주인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 아니겠는가? 그 어디에서 왔든 말이다.

언어의 자유로운 소유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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