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의 과잉?

Posted by on Dec 31, 2014 in 강의노트,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저만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부분’과 ‘지점’이 별 의미없이 과도하게 사용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학생회 친구들이 회의나 토론을 할 때 즐겨 썼던 것 같은데 이젠 고객응대나 세일즈 관련 대화에서 자주 접하게 됩니다. 특히 ‘부분’은 거북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사용하시는 분들이 있더군요.

예: “그런 부분은 저희가 잘 맞춰서 해드리는 부분이고요.”

12월 31일

Posted by on Dec 31, 2014 in 단상 | No Comments

12.31. 혹은 1-2-3 —- 1

조금 늦은 아침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은, 평소와 다를 것 하나 없는 수요일. 한 해의 마지막 날은 늘 무언가를 이루었다기 보다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뭘 좀 한 것 같으나 원점으로 돌아와 있고 앞으로 조금 나간 것 같으나 제자리다.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진실은 여전히 저 멀리에 있다. 돌아온 나는 여전히 하나(1)이지만, 셋을 겪었으니 조금 달라져 있겠지. 더 큰 하나가 아니라 더 낮고 낡은 하나가 될 수 있기를. 그래야 영(0)의 자리로 스러질 때 아무런 미련 없을테니.

Willing to be depressed

Posted by on Dec 31, 2014 in 단상 | No Comments

Some people choose to be depressed rather than deceive themselves. They fully embrace the risk of being stigmatized rather than seek cheap respect. Society portrays them, however, as having ‘personal, psychological problems’ and prescribes a good dose of self-discipline and a positive worldview. It is as if saying, “Why suffer? Just comply.” In fact, what is deeply disturbing is a society that does not know how to empathize; what is truly optimistic is the fact that there are some people, if not many, who dare to speak up while bearing the burden of feeling down.

‘진인사(盡人事)’의 바탕은 함께함입니다.

Posted by on Dec 30, 2014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길고양이들 사진을 처음 찍기 시작했을 때 고양이가 점프하는 멋진 순간을 만나는 건 큰 행운이라 여겼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은 없습니다. 고양이가 카메라 앞에서 몸을 날리지 않는다면 점프샷을 찍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순간 포착의 우연을 만날 확률을 아주, 아주 조금은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 기술의 연마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 사진술은 초보적인 수준이거든요. 사실 테크닉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었습니다. 바로 길냥이들과 오랜 시간 같이 노는 일입니다.

냥이들이 언제 뛰어오를지 모르기에 긴 시간을 함께 하지 않고서 비상의 순간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아울러 그렇게 함께 있는 동안 냥이의 움직임을 세심하게 지켜봐야 합니다. 주로 움직이는 동선은 어디인지, 날아오르기 전 어떤 걷는 모양새는 어떤지, 도약을 위해 얼마나 오래 움츠리는지… 이 모든 것들에 익숙해지지 않고서는 환희의 순간을 만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오랜 친구가 좋은 이유는 단지 편안해서만은 아닙니다. 시간을 관통하여 다양한 모습을 보아왔기에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 있고, 바로 그 이유로 그 친구가 진정 아름다운 순간 또한 놓치지 않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말하는 소위 ‘성공’의 기준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에 비추어 비상의 순간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세속적 기준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을 통해 그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사람들 — 그게 바로 진정한 친구 아닐까요?

아름다운 순간을 만나기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작습니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한다고 하지만, ‘진인사’의 비중은 미미한 것이죠. 하지만 부단히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비상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법입니다. 그리고 오늘 감히 ‘누군가와 함께함’이 진인사의 으뜸이라’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새로운 한 해는 함께하는 한 해가 되시길 빕니다. 고양이든, 친구든, 책이든, 여행이든, 글쓰기든, 혹은 자기 자신이든 말입니다. ^^

비유는 비유일 뿐이고, 유희는 유희일 뿐이다 (?)

Posted by on Dec 30, 2014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1. 얼마 전 한 메일링리스트에서 “Boot camp”라는 명칭에 대해 의견이 오갔다. 방학중 글쓰기 집중훈련 코스를 “writing boot camp”로 이름짓는 데 대해 논의가 진행되었는데, (군대문화를 몸에 새기려는 목적의) ‘신병훈련소’ 정도의 뜻을 지닌 ‘boot camp’가 글쓰기 훈련 프로그램의 명칭으로 알맞은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괜찮다는 의견은 “글쓰기 프로그램이 ‘boot camp’라는 이름을 쓰더라도 형식과 내용이 교육적이며 민주적이면 아무 문제가 없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었다. 아울러 ‘deadline’이라는 용어도 미국 남북전쟁 중의 포로수용소에 관련된 용어였지만 지금은 모두가 거리낌없이 쓰고 있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반대편에서는 “자유로운 사고표현과 창의성을 진작하려는 작문교육 프로그램과 boot camp 라는 용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나는 “비유의 효용과 영향은 비유 사용의 주체, 맥락, 의도에 따라 달라지지만 비유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암묵적 힘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며 boot camp를 다른 용어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위 논의는 “비유는 비유일 뿐인가?”라는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Deadline의 어원에 관한 설명은 아래에서:
http://www.todayifoundout.com/index.php/2014/01/origin-deadline/)

2. 고양이 커뮤니티에서 꽤 오래 전부터 유행하는 놀이가 있다. 대략 이렇게 진행된다.

(1) 손가락을 권총 모양으로 해서 냥이들을 겨눈다.
(2) ‘빵(이야)’를 외치며 권총이 발사되는 상황을 묘사한다.
(3) 그 순간 냥이들의 반응을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올린다.

훈련에 의한 것인지 자연스런 반응인지 모르지만 상당히 그럴듯한 연기를 보여주는 냥이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제대로 된 연기’는 많은 ‘좋아요’를 획득한다. 사람들은 친구들을 소환하여 같이 보기를 권한다.

물론 냥이를 향한 ‘손권총질’은 유희의 일종이다. 아이들이 주먹싸움을 하고 전쟁놀이를 하며 웃고 떠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빵이야’ 동영상을 보다가 씁쓸해졌다. ‘과연 유희는 유희일 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총쏘는 역할은 사람, 쓰러지는 역할은 냥이가 맡는다. (적어도 내가 본 영상에서 냥이가 총을 쏘고 사람이 쓰러지는 걸 보지 못했다!) 총이라는 물건은 인간이 만들어 낸 전쟁과 사냥의 도구다. 그것이 인간에 의해 사용되고, 그에 ‘적절히’ 반응하여 ‘죽는’ 시늉을 하는 고양이들이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이 비대칭적 구조 속에서 권총놀이는 그냥 재미난 놀이일 뿐일까?

3. 나와 다른 비유를 사용한다고 무조건 반대할 마음은 없다. 내가 반기지 않는 유희를 즐긴다 해서 비난할 생각도 없다. 다만 늘상 사용하는 비유, 다같이 웃고 떠드는 유희가 그저 비유이고 유희일 뿐인지, 아니라면 어떠한 사회문화적, 정치적 뜻을 담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일은 꼭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소통 채널의 선택 기준

Posted by on Dec 27, 2014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기말이면 어김없이 성적 세부사항 확인 관련 메일을 받는다. 성적 산출의 근거를 항목별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알려달라는 것이다. 메일 자체는 달갑지 않으나 어떤 성적을 받았는지 알 권리는 학생에게 있으므로 최대한 자세히 답해주려 노력한다. 그런데 성적 관련 문의를 카톡이나 문자메시지로 받을 때면 학생과 내가 소통의 채널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음을 깨닫는다. 내게 스마트폰 메시지는 사적인 실시간 채널로 학생들이 사용해도 좋은 경우는 출결관련 통보나 긴급한 문의에 한한다. 갑자기 수업에 오지 못하게 되었다거나 발표와 관련하여 바로 답변을 얻어야 하는 경우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에게는 친밀성 혹은 긴급성 여부가 소통 채널의 선택 기준이 되지 않는 듯하다. (물론 학생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성적만큼 긴급한 사항도 없겠지만. ㅠㅠ)

음…

Posted by on Dec 23, 2014 in 강의노트, 일상 | No Comments

말 보고서를 읽다가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하였다. 설명이 한참 진행되던 차에 다음과 같은 표현과 마주친 것이다. 

“하지만 음…” (말줄임표는 학생의 원고를 그대로 옮긴 것임)

학술 글쓰기의 기준을 익히지 못한 것인지, 나중에 좀더 쓰려고 남겨놨다가 퇴고를 하지 않고 낸 것인지 아리송하다. ^^

미생을 보는 두 가지 관점

Posted by on Dec 23, 2014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우리들이 본 건 장그래의 달동네 집, 장그래의 엄마, 장그래의 과거, 장그래의 현재, 장그래의 희망, 장그래의 좌절, 장그래의 아픔, 분노, 노력, 눈물, 그리고 장그래를 둘러싼 사람, 기업, 권력, 자본, 시대. 즉, 장그래라는 고유한 ‘인간.’ 저들이 본 건 돈 주는 것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일을 해내는 충성 직원. 우연히 장그래라는 눈에 띄는 이름을 가지게 된 ‘대체가능한 계약직.’

 

http://www.huffingtonpost.kr/2014/12/23/story_n_6370524.html

냥이들의 새로운 친구를 만나다

Posted by on Dec 23, 2014 in 일상 | No Comments

앞집에 새로 이사온 초등학생 남자 아이. 내가 냥이들 사진 찍는 모습을 보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한다.

“아 왜요?”
“그냥 잠깐 기다리세요.”

냥이들과 놀아주고 밥주고. 한 4-5분 지났을까? 김이 모락 모락 나는 머그를 가지고 나온다.

“이거 드세요.”
“아 이거 뭐예요? 어머니가?”
“아뇨. 제가요.”
“아 정말 고마워요. 근데 이건 왜?”
“힘드실까봐요.”
“ㅎㅎㅎ 뭐 노는 건데요.”

마음이 참 예쁘다. 요즘 보기 힘든 아이인 듯.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가 다시 말을 건넨다.

“저도 고양이 많이 좋아하거든요.”
“아 그래요?”
“네네. 전에 강아지를 키워봐가지고 강아지도 고양이도 다 좋아해요.”
“아 저도 그래요. 저는 어렸을 때 고양이 키워봤는데. ㅎㅎㅎ”

잠시 어색한 침묵 흐르고… 한가하게(?) 평일 오후에 냥이들 밥주고 있는 내가 멋적어였을까? 하필 이런 말이 입가에서 툭 떨어졌다.

“근데 아저씨 뭐하는 사람 같아요? (라고 말하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 사진찍는 사람이요.”
“아 그래요?”
“네. 사진 어…”
“사진작가요?”
“네네. 그거요.”
“ㅎㅎㅎ 이거 칭찬인데요.”

고맙다, 친구. ‘백수’라고 안해줘서.
앞으로 같이 힘을 합쳐서 고양이들과 같이 놀아보자꾸나. :)

메모리 마이닝

Posted by on Dec 22, 2014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꿈을 꾸었다. 전업을 해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데이터마이닝을 넘어서는 메모리마이닝(memory mining)이라는 신기술을 제안했다. 특정한 생각을 하면 데이터베이스와 웹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memory), 그리고 그 기억과 맞물린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검색할 수 있는 알고리듬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 그러면서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알람이 울렸다. ‪#‎이글도일종의메모리마이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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