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에 관한 어떤 우화

Posted by on Dec 21, 2014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살을 에는 바람이 부는 날. 사람들은 밖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버스가 유난히 늦게 오네. 다음 차가 언제 올지 모르지만 이 추위에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는 것보다는 버스를 타는 편이 훨씬 낫겠지?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조금만 더…’

같은 시각, 근처 건물 몇몇에서는 스마트폰 어플을 가지고 버스의 도착 예정시간을 정확히 예상한 사람들이 있었다. ‘보통 걸음걸이로 3분 거리이니, 앞으로 10분 후에 나가면 되겠군.’

스마트하게 스마트폰을 활용한 사람들 몇몇이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이내 버스가 들어왔다. 앞에 타던 할머니 승객 하나가 운전사에게 “아 오늘 왜 이렇게 늦게 왔수? 보통 때보다 한참은 더 기다린 거 같은데. 날씨도 춥구먼.”이라며 짜증을 날린다. 기사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다.

일과를 마친 기사는 회사에 한 가지 제안을 내놓는다. 며칠 후 모든 마을버스에는 ‘추운 겨울 마을버스를 따뜻하고 스마트하게 이용하는 방법’이라는 알림광고가 붙는다. 다양한 플랫폼에서 활용할 수 있는 마을버스 도착시간 조회용 모바일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이다.

기사는 자신의 제안을 회사가 채택해 주어 기분이 좋다. 무료이니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가볍다. 기존에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던 사람들 중 몇몇은 ‘뭐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이렇게 크게 써붙여 놨냐? 이거 모르는 사람도 있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그 기술의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쓰고 있지 않다.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 하더라도 ‘앱스토어’나 ‘구글플레이’같은 외계어를 해독할 재간이 없다.

추위도 기다림도 계속된다.
앱을 깔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이름을 빼앗긴’ 사람들

Posted by on Dec 17, 2014 in Uncategorized | No Comments

대학 재정의 부족으로 한 학기에 다섯 개의 작문 수업을 해야만 하는 비정규직 강사들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고용상의 안정을 우려하여 익명을 요구했다”라는 구절에서 먹먹해졌다. 잘리지 않기 위해 익명의 세계로 숨어들어야 하는 우리들.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것을 넘어 인간의 존엄마저 위협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방증이겠지. (한 학기에 스무 명 넘는 학생들의 작문지도를 해본 경험으로 볼 때 다섯 개 강의의 노동강도는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Encountered the following while reading an article: “One of the instructors present at that meeting, who also did not want to be named, citing fears about job security, said the change was a cost-saving measure, in light of anticipated budget cuts.” – Fears, driven by a cost-saving measure, strip us of our names. How horrible. How tragic. And how inhumane.

https://www.insidehighered.com/news/2014/12/16/arizona-state-tells-non-tenure-track-writing-instructors-teach-extra-course-each

 

열심히 배웠지만 시험은 못봤어요

Posted by on Dec 17, 2014 in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시험 시간. 끝까지 시험지를 붙잡고 있는 친구들 넷.

(한 학생 쪽으로 가면서) “자 이제 걷겠습니다. 정리해 주세요.”
(시험지를 건네면서) “ㅎㅎㅋㅋㅎㅎㅎ”
“왜 웃으세요?”
“ㅎㅎㅎ 개소리를 너무 많이 해서요.”
“개소리요? 무슨 그런…”
“(허탈함과 장난기가 반쯤 섞인 목소리로) 한 시간 넘게 개소리만 쓴 거 같아요.”
“(다른 친구 하나가 까르르 웃으며) 그래도 저희 수업은 열심히 들었어요!”
“맞아요, 맞아요. 열심히 들었어요. 잘 배웠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몇몇 학생들을 더 만났다.

“왜 OOO에 대해서는 안내셨어요? 완전 다 외웠는데.”
“맞아요. XXXX에 대해서도 안내셨더라고요. 예상문제였는데.”
“(멋적어져서) 아 그랬죠. 근데 너무 걱정 마세요. 아까 답안지 대충 흝어봤는데 다들 좀 못쓰신 게 있더라고요.”
“ㅎㅎㅎㅎ 그런가요?”
“네 다들 비슷하게 못보신 거 같으니니… ㅎㅎㅎ”

열심히 배웠지만 시험은 못봤다는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도네. 어떻게 하면 이런 느낌을 너희도 나도 갖지 않게 될까…

영어 수업 시간 에피소드 몇 개

Posted by on Dec 16, 2014 in 강의노트,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 No Comments

1. 한 학생에게 “국제전화”가 영어로 뭐냐고 묻자 “음… expensive call”이요 라고 대답하더라는. International은 모르지만 expensive는 아는 ㅠㅠ

2. terrible 가르쳐 주려고 들어본 적 있느냐고 물었더니 실실 웃으며 한다는 말이 “테러블 메이커?”

3. 아이들에게 “addiction”이라는 단어를 가르친 후 Internet addiction을 응용 예문으로 제시. 아이들에게 ‘어떤 중독이 있나요?’라고 물었더니 ‘chicken addiction’, ‘LoL addiction’, 그리고 “Kakao story addiction’이라는 답이 나옴.

4. ‘옷입다’라는 표현으로 ‘put on’을 가르쳐 주니, “그럼 벗는 건 put out이겠네요?”라고 대답. 아니라고 대답해 줌.

5. ‘inside out’을 ‘뒤집어서’라는 의미로 가르쳐줌. 그랬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outside in’이라고 말함. 그렇게도 쓸 수 있지만 흔히 쓰이는 표현은 아니니 ‘inside out’을 쓰라고 말해주자 뭔가 불만 가득한 표정. ‘아니 그게 그거지!’라고 저항하는 듯했음.

6. 휴대폰에서 “read/ignore text messages’를 가르쳐 주었더니 바로 ‘읽씹(읽고 씹는다)’이라는 약어를 가르쳐 줌. 뭔가 큰 욕을 먹은 듯한 기분.

 

7. 아이들에게 Internet Meme을 설명해 주었다. “Meme”라는 단어를 보더니 “미미?”라고 발음하며 “미미가 뭐예요?”라고 묻는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이미지나 동영상, ‘짤방’ 같은 거라고 설명해 주면서 최근 유행했던 “밈” 중에서 생각나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래 동영상을 찾아서 보여준다. “대홍단감자”의 유행은 이미 좀 지났다고 하는데 난 이제서야 본다. (사실 보면서 노래하는 아이보다 1분 경에 나오는 관객의 표정이 압권이었다. 뭐 저런 표정으로 앉아있다냐?)

말 서로 배우기

Posted by on Dec 16, 2014 in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한 학생이 시험 문제를 받아들었습니다. “아니오”라고 써야 할 상황에서 “ㄴㄴ”라고 썼다가 선생님께 “디지기 맞을 뻔” 했답니다. 재미있어서 줄임말을 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아는 것도 있었지만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었습니다.

ㅊㅊ (ㅊㅋㅊㅋ, 추카추카, 축하축하)
ㅇㅇ (어어, 응응)
ㅇㅈ (오짐)
ㅉ (쯧)
ㅉㅉ (쯧쯧)
뿜 (뿜었다)
격뿜 (격하게 뿜었다)
그켬 (극혐, 극한 혐오)
ㄴ (No)
ㄴㄴ(No No)
ㅇㅋ (오키, 오케이)
ㅂ2(바이)
ㄱㄷ(기다려)
ㄱㄹ(그래(?))
ㅇㄷ(어디(?))
ㅅㄱ(수고. 진짜 수고하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니가 알아서 해봐라 정도의 의미)
ㄱㅊ (귀찮아 혹은 괜찮아 – 문맥에 따라 판단)
반모 (반말모드)
ㄷㄷ(덜덜)
ㅎㄷㄷ(후덜덜)
ㅅㄹ(시로, 싫어)
ㅎㄸ (혼또니, 진짜? – 널리쓰이진 않는 거 같다는 설명을 덧붙이네요)

이 외에도 ‘ㅂㅅㅅㅂㅉㅉㅉ’ (박수 세 번 짝짝짝, 혹은 ‘매우 나쁜 말’)이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답례로 영어 채팅에서 사용되는 용어 몇 가지를 알려주었어요. “미국사람들 이상하게 줄여쓰네요”하면서도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어린 학생들일수록 자신만의 문화와 언어를 가르쳐 줄 때 눈이 더 반짝이는 것 같더군요. :)

잠깐이지만 아이들에게 ‘그들의 말’을 배우면서 ‘교사가 학생에게 배우고, 배운 것을 다시 교수로 연결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프로그래밍 및 디지털 리터러시 관련해서 이런 모델을 채택한 학교가 있었는데 언어교육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조기영어교육 그리고…

Posted by on Dec 16, 2014 in 일상 | No Comments

한 강사 친구가 영작 숙제를 읽는데 주제가 <한국에서의 영어 조기교육> 이었다고 합니다. 학생은 조기교육의 폐해를 논의하며 한국에서는 “뱃속에서부터” 애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데 크게 잘못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고요. 주장이야 그럴 수 있는데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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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in the stomach”라고 했다는군요. 채점하다가 배꼽 빠지게 웃었다고 합니다.

결론: 아기는 stomach 안에 있으면 절대 안됩니다. ㅋㅋㅋㅋ

쓸데 없는 기억력

Posted by on Dec 16, 2014 in 일상 | No Comments

지하철 역을 나서는데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

“어 여긴 웬일이야.”
“아 오랜만이야. 이렇게 보네. 선배가 만든 다큐 보러 왔어.”

순간 저만치에서 걸어오는 한 여자. 굉장히 낯익다. 친구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계속 ‘누구지? 누구지? 분명 아는 사람인데? 아는 척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있다.

“1월쯤 한번 보자.”
“그래. 잘 지내고 그때 봐.”

발걸음을 떼는데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아 대학 때 친한 친구가 짝사랑하던 여학생!’

휴우… 아는 체 안하길 정말 잘했다.
근데 나는 왜 이런 걸 기억하고 있는 거냐.
필요한 건 다 까먹으면서. ㅠㅠ

어머니의 뇌에서 태아의 세포가 발견되었다

Posted by on Dec 15, 2014 in 링크 | No Comments

놀랍네요. 태아와 어머니의 유대가 단지 영양분을 주고 받는 수준이 아니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구체적으로 태반을 통해 태아와 어머니 사이에 필요한 ‘소통’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 통로를 통해 세포들이 이동(migrate)할 수 있어서 기사의 제목(Scientists Discover Children’s Cells Living in Mothers’ Brains)처럼 어머니의 뇌에서 아이의 세포가 발견되기도 한다고요. 이 연구 결과가 맞다면 우리가 유전적으로 ‘단일하고 자생적인 개체(singular autonomous individual)’라고 생각해왔던 것은 큰 오산이군요. 추후 관련 연구들도 이같은 해석을 지지한다면 생물학적으로 우리는 모두 단 두 사람, 즉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유전자를 물려받아 독립적이고 단일한 개체로 성장한다는 상식은 수정되어야 하겠구요. ^^ (제가 이쪽으로 문외한이라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

http://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scientists-discover-childrens-cells-living-in-mothers-brain/?WT.mc_id=SA_Facebook

“아니오” 못하는 나

Posted by on Dec 15, 2014 in 단상 | No Comments

타인에게 “아니오”를 못하는 게
나에게 “아니오”를 못하는 것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다는 거.

그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과
스스로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거.

 

알면서도 ‘아니오’ 못하는 나는
참 못난 바보라는 거.

훌륭한 드럼 연주자에게서 배우는 것

Posted by on Dec 15, 2014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이제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일인데 잠시 드럼을 배운 적이 있다. 짧은 기간 내가 배운 것들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이렇다. (1) 박자를 유지하는 것이 화려한 테크닉보다 훨씬 어렵다. 드럼이 박자를 맞추기만 하는 악기는 절대 아니지만 박자를 잡아주지 못하는 드럼은 별 쓸모가 없다. (2) 안쓰던 사지 근육을 쓰게 되는 건 참 좋다. 하지만 온몸이 꼬이면서 ‘내 사지도 내 마음대로 못해!’라는 고통의 외침이 수반된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3) 젓가락에서 의자 팔걸이까지 뭘 보든 타악기로 변신시키려 든다. 당구 초보에게 교실이 ‘다이’가 되고 친구들의 머리가 당구공으로 보이는 것처럼. (4) 되돌아 보면 할머니의 다듬이질은 정말 훌륭한 타악기였다. 몇달 쯤 밤낮 없이 고무판을 열심히 치다 보니 예전 할머니만큼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5) 어설프게 배우고 그만두니 드럼 프로그래밍에 별 도움이 안된다. 리듬을 설계하려면 실물 드럼을 배우는 것보다 리듬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이후에도 훌륭한 드러머들의 연주를 들으며 인생에 대해서 배운 게 있다. 소위 ‘드럼 고수’가 되어가면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박자, 즉 자신만의 리듬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은 한 마디를 4개로 쪼개어 연주할 때 5개로 쪼개어 연주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엇박자가 드러머를 곡 밖으로 튕겨나가게 하진 못한다. 남들이 네 걸음 걸을 동안 다섯 걸음을 걷지만, 더 큰 그림에서 조화를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언제든 자신의 리듬을 탈 수 있지만 결코 음악을 벗어나지 않는 능력.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휘몰아치는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 나에겐 자신만의 박자를 연주할 수 있는, 그러나 큰 흐름을 놓치지 않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다. 연주와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드럼은 내게 “‘그들의 리듬’에 매몰되지 말고 ‘너만의 호흡’을 만들어 가라”고 이야기한다.

자 이제 숨을 쉬자.
다른 시간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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