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언어의 긍정편향(positive bias)에 대하여

Posted by on Feb 22, 2015 in 링크,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 No Comments

(순수히 개인적인 관찰에서) 고통의 깊이는 기쁨의 높이를 훌쩍 뛰어넘는 것 같다. 기쁨은 빙산의 일각이요, 고통은 빙산의 몸체, 기쁨은 가지런한 지상의 나무요, 고통은 복잡다단한 심연의 뿌리같달까. 그럼에도 인간 언어의 긍정편향(positive bias)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하니 재미있다. 초록만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들.

1. 언어의 긍정 편향은 인간 감정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일까? 즉, 인간은 슬픔보다는 기쁨을 더 확실히 느끼는 것일까?

2. 아니면 이런 긍정편향은 부정적 감정의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언어의 반작용일까? 즉, 슬픈 순간이 더 많지만 기쁨의 순간을 더 자주, 과장하여 표현하는 것일까? 즉, 고통의 무게는 가볍게, 기쁨의 무게는 더 무겁게 인식하고 싶은 것일까?

3. 그도 아니라면 진짜 고통스런 상황에서는 아무말도 할 수 없기에, 말로 표출된 감정은 긍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거나 입을 틀어막고 울 수밖에 없을 때, 언어를 통한 소통의 가능성은 사라지는 것이니.

암튼 내가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좀더 자세히 읽어봐야 되겠다. :)

“The most commonly used words of 24 corpora across 10 diverse human languages exhibit a clear positive bias, a big data confirmation of the Pollyanna hypothesis. The study’s findings are based on 5 million individual human scores and pave the way for the development of powerful language-based tools for measuring emotion.”

http://www.pnas.org/content/early/2015/02/04/1411678112

대화와 독백

Posted by on Feb 20, 2015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지난 주부터 맴도는 생각.

‘나의 삶.
독백적 대화는 많아지는데,
대화하는 독백은 줄어들고 있진 않은지…’

Mic 뉴스디렉터의 해고

Posted by on Feb 20, 2015 in 링크,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 No Comments

Mic의 뉴스디렉터 Jared Keller가 해고되었다. 이유는 The Atlantic, Vox, Reuters 등의 기사를 표절했다는 것. 주목할 만한 것은 Gawker에서 약 20여 번의 표절 사례를 폭로한 지 단 하루만에 Keller가 해고되었다는 사실이다. 한편 한국에는 이것 저것 잘도 긁어 모아 돈을 벌고 있는 사이트들과 ‘유명’ 블로그들이 꽤나 많다.

http://www.nytimes.com/2015/02/13/business/media/news-director-at-mic-is-fired-after-plagiarism-accusations.html?_r=1

Acid 아줌마에게 배우는 유머 레시피

이 만화에서 Aunty Acid가 유머를 제조하는 단계를 간단히 분석해 보겠습니다.

1. “Good morning”과 “Morning”을 대비합니다. (사실 이 두 가지 인사는 일상생활에서 큰 차이 없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

2. 이때 “Good morning”은 순수히 관습적인 인사, 즉 good과 morning이 하나로 결합된 “Good+morning”이 아니라, “Good / morning”으로 분석됩니다.

3. 이렇게 Good과 Morning을 분리는 행위 속에서 사회적 규약으로서의 굿모닝은 해체됩니다. 대신 “Good”이라는 단어는 “좋은”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부각되죠.

(관습적인 상황에서 인사를 주고 받는 사람의 심리상태에 대한 고려는 별로 없습니다. ‘Good morning’이라고 인사하는데, ‘Oh, do you have a good morning? I’m not good. 같은 식으로 대답하진 않죠. 아주 친한 사이에 솔직히 말해야 할 사정이 있어야만 이런 대답이 가능하겠죠.)

4. 이제 해체된 표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합니다. 이 재해석의 과정은 바로 자신만의 굿모닝(One’s own version of ‘Good morning’)을 정의하는 일로 이어지죠. Aunty Acid 아주머니에게 굿모닝은 침대에서 뒹굴거릴 수 있는(즉 “be in bed”할 수 있는) 아침이지, 사람들을 만나서 인사나 하고 있을 아침이 아닌 것입니다.

5. 혹시나 유머를 잘못 알아들을까 ‘Morning’과 ‘talking to people’ 부분만 빨강으로 표시해 두었습니다.

=> 많은 유머들이 이렇게 공적이고 관습적인 의미를 해체하고, 그 자리에 자신만의 (혹은 특정 사회계층이나 정치세력의) 의미를 불어넣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만화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1) 공적인 언어습관을 (2) 나만의 공간으로 끌어들인 다음, 다시 (3)공적인 공간에 내놓는 단계를 통해 특정한 유머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영어 이름에 대하여

Posted by on Feb 18, 2015 in 링크,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 No Comments

우조마카: “저 Zoey라고 불러주시면 안돼요?”*
엄마: “왜?”
우조마카: “‘Uzomaka’를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요.”
엄마: 걔네들이 차이콥스키(Tchaikovsky)나 도스토옙스키(Dostoievsky), 미켈란젤로(Michelangelo) 같은 이름을 발음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당연히 Uzomaka 발음도 배울 수 있어.

한 번도 영어 이름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나에 대해 대단한 자긍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언어와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내 이름은 내 이름이라고 생각했고, 상대방이 발음을 조금 틀려도 별 상관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물론 영어 원어민들과 자주 만나야 하는 상황에 있는 아이의 입장에서 Uzomaka 어머니의 견해를 100% 수용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친구들이나 교사가 자기 이름을 잘못 부르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그때마다 ‘왜 내 이름을 제대로 못부르지? 영어 이름을 만들어야 하나? 내 이름이 너무 우습게 들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소통 상황에서 상당한 심리적인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발음을 잘못하는 것은 그 이름을 발화하는 사람의 노력, 언어간의 거리 등의 문제이지, 내 이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자기 이름에 대한 선입견을 은근히 키우는 것은 정서적 발달에 큰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한 가지 측면은 문화간 접촉 상황에서 아이들이 키워야 할 똘레랑스 능력과 연관되어 있다. 급속도로 증가하는 다문화적 경험 속에서 발음이나 어휘, 문법 등의 언어적 요인은 종종 충돌의 대상이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호 협상(mutual negotiation)이지 일방적인 적응(unilateral adjustment)이 아니다.

특정한 사회문화적 조건 속에서 생겨나는 영어 이름에 대한 욕망을 싸잡아 비난할 이유는 없지만, 그런 욕망 뒤 숨어있는 은밀한 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지 “너 영어 이름 뭘로 할래?”라는 이야기를 쉽게 꺼내는 부모나 교사들이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다.

*위에 소개한 우조마카의 인터뷰 전문:
http://www.upworthy.com/the-perfect-response-for-kids-with-hard-to-pronounce-ethnic-names?c=ufb2

어떤 우화

Posted by on Feb 17, 2015 in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4=5

명백히 틀린 명제다.
하지만 프레임을 바꾸면
옳을 수 있다.

수학의 세계를 떠나
언어유희의 세계로 가보자.

4our seasons
5ive fingers

4=/f/
5=/f/
그러므로, 4=5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은
“4=5″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가혹하다.
빈정대는 건 필수, 조롱은 선택.

하지만 어떤 이들은
“4=5″라고 믿을 수 밖에 없는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다 옳다는 건 아니다.
4는 5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4=5″라는 글을 보자마자
길길이 날뛰며 욕할 필요는 없다.

비판은
한 박자 천천히.

그와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와
어디에 발딛고 있는지
한번 쯤 살피고 나서.

명절 그리고 Yesterday

Posted by on Feb 16, 2015 in 단상, 링크 | No Comments

어렸을 때 명절은 ‘가족이 모여 음식 먹는 날’이자, ‘안보던 친척들 단체로 보는 날’이었다. 어른들의 용돈이 기다려지기도 했지만 그리 친하지 않은 친척들을 만나는 피곤함까지 즐기긴 힘들었다. 엇갈리는 기억 속 단연 빛나는 추억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100>,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요 100> 등과 비슷한 제목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설 전에 용돈을 모아 큰맘먹고 산 고급 공테이프 두 개! (아마도 메탈이나 크롬 재질이었을 것이다.) 연휴 기간 동안 좋아하는 음악을 담기 위해 얼마나 귀를 쫑긋 세웠는지! 휴일이 끝나면 음악을 좋아하던 친구의 집으로 달려가 서로의 ‘짜깁기 음반’을 사이좋게 복사하곤 했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팝송 순위의 끝이 거의 정해져 있었다는 것인데, 1위와 2위를 보통 <Bridge over troubled water>와 <Yesterday>가 나누어 가졌다. 비오는 오후, 비틀즈의 노래를 연주해 본다. 아, 옛날이여! ㅠㅠ

http://youtu.be/wYp3hxtdok4

이론, 과학사, 그리고 생각의 틀

Posted by on Feb 16, 2015 in 과학, 단상 | No Comments

1. 단어 하나 하나가 다 기억나진 않지만 대충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얼마 전 스키너 관련 학회에 가서 엄청나게 놀란 적이 있다. 거기 온 학자들은 자기보스(스키너)가 촘스키와의 논쟁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더라.”

2. 심리학사에서 스키너와 촘스키의 논쟁은 꽤나 큰 사건이었고, 과학사가들의 대부분은 이를 ‘촘스키의 완승’으로 기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키너의 추종자들은 여전히 ‘그래서 스키너가 뭐가 틀렸는데?’라고 묻고 있다.

3. 사실 촘스키나 스키너 모두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를 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사상과 관점 모두를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수십 년 동안 형성된 지적 지형 모두가 허상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는 매우 위험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비고츠키와 피아제 중 한 사람은 모조리 맞고, 다른 한 사람은 모조리 틀렸다고 말하는 것도 우습다. 하긴 이런 예가 이들 학파들의 논쟁 뿐이겠는가?

4. 다만 과학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기반을 가질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그 기반 또한 여러 학자들의 다양한 생각이 합쳐져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모든 이론을 조금씩 조금씩 ‘뜯어다가’ 세상을 보려 하다가는 절충주의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대충 섞어 다진 지반은 결국 작은 폭풍우에도 쉬이 무너지고 만다.

5. 이론의 부침이 있을 수 있고 선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개별 이론을 레고 블락처럼 조립하여 세계를 이해할 수는 없다. 과학적 관점을 아우르는 원칙(principles) 없는 임기응변식 설명은 위험하다. 이론 생태계는 충돌과 생사를 넘어 상호 소통과 변형, 새로운 이론의 탄생으로 이루어진다.

6. 처음으로 돌아가서, “스키너는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들은 과학을 모르는 문외한이 아니라 과학자들이다. 그들의 믿음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들의 모습에서 한 가지 교훈을 얻는다.

7. 어떤 틀은 모험을 떠나기 위한 베이스캠프다. 어떤 틀은 감옥이다. 이 둘이 완벽하게 구별되진 않지만, 내가 가진 생각의 틀이 어디에 가까운지 늘 고민하며 살아야겠다.

사기캐릭터 vs Overpowered, 그리고 단어학습법

Posted by on Feb 16, 2015 in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영어 | No Comments

 

“게임, 특히 대전격투게임(대전액션게임)에서 멀티 게임의 밸런스까지 무너뜨릴 정도로 압도적으로 강한 캐릭터(혹은 종족/진영 등등)를 가리킨다. 단순히 강한 캐릭터가 아니라 상성도 거의 무시하면서 초보부터 고수까지 누가 사용해도 압도적으로 강한 캐릭터를 말한다. 줄여서 ‘사기캐’ 혹은 개캐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점잖게는 강캐릭터, 밸런스 브레이커라고 부르며 비난의 의미를 담을 땐 치트캐릭터 또는 ‘厨キャラ(초딩용 캐릭터)’ 라고 부른다. 영미권에서는 ‘Top tier’ 혹은 ‘Overpowered’ 라고 하는데 ‘Overpowered’ 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용어인 OP의 어원이기도 하다.” (출처: 엔하위키 미러)

우리말에서 ‘미세먼지’라고 부르는 걸 영어로는 toxic air라고 한다. 같은 대상을 가리키면서도 엄청나게 다른 느낌을 준다. 여기에서 외국어의 어휘 특히 숙어나 메타포적 표현을 배울 때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을 도출할 수 있다. 단어 대 단어 짝으로 암기하는 것을 넘어 서로 다른 개념화(conceptualization) 방식에 주목하는 것이다. 사기캐릭터 vs. Overpowered. 어떤 면에서 같고 어떤 면에서 다른가, 왜 각각의 문화에서 그런 식의 개념화가 생겨났을까 생각해 보고, 관련된 자료를 조사해 발표하고, 의견을 나눠보는 것이다. 교사들은 이런 방식을 체계화하여 교실활동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데드라인과 글

Posted by on Feb 15, 2015 in 단상,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데드라인이 있어야 글을 쓴다”고들 하지만 실상 “데드라인”과 “글”은 따로 존재한다기 보다 유기적으로 공생한다. 마감일은 나와 같이 게으른 필자의 인지 속에서 글쓰기의 필수요소로 작동하며, 글의 양과 질을 ‘조종’하기도 한다. 삶이 죽음 너머를 응시한다면, 글은 데드라인의 저편을 힐끗거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데드라인을 넘는 순간마다 저승사자가 아니라 천사를 만나왔다는 것. 그런 ‘자비롭고 부드러운 데드라인’에 길들여지고 있는 나는 얼마나 살아있는지. ‪#‎근데왜이런글은이리재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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