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커, “마음은 뇌에 있다” 유감

Posted by on Mar 19, 2015 in 과학, 단상, 링크 | No Comments

나는 핑커 쯤 되는 사람이라면 “마음은 어디에 있나요?”라는 질문에 “마음은 뇌와 신체와 컨텍스트가 상호작용는 과정이죠. ‘어디 한 장소에 있다’고 말하는 건 적당하지 않아요. 뇌가 가장 중요한 기관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뇌의 기능은 특정한 맥락 속에서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되거든요.”라고 말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늘 무너진다. 짧은 지면에 언제 그걸 다 설명하고 있느냐고? 한정된 지면이니 그렇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또 그래야 뒤에 나오는 정체성 논의와도 맞물려 돌아가게 되고.

스티븐 핑커(이하 핑커) = “마음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답이 있다면, 뇌가 맞을 겁니다. 마음은 뇌의 활동이죠.”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503162152245&code=210100

지니(Genie)를 생각하다)

Posted by on Mar 19, 2015 in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지니(Genie)를 아시나요? 난폭하고 무정한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끔찍한 학대 속에서 살아야 했던 아이. 생후 20개월부터 격리되어 13세까지 어떤 보살핌도 받지 못했던, 세상과 통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차단된 채 살아야만 했던 비극의 주인공. 1970년도에 세상에 나온 아이는 전세계 수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프랑스의 늑대소년 Victor of Aveyron과 같이 이른바 “결정적 시기 가설(Critical Period Hypothesis)”이 옳은지 알아볼 수 있는 사례이기 때문이었죠. 국가의 지원까지 받은 연구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UCLA 등의 학자들은 팀을 이루어 그녀의 삶을 면밀히 기록하고 분석합니다. 하지만 Genie는 연구대상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었고, 누구보다도 따스한 보살핌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이 비정한 세상에 그녀의 몸뚱아리 하나 받아줄 곳이 없었죠. 급기야 이집 저집, 이 기관 저 기관을 떠도는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던 중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연구자들과 지니의 어머니 사이에 소송이 진행되고, 그 결과 안타깝게도 연구자들은 더 이상 지니와 함께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녀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마저 막혀 버린 것입니다. 지금 예순이 좀 안된 나이의 그녀는 로스앤젤레스 모처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가족도 사회도 외면한 그녀의 삶은 도대체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수업 시간에 지니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알밥먹은 날

Posted by on Mar 19, 2015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세 시간 연강이 끝나자 총총걸음으로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는 학생들. 그 와중에 남은 세 친구와 오늘 다룬 개념들에 대해 질의응답과 심화토론을 하다 보니 이십 여분이 가버렸다. 선생은 배움에 고픈 학생들 덕에 배가 덜 고프다. (절대 배부른 건 아님.) 점심은 최후까지 남은 학생의 강력 추천 메뉴 알밥으로! :) 

IE, 역사의 뒤안길로

Posted by on Mar 19, 2015 in 단상, 링크 | No Comments

MS가 새로운 브라우저 개발 프로젝트(코드명 스파르탄 Spartan)를 추진하는 가운데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거라는 소식. 차기 브라우저와 익스플로러와의 호환성 수준에 따라 오로지 IE에 최적화된 사이트들의 대응이 필요하겠군요. 아시다시피 그들 중 상당수는 모 ‘인터넷 강국’에 집중되어 있다고 합니다. (먼산)

“본 사이트에서 .exe를 내려받아 설치하시면 스파르탄 브라우저에서도 기존 IE와 같이 편안하게 웹서핑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크기 98.5MB) – 이런 문구를 보는 날이 오지 않길 간절히 빕니다.

http://www.theatlantic.com/technology/archive/2015/03/microsoft-is-phasing-out-internet-explorer/

편집하는 사람, 편집이라는 행위, 그리고 역형성

Posted by on Mar 19, 2015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편집자(Editor)가 있고 나서야 편집하는 행위(Edit)가 존재한다] 단어형성에 관한 설명을 할 때 사용되는 개념 중에 ‘역형성(back formation)’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어휘 형성의 반대 방향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는 현상을 말하는데요. 많은 예들이 있지만 제게 큰 영감을 준 역형성의 예는 단연 Editor –> Edit 입니다.

말끔하게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문헌상으로 볼 때 ‘editor’라는 단어는 1640년대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때에는 놀랍게도(!) 우리가 알고 있는 “edit”이라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편집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edit이 등장한 것은 1790년대. 즉, 사람을 가리키는 editor가 등장하고 150년이란 긴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edit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일반적인 단어형성 패턴은 direct –> director, play –> player와 같습니다. 이러한 “동사–>행위자”의 방향이 직관적이죠. 하지만 editor의 경우는 ‘편집하는 사람(editor)’이 먼저 있었고, 이 단어를 본 사람들이 ‘흠 그럼 edit이라는 단어를 동사로 써도 되겠군’하고 잘못(혹은 논리적으로) 생각했던 것이죠. 그래서 역형성이라고 불리는 것이고요.

이 역형성의 예는 한 가지 깨달음을 줍니다. 어떤 업(profession)이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person)이 먼저 존재한다는 것. 어떤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고 나서야 특정한 종류의 일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 일이 먼저 있었던 것 같지만 결국 새로운 일을 개척하는 건 사람이라는 것. 하필 그 사람이 ‘편집자’네요.

묵묵히 일하고 계신 이 땅의 수많은 편집자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은 밤입니다. 지금 제 옆에도 한 분 있군요. ^^

빈곤을 전시하라, 밥을 주겠다.

Posted by on Mar 19, 2015 in 단상 | No Comments

누가 그에게 가난을 증명하라고 윽박지를 수 있는 권력을 주었는가. 구조적 불평등의 결과를 자기 잘못이라 고백하라고 강요하는, 세금을 걷어 집행하면서 ‘무상’이라 이름붙이는, ‘공평함’을 위해 빈곤을 전시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가 온 나라를 활보하는 사회에서,

산다는 것 혹은 견뎌낸다는 것.

교실과 화장실

Posted by on Mar 19, 2015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한 학생과 마주쳤다.

학생: 어!
나: 아!
학생: 하하하하하.
나: 왜요? 뭐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학생: 아뇨.
나: 음… 근데 왜?
학생: 왠지 화장실에서 만나면… (말 끝을 흐린다)
나: 만나면…
학생: 더 평등한 것 같아서요. ㅋㅋㅋ
나: 음… 교실에서는 안평등한가요? ㅎ
학생: 아뇨. 그래도요.

별 것 아닌 몇 마디 이야기가 내 맘에 깊이 남았다. 학생의 표정, 웃음 소리, 대화의 내용까지. 특히나 화장실이 왠지 더 평등한 공간 같다는 그의 말을 흘려버릴 수가 없다.

that절을 취하는 동사 상위 9개

Posted by on Mar 16, 2015 in 강의노트,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think, say, know, see, find, believe, feel, suggest, show

Longman 말뭉치에 의하면 영어에서 that절을 취하는 동사 중 빈도가 가장 높은 9개다. 명제적 의미를 보어(complement)로 취하는 동사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think가 1위인 걸 보면 사람들이 안에 있는 생각을 밖으로 많이 꺼내긴 하나 보다. 물론 다른 사람이 ‘저 사람 생각은 저래’라고 하는 것도 상당히 많을 것 같다. 생각하고, 말하고, 알고, 이해하고, 발견하고(깨닫고), 믿고, 느끼고, 제안(시사)하고, 보여주고(증명하고)…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기성세대의 국가, 한국

Posted by on Mar 12, 2015 in 단상, 링크 | No Comments

10대 학생들이 세계 최고의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나라 한국. 그런데 그 스트레스는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인가? 땅에서 솟아난 것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 기사의 제목은 이렇게 뽑아야 옳다. <세계에서 기성세대가 학생들에게 가장 가혹한 나라 1위 한국>.

https://www.youtube.com/watch?v=WNqNClRJ1_M

망가지는 세상

Posted by on Mar 12, 2015 in 단상 | No Comments

세상이 망가져가는 이유.

가짜 문제에 대한 진짜 해결책.
진짜 문제에 대한 가짜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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