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의 첫 한국어 기사 단평

Posted by on May 11, 2015 in 링크, 말에 관하여, 영어 | No Comments

지난 주에 읽은 기사인데 아침에 슬로우뉴스​ 뉴스 큐레이션에서 다시 만났네요. 뉴욕타임즈의 새로운 기획, 비참한 노동현실에 대한 심층적인 묘사가 인상적이었는데요. 다음 대목에서는 정말 마음이 쓰리더군요. ‘주인’이 고용주(employer)가 아닌 소유주(owner)로 느껴졌달까요? 이름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 누군가의 정체성을 정해줄 수 있는 사람이요.

“렌은 뉴욕주 힉스빌에 샹들리에가 달린 ‘비 네일스’에서 일했다. 가죽 패디큐어 의자에는 서비스로 제공된 아이패드를 이용할 때 고객의 매니큐어가 번지지 않도록 정교한 팔 받침대가 장착되어 있다. 손님들은 가슴 한편에 이름표를 단 렌에게 한 두 마디 이상 말을 걸지 않는다. 직원들은 대부분 주인이 정해준 가명을 사용하는데 렌의 가명은 ‘셰리’이다. 묵묵히 일하며 손님의 발에 박힌 각질을 벗기거나 손톱 주위의 큐티클을 깎아낸다.”

한편으로는 다듬어지지 않은 한국어 문장들이 꽤 많다고 느꼈습니다. 발음이나 글에서 보이는 ‘악센트’에 대한 불만은 없지만, 소규모 언론사나 개인 블로거가 아닌 뉴욕타임즈의 심층보도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번역의 완성도에 대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느 노동자들은 더 많은 고통을 당한다. 네일숍마다 제각기 나름의 의식과 관례가 있어 유리 외관과 귀여운 코너숍 벽 뒤에엔 또 다른 세계가 숨겨져 있다.”

“인구통계자료에 따르면 뉴욕 네일숍의 수는 2000년대 급증하였으며 다른 지역보다 훨씬 앞질렀다.”

“긴 시간 동안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이들 노동자의 삶은 네일숍의 벽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http://www.nytimes.com/2015/05/10/nyregion/manicurists-in-new-york-area-are-underpaid-and-unprotected.html

Guardian 같은 경우는 아랍어 기사를 오래 전부터 실어 왔습니다. 축구 섹션에서 시작되어 다른 기사로 옮겨가고 있는 듯하네요.

http://www.theguardian.com/football/series/arabic

Respect the accent; respect the person.

Posted by on May 10, 2015 in 단상, 말에 관하여, 영어 | No Comments

You may not be satisfied with and want to improve someone’s pronunciation in educational contexts. However, you don’t have any right whatsoever to make fun of other people’s accents: it would be to despise their sociocultural history and, sometimes, even biological characteristics. Respecting someone’s accent is part of respecting the person.

초언어적 인식, 언어비교, 그리고 영어교육

Posted by on May 10, 2015 in 단상,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영어 | No Comments

수업 시간에 “you’re”와 “your”를 혼동하는 영어 원어민 화자가 꽤 많고, 이게 유머의 소재가 된다고 했더니 꽤 많은 학생들이 설마하는 눈빛을 보낸다. 글이 아니라 말로 습득했기에 발음이 비슷한 단어에 대해 그런 실수가 나타날 수 있다고 부연 설명을 했는데도 여전히 의아하다는 듯 빤히 쳐다본다.

언어교육을 전공하는 학생들임에도 이런 현상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조금 실망스러웠다. 한국어 원어민 화자들이 ‘웬’과 ‘왠’을 혼동하거나 ‘꺾다’와 ‘꺽다’가 헷갈리는 경우, ‘되’와 ‘돼’ 중에서 뭘 써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걸 생각해 보면 “you’re”와 “your”, “it’s”와 “its”가 헷갈리는 원어민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써도 좋다는 건 아니고, 언어 현상에 대한 이해를 말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강한 의구심에는 세 가지 요인이 작용한 듯하다.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학생들 또한 인지적 절약자(cognitive miser)라는 사실이다. 나의 설명에 대해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 전에 한국어 화자로서 자신을 돌아보았다면 그렇게 강한 의구심의 눈빛을 발사하진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는 초언어적 인식(metalinguistic awareness)의 부족인데, 비교언어학적 훈련이 부족한 경우 특히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발음이 같은 단어의 철자가 헷갈리는 현상은 특정 언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필자도 좀더 세밀한 초언어적 인식이 필요한 사람 중 하나다.)

세 번째는 원어민의 정확성에 대한 환상이다. 원어민들은 제2언어 학습자들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날 것이라는 암묵적 가정, ‘한국 사람들이라면 거의 혼동할 일이 없는 ‘you’re’와 ‘your’를 원어민들이 헷갈린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는 생각 말이다.

영어선생이 언어학에 대해 얼마나 알아야 하는가는 논쟁의 대상이다. 언어교육 전공생들에게 언어학과 학생 수준의 언어지식을 요구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하지만 한국어와 영어를 세심하게 비교해 보거나 문법, 어휘, 담화 등에 대해 좀더 거시적으로 생각해 보는 훈련은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영어 자체에 대한 지식과 다양한 언어의 특성을 조망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이 더해진다면 좀더 풍성한 언어학습의 장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립어의 윤리

Posted by on May 7, 2015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대립어의 윤리를 생각한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성공한 사람 실패한 사람”

인간을 한 차원으로 변환시키는, 사회경제적 구조를 거세하는, 거짓 이분법을 강요하는 대립어들을 떠올린다.

이론, 맥락, 그리고 교사의 전문성

Posted by on May 6, 2015 in 강의노트, 단상, 일상 | No Comments

밤 늦은 퇴근길 저를 감동시킨 한 학생의 메일을 허락을 받고 나눕니다. 함께 배우고 자라는 이들 덕에 힘을 냅니다.

“교수님께서 오늘 수업 초반에 해주신 이야기가 굉장히 와닿았습니다. 교육실습을 나가서 수업을 했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교직과목과 전공수업에서 들었던 수많은 이론들이 잘 떠오르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이론들을 적용할 시간도 없어 보였습니다.

교수님께서 배운 이론을 현실에 적용(apply)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 상황에 따라 교사 자신이 이론을 재정의(redefine)하고 자신이 처한 상횡에 맞게 변용(recontextualize)해야 하고 또 그것이 교사의 전문성(expertise)이라고 하셨는데요. 무언가 해답을 얻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강의실에 앉아 여러 전공교재를 보며 배웠던 이론들만큼, 이론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수업할 교실의 맥락과 환경이었다는 것을, 4학년이 된 지금 교육실습을 하고 온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실습을 하면서도 학생들과 저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는 느낌이 들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제가 이론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몸소 체험하면서 약간의 멘붕을 느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교수님 말씀대로 이론을 현실에 맞추어 recontextualize하는 것이 교사의 존재이유라고 생각하니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고 끊임없이 머리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어와 문화의 관계: 차승원의 레이븐 광고 사례를 중심으로

Posted by on May 5, 2015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지하철 승강장에서 차승원의 레이븐 광고를 보았다. 차승원의 이미지 옆에는”괴물들 요리하러 가볼까” 비스무레한 문구가 큼지막하게 박혀있었다. 이 상황에서 많은 한국인들은 광고를 쉽게 이해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저게 뭐지’라며 질문을 던질 사람이나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도 꽤 많을 것이다. 연령과 문화적 관심이 중요한 변인이 될 것이고.)

학생들에게 ‘어떻게 이런 직관적 이해가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보통 ‘한국어를 잘하니까’라는 상식적인 대답이 돌아온다. 맞지만 결코 만족스럽지 않은 대답이다. 이 글에서 그 이유를 간단히 설명해 보려 한다. (학술적인 논의가 아니므로 허점이 많이 있지만 언어와 문화의 관계를 조명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

자 이제 광고를 이해하는 다양한 수준을 상상해 보자. 단 한국어 구사능력은 중상 이상이라고 가정한다.

기초적인 수준에서라면 다음과 같은 생각이 가능하다.

1. 레이븐이 뭐냐? 괴물들 어쩌고 하는 거 보니 영화인가? 게임인가?

이 단계에서 <레이븐>이 영화인지 게임인지 혹은 다른 상품 혹은 서비스인지 이해하는 것은 (‘레이븐’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다고 할 때)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다.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경우 이 두가지를 구별하기 위해서 동원할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영화광고와 게임광고에 대한 다양한 지식이다. 즉, 영화 광고와 게임 광고, 기타 상품/서비스 광고에 대한 기존 경험을 동원하여 광고의 내용을 추론해 보는 것이다.

2. 저 사람(차승원)은 누구일까? 광고 모델 하는 걸 보니 유명한 거 같은데?

한국의 광고문화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하철 광고에 전신으로 등장하는 사람이 유명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규칙이 모든 광고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미국 광고에서 유명인 비율이 다르다는 기사를 본 기억도 난다. (미국 광고에서는 의사 등의 전문가들이 한국에 비해 더 자주 등장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3. 괴물을 요리해? 음… 요리해서 먹는 건가? 정확히 무슨 뜻이지?

‘요리’가 다의어로서 가지는 다양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요리하다’의 기본 의미만을 안다면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에 비해 ‘요리’의 다른 뜻을 알고 있다면 아래와 같이 이해할 수 있다.

4. 아 ‘요리하다’는 음식을 하는 거 말고도, ‘일이나 사람 따위를 제 뜻대로 다루어 적당히 처리하는 것(다음 사전)’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하던데, 그 뜻으로 쓰였나 보군.

이제는 차승원이라는 배우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의 신체적 특징을 알고 있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5. 차승원이 몸이 좀 좋지. 광고 잘 어울리는구만.

거기에 그의 목소리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다음과 같은 이해도 가능하다.

6. ‘요리하러 가볼까?’ — 이거 완전 차승원 목소리로 재생되네? ㅋㅋㅋㅋㅋ

이에 더해 차승원이 등장한 몇몇 작품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7. <혈의 누>에서도 싸움 잘 하는 역할로 나왔는데… 그 이미지랑 잘 어울리는구나.

마지막으로 최근 출연한 <삼시세끼>의 ‘차줌마’ 역할을 기억한다면 아래와 같은 생각도 가능하다.

8. 오 <레이븐>과는 관계 없지만 ‘요리’라는 단어가 ‘차줌마’ 이미지랑 묘하게 겹치네. 카피라이터가 ‘요리’라는 표현을 일부러 고른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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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분석에서 지하철 광고판 하나를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다양한 언어적, 문화적 요소들이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어를 잘한다’와 ‘한국문화를 잘 이해한다’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명제인 것이다. 아울러 ‘한국문화’도 ‘한국어’도 거대한 하나의 체계가 아니며, 그 안에 수많은 변이와 ‘서브컬처’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한편 광고 한 컷을 이해하는 데에도 이렇게 다양한 요소들이 개입된다면 다른 언어로 된 문학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번역하는 데 필요한 언어적, 문화적 지식의 양은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영어교육을 업으로 하는 입장에서 ‘언어코드’에 관한 과도한 집착은 늘 아쉽다. “기본 언어도 안되는데 무슨 문화예요?”라고 질문하기 보다는 문화적 경험과 언어적 경험이 손잡고 갈 수 있는 길을 터주어야 한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광고나 정치 슬로건 분석 등과 같은 담화분석(discourse analysis)이 한 가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손으로(by hand)’, 그리고 노동의 진화

Posted by on May 4, 2015 in 과학, 단상, 일상 | No Comments

한 통계학 강사는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에서 ‘calculate the value by hand in Microsoft Excel’이라고 말한다. ‘by hand’의 기본적 의미는 ‘손으로, 손수, 직접’이지만, 이 경우 ‘전문 통계패키지가 아닌 일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라는 뜻으로 쓰였다. 종이와 펜을 써서 통계치를 구한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손으로(by hand)”라는 표현에 다양한 뜻이 있군’ 이라며 지나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술의 진화로 거의 육체/정신노동의 상당부분이 빠르게 기술화(technologicalization)되고 있는 상황에서 ‘손으로’라는 표현마저 ‘손을 사용해서’나 ‘몸을 써서’, 혹은 조금 양보해 ‘머리(두뇌)를 써서’라는 의미로 쓰이지 않을 때가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언젠가 뇌가 네트워크에 직접 접속하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면, ‘손으로’는 ‘뇌신경에 직접 연결된 인터페이스를 사용하지 않고 몸을 움직여서’라는 뜻이 될지도 모르겠다.

길 The Way

Posted by on May 2, 2015 in 일상 | No Comments

동생을 만나고 돌아온 밤.
잊고 있었던 그의 옛 음악을 찾는다.
많은 이들이 음악을 할 거라고 생각했던 녀석.

‘음악으로는 먹고 살기 어려울 거’라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십수 년을 함께했던 키보드를 싸서
벽장 구석에 쳐박아 넣었던 날.

왜 내가 그리 서러웠던지.

그래도 십여 년 전 소품 몇 개가
여전히 나의 가슴에 남아
힘을 주곤 한단다.

“길(The way)”

‘우리 둘 다
길을 잘 가고 있는 거 맞지?’

http://thirdstream.tumblr.com/post/275851184

커서 뭐가 되고 싶어요?

Posted by on May 2, 2015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앞에 앉은 큰 조카에게 묻는다.

“뭐 하고 싶어요?”
“발레요.”
“발레가 그렇게 좋아요?”
“네. 노는 것보다 발레가 좋아요.”
“와아아아.”

이번에는 어머니가 여섯 살 조카에게 묻는다.

“OO이는 뭐 하고 싶어요?”
“술래잡기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지금 여기서 하고 싶은 일을 외치는 아이들이 내게 해준 이야기.

‘언제나 자유를 택하세요. 미루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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