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교사의 미래, 영어교육의 미래 – 두서없는 단상

Posted by on Jun 30, 2015 in 단상, 수업자료, 영어, 일상 | No Comments

 

. 한국 영어교육의 미래, 영어교사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 지금과 같이 모든 이들을 위한 일반적인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점차 감소할 것이다. 사교육과 입시제도의 힘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이게 여전히 비관적 전망 속에서 교사로서 살아가는 일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 지난 학기 초, 한 선생님이 “앞으로 얼마나 더 영어선생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는 걱정을 털어놓았다. 학생들의 영어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언어 관련 테크놀로지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십여 년 후 영어교사의 전문성은 어떤 모습일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도 힘겨울 때가 많은데 미래의 학생들에게 무얼 줄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한 학기 지켜본 결과 선생님께서는 꾸준히 공부하고 고민하는 분이셨다. ^^)

. 얼마 전 한 선생님은 “나 스스로를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영어를 통해 인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답글을 남겼다. 내가 이해(오해)한 바로는 영어를 가르침에 있어 문법과 같은 코드적 특성에 집중하기 보다 내용과 가치에 집중하려 한다는 뜻 같았다.

. 2018년부터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뀐다. 등급이 어떻게 조정될지 알 수는 없으나 현재의 난이도가 유지된다면 영어 1등급을 받기 비교적 쉬워질 것이다. 과연 대학들이 가만히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을 확률이 크다. 혹시라도 교육부가 대학당국을 견제한다면? 그 경우 기존의 학원들은 프로그램의 다양화를 꾀할 것이다. 수능 대비로만 학원을 운영하기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 나는 영어교육의 변화에 있어 핵심 키워드로 ‘문화(culture)’와 ‘정체성(identity)’을 꼽는다. 그간 영어교육이 문법과 어휘, 독해 위주였다면 앞으로의 영어교육은 다른 언어를 배움으로써 세계를 탐색하고 새로운 나를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문화는 ‘미국의 스포츠 문화’, ‘영국의 우수한 음식문화(?)’와 같이 협소한 의미가 아니라, 전세계의 문화적 흐름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세계어로서의 영어’의 관점에서 문화를 새롭게 바라봄으로써 영어가 미국의 것도, 영국의 것도 아니며, 그것을 사용하는 언중의 것이라는 사실을 체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정체성은 학습자드이 새로운 목소리(voice)를 갖게 되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영어를 사회적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보는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체의 발현을 가능케 하는 토양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영어학습자를 ‘영어를 배워 써먹는 사람’에서 ‘영어를 통해 새로운 목소리를 갖게 되는 사람’으로 재정의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새로운 언어로 노래를 부르고, 사랑을 고백하고, 슬픔을 이야기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협상을 해 보면서 새로운 목소리를 키워나가는 것, 이를 통해 이제껏 인생에서 맡아보지 못한 ‘배역’을 소화하고 창조해 보는 활동이 필요하다.

. 파커 파머가 이야기했듯 교사는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가르친다 (We teach who we are). 급변하는 교육환경에서 어떤 존재로 성장해야 할까. 정답은 없지만,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기 이전에 끊임없이 배우는 학습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오해 혹은 진실

Posted by on Jun 30, 2015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늘 오해하지만
그 마음에 닿길 원합니다.
당신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면
오해할 일도 없겠지요.

변명하려는 것도,
면죄부를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아주 가끔이라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오해는 언제나 오[誤]일 뿐
해[解]가 될 수 없다는 믿음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말이죠.

CONSCIOUSNESS AND THE SOCIAL BRAIN

Posted by on Jun 29, 2015 in 과학, 링크 | No Comments

프린스턴의 신경과학자 Michael Graziano는 의식이 시스템의 복잡도가 증가함에 따라 창발(emerge)한다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미신에 가까운 생각이라고 말한다. 일례로 인간의 의식이 뇌의 복잡성이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 ‘짠’하고 등장하는 것이라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복잡한 네트워크 — 인터넷 전체 –에는 왜 아직 의식이 없느냐고 묻는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의식을 네트워크의 복잡성과 창발에 의해 설명하려는 주류 이론을 반박하고, 대신 왜 우리 뇌가 다양한 정보들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며, 그 결과 의식(consciousness)이라고 부르는 상태를 상정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식의 본질에 대한 규명에 있어 뇌가 뇌 자신에게 특정한 상태(consciousness)를 부여(attribute)하는 메커니즘을 정보처리이론의 관점에서 밝혀내는 것이 네트워크의 복잡성과 창발에 기반을 둔 논의보다 더 생산적이라는 주장이다.

그의 최신작 <CONSCIOUSNESS AND THE SOCIAL BRAIN>에서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로 “Attention Schema Theory”를 주장한다. 이에 대한 설명은 아래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http://www.princeton.edu/~graziano/research.html

ambivalence

Posted by on Jun 26, 2015 in 영어, 일상 | No Comments

ambivalence n.

Mixed feelings teachers have about a blank answer sheet, since it indicates their failure in teaching yet relieves them of a significant amount of grading labor. Yes, I’m feeling ambivalent now.

Revolution

Posted by on Jun 25, 2015 in 단상, 영어,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My definition of revolution: Engineering the social architecture for sharing to change, changing to share, and making this everyone’s habit.

질문 뒤집기

Posted by on Jun 25, 2015 in 강의노트, 단상, 영어 | No Comments

“우리에게 영어란 무엇인가”를 뒤집어 “영어에게 우리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이땅의 영어교육은 완전히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물론 두 질문 모두 밥먹고 사는 데 별 도움이 안된다는 점에서는 거기서 거기지만.

방법론으로서의 글쓰기

쓰기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으니 쓸데 없는 이야기 하나 더.

“(연구)방법으로서의 쓰기(writing as method)”라는 말이 있다. 좀 있어 보이려는 수사적 표현일 수도 있지만, 글쓰기를 통해 생각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는 과정이 연구의 핵심 방법론을 이룬다는 실질적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문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만 줄창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많은 연구자들 또한 글쓰기를 주요 일과로 삼는다. 특히 인문사회과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글쓰기를 피해갈 도리가 없다.

문제는 이런 ‘방법으로서의 글쓰기’를 배우는 시기가 너무 늦다는 데 있다. 글쓰기를 싫어하지 않았지만 학술적인 글쓰기는 언제나 과제와 연결된, 그래서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해치우게 되는 ‘일’이었다. 석사과정, 아니 박사 과정 중반까지 학문적인 글쓰기를 숙제와 등치시키는 우를 범했다. 결국 학위논문을 작성하면서 방법으로서의 글쓰기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하찮은 쪽글이라도 꾸준히 써내고 있다. 이제 글쓰기는 과제가 아니라 가장 선호하는 사고방식, 혹은 연구 모드(mode)가 되었다.

학생들은 내가 범한 우를 다시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구자에게 글쓰기는 과제가 아니라 생각의 방식이고 주요한 연구 방법론이다. 이거 참 전형적인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 식의 조언이지만, 공부를 업으로 할 사람이라면 깊이 생각해 볼 주제라고 생각한다.

사회 속의 영어, 영어 속의 사회

Posted by on Jun 25, 2015 in 강의노트, 말에 관하여, 영어 | No Comments

대학원생들의 글을 묶어 출판하고 싶었다. 내가 책의 방향을 제안하고, 학생들은 챕터를 나누어 쓰는 식이다. 두 학기 이같은 모델의 가능성을 실험해 보았고, ‘가능하지만 불가능에 가깝다’는 싱거운 결론을 내렸다. 학생들의 아이디어나 글의 내용은 함께 상의하면서 고치면 된다. 그런데 각자의 글쓰기 스타일은 천차만별이다. (‘스타일’이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잘 쓴 글과 못 쓴 글이 섞여있다는 게 좀더 정확한 묘사일지 모르겠다.)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학술지 게재라는 방식 이외에 다른 출구를 찾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고, 내가 아주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내 글도 제대로 못 쓰고 있는 주제에 할 생각은 아닌가 싶지만 생각도 내맘대도 못하나. 펴내고 싶었던 책의 가제는 <사회 속의 영어, 영어 속의 사회>다.

피드백은 지시가 아니라 대화

Posted by on Jun 23, 2015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아내가 피드백의 원칙을 한 마디로 잘라 말한다.

“모든 피드백에는 이유가 있어야 해. ‘왜’가 중요하다구.”
“(끄덕끄덕)”

(내 멋대로 해석) 피드백을 줄 때는 왜 그런 피드백을 주려 하는지 자신부터 설득할 수 있어야 하고, 피드백 내용을 상대에게 정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피드백을 따랐을 경우 기대효과를 명쾌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피드백 자체의 내용만큼이나 맥락과 의도의 전달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과학적 방법론의 ‘불균등 분배’

Posted by on Jun 23, 2015 in 과학, 단상, 일상 | No Comments

성에 차지 않는 연구에 대해 “왜 이렇게 해상도 낮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라고 호통치는 과학자들은 많지만, 해상도 높은 연구를 하기 위한 자본과 기술이 불균등하게 분배되는 데 대해 울분을 떠뜨리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연구방법의 엄밀성은 분명 논쟁의 대상이지만, 논쟁의 지반이 결코 평평하지 않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과학적 방법론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기술은 발전해야 한다. 그러나 독점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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