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쓰기 1강 대충 복기

(수업 목표 / 강의계획 / 과제 / 평가 기준 설명 후)

1. 수영은 수영을 함으로써만 배울 수 있다. 운전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글쓰기를 생각만으로, 개념만으로 배우려 하는 것은 연애를 글로 배우려는 태도와 매우 흡사하다. 연애를 글로 배운 사람은 연애를 한 것인가? 아마도 아닐 거다.

2. 한국어로 글쓰는 걸 싫어하는 한국사람이 영어로 글쓰기를 좋아할 수가 없다. 적어도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과 주변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 한국어 쓰기를 전혀 하지 않는데 영어 쓰기를 해야 할 이유도 없다. 수업 과제가 아니라면 말이다.

3. 여기 계신 분들 영어를 잘하시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다음 두 질문을 던져보라.

(1) “여태까지 한국어로 쓴 게 얼마나 될까?”
(2) “여태까지 영어로 쓴 게 얼마나 될까?”

4. 두 가지를 비교해 보라. 그러면 대부분 다음과 같은 식이 도출된다.

영어글쓰기 총량 / 한국어 글쓰기 총량 = 0에 수렴

5. 자신이 쓴 한국어 기말 보고서에 만족하는가? (다들 절래절래)
그렇다면 4번 등식에 비추어 볼 때 영어 글쓰기가 단숨에 향상되길 바랄 수 있나? 아마도 없을 것이다.

6. 겁을 먹자는 게 아니다. 난 겁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사실 영어로도 글을 잘 쓸 수가 있다.

7.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영어’, 더 정확히는 ‘영어의 정확성’, ‘정답’을 추구하는 태도이다. 태어나서 한국어 유창하게 하는 아이 봤나? 한국어 기초를 완성하는 데도 4-5년이 걸린다. 쓰기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거기서 또 수 년의 학습을 거쳐야 한다. 사실 수십 년간 글을 써온 작가도 자신의 글을 고치고 또 고친다.

8. 그러니까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이런 것이다.

“틀리지 않기 위해 쓰지 말고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쓰자.”

9. Six word memoir 라는 게 있다. 헤밍웨이가 썼다고 전설처럼 전해지는 (즉,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6단어 비망록을 보자.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무슨 뜻인가? 아기 신발을 파는데 한 번도 신은 적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 어떤 사연이 있을까? (토론)

10. 처음부터 거창한 글을 쓰려고 하지 말자. 그저 우리 이야기를 해보자. 다음 시간에 자신의 6-word memoir를 가져오길 바란다. 각자의 memoir를 발표하고 거기에 담긴 사연을 이야기해 보자. 절대로 이 수업에 대해 쓰지 말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쓰라.

11. 이 수업은 쓰기에 ‘관한’ 수업이 아니다. 쓰는 수업이다. 나는 여러분들이 써내려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여기 있다.

기억하자. 쓰기는 쓰기를 통해서만 발전시킬 수 있다.
무조건 쓰라는 게 아니다. 어떻게 써야 할지 한 학기 동안 같이 고민해 보자.

요약

Posted by on Aug 31, 2015 in 과학, 단상, 일상 | No Comments

모든 사회적인 것은 역사적인 것이다.
모든 역사적인 것은 사회적인 것이다.

모든 사회적인 것은 심리적인 것이다.
모든 심리적인 것은 사회적인 것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립적인 언어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이론이 실천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이론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겐
당신들과
일상 밖에 없다.

<요약> 2015.8.31.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쓰기’를 실천한 사람

Posted by on Aug 31, 2015 in 링크, 영어로 글쓰기, 일상 | No Comments

이제는 유명을 달리하신 올리버 색스 선생의 첫 책 <편두통(Migraine)>은 단 9일만에 쓰여졌다고 합니다. 아래 저자의 말을 보시죠. 

“My firstborn, written in a burst (nine days!) in 1967, stimulated in part by working in a migraine clinic and in part by a wonderful book (Liveing’s On Megrim) written a century earlier.”

http://www.oliversacks.com/books-by-oliver-sacks/migraine/

그런데 단 9일만에 책을 써내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 뒤에는 사실 놀라운, 아니 무섭기까지 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는 글막힘(Writer’s block) 때문에 한참을 고생하다가 더 이상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했다는군요. 

‘이 책을 10일 안에 쓴다. 다 못쓰면 목숨을 끊는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겁을 주자 자신 속에서 파편화된 아이디어를 묶어주는 엔진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속도가 붙어 순식간에 책을 완성할 수 있었죠. 그에게는 “Deadline”이 결코 비유적 표현이 아니었던 겁니다. 

더 관심이 있는 분은 아래 Radio Lab 에피소드를 들어보시면 되겠습니다. (영문)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http://www.radiolab.org/story/117294-me-myself-and-muse/

교사가 되는 데 있어 자신의 약점과 강점

Posted by on Aug 31, 2015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 No Comments

학생들이 교사가 되는 데 있어 약점으로 꼽은 것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1. 영어 실력에 대한 언급: 문법, 어휘, 말하기 등의 영역이 약하다.2. 끈기가 없고 싫증을 잘 낸다. 3. 신체적 특성: 키가 작다. 목소리가 작다. 나이가 많다. 성대가 약하다. 몸이 약하다.4. 의지와 동기의 문제: 교사가 반드시 되어야겠다는 의미나 동기가 부족하다. 5. 수업에서 조금이라고 흐트러지는 모습을 용납하지 못해서 수업 분위기가 나빠지는 경우가 있다.6. 시간 활용 능력이 부족하다.7. 설명을 잘 못한다.8. 한 번 마음에 안들면 끝까지 싫어한다.9. 아이들을 진실한 사랑으로 대하기 힘들다.10. 화나면 얼굴에 다 드러난다.11. 발표시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12. 카리스마가 없다.13. 수능유형과 교육과정이 계속해서 바뀌는데 이에 바로 바로 대응할 자신이 좀 없다.14. 재미만을 추구할 경우가 있다.15. 지나친 속성 강의로 학생들의 혼이 빠질 가능성이 있다. (ㅋㅋㅋ)16. 컨디션에 따라 수업의 질이 현저하게 달라진다.17. 판서를 못한다. 악필이다. 18. 학생 평가시 세세한 부분에 지나치게 민감하다.19. 수업에 대한 욕심이 과하다. 20. 수업을 시간에 정확히 맞춰 끝내질 못한다.21. 내성적인 학생들을 대하는 게 힘들다.22. 내 기준으로 아이들을 보는 편이다.23. 너무 쉬운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지도하기 힘들다.24. 영어보다 한국어가 좋다.25. 자존심(이 세다.)

다음 시간에는 이런 약점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에 대해 토론을 벌여볼 생각이다.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기대가 된다. :)

학생들은 어떤 면을 “예비교사로서 스스로의 장점”으로 파악하고 있을까? 첫 수업 시간에 간단히 SWOT 분석을 해본 결과는 이렇다.

1. 지루하지 않게 수업을 이끌어 갈 수 있다.2. 학생들에 대한 인내심 – 여러 번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에 익숙하다. 3. 발표력이 좋다. 전달을 잘 하는 편이다.4. 대화 중에 학생들의 미묘한 감정을 잘 캐치한다. 5. 내용을 구조화하고 조직하는 데 소질이 있다. 6. 매체나 제스쳐 등을 통해 학생들의 주의 집중을 유도할 수 있다. 7.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비유나 어휘를 선택하여 쉽게 설명한다.8. 어려운 요소들을 미리 파악하고 그에 집중하여 수업을 설계한다.9. 전달력이 좋은 발성/목소리를 갖고 있다.10. 학생들을 각별한 애정을 갖고 대한다. (음성지원이 안되어서 아쉽네요. ㅎ)11. 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편이다. 12. 눈을 바라보고 소통하는 데 자신이 있다. 13. 시간 관념이 확실해서 주어진 시간 안에 원하는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14. 이전의 방법론에서 벗어나 다양한 교수법을 시도한다.15. 학생이나 수업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16. 교실을 사회로 생각할 때 두루 두루 원만한 성격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다.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 하나 코멘트를 하면서 “이 친구들에게 배울 게 참 많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삶에 대한 긍정적인 에너지가 묻어나는 이야기들. 세상은 진짜 팍팍하지만 여전히 가르치고 배우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한다.

2014.8.30.

 

키에르케고르 단상

Posted by on Aug 30, 2015 in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Kierkegaard was by far the most profound thinker of the last century. Kierkegaard was a saint. – Ludwig Wittgenstein

“중요한 것은 나에게 진리인 진리를 찾는 것, 나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생각을 발견하는 것이다.” (The thing is to find a truth which is true for me, to find the idea for which I can live and die.) — 쇠렌 키르케고르 , 《일기》(1835년 8월 1일)

“덴마크에서 오직 죽은 사람만이 상황을 지배한다. 부도덕함, 질투, 뒷담화, 평범함은 모든 최고의 공간에 존재한다. 지금 내가 죽는다면, 나의 삶이 남긴 결과는 비범한 것이 될 것이다. 일기들에서 부주의하게 간단히 몇 자 적어둔 많은 것이, 매우 큰 중요성을 갖게 될 것이고, 엄청난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와 화해하게 될 것이고, 나를 인정할 수도 있고 내가 올바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쇠렌 키르케고르 , 《일기》[10] (1849년 12월)

키에르케고르, 보면 볼수록 신비로운 사람이다. 그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지만 언젠가는 꼭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래는 한글 위키백과에서 가져온 이야기들이다.

1. 키에르케고르는 많은 작품을 익명으로 남겼으며, 그가 익명으로 쓴 작품을 비판하는 또 다른 익명의 작품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2.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죄와 아버지로부터 자신에 이르는 죄와의 관계를 보아 왔기 때문에 키르케고르는 여러 작품에 그 경험을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키르케고르의 아버지는 때때로 종교적인 우울증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키르케고르와의 관계는 상당히 가까운 사이이었다. 키르케고르는 그의 아버지와 함께 놀면서 상상력을 키워 나갔다. 키르케고르의 아버지는 82세의 나이로 1838년 8월 9일에 사망하였다. 그는 죽기 전에, 쇠렌 키르케고르에게 개신교 목사가 될 것이냐고 물었다. 쇠렌은 아버지의 종교적인 경험과 삶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아버지의 바람에 충실히 따라야 할 의무감을 느꼈다. 이틀이 지나고, 8월 11일 키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의 아버지는 수요일에 돌아가셨다. 나는 정말로 그분이 몇 해라도 좀 더 오래 살아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리고 나는 그분의 죽음이 그분이 나를 사랑해서 나를 위해 바치는 최후의 희생제사인 듯이 지켜보았다. …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은 내가 조용히 무엇인가로 변화하게 하기 위해서 나를 위해 죽었을 것이다. 나는 그분에게서 모든 것을 물려받았고, 나는 그분의 모든 것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 합쳐진 존재이고, 나는 그를 쏙 빼닮아 약간 변형된 그의 초상화처럼 보인다. … 나에게 소원이 하나 있다면, 내가 신중하게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으로부터 그의 기억을 안전하게 숨겨서 보호하는 일이다.”

3. 그는 일기장에 (이후 파혼에 이르게 되는) 올젠을 향한 사랑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

“그대, 가슴 한복판에 있는 나의 요새에 깊숙이 숨겨둔 내 마음을 장악한 주권자, 내 생각의 충만함, 그곳 … 알 수 없는 신성! 오, 내가 시인의 이야기를 믿을 수 있을까, 누군가 처음 사랑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그는 그녀를 오래 전에 본 적이 있었다고 상상하리라, 모든 기억과 같은 모든 사랑은 기억이다, 그 사랑은 한 사람에게 그 자체로 충분히 예언들과 같은 힘을 지닌다. … 그대는 나에게 그대와 같은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내가 모든 소녀의 아름다움을 소유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나는 나의 텅 빈 영혼을 채울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온 세계를 떠돌아다녀야만 했다. 내 존재 전체가 지니고 있는 깊은 신비가 가리키는, 그곳을 찾아 다녔다. 그런데 그다음 순간에 그대가 나에게로 왔다. 나의 영혼은 가득 찼고, 그것은 너무도 강력해서 나는 내 자신을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켰고, 나는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낀다.”

— 쇠렌 키르케고르 , 《일기》(2월 2일 1839년)

4. 키르케고르가 쓴 책의 절반가량이, 그가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나타내기 위해 창조한 여러 익명 인물의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이것은 키르케고르의 간접적 의사전달 방식을 보여 준다.

“저자로서 나의 저서에 대한 관점”과 같이, 그의 책과 일기 중 여러 부분에서, 키르케고르는 그의 저서가 체계적인 구조를 갖춘 철학적 체계로 취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런 식으로 글을 썼다.

“익명의 저서들에서, 내 것은 단 하나의 단어도 없다. 나는 마치 제삼자의 입장인 것처럼 그 저서들에서 개인적인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고, 그들의 의미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고, 독자로서 읽었을 뿐, 익명 저자들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사적 관계조차 맺지 않았다.”

— 쇠렌 키르케고르, 《관점》

키르케고르가 간접적인 의사전달 방식을 사용한 이유는, 자신이 쓴 글이 어떤 관점을 드러내고 있는지 간에, 그것을 독자가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독자가 그의 삶에 어떤 부분이 글에 반영되었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글의 표면적인 의미만 간단히 읽어내기를 원했다. 키르케고르는 또한 그의 독자가 그의 사상을 권위적인 체계로 여기지 않기를 원했고, 그런 식으로 신봉하기보다는 차라리 독자 자신의 해석으로 자신의 글을 읽어 내려가는 것이 낫다고 보았다.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C%87%A0%EB%A0%8C_%ED%82%A4%EB%A5%B4%EC%BC%80%EA%B3%A0%EB%A5%B4

D-1

Posted by on Aug 30, 2015 in 영어, 영어로 글쓰기, 일상 | No Comments

I have not been diligent enough to declare “I’m fully ready for the new semester,” but I am aware that I am okay enough to survive it. I also know that this throbbing beginning-of-semester anxiety will instantly evaporate at the busy hum of students down the corridor. I will smile at them and most of them will smile back at me, at least until ‘all-important,’ ‘life-determining’ test scores are given to them. I may sometimes feel dizzy after a three-hour long, nonstop lecture, yet will heartily welcome a few more questions from passionate, curious minds. I am ready to learn with and from my students, discuss with future teachers what Parker Palmer meant when he said, “we teach who we are,” and, most importantly, how to collaborate to create our life stories that do not exclude, discriminate, dismiss, deceive, essentialize, and trivialize. All the way I will try not to forget Freire’s words about the importance of dialogue and faith.

“Dialogue is the only way, not only in the valid questions of the political order, but in all the expressions of our being. Only by virtue of faith, however, does dialogue have power and meaning: by faith in man and his possibilities, by the faith that I can only become truly myself when other men also become themselves.”

가라타니 코오진 (탐구 1): 비트겐슈타인, 키에르케고르, 예수, 그리고 타자

Posted by on Aug 29, 2015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예수는 신이나 초월자나 물자체라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예수는 확실히 눈에 보이고 실재하는, 오히려 볼품없이 왜소한 타자이며 그리고 우리로서는 그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그러한 타자이다. (p. 156)

다만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교 교인이라는 ‘그리스도교 세계’에 그리스도가 부재하다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교 교인인데도 누구 하나 그리스도교 교인인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의 과제는 ‘그리스도교를 그리스도교 세계에 도입하는’ 일이다. 그 경우 그리스도교란 *그리스도*, 바꿔 말해 *타자*이며 ‘그리스도교 세계’란 타자를 결여한 사고 일반을 의미한다. (p.158)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교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도입하는 것이다. 사실상 키에르케고르가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타자성이다. 우리 자신의 공감이나 가정이 미치지 않는, 다시 말해 우리의 언어 게임에 속하지 않는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인 것이다. (p. 158)

그리스도가 신인 동시에 인간이라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그가 인간도 아니며 신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키에르케고르가 우리에게 지적하려고 한 것은 바로 그러한 타자이다. (p. 159)

비트겐슈타인에게서 타자란 ‘우리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즉 언어 게임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은 ‘직접적인 전달'(키에르케고르)이 아니라 ‘직접적인 전달’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 자체의 전달(규칙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차원에서 생각되어야 한다. ‘직접적 전달’은 언어 게임을 공유하는 사람 사이에서 가능하다. 또한 그 경우에도 그러한 전달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규칙,코드(초월자)를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언어 게임이 공유된 다음의 *사후적인* 설명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을 기초지울 수는 없다. 물론 타자(언어 게임을 달리하는 사람)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커뮤니케이션이 합리적으로는 불가능하고 기초지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랄만하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이 역설적인 사실성을 말살하고 난 뒤에야 이루어지는 합리적인 기초지움이나 회의론이 바로 바로 케에르케고르적으로 말해 ‘그리스도의 말살’인 것이다. (p. 160)

‘말하다-듣다’라는 관계가 성립하려면 그 규칙이 가르쳐지지 않으면 안된다. 가르친다는 것은 규칙을 가르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규칙을 알면서도 규칙 자체는 ‘알지’ 못한다. 예수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자신이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동시에 ‘알 수 없는’ 것이다. 예수는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복음서에서 인상적인 것은 ‘가르치는’ 사람의 우위성이 아니라 무기력함이다. (p. 161)

다시 말해 키에르케고르는 타자와의 관계=커뮤니케이션의 기저에 합리적인 토대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론을 생각할 때는 그러한 ‘심연과 비약’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는 ‘철학적 언어’로부터 ‘일상 언어’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회귀하는 곳은 다름 아니라 철학적(합리적)으로 불가능함에도 일상적으로는(실제적으로는) 가능하다고 하는 놀랄만한 *사실성*이다. 바로 거기에 ‘언어 게임’이 존재한다. 언어 게임은 논리적인 파라독스가 아니라 살아 있는 파라독스이다. (p. 163)

– 가라타니 코오진. (1998). 탐구1. 새물결.

‘노블레스 오블리주’ 유감

Posted by on Aug 28, 2015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노블레스 오블리주(프랑스어: Noblesse oblige) (직역) 귀족 혹은 고귀한 사람들의 의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특정한 시기 전략적 수사로서 유효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단어 자체가 사회적 계층구분(노블한 계층 vs. 그렇지 않은 계층)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실천을 요구받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노블’하기 때문에 더 무거운 사회경제적, 윤리적 책무를 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종종 ‘노블’한 사람들은 지극히 당연한 의무를 수행함으로써 자신의 ‘노블함’을 강화하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까지 획득하게 된다. 진정 아이러니한 것은 한국사회에서 ‘노블’하다고 불리는 계층은 대개 노블함과 완전히 반대의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글쓰기 과제: 만약 새로운 사회적 실험을 고안한다면?

Posted by on Aug 28, 2015 in 링크,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학생들에게 이 비디오를 보여주고 나서 다음 과제를 내주고 싶네요.

1. 한국/대학/지역 사회에 고질적인 병폐 하나를 생각해 보세요.
2. 그 병폐를 해결하기 위한 창의적인 사회적 실험(social experiment)를 고안해 보세요.
3. 이 실험이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 예상해 보세요. 

https://youtu.be/1nAfWfF4TjM

Report Demonstrates Need for Improved Reproducibility in Psychological Science

Posted by on Aug 28, 2015 in 과학, 링크, 수업자료 | No Comments

“The replication teams’ findings were striking: Overall, 97% of the original studies reported statistically significant p values below .05, but only 36% of the replication studies found statistically significant results (p < .05). Moreover, whereas the effect sizes in the original studies were moderate, on average — Pearson r = .40 — in the replications, the sizes of the effects were r = .20 — half as large as the originals.”

“I am more likely to get published for a positive result than a negative, with a novel result than a registered replication, and with a very clean story, as opposed to one with lots of loose ends,” he stated at a recent presentation at the National Science Foundation. “Because we’re incentivized to make it a novel, positive, clean story, then, there’s lots of reasons for me and for my individual success to find ways to make it as beautiful as possible, even if that makes it look a lot different from what the actual evidence is.”

http://www.psychologicalscience.org/index.php/publications/observer/obsonline/report-demonstrates-need-for-improved-reproducibility-in-psychological-science.html

Lo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