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자신을 가르칩니다

Posted by on Aug 28, 2015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가르칩니다.” We teach who we are. – Parker J. Palmer

이 말을 조금씩 깨달아간다. 어떤 선생도 지식만을 가르칠 수는 없다. 교사가 학생들과 나누는 교과에 대한 관점, 지식과 삶의 관계에 대한 태도, 앎의 역사에 대한 경외, 공부로 변화된 모습,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 등은 교육과정에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공식적 교육과정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교사는 자연스럽게 또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학생들은 선생이 교과서를 읽을 때, 설명을 할 때, 예시를 들고 문제를 풀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고 있다. 어떤 리듬으로 앎과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지 듣고 있다. 가르치는 모습과 행동하는 모습 사이의 일치 혹은 괴리를 직관적으로 알아본다. 아이들은 선생의 모습 자신을 배운다. 물론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매서운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는 나 자신을 가르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선생의 즐거움이자 괴로움이다.

학문과 실천의 실시간 통합

Posted by on Aug 27, 2015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욕설에 관한 학술서를 읽고 있는데 밖에서 그야말로 쌍욕을 하며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눈으로 들어온 이론이 귀로 들어온 실제를 만나 뇌에서 실시간으로 통합되고 있다. 내가 생각했던 학문과 실천의 통합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먼산)

주어 없는 문장, 주체 없는 정치

Posted by on Aug 27, 2015 in 링크,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선거관리 주무부처 수장인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만찬 건배사로 “총선 필승!”을 외친 것으로 알려져…” — “이에 대해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일반 유권자를 대상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한 것도 아니고, 새누리당 의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덕담 수준의 건배를 한 것”이라며 “엄밀하게는 (총선 승리 주체가) 새누리당이라는 구체적인 명칭도 쓰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 논리를 생활에 적용해 보자.

(아이가 밥 먹을 때가 되었다)
아이: “배고파! “배고파! 앙앙앙.”
아빠: “음… 주어가 없군. 누가 배고프다는 건지 모르겠네.”
아이: (‘주어’라는 말을 못알아듣고)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유도 경기 중 심판이 한쪽 선수를 바라본 채로 ‘화이팅!’을 크게 외쳤다. 다른 선수의 항의)
선수1: 아니, 심판이 어디다 대고 ‘화이팅!’을 외치시는 겁니까? 이래서 공정한 시합이 되겠습니까?
심판: 아, 스포츠 정신에 입각한 덕담이었는데.
선수2: 맞습니다. 심판은 저를 보고 있었지만 사실 모두에게 ‘화이팅’을 외치신 거예요. 진짜 덕이 되는 행동이죠.

이런 나라에 살고 있구나…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총선 필승!’을 외쳤는데 주체를 명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논리에 따르면, “한국어는 주어가 무지하게 자주 생략되지만, 대화자들이 컨텍스트의 정보를 가져옴으로써 오해를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은 이제 그만둬야겠다.

기사 출처: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06140.html

이런 표현, 짜증을 유발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Posted by on Aug 27, 2015 in 수업자료, 영어,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Linkedin에 “직장에서 듣게 되는 짜증나는 용어 30선”이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아래 링크) 수많은 답글이 달리고 있군요. 한 번 보시면서 너무 자주 쓰여 짜증이 날 지경인 용어들을 살펴보시죠. (물론 ‘짜증’은 상대적이며 주관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할 듯합니다.)

“For me, these are my top 30 most irritating jargon phrases and words used at work:

going forward 전진하다, 진행되다, 앞으로 나가다

Drill-down 더 파다, 더 알아보다

End of play 게임 끝, 상황 끝

Touch base 연락하다, 간단히 상의하다

It’s on my radar 이건 뭐 말 그대로… 레이다상에 있다.

No brainer 금방 알 수 있는 것,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 바로 나오는 결론

Best of breed 개와 같은 동물 중 최상급. 승자. 사람에게 비유적으로 쓰일 수 있을 듯.

Low hanging fruit 하기 쉬운 것 (따기 쉬우니까)

Reach out 연락하다, 손을 뻗다 (Reach out and … 이런 식으로 많이 쓰는 듯)

Dive deeper더 깊이 내려가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것 저것 더 파보다, 리스크를 감수하다 그런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을 듯.

Think outside the box 판에박힌 생각에서 벗어나다. 창의적으로 생각하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말을 하는 사람이 판에 박힌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

Positive momentum 말 그대로 긍정적인 모멘텀, 뭔가 탄력을 얻을 수 있는 사건

On my plate 자기 몫. ‘have too much on my plate”하면 할 일이 넘 많다.

At the end of the day 결국, 이런 저런 상황이 다 지나면. “하루의 마지막에”라는 의미에서 나왔지만, 사실은 하루를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음. 일, 프로젝트, 상황 등을 빗대어 말함

Run the numbers ‘계산을 돌려 보면’ 정도의 의미. 예전에는 주판알 튕겨보면… 그런 표현도 썼었던 것으로 기억.

Touch points 연락 지점, contact point 와 비슷한데 나에게는 contact 보다는 좀더 informal한 느낌을 줌.

Keep your eye on the ball 사태를 주시하다. 공 어디로 날아가는 지 잘 보는 것이므로.

Back to the drawing board 처음으로 돌아가다. 기획 단계로 돌아가다.

Get the ball rolling 일을 진행되게 하다. 공 멈춤 = 프로젝트 엎어짐 정도의 의미인 듯.

Bang for your buck 돈값을 한달까… bang은 뭔가 임팩트가 있음. buck 은 dollar 를 의미. 즉 쓴 돈에 대한 가치, 보상 등의 의미.

Close the deal 거래를 성사시키다. 협상을 마치고 계약하다.

When the rubber hits the road 실제 일이 효력을 발휘하는 시점, 뭔가 일어나는 때. (자가용 타고 나가면 타이어가 땅에 닿는 것)

Shift paradigm 우리 말로도 ‘패러다임’은 많이 쓰니까… 패러다임을 바꾸다.

Move the needle 계량기의 바늘을 움직이는 거니까, 가시적인 실적을 내다. 상황에 따라서 통계치를 눈에 보이게 바꾸다, 판도를 바꾸다.

Game-changing (이건 제가 싫어하는 말이군요)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플레이어 하나 하나가 아닌 판 전체를 바꾸어버리는.

Move the goal post 불공정한 룰을 만들다. 상황에 따라서 제멋대로 규칙을 바꾸거나 해석하다.

Value added 말 그대로 부가가치. 새로 만들어진 가치.

Win-win 윈윈

Across the piece 대부분, 모두. ‘throughout’, ‘including everything’ 정도의 의미.

All hands on deck 사람들 모두가 도와야 한다. 다들 거들어야 한다.

https://www.linkedin.com/pulse/20130826001502-64875646-stop-using-these-30-phrases-at-work?trk=tod-home-art-list-large_0

교사양성과 교육개혁

Posted by on Aug 27, 2015 in 강의노트, 링크 | No Comments

“경쟁없는 학교가 최고의 시험성적을 거두고 있다”와 같은 슬로건으로 표현되는 핀란드 교육의 성공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 “뻥튀기”일 지도 모른다. 해외의 ‘성공’ 사례가 실제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게 포장되는 상황은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오바마가 한국의 교육제도를 추켜세우는 장면은 꽤나 불편하다.

하지만 핀란드 교육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체험기에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는 요인이 있다. 바로 최고 수준의 교사들이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나 자신의 경험을 뒤돌아 봐도 멋진 (혹은 그 반대의) 선생님 하나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그만큼 교사는 중요하다.

어떻게 좋은 교사들을 길러낼 수 있을까? 아래 기사에서 소개된 책 <THE SMARTEST KIDS IN THE WORLD>의 저자 Amanda Ripley는 비법이 “엄청나게 복잡한 평가 제도”도 아니고, “교사창출가치 데이터 분석 value-added data analysis”도 아니라고 말한다. (후자는 미국에서 사용하는 평가 제도 중 하나로, 단순화시켜 말하면 특정 기간에 교사가 학생들의 성적을 얼마나 올렸는가를 통계적으로 산출하는 방법이다.)

진짜 답은 교사 선발 및 양성 과정의 실질적 강화에 있다. 교사가 되기 어렵게 하고, 대신 교사가 되고 나면 대우를 잘 해주는 것이다. 단순히 금전적인 보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가 직업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이런 분석에 동의한다.

89년도 종합대책안 발표 이후 전개된 90년도 임용고사 반대 투쟁, 90년대 초중반 사범대의 목적형 양성체계 및 5-6년 제로의 전환 논의에서 배워야 할 부분이 여기 있다. 학점으로 서열을 매기고, 임용고사를 통한 경쟁을 시킨다고 해서 교사의 질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예비교사의 선발과 양성 과정 강화 및 다양한 보상체계 정비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교사들을 만나길 원한다. 핀란드는 약 20년 정도에 걸쳐 이 목표에 근접한 성과를 냈다. 대한민국도 지금 시작해야 20년 후 그런 결실을 볼 수 있다. 교육개혁의 첫 단추는 입시와 학교교육 정책의 변화겠지만, 실질적 변화는 교사집단의 변화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글은 읽을 수록 실망스럽다. 그저 한 미국인이 한국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을 접한다고 생각하시면서 읽으면 될 듯하다.)

“This is the first hint of how Finland does it: rather than “trying to reverse engineer a high-performance teaching culture through dazzlingly complex performance evaluations and value-added data analysis,” as we do, they ensure high-quality teaching from the beginning, allowing only top students to enroll in teacher-training programs, which are themselves far more demanding than such programs in America. A virtuous cycle is thus initiated: better-prepared, better-trained teachers can be given more autonomy, leading to more satisfied teachers who are also more likely to stay on.”

http://www.nytimes.com/2013/08/25/books/review/amanda-ripleys-smartest-kids-in-the-world.html?pagewanted=2&_r=0&emc=eta1&pagewanted=all

소꼽놀이: 어떤 교훈

Posted by on Aug 26, 2015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소꿉놀이를 통해 본 여성에게 있어 동성 친구의 중요성

여자 아이: 결혼하자.
남자 아이: 그래. 결혼하자. (두분 모두 상당히 쿨하심)
여자 아이: 그래그래.

(얼마 후)
남자 아이: 엄마가 그러는데 우리 엄마랑 같이 살아야 된대.
여자 아이: 정말? 기다려 봐. 친구들이랑 얘기해 보고 말해줄게.

— 어른으로 따지면, 남성은 엄마에게 ‘명령’을 받고, 여성은 동성 친구에게 상의하는 상황. 결국 여성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결론. ㅎㅎㅎ

Why do we clap?

Posted by on Aug 26, 2015 in 과학, 링크,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It seems that some channels like VSauce can be used as an informal example for academic writing, especially for undergraduate students. Though different in its format from typical research papers and peppered with humor, it contains all the ingredients of scholarly argument: thesis, supporting details with credible sources, argument, counterargument, cross-reference, academic concepts, and situating one’s argument in broader social, technological contexts, etc. It actually achieves more than traditional medium with its versatile manipulation of audiovisual affordances. This kind of video can be the final assignment per se, or be included as a component of students’ writing portfolio.

Anyway, this episode is fun and informative, as usual. :)

세월호를 기억하며

Posted by on Aug 26, 2015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수많은 이들이 죽었어요. 뉴스를 열심히 봤는데 정확히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요. 배 안에서 고통스럽게 죽은 거 하나는 확실한데… 왜 아무도 구조해 주지 않았는지, 구조되었다는 거짓말은 왜 나왔는지, 배는 왜 그따위로 규정을 어기고도 출발했는지, 그냥 승무원들과 선장이 이상한 사람들이어서 그런 건지, 멀쩡히 전기가 들어오는데 CCTV는 왜 일제히 모두 꺼졌는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시간에 왜 아무 일 안하고 놓친 건지. 보고체계의 혼선은 왜 그렇게 잦았는지. 정부기관 내에서 과장과 조작이 왜 비일비재한 건지. 대통령의 ‘구명조끼’ 발언으로 봐서는 정부 발표처럼 보고를 제대로 받은 건지 의심도 되고. 사실 뭐 하나 확실한 게 없어요.

솔직히 다음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으니 이번 기회에 확실히 고치고 넘어가야 할 게 많아요. 예전 인명 참사 때 아픔을 겪으셨던 분들도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 한다 하고, 전국의 수많은 시민들이 문화제로, 서명으로, 집회로, 팽목항에서의 봉사로, 글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기도로 유가족들을 응원해 주시더라고요. 예술계, 언론계, 학계, 대학생, 중고생 등등 너나 할 것 없이 힘을 보태 주셨죠. 유가족이 원하는 기소권, 수사권 보장하는 특별법이 무리라고 하는 분들도 있던데, 엄청 많은 법학자들이랑 변호사들이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고 하더라고요. 350만이 넘는 사람들이 특별법 지지 서명을 했는데 대단한 숫자 아닌가요?

그런데 이런 거 백여 일 지나면 잊어버려야 되는 거라고 다 그러던데요? 아 ‘다’는 아니고 상당수 정치인들이요. 여당 일각에서는 ‘유가족에게 더 양보할 수 없다’는 말도 나왔다던데, 뭘 줬길래 더 양보할 수 없다고 하는 건지, 지금 상황에서 여당이 유가족에게 ‘양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적절한지도 모르겠어요. 대통령도 자기가 나설 일은 아니라고 하고, 여야는 자기들끼리 합의한 대로 하면 다 해결될 거라고 하고, 국민들도 곧 다 자연스럽게 잊을 것처럼 말하더라고요. 하긴 대통령이 유가족 뜻대로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도 많이들 잊었죠. 총리도 책임사퇴 한다더니 다시 돌아가서 일하고 있고, 해경 해체는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 같고. 유 아무개가 죽었을 때는 사건이 다 해결된 것처럼 언론에서 난리를 쳤죠.

요즘엔 시민들과 유가족들이 조용히 잊고 넘어가지 않으면 나라 전체가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봉착할 거라는 이야기도 자주 들리네요. 정치인들만 그러는 게 아니라 많은 언론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더군요. 특히 거대 언론사들이 이런 주장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근데 이런 생각 하면 한국전쟁도 잊고, 일제시대도 잊고, 친일반역행위도 잊고, 정권들의 비리도 다 잊어야죠. 다 잊고 희망찬 미래로 가야죠.

정말 화나는 건 엄정한 수사와 기소를 요구하는 유가족들에 대한 반감을 키워가는 개인들과 단체예요. 급기야 일부 사람들은 유가족의 사생활까지 파고들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어요. 하긴 국가기관이 유가족을 미행하고 감시해 왔죠. 휴… 형식적으로나마 헌법 위에 기초한 국가가 시민을 우습게 아는데, 개인의 감정과 이익에 충실한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을리가요… 그래서 유가족들의 아픔에 적극적으로 함께하는 분들 보면 깊은 존경과 감사를 느껴요. 그리고 죄송해요.

생각해 보면요. 잊을 게 따로 있고, 묻을 게 따로 있는 거 같아요. 자식이 왜 죽었는지 모르겠는데, 남들이 설명하는 건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되는데, 이후 이런 사고가 또 일어나면 이 지옥같은 시간이 다시 반복될텐데 어떻게 이걸 잊고 묻어요. 조상 한 분이 돌아가셔도 매년 기리잖아요. 키우던 강아지가 죽어도 잊히질 않잖아요. 의문의 의료사고로 한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그거 해결하기 위해 몇 년을 싸우는데…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물 속에서 수백 생명의 숨이 끊긴 일을 어떻게 잊어요. 잊으라고 윽박지르는 사람들은 이 고통 모를테니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해야 하는 건가요? 고통받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게 아니라 고통을 멈추라고 온갖 압력을 가하는 것이 치유라고 믿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라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유가족분들의 좌절과 슬픔, 분노와 억울함에 댈 수야 없겠지만 요즘 인생이 참 쓰게 느껴지네요. 아파하는 사람들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비극적이고 비상식적인 차이 때문에 말이죠. 유가족들이 서러움으로 노숙을 하고 단식농성을 하는 자리에 경찰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모습에서는 분노를 넘어선 실소까지 나오더군요. 이것이 수천만을 대표하는 한 국가 권력의 현현이란 말인가. 정녕 그런 것인가.

서양 속담에 “No pain, no gain.”이라는 말이 있죠. ‘수고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라는 뜻이라는데, 이미 권력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수고 없이, 아픔 없이, 자기 이익(gain)을 다 챙겨가는 것 같아요. 그들에게는 “No gain, only pain.”(내 이익을 챙기지 못하면 힘든 일만 남는다.)라는 격언이 더 잘 적용되는 것도 같구요. 그런 분들이니 상처받은 자들의 영혼보다는 정치적 안위가 훨씬 앞서는 거겠죠.

“고통 앞에 중립 없다”는 교황의 말씀을 곱씹어 봐요.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이 말은 “중립적이려 드는 사람은 고통을 모른다”, 아니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사람은 고통받는 사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뜻 같아요. 부끄러움이 몰려와요. ‘그런 너는 중립을 깨려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데?’라는 질문이 들리는 듯해서요.

그래도 중립적이어서 아픔을 모르는 삶 보다는, 약한 사람들과 같이하며 아픔을 나누는 삶이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아픔을 나누는 삶을 아름답다 느끼는 사회만이 이런 말도 안되는 상처를, 좌절을, 분노를 조금씩이라도 줄여갈 수 있다고 믿어요.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라지만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아요. 지금 손잡고 걷는 사람들이 정말 좋거든요. 진짜 사람냄새 나는 사람들이니까요. 진짜 사람들이요.

2014.8.26.

혼잣말과 인지발달의 관계에 대하여

사적 언어(private speech), 그리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한국어’: 혼잣말과 인지발달의 관계에 대하여

비고츠키와 그의 친구들이 관심을 가졌던 연구 주제 중에 ‘사적 언어(private speech)’가 있습니다. 사적 언어는 타인을 향한 발화 즉 사회적 언어(social speech)와 대치되는 개념입니다. 아동이 커가면서 혼잣말을 하는 경우, 예를 들어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중얼거리거나 순서가 있는 복잡한 과업을 해결하면서 자기 혼자 설명을 곁들이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성인의 관점에서 이런 ‘혼잣말’은 이상해 보입니다. 언어가 본질적으로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라면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줄기차게 한다는 건 비효율적이고 본질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피아제와 같은 발달심리학자는 사적 언어를 아직 성숙하지 못한 언어로 봅니다. 사적 언어의 사용을 (1) 사회적 언어를 전혀 습득하지 못한 상태를 보여주는 징후이자, (2) 인지적 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튀어나오는 알 수 없는 언어 사용으로 본 것입니다. 아이의 내면에 갇혀 아직 밖으로 터져나오지 못한 언어인 것이죠.

비고츠키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적 언어는 아동이 사회적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언어를 조금씩 받아들여 인지발달을 돕는 도구로 쓰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었죠. 그가 제시한 개념을 사용해서 이야기하자면, 사적 언어는 사회적 언어의 내면화(internalization) 과정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아동의 인지발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도구가 됩니다.

즉, 아이가 어떤 과업을 수행하면서 자신에게 말을 하는 건 실제로 자신의 행동을 제어(regulation)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줍니다. 이미 머리 속에서 100% 완성된 생각이 말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고 또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언어와 사고는 이렇게 서로 맞물리면서 과업 수행(행동)에 도움을 줍니다.실제로 조금 복잡한 과업을 아이들에게 주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하면 과업 수행에 심각한 영향을 받습니다. 이에 비해 조금 복잡한 과업이라도 스스로에게 차근 차근 말을 해가면서 풀어가면 금방 해결이 되기도 하죠. 말을 못하게 하면, 말만 못하는 게 아니라 생각의 과정 자체가 심각한 방해를 받는 것입니다.

언어와 생각이 짝이되어 ‘춤추는’ 경험이 누적되면서 말과 사고는 변증적으로 통합되어 갑니다. 언어는 단지 완성된 사고의 표현(expression)이 아니라, 사고를 구성하고 완성하는 도구–비고츠키의 용어로 보면 중재mediation–가 되는 것입니다. 사회적 언어가 내면의 언어로 변환되는 길목에 사적 언어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죠!

사적언어는 이렇게 아동기의 사고발달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지만, 성인의 발화에서도 종종 발견됩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한 학생이 프리젠테이션을 하다가 어떤 슬라이드를 보고 당황해서, “어 이거 아닌데, 이거 아니야…”라고 자기도 모르게 말을 하더군요. 프리젠테이션의 말투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말투였습니다. 또 줄곧 존대말을 사용하다가 갑자기 반말로 전환한 상황이었죠. 이 경우 “이게 아님”을 청중에게 전달하기 위한 의사소통적 기능이 분명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향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말이 튀어나온 거죠. 나중에 설명을 들으니 자기가 생각했던 슬라이드 한 장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더군요.

저 자신도 사적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화 도중에 틀린 말을 하면 ‘아 아니다’라고 말하며 정보를 수정하는 것입니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인데, 상대방을 향한 말이라기 보다는 저 자신의 인지적 활동을 모니터링하는 말에 가깝습니다.

인간은 예외 없이 사적 언어를 사용하며 성장하고, 이를 알게 모르게 인지하고 있죠. 그래서 제가 연배가 한참 높은 분과 이야기하다가 ‘아 이거 아니다’라고 ‘반말’을 쓴다 해서 얼굴을 붉히진 않습니다. “자네, 무례하구만. 어디서 반말을… ‘아 이거 아닙니다’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죠. (혹시 있다면 엄청나게 짜증이 날 듯하네요. ㅎㅎㅎ)

사적 언어가 사고를 제어하는 인지적 기능과 밀접한 관련을 갖기에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바이링궐의 언어 사용에서도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오늘 아침 한 친구분의 포스트에서 언급되었듯) 업무를 위해 100%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도 당황했을 때 한국말이 튀어나올 수 있고, 균형잡힌 영-한 바이링궐이라고 해도 아동기에 주로 한국어를 쓰고 자란 경우 감탄사가 한국어로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타인을 향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100% 영어를 쓰더라도 자신을 향한 말은 아동기의 주요한 언어가 튀어나오는 것이죠.

예전에 한 교수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분명 한국에서 대학교육까지 받은 친구가 말끝마다 “Ouch”를 연발하더랍니다. 한국인 친구들이랑 만나도 영어 사용을 멈추지 않았구요. 영어를 늘려야 된다는 일념 하에 고집을 피운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주변 친구들에게 “재수없는” 아이로 찍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궁금했습니다. ‘그 녀석, 엄청 놀라는 상황에서도 ‘Ouch’를 내뱉을까? 아닐 꺼 같은데?’

그래서 친구들은 계획을 세웁니다. 캄캄한 밤 모퉁이를 돌아서는 ‘Ouch’ 친구를 혼이 빠져나갈 만큼 놀래키는 거였죠.

Ouch 친구: (저벅 저벅 저벅)
친구들: (‘온다 온다 온다 준비’)
Ouch 친구: (모퉁이에 근접한다)
친구들: (모퉁이에서 튀어나오면서) “아아악ㄱㄱㄱ”
Ouch 친구: 아아… 아 깜짝이야.
친구들: “‘아 깜짝이야’래. ‘아 깜짝이야.’ ㅎㅎㅎ”

그림이 그려지시죠? :)

수학 문제 풀 때 스스로에게 말하는 분 안계신가요? 저는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저도 모르게 조금씩 혼잣말을 하게 되더군요. 옆에 사람이 없으면 소리를 내기도 하고요. 이 경우 머리 속에서 완성된 생각을 밖으로 내는 것이 아니라, 말을 통해 사고를 확인, 촉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변화된 생각은 문제 해결에 영향을 주고, 또 다른 ‘혼잣말’을 낳게 되죠. 이렇게 사고와 언어는 서로를 끌어주고 변화시키며 새로운 수준의 문제해결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혼잣말이 실은 인간의 사고 발달의 핵심적 기제를 보여주는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떨 때 혼잣말을 하시나요? :)

우아하게 나이드는 법

Posted by on Aug 26, 2015 in 링크, 수업자료, 영어 | No Comments

[함께 나누고 싶은 영상: 우아하게 나이 드는 법] 오늘 여러 분의 친구분들께서 공유해 주신 영상입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바로 아래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달해 주는 형식으로, 9살 아이가 8세 친구들에게, 16살 소년이 12세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보면 좋을 것 같아서 일일히 받아쓰기 한 후 발번역까지 했습니다. 영상에 나오는 메세지들이 따뜻하면서도 잔잔한 울림을 줍니다. 추천! :)

(하고 나니 힘드네요.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 건가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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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Aging Gracefully
우아하게 나이 드는 법에 대하여

Dear 6 year old
Training wheels are for babies. Just let go already.
(네발 자전거의) 보조바퀴는 애들이나 쓰는 거야. 애들 일은 그만두자고, 쫌.
Regards, a 7 year old

Dear 7 year old
No matter what anyone says, stay weird.
남들이 뭐라 하건 간에 계속 괴상한 아이로 살아!
Signed an 8 year old

Dear 8 year old
Find your babysitters’ weakness then use it against them.
유모의 약점을 찾아내. 그리고 그걸로 유모를 공략하는 거지.
Signed a 9 year old

Dear 9 year old
Don’t get involved with the “popular kids.” They are narcissistic capitalists that know nothing about politics.”
“인기 있는 애들”이랑 엮이지 마. 자아도취에다가 자본주의에 찌들어서 정치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른다구.
Signed a 12 year old

Dear 12 year old
Ask her to a dance. Just trust me on this one.
그녀에게 춤추러 가자고 해. 이건 그냥 한번 날 믿어 봐.
Signed a 16 year old

Dear 16 year old
Don’t let your mom throw away your Legos.
엄마가 레고 갖다 버리는 일은 막아야 돼.
Signed an 18 year old

Dear 18 year old
Go easy on the makeup. You’re not as ugly as you think.
화장 작작해.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못생기지 않았어.
Love a 19 year old

Dear 19 year old
Just because it’s an all you can eat buffet does not mean you need to eat all that you can.
음식이 무한정 나오는 뷔페에 갔다고 해서 꼭 배가 터질 때까지 먹어야 하는 건 아니야.
Signed a 20 year old

Dear 20 Year Old
Your parents have better interest rates than your credit cards.
부모님한테 돈 빌리는 게 신용카드 이자율보다는 싸게 먹혀.
Signed a 21 year old

Dear 21 year old
If he says he has a weekend home in the suburbs, he is married.
교외에 주말 별장이 있다고 말하는 남자가 있어? 유부남이야.
Signed a 24 year old

Dear 24 year old
That rust protection undercoating? It’s actually a great deal.
(차체 바닥에 하는) 부식 방지 언더코팅? 해보니 꽤 남는 장사야..
Signed a 25 year old

Dear 25 year old
Whatever you do, never order the salad from a truck stop.
뭘 하든 좋은데, 절대 푸드 트럭에서 샐러드는 주문하지 마.
Signed a 28 year old

Dear 28 year old
Backup your hard drive. Now!
하드 드라이브를 백업해. 당장!
Now, who even does that?
근데 누가 그런 짓을 하긴 하나?
Signed a 29 year old

Dear 29 year old
Getting laid off can be a blessing in disguise.
해고당하는 게 숨겨진 축복(전화위복과 비슷한 의미)일 수도 있어.
Signed a 30 year old

Dear 30 Year old
Being a starving artist only works if you actually make art.
배곯는 예술가로 사는 건 니가 진짜 예술작품을 만들고 있을 때만 괜찮은 일이야.
Signed 32 year old

Dear 32 year old
Always be kind to your family. You’ll need each other when things get tough.
가족에게 늘 친절하게 대해. 힘든 세월이 오면 서로가 필요하거든.
Signed a 34 year old

Dear 34 Year old
Stop panicking. Being a single mom is an incredible thing. I was twenty two. I had this little kid, named him Vladmir. He’s fourteen now. He makes me proud. Sorry.
쫄지마. 싱글맘이 되는 건 놀라운 일이야. 내가 스물 두 살 때 이 아이를 낳아서 이름을 블라디미르라고 지었어. 이제 열 네살이 되었구. 그 아이 때문에 자랑스러워. (눈물) 미안.
Signed a 36 year old

Dear 36 year old
Stop caring so much about what other people think. They’re not thinking about you at all.
다른 사람들 생각에 관심 좀 그만 가져. 사실 그 사람들 너를 진짜로 생각하는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거든.
Signed a 47 year old

Dear 47 year old
A midlife crisis does not look good on you.
중년의 위기 같은 거 당신에게 안어울리네요.
Signed a 48 year old
Dear 48 year old
Always tell the truth. Except when it comes to your online dating profile.
항상 진실만을 말해. 물론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 프로파일은 제외.
Signed a 51 year old

Dear 51 year old
One cat is enough cats.
고양이 하나 키우면 충분히 많은 고양이를 키우는 거야.
Signed a 53 year old

Dear 53 year old
It’s never too late to try something new. I’ve decided to take my husband’s corvette and go to racing school. If Paul Newman could do it then why can’t I?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건 언제라도 늦지 않아. 남편 콜벳을 끌고 레이싱 스쿨에 가기로 했어. 폴 뉴먼도 했는데 내가 못할 게 뭐 있어?
Signed a 72 year old

Dear 72 year old
Spend all your money. Otherwise your kids are going to do it for you.
네 돈은 네가 다 써야 해. 안그러면 자식들이 대신 다 써버리거든.
Sincerely an 85 year old.

Dear 85 year old
Indulge your sweet tooth. You’ll need dentures soon anyway. My late wife made the best apple pie which you will ever find. When she cut the piece, she would cut small one. When she gave me, she would cut a big one.
단 거 마음껏 먹어. 어차피 곧 의치(틀니)가 필요할 거야. 아내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애플파이를 구웠지. 파이 자를 때 자기 것은 작게 자르고 내 것은 큰 덩이로 잘라줬는데.
Signed an 88 year old

Dear 88 year old
Cultivate younger friends. Otherwise yours will all die off.
젊은 친구들을 사귀어 놔야 해. 친구들이 하나 둘 저 세상으로 가버리거든.
Sincerely a 91 year old

Dear 91 year old
Don’t listen to other people’s advice. Nobody knows what the hell they’re doing.
다른 사람들 충고에 귀기울일 필요가 없어. 자기가 무슨 일 하고 있는지 뭣도 모른다니깐.
Signed a 93 year old

(크레딧 나오기 시작)

Just do your own thing. That’s the way I see it.
그냥 네 일을 해. 내가 보기엔 그게 잘 사는 거야.

Popular culture, they’re so shallow. They’re like hashtags and pop culture. And it’s like “I don’t care.” That’s never going to be relevant in the future.
대중문화? 너무 얄팍하잖아요. 해시태그 막 붙이고 그런 거잖아요. 그리고 그런 것들이 “무슨 상관이람.” 그러고. 미래에는 아무 의미 없어질 것들.

If your babysitter hits feet, do a handstand and put your feet right in their face.
“Have you ever done that before?”
No, but I’m willing to.
아기 돌보는 사람이 발을 싫어하면 물구나무를 서서 얼굴 바로 앞에 발을 ‘똭’ 갖다 놓는 거예요.
“그렇게 해본 적 있어요?”
아뇨. 근데 기꺼이 할 용의가 있죠.

Dear 70 year old,
Stay weird. 계속 (네가 원하는 대로) 괴상하게 살어.
Signed, a seventy two year 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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