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구운동추적과 독서

Posted by on Sep 22, 2015 in 과학, 링크, 일상 | No Comments

읽기, 그 중에서도 안구운동추적eye movement tracking을 이용한 연구방법의 권위자인 메사추세츠 대학의 Keith Rayner 박사의 독서시 안구운동에 관한 비디오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일반 독서(묵독 silent reading)시 안구 운동은 매 250ms 간격으로 나타납니다 (영어로는 average fixation time 이라는 용어를 사용). 여기에 어느 정도의 변이가 존재하구요. 짧게는 100ms에서 길 때는 500ms 까지 간다고 합니다. 짐작하시다시피 안구이동시간의 변이는 읽고 있는 단어가 얼마나 어려운가에 영향을 받습니다. 빈도수가 낮거나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나오면 자연히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요.

2. 한 단어에서 다음 단어로 시선을 움직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보통 이것을 레이턴시 latency 라고 하는데요. (잠깐 길을 새자면 디지털 음악을 하시는 분들은 많이 듣는 용어입니다. 물론 어떤 정보 처리든 특정 신호의 입출력 사이에 갭을 이르는 말로 자주 사용되는 것 같네요.) 레이턴시는 눈이 물리적으로 움직여야 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묵독을 기준으로 보통 150ms 정도의 레이턴시가 발생합니다.

3. 소리를 내서 텍스트를 읽을 때는 단어에 시선이 머무르는 시간이 조금 더 깁니다. 묵독에 비해 시간이 좀더 길어진다는 이야기죠. 중간 중간 읽기의 휴지가 있는 부분에서 좀더 쉬게 되구요. 독자의 시선이 발음되고 있는 단어보다 조금 앞서 나간다고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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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

성인이 보통 분당 250에서 300 단어를 읽는다고 합니다. 편의상 240 단어를 읽는다고 하면 60초에 240 단어, 즉 초당 4개의 단어를 읽는다고 봐야겠네요. 그런데 묵독시 평균 250ms + 레이턴시 150 이면 400 ms 정도인데, 이러면 계산상 1분당 읽어내는 단어 수가 맞질 않습니다.

비디오를 보신 분들은 짐작하셨겠지만, 독서하는 동안 시선이 모든 단어에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 단어를 건너뛰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계산이 어긋나게 되고요. ^^

일반화된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보통 전치사나 be동사 같은 기능어 function words 보다는 명사, 동사, 형용사 같은 내용어 content words 에 시선이 머물 때가 많다고 합니다. 기능어는 말 그대로 조용히 자기 기능을 다하면서도 주목을 받지 못하는 운명인가 봅니다. :)

‘안한다’와 ‘못한다’

Posted by on Sep 22, 2015 in 단상 | No Comments

문득 많은 경우 “안한다”와 “못한다”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야 말로  개인주의에 근거한 은밀한 폭력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하는 거야, 못하는 거야”라는 질문에 대해 퉁명스런 말투로 “너는 ‘안-‘과 ‘못-‘이 그렇게 잘 구분돼? 안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난 두 개가 구분이 잘 안가던데.”라고 응수하는 법을 연습해야겠다.

On meritocracy

Posted by on Sep 22, 2015 in 단상, 영어, 일상 | No Comments

Meritocracy is usually defined as “government or the holding of power by people selected on the basis of their ability.” (Google dictionary) However, the definition merely scratches the surface in that it ignores a more fundamental force behind this apparently well-meaning system: the sociopolitical machine which defines and allocates merit itself. We tend to think we are able to do something; however, our ability gains legitimacy only through the grant of the merit-defining regime. In this sense, meritocracy should be understood as a zone of conflicts and struggle for the power to define ‘who is able and who is not.’

왜 쓰는가 그리고 왜 가르치는가

Nadine Gordimer는 “Writing is making sense of life.”이라는 말을 했다. “쓰기는 삶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삶은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우린 그 흐름 속에서 크고 작은 경험을 한다. 하지만 이를 기록하지 않으면 흩어져 버린다. 순간 순간의 의미는 이내 망각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삶의 흐름을 ‘멈춘다.’ 시간의 흐름 속에 틈을 만드는 것이다. 이제 잠시나마 흐름에 덜 휩쓸릴 수 있다. 성찰하고 기억할 수 여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경험의 측면들이 드러나고 뭉개진 생각의 결이 분명해진다. 글쓰기의 과정이 새로운 생각을 잉태하고 이것이 다시 글쓰기의 양분이 된다. 글쓰기는 지나간 것들의 반추임과 동시에 창조다.

이는 마치 가르치기 전까지는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 것과 많이 닮았다. 수업을 하다가 보면 내가 정확히 무엇을 알고 있는지, 어떤 내용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만을 갖고 있으며 어떤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지 못하는지 알게 된다. 또 수업을 통해 나 자신이 더 많이 배울 때가 있다. 가르치는 일은 부족함에 대한 깊은 깨달음 가능케 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배움의 지평을 열어 젖힌다.

그런데 사실 우리 삶에서 영어로 글을 쓴다는 게 그리 중요한가? 우리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 대부분이 영어선생님이시니 영어실력, 그 중에서도 영작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영어로 글을 써야 하는 분들은 극소수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사망한 Stephen Covey의 책에 소개되어 널리 쓰였던 중요성/긴급성 “Importance/Urgency” 2X2 매트릭스를 떠올려 보자. 여러 분들께 영어 글쓰기는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즉, 잘하면 정말 좋을 것 같지만 안해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는 일이다. 안해도 지장 없는 일은 늘 다른 일에 우선 순위를 내준다. 수업과 잡무, 친구들과의 약속, 그 외 이런 저런 개인사가 치고 들어오면 미루다 못해 까맣게 잊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작문을 배우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좋은 교재를 정하는 게 아니라 영작문을 해야 할 이유를 찾고, 동기를 유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좋은 교재” “좋은 학원”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사실이다.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왜 영어로 글을 쓰려 하는가?” 이 질문을 회피하고 영어 글쓰기를 하려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수업을 통해 영작문을 공부하려는 게 공인 영어점수를 높이려는 의도인가? 영어 교사로서 자기 만족감을 높이기 위함인가?

어떤 경우라도 Gordimer의 이야기처럼 삶을 좀더 깊고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쓰기가 아니라면 이내 영어 글쓰기를 할 이유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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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오늘 한 교육대학원 영어쓰기 강의록의 일부다. 이번 학기에는 학부 1학년생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영어로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그런데 ‘왜’라는 질문에 대해서 딱 부러지는 대답을 하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

학부생들의 경우 ‘교양 필수라서’, ‘해두면 나중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 ‘혹시 관련분야로 갈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등의 대답이 나온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반응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문화적 자본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하는 기제로서 영어 특히 영어 글쓰기의 역할이 분명 존재하며, “영어공부 방기 = 미래에 대한 불안 가중”이라는 등식이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논의는 잠시 접어두자. 학생 개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한편 그닥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피곤한 월요일 오후 수업에 와 있는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왜 이 친구들이 영어로 글을 써야만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런 저런 생각 속에서 결국 내가 다다르는 결론은 학생들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겠다는 것. 뭐 이런 범생같은 결론이 있나 싶지만 요즘 들어 학생들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곱씹어보게 된다.

수업 시간은 선생의 것도 아니고 학생의 것도 아니다. 우리의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시간’이 가진 의미와 가능성을 열어 젖히는 것은 일차적으로 선생의 책임이다.

왜 쓰는가를 학생들에게 질문하려 했는데
왜 가르치고 있는가를 나에게 묻고 있다.

이런 수미무상관법이라니. :(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들

Posted by on Sep 19, 2015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사는 게 좀 밋밋하다 싶더니 아침에 태어나서 가장 황당한 일 중 하나를 당했다.

앞문에 한 발을 디디고 올라서는데 버스가 출발하려 한 것. 잠시 문에 끼었던 나는 쌍욕을 할 뻔했다.

“아니 사람 타는데 출발하면 어떻게 합니까!”

“아 못봤어요. 다 탄 줄 알았네. ㅎㅎㅎ”

“아니 그걸 어떻게 못봐요. 앞 사람 바로 뒤에서 탔는데.”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가 없다. 웃어야 할 떼와 사과해야 할 때를 구별 못하는 양반이다. 액땜한 셈 치고 학회 발표나 잘 들어야겠다.

근데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리네. ㅠㅜ

Dr. Claire Kramsch in Seoul

Posted by on Sep 19, 2015 in 영어, 일상 | No Comments

Dr. Kramsch has been an inspiration for me for many years. I first met her in 2009, when she visited State College for teaching in the Summer Institute of Applied Linguistics. Her class was one of the most impressive, stimulating classes I had in my graduate training. So it would not be an exaggeration to say that my heart leaped up to the sky when I saw her name on the conference proceedings. Today I was so happy to meet her in Korea. Meeting someone face to face gives you a joy way beyond reading their work, as you know. :)

She was invited to ALAK(the Applied Linguistics Association of Korea) as a plenary speaker and gave a talk titled “What’s in a Metaphor?: Sustainability in Applied Linguistics,” which described a rapid, dynamic development of the field and chartered the current terrain of applied linguistics. She further suggested that we make it “a theory of practice.” Here I repeat her conclusion.

“The greatest challenge for sustainability in Applied Linguistics is to theorize the practice in such a way as to do justice to (1) the epistemologically diverse theory and research in Applied Linguistics and (2) the heteroglossic and political diversity of the practice.”

This reminded me of Jim Lantolf’s 1996 article, “SLA Theory Building: “Letting All the Flowers Bloom!”” Though slightly different in their theoretical orientations, both Dr. Kramsch and Dr. Lantolf emphasize that we need to overcome the theory/practice divide to achieve the ultimate goal of the field, which is to solve real-world problems in a theoretically sound way and thus make our semiotic activity more meaningful and valuable.

While talking with her, I found out that her new edited volume “the Multilingual Challenge” is just out. Those of you who are interested in in the multilingual perspective in applied linguistics may want to check it out.

http://goo.gl/8C4ZcJ

영어로 논문쓰기 특강

Posted by on Sep 18, 2015 in 강의노트,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영어 논문 쓰기 특강 자료를 완성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연구자가 된다는 것은 한 분야의 작가가 된다는 뜻이다.”

“작가(writer)가 된다는 것은 말을 골라 쓴다는 뜻이다.”

“표현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은 자신만의 레퍼토리(repertoire)가 있다는 뜻이다.”

“자신만의 레퍼토리를 만드는 4가지 방법을 알아보자.”

학교에서 제일 맛있는 식당

Posted by on Sep 18, 2015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세 시간 떠드니 배가 고프다. 학생들에게 불쑥 “학교에서 제일 맛있는 식당이 어디예요?”라고 묻는다. “학교 바깥으로 나가셔야 돼요.” 라는 답이 바로 돌아온다. 순간 건국대학교에서 가르칠 때 일화가 떠올랐다.

“학교에서 어느 식당이 제일 맛있어요?”
“세종대 식당이요.”
“아 ㅎㅎ ㅋㅋㅋㅋㅋㅋ”

아 허기진다.
뭐든 맛있을 거 같아.

여전히 찾고 있는 일

Posted by on Sep 18, 2015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난 당신이 해야 되는 일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겠어.”

그렇게 말해주는 마음이 한없이 고마우면서도 이 때가 되도록 ‘좋아하는’ 일을 찾고 있는 내가 참 바보같이 느껴졌다.

아마 난 평생 찾다가 갈 거 같다.

잠시 후 수업이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와 세계 이야기를 할 것이다.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닥치는 대로 펑크만 안나게

Posted by on Sep 18, 2015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중요성과 긴급함이라는 2X2 매트릭스를 적용한 뒤 가중치를 매겨 세상만사를 한 줄로 세우고, 투자대비 수익률을 고려하여 개별 사안에 자원을 할당하고, 시간과 인력을 실시간으로 조정하여 주요 프로젝트 진행을 최적화하고, 핵심역량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들은 외주로 돌리고, 최신 기술과 정리 기법을 적용하여 업무효율성을 향상시키면서 자기계발 또한 소홀히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은 계속 그렇게 하라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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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닥치는 대로 펑크만 안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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