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비대칭

Posted by on Oct 31, 2015 in 강의노트, 단상 | No Comments

강사: 수업은 짧고 과제는 길다.

학생: 과제는 짧고 수업은 길다.

쉬운 게 하나도 없어요

“날씨가 추워졌네요.”
“네네. 완전 추워요.”
“건강 조심하구… 오늘은 날씨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날씨 중에서 비유적인 표현. 비온다, 눈온다 그런 거 말고요. 날씨랑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지만 다른 뜻으로 많이 쓰이는 것들요.”
“네네.”
“혹시 break the ice 라는 말 들어봤어요?”
“…”
“무슨 뜻일까요?”
“얼음… 깨다?”
“그렇죠. 단어 그대로 하면.”
“얼음이니까… 추운 걸 깨다? 따뜻하게 하다?”
“아 그럴 듯 한데 그런 뜻은 아니고요.”
“…”
“이게 사람들이 처음 만나면 서먹서먹하잖아요. 분위기도 어색하고. 그럴 때 분위기를 ice 그러니까 얼음으로 표현한 거예요. 어떨 때는 ‘분위기가 얼어붙었다’고도 하잖아요.”
“아…”
“그래서 그런 어색한 분위기를 깬다는 의미예요. 보통 농담을 던지거나 재미있게 자신을 소개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아…”
“저도 학생들 처음 만나면 가끔 break the ice를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초롱초롱)”
“처음 학생들 만나면 제 이름을 칠판에 쓴 다음에 ‘보시다시피 제가 이름이 성우인데, 목소리는 그다지 아름답진 않아요.”
“……”
“(급 수습모드)그렇죠. 바로 이런 식으로 break the ice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어요. 보통 한 80퍼센트는 ‘뭐지?’하는 반응, 20퍼센트는 좀 웃는 거 같아요.”
“(계속 멀뚱멀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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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 다음은 the calm before the storm이예요. 따라해 보세요. The calm before the storm.”
“The calm before the storm.”
“calm하다면 어떤 뜻일까요?”
“조용하다?”
“맞아요. 조용하다. 차분하다. 평화롭다 그런 뜻이죠. Storm은 많이 들어봤죠?”
“태풍….?”
“태풍이라는 뜻도 되고, 일반적인 폭풍도 되고요. 비바람 심하게 부는 거.”
“네.”
“근데 비바람, 폭풍 불기 전에 조용한 거니까…”
“아 대충 뭔지 알겠어요.”
“그렇죠? 살면서 이럴 때 있잖아요. 예를 들면 사회 과목 선생님이 ‘너희 반 지난 번에 1등 했는데 이번에는 평균이 꼴찌야’라고 말했는데, 담임 선생님은 아직 그 소식 모르고 평소처럼 이야기할 때.”
“ㅋㅋㅋ 저희 반 정말 그런 적 있는데. ㅎㅎㅎ”
“아 정말요? 1등에서 꼴찌로?”
“네네. 한 번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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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번에는 chase rainbows예요. Chase 들어봤어요?”
“아뇨? 처음 듣는데요.”
“Chase. C-H-A-S-E. Chase. 추적하다, 따라가다, 좇다. 그런 뜻이죠. 따라해 보세요. Chase.”
“Chase.”
“Chase.”
“Chase.”
“그런데 무지개를 따라간다고 하면 무슨 뜻일까요?”
“…”
“무지개가 손에 잡힐 것 같아도, 정말 손으로 만질 수가 있나요?”
“아뇨.”
“뭔가 있어 보이지만 절대 붙잡을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쵸…”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아요?”
“네.”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
“친구들 중에 그런 애들 좀 있어요.”
“그래요? ㅎㅎ”
“네.”
“진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암튼 친구가 절대 불가능한 일을 자꾸 하려고 들면 이렇게 말해주면 돼요. ‘You’re chasing rainbows.’ 자 따라해 보세요. ‘You’re chasing rainbows.'”
“You’re chasing rainb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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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번에는 좀 재미있는 표현이예요. A fair-weather friend. 따라해 보세요. A fair-weather friend.”
“A fair-weather friend.”
“자 fair, F-A-I-R 페어.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 같죠?”
“페어플레이?”
“맞아요. 페어플레이. 무슨 뜻이죠?”
“반칙 안하는 거.”
“그렇죠. Fair는 경기에 쓰면 공정한, 정정당당한 같은 뜻이예요. 그래서 fair play는 공정한 플레이죠. 그런데 이게 날씨랑 같이 쓰이면…?”
“…”
“날씨가 좋은 걸 말할까요? 나쁜 걸 말할까요?”
“좋은 거요.”
“맞아요. 좋은 날씨. 화창한 날씨. 보통 너무 춥지도 않고 비도 안오는 날씨를 말해요. 그럼 ‘a fair-weather friend’는 뭘까요?”
“성격이 밝은 친구? 성격 좋은 친구?”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근데 아니예요. 친구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예요.”
“(살짝 풀죽은 듯 표정)”
“이게 ‘좋은 날씨 친구’잖아요?”
“네. ㅎㅎㅎ”
“근데 좋은 날씨에만 친구면 좋은 친군가?”
“아뇨.”
“그쵸. 좋은 친구는 좋은 날씨에도 친구, 나쁜 날씨에도 친구여야 좋은 친구잖아요?”
“네.”
“그런데 이 친구는 ‘좋은 날씨에만 친구야.”
“아…”
“그러니까 나쁜 날씨 되면…”
“모른척해.”
“네. 모른척 할 수도 있고, 아예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잠수타기.”
“ㅎㅎㅎ 네네. 그런 친구 안좋죠. 맛있는 거 사주고 좋은 일 있을 때만 친구였다가 힘들고 어려운 일 생기면 아예 안보이는 친구. 그런 친구는 사실 진짜 친구는 아닌 거죠.”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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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번에는 잘 모르는 단어일 거 같아요. 따라해 보세요. (쓰면서) breeze.”
“Breeze.”
“Breeze.”
“Breeze.”
“이게 산들바람, 봄이나 가을에 기분 좋게 부는 바람이라는 뜻이예요.”
“네.”
“근데 이게 살랑 살랑 부는 바람이라서 설렁 설렁 해도 쉽게 끝나는 일을 이야기할 때도 쓰여요.”
“ㅎㅎ 네.”
“그니까 쉬운 일을 말하는 거죠. OO씨는 그림 그릴 때 뭐가 제일 쉬워요? 사람 그릴 때 그래도 젤 쉬운 게 어디예요?”
“(한참을 생각하다가) 쉬운 게 없어요.”
“어… 하나도 없어요?”
“(단호+체념) 한 개도 없어요.”
“아… 그러면 이렇게 하면 되겠다. Nothing is a breeze for me. 자 따라해 보세요. Nothing is a breeze for me.”
“Nothing is a breeze for me.”
“나한테는 쉬운게 없어.”
“진짜 없어요.”
“좀 슬프다…. 그럼 이거랑 연관 표현 하나 배우고 마칠게요. 날씨는 아니지만 쉽다는 뜻으로 쓰이는 표현.”
“네.”
“우리말에서는 진짜 쉬운 일을 누워서…”
“떡먹기.”
“그쵸. 누워서 떡먹기라고 하죠. 진짜 쉬운 일이라는 뜻. 근데 누워서 떡먹으면 안되는 거 아시죠? 가끔 떡이 기도를 막기도 한대요. 일어나서 잘 씹어 드세요.”
“네네.”
“근데 영어에서도 먹을 걸로 ‘쉽다’는 말을 할 수 있어요. 혹시 뭘로 하는지 알아요?”
“…”
“몰라요?”
“…”
“A piece of cake.”
“아…”
“한 조각의 케잌이라는 뜻인데… 무척 쉽다는 뜻이예요.”
“네.”
“요리 중에서 뭘 젤 잘해요? 쉽게 해요?”
“라면? ㅎ”
“ㅎㅎㅎ 라면을 요리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실 저도 라면을 젤 잘 끓이는 거 같아요.”
“ㅎ 워낙 예전부터 하던 거라서 쉽죠.”
“맞아요. 라면이 제일 쉽다면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겠죠. Cooking Ramen is a piece of cake. 따라해 보세요. Cooking Ramen is a piece of cake.”
“Cooking Ramen is a piece of c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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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쉬운 게 어디있을까.
아이들의 삶도, 내 삶도 a breeze는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날.

유치원생의 일기처럼
‘Fair-weather friend’는 되지 말아야겠는 다짐으로
하루를 정리한다.

Yes, I know.
Nothing is a breeze for us.
But let us not be fair-weather friends to each other.

 

 

그러자 생각난 노래.

국제 학술지 게재를 목표로 하는 학술적 글쓰기

Posted by on Oct 27, 2015 in 링크, 영어,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양대규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국제 학술지 게재를 목표로 하는 학술적 글쓰기>를 읽고 있습니다. 학술 영작문을 가르치기도 하고 논문을 쓰기도 하지만 여전히 모든 면에서 부족한 제게 여러 모로 자극이 되네요. 논문을 통해 학계의 대화에 참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개념적 토대를 놓아주면서 논문을 구상, 작성, 투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점들을 꼼꼼하게 짚어주고 있습니다. 석박사 과정에 계신 분들께 특히 큰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국제 학술지 게재를 목표로 하는 학술적 글쓰기- 연구와 글쓰기의 뼈대를 잡기 위한 가장 의미있는 해결책 | Anne Sigismund Huff (지은이) | 양대규 (옮긴이) | 한경사 | 2015-09-14 | 원제 Writing for Scholarly Publication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6209213

누가 상대평가를 고집하는가: ‘반(反)당사자 정책’의 문제에 관하여

Posted by on Oct 27, 2015 in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매우 단순한 질문 하나를 던져보려 한다. 누가 상대평가를 고집하는가? 주변의 교수와 학생들 중 상대평가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상대평가에 대한 이론적 관점이나 개개인의 경험 및 태도가 조금씩 다를지는 모르나, 적어도 나의 지인들 중에서 현재의 상대평가제를 옹호하는 사람은 전무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이 아니라 교육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힘이 수업과 평가를 지배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교수학습 당사자가 아닌 다른 이들의 입맛에 맞는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예외적’이라고 한다면 위 주장은 그릇된 것으로 판명날 것이다. 하지만 한 평범한 강사가 무작위로 만난 교수와 학생 모두가 ‘극단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어 보인다. (참고로 고려대는 이번 학기부터 상대평가제 폐지 실험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긴 이런 ‘반당사자 정책’이 어디 상대평가제 뿐이랴.

노동자들이 원하지 않는 노동 정책, 역사가들이 반대하는 역사교과서, 여성들이 이해할 수 없는 여성 정책… 생각해 보면 당사자들의 이해와 완전히 반대되는 구조적 힘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 많은 언론과 기업들은 이러한 ‘외부적 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사회적인 홍보, 교육, 마케팅 캠페인을 전개한다. 이들은 점차 ‘세련된’ 형태로 진화하고 있지만 그 핵심은 비슷하다. 당사자들의 소통과 연대를 막고, 그들 사이의 분열을 조장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 확대하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 어디에 서 있든지 당사자의 관점에서 정책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노동자는 노동자로서, 선생은 정부가 아니라 가르치는 주체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 말이다. 그렇게 다른 입장을 가진 이들이 토론하고 논쟁하고 합의하고 실행하기 위해,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평가하기 위해 교육이, 언론이, 민주주의가 존재하는 것이다.

적당히 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내 언어의 강경함에 반대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강경해야만 할 명분이 있지 않은가? 나는 진리만큼 냉엄하게 말할 것이고, 정의만큼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이 주제에 관하여 나는 적당하게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쓸 의향이 없다. 절대, 절대로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차라리 자신의 집이 눈 앞에서 불타고 있는 이에게 조용히 알리라 해라. 강간범에게서 아내를 구하려는 남편에게 천천히 하라고 말하라. 불구덩이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는 엄마에게 슬슬 하라고 말하라.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 속에서 내게 적당히 하라고 강요하지 말라. 나는 마음을 다해 임할 것이고, 모호하게 말하지 않을 것이며 변명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 윌리엄 로이드 게리슨의 말. 그는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 신문 <The Liberator>의 편집장이었음.

“I am aware that many object to the severity of my language; but is there not cause for severity? I will be as harsh as truth, and as uncompromising as justice. On this subject, I do not wish to think, or to speak, or write, with moderation. No! No! Tell a man whose house is on fire to give a moderate alarm; tell him to moderately rescue his wife from the hands of the ravisher; tell the mother to gradually extricate her babe from the fire into which it has fallen; but urge me not to use moderation in a cause like the present. I am in earnest—I will not equivocate—I will not excuse—I will not retreat a single inch—And I will be heard.” – William Lloyd Garrison

삶은 여행이니까

Posted by on Oct 25, 2015 in 단상, 링크 | No Comments

“여기에서 ‘살았다’는 말은 ‘날 속으로 들어가다’라는 뜻입니다. “몇 년을 살았다”라는 말과 “몇 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는 같은 뜻이라 해도 그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만약 30년을 살았다면 1만 950 여일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고, 40년을 살았다면 1만 4천 600 여일을 하루 하루 통과한 것입니다.”

오늘 주일 설교 중에서 마음에 남은 대목입니다. 이틀 연속 마음 아픈 장례식에 다녀오면서 새삼 던지게 된 화두가 있습니다. ‘내일이 아니라, 어제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 살고 있는가?’

진부하지만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질문입니다. 2015년 10월 26일 서울 한 구석, 다시 존재하지 않을 시공간을 통과하고 있는 저를 바라봅니다. 함께 수많은 날들 속을 걸어가는 여행자들을 떠올립니다.

덜 바빠지기

Posted by on Oct 22, 2015 in 단상, 링크 | No Comments

“야! 안바쁜 사람이 어딨냐?”

나도 모르게 이 말을 던질 때
속도와 경쟁의 시대,
그 구조적 억압을 내면화한 건 아닌지
찬찬히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된다.

너나 할 것 없이
시간의 노예가 되고,
촌각을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한 사회라고 해서

그게 당연한 건 아니니까.

 

p.s. 당신의 온전한 쉼을 빌어요.

흐느낌에 대하여

Posted by on Oct 22, 2015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어릴 적 영화 여주인공은
칼질을 하다가 갑자기
흐느낀다. 뚝뚝 눈물 떨군다.
양파를 써는 것도 아닌데, 흐느끼다 못해
주저앉는다. 무너진다.

몰랐다 왜 그런지.

카페인으로 뇌를 버무려 짜낸
너댓 단락의 노동
아침도 점심도 거르고
몸살약 사러 탈출을 감행한다.

첨 사보는 동네표 햄버거
한 입 먹고 생쌀 생각.
두 입 먹고 생라면 생각.
그게 더 나았을 거 같구나.

아 맞다 일년 반 고민끝에
지하철 입구에서 사온 벨트가 있었지.
“이거 소가죽이라 디게 튼튼하거든요.”
튼튼해 봤자다. 난 도구의 인간이거든. 흐흐.

눈대중. 솔찬히 기네. 싹둑싹둑.
아뿔사, 디지게 짧아졌다.
열 여덟 달의 게으름+기다림 복합체는
쓸모없이 튼튼한 두 동강 소가죽으로.

번쩍. 알겠다 왜
칼질하다가 부서지는지.

각본을 쓴다.
콜록거리는 한 남자,
한 손에는 짧아진 소가죽
다른 한 손에는 가위 든 채로
오열하다가
약기운에 잠드는 걸로.

#2년전오늘

교육이 사육이 되는 세계

Posted by on Oct 20, 2015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급진적 다양성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두 가지 모두를 포용하지 않는 교육은 획일화되거나 도구로 전락한다. ‘적당한 다양성’과 ‘개략적 이해’는 종종 반교육적 성격을 띤다. 역설적인 것은 우리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교육의 평등성이 확보되고, 인간과 사회의 ‘밑바닥’에 대한 성역 없는 탐구에서 교육의 수월성이 성취된다는 점이다.

평등과 수월성의 달성 여부는 교과내용의 양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교과내용과 삶을 연결시키고 이들 사이의 균열을 감지하며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에 달려 있다.

학생들이 교육을 통해 “무엇을 알기 원하는가”를 넘어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질문의 내용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것은 교사와 학생이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지점에서 생성되고 삶과 부딪칠 때라야 (부분적으로) 대답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교육은 정적으로 보이는 지식의 체계가 만남을 통해 동적인 질문으로 바뀌는 과정이다. 이는 전통적인 교육의 개념–학생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교사와 학교가 채워주는 모델–을 뒤집는다. 교육의 목표는 제대로 된 질문을 함께 던질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는 데 있다.

기껏해야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제대로 된 질문이라 할 수 없다. 답이 하나인 세계라면 질문의 가능성 자체가 사라진다. 그렇게 닫혀진 세계에서 교육은 사육이다.

Howard Zinn on the Power of People

Posted by on Oct 20, 2015 in 링크, 일상 | No Comments
“민주주의가 어떤 의미를 가지려면, 그것이 자본주의와 민족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다면, 이는 위로부터 오지 않는다는 것. — 우리가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지침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이같은 변화는 시민들의 직접적 운동, 교육, 조직, 선동, 파업, 보이콧, 시위, 그리고 권력자들이 필요로하는 안정을 교란시켜 그들을 위협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 하워드 진
 
“If democracy were to be given any meaning, if it were to go beyond the limits of capitalism and nationalism, this would not come, if history were any guide, from the top. It would come through citizen’s movements, educating, organizing, agitating, striking, boycotting, demonstrating, threatening those in power with disruption of the stability they needed.” – Howard Zinn
 
출처: Howard Zinn on the Power of People
http://billmoyers.com/content/howard-zinn-on-the-power-of-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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