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바꿔치기 – 사건의 재구성

Posted by on Jan 24,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살면서 이런 일도 다 겪는군요. 심각한 일은 아니고 그저 신기한 일.

김영희(가명)라는 친구가 모임 장소를 알아보려 합정역 부근 모 식당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름이 꽤 알려져 있는 곳이라 토요일 점심에 예약을 해야 하는지 확인하려는 목적이었죠. 전화를 받은 직원은 토요일 점심이면 그냥 와도 자리가 있다고 답했구요. 굳이 예약할 필요가 없다고 하니 예약은 패쓰. 다른 세 명의 일행한테 12시에 합정역 모 식당에서 만나자는 메세지만 돌렸죠.

한 선배가 약속 시간 10분 정도 전에 도착했습니다. 예약 여부를 확실히 몰라서 사장님께 물었습니다.

“혹시 예약을 했는지…”
“아, 김영희 씨 12시 맞나요? 네 분.”
“네네. 김영희 맞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

그리고 선배는 예약석에 앉았습니다. 나머지 세 명을 기다렸죠.

저는 김영희씨와 합정역에서 만나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식당에 들어서니 바로 보이는 선배. 다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제 선배, 나, 영희씨, 이렇게 세 명이 온 거네요. 수인씨만 오면 됩니다. 선배가 불쑥 예약 이야기를 꺼냅니다.

선배: “영희씨, 근데 예약한 거죠?”
영희: “안했는데요?”
선배: “에이, 12시에 김영희로 예약 되어 있던데요?”
영희: “네?”
선배: “시간이랑 사람 수까지 똑같은데…”
영희: “안했는데… 안한 거 같아요… 음… 했나? 했었나? … 안했어요.”
나: “ㅎㅎㅎ 했나 보네요.”
영희: “안한 거 같은데… 했나???”

그 와중에 한 무리의 사람이 들어옵니다. 카운터 바로 옆 테이블이라서 똑똑히 음성을 들을 수 있었죠.

“김영희로 예약했는데요. 네 명.”

이럴 수가. 저와 선배, 영희씨는 다른 김영희씨 예약석에 앉아 있었던 겁니다. 예약을 안했는데 예약을 한 것처럼 되어 버린 거죠. 덕분에 조금 늦게 도착한 김영희씨 일행은 테이블을 다시 세팅하고 문가쪽에 앉아야 했죠. ^^

조금 있다가 우리의 네 번째 일행 수인씨가 도착합니다. 이때부터 우리들의 ‘황당사건의 재구성’이 시작되었죠. 그리고 모두 놀랐습니다. 진짜로요. 다음은 ‘예약 바꿔치기’가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정리입니다.

1. 약속 주선자이자 김영희씨는 식당에 전화를 걸었고, 토요일 12시에 네 명쯤이면 예약이 필요한지 물었다.
2. 주인장은 예약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고 전화를 끊었다. 예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3. (우리 일행이 아닌 또다른 김영희씨가) 전화를 해서 식당에 예약을 했다. 토요일 12시 네 명. 그런데 이 양반이 어쩌다 보니 자기 이름을 정확히 대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4. 수인씨는 뭔가를 물어보려고 식당에 전화를 했다. 토요일 12시에 일행과 간다고 하면서. (주차 관련 문의였던 듯)
5. 주인장은 수인씨에게 ‘토요일 12시 예약한 분 일행이신가요? 근데 이름을 안알려 주셨는데…’라며 운을 뗐다. 수인씨는 메일을 돌린 친구 이름을 댔다. 김영희라고.
6. 주인장은 김영희 토요일 12시 4명으로 예약을 잡아 놓았다.
7. 우리 일행이 먼저 도착했고, ‘또다른 김영희’의 예약석에 앉았다.
8. 진짜 김영희가 나타났다!!!

사건의 재구성을 마치고 모두 나자빠질 뻔 했습니다. 밥을 먹고 나오면서 선배가 남긴 한 마디가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그러니까 저기 김영희 씨가 밥을 먹고 있는 거네.”
“형, 너무 목소리가 큰데요. ㅋㅋㅋ”

살다 살다 별일 다있다 싶은 날이었습니다. :)

참고문헌 작성 팁 하나

학위논문을 쓸 때 도움이 되었던 팁 하나를 소개해 봅니다.

학위논문은 태어나서 써본 글 중에 가장 길었습니다. 줄간격이 꽤 컸지만 300페이지를 넘는 통글을 쓴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죠. 지금 다시 보면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애정은 남아 있습니다. 지지리도 못났지만 제 피땀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겠죠.

논문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문헌연구(literature review)의 작성이었습니다. 보통 학술지 논문에는 수십 개의 문헌이 들어가지만 학위논문의 경우 참고문헌의 수가 몇 배에 이르니까요.

이리 저리 ‘잔머리’를 굴리다가 마지막으로 택했던 방식은 “어떤 문헌이든 물리적으로, 손에 쥘 수 있게 만든다”였습니다.

최종적으로 문헌들을 정리하는 단계에서는 논문의 제목과 초록이 나오는 첫 페이지만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첫 페이지에는 간단한 메모를 하였습니다. 논문을 1-2줄 정도로 요약하거나, 논문을 선택한 이유를 수기로 적어놓는 것입니다.

이렇게 차곡 차곡 준비를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컴퓨터 파일이 아니라 실제 인쇄물을 이리 저리 옮겨가면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워드나 한글 파일에서는 어떻게 해봐도 선형적(linear)인 포맷을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괜찮다는 마인드 맵 프로그램을 사용해 봐도 제가 원하듯 자유롭게 자료를 옮겨가면서 관계를 그려볼 수가 없었죠.

무엇보다 실제 종이를 움직이는 과정과 개념의 그물을 정리하는 과정 사이에 조응을 느끼는 게 좋았습니다. 몸과 마음의 움직임이 정렬된다는 느낌이랄까, 그런 게 있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제겐 괜찮은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학기 학술영작문 수업에서도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Unbought candidate”

Posted by on Jan 22, 2016 in 단상, 링크 | No Comments

The Nation의 편집장인 Katrina vanden Heuvel이 Bernie Sanders 지지 선언 이유를 설명하면서 힘주어 사용한 어구. 많은 사람들이 그의 외교적 능력이나 경제정책의 실행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여전히 그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는 그가 돈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점, 누구도 그의 정치를 돈주고 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The Nation이 프라이머리에서 후보를 지지한 것은 제시 잭슨, 버락 오바마에 이어 역사상 세 번째라고 한다. “The Nation magazine has endorsed Bernie Sanders for president; editor and publisher Katrina vanden Heuvel explains why.”

http://www.thenation.com/article/start-making-sense-why-weve-endorsed-bernie-sanders/

버니 샌더스가 꿈에 나왔다.

Posted by on Jan 22,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한국에 잠시 왔는데 정치인들이나 정부 관계자랑 만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랑 저녁을 먹고 있다. 허름한 호텔 식당에서 수행 비서도 경호원도 없이 사람들과 수다떠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응원했는데 안불러주고 말이지’라며 가서 말을 붙여보려 했으나 밥먹으면서도 침튀겨가며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아저씨. 그 와중에 본지 7-8년 쯤 되는, 하나도 안친한 선배 하나가 불쑥 나타나서 ‘너 싸이O드 다니지? 그거 망해가는 거 같던데 해외에 수출을 해서라도 살려야 되는 거 아니냐?’라고 묻길래, ‘그러죠 뭐’라고 얼버무려 버렸다. (그 와중에 속으로 ‘웬 싸O월드? 그리고 저기 버니 샌더스가 있단 말이야! 근데 이거 꿈인가?’라고 말함. 얼마 전 본 인셉션 덕분인가?) 그러다가 갑자기 몰려온 사람들이 순식간에 샌더스를 둘러싸는 바람에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림.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라고 판단한 나. 긴 부페 음식 테이블 밑을 포복으로 통과하여 그에게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데 시계 알람이… #팬심이개꿈을만났을때

삶과 예술, 그리고 도덕적 주장

Posted by on Jan 21,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많은 분들이 생각하듯) 개인의 삶과 예술작품의 평가는 별개여야 한다면, 한 개인의 삶과 그의 말에 대한 평가도 별개일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용납하기 힘든 폭력을 밥먹듯 행사하는 사람이 비폭력적인 삶의 방식을 옹호하며 평화주의를 설득력있게 외친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말에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작품과 사상적 주장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 두 가지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갖게 되는 데는 어떤 요인들이 작용하는가?

‪#‎답없는질문2‬

왜 공부하는가

Posted by on Jan 20, 2016 in 단상, 수업자료, 일상 | No Comments

언젠가 선배와 나누었던 공부에 대한 이야기

“공부가 잘 안돼요. 집중도 안되고. 잡생각이 너무 많은 거 같아요.”
“그거 뭐 다 그런 거 아니냐? 나도 그럴 때 많아.”
“그런가요? 전 좀 심한 거 같아서요. 이게 저한테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흠… 그런 고민은 대부분 하지. 그런데 그럴 때가 있지 않냐?”
“네? 어떤 때요?”
“일년에 하루, 진짜 운 좋으면 이틀 쯤? 아침에 도서관에 들어갔다가 밤늦게 나오는데, 아침에 들어간 나랑 밤에 나오는 내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잖아. 완전히 다른 사람.”
“아…”
“뭐 사실 얼마나 달라졌겠냐? 하지만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지. 그런 맛에 공부도 하는 거 같고.”

그 이후로 늘 생각한다. 진리는 어떤 장소에 있어 찾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마주칠 수 있을 뿐이라고. 그 순간이 내게 올 때 그를 알아보기 위해, 그냥 지나치지 않기 위해 공부하는 거라고. 내가 변하지 않으면 절대 알아볼 수 없을 거니까. 그게 책 속의 한 구절이든, 누군가의 삶이든, 학생의 불평이든, 갑자기 고장난 몸뚱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밤의 친구들

Posted by on Jan 20, 2016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3년 여 가르치며 혼자 돌아다녔다. 생각도 공부량도 줄어들고 있건만 애매한 자의식만 무럭 무럭 자라난다. 봄부터 모여서 공부할 기회를 만들고 함께 열매를 거두는 노력을 해보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돌아와서 처음으로 밤수업이 없다. 어두움을 물리칠 ‘밤의 친구들’을 모아봐야겠다. :)

참고문헌

Posted by on Jan 19, 2016 in 단상,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글을 퇴고하고 참고문헌을 정리한다.

참고문헌은 늘 앎이 아닌 무지와 반성의 흔적이다. 시간에 쫓겨 더 찾지 못했고, 각 문헌의 관계를 더 숙고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저자들의 노고에 걸맞는 ‘두꺼운’ 읽기에 실패했다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끝내야 하는 일은 끝내야만 하는 법이야’라며 합리화로 똘똘 뭉친 위로를 내게 보낸다. 쓸쓸하지만 살만하다. 밥을 먹어야겠다.

묻어라, 씨앗이 될 테니

Posted by on Jan 19, 2016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그들은 우리를 묻어버리려 했다. 우리가 씨앗인지 모른 채.” – 멕시코 속담이라고 한다.

묻어버리려 하는 자에게는 씨앗이, 추락시키려는 자에게는 새가, 흩어버리려 하는 자에게는 홀씨가, 그리고 욕하는 자들에게는 욕설 연구자가 될 수 있기를.

배움은 가르침을 가르친다

Posted by on Jan 18, 2016 in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궁극적으로 좋은 선생은 잘 배우는 사람이다. 말할 것도 없이 자기가 가르치는 교과의 내용에 정통해야 한다. 그런데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가르는 것은 교과에 대한 지식은 아니다. 그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1) 학생들로부터, (2) 자기 수업으로부터, 나아가 (3) 자신과 학생들이 처한 삶으로부터 얼마나 깊이 배우는가다. 잘 가르치는 일,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늘 잘 배우는 일의 후에 온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교수내용 및 교수전략은 언제나 학습자와의 관계, 학습자에 대한 이해 뒤에 온다. ‘배움은 가르침을 가르친다.’

붙임: 배움이 가르침을 가르치게 하려면 선생의 삶이 단순해져야 한다. 나의 어정쩡한 욕심이 이것을 막고 있다. 알면서도 잘 못고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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