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내공’의 위험성

학술 리터러시를 논할 때 많은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쓰는 ‘개념어’ 중에 ‘논문읽기 내공’이 있다. 그런데 리터러시 발달을 도모하기 위해서는’내공’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좀더 분석적으로 성찰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면 데이터베이스 검색 방법, 논문을 읽는 순서, 이론 논문과 실증 논문 읽기 전략, 난해한 이론적 개념들을 익히는 방법, 통계 해석에서 자주 경험하는 문제, 논문 정독 혹은 속독시 걸리는 시간, 한 달에 읽어내는 논문의 총량, 논문 내용에 대한 하이라이트 및 주석 방식, 자신만의 논문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이 있을 수 있다.

사실 내가 논문출판에서 그닥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순수히 주관적 판단에 의한 ‘애매한 내공’을 너무 오래 신뢰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기 초에 이야기했듯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라고 가르칠 수밖에 없겠다. 그래서 내일은 학생들에게 내공에 대한 애매한 믿음을 어서 저버리라고 말할 것이다. 도무지 분석될 수 없는 내공만큼 애매한 것도 없으니 말이다.

우리 수업

‘그런 와중에 우리 수업을 들을 때면…’

한 박사과정 학생이 과제를 제출하면서 ‘우리 수업’이라는 말을 썼다. “선생님 수업”이나 교과명이 아닌 ‘우리 수업’이라는 표현에서 마음이 뭉클해졌다. 수년 간 붙잡고 있던 개념 하나가 구체적인 실체로 그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수업. 교사 중심도, 학생 중심도 아닌 배움이 중심되는 수업. 학생이 자발적으로 ‘우리 수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리. 만나고 논쟁하고 성장하는 시공간.

이번 주의 만트라는 ‘우리 수업’이 될 것 같다. :)

문제가 문제인 이유

영어논문 쓰기를 가르치다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한국어 논문쓰기를 한 번도 배운적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당장 어쩔 도리가 없어 다시 영어 쓰기에 집중하다 보니 이번에는 영어논문 읽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이 상당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단순히 영어가 아니라 배경지식과 개념파악의 문제가 핵심이다. 결국 한영 리터러시 전반의 문제들이 얽히고 설킨 형국인 것이다.
하긴 영어 쓰기만의 문제겠나. 문제가 문제인 까닭은 그 뿌리가 다른 뿌리들과 ‘피아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엉켜있어 풀 수도 잘라낼 수도 없기 때문인 것을.

 
그래도 열심히 해보겠다는 학생들이 많다. 즐겁고 또 고맙다. 무엇보다 그들의 고민 속에서 나를 볼 수 있어 좋다.

트위터, 그리고 내 인생의 떼창 프로젝트

Posted by on Mar 27, 2016 in 링크, 일상 | No Comments

트위터가 벌써 10년이 되었군요. 활동 초기에 만났던 분들을 페이스북에서 또 오프라인에서 계속 뵙고 있네요. 요즘에는 마음이 좀 멀어졌지만 몇 차례에 걸친 떼창 프로젝트는 인생 최고의 벅찬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1. 링크는 맨 처음 노래 <거위의 꿈>. (그때 모았던 수많은 파일들을 타임 캡슐에 넣었어야 했는데 drop.io 망하는 바람에 ㅠㅠ)

2. 2차는 <미안해 널 미워해> 였는데 저작권 때문에 삭제당했다고요. ㅠㅠ

3. 3차 <Butterfly>

4.  4차 지구를 위한 떼창 프로젝트

5.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식에서 부르지 못하게 한다는 발표에 온라인에서 진행했던 <임을 위한 떼창>

6. 카드뉴스 – 트위터 10년 소중한 순간들

http://m.media.daum.net/…/newsview/20160322131842963

헬조선에서의 어떤 대화‬

Posted by on Mar 27, 2016 in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A: What the hell is going on?
B: The hell.
‪#‎헬조선에서의어떤대화‬

텍스트 내 저자표기에 대한 단상

Posted by on Mar 27, 2016 in 강의노트, 단상, 영어로 글쓰기 | No Comments

조금 오래 된 이야기지만…

논문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새롭게 보일 때가 있다. 그중 하나가 논문 텍스트 속 저자의 이름과 연도의 표기였다. 예를 들면 APA 스타일에서 김개똥(2016), Smith(2011) 같은 본문 내 저작 표기다.

여기에서 ‘김개똥(2011)’은 ‘김개똥이라는 사람이 2011년도에 쓴 논문’을 가리킨다. 재미난 것은 이 표기가 김개똥이라는 인격체와는 관련없이 텍스트로서의 기능만을 수행한다는 사실이다. 일련의 아이디어, 실험, 분석, 주장, 제안을 담은 한 편의 글로 기능할 뿐 작가와 직접적 관련은 없다. 예를 들어 설사 김개똥씨가 필자의 아버지라 하더라도 “김개똥(2011)씨는 …라고 주장하셨습니다”라고 존칭을 쓸 일이 없다. “존경하는 OOO교수는…” 같은 문구도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김개똥(2016)이 글쓴이가 아니라 텍스트라는 사실은 과학이라는 공론장에서 중대한 무게를 갖는다. 과학담론의 전개에서 계급은 없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글쓴이의 사회문화적, 경제적, 인종적, 정치적 배경을 일체 고려하지 않고 논문의 아이디어만으로 학문적 대화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라는 말이다. (과학사회학적 관점에서 이는 나이브한 주장일지 모르지만, 과학이 ‘계급장 뗀 논쟁’을 이상으로 삼는다는 것을 부정하긴 힘들다.)

이런 면을 보지 못했던 나는 이른바 ‘빅네임’의 논문만 나오면 기가 죽었다. 허점없는 논문은 없고, 설사 거의 완벽에 가까운 논문이라 해도 새로운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시비걸’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저명한 저자를 인용할 때는 보이지 않게 “대가”를 붙였고, 듣도 보도 못한 저자의 글 앞에서는 불성실한 독자가 되기도 했다. 한마디로 공부가 뭔지 몰랐다.

담론의 장에서 계급장은 없다. 다른 이들의 논문을 가벼이 여기라는 뜻이 아니다. 당신의 주장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말이다.

거래의 대상이 된 강의 녹음 파일

Posted by on Mar 25, 2016 in 강의노트, 단상, 링크 | One Comment

1. 가장 불편했던 것은 녹음파일이 거래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었다. 극심한 학점경쟁 상황에서 ‘결석한 애들한테 왜 녹음파일을 줘야 돼?’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필기 안보여 주듯 녹음 파일을 혼자만 열심히 듣는 경우다. 그런데 돈을 받고 녹음파일을 넘긴다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현상의 핵심은 아니지만 페친분들 중에서 강의 녹음 파일에 대한 저작권 이슈를 정리해 주실 분이 계신지 모르겠다. 이쪽으로는 문외한이라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2.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의 저자 이혜영 교수가 지적했듯 최고학점을 받는 비결은 교수의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해석도 비판도 심지어는 축약이나 각색도 하지 않고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 그게 최선이다.

3. 적어도 영어과의 경우 이런 현상은 대학 강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가 학생들에게 EBS 지문을 달달 외워서 시험보도록 하지 않나? 심지어 영어지문의 한글 번역 텍스트를 달달 외우는 학원 수업도 있다. 중학교 수행평가 단골메뉴는 본문이나 다이얼로그 외워 말하기다.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말해야 만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글로벌 창의 인재’같은 구호를 계속 외치니, 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4. 한 가지, 이게 대학 전반의 문제라고 단언하는 논조인데 적어도 내가 경험한 몇몇 학교에서는 극소수의 행태였다.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5. 조금 다른 이야기. 수업 중간 기말고사를 위해 과외를 받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카더라’ 통신이 아니라 목격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법적인 문제야 뭐 있겠나 싶다. 당사자들 간에 맺어진 자유로운 계약인데. 그런데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맘이 좋지 않다. 학업능력에 대한 평가를 거쳐 들어온 학생들이 다시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상황이 어색하고, 학업의 어려움을 경제력으로 해결하는 방식이 대학에까지 침투했다는 사실이 불편하다.

6. 학생들은 자신이 처한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고 한다. 그게 강의 녹음과 무차별 암기이건, 강의 녹음 파일을 거래하여 금전적 이익을 취하는 것이든. 그런데 이걸 일부 못된 학생들의 행태로 몰아가는 건 본질에서 벗어난 일이다. 대학 생활이 이 지경이 되기까지 대학은 교수는 무엇을 했나.

7. 솔직히 이런 글 읽을 때마다 무력함이 찾아온다.

8. 미국의 방식을 고려해 보자고 하는데… 몇년 전까지 교수들이 절대평가 할 수 있었다. 예습을 강제하는 거, 강의계획서에 명시하는 선생들 많다. 꼭 그게 ‘미국식’이라고 할 게 뭐 있나 싶다.

9. 학생들에게: 근데 내 강의는 녹음하지 말아라. 녹음해서 뭐하냐. 파일로 남기면 세상에 엔트로피만 증가할 뿐. 그리고 시험이 어려울 거 같으면 나한테 와라. 과외 같은 거 받지 말고. 너희가 낸 수업료로 추가 설명 모두 커버된다.

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160325102705393

논문쓰기 수업 복기

1. 영어논문을 많이 읽으면 영어를 따로 공부하지 않고도 영어논문을 잘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우리말로 된 소설 많이 읽으면 소설가가 될 수 있나? 우리말 뉴스 많이 보면 뉴스 스크립트 잘 쓸 수 있나? 모국어가 이럴진대 외국어로 글을 쓰는 건 어떻겠나?

2. 영어로 논문쓰기에 대한 또 하나의 큰 오해는 “읽기는 무리가 없는데 쓰기가 너무 안되네요” 같은 말에서 잘 드러난다. 텍스트의 입력과 출력이 전혀 다른 인지적 과정을 수반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논문읽기는 기본적으로 내용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논문을 읽고 나면 그 내용이 일종의 정신적 표상(mental representation)으로 남는다. 논문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거기에 어떤 단어, 연어, 메타포가 쓰였는지, 어떤 문형이 어떤 순서로 동원되었는지 기억하진 못한다. 비유를 들자면 이해를 위한 읽기는 ‘요리 재료와 요리 과정에 관심이 없다. 최종적인 요리의 종류와 인상적인 특징을 이미지로 기억할 뿐이다.’
하지만 쓰기는 단어를 하나 하나 배열하며, 효과적인 문법 구조를 의도적으로 동원하는 과정이다. 내용을 아는 것을 넘어 구체적인 단어와 문법 구조를 선택하는 언어집약적 산출 활동인 것이다.
따라서 (1) 이미 완성된 저자의 언어에 기반하여 나의 머릿속에 내용을 구축하는 일과 (2) 여전히 완성되지 못한 생각을 기반으로 텍스트를 써내려 가는 일은 전혀 다른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여기에서 읽기와 쓰기를 전략적으로 연계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3. 논문작성은 연구실적을 쌓는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저자가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의 저작에 대해 권위를 가진 사람이다. 또한 저작의 과정 자체가 해당 영역에 대한 전문성을 갖출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논문쓰기가 고되고 지루한 작업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과정을 통해 저자 또 전문가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졸업 요건의 충족’이나 ‘실적 달성’에서 ‘저자-되기’, ‘전문가-되기’라는 관점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The meaning of true partnership

Posted by on Mar 21, 2016 in 강의노트, 인용구 | No Comments

“True partnership is a bond that does not fit in any predefined discourse. It requires spontaneity as a pre-condition to the educational process although education is not the mere result of spontaneity. It is a middle path, only possible to access if we do something out of these initial conditions. This something is based on the experience of limits. The place where this experience happens is, for Buber, the between (Zwischen). Here we can point the most remarkable affinity with Vygotsky’s Zone of Proximal Development in the understanding of the conditio humana.”

 
From Bartholo, R., Tunes, E. and Tacca, M. C. V. R. (2010), Vygotsky’s and Buber’s Pedagogical Perspectives: Some Affinities. Educational Philosophy and Theory, 42: 867–880.

Zootopia – Ideas for class

<Zootopia> is the best Disney animation ever, at least for me. I am going to use this as a cultural text in my SCT(sociocultural theory) and L2 Education course this semester. Some random keywords are thrown below.

1. Inside Out: Developmental psychology & growing = Zootopia: Crosscultural communication & belonging – Regarding the interwoven nature of growing and belonging, the course will discus some tenets of discursive psychology.

2. Cultural stereotypes, essentialist thinking,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 – What concepts and metaphors do we employ in understanding, judging, and categorizing others? Where do they come from?

3. Tolerance about others vs. Tolerance about oneself – Can we trace the social origin of our (in)tolerance about ourselves? Can you share your experience with regard to this issue?

4. Diversity & standardization, nature & nurture, and history & ontogenesis – How do ‘opposites’ hold human cognition and society together?

5. Interracial problems in the US, international conflicts around the world – Find some allusions to US and international politics and discuss their relevance to your local contexts.

6. And another acronym for ZPD! = Zootopia Police Department (not Zone of Proximal Develo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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